나병 환자 를 고치신 예수님 | 마태복음 8장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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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눅 5:12~16) – 유평교회

주제 :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본문 : 누가복음 5장 12~16절 설교자 : 이병권.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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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6/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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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누가복음 17:11-19)

우리는 여기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수께서 열 문둥병자를 치료하시는 기사를 보게 된다. 문둥병은 유대인들에게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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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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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막 1:35~45) – Daum 카페

문둥병(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막 1:35~45) · 1. 우리에게는 구원 받을 만한. 아무런 능력도 자격도 없으나.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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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7/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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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께서. – 가톨릭정보 – 굿뉴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죽음(원죄)이있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 제사장은 그 당시에 나병환자를 고치신 분은 메시아 하느님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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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ria.catholic.or.kr

Date Published: 5/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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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김순정목사 설교]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나병환자와 예수님(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 [김순정목사 설교]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마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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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reformednews.co.kr

Date Published: 8/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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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8:1] 나병환자 기적을 일으키는 신앙의 4가지 법칙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마 8:1-4, 막 1:40-45, 눅 5:12-16) 예수님이 일으키신 10번째 기적은 산성설교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옥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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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inedata.tistory.com

Date Published: 4/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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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 언약성경장로교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나병 환자의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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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venantbpkorea.org

Date Published: 3/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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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환자를 깨끗게 하심” 마가복음 1:40-45 5/5/2019 > 주일 설교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친히 그 손을 대셔서 고치신 적도 있고 (마 8:3,15;9:29;17:7;20:34;눅 5:13;7:14;22:51 등). 때로는 병자들이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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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21stcbc.org

Date Published: 4/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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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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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나병 환자 를 고치신 예수님

  • Author: 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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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YNuaaK-Nnmg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누가복음 17:11-19)

[ 나의 묵상 ] – 2020.01.15. 수. 새벽

열 명의 나병환자가 똑 같은 고침을 받았다. 감사할 조건이 동일하였다. 전혀 다르지 않는 병 나음의 은혜를 받았다.

1. 사람마다 받는 은혜, 주님께서 주신 은혜는 다를 수도 있다. 각자의 처지가 다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10명의 나병환자는 똑 같은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향한 감사, 주님을 향한 신앙고백은 달랐다. 같은 환경과 조건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에도 반응은 너무나 다르다.

2. 그리고 9명의 사람은 감사하지 않았다. 감사한 자는 한 명이다. 주님 앞에 반응하는 자는 10%이다. 주님 앞에 헌신하는 자는 다수가 아닌 소수임을 알 수 있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자. 쉽게 반응하지 말자.

3. 또한 자신은 주님께 감사하고픈 마음이 생기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하지 않으면 나도 덩달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은 하지 않는데 내가 특별나게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여 즉시 행동에 옮긴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더라도 부하뇌동하지 않아야 한다. 주님과의 나의 관계에만 집중하자. 주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묵묵히 실천해 나가자. 주변 사람이 나를 향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묵묵히 행하자.

4. 이 때 주님이 칭찬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며 위로해 주신다. 이러한 음성을 듣는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자.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이라고 하신다. faith라고 하신다. 신실하다 하신다. 이런 신실함이 우리를 구원받게 하신다. 신실한 삶, 변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도록 하자.

[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 ​

천국의 제자 된 삶은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삶의 핵심에는 회개와 끊임없는 용서가 있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섬김, 그리고 감사가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의 삶(1-4) 천국의 제자 된 삶은 공동체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책임은 형제가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형제를 잘못된 가르침으로 타락하게 하는 일은 엄중한 심판이 따릅니다(2).

두 번째 책임은 형제가 죄를 지었다면 개인적으로 회개를 권면해서 회개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언제든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같은 잘못을 반복해도 용서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비판적인 감시자가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과 짐을 짊어지는 것이 천국 공동체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회 안의 형제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이지 않습니까? 형제의 신앙과 덕을 세우고 현학함과 짐을 나누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까?​

믿음과 섬김의 삶(5-10) 먼저, 천국의 제자 된 공동체의 기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어떻게 커지는가를 묻지만, 예수님은 믿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는가’를 물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작은 믿음도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섬김’입니다. 어떤 수고와 섬김을 감당해도,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 여겨야 합니다. 더 많이 섬겼다고 목소리가 더 커져서는 안 됩니다. 섬김을 이익의 재료가 아닌, 아름다운 의무로 여기는 것이 천국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섬김을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아름다운 의무로 여깁니까? 섬기려는 태도보다, 섬김을 통해 인정받으려는 태도 속에 나의 ‘믿음 없음’이 보이지 않습니까?​

믿음과 감사의 삶(11-19)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열 명의 나환자들을 만납니다. 긍휼을 구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즉시 응답하셔서 모두를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동일한 은혜를 받더라도 모두가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고도 쉽게 망각합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감사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감사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더라도 그 삶에는 천국의 기쁨이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받고서도 감사가 없기에 기쁨이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상황과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모든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시는 그분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 성경본문 이해 ]​

17:11-19의 첫 문단은 이스르옐 골짜기를 여행하시던 예수께서 열 문둥병자를 치유해 주신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치유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아홉 명의 유대 출신 문둥병자들은 모두 제 길로 가고 오직 사마리아 출신의 한 문둥병자만이 예수께로 돌아와 감사와 경배를 드린다.

이에 예수께서는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는데,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매우 상징성이 강한 사건이다. 즉 이 사건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를 먼저 받은 유대인이 육적 선민(選民)이라는 지위에 연연하여 그 구약의 성취로 오사 새로이 신약의 복음(福音)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거나 순종하지 않은 반면, 오히려 이방인은 주께 감사하며 경배함으로 결국 최종적인 구원을 먼저 얻게 될 것을 예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일단 모두 복음의 은혜에 접하게 될 것이지만 그 중의 대다수가 육적 차원에서만 복음을 받아들여 복음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최종 구원의 가치를 깨닫지 못함으로 주님께 나아오지 않을 것과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주님의 복음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 주께 나아옴으로 영원한 천국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보여 준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문둥병(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막 1:35~45)

* 오늘의 말씀 : 문둥병(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마가복음 1:35~45)

* 본문요약

예수께서 아직 날이 어두운 아주 이른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오자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갈릴리의 마을들로 다니시며 전도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한 문둥병 환자가 예수께 나아와 엎드려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말하자,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병을 고치십니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셨으나, 그는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이 일을 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한적한 곳에 계셨습니다.

찬 양 : 258장(새 500) 물 위에 생명 줄 던지어라

255장(새 501) 너 시온아 이 소식 전파하라

* 본문해설

1. 갈릴리에서의 전도 여행(35~39절)

35) 새벽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36)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37)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자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3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까운 이웃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내가 전도하리니, 내가 이일을 위하여 왔노라.”

39) 그리하여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유대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2. 문둥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40~45절)

40) 한 문둥병 ( 나병 ) 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청하였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42) 그러자 곧 문둥병 ( 나병 ) 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43) 예수께서는 곧바로 그를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44) “이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하여진 것을 그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라.”

45) 그러나 그 사람은 나가서 이 일을 여기 저기 마구 퍼뜨려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마을 밖 한적한 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방에서 예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 문둥병, 나병(40절) :

성경에서 말하는 나병은 고약한 불치의 피부병을 뜻합니다.

오늘날처럼 피부병을 구분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으므로

당시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아주 고약한 피부병은 모두 ‘나병’으로 불리웠습니다.

– 불쌍히 여기시고(41절) :

‘불쌍히(민망히) 여기다’에 해당하는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애끓는 애절한 마음입니다. 불쌍하여 애간장이 끊어질 정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44절) :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일반 백성들이 사는 곳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동굴 같은 외딴 곳에서 지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일반 백성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가 건강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제사장이 보고 판결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정한 예물을 드리며 제사장에게 가서 판결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기도하시는 예수님(35절)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습니다. 다만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시라는 것만 달랐지, 다른 부분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예수께서 하셔야 할 인류 구원의 사역을 담당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모든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이심으로, 나중에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신 후 제자들만 남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삼위의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신 예수께서도 기도하셨습니다.

하물며 연약하기 그지없는 우리들이야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2. 전도하시는 예수님(38~39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두 번째 일은 갈릴리의 마을들을 다니며 전도를 하신 일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누구든 이 말씀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사람들에게 효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지만

그 전부터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그 복음을 전할 자들이 됐습니다.

● 묵상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로마서 10:14)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그 말씀을 믿을 수 있고,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복음을 믿는 자가 되게 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기억합시다.

3. 문둥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1) 믿음 :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40절)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의 여러 마을을 다니실 때에 한 문둥병(나병) 환자가 예수께 나아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아직 예수께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의 믿음이 주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 환자의 말은 이것입니다. “나에게 죄가 있으니 주께서 들어주시지 않아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고치시를 원하시면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이 병이 나을 줄을 내가 믿나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고칠 능력은 있으시지만, 고치든 안 고치든 그 모든 권한은 예수님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가 주께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지 않아도 내가 할 말이 없으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 죄가 사함을 받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줄을 내가 믿나이다.”하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주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2) 예수님의 은혜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41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하여 애간장이 끊어질 정도가 됐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아이가 배고파 우는 것을 보고 애를 끓는 가난한 엄마의 마음처럼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의 몸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께서 그가 깨끗해지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단지 그의 몸에 손을 살짝 대는 일만 하시고는 “깨끗함을 받으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원하시면 무슨 일이든 일어납니다. 그는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원하시면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납니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우리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 믿나이다.”하고 기도한 것에 대하여 주께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따라 우리 죄가 용서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용서하면 우리 죄가 용서받게 되는 것이고, 그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3) 구원 : 나병이 나가고 깨끗하여지니라(42절)

예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고 말씀하시니, 그 사람에게 있던 문둥병이 곧 떠나가고 그가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문둥병을 고치는 것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둥병을 말씀 한 마디로 고치신 것입니다. 그에게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 묵상 :

예수께서 원하시면 우리에게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고 우리가 하나님처럼 죄가 하나도 없는 자가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을 이룰 능력도 자격도 없으나, 주께서 원하셔서 이루어진 것이니,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4) 예수님의 경고 : 이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44절)

예수께서 그 사람의 병을 고치신 후에 그 고친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증거로 삼되, 이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며 예물을 바치라는 것은, 제사장이 몸이 고쳐졌다고 확인을 해 주어야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신 것은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못하게 되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리지 못하도록 엄히 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온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5) 전도 : 이 일을 많이 전파하고 널리 퍼지게 하니(45절)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며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여기저기를 다니며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말하여 그 일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그 기쁨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 묵상 :

이처럼 전도를 하려면 전도의 방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먼저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그 은혜와 기쁨을 체험해야 그것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을 내게 보내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면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납니다.

* 기도제목

1. 우리에게는 구원 받을 만한

아무런 능력도 자격도 없으나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은혜로 되었음을 믿습니다.

2. 주께 예배드릴 때마다

주께서 베풀어주신 이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3. 우리도 문둥병에 걸렸던 이 사람처럼

기쁨으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GoodNews 가톨릭정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숨으신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시니까 이 분이 이스라엘의 세상의 왕으로서 로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왕이라고 생각하고 왕으로 모실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죽음(원죄)이있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라는 것을 못 보기때문에 숨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한테 보이라는 것은 예언서에 메시아가 오시면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습니다 라고 예언 되었기 때문에 율법을 많이 아는 제사장은 그 당시에 나병환자를 고치신 분은 메시아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보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정결례를 해야 이스라엘 공동체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제사장한테 가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인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사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신 이 분은 세상의 왕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로마의 지배하에서 구원시킬수 있는 왕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진리왕으로 인류의 모든 백성을 구원하실 만왕의 왕으로서 오셨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시고 숨으셨던 것입니다 루가복음 (5:1~16)에서 고기잡이 기적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시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쳐라 해서 많은 고기를 잡았읍니다 베드로는 두려워해서 예수님께 제게서 떠나 주십시요 저는 죄인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은 기적으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는 하느님을 만난후 두려워서 떠나라고 했지만 예수님이 우리안에 안계시면 우리들은 영적나병이고 영적인 중풍병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사람낚은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병환자 예화를 들어 치료하시면서 베드로 보고 내가 너희안에 없으면 영적으로 네가 나병환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도 하느님을 은사인 기적으로만 보고 열매로 계신 즉 사랑 ,기쁨 ,평화와, 내안에 계신 사랑의 하느님을 못 볼때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를 피해서 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으로 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읽고 묵상합시다. 세상영광을 찾은 사람에게는 숨으시고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사람들에게는 나타나 보여주십니다

[마8:1] 나병환자 기적을 일으키는 신앙의 4가지 법칙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마 8:1-4, 막 1:40-45, 눅 5:12-16)

예수님이 일으키신 10번째 기적은 산성설교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옥과 같은 산성설교를 하시고 많은 군중들과 함게 산을 내려 오실 때였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나와서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젊잖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셨더니 즉시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병환자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본문은 기적을 창조하는 4가지 법칙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기적이 일어나도록 생명을 걸어라.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기가 하는 일에 생명을 건 사람입니다. 너 살고 나 살자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소극적입니다. 나 살고 너 죽어라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나 죽고 너 살아라라는 사람은 지극히 희생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 죽고 나 죽자고 대드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당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레위기 13장은 문둥병자에 대한 규례입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살아있는 송장으로 취급받아 성밖으로 나가 살아야 합니다. 걸어다니는 무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미리 장례식을 하고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이는 건강한 사람은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뜻이였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보고 싶으면 일년에 한번 성안에 들어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어 올 때에는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옷을 찢어야 합니다. 머리를 풀어야 합니다. 윗 입술을 아래 입술로 가려야 합니다. 그리고 종을 들고 걸어야 합니다. 길을 가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종을 치며 “나는 부정합니다. 나는 부정합니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바람이 불 때는 100규빗 떨어져서 이야기 하여야 합니다. 문둥병의 감염을 막으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만일 문둥병자가 나타나면 건강한 사람은 숨거나 돌을 던져서 쫓을 수가 있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면 돌로 쳐 죽일 수가 있습니다. 문둥병자는 불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집안을 드려다 보면 대들보까지 불결하여 지기에 정결예식을 거행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문둥병자는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곳으로 달려와 병고침을 간구한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뒤로와서 옷 자락을 만진 12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자세도 목숨을 건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옷을 만지면 음란한 여자라 여겨 돌려 쳐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도 만졌습니다. 발각이 되었을 때 그 여자는 두려워하였고 떨었고 엎드려 빌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랑으로 일으켜 주셨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적을 주십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지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기 때문입니다.

(2) 기적을 일으키는 자에게 겸손하라.

문둥병자는 ‘나아와 절하고’라는 행동을 보아 얼마나 겸손하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절하고라는 헬라어는 프로스쿠레인데 이는 보통 절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할 때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문둥병자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는 증거입니다.

교만한 간구는 응답이 없지만 겸손한 간구는 하나님의 기적을 끌어 들이는 지남철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들에게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3) 기적을 일으키는 자에게 위탁하라.

문둥병자는 자기가 결정하고 주님에게 맞추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문둥병자는 ‘원하시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모두를 주님께 위탁하였습니다. 이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고 기도한 주님의 기도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난 후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옳바른 기도입니다.

(4) 기적을 일으키는 자의 능력을 인정하라

문둥병자는 “원하시면 고치실 수 있습니다”라고 확실히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원하여도 문둥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원하시면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실 수 있습니다”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주님은 못 할 것이 없는 분임을 믿고 나가는 자에게 믿음의 기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문둥병자에게 주님은 손을 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어쩌면 문둥병자에게 손을 제일 먼저 대신 분은 우리 주님일지도 모릅니다. 문둥병은 접촉으로 전염되는 병이기에 사람들은 만지기를 꺼리는 병입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우선 작은 반점이 생깁니다. 고름이 나고 눈섭부터 빠지게 됩니다. 성대가 거칠어 지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손이 오그라듭니다. 발이 썩습니다. 손이 썩습니다. 온 몸이 썩기 시작합니다. 손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여 발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서서히 뇌로 문둥병균이 침투합니다. 정신적인 감퇴가 시작되며 혼수상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죽게 되는 병중에 가장 나쁜 병입니다. 이 과정은 10년에서 15년 걸리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20년에서 30년 가는 이도 있습니다. 병중에서 가장 긴 진행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누구도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치유가 가능하십니다. 그러나 손을 대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문둥병자를 향한 사람입니다. 믿는 자에게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티모르 섬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멜테리의 간증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희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막 16:18)라는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쿠풍지역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지역은 대단히 무시무시한 지역입니다. 그 마을로 전도하러 간다고 하였더니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아니 당신들 정신이 나갔습니까? 그 곳에 가면 당신들은 당장 죽습니다. 그 곳은 마법이 극심한 곳이고 사람을 죽이는 독약을 제조하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마을에 가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가지 마십시요. 사람들은 당신들을 죽일 것입니다.”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멜테리에게 갈 것을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멜테리와 여동생, 처남 그리고 4명이 동료들이 같이 갔습니다. 사실은 겁이 났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라는 것이었씁니다.

드디어 오랜 시간 후에 그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목마르고 배가 고팠습니다. 도착 하자 말자 마을 사람들은 친절을 베픈다며 먹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등골이 오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고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말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은 아주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시군요. 아주 존경합니다.” “아니요 우리는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저희를 놀리고 있는 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정말 능력이 없어요. 당신들과 똑같아요.” “아니요 믿을 수가 없어요, 만일 당신들이 보통 사람이라면 어떤 굉징한 능력이 여러분을 보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지요?” “당신들이 이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는 음식과 물에 강력한 독을 넣었습니다. 당신들은 3분내에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켜보니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누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멜테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제야 깨닫고 말했습니다. “예!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그 분의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1분이면 그 분을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집에 가셔서 모든 부적과 모든 우상들을 때려부수고 이 곳에 다시 모이십시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이들은 둘러 앉아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수많은 생명을 하나님께 인도하실 수 있도록 기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놀랍고 기쁨니다.”

이렇게 주님은 필요한 때 반드시 기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기적으로 고침받은 문둥병자는 정결예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제사장을 찾아가야 합니다.

레위기 14장은 문둥병자의 정결 예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두 차례의 성결 예식을 걸쳐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 1차 성결 예식은 제사장이 진밖에서 행하였습니다. 문둥병자가 정결해졌다고 선포하는 예식입니다.

제 2차 성결 예식은 제 1차 성결예식을 거행한지 7일 후 따라서 8일째 되는 날 성막 또는 성전에서 행하였습니다. 성전의 여인의 뜰에는 4개의 방이 있었는데 고침 받은 문둥병자들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려고 대기하고 있는 방이었습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리고 나서 그리운 가정으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정말 제 2의 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이는 사망 가운데 살던 사람도 다시 하나님의 식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육적인 문둥병 보다는 영적으로 병든 것이 더욱더 무섭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육적이든 영적이든 더러운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께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애쓰고 절실한 간구로 구하여 보도록 합시다. 우리의 영육간의 더러운 병을 씻기시는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총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

[누가복음 5장]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지난 말씀

지난 시간에는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 하신 예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베드로의 장모를 위해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1년 전에 부르셨습니다.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변화시키는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유대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이를 니고데모가 확인시켜줍니다. 그는 예수님의 기적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다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는 믿음이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병도 낫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간청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시간 주님을 따라 왔지만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간청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나병 환자의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PART I 예수님께 나온 나병 환자(v12-13)

“그분께서 어떤 도시에 계실 때에, 보라, 온 몸에 나병이 있는 사람이 있더라. 그가 예수님을 보고 얼굴을 대고 엎드려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매”

이 사건은 예수님 공생애 2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2차로 전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직후에 온 몸에 나병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보라, 온 몸에 나병이 있는 사람이 있더라. 그가 예수님을 보고 얼굴을 대고 엎드려 그분께 간청하여”

“보라“란 단어는 강조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킬 때 사용합니다. 성경은 이 나병 환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나병에서 치유함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나병환자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까?

첫째, 용기 있는 믿음

나병이란 ?

오늘날​의 나병​은 한센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이름​이 붙게 된 것​은 게르하르 A. 한센 박사​가 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세균​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나병”은 오늘날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질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서 속​의 나병​은 사람​뿐만 아니라 옷​과 집​에도 생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 14:55) 모든 종류의 피부병을 당시는 나병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나병의 증상

나병​이 더 진행​됨​에 따라, 고름​이 나오며, 머리털​과 눈썹​이 빠질 수 있고, 손발톱​이 물러져 썩고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환자​의 손가락, 팔다리, 코​나 눈​이 서서히 썩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구스 여인, 아프리카 출신 여인을 모세가 부인으로 맞이한 사건을 비방한 것으로 인해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나병이 걸렸습니다. 이 일로 아론이 모세에게 미리암을 위해 이렇게 간청합니다. “부디 그녀가 자기 모태에서 나올 때에 살이 반이나 썩어 죽은 자같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민수기 12:!2)

나병에 걸린 자의 의무

“그 병이 있는 나병 환자는 자기 옷을 찢고 자기 머리에 쓴 것을 벗고 덮개로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그 병이 그에게 있는 날 동안에는 그가 늘 더러우리라. 그는 부정한즉 혼자 살되 그의 거처는 진영 밖이 될지니라.”(레위기 13:45-46) 나병 환자는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죄를 지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구원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사회적, 종교적 단절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만약 일반사람이 다가오는데 가만히 있다가 나병환자임이 발각되면 돌로 쳐 죽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나병 환자는 온 몸에 나병이 퍼져있었습니다. 나병환자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던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 앞에 나오기 위해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을 이겨야 했습니다.

둘째, 메시아를 믿는 믿음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이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신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올 때 “선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통해 메시아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가정법은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임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신하는 의미입니다. 단지 이 나병 환자는 메시아 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실 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능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PART II 나병을 고치신 예수님(v13-15)

“그분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정결할지어다, 하신즉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니라.”(누가복음 5:13)

첫째, 마음의 상처를 고치신 예수님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나병에 관해 성경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규칙을 만들어 나병 환자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랍비들이 만든 규정은 아무도 나병 환자에게 4큐빗(약 2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람이 불 경우에는 100큐빗(약 45미터) 이내로 접근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일부 탈무드 학자들은 나병 환자가 “진영 밖”에 살아야 한다는 성경의 요구 조건을 성벽 밖으로 나병 환자를 내보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한 랍비는 성안에서 나병 환자를 보면 그에게 돌을 던지며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지 말고 썩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나병 환자에 손을 대었습니다. 이는 나병 환자의 모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 나병 환자를 배척했습니다. 이 나병 환자를 받아주고 그 아픔에 동참한 이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예수님의 만짐을 통해 이 나병 환자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이 나병 환자의 내면을 사랑의 손길로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둘째, 나병을 고쳐주신 예수님

또한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나병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나병조차도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단번에 치료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든 자연도 순종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고쳐 주십니다. 나병과 같이 냄새나고 더러운 영혼을 말씀으로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믿음의 눈으로 읽지 않으면 그냥 지식만 쌓이게 됩니다. 반대로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면 죄 사함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셋째, 공동체로 돌려보내신 예수님

나병를 고쳐주신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정결하게 되었으므로 모세가 명령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증거로 삼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나병환자의 사회적인 회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치료하실 때, 그 마음의 병부터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상처들을 아물게 하셨습니다. 또한 나병을 낫게 하시고, 사회적으로 회복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병 환자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나병 환자의 믿음은 예수님께 나오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온 자를 물리치시지 않으셨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그의 아픔에 공감해주시고 나병을 말씀으로 낫게 하시고, 그를 다시 공동체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아픔에 공감해주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케 도와주십니다.

“나병환자를 깨끗게 하심” 마가복음 1:40-45 5/5/2019 > 주일 설교

본문

“나병환자를 깨끗게 하심” 마가복음 1:40-45 5/5/2019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지난 주에는 예수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병든 자를 낫게 하거나 약한 자를 건강하게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눅 4: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고 오늘 본문에도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v.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은 문둥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센병이라고 부르기도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문등병자를 본적이 있으십니까? 이 병이 걸리게 되면 신체의 말단부가 썩어 문드러지고 떨어져 나가기까히 하는 는, 쉽게 말해서 산 채로 몸이 썩어가는 병입니다. 손상된 피부에 세균 감염이 일어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50 ft)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밖에서 살지니라”(레 13:45, 46)고 규정하고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병환자들은 병자체로 인한 고통은 물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분리되어 소외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식구들과도 가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혹시 가까이 할 일이 있으면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서 다른 사람과 가까이 하는 것을 스스로도 피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피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감히 예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예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멀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예수님께 가까이 찾아왔습니다. (V. 40)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 것은 굉장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본인 자신이 율법을 어기면서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겼다고 야단치거나 쫓아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 자기를 받아줄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의 예수님임을 믿는 것이다. “내가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을 믿는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 이 사랑이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문둥병자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고 말합니다.

이 문둥병자는 예수께서 자기 같은 자도 받으시는 사랑의 예수님일뿐 아니라, 문둥병도 고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예수님으로 믿었습니다. 실지로 예수님께서 이 문둥병자를 고치실 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깨끗해지라”고 명령하셨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병에게도 명령하고 병도 예수님께 복종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 분은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분일 뿐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를 붙들고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능력, 영원한 생명을 주는 능력, 마귀에게서 지켜주시는 능력,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능력, 풍성한 삶을 살게하시는 능력등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의 예수님임을 믿지만 또한 전능하신 예수님임을 믿습니다.

그러자 41절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다 (스플랑크니조마이) 란 말의 원어적인 뜻은 “내장이 움직여졌다” 란 표현입니다. (마 9:36) “예수께서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가 죽어 있는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란 표현과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모든 고통을 마음 속 깊이 동정하는 표현입니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예수께서는 부정한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만지셨습니다. 나병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것도 율법을 어기는 것이지만, 정상인이 나병환자를 만지는 것도 율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는 문둥병자를 만지십니다. 이 문둥병자는 몇 년 만에 어쩌면 몇십년 만에 처음 다른 인간이 자기를 만져준 것입니다.

매일의 양식 큐티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실화가 소개됩니다. 카일리라는 자매님이 동아프리카의 오지로 의료선교를 떠났습니다 이 자매는 의사나 간호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초적인 간호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합니다. 그런데 다리가 뒤틀려 역겹게 보일정도인 어떤 여인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카일리자매가 그녀의 다리를 깨끗이 씻고 붕대를 감아주자 환자가 울기 시작했다고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자기가 아프게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말합니다. “아뇨. 9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만져주었어요.”라고 대답했다고합니다.

만져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둥병은 가장 역겨운 병일뿐 아니라, 문둥병자를 만나는 자마다 부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만지는 자마다 부정해지고, 그가 만지는 자도 부정해집니다. 그래서 집안식구도 문둥병자를 멀리할 수 밖에 없고 병걸린 자는 사람들과의 접촉 없이 혼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부러 이 사람을 만졌습니다.

지금은 회교국가인 터키의 이스탄불은, 1453년도에 이 회교군에 의해 함락당하기 전에는 당시 동방 기독교의 수도 Constantinnople이란 도시였었습니다. 그 때 당시 회교군이 constantinnople 을 포위 했을 떄 사제들은 그 들의 총회에서 3가지 큰 issue로 논쟁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논쟁거리가 “성수에 파리가 빠지면 파리가 성화되느냐 성수가 오염 되느냐”였다고합니다.

예수님과 부정한 것이 접촉이 된다면, 예수님이 부정해질까요 아니면 부정한 것이 거룩해질까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친히 그 손을 대셔서 고치신 적도 있고 (마 8:3,15;9:29;17:7;20:34;눅 5:13;7:14;22:51 등). 때로는 병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손을 대어 난적도 있습니다. (막 3:10;5:27-31) 그래서 마가복음 6:56에 보면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자락만이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고 말합니다. 혈루병 앓던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을 때, 예수님의 옷을 더럽힌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이 나음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과 부정한 것이 접촉이 되면 예수님이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접촉된 자가 꺠끗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문둥병자에게도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 문둥병자의 고통을 치유해 주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마자 (42절)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이 일으키시자 즉시 나아 다른 사람을 수중을 든것처럼, 이 문둥병자도 즉시로 치료함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나병환자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내 몸은 건강하니까, 혹은 몸에 문제가 있지만, 나병처럼 심각하지 않으니까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이 문둥병자를 향하여 고침을 받으라 혹은 나음을 받으라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일단 문둥병에서 낫게되었을 떄도 “고침을 받았다”란 표현을 안쓰고 “깨끗하게 되었다”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문둥병자 자신도 예수님께 낫게 해달라나 고쳐달라는 표현 보다는 “나를 깨끗하게 해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병은 다 고침을 받았다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유독 문둥병만 깨끗하게 되었다란 표현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병들과는 달리 단지 육체적인 병이 아니라, 깨끗함을 받아야할 영적인 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당시 유대인들은 문둥병을 죄의 결과를 상징하는 질병으로 여겼습니다.

이 문둥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말하였을 때, 예수께서 (I am willing)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주님께서 내가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문둥병자를 만져주시면서 깨끗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지금도 죄의 병에 시달리는영혼들이 깨끗해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치러 오신 분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막 1:15)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문둥병같은 영적질병을 앓고 있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셨고 결국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나병환자에게 닿는 순간 나병이 완전히 치료 된 것과 같이, 나병보다 더 지독한 죽을 죄로 병든 영혼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순간 즉시,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를 이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시는 기적을 통하여 예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오늘 이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의 병에서 이미 고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적용이 있습니다. 아까 예를 들었던 카일리라는 자매처럼, 외로운 여인의 병든 다리를 만져주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손길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오늘날 나병치료를 위한 놀라운 의학적 발전이 있게된 것은, 아무도 반기지 않고 접촉치 않는 문둥병환자들에게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 무서운 질병에 노출되는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대부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의료선교사들의 희생때문에 나병이 집중되어 있던 대부분의 지역에서 교회가 번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가까이 가주지 않는 분들이, 돌보지 않는 분들이 문둥병환자들과 같은 병자들뿐 아니라, 부모를 잃은 고아들, 감옥에 갇힌 죄수들, 성노예로 팔려간 소녀들, 인신매매로 중국인들에게 팔려간 10만이나 되는 북한 여성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당하는 20만명의 동포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이들을 생각할 때 너무 게으르고 안이하고 배부르고 겁많고 무관심한 자신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우리도 팔짱만 끼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간접으로 주님의 손을 내미는 사역에 동참해야할 줄압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 되고 복음이 증거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으시고, 건강한 자를 찾으신 것이 아니라 병들고 약한 자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부자를 찾으신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자를 찾으셨습니다. 죄인, 약하고 병든자, 가난한 자 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우리도 이들을 향해, 예수님처럼 목자의 심정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손의 역할을 감당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문둥병 환자가 즉시로 깨끗하게되었는데, 43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간곡한 어조로 문둥병자에게 두가지 부탁을 합니다. 고침받은 치유 이적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3:12;마 12:16;16:20;27:9;눅8:56). 다른 부탁은 제사장에게 가서 꺠끗해진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제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앞에서 깨끗함의 선언을 얻기 전까지는 비록 병에서 고침을 받았더라도 인정받을 수 없고 계속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두번쨰 명령은 잘 지켰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것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경고는 청개구리처럼 꼭 반대로 지켰습니다.

45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그 동안에는 사람들과 전혀 접촉할 수 없던 사람이, 문둥병 에서 고침을 받고 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너무 많이 간증을 하면서 돌아다녀서 예수께서 더 이상 동네에 들어지 못하고 한적한 곳에 계셔야할 정도로 소문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는 자’라는 명성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야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능력 많으신 예수께 몰려와 세상 권력을 장악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문둥병자로 인해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증거하는데까지 방해를 받게된 것입니다.

이 문둥병에서 난 이 사람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지만 병고침 받은 사람들은 계속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7장에 보면 귀먹고 벙어리된 자를 고치신 역사를 본 무리들에게 “예수께서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습니다.”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하지 말라고 경고 했음에도 전하는 것과,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라고 명령했는데도, 전하지 않는 것 누가 더 나쁜 사람입니까? 예를 들어 말기암 치료를 위한 새로운 약을 알면서도, 암환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보내신 사실이, 나를 구원한 사실이 병이 나았다는 사실만큼 중요하거나 감격적인 것으로 느끼고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알고 믿게되었던 그 믿음의 감격과 간증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닙니까? 병고침을 받은 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구원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되어져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날마다 복음으로 인한 나의 삶의 흥분이 있고 감격과 감사와 간증이 있고 이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운 것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이 문둥병자처럼, 자신처럼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병자도, 죄인도 받아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겠습니다.

우리는 이 문둥병자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깨끗하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병, 우리의 죄에서 깨끗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란 믿음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처럼 목자의 심정을 갖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접근하지 않는 자들에게 손을 내어주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과 구원의 간증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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