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의 범죄 | [내사랑성경 77편] 다윗의 범죄 27304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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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12장 9절
제목 : 다윗의 범죄
사무엘하 11장의 내용입니다.
(영상제작) 한마음한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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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범죄와 죄악

능력의 수요 강해 3: 사무엘서. 2020. 07. 29. 다윗의 범죄와 죄악. 사무엘하 11장. ◇ CHECK POINTS. ① 다윗이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를 짓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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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ngnak.com

Date Published: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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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범죄와 하나님의 징계 – 다음블로그

그렇습니다. 나만이 알고 있는 죄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내 속에 증오가 있고, 미움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라게 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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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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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범죄 (삼하 11:1~13) – 네이버 블로그

즉 다윗의 범죄는 신정 왕국의 대표자인 왕으로서 공의의 의무를 저버린 것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례에 대한 불순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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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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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성범죄, 용서보다 ‘대가’에 주목하자 – 뉴스앤조이

다윗에게 은혜로운 하나님의 용서는 없었다. 다윗의 지도자로서 벌인 성적인 범죄와 부하를 은밀하게 죽인 사건은 이후 다윗의 평생 큰 재앙으로 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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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3/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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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는데 왜 그의 아들이 죽었을까?

완전범죄가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나단 선지자가 그를 찾아 와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한 성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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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antaclarakumc.org

Date Published: 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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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 31번 – 다윗의 범죄 (삼하 11:1-27절)

다윗의 범죄 말씀 : 삼하 11:1-27절 열왕기서와 역대기서를 읽어보면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또한 “그 마음이 그 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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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esusfestival.org

Date Published: 6/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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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용서) 다윗의 범죄 그리고 하나님의 벌

이처럼 ‘사랑받는 자’란 의미를 가진 다윗은 왕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통치 하는동안에 하나님에게 크게 범죄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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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ind-life.tistory.com

Date Published: 1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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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범죄- “하나님은 죄가 아무리 작을지라도 관대하게 …

범죄가 행해진 뒤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자비로 그의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그에게 말하기를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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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ilywrn.com

Date Published: 4/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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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와선지자 – 71장 다윗의 범죄와 회개

그러나 다윗은 안일과 스스로 안심하는 상태에 빠져 하나님 의지하기를 잊어버리므로 사단에게 굴복하고 그 자신에게 범죄의 오점을 남기게 됐다. 하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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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agospel.com

Date Published: 9/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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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성경 77편] 다윗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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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다윗 의 범죄

  • Author: 조한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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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2. 2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NqGX2BLd9I

하늘꿈교회 <예피>

다윗의 범죄와 하나님의 징계 – 다윗

*- 본문 : 삼하 12:7-15 -*

* 지난 시간을 정리해 봅시다.

왕이 되기 전 다윗의 모습은 1.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2.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 3. 혹독한 시련을 잘 견디어 낸 자 4. 진정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왕이 된 다윗은 1.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 2. 나라와 백성을 참으로 사랑한 사람 3. 나라를 하나님 중심으로 세운사람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과의 특별한 축복의 언약을 맺으면서 다윗의 가문과 그의 후손이 영원히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합니다.

*. 다윗의 기도와 이스라엘의 번영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듣고 다윗이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를 요약하면 아래의 말씀과 같습니다.

삼하7:18하-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7:28-29-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1. 주변 열방들과의 전투에서 승리

그리고 이후에 다윗의 행보는 굉장한 탄력을 받게 됩니다. 이미 내부의 적인 여부스 족을 제거했고 외부의 세력인 블레셋의 세력을 무력화시켰으며 안으로는 언약궤를 모시고(말씀 중심의 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성전을 지을 마음까지 있었던 차에 하나님이 말할수 없는 놀라운 축복의 언약을 맺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다윗은 지경을 넓히는 일에 착수하게 됩니다.

1. 블레셋을 다시 쳐서 메덱암마를 빼앗음

2. 모압을 쳐서 조공을 바치게 하고

3. 소바왕 하닷에셀을 치고

4. 아람을 치고

5. 하맛왕 도이가 축하사절을 보내고

6. 아말렉을 치고, 에돔사람을 쳐서 종으로 삼았다.

이러한 모든 싸움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

삼하8:12-13-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2. 므비보셋을 후대함

하나님이 다윗에게 축복을 약속한 대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덕이 있는 정치를 했다. 특히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서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모든 재산을 물려 주고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자기 상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배려를 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백성들 중에는 왕에 대한 안티 세력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권세를 잡을 수 있는 길이 없는가 하여 궁리를 하는데 므비보셋을 세워주는 것은 왕권의 정통을 잇는 인물이기에 불만세력들이 므비보셋과 그의 아들 미가를 들어서 옹호하려는 세력이 생길 여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나단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요나단의 자식을 끔찍이 돌본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덕망이 백성들에게 알려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다윗은 이제 주변의 모든 세력들을 대부분 평정했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주변국은 암몬 족속이었다.

이처럼 다윗의 왕권이 초기에는 이스보셋의 반란으로 인해 힘들었지만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모든 외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므로 아주 튼튼한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이젠 더 이상 부러울 것이 별로 없었다.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암몬과의 전투인데 그 전투도 군사령관인 요압에게 맡겨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위기 때에 우리가 대처하기는 오히려 쉽다. 외세의 침략 앞에서는 모든 나라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힘을 모으고 단결한다. 그런데 태평성대를 누리면 내부에서 발생하는 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가 그랬듯이 환난을 견디는 것은 쉽지만 번영을 견디는 것은 환난을 견디는 것 보다 10배는 더 어렵다.

그 옛날 로마는 막강한 제국이었다. 그런데 로마가 무너지는 것은 내부의 부패로 인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안주하고 편해지기 시작하면 내부에서는 썩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받을 만큼 사랑받았고,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하는 큰 축복을 누렸던 다윗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던 시기에 자기도 모르게 유혹을 받아 범죄하게 된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아무 문제없이 에덴동산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 때 선악과에 대한 유혹이 찾아 왔듯이 말이다. 뱀은 이처럼 간교하다. 사탄은 교활하다. 그리고 우리의 약점을 파고드는데 명수이다.

* 다윗의 범죄

새해가 되어 전쟁하기에 적합한 시기가 되어 이스라엘은 주변의 마지막 남은 지역인 암몬을 정복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서 다윗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군사령관을 총지휘관으로 세워 싸움에 내보냈다. 그리고 다윗은 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 것이다.

저녁때에 다윗이 왕궁 옥상에서 거닐고 있는데 왕궁 근처의 어느 집에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에 대해서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무엇에 홀렸는지 전령을 보내 그 여인을 데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과 동침을 했습니다.

다윗은 아무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일을 거사를 치르고 끝내려고 했나 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밧세바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 전쟁터에서 사람을 보내 요압에게 우리야를 궁으로 보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능청맞게 다윗은 전쟁터의 안부를 물은 다음 집에 가서 발을 씻으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야로 하여금 휴식을 취하라고 하면서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고 밧세바가 임신한 것이 우리야와 밧세바와의 동침 결과 생긴 것으로 덮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야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왕궁을 지키는 군사들의 숙소에서 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다시 우리야를 불러 왜 집에 가지 않았느냐고 하고서는 음식을 극진히 대접하고 술을 많이 먹인다. 술이 취하면 집에 가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야는 술에 취한 그날 밤에도 그의 부하들과 더불어 잠을 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윗은 특벼한 조치를 취한다. 요압에게 밀서를 써서 전쟁터에서 우리야를 죽게 하라는 것이다. 랍바성 전투에서 우리야만 남겨두고 모두 일제히 후퇴하여 우리야로 하여금 적군의 손에 전사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군사령관 요압은 다윗이 시키는대로 하므로 우리야가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다윗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안도의 숨을 내쉰 다윗은 과부가 된 밧세바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게 됩니다.

완벽한 범죄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다윗의 범죄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다윗은 간음했습니다.

2. 다윗은 살인했습니다.

3. 우리야를 속였습니다.

4. 밧세바를 탐냈습니다.

다윗은 범죄는 게으름에서 발생하여 범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게으름-이기심-탐욕-간음-속임-배반-살인

그렇습니다. 우리가 편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편안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족하다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 나단 선지자의 책망

하나님이 다윗의 범죄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보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범죄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한 예를 듭니다.

어느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부자는 양과 소가 심이 많았고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자기 자식 같이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손님이 오자 그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다윗은 매우 흥분하여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런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같은 일을 행했으니 4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 라고 입에 불이 나도록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그 때 나단 선지자는 담대하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당신을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것이 부족했습니까? 혹시 부족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이것, 저것을 더 주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를 업신여기고 악을 행했습니까?

1. 칼이 당신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2. 당신 앞에서 아내를 빼앗아 이웃에게 줄 것입니다.

3. 사람들이 백중에 당신의 아내들과 동침할 것입니다.

4. 당신의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리를 듣자 다윗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순간 바로 회개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냥 입술로만, 그 순간만을 모면하기 위해서 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진실되게 회개한 것입니다. 그 회개의 노래와 기도가 시편 51편인 것이다.

시편 51:1-3-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편51: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51: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참으로 눈물 뿌려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진심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나를 용서하소서.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내 안에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것이 다윗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다. 사울과 다윗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울은 참으로 회개함이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한 것이다.

적용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참으로 용서하소서. 나는 이런 놈입니다. 이 정도 밖에는 안됩니다. 돼지가 누웠던 곳으로 다시 가서 눕듯이 개가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나는 이렇게 죄악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존재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렇습니다. 나만이 알고 있는 죄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내 속에 증오가 있고, 미움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라게 해서는 안됩니다. 정욕이 있습니다. 탐욕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굶어 죽도록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미워하면, 시기하면, 질투하면 내 속에 사탄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자란 것이 나를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제거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의 징계

1.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음

하나님은 다윗이 부정하게 얻은 아이를 거두어 가시기로 작정했습니다. 다윗은 이 아이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기어이 아이를 데려가셨습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 아이의 죽음이 자기의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가문에 엄청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2. 암논이 다말을 강간함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연모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픈 척하고 다말이 시중들도록 부탁한 다음에 다말을 범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이상한 것은 다말을 범한 이후에 다말이 또 그렇게 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을 버리고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러니 다말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다말은 집으로 돌아가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아주 슬피 울게 됩니다.

3. 압살롬이 암논을 죽임

다말이 억울하게 강간당한 사실을 알고 있던 압살롬은 2년 후에 양의 털 깎는데 형제들을 초대해놓고 초대된 자리에게 암몬을 죽입니다. 이 소식을 다윗이 듣고 다윗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합니다. 압살롬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 그술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4. 압살롬이 반역하다.

압살롬이 장남 암논을 죽였지만 다윗은 압살롬이 자식이기에 용서를 합니다. 그래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야망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성문 곁에 서서 억울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간사한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칩니다.

삼하15:5-6-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그리고 4년이 된 이후에 압살롬은 헤브론에 내려가서 군사를 모아 반역을 일으킵니다. 갑작스런 반역이라 다윗은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참으로 비참한 모습입니다. 외부의 적이 쳐들어와서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식에게 반역을 당해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압살롬은 백주 대낮에 다윗의 후궁이었던 사람들과 동침하여 다윗을 욕보이게 됩니다. 참으로 비참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5. 압살롬이 전사함

나중에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압살롬의 군대와 대치하여 다윗의 군대가 크게 이깁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동족간의 싸움이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의 목숨을 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군대사령관인 요압은 후한을 없애기 위해 압살롬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다윗에게는 또 하나의 큰 슬픔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윗가문에 일어나 비참한 일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범죄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방심하고 있을 때 다윗은 사탄의 유혹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잘못을 깨달은 다윗은 참으로 회개를 해서 용서함을 받았지만 다윗이 치루어야 할 댓가는 무척이나 큰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동을 은밀히 행했지만 사람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의 아내들과 자식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음란하게 행한 것이 암논에게 흘러내려갔고, 다윗의 간교한 거짓과 살인이 압살롬에게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엄청난 홍역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왕이 되기 전의 다윗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 나서 번영을 이루었을 때 성군인 다윗도 자신의 번영을 잘 관리하기가 벅찼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겸비하지 않으면 자신은 여러 유혹과 탐욕과 죄악의 세력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정말로 큰 홍역을 치루었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홍역이 다윗이 갱신하는 놀라운 기회가 되었음을… 다윗은 좌절하고 낙망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내 생명을 거두어 가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한 이후 밧세바가 낳은 자식을 데려 갔을 때도 하나님의 응답에 순응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앞에서도 순응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쓸개를 씹으며 괴로움을 참아냈습니다. 다윗은 두 번째 거대한 시련을 견디어 낸 것입니다.

적용

우리 에게 닥치는 헤아릴 수 없는 고비들과 사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아픕니다. 되는 일이 없습니다. 속에서 날마다 쓴 물이 올라옵니다. 인내심이 완전히 고갈된 듯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참아내야 합니다.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반드시 선한 것으로 응답하시리라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정금같이 나오게 됩니다. 참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빚고 빚어 강하게 하심을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새롭게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다윗의 범죄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환난 가운데에서는 오히려 견디기가 더 쉽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 번영이 올 때 사람들이 칭송하고 높일 때 정상에 우뚝 섰다고 생각할 때 그 자리를 잘 지키기가 힘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죄악을 발견했을 때 반드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잘못과 죄악을 발견했을 때는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참으로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까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있기 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3. 갱신을 위한 징계를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새롭게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감내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너무나 잔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날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다윗을 훈련시키기 위해 자식들을 사용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 가문에 배여 있는 온갖 더러운 죄악의 요소들을 시련의 채로 걸러 내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짓고 징계는 과하다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징계의 시련을 잘 견디어 내세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 단계 더욱 성장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지만 다윗은 자신의 갱신 과정을 잘 견디어 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성군이 된 듯합니다. 다윗은 새로운 사람으로 새롭게 빚어진 것입니다.

나무의 나이테 하나하나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냈다는 흔적입니다. 우리 안에 시련의 흔적 곧 믿음의 흔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의 범죄 (삼하 11:1~13)

[11장 내용에 대한 개요]

사무엘하는 제1부 1~10장, 제2부 11~20장, 제3부 21-24장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1-10장)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할 신정 왕국의 왕으로 예비하신 신본주의 왕 다윗의 성공, 곧 사울 왕의 전사 이후 다윗이 간음 및 살인죄를 범하기 이전까지 그의 전이스라엘의 왕으로의 즉위 과정과 연이어진 왕국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 종교, 법적 개혁 및 성공적인 정복 전쟁의 기사를 다루고 있다.

제2부(11-20장)는 지금까지의 다윗의 성공 및 번영과 대조되는 다윗의 범죄와 그로 말미암아 다윗과 왕국에 멀어닥친 연속된 시련에 대하여 다룬다.

2부 중에서 11, 12장에서는 다윗 왕의 범죄와 이스라엘의 암몬 정복과 관련하여 다룬다. 13~18 장에서는 다윗의 범죄의 결과로서 암논의 다말 추행 사건과 그와 결부되어 발생한 압살롬의 반란 사건에 대하여 다룬다. 19, 20장에서는 다윗의 환궁과 세바의 반란 사건을 다룬다.

11장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1~27의 세 문단에서는 다윗 왕의 범죄 곧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과 우리아 살해 사건에 대하여 다룬다.

1~5절에서는 다윗의 범죄의 시기와 배경, 그리고 다윗의 밧세바 간음, 밧세바의 잉태에 대하여 다룬다. 다윗의 범죄의 시기와 배경은 암몬과의 전투가 다시 개시되어 이스라엘의 군대가 암몬의 수도 랍바(Rabbah)를 함락하기 위해 포위하고 있을 때였다. 즉 다윗은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암몬을 정벌하게 하고 자신은 궁에 그대로 남아 었다가 우연히 목욕을 하는 밧세바를 발견하고 정욕에 이끌려 범죄에 빠진 것이다.

6~13절은 맛세바의 잉태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의 일차 간음 은폐 시도와 실패에 대하여 다룬다. 즉 다윗은 전장에 있던 밧 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소환하여 맛세바와 동침케 함으로써 자신의 간음을 은폐하려고 하였으나 왕과 나라에 충직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우애가 투철하였던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음으로 인해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14~27절은 맛세바 간음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다윗이 전투를 빙자하여 우리아를 살해하고, 그의 장례 후에 맛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은 사실과 밧세바가 아들을 낳은 사실을 다룬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다윗은 이전의 의로웠던 모습과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다윗의 범죄는 단순히 일개인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하다. 즉 다윗의 범죄는 신정 왕국의 대표자인 왕으로서 공의의 의무를 저버린 것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례에 대한 불순종인 것이다. 결국 다윗의 이러한 범죄는 이후에 찾아오는 다윗 자신과 자신의 가문, 이스라엘 왕국의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새삼 각성하게 된다.

첫째, 인간 중에 완전한 의인은 없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범죄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뼈아픈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완전한 의인은 하나도 없음올 단적으로 보여준다(시 14:1).

둘째, 죄에 대하여는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윗은 일시적인 방심으로 인하여 범죄에 빠지고 말았다. 곧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마저도 살해하는 악행을 행한 것이다. 이렇게 죄는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 기회를 틈타 우리로 범죄에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늘 영적으로 깨어 죄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마 26:41).

셋째, 죄는 확장성과 심각한 파괴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다윗의 간음은 우리아 살해 뿐만 아니라 암논의 다말 성추행과 압살롬의 암논 살해,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 및 그와 결부된 죄악 등 계속해서 다른 범죄를 유발하며 가중되어 갔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다윗의 가문은 물론 다윗 왕국까지도 해체될 위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은 죄의 확장성과 더불어 죄의 심각한 파괴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모양이라도 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살전 5:22).

일생을 통해 하나님과 숨결을 같이하듯이 사랑으로 교제하던 기도의 사람 다윗,하나님을 찬양하는 숱한 시를 쓴 위대한 시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공(公)과 의(義)로 다스리던 사랑과 평화의 왕 다윗, 그와 같은 믿음의 사람 다윗마저도 거친 정욕의 포로가 되어 범죄의 시궁창에 빠졌던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실로 두려움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성경묵상]

1. 다윗의 범죄의 시간적 배경을 셜명하는 본절의 첫 단어 ‘와예히’는 와우 계속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본장이 10장의 내용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 그리고 본문에서 ‘해가 돌아 와서’에 해당하는 ‘리트슈바트 핫좌나’ 에서 ‘리트슈바트’ 의 원형 ‘테슈바’ 는 ‘제자리로 되돌아오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슈브’ 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되돌아옴’ , ‘회복’ , ‘복귀’ 라는 의미를 지닌다. 본문에서는 명사 연계형으로 쓰여 ‘핫좌나’ 의 수식을 받고 있다.

2-1. ‘리트슈바트 핫좌나’는 왕상 20:22, 26에도 나오는 표현으로서 일반적으로 추운 겨울과 수확기인 봄 사이의 기간을 지칭한다. 이 기간은 고대 근동에서 군대가 원정을 떠나기에 적합한 계절로 여겨졌다.

2-2. 왜냐하면 겨울 우기가 끝나고 날씨가 해지는 건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NIV, NASB는 ‘리트슈바트 핫좌나’ 라는 표현을 ‘봄에(in the spring)’ 라는 의미로 번역했고, RSV는 좀더 정확히 그 해의 봄에(in the spring of the year)’ 라는 의미로 번역하였다. 반면 KJV는 그 해가 끝난 후에 (after the year was expired)’ 라는 의미로 번역했는데, 이는 표현만 다를 뿐 이상의 번역본들과 통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2-3. 이러한 표현에는 다윗의 범죄의 파렴치함을 드려내려는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당시는 대적 암몬과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하던 때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군사들과 함께 출전하거나 후방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경건한 생활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그 때를 기회로 삼아 파렴치하고 흉악한 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2-4. 다윗이 출전하지 않은 것은 어렵지 않게 승리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늘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형통할 때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삶을 계속 영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다윗은 우리아를 귀가시켜 밧세바와 동침을 시켜 범죄를 은폐하려고 하였다. 충직한 우리아는 다윗의 통제 밖에 있었다. 동지들은 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자기만 편하게 집에서 아내와 즐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4.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왕들이 바깥 들에 진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라는 우리아의 말 속에 그의 충성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5.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 주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며 우리아처럼 충직한 주의 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윗의 성범죄, 용서보다 ‘대가’에 주목하자

지난번에 이어 이번 회에는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징계를 그 문맥과 사무엘하 후반부의 문맥에서 조금 더 살펴보고, 이 이야기에 대한 현대적 적용점을 찾아보려고 한다.

1. 하나님은 다윗을 어떻게 징벌하셨는가

지난 호에 언급한 대로, 이 이야기의 핵심 구절 가운데 하나는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삼하 12:13)”라는 구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절은 명확한 오역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옮기셨다”로 번역해야 한다. 오역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로, ‘다윗과 다윗의 가문에 임할 재앙들’에 관한 나단의 신탁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 문장은 하나님이 다윗을 심판하지 않으셨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다윗의 범죄에 대한 진노를 누구에게 옮기셨는지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해된 바는 다음과 같다.

1) 다윗의 죄는 용서받았다는 입장 :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 그로 인해서 “그의 죄가 옮겨졌기에 그가 죽지 않을 것(13절)”이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말 성경(개역, 개역개정)이나 일부 다른 외국어 번역 성경에서는 아래의 2)와 연관 지어 다윗의 죄가 용서받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2) 다윗의 죄는 타인에게 즉, 자기 아들에게 넘겨졌다는 입장 :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14절).” 이 입장은 다윗의 죄에 대한 징벌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처음으로 낳은 아이에게 임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들의 가장 중대한 문젯거리는 본문이 명시적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며, 죄를 지은 당사자인 다윗이 죽지 않고 그의 자식이 죽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용서하겠느냐는 것이다. 나단이 전한 하나님의 마지막 신탁은 앞에서 나단이 전한 우화에 대한 다윗의 말에 대한 조롱일 수 있다. 다윗은 말했다.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5절).”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14절).” 그런데 신기하게도 히브리어로는 5절이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죽음의 아들이라(벤-마베트 하이쉬 하오세 조트)”고 말하며, 14절은 “너에게서 태어나는 아들도 정녕 죽을 것이다(감 하-벤 하일로 레카 모트 야무트)”라고 말한다. 구약을 보면, 세치 혀로 한 말 때문에, 혹은 자기가 벌인 잘못이 자기에게 동일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다윗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하겠다. 다윗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지만, 여호와는 다윗의 범죄를 옮기셨다. 다윗은 자기 말로 자기에게 임할 재앙을 결정한 꼴이 되어 버렸다.

3) 다윗과 다윗의 가문은 함께 죄의 징벌을 받게 되었다는 입장 :

이것은 필자가 지지하는 입장이다. 위의 1), 2)의 논의를 통해서 볼 때, 나단이 다윗에게 한 말 “당신의 죄가 옮겨졌으니, 당신은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나단의 우화에 대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이 다윗의 범죄를 용서하셨다거나 다윗에게 임할 재앙이 취소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문맥적으로나 나단이 선포한 신탁이 단계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의 죄를 어찌 처벌해야 할지를 우화를 통해 다윗에게 물어보셨고 다윗은 자신이 받을 재앙을 결정한 꼴이 되어 버렸다. 우화 후에 나단이 전한 신탁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 재앙을 거기(아들의 죽음)에서 멈추지 아니하시고 다윗과 다윗의 가문에게 재앙을 임하게 하실 것이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으니 칼(군사적 재앙)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삼하 12:10~12).”

2.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두 차례 걸쳐 살펴본 다윗과 밧세바, 그리고 나단의 신탁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삼하 11~12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거리는 다음과 같다.

1) 다윗의 성적인 범죄는 자신의 권력에 심취하여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주어진 본분을 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중대한 범죄는 다윗이 ‘왕궁과 같이’ 높고 화려하고 안락한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과 장수들과 이스라엘 군대를 호령하고 통제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리심을 받는다는 것을 망각하게 될 때 발생한다.

2) 다윗의 성적인 범죄는 가까이에 있는 자들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항상 그들을 ‘욕정의 눈으로’ 관찰하고 기회를 틈타며 자기 사적인 성욕을 채우는 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였다.

3) 다윗은 자신의 은밀한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4) 다윗은 자신의 범죄가 밝혀지거나 다루어지거나 지목을 받게 되면, (나단의 우화에서처럼) 자기를 범죄자와 별개의 존재로 여기거나 (우화를 들은 후에) 마지못한 범죄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윤리적 부담을 덜고자 하였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를 회개한 자,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로 오해하기까지 하였다.

5)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성범죄와 살인 음모까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잊었다. 다윗은 자기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철저하게 징계하실 것이라는 알지 못한다. 다윗은 (아마도) 하나님의 ‘은혜의 용서의 교리’의 달콤함에 속아, 지도자의 범죄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그것에 공동체에 얼마나 큰 부정적인 여파와 재앙을 초래할 것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필자가 10여 년 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건강교회운동 총무로 일했을 때만큼이나 요즘도 목회자들의 성 추문과 성범죄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목사들은 교회당에서 교회 사무실에서 목사 숙소에서, 기도원 가다가 호텔에서 교회 직원이나 전도사나 집사나 여신도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왔다. 새벽 기도 후에, 한밤중에 간음과 간통을 저질렀다.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피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건’에 속한다! 여인들을 성적으로 농락하는 것은 이단 사이비 교주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은밀한 범죄는 결국 누구의 입을 통해서건 들통 나게 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목사의 사모들이 남편 목사의 무죄를 항변하는 데 앞장서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이 공론화가 되면, 어떤 목사들은 교인들 앞에서 당당하며 공적으로 회개의 말을 하며 ‘다윗이 용서받은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다윗이 왕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도 목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 양, 다윗과 밧세바 사건을 증거 구절(prooftext)로 삼는다.

책임을 묻는 나단과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항변하는 목회자들을 종종 본다. 어떤 정치인의 주장처럼, “역사가 알아서 하게 하라”는 말처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말은 책임 회피나 일시적 모면의 수사학이 아니다. 두렵건대 우리는 이미 다윗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 일들’을 보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는데 왜 그의 아들이 죽었을까?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솔로몬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급기야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밧세바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취한 비밀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야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 바로 그는 밧세바를 데리고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후에 아들이 태어난다. 완전범죄가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나단 선지자가 그를 찾아 와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한 성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곳에 부자가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옆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이 부자가 아주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이다.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는데 자기 소유의 양을 잡아서 손님 대접하기가 아까워서 옆에 양 한 마리 달랑 기르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억지로 빼앗아다가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자 마자 다윗은 노발대발하였다. 그런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말하며 당장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하라는 것이다. 이때 나단은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겠고 그의 집에 재앙이 임해서 다른 사람이 다윗의 아내들을 취할 것이라는 엄청난 비극의 예언을 한다.

이때 다윗은 그런 예언을 하는 나단을 죽여서 입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나단 선지자뿐이 아니다. 요압 장군도 이것을 알고 있다. 다윗의 명령으로 우리야를 죽게 한 사람이 바로 요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압은 꿀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이 사건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다윗과 평화협정을 맺은 아브넬을 죽이면서 다윗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었는데 다윗이 이걸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다윗이 이걸 문제 삼으면 요압은 그날로 죽은 목숨이다. 다윗은 이렇게 요압의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에 요압에게 비밀리에 우리아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고, 당연히 요압은 이 비밀을 영원히 간직하고 남들에게 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약점 잡힌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윗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나단 선지자를 그냥 놔두면 그를 통해 비밀 이야기가 어떻게든 새어나갈 위험이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그의 입을 막는 것일 수 있다. 우리야를 죽인 것 같이 손쉽게 나단 선지자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래도 유대 왕궁의 선지자인데 어떻게 그렇게 맘대로 선지자를 죽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선지자의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았다. 아무리 궁중을 자주 드나드는 선지자라고 해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울을 왕으로 세운 위대한 사무엘 선지자도 사울을 무서워했다. 삼상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버렸고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울 테니 가서 이새의 아들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을 때 사무엘이 뭐라고 대답했는가?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이게 사무엘의 말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왕을 세운 사무엘도 사울이 자기를 죽일까 봐 무서워했다면 나단 선지자는 어떠했을까? 당연히 그도 다윗을 무서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기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충신인 우리야도 죽인 사람이 나단을 못 죽이겠는가? 나단은 이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길을 택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곧 바로 죄를 지었다고 인정을 했다. 이렇게 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본 나단은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죄를 용서해주신다고 말을 해주었고, 이것 때문에 다윗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나단의 예언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다윗의 마음을 찌르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다윗의 범죄 때문에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기는 죽을 거라고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시고 다윗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그 죗값으로 아들이 죽게 된다고 하셨을까?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이것 말고도 다윗에게 예언된 다른 모든 사항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칼이 그의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다윗의 아들 세 명이 칼에 죽는데 이들 중 두 명은 자신의 형제에게 살해당한다. 또 다윗의 집에 재앙이 임해서 다른 사람이 다윗의 아내들을 취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장본인이 바로 자기의 첫째 아들 압살롬이 되고 만다.

우리는 죄 용서 받는 것과 죗값을 치르는 것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내가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마치 애초에 죄를 짓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과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 서로 모순이 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용서해주신다고 해서 모든 것이 그냥 없던 것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누구를 살해했다고 치자. 이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셔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내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또 내가 누구의 물건을 도둑질하고 나서 회개했다면 그 도둑질한 물건을 배상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회개는 언제나 두 가지 요소를 함께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슨 죄든지 용서하신다. 그 다음 내가 해를 끼친 사람에게도 회개하고 그 사람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떤 피해를 입혔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충족되어야만 내가 진심으로 회개한 것이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은 양심의 자유이다.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여기까지는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일이다. 이제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죗값을 치르고 피해를 배상하는 일이다. 여기까지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고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되는 사람이다.

(죄와 벌)(용서) 다윗의 범죄 그리고 하나님의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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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죄와 벌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 사랑받는 자’ 란 뜻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라는 뜻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하나님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란 뜻으로 지어줬겠지요?

다윗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는데요. 다윗과 골리앗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소년 다윗이 돌팔매질 하나만 들고 거대한 전사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 이야기인데요. 이 일을 계기로 다윗은 사울에게 신임을 받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윗에게 고난이 시작되었다고도 이야기를 하지요.

이처럼 ‘사랑받는 자’란 의미를 가진 다윗은 왕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통치 하는동안에 하나님에게 크게 범죄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사건은 기독교인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이죠.

사무엘하 11장 2절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생략)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위 구절을 에서 다윗은 자신과 잠자리를 한 밧세바가 임신하자 어떻게 했을까요?

사무엘하 11장 6절~13절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러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생략)

여기서 다윗은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서 밧세바와 자게 하려고 계획을 했었다는게 보이죠. 스스로도 잘못했다는 생각과 걸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거죠. 그런데 우리아는 다윗의 생각과 달리 너무나 충성스러운 부하였고 사적인 일보다는 공적인 일을 더 우선시해서 밧세바의 아이를 우리아의 자식으로 둔갑하게 하려는 계획이 잘 안 되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기로 했고 결국 전쟁터에서 일부러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십계명에 살인죄를 범한거죠. 물론 간음죄를 범했구요.

다윗은 자신이 한 범죄가 완전 범죄가 된줄 알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사무엘하 12장 1절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선지자 나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가진게 충분한 부한 사람과 작은 암양 새끼 뿐인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새끼 암양을 빼앗아 자신의 잔치에 음식으로 내놓았다고 이야기를 해줄때 다윗이 노하면서 부한사람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데요… 그때 나단이 다윗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서 하나님이 나단에게 전한 말을 다윗에게 전하지요..

사무엘하 12장 7절~15절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꼐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테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산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도.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였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엿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

위에 빨간 문장 당신의 죄를 사하였다는 문장이 보이시나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볼 수 밖에 없죠? 그런데 그 후 결과는 어땠을까요?

칼이 영원히 네 집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여기서 집어볼 부분은 두가지 인데요. 먼저

첫 번째는 다윗과 우리아가 간음해서 생긴 아이가 죽었습니다. 다윗이 아이가 아플때 다윗이 금식하면서 회개 기도를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는 죽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딸 다말이 자신 아들 암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일을 계기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죠. 다윗은 도망갔고,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다윗이 왕궁에 두고온 후궁들과 이스라엘 무리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하게 됩니다.

위 글의 요점은 하나님이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하셨지만 벌은 철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주셧지만 벌은 왜 그대로 받도록 허용하셨을까요?

위에 성경 구절을 읽어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띄는데요..

1.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최전방에 설때의 심리적인 고통과 다치고 죽어가면서 느낀 육체적인 고통.

2. 하나님이 원수로 비방당함으로서 하나님이 받은 고통… ( 하나님이 선택해서 왕으로 세운 사람인데 오히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이 욕 먹었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하나님도 원수에게서 정신적으로 공격 받아서 마음 고생하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

이렇게 두 가지 내용을 보면 원수(루시퍼, 사단)의 입장에서 다윗이 죽게 하지 않을 납득할만한 이유를 만들려면 다윗이 자신이 한 짓 대로 벌을 받게 하는 방법 밖에 없었던거 같습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다윗은 죽어야 했는데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게 용서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게 아니었죠. 왜냐하면 피해자는 고통을 받았고 그리고 고통속에서 죽었으니깐요. 그런데 다윗은 고통없이 지나갈수있게하는게 공의롭지 못한 판결인거죠.

이 이야기를 보면 죄는 용서할 수 있지만 죄를 용서한다고 해서 벌을 면할수있는게 아니다. 죄와 벌은 같이 가지만 결과적 측면에서는 죄는 용서 받아도 벌은 받아야 한다는걸 보여주는 이야기 인겁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으면서도 법원에서 선처를 구하거나 반성한다고 말을 하는데요. 이는 대부분 벌을 피할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또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나 회개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다윗의 범죄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죄에 대한 용서와 벌에 대한 용서를 따로 구분해서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또는 벌)을 책임지는 자세로 자신의 죄에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설명한다면 자신의 죄(잘못)에 대해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할수잇지만 그렇게 한다고해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타인이 받는 고통들은 없어지는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만든 잘못으로 인해 생긴 타인이 받는 그 고통을 외면하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만 한다면 잘못된 자세겠죠?

이는 법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외면하고 판사에게 잘못했습니다. 선처해주세요. 라고 용서 비는거랑 같습니다.

따라서 위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할 때의 자세, 즉 죄에 대한 용서와 벌에 대한 용서를 별개로 두고 그 벌을 받을 책임을 가지는 자세로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인거지요.

따라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받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언행에 신중해야겠지요? 이 언행에 신중하려면 먼저 죄가 뭔지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 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관심있으면 읽어보세요.

이렇게 오늘 죄와 벌의 연관성에 대한 포스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도움되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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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장 다윗의 범죄와 회개

717 성경에는 사람들을 칭찬하여 말한 데가 거의 없다. 일찍이 세상에 산 가장 선한 사람들의 미덕까지도 자세하게 말해 주는 지면이 거의 없다. 이러한 침묵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이 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좋은 자질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들의 선한 행위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덕인 이상 그들의 위인(爲人)됨이 어떠하든지 무엇을 성취했든지 간에 그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성경 역사의 교훈이 가르쳐 주는 것처럼 사람을 칭찬하거나 높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힘을 의지함으로 결국에 가서는 타락하게 되는 연고이다. 인류는 자기보다 강한 원수와 싸우고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싸움을 계속하기 불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고 우리로 자고하게 하거나 자신을 의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분명히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성경의 취지는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범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자신을 의뢰하는 정신과 자기를 높이는 정신이었다. 아첨과 권세와 사치의 미묘한 유혹이 다윗에게 영향을 미쳤다. 주위의 민족과의 교제도 역시 악한 감화를 끼쳤다. 동방의 통치자들 사이에 성행하던 풍습에 따르면 신하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왕이 행했을 때에는 정죄하지 않았으며 왕은 신하가 행하는 그런 자제를 행할 의무가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은 죄의 흉악성에 대한 다윗의 생각을 무디게 했다. 그리하여 다윗은 겸손히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기 시작하였다. 사단은 영혼을 유일한 능력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게 되자마자 인간의 사악한 육체적 욕망을 충동시키고자 할 것이다. 718 원수는 일을 돌발적으로 하지 아니한다. 원수는 처음부터 몹시 놀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리에 원칙의 요새를 침식하는 것이다. 이 일은 겉보기에는 매우 적은 일처럼 보이는 것들 즉 하나님께 충실하고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게을리 하는 일이나, 세상의 풍속과 행습을 따르는 경향에서 시작한다.

암몬 사람과의 전쟁을 종결짓기 전에 다윗은 군대의 지휘권을 요압에게 맡기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아람 사람들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항복했고 암몬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는 일도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다윗은 승리의 성과와 그의 지혜롭고 유능한 통치에 대한 존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유혹하는 자가 다윗의 마음을 점령할 기회를 포착한 것은 그가 안일하고 방심하고 있던 이 때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취하여 당신과 매우 밀접한 교제를 하게 하시고 그에게 그처럼 큰 은총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이 그의 품성을 흠없이 보존해야 할 가장 큰 동기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안일과 스스로 안심하는 상태에 빠져 하나님 의지하기를 잊어버리므로 사단에게 굴복하고 그 자신에게 범죄의 오점을 남기게 됐다. 하늘이 임명한 민족의 지도자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집행하도록 택하신 다윗은 스스로 그 계명을 유린하였다. 행악자들에게 두려움이 되었어야 할 그는 자신의 행위로 행악자들의 손을 강하게 하였다.

다윗은 그의 초기 생애의 온갖 위험 중에서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그의 사정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다. 여호와의 손길이 그를 인도하여 그의 발길에 놓였던 무수한 올무를 안전히 지나가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은 그는 하늘의 도움과 지도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힘으로 범죄로 인하여 빠져들어간 위험에서 자기 자신을 구출하고자 노력하였다. 절세의 미모로 왕에게 올무가 되었던 밧세바는, 다윗의 가장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장교 중에 하나인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다. 다윗의 범죄가 알려질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그같은 치욕을 당한, 자부심이 강한 무사는 왕의 생명을 취하거나 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복수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숨기기 위하여 취한 모든 노력이 다 소용없는 일임이 밝혀졌다. 다윗은 자신을 사단의 권세에 팔았다. 위험은 그를 둘러 있었고 그의 앞에는 죽음보다 더 쓰라린 치욕이 있었다. 719 피할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서 그는 절망 중에 신속히 간음죄에 살인죄를 첨가했다. 사울의 멸망을 계획했던 사단은 다윗도 역시 멸망으로 이끌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비록 유혹은 달랐으나 그 모든 것은 다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도록 인도하였다. 다윗은 만일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원수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면 그의 죽음의 책임을 왕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밧세바는 자기의 아내가 되는 데 걸릴 것이 없을 것이고 의심도 피할 수 있고 왕의 명예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아는 자기 자신의 사형 집행 영장을 가지고 가는 자가 되었다. 왕은 우리아의 손을 빌어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명했다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 12장 참조). 이미 함부로 사람을 죽인 죄로 물들여진 요압은 왕의 명을 순종하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우리아는 암몬 자손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제까지 통치자로서의 다윗의 기록은 어느 군주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다윗에 대하여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하”(삼하 8:15)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성실함은 온 민족의 신뢰와 충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악한 자에게 복종시킴으로 인하여 그는 한동안 사단의 대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위와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자기의 권위에 복종하는 자의 영혼을 파멸시키라는 요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보다도 왕에게 더 충의를 표했던 요압은 왕의 명을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다.

다윗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도록 그것을 행사해야 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것을 명했을 때에 그것을 순종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롬 13:1)나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권세에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다스림을 받아야 할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하였다.

그의 명령이 집행되었다는 보고를 다윗에게 보낼 때에 요압이나 왕이 연루되지 않은 것처럼 매우 주의 깊은 말을 사용하였다. 요압이 “그 사자에게 명하여 가로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에게 고하기를 마친 후에 혹시 왕이 노하면…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사자가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의 모든 보낸 일을 고하였”다.

720 왕의 대답은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저를 담대케 하라” 하였다.

밧세바는 그녀의 남편을 위하여 관습상 호곡(號哭)하는 기간을 준수하였다. 그 기간의 끝에 “다윗이 보내어 저를 궁으로 데려오니 저가 그 처가 되었”다. 자기의 생명이 위태한 때에라도 그의 고운 양심과 명예에 대한 고상한 의식을 잃지 아니하고,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지 않았던 그가 자기의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용맹스러운 무사를 욕보이고 살해한 후 자기의 죄악의 보상을 방해받지 아니하고 향락하기를 바랄만큼 타락했다. 슬프다! 어찌하여 정금이 광채를 잃었는고! 어찌하여 최고의 정금이 변했는고!

태초부터 사단은 범죄하면 이익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해 왔다. 천사들도 그런식으로 유혹했고 아담과 하와도 그 방법으로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군중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에서 떠나도록 하고 있다. 범죄의 길은 바람직하게 보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잠 14:12)다. 대담하게 이 길에 들어섰다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쓰라린 것임을 알고, 일찍 거기를 떠나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다윗을 죄악의 기만적 대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두지 아니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밧세바에 대한 다윗의 범죄가 알려지고 다윗이 우리아의 죽음을 계획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일어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모욕을 당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그를 높이셨으므로 다윗의 죄는 하나님의 품성을 잘못 드러내었고 당신의 성호에 욕을 돌렸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경건의 표준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의 심중에 죄에 대한 증오심을 둔화시켰고 다른 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공경하지도 않는 자들에게 대담하게 범죄할 구실을 주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책망의 기별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것은 매우 혹독한 기별이었다. 이와 같은 책망을 받고도 책망한 자로 하여금 반드시 죽음으로서 그 값을 치르게 하지 않을 군주는 거의 없었다. 721 나단은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선고를 전했으나 왕의 동정심을 끌고 그의 양심을 환기시켜 자기의 입술로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그와 같은 천래의 지혜를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권리를 수호하는 자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다윗에게 호소하면서 선지자는 제거되어야 할 악과 압제에 대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단은 말하기를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가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고 하였다.

왕은 분노하여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5, 6)고 부르짖었다.

나단은 왕을 주목한 후 손을 하늘로 쳐들고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라고 말하였다. 다윗처럼 범죄자들이 저희 죄를 사람들에게 감추려고 시도하고 저희 악한 행위를 인간의 안목과 지식에서 영원히 덮어두려고 노력할지 모르나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나단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72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였)느니라…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선지자의 견책은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 양심을 일깨웠고 그의 죄는 흉악한 그대로 모두 나타났다. 그의 영혼은 굴복되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다. 떨리는 입술로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행한 모든 악은 모두 다 해받은 자들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다윗은 우리아와 밧세바 양인에게 극악한 죄를 범하였고 그는 이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더욱 그를 괴롭힌 것은 그 죄가 하나님께 범한 죄라는 것이었다.

비록 이스라엘 중에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사형에 처할 사람이 없지만 다윗은 자기가 범죄하고 용서받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의 신속한 심판으로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떨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에게 기별을 보내어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의는 유지되어야 하였다. 사형 선고는 다윗에게서 그의 범죄의 아이에게로 전가되었다. 그리하여 왕에게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 바 되었으나 자기 아들의 고통과 죽음이 그에게 자신의 죽음보다 훨씬 더 쓰라린 형벌이 되었다. 선지자는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고 말하였다.

그의 아이가 병들었을 때에 다윗은 금식하면서, 깊이 겸비하고 그 생명을 위하여 탄원하였다. 다윗은 왕의 예복을 벗고 왕관도 벗어 두고 여러 날과 밤을 땅에 엎드려 애끊는 슬픔으로 자기의 죄 때문에 고통당하는 무죄한 아이를 위하여 간구하였다.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였다. 때때로 사람이나 성읍들에 형벌이 선고되었을 때에 겸비하고 회개함으로 그 형벌이 물러가기도 했었고, 신속히 용서하시고 항상 자비스러운 하나님께서 화평의 사자들을 보내시기도 했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은 다윗은 그 아이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굽히지 않고 탄원하였다. 아이가 죽은 것을 알자 그는 침착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였다. 스스로 당연하다고 선언한 보응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한 다윗이 위로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윗의 타락의 역사를 읽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기록을 공개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그처럼 크게 영예롭게 한 자의 생애에서 이 어두운 대목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보셨을까?”라고 질문한다. 선지자는 다윗을 책망하는 말에서 다윗의 죄에 관하여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다고 선언하였다. 후세대 이방인들은 이 어두운 오점을 가지고 다윗의 성품을 지적하면서 의기양양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고 부르짖어 왔다. 723 그리하여 신앙은 비난을 당하였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모독을 당했으며 영혼들은 불신에 굳어졌고 많은 사람들은 경건의 가면을 쓰고 범죄하기에 담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의 역사가 범죄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불리운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고를 따라 행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범죄했을 때에 그는 그렇게 인정받을 수 없었고 그가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올 때까지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또한 여호와께서도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겼”으니,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다윗이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께로부터 용서와 가납하심을 받았으나 그는 자신이 심은 씨로부터 해로운 수확을 거두었다. 그와 그의 집에 내린 형벌은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증거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다윗을 그의 원수들의 모든 음모에서 보호하시고 직접 사울을 제지하는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여호와께서는 결단코 죄악을 시인하실 수 없으셨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적의에서 보호하셨지만 그가 지은 죄의 결과로부터 그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실 수는 없으셨다.

다윗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죄와 멀리까지 미칠 그 결과를 의식하고 상심하였다. 그는 자기의 신하들의 목전에서도 천하게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그가 번영한 것은 여호와의 계명을 양심적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죄를 알고 있는 그의 신하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범죄하게 될 것이다. 자기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권위가 약해지고 아들들에게 존경과 순종을 요구할 권위도 약화되었다. 그가 마땅히 죄를 정죄해야 할 때에도 자신의 범죄를 의식하고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로 인해 그의 집에서 공의를 집행해야 할 그의 팔을 약화시켰다. 그의 악한 모본의 감화가 그의 아들들에게 끼쳐졌고 하나님께서도 그 결과를 막으려 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되어지는 대로 흘러가도록 버려두셨으며 그리하여 다윗은 격렬한 징벌을 받았다.

타락한 후 온 일 년 동안 다윗은 표면상으로는 안전히 거하는 것처럼 보였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신다는 아무런 외적 증거도 없었다. 724 그러나 하나님의 형벌이 그에게 박두하고 있었다. 형벌과 보응의 날은 신속하고도 분명히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가 아무리 회개할지라도 그의 온 지상 생애를 어둡게 할 고민과 수치를 막을 수 없었다. 다윗의 예를 들어 자신들의 죄의 악함을 경감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성경의 기록에서 범죄의 길은 혹독한 길임을 배울 것이다. 비록 저희는 다윗처럼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 할지라도 죄악의 결과는 이 세상에서도 쓰라리고 견디기 어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범죄의 역사를 비록 당신으로부터 크게 축복과 은총을 받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안전하다고 느끼고 깨어 있어 기도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삼고자 하셨다. 그같은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계획하신 교훈을 겸손히 배우려고 노력한 자들의 생애에서 입증되어 왔다. 각 시대를 통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유혹자의 세력으로부터 오는 위험들을 깨닫게 되었다. 여호와께로부터 그처럼 크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던 다윗의 타락은 그들의 마음에 자신을 믿지 않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 안에 그들의 능력과 안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사단의 영역에 첫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였다.

하나님의 선고가 그에게 선언되기 전에도 다윗은 범죄의 열매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그의 양심은 평안하지 않았다. 다윗이 그 때에 당한 정신적 고통을 시편 32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시 32:1~4).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의 기별이 다윗에게 이르렀을 때에 다윗은 회개의 표현을 시편 51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725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시 51:1~14).

그리하여 이 이스라엘 왕은 성가로 그의 백성의 공중 회집에서, 궁궐 앞에서, 제사장들과 재판관들과 방백들과 무사들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먼 후세대까지 자기의 타락에 대한 지식을 보존하도록 했다.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범죄와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용서에 대한 자기의 희망을 자세히 말했다. 그는 자기의 죄악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타락의 슬픈 역사로 교훈을 받을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다윗의 회개는 성실하고 깊은 회개였다. 자기의 죄악을 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에는 경고된 형벌을 피하려는 욕망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죄의 흉악함과 자기 영혼의 더러움을 보고 죄를 미워하였다. 그가 기도한 것은 용서만을 얻고자 함이 아니요 마음의 정결을 얻기 위함이었다. 다윗은 절망 중에 투쟁을 포기하지 아니하였다. 회개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가납하심의 증거를 보았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6, 17).

726 다윗은 비록 넘어졌으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일으키셨다. 다윗은 이제 타락하기 전보다 훨씬 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이웃들에게 동정적이었다. 죄에서 해방된 기쁨을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시 32:5~7).

많은 사람들은 저희 보기에는 훨씬 덜 악한 죄처럼 보이는 사울은 거절하시고 매우 큰 죄를 범한 다윗은 아끼신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낮추고 죄를 자백한 반면에 사울은 책망을 멸시하고 마음을 굳게 하여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다윗의 역사에서 이 대목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투쟁과 시험,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힘 있는 예증의 하나이다. 각 시대를 통하여 이것은 범죄하여 그들의 죄악의 짐에 눌려 몸부림치는 영혼들에게 용기를 주는 근원임이 입증되었다. 범죄하고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 하려던 무수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윗이 자기의 범죄로 고통을 당했다 할지라도 성실히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그들도 역시 회개할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계명의 길로 행하려고 노력하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다윗처럼 겸비하게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허락들을 받아들인 자는 용서를 받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회개하는 영혼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와 같은 약속을 주셨다.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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