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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품’ 설교 영상은 3부로 나누어서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 영상의 원본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27aa2MHkUc
#믿음의말씀 #케빈제다이 #동시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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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 다음블로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 1. 거룩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거룩하신 분으로서(눅 1:35) 본질상 거룩하시며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히 4:15). 그래서 성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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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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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일 칼럼] 예수님의 성품 – 합동헤럴드

1. 예수님의 성품(性品). 온유(gentle)와 겸손(humble)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했다(빌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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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dherald.com

Date Published: 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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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 네이버 블로그

제2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 1. 거룩성. 예수님께서는 본질상 거룩하시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히브리서 4:15). · 2. 사랑 · 3. 겸손 · 4. 온유 · 5.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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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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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게 만드는 성령님 – 늘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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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vergreenpromising.org

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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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비추입니까? | worldchallenge.org

쉽게 말하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결정할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정하신 것처럼 결정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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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worldchallenge.org

Date Published: 1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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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같은 성품

베드나 장로가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분의 속죄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 “예수님의 성품은 놀라운 속죄를 이루는 데 필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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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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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품 배우기 – Manna 24

그리고 예수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담성을 죽이고, 부활의 생명으로 예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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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anna24.com

Date Published: 3/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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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품 (벧후 1:4-7) – 기멀전

예수님의 성품은 덕입니다.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덕을 나타내고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 궁녀 옆에 있던 대신이 왕비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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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성품들에 대한 이야기책

작은 예수 성품교실/한기채, 김찬홍/넥서스cross … 저자는 성품이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하며,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우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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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벧후 1:3-11) – 기독정보넷

이렇게 예수님과 날마다 교제하심으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족합니다. 지식이 더해져야 합니다. 넷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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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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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예수님 의 성품

  • Author: 나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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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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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읽을 말씀 : 마 11:27-30 참고 말씀 : 벧전 1:15 요 15:10.

◎외울 말씀 :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여러 목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 표준, 혹은 그 이상( 理想 )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예수님의 성품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의 중요한 성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1. 거룩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거룩하신 분으로서(눅 1:35) 본질상 거룩하시며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히 4:15).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 7:2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요 6:69)라고 고백했고,

바울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고후 5:21)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요 8:46)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의로우심을 천명하셨습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땅히 거룩해야 합니다(벧전 1:15).

우리가 비록 약하고 추해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날마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딤전 4:5),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에 힘쓰면(딤후 2:21),

주님이 강림하실 때 거룩하여 흠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살전 3:13 5:23).

2. 사랑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너무나 깊고 광대하여 인간의 생각으로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의 사랑을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엡 3:18)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랑을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셨습니다(마 11:19).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고(눅 23:34),

제자들에게도 “원수를 사랑하라”(마 5:43∼48)고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원수 된 우리를 위해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미셨고(롬 5:10),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요 10:11, 15:13 롬 5:8).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이 큰 사랑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마 28:20).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없고(롬 8:35),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롬 8:39).

3. 겸손

예수님의 겸손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자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빌 2:6∼ 8).

이러한 겸손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래 하늘의 영화를 다 소유한 부요하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후 8:9).

태어날 때 마굿간의 구유에서 탄생하셨는가 하면(눅 2:7), 공생애 활동 때는 머리 두실 곳도 없으셨습니다(마 8:20).

죽어 장사지낼 때는 자신의 무덤도 없어서 남의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마 27:57∼60).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셨습니다(마 11:19, 눅 7:37).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신분이 낮았지만 주님은 그의 뜻대로 행하는 그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요 15:15).

이처럼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섬기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마 20:28).

4. 온유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고린도 사람들을 권면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마 12:20)이라는

말씀에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이러한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회개한 죄인을 대하시는 모습(눅 7:37∼50)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대하시는 모습(요 21:15∼23)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팔아 넘기려고 온 유다를 대하시는 모습(마 26:50 요 13:21)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던 모습(눅 23:34)에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께서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 12:19)는

말씀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벧전 2:23).

5. 순종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눅 2:51).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도덕법을 지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며(히 4:15), 죄를 알지도 못한 분이시며(고후 5:21), 죄를 범하지도 않으신(벧전 2:22),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분이십니다(히 7:26).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책잡을 것이 없었습니다(요 8:46).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요 6:38).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그의 양식이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요 4:34).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은 바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요 10:17∼18 15: 31).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고 증언하였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본이 되셨습니다(히 5:8∼9).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주의 사랑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순종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요 15:10).

[임창일 칼럼] 예수님의 성품

▲ 논설위원/임창일 목사

1. 예수님의 성품(性品). 온유(gentle)와 겸손(humble)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했다(빌 2:5-8).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했다(마 11:29,30). 온유는 사랑, 즉 성령의 열매고(고전 13:4; 갈 5:22,23), 겸손은 그 사랑의 뿌리다.

2. 온유(溫柔)한 사람이 되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1)모세. 미리암과 아론이 구스여자를 취한 모세를 비방했다. 실상은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민 12:1,2). 모세는 누나와 형의 비방을 온유로 대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2)다윗. 하나님의 온유를 찬양했다.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 25:8,9). (3)바울. 사랑과 온유함으로 책망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 4:2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고후 10:1,2; 엡 4:1-3). (4)야고보.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5)베드로.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3. 겸손(謙遜)한 사람이 되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예수님은 겸손하고, 사탄은 거짓되고 교만하다(마 11:28-30; 요 8:44). (1)예수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1-4). (2)바울.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 마음은 겸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1-4). (3)히브리서. 영적 지도자에게 겸손하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4. 온유와 겸손의 복. (1)온유.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시 37:11).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민 14:4-10; 수 14:6-15) (2)겸손. 은혜를 받는다(고후 6:1,2; 민 6:22-27; 고전 15:8-10).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젊은 자들아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잠 22:4;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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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임창일 목사 [email protected]

제2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구역예배공과2 - 제1단원>

제2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 읽을 말씀 : 마태복음 11:27∼30

⊙ 외울 말씀 :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한일서 2:6)

⊙ 관련 찬송 : 88장, 93장

⊙ 참고 말씀 : 사도행전 3:14, 고린도후서 8:9

⊙ 목표 : 1) 주님께서는 어떠한 성품을 가지셨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2)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려면 그의 성품을 어떻게 본받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숙고해 보자.

⊙ 공부할 내용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의 여러 목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 표준, 혹은 그 이상(理想)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예수님의 성품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중요한 성품은 어떤 것일까요?

1. 거룩성

예수님께서는 본질상 거룩하시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히브리서 4:15). 또한 행위로도 거룩하신 분으로,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며”(히브리서 7:26) 언제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만 행하셨습니다(요한복음 8:29).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이처럼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린다면 이사야와 같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5:8)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땅히 거룩해야 합니다(베드로전서 1:16). 우리는 비록 약하고 추해도 그분께서 제시해 주신 모범을 향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줄곧 달려 나갈 각오와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그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4:5)라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2. 사랑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아버지를 통해 흘러 나오는 사랑입니다(요한복음 14:21).

둘째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경 말씀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보다도 성경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을 받을 때에도 성경을 인용하셨고(마태복음 4:4,7,10), 구약 말씀을 해석하시며 그 말씀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셨고(누가복음 4:16∼21; 24:44,45), 성경은 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한복음 10:34∼36).

셋째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베푸시는 풍성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빈부귀천,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누구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1:19).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0:11,15:13; 로마서 5:8).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고(누가복음 23:34), 제자들에게도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3∼48)고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된 우리를 위해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미셨습니다(로마서 5:10).

3. 겸손

예수님의 겸손은 그분의 사역(使役)에서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래 하늘의 영화를 다 소유한 참부자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린도후서 8:9). 예수님께서는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으며(누가복음 2:7), 죽어 장사될 때에도 자신의 무덤이 아닌 남의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마태복음 27:57∼60).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매우 비천하게 여기는 일들도 서슴지 않고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 바로 그 좋은 예가 됩니다(요한복음 13:14). 당신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마가복음 10:45)이셨던 것입니다.

4. 온유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마태복음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유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마태복음 12:20)이라는 말씀에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하게 사셨습니다. 회개한 죄인에게 온유하게 대하셨고(누가복음 7:37∼50), 자신을 부인했던 베드로에 대해서도 따스하게 대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21:15∼23). 특히 배신자 유다를 대하시던 모습(마태복음 26:50; 요한복음 13:21)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던 모습(누가복음 23:34)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진실로 그리스도께서는 ‘다투지도 들레지도 목청을 높이지도 아니하신’(마태복음 12:19) 참으로 온유한 분이셨습니다.

5. 순종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모든 면에서 아주 철저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누가복음 2:51).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도덕법을 지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시며(히브리서 4:15), 죄를 알지도 못한 분이시며(고린도후서 5:21),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분이십니다(히브리서 7:26). 이러한 예수님의 무죄성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완전한 의(義)요, 사람에 대하여는 책잡을 것이 없었습니다(요한복음 8:46).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순종하여 성전세를 드리셨습니다(마태복음 17:24∼27).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빌립보서 2:8).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그로 인하여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구원받고 의인이 되는 길이 열리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로마서 5:19)고 증언한 것입니다.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셨고, 그로 말미암아 ‘흠과 티가 없는 어린양’이 되어 대속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기도 생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브리서 5:7)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이유가 없는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겸비한 태도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때때로 제자들 앞에서 기도하시기도 했지만, 주로 혼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는 데 긴 시간을 보내시기도 했고 때로는 밤을 지새며 기도하시기도 했습니다(마태복음 14:23; 누가복음 6:12). 또 예수님께서는 중대한 사역을 앞두고 꼭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전도하시기 전에(마가복음 1:35∼38),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누가복음 6:12,13),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마태복음 26:36) 간절히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처럼 간절히(누가복음 22:44), 끈기 있게(마태복음 26:44), 믿음으로(요한복음 11:41,42)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야 하나님께 더욱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마땅치 않겠습니까? 오늘 배운 그리스도의 성품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신앙 인격의 모범이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여러 성품들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성령의 열매가 맺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 성경연구

1.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 네 가지를 말하시오(공부할 내용 참조).

2.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특색 세 가지를 말하시오(공부할 내용 참조).

3.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공부할 내용 참조)

1) 마태복음 26:44

2) 누가복음 22:44

3) 요한복음 11:41,42

⊙ 나눔과 적용

1.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섯 가지 성품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 중 나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입니까?

2. 나는 날마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있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의 삶 가운데 나타날 수 있도록 이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에 옮깁시다.

<구역성경공부 - 열왕기상>

제2과 다윗의 유언과 솔로몬의 왕권 강화

⊙ 읽을 말씀 : 열왕기상 2:1∼46

⊙ 외울 말씀 :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 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열왕기상 2:3)

⊙ 관련 찬송 : 찬송가 379, 399장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솔로몬이 그의 왕권을 더욱 견고하게 확립하는 과정을 언급하고 있는 오늘 본문은 그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 전반부(왕상 2:1∼12)에는 다윗이 임종할 때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긴 것과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여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왕상 2:13∼46)에는 솔로몬이 선왕(先王) 다윗의 유언에 따라 불의를 행한 자들, 즉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아도니야(왕상 2:13∼25), 아도니야의 반역을 도왔던 제사장 아비아달(왕상 2:26, 27),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왕상 2:28∼35) 그리고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저주했던 시므이(왕상 2:36∼46) 등에게 공의의 재판을 단행하여 그들을 처벌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은 ‘하나님께 대하여 행할 일’(왕상 2:1∼4)과 ‘사람에 대하여 행할 일’(왕상 2:5∼9)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행할 일’이란 무엇이며, 또한 그에 대한 약속은 무엇입니까?(왕상 2:1∼4)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진실히 행하라는 것이며, 그리하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고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 이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백성을 다스려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한다는 것은 신명기의 주제이자(신 28:1∼14)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다(수 1:7, 8; 엡 6:1∼3). 한편 ‘사람에 대하여 행할 일’이란 과거 하나님의 신정 왕국 건설에 거슬리게 행했던 자들을 처벌하고(왕상 2:5, 6, 8, 9), 다윗이 피난 생활을 할 때 도와준 자에게 은총을 베풀라고 한 것이다(왕상 2:7).

2. 다윗이 솔로몬에게 처벌하라고 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은총을 베풀라고 한 사람들을 누구입니까?(왕상 2:5∼9)

▶처벌하라고 한 사람들은 요압과 시므이이고, 은총을 베풀라고 한 사람들은 바실래의 아들들이다 : 요압은 다윗이 통일 왕국을 이루는 데 협조하려 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고(삼하 3:27; 20:10),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갈 때 다윗을 저주했기 때문에(삼하 16:5∼13) 처벌하라고 한 것이다. 한편 바실래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 생활을 할 때 다윗을 도와주었는데(삼하 17:27∼29; 19:31∼39), 다윗이 환궁할 때 바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은혜를 갚으라고 한 것이다.

3. 솔로몬은 선왕(先王) 다윗의 유언에 따라 불의를 행한 자, 즉 반역자 아도니야(왕상 2:13∼25), 제사장 아비아달(왕상 2:26, 27),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왕상 2:28∼35),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왕상 2:36∼46) 등을 모두 처벌하였습니다. 그중 아도니야가 죽임을 당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왕상 2:17)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의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솔로몬에게 청원했기 때문이다 : 아도니야갸 다윗의 후궁이었다고 볼 수 있는 아비삭(왕상 1:1∼4, 15)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한 것은 단순히 그녀의 미모(왕상 1:3)를 탐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왕위를 노리는 저의(底意)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선왕(先王)의 첩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다.

⊙ 나눔

다윗은 임종하기 전 솔로몬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고 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통하게 된 경우를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적용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 생활을 할 때 자신을 도와준(삼하 17:27∼29) 바실래에게 한 약속(삼하 19:31∼39)을 지키기 위해,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혜를 갚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왕상 2:7).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았습니까?

⊙ 오늘의 만나 – 왕상 2:13∼46

솔로몬의 왕권 강화

다윗의 노쇠함을 틈타 왕위를 찬탈하려고 계획했던 아도니야의 모반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함으로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고, 즉위한 솔로몬은 하나님의 신정 왕국을 확장해 나가는 데 거침돌이 되는 존재들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그의 왕권을 공고히 확립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이 그의 왕권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이 임종하기 전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은 ‘하나님께 대하여 행할 일’과 ‘사람에 대하여 행할 일’ 두 가지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진실히 행하라’는 것이었으며(왕상 2:3, 4), ‘사람에 대하여 행할 일’은 과거 하나님의 신정 왕국 건설에 거스려 행했던 자들을 처벌하고(왕상 2:5, 6, 8, 9), 다윗이 피난 생활을 할 때 도움을 받았던 자에게 은총을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 2:7). 이에 솔로몬은 선왕(先王)의 유언에 따라 먼저 불의를 행한 자들을 처벌함으로써 그의 왕권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첫째로,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처벌하였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로서 솔로몬의 이복형이었는데, 그는 다윗의 노쇠함을 틈타 왕위를 찬탈하려고 모반을 꾀했다가 실패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자였습니다(왕상 1:51∼53). 그런데 그가 죽임을 당한 직접적인 원인은 솔로몬이 왕이 된 후 황후인 밧세바를 찾아가 다윗을 시중들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의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솔로몬에게 청원한 데 있었습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자신이 다윗의 진정한 후계자인 것처럼 부각시키려는 간교한 술책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당시 근동에서는 선왕(先王)의 첩을 취하는 일은 사실상 후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삼하 16:21, 22 참조). 물론 다윗은 수넴 여자 아비삭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아비삭을 다윗의 첩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결국 솔로몬의 왕권을 탈취하려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아도니야의 저의(低意)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도니야의 청원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고 그를 죽이게 되었던 것입니다(왕상 2:24, 25).

둘째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반란 음모에 가담했던 제사장 아비아달과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을 처벌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먼저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파면하여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낙향시켰습니다(왕상 2:26). 이것은 요압의 징벌에 비하면 매우 관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아비아달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은 그가 오벧에돔에 있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길 당시 그 궤를 메었을 뿐만 아니라(대상 15:11∼15) 선왕 다윗과 함께 동고동락했기 때문입니다(삼상 22:20∼23).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파면을 당한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생명을 다했다는 점에서 큰 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써 이다말 계열의 제사장직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 가문이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왕상 2:35).

다음으로 솔로몬은 아비아달이 숙정(肅正)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은 요압을 처형하였습니다. 사실 제단 뿔을 붙잡는 것은 범죄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반역죄를 지었던 아도니야도 솔로몬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바 있습니다(왕상 1:50). 아마 요압도 그 일을 기억하고 제단 뿔을 잡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요압은 진실로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다만 죄에 대한 징계를 피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결국 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셋째로, 솔로몬은 시므이를 처형하였습니다. 사울의 친척이었던 시므이는 사울가(家)의 몰락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이 실각하고 피난 길에 오른 것을 보자, 다윗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주를 퍼부었던 자입니다(삼하 16:5∼13). 그런데 다윗은 당시 여러 상황 때문에 그를 처단하지 못하고 그 일을 솔로몬에게 부탁한 것입니다(왕상 2:8, 9). 솔로몬은 그를 성급하게 처벌하지 않고 그의 행동을 제약할 목적으로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왕상 2:36∼38). 그러나 그는 솔로몬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고 말았습니다(왕상 2:39∼46).

이로써 솔로몬의 등극과 이스라엘의 신정적 왕정 정치에 걸림돌이 되었던 자들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왕상 2:46).

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비추입니까?

David Wilkerson (1931-20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 16).

사도바울의 이러한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 생각이 — 여러분의 생각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는 그분의 사고방식을 구하고 찾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뭘까요? 쉽게 말하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결정할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정하신 것처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볼때마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비추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내삶에 가져다주시는 경험들을 통해 매 순간의 모습과 모습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는가?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립보서 2:7).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언약을 맺으사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사람이 되사 지구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 이것은 “아버지, 전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갑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미 오래전에 결정하셨던 일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 저의 의지를 내려놓습니다. 아버지. 제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으로 말미암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당신만을 의지할 것입니다.”

돌려보면 하나님 아버지가 그의 아들과 맺은 거룩한 언약은 아버지의 뜻을 나타내는 (계시) 것이었습니다. 요약해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것입니다. “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또 어떻게 그것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나의 마음이 부어질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주님처럼 살려 결단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자신의 육 (자신들의 욱하는 성질, 성격적 결함, 깊은 내면의 죄) 을 끌어안은채 편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건 제 기질이에요. 이게 바로 제가 생긴 모습이에요.” 라고 하며 절대 바뀌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당당히 “나에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다.” 고백한 것은 바울이 “나도 예수님처럼 종처럼 살려합니다” 공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모든 믿는자들에게도 이 동일한 진리를 선포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참조 고린도 전서 2:16).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

예수께서는 가장 힘겹게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보다 훨씬 덜한 고통을 겪는 우리 모두를 누구보다 깊이 연민하십니다.

이미지 세상의 빛, 하워드 리온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님은 제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 원리를 한 가지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지금껏 그 원리에 초점을 맞추어 많은 것을 공부하고 성찰하고 숙고해 왔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없었더라면 속죄도 없었을 것입니다!”1 이 단순하지만 통찰력 있는 말씀을 들은 후로, 저는 “성품”이라는 말에 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분의 속죄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관계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함의가 있는지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어쩌면 성품을 나타내는 가장 큰 잣대는, 사람이라면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영향받기 마련인 도전이나 역경을 겪는 이를 볼 때 그들의 상황을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하는가일 것입니다. 가령, 사람의 품성은 내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능력 안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내가 굶주릴 때 다른 사람의 굶주림을 알아차리는 능력과, 내가 영적인 고난을 겪을 때 다른 사람이 겪는 영적 고통에 손을 내밀고 동정심을 보이는 능력에서도 드러납니다. 즉, 나에게만 몰두하여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황일 때 밖으로 시선을 돌려 손길을 내미는 행위를 통해서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 능력이 도덕적인 성품을 판가름하는 궁극적인 기준이라면, 세상의 구주는 그와 같이 한결같고 자비로운 품성의 완벽한 모범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는 예 이미지 예수께서 보내신 열두 사도, 월터 레인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드시던 그 밤,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일어난 고통 중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게 될 바로 그 밤에, 다락방에 머무시며 보혜사와 평안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5~27) 이제 곧 자신이 몸소 그 위안과 평안의 부재를 강렬하게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시고도,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자신도 근심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가누기가 힘겨우셨을 텐데도, 주님은 밖으로 손을 내밀어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었고 필경 힘이 되었을 바로 그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시기 직전에 드리신 위대한 중보 기도에서, 당신의 제자들과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을]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20, 21, 23, 26) 이 일과 함께, 구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받고 배반당하시기 전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을 곰곰이 생각할 때면, 저는 거듭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분은 자신의 고뇌를 목전에 두고서도 타인의 복리와 합일을 위해 기도하실 수 있었을까? 어떻게 자신보다 위안과 평안이 훨씬 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위안과 평안을 구하실 수 있었을까? 당신께서 지으신 세상의 타락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내몰리신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상황과 고민에만 온전히 집중하실 수 있었을까? 인간이라면 자신만 돌보기도 버거웠을 순간에 주님은 어떻게 밖으로 손을 내밀 수 있으셨을까?’ 맥스웰 장로님의 말씀은 이런 강력한 질문 하나하나에 답이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놀라운 속죄를 이루는 데 필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숭고한 품성이 없었더라면 숭고한 속죄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은 그분이 ‘온갖 고통과 고난과 시험을 당하’셨으나(앨마서 7:11), 전혀 유혹에 ‘개의치’ 않으셨던 모습에서 드러납니다.(교리와 성약 20:22)”2 예수께서는 가장 힘겹게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보다 훨씬 덜한 고통을 겪는 우리 모두를 누구보다 깊이 연민하십니다. 참으로 고통과 연민의 깊이는 성역을 베푸는 사람이 느끼는 사랑의 깊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 배우기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抑制)하느니라 (잠29:15)

A fool gives full vent to his anger, but a wise man keeps himself under control.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화두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의 성품 배우기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양적 성장에 몰두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그 부작용이 심하여 마치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마5:13b)고 하신대로 교회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는 패배의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 시기를 양적성장의 여러 거품 방울들을 제거하고 교회와 성도의 본질적 모습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만 합니다. 다행히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질적성숙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성품을 어떻게 닮아갈 수 있습니까?

사실 성경은 그것을 바로 한 단어로 정리하는데 곧 “제자도” 입니다. 제자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중심이요, 기본입니다. 그러면 제자도가 무엇입니까? 제자도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내 안에 있는 아담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담성을 죽이고, 부활의 생명으로 예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십자가의 자기부정과 부활의 자기긍정의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제자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선악간에 판단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관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성입니다.

이러한 아담의 제자였던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시키시는 것이 바로 제자도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 원리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怒)를 다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자기의 노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아담성입니다. 곧 죄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담성이 우리 안에서 노를 일으킬 때 그것을 십자가의 영성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의 면에 그 노를 던지는 것입니다. 노를 다스리는 것이요, 아담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怒) 뿐만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아담성의 열매를 다스리는 것 곧 그것이 제자도요, 자기부정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자기부정을 하면 놀랍게도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언어가 살아 역사합니다. 이것이 자기긍정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대로 발산하면 자기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입니다. 그러나 노를 십자가의 자기부정의 제자도로 다스리면 자기도 다시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인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 가운데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아담성을 다스리지 못해 발생하는 수많은 부조리의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근본인 아담성을 예수성으로 변화시키는 영성 곧 제자도의 부재가 죄 아래 있는 인간 존재의 문제인 것입니다. 바로 이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진정한 제자도의 천착이 없는 영성은 아담성의 발현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아담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오늘도 나는 날마다 죽고, 예수님이 날마다 살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영성의 소유자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고후4:12) 예수생명.

말씀으로 사는 교회 www.lwcmd.org.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예수님의 성품 (벧후 1:4-7)

예수님의 성품 (벧후 1:4-7)

지난 수요일부터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로 지키고 있는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었습니다.사순절 전통은 초대 교회가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40시간을 경건하게 보낸 데서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사순절을 뜻하는헬라어“테살코스테”는 영어’렌트'(Lent)로 ‘길어진다'(lenghten)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인데,곧 봄이 되면 해가 길어진다 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그래서 사순절은 밤보다 낮이 길어지는 춘분이 지난 첫 보름달이 뜨는 첫주일을 부활주일이라고 하고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거꾸로 계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사순절 기간이라고 합니다.

40의 숫자는 예수님께서 40일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것과,예수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한 일,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40년간의 역경과 고난 등과 같이 40일이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기간이고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 수요일을 가르켜 재를 뒤짚어 쓰고 참회한다 해서’재(齋)의 수요일’로 부릅니다.

‘재’는 회개를 상징합니다.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상징적 제스처로 재를 뒤집어쓰고 기도했습니다.그러니까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금식하는 절기입니다.그래서 이 기간동안 우리 성도들은 40일 금식은 못해도 하루이틀정도 금식하면서 주님의 십자가 은총을 생각하며 참회와 경건함으로 지내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가능한 세속적인 것과 관련된 일과,오락행위들을 삼가하고,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신앙의 성장과 참회를 하면서 영적 훈련 기간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딘.잉게(Dean Inge)라는 신학자가 말하기를’사람이 매일 약 16시간을 깨어 있는데 그중에 15시간 50분만 세상 물질적인 것을 다루는데 보내고,단 10분만이라도 영적인 것을 다루는데 보낸다면 그 물질이 백배나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우리가 사순절에 깨어서 기도하며’자기를 훈련'(Self-discipline)하는 기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럼 사순절은 어떤 훈련을 해야 합니까?세상적인 것,신적인 성품을 버리고 하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본문1:4절입니다.’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배로운 약속,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으니 세상 을 버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배’라는 말은

1) 가장 귀중하고 중한 물건, 보화를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그것을 잃어버리면“나 죽는다” 할 정도로 자기 생명같이 소중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그래서 찬송’나의 영원하신 기업,생명보다 귀하다.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그리고’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는데 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자그마한 약속이 아니라,큰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그냥 대충 해주신 것이 아니라,분명한 것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그래서 성경을 구약,신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 성경을 큰 약속으로 주셔서 이 약속으로 믿고 세상에 썩어질 육체의 정욕을 피하고,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됩니다.

다시 말해 저 세상에 약속이 없는 불신자들처럼 함부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앞으로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은 소망과 꿈이 있는 학생들은 함부러 놀지 않고,함부러 살지 않습니다.또 올해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이 있는데 올림픽 금메달을 바라보는 선수들은 올겨울에 추워서 쉬고 싶어도 쉬지 않고,뜨거운 여름에 놀고 싶어도 놀지 않고 얼마나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습니까?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의 큰 약속이 있기 때문에 놀고 싶고 고 싶고 먹고 싶어도 다 참고 힘써서 노력을 합니다.이와같이 우리에게는 보배롭고 너무나 큰 약속이 있으니 그 약속을 바라보고 썩어질 세상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에 참여하는 해야 마땅합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빠를 닮아서 태어나야지 다른 사람을 닮으면 큰 일이 나지요.그래서 우리가 진정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하나님의 성품을 참여해야 합니다.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닮으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대로 우리 성도들은 세상적인 것들을 절제하며 죽이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4-35).

에릭 프롬은<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속에 들어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흘러간 유행가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노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 지 맘에 들어. 어쩐지 나는 좋아.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 생김,어쩐 나는 좋아.어쩐지 맘에 들어>

이 노래에서 아가씨가 총각의 어떤 것이 마음에 들어 좋아할까요?노란 색,말없는 것,씩씩한 것을 좋아 합니다.자기가 좋아하는 요소가 그 사람속에 들어 있기에 그 사람을 좋아 하는 것입니다.이와같이 하나님도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믿음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성품이 7가지라고 했습니다.

1;5-7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지식에 절제를,절제에 인내를,인내에 경건을,건에 형제 우애를,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제일 먼저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초 위에 7가지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은행에 가면 돈을 얼마 저금할 것인지 얼마나 찾을 것인지만 묻습니다.학력을 묻지 않고 나이도 관계없고 남녀도 구별이 없으며 건강 유무도 상관하지 않고 다만 돈만 얼마 저금할 것인지 찿을 것인지 묻습니다.유머= 어떤 할머니가 은행에 돈을 찿으러 갔는데 통장은 가져가고 도장을 가져같는데 통장 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할머니 통장 도장을 가져와야 돈을 줍니다. 가서 통장 도장을 가지고 오세요”응 알았어’하고 나가더니만 한참후에 ‘아가씨,이장 도장으로는 안되나? 동네를 아무리 돌아도 우리 동네 통장님이 없어’은행에서 돈을 찿으려면 통장과 도장이 있어야하듯이 우리가 천국 문에 들어서면 하나님은 꼭 한 가지만 물으십니다.

‘너 예수님이 너의 죄를 사하여 주신 구세주인 것을 믿느냐?’<어느 대학 나왔느냐?> <세상에서 직업이 무엇이냐?><몇살 살다가 왔느냐?><건강이 어떠냐?> <어느 나라에서 살다 왔느냐?> 묻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고,하나님 나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도 중요하지만 이 믿음 기초 위에 하나님의 자녀로써 잠깐 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그래서 우리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위에 하나님의 성품 7가지를 더해야 합니다.

5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덕에 지식을,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갈이 합하여 무지개가 되고,’도래미파솔라시’ 7음이 합하여 음악이 되는데 이와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은 7가지 요소가 합하여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첫번째 성품은 덕에 대한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레테’라고 되어 있는데 그 뜻은 (도덕적으로 뛰어남)’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볼 때 나무랄 데가 없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덕이 많으신 분이라 우리가 죄를 짓고,넘어져도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랑하십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덕이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은 무엇일까요?

1) 행동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0:23-24절에서 말하길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음미해 보면 말이라고 다 하지 말고, 자기 하고 싶다고 무엇이든지 다 하는 것이 아니라,말이나 행동에서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오래했고,기도 많이하고, 성경 많이 안다 해도, 상식이하의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상처 주는 말을 한다든지, 그의 행동이 크리스찬답지 못한 일을 했을 때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요. 빛이니 너희 착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덕을 나타내야 합니다.

어느날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적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잡히면 재판이 필요 없이 돌로 쳐 죽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손에는 돌이 들려져 있었고 얼굴에는 살인의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8;4-5)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이 말을 듣고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아 들고 있던 돌을 하나하나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다가 일어나서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예수님은 사랑으로 덮어 주시고,용서로 따뜻하게 감싸 주시고,자비로 품어주시는 덕으로 풍성하신 분입니다.예수님의 성품은 덕입니다.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덕을 나타내고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초나라’장왕’에게 너무나 예쁜 궁녀가 있었는데 그나라 ‘당교’라는 장군이 평소에 이 궁녀를 사모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중에 왕궁에서 대신들과 장군들이 모여 파티를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 궁녀도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티 도중에 촛불이 꺼졌습니다. 캄캄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어둠속에서 궁녀가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나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 있다’

궁녀 옆에 있던 대신이 왕비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갓 끈을 잡아 당겨 끝었습니다. 왕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어느 놈이 내가 사람하는 궁녀를 겁탈하느냐?’ 이때 대신이 ‘왕이시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불을 키면 그 놈을 잡을 수 있습니다.그 놈의 갓끈을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갓끈이 잘린 놈이 범인입니다.” 그리고 불을 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장왕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을 키지 말라.그리고 각자 자기 갓 끈을 끊어라”

왕의 명령이라 모두가 자기 갓끈을 자른 후에 불을 켰습니다.꼼짝없이 잡힌 범인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얼마후에 초나라와 진나라가 전쟁을 했는데 초나라가 전쟁에 패하므로 장왕이 죽게 되었을때 당교라는 장군이 왕을 구해주었을때 그때 고백하기를 ‘왕이시여 제가 죽을 자리에서 불을 안켜고 살려주어 오늘 제가 왕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덕스러운 행동입니다. 덕스럽지 못한 사람들은 남들의 흠이나 티를 보면 들추어 평생에 원수가 됩니다. 용서할 수 있는 덕스러운 나의 모습,이해하고 따뜻하게 덮어 줄 수 있는 나의 모습, 양보하고 배려 할 수 있는 넉넉한 나의 모습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닮은자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입니다.

2) 말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말에 대한 속담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속담 중에도 가장 흔하게 많이 쓰이는 말은, ‘침묵은 금이다’입니다. ‘가능하면 말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이런 속담이 나와야 하는가 하면 말이 나쁜 것이라서 그런가요? 아니지요.말은 좋은 것입니다.말은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을 안한다던가? 아니면 더듬거리며 말을 잘못하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유머,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미남인데다 교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 교인들 모두의 호감을 샀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좋지 못한 평을 듣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설교할 때 말을 더듬더듬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답답하고 갑갑함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한 마디 한 마디 힘들게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설교를 유창하고 청산유수 같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배후에 “목사님 말을 잘하시면서 왜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시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아침에 바쁘게 나올 때 제 틀니인 줄 알고 꼈는데 아내의 틀니를 끼고 나와 나도 모르게 따발총처럼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은 좋은 것인데, ‘침묵은 금’이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말에 대한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로하는 실수가 너무 많으니까 가능하면 말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해서 이러한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잠언17:28절에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고 했습니다.‘미련해도 가만히있으면 반은 똑똑한 사람이 되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조선 시대 황희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는데황희 정승이 시골길을 가다 두 마리 소를 몰고 일하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황희는 농부에게 “그 두 마리 소가운데 검은소가 일을 잘합니까, 누런소가 일을 잘합니까?”하고 물었지만 농부는 아무 대답도 않고 그냥 침묵을 지켰습니다.

황희가 몇 번씩 물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황희는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한참 가는데 그 농부가 뒤쫓아와 말했습니다. ‘선비 양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왜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 하면, 아무리 짐승이지만 주인이 누구보다 누가 더 일 잘한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사실은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누런 소는 꾀를 좀 부려요.’

이 말에 황희는 크게 깨닫고 그때부터 아랫사람들을 대할 때 함부로 하지 않았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엡4: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꼭 이런 기도를 해야 할 줄로 압니다.“하나님,제 입술로 덕스러운 말,은혜로운 말,위로의 말, 주님을 전하는 말, 이런 말만 하게 해주세요.내 말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기쁨을 얻게 해 주세요.”

그래서 다윗은 항상 기도할때 ‘여호와여,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 문을 지켜 주소서'(시141:3)

이 기도는 아주 중요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요, 덕스러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 번 바꿔 놓고 생각해보세요.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지요? 무엇때문에 상처받았나요?결국 말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이와같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기 가장 좋은 도구는 뭐냐? 하면 바로 내가 하는 말입니다.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말,절망적인 말을 해서는 안되고,세워주는 말,용기를 주는 말,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못따라가는 열등생이었고 그의 학생 기록부에는 “이 아이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아마 우리네 부모님들 같으면 크게 절망했겠으나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아이에게 “너는 다른 사람과 다르단다.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단다.나는 너를 믿는다.사랑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어머니의 믿음과 사랑이 가득 담긴 말은 아인슈타인에게 용기를 주었고,축복이 되어 아인슈타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금세기 최고의 훌륭한 과학자로 기억되게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조심하고 사랑의 말,믿음의 말,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듣는 자마다 용기를 얻고,평화가 넘치고,은혜가 넘치고,사랑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3,선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엡2:10절에’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고,구원하신 목적은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갈5: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생명을 사모하고 좋은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말을 잘해야 하고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벧전3:10-11절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앞으로 좋은 날,잘되는 날,축복 받는 날을 보기를 원하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그럼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왜 악에서 떠나야 합니까?악과,어둠은 마귀의 성품이고 마귀를 닮은 사람이고,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 안에는 두가지가 싸웁니다.하나님의 선한 성품과 마귀로부터 주어진 악한 성품이,그래서 성도들은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고 고민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런 갈등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19)

여러분,우리 안에는 선과 악이 싸우는데 우리가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한다면 악을 죽이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악에서 떠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권능으로 선을 행할수 있습니다.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선을 행하고 덕을 나타내야 좋은 날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선을 행하다 좋은날을 보았고,다윗도 선을 행하다 그와 자손들이 좋은 날을 보았고,백부장 고넬료가 선을 행하다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구원의 길을 알려줘 이방인으로는 최초로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다비다라는 여자가 나옵니다.베드로가 욥바에 갔을 때 그 곳에 다비다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선행에 모범적인 여자였습니다.다비다는 평생 남을 돕는 일을 하였는데 그녀가 죽었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욥바에 왔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베드로를 그 가정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동네 과부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그들은 다비다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왔습니다.신세를 진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다비다가 너무나 선행을 많이 하고 좋은 여자가 죽었다며 그녀의 죽음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바라본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낸 다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시체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이 말이 선포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다비다가 드디어 살아 난 것입니다. 다비다는 선을 행하고 마지막 날에 좋은 날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십니까?그렇다면 선을 행하십시오. 악을 심지 말고 선을 심으십시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대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않았다고 합니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로비에 실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그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습니다.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조금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룩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그때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합니다.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그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나중에 그는 회고합니다. “인생 전반기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

돈이 없어도 선을 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지 말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벧전3:11절에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여러분, 좋은날을 보기를 원하는 분은 결코 누구와도 불화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좋은 날을 볼 수가 있습니다.인간관계,대인관계가 원만하여야 합니다.화평을 구하고 화평을 구하고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그래서 예수님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화평해야 하고, 나로 인하여 어떤모임이든지화평한모임이되게해야합니다.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말고,피스메이커가 되어 사는동안 원수를 맺지말고 화평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와 우리와 우리 사이를 화평하게 할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2:18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빌4:5절에’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친분이 있는 사람과의 화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 수까지라도 용서하고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가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앞으로 좋은 날 잘되는 날 축복 받는 날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12가지 성품들에 대한 이야기책

12가지 성품들에 대한 이야기책

작은 예수 성품교실/한기채, 김찬홍/넥서스cross

십대 어린이.청소년이 하나님과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발견하고 길러야 할 12가지 성품들에 대한 이야기책이다. 겸손, 순종, 긍휼, 배려, 책임, 인내, 정직, 절제, 온유, 용기, 성결, 평화를 다루는데, 그 성품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지, 그리스도인에게 그 성품은 어떤 것인지를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특히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식의 이야기체로 되어 있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성품이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하며,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우리의 도덕성과 영성을 관계를 통해 보여 준다고 한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품이 ‘도덕성’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품은 ‘영성’이라고 하겠다.

저자 한기채

추천사기독교 윤리학자이자 생활신앙과 영성생활을 강조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한기채 목사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신앙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담은 설교와 글로 사랑받는 목회자다. 서울신학대학교(B.A.)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Th.M.)에서 공부했다. 군목을 마치고 1988년, 미국 밴더빌트 신학대학원(Vanderbilt Divinity School, MTS)과 밴더빌트 대학원(Vanderbilt Graduate School, M.A. & Ph.D.)에서 사회윤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시에 미국 갈보리교회 담임목사로 이민 목회를 했고, 1996년에 귀국하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와 새사람선교회 공동목회를 했다. 한국기독교윤리학회 회장(2005~2006년)과 기윤실 이사를 역임했으며, 생명의전화 이사, 기독경영연구원 부이사장, 네팔-코리아국제대학 총장, 중앙신학원 원장,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교육원장, CBMC 및 코스타 강사 등으로 섬긴다. 현재 성결교단의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명을 읽으면 성경이 보인다』(구약 전3권), 『일깨움(일어나 깨어 움직여라)』, 『예수님의 위대한 질문』, 『하나님의 위대한 질문』, 『삶을 변혁시키는 책읽기』, 『삼중혁명의 영성』, 『기독교 이야기 윤리』, 『성서 이야기 윤리』, 『예수가 선택한 열두 제자』, 『헨델이 전한 복음』, 『몸으로 읽는 요한복음』, 『아이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 『태아축복기도문』, 『자녀축복기도문』, 『부부축복기도문』, 『하나님의 리더 세우기』, 『작은 예수 성품교실』 외 다수의 공저와 논문이 있다.

저자 김찬홍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이론 영성학자이자 실제적 영성을 고민하는 목회자다. 저자는 세속적 영성에 밀려 위기에 처한 기독교 영성을 올바르게 규정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미국 보스턴과 뉴욕에서의 목회 경험을 통해, 다원주의 시대에 적합한 공감과 소통의 영성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철학과 B.A.),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M.Div.), 미국 Boston University(S.T.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중앙신학교, 백석연합신학원 등에서 기독교 영성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또한 기도원 교회인 하남중앙교회의 담임이자 기도원 원목으로 사역하면서 한국적 개신교 영성의 구체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14년 귀국 후 줄곧 전문 신학 서적과 학술 논문들만을 저술해 왔던 그에게 이번 《작은 예수 성품 교실》은 새로운 도전이자 그의 사명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 이 책을 읽을 친구들에게

01 겸손

잘난 척 안 하는 것만 겸손일까?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란다.

02 순종

말 잘 듣는 게 어리석어 보이니?

순종이란 신호등을 따르는 일과 같단다.

03 긍휼

못된 친구가 아파도 함께 울 수 있겠니?

긍휼은 고통을 같이 느끼는 마음이란다.

04 배려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니?

배려란 결국 네게도 유익이 되는 거란다.

05 책임

맡아서 하자니 귀찮고 부담스러워?

책임지는 네 덕분에 모두가 좋아진단다.

06 인내

견디고 참는 게 몹시 힘들지?

인내는 네 큰 꿈을 이룰 힘이 된단다.

07 정직

거짓말하면 당장은 이로울 것 같지?

정직한 사람이 결국 이길 거란다.

08 절제

놀고 먹고 쓰고 싶은 대로 다해 버리면?

절제란 더 귀한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란다.

09 온유

부드럽게 말하는 게 약해 보이니?

온유란 네 힘을 다스리는 거란다.

10 용기

무서운 게 없으면 용감해질 것 같지?

용기는 두려워도 할 일을 하게 만들어.

11 성결

생각과 행동 모두 깨끗하면 좋겠지?

성결이란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거란다

12 평화

불안하고 걱정하는 거 정말 싫지?

평화는 예수님 품 안에 있는 거란다.

에필로그 | 자녀의 성품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참고문헌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벧후 1:3-11) > 설교자료실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벧후 1:3-11)- 설교 : 윤정현 목사오늘은 우리 대선교회의 성도들이 한 해를 함께 추구해야 할 교회의 표어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함께 하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자” 이것이 금년도 우리 신앙 인격의 목표가 되겠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즉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성품을 계발하여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사실 우리는 전에 마귀를 닮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옛날 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습니다. 처음에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14년이 되어 이스마엘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에 죄의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이가 망나니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나운 들나귀”같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이삭이 출생한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나이 차이가 14년 정도 됩니다. 두 아이는 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는 악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삭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한 가정에서 자라 가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삭도 있고, 이스마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마엘이 크고 힘이 있기 때문에 이삭을 괴롭게 합니다. 이삭이 17세 형에게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두드려 맞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처음 믿을 때의 나의 모습니다. 오랫동안 이 죄성이 나를 지배하고 괴롭게 합니다. 나를 죄와 세상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 집에 예수를 믿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과 이삭이 항상 충돌합니다. 그래서 집안이 평안치 못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그러면 집안이 평안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삭이 이스마엘의 멸시 천대를 받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삭이 빨리 성장하면 되겠지요! 이삭의 힘이 강해지면 이길 수 있겠습니다. 이삭이 빨리 성장하면 됩니다. 아브라함 집에 사라와 하갈,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있을 때에는 집안에 불화가 끊임없었습니다. 후에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그 집에서 내어쫓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브라함의 집에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 간절히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집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좀 힘드시겠지만 쫓아내시는 결단들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한번 같이 하시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 믿으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묘목이라도 심어 놓고 내버려두면 잡목만도 못하여 집니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습니까?5-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여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8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에 아주 중요한 덕목들입니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5절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욱 힘써”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열심히, 적극적으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일은 적당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요즘은 적당히 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눈가림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임에 가서 눈 도장 한번 닫으면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 가지고는 내 신앙이 자라지도 못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르지 못합니다. 복도 받지 못합니다. 내어쫓았던 이스마엘에 의해서 또 지배당하여 비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들 속에는 세 가지의 무서운 세력이 있습니다. 마귀의 권세와 세상의 힘과 내 속에 있는 죄의 성품이라는 세 가지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 속에서 죄성을 부추깁니다. 충동질합니다. 그래서 죄짓게 만들고, 게으르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죄의식도 못 느끼게 만듭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가만히 있는 사람을 도우시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적극적으로 믿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오죽 하시면 문고리가 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안에서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벧후1: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더욱 힘써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에 더욱 힘써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열심히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11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겨우 들어갑니까? “넉넉히 들어갑니다. 여러분들은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부르셨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이 일에 도전을 받으시고 꼭 그렇게 기도하시고 그렇게 하시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사람이 직원을 뽑을 때에는 펑펑 놀라고 사람을 쓰겠습니까? 그렇게 놀리면서 월급을 주는 직장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이유가 바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힘쓸 일들이 어떤 것인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열심을 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함께 5-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첫째는 믿음의 생활입니다.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구원의 믿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구원의 믿음이 없으면 신앙 생활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천국에 자랑스럽게 들어가려고 하면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생활 속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생활 믿음이란 범사에 우리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큰 믿음이 적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작으면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 오른편의 강도는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둘째는 덕 있는 생활입니다.신앙 생활을 하면서 어떤 분은 덕이 없습니다.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덕이 없어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이름에 욕을 돌립니다. 그 사람의 삶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우 있습니다. 성경지식은 많은데 질서가 없습니다.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도덕적으로 구설이 많습니다.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덕이 있다는 말은 어느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지요!”하고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덕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믿음에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덕을 계발해야 합니다.셋째는 지식입니다.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수능고사 만점의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지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지식이 많아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시겠습니까? 벧후1:2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부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가정에 은혜와 평강이 쌓여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친하면 매일 만나지 않습니까? 그래도 싫지 않지 않습니까? 빨리 친숙해 질 것입니다.새 가족이 오면! 또는 성도들끼리! 구역식구들끼리 집에 서로 초청도 하고, 쇼핑도 함께 하고, 또 아무리 바빠도 산책하는 시간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날마다 교제하심으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족합니다. 지식이 더해져야 합니다.넷째로 절제의 생활입니다.아마도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의 안녕을 위하여!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모든 것을 좋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문제는 바로 “자기, 나”입니다. 입술을 깨무는 중에 한번만 더 깨물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해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절제의 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한 숟가락만 덜 먹으면 될텐데 절제하지 못해서 배탈이 납니다. 덜먹으면 그렇게 편한 것을 배탈이 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신앙 생활도 때로는 극단적이고 광적으로 흐르는 경우를 보는데 왜 그렇게 됩니까? 절제가 잘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항상 극단적인 것은 위험합니다. 말도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통 다 그렇다! 다 썩었다!….등”극단적인 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도 안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건전하고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제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말을 하게 되고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진리가 아니고 교리가 아닌 것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대선교회의 핵심가치는 바로 나다” 믿음은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고루 쌓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다섯째로 인내의 생활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인내는 참는 것입니다. 참는 것도 그냥 참는 것이 있고(patience), 당당하게 참는 것(perseverance)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바라보고 당당하게 참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당당하게 참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넉넉히 이기고 참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확신입니다.이 세상에 그 누구라도 참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참는 사람이 결국은 발전하고 성숙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잘 참아야 합니다. 회의를 하든지, 모임을 가질 때에 잘 참아야 합니다. 저는 잘 참는 사람은 참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것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를 절제하며, 인내하는가를 보면 위인 됨을 알 수 있게 됩니다.이민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제직회를 하는데 한 분이 계속해서 괴롭게 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유도가 2단에, 태권도가 3단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 번, 백 번 참으면 “그 목사님 훌륭하시다.”라고 하면서 존경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 집사님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갔습니다. 그 다음은 제가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목사님의 목회 생명은 끝났습니다. 언제 참아야 합니까? 정말 이제는 못 참겠다 할 때에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못 참겠으면 “주여! 나를 도우소서!”하고 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멋이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참 인내입니다. 참지 못하면 사업도 못합니다. 비즈니스도 못합니다. 신앙도 못합니다. 복을 받는 일도 못합니다. 이 때에 여러분들이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여섯째는 경건을 이루는 것입니다.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아침에도 예수! 기쁠 때도 예수! 슬플 때도 예수! 최권능 목사님이 아침에도 예수 천당! 저녁에도 예수 천당! 매를 맞아도 예수 천당이 튀어나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일이 잘 되어도 하나님입니다. 일이 잘 안되어도 하나님입니다. 한가해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바빠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모양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삶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시기를 축원합니다.일곱째로 형제우애를 이루는 것입니다.이것은 형제간에 친절한 것을 말합니다. 형제들 간에는 허물도 쉬쉬하고, 잘 못 된 것도 감추어 주려고 하고 단점, 약점은 보지도 않고 장점, 좋은 점만 봐 주듯이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교회 생활하는 사람들이 형제우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형제를 향하여 무조건적으로 친절하게 하게 하고 선을 행하는 행위가 형제우애입니다. 이런 모습이 그립습니다. 이런 성품을 가지면 교회는 저절로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입니다.사랑을 아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아는 사랑을 실천할 때에 사랑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고,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눈에 형제와 자매의 허물과 죄가 보인다면 그 만큼 내 속에 사랑이 없다는 증거일 것입니다.모쪼록 금년에 우리 모두가 힘들고 어려워도 행복하고 풍성하게 사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년에 표어입니다. 이 일에 열심을 품고, 적극적이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아 가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키워드에 대한 정보 예수님 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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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part 1] 예수님의 성품 (케빈 제다이) – The Personality of Jesus (Kevin Za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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