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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마침말 정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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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 | 갓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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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양의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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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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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Author: 이정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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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1. 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D_9IWDcGzM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마침말 정확한 유래 아시나요?

한신구약학회와 전주성경학당이 12일 전북 전주 완산구 전주중부교회에서 개최한 ‘제2회 목회자 신년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전주성경학당 제공

우리는 기도할 때 늘 이렇게 끝을 맺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성도는 많지 않다. 성경말씀에 따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12일 오후 전북 전주 완산구 전주객사길 전주중부교회 비전센터에서 이 같은 궁금증에 답을 찾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신구약학회와 전주성경학당이 개최한 ‘제2회 목회자 신년세미나’는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성서신학적 목회적 성찰’을 주제로 열렸다. 세미나는 지난해 11월 18일 한신대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김형우씨가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기도를 끝내며 논란이 촉발되자 기도의 의미를 성경에서 되짚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유대 골라(포로민)들의 죄책 고백과 연대의 기도’를 주제로 발표한 이영미 한신대 신학과 교수는 “왜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됐는지, 왜 기도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 교수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의 기원을 요한복음에서 찾았다. 그는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이후 여러 차례 반복함으로써 기도에 그의 이름을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을 언급하셨다”며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와 같은 표현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동안 예수님이 함께 있음을 뜻한다”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옆에서 예수님이 중보하며 그들을 대변해주는 의미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와 함께 고난의 땅에서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기도는 민중의 자리에서 민중과 함께 드리는 민중의 기도여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진성 과천영광교회 목사는 ‘예수 이후의 기도’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초대교회 기도의 모습을 살폈다. 우 목사는 “사도행전을 보면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을 분명히 언급하고 기도의 대상조차 예수인 기도가 많았다”며 “흥미롭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이 분명한 기도들은 ‘감사’ ‘영광’보다 ‘치유’ ‘간구’처럼 내려받는 기도로 분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감사를 돌릴 때의 적절한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라며 “바울은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라는 기도문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라는 말을 첨가했다”고 말했다.

한신대 신대원 채플 당시 기도를 했던 김씨도 직접 ‘민중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 논란에 대한 성서신학적 변증’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는 내게 민중을 예수로 보게 하는 사건이었고, 민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었다”며 “그래서 주술적으로 말하는 예수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현존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삼열 기자 [email protected]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3:6-10)

2014. 12.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44)

본문 : 행 3:6-10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오늘날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10년 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50대까지인데 이 50대가 60대가 되는 10년 후에는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50대쯤 되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바른 신앙을 배워서 교회에 충성할 줄도 알고 헌신할 줄도 알지만 그 이후에 잘못된 믿음을 배우고 자랐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대강 교회에만 왔다가 갔다가 한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아이를 많이 낳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젊은 청년들이 줄어들고 중고등부도 줄어들고 주일학교도 없어지는 형편이기 때문에 교회가 텅텅 비게 될 것이라고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걱정들은 하고 있지만 그러나 교회가 없어지거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일을 당하기 전에 우리 교회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마지막 성도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 문제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방법으로 더 버텨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입니다.

저는 왜 교회가 이렇게 비탈길로 내리막길로 달려가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슨 특별한 계시를 받거나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역사 속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역시 속에서 반복적으로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삶을 살 때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말씀 속에 있는 진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의지하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삶이 넉넉해지고 세상적으로 재미가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보며 챙기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고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세상에서 착한일 선한일 많이 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교회가 그런 세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을 하고 그런 일에 중점을 두면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가징 중요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고 세상의 종교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더 필요로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소망을 가질 것은 아직도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십자가의 복음 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를 외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외칠 때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고 그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잡고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은 교회가 전하고 행하여야 할 핵심적인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에게 하신 말씀대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를 찾아서 회개하고 처음 그 믿음을 가지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사도행전을 살펴보면서 처음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과 그들의 설교와 그들의 행한 것을 살펴보면서 무엇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특별히 루터나 칼빈 같은 교회 개혁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변질되지 않은 진짜 개혁주의 신앙을 찾아봅니다.

루터가 로마교회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리인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외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이 진리를 외쳤습니다.

칼빈은 거기에 덧붙여서 그 믿음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혜로 선물로 준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중심에 계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귀한 가르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귀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바르게 전달되지 못하고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해서 아예 정 반대되는 것들을 가르치는 교회들도 많아졌습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한다는 개혁주의자들의 신학과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그래야 교회가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해야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계속해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고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고침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이 이야기를 가지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가 고침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6절 말씀에는 그가 고침을 받게 되는 핵심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람을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명령을 하는 장면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베드로 사도가 이 병든 자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을 하면서 처음 시작하는 첫마디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는 말입니다.

돈을 구걸하려고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은과 금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기대하는 은과 금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 됐지 굳이 은과 금이 있느니 없느니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실제적으로 그들에게 은이나 금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세상의 소유들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그들에게 은이나 금 같은 재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편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에게 그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먼저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을 얻으려는 것이 거지의 목적인데 나를 보라고 하면서 잔뜩 기대감을 가지게 해 놓고 돈을 안 주면 실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 실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먼저 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뒤에 따라오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은이나 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은이나 금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말입니다.

그저 돈이나 한두 푼 얻어서 육신의 목숨이나 연명하고 살려고 하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운명을 바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몸이 회복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의 본분도 되찾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런 간단한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은이나 금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누가 돈의 위력을 부인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되어도 교회를 섬기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는데 누가 감히 돈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데 누가 돈을 업신여기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도 세상처럼 돈을 좋아하고 돈을 내라하고 돈이 있어야 교회도 운영이 되니까 돈 때문에 돈 돈돈 하면서 돈이 최고처럼 생각을 합니다.

동네 이발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전도를 합니다.

옛날 우리교회에 나왔던 아이들 아버지라서 누구인지 알고 늘 만나면 눈인사는 하는 사이라서 제가 혹시나 해서 말을 걸고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 같이 온 사람이 끼어듭니다.

요즘 교회에 돈 없는 사람은 못가 목사도 돈을 좋아해서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은 알아주고 집사도 시키고 장로도 시키지만 돈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해 하고 전도하는데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치 있게 대답을 합니다.

예 교회는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많이 내라고 해서 돈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많이 내고 적은 사람은 적게 내고 없는 사람은 안 내도 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목사가 돈을 다 가져가니까 문제는 문제입니다.

어느 날부터 교회가 돈을 사랑하고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축복을 하고 성도들도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돈이 많아서 교회를 화려하게 짓고 돈으로 이런 저런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교회를 성공한 교회라고 말을 하니까 돈이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교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개 없거니와”라고 말씀입니다.

교회에 와서 은과 금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땅을 사고 교회 건물을 더 확장하고 재테크까지 하는 교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고 돈을 많이 쓰고 다니는 일부 잘나가는 목사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로마교회의 교황을 찾아 갔더랍니다.

교회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뼈 있는 말을 한마디 합니다.

“이제 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네요,”

그러자 교황이 하는 말이 “예 그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도 못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황금만능의 세상에서

돈을 의의 척도로 성공의 척도로 삼는 세상에서

교회마저 돈을 사랑하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가 가진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은이나 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세상에 나와서 무엇을 별로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땅 한 평도 제 이름으로 가져보지 못했고 목돈 몇 백만 원이라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교회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전세 건물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부모님에 대해서 제 자신에 대해서 원망도 해보고 실망도 해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불평조로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 참 많고 그것이 무엇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저것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성경을 중심으로 목회를 하려는 마음을 주셨고 성경을 읽을 때 거기서 진리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그 핵심진리를 발견하는 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전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 속에 들어 있는 진리의 무한한 보고를 알게 해주신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제일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입만 열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니까 당연한 것이고 별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의 길을 가면서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복음의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고 혹은 알면서도 목회의 성공을 위해서 다른 것을 강조하고 여러분을 속이는 잘못된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거짓선생이나 이단들이 이미 많이 교회에 침투해 있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자신들이 거짓선생 노릇을 하면서도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엎드리면 복음의 진리가 생각나고 성경을 펼치면 그 어느 곳이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이고 입만 열면 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게 되는 것이 제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나 목회의 기본은 성경말씀과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만 강조하는 사람은 저급한 신비주의에 빠져서 무당노릇을 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 성경만 보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엉뚱한 길로 가기 쉽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성경말씀 속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하고 성경을 수백 독을 해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특별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간주해주시는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은이나 금으로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신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을 보고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비록 조금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조금은 제한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은과 금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그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이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도 넘치고 넘치는 것이며

받는 사람들이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할 너무나 좋은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 사도가 그 앉은뱅이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엄청나게 좋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도 많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신 곳입니다.

호적을 하러 조상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거기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수 없는 아주 별 볼일 없는 시골이고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우리 예수님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하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 이름 속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신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 나사렛 사람들과 같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은 교회에 무슨 선한 일이 있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여기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특별하게 주신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그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뭐 선한 것이 있겠느냐고 비웃지만

우리에게는 최선의 것 최고의 것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같은 명령을 주십니다.

일어나 걸으라.

잘못된 교회 변질된 진리에서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잘못된 자리에 있지 말고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대로 가지 말고

거짓선생들 돈에 눈이 어두워서 교회를 자기의 이익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세상 부귀영화에 빠져서 은과 금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거기서 일어나서 주님께서 말씀 앞으로 진리 앞으로 십자가의 복음 앞으로 걸어 나오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자리에 있으려고 하십니까?

언제까지 그 무지한 자리에 있으려고 하십니까?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걸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시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은이나 금 같은 세상 재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너무나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하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

글 : 한다니엘 목사

할렐루야!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보실 때 바르게 기도를 하는 분들이 너무 적다고 탄식하십니다.

지금 기도하는 말미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있는 교회에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80% 이상이나 잘못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정당의 대표 전OO 목사, 기독교 대표 단체의 회장인 소OO 목사, 을지로에 있는 Y교회 담임 목사 등 유명한 목사님들이 그렇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신학대학 교수들이나 유명 목사님 등 교계 지도자들이나 많은 목회자들이 기도하는 요령도 모르고 있어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거나 같은 것 이라고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이름으로” 하는 기도를 크게 책망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받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만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라는 이름 외에도 다른 이름으로 “그리스도”와 “주님” 이라는 두 가지 이름을 더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르고 주님이라고 부르는 근거가 되는 말씀은 바로 누가복음 2장 11절에 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장 11절)

천사가 말하기를 아기 예수는 “구주”이시고 “그리스도”이시고 “주”가 되시는 분, 곧 주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날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구주”라는 뜻의 예수라는 육적인 이름을 받았으며, 또 다른 신적인 이름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 그리고 “주님”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라 부르기 보다는 “주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신성에 속한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 기왕이면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어느 날 주 예수께서 빌립보 지방에 왔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장 16절) 라고 대답 했을 때에 주님이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가 주님께 칭찬 받고 축복 받은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이 담긴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쁘게 받으십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한 기도는 십계명 3계명을 범하는 일이다

십계명 제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아니 하리라.”

제3계명에서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이고

또 성자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 하나님의 이름은 “성령”입니다. 성자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결코 “예수님”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대하여 정확한 호칭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망령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샤베’로, ‘무익한, 헛된, 거짓된, 가벼운, 경솔한’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경솔하게, 거짓되게 부르는 것을 뜻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아니 하리라”는 말은 이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 결단코 형벌을 면제받고 무사하게 되지 않는다, 반드시 강력한 형벌을 받는다’라는 선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의 위반자를 그대로 내 버려두시기는 커녕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문 114 참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그 나라 왕이 되면, 왕이라는 직위를 붙여서 다윗 왕 또는 솔로몬 왕처럼 OO왕이라고 호칭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왕을 만났을 때, 면전에서 왕이라는 직위를 붙이지 않고 다윗이나 솔로몬이라는 이름만 부른다면 그런 사람은 당장 끌려가 감옥이나 형장으로 끌려 갈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성자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님이라는 이름만 부르고 그리스도라는 직임을 붙이지 않는다면 주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시고 징계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주님이 직접 들으십니다. 주님 면전에서 ‘예수님’이라고 잘못된 이름으로 경솔하게 기도하는 것이니까 망령되이 일컫는 크나큰 죄를 범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징계하신다는 말씀이 제3계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할 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이다. 성경 모범대로 기도해야 한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과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당시 사도들의 모범적인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사도 베드로의 경우, 사도행전 3장 6절에서 베드로가 앉은뱅이 된 걸인을 기도하여 고쳐줄 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 기도하여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사도 베드로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도 역시 사도행전 16장 1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귀신 들린 환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 기도하여 귀신을 몰아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 기도하라고 권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넷째,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축복 기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목사님들이 축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당시에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과 여러 제자들이 기도한 것을 본받아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므로 중대한 일이 생긴다.

1) 우리가 기도를 하면 천사가 받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있어요. 계시록 8장 4절에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하나님께 올려 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보류하고 하나님께 올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현재 한국에는 2만 3천명의 천사가 와있는데 천사와 대화를 하는 어느 선교사가 있어요. 천사에게 기도 요령에 대하여 물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 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기도는 보류한다는 말씀을 전해 주어 알게 되었지요.

2)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면 낙원에 들어갑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낙원 심판에서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한 성도는 선택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는 탈락시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십계명 3계명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확실하게 알아 두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은 구원 받지도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안 됩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구원에서 탁락하고 지옥 형벌 받는 곳으로 갑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오늘이라도 당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치면 되는 일입니다. 너무 쉬운 일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은 꼭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르게 기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하게 권면합니다.

[기도]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이번 기획기사는 ‘기도’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그들의 신께 기도합니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에겐가 기도를 합니다. 힌국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도하면 다 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그냥 기도하면 되지 왜 말이 많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기도를 잘 배워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주-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1)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서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마칠 때 똑같은 말로 기도를 마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각기 다른 내용으로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영혼과 몸에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내용이었건 상관없이 마칠 때는 똑같은 말로 마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마치는 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다. 미국과 호주의 그리스도인들도 “in the name of Jesus. Amen.”이라고 기도를 마친다. 네덜란드의 그리스도인들도 “In Jezus’ Naam bid ik U dit. Amen.”이라고 기도를 마친다. 중국의 그리스도인들도 “奉耶稣的名祷告. 阿门.”이라고 기도를 마친다. 전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에 항상 하는 말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다.

I. 왜 이렇게 마칠까? 그냥 우리 마음대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기독교 전통을 따라 하는 것일까? II. 이렇게 마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도가 다 끝났다는 신호인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하는 소리일까? III. 이렇게 마쳐야만 하는가? 이렇게 안 마치면 큰일 나는 것일까?

본론

I.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함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이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요한복음 14:13-14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23-24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요한복음 14:13-14; 요한복음 15:16; 요한복음 16:23-24. 이 본문들의 가르침에 근거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 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약간의 수사적인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말로 기도를 맺는다.

요리문답의 복창(復唱)

앞서 말한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7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답: 첫째, 그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3) 그가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4)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니다must pray from the heart.5) 둘째, 우리 자신의 부족need과 비참함misery을 똑바로 철저히 깨달아 그의 엄위 앞majestic presence에 겸손히 구합니다.6) 셋째, 비록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7)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unshakable foundation를8)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3) 요 4:22-24; 계 19:10 4) 잠 28:9; 롬 8:26; 약 1:5; 요일 5:14 5) 시 145:18-20; 약 1:6-8; 4:3,8 6) 대하 7:14; 20:12; 시 2:11; 사 66:2 7) 시 27:8; 마 7:8 8) 단 9:17-19; 요 14:13-14; 15:16; 16:23; 엡 3:20-2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은 이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2) 맨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문장과 그 근거구절인 요한복음 14:13-14; 15:16; 16:23이라는 사실을 유념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경우 제180-181문답에서 각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와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3)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마치는 이유는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요 단순히 기독교 전통을 따라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II. 이렇게 마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왜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고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인 우리가 감히 나아갈 수 없다. 죄 많고 연약한 사람이 감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시고, 또한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감히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없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181문답의 증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의 중보자로서의 사역과 관련됨에 대해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1문답이 잘 설명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1문: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답: 사람의 죄악sinfulness of man과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거리가 매우 크므로 중보자 없이는without a mediator 하나님 앞에into his presence 접근할 수 없으며,1) 하늘과 땅에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임명받았거나appointed to 적합한fit for 자가 없으므로,2) 우리는 다른 이름이 아닌,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다.3)

1) 요 14:6; 사 59:2; 엡 3:12 2) 요 6:27; 히 7:25-27; 딤전 2:5 3) 골 3:17; 히 13:15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문답 역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그분의 중보자로서의 사역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0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공로로 긍휼을 간구하는 것인데to ask mercy for his sake,1)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not by bare mentioning of his name,2)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로부터from Christ and his mediation 우리가 기도할 용기encouragement를 얻고, 또한 기도에서 우리의 담대함boldness과 힘strength, 수납되리라는 소망hope of acceptance을 얻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3)

1) 요 14:13,14; 16:24; 단 9:17 2) 마 7:21 3) 히 4:14-16; 요일 5:13-15

다른 중보자가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렇다면 다른 이름으로도 기도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로마가톨릭이다.

로마가톨릭교회도 중보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로 나아갈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중보자를 둔다.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신 중보자가 아닌 사람 중보자를 둔다. 바로 ‘신부’(priest)다. 로마가톨릭은 신자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priest)를 통해서 고백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부가 신자들의 죄를 대신 고백해 준다. 우리가 잘 아는 ‘고해성사’(告解聖事, penance)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로마가톨릭의 기도 중 “성 요셉에게 바치는 기도”라는 기도에서 “우리 주 예수님을 기르신 아버지시오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며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께 간절히 청하오니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또한 죽을 때에 저희를 지켜 주소서. 아멘.”4)이라고 해서 요셉을 중보자로 삼고 있다. 그들은 신부(priest)를 통해서 기도하기도 하고, 성자(saints)를 통해서 기도하기도 한다.5)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생각은 건전한가? 성경적인가?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다. 그래서 ‘유일한’ 중보자라고 한다. 디모데전서 2:5을 보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매개해 주는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이 말씀에 근거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36문답도 유일한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힌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6문: 은혜 언약의 중보자the Mediator는 누구입니까?

답: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the only Mediator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1)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고, 성부와 하나의 본질이시요of one substance 동등하시며equal,2) 때가 차매 사람이 되셨고,3) 과거와 영원토록 계속해서 하나님God이시요 사람man이시니, 완전히 구별되는 두 본성two entire distinct natures을 가지신 하나의 위격one person이십니다.4)

1) 딤전 2:5 2) 요 1:1,14; 10:30; 빌 2:6 3) 갈 4:4 4) 눅 1:35; 롬 9:5; 골 2:9; 히 7:24-25

예수님 외에 다른 중보자는 없다. 오직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다(참조. 행 4:12).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1문답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1문: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답: 사람의 죄악sinfulness of man과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거리가 매우 크므로 중보자 없이는without a mediator 하나님 앞에into his presence 접근할 수 없으며,1) 하늘과 땅에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임명받았거나appointed to 적합한fit for 자가 없으므로,2) 우리는 다른 이름이 아닌,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다.3)

1) 요 14:6; 사 59:2; 엡 3:12 2) 요 6:27; 히 7:25-27; 딤전 2:5 3) 골 3:17; 히 13:15

우리는 성경과 요리문답의 가르침에 따라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그분의 이름으로도 기도하고 다른 이름으로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할 수 없다.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불신자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단지 평범한 사람으로만 믿는 유대인들, 예수님보다 마호메트를 중보자로 믿는 모슬렘들, 예수님 외의 다른 중보자를 허용하는 로마가톨릭의 기도는 참된 기도일 수 없다.6)

III. 이렇게 마쳐야만 하는가?

주술적인 것인가?

마지막으로 1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빠뜨리고 기도를 마치면 큰일 나는 것일까? 역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만 붙이면 그 기도는 바른 기도일까?

우리는 요한복음 14:13-14; 15:16; 16:23의 가르침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181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빠뜨린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우리가 실수로나 다른 이유에 의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표현을 빠뜨릴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한 사람의 흉을 보거나 그렇게 한 스스로에 대해 자책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평소의 기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마쳐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참으로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기도를 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붙이지만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표현을 빠뜨렸다고 해서 기도를 잘못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를 절대적으로 붙여야 한다고 기를 쓰거나, 믿음 없이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혹 실수로 그 표현을 붙이는 것을 잊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 의미를 잘 담아서 기도했느냐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다 바른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마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 말을 붙이는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참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드리는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제180문답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해 놓았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0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공로로 긍휼을 간구하는 것인데to ask mercy for his sake,1)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not by bare mentioning of his name,2)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로부터from Christ and his mediation 우리가 기도할 용기encouragement를 얻고, 또한 기도에서 우리의 담대함boldness과 힘strength, 수납되리라는 소망hope of acceptance을 얻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3)

1) 요 14:13,14; 16:24; 단 9:17 2) 마 7:21 3) 히 4:14-16; 요일 5:13-15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not by bare mentioning of his name)라는 표현에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말할 뿐 아니라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고백,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일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한 참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읊조림이 되어야

기도를 마칠 때마다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다 보니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나 관례가 되어 버려, 정작 이렇게 기도하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한 채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기도가 끝났구나”라는 신호(sign)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하나의 주문(呪文)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기도의 단순한 후렴구가 아니다. 땅에 있는 사람인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방편이 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리의 고백이 담겨 있다. 우리의 참된 중보자를 통해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론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가?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기도를 마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해야 할 것이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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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역자로서,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가 전해야 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하거나 이루어 놓은 일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또한 모든 인류의 삶의 진정한 근본인 그 사랑을 전하도록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 (중략) … 크리스천 리더는 이 시대를 달구는 이슈에 대해서만 박식한 의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속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어떤 말로 충고하고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묵상 기도를 통하여 사랑의 음성을 거듭해서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이슈가 주어지든지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사랑 안에서 찾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 1부. 기도하는 리더십_현실 지향에서 기도하는 삶으로 중에서

목회란 공동체적 경험일 뿐만 아니라 상호 관계의 경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양 사역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그분은 우리도 목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양을 치고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환자의 문제를 알고 그것들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돌보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문제를 알지만 또 자신의 문제도 알릴 필요가 있고, 남을 돌볼 뿐 아니라 자신도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용서하고 또 용서받는,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는 그런 연약한 한 인간으로 목회하기를 원하십니다.

… (중략) … 우리는 치료하는 자도 아니요, 화해자도 아니요, 생명을 주는 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돌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요, 깨어지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여는 통로가 되도록 우리가 택함을 받았다는 데 바로 목회의 신비가 있습니다.

— 2부. 영혼을 섬기는 리더십_인기 관리에서 진정한 목양으로 중에서

여기에서 우리는 미래의 크리스천 리더십의 중요한 특성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힘과 지배의 리더십이 아니라 무력과 겸손의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십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리더십은 단지 자신이 처한 환경의 수동적인 희생물이 되는, 심리적으로 유약한 리더십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오직 사랑 때문에 계속해서 힘의 사용을 포기하는 리더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크리스천 리더십입니다.

영적인 삶에서 힘이 없다는 것과 겸손하다는 것은 줏대 없이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깊이 사랑해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분을 따를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함으로써 생명을 찾고 또 풍성히 찾을 것이라고 언제나 믿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 3부. 예수님을 따르는 리더십_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받는 자리로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의 실제적인 열매는 오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으로 시작되었고, 기적으로 전파되었으며, 지금도 기적으로 열매 맺고 있습니다. 그 기적은 바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빌립이 하나님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 8:12)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기독교는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통하여 그 생명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에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고 보여주셨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나라의 일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일들은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선한 일과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들은 기적, 즉 기사와 표적이라고 불립니다.

실제 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의 기적,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한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을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종교 활동으로, 기적을 이성으로, 하나님을 우리로 대체시켜버렸습니다.

우리는 종교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관한 지식이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뇌와 마음에 기초한 이성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에 따른 이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성은 기적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지식과 정보로만 듣습니다. 또한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자신의 판단(생각과 감정)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과 삶이 변화되는 것이 분리되어버렸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5)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새로워지고 삶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것은 듣는 것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변화받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상고하지만 그 말씀의 실체가 자신의 삶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즉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머리에 지식으로만 보관할 뿐 그 말씀을 마음에 심어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이요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를 경험하게 될 때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며, 그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 4:26)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하나님나라의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 안에 거하며,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말씀의 실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나라의 복음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나요?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모든 말에나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야 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며,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7)

오늘날 이 세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마치 우상처럼 숭배하기는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지는 않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도 베드로처럼 우리 모두 은과 금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일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하나님나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의 열쇠가 성령님이시고, 천국 열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 말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요한복음 15장 4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사도행전 1장 8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야고보서 4장 8절

† 기도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 가운데 나아가게 하시고 삶으로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혼란한 이 세대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묵상하며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과 함께 기도를 끝냅니다. 왜, 우리 자신의 이름이 아니고, 혹은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일까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1문답에 의하면, “사람의 죄악과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거리가 매우 크므로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 앞에 접근할 수 없으며(요 14:6; 사 59:2; 엡 3:12), 하늘과 땅에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임명받았거나 적합한 자가 없으므로(요 6:27; 히 7:25-27; 딤전 2:5), 우리는 다른 이름이 아닌,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다.”(골 3:17; 히 13:15)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교리의 성서적 배경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말씀은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 14:13-14).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에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 14:6)고 하신 후,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제자 빌립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요 14:9-10).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이르는 통로이자, 아버지 자신과 한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 기도의 중보자이자, 동시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 14:13)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요 16:23b). 이로써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시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Getty Image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공로로 긍휼을 간구하는 것인데(요 14:13,14; 16:24; 단 9:17),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마 7:21),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로부터 우리가 기도할 용기를 얻고, 또한 기도에서 우리의 담대함과 힘, 수납되리라는 소망을 얻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히 4:14-16; 요일 5:13-15.3).”

우리가 기도를 바치는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아버지가 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요 14:13, 16:23)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를 친구로 부르신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요 15:15).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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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사도행전 3 장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 말씀요약 —-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미문이라 하는 성전 문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켜 걷게 한 유명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앉은뱅이의 무능과 파산과 비참의 상태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들입니다. 영적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자들입니다. 죄로 인해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하게 되었으며,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고, 선을 알지 못하며 선을 행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지하고 무능력합니다.

또한 인간은 거지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된 이 사람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는 모습은 인간의 영적 파산의 상태를 말해줍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가진 부자라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이 앉은뱅이와 같이 거지입니다. 또한 인간은 비참합니다. 이 앉은뱅이 병자는 누군가가 그를 메고 와서 거기에다가 앉혀 주어야만 그나마 구걸이라도 할 수 있는, 참으로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작 자기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바로 자기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도, 그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고작 동전 몇 닢과 먹을 것만을 구할 뿐, 자기 자신에게 진짜로 필요한 구원은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원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무능하고 무지하고 가난하고 비참한 존재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지만 성전 미문을 지나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그 앉은뱅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모든 무능과 파산과 비참의 원인인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6절). 베드로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고 그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 그는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는 육신적으로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습니다(행 4:9).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선, 최상, 최고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교회들조차 세상에 금과 은을 주는 것을 교회의 보람으로 여기려고 합니다.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대사회적인 구제활동을 많이 하는 교회를 굉장히 바람직한 교회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설교마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이 세상살이에 실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는 것으로 바꾸려고 하고, 사람들은 또 그런 설교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최고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이 교회에 그런 것을 많이 바라고 또 요구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해 교회는 다르게 대답해야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고 바라보며 구걸하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은 내게 없다.”고 하면서,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바로 그것이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이름을 주어서 그들을 걷게도 하고 뛰게도 하며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교회의 보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역할이고 신자의 사명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필요욕구만을 채워주는 것으로는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은과 금을 준다 한들 얼마나 줄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보람이고 교회의 바른 역할입니다.

모든 백성이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일평생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일어난 일을 인하여 심히 놀라며 기이히 여기게 되었습니다(행 3:10).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다시 한 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바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행 3:16).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모세가 예언했던 “나 같은 선지자”(행 3:22, 신 18:19 참조)가 바로 이 예수님이며, 사무엘 때부터 모든 선지자들이 가리켜 예언했던 분이 바로 이 예수님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땅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행 3:25, 창 12:3 참조)고 했던 분도 바로 이 예수님인 것을 증거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유대의 관원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여서 생명의 주를 죽였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사도들은 이 일에 증인이라고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3:15,17).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대할 때와 같은 심정으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이름의 능력, 곧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 알려주기를 원했습니다. “눈 멀고, 무능력하고, 파산하고, 비참한 가운데 있는 자들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의 이 설교를 듣고 믿게 된 자들이 남자의 수만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행 4:4). 오천 명이 새롭게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있는 가장 고귀한 것,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구원의 복음을 전했고, 그때에 교회는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온 세상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라

우리는 이 세상을 볼 때,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인간의 무능과 가난과 비참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참된 역할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서 그 일에 집중하고 힘써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난했습니다.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면서 신앙생활했습니다(히 11:39). 그러나 그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의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일으켰습니다. 기껏해야 앉은뱅이를 메어다가 성전 미문 앞에 내려놓고 구걸하게 하는, 그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은과 금은 오히려 많이 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는 은과 금은 없어도, 무능과 가난과 비참 아래 있는 자들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도움이라고는 기껏해야 동전 몇 닢과 일시적인 위로뿐입니다. 세상은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 구원의 복음을 순전하게 전함으로써만 진정한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주고, 구원의 복음을 바로 선포할 때 구원 얻을 자들이 믿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게 맡겨진 책임이자 임무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웁시다. 이 이름이 필요한 것은 그 앉은뱅이만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야 하고, 뛰어야 하고, 하나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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