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무총리 | [팩트체크] 역대 국무총리는 모두 ‘무궁화장’ 받았을까 156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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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1 노태우 정부
  • 3.6.2 김영삼 정부
  • 3.6.3 김대중 정부
  • 3.6.4 노무현 정부
  • 3.6.5 이명박 정부
  • 3.6.6 박근혜 정부
  • 3.6.7 문재인 정부
  • 3.6.8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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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시작합니다. 오대영 기자! 정부가 김종필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중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는데, 관례에 따랐다고 강조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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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 국무총리 | 역대총리소개

역대총리소개 · 서리 · 제 1공화국 · 제 2공화국 · 제 3공화국 · 제 4공화국 · 제 5공화국 · 노태우정부 · 김영삼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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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pm.go.kr

Date Published: 5/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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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 나무위키:대문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이윤영 총리 서리는 무려 네 번에 걸쳐서 한국민주당에 의해 총리 인준이 부결되었다. 역대 총리는 장면, 백두진, 김종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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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15/2022

View: 4261

[국회] 역대 국무총리 명단 – 조선일보

국회 역대 국무총리 명단 △1대 이범석49.8-50.4-서리신성모50.4-50.11 △2대 장 면50.11-51.4-서리허 정51.11-52.4, 이윤영52.4-52.5 △3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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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osun.com

Date Published: 5/23/2022

View: 8380

최소 11일~최대 6년 7개월 역대 국무총리 48명 – 주간동아

우리나라에서 초대 이범석부터 현재 정홍원까지 국무총리 42명, 내각수반 4명, 서리 6명 등 모두 52명이 국무총리 반열에 올랐다. 이 중 장면, 백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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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eekly.donga.com

Date Published: 10/9/2022

View: 6484

역대 국무총리의 개인적 특성에 관한 연구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본 논문은 기존의 제도중심연구에서 벗어나 역대 국무총리들의 개인적 특성, 즉 재임당시 연령, 재임기간, 출신지, 취임 전 주요경력, 출신학교 등의 특성을 통해 역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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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4/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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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15년만에 다시 국무총리 귀환…’총리 두번’ 역대 사례는 …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하면서 총리를 두번 한 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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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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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 더위키

2. 역대 국무총리[편집] ; 노태우 정부 ; 제20대, 제21대, 제22대 ; 이현재 · 강영훈 · 노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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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wiki.kr

Date Published: 8/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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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역대 국무총리는 모두 '무궁화장'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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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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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 국무총리기

현직:

한덕수

2022년 5월 21일 취임 2022년 5월 21일 취임 관저 국무총리공관 임명자 대통령 임기 고정되어 있지 않음 초대 이범석 설치일 1948년 8월 2일 웹사이트 www.opm.go.kr

국무총리(國務總理)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한민국의 행정을 통괄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헌법 제86조 제2항에 따라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통괄·관할)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 시 권한대행자로서의 지위,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의 지위,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 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로서는 각부장관보다 상위의 지위로서, 행정각부의 장을 지휘 감독하나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로서는 행정각부의 장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A] 등과 함께 아울러 5부요인이라 한다.

관련 헌법 조항 [ 편집 ]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헌법 제86조 제1항)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헌법 제86조 제3항)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헌법 제87조 제1항)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헌법 제87조 제3항)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 [ 편집 ]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유고 및 사고시 대통령의 직무를 임시적으로 이어받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지휘할 수 있으며 국무위원을 통솔한다. 또한,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국무를 조정하고 통할한다. 만일 국무총리가 유고시에는 국가 정부조직 법률상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시적으로, 차기 국무총리가 정식으로 임명될때까지 총리직을 대행한다.

역대 국무총리 [ 편집 ]

원래 제헌 헌법 초안에서는 정부를 내각책임제로 운영하고자 명목상의 대통령과 실권을 가진 총리직을 두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에 반대하여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하고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여 부통령을 신설하였으나, 총리제는 그대로 두어 대통령, 부통령, 국무총리가 모두 존재하였다. 총리직은 이후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때 일시적으로 폐지되고 외무부 장관이 겸임하는 수석국무위원이라는 직책이 총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승만은 총리직이 궐위되었을 때 후임자를 바로 지명하는 대신 총리 서리를 임명하여 정식 총리가 취임하기 전까지 그 직을 수행토록 했는데, 법에는 국무총리가 신병 등의 이유로 그 직을 수행할 수 없을 경우 대통령이 국무위원 중 한 사람을 총리 직무 대리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있을 뿐, 총리 궐위 시 총리 서리를 임명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었으므로 총리 서리 임명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2][3]신성모는 이범석이 총선을 얼마 안 남기고 사임하자 차기 총리 취임 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기 위해 서리로 임명되었으며 허정과 백한성은 각각 장면과 변영태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총리직을 대리하기 위해 서리로 임명되었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서리 이윤영(李允榮) 1948년 7월 27일~1948년 7월 31일 평북 영변 평양숭실사범전문학교

(현 숭실대 기독교학과) 무임소 장관, 사회부 장관,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제1대 국회의원 임시 대행 신익희(申翼熙) 1948년 7월 31일~1948년 8월 2일 경기 광주 일본 와세다 대 제1·2·3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민의원 의장 초대 이범석(李範奭) 1948년 8월 2일~1950년 4월 3일 경기 한성

(현 서울) 중국 윈난 육군강무학교

(현 윈난 대학) 국방부 장관, 내무부 장관, 제5대 국회의원, 주 대만 대사 서리 이윤영(李允榮) 1950년 4월 3일~1950년 4월 6일[4] 평북 영변 평양숭실사범전문학교

(현 숭실대 기독교학과) 무임소 장관, 사회부 장관,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제1대 국회의원 임시 대행 신익희(申翼熙) 1950년 4월 6일~1950년 4월 21일 경기 광주 일본 와세다 대 제1·2·3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민의원 의장 서리 신성모(申性模) 1950년 4월 21일~1950년 11월 23일 경남 의령 보성법률전문학교

(현 고려대 법대) 한국해양대학장,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한국해기사협회 회장 백낙준(白樂濬) 1950년 11월 3일~1950년 11월 15일 평북 정주 미국 파크대 연세대 총장, 문교부 장관, 제5대 국회의원, 참의원 의장, 대통령 권한대행 2대 장면(張勉) 1950년 11월 23일~1952년 4월 20일 경기 한성

(현 서울) 수원고등농림

(현 서울대 농대) 제4대 부통령, 제1·5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주 미국 대사 서리 허정(許政) 1951년 11월 6일~1952년 4월 8일 경남 부산

(현 경남과 분리) 보성전문학교

(현 고려대) 서울특별시장,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무임소 장관, 외무부 장관, 대통령 권한대행, 제1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임시 대행 신익희(申翼熙) 1952년 4월 8일~1952년 4월 24일 경기 광주 일본 와세다 대 제1·2·3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민의원 의장 서리 이윤영(李允榮) 1952년 4월 24일~1952년 5월 6일 평북 영변 평양숭실사범전문학교

(현 숭실대 기독교학과) 무임소 장관, 사회부 장관,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제1대 국회의원 3대 장택상(張澤相) 1952년 5월 6일~1952년 10월 5일 경북 칠곡

(현 경북 구미) 영국 에딘버러대 수도경찰청장, 외무부 장관, 제2·3·4·5대 국회의원, 국회 부의장 서리 이윤영(李允榮) 1952년 10월 5일~1952년 10월 17일 평북 영변 평양숭실사범전문학교

(현 숭실대 기독교학과) 무임소 장관, 사회부 장관,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제1대 국회의원 임시[5] 이갑성(李甲成) 1952년 10월 9일~1953년 7월 27일 경북 대구

(현 경북과 분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현 연세대 의대)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중앙선거위원회 위원 서리[6] 백두진(白斗鎭) 1952년 10월 9일~1953년 4월 23일 황해 신천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임시외자관리청장, 재무부 장관, 제7·8·9·10대 국회의원, 국회의장, 민주공화당 총재, 유신정우회 의장, 한국은행 이사, 식산은행장 4대 1953년 4월 24일~1954년 6월 17일 임시 대행 이기붕(李起鵬) 1954년 6월 17일~1954년 6월 28일 충북 괴산 미국 아이오와 주립 데이버 대학교 서울특별자유시장, 국방부 장관, 제3·4대 국회의원, 국회의장 5대 변영태(卞榮泰) 1954년 6월 28일~1954년 11월 29일 경기 부천 중국 푸젠 셰훠 대 고려대 교수, 외무부 장관 임시 서리 백한성(白漢成) 1954년 11월 18일~1954년 11월 29일 충남 대전

(현 충남과 분리) 경성법학전문학교

(현 서울대 법대) 법무부 차관, 내무부 장관

제3차 개헌을 통하여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전환한 후 부통령직을 폐지하고 국무총리직을 다시 부활시켰다. 장도영, 송요찬, 박정희, 김현철 등을 비롯한 이들은 장면 내각을 5·16 군사정변으로 붕괴시킨 뒤 군사 정부 시절 역대 내각 수반 등을 지낸 이들이었다. 허정은 장관(외무부)을 지냄과 동시에 내각수반 직과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겸한 최초의 인사이다. 다만 장도영, 송요찬, 박정희, 김현철 등의 내각수반 직과 달리 허정의 내각수반 직은 말 그대로 내각의 수반이라는 뜻의 관습적인 표현이었을 뿐 법률상의 직함은 아니었고, 허정이 당시 갖고 있던 직함은 ‘수석국무위원 겸 외무부장관’이었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수석국무위원 겸 내각수반 허정(許政) 1960년 4월 27일~1960년 6월 15일 경남 부산

(현 경남과 분리) 보성전문학교

(현 고려대) 서울특별시장, 외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무임소 장관, 대통령 권한대행, 제1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6대 1960년 6월 15일~1960년 8월 18일 서리 김도연(金度演) 1960년 8월 16일~1960년 8월 17일 경기 김포 일본 게이오대 재무부 장관, 제1·3·4·5·6·7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한국무역협회 회장 임시 대행 곽상훈(郭尙勳) 1960년 8월 18일~1960년 8월 19일 경남 동래

(현 부산 동래구) 경성고등공업전문학교

(현 서울대 공대) 제1·2·3·4·5대 국회의원, 국회의장, 민의원 의장, 대통령 권한대행 7대 장면(張勉) 1960년 8월 19일~1961년 5월 18일 경기 한성

(현 서울) 수원고등농림

(현 서울대 농대) 제4대 부통령, 제1·5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주 미국 대사 군사혁명위원장 장도영(張都映) 1961년 5월 18일~1961년 5월 20일 평북 용천 군사영어학교

(현 육사) 육군참모총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부 장관 내각수반 1961년 5월 20일~1961년 7월 3일 송요찬(宋堯讚) 1961년 7월 3일~1962년 6월 15일 충남 청양 미국 지휘참모대 육군참모총장, 외무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임시 내각수반 서리 김종오(金鍾五) 1962년 6월 15일~1962년 6월 18일 충북 청원

(현 충북 청주) 군사영어학교

(현 육사) 연합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내각수반 박정희(朴正熙) 1962년 6월 18일~1962년 7월 9일 경북 선산

(현 경북 구미) 육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김현철(金顯哲) 1962년 7월 10일~1963년 12월 16일 경기 한성

(현 서울) 경성고등공업학교

(현 서울대 공대) 재무부 장관, 부흥부 장관, 경제기획원 원장, 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 헌법위원회 위원, 주 미국 대사

제3공화국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중심제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 총리는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의 방패막이 되어주어 방탄 총리, 대독 총리와 같은 오명을 받게 된다.

박정희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8대 최두선(崔斗善) 1963년 12월 17일~1964년 5월 9일 경기 한성

(현 서울) 일본 와세다대 중앙선거위원회 위원, 대한적십자사 총재 9대 정일권(丁一權) 1964년 5월 10일~1970년 12월 19일 러시아 우수리스크 군사영어학교

(현 육사) 육군참모총장, 외무부 장관, 국정자문회의 위원, 제8·9·10대 국회의원, 주 프랑스 대사, 주 미국 대사 10대 백두진(白斗鎭) 1970년 12월 19일~1971년 6월 3일 황해 신천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임시외자관리청장, 재무부 장관, 제7·8·9·10대 국회의원, 국회의장, 민주공화당 총재, 유신정우회 의장, 한국은행 이사, 식산은행장 11대 김종필(金鍾泌) 1971년 6월 4일~1975년 12월 18일 충남 부여 육사 중앙정보부장, 제6·7·8·9·10·13·14·15·16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총재, 자유민주연합 총재

최규하 제12대 국무총리는 최초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행사했으며 박충훈은 국무총리 서리로서 최초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최규하는 헌정 사상 최초의 강원도 출신 국무총리이자 국무총리 출신의 대통령이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11대 김종필(金鍾泌) 1971년 6월 4일~1975년 12월 18일 충남 부여 육사 중앙정보부장, 제6·7·8·9·10·13·14·15·16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총재, 자유민주연합 총재 서리 최규하(崔圭夏) 1975년 12월 19일~1976년 3월 12일 강원 원주 일본 쓰쿠바대 제10대 대통령, 서울대 교수, 외무부 장관,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의장, 주 말레이시아 대사 12대 1976년 3월 13일~1979년 12월 5일 13대 신현확(申鉉碻) 1979년 12월 13일~1980년 5월 21일 경북 칠곡 경성제국대

대구대 교수, 부흥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경제부총리, 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 제9·10대 국회의원 서리 박충훈(朴忠勳) 1980년 5월 22일~1980년 9월 1일 제주 제주 일본 도시샤대 상공부 장관, 경제부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한국무역협회 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이사장 남덕우(南德祐) 1980년 9월 2일~1980년 9월 21일 경기 광주 국민대 재무부 장관, 경제부총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한국무역협회 회장 14대 1980년 9월 22일~1982년 1월 3일

김상협 제16대 국무총리는 헌정 사상 최초로 호남 출신의 국무총리이며, 신병현 경제부총리는 진의종 제17대 국무총리가 재임 중 뇌일혈로 쓰러져 총리 대행을 맡은 최초의 부총리이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서리 유창순(劉彰順) 1982년 1월 4일~1982년 1월 22일 평남 안주 미국 헤이스팅스대 상공부 장관,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롯데제과 회장, 호남석유화학 회장 15대 1982년 1월 23일~1982년 6월 24일 서리 김상협(金相浹) 1982년 6월 24일~1982년 9월 20일 전북 부안 일본 도쿄대 고려대 교수, 고려대 총장, 문교부 장관, 국정자문회의 자문의원, 동아일보 이사, 대한적십자사 총재 16대 1982년 9월 21일~1983년 10월 14일 서리 진의종(陳懿種) 1983년 10월 14일~1983년 10월 16일 전북 고창 경성제국대 대한주택영단 이사, 한국전력 부사장, 제8·9·11·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7대 1983년 10월 17일~1985년 2월 18일 직무대행[B] 신병현(申秉鉉) 1984년 11월 8일~1985년 2월 18일 황해 장연 미국 아메리칸대 상공부 장관,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서리 노신영(盧信永) 1985년 2월 19일~1985년 5월 15일 평남 강서 서울대 외무부 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 국정자문위원, 장학재단 이사장 18대 1985년 5월 16일~1987년 5월 25일 서리 이한기(李漢基) 1987년 5월 26일~1987년 7월 13일 전북 고창 서울대 서울대 교수, 일본 도쿄대 객원교수, 감사원장, 한일문화교류기금 이사장 김정렬(金貞烈) 1987년 7월 14일~1987년 8월 6일 경기 경성

(현 서울) 육사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제7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당의장, 주 미국 대사 19대 1987년 8월 7일~1988년 2월 24일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서리 이현재(李賢宰) 1988년 2월 25일~1988년 3월 1일 충남 홍성 서울대 서울대 교수, 서울대 총장, 한국문화경제학회 고문,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 호암재단 이사장 20대 1988년 3월 2일~1988년 12월 4일 서리 강영훈(姜英勳) 1988년 12월 5일~1988년 12월 15일 평북 창성 군사영어학교

(현 육사) 국방부 차관, 주 영국 대사, 주 로마교황청 대사, 제13대 국회의원 21대 1988년 12월 16일~1990년 12월 26일 서리 노재봉(盧在鳳) 1990년 12월 27일~1991년 1월 22일 경남 마산

(현 경남 창원) 서울대 서울대 교수, 제14대 국회의원, 대통령 비서실장 22대 1991년 1월 23일~1991년 5월 23일 서리 정원식(鄭元植) 1991년 5월 24일~1991년 7월 7일 황해 재령 서울대 서울대 교수, 한국교육개혁심의회 위원, 한국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문교부 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23대 1991년 7월 8일~1992년 10월 7일 24대 현승종(玄勝種) 1992년 10월 8일~1993년 2월 24일 평남 개천 경성제국대 고려대 교수, 성균관대 총장, 한림대 총장, UNICEF 한국위원회 회장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25대 황인성(黃寅性) 1993년 2월 25일~1993년 12월 16일 전북 무주 육사 전라북도지사, 국무총리비서실장, 조달청장, 교통부 장관, 제11·12·14대 국회의원,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 26대 이회창(李會昌) 1993년 12월 17일~1994년 4월 22일 황해 서흥 서울대 감사원장, 제15·16·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총재, 자유선진당 총재,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임시 직무대행 정재석(丁渽錫) 1994년 4월 22일~1994년 4월 29일 전북 장수 서울대 건설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상공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27대 이영덕(李榮德) 1994년 4월 29일~1994년 12월 16일 평남 강서 서울대 서울대 교수, 명지대 총장, 통일원 장관, 한국교육개발원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28대 이홍구(李洪九) 1994년 12월 17일~1995년 12월 17일 경기 고양 서울대 서울대 교수, 통일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주 영국 대사, 제15대 국회의원, 중앙일보 이사회 의장, 사법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29대 이수성(李壽成) 1995년 12월 18일~1997년 3월 4일 함남 함흥 서울대 서울대 총장,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30대 고건(高建) 1997년 3월 5일~1998년 3월 3일 경기 경성

(현 서울) 서울대 명지대 총장, 전라남도지사, 서울특별시장,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농수산부 장관, 내무부 장관, 제12대 국회의원

장상은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국무총리에 지명되었으나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서리에 그쳤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서리 김종필(金鍾泌) 1998년 3월 3일~1998년 8월 17일 충남 부여 육사 중앙정보부장, 제6·7·8·9·10·13·14·15·16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총재, 자유민주연합 총재 31대 1998년 8월 18일~2000년 1월 12일 32대 박태준(朴泰俊) 2000년 1월 13일~2000년 5월 19일 경남 양산 육사 포항제철 사장, 민주정의당 대표,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자유민주연합 총재, 제11·13·14·15대 국회의원 직무대행[7] 이헌재(李憲宰) 2000년 5월 19일~2000년 5월 23일 중국 상하이 서울대 한국신용평가 대표이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초빙교수, 경제부총리, 코레이 상임고문 서리 이한동(李漢東) 2000년 5월 23일~2000년 6월 28일 경기 포천 서울대 내무부 장관, 제11·12·13·14·15·16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33대 2000년 6월 29일~2002년 7월 10일 서리 장상(張裳) 2002년 7월 11일~2002년 7월 31일 평북 용천 이화여대 이화여대 총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전윤철(田允喆) 2002년 8월 1일~2002년 8월 8일 전남 목포 서울대 감사원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수산청장, 대통령 비서실장 서리 장대환(張大煥) 2002년 8월 9일~2002년 8월 28일 경북 대구

(현 경북과 분리) 서울대 매일경제신문 사장, 한국신문협회 회장, 서울대 겸임교수, 세계신문협회 이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직무대행 전윤철(田允喆) 2002년 8월 29일~2002년 9월 9일 전남 목포 서울대 감사원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수산청장, 대통령 비서실장 서리 김석수(金碩洙) 2002년 9월 10일~2002년 10월 4일 경남 하동 연세대 부산지방법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34대 2002년 10월 5일~2003년 2월 26일

고건 제35대 국무총리는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이 탄핵시도로 인해 대통령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2개월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였다. 한명숙 제37대 총리는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이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35대 고건(高建) 2003년 2월 27일~2004년 5월 24일 경기 경성

(현 서울) 서울대 명지대 총장, 전라남도지사, 서울특별시장,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농수산부 장관, 내무부 장관, 제12대 국회의원,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대행 이헌재(李憲宰) 2004년 5월 24일~2004년 6월 29일 중국 상하이 서울대 한국신용평가 대표이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초빙교수, 경제부총리, 코레이 상임고문 36대 이해찬(李海瓚) 2004년 6월 30일~2006년 3월 15일 충남 청양 서울대 서울특별시 부시장, 교육부 장관, 제13·14·15·16·17·19·20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한덕수(韓德洙) 2006년 3월 16일~2006년 4월 19일 전북 전주 서울대 국무조정실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주 미국 대사, 한국무역협회 회장 37대 한명숙(韓明淑) 2006년 4월 20일~2007년 3월 7일 평남 평양 이화여자대 여성부 장관, 환경부 장관, 제16·17·19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직무대행 권오규(權五奎) 2007년 3월 7일~2007년 4월 2일 강원 강릉 서울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조달청장, 경제부총리, 주 OECD 대사 38대 한덕수(韓德洙) 2007년 4월 3일~2008년 2월 29일 전북 전주 서울대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주 미국 대사, 한국무역협회 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임시 직무대행 서남수(徐南洙) 2008년 2월 25일~2008년 2월 29일 서울 서울대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겸 교육부총리 직무대행, EBS 이사장

제41대 김황식 국무총리는 최초의 전라남도 출신 국무총리이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지 출신학교 비고 39대 한승수(韓昇洙) 2008년 2월 29일~2009년 9월 28일 강원 춘천 연세대 서울대 교수, 대통령비서실장, 상공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경제부총리, 주 미국 대사, 제13·15·16대 국회의원 40대 정운찬(鄭雲燦) 2009년 9월 29일~2010년 8월 10일 충남 공주 서울대 서울대 총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서울대 명예교수, 제주영어교육도시 명예시장 직무대행 윤증현(尹增鉉) 2010년 8월 10일~2010년 9월 30일 경남 마산

(현 경남 창원) 서울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기획재정부 장관, 아시아개발은행 이사, 유럽부흥개발은행 연차총회 의장 41대 김황식(金滉植) 2010년 10월 1일~2013년 2월 26일 전남 장성 서울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광주지방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감사원장

제43대 이완구 총리는 허정 총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단 재임 총리(70일)에 올랐지만, 허정이 제6대 총리 취임 전 50여 일간 수석국무위원직을 수행한 적이 있음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짧게 재임한 총리다. 제44대 황교안 국무총리는 박근혜 18대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 출신학교 비고 42대 정홍원(鄭烘原) 2013년 2월 26일~2015년 2월 16일 경남 하동 성균관대 광주·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법무연수원장 ,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43대 이완구(李完九) 2015년 2월 17일~2015년 4월 27일 충남 청양 성균관대 경찰청 기획관리관 , 충북지방경찰청장 , 충남지방경찰청장 , 자민련 원내총무 , 남북정상회담 대표 , 제15·16·19대 국회의원 , 충남도지사 , 새누리당 원내대표 직무대행 최경환(崔炅煥) 2015년 4월 27일~2015년 6월 17일 경북 경산 연세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보좌관 , 제17·18·19·20대 국회의원 ,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 지식경제부 장관 , 새누리당 원내대표 ,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부총리 , 국무총리권한대행) 44대 황교안(黃敎安) 2015년 6월 18일~2017년 5월 11일 서울 성균관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법무부 장관 , 대통령 권한대행 , 자유한국당 대표

제45대 이낙연 총리(958일)는 1988년 6공화국 출범이후 이명박 정부에 재직했던 제41대 김황식 총리(880일)에 이어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가 됐다. 제46대 정세균 총리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취임한 국무총리다.

대수 이름 임기 출신 출신학교 비고 직무대행 유일호(柳一鎬) 2017년 5월 11일~2017년 5월 31일 서울 서울대 제18·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새누리당 대변인, 국토교통부 장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국무총리 직무대행) 45대 이낙연(李洛淵) 2017년 5월 31일~2020년 1월 13일 전남 영광 서울대 제16·17·18·19·21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당 사무총장, 제37대 전라남도지사 46대 정세균(丁世均) 2020년 1월 14일~2021년 4월 16일 전북 진안 고려대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직무대행 홍남기(洪楠基) 2021년 4월 16일~2021년 5월 13일 강원 춘천 한양대 기획재정부 대변인,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국무총리 직무대행) 47대 김부겸(金富謙) 2021년 5월 14일~2022년 5월 11일 경북 상주 서울대 제16·17·18·20대 국회의원, 행정안전부 장관

대수 이름 임기 출신 출신학교 비고 직무대행 추경호(秋慶鎬) 2022년 5월 12일~2022년 5월 20일 경북 달성

(현 대구 달성) 고려대 제20·21대 국회의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국무총리 직무대행) 48대 한덕수(韓悳洙) 2022년 5월 21일~ 전북 전주 서울대 제38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주 미국 대사, 한국무역협회 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역대 임명동의안 국회 표결 결과 [ 편집 ]

제2공화국의 국회는 양원제로, 국무총리 인준권을 가졌던 민의원의 표결을 기재하였다.

제3공화국의 헌법에는 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이 존재하지 않아 임명 동의 표결이 진행되지 않았다.

임명권자 지명자 날짜 투표 결과 결과 국회 가 부 기권 무효 이승만 이윤영 1948년 7월 27일 59 132 2 – 부결 제헌 이범석 1948년 8월 2일 110 84 – 3 가결 이윤영 1950년 4월 6일 68 84 3 – 부결 백낙준 1950년 11월 3일 21 100 2 – 부결 제2대 장면 1950년 11월 23일 148 6 – – 가결 장택상 1952년 5월 6일 95 81 1 – 가결 이윤영 1952년 10월 17일 35 128 3 – 부결 이갑성 1952년 11월 20일 76 94 – 3 부결 백두진 1953년 4월 24일 103 64 2 1 가결 변영태 1954년 6월 28일 157 17 8 8 가결 제3대 윤보선 김도연 1960년 8월 17일 111 112 – 1 부결 제5대 장면 1960년 8월 19일 117 107 1 – 가결 박정희 김종필 1973년 3월 13일 170 37 5 – 가결 제9대 최규하 1976년 3월 13일 163 34 6 – 가결 최규하 신현확 1979년 12월 12일 143 – – – 가결 제10대 전두환 남덕우 1980년 9월 22일 157 16 11 1 가결 유창순 1982년 1월 23일 236 14 – 13 가결 제11대 김상협 1982년 9월 21일 225 28 8 – 가결 진의종 1983년 10월 17일 210 44 7 6 가결 노신영 1985년 5월 16일 155 13 1 1 가결 제12대 김정렬 1987년 8월 7일 144 72 – 16 가결 노태우 이현재 1988년 3월 2일 195 18 6 1 가결 강영훈 1988년 12월 16일 160 10 123 1 가결 제13대 노재봉 1991년 1월 21일 189 69 – 4 가결 정원식 1991년 7월 8일 203 65 – – 가결 현승종 1992년 10월 8일 266 9 1 1 가결 제14대 김영삼 황인성 1993년 2월 25일 188 5 – – 가결 이회창 1993년 12월 16일 220 36 2 2 가결 이영덕 1994년 4월 29일 170 10 – – 가결 이홍구 1994년 12월 17일 177 34 1 – 가결 이수성 1995년 12월 18일 206 36 1 3 가결 고건 1997년 3월 4일 198 51 3 4 가결 제15대 김대중 김종필 1998년 8월 17일 171 65 7 12 가결 박태준 2000년 1월 13일 174 100 3 2 가결 이한동 2000년 6월 29일 139 130 2 1 가결 제16대 장상 2002년 7월 31일 100 142 1 1 부결 장대환 2002년 8월 28일 112 151 3 – 부결 김석수 2002년 10월 5일 210 31 2 6 가결 노무현 고건 2003년 2월 26일 163 81 – 2 가결 이해찬 2004년 6월 29일 200 84 – 5 가결 제17대 한명숙 2006년 4월 19일 182 77 3 2 가결 한덕수 2007년 4월 2일 210 51 – 9 가결 이명박 한승수 2008년 2월 29일 174 94 1 1 가결 정운찬 2009년 9월 28일 164 9 3 1 가결 제18대 김황식 2010년 10월 1일 169 71 4 – 가결 박근혜 정홍원 2013년 2월 26일 197 67 – 9 가결 제19대 이완구 2015년 2월 16일 148 128 – 5 가결 황교안 2015년 6월 18일 156 120 – 2 가결 문재인 이낙연 2017년 5월 31일 164 20 2 2 가결 제20대 정세균 2020년 1월 13일 164 109 1 4 가결 김부겸 2021년 5월 13일 168 5 1 2 가결 제21대 윤석열 한덕수 2022년 5월 21일 208 36 6 – 가결

기록 [ 편집 ]

두 번 재직했던 총리

장면 총리 – 2대, 7대 총리

백두진 총리 – 4대, 10대 총리

김종필 총리 – 11대, 31대 총리

고건 총리 – 30대, 35대 총리

한덕수 총리 – 38대, 48대 총리

재직 일수 관련 단일 재직 일수가 길었던 총리

9대 정일권 총리 – 2416일

11대 김종필 총리 – 1659일

12대 최규하 총리 – 1370일

45대 이낙연 총리 – 958일

41대 김황식 총리 – 880일

재임 재직 일수가 길었던 총리

정일권 총리 – 2416일

김종필 총리 – 2172일(두 번 재직)

최규하 총리 – 1370일

이낙연 총리 – 958일

김황식 총리 – 880일

재임 재직 일수가 짧았던 총리

6대 허정 총리 – 65일

43대 이완구 총리 – 70일

22대 노재봉 총리 – 121일

26대 이회창 총리 – 126일

32대 박태준 총리 – 127일

취임 연령 관련 취임 당시 연령이 높았던 총리

24대 현승종 총리, 32대 박태준 총리 – 74세

39대 한승수 총리 – 73세

48대 한덕수 총리 – 72세

8대 최두선 총리, 19대 김정렬 총리, 34대 김석수 총리 – 71세

42대 정홍원 총리 – 70세

취임 당시 연령이 낮았던 총리

4대 백두진 총리, 11대 김종필 총리 – 46세

9대 정일권 총리 – 47세

초대 이범석 총리 – 49세

36대 이해찬 총리 – 51세

2대 장면 총리 – 52세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내용

↑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5부요인이라 칭한다.[1] 원칙적인 삼권분립에 입각하면 삼부 요인으로서 각 부의 수장인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가원수를 겸하고, 대법원장과 동급인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하지 않아 보통이라 칭한다. ↑ 정부조직법 제19조는 대통령의 지명이 있으면 그 지명을 받은 국무위원이, 지명이 없는 경우에는 규정된 순서에 따라 국무위원이 그 직무를 대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처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서리

대한민국 헌법 제86조 제 1항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하고 있으나, 과거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도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 경우 국무총리 “서리”라 칭한다.

제86조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

최소 11일~최대 6년 7개월 역대 국무총리 48명

이윤영, 장면 전 국무총리(위부터).

김종필, 정운찬, 김황식 전 국무총리(위부터).

일반적으로 정권이 바뀌거나 나라에 큰 사건 사고가 있으면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경질해 국면 전환을 꾀한다. 세월호 참사로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던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한국 헌정사의 국무총리 면면을 따져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건국 이후 66년 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에 오른 이는 모두 11명이다. 이들에 의해 선택, 지명돼 국무총리 반열에 오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여기서 굳이 ‘반열’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국무총리 외에 5·16 군사정변 직후 존재했던 내각수반과 국무총리서리도 의전상 국무총리 예우를 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초대 이범석부터 현재 정홍원까지 국무총리 42명, 내각수반 4명, 서리 6명 등 모두 52명이 국무총리 반열에 올랐다. 이 중 장면, 백두진, 김종필, 고건 등은 두 번씩 국무총리를 역임해 실제로는 48명이 국무총리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이들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짧게는 11일(이윤영)부터 길게는 6년 7개월(정일권) 동안 국무총리 자리를 거쳤다. 최근 문창극 후보자의 경우는 국회청문회에서 시시비비를 가렸어야 옳다고 보지만, 여기서는 그 문제를 논하지 않고 우리 정치 행정사에 있는 특수한 제도인 국무총리에 대해 일반론적으로 얘기하겠다.헌법 제정 당시 헌법기초위원이던 유진오 박사는 우리 정부 형태를 내각책임제로 구상하고 초안을 잡았다. 그러나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승만 박사가 “내각책임제 아래서는 대통령 안 하고 국민운동이나 하겠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이 때문에 정부 형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다 보니 대통령 아래 부통령, 국무총리 등이 존재하는 절충형이 만들어진 것이다.우리나라는 1954년 11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3선을 허용한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당시 국무총리직을 없앴다. 이후 5년 7개월간 국무총리가 없다가 민주당 정부의 내각책임제하에서 부활했다. 이때부터 우리 헌정사에서 면면히 이어온 국무총리라는 자리는 임명할 때 며칠만 뉴스거리가 되고 그 뒤로는 있는지 없는지 애매모호하고 어정쩡한 자리로 인식됐다. 최근에는 국민 중 23% 정도만 국무총리 이름을 알고 있다는 조사결과까지 보도됐다.그렇다면 국무총리의 소임은 무엇일까. 중국 한나라 때 재상이던 진평이 한 말은 이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진평은 황제가 불러 감옥에 갇힌 죄수의 수를 물어도, 국고 내역을 물어도 모른다고 하면서 담당 대신에게 답을 미뤘다. 황제가 그런 진평에게 “재상은 대체 뭐 하는 자리냐”고 묻자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면서 천지 조화를 기해 세상을 순조롭게 돌아가게 하고, 아래로는 인근과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백성을 다독이며, 관료로 하여금 제 소임을 다하도록 하는 자리”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도 두 번째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후임인 고(故) 박태준 국무총리에게 “국무총리가 되면 고민이 많을 거다. 때로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해야 한다. 그러면서 묵묵히 대통령을 보필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국무총리의 소임이었다.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대통령의 보좌역 정도로 인식했다. 초대 국무총리로 누구나 예상했던 김성수, 신익희, 조소앙 등 유력 인사를 배제하고 목사 출신인 이윤영 의원을 지명했다. 이 인준안이 부결되면서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이 시작되고 한국 국무총리 제도의 시련이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이 4차례에 걸쳐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범석이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게 해 군을 창설하고 6·25전쟁 후 장면을 국무총리로 임명해 대미(對美) 외교에 만전을 기하게 한 점, 그리고 재정에 밝은 백두진을 국무총리로 기용해 복구사업을 통할하게 하고, 국제외교를 위해 변영태에게 국무총리직을 맡긴 점 등을 볼 때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을 뽑아 ‘슈퍼스타’인 자신을 보조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민주당 구파(舊派) 출신인 윤보선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배려로 신파(新派) 장면을 국무총리에 앉혔으나 시종 정치적 갈등을 면치 못했다. 역대 대통령 중 국무총리를 상황에 맞게 임명해 가장 적절히 활용한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본다. 정부 초기 군사정권 이미지를 불식하려고 민간 덕망가 최두선을 택한 것이나, 그 후 정권을 안정화하기 위해 군 선배인 정일권에게 ‘얼굴’ 역할을 맡긴 것, 그리고 유신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격동기에 김종필을 등용해 바람을 막은 뒤 안정기에 관료 출신인 최규하를 발탁해 행정을 하게 한 것 등은 절묘한 용인술이라 볼 수 있다.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 초기 경제성장론자인 남덕우를 국무총리에 기용했고, 이후 지역화합과 경제발전 등을 고려해 호남 출신 인사(김상협, 진의종, 이한기)를 등용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문화 불식 차원에서 학자 국무총리를 활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공동정권으로 초기에는 국무총리 인선에 관여하지 않았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헤어진 후 장상, 장대환 등을 지명했으나 이들이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한 것을 보면 국무총리 활용에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한승수), 세종시(정운찬), 4대강(김황식) 등 테마별로 국무총리를 활용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의지와 시대 상황에 따라 국무총리의 소임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제18대 대통령선거(대선) 과정에서 여야 모두는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위해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 지금도 언론에서 이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총리제라는 용어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국무총리 출신 후보(이홍구, 이회창, 이수성)들이 경험론적으로 제기한 용어로, 법률이나 행정 용어가 아니다. ‘책임총리’보다는 실제로 권한을 가진 ‘실권총리’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또 2000년 이한동 전 국무총리 이후 정착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공직자 자질을 객관적으로 검증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좋으나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처럼 사전에 충분한 검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해 국회 검증 과정에서 개인 신상 관련 문제는 비공개로 다루고 정책 문제 등 공적인 부분은 공개해 국민적 검증을 받도록 여야가 합의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돌아보면 대통령 권한이 가장 막강했던 유신헌법 아래서 국무총리를 한 5명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정치적 역할을 한 김종필, 행정적 역할을 한 최규하, 과도기에 굳건한 자세를 보인 신현확과 박충훈, 새 정권의 경제 안정 기반을 마련한 남덕우 등이 모두 제구실을 충분히 했다.따라서 국무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제도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의 신뢰와 의지, 본인의 역량과 시대 상황, 그리고 권력 주변의 협조 등 3가지 요소가 합쳐지면 현행 제도 아래서도 국무총리는 얼마든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 국무총리의 개인적 특성에 관한 연구

본 논문은 기존의 제도중심연구에서 벗어나 역대 국무총리들의 개인적 특성, 즉 재임당시 연령, 재임기간, 출신지, 취임 전 주요경력, 출신학교 등의 특성을 통해 역대정부 간 국무총리들의 개인적 특성을 비교함으로써, 각 정부 간의 국무총리의 개인적 특성의 차이점과 공통점 발견을 통해 국무총리제도의 유용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첫째, 역대 국무총리들은 대부분 국정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갖추어야 하는 전방위적인 지적능력과 국정경험을 가진 자들로 탁월한 엘리트들임이 확인되었다. 둘째, 역대 국무총리들은 대통령과의 파트너십을 통하여 행정부와 국민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아울러 국가적 난국을 해쳐 나가는 주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사회의 고질병으로 치부되었던 지역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역대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탕평에 파트너십을 발휘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역대 국무총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민에게 책임을 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있어서 국무총리제도는 현 대통령중심제도에 보완적 역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행정문화적 정서에 꼭 필요한 제도로 볼 수 있다.

This paper compared the personal characteristics of the former prime ministers (age, incumbency, birthplace, career, academic backgrounds, etc.), and the usefulness of the Prime Minister system was investigated. As are sult, first, the Prime Ministers were the elites with a full range of intellectual abilities and national experience. Second, former Prime Ministers had formed a network of national administrations and the people through a partnership with the President in order to plan the national development and to over come national crisis. In particular, the Presidents and the Prime Ministers created the partnership to resolve the regional conflicts. Third, the former Prime Ministers fulfilled all the obligations for the people on behalf of the president.

한덕수, 15년만에 다시 국무총리 귀환…’총리 두번’ 역대 사례는(종합)

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 이어 다섯번째…나이는 역대 최고령급

소감 밝히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서울=연합뉴스)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2.4.3 [인수위사진기자단]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하면서 총리를 두번 한 역대 사례에 관심이 쏠린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고(故) 장면·백두진·김종필 전 총리, 고건 전 총리 등 4명이 총리를 2번 역임한 인물들이다.

장면 전 총리는 제2대(1950∼1952), 7대(1960∼1961) 총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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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전 총리는 이승만정권(제1공화국)에서 2대 총리를 한 뒤 1956년 신당인 민주당을 조직하고 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출범한 제2공화국의 윤보선 대통령이 1960년 8월 장 전 총리를 발탁했다. 이듬해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윤 대통령과 장 총리는 실각했다.

백두진 전 총리는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제3공화국)에서 각각 4대, 10대 총리를 역임했다.

백 전 총리는 장면 전 총리가 물러난 이후인 1952년 10월부터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총리 ‘서리’ 지위로 있다가 1953년 4월에 정식 총리로 취임했다. 이어 이듬해 6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백 전 총리는 이후 국회의원을 지내다 1970년 말 박정희 대통령에게 다시 발탁돼 총리를 또 한번 맡았다. 10대 총리 임기는 약 6개월로 길진 않았다.

초대 총리 후보자에 한덕수 전 총리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4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는 모습. 2022.4.3 [연합뉴스 자료사진] [email protected]

고(故) 김종필 전 총리는 11대, 31대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40대와 70대에 각각 총리를 맡았다.

김 전 총리는 제3공화국 당시 권력 2인자로서, 1971년 6월부터 1975년 12월까지 약 4년6개월 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김 전 총리는 이후 민주공화당,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등 정당 총재를 하다 1997년 대선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선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72세의 나이로 또 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다.

31대 총리는 서리 기간을 포함해 약 1년10개월 간 재임했다.

고건 전 총리는 김영삼정부 마지막 총리인 30대, 노무현정부 초대 총리인 35대 총리를 역임했다.

30대 총리 재임 기간은 1997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1년, 35대 총리 재임 기간은 2003년 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약 1년3개월이다.

고 전 총리는 총리 두번 외에도 전남지사, 교통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내무부 장관, 서울시장 등 여러 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장을 거쳤다.

2018년 5월 역대 국무총리 초청한 이낙연 당시 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덕수 전 총리는 노무현정부 마지막 총리인 38대 총리를 2007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11개월 간 역임했다. 2007년 기준, 15년만에 다시 총리로 귀환한 셈이다.

한 전 총리가 윤석열정부 첫 총리로 공식 임명되면 총리를 두 번 맡는 5번째 기록이 된다. 또한 보수·진보 정권을 넘나들며 총리를 하는 것은 김종필, 고건 전 총리에 이어 한 전 총리가 세 번째인 셈이다.

나이로 따지면 1949년 6월생인 한 전 총리는 역대 최고령급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현재 만 72세로 역대 두번째 최고령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령 총리 기록은 고 현승종 전 총리(24대)가 갖고 있다. 1919년 1월생인 현 전 총리는 만 73세인 1992년 10월 지명 및 임명됐다.

1927년 9월생인 박태준 전 총리(32대)도 만 72세였던 2000년 1월 지명·임명된 바 있다.

박근혜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김용준 전 인수위원장은 1938년 12월생으로, 2013년 1월 지명 당시 75세였다. 후보자 기준으로는 김 전 후보자가 최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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