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14절 | 행함 없는 죽은 믿음 (야고보서 2:14-26)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90425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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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 없는 죽은 믿음 (야고보서 2:14-26)
아침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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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야고보서 2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 2:1-13 외모로 취하지 말라: 1절 내 형제들아 야고보의 어법으로 Adelfo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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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4-17절 말씀 (믿음 안에서 행함) – 개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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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행함 (약 2:14-26) – 유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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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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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0/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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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야고보서 2장 14~20절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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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와 객차 (야고보서 2장 14절 ~ 26절) 조약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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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4절-26절 행함이 없는 믿음, 복있는 사람들 오늘의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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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믿음의 근거일 수는 없지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오늘의큐티하며 말씀을 묵상합니다.

■ 복 있는 사람들, 오늘의 큐티

일년일독 본문 : 아모스 7장-9장, 오바댜 1장

찬송 : 새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1.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2.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3.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

4.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아멘

성경 :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개역개정성경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제목 : 어떤 것이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까?

본문에 대한 질문

어떤 것이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까?(15-17) 행함이 없는 믿음의 결과는 어떠합니까?(17, 26)

구절에 대한 해설

하나님은 한 분…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 : 누구보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잘 알고 심지어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기생 라합(25} : 라합은 믿음의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녀가 기생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즉, 비록 기생의 삶을 살았지만 믿음의 행동으로 다시금 믿음의 사람이라 불린다.

■ 본문 큐티하기

행함이 없는 믿음(14-20)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도무지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가령 곁에 있는 형제가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도울 생각도, 그렇다고 안타까워도 하지 않고 예의상 몇 마디 던지고는 그냥 지나친다면 그의 믿음을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요?(15-16) 야고보서는 이것에 대해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 말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믿음의 형제도 섬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겠는가 묻는 것이지요. 사실, 귀신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그렇다고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알지만 믿지 않는 겁니다. 이처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나의 믿음은 내 삶을 바꾸어 놓을 정도의 것입니까? 믿음의 고백은 있되, 믿음의 삶(행함)이 없지는 않나요?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혹 없을까요?

행함과 믿음(21-26)

행함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라오고 행함으로 믿음이 더욱 굳건해집니다(22).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행동으로 순종합니다. 생각만 하지 않습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22절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고까지 말합니다. 라합도 그렇지 않습니까? 담대하게 사자들을 접대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25). 기생으로서 별로 의로울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믿음의 한 행동이 백 마디 고백보다 귀하게 느껴집니다. 주님을 믿노라 고백하는 사람은 많되, 삶으로 주님을 드러내는 성도는 적은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백 마디 고백보다, 믿음의 한 행동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하는 사람이 적은 시대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더욱 믿음의 작은 행함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함입니다!

오늘의 기도

말로만 고백하지 말고 행함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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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4-17절 말씀 (믿음 안에서 행함)

약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지난주 예수님을 생각합시다.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말씀을 보았는데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 곧 믿음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 안에 살아간다면서도 말씀 안에 순종함이 되어지지 아니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는 믿음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되는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며 교회를 다닌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 고백 속에 말하는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 아닌, 내 은혜로서 믿음이 되어진다라면, 오늘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이 말씀에 나의 믿는 믿음을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본문 가운데 “믿음 안에서 행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말씀을 볼 때에 사순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생각하며 말씀 가운데 순종함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의 신앙인이 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1. 믿음의 고백이 되어져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믿음이 없다라고 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히10:38-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위의 것을 바라보는 삶 곧, 영혼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눅12장 가운데 어떤 부자 청년이 자신의 창고를 넓혀서 이로 인해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할 때에 주님은 오늘밤 네 생명을 취하게 되면 이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의 믿는 믿음이 이 땅에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믿는 믿음이 되어진다라면 오늘밤 내 생명을 취하였을 때에 내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이 아닌 위의 것을 바라 볼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이 먼저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와 영혼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되어지지 아니한채, 위의 것을 바라보거나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을 한다면 그가 행한 모든 것은 무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 그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고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한다라고 보는데

이때의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로마서를 통해 사도바울이 말한 믿음 곧 이신득의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게 된다는 것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롭다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외 에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롬3:19-20,28,3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본문의 야고보서를 통해 야고보가 말한 행함은 율법과 복음이 아닌, 믿음이라고 말하는 그 모습 가운데에서, 믿음과 행함을 말하며 만일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앞서, 믿음의 고백이 되어져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는 나의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서, 주님을 나의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 고백이 먼저 내 마음 가운데 – 중심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11:25-2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이 믿음의 고백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우리의 믿는 믿음을 돌아 볼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2.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단순한 행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 안에서 행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본문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앞서, 우리의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 구원에 있음을 보았는데

우리가 믿음이 있노라고 말을 하면서도 그 믿음 가운데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 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는 믿음은 영혼구원인데, 그 믿음 가운데 행함이 없다면 이는 구원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15-16절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라 말하며, 네 이웃 또한 네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함이 단지 말로서만 행해진다라면, 그것이 형제에게, 이웃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목사님과 이야기하다가 어려운 나라에 가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나오길래

저런데 가서는 복음 전하는 것은 다른거 다 필요 없고, 가서 먹게 해주고, 아픈거 치료해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면 그것이 곧 복음과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곧 굶게 생겼고, 내 아이가 병들어 죽게 생겼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예수 믿어서 위의 것을 바라보며 이 땅의 것은 잠시 있다 가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하면 누가 그 복음을 받아 들이겠느냐라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을 전하고, 그들이 그 사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행할 때에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명하신 형제 사랑하기를, 이웃 사랑하기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눅10장에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지만 이때에 사마리아 여인은 이 강도를 치료해줄 뿐 아니라, 돌아 올 때에 비용이 더 들었다면 그 비용 또한 감당하겠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 생각에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을 볼 수 가 있는데

우리가 믿는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믿음이라면 우리는 이 믿음을 말할 때에 입술로만 네 이웃, 네 형제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믿음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사순절을 보낼 때에 저와 여러분이 이시간 예배하며 주님을 믿는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 믿음의 고백 속에 예수님을 생각하는 내 마음의 중심의 행동이 없다라고 한다면 과연 지금 내가 말하는 그 믿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18-19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은 한분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와같은 고백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은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분이심을 믿고 떠느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귀신들도 이와같은 고백을 하는데 그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단순히 입술의 고백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 가운데 믿음 안에서 행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본문21-22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며 그가 받은 복을 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본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하였을 때에

아브라함의 믿는 믿음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그 아들 이삭을 바칠 때에 인정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창22:11-12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본문 22-24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의 삶의 모습은 믿음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우리의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라 말하는 그 고백 속에 나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이시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돌아봄으로서 이 사순절을 보내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모습이 예수님을 생각 할 때에 온전한 믿음으로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믿는 믿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수요예배 가운데에서도 바리새인 시몬의 모습과 죄인인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바리새인의 모습처럼 외식하는 자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의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자신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자신 스스로가 믿음이 있노라고 말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지만,

이 믿음을 돌아보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어버릴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일곱 교회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그 중, 계2장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음을 말씀하시며,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계 3장에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뜨겁던지 차든지 하라고 명하시며 이와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시겠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모두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됩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또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그 믿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스스로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믿음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봄으로서 본문 가운데 말씀하시는 믿음이 있노라 말하며 그 가운데 행함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주를 살아가며 고백했던 믿음의 모습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또 그 믿음 가운데 행하여졌던 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나아 갈 때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신 선한일로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사순절을 보내는 성도의 모습이며 예수님을 생각함으로서 나아가는 신앙의 모습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주의 삶을 또 살아가실 때에, 나의 믿는 믿음을 돌아봄으로서, 본문 가운데 말씀하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 말씀에 의미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적용되어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믿음-행함 (약 2:14-26)

제목 : 믿음-행함

본문 :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설교자 : 최종혁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믿음이 어떤 증거로 드러나느냐’, ‘참된 믿음이 무엇으로 입증되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고보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시고 혼란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믿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고,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든지 상관이 없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맞지만,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그들은 오랫동안 율법을 통해 의를 이루고자 해왔으므로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나 복음이 전파될 때도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행위로 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복음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이것에 대해 두 가지로 오해를 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믿음만으로 의를 이룰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율법에 눌렸던 유대인이 복음을 듣고 자유를 얻어 기쁜 나머지 ‘이제는 내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행위는 구원과 상관이 없으니 맘대로 행하며 살아도 된다고 방종했던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야고보가 바로잡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서신서와 야고보서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개혁자 루터도 야고보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지만 그것을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야고보서가 마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도 야고보도 믿음과 행위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각각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14-17절을 보면 야고보는 “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이 과연 있을까요? 이 사람은 믿음이 있다고 입술로 고백을 한 것입니다. 단지 한 순간의 고백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14절). 그는 입술의 고백만 있을 뿐 행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함은 율법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로서 드러내야 할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고 말할 때 행위는 구원받기 위한 행위, 즉 율법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구원받은 이후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믿음 이후에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험 가운데 인내하는 것, 믿은 자의 정결한 삶,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 차별 없이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 긍휼을 베푸는 삶입니다. 믿는 자로서 이것이 삶의 증거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야고보는 입술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증거가 없는데 있다고 말한다면 그 믿음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14절). 이것은 구원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입술로 고백하는 것만이 그를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절). 죽은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에 이 믿음은 그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15,16절).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자가, 가난한 형제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일반적인 인사이나 특별히 구걸하는 사람들이 왔을 때 그들을 돌려보냈을 때 쓰던 말입니다. 축복이라기보다는 이 자리에서 나가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려 있는 형제, 자매에게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을 조롱하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

믿음의 고백만 있고 행함이 없다면 고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고백은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겉이 일하지 않는 것은, 속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왜 죽은 믿음일까요? 행함과 믿음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절). 이것은 우리의 영혼과 몸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있으려면 영혼과 몸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둘이 분리되면 죽은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도 그런 관계입니다. 행위를 떨어트려 놓고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은 믿음과 행함을 분리시켜 놓고 ‘행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이 함께 있는 것인데 ‘왜 분리시키느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에는 행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당신의 말대로 행동하지는 않을꺼야’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믿음은 거짓입니다. 후에 그 사람이 어떤 요청을 했을 때 그것에 따르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었을 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들에 ‘하지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18절).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실체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행함과 믿음이 함께 있을 때 그의 행함을 통해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절).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습니다(막5:7, 행16:17; 19:15).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귀신들도 알고 심지어 ‘떠는’ 행위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귀신들의 문제는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이 믿음의 고백만 있는 너희는 도대체 무엇으로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 믿음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20절)라고 하면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1절).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육신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하시는 것(칭의)이고, 또 하나는 어떠한 사실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칭의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4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입증된다, 증명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야고보서 말씀으로 돌아와서,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입증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것은 창세기 22장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은 창세기 15장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15장에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비로소 그의 의로움이 입증된 것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22절).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롭게 하는데 있어서 부족했기 때문에 ‘온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행함으로 믿음이 그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넘어지고 잘못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고 나서 조금씩 변화를 보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제물로 마침으로 그의 믿음이 참 믿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믿음에 따르는 회개와 순종의 열매들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주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나서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순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들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가 완벽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완벽해서 우리의 믿음이 참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르고 그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걷는 것으로 자주 표현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을 향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비슷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 다릅니다. 그는 사단의 속임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해 갑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3절). 아브라함의 온전한 믿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행위를 수반하고, 행위는 그의 믿음이 참된 것임을 드러냅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24절). 행함으로 믿음이 입증되고 고백하는 것으로만 입증되지 않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다고 그의 믿음이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는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다면 이제는 다른 예로 라합이라는 이방인을 듭니다. 라합이 언제 칭의를 얻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녀는 사자들 앞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고 고백합니다. 그녀의 믿음의 고백이 입증된 것은 정탐꾼들을 다른 곳으로 나가게 할 때였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 11:31).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절). 죽음은 분리입니다. 영혼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행함 없는 믿음’도 역시 죽은 믿음입니다.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죽은 믿음이 무서운 것은, 본인은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영생을 간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멸망으로 가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나만 멸망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멸망시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도 별것 아니네’라고 판단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귀하심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로막는 것, 다른 사람을 멸망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시험하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행함의 방향성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긴 기간을 두고 보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의 동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동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구원받는 믿음이 있는가’, ‘그런 삶이 드러나는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참된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길 바랍니다.

야고보서 2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ㄱ)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ㄴ)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기관차와 객차 (야고보서 2장 14절 ~ 26절) 조약돌묵상

약 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사도 야고보가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행함이 따릅니다. 그것을 위해 가난한 형제의 예를 들고, 행함이 있는 자와 믿음이 있는 자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의 역사적 증거로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행함을 통하여 그 믿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위는 가릴 수 있습니다. 그것의 기준이 바로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립 서비스만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사도가 속이 터져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너는 믿음이 있느냐? 나는 행함이 있다’라는 말은 믿음과 행함의 별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행함이 있을 수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로 곧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기준을 말한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한 분 이시라는 사실을 당신은 믿으십니까?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귀신들도 믿고 두려워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즉, 이 말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귀신도 압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떨면 떨었지 결코 하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곧 유일신 하나님으로 알기는 하지만 그들을 쳐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이 말은 결국 믿음에 따른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런 귀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지한 말입니다.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성경은 라합을 소개할 때 ‘이방여인 기생’ 이라는 수식어를 답니다. 즉, 유대여성이 아닐 뿐만 아니라 기생- 창녀라는 말입니다. 그런 여인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는 여리고 입성 때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무사히 돌려 보낸 용감한 이방여성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었고, 믿음에 그친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경에서 의롭다 함을 인정받았고 그녀는 다윗과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믿는 바를 행했기 때문이지요.

보증을 서주고 설상가상 사업의 실패로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된 교인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끼니거리를 걱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안 교회식구 한 사람이 이렇게 위로를 합니다. ‘부디 평안하세요! 옷을 따뜻하게 입으시고 무엇이든지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그럼 안녕!’ 이런 사람이 초대교회에도 있었나 봅니다. 야고보는 현실적인 이러한 예를 들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며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물론 그런 행위가 구원의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런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즉, 거짓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믿음은 구원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머리는 엄청 켜졌는데 손과 다리가 마비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앉아서 듣는 것은 좋아하는데 실제로 삶의 현장으로 이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노라면 굉장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풍성한 말씀잔치에 유익한 세미나! 1년에 한 두 번 아웃리치라도 나가면 하나님 나라를 예약해 놓은 듯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직장에서 배우고 안 것을 실천하는지 그 점이 문제라고 봅니다. 지식 그 자체는 생명이 없습니다. 삶으로 이어질 때 진리는 생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부터라도 지식을 행함으로 실천할 때 한국기독교는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에게서 참 믿음을 배워 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칭했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증명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삭을 바치라는 주문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단 하룻밤만 고민을 하고 곧장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인 것이지요.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의 의를 인정해줬습니다. 칭의가 그의 행함으로 인하여 비로서 입증된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참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음과 행함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따로 국밥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면 자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행함이지요. 우리 손과 발에 기독교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더 보충할 내용은 다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두 종류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곧 죽은 믿음과 산 믿음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일침을 가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뒤집어 말하면 산 믿음이라면 반드시 행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떤 행동으로든지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면 희생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요.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 주려고 합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학생이라서 돈을 벌 수 없지만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기꺼이 희생합니다. 그런 헌신의 행위가 없으면 사랑하는 부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하고는 싶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기관차와 객차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관차만 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객차와 함께 갈 때에 기차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믿음과 행함은 잘 작동되는 에스컬레이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에스컬레이터에는 행함이라는 회전축이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은 회전축이 없거나 고장이 나서입니다. ‘에스컬레이터’라는 말은 회전축도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마찬가지 믿음이라는 말은 행함도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행함과 믿음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2021/07/30(금) “야고보서 2:14-19” / 작성: 김완영

본문 “야고보서 2:14-19”

찬송가 52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은 균형과 조화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함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여기서 ‘믿음’만 강조하면 무율법주의자 같이 되고, ‘행함’만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 같이 치우치게 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설명합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가 가르치는 신앙은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며 확고합니다. 야고보는 믿음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야고보가 던지는 질문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어떤 유익이 있는가?’ 입니다.

야고보는 믿음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어떤 유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믿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매일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삶에서는 믿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만일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성도인 줄 모를 정도로 동화되어 살아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도인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기에 실질적인 행동이 수반이 되어야 합니다.

씨앗을 심었으면 싹이 나아 하고, 열매를 맺어야 유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매 얻지 못하였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믿음에는 구원의 능력이라는 유익이 나타야 합니다. 그렇기에 야고보는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며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유익이 있기 위해서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 그리고 유익에 대해 구체적인 예시를 소개합니다.

(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야고보는 남녀를 다 포함하는 ‘형제’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형제와 자매를 모두 포함시킵니다. 이것은 그의 사회적 관심을 보여주며,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은 종종 차별을 당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아버지나 남편의 공급과 보호가 없다면 매우 궁핍한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의 ‘헐벗다’라는 단어는 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입을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 궁핍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말로는 도와주려 하지만 실제적 행동이 없다면, 마치 배가 너무도 고픈데 말로만 먹으라 하고 옷이 없어 너무 추운데 말로만 따뜻하라고 하는 것처럼 허망하고 스스로 속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주여 주여 입으로만 고백하고 진실 된 믿음이 없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16절에 ‘평안히 가라’는 표현은 ‘안녕’이라는 말이며, 대화가 끝났음을 묘사합니다.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만 말로만 궁핍한 사람을 돌려보낸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이 말로는 온갖 좋은 것을 해줄 것처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를 돌보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강력히 표현 한 것이 14절과 동일하게 “이러한 말뿐인 행동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는 질문입니다. 행함 없는 말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성도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행함은 눈에 보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믿음에 구원이라는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15-16절에서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은 하였으나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행동이 없기에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그 어떠한 유익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삶의 전반을 드려야 하는 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결단하지만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오늘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로 살아가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행동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강력하게 표현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궁핍한 사람을 돌보는 것,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것, 겸손한 것, 말하기를 더디하는 것 등과 같은 사랑의 행함을 의미합니다. 본질적으로 행함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변화된 삶 입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예시를 더하며 믿음과 행함에 대해 설명합니다.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행함과 믿음에 대해 마치 토론을 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지만 야고보의 견해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과 믿음이 분리된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행함은 별개로 드러날 수 없습니다. 야고보 역시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기 위해 논리를 펼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겠다”라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은 우리 안에 있고, 그 믿음이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로 살아가며 이제는 말뿐인 신앙에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을 키워나가고 있다면 그것을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쉬운 예로 화창한 날에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면 그 사람의 행동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기도를 드렸으니 믿음으로만 밖으로 나가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비가 오기를 간절히 믿고 기도했다면 적어도 우산을 들고 나가는 행동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믿음을 각자의 삶에서 온전히 드러내야 합니다. 말뿐인 성도가 아닌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언행일치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었을 때 주님께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야고보는 논쟁과 같은 오늘 본문을 마무리합니다.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신명기 6장 4절에서도 나오는 유대교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야고보는 구약의 쉐마에서 나오는 정통 교리를 기계적으로,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도다”라고 풍자하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은 귀신들도 믿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귀신들이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고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귀신들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떨게 됩니다. ‘떨다’라는 단어는 몸서리 치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떠는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도가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는다면 그것을 지식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하나님 앞에 떨었던 행동을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음에 이은 행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믿음에 대한 행함이 필요합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물과 피를 쏟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믿는 우리는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믿음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끝내지 마시고, 삶에서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나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삶 속에서 그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고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혹여 말뿐인 신앙으로 살아 갔다면 이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삶 속에서 보이도록 연약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변에 섬겨야 하는 사람들을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붙들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야고보는 왜 행함에 유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묵상해 봅시다.

2. 나는 무엇으로 나의 믿음을 보이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나는 신앙생활에 있어 믿음을 더욱 강조하는지, 행함을 더욱 강조하는지 돌아봅시다.

4. 오늘 하루 나의 믿음을 어떤 행함으로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실천합시다.

(작성: 김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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