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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나무위키:대문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의 엠블럼에 4개의 별을 달고 있다. 월드컵 출범 전 최고 권위의 축구대회였던 올림픽 축구에서 19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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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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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우루과이 축구 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남미의 축구 강호로 손꼽히는 팀들 중 하나로 1901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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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tsandculture.google.com

Date Published: 10/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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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스쿼드 및 전술 완전 분석! – 나초 스토리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스쿼드 및 전술 완전 분석! 나초미쵸 2022. 4. 14. 23:52. 우리나라와 월드컵 같은 조에 편성된 우루과이는 피파랭킹 13위로 아르헨티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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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ukaremott.tistory.com

Date Published: 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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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Study in China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때 이미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나란히 세계 축구 3강을 이루었다. 특히 FIFA 월드컵이 창시되기 전에 우루과이는 이미 1924년 하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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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hoctrungquoc.vn

Date Published: 7/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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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드컵 상대’ 우루과이, 6월 예비명단 확정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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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5/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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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요 코치는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많은 국가대표팀에는 선수들이 휴식을 … 그는 “우루과이 축구협회가 택한 디에고 알론소 감독은 부임 후 치른 카타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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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fifa.com

Date Published: 10/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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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한국과 만나게 된 우루과이 국대 베스트 11
월드컵에서 한국과 만나게 된 우루과이 국대 베스트 11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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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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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Google Arts & Culture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우루과이 축구 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남미의 축구 강호로 손꼽히는 팀들 중 하나로 1901년 5월 16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국제 A매치 첫 경기를 치렀으며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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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스쿼드 및 전술 완전 분석!

우리나라와 월드컵 같은 조에 편성된 우루과이는 피파랭킹 13위로 아르헨티나(4위), 브라질(1위)과 더불어 남미 전통 강호다.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사실상 2위 경쟁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를 넘어야 할 것이다.

조편성 결과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포르투갈과는 무승부만 거둬도 이득, 가나는 무조건 잡아야 하는 상대적 약팀, 우루과이는 해 볼만한 상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팀이 결코 아니다. 스쿼드만 보더라도 알 것이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우루과이 대표팀 스쿼드를 한번 보자.

우루과이 대표팀 스쿼드

골키퍼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무슬레라(1986년생)에서 로체트(1993년생)로 바뀌었다. 로체트는 비록 무슬레라가 보여줬던 선방 능력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최근 A매치 4경기에서 1실점밖에 기록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수비 라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선수는 아라우호다. 아라우호의 주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스피드와 체력이 뛰어나 오른쪽 풀백도 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아라우호의 장점은 노익장 고딘의 공간을 커버하는 데에 보탬을 준다.

중원은 토트넘의 벤탄쿠르와 레알 마드리드의 발베르데가 담당한다. 두 선수 모두 최근 소속 클럽에서의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어, 무시무시한 중원 장악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둘 다 기동력이 뛰어나 90분 내내 뛰어다니는 미친 체력을 과시한다.

좌우 날개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다. 왼쪽은 데 아라스카에타, 오른쪽은 펠리스트리다. 데 아라스카에타는 전형적인 인버티드 윙어다. 그와 반대로 펠리스트리는 전통적인 클래식 윙어다. 이 점이 우루과이의 공격 다양성을 폭넓게 한다.

투톱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카바니+수아레즈 조합에 신예 누녜스로 구성된다. 누녜스는 활동 반경도 넓고, 연계 플레이도 되며, 스피드와 피지컬도 준수하기 때문에 누가 파트너가 되든 간에 찰떡이다. 수아레즈와 카바니는 나이가 차긴 했지만 여전한 클래스를 보이고 있다.

우루과이 대표팀 전술

전술 포인트

1. 라 볼피아나 전술

2. 공격진의 라인 변경

3. 롱볼 전개

4. 크로스 플레이

5. 협력+압박 수비 이후 역습

우루과이는 기본 포메이션으로 4-4-2를 사용한다. 4-4-2 포메이션의 장점은 짧고 간결한 패스로 상대의 문전에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공 혹은 빌드업 상황에서는 패스 루트가 단조롭고 직선적이라는 장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전환된다.

4-4-2는 중앙 미드필더 숫자가 2명에 불과하다. 만약 상대가 숫자를 앞세운 강한 전방 압박으로 공 소유권을 빼앗으려고 덤빈다면 제 아무리 벤탄쿠르나 발베르데라고 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우루과이가 아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안책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는 라 볼피아나 전술이다.

라 볼피아나

우루과이 vs 페루

상대 선수 2명 이상 공을 돌리고 있는 수비 라인에 압박을 가하면 벤탄쿠르는 두 센터백 사이로 내려와 라 볼피아나 전술을 수행한다.

그러면서 우루과이는 수적 우위를 앞세워 후방 빌드업의 안정감을 더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 윙어들을 중앙에 모이게 해 우루과이 측면에 패스 루트가 발생했다.

또는 위 보드처럼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인 발베르데가 내려오고, 아라우호가 올라가는 식의 또 다른 라 볼피아나 전술을 수행하기도 한다.

발베르데의 팀 동료인 토니 크로스가 소속 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빌드업 시 이 롤을 맡는다. 다만 위치는 발베르데와 달리 왼편이다.

한편, 여기서의 주안점은 왼쪽 윙어인 데 아라스카에타가 중앙으로 좁힌다는 것이다. 데 아라스카에타는 펠리스트리와는 달리 측면보다 중앙 지향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데 아라스카에타는 스피드가 돋보이는 윙어가 아니다. 하지만 연계 플레이와 발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측면보다 중앙에 있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하프 스페이스가 그의 주 무대다.

그래서 경기 장면을 보면 펠리스트리는 오른쪽 터치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반면, 데 아라스카에타는 중앙으로 좁혀서 플레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가 우루과이를 상대할 때 데 아라스카에타의 이런 변칙적인 움직임을 지역 방어로써 잘 막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1선과 2선을 오가는 공격수들

위의 이야기를 더 상세히 알아보자.

라 볼피아나 전술은 중원에 있는 미드필더 한 명이 수비 라인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내려간 선수의 자리를 어느 누군가가 커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커버하는 이는 데 아라스카에타다.

왼쪽 중앙 미드필더 벤탄쿠르가 라인을 내리면 데 아라스카에타는 하프 스페이스 혹은 중앙으로 빠져서 3명으로 구성된 수비 라인으로부터 공을 받는 움직임을 가져간다.

상대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가 중원에 들어왔기 때문에 특정 마크맨을 붙일 수가 없다. 따라서 데 아라스카에타는 완벽한 노마크 상태가 된다.

그러나 언제나 데 아라스카에타가 그런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누녜스나 수아레즈가 순간적으로 내려와 공을 받고, 다시 뿌려주면서 상대 수비 조직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패스 루트를 생성한다.

롱볼 전개

디에고 고딘

롱볼 전개는 4-4-2 포메이션에서 가장 흔히 나오는 전술이다. 일명 뻥축구 공을 가진 센터백이 도저히 숏패스로 공을 전개할 수 없을 때 공격진을 향해 한번에 롱패스를 내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전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패스를 받아야 하는 우루과이 공격진의 플레이 스타일은 어떨까?

먼저 누녜스는 활동량, 포스트 플레이에 이은 연계 플레이, 제공권에 능하다. 수아레즈는 기량 저하로 주로 포처 역할을 수행하지만, 간간히 볼을 받으러 내려온 다음 연계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카바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넓은 활동 반경을 보이며,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한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 보니 우루과이는 롱볼 전개로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뽑아낼 수 있다.

이상 라 볼피아나, 공격진의 라인 이동, 롱볼 전개 세 가지가 우루과이가 빌드업 시에 공격 활로를 트는 방법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나오는 위협적인 크로스 플레이

4-4-2 포메이션 하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떠오르지만 그 이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맨유는 역습의 대명사라고 불릴 정도로 역습 효율성이 뛰어났다.

우리가 맨유 역습을 보면서 느낀 점은 엄청난 스피드다. 당시 맨유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이 수비 진영으로 복귀하기 전에 공을 재빨리 운반했다. 패스 혹은 드리블로써 말이다.

같은 이유로 우루과이의 역습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오른쪽 측면에 위치한 선수들 때문이다. 바로 아라우호와 펠리스트리.

좌: 아라우호 우: 펠리스트리

아라우호는 191cm에 91kg의 거구다. 하지만 스피드가 워낙 특출 나 오른쪽 측면에서 오버래핑을 통해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 낸다. 또한 드리블로 치고 나갈 때 피지컬을 이용한 돌파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에 상대적으로 왜소한 풀백들은 아라우호와의 경합을 꺼린다.

펠리스트리는 빠른 스피드로 드리블하며 치고 나가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경기 당 7.8회의 드리블 돌파 시도하는데 성공률이 44%로 높은 편이다. 지난 베네수엘라전에서는 상대 수비 3명을 제치고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만약 우루과이가 오른쪽 측면에서 역습을 전개하면 이 두 선수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들을 막으려면 정말 타이트하게 압박해서 1차 볼 줄기를 막거나 펠리스트리가 방향 전환을 할 수 없도록 등 바로 뒤에서 괴롭혀야 한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파울로 끊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의 우수한 돌파력과는 달리 크로스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위협적인 이유는 뒷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계속 뛰어다니고, 3자 플레이 혹은 원 투 패스를 통해 결국에는 결정적인 찬스 하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크로스가 실패하더라도 우루과이는 세컨드 볼로 골 찬스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박투박 미드필더 발베르데는 중거리 슈팅에 물이 올라 흘러나온 공을 강하게 때려 넣을 수 있다는 점도 우루과이의 크로스 찬스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이유들 중 하나다.

압박 이후 역습

우리나라는 빌드업 시 상대의 압박이 타이트하게 들어오면 당황해 공을 쉽게 빼앗기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에는 그런 부분에서 미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숏패스를 고집하고, 그런 상황에서 패스 흐름이 자주 끊기는 벤투 감독의 빌드업 철학에 많은 팬들은 의문을 샀다.

만약 우리나라가 예전의 상태로 지금의 우루과이를 만났다면 대참사를 맞이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우루과이의 압박은 상당히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상황 예시를 들어보자!

우루과이 vs 베네수엘라

다음 상황에서 상대는 후방에서 공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카바니는 공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에게, 데 아라스카에타는 패스를 받을 선수에게, 벤탄쿠르, 수아레즈, 펠리스트리는 패스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에게 각각 붙어 주고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우루과이 선수들이 공이 운반되고 있는 밀집된 공간에서 타이트한 압박을 넣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대인 방어로만.

패스를 받은 상대 풀백은 데 아라스카에타의 압박에 못 이겨 공을 받자마자 전방으로 길게 보내주는 모습이다.

우루과이로서는 상대방이 본래 의도대로 공격 전개를 하지 못하게 한 것에 있어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리고 이어진 연속된 상황에서 공을 탈취해낸 데에 성공한 아라스카에타는 전방의 수아레즈에게 곧바로 공을 보내줬다.

여기서 우루과이는 4-4-2 포메이션의 효과를 봤다. 우루과이는 전방 압박 시에 4-4-2가 아닌 4-2-4로 움직인다. 그리고 공격진 간에 매우 좁은 형태로 조직을 갖춰 응집된 공간에서 압박을 하고 공을 빼앗아 역습을 실현한다.

공격진 한 명이 아래 라인으로 빠져도 위에는 세 명의 공격진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역습 상황에서 상대보다 매우 유리한 포지셔닝을 취할 수 있다. 마치 위의 상황처럼 말이다.

총 정리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보면 우루과이는 후방 빌드업을 전개할 때 라 볼피아나 전술을 통해 후방에서의 안정감을 더한 뒤 공격 작업에 나선다. 그 이후의 상황에서는 공격진들이 라인을 내려 중원 싸움에 가담해 공을 운반한다.

만약 상대 선수가 라인을 내린 공격수를 타이트하게 막을 경우, 공을 소유한 선수는 성공 가능성은 적지만 공을 1선으로 한 번에 내주는 롱볼 축구를 구사한다.

우루과이는 역습이 매우 무서운 팀이다. 특히 오른쪽의 아라우호, 펠리스트리 라인이 위협적이다. 이유는 두 선수 모두 스피드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이 후방에서 공을 전개할 때 우루과이 선수들은 공 주변 공간에 모여 공을 인터셉트할 기회를 노린다. 인터셉트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우루과이는 공격진의 높은 숫자를 무기 삼아 역습을 전개한다.

우루과이 vs 대한민국

우루과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축구를 구사한다고 볼 수 있다. 풀백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 후방 빌드업의 중요성, 전방 압박에 이은 역습 등 말이다.

하지만 선수 퀄리티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루과이 닥승이다. 특히 중원에서 그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벤탄쿠르는 후방에서 공격 템포를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발베르데는 남다른 뇌지컬로 패스를 기가 막힌 타이밍과 정확도로 연결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우루과이의 압박을 어떤 식으로 파훼할지 걱정이다. 상대의 전방 압박을 뚫어내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간결하고 정확한 패스만이 살 길인데, 솔직히 이 부분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 지난 몇 차례 경기에서 후방 빌드업에 안정감을 드러냈지만, 아시아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상대였던 UAE에게 이런 식으로 석패를 당한 전적이 있어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벤투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떤 전술을 지시할까? 오는 11월 24일 우루과이전에서 확인해 보자!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은 우루과이 를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우루과이 축구 협회 에서 운영하고 있다. 남미의 축구 강호로 손꼽히는 팀들 중 하나로 1901년 5월 16일 아르헨티나 와의 경기에서 국제 A매치 첫 경기를 치렀으며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초대 대회인 1930년 FIFA 월드컵 과 1950년 FIFA 월드컵 에서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1950년대부터 하락세를 타며 1954년 FIFA 월드컵 과 1970년 FIFA 월드컵 에서 준결승에 이름을 올린 이후 월드컵 우승권에서 점차 멀어져서 장장 40년동안 최고 기록이 고작 16강일 정도로 쇠락의 길을 걸어갔으나 2010년 FIFA 월드컵 에서 40년만에 준결승에 오른 뒤 바로 이듬해에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중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우루과이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15번의 우승을 기록했으며 이는 코파 아메리카 최다우승 기록이다. FIFA에서는 월드컵 우승 팀에게 유니폼에 ‘우승’을 상징하는 ‘별’을 달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루과이는 2회 월드컵 우승과 함께 월드컵 창립 이전에 실시된 올림픽 축구 금메달 2개 획득을 근거로 총 별 4개를 유니폼에 새겨넣고 있다. [1] 1920년대의 올림픽 우승을 기리는 이유는 당시는 월드컵 대회가 출범하기 이전이었으며, 유럽팀이 최강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에 올림픽 축구를 남미국가가 제패함으로써 아마추어 선수로 출전자격이 제한된 올림픽 무대와는 별도로 진정한 세계 최강팀을 가리는 대회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그로 인해 1930년 초대 월드컵이 개최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초창기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때 이미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나란히 세계 축구 3강을 이루었다. 특히 FIFA 월드컵이 창시되기 전에 우루과이는 이미 1924년 하계 올림픽과 1928년 하계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에거 2번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세계 최초의 대륙컵이자 국가대항 대회였던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도 첫 대회 포함 최초 10번 중 6번을 우승하며 남미에서도 가장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강호였다.

첫 월드컵의 선두주자

우루과이 정부와 우루과이 축구 협회에서는 출전국에 대한 모든 여비와 수당, 숙식비용 일체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기념비적인 첫 FIFA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럽은 프랑스, 벨기에,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이렇게 단 4개국만 출전했으며 나머지는 미주지역의 국가들만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조별리그에서 페루를 1-0, 루마니아를 4-0으로 승리하며 전승을 달성하고 준결승에 올랐으며 준결승에서도 유고슬라비아를 6-1로 완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인 아르헨티나와는 서로 자국의 공인구를 사용하겠다고 다투었고 결국 제비뽑기로 전반전은 아르헨티나게 축구공을,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제 축구공을 사용하여 경기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루과이는 전반전을 1-2로 끝냈으나 후반전에서 카스트로, 세아, 이리아르테의 삼각편대를 가동시키면서 아르헨티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결국 4-2로 승리하고 첫 월드컵의 우승을 달성했다.

중흥기

이후 우루과이는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 유럽 대륙에서 집단으로 참가를 거부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1934년 FIFA 월드컵과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불참했는데 이 두 월드컵은 이탈리아가 온갖 논란 속에 우승을 차지한 대회들이였다. 이 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월드컵은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가 1950년에 인접국인 브라질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었다.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두고 1949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가 브라질에서 열렸다. 축구 열기가 없었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그리고 브라질과 사이가 험악했던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모든 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8개국 중 6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고 말았다. 2승 1무 4패라는 성적으로 골득실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남미 대회 최다 우승국이었던 우루과이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10 – 1, 9 – 1, 7 – 0, 5 – 1 등등 가공할 대승을 여러 차례 거두며 우승을 차지, 1년 뒤 월드컵에서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었다.

이에 우루과이는 20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런데 우루과이는 조별리그부터 문제가 많았다. 우루과이가 편성된 조에서는 볼리비아, 스코틀랜드, 터키가 먼저 배정되었으나 스코틀랜드와 터키가 기권했다. 이에 FIFA는 부랴부랴 프랑스를 초청해서 그 조에 편성했으나 역시 프랑스마저 기권하는 바람에 그 조의 조별리그 경기는 우루과이 대 볼리비아전이 유일했다. 이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오스카 미구에스의 해트트릭을 비롯하여 8-0으로 볼리비아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으며 조별리그 3경기에서 원래 넣어야 할 골을 한경기만에 다 때려넣고 결승리그에 진출했다.

결승리그에는 우루과이,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이 진출했는데 사실 이 월드컵의 개최국인 브라질은 처음부터 우승을 노리던 팀은 아니였다. 하지만 브라질이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았던 아르헨티나가 모종의 사유[3]로 기권하고 이탈리아가 수페르가의 비극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스웨덴에게 패하고 탈락한 데다가 잉글랜드 마저 미국과 스페인에게 연달아 패하고 탈락했으므로 브라질은 점점 우승을 노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뚜껑을 열어보니 우루과이가 스페인과는 간신히 비기고 스웨덴을 상대로는 1-2로 뒤지고 있다가 3-2로 간신히 역전승을 거둔 반면 브라질은 스웨덴을 7-1, 스페인을 6-1로 각각 대승을 거두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결승전은 무승부가 되어도 브라질의 우승이였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아예 ★경★ 1950년 FIFA 월드컵 브라질 우승! ★축★이라는 신문기사를 내보냈고 이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특히 알시데스 기지아는 그 기사가 실린 신문에 대놓고 소변을 보면서 선수들을 독려하며 우루과이의 분노를 보여주자며 외쳤다. 경기가 시작되자 브라질은 우루과이에게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서인지 브라질 선수들의 움직임은 뭔가 이상했고 그것을 노린 우루과이 선수들은 맹공을 퍼부은 끝에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와 알시데스 기지아의 연속 골로 결국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로 인하여 경기장의 분위기는 바로 을씨년스러워졌고, 이에 기겁한 우루과이 선수들은 시상식만 끝내고 조국으로 도망쳤다.

아직은 강호

이후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당대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를 2 – 0으로 이기고 스코틀랜드를 7-0으로 대파하는 등 승승장구한 끝에 8강에 진출했으며 8강에서도 잉글랜드를 4-2로 완파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당대 최강이였던 헝가리를 상대로 연장 혈투끝에 분패했다. 그리고 3위 결정전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마저 져서 4위를 기록했다.

이후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지역예선 탈락했고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했으나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에 밀려 1라운드 탈락했다. 이후 196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이 대회 우승팀인 이 대회 우승팀인 잉글랜드와 무승부를 기록한 끝에 8강에 진출했으나 8강에서 서독에 밀려 준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렇게 당대의 우루과이 치고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다가 1967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를 우승하면서 다시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대륙 최강의 타이틀을 가져온 후 197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조별리그에서 하필 이탈리아를 만났다. 이탈리아도 바로 전 대륙컵인 UEFA 유로 1968 우승국이었고 월드컵 2회 우승을 했던 나라였는데, 당시 월드컵 최초 3회 우승국에게 줄리메컵을 영원히 안기는 제도 때문에 브라질, 이탈리아, 우루과이 세 나라가 이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판도였다. 거기에 12년 전 월드컵 개최국이자 준우승국 스웨덴도 있었고, 셋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아시아 최강이었던 이스라엘까지 있는 죽음의 조였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2 – 0으로 잡고 이탈리아와 비기며 일찍 8강 자리를 사수하였다. 8강에서 당대의 강호 소련을 이기고 준결승에 올랐지만 준결승에서는 20년 전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던, 당대의 축구영웅인 펠레가 맹활약하는 브라질을 만났다. 브라질의 모든 선수와 국민들은 20년 전의 악몽을 갚으려 눈에 불을 키고 있었고, 심지어 펠레조차 우승을 못 해도 좋으니 원수 우루과이만은 꼭 이기자고 다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 때 브라질은 지역 예선을 포함해 10연승을 달리던 역대 최강팀이었기에,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브라질에게 1 – 3로 패해 3위 결정전에 갔다. 3위 결정전에서도 서독에게 패하고 4위를 차지했다.

암흑기

1970년 FIFA 월드컵이 끝난 이후의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장장 40년에 달하는 긴 세월동안 축구약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1978년 FIFA 월드컵, 1982년 FIFA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 1998년 FIFA 월드컵, 2006년 FIFA 월드컵[4] 이 다섯개의 대회에서는 지역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우루과이는 왕년의 강호로만 기억될 뿐 팀 분류상 약체로 분류되었으며 우루과이의 국민들조차도 옛날의 추억만 되새길 뿐 자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실력에 그렇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1986년 FIFA 월드컵과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연속 16강에 진출했으며(다만 1986년에는 서독, 스코틀랜드와 비기고 덴마크에 1 – 6으로 패했음에도 조 3위 와일드카드를 얻어 16강에 진출한 것. 1990년에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오프사이드 오심 골로 1 – 0으로 승리했을 뿐 1승 1무 2패에 겨우 2득점만 얻었다.) 1983년 코파 아메리카, 1987년 코파 아메리카 2연패에 1989년 코파 아메리카, 1999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하는 등 나름대로 남미 안에선 강한 모습을 보였다. 워낙 이전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암흑기였을 뿐 실력 자체는 꾸준히 중상위급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재중흥기

오랜 침체 끝에 드디어 우루과이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다른 팀들에게 밀리지 않는 승부를 벌였으나 하필이면 축구 감독으로서는 무능하기로 악명높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감독이였기 때문에 다른 팀들이 돌려가며 이기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패하는 바람에 지역예선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이 상황에서 칠레가 에콰도르에게 패하면 우루과이는 최종순위 6등으로 그냥 탈락이였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칠레가 에콰도르를 이겼고 이 덕에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다. 이후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코스타리카를 누르고 본선에 올랐다.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로 한때는 강자였으나 쇠락한 프랑스와 비기고 나머지 두 팀인 멕시코와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연파하고 16강에 안착했다. 16강에서는 대한민국과 매우 힘겨운 대결 끝에 간신히 8강에 진출했는데 실제로도 이 경기를 뛰었던 디에고 포를란은 2010년 월드컵에서 맞붙은 상대 중에서 대한민국이 제일 어려운 상대였다고 회고했다. 8강에서는 가나를 상대로 연장 후반에 실점할 위기에 몰렸으나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가 손으로 슈팅을 쳐내서 퇴장당했고 곧바로 페널티킥으로 이어졌다. 아사모아 기안이 찬 페널티킥이 골대 윗쪽을 맞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서 양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하게 되었으며 이 승부차기에서 이겨서 우루과이는 장장 40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준결승 이후에 만나는 팀들이 다 그렇듯 엄청나게 어려웠다. 결국 준결승에서 네덜란드와 3위 결정전에서 독일에게 각각 2 – 3으로 패하고 4위를 차지했다.

이후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함으로 인하여 우루과이는 FIFA 랭킹 2위까지 치솟은 적도 있었으며 결국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같은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톱시드가 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고 우루과이가 톱시드가 된 조에 이탈리아, 잉글랜드, 코스타리카가 편성되어 1982년 FIFA 월드컵 2라운드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로 구성된 역대 최악의 죽음의 조 이후 최악의 죽음의 조가 되었다. 조에 편성된 4팀 중에서 3팀이나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이였으니 엄청난 죽음의 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편성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경기내용들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 조에서 1위와 2위가 각각 예상되었던 이탈리아와 우루과이가 연달아 코스타리카에게 0-1,1-3으로 패하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팀 모두 잉글랜드를 이기는 바람에 잉글랜드가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국 32개 팀 중에서 스페인과 나란히 제일 먼저 조별리그 탈락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맞붙게 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비겨도 골 득실차로 탈락할 위기에 몰린 우루과이가 오히려 선전하며 이탈리아를 이기고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우루과이의 스트라이커인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가 이탈리아의 수비수인 조르조 키엘리니의 어깨를 깨무는 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결승전까지 출전금지 조치를 당했고 이 때문에 전력이 크게 약화된 우루과이는 16강에서 만난 콜롬비아에게 0-2로 패하면서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2018년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는 18경기에서 9승 4무 5패로 브라질에 이어 2위로 본선에 합류해 본선 A조 3차전에서 개최국 러시아를 3-0으로 꺾고 조 A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16강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을 2-1로 꺾고 8강까지 올랐으나 8강에서 프랑스에게 0-2로 패배하면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월드컵 상대’ 우루과이, 6월 예비명단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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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축구대표팀의 카타르월드컵 본선 첫 상대인 우루과이가 다음달 A매치 3연전을 앞두고 35명의 예비 명단을 추렸습니다.

우루과이의 디에고 알론소 감독은 베테랑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와 에딘손 카바니를 필두로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 로드리고 벤탄쿠르 등을 선발했습니다.

우루과이는 미국으로 날아가 다음 달 3일 멕시코, 6일 미국과 맞붙고, 우루과이로 돌아온 뒤 12일 자메이카와 격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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