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ppa.pilgrimjournalist.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pilgrimjournalist.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궁금소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499,362회 및 좋아요 7,051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이유
제작 : 정도영
사진 및 영상 출처
goturkiye
turkeyrunstatepark
aljazeera.com – 터키
Grand Circle Travel
위키피디아
Pixabay · Pexels · Coverrs · Videvo · Videezy.
yonhapnews
HISTORY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한국-튀르키예 관계 – 나무위키:대문
당시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튀르키예가 우리 형제의 나라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서 ‘터키(튀르키예)를 응원해 줍시다’ 라는 분위기가 퍼졌고[12]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15/2022
View: 4998
<일요시사TV> 어쩌다가…터키는 한국과 ‘형제의 나라’ 됐나?
한국과 터키는 어쩌다가 형제가 되었을까? 두 나라 관계의 진실을 파헤쳐보자. 터키가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첫 번째 이유는 아주 먼 …
Source: ilyosisa.co.kr
Date Published: 2/24/2021
View: 2420
“한국·터키는 2000년 전부터 형제의 나라” – 조선일보
한국·터키는 2000년 전부터 형제의 나라 한국·터키 수교 60주년 기념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고구려 신무기 투르크에 전파, 돌궐 제국 수립의 원동력 돼 …
Source: www.chosun.com
Date Published: 11/14/2021
View: 3248
터키 형제의 나라에 대한 진실. 터키는 막장 국가. – 네이버 블로그
에네스카야의 막장질로 요즘 터키 이미지도 꽤 안 좋아졌죠. 더군다나 터키여행 중 강간, 살인 사고가 의외로 높아서,. 한국여자들의 피해도 매년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4/2021
View: 2816
형제의 나라 … 터키의 진실.JPG – 201309~201409 국내야구 …
한국전쟁 파병도 이런 경제,외교적인 상황 때문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단순히 참전때문에 터키가 형제의 나라라면 어째서 태국, 에티오피아, 필리핀등은 …
Source: m.dcinside.com
Date Published: 1/26/2022
View: 6539
자유게시판 상세보기 – ‘터키’가 형제국인 이유 ? : KWBF
‘터키’라는 국가를 말하자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의 나라’라고 …
Source: www.kwbf.or.kr
Date Published: 9/11/2022
View: 9470
[터키 역사 요약] 한국전쟁 파병 온 ‘형제의 나라’ 진실에 대한 …
[터키 역사 요약] 한국전쟁 파병 온 ‘형제의 나라’ 진실에 대한 루머 l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터키사 총정리 · See more episodes · Feb 24 2021 • 16 mins · Podcast.Source: www.audible.com
Date Published: 1/17/2022
View: 9356
한국과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까닭 – 우리문화신문
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처럼 한국과 터키가 돈독한 관계에 있게 된 배경에는 6.25 참전 이후에도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Source: koya-culture.com
Date Published: 6/25/2022
View: 8592
형제의 나라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숨겨진 이유 – 브런치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야기 | 터키라는 나라는 분명 우리 한국인들에게 각별합니다. 대한민국과 터키, 두 나라의 특별한 인연은 한국전쟁까지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3/10/2022
View: 2755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 Author: 궁금소
- Views: 조회수 499,362회
- Likes: 좋아요 7,051개
- Date Published: 2021. 12. 2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RIi62ey1as
어쩌다가…터키는 한국과 ‘형제의 나라’ 됐나?
[기사 전문]아이스크림 한 번 사 먹으려면 엄청난 동체 시력이 필요한 이 나라.
최근 심각한 산불 피해를 겪어 우리나라의 배구 팬들이 묘목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바로 ‘형제의 나라’ 터키다.
한국과 터키는 어쩌다가 형제가 되었을까?
두 나라 관계의 진실을 파헤쳐보자.
터키가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첫 번째 이유는 아주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미있게도 한국과 터키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호적 관계에 있었다.
터키의 조상인 ‘흉노족’은 고조선과 동맹 관계에 있었고, 이후 흉노족이 세운 ‘돌궐’은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돌궐은 후에 ‘오스만 제국’, 즉 지금의 터키가 된다.
두 번째 이유는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16개국이 한국에 전투부대를 파견했는데 이 중 터키는 미국 다음으로 파병을 결정한 나라이며, 2만여명을 동원해 중공군을 무찔렀다.
당시 터키의 인명 손실은 미국과 영국에 이은 세 번째였다.
하지만 터키의 한국전쟁 파병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파병 군인의 대부분이 터키 내에서 탄압받는 ‘쿠르드족’이었으며 강제로 징집돼 희생됐다는 일부 참전용사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2002년 월드컵’이다.
한국과 터키가 만난 3, 4위 전 당시 한국 응원단의 ‘터키 국기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두 나라는 급격히 가까워졌고, 일례로 2004년 KOTRA의 수출입 동향 통계에서 한국의 터키 수출액이 71% 증가했다.
이에 기자들은 앞다퉈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터키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긴 하지만 ‘형제의 나라’가 꼭 한국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터키는 주변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그리스, 일본 등과도 ‘형제의 나라’로 통한다.
사실 터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이슬람인데, 이슬람권에서는 ‘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표현을 좋아한다는 후문이다.
형제의 나라면 어떻고, 남의 나라면 어떤가 싶다.
지금처럼 우호적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형제의 나라가 아닐까?
총괄: 배승환
기획: 강운지
구성&편집: 김미나
터키 형제의 나라에 대한 진실. 터키는 막장 국가.
터키 형제의 나라에 대한 진실. 터키는 막장 국가.
에네스카야의 막장질로 요즘 터키 이미지도 꽤 안 좋아졌죠
더군다나 터키여행 중 강간, 살인 사고가 의외로 높아서,
한국여자들의 피해도 매년 늘어가고 있습니다.
터키남자들 진짜 개막장이더군요.
한국 케이블의 한 방송에서 터키 남자들 취재를 했는데요,
시내에서도 한국 여자가 혼자 다니면 끊임없이 따라 붙어서 추근덕거리고
같이 자자고 하고 장난 아니네요…
여자 둘이 다녀도 마찬가지고요.
작년에는 음료에 수면제랑 각성제 넣고 한국여자 강간한 사건도 있었죠.
터키갈 때 진짜 조심하세요. 너무 좋게 포장된 나라입니다.
625전쟁 때 파병된 것도 터키인이 아니라 터키가 엄청나게 괴롭히는
어느 종족인데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그 종족에서 90%이상 강제착출되어서 파병된 것입니다.
그 파병된 종족에게 월급도 거의 안 줬다고하네요.
막장 오브 막장 터키입니다.
터키는 2차대전때도 독일에 붙어서 엄청나게 민간인 학살에 동참했던 나라입니다.
300만명 달하는 민간인을 죽인 나라라네여ㅛ. 아르메니아인도 150만명 학살했고,
시리아인 30만명 학살, 폰투스인 50만명 학살, 쿠르드족 학살등
일본 버금가는 개막장 국가입니다.
그리고 2차대전에서 독일이 밀리자 미국의 강압에 의해 독일 버리고 미국에 다시 붙어서
그나마 살아남았고 625때도 미국 강하게 요청해서 쿠르드종족 위주로 파병한 것이라고합니다…
근데 터키 그 지역쪽 사람들이 다 좀 정신이 문제가 있는 듯…
터키국가로 파병된 터키군인이 625때 도와주러와서 민간인 강간을 가장 많이 했다는 내용도 보이네요.
파병온 전체 국가 다 합친 범죄보다, 터키파병 군인들 강간 사건 범죄가 훨씬 많았다고…
형제의 나라 전혀 하고싶지 않습니다… 에네스카야가 거의 터키 남자들 표준인 듯…
요즘 문제가 많은 IS에 대해서도 터키는 상당히 우호적인 편인 것 같아요…
201309~201409 국내야구 갤러리
흔히들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만국의 형제의 나라다.
개독에서 서로를 부를때 자매님 거리는것처럼 이슬람에서는 서로를 형제라고 지칭하는데,
이슬람국가인 터키인들이 한국인들을 부를때 형제라고 하는것이 와전 되어 ‘형제의 나라’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렸다.
실제로 그들은 온갖 나라를 형제 라 부르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물론 심지어 일본에게도 형제국가라고 부른다.
BBC에서 조사한 국가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실 터키는 한국보다 일본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실상 그들이 남한을 보는 인식은 북한을 보는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알 수 있다..
또, 동해와 독도문제에 관해서도 그들은 일본해와 다케시마를 지지한다.
이래도 그들이 우리만의 형제국인가?
더군다나 터키인들은 겉으로는 외국인에게 호의적인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율이 높다.
형제의 나라인 우리나라 사람을 겨냥한 범죄들도 즐비해 2006년 총영사관을 다시 설치했다.
또, 6.25 참전때문에 형제국이 아니냐는 말을하는데,
터키가 6.25전쟁에 참가한 것은 순수히 우리를 도와주고 싶은 목적에서 참가한 것이 아니다.
철저히 자국의 이득에 따라서 참전한 것이다.
우리가 월남에 파병한 것도 미국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고, 돈벌이가 주된 목적이었다.
터키 또한 미국의 요청에 의해 파병을 했고, 그 댓가로 NATO 가입을 이루어 냈고,
미군의 주둔을 얻어냈고, 군수물자 지원과 경제원조를 얻어냈다.
더더욱 터키는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 빌붙어서 각종 만행을 저지르다가,
슬그머니 연합국에 들러붙은 나라다.
그런 전력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한국전쟁 파병도 이런 경제,외교적인 상황 때문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단순히 참전때문에 터키가 형제의 나라라면 어째서 태국, 에티오피아, 필리핀등은 형제의 나라가 아닌가?
또, 이들의 민족성은 돌궐시절부터 호전적이고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근현대 터키 용병들까지도 살인귀, 전쟁광으로 불리고 있다.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수백만명이나 학살한 사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과 비견되는 역사상 최악의 학살사건이라 평한다.(150만명 학살)
그 외 터키의 온갖 인종학살정책 때문에 아시리아인,폰투스인,쿠르드인 등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우리나라만해도 전쟁이라 통계자료가 제대로 있지 않지만,
6.25전쟁시 민간 여성을 가장 많이 강간한게 터키군이라는 소문도 있고,
실제로 남한쪽 민간 여성이 강간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나라에 대해 각인된 이미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로 터키를 진심으로 형제의 나라라 착각하는 우민들이 넘쳐나고있다.
터키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된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무슨 형제를 운운한단 말인가?
물론 세월호 케밥 봉사활동에서 보듯이 우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터키인도 당연히 있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아가페적 사랑으로 아프리카, 동남아 난민, 다문화가정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다. 터키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저 통계에서 나오듯 대부분이 그런건 아니다.
절대 퍼킹케밥맨들의 감성팔이에 넘어가선 안된다. 그들은 단지 습관적으로 형제 라는 말을 뱉을 뿐이다.
앞에선 형제라고 친한척하지만 뒤에선 음흉하게 쿠크리 나이프로 우리의 뒷통수를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외교에서 감성적 접근은 절대 금물이다.
그들을 형제국같은 감성적 관점이 아닌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것이다.
‘터키’가 형제국인 이유 ? : KWBF
‘터키’가 형제국인 이유 ?
이메일 [email protected] 작성자 최영호 작성일 14-06-15 16:28
*좀 길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 글입니다*
‘터키’가 형제국인 이유 ?
‘터키’라는 국가를 말하자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워지는가..”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요?그 이유를 아느냐? 물으면, 대다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6.25때 미국.영국.캐나다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파병된15,000명이 넘는 터키군은 이슬람교!! 대부분이 ‘자원병’이었으며, 그 중 3,500명이 사망(미국다음 많은 사상자)할 정도로 그들이 열심히 싸웠다는 사실…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으며, ‘왜’ 그렇게 고귀한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
터키에 가면, 관공서나 호텔의 국기게양대에 터키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터키인들 역시 한국인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며,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대한민국 ‘코리아’를 Brother’s country 라 부른다고 한다.
또, 한국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은 헝가리 사람들 역시 ‘한국이랑 헝가리랑 sister다’ 라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여기에서 한 아침 라디오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시 참고해 보도록 한다.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
역사를 상기한다면,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다.
6.25 때부터가 아니고…그렇다면 의문점 하나.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
식민사관의 잔재인 역사 교과서와 교육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중.고 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니 책과 교육의 탓도 있다.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매우 상세하다.
1500년전부터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
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선수들과 터키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터키가 형제의 나라가 된 궁극적인 이유를 모르면, KBS의 어느 아나운서가 패널이었던 터키인에게 ‘아우님’이라 불렀던, 어리석은 짓도 있었기에….
형제국가는 ‘형과 동생’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국가간의 형제는 곧 친구이며 우방이기에..
19세기초, 유럽으로 남진하려는 러시아의 힘을 얻어,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을 하게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셈이 되자, 이에 분노한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은 아르메인들을 표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학살을 감행(1차 대학살)….
20년후 또, 다시 오스만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 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명에 대학살을 자행한다.(2차 대학살)
게다가 투르크정부는 학살된 아르메니아인 외 175만명을 추가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하고, 그 추방하는 과정에 60만명이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1894년~1915년까지 2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은 겨우 30만명만이 살아 남는다.)
그후 1912년 발칸전쟁 때, 몬테니그로.불가리아.그리스가 오스만터키에서 독립할 때도, 알게 모르게 러시아가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인을 도와줬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터키는, 그 반대 쪽인 남한에만 병력을 파견했던 것이다.
물론 혹자는당시 터키가 미국과의 우방적 연계로 말미암은 국제적 이득을 노린 선택일 뿐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의 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이유가 필연적으로 러시아와 적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과거사 때문이였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형제의 나라..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다.
이런 관계를 지닌, 자기 나라로부터 수백만리 떨어진 곳에 보내는 의리와 애정을 주는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평생 독서를 즐겼으며, 그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분야는 역사라고 한다.우린 세계사를 떠나 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관심이나 있었을까요..아니, 우리의 국사나 현대사를 과연 제대로 배운 적이나 있었나요..
내 나라 역사조차 바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역사를 논했던 우리의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글은 현재 서울대학교 역사학 교수의 기고문이라고 합니다”
한국과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까닭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한국공원은 매우 넓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무궁화 나무 줄기에 무궁화꽃이 만발하고 있었고 화단에는 키가 작은 금잔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커다란 터기 국기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4층탑 앞에 한국전에서 죽은 희생자의 명단이 기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참전비 앞쪽에 한국 참전의 내용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검은 돌에 새겨져 있었다.한국공원 관리소에는 ‘터키참전용사협회’라는 단체에서 만든 유인물이 비치되어 있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터키어와 한글로 기록되어 있었다.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치러진 한국전에서 21,212명의 터키군 병력이 참전하였으며 종전 이후에도 1954년부터 1971년까지 터키 정부는 한국에 터키군 병력을 계속 파병하여 UN군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터키군은 총 56,536명이며 전사자는 총 892명입니다. 한국전에서 터키군은 중공군과 수차례 전투를 벌였으며 그때마다 중공군을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 중에 아래 4개 전투는 한국전의 흐름을 바꿔놓은 중요한 전투였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북한 청천강 유역의 군우리 전투 (1950년 11월 26일~30일)
*용인 지역의 금양장리 전투 (1951년 1월 25일)
*수도 서울 방어 전투 (1951년)
*38선 일대 철원지역 베가스 전투 (1953년 5월 28일~29일)
금양장리 전투는 중공군과 맞서 싸운 UN군이 최초로 승리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터키 여단에 ‘최고 부대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우리 터키군 병사들의 대부분은 자원하여 참전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조국을 위해 싸우듯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우리 터키 국민들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터키의 어느 곳을 방문하시든지 자랑스런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터키군은 한국인들을 정말 사랑하였습니다. 전쟁터에서 굶주린 한국인들을 위해 본인들도 부족한데도 먹을 것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해 수원 지역에서 ‘앙카라 학교’를 지어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했으며 이 학교는 약 10년 간 지속되었습니다. 한국전에서 싸웠던 우리 참전 용사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유와 평화를 쟁취하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 데 미약하나마 자신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감격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보지 못하였는데, 터키군의 용맹과 우정을 그린 한국 영화 ‘아일라: 전쟁의 딸’이 2018년 6월에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6.25 참전 병사였던 술래이만이 5살인 한국인 고아를 보살피다가 헤어져 2010년 60년 만에 서울에서 재회한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라고 한다.
6.25 전쟁 당시 절대적인 사상자 수는 미군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파병 인원 대비 사상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참전군은 터키군이었고, 가장 피해가 적었던 것은 필리핀군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영어가 자유로운 필리핀군은 미군의 항공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영어 소통이 잘 안 되었던 터키군은 항공 지원을 못 받고 가장 악전고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까닭으로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전사자는 알라의 오른쪽에 가서 앉는다는 사생관(死生觀)을 가졌기 때문에 터키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처럼 한국과 터키가 돈독한 관계에 있게 된 배경에는 6.25 참전 이후에도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1999년 8월에 터키 서부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만8천 명이 죽고 20만 명의 이재민이 생기는 엄청난 재난이 발생했다. 이때 한국에서 민간인 중심으로 터키를 돕자는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40일 동안 23억 원이 모금되었다. 당시 터키 방송국 STV는 한국에서 펼쳐지는 모금 운동을 일주일 동안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뒤, 50분 동안 터키 전역에 방송하였다. 이 방송을 본 터키 국민은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둘째는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터키를 응원한 것이다. 그 당시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다”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또한,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한국 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 국민의 관심이 증폭되어 경기장에서 터키팀을 열렬히 응원하였다.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이 열리던 대구 경기장에 자기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때 터키팀이 3:2로 이겨서 월드컵 축구 3위를 차지하였다.)
서울 여의도에는 앙카라 공원이 있는데, 이것은 1971년 서울시와 앙카라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해서 만든 공원이다. 1974년에 건립된 터키군 참전 기념비는 경기도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마성 나들목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부산광역시의 UN 묘지에는 터키군 462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국제 정치 측면에서 살펴보면, 터키는 6.25 전쟁 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나토(NATO) 회원국이 되었고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 소련의 위협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의 기틀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하여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터키의 관계는 현재까지도 매우 돈독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구려가 강성하여 중국의 북동쪽을 지배하던 때 몽고 지방에 돌궐(突厥: 투르크의 중국 한자 표기)제국이 등장한다. 돌궐은 6세기에 중앙아시아로 영토를 넓히면서 고구려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중국 수나라 양제는 607년에 우연히 돌궐과 접촉하는 고구려 사신을 발견하고 돌궐과 고구려 사이에 모종의 밀약을 걱정한다. 결국, 수양제는 10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하나 실패한다.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박물관의 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 사신은 돌궐과 고구려와의 동맹관계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후 돌궐 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부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셀주크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는데 셀주크 투르크가 나중에 오스만 투르크를 거쳐서 터키가 된다.
터키의 언어는 우랄알타이어에 속해서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하고 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다. 또한, 터키 동부 지방 일부 주민들에게서 몽고반점이 발견되며, 문화적으로도 어른을 존경하고 가족애를 중요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한국과 터키가 형제의 나라라는 것은 근거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형제의 나라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숨겨진 이유
터키라는 나라는 분명 우리 한국인들에게 각별합니다. 대한민국과 터키, 두 나라의 특별한 인연은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인들은 터키의 파병이유를 고구려라는 고대사(古代史)에서 찾았고 그들의 참전의지를 숭고한 형제애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 불렸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의 명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터키라는 나라를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터키가 한국전쟁에 파병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압도적인 화력과 전력으로 무장한 북한에게 우리나라는 밀리고 있었습니다. 200대가 넘는 북한의 전투기와 폭격기는 하늘을 뒤덮었고 240대가 넘는 소련제 탱크는 남쪽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의 8배가 넘는 700여문의 포는 모든 전선에서 우리 국군 진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사실 북한이 남침하기 전에는 북한군이 이렇게 강한지 상상도 못했던 우리 국군은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놀란 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결성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국제연합(UN)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역시 화들짝 놀랬습니다.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엎은 북한은 강력했으며 자유주의 진영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한반도가 북한에 넘어가면 다음은 일본 차례고 그 다음은 미국이 될 판이었습니다. 유럽에서도 소련의 서진(西進)으로 동유럽 정권들이 도미노로 자빠지는 상황속에서 북한의 남침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UN은 신속하게 결의안 82호, 83호를 연달아 통과시키며 북한군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무시하자 결의안 84호를 통과시켜 한반도에 대한 즉각적인 군사지원을 결의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북대서양에 접해있는 국가들의 모임인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역시 미국을 따라 자유주의 진영의 단결력을 보여주기위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개월만인 1951년 1월, 아이젠하워를 총 사령관으로 하는 나토군이 창설되었고 총 96개 사단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들이 나토군 휘하로 소집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결코 남일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터키는 나토(NATO)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였고 한국전쟁은 터키에게는 찬스였습니다. 그 이유는 소련이 터키를 향해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터키는 뒤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존재가 절박했습니다. 하지만 나토와 미국은 그 요청에 냉담했습니다. 일단 터키의 위치상,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회원국이 되기에는 북대서양과 너무 먼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들과 달리 이슬람권 국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미국의 막대한 규모의 경제 원조를 터키와 함께 나눌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터키는 다급했습니다. 공산주의 일진 소련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나토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나토는 외면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전쟁이 터진겁니다. UN이 한반도에 대한 군사지원을 결정하자 총 22개 나라가 지원을 약속했고 그 중 16개 나라가 파병을 결의했습니다.
터키는 빛의 속도로 파병을 결정했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국제사회에 터키가 큰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해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인 총 5,455명의 병력을 파병했고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병력을 상륙시켰습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석달만인 1950년 10월 17일 터키의 보병여단 선발대가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동기가 무엇이든 터키의 보병 여단은 미군 25사단에 배속되어 4년간 엄청난 전투를 치루었습니다. 3천명이 넘는 전사자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 두 배가 넘는 적군을 섬멸시켰습니다. 함께 전투를 치른 미군과 한국군들은 터키군의 용맹성에 엄지를 치켜세웠고 국제사회는 터키군을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전쟁 파병 11개월 만인 1951년 9월 20일, 터키는 그토록 염원하던 나토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토가 원년 멤버 12개 나라를 제외하고 최초로 받아들인 가입국이 바로 한국전쟁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한 터키와 그리스였습니다. 그리스 역시 나토 가입권을 얻기 위해서 UN 참전국중 다섯번 째 규모인 1,263명을 파병했고 그 보답으로 터키와 더불어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입이후 그리스와 터키는 나토의 동쪽 경계를 책임지는 새로운 회원국으로서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경제원조를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회원국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은 전체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보복하겠다는 나토의 조직문화는 터키를 소련으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이렇듯 터키가 한국전쟁에 파병한 가장 큰 이유는 나토에 가입할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통해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려던 것이 숨겨진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터키에는 현재도 나토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중요한 미사일 기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흘린 그들의 피와 땀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의도가 순수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터키는 한국인들을 위해 피를 흘려준 형제의 나라이자 혈맹임에는 변함없습니다.
밀리터리 박스 유튜브 채널도 오픈하였습니다. 영상이 편하신 분들은 유튜브로 오셔서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유튜브 바로 보러가기
키워드에 대한 정보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다음은 Bing에서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 동영상
- 공유
- 카메라폰
- 동영상폰
- 무료
- 올리기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YouTube에서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인 진짜 이유! | 터키 형제의 나라 진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