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반장 김호정 | 우리 곁을 일찍 떠난 탤런트 이야기 / 한국의 탤런트 10화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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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탤런트
한국의 탤런트 10화
-수사반장 김호정, 남자는 외로워 석광렬, 공룡선생 조문정에 대한 이야기-
00:00 – 탤런트 김호정
02:50 – 탤런트 석광렬
09:00 – 탤런트 조문정
탤런트 김호정님이 나온 수사반장을 볼 수 있는 곳
MBC 홈페이지, 웨이브에서 수사반장 검색
\”여자는 차주, 남자는 화물\” 에피소드
탤런트 석광렬의 남자는 외로워
https://www.youtube.com/watch?v=c3x9-h9vDtg\u0026t=2186s
-1회 무료, 2회는 KBS클래식채널 2단계 가입 후 가능
탤런트 조문정의 공룡선생
S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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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 원년멤버 탤런트 김호정에 대한 프로필 – 네이버블로그

-드라마 수사반장은 최불암 조경환 김상순 남성훈 4명의 탤런트가 활약하는 형사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멤버들로 구성이 된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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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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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드라마) – 나무위키:대문

수사반장은 형사 역할 배우들의 입지가 워낙 탄탄하여 KBS에서 방영한 … 고정 형사진은 초기에 최불암과 조경환, 김호정, 박암이었다가 도중에 박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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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14/2021

View: 8757

[AJU TV] 김상순 별세, 수사반장 김호정·남성훈 – 아주경제

김상순 별세, 수사반장 김호정·남성훈·조경환 보낸 최불암 심경은? 드라마 수사반장의 김상순 씨가 78세의 나이로 26일 별세했습니다. 김상순 씨는 몇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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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junews.com

Date Published: 10/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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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극 ‘수사반장’ 맡자마자 최불암 ‘지각 버릇’ 잡았다 – 한겨레

[고석만의 첨병] (25회) ‘수사반장-범행동기를 찾아서’ … 왼쪽부터 최불암, 남광현 경위, 이금복, 김상순, 조경환, 김호정, 최중락 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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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10/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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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 김호정 사망 – 다음블로그

수사반장 김호정 사망 · 생년;1939년생 · 사망;1978년 8월7일 · 데뷔;1969년 MBC탤런트 공채1기 · 수사반장의 서형사로 알려진 댈런트로 선천적으로 건강이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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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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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수사반장》은 문화방송에서 제작·방영한 범죄 수사 드라마이다. 1971년 3월 6일부터 1984년 10월 18일까지 681회로 막을 내렸으나, 반 년 만에 다시 재개해 1985년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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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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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수사반장` 김호정 남성훈 조경환 김상순 앞세우고 반장 …

배우 최불암이 ‘수사반장’의 마지막 동료 김상순마저 세상을 떠나자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25일 원로배우 김상순이 폐암으로 투병 중에 향년 78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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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usan.com

Date Published: 7/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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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수사반장’ 故남성훈· 김호정씨 그립다” – 네이트뉴스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수사반장’ 재연 녹화장에서 김상순씨와 조경환씨 등을 보니 저세상으로 간 남성훈씨와 김호정씨가 너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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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news.nate.com

Date Published: 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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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수사반장>의 시그널 뮤직은… – 월간조선

초창기 <수사반장> 멤버는 최불암과 김상순, 김호정, 조경환씨 등 4명이었으나 1977년 김호정씨가 빠지고 남성훈씨가 중도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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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monthly.chosun.com

Date Published: 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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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수사 반장 김호정

  • Author: TV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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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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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 원년멤버 탤런트 김호정에 대한 프로필

한국의 탤런트 수사반장 원년멤버 탤런트 김호정에 대한 프로필 WIntourstyle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 ​ ​ 이름 : 김호정 생몰년도 : 1938년 ~ 1978년 8월 7일 학력 : 동국대학교 연영과 데뷔 : TBC 1기 탤런트 ​ ​ 드라마 ​ 혼인줄이 막혔나봐 (TBC 1969) – ‘파’ 황녀(MBC 1974) 한 백년 (MBC 1973~74) 집념 (MBC 1975) 거룩한 손님 (MBC 1976) 역사의 인물 (MBC 1977) – 고경명 당신 (MBC 1977) – 엄유신의 남편 어린이드라마 ‘범바윗골의 비밀’ (MBC 1978) 수사반장 – 서형사 (1971~1978) ​ 라디오드라마 ​ 스포츠실화극 – 수백만 (MBC) ​ 외화더빙 ​ 도망자 – 조(나중에 교체) ​ 예능 ​ 유쾌한 청백전 (MBC 1975) ​ 연극 ​ 뮤지컬 새우잡이 (1965) 이어도 이어도 이어도 (1976) – 천남석 죄와 벌 (1976) ​ ​ ​ -드라마 수사반장은 최불암 조경환 김상순 남성훈 4명의 탤런트가 활약하는 형사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멤버들로 구성이 된 것은 아니었다. -최초 멤버는 최불암, 영화배우 박암, 조경환, 김호정 – 남성훈이 맡은 남형사라는 캐릭터가 있기 전 서형사라는 캐릭터가 있었는데 서형사를 맡은 이는 김호정이라는 탤런트이다. 1978년 8월 7일, 서른아홉의 나이로 별세하기 전까지 그는 MBC드라마 조연을 도맡던 탤런트였다. 70년대에 작고 했기에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TBC-TV 1기생 출신이지만 MBC 개국과 동시에 스카웃되어 수십편으 드라마에 출연을 했으며 “한 백년”이라는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했으나 그 이후 두각을 보이지는 못했다. 1971년 수사반장이란 형사드라마에서 서 형사를 맡았다. 동료 김상순은 그를 두고 “한마디로 좋은놈이었죠”라고 했다. 그는 과묵하지만 인자했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성격이었지만 항상 우울해하고 외로워 했다. 어쩌다 동료들과 술자리가 잡혀있으면 묵묵히 술만 마시다 “정이란 무엇일까”라고 노래를 부르며 조용히 떠나기도 했다. ​ ​ ​ 1975년, 방송국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윤모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둘은 같이 살게되었고 아들을 하나 낳는다. 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김호정의 삶도 안정적으로 되어가는 듯 했다. -1973년 매일경제 기사에는 그가 친척들의 중매로 경상도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나와있는데 이혼 후 75년에 재혼한걸로 판단된다- 1978년 6월 14일, 드라마 녹화를 끝내고 평소처럼 찬물을 끼얹어가며 목욕을 한 것이 그를 졸도하게 만들었는데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병원에선 뇌지주막 파열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당시 대중들에겐 정확한 의학정보가 부족했었고 있다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동료들은 돈 100만원과 병에 좋다는 약을 전달했으며 호전을 기원했으나 뇌지주막 파열 재발로 긴급수술을 받던 중 별세하고 말았다. -MBC탤런트들은 나시찬이 쓰려졌을 때도 성금을 보내기도 했었다- 당시 MBC사장인 이환의는 그의 아내 윤씨를 방송국 내 문화금고에 근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고 장례보조금 30만원을 보내주기도 했다. 수사반장에 같이 출연한 한 동료는 그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했다. “나쁜 사람입니다. 나이 40도 못살고 가다니… 그 동안 지방녹화도 많이 하며 고생을 했고 지방쇼도 몇 번 나가고는 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서로를 더욱 아껴주며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 ​ ​ 인쇄

“간판극 ‘수사반장’ 맡자마자 최불암 ‘지각 버릇’ 잡았다”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25회) ‘수사반장-범행동기를 찾아서’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78년 고석만은 1971년 첫 방송 이래 문화방송 인기 수사극으로 장수하고 있던 연출을 맡아 안팎의 견제 속에 연극연출가 김상열을 작가로 발탁하고, 드라마 성격을 ‘본격 사회극’으로 개편하는 시도를 했다. 연습시간이 되면 문을 잠가 지각하는 배우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최불암을 비롯해 기존 출연진의 군기부터 다잡았다. 방송 14년째인 84년 10월 ‘1차 종영’ 무렵의 ‘박 반장’ 최불암. 사진 엠비시 제공

국내 첫 수사극 은 고석만 연출 시기 최불암·김상순·조경환·남성훈, 네명의 형사역 배우들이 명예경찰로 계급을 받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짜자자잔, 짜자자잔” 윤영남 작곡의 드라마 주제곡은 명곡이 되었다. 라틴 퍼커션과 경쾌한 나팔들이 혼합된 재즈 축제. 그 시대를 관통한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주제곡이다. 100장이 넘는 사건 현장 형사들의 스틸사진으로 조각된 배경화면에 얹혀 전국에 퍼졌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타이틀백이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 주제곡이 울려 퍼질 때면 서울 시내 택시가 올스톱할 정도였다. 기사식당은 초만원이었다. 대통령도 꼭 시청했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민심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문화방송은 ‘황금의 주말 편성’을 누렸다. 일요일 오후 7시 , 8시 , 9시 , 10시 , 11시 . 일요일을 장악했다. 스테이션 이미지는 탄탄히 구축되어가고 있고, 은 ‘만나면 좋은 친구~’였다.

1971년 국내 첫 수사 드라마로 시작한 의 초기 대본. 허규 연출·김정헌 극본. 최중락 총경 소장본.

1978년 고석만 이전 이연헌 연출 시절 금요드라마로 방영되던 의 광고. 자료사진

왜 인가?

처음 방송되던 1971년 3월만 해도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이다.(1971년 12월 티브이 수상기 61만6392대, 총인구 3088만2386명, 총가구수 586만3440가구, 텔레비전 보급률 10%) 외화를 통해서만 수사물을 접하던 시절이다. 은 우리 텔레비전의 본격 수사물로는 최초다. 우리 형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으리라. 첫 연출은 허규 선생이 맡았고 자리를 잡은 것은 이연헌 선배 때였다. 은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의 원리에 입각하여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한국적 수사물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당시 범죄는 대부분 우발적이고, 피살자가 오히려 못된 인간형으로 귀결되어 시청자로 하여금 이성을 되찾게 하고 죄와 벌의 한계를 인식시키는 ‘인정극’이 많았다.

‘어느 집에서 아기의 백일잔치가 열렸다. 아기의 아빠는 그날 밤 손님들이 권하는 축하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통금이 임박한 시간에 아기가 불덩이가 되더니 경기를 하며 울기 시작했다. 젊은 새댁은 남편을 깨웠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새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가지고 있는 3층 아저씨에게 사정했다. “아저씨, 우리 아기가 위독해요. 죄송하지만 병원까지만 차로 태워 주세요.” 그러나 그는 통금시간이 되어 태워다 줄 수 없다고 매정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새댁이 아기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아기는 이미 숨져 있었다. 그 충격으로 아기의 엄마는 정신이상을 보여 가끔 3층으로 내려와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뒤 밤이면 밤마다 3층의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형사들은 신고를 받고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막상 범인을 잡고 보니 정신이상을 보이고 있는 새댁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동네 꼬마들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꼬마들은 3층 아저씨가 미워서 밤마다 돌을 던졌던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있던 수사반장 최불암은 그 아이를 덥석 품에 안는다. 꼭 껴안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최불암과 . 인정극으로서 은 그렇게 서민들에게 다가갔다. 유신정권 보도통제하의 방송에서 한줄기 돌파구였다. 그 시절 상당수는 생계범죄였고 단순 우발범죄이며, 하나같이 누선을 자극하고 있었다.

1978년 고석만이 연출로 발탁됐을 때 출연진과 드라마 자문 경찰들이 함께 했다. 왼쪽부터 최불암, 남광현 경위, 이금복, 김상순, 조경환, 김호정, 최중락 총경. ‘서 형사’ 김호정은 78년 8월 별세해 그뒤 남성훈이 새로 합류했다. 엠비시 제공

의 역사는 쌓여왔다. 사회현상이 복잡다난해짐에 따라 범죄의 양상도 다양해졌다. 폭력화되고 지능화되어갔다. 도 이제 고비를 맞았다. 변곡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때 1978년, 고석만 연출이 발탁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책무는 현장성 강화였다. 그는 시대변화에 따른 사회성에 착안했다. 에서 보여준 사회적 접근과 과감한 현장 중심이 그것이었다. 그는 모든 강력범죄에서 범행동기를 첫번째 문제로 제기하고 나섰다. 범인의 성장 배경, 환경, 사회구조는 범행의 동기를 잉태하고 있다. ‘길을 찾아서’ 나서듯, 범행동기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연극연출가 김상열을 만났다. 극단 ‘현대극장’의 상임연출가였다. 극단 대표 김의경·최문경 부부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상열 작가와 고석만 연출은 의기투합했고 ‘수사반장 전환’의 대장정에 나섰다.

1978년 으로 의기투합한 고석만(오른쪽)·김상열(왼쪽) 콤비는 이후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다. 사진은 1984년 세계일주여행 때 모습. 고석만 제공

‘한 소녀가 이화여대에 합격하고, 그 어머니는 행복하다. 행상하는 어머니는 가재를 털어 입학등록금을 마련하였다. 기분 좋게 버스를 타고 이대 앞에서 내려 양쪽에 상가를 이루고 있는 이대 입구 길에 들어서자 뒤따르고 있던 괴한이 핸드백을 낚아챈다. 소녀는 백을 놓치지 않고 매달린다. 달아나는 괴한과 소녀. 봄눈이 녹은 길바닥은 질퍽했고 소녀는 죽기를 각오하고 괴한의 발목에 매달려 땅바닥에 끌려갔다. 괴한은 칼을 꺼내 위협한다. 스치는 사람들, 구경하는 상가의 상인들, 만신창이가 되어 끌려가는 소녀, 살려달라 악을 쓰는 소녀는 50m를 끌려왔다. 괴한은 소녀를 세차게 발길질한다. 그래도 매달려 울부짖는 소녀를 무자비하게 뿌리치고 달아난다. 구경하는 몇몇 사람들, 지나치는 사람들, 질퍽한 내리막길을 울며 기어가는 소녀.’

은 사회물로 전환하고 소재 발굴과 현장성에 매진하였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그려나갔다. 형사들은 이대 앞 소녀가 끌려간 현장을 찾아 탐문수사에 나섰다. 50m 전후방의 상가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과 범인의 인상착의를 탐문하는 동안 형사들은 점차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불의를 외면하고 있는 시민들을 마주하며 절망하고 만다. ‘방관자 효과’라는 게 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도와주기를 주저한다는 현상이다. 1964년 미국 뉴욕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새벽에 칼에 찔려 죽어가는 35분 동안 38명이 보고도 지나쳤다는 사건에서 비롯돼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불렸다. 그러나 ‘바르게 사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의 ‘바르게’는 다른 측면의 의미도 갖는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이다. 삶 앞에, 문제 앞에 용기있게 서는 사람이다.

‘소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응급실을 뛰쳐나와 이대 앞 골목을 뒤지고 다녔다. 형사들의 위압적인 탐문을 피하던 상가의 상인들이 소녀의 하소연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소녀는 어느 행상에게 듣게 된 작은 단서를 잡아 뒷골목 우범지역을 파고들어갔다. 형사들도 뒤따라 우범지역에 잠입한다. 그 뒤를 엄마가 또 쫓고…, 단순 액션물이 아닌 사회구조를 파고드는 추적이었다. 조직이 드러나고 또다른 범죄들이 밝혀질 때, 소녀는 괴한과 마주한다. 짧지만 강렬한 둘의 외마디. “돌려주세요.” “죽고 싶어?” 무릎 꿇고 매달리는 소녀의 폐부를 칼이 찌른다. 한발 늦게 달려든 형사들에게 괴한 청년은 체포되지만 소녀는 치명적이다. 첫 탐문 때 포착되었다면, 2차 범행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 달려온 엄마의 품에서 소녀는 숨을 거둔다.’

1978년 수사극 ‘수사반장’ 연출 발탁

택시 올스톱시킨 인기 주말 간판극 현대극단 상임연출가 김상열 작가로

주변 반대 속에도 ‘대전환’ 의기투합

인과응보 ‘인정극’에서 ‘사회극’으로 새 드라마부장 “고석만이가 어떻게?”

연극판 출신 작가들은 ‘김상열 시기’

“미운오리새끼처럼 오기와 의욕 다져” 연극배우들 출연에 탤런트들 텃새도

정시에 연습실문 잠근 채 리허설 강행

10분씩 늦던 ‘반장 최불암’ 태도 변화

최불암 자서전 “그때 가장 잘 맞았다”

형사들은 시민정신의 실종에 절망하고 분노하였다. 은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그려나갔다. 시청자들은 의 새로움에 감동하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김상열은 씹혔다. 방송사 내부 드라마 파트에서 김 작가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김 작가 또래의 같은 연극계 출신들이다. 한 작가의 특정 프로그램 독점과 성공에 시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 새로운 접근법을 놓고도 연극 같네, 번역극 대사 같네…, 방송의 구어체와 리얼리티라는 미명 앞에 고급스러운 ‘시어’-시적 대사는 생경했을 법하다. 드라마란 필요하면 고품위의 대사도 읖조려야 하고, 난해한 상황 전개도 그려야 하는데도 말이다. 을 맡은 직후, 사내 인사 이동으로 새로운 드라마부장이 부임하였다. 첫날 드라마 파트의 연출들을 앉혀놓고 프로그램을 점검하던 중 “고석만이가 을 해? 이걸 어떻게 해”.

그 한마디는 묘한 오기와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부장은 다음주 회의에서 다시 한번 을 비판했다. “뷰 포인트가 안 맞아. 또 범행동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범인의 뉘우침이 중요해!” 비드라마 출신의 분석으로는 꽤 전문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방송사 로비에서 을 오랫동안 집필해왔던 작가 선생을 만났는데, 그 부장의 코멘트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비판해오는 것이다. 그 작가와 그 부장은 서울 강남의 같은 아파트에 살며 왕래가 빈번하다고 들어서 웃고 말았다. 그 작가도 연극 출신이다. 김상열 작가와 그 주변의 연극 출신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가 오리들 틈에서 돋보이는 백조가 되는 반면, 키르케고르의 ‘기러기’에선 날 수 있는 기러기가 날지 못하는 거위들을 날게 해주려고 돕다가 결국은 ‘공상적 바보’라는 비난을 거위에게 듣는다. 이런 비난 앞에 기러기는 의기소침해져 날지 못하는 거위처럼 돼버린다.

1975년 8월15일 광고. 협찬 기업들 역시 추억을 돋게 한다. 자료사진

김상열 작가는 당시의 방송문법 체계 속에서는 독특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군중 속에서 하나의 모양, 하나의 숫자, 하나의 생각이 되는 것이 훨씬 쉽다.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주장한다 해도, 내가 그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나의 실존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인간이란 관계 맺는 존재”라는 키르케고르의 말이 옳다.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

안데르센과 키르케고르는 동시대인이자 비판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재미있게도 키르케고르의 첫번째 책은 안데르센에 대한 혹독한 문학비평서인 (1838년)다.

김상열 작가는 연극 출신이면서도 영상화에 밝았다. 가급적이면 영화적 방식을 적극 도입했고 새로운 텔레비전 문법을 창안하려 애썼다. 예를 들면, 장면 전환이 도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시청자가 한 장면이 끝난다는 것을 감지하게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연극에서 무대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장면 전환이 텔레비전에서도 그대로 연극 관습처럼 모방되고 있는 것이 불만이라 했다. 성격 창조에 대해서도 혁신책을 끊임없이 제시하였다.

의 ‘주연 4인방’ 가운데 김상순(김 형사·맨 오른쪽)을 비롯한 출연진과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는 고석만(맨왼쪽) 연출. 사진 엠비시 제공

또한 연극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연극 쪽의 훌륭한 배우들이 교류되면 문화계 전체의 풍성함으로 발전할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때 첫발을 내디딘 배우들이 박인환·최주봉·윤문식·양재성·김갑수·오인환이었고 강계식·고설봉 선생도 모셨다. 방송사의 탤런트들은 배타적이었다. 연극배우들은 산전수전 겪은 노병사들처럼 능수능란하였다. 연습실의 분위기는 ‘형사’들이 잡는다. 그들의 좌석은 항상 상석으로 남아 있고 그들이 없으면 연습 자체가 진행되지 못했다. 최불암은 연달아 연습시간 10분씩 지각이다.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을 때 주인처럼 시선을 받고 들어와 앉으면 연습이 시작된다. 연출자는 다음 연습시간부터 시간 엄수를 진지하게 강조했다. 그다음 연습시간엔 미리 준비하고 기다렸다. 오늘도 최불암은 지각이다. 정시가 되자 연습실 문을 잠그도록 했다. 그리고 책읽기 연습에 돌입했다. 다른 배우들이 당황해했다. 그날 최불암은 문 밖에 서 있다 돌아갔을 것이고, 은 ‘수사반장’ 없이 연습이 진행되었다. 그 후 연습시간에 늦게 오는 형사들은 없었다.

최불암에겐 장점이 있다. 본인이 작품에 애착이 가면 연습 때부터 아이디어 백출이다. 계속해서 본인의 아이디어가 관철되길 바라며 끊임없이 얘기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많고 작품에 대한 분석도 뛰어나며 애정도 넘쳐난다. 연습 때부터 주장해오던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 작품에 녹여낼 땐 신기에 가깝다. 연출자마다 다르겠지만 의견이 대립될 때도 많다. 그런데 드라마엔 최종본인 ‘콘티’라는 대본이 있다. 이 콘티는 녹화 직전 리허설 때 나온다. 최불암은 이 콘티에 본인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으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지만, 막상 녹화에 돌입하면 연출자의 의도를 십분 소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즉각 변형을 해내는 배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최불암, 그를 통해서 많은 배우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을 배우길 바랐다.

1979년 4월 고석만 연출-윤대성 작가가 만든 400회 기념 특집 광고. 자료사진

의 열기는 대단했다. 녹화 현장은 활기찼고 주제곡의 리듬과 멜로디처럼 박진감이 넘쳐났다. 지방 촬영을 하기 위해 대형 버스에 오르면 신났다. 버스 옆에 ‘수사실화극 촬영’ 플래카드를 크게 달고 지방도로를 달리면 길가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지방에서의 환대는 분에 넘쳤다. 경찰서의 간부들은 물론 지역 유지들까지 즐거워했다. 우리의 형사들은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지방 출장을 자청하고 나섰다. 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최불암의 자서전에는 “역대 연출자가 15명이 넘지만 고석만이 연출할 때가 제일 좋았다. 시청률도 역대 최고를 누렸고, 호흡이 잘 맞아 일도 잘되었다. 고석만은 청와대나 문공부의 간섭에도 맞서 이겨냈다”고 술회하고 있다.

1979년 4월1일로 400회를 맞은 특집 ‘종점’ 촬영장에서함께 찍은 기념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성훈, 이금복, 조경환, 박 반장’의 실제 모델로 드라마 자문을 해주던 최중락 총경, 고석만, 김상순. 자료사진

이대 앞 사건을 정리해보자. 이 사건은 ‘한국 현실의 증언’이다. 범행동기를 보자. 빈부격차, 우범자 격리수용, 초동수사 미비, 탐문수사 미비 그리고 시민정신 결여다. 그때 알았다. 모든 사건, 경영, 인생… 초동수사가 기본이다. 일본 수사대의 철칙이 있다. “모든 범죄의 단서는 사건 현장에 다 있다. 초동수사에 승부를 걸어라. 현장을 혀로 핥아라.”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email protected]

뱀사골 다시내

수사반장 김호정 사망

생년;1939년생

사망;1978년 8월7일

데뷔;1969년 MBC탤런트 공채1기

수사반장의 서형사로 알려진 댈런트로 선천적으로 건강이 안 좋았다고 한다

1978년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하였다

호전되는 듯 보였던 그는 갑작스럽게 악화 되어 결국 입원 1개월20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39세 이후 수사반장에서는 서형사는 지병으로 사망한 걸로 처리하였고

그 후임이 바로 남 형사 남성훈였다 하지만 남형사 역으로 출연한 남성훈씨

2002년 다발성위축증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수사반장 장르 범죄실화극·드라마 방송 국가 대한민국 방송 채널 MBC 방송 기간 1971년 3월 6일 ~ 1984년 10월 18일

1985년 5월 2일 ~ 1989년 10월 12일 방송 횟수 880부작 연출 허규, 박철, 유길촌, 유흥렬, 이연헌, 이효영, 강철호, 이병훈, 고석만, 최종수, 김지일, 김종학, 김승수, 강병문, 김수룡, 김준호, 소원영 외 각본 김정환, 윤대성, 신명순, 이상현, 박찬성, 신봉승, 김문영, 이홍구, 김상열, 외 출연자 최불암, 김상순, 김호정, 조경환, 남성훈, 노경주 외 해설 김영배 여는 곡 수사반장 주제곡(원곡: 류복성) 닫는 곡 상동 음성 한국어 외부 링크 iMBC 수사반장

외부 동영상 해피타임 명작극장 – 수사반장

《수사반장》은 문화방송에서 제작·방영한 범죄 수사 드라마이다. 1971년 3월 6일부터 1984년 10월 18일까지 681회로 막을 내렸으나,[1] 반 년 만에 다시 재개해 1985년 5월 2일부터 1989년 10월 12일까지 방영되었다. 이후 드라마가 종영된 후 1989년 10월 26일부터 1989년 12월 28일까지 《80년대 10대사건 시리즈 – 범죄》를 방영하였다.[2]

그리고 새로 개국한 MBC ON에서 다시 방송 중이다.

한편, 최불암(반장 역)이 해당 작품을 통해 1회 한국방송대상 TV 남자연기상[3]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이외에도 같은 채널 《제1공화국》으로 8회 한국방송대상 TV남자연기상(TV 라디오 모두 남녀 연기상이었으나 17회부터 연기상이 남녀 성우상-남녀 탤런트상으로 분리됐고 남녀 탤런트상은 26회부터 통합 탤런트상, 40회부터 연기자상으로 바뀜)을 수상했으며 그 이후 이낙훈(TBC <추적>으로 6회 TV연기상 KBS 1TV <옛날의 금잔디>로 19회 남자 탤런트상)[4][5] 최수종(KBS 2TV <야망의 전설>로 26회 통합 탤런트상 KBS 1TV <대조영>으로 35회 통합 탤런트상)[6][7] 김명민(KBS 1TV <불멸의 이순신> 등으로 33회 통합 탤런트상 MBC <베토벤 바이러스>로 36회 통합 탤런트상)[8][9]이 본인(최불암)과 TV 드라마를 통한 한국방송대상 남자 탤런트상(연기상 포함) 최다 타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회).

연출진 [ 편집 ]

오랜 기간 방영되면서 허규, 박철, 유흥렬, 이연헌, 이효영, 강철호, 고석만, 최종수, 김지일, 김종학, 김승수 등 많은 PD가 연출을 담당하였다.[1]

등장 인물 [ 편집 ]

문화방송 소속 탤런트가 대부분 출연했으며, 특히 범인역으로 이계인, 조형기, 변희봉 등이 출연한 바 있다.[1]

수사반 [ 편집 ]

최불암 : 반장 역

故 김상순 : 김 형사 역

故 김호정 : 서 형사 역

故 조경환 : 조 형사 역

故 남성훈 : 남 형사 역[10]

여순경 [ 편집 ]

순경보다는 그 당시에는 ‘여순경’이라고 호칭하였기에 그 당시 대로 표기함.

故 김영애

염복순

안옥희

故 이금복

故 김화란

오미희

이휘향

윤경숙

노경주

기타 경찰 [ 편집 ]

故 전운 : 경찰서장 역

특집편 [ 편집 ]

300회 – 남편은 화물 아내는 화주 [ 편집 ]

강계식 : 이봉식 역

김혜자 : 이봉식의 부인 역

추송웅 : 택시기사 김규만 역

이수나 : 대성여인숙 주인장 역

박원숙 : 만경여인숙 아가씨 역

나문희 : 카페 아가씨 역

김영옥 : 임산부 역

故 김영애 : 조경환의 애인 역

변희봉 : 버스회사 서울사무소 직원 역

박상조

박규채

박은수

400회 – 종점 [ 편집 ]

500회 – 사천만의 눈동자 [ 편집 ]

이정길 : 유괴아동의 아버지 역

고두심 : 유괴아동의 어머니 역

이영후

박상조

강인덕

박영지

김용림

김영옥

최은숙

한인수

김호영

차윤희

최선균

이묵원

이운우

최낙천

나성균

김소원

강문희

안재은

김정훈

방영 목록 [ 편집 ]

80년대 10대사건 시리즈 – 범죄 [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방송 시간 [ 편집 ] 방송 채널 방송 기간 방송 시간 방송 분량 MBC TV 1989년 10월 26일 ~ 1989년 12월 28일 목요일 밤 8시 5분 ~ 9시 55분 작품 리스트 [ 편집 ] 순번 제목 방송 일자 내용 출연진 극본 연출 1 유전무죄 무전유죄 1989년 10월 26일 지강헌 탈주 사건

이감중이던 미결수 12명이 호송버스를 탈취해서 집단탈주, 8일간 다섯 차례의 인질극 끝에 체포되는 사건을 그렸다. 이계인, 윤철형, 김홍석, 강상구, 김영일, 양재만, 조용태, 차재성, 손원일 김정 소원영 2 황홀한 비상 1989년 11월 2일 사진작가 죽음 연출 사건

직업이 면도사인 김정희가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은 이를 자살로 판단한다. 수사중 단골손님인 이동철을 알게 되고 사진작가인 그의 사진세계에서 이상함을 발견, 사건 현장에서 필름을 발견하고 그의 암실을 수색하여 김정희의 죽어가는 모습들의 사진을 발견하고 체포한다. 정동환, 최현미, 조명남, 권재희, 정진, 추석양, 오승룡, 이희도,나성균, 김지영, 김찬구, 조성숙, 홍승이 김남 김수룡 3 대도 조세형 1989년 11월 9일 조세형 탈주 사건

손재주 하나로 대낮에 철통같은 경비를 뚫고 부유한 특권층만을 털던 조세형은 검거되지만 얼마 후 탈옥하고 이에 서울 전역에 비상망이 쳐진다. 조세형은 마지막으로 한탕하려다 발각되고 결국 검거되고 만다. 이동신, 조혜수, 이미지, 엄유신, 홍승옥, 박예숙, 이의일, 이성용, 홍민우, 윤관용, 이창환, 문창근, 순동운 김광수 소원영 4 살아만 있어다오 1989년 11월 16일 윤혜준 유괴 살인 사건

결혼준비로 돈이 필요했던 한오석은 혜준을 납치하여 다음날 목졸라 죽이고 혜준의 부모를 협박하여 은행에 돈을 입금시키도록 하고 현금카드로 빼간 후 아이는 잃어버렸다며 시간을 끈다. 경찰이 통장을 출금정지시키자 잔금에 연연한 한오석은 전화로 계속 협박하나 기계가 현금카드를 반환하지 않자 잔금을 포기하고 잠적한다. 경찰은 이에 대담하게 공개수사를 벌이고 전화 통화시 녹음했던 목소리를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하게 된다. 한오석은 구멍가게 아저씨의 신고로 단순 용의자로 조사중 도망침으로써 범인임이 밝혀진다.그는 숨을 곳이 없자 가짜 자살극까지 벌이다가 결국 자수하고 만다. 홍학표, 최상훈, 김용선, 한인수, 전인택, 송영웅, 오현섭, 신복숙, 한창호 박찬성 김준호 5 노다지 별곡 1989년 11월 23일 토지 사기 사건

사람들의 사행심리를 이용하여 온천 개발을 빙자한 대규모 토지사기를 벌이고 교묘히 법까지 피해나간다. 사기꾼들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믿을 만한 곳에 모든 돈을 투자한다. 투자한 곳의 영업상무를 우연히 만나는데 그들은 옛날 친구들, 순간 사기꾼들인 것을 눈치채고 사기꾼들 간에 격투가 벌어진다. 박규채, 변희봉, 임문수, 김수일, 고설봉, 김석옥, 김민정, 정진, 오승명, 박경현, 주호성, 문회원, 박경순 한대희 김수룡 6 또 하나의 유배 1989년 11월 30일 인신매매 사건

한 부인이 거리에서 인신매매되어 섬으로 팔려간 후에 극적으로 배를 전세내어 탈출하지만 남편과 이웃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애환을 그렸다. 오경애, 전무송, 김지영, 김영옥, 최낙천, 정혜승, 국정환, 송경철, 김옥만, 김순경, 김명희, 김진구 최연지 김준호 7 땡과 따라지 1989년 12월 7일 도박 사건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한 젊은이가 서서히 노름에 빠져들자 이를 지켜보던 박씨 아저씨가 끼어들어 판돈을 쓸어버린다. 후에 박씨 아저씨가 박건달이란 유명한 노름꾼인 것을 알아내고 산으로 유인, 돈을 뺏으려 하자 돈을 내준다. 이 돈을 서로 차지하려 자기들끼리 싸운다. 전운, 맹상훈, 남영진, 박경순, 박윤배, 서권순, 이숙, 차윤희, 한태일, 이원재, 강수영 김정 소원영 8 우리는 람보 1989년 12월 14일 포항 떼강도 사건

세차장에서 일하는 4명의 청년은 돈이 필요하자 자신들이 일하는 세차장의 금고를 털어 도망치고 이를 계기로 람보파를 만든다. 택시강도를 시작으로 살인, 강간을 하는 등 차마 사람의 짓이라 할 수 없는 범행을 경북 일대에서 저지르고 결국 경찰에 포위되자 농약과 총으로 자살을 기도하고 이때 경찰에 모두 검거된다. 김두삼, 이희도, 고영준, 강팔순, 김기주, 전인택, 한규희, 남능미, 김찬구, 노정아, 국정환, 윤창우, 서영애, 최현미 이홍구 김수룡 9 천국에의 초대 1989년 12월 21일 마약 사건

유흥업소에서 기타를 치는 청년은 흥이 나지 않자 업소의 종업원을 통해 마약을 사용하게 되고 그의 부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약으로 청년은 부인과 자식 그리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파멸하고 만다. 김주영, 이미지, 홍순창, 박상조, 김석옥, 김지영, 이수나, 서영애, 김영일 고선희 김준호 10 회전무대 1989년 12월 28일 80년대 범죄 양상 분석

수사반장과 10대사건 시리즈를 결산하면서 80년대 범죄가 갖는 특징들을 무대연극으로 재구성하고, 그 동안 수사반장으로 출연했던 최불암과 서울시경 형사과장 최중락[11] 총경의 대담으로 진행하였다. (해설) 최불암 (출연) 신충식, 한인수, 조명남, 김찬구, 김두삼, 전인택, 문용철, 한상미 김춘수 김수룡

참고 사항 [ 편집 ]

수사반장의 기획 의도 자체가 일제시대와 독재정권으로 크게 실추된 경찰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이 때문에 현실감을 가미하면서 경찰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년에 달하는 긴 기간 동안 많은 인기를 얻으며 대한민국에 수사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수사반장을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수사반장에 출연한 주요 경찰관 배역의 배우들은 장기간 경찰의 인간적 모습을 담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전원 명예 경찰관이 되었다. [12] 수사반장 역의 최불암은 명예경정, 수사관 역의 김상순은 명예경감, 조경환과 남성훈은 명예경위, 순경 역의 노경주는 명예경사에 각각 임관되었다. 이후 최불암은 2012년에 명예총경으로 진급되었다.

수사반장 역의 최불암은 명예경정, 수사관 역의 김상순은 명예경감, 조경환과 남성훈은 명예경위, 순경 역의 노경주는 명예경사에 각각 임관되었다. 이후 최불암은 2012년에 명예총경으로 진급되었다. 수사반장에 출연한 주요 경찰관 배역의 배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낮은 순서대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호정은 1978년 사망, 남성훈은 2002년 사망, 조경환은 2012년 사망, 김상순은 2015년 사망해서 현재 생존한 배우는 제일 높은 최불암 이다.

이다. 이 드라마에서 최불암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내용이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진다.”였다.

초기에는 지나치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것 때문에 실제 경찰에게 자문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최우수 수사관으로 뽑힌 최중락 총경이 자문을 담당했다. 최중락은 촬영팀을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과 동일한 경험을 하도록 하여 현실감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13] 이에 따라 최불암을 비롯한 경찰 역의 배우들은 실제로 경찰종합학교에 입교하여 경찰간부훈련을 받고 진짜 경찰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이에 따라 최불암을 비롯한 경찰 역의 배우들은 실제로 경찰종합학교에 입교하여 경찰간부훈련을 받고 진짜 경찰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인기가 수직 상승하자 수사반장 촬영 도중 최불암을 진짜 경찰로 오인하고 도망치는 실제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1회에서 주인공 한태주가 TV를 틀었는데 수사반장이 나온다.

로고 [ 편집 ]

구형 사용(1971 ~ 1984년)

구형 사용(1977년, 300회 특집)

구형 사용(1979년, 400회 특집)

구형 사용(1985 ~ 1987년)

구형 사용(1987년 ~ 1989년)

수상 경력 [ 편집 ]

1973 제 1회 한국방송대상 TV 남자연기상(최불암) [14]

1975 제 11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1978 제 5회 한국방송대상 TV연출상(이연헌)[15]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최불암 ”수사반장’ 김호정 남성훈 조경환 김상순 앞세우고 반장인 나만…’

배우 최불암이 ‘수사반장’의 마지막 동료 김상순마저 세상을 떠나자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25일 원로배우 김상순이 폐암으로 투병 중에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수사반장’팀에서는 1978년 김호정이 지주막파열 진단으로 가장 먼저 세상과 이별했고, 그를 대신해 ‘수사반장’에 투입됐던 남성훈도 지난 2002년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에는 ‘호랑이 선생님’으로도 유명한 조경환이 간암 투병 중에 사망했다. 이로써 이들을 이끌었던 ‘반장’ 최불암만이 남았다.

최불암은 26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상순마저 보내야하는 심정이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네 명을 앞서 보냈다. 내가 죄가 있어 이런가 싶다”라며 슬퍼했다.

이어 “김상순은 수사반장 때도 술 담배 안하던 사람이어서 폐암인 줄도 몰랐다. 최근 통화에서도 내색 안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한 번 보자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고 떠올렸다.

또 김상순에 대해선 “건실함의 산증인이었다. 그분처럼 성실하고 늘 한결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최불암은 “이승에서 못한 걸 저승에서 하자고 말하고 싶다. 네 명 모두를 지켜주지 못한 것 같고, 관리해 주지 못한 것 같은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며 동료의 죽음을 비통해 했다.

최불암은 김상순과 함께 1971년 3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 출연했다.

멀티미디어부 multi@

최불암“ ‘수사반장’ 故남성훈· 김호정씨 그립다” : 네이트뉴스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수사반장’ 재연 녹화장에서 김상순씨와 조경환씨 등을 보니 저세상으로 간 남성훈씨와 김호정씨가 너무 그립네요”최근 SBS ‘일요일이 좋다-옛날TV’에서 1971년부터 시작해 1989년까지 방송된 MBC최고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의 일회분 에피소드를 재연하는 녹화장에서 수사반장 박반장을 맡은 최불암이 한 말이다.‘옛날TV’박상혁 PD가‘수사반장’을 재연하겠다며 출연을 섭외하는 자리에서도 최불암은 “김호정씨나 남성훈씨 자제분이라도 섭외해서 출연시키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이들의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23일 오후 5시 30분에 방송될 ‘옛날TV’의 ‘수사반장’편에서는 18년전 ‘수사반장’의 형사로 출연했던 최불암을 비롯해 김상순, 조경환 등이 출연해 ‘수사반장’촬영시절 에피소드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또한 고정 패널들이 꾸미는 수사반장 특집극 ‘남편은 화물 아내는 화주’에선 최불암이 맡은 박반장역에 윤종신이 조경환이 맡은 조형사역에는 유재석, 김상순이 맡은 김형사역에는 신정환이 그리고 범인역에는 하하, 범인 부인역에는 남규리가 나와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수사반장’은 18년 동안 방송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시청자들은 반장역으로 나온 최불암에게 진짜 수사반장인줄 알고 수사 해결을 부탁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최불암은 “‘수사반장’이 방송될 당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을 편지나 전화를 통해 하소연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반면 살인범 등 흉악범역을 주로 맡았던 이계인은 “식사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주인이 범인으로 판단해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고 말했다.최불암은“‘수사반장’은 내 연기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다른 애착이 있다”고 말했다.‘수사반장’은 수사를 담당한 형사로 최불암, 김상순, 조경환 그리고 고 김호정, 남성훈씨가 맡았고 범인역은 주로 이계인, 임현식, 변희봉 등이 나섰다.[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된 MBC ‘수사반장’. 사진=MBC제공](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email protected])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 NO1.뉴미디어 실시간 뉴스 마이데일리( www.mydaily.co.kr ) 저작권자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드라마 <수사반장>의 시그널 뮤직은…

배우 최불암( 崔佛岩)씨가 경찰로 활약했던 드라마 <수사반장>을 기억하는 이가 많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은 1971년 3월 6일 첫 방송된 후 1989년 10월 12일까지 880회 방영되었다.

최불암씨는 수사반장 역으로 따스하면서도 정의감 넘치는‘박 반장’ 역할을 연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그가 긍정적인 경찰 이미지를 심어준 공을 인정받아 1972년 처음 명예 경찰로 위촉된 이후 50년 만에 ‘명예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극중 최불암과 김상순. 사진=조선일보DB

<수사반장> 이전에도 <형사>, <형사수첩> 같은 수사 드라마가 있었지만 18년 7개월 동안 롱런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최불암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수사물 이전에 휴머니즘이 담긴 사회고발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또 사회의 막힌 곳과 그늘진 곳을 파헤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이었다. 주인공 박 반장도 수사관이라기보다는 집안의 큰 어른이었고 정의를 세우는 한국판 보안관이었다.”

극중 김상순, 남성훈, 조경환씨. 사진=조선일보DB

초창기 <수사반장> 멤버는 최불암과 김상순, 김호정, 조경환씨 등 4명이었으나 1977년 김호정씨가 빠지고 남성훈씨가 중도에 투입됐다. 드라마 시작 전 경찰대학에서 열흘간 사격연습을 받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1주일간 수사에 관련된 용어와 기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일선 경찰들에게 수갑 채우는 법을 비롯한 각종 호신술과 법률상식 등도 익혔다.

당시 최씨의 나이는 31살. 극중 박 반장은 40대였다. 노련한 중년 수사반장 역을 소화하기 위해 머리에 분칠을 하고 이마에 주름살을 그려 넣었다.

출연진과 제작진의 의욕과 달리 수사반장은 방영초기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했다. 광고주 반응도 싸늘했다. 최씨는 당시 기업을 돌며 광고까지 때냈다고 한다.

그렇게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던 <수사반장>은 모방 범죄를 유발시키는 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소재고갈로 폐지에 이르렀었다.

<수사반장>하면 떠오르는 시그널뮤직(타이틀 음악)이 있다.

그 곡을 윤채현(尹彩懸)씨가 작곡했는데 본명은 윤용남으로 알려져 있다 . 또한 연주자 류복성( 柳福星 )씨의 타악기(봉고, 드럼) 연주도 잊을 수 없다.

<해병대 군악동우회>에 따르면, 윤채현씨는 1970년대초 KBS 쇼프로의 편곡자로 잠시 활동했고 ‘길옥균악단’에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대중가요로 <인형집아가씨>(가수 김아란), <기다리겠어요>(가수 최양숙), <돌개바람><학부인>(가수 임아영), <짬 좀 내줘요>(가수 화니씨스터즈), <여름의 훈장>(가수 장미화) 등을 발표했다.

1976년에는 극단 산하의 33회 공연 작품인 오스카 와일드의 의 음악을 맡은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류복성씨. 사진=조선일보DB

류복성씨는 미 8군 출신의 드럼 연주자로 출발, 약 50여 년에 걸쳐 재즈 타악기를 연주한 장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봉고 연주와 라틴재즈에 몰입하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박진감과 통쾌한 유머가 공존하는 스몰 빅밴드 ‘류복성 재즈 올스타’를 이끌었다.

참조 인용 : 《경향신문》 1997년 10월 4일자 29면 <나의 젊은 나의 사랑 탤런트 최불암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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