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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겨진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은, 지난 150년간의 … 그러므로 이제는 수메르 문명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 구약성서를 이해하기란 …
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5/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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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 ‘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창세기 …
Source: gospel79.tistory.com
Date Published: 6/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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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문명을 베낀게 사실로 드러나자 성서학자들 충격
이들의 문명은 기원전 3000년 전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성서고고학이 독점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중요한 …
Source: missionsos.kr
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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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성경은 수메르의 전설을 베낀 것이다? – 에펨코리아
… 바벨탑 등 성경만의 고유한 것들이라 여겨지던 얘기가. 실상은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수메르(Sumer)라는 문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Source: www.fmkorea.com
Date Published: 6/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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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간 쉬쉬해 온 성서의 숨겨진 사실들 – 월간개벽
이 책은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그 원전이 되는 수메르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신화와 전승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구약성서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
Source: www.greatopen.net
Date Published: 9/27/2022
View: 9587
수메르 – 창조과학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
Source: www.wonderfulnature.com
Date Published: 10/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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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수메르 문명 성경
- Author: CiC 미스테리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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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0. 7.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4dt1w3Na6Y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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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3. 고고학적 증거
– 성경에 나오는 사건, 지명, 유적에 관련된 실제적인 고고학적 증거가 있는가?
–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은 성경의 내용을 지지하는가?
지금까지 성경은 한 인물에 대해 묘사한 고대 역사문서 중 그 어떤 문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성과 신뢰도가 으뜸인 문서이며,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과 관련된 기록도 결코 허구의 산물이 아닌, 객관적인 역사적인 사건임을 다른 고대 문서와 역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성경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이 고고학적인 발견이냐 유물로 확인되는가의 여부입니다. 물론 고고학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이 성경의 역사적인 정확성을 입증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만일 고고학적으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 성경에서 밝혀진 내용과 일치된다면 성경의 진실성은 더욱 확고해지기 때문 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낱 신화나 전설로만 생각했지만, 고고학적인 발견이 누적되고 지속되면서 판타지 소설 같은 성경의 수많은 인물과 도시, 유물, 사건들이 문자 그대로 사실임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고 지금까지 알려진 고고학적 발견만도 이미 넘쳐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대표적인 사례들만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갈대아 우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갈대아인이 살던 ‘우르’ 라는 지역이 있었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기원전 1400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1장 31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한낱 전설과 같이 우습게 알고 수천년을 지나왔으며 최근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800년대 후반, 현재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갈대아 우르지방이 실제로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
위 지도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고, 티그리스 강이 그 위로 흐르고 있는 그 사이에 비옥한 땅이 유지되고, 지중해 까지 연결 됩니다. 메소(사이) 포타미아(강)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날 평지가 있는데 그 곳의 끝 부분이 우르지역입니다. 두 번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수많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18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아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서 그 지역의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철저히 했음이 발견되었고, 많은 점토판에 그려진 완벽한 지도들도 확인되었습니다.
2. 수메르 문명
세계사적으로 공인된 인류 최초의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수메르 문명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발달한 것인데, 수메르 문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쐐기문자(설형문자)입니다.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중의 하나는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여 밝힌 ‘ 길가메시 에픽’에 관한 기록 입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음을 반증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 ‘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아들중에서 장자권을 가진 자 ‘셈의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3. 하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란에서 살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하란에 머물러 있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해서(우르를 떠날때는 60세 가량) 그 하란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75세 때에 가나안으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도 중요하지만 이 하란이라는 지역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인데 최근 하란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이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은 지금의 시리아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과거에 매우 발달된 문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수메르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에블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에블라 문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은 ‘야’였습니다. 아마도 ‘야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바벨탑과 지구라트
창세기 11장 1-9절에는 ‘온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니…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니…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여기서 성이란 도시를 말합니다. 그냥 성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고대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든 사람 ‘니므롯’ 입니다. 니므롯이 통일제국을 만든 뒤 여러 가지 이질적인 종족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쉽게 다스리기 위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와 같이 도시부터 만든 이후에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이제 바벨탑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살펴 보겠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합니다. 그 신전중에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구라트가 그 당시에도 이미 오래된 역사를 가진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기원전 586년입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지구라트는 오래된 탑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기록뿐 아니라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BC500년 경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바빌로니아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는데,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5. 헷(히타이트) 족속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가 죽자 헤브론 지역의 막벨라에 있는 헷족속 에브론이 소유하고 있던 굴을 사서, 자기 아내를 묻 후에는 자기도 묻히고 아들 이삭과 후손들이 쓸 무덤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밭을 아브라함에게 팔았던 사람들이 바로 헷족속이라고 성경에 여러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이 히타이트 족속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100여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히타이트 족속이라는 것은 하나의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그 때문에 성경이 허무맹랑한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히타이트 족속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
헷족속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됨에 따라서 히타이트 문명권이 규명되었는데, 위의 터키 지도 상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히타이트의 중심부 입니다. 히타이트의 수도는 ‘핫투사’인데 터키의 현재 수도인 앙카라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핫투사를 수도로 해서 터키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비옥한 초생달) 전체를 지배하고 강력한 철기 문명을 바탕으로 해서 심지어는 이집트까지도 점령하여 대제국을 형성했음이 밝혀졌습니다.
6. 에돔 족속
창세기 36장 8, 11절, 기타 여러 곳에 보면 에돔족속이 있었고, 에돔 족속의 최초의 조상은 이삭의 아들인 에서이며, 에서는 에돔이라고도 불리었고, 세일 산이라는 곳에 거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나 에돔이라는 말은 모두 붉다는 의이입니다. 그런데 이 에돔족속이라는 것도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었고 다른 기타 어떤 역사적인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수천년간 성경이 허위라고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중동의 고고학적 발견이 붐을 일으킴에 따라서 세일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탐사하다가, 에돔족속이라는 집단이 그곳에서 수천 년간 거주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요르단의 페트라 입니다. 페트라는 보시는 바와 같이 바위산을 파 들어가 만든 건축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7. 여리고 성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에 있는 성중에 최초로 공격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여호수아 6장 15-17절을 보시면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죠? 성 주변을 돌기만 했는데 무너졌다니요..하지만, 과연 이것이 거짓이었을까요?
여러 고고학자들과 대영 박물관 탐사팀 등이 19세기부터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견을 시도한 결과 여리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방법으로 정복되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대영박물관의 탐사팀에 의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시대에 강도 6.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지질구조가 발굴 되었습니다.
8. 다윗과 골리앗
사무엘상 17장 48-51절의 기록에 의하면 엘라계곡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민족의 전쟁이 벌어졌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 중에 골리앗이라 불리는 거인때문에 이스라엘 용사중 많은 사람들이 벌써 엎어져 죽은 상황에, 다윗이라는 소년이 자기 형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어서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러 갔다가 그 거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멸하는 꼴을 보고 어린 다윗이 의분을 느껴 나가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때에 다윗이…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 어린 소년이 물매를 들고 나가서 한 방에 정통으로 맞추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하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93년 5월에 고고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고고학적 발견을 하다가 이마에 돌이 박혀있는 거인의 해골을 발견했는데, 이마 좌우거리를 측정하여 거인의 키를 계산해 본 결과 그 키가 2미터 90센티나 되는 거대한 체격의 거인이었음이 밝혀졌고, 연대측정 결과 약 BC 1000년경의 다윗시대에 죽은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발견장소가 팔레스타인 지역이고 체격이 거대하였고 이마에 돌이 박혀 있고 연대가 다윗 시대임을 종합해 볼 때, 이 해골의 주인은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의 유골임이 확실하다고 발표 하게 되었습니다.
9. 앗시리아의 침공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는 주변 약소국가들을 침략하고 세력을 키우다가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앗시리아의 침공시에 남 유다는 힘이 약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약 136년을 더 견뎌내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많은 고고학자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비난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당대 앗시리아가 얼마가 강력한 나라인데, 힘도 없는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이기겠냐며 믿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앗 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발굴된 실린더처럼 생긴 앗시리아의 비석에서 성경의 기록과 똑같은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앗시리아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러 갔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이 발견 된 것입니다. 아래그림이 산헤립의 원통형 비문입니다.
또한, 성경 열왕기하 20장 20절에 보면 산헤립의 침공 때 히스기야왕이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고고학적으로 그대로 발굴되어 오늘날에는 이곳이 예루살렘의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의 기록을 입증하는 고고학적인 발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모든 내용이 고고학적으로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고학적인 확증은 그에 해당하는 역사적 유물이 발견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고고학적인 발견 중 성경의 기록과 위배되는 것은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터무니 없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주장들도 결국은 고고학적인 발견에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기타 종교와 달리 유독 성경만이 ‘역사적’,’고고학적’인 검증과 공격을 집요하게 받습니다 . 그 이유는 바로 성경이 시대적,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특정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지어낸 소설이나 신화가 아닌, 구체적인 인물, 지명, 국가, 시대를 아주 자세하게 언급한 ‘역사의 기록’ 이기 때문입니다.
기타 종교 서적이나 신화들에 대한 반박이 별로 없고, 유독 성경만 이러한 집요한 포화를 집중적으로 받기 때문에 성경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혹시 생각하셨다면 그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다른 종교 경전이나 신화는 기록 자체부터 성경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 신뢰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앞서 살펴본바 있죠?), 구체적인 역사나 지명, 인물 자체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검증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검증할 기본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지, 그 자체의 역사성이나 진실성에 문제가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진품 명품일 수록 짝퉁이 활개를 치고, 진품 명품일수록 소비자들의 요구치가 높고 비판이 많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성경이 역사적 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 고고학에 의하면 구약전승의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와 19세기의 중요한 역사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과다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 의심들은 지금도 종종 제기되고 있는데, 그러한 의심들이 점차 근거가 없는 것들임이 밝혀지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이 거듭되면 될수록 성경의 내용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어서 역사적 사실로서의 성경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고고학의 권위자 울브라이트 박사)
” 성경의 기록을 부인한 고고학적 발견은 전혀 없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물들이 성경의 역사적 진술들을 개괄적으로, 혹은 세세하게 확증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팔레스타인 고고학 전문가 넬슨 글루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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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그날이 오면
수메르문명을 베낀게 사실로 드러나자 성서학자들 충격.
인류 문명의 발상지중 가장 그 기원이 오래된 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로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웠고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설형문자들을 발견하고 판독해 가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메르 문명 ;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
수메르인들의 기록과 연대는 아브라함 시대 보다 수세기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인간 세상에는 이미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들의 문명은 기원전 3000년 전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성서고고학이 독점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중요한 종교 도시인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다고 전하는데
본디 우르 사람이었던 그가 수메르 문명아래서 60여년을 살다가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적에 어느 나라의 말을 사용했고 그가 썼던 문자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자명해진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판독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야훼의 창조이야기, 에덴동산설화, 노아홍수 이야기, 욥기, 아가서, 바벨탑사건…등
수많은 내용들이 수메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밝혀지자 성서학자들은 충격과 참담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슈메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이며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보다도 무려 1천년 전의 문명이라는데에 고고학자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슈메르인들이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직조기술의 사용으로 옷을 물들여 입고 다닐 당시
히브리인은 문자도 없었으며 동물가죽을 벗겨입고 다녔었다.
성서학자들은 인류최초의 문명 발상지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여겼고, 에덴동산도 그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오던 터에
슈메르유적(지금의 이라크에 위치함)의 발견은 그야말로 전세계 크리스트교의 본질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슈메르에는 이미 에덴동산 설화가 있었고 에덴동산과 남자 여자가 등장하며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까지 성서와 너무나 흡사한 설화가 있었고 노아의 홍수와 흡사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노아라는 이름은 지아슈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는 성서가 슈메르 문자의 판독으로
이제 한낮 휴지조각에 처해지게 된 것에 성서학자들은 참담함을 감출수 없는 것이다.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습니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요,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이 이제 몇 년 되었습니까?
그런데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메르 상수도
수메르 건물
수메르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설형문자입니다.
수메르 문자 보시는바와 같이 이런 수많은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메르 문자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 '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아들중에서 장자권을 가진 자 '셈의 나라'라는 것이지요 .
수천년간 쉬쉬해 온 성서의 숨겨진 사실들
[이 책만은 꼭] 수천년간 쉬쉬해 온 성서의 숨겨진 사실들성경의 구약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희랍과 중근동 민족신화에서부터 왔다! 19세기 후반부터 근 150년 이상 발굴되고 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유물들을 평생 연구해온 민희식 박사의 주장이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근동지역 주민들에게 해당되는 설화일 뿐,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신화에서 차용되어 편집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그 원전이 되는 수메르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신화와 전승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구약성서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살아 있는지 규명해나간다.‘ 성서가 허구이다’라는 생각보다‘ 성서의 원형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책을 읽길 바란다(이하 본문내용 발췌).
창세기의 기원-수메르의 천지창조 신화가 원형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가 바다에 떠 있는 진흙을 가지고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에리두 창세기)
*진흙에 반란 주동자 신의 피를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 (바빌로니아 창세기)
*크눔 신이 나일강의 진흙으로 인간의 형체를 만들자 헤케트 여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집트 신화)
*프로메테우스가 흙을 반죽하여 신의 형상을 따서 인간을 만들자 아테나 여신이 코로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리스신화)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로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 (구약 창세기)
여호와 신-에블라왕국의 천신
노아의 홍수-길가메쉬 서사시가 풀어준 비밀
바벨탑-혼란의 시대
아브라함의 시대-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족장시대-아브라함·이삭·야곱
족장 요셉
【두 형제 이야기】 젊고 성실한 동생 안푸-형수가 유혹-거절함-거짓으로 고함-곤경에 빠짐
【요셉 유혹 설화】 젊고 성실한 요셉-주인의 아내가 유혹-거절함-거짓으로 고함-감옥에 갇힘
출애굽기-기상변화가 몰고 온 전염병과 사회혼란
사사시대士師時代
히브리 왕국의 번영
남북왕국의 멸망과 이산離散
근대에 들어 고고학 발굴로 수메르 지역에서 방대한 사료들이 쏟아져 나오자 수메르인들의 역사, 문화, 신화, 문학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수메르 문화가 헤브라이즘의 모태였음이 입증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에서의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모세의 율법, 욥기의 비극, 시문학 등이 모두 수메르의 신화에서 대대적으로 차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구약성서의 발원은 수메르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이 오늘날 성서고고학계의 정설이다. 수메르의 창조신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니푸르에서 발굴된 점토판 문서로‘ 에리두 창세기’라 불린다.인간 창조신화는 수메르 이집트 그리스신화를 거쳐 기원전 4세기경에 이르러서야 구약성서에서 아담 이야기로 각색되었다.‘에덴’이라는 말은 수메르어 ‘에딘’에서 기원하였다. 에덴동산이란 낙원에 대한 개념은 수메르의 이상향‘ 딜문’에서 왔다. 본래 에덴은 성서에서 말하듯이 지상낙원이 아니라, 초기 신화시대의 수메르의 신들 또는 신적 존재들이 먹을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끌려온 인간들이 노동하던 기름진 농경지였을 뿐이다. 실제 신들의 지상낙원은 딜문이었다. 구약 창세기에는 이 수메르의 신화가 그대로 흘러들어가 성서에서도 여호와 신이 아담을 정원지기라고 부르고 있다.첫째, 창세기가 서로 다른 전승자료가 뒤섞여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사제전승에서는 엘로힘이 우주 전체의 절대신으로서 천지창조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메소포타미아 창세신화의 딩기르(신)들이 수용된(모방)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둘째, 일신교인 유대교는 주변의 다신교와 대항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의 천사 개념을 수용해야만 했다. 유대민족이 가나안을 침략하기 전 그곳에는 풍요로운 농토가 있었고 선주농경민족인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주님)신을 믿고 있었다. 바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절대신이었으며 친척 신이 많았기 때문에 태양신을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가 되었다. 여호와 신이 바알신과 그와 합세한 친척신들에게 세가 밀리자 메소포타미아의 천사들을 수용하여 그들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 결과로 여호와 신과 천사들을 모두 ‘우리’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아담의 10세손이자 라멕의 아들인 노아가 600세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 신은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고 홍수를 일으켜 인류는 물론 세상의 모든 생물까지 멸망시키기로 하였다. 1849년 아시리아의 고도 니네베의 유적에서 노아의 홍수설화의 원전이 되는 메소포타미아 홍수신화의 점토판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 내용이 판독되었을 때 기독교계는 엄청난 충격파에 흔들렸다.수메르의 에리두 창세기는 바빌로니아의 대홍수 신화로, 다시 길가메쉬 서사시로 이어지면서 구약성서의 편집자들에 의해 노아의 홍수설화로 각색된 것이다.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몰살시키는 엘릴 신은 여호와 신으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사람 우트나피시팀은 노아로, 7일 밤낮은 40일 밤낮으로, 방주는 니무쉬산 꼭대기에 머물렀다로, 홍수가 끝나고 육지가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까마귀를 날려 보내는 내용은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내용으로, 제물은 번개를 바치는 것으로 번안하였을 뿐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실제로 있었던 대홍수 이야기가 노아시대의 홍수이야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노아의 홍수설화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히브리판인 것이다.“지구상의 인간들은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며 한가지 언어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신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하늘에 닿을 놓은 탑을 쌓기 시작하면서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몹시 강한 바람이 불어와 탑을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함으로써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벌을 내렸다. 그 결과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지고 서로 다른 민족으로 나뉘어졌다.”(바벨탑 이전의 수메르 전승신화)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이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바빌론에는 언어와 민족이 나눠지는 수메르 신화가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히브리인들이 구약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수메르와 바빌론의 전승을 바벨탑 이야기로 바꾼 채 거의 그대로 창세기에 옮겨 실은 것이다.아브라함 일족이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내용은 창세기에 있어서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신이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였는지, 왜 비옥한 고향 우르를 버려두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였는지, 왜 아브라함은 한번도 접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여호와 신의 지시에 따랐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아브라함은 과연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인가? 여호와 신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사라를 통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가나안으로 이끌었다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나 그가 가나안에 당도하였을 때 그에게 닥친 현실은 정반대였다. 여호와 신은 그에게 약속한 가나안의 땅도 주지 못하였으며 사라를 통해 많은 자손을 얻게 하지도 못하였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신의 계시를 듣고 고향 우르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결정으로 가나안으로 떠났을 뿐이었다. 비옥한 우르에서 신봉하던 농경민족의 여러 신들은 황량하고 단조로운 사막지역에서 단하나의 유목민족의 신으로 대체된다. 그들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들의 기도는 더 간절해지고 그럴수록 여호와 신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지고 체계화된다. 여호와 신이 사막 유목민에게 알맞은 신으로 선택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아브라함이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유화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신을 선택한 것이다.아브라함과 함께 우르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의 무리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부족을 형성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늦게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였듯이 이삭의 처 리브가(레베카) 역시 오랫동안 아이가 없다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으나이 위기를 안 레베카는 야곱을 자기의 친정으로 도망치게 한다. 야곱은 숙부 라반의 집에 가서 일하며 그 대가로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부인으로 맞이한다.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새도록 신과 씨름을 하여 이기고 신에게서 이스라엘Israel (엘신과 싸워서 이긴 자)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나라 이름이지만 원래는 야곱의 이름이었다.그런데 히브리의 쌍둥이 에서와 야곱 이야기의 원전이 그리스의 쌍둥이신화(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 신화)다. 쌍둥이가 모태에서부터 싸우는 대목, 왕권과장자권을 놓고 싸우는 대목, 차남의 도피행각, 귀향하여 계승하는 대목 등 두 신화의 공통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또 에서와 야곱의 차자상속신화는 히브리 민족의 영토확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론적 토대이자 민족이념교육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서로 상징되는 장자의 개념은 가나안의 토착 원주민세력을, 야곱으로 상징되는 차자는 우르(오늘날의 이라크)에서 이주해 온 아브라함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을 장자 에서로, 이스라엘을 차자 야곱으로 보는 것으로 대체된다.요셉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4분이 1을 차지하는 긴 내용이다. 요셉은 아브라함의 증손이다.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는 4명의 부인과 열두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요셉은 두번째 부인 라헬의 소생으로 열한번째 아들이다. 야곱은 요셉을 특히 귀여워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다. 그 때문에 형들이 시기하여 이미 앞서 말한 것처럼 유다가 중심이 되어 형제들이 그를 지나가는 애굽(이집트)상인에게 팔아버린다. 그런데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와 그리스 벨레로폰 신화가 요셉 유혹 설화의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두 형제 이야기와 비교하여 보면 등장인물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스라엘 역사가들은 사료의 조사와 검증연구의 결과, 고대 이집트에 히브리인이 집단으로 살다가 탈출한 기록은 없다고 공식으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를 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신화를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깨이지 못한 고대인들의 사고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내려 온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무지의 상태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아카드 왕 사르곤의 출생신화가 모세 출생신화의 원전이며, 함무라비 법전이 모세 십계명의 원전이다.구약성서에 의하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을 침공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390~1050년 경이다. 그들이 처음 점령한 곳은 예루살렘 북동쪽 24㎞에 위치한 ‘여리고’이다. 그곳은 요단강 계곡에 있는 성읍으로 땅이 비옥하여 농산물이 풍부하였다. 여리고 점령을 기점으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일대를 정복하게 된다. 그들은 토착민족을 몰아낸 후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12지파가 정복한 땅을 나누어 갖는다. 그렇다면 진정 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완전히 지배한 것일까? 사사시대士師時代는 족장지배에서 왕정이라는 강력한 통치체제로 옮겨가는 과도기로 대략 기원전 1390~1050년까지로 잡는다. 각 부족별로 느슨한 지파 동맹의 형태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국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각 지파 사이에 전승되어 온 사사이야기를 기원전 6세기 이후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편집된 것이다.이스라엘 12부족은 가나안에 터를 닦은 후 지속적인 팽창정책으로 주변민족들을 말살시켰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정복 목표로 삼고 토착 민족들을 계속 살육해 나갔다. 마침내 블레셋(팔레스타인)인들은 영토를 빼앗고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맞서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우수한 전략을 펼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공격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계약의 궤를 전쟁터로 운반하였다. 그들은 계약의 궤가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였다는 전설을 사실로 믿는 우를 범하였다. 전지전능한 여호와 신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처참하게 전멸하였다. 계약의 궤를 지키던 선지자 엘리의 아들들은 모두 살육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뒤로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계약의 궤는 블레셋(팔레스타인)인에게 노획되어 바알신전에 전리품으로 바쳐졌다.이로써 약 200년간 존속되었던 이스라엘 12부족 동맹은 붕괴되었다. 그런 가운데 엘리의 뒤를 이어 선지자 사무엘이 등장하고,그는 블레셋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터져나온 백성들의 왕정 요구에 부응하여 베냐민 족속의 청년 사울Saul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앉히게 된다. 이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왕과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 왕의 시대가 이어지는데, 이스라엘의 전역에서 수세기 동안 행해져 온 유적지 발굴에서도 솔로몬 왕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뒷받침 할 어떠한 고고학적 발견도 없었다. 그들은 솔로몬이 건설하였다는 성과 성벽도 사실은 솔로몬의 시대 이전에 이미 지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그들의 발굴로 다윗과 솔로몬 왕의 시대라고 하는 것도 다만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성읍에 한정된 지역왕조에 불과하였음을 밝혀냈다.기원전 1000년에서 950년경에 걸친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남쪽 유다왕국의 다윗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합병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이를 계승하였으나, 솔로몬 왕이 죽자 이 통일왕국은 70년 만에 다시 나뉘어졌다. 그 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에 의해 멸망하였다. 남왕국 유다는 기원전 605년 신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제 1차 바빌로니아 유수幽囚(잡아 가둠)가 발생하여 만 명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그 후 바빌로니아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자 제2차 바빌로니아의 유수가 일어나고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제국의 왕 고레스(카루스2세)가 칼데아의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면서 유대인은 다시 귀환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이 거주하던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여 그리스의 한 주로 편입시켰다. 이후 이집트와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며 기원전 63년 로마가 쳐들어와 이때부터 유대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약 2000년에 걸쳐 유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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