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1 편 설교 | 19860406 우리의 보호자 하나님, 시편 121편 1~8절, 옥한흠 목사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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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금) “시편 121:1-8”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121:1-8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의 원천은?(1-2절) 오늘 본문, 121편은 120-134편에 있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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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5/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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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트] 시편 121편 강해, 주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 유기성 목사 설교. [본문 말씀]. 시편 121편. ​. 1.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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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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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1편 강해 – 이동원목사

시편 121편 강해 – 이동원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시편121편을 함께 같이 나누겠습니다. 시편121편이 되겠습니다. 교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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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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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설교 – mission – 도우시는 하나님 (시편 121편 1절로 8절)

시편 121편 3절로 4절에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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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12/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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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1편 & 성경주석

<시편 121편 서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 121편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이것은 히브리 시가의 모든 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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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4/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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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목사 설교]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 크리스천투데이

시편 121편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들이 부른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져 살다가 중요한 절기 때가 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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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0/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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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 시편 121편 1 ~ 8절 / 고한율목사

주일 설교. (8/23,주일-오전)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 시편 121편 1 ~ 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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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ungok.tistory.com

Date Published: 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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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시편 121편 – 묵상과 기도

본문 시편 121:1-8 찬송가 413 내 평생 가는 길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는 말로 시를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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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sumchurch.sg

Date Published: 4/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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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시편 121장

121:1 산을 향하여 – 여기의 ‘산’의 정체를 결정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산이 ‘헤하림'(* )으로서 단수가 아닌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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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3/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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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0406 우리의 보호자 하나님, 시편 121편 1~8절, 옥한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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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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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금) “시편 121:1-8”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121:1-8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의 원천은?(1-2절)

오늘 본문, 121편은 120-134편에 있는 로 표제어가 붙은 ‘성전 순례시’ 중에서 2번째 시편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1-2절은 1인칭(나)을 주어로 표현하고, 3-8절은 2인칭(너)을 주어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시편이 순례길에 오른 부모와 자녀가 대화형식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말하기도 하고, 순례자들과 제사장들이 서로 화답하는 노래로 보기도 합니다. 만약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면, 순례자들이 1-2절에서 ‘나’를 주어로 하여 자문자답 형식으로 독백을 하였다면, 제사장들이 3-8절에서 ‘너’를 주어로 하여, 민수기 6장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과 같은 형식으로 노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론의 축복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입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오래 전에는 우스갯소리로 1절을 근거로 하여 시편 121편을 ‘식목일 시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도움이 산에서 오니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는 농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것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높습니다.

고대 중동에서는 이교를 숭배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들은 산에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 정상 여기저기에 자신들의 신전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신전에는 남녀 창기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며 그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 재앙을 막아준다는 약을 팔기도 하고, 부적을 팔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며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서 산 위에 있는 여러 신전들을 봅니다. 어느 신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바알신이 나를 지켜줄까요? 아세라 여신이 나를 지켜줄까요? 아니면 태양신의 사제들이 도움이 될까요? 달신의 여사제들이 도움이 될까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은 불변성과 영원성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거룩한 산 시온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눈을 들어 산을 본다는 것은 문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절을 히브리어성경 순서대로 번역하면 이러합니다. “내가 눈을 듭니다. 산을 향하여. 어디서 올까요? 나의 도움이.”

2절을 히브리어성경 순서대로 번역하면 이러합니다. “나의 도움이 여호와에게서 옵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

1절의 마지막 말은 ‘나의 도움이’이고, 2절의 시작하는 말도 ‘나의 도움이’입니다. 그래서 1-2절은 ‘도움’을 강조합니다. 이 단어는 ‘구조’, ‘원조(援助)’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전쟁 중에 위기에 처한 아군에게 군사와 물자 등을 지원하여 보낼 때에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즉 시인은 자신이 영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는데, 그 싸움을 싸워나갈 수 있는 힘, 도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도우실 수 있고,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도록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고백할 때에, ‘천지’속에 자기 자신도 들어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압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도움’이라는 단어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지어 주시며, ‘돕는 배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와가 아담의 보조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담은 하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 하와도 아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될 때에 자기 배우자가 좀 더 온전해지고, 이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을 좀 더 잘 치를 수 있습니다. 물론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하나님이 도움이 되십니다.

지키시는 하나님(3-8절)

3-8절까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을 삼중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첫째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순례자들을 실족하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하다’는 문자 그대로 발을 잘못 디뎌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혹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기가 쉽습니다. 또 운동신경이 활발한 때는 넘어지더라도 긁히고, 다리를 삐는 정도의 크지 않은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이 들수록 다릅니다. 연세가 높으신 분이 넘어져서 고관절(엉덩이뼈)을 다치게 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등산을 갔다가 실족하는 것입니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순례자들은 지금 고지대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실족하여 경사가 큰 곳으로 구르게 되면 아주 위험합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실족하다’는 우리의 인생 순례길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7:23-24에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우리의 인생이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은 우리의 능력이나 선함,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이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치안이 좋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밤에 도적이나 맹수들로부터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순번을 정해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고, 전문적인 파수꾼을 고용하기 했습니다. 불침번이든 파수꾼이든 인간인지라 경계를 서다가도 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돈이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여 돈을 파수꾼으로 세우기도하고, 권력이 보호해 줄 것이라고 여겨 권력을 불침번으로 세워보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건강이나 능력을 과신하여 스스로를 파수꾼과 불침번으로 세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였다가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여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께 항복을 선언하고,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고 찬송하며 나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는 둘째 의미는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다른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에 중동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신들은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위기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제사의식으로 신들을 깨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을 깨우는 제사들은 아주 요란했고, 공을 아주 많이 들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큰 위기라고 느낄수록, 그것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최고의 정성을 바친다는 의미로 자녀들을 불살라 바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성경에도 나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 450명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숫자가 많은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신들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 주위를 돌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더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 신이 다른 볼 일을 보고 있는지, 화장실에 있는지, 아니면 멀리 여행을 떠났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혹 자고 있으면 깨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알 선지자들은 그들의 예배 관습에 따라서 칼과 창으로 피가 나도록 자기 몸을 찔렀습니다. 하지만 저녁시간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차례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는 우리 알고 있는 그대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심은 얼마나 큰 소망과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5-6)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둘째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순례자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시며, 해의 위험과 달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여름은 모든 기록을 세울 정도로 몹시 무더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여름 낮 평균 기온이 32-37도나 됩니다. 이스라엘의 한 여름은 해마다 우리의 지난여름과 같습니다. 그런 곳에서의 그늘은 없어서는 안 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오른쪽(능력)에서 그늘이 되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도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일교차가 몹시 큰 곳이라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의 지켜주심은 표면적로는 낮의 무더위, 밤의 추위로부터 보호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낮의 해’는 육체적인 위험을, ‘밤의 달’은 정신적인 위험을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당시에 중동의 사람들은 밤의 달이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하여 밤에 두건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단어에서 정신이 아픈 것들을 달과 관련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문자적으로 ‘달의’이라는 의미의 단어, ‘lunatic(루나틱)’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고, ‘moonstruck(문스트럭)’은 ‘사랑에 빠져 정신이 이상한’이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그래서 ‘그늘이 되심’과 ‘낮의 해가 상하지 못함’,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함’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켜 주심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셋째 선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7-8)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환난에서도 지켜 주시며, 영원히 출입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성경에는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든 환난에서 지키시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면하게 하시며’라는 말이 없습니다. 환난에서 면제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환난에서 면제된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환난에서 면제된 인생’이 있다면, 그것 자체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난이나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아무런 환난을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대로, 부모와 자녀 관계(아들일 때에), 형제관계, 주군과 신하의 관계,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아버지일 때에) 등 환난을 겪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양과 같은 자신을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출입을 지켜 주신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아침에 일터로 나가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터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순례의 길을 출발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강도의 위험도 있었고, 길의 위험도 있었고, 우상숭배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잘 걸을 수 있음은 하나님의 지켜 주심의 결과입니다. 또한 우리가 태어나 인생을 출발할 때부터,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음은 하나님의 지켜주심 때문입니다.

순례자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성전으로 올라갔던 것은 그들이 단지 하나님의 백성됨 자체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더욱 백성답게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산을 보며 우리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확인하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경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눈을 들어서 우리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봅니다. 우리의 도움이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오지 않고,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오늘도, 한평생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실족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은 우리가 잘 걸었기 때문이거나, 조심해서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지켜주셨기 때문임을 되새겨 주심도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늘이 되어주시고, 낮의 해가 상하지 못하게 막아주셨고, 밤의 달도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바라옵나니 우리의 매일의 출입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신앙의 길의 들어오고 나감을 지켜주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주옵소서. 그리하여 날이 갈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을 살아,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침묵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롭게 귀가하시겠습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인정할 밖에 없었던 일은 무엇이 있었습니까?

2.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 하나님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3. 하나님은 우리의 그늘이 되시며, 낮의 해가 상하지 못하도록,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4.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신 것은 언제였습니까?

5.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설교 노트] 시편 121편 강해, 주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 유기성 목사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대진표 바꾸기”라는 글에서, 삶의 모든 경기에 두려움이 없다. 그 경기에 임하시는 대진표의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소년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다윗이 지지만, 하나님과 골리앗이 싸우면 골리앗이 진다. 모세와 바로 왕이 싸우면, 모세가 진다. 하지만 하나님과 바로 왕이 싸우면 바로 왕이 진다. 대진표에서 내 이름을 바꾼다.

하루 종일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 대진표 교체 작업을 한다. (후략)

정말 멋있는 글이다. 이것이 되는가? 대진표 바꾸기! 나와 세상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 것이다. 이것이 확신이 되면 대진표가 바꿔진다. 아무리 말을 들어도 대진표가 바꿔지지 않는다. 나와 세상이 싸우는 것이다.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 이것이 와닿는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확신을 하나님께서 주시길 원하신다. 이미 우리는 그런 은혜를 받고 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만 하나님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만 보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평상시에 아주 일상적인 삶 속에,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생활이 있는 사람이어야 어려운 일 속에서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4절,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를 지키신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믿고 함께하신다. 5절에,

5.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늘 되어 주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이 어떠한 재난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주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떠한 재난 중에도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어떠한 재난 속에서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이시다.

6~8절,

6. 낮의 햇빛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빛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7. 주님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8. 주님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 그 마지막의 약속은 내 영혼을 지켜주신다는 말이다. 내 영혼을 반드시 책임져주신다는 의미다. 이 약속이 우리 안에 이루어졌다. 우리 안에 주 예수님이 오셨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이 확실한가? 우리 안에 예수님이 와계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시편 121편의 모든 약속이 나에게 성취되었다고 믿는 이유,

로마서 8장 36~37절,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도살할 양으로 여김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데도,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 고백한다. 예수님 믿는다는 말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이 형편에서 사랑을 어떻게 찾는가!

38~39절,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확신 있는 선포를 할 수 있었을까? 말할 수 없이 비참하고 억울한 끔찍한 상황 속에서 말이다. 이런 고백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내 영혼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믿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시는 말씀인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

시편 121편 강해 – 이동원목사

시편 121편 강해 – 이동원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시편121편을 함께 같이 나누겠습니다. 시편121편이 되겠습니다.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한 절 읽고, 다음 절 여러분이 읽으시고 함께 같이 교독하겠습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오늘 시편121편을 함께 같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굳이 타이틀을 붙인다면 “인생의 길이 어려워질 때”. 여러분이 시편 120편부터 시작해서 134편까지 보시면 그 시편을 시작할 때 어떤 소개의 말이 그 앞에 붙어있습니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모두 15편의 시편들에 대해서 시편120편부터 134편까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흔히 이 15시편을 가리켜서 순례자의 노래, 이렇게 일컬어집니다. Pilgrim songs

왜냐하면 옛날 이스라엘 순례자들이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이라고 일컬어지는 유월절이라든지, 혹은 오순절 그 다음에 초막절, 이 절기가 되면은 이스라엘 국내에도 각처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나라 바깥 다른 나라까지 흩어져갔던 디아스포라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이 되면 가족들을 이끌고 다 예루살렘으로 다 모여듭니다.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은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게 되면 대부분 저 예루살렘 꼭대기가 시온산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학자들은 그 시온의 언덕이 그리고 예루살렘의 도성이 소위 홀리시티(holy city)-거룩한 도시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순례자들은 이제 거의 다 온 것을 안심하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거리, 그러나 마지막 대부분 남쪽 지역에서부터 여행을 해서 오는 순례자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유태 사막입니다. 주디아데저트라고 불리워지는 유대사막을 통과해서 예루살렘 도성으로 언덕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때 아마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마지막 난관이라고 볼 수 있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참고 견디면서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은 예루살렘 도성에 도달한다는 기쁨을 갖고 그들이 아마도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목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혹은 “순례자의 노래” 이러한 별명들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121편은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그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인접해있는 그 산들, 시온산, 감람산, 성전산, 이런 산들이 서서히 눈앞에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유대황야를 지나가면서 불렀던 노래로 생각됩니다.

시편121편의 그 구도는 크게 두 섹션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절부터2절까지는 한 순례자의 독백으로 되어있습니다. “모놀로그”. 한 순례자가 자기자신의 어떤 생각을 마음을 담아서 독백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모놀로그.

그러나 3절부터8절까지는 또 다른 순례자가 이사람 순례자의 그 노래에 대한 화답형식으로 노래를 하고있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두 섹션으로 나누어지는데 그런데 1절, 2절 그 첫번째 섹션의 한 순례자의 독백 가운데서 일종의 자문자답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자, 1절은 질문이죠?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내가 질문을 던졌어요. 또 스스로 대답을 합니다. 무어라고 대답 합니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이 첫번째 섹션이 1절2절에 이 노래 부분에서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뭐냐하면 1인칭 대명사입니다. 1인칭, 이것이 일종의 모놀로그, 독백이고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나”라는 단어입니다. “나” 내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래서 1절2절에서는 일인칭 대명사가 매우 중요한 단어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섹션인 3절부터8절까지를 보시면 이것은 다른 순례자가 화답하는거에요.

거기에서는 중요한 단어가 어떤 단어입니까? “너”라는 단어에요. 맞습니다. “너” 라는 단어가 아주 중요한 2인칭 대명사가 중요한 단어로 이제 등장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이것은 다른 사람이 노래하는 거에요. 첫번째 부분은 내가 노래하고, 내가 노래를 잘할 수 있으면 이럴 때 오페라식으로 노래를 부르면 참 좋겠는데, 하하. 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러면 옆에 함께 가던 다른 순례자가 나를 쳐다보면서 무어라고 노래할까요?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두 섹션으로, 처음은 무슨 섹션이냐 하면 “나” 섹션이고 그 다음은 뭐에요? “너” 나와 너의 섹션으로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죠

이 시편은 비단 그 이 성경이 기록되던 구약시대 그 당시에 특별히 시편 하나만 보아도 바벨론 포로후기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많다고 성경학자 들은 생각합니다.

포로생활이 끝날 때 그 무렵 그 포로의 고달픈 아픔과 그런 고난의 역정을 기억했던 그 사람들이 이제 인생의 새로운 소망을 저 시온의 언덕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그 감격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올라올 때 불렀던 이 노래, 그 순례의 길을 행하면서 이제 마지막 유대 광야 사막을 지나가면서 불렀던 노래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 당시에 순례자들에게도 이 노래가 얼마나 커다란 은혜와 힘이 되었을까요? 그러나 지금도 오늘 이 시대에도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과 저, 우리는 다 순례자가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됩니다.

그 나라가 우리의 영원한 나라, 우리가 사모할 나라, 우리의 진정한 나라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걸어가는 이 순례의 길이 어려워 질 때 특별히 인생의 길에서 우리가 사막을 통과할 때, 열사의 태양이 내려 쪼이는 우리의 숨을 허덕이게 만들고 갈증 나게 만드는 그런 고통스런 사막의 길을 지나갈 때 우리가 부를 수 있는 노래, 아름다운 노래 순례자의 노래 위로의 시편이 바로 이 시편121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이 시편입니다마는 시편의 내용을 좀더 깊이 묵상하면서 이 시편의 내용이 우리 인생의 순례의 길에 힘이 되고 소망이 되고 또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의 길이 어려워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 무얼까요?

첫번째로 이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십시요.

인생이 어려워질 때 또 우리가 삶의 스트레스를 느낄 때 곤고함을 느낄 때 우리는 종종 산을 찾고싶어 지는 때가 있습니다. 산행을 하고 싶어질 때가있죠? 우리가 찾은 모처럼의 산길, 혹은 산자락 어느 모서리에서 우리는 그 자연의 품에서 안식을 느낄 수가 있고 어느 정도의 회복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편의 순례자도 같은 심정이 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유대사막을 지나서 이제 시온의 언덕이 그들의 눈앞에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 산들이 여기 저기,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예루살렘 자체가 높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산들이 보입니다. 시온의 산이 또 성전이 서 있었던 성전산, 감란산 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산들을 탁 보았을 때 그 산에 안기고 싶은, 그런 마음들을 아마 이 순례자들이 느꼈을 것입니다. 산들을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그것은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었고 기쁨이었고 능력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기자가, 그리고 이 순례자가 마침내 깨달은 진리는, 도움은 그 산 자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산을 지으신 여호와께로서 그 도움이 온다는 사실을 그는 여기서 고백하고 있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이 시편기자가 순례자가 정말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에 압도가 되면, 우리가 자연에 압도가 되면 그 자연을 숭배하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낍니다.

특별히 고대인들, 또 구약시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는 이스라엘에는 특별히 바알 숭배자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그 바알의 신전, 제단들은 산 꼭대기에 세워집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그 산의 정기를 느끼며 산의 아름다움에 도취하고 압도당할 때 그들은 산을 숭배하고 싶은 어떤 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또 다른 신, 어떤 신, 혹은 산의 신, 혹은 풍요의 신, 생식의 신, 이런 신들에 대한 제단을 산 꼭대기에 만들어 놓고 신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많은 다수의 강력한 자연 숭배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뉴에이지 운동가들 이에요. “뉴에이지 운동” 소위 뉴에이지 운동가들의, 그들의 여러가지 사상이 있지만 그 사상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가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을 찬미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 입니다. 또 자연을 잘 관리하는 것도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참여해야 할 자연에 대한 청지기적 책임가운데 하나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흔히 우리가 신론을 말할 때 범신론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범신론, 팬티즘(pan-the-ism) 범신론이라는 것은 피조물과 창조주를 혼돈하는 것 이에요. 피조물을 창조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이 아름다운 나머지, 자연을 예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연을 숭배하게 되면 자연이 신이 되어요. 그것은 그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망각한 채 피조물을 신으로 혼돈하는 착각하는 우상숭배자 들의 일종의 생각의 구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 안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그런 타락한 인간의 성형이라고 로마서 1장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번 우리 로마서1장을 한번 같이 찾아보시지요.

로마서1장20절 말씀 이에요. 로마서1장20절 말씀입니다. 로마서1장 20 ~ 22절까지, 로마서1장20절, 21절, 22절, 23절 네절을 우리 함께 같은 목소리로 낭독합니다. 다같이 시작.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네,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창조물 안에서 자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과 그 능력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중에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을 알만한 증거들이 없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라고 핑계하지 못한다, 이렇게 지적하고 있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리고 창조주의 어떤 능력과 경이로움을 그들의 마음속에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타락한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도 이 타락한 인생이 취하는 길은 뭐냐하면 마지막 절에 말씀처럼 23절의 말씀처럼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 하나님 영광대신에 하나님 자리에 사람을 놓고 사람을 숭배한다든지 사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자연 못지않게 아니 자연이상으로 최대의 하나님의 경이로운 피조물이 있다면 인간이죠.

그래서 사람을 숭배하는 일도 많았어요. 사람을 숭배하는 일들도. 로마시대 로마의 황제들을 신으로 숭배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람을 신으로 섬기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사람이 아닌 금수와 버러지 형상, 자연 속에 있는 어떤 동물이나 이런 것들을 오히려 신처럼 숭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혼돈하는 우상숭배의 죄악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편기자는 이 순례자는 산이 아름답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산이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의 진정한 도움은 저 산이 아니라 저 아름다운 산을 만드신 누구? 하나님에게서 도움이 온다는 사실을 그는 오늘 이 시편을 통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자가 비로소 우리의 삶에 완벽한 구원자가 되실 수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창조주만이 하늘과 땅을 만물을 그리고 나를 지으신 그 창조주 하나님 만이 인생에서 우리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비로소 완벽한 도움이 되실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스토리 입니다마는 제가 미국 가서 맨 처음 공부했던 도시가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 라는 그런 도시였어요. 아주 오래 전에 그 도시에서 제가 나갔던 교회 목사님께 처음 들었던 얘기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에 이 디트로이트라는 자동차 공업으로 유명한 이 도시에 자동차 정비사 한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가면 뭐 포드 라든지 뭐 이런 유명한 자동차 지엠 회사들이 다 디트로이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기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유명한 자동차 정비사 한 사람이 자기 차를 몰고 추운 겨울에 회사로 출근하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났어요. 그래서 차를 옆에 세워놓고 뚜껑을 열고 어디가 고장이 났나 하고 열심히 추운 겨울에 살펴보고 있는데 이 사람이 유능한 정비사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 쩔쩔매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세단 하나가 지나가다가 옆에 딱 서더라는 거죠. “도와드릴까요?” 속으로 얼마나 가증 스러웠을까요? 내가 이 도시에 최고가는 정비사인데 내가 고치지 못하는 것을 누가 고치겠는가? 아마 이런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한번 제가 봅시다” 하고서 이렇게 몇군데 보더니 그 다음에 “한번 스타트를 해보시죠” 스타트를 하니까 돼요. 그래서 정비사가 깜짝 놀래 가지고 그 신사에게 죄송하지만 선생님 누구십니까? 그러니까 명함 하나를 딱 주더래요. 명함을 딱 보니까 거기에 헨리 포드. 네, 자동차를 만든 사람 그 회사의 사장, 자동차를 만든 사람, .그 만든 사람이 고칠 수가 있잖아요.

네, 나를 만드신 분, 그 분보다 나를 더 잘 도와줄 수 있는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시편기자는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다가 그러나 그 산을 만드신 그 하나님만이 진정한 내 인생의 길에 도움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생의 길에 도움이 필요하거든 여러분 우상을 찾지 마세요. 우상을 찾지 마세요.

우리는 때때로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참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 보다도 눈에 보이는 우상을 찾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급해지면 어디 가서 뭐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참되고 살아계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만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길에 진정한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오늘 이 순례자와 더불어 함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길이 어려워 질 때 그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우리 인생의 길이 어려워질 때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 가십시요.

인생의 길이 어려워질 때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십시요. 우리가 인생의 길에서 고난을 당할 때 고난 그 자체보다도 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외로움일 것입니다. 이 고난의 길을 나 혼자 걸어야 한다는 뼈저린 외로움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이 고통을 대신할 수 없다는 그 뼈저린 외로움이야 말로 그 고난이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일 수가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함께 인생의 길을 같이 걸어줄 수가 있다면 그리고 더불어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순례의 길을 훨씬 더 우리는 잘 견디며 걷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시편의 구도에서 1절과2절에서 강조된 단어는 무슨 단어였어요? “나” 라는 단어에요. “나” 내가 산을 향하여, 그러나 3절부터 마지막 절 까지 두번째 섹션에서 강조된 중요한 단어는 무어라고 그랬습니까? “너” 나와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너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너”. 또 나에게 너라고 불러주면서 나를 격려해 줄 수 있는, 나를 너라고 불러줄 수 있는 친구가 순례자가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크다란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런 동행하는 순례자의 필요성의 중요성에 관해서 우리는 전도서4장의 유명한 교훈을 기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한번 전도서4장 한번 찾아보십시다. 전도서 4장, 전도서4장9절부터. 전도서4장 9절부터12절까지, 제가 9절 읽고 10절 여러분이 읽고 11절을 제가 읽고 12절을 여러분들이 읽겠습니다. 전도서 4장9절부터.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 임이라

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

느니라

네, 인생의 길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유한다는 것, 얼마나 소중한 일이예요?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내 인생의 모든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리고 함께 내 인생의 미래를 더불어 꿈꿀 수 있는 한 사람이 내 인생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크다란 축복일까요?

저는 인생의 순례의 길에서 그래서 친구의 선택처럼, 친구의 선택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부부는 특별한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남편이나 아내는 일종의 아주 특별한 친구에요 친구 가운데서도 친구, 아주 스페셜 프랜드(special friend), 그래서 부부생활의 축복은 정말 부부가 마음을 함께 할 때 그 서양의 아주 고전적인 결혼 주례가들이 결혼 주례를 하게 되면 기독교 목사님들이 꼭 하던 얘기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 하므로 앞으로 슬픔은 반으로 줄어 들것이고 기쁨은 배나 더할 것입니다. 그것이 부부생활의 축복이죠. 부부가 정말 마음으로 함께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때 함께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은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배나, 갑절이나 더 증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하기 위해서 부부가 된 그 대상이 정말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없는 친구가 되지 못할 때 또 그것처럼 인생에서 고통스런 사건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어느 잡지에서 제가 읽었습니다.

미국 축구, 미식 축구하는 그 풋볼 코치하는 사람이 감독이 한 2년째 성적이 계속 부진한 거에요 그러니까 친구가 없어져요. 자꾸만 인기가 떨어지고 사람들한테 계속 비판만 받고, 왜 성적이 그 모양이냐? 주변에서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없어지고 다 떨어져 나가기 시작해요. 나중에 지나가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이 사람이 언제 해고되느냐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사람 마음이 너무너무 비참했겠죠. 그때 보니까 자기를 따라다니고 자기를 환영하고 반겨주는 것은 꼭 하나밖에 없더래요. 자기가 길러주는 개 밖에 없더래요. 개만이 꼬리를 여전히 치면서 자기를 환영하는 유일한 존재가 개 밖에 없더래요.

그래서 어느날 자기의 와이프도 싫어하는 것 같더래요 자기를, 자기의 와이프도. 그래서 와이프 앞에서 이런 얘기를 했대요. “여보 인생에서 나는 정말 내 마음을 알아주고 외로움을 알아주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 친구 하나를 발견했소 내가 이런 일을 당해보니까 정말 이 개 밖에는 나의 친구가 없소”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슬쩍 와이프를 쳐다보면서 “내가 이런 친구를 또 하나만, 내 인생의 길에서 친구 둘만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내 인생의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돌파해 나가고 내가 극복해 나갈 수가 있을 것 같소” 하면서 와이프 얼굴을 딱 쳐다 보았단 말이죠. 그런데 와이프가 웃더니 “알았어요. Ok, 알았어요” 그러더래요. 그러더니 그날 저녁에 개 한 마리를 더 사가지고 왔다고 그래요. 하하하. 내가 오늘 개 얘기만 자꾸 하는지 아까도 얘기했는데. 하하.

진정한 친구가 누굴까 진정한 친구. 저는 오늘 이 시편을 통해서 진정한 친구의 자격이 있다면 세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실족할 때 넘어질 때 나를 비판하지 않고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 내 인생의 길에서 가다 보면 내가 돌을 차고 내가 넘어질 수도 있다 말이죠 실족할 수도 있어요. 내가 실족할 때 나를 비판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사람.

두번째,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그냥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친구에요.

그 다음 세번째 하나만 더 첨부한다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사람,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 수가 있는 사람.

저는 오늘 이 시편의 순례자는 그런 행복한 순례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는 친구를 갖고 그들은 함께 순례의 길을 걷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아마도 이 순례자가 이제 거의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면서 그동안 걸어왔던 그 먼 장정 때문에 피곤을 느끼고 그의 발걸음은 흔들리기조차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가 아파하고 피곤해 하다가 갑자기 눈을 들었을 때 저 앞에 바라보이기 시작하는 예루살렘 언덕에 둘러싸고 있는 병풍처럼 둘러싸인 시온의 산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이렇게 탄식처럼 아마 노래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렇게 하면서 정말 하나님을 향한 도움을 구하고 싶었을 때 옆에 함께 가던 순례자가 그를 쳐다보면서 노래했을 거란 말이죠.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그 분은 졸지 아니하신다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편이에요. 그렇게 함께 화답할 수 있는 순례자가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인생의 길에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신앙의 순례의 길에서 이런 친구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신약성경도 우리에게 역설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10장을 한번 더 찾아보겠습니다.

히브리서10장. 한번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히브리서10장, 히브리서 10장입니다. 히브리서10장22절부터, 22절은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가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그의 흘린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이제부터 우리 일생은 하나님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는 삶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여정, 인생의 길은 결국 그 내 삶의 주인 되신 한 고향이 되신, 내 존재의 고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여정, 조니(journey) 그게 인생이라는 말이죠.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런데 그 다음절에 보시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그 다음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그런데 그 하나님께 나가는 동안에도 혼자 나갈 수가 없는 거에요. 친구들이 필요해요. 믿음의 친구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는, 사랑을 격려하고 선행을 격려할 수 있는, 인생을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실족하고 넘어질 때 나를 비판하기보다 다시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시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그 분은 당신이 일어나기를 원하신다고, 그 분은 당신을 지키시는 거라고 여기까지 동행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그 순례자의 친구를 갖는다는 행복, 저는 교회 공동체의 가장 커다란 축복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지는 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 인생의 어떤 고난도 견딜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인생의 길이 어려워질 때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십시요.

그리고 세번째는 하나님의 지키심을 믿으십시요. 하나님의 지키심을 믿으십시요.

이 짤막한 본문에 보면 이 시편에 지킨다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옵니까? 그래서 몇 절에 나옵니까?

몇 절에 나와요? 이것은 실력 없어도 시력만 있으면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잘 보세요. 몇 절에 나와요?

3절 한번 나오고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

또 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

또 5절 녜,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5절 다음에 그 다음에 몇절 이에요?

7절, 7절에 두번 나오죠 너를 지켜,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또 그 다음에 뭐에요?

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 짤막한 시편에 몇 번씩이나 나옵니까? 모두 몇 번 나왔어요? 6번나왔나요? 네, 6번.

네, 이 짤막한 시편 가운데서 계속해서 함께하는 순례자가 그에게 주고있는 격려가 뭐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특별히 이 순례자 친구는 공동체의 고백을 개인적 고백으로 적용시키고 있는 것을 관찰해 보십시요.

여기 4절에서5절로의 전환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4절에서5절로 어떻게 전환하고 있는 것인가를 보세요. 4절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 민족의 공동체. 선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는 그 하나님, 지키시는 자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지키시는 하나님이 바로 누구를 지키신다? 5절에서는 “너를 지킨다”

교회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요. 우리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또한 우리 개인의 인생의 길에서 우리 개인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지키심의 영역이 이 시편에 보면 얼마나 포괄적인지 몰라요. 지키심의 영역이 아주 포괄적이에요. 우선 모든 때에 지켜 주십니다. 6절에 보면 낮에도 뭐에요? 밤에도.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않고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않도록 낮에도 밤에도 지키시는 바로 그 분.

또 7절에는 모든 형태의 환난에서 지키시는 그 분. 모든 형태의 환난에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그랬어요. 모든 형태의 고난에서 지키시는 하나님.

또 8절에는 모든 경우에서, 모든 경우에서, 8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들어가는 일도 나오는 일도, 모든 케이스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그 다음에 모든 기간동안 지금부터 해서 언제까지? 영원까지 모든 기간 동안에 지키시는 하나님.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하나님, 언제나 깨어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주무시는 법이 없습니다. 마치 입시 공부하는 어린 아들이 염려스러워서 그 공부하는 아들 곁에서 밤을 꼬박꼬박 지새우시는 어머니들처럼 그러나 엄마들은 그러다가 졸지만, 그러나 그 하나님에게는 주무시는 법이 결코 없으시는 그 하나님. 그렇게 언제나 우리를 항상 지켜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말씀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면제한다는 약속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 친구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생겼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왜 이런 고통이 생겼습니까? 아마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 거에요.

그런데 가만히 읽어보시면 이 순례자도 이미 고난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래서 도움을 호소하고 있는 거에요. 왜 지키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떤 고난은 허용하실까요? 그건 몰라요 나한테 묻지 말아요. 그 분이 아세요. 그러나 고난조차도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판단하신 그 하나님이 어느 정도의 고난은 아마 허용하실 거에요. 그러나 고난을 허용하신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반드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자, 뜨거운 사막의 태양은 여전히 내려 쪼이고 있어요.

그래서 이 태양 앞에 나는 아주 질식해 버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드리우고있는 그늘을 보는 순간 얼마나 이 순례자는 기뻐했을까요. 그 하나님이 내 우편에서 내 그늘이 되신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준비하시고 사막의 그늘을 준비하시고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 하나님 인생의 길은 확실히 고통이 있어요. 환난이 있어요. 눈물도 있어요. 아픔도 있어요. 어둠도 있어요. 그러나 그 고통 속에 다가오셔서 다시 나를 붙드시고 위로하시고 지켜주시는 그 하나님.

낮에 태양이 나를 공격하는가 하면 밤중의 달까지도 우리를 공격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사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정신병에 걸릴 때 그것을 문 스트라이크, 그 달빛의 공격 때문에 정신병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달을 무서워했다고 그래요. 태양도 때로는 무섭고 달빛조차도 무서울 수가 있어요.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우리를 둘러싼 삶의 환경이 다 나를 공격하는 세력처럼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넉넉한 그늘로 나를 품에 안아주시는 그 분. 그 분이 있는 한, 환난은 있지만 그 환난 속에서 지키심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본문이 약속하는 궁극적인 지키심은 단순히 환경이나 육체에 대한 지키심이 아니에요.

영혼에 대한 지키심이예요. 이 단어를 주목해보세요.

7절, 다시 한번 7절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뭘 지키신다고요? “네 영혼” 네 영혼을.

때로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 가운데 고통을 허용하시는 이유, 육체의 질병을 허용하시는 이유. 환경의 혼란을 허용하시는 이유. 그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내 영혼을 순결하고 아름답게 빚어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때때로 어떤 고난을 허용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허용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영혼만은 견고히 지키십니다.

내 영혼이 순결하도록 내 영혼이 아름다워 지도록 그리고 하나님 앞에 빛나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설 수 있도록 환난을 허용하시고 환난 속에 지켜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은 인생의 순례의 길에 어둠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노래하는 자들이 될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스페인 격언에 이런 말이 있어요. 돌이 많은 시내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다. 다같이 “돌이 많은 시내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다” 네, 돌이 없는 시내에 가면 노래가 없어요.

그냥 쫄쫄쫄쫄, 돌이 많은 시내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듭니다.

때로는 역경이 우리의 아름다운 영혼을 선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여러분 인생에서 역경이 올 때 그리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시련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할 때 시편 121편을 펼치세요. 이 시편을 읽어십시요. 그리고 이 시편을 노래 하십시요. 그리고 이 시편의 주인이신 그리고 산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넉넉한 도움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노래하시겠습니다. 이 노래를 노래하시겠습니다. 우리 찬양 팀하고 같이 우리 지구촌 296장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찬양하시면서 헌금하겠습니다. 찬양하시면서 헌금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에 해와 밤에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에 해와 밤에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출처: 하늘문>

도우시는 하나님 (시편 121편 1절로 8절)

도우시는 하나님 (시편 121편 1절로 8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사회에 나가면 친구의 도움을 받고 선배의 도움을 받고 형제의 도움을 받고 남편과 아내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이미 받았고 현재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할렐루야! 우리가 이 땅에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삶을 돕고 계십니다.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오직 우리의 도움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한 것을 생각하면서, 위험한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간절히 지은 시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부른 찬송의 시 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짐승의 공격이나, 강도의 습격이나, 질병이나, 위험이나, 어려움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바라며 이 찬송의 시를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현재 가고 있는 그 목적지까지 무사히 함께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마치 나그네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가는 것처럼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그 길이 험하고 온갖 어려움이 있고 위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도움을 구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편 121편을 보면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짧은 시에 지켜 주신다는 말이 6번이나 반복되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우린 이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지켜 주시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신다고 했는데 과연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지켜 주십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시편 121편 3절로 4절에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광야 길을 가다가 보면 때로는 구덩이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낭떠러지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때로는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받는 자는 구덩이나 위험한 곳에 빠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시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영적인 관계를 바로 맺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실족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족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그 때, 그 때 우리 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졸거나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시편 139편 10절에 보니까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고

시편 48편 14절에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말씀했고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니까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했고

신명기 32장 10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했고

시편 40편 2절에 보니까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우리를 견고케하여 주셔서 넘어지거나, 실패하지 않게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순종하며 말씀 가운데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 머뭇머뭇 거려서는 안 됩니다. 곁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조심하고 게으른 걸음을 경계하며 똑바른 걸음으로 나가야 됩니다. 인생길이 험하고 마음이 지쳐서 살아갈 용기가 없어지고 병에 걸리고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서 응답하시고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시험에 들기 전에 깨어서 기도하고 철야하고 금식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상하지 않도록,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항상 보호하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죽을 때까지 지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도, 사랑하는 사람도 생명이 다하면 떠나가지만 영원히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므로 마음의 위로와 평강을 얻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21편 5절로 6절을 보니까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지역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습니다. 그러므로 낮의 해와 밤의 달을 피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낮이나, 밤이나 우리의 그늘이 되어 주셔서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그렇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므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앞장서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뒤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멋대로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불기둥, 구름기둥 안에 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고 하나님께서 멈추시면 우리도 멈추어야 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죽음 가운데, 실패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중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안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사고와 위험이 없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 객지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창세기 28장 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가 필요할 때는 지혜를 주시고 능력이 필요할 때는 능력을 주시고 힘이 필요할 때는 힘을 주셔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환란에서 건져주십니다.

시편 21편 7절로 8절에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시는 하나님은 모든 환란을 면케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 동안 재앙이나, 기근이나, 질병이나, 가난이나, 슬픔이나,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환란을 면케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고 지켜주므로 이 환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모든 불행과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 당할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환란 중에서도 역사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다급해 지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불가항력적인 힘 앞에서는 하나님께 손을 들고 눈물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환란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목자가 양 무리들을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늘 좋은 데로 인도해 주셔서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배고파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셔서 그들을 먹여 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갈할 때에 반석을 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의 목을 축여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때에 따라서 모든 육신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때를 따라 우리들에게 생명수와 생명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풍족한 은혜를 내려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풍성하도록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넘치도록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으십시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하나님 안에 사십시오. 비바람이 몰아쳐도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 안에 거하시고 접촉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 비가 오지 않는 것만이 가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인생은 모두가 가뭄인 것입니다. 가뭄이 물 한 통 퍼부어서, 양수기로 퍼 올려서, 헬리콥터로 물을 뿌려서 해갈되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만 해갈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뭄은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하나님의 손길은 아무리 멀고 깊고 험한 곳이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일지라도 못 미칠 곳이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완벽한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행로에서 찾아오는 건강, 물질, 사랑, 영의 가뭄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완전히 해갈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가사를 생각하면서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너를지키시는자 너의 우편에 그늘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자 너의 환란을 면케하시니 그가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출처/박응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시편 121편 & 성경주석

<시편 121편 서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 121편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이것은 히브리 시가의 모든 유산 중 가장 소중하게 간직된 성경의 시들 중 하나이다. 다윗은 사무엘의 죽음을 알게 된 직후에 바란 광야에서 시 121편을 지었다(부조와 선지자, 664). 다윗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그의 지상의 친구가 떠나간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직 하나의 희망을 찾아 여호와께로 향했다. 이 시는 시인이 처해 있던 환경과 거의 유사한 환경을 한 번 혹은 그 이상 직면한 적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되어 왔다. 시 121편은 순례자들이 연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불렀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538; 시 120편 서론).

<시편 121편 개역한글>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편 성경주석>

121:1 산을 향하여.

많은 주석자들은 이 산들이 예루살렘의 산들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성소가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처로 여겨졌고,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근원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또 다른 해석은 이교도들이 그들의 우상 신전들을 그 고지에 세워놓은 팔레스타인의 산들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교도들이 그들의 제단에 불을 붙이던 주위의 산들을 바라보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부조와 선지자, 538).

121:1 어디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도움을 받는 것은 언덕이나 산들로부터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이다(참조 렘 3:23).

121:2 여호와에게서로다.

1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비상사태에도 대처하실 수 있다.

121:3 않게 하시며.

여기에 쓰인 부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알(’al)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는 표현에도 사용되었으며, 이 구절을 “네 발이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않기를 바라노라”라는 소원 혹은 기원(祈願)의 어투로 만든다. 이 말들은 아마도 순례자의 한 무리가 실제로 대꾸하는 다른 무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취지의 노래로 불렀을 것이다. “전혀 그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므로,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성벽 위에 있는 인간 경비원처럼 경계를 소홀히 하지도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계는 지칠 줄을 모른다. 영원하신 분께서는 결코 피곤하지 않으시고 그의 지상 자녀들의 필요에 언제나 민감하시다.

121:5 네 우편.

거룩한 보호자께서는 즉시 도와주실 수 있다(참조 16:8).

121:5 네 그늘.

작열하는 햇볕과 불타는 듯 더운 나라에 사는 자에게는 분명 설득력 있는 보호에 대한 표현이다.

121:6 상치 아니하며.

태양이 권세를 받아 큰 열로 사람들을 태우게 될 마지막 날들에(계 16:8, 9),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약속에서 위로를 발견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28~630).

121:7 환난.

히브리어 라(ra‘), 도덕적 및 육체적 환난 모두를 가리킨다.

121:8 너의 출입.

여호와께서는 끊임없이 그의 자녀들의 모든 일을 지키신다.

“하나님은 너를 지킨다, 죄와 해(害)에서,

여호와는 너의 영혼을 지키고, 바라보신다,

너의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8/23,주일-오전)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 시편 121편 1 ~ 8절 / 고한율목사

(8/23,주일-오전)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 시편 121편 1 ~ 8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39장, 365장, 382장, 53장

150823_나의 도움이신 하나님(시편121편1절-8절)_고한율목

오늘 읽은 시편 121편 바로 위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이 800m 산 위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시편 120~134편 까지가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러면 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언제 불려 졌을까요?

오늘 읽은 시편 121편 바로 위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이 800m 산 위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시편 120~134편 까지가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러면 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언제 불려 졌을까요?

시편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들은 이 노래들이 아마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불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유월절이나 초막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온 유대 땅과 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찾아왔는데, 바로 그 때 불렀던 찬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성전을 향해 먼 길을 여행하는 순례자들의 노래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는 이러한 순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 근처에 살던 사람들만 아니었습니다. 세계 방방곳곳에서 모여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며칠이 걸려 성전에 도착했지만, 몇 달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몇 달 동안 집을 비워야 했고, 그들이 하는 생업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순례 길은 얼마나 위험했는지 모릅니다. 곳곳에 강도떼들이 숨어 있어서 순례자들의 재산과 목숨을 노렸습니다. 그 당시 긴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사막지역을 통과하고, 또 어떨 때는 높은 산들을 넘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위험하고, 수고스러운 여행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자들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집을 떠나고, 생업을 잠시 내려놓고, 위험천만한 순례의 길을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 아니면 그들의 인생이 헛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 1절 에 보면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순례의 길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헛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시지 않으면, 파수꾼이 아무리 깨어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붙들어 주지 않으시고, 우리의 생업을 보호해 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예배하기 위해서 그렇게 어렵고 힘든 순례의 길을 나섰던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1편은 이처럼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겨 성전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자기 백성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험하고 힘든 순례 길을 걸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찬송은 단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순례했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이 찬송은 바로 오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자인 우리를 거류민과 나그네 같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절 에 보면 “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 말씀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인 우리를 보고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거류민과 나그네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이 세상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신자는 이 세상과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자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이 세상을 지나가는 그런 순례자들인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그 험난한 순례의 길을 가듯이, 신자 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 모두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 험한 세상을 지나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한 걸음씩 더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시편 121편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다가 여러 인생의 고난과 시련에 부딪쳐 실망하고 좌절한 성도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노래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 고단한 순례의 길을 이겨냈듯이, 오늘 우리 또한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힘과 격려를 얻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신자들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3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오늘 본문 1~2절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여러분, 이 세상 만물 중에서 가장 변하지 않고 든든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산입니다. 제가 몇 해 전에 청년들과 함께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네팔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산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산만 아니라, 8,000m가 넘는 산이 몇 개나 있습니다. 그 산들이 얼마나 높은지 수백 Km 떨어져 있는데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컸습니다. 저와 청년들이 그 산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하게 보이는 산에게 도움을 받을까 하여 쳐다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산이 바로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윗이 수도로 정한 예루살렘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천연 요새였습니다. 그래서 적들이 쉽게 예루살렘에 침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좋은 수도를 갖기 전 이스라엘은 항상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후에는 산들이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보다 산을 더 든든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산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정한 도움은 산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도움은 어디서 옵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 부터입니다. 그런데 ‘나의 도움이 여호와에게서로다’ 하지 않고, ‘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산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쳐다보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산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대단한 것이 있다하더라도 그것 모두가 하나님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하나님이 만든 연약한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 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 호흡이 끊어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 돈만큼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돈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재물은 영원하지 못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또한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까지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재물을 쌓아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의지함으로 보호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유일한 도움이 되시며, 보호가 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기껏해야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땅의 삶은 안개와 같이 금방 지나가고, 그 후에 심판이 있어서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 최후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의지하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때에 유일한 도움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겠지만,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은 최후 심판대 앞에서 그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오직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을 우리 인생의 도움으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에 우리의 눈을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께로만 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의 도움과 보호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오늘 본문 3~4절 을 보시기 바랍니다 “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단지 혈통적 유대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즉 신자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자기 백성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화났을 때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호적을 파 버리겠다.”입니다. “이제 내 자녀 아니다. 네 마음대로 살아라!”는 뜻이죠.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벌은 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들에게 주는 가장 큰 벌이 바로 내어버림입니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절 에 보면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철저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반면에 그 자녀는 어떻습니까?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아십니까? 오랫동안 순례의 길을 가다보면 너무 피곤하여 걸으면서도 졸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사고가 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구요? 너를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발걸음을 바로 잡아주신다는 거예요. 우리도 살다보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잘못하고, 실수했는데도 일이 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운이 너무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운”이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고 지켜주심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위해 일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는커녕 세상 백성들처럼 저 어디에서 죄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밤에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 꿈에서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손을 잡고 해변 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어온 지난 길을 돌아보니까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가 언제인가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사람이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왜 저 혼자만 있도록 내버려 두셨나요? 그 때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그 때도 내가 너와 함께 있었단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저 발자국을 보세요. 제 발자국 밖에 없잖아요. 예수님의 발자국은 없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이 말하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 발자국은 네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것이란다. 그 때는 네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해서 내가 너를 업고 걸었단다.”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위해 일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자녀 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깨어서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고통하며 신음할 때에도 하나님은 깨어서 우리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 도우심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자기 백성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확신이 우리 마음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오늘 본문 5~6절 을 같이 보겠습니다.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는 순례 길을 가다보면 어떨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사막에 낮 기온은 50도가 넘는다고 해요. 지난 몇 주간 서울도 정말 덥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낮에는 그렇게 뜨거운데 밤에는 정반대입니다. 밤에는 10도 아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일교차가 무려 40도가 넘습니다.

그러니까 사막을 통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을 것 같은 고생입니다.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순례 길을 가는 자기 자녀들을 어떻게 보호하여 주십니까? 자기 자녀들의 오른 편에 계셔서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오른 쪽에 계신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아주 가깝게 계신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오른쪽이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능력으로 지켜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오른 쪽에 계신다는 것은 그의 백성에게 아주 가까이 계셔서 그 힘과 능력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그들을 지도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광야에서 다 죽었을 것입니다.

신명기 4:7절 말씀입니다.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 신자의 가장 큰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계실 뿐만 아니라, 권능의 손으로 항상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길을 걷는 우리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가까이에서 능력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도움은 저 멀리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오른쪽에 계셔서 능력의 팔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야 말로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4:8절 에 보면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더욱 가까이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힘씀으로 하나님의 지켜주시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로서 또한 우리의 구원자로서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늘 가까이에서 그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 7~8절 입니다.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가는 순례자인 우리 모두를 모든 환난에서 면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상 도움을 구하십시오. 자녀 된 우리를 언제나 바라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보호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앞으로도 지켜 주시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음으로, 이 세상에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흔들리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월 6일] 시편 121편

본문 시편 121:1-8

찬송가 413 내 평생 가는 길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는 말로 시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산을 단수로 써 놓았습니다. 하지만 원문은 복수형이죠. “산”이 아니라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들은 예루살렘의 산들을 의미합니다. 해발 8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는 예루살렘의 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곳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지금 시인은 주님께서 거하시는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님께서 계신 그 높은 산을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사실 이 질문은 우리도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아닙니까? 인생을 살다가 위기가 찾아올 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 앞에 섰을 때. 특별히 코로나 사태와 같은 긴 어두움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 있을 때.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시인은 스스로 답을 내립니다. 2절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로부터 도움이 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돕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먹이시는 하나님. 입히시는 하나님. 동행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구속하시는 하나님. 참 놀랍고도 많은 일을 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 중에 천지를 창조하신 사역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의 가장 첫 구절도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가 늘 하는 신앙고백에서도 가장 먼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조의 사역이야 말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신이 아무리 강하고,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든 땅과 하늘과 바다와 전 우주를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보다 강하고 능력있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또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신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도. 떨어지는 비와 변화되는 날씨도. 날아다니는 새와 피어나는 꽃도.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뿐만 아니라 떠돌아 다니는 바이러스까지도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역사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가장 확실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창조주를 고백하며,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나를 지키시는 자’가 되어 주십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마치 아장아장 걷는 어린 아이 뒤에 부모가 늘 붙어 있으면서 위험에서 보호하고, 넘어지는 것을 방지 해 주는 것처럼 나를 지키시는 자이신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 뿐 만이 아닙니다. 5-6절입니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햇빛은 아주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치명적입니다. 그런가 하면 고대 근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수많은 질병들이 달로부터 온다고 믿었습니다. 달의 신이 병을 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해와 달이 우리를 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모든 질병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오늘도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랑하는 성도들과 가족들이 우리 곁에 있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우리 환우들과 가족들을 지켜주십니다.

끝으로 7-8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나가고 돌아오는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는 평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모든 고민과 슬픔과 두려움을 주께 맡기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힘차게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호크마 주석, 시편 121장

=====121:1

산을 향하여 – 여기의 ‘산’의 정체를 결정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산이 ‘헤하림'(* )으로서 단수가 아닌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또 87:1;133:3 등에서도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헤하림'(* )은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시온의 산들’을 의미하고 있다. 본절의 ‘산’을 바로 이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무난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문맥이 시온으로부터 임하는 도움에 대한 대망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온으로부터 구원이 임한다는 사실은 14:7;20:2; 등에 잘나타나 있다. 한편, 혹자는 이 ‘산’을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여행도중 넘어가야 할 난관으로서의 산들을 가리킨다고 보는가 하면(Anderson), 이를 이방 성소들을 포함한 예배 처소들로 보고 기자가 여기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기에 합당한 장소가 과연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으나(E. H.Blakeney) 그 근거는 불확실하다.

=====121:2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 하나님께 대한 이 호칭은 본 순례자 송시(頌詩)와 115:15;124:8;134:3;146:6과 같은 다른 시편들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이방신들의 헛됨과 대비가 되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과 위엄은 특히, 포로시대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램10:11,12에 그 점이 잘 표현되어 있다.”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21:3,4

여기서 기자는 시선을 돌려 자신에게 독백투의 확신에 찬 설교를 시작한다. 먼저 그는 하나님의 지켜보시는 돌봄이 자기에게 까지 확장되리라는 확신과 소원을 피력한다. 그리고 그의 선조들을 도우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졸거나 주무시지 않으리라는 확신 또한 피력하고 있다(132:4; 왕상 18:27; 욥 7:20; 사 5:27참조). 않게 하시며…아니하시리로다(* … ,알…알) – 문자적인 뜻은 ‘분명히…하지 않으리라’이다. 따라서 이표현은 개역 성경 번역에서 느낄수 있는 바와 같은 단순한 소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표현은 기자의 강한 확신을 드러내는 일종의 기원적(祈願的)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한편, 본 시편에서 기자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를 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부정문과(3, 4, 6절) 긍정문을(5, 7, 8절)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특히 기자는 부정어 사용에 있어 세심한 주의를 보이는데, 3절에서는 ‘알'(* )을 2회 썼고, 4절에서는 ‘로'(* )를 2회 사용했으며, 또한 6절에서는 ‘로'(* )를 1회만 쓰고 한 번은 생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121:4

졸지도…주무시지도 – 한 순간도 어김없이 성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감찰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배려를 의인화하여 나타내고 있다. 어떤 학자들이 예상하는 것과 같이 이 두 단어 중 어느 한단어가 강조되어 있지 않다. 어원적으로 전자가 좀더 강한 의미의 단어인데 이 단어는 죽음의 잠을 뜻할 때도 사용되었다(76:5). 그러나 본절의 경우 둘 사이에 서로 유별나게 구별되는 점은 없으며 야간의 진지(陣地), 그리고 대상(隊商) 파수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단어들로 볼 수 있겠다.

=====121:5

그늘 – 여호와의 보호를 마치 태양의 타는 듯한 광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그늘에다 비유하고 있다(91:1;사 25:4;32:2). 이는 일종의 은유법인데 이 같은 기법은 열대 지방 태양 광선의 열기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 매우 의미 심장하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렘 48:45; 애 4:20).

=====121:6

낮의 해 – 팔레스탄에서 무서운 위력을 나타내는 태양의 열기를 강조하는 말이다. 왕하 4:18-20; 욘 4:8 등과 같은 구절들에서 태양의 열기는 살상 무기와 같이 강렬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밤의 달 – 해와 마찬가지로 달도 인간 신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근동의 생활을 연구하는 학자들 세계에서 그 같은 의견은 보편적인 것이다(Anderson, De Wette). 또 다른 학자에 의하면 근동 지역의 노천(露天)에서 달빛을 맞으면서 잠을 잔 사람의 경우 심한 현기증을 느끼게 되고 좀더 심하면 정신 이상에 까지 이르며 종국엔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Delitzsch). 우리는 정신 이상자를 ‘lunatich’표현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이 ‘달’을 의미하는 바, 이 사실은 ‘달’과 ‘미친 사람’의 관계를 밀접한 관계로 보았다는 심증(心證)을 추론케 한다. 한편, 또 다른 학자들은 달로 인한 피해는 달빛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한낮의 강렬한 열기 뒤에 밀려오는 서늘한 냉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어느 주장이 옳든 간에 본 구절은 주야를 막론하고 압축하여 표현한 것임에 분명하다.

=====121:7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 아쉬마르카 미칼 라) – 문자적인 뜻은 ‘모든 해악들로 부터 보존하시리라’이다. 이는 단순히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탄탄 대로만을 가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면서 두려워 하거나 낙망치 않고 종내 승리하고 만다는 적극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23편). 한편 본절의 상, 하반절은 하나님의 지극히 세심하신 배려 및 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언급한 눅 21:18,19을 연상시킨다(Kidner).요컨대,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자들을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121:8

너의 출입을…지키시리로다 – ‘너의 출입'(* , 체트카 보에카)은 직역하면 ‘너의 들어오는 것, 너의 나가는 것’인데 신 28:6;31:2; 삼상 29:6등의 유사 구절에 의하면 ‘한 인간의 땅 위에서의 모든 삶 그리고 그의 일들’이라고 할수 있겠다. ‘지키시리로다’의 ‘이쉬모르'(* )는 7절과 본절에 반복적 으로 세 번 등장하는데 이 삽중 반복적 표현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일들에게까지 확대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본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중 두 번째 노래로서 저자 미상의 시이다. 이 시

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본국 유다를 향하여 출발할

때 쓰여졌다는 견해가 있으나(Philips). 일반적으로 순례자들이 여행중 하나님의 지켜

주심에대해 감사하는 노래로 받아들여진다. 아마도 이 시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

례자들이 예르살렘 근처에서 장엄한 성산을 바라보며 느꼈던감격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시에는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과 도움을 얻을 수 있

다는 신앙 고백과 아울러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대한 찬양이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본시는 분류상 ‘찬양시로 볼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보호

에 대하여 놀라움을 표시하며 오직하나님만을 바라고 드높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호를 주제로 하는 본시는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전반

부(1,2절)는 성도에게 있어서 유일한 도움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자문자답

의 형식으로 찬양하고 있으며, 2 중반부(3, 4절)는 온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의

인(擬人)적 수법으로 노래하고 있으며, 3 후반부(5-8절)에서는 우리를 어떤 환난에서

든지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1.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우심(121:1-2)

지금 시인은 예루살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

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올꼬”(1절)라고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2절에서 독

백의 형식으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주어진다. 시인은 순례자를 여행중에 안전

하게 지켜수시는 분은 오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하신다. 시인은 다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고 오

직 참구원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2. 쉬지 않고 보호하시는 하나님(121:3-4)

유일한 도움의 근원이 하나님뿐임을 표현한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험도

성도들에게 미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완벽하게 보호하시는 분임을 노래하고 있

다(3절).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보호자가 되시므로 그들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시

인은 한 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도없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인화

하여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4절)이라고 표현한다. 그분은 불꽃

같은 눈으로 성도들을 돌보시고 모든 위헙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하신다. 이처럼 하나님

께서는 성도를 지키다가 중단하시는 일이 없으므로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구원에서 탈

락되지 않는다는 견인(堅忍)의 확신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3. 성도의 인전함(121:5-8)

본연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의 결과로 드러나는 안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5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에 대한 설명을 자기 자신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여호와가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신다고 말한다. “우편”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힘있게 보호하심을 나타내고, 성도가 하나님을 찾으러 멀리갈 필요가 없

음을 밝힌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늘 성도들 가까이서 보호하고 계신다.

그늘이 해로운 빛을 차단하는 역할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는 성도를 외부의 여러

위험으로부터 막아준다.

시인은 6절에서 ‘낮과 해와 밤의 달’이 자신을 해치 아니할 것을 노래한다. 팔레스

틴이나 사막에서의 태양은 샘의 근원을 마르게하고 머리에 쬐어 열사병에 걸리게도 한

다. 또한 밤의 달빛은 적도 지역과 같은 곳에서는 눈에 치명상을 주기도 한다. 하나님

은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자연의 재해로부터 그를 보호하신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출13:21, 22). 동일한 하나님께서 오늘도 성도들을 온갖 재난으로부터 밤낮으로 보호

하고 계신다.

시인은 본시에서 이스라엘의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발견한 하나님의 보호를 진술하

고 있다. 이러한 확신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하심으로써 시인의 영혼을 지키실 것이다

(7절). 여기서 영혼을 지키신다는 말은 내적, 외적으로 그의생명을 보호하신다는 의미

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닥쳐오는 악이 어떠한 종류에 해당하든지 관계없이 성도

를 굳게 지키신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지키

실 것이라고 찬양한다(8절). ‘출입’이라는 말은 사업이나 교제 등과 같이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을 포괄하는 말이다(신28:6;31:2;삼하3:25). 하나님은 성도들의 매사

에 깊이 간섭하시고 온갖재해와 악으로부터 그들의 영혼을 영원토록 지켜주신다. 또한

크신 권능으로 지극히 작을 일까지도 간섭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도 세시

며, 참새 한 마리도 우연히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신다(마 10:29, 30).

이 시편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어휘를 구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

임을 부각시킨다. 또한의인법을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성도들을 완전하고도 지속적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본시를 통해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호와는 성도들이 다양한 재난속에서 기도하고 간구할 때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보호해 주신다. 시인이 여기서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은 험하고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제공해 준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시편 121 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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