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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풍속화(Shin Yun-bok’s Genre Paintings)
EBS Culuture(교양), 지식채널e, 20111028
조선 후기, 기존의 관습과 신분의 모순에 대한 그림을 남긴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을 소개한다.
This video introduces paintings by Shin Yun-bok. His artworks contained contradictory scenes regarding the custom and social class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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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申潤福 筆 風俗圖 畵帖) | 국가문화 …

조선 후기의 화가인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 연작 풍속화 30여 점이 들어 있는 화첩으로 각 면 가로 28㎝, 세로 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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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eritage.go.kr

Date Published: 8/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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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풍속화

신윤복의 풍속화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소탈하고 익살맞은 서민의 애환을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남녀의 에로틱한 장면, 곧 양반·한량의 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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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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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 Korea100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와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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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h.aks.ac.kr

Date Published: 5/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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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의 소중한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고품질 문화유산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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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heritage.tv

Date Published: 1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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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신윤복 풍속화의 浮上과 재평가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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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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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cienceon.kisti.re.kr

Date Published: 5/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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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다. [혜원 신윤복] | 보도/설명 상세

신윤복의 호는 혜원이며,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3대 풍속화가로 일컬어집니다. 신윤복은 도화서 화원으로서 첨사 벼슬을 지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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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a.go.kr

Date Published: 8/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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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신윤복 풍속화

  • Author: EBSDocumentary (EBS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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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4. 1. 1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1JOCQCNzWY

국보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申潤福 筆 風俗圖 畵帖)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조선 후기의 화가인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 등 연작 풍속화 30여 점이 들어 있는 화첩으로 각 면 가로 28㎝, 세로 35㎝이다. 아버지 신한평의 뒤를 이어 한때 도화서의 화원이기도 하였던 신윤복은 참신한 색채가 돋보이는 산수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특히 풍속화에서 그만의 독특한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신윤복필 은 주로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과 낭만, 양반사회의 풍류를 다루었는데, 가늘고 섬세한 부드러운 필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세련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등장인물들을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가게 표현함으로써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들며, 인물들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주위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글과 함께 낙관이 있지만 연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의 변천과정은 알 수 없다.

이 화첩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전형필이 구입해 새로 틀을 짜고 오세창이 발문을 쓴 것으로 미술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당시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활사와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The album (28cm wide and 35cm long) contains 30-plus genre paintings on similar subjects painted by Sin Yun-bok (1758-?; pen-name: Hyewon) of the late Joseon Period (1392-1910). He was once a painter who belonged to Dohwaseo (Royal Bureau of Painting) like his father Sin Han-pyeong and made landscape paintings displaying refreshing colors. He carved his own niche in genre paintings. The pieces contained in this album portray the love and romance between men and women, particularly between womanizers and barmaids, and a placid life of leisure enjoyed by noble-class people. The thin and delicate strokes of brush and the beautiful colors used effectively depict a refined, romantic atmosphere. The slender face of the people appearing in the paintings, with the corners of their eyes raised, gives the impression that they have strong sex appeal. The realistic portrayal of the surroundings appears to enhance the atmosphere that the painter intends to create. He did not disclose when he made the paintings in most of this works, however. Thus, it is difficult to see how his painting style changed over time. This album had been taken to Japan. In 1930, Jeon Hyeong-pil purchased it from a Japanese and rearranged it. O Se-chang wrote a word of introduction for the newly arranged album. Besides being a collection of artworks, the album is regarded as a precious material for those studying how people’s daily lives and attire changed toward the end of the 18th Century.

收有朝鲜后期画家蕙园申润福(1758-?)所画的、等30多幅风俗画的画册,横28cm,竖35cm。曾为图画署画员的申润福虽遗留有色彩新颖、风格独特的山水画作品,但在风俗画中尤显其独特的境界。这本画册原先流失到日本,1930年全莹弼买回并重新装裱,由吴世昌写跋。它不仅是一部美术作品,而且反映了18世纪末期的部分社会面貌,被评价为研究生活史和服饰史的宝贵作品。

朝鮮後期の画家であった恵園申潤福(1758~?)が描いた「端午風情」、「月下情人」など連作風俗画30点余りが入っている画帖で、大きさは横28cm、縦35cmである。父の申漢枰の後を受け継いで、一時は図画署の画員でもあった申潤福は、斬新な色彩の目立つ山水画の作品を残したりしたが、特に風俗画では彼だけの独特な境地を見せている。この画帖は日本に流出したものを、1930年に全鎣弼が購入して新たにフレームを組んで、呉世昌が跋文を書いたものである。美術作品としてだけでなく、18世紀末当時の社会の一面を見せることで、生活史と服飾史の研究において貴重な作品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

신윤복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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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생애

소개 1)

부친 한평(漢枰)과 같이 회화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의 벼슬했다는 사실 이외 생애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리운다.

그는 남녀간의 정취와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섬세하고 유려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주로 사용하여 그의 풍속화들은 매우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의 풍속화들은 배경을 통해서 당시의 살림과 복식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등, 조선후기의 생활상과 멋을 생생하게 전하여준다.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에는 짤막한 찬문(贊文)과 함께 자신의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이 곁들여 있지만, 한결같이 연기(年記)를 밝히고 있지 않아 그의 화풍의 변천과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개척하였던 대표적 화가로서 후대의 화단에 많은 영향을 준 혜원의 대표작으로는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국보 제 135호, 총 30폭, 간송미술관 소장)』, 『미인도 (간송미술관 소장)』 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풍속도첩(風俗圖帖) ,(총6점)』등이 있다.

《생애 및 업적》

신윤복(申潤福) (1758 ~ ?, 일명 申可權)은 조선후기 풍속 화가로 자는 입부(笠父), 호는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중인(中人)출신의 화가 집안으로 부친은 신한평 (申漢枰) 모친은 홍천피씨(洪川皮氏)이다.

신윤복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몹시 희귀하여 관찬문서나 개인문집류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우나 그에 관한 기록과 연구를 종합하면 신윤복 부자(父子) 모두 회화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예조 산하의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라는 것과 첨사(僉使)벼슬을 한 혜원은 너무 비속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난 후 직업화가로서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며 부인이나 후손 등에 관한 것은 전혀 알 수 없다.

혜원의 아버지 신한평에 대한 기록은 여러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바, 임금의 초상인 어진제작과 기년(1774)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광사(李匡師) 70세 초상』과 같은 명품과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화조도』와 간송 미술관에 소장된 『자모육아(慈母育兒)』와 같은 풍속화가 있어 혜원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준다.

혜원의 그림에는 젊음이 있고 은은한 남녀의 정이 깔려 있다. 그림의 주제가 선명하여 보는 이에게 내용 전달이 직선적이다. 오늘날에 보기에도 낯 붉어질 내용들도 없지 않으나 , 화가는 천재성을 발휘하여 승화된 아름다움으로 이를 고양시키고 있다. 농염한 중에도 절제가 있고 과감한 노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연스레 보이게 하는 구도의 묘가 있다.

그는 산수·인물·동물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능한 직업화가이로되 시문에도 조예가 있고 서예에도 뛰어 났으며 그가 추구한 그림세계는 이른바 동시대 여항문학인들의 사장(詞章)에 필적하는 어엿한 세계임을 엿보게 하며 진경시대 문화의 낭만상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소개 2)

조선에는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과 더불어 “3원 화가”라 불리우는 화가가 있습니다.

호를 혜원으로 사용하는 신윤복.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화가 신윤복. 그의 그림에는 한국인의 정서가 매우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쉽게 볼 수 없었던 은밀한 생활까지도 익살스럽게 그려낸 그의 그림에는 또 다른 우리네 인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신윤복의 일생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그림이 언제 그려졌는지도 알 수가 없구요. 중인계급으로 알려진 화가들에 대해서는 글을 쓰는 선비나 양반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그들의 그림들만 전해질 뿐 화가의 일생에 관한 자료들은 거의 남아있질 않는 거죠. 조선의 화가들이 그림을 즐기는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네들의 사회에 발을 딛고 있었다면 부와 명성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신윤복은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당시 화단의 이단아로 불릴 만했던 신윤복의 출신은 지극히 전형적인 화가의 집안에서였습니다. 그의 증조부에서부터 아버지, 삼촌 등 가족들이 화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죠. 하지만 어려서부터 시작했던 그의 실력은 크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신윤복은 김홍도와 동시대에 활동하였으며 둘 다 풍속화를 많이 그렸기 때문에 자주 비교가 됩니다. 그러나 김홍도가 왕의 총애를 받을 만큼 명성이 있던 반면 신윤복은 스스로 품위있다고 생각하는 양반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속화(俗畵)들을 잘 그렸습니다. 그래서 도화서라는 화가들을 관리하는 관청에서 일을 하다가 쫓겨나기까지 하게 되죠. 김홍도가 서민의 놀이나 일상 생활을 재치있고 건전하게 그려낸 데 비해, 신윤복은 한량이나 기생들 간의 유희와 남녀간의 풍속을 날카로우면서도 적나라하게 그렸습니다.

또한 그는 조선 여인들의 섬세한 감정들과 아름다운 자태를 그림 속에 잘 표현하였는 데요. 아마도 여인의 심리를 잘 이해한 것 같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대상을 이해할 수 있어서 감정이입이 가능해졌을 때 비로소 진실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 대상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말입니다. 특히 그가 그린 <미인도>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련된 선과 대담한 색채의 사용 또한 많은 이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구요.

그가 원해서였는 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윤복은 관직이나 권력과는 상관없이 서민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도 산수화를 그렸지만 그의 진가를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화려한 색채의 풍속화입니다. 특히 서민들의 해학을 품고 한량들의 유희나 남녀간의 애정을 소재로 하는 그림들을 주로 그렸지요. 품위있는 양반들이 기생들을 희롱하는 모습이나 성적인 부분을 내용으로 하는 신윤복의 화첩은 당시에나 지금도 많은 이들이 뒤로 돌아앉아 훔쳐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조선이 유교와 선비 중심의 사회였지만 일반 평민들이나 양반들 모두 똑같은 인간이기에 세속적 욕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양반들은 딱딱한 표정과 꼿꼿한 자세로 그 것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신윤복은 그런 양반님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서민들과 함께 비웃어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서 주변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인물로 자기자신을 등장시킨 것이죠.

어쩌면 신윤복은 그 어떤 비판가들 보다 더 날카로운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질서와 도덕이 무너지고 사치와 향락 풍조가 만연해지는 조선후기의 사회를 그림으로 고발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선과 거짓을 경멸하며 적나라하리만큼 솔직한 인생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래서 체면차리기 좋아하는 어떤 이들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말입니다.

진정한 한량

신윤복은 조정에 나가 관직생활을 하지 않고 서민들 속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관청인 도화서에 몸을 담았다가 세속적인 그의 화풍 탓에 쫒겨났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아버지가 장수함으로 인해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는 말도 있지만, 전자의 말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이는 그가 관직에 초연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한 그의 가느다란 필선에는 기녀와 첩과 같은 양성적 매춘을 인정하는 양반계급을 향한 냉소가 담겨져 있다. 신윤복은 월야밀회와 함께 월하정인’에서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양반들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말만 양반이지, 하는 짓은 상놈이네’라는 식이다.

조선후기는 변혁의 시기였다. 그는 양반의 신분이었으나 서민의 삶을 관찰한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원해서였는지 어쩔 수 없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생이 서민과 함께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신분체제의 와해에도 허세에 찌든 양반들의 모습을 화폭에서 비판하려 했음일까? 단순히 성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로 그친 것이 아니라 사회풍자를 위한 시각으로 성 문제를 바라본 것이다. 이에, 그는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한량이었음이 점쳐진다.

조선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 중엔 시쳇말로 `야한’ 것들이 많다. 기방에서 기생과 음풍농월하는 양반이나 목욕하는 아낙들을 훔쳐보는 승려들 따위의 그림들은 은근한 관능적 분위기와 세밀하게 묘사된 풍속상 때문에 조선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로 사랑받고 있다.

일제시대 위창 오세창에 의해 <혜원전신첩>이란 제명을 달고 수집가 간송 전형필이 소개한 이래 이 그림들은 한국회화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정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그림에 대해 우리가 알고있는 정보는 한줌 정도일 따름이다.

<선술집>의 한량들이 어떤 직업으로 행세했는지, <절로 가는 길><기다림>에 보이는 승려와 여인들이 어떤 인연인지, <밀회><삼각관계>에서 만나는 두 남녀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설명할 학자들은 몇되지 않는다. 그림도 잘 그렸지만 그 안에 복잡한 풍속사와 이중적 애정관계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혜원의 그림은 그래서 매우 어렵고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한문학을 하는 소장학자 강명관 부산대교수의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푸른역사 펴냄)은 이른바 혜원의 풍속화에 그 이름에 걸맞는 내용을 찾아주려는 고심과 공력이 빛나는 노작이다. 유쾌한 조선풍속 읽기라 할 글의 행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은이는 단순한 물음을 논의의 빌미로 삼는다.

`당신은 대체 무엇을 그린 거요?’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그림 30점에 숨겨진 풍속사의 비경을 탐구한 책의 풍속편력은 그래서 조선후기 양반사회의 숨겨진 `리얼리티’를 까발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조실록은 물론 사설시조, 한시, 풍속잡기 등 당시 한글·한문학 사료들은 그 편력의 유용한 자양분으로 삼은 지은이는 성과 유흥쪽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비구니 절을 계집종 데리고 찾아가는 여인네의 그림에서 당시 비구니절이 소외된 여성들이 성적 자유를 누리는 해방구였다는 사실을 끄집어내고, 조선 최초의 키스신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삼각관계>에서 당시 유흥가를 주름잡던 포교와 별감의 권력을 읽어내는 것부터가 그의 자유로운 학문적 상상력을 입증해 보여준다.

기생과 악단을 불러들여 유흥문화를 소비했던 양반문화, 남성들의 관음증 공간이 되었던 아낙네들의 빨래터 등에 대한 분석에서 조선시대가 성리학적 도덕사회였다는 생각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최근 일상사가 각광받는 흐름에서 볼 때 에두아르드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방불케하는 이 책은 전통풍속사의 숨겨진 광맥을 드러내 보이는 시금석의 의미를 지닌다.

글은 구수하고 평이하지만 행간곳곳에는 그림도상에 깃든 의미망의 해석에 눈돌려온 미술사학계의 나태함에 대한 지극한 불만도 서려있다.

혜원 그림의 논문은 많았어도 그림자체에서 미학적 감명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는 서두글은 일종의 죽비소리일 터이다.

강 교수가 수년전부터 조선초기~구한말 풍속사를 정리한 3권짜리 대작을 준비해왔던 터라 책은 그 맞뵈기라고도 할 수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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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와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두 사람 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개척한 대표적 화가로서 후대의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도화서는 왕실이나 양반들의 요청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국가가 만든 관청이다. 이곳에 소속된 화가를 화원이라고 했는데 도화서는 화원을 양성하는 기관이기도 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은 김홍도

김홍도는 당대의 이름난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의 제자였다.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운 것은 물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강세황은 김홍도에 대해 ‘근대 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고 칭찬했다. 김홍도는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御眞)과 왕세손(훗날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정조가 임금이 된 후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데 몇 차례 참여하였다. 1781년에는 익선관본(翼善冠本)을, 1791년에는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렸다. 정조는 특히 김홍도를 총애하여 “그림 그리는 일과 관련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1788년에는 김홍도와 함께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응환(金應煥)과 더불어 금강산 등 영동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김응환이 김홍도에게 그려준 시화첩 『금강전도』에 쓰인 글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도량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한국의 진경을 그리다

그의 화풍은 50세를 전후로 1기와 2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산수화의 경우 50세 이전에는 주로 화첩을 보고 중국의 정형화된 산수를 많이 그렸다. 또 인물로는 신선도를 그렸다.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자락 무늬,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 없이 천진한 얼굴을 한 작품 「군선도병(群仙圖屛, 삼성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50세 이후로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즐겨 그렸다. 진경산수는 실제 경치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그러면서 ‘단원법’이라는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탁월한 공간 구성, 능숙하고도 강한 묵선(墨線)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淡彩 : 엷은 채색)의 밝고 투명한 화면 효과는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김홍도 특유의 화풍이다.

만년에는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씨름, 서당, 대장간, 벼 타작, 기와 잇기, 길쌈 등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모습, 풍속 등도 많이 그렸다. 간략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원형 구도 위에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와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이 되었다.

김홍도의 대표작으로는 『단원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을 비롯해서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개인 소장)』,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간송미술관 소장)」 「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 「단원도(檀園圖, 개인 소장)」, 『단원화첩(삼성미술관 소장)』,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등이 있다.

화려한 색채로 그린 남녀 풍속화

신윤복은 서자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족보에도 올리지 않은 중인 신분이었는데 특히 종조부와 아버지 신한평 같은 화원이 많이 나왔다.신한평은 영조의 어진을 두 번이나 그릴 정도로 인정 받는 화가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신윤복도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김홍도의 영향으로 참신한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림에서 양반의 위선과 이중적인 태도를 풍자한 해학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윤복은 한량과 기녀 등 남녀 간의 낭만이나 애정을 다룬 풍속화를 그린 작가로 특히 유명하다. 남녀 간의 정취와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섬세한 선과 화려한 채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배경이나 인물 등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덕분에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살림살이, 복식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혜원은 과부, 기녀, 비구니, 의녀와 같은 소외 계층 여인들을 주제로 삼은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갸름한 얼굴과 가는 눈썹, 요염하게 치켜 올라간 눈, 앵두 같은 입술, 희고 통통한 손과 피부 등을 가진,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여인들로 표현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신윤복의 경우 작품에 언제 그린 그림인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와 『풍속화첩』이 있다. 『풍속화첩』에는 「단오풍정(端午風情)」, 「연당(蓮塘)의 여인」, 「무무도(巫舞圖)」, 「산궁수진(山窮水盡)」, 「선유도(船遊圖)」 등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신윤복, 「거문고 줄고르는 여인」/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신윤복, 「대쾌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신윤복, 「전모를 쓴 여인」/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관련항목

참고문헌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진준현, 『단원 김홍도 연구』, 일지사, 1999. • 오주석, 『단원 김홍도』, 솔, 2015.

『단원 김홍도 연구』는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화가 중의 한명인 단원 김홍도 (1745-1806)의 생애와 미술사상, 작품을 고찰한 연구서이다. 생애와 교유를 간략히 살피고 일반 산수화, 금강 산도와 진경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화조화, 기타 회화로 나누어 사진과 함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단원 김홍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 화가 김홍도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책이다. 1995년에 출간된 김홍도 탄신 250주년기념 특별전 논고집 『단원 김홍도』를 저본으로 삼은 책이다. 체제와 표현 방식 가운데 장점을 취하고, 판형을 키워 김홍도의 작품을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김홍도에 관한 모든 기록을 총망라하여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하고, 체계적인 구성 가운데 쉽게 서술함으로써 김홍도에 대한 정확하고 일관된 인상을 제시한다. 또한 관련 기록의 행간에 엿보이는 김홍도라는 인물의 됨됨이와 품격, 즉 예술적 성과를 넘어서는 풍부한 인간적인 매력을 함께 전해준다. 김홍도의 전모를 크게 서화가의 면모, 풍류인의 면모, 선인의 면모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신윤복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백금남, 『소설 신윤복』, 미래인, 2008. • 정유현, 『우리의 옛 그림: 신윤복 편』, 범우사, 2011.

『소설 신윤복』은 조선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신윤복이 김홍도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설정 아래 시작된다.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의 본성과 예술의 본질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신윤복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또한 강세황, 김홍도, 최북, 김득신 등 조선 후기 대가들의 작품 세계를 함께 복원해냈다. 신윤복의 그림과 함께 수록된 그들의 대표작을 본문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리의 옛 그림: 신윤복 편』은 한 시대를 앞서 살았던 배포 큰 대장부, 신윤복의 작품과 함께 풍속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옛 그림에 부연해설을 몇 마디씩 덧붙인 그림책 형식의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 풍속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EBS 화인 제작팀,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지식채널, 2008. • 윤진영,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 다섯수레, 2015.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는 EBS에서 방송되었던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방송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세 풍속화가의 독특한 이력과 그들만의 개성적인 미술 기법상의 비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세 명의 풍속화가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조선 후기 근대라는 시대를 어떻게 뜨겁게 살면서 실천했는지, 교과서나 그림 분석에 머물렀던 여타 미술 교양서가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작품을 역추적해가면서, 조선 후기 세 풍속화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근대를 도입하여 근대를 살아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는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사회를 살아간 선조들의 다양한 삶을 만나게 된다. 풍속화를 저술한 윤진영 교수는 고전의 바다 장서각에서 역사연구와 미술사의 기초역량을 익힌 후 한국회화사로 미술사 석·박사 학위를 받아, 이제까지 접해 보기 쉽지 않았던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를 총망라한 다양한 그림을 진솔한 설명을 겻 들여 조선사회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신윤복 풍속화의 浮上과 재평가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신윤복과 그의 풍속화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기록되면서 조 명을 받기 시작했다. 1910~20년대 간행된 『조선서화가열전』, 『근역서화징』에서는 신윤복의 약력과 풍속화에 능했다는 사실을 서술하였고, 1930년대 간행된 『조선명화전람회목록』, 『조선중앙일보』 등에서는 신윤복 의 풍속화에 대해 ‘조선풍속화계의 백미’와 ‘부세회풍(浮世繪風)’이라는 해석이 이루어졌다. 하층민들의 생활 풍속을 그린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 ‘조선풍속화계의 백미’라는 평가는 1938년 『문장』에서 김용준의 ‘가장 위대하고 혁명적 정신이 풍부한 작가’라는 신윤복 극찬으로 이어졌다. 또 신윤복의 풍속화의 ‘부세회풍’이라는 해석은 ‘여속을 그린 신윤복’을 주목케 하였고, 1939년 문일평의 『호암전집』에서 언급한 신윤복이 “너무 비속한 것을 그리다가 도화서를 쫓겨났다”라는 언급은 ‘여속화가 신윤복’을 더욱 공고케 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윤복의 풍속화가 일제강점기 정치·사회적 요구와 대중들의 심미 취향에 맞추어 선택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특히 1930년대 《혜원전신첩》이 공개되면서 신윤복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평가와 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신윤복의 풍속화는 조선 전통에의 향수로서, 에로티시즘적 이미지로서 일반에 소비되었다. 특히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에로티시즘적 이미지의 부각은 신윤복 풍속화의 모방작들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혜원전신첩》 <이부탐춘>을 모방한 그림이 포함된 헤르만 산더의 《풍속화첩》, 《무산쾌 우첩》, 최우석의 《운우도첩》, 《속화첩》 등의 예처럼 《혜원전신첩》 도상의 유통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이루어졌고 급기야 춘화첩의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신윤복과 《혜원전신첩》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자 ‘ 신윤복’ 또는 ‘혜원’이라는 이름으로 춘화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신윤복 풍속화의 에로티시즘적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었고 지금에 이르러 신윤복이 여속화가·춘화가로서의 평가를 얻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It was not until critiques began to seriously make written remark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at Sin Yun-bok (act. fl.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nd his genre paintings received due attention. For example, Chōsen shogaka retsuden (Lives of Eminent Painters and Calligraphers of Joseon) and Geunyeok seohwa jing (Biographical Records of Korean Painters and Calligraphers), published in the 1910s and 20s, are the earliest ones to provide short accounts on Sin’s life and virtuosity in genre paintings. Publications of the 1930s—including Chōsen meiga tenrankai mokuroku (Exhibition Catalogue of Joseon Fine Paintings) and Joseon Joongang Ilbo—assess that Sin’s works are the Korean genre painting par excellence or,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Ukiyoe-esque. The recognition of Sin’s depictions of commoner’s daily lives as tours de force extended to an encomium by Gim Yongjun (1904~1967) who saw the painter “the greatest artist with revolutionary spirits.” On the other hand, the stylistic interpretation associating the paintings of everyday life to Japanese Ukiyo-e prints brought to mind his pejorative epithet as a painter of yeosok (lit. lives of common women; or girly things), the reputation which Mun Il-pyeong (1888~1939) consolidated with a comment in Hoam jeonjip (Complete Collection of Hoam’s [Mun’s] Writings) that “[Sin] was ousted from the Royal Painting Academy while painting overly vulgar things.” These written accounts resulted from the growing popularity of Sin Yun-bok’s genre paintings as they met both socio-political demands of the Colonial rule and aesthetic preferences of the public in those days. Particularly in the 1930s, the disclosure of Hyewon jeonsin cheop album (Genre Paintings by Hyewon [Sin Yun-bok]) has prodded the then intellectuals into reviewing and critiquing the painter. Meanwhile, the general audience saw Sin’s works as nostalgia for Joseon traditions or intuitively as erotic images. The eroticism of Sin’s genre paintings was thrown into bold relief by later epigones. An album Genre Paintings purchased by Hermann Sander (1868~1945) contains a leaf that imitates A Widow’s Lust in Spring in the Hyewon album; and similar imitations are discovered in an anonymous album Musan kwaeu cheop, the Unu docheop by Choe Useok, and another anonymous album Sokwacheop. The repetition suggests that the images from the Hyewon album have been so widely circulated since the late nineteenth or early twentieth century as to be used for the pornographic painting albums. When Sin Yun-bok and the Hyewon album reached an even wider audience in the colonial period, pornographic albums under the false authorship of Sin Yun-bok or Hyewon came out in considerable numbers. These phenomena have further enhanced the erotic aspects of Sin’s paintings, eventually contributing to a current notion that Sin Yun-bok is reckoned with a painter of yeosok or of pornographic images.

[논문]신윤복 풍속화에 나타난 조선 후기 여성 두발양식과 복식문화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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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다. [혜원 신윤복]

신윤복의 호는 혜원이며,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3대 풍속화가로 일컬어집니다. 신윤복은 도화서 화원으로서 첨사 벼슬을 지냈는데, 너무 천박한 그림을 그린다고 도화서에서 쫓겨났답니다.도화서에서 쫓겨난 뒤 그는 직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 때 수많은 풍속화를 그렸습니다.신윤복의 풍속화들은 남녀 간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색깔을 주로 사용해 세련된 붓질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냈지요. 이러한 까닭에 혜원의 풍속화는 아주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띤답니다. 또한 그림의 주제가 선명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내용이 쉽게 전달됩니다.그는 산수, 인물, 동물 등 여러 분야에 솜씨가 뛰어난 직업 화가로, 시도 잘 짓고 서예도 잘 했다고 해요. 대표작으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된 『혜원 풍속도』가 있습니다.-신윤복의 대표작. 우리 전통 미인의 전형이자 전통의 아름다움 그 자체로 평가된다. 가체(가발)를 얹은 머리, 동그랗고 자그마한 얼굴, 둥근 턱, 쌍꺼풀 없는 가느다란 눈매의 이 여인은 이전의 초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동을 준다.-『혜원 풍속도』는 30면으로 이루어진 가로 35.2cm, 세로 28.3cm 크기의 그림책이에요. 일본으로 빠져 나갔던 것을 간송미술관을 세운 전형필(1906~1962) 선생이 1930년 구입해 표구를 새로 했답니다. 이 풍속도첩은 「청금상련」, 「기방무사」, 「월하정인」 등 30여 점으로 되어 있고,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김홍도의 풍속화가 조선 후기에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면, 신윤복의 풍속화는 한량과 기생 등 남녀 사이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답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살던 사람들의 사랑을 짐작해 볼 수가 있지요. 또한 신윤복은 인물뿐만 아니라 배경까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아서 당시 살림살이와 의복 등의 멋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가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들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것에 비해, 신윤복의 풍속화는 가는 붓으로 인물을 부드럽고 간결하게 그렸습니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한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①]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사계절 출판사에 있습니다.*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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