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12) | 정필도 목사 | 주일1부 | 20.03.15 27213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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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12) | 정필도 목사 | 주일1부 | 20.03.15
제목 :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본문 : 에베소서 4:1-12
설교 :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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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1 – 대한성서공회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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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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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 – Bible.com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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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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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 …

서로 전혀 알지 못하고 이질적이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서로 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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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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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 기독정보넷

하나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된 것을 성경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아무리 도피해도 안 됩니다. 하늘나라 시민이라는 것은 빠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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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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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5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정필도목사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20200315 본문 / 에베소서 4:1~12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에 둘로 나누어서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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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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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힘써 지키라 – 국민일보

3절에서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은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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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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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 된 것을 힘써 지키라 – 시카고 한국일보 – Korea Times

강민수 레익뷰언약교회 담임목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에베소서는 하나 됨에 대해 18번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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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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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 기멀전

오늘 본문에서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을 지키는데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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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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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Author: 수영로교회 Sooyoungro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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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3.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6xyisyqGckQ

[에베소서 4:1 ]

제 4 장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세례도 하나요 헬 , 또는 침례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시 68:18 그러므로 이르기를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헬 , 충만의 신장의 분량이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오직사랑 안에서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랑 안에서 자라자 또는 참된 생활을 하여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옛 사람과 새 사람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헬 , 참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슥 8:16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시 4:4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에베소서 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KRV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KRV: 개역한글 번역본 취소 성경 언어 한국어 언어 바꾸기 {{#items}} {{local_title}} {{/items}} ← 언어 취소 {{#items}} {{local_name}} {{/items}}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6).

2019년 12월 18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도 되기 전에 말씀 앞에 앉았습니다.

그냥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 있을까 하다가 성령의 강권하심이 느껴져서 박차고 일어나 말씀 앞에 나아가나이다.

나의 영을 주의 오른손으로 장악하시고 붙드셔서 주님의 행동하심을 믿음으로 온전히 수용하여 주님과 연합한 무덤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말씀으로 지어지는 무덤의 성소에서 주님의 생명과 함께 나의 새 생명도 일으킴을 받게 하소서.

순간순간 육신의 소욕으로 넘어지는 이 종의 죄악들, 지금까지 그 죄악들을 먹고 마셨던 죄의 양식을 이제는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고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하던 것은 그치게 하소서.

이 한 몸 주를 위해 드리기 원하오니 볼품없고 미물에 지나지 않는 자이나 주님께 드리는 복음의 도구로 쓰임 받기 원합니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시고 겉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나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주의 뜻대로 사용하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엡 4:1-6

제목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나의 묵상

3장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두 번째 중보적 기도는 첫째, 성도들의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해지게 해달라는 것(16절), 둘째,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안에 내주(內住)하여 주실 것(17절), 셋째, 성도들이 사랑으로 굳게 서게 해달라는 것(17절), 넷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그들도 충만에까지 이르게 해달라는 것(18,19절)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먼저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교회의 연합을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다(1-3절).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으로서 서로를 용납할 것이며(2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3절)을 말한다.

그리고 4-6절에서는 성도들이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할 당위성과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은 소망,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믿음과 세례, 하나님도 하나이며, 또한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로서 만유 위에 초월하여 계시면서 만유를 통해 역사하시고 만유 가운데 내재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이 서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합당한 근거는 결코 우리에게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소망이 하나인 하나님 나라 곧 영생이며, 하나님도 한 분이시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문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강권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힘쓰는 일들이 무엇인지 진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공적 예배에 참석한다.

기도와 전도의 일을 한다.

시험에 든 자를 찾아가 위로와 권면을 한다.

물질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를 구제한다.

병든 자를 심방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준다.

또한 웃는 자들과는 함께 웃어준다.

실수한 형제를 용서하며, 성도간에 서로 우애하고 존중한다.

이것은 성도의 삶으로서 이런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일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상기한 내용들을 새롭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며 특히 우리가 하나되기 위하여 마땅히 날마다 이런 일을 행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이미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고 분명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다.

(3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처럼 교회 안에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평안은 이미 주신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 주신 교회의 평안과 연합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힘을 쓰라는 것이다.

여기서 ‘힘써’로 번역된 헬라어 ‘스푸다조’는 ‘애를 쓰다, 노력하다’는 뜻의 명령 분사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분사 현재형이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과 반복을 의미한다.

이런 성령께서 이미 주신 평안과 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도들 모두가 지속 반복적으로 애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서로 전혀 알지 못하고 이질적이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서로 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하나됨이 끝까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이미 주신 교회의 평안과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지속하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것은 나의 힘이나 노력으로 무엇을 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성령께서 이미 이루셨는데 거기에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측면,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인 영생을 날마다 이루라는 것이다.

영생을 이룬다는 말은 영생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의 생명인데, 날마다 그 생명 안에서 살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히 8:9-12)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의 몸이요 그 안에서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성령도 한 분이시므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받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따라서 교회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곳이 아니다.

예를 들면 목사의 생각대로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회사도 아니고, 성도들이 자기실현의 장으로 교회를 사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제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시골에 어느 한 교회가 있다.

예배당을 멋지고 아름답게 지었다.

그 교회를 어느 목사가 담임을 하는데 그 목사는 성경대로가 아니라 자기의 뜻과 생각대로 교회를 운영하는 CEO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지 않고 자기 교회에 예언을 하는 몇몇 권사와 성도들의 예언에서 찾는다고 한다.

그것도 예언을 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권위를 주는 것도 아니고 특히 권사 한 사람의 말에 무게를 두고 그 예언에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자신은 예언이나 방언을 하지 못하지만 설교를 하다보면 성도들이 그렇게 방언을 하고 예언도 하고 환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 목사는 그것이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매주 월요일마다 세미나를 열어 여러 목사들을 초청하여 자기들의 목회패턴을 가르쳐 주고 있단다.

그런데 헌금을 할 때는 반드시 자기 이름을 적어서 헌금하라고 하고, 사택에 무슨 선물을 갖다 놓을 때는 이름을 적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갖다 놓으라고 하는가 하면, 병원에 입원한 성도가 있으면 개별적으로 심방하지 말고, 그 환자에게 줄 봉투를 교회봉투에 한 데 모아서 목돈이 되게 하여 교회 이름으로 전달한단다.

들은 이야기가 많지만 다 생각이 나지 않아서 적기도 힘들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것이 결코 아니다.

목사는 자신의 생각이나 뜻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CEO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수익을 내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숫자 불리는 다단계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그 뜻을 날마다 힘써 지켜서 주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성령도 하나이듯 삼위 하나님의 하나됨과 같이 교회도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땅의 것에 집중할 때 그 교회는 아무리 시쳇말로 부흥하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성전(?)을 짓고 목사가 큰 차를 타고 다닌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며 환상을 본다 한들 영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 나라 곧 영생을 맛보며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안ㄹ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내 아버지의 뜻 곧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있지 않다.

땅의 것에 집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아무리 예언과 방언 그리고 환상을 본다 할지라도 이것이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통한 영생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이 또한 땅에 속한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사랑만이 영원하다.

이 사랑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주신 생명이며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아들의 사랑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복종으로서의 사랑이다(요 15:10).

따라서 두 분의 사랑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기원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데 그 사랑이 곧 하나님의 본질의 계시인 영광이다(요 5:26).

우리는 이 땅에서 나의 의를 위하여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자들이 아니라 늘 성령께서 이미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키는 자들이다.

그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영생은 과연 무엇인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아니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

분명한 의미는 이 둘 다 아니다.

영생이란 성경에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따라서 새 언약 백성은 말씀을 통하여 삼위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아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칠 필요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히 8:11).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 각자가 말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과 교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마 6:33).

예수님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비교하여 말씀하신다(마 7:24-27).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곧 쉐마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이 사람이 지은 집은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은 기초를 반석(예수 그리스도) 위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자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 때 그 집은 곧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말씀 곧 복음으로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는 자이다.

주님의 뜻인 영생을 누리는 자는 주의 말씀을 반석 위에 지은 자와 같아서 어떠한 풍파에도 끄떡하지 않고 견딘다.

성령께서 이미 이루신 교회의 평안과 연합을 우리가 힘써 지키는 것은 나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영생을 누릴 때 가능하다.

이것은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이다.

나는 주님의 교회, 성령께서 이미 이루신 평안과 연합을 힘써 지킨다는 말을 오해한 자였다.

나는 내가 힘써 애를 쓰고 나의 힘과 의지로 하나되도록 해야하는 줄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조금 되는가 싶으면 다시 무너지고 하나되는가 싶으면 다시 깨지고 마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지 모른다.

나는 마치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그 일을 무한 반복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는 복음 곧 말씀을 알지 못한 데서 오는 나의 義였다.

말로는 주님께서 하신다고 하면서도 내가 하여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조금 되는 것 같지만 결국 무너지고 만다.

왜냐하면 땅에 속한 것이요 쇠락의 법칙에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예언이나 방언 환상과 같은 성령의 은사라도 언젠가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 곧 복음이 있는 곳에서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시지, 성령은 결코 독단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말씀은 제쳐두고 성령의 은사만 강조하며 그것을 최고로 여기면 지금 당장은 세워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역시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좀전에 예로 든 그 교회를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그 교회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 교회를 잘 아는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며,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교회에 빠져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예로 제시한 것이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생명으로 교제하며 영생의 삶을 누리길 원하신다.

나 또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 애를 쓰되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영생임을 기억하여 그 영광에 들어간다.

여러 가지 상념들이 나를 짓누르고, 여러 염려와 근심이 나를 에워싸지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신 말씀(빌 4:6)처럼 내가 염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주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 평안과 연합을 누린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이 오해하고 그것을 오용하고 있는지요.

주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향유해야 하는데 그 말씀을 나의 유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악한 자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존재이신 주님이시기에 그 말씀이 성령 안에서 나의 생명임을 믿나이다.

오늘도 다른 것으로 평안하거나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으로 평안을 누리며 우리 주님과 연합하오니 주여, 이 종을 주의 품에 품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이를 그 구덩이에서 건져내 주시고 온전한 복음, 곧 통합복음이 선포되는 교회에서 정말 하늘의 것을 사모하며 생명으로 삶을 누리를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임장로님, 오늘 수술을 합니다.

주께서 선하신 손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이런 일들을 통하여 오히려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땅에서 주의 뜻을 찾는 이들을 주께서 만져주셔서 그들이 이제는 땅의 것을 찾는 일이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고 그들의 영적 눈이 위 곧 만물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주의 여종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사 고통 중에도 날마다 말씀으로 주의 품에 거하는 영생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 설교자료실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필립 부룩스라는 유명한 사람이 현대인들은 세 가지 형태로 살아간다고 규정을 했습니다. 첫째는 피상적인 낙관주의자들이 지구촌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되고 있는데도 그저 잘 되어 간다고 사람들에게 속임수로 낙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염세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도피하고, 은둔하고, 좌절하고, 존재와 역할을 부정하고,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는 염세주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진정한 낙천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은혜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책임 있게 살아가며, 고난을 이겨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지구촌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살아가는 형태는 세 부류안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화려한 구호들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구호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가 ‘하나 되자’ ‘개혁하자’는 말입니다. 이 시간 ‘하나 됨’에 대한 말씀을 나눌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 되자’ ‘여야가 하나 되자’ 교단, 교회, 기업, 군대조직, 가정까지도 하나가 되자는 구호아래서 하나 됨을 추구합니다. 하나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 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 회의를 하고, 구호를 외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각서를 쓰고 온갖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하나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모두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존 그리샴 박사가 오랫동안의 상담과 연구를 거쳐 낸 책인데 지구촌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아주 다릅니다. 화성과 금성은 너무나 다른 별입니다. 거기에서 온 남녀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할 때 얼마나 다른 점이 많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점이 다른데도 나를 닮으라고 하는 것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다르다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개성이 됩니다. 그러나 불화하고 갈등이 일어날 때는 다르다는 것이 전부 문제로 등장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까? 다르다는 것이 개성이 됩니까?사람이라는 것은 남녀를 구분해서 보면 사실은 대부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나서 먹고, 입고, 자고, 살고, 그러다가 죽는 것은 남녀가 구별이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그저 1~2%만 다를 뿐이지 사실은 다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기에 차별이 없습니다. 창조했다는 것에 차별이 없습니다. 다만 재료가 다릅니다. 남자는 흙으로,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흙으로 지은 것과 갈비뼈로 지은 차이가 근본차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님이 사람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흙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갈비뼈 하나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사람으로 창조를 하셨다는 것에서 똑같다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으로 보면 사람은 똑같습니다. 잘 났다 못났다, 배웠다 못 배웠다, 가졌다 못 가졌다는 것은 그저 살아가면서 시비하는 조건인데 인간을 종말론적으로 보면 똑같습니다. 마지막 순간은 똑같습니다. 가진 자답게 죽는 법도 없고, 배운 사람답게 죽는 특별한 법이 없습니다.종말은 같다어느 남편이 아주 잘난 사람입니다. 출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한 가지 결함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너무 구박합니다. 아내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자기편에서 보면 무식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자기 아내를 많이 구박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남편이 먼저 치매가 들었습니다. 병실을 찾아온 사람들 앞에 이 부인은 자기 수치이면서도 “그렇게 잘났더니 친구도 못 알아보고 자기 마누라도 못 알아보는 등신이 되었네.” 하면서 저주 섞인 푸념을 하더랍니다.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에서 만년을 보냈습니다. 숨은 이야기 중에 그가 영어를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분은 평생 영어 속에서 산 사람입니다. 영어를 한국말 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어를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역관을 세워서 대화를 했다는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여러분, 잘났다는 것은 끝에 가면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가졌다는 것, 배웠다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구박하면 안 됩니다. 종말론적으로 인간은 남녀 간에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순간부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의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것을 고백하고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을 확인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주 안에서 우리는 저절로 하나가 됩니다.초대교회 때 로마는 1/3이 노예들입니다. 피지배 민족들을 끌어다가 노예로 부렸습니다. 그 노예들이 복음을 받고 교회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교회 안에는 노예나 왕족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다 하나라고 성경이 선언했습니다. 여성들도 천대받던 그 시절에 예수 믿고, 교회 안에서 사람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귀신들린 자, 세리, 이방인, 모든 죄인들도 예수 믿고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요 소망이 하나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라”고 선언합니다. 하나 됨의 근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만유의 아버지가 되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 됨의 원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하나됨의 원칙첫째는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만유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교회도 성령도 소망도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구원의 근본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존재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은 어떤 조건보다도 하나 되는 절대적 조건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부름 받은 우리 중심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 됩니다.두 번째는 하나 됨의 값을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하고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다섯 가지 조건이 나왔습니다. 하나 되자고 하면서 하나가 안 되는 경우에 오늘 이 말씀을 잘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하나가 안 되는 모든 것을 하나 되게 하는 열쇠입니다.첫째, 겸손으로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겸손의 성경적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손을 들고 ‘나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이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오늘 여기 나오신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분 앞에 바로 살겠다고 무릎 꿇고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께 항복하는 것에서 겸손이 성립됩니다. 예수만이 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왕이시라고 할 때 우리는 모두 신하가 되는 것이고, 그 분 앞에 우리가 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그리고 온유로 하라는 것입니다. 온유는 고사성어가 잘 말해줍니다. 이 한자말과 히브리원어와 헬라어로 보면 의미가 통하는 것이 더러 많이 있습니다. 온유라는 말은 내유외강입니다. 안으로는 부드럽고 밖으로는 강한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의 근본 뜻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온유하다고 한 것은 안으로는 사랑의 주님이면서도 밖으로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십자가의 무시무시한 형벌을 참아내는 강직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온유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그 겸손은 자기의 뜻을 죽이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주님의 겸손입니다. 아버지의 뜻 앞에 복종하는 것이 주님의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온유와 겸손이라는 용어는 쉽게 사용하면 안 됩니다. 상당히 무게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겸손하자 할 때는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자는 것입니다. 온유하자는 것은 안으로는 부드럽고 겉으로는 강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은 부드럽고 일할 때는 과감하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범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신 데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희생의 근본입니다. 희생의 실체입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 내유외강이 일어납니다.내유외강의 지상의 모델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만큼 자식을 향해서 안으로 여리고, 밖으로 강한 존재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식 때문에 때로는 벌레처럼 취급받을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고, 못 먹어도 굶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우리 어머니입니다. 자식 때문에 모든 체면을 다 버릴 줄 아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그 자식 때문에 목숨을 던지는 것이 어머니의 강함입니다. 어머니만큼 강한 존재가 없습니다. 어머니만큼 용감한 존재가 없습니다. 누가 어머니의 용기에 비교가 됩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용기를 어디서 비교할 수 있습니까? 왜 어머니가 그렇게 부드러우면서 강합니까? 자식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만큼 부드럽고 강한 존재가 없습니다. 자기 희생이 바쳐진 그 자식은 너무 귀합니다. 그 자식을 위해서 자기는 벌레처럼 멸시를 받아도 좋다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 내유외강의 실체가 희생입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 내유외강이 일어납니다. 희생한 대상 앞에 내유외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오래 참음은 자기 극복입니다. 자기 극복이 있는 거기에 다른 것도 극복이 됩니다. 사람들이 인내에 실패하는 것은 자기 극복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극복하고 나면 다른 것도 다 극복합니다. 자기한테 걸리면 그 외의 것도 다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실천하는 은사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입니다. 입으로 사랑한다 하면서 마음으로 거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용납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수용하는 것입니다.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평안의 줄로 매어라. 이것도 실천적 행위를 말합니다. 줄을 가지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고 평안의 매는 줄이 되라는 것입니다. 묶어놓은 줄이 아니고 매는 줄이 되라는 것입니다. 실천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은 너무 완고하고 너무 사납고 너무 공격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갑니다. 그야말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으로 용납하고, 평안의 줄로 서로 매는 이러한 대가를 가지고 하나 되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 다 챙기고, 자기 입장 다 세우고, 자기 할 말 다 하고 남을 배려하는 일 없이 하나 되자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권위 있는 국회 단상에서 여야 위원들이 어떤 특정사안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사나운지 모릅니다. 너무 공격적입니다. 옛 이야기입니다. 여야가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발언을 하지 국민과 역사와 민족을 의식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국민을 의식하고 발언하면 그렇게 안 됩니다. 모두가 자기 입장을 가지고 이야기 하니 사나워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상생정치는 벌써 물 건너 가버렸습니다. 희망찬 내년을 설계할 연말에 우리 앞에 펼쳐질 정치투쟁은 비관적입니다.여러분,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가 되지 않습니까? 하나 됨의 값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해 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값을 지불하는 것인데 그것을 안 하려고 자기 몫만 챙기려는 곳에는 어떤 분야도 하나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들려옵니다. 에베소서 2장 29절에 “너희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오늘 우리는 서울 시민으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 시민으로 만났습니다. 예배드리는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하늘나라에 그대로 갑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하나님을 영원토록 섬길 하늘나라 시민으로 만난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 됨은 이렇게 하나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 되지 않으려 해도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한 하나님을 섬길 하늘나라 시민으로 이미 하나 된 존재입니다. 이것을 힘써 지켜가라고 했습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된 것을 성경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아무리 도피해도 안 됩니다. 하늘나라 시민이라는 것은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가족의식을 회복해야“하나님의 권속이라.”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가족보다 가까운 관계는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 했습니다. 가족은 아주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가족이 그렇게 귀하면서도 무관심하거나 등한히 하고 상처 내는 일이 가족끼리 제일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족보다 진한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가족을 대하고 사랑하는데 방법이 서툴러서 가족을 실망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보완을 해야 합니다. 가족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이웃사람에게 하면 형사문제가 될 것이 많습니다. 남들 앞에는 조그마한 대접을 받은 것도 전화를 해서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하면서 가족의 고마움에 대해서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문제시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인사 한번 빠지면 다음에 만날 때 눈빛이 다릅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가족에게 실망을 해도, 가족 때문에 손해를 보아도 밥상에서 숟가락은 듭니다. 속으로 미워도 밥은 같이 먹습니다. 눈물은 흘러도 밥은 함께 먹습니다. 이것이 가족입니다.그런데 성경만 너희들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도 보험회사 구호를 보십시오.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가입할 때는 가족처럼 대하는데 보험금을 탈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약관을 내 놓고 따집니다. 늑대처럼 호랑이처럼 변하는 것이 보험사입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그렇게 하더라도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보고 “너희들은 하나님의 가족이니”라고 했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처럼 우리가 살아야 하는데 왜 가족 아닌 것처럼 자꾸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보험사처럼 가입할 때 다르고, 탈 때 다른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습니다.성직자와 평신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직자는 목사에게, 평신도는 교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하는 일은 성직이고, 교인들이 갖고 있는 직업은 그냥 직업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의 개념을 달리 합니다. 제가 성직자로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이 순간은 성직자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일상적으로 저와 여러분이 만날 때 저는 성직자가 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평신도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고,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똑같습니다. 기능과 직능과 하는 사역 때문에 그 순간은 성직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할 때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성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이 성직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성직입니다. 목사가 예배 인도하면서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 여러분이 직장에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다 성직이 됩니다. 여러분은 성직자가 되어 성직을 누리려 하지 말고 평신도로서 얼마든지 성직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평신도가 되어서 성직을 수행하려 하지 말고 성직자의 위치를 바로 지킴으로서 만족하는 것입니다.특신도를 경계해야그러나 우리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즘 만들어낸 말입니다. ‘특신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신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성직자로서 그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목사도, 교인들도 특신도가 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주님의 양들인데 목사 자신의 양들처럼 교인들을 군림하고 이용하는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특신도가 되면 안 됩니다. 교인들도 특신도가 되면 안 됩니다. ‘나는 너보다 잘났다’ ‘나는 너와는 다르다’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가족을 멸시하고 상처내고 윽박지르고 같은 교인위에 특신도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2절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성직자로 제자리 지키고, 교인들은 평신도로서 만족하면 됩니다.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의식입니다. 프라이버시, 사생활, 비밀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어느 호텔이나 관공서에 가면 ‘프라이빗 룸’이라고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하는 방들이 있습니다. ‘프라이빗’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프라이빗이라는 것은 혼자 있겠다는 것입니다. 개인화를 말합니다. 혼자 있고자 하는 심리는 죄를 짓는 심리입니다. 죄를 묵상하는 심리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 같은 곳에서도 남자를 지어 놓고 보니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해서 여자를 지어서 짝을 지어주었습니다. 인간이 프라이버시를 살린다 해서 좋은 명분을 세우는데 프라이버시는 죄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 우리 교회는 남의 말 잘 안 한다, 우리 교회는 프라이버시가 살아 있어. 현대적인 교회야’가 아닙니다. 프라이버시가 살아있다는 말은 죄가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프라이빗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은혜를 받으면 숨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고 혼자 개인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으면 열리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의 닫힌 것을 열어주시는 영입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하는 영입니다. 숨어 있던 것을 끄집어내는 영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한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숨는 것이 아닙니다. 프라이버시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가 있거든 활짝 여십시오. 성도의 가정에서 받은 축복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활짝 여십시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열게 합니다.맺는 말우리는 이미 주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 됨을 살려가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 되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대가를 지불하면서 하나 되자 하면 하나가 됩니다. 이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우리 주변에 하나 되자는 구호는 난무하지만 하나 되는 결과가 없습니다. 남북도 하나 되어야 합니다. 장애물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야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처럼 모시겠다는 보험사의 두 얼굴이 아니라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이고,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것을 성령 안에서 끝까지 지켜가야 합니다. 하나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 됨의 모범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0-03-15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20200315본문 / 에베소서 4:1~12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에 둘로 나누어서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1~3장에는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4~6장에는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이렇게 산다’ 생활에 대해 기록했습니다.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는 복음이었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처럼 타락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이보다 복되고 귀한 복음이 있겠습니까.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신실합니다. 하나님께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사랑하시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똑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우리는 진리를 똑바로 알고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5절에 보면,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갈라디아서 2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되시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종교나 철학에서도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라고 말할 뿐이지, 사실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된 진리입니다.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생명을 얻는 것도 아니요, 구원 받는 것도 아닙니다.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진리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에서 진리라고 말하는 것을 믿는 사람은 모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사탄도 큰 능력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종만 큰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행하는 것만 보면 하나님의 종인지 사탄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게 미혹되도록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이들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버림 받습니다. 이들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불행한 사람입니다.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셨습니다.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해도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요한일서 3장 4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그들은 불법을 행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셨습니다.불법을 아무리 많이 행했다 해도, 불법인 줄 알고 회개하면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법을 행하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불법 행한 것을 회개하려면, 불법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법 행한 것을 뉘우치고 돌이켜야 합니다.그런데 그들은 불법 행한 것을 뉘우치지도 않고,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불법 행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했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은 혈통으로 된 것도 아니요, 육정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뜻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6장 15~18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어떻게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게 됩니다.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세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만, 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소수였습니다.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공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믿음이 있어도 구원 받는 사람이 있고,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하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행하는 것을 보면, 구원 받는 믿음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약 2:17).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아브라함의 행위를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이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라합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라합은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합의 행위가 라합의 믿음을 보여줍니다.행위가 완전한, 100점짜리 믿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만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주 만족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나의 벗(사 41: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41장 8~13절에 보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믿음의 사람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마음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1982년에 제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제가 교회에 없는 동안 나쁜 소문이 퍼졌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교회에 부임하여 설교했다는 헛소문이 교회에 퍼졌습니다.그런데 성도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지도 않고 헛소문을 그대로 믿고 실망했다고 했습니다.저는 성도들이 믿지 못하는 목회자가 된 절망감으로 인해 울면서 “성도들이 믿지 못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니 저는 실패자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너는 나를 믿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저는 성도들이 저를 믿지 못하는 것만 생각하고 괴로워했는데, 제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하나님을 100% 신뢰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부족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굉장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비하면, 우리의 믿음은 매우 작습니다.마태복음 17장에 보면,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제자들에게 왔으나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갔습니다.마태복음 17장 18~20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아야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구원 받습니다.시력이 좋아야 겨자씨가 보입니다. 시력이 좋지 않으면 겨자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겨자씨가 작기 때문입니다.믿음이 겨자씨 한 알처럼 작아도,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고 못할 것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 작아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 받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에게 믿음이 있었을까요? 그는 평생 나쁜 짓을 했습니다.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은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동안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강도를 꾸짖었습니다.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자신의 죄로 인해 심판 받을 수밖에 없고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할 것을 알았고 그것을 믿었습니다.마태복음 16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가 완전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알고 믿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 형제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믿음의 열매입니다.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계명을 기쁨으로 지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구원 받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가, 구원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열매입니다.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내놓았습니다.남겼다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물질을 사용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여 행하는 일을 기뻐하십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물질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래야 장차 예수님을 만날 때에 예수님 앞에 내놓을 것이 있습니다.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남긴 것이 없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자신을 위해 땅에 묻어두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버림 받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모두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합니까?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백 배의 복을 주십니다.은행에 저금하면 이자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쌓아두면, 천국 은행의 이자는 100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먹고살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때에 심판 주로 오셔서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고 사람을 구분하십니다.요한일서 3장 17~18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7장 15~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열매를 보면 참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보고 참 선지자요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있습니다.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거짓 목자는 이리처럼 행동합니다. 사랑이 없습니다.이리가 양들 사이에 와서 양을 잡아먹듯이 거짓 목자는 양을 속입니다. 거짓 목자는 사랑이 없습니다. 자신의 유익만 챙깁니다.우리가 항상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된 이후에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그런데 큰 환난과 시험과 핍박이 사도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매우 사랑했습니다.예수님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 기쁨으로 인해 사도 바울은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이렇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주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것을 체험하면,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기뻐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는 이 말씀이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대로 우리도 이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만 보면, 힘이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즉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저절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을 써야 합니다.산에서 나무를 베어 와서 그대로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긴 것을 잘라야 합니다. 굵은 것은 쪼개야 합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고 자르고 맞춰야 합니다.이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하나 되려면, 많이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저절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본문 에베소서 4장 2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첫째, 겸손을 훈련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빌 2:3).둘째, 온유를 훈련해야 합니다. 따뜻하고 유순해야 합니다.셋째, 오래 참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예수님을 믿고 난 후, 금방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넷째,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허물이 많지만 사랑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든 다 용납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가정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볼 때, 용납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하나 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와 우리 사이를 하나 되게 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복음 1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언제나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원수 되었다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 되도록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우리는 오직 성령으로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교회가 하나 되고 가정이 하나 되고 모두 하나 되게 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간구하오니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서 이 말씀을 기억하고 살게 도와주옵소서.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하나님의 되기를 워합니다. 고난으로 인해,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교만했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받은 복을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이 고난으로 인해 우리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온전히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셔서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이 고난을 통해 많은 축복을 받고 간증할 일이 많아지게 하여 주옵소서.아버지, 이번 한 주간 동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질고를 이 땅에서 거두어주셔서 한국 교회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고, 전 세계에서 보여줄 수 있게 해주시기 원합니다.아버지, 우리 수영로교회를 통해 꼭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의 설교] 힘써 지키라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투옥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1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하라는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들이 됐으므로 이제부터 하나님의 가족답게, 천국 시민권자답게 생활하라는 권면입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분열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교 총회는 해방을 맞이할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였지만 70년이 흐른 지금은 240여개로 나뉘었습니다. 몇몇 교단은 신학적 견해, 성경 해석상의 차이가 있으므로 나눠지는 것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그 외에는 별반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미국 목사님으로부터 “합동과 통합이 뭐가 다르냐?”고 물어서 설명해주느라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3절에서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은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사탄의 최고 전략은 공동체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이며, 사탄은 틈을 만들어 분열을 선동합니다. 마귀들은 교회가 함께 모이는 것,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것, 목회자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사역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합니다.

마귀는 연합은 무조건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개 교회주의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이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라도 지키려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만 자기교회만 지키려는 것은 개 교회주의입니다. 하나가 돼, 연합해 마귀 권세와 맞서 싸워야 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영적 전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2절에서 네 가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첫째, 교만해서는 연합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나 총회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이것이 교만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둘째, 온유해야만 합니다. 부드러움입니다. 성도는 눈빛조차도 부드러워야 하겠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한 셋째 덕목은 오래 참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참을 만큼 참았다면서 화를 내고, 원수를 갚으려고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을 만큼 참는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참는 사람들입니다.

연합을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서로 용납하는 미덕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서로 용납하는 것은 오래 참는 것과도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7절에서는 “그러므로…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하셨으므로 힘써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서로 용납하는 것을 통해 여러분들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반복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11).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을 따라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하나 되고, 교회 모든 성도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김홍석 목사 (안양일심교회)

◇약력=△고려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남침례신학교 목회학 박사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부서기, 재단법인 유진벨 이사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한 때는 사람이 똑똑한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IQ 즉 지능지수였습니다. IQ의 높고 낮음은 사람이 똑똑한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IQ보다 EQ 즉 감성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말하며 EQ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그것도 변하여 SQ를 말합니다. SQ는 사회적 지수를 말합니다. 이를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성’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서 진정으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가 되었다 해도 대인관계가 좋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네 마네 한다면 아무리 큰 집에 산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과 갈등을 빚고 이웃들과 등을 지고 산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이뤄집니다. 가진 것이 조금 적어도 부부가 금술이 좋고, 부모와 자식 간에 사이가 좋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고, 친구 간에 우정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행복하려면 삶과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명예가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외로워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의 중요한 요소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것이 바로 구원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삶과 좋은 교회, 그리고 행복한 삶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성숙한 믿음과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행복이 사회성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20대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참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증인으로 앞장섰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멀리했습니다. 그를 친구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교의 사명을 받고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40대 초반입니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 팀을 이루었습니다. 마가가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선교 여행을 하는 가운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교 여행이 너무 힘들다 보니 마가가 바나바와 바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로 인해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다투고 갈라서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마가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며 반대합니다. 이 일로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팀이 갈라서게 됩니다. 바울이 성품이 부드럽고 관용적이기 보다 매우 자기중심적으로 강한 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때 바울의 나이가 40대였습니다.

바울은 50대에 고린도교회의 심각한 갈등과 다툼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많아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교회가 산산조각 날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를 힘을 다해 화해시키고자 노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깊이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60대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옥에 갇히며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는 중에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복음을 위해 동역자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선교 초기에 그렇게 미워하고 욕을 했던 마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가가 자신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매우 소중한 일꾼이고 동역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 서신을 보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관대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중심의 거친 관계에서 부드럽고 포용하는 관계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겨 주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행할 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셨다’ 우리들이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정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생각도 다르고, 생활 습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한 생각을 품고, 같은 가치를 위해서 하나가 되어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사실 불가능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각각 다른 사람들입니다.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감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과 느낌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한 번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각 사람의 머리위에 임하셨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성령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인격적으로 만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한 사람씩 모두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주셨을 때 그들은 서로 달랐던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일어나 일하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일꾼들이 많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많았던 고린도교회가 시끄럽고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난 이유는 교인들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소리를 내는데 열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각자가 옳고, 자기만이 최고라고 외치니 교회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람의 생각과 소리는 큰데 하나님의 생각과 소리는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을 지키는데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것을 유지하고 지키는데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은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선 대전제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자꾸 흐트러뜨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의도적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 성숙한 백성이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을 훼방합니다.

이 사실은 이미 예수님께서 너무도 소상히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 17:11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 기도가 저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 되기 힘든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고, 성령께서 하나 될 수 있도록 기본 토대를 만들어주셨지만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역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준엄한 명령이 주어집니다. ‘힘써 지키라’ 힘들더라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보통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내 생각과 뜻을 접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무장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를 써야 합니다.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한신 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 분이 말하는 별세 신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팔팔하게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뜻이 내 속에서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죽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만이 이뤄집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성령님을 말하면서도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를 용납함 등이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믿음의 덕목들은 내가 죽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 가질 수 있는 믿음의 덕목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덕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위해 힘을 다해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한 주간의 삶의 자리에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사모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말과 습관, 그리고 가정과 직장, 교회 생활 속에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배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새롭게 세워지고 회복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삶 속에 이뤄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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