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 이혼 | 서민 교수의 쌍꺼풀 수술 솔직 후기 – 서민 교수가 쌍꺼풀 수술을 한 이유는?(단국의대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 상위 179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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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는 최근 쌍꺼풀 수술을 하고, 현재 회복 중에 있습니다. 서민 교수는 왜 쌍꺼풀 수술을 하게 되었을까요? 쌍꺼풀 수술 후 만족하고 있을까요?
서민 교수의 쌍꺼풀 수술 동기와 후기에 대해 서민 교수 인터뷰로 만나봅니다. 함께 보시죠.
촬영: 최초희, 김용태 PD
편집: 최초희 PD
#쌍꺼풀수술후기 #쌍수후기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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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부인 결혼 이혼 재혼 자녀 없는 이유 – 문과 출신 건물주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그는 집안이 갑부로 추정한다. 아버지는 검사를 지냈고, 추후 변호사까지 하셨다. 어머니는 약사였다. 꽤 부자집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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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vnfkaus.tistory.com

Date Published: 3/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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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아내(부인) 이혼 결혼 – 코리안좀비

대학교수 서민은 화제가 되는 유명 교수 중의 한 명입니다. 정치적인 발언도 스스럼없이 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인물 중의 한 명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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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reanzombie.tistory.com

Date Published: 8/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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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아버지, 서민 교수 이혼 및 서민 교수 아내까지 왜 독설 …

서민 교수는 1967년 4남매 중 장남”. “서민 교수 아버지는 검사 출신”. “서민 교수는 부유한 집안의 의사와 1999년에 6개월 만에 결혼 및 이혼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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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wigaocum.tistory.com

Date Published: 9/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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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나이 고향 학력 이혼 부인 아내 사진 프로필 – 아이돌왕

서민 교수는 1999년과 2008년 2번 결혼한 바가 있다. 1999년에는 부유한 집안의 여성 의사와 결혼했으나 성격 차이로 6개월만에 이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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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dolwang.tistory.com

Date Published: 7/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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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이혼 아내(부인) 결혼이유 – 쇼핑핫딜킬러

서민 군대는 대한민국 육군 대위를 나왔는데요. 육군 제5군단 의무대대 군의관 출신입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겸 교수이며, 기생충과학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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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llershop.tistory.com

Date Published: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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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이혼 후 술만 마셔, 재혼한 아내는 생명의 은인”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맨날 술만 마셨다”고 고백했다. 서민 교수는 “그러다가 미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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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ports.khan.co.kr

Date Published: 6/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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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수) – 나무위키

대한민국의 前 의사, 기생충학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다. 또한 우익 성향의 정치 평론가이기도 하다. 1967년 2월 4일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 1992년,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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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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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 : 사회일반 – 한겨레

인터뷰를 끝내고 필자가 선물한 하회탈춤 ‘이매’의 탈을 서민 교수가 … 다시 술을 마시면 전 재산을 아내에게 주고 이혼한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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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3/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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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쌍꺼풀 수술 솔직 후기 – 서민 교수가 쌍꺼풀 수술을 한 이유는?(단국의대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서민 교수 이혼

  • Author: 의학채널 비온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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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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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부인 결혼 이혼 재혼 자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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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민 교수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못생긴 사람이라 했다. 서민 교수의 아버지도 아들이 못생겨서 미워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매 맞는 것이 일상이었고, 심지어 독서를 한다고 혼나기도 했었다.

그의 증언이 맞다면 이건 무척이나 슬픈일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못생김 마케팅 정도 된다. 왜냐하면 그의 어린 시절을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세계이다.

부자집 도련님

유치원 졸업 사진을 우연히 봤다. 저렇게 구여운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저 사진 속의 아이를 아버지가 미워한다면 단순 못생겨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그는 집안이 갑부로 추정한다. 아버지는 검사를 지냈고, 추후 변호사까지 하셨다. 어머니는 약사였다. 꽤 부자집이었을 것 같다. 그의 가족은 2남 2녀 중에 장남이었다. 나이는 1967년생으로 올해 54살이 된다.

제기차기 신동

그의 생애를 보면 추남의 성공 스토리 정도 된다. 학창 시절에는 제기왕이었다. 못생겨서 놀림만 받았고 친구들이 없어서 혼자 노는 진수인 제기를 연마했었다. 신기록은 2000번 정도 된다 하니 능력자였다.

아까 언급했듯이 엄한 아빠 밑에서 기가 죽어서 살았다.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 집안 자체는 화목한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어떠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사진을 우연히 봤다. 그와 많이 닮았다. 그가 유명인이 되고 나름 이름을 날리게 되는 동기는 엄마의 역할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많이 응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누구와 닮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화영화 보거스가 뜬금 생각난다. 아무튼, 불우한 학창 시절에서 그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로 판단한다. 이 요인이 짬뽕되어 그는 출세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생존 전략은 공부이다.

그는 혼자 하는 것은 잘한다. 공부도 잘했다. 그래서 그의 학력은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학번은 모르겠지만 1998년도에 졸업했다고 한다.

쌍팔년도 시대와 밀레니엄 시대는 다르겠지만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공부를 잘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 심지어 일진들도 건들지 않는다. 철이 든 불량학생은 그를 포섭하여 과외를 받으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생존 전략은 유머이다.

웃긴 사람에게는 사람이 몰린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을 수첩에 메모하고 연습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함정은 본인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는 혼자 개그 치고 혼자 웃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아재 개그는 위험하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 출신의 기생충 교수가 유머를 던진다면, 주위 사람들은 웃게 된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재미가 있든 없든 그렇게 해야 한다. 공부와 권위와 지위에 의한 강압적 화목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과묵한 것보다는 썰렁한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세 번째 생존 전략은 관심 유발이다.

정영진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생존형 페미니스트였다. 매번 강조하지만 남자 페미니스트는 걸러야 한다.

방송 컨셉을 잡으면서 페미니즘 관련 강연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기생충과 같이 버무려서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리고 강의료를 받았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나름 인기가 있었다.

여성가족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라는 이름이 긴 단체에서 지원을 했다. 주혈흡충이 주는 교훈은 대략 이렇다. 기생충의 한 종류인데 이 개체는 부부끼리 싸우지 않고 일부 일처제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인 충이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그래서 잘 산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배우자의 내조도 있나.

아무튼 과거 박근혜 관련 글을 읽었는데, 반어와 풍자의 의미였다.

최근 문재인과 조국 관련 글을 읽었는데 진지했다. 요즘 잘나간다는 조국흑서도 썼다. 그 줄거리는 지금 책 살돈이 없으니 나중에 문고에 가서 속독으로 읽고 쓰는걸로 하겠다.

특이한 것은 그는 이재명 지지자이다. 참고로 문빠와 이재명 지지자들의 싸움은 역사가 깊다. 그는 특정 사람들을 대깨문이라 부르고 있다. 이 사람들과의 싸움이 이해가 된다. 이것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는걸로 하자. 지금은 정치글이 아니니까.

결혼 사진

그는 첫 결혼을 했다. 그의 아내는 의사였다. 1년도 되지 않아 이혼을 했다. 이혼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한다. 주혈흡충에 대한 교훈은 여기서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노총각으로 살던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다.

” 선 볼 때마다 5만 원씩 줄테니까 언능 가자 ”

그리고 부인을 만났다. 결혼과 재혼의 조건은 하나였다.

” 아들 딸을 갖지 말자. ”

지금의 그가 자녀가 없는 이유는 못생긴 자식을 낳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트라우마 때문인지 42살에 결혼을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이 부분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를 간단하게 살펴 본 결과, 술을 좋아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가 대충 짐작은 간다. 단순히 아버지가 되기 싫은것 같다. 아니면 댓글 바란다.

타인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딩크족 철학이 이상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녀가 본인을 닮게 된다면 고통받는 인생이 될것 같다고 했다. 고통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러나 본인은 극복했다. 그래서 뭔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고자라니, 무정자증이라니 루머가 생긴 모양이다. 이 부분을 증명하려고 비뇨기과에 갔었다나…. 차라리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함이라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아무튼, 기생충의 아버지 서민 교수는 그가 사랑하는 기생충 처럼 대대손손 번창하길 바란다.

뱀 다리 – 그의 이력을 살펴보던 중, 독서 이력과 추천 책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그중 하나인 양철북은 소싯적에 읽어서 잘 기억도 나지 않으니, 시간 나면 다시 완독하고 감상평을 쓰겠다.

부럽네 서민이 아닌 서민 교수 블로그 인기 많다. 유유

서민 교수 아내(부인) 이혼 결혼

대학교수 서민은 화제가 되는 유명 교수 중의 한 명입니다. 정치적인 발언도 스스럼없이 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인물 중의 한 명인데요. 서민 교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서민 교수 프로필

서민 나이는 1967년 2월 4일생입니다. 서민 학력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이며, 서민 직업은 기생충 학자이자 칼럼니스트, 방송인입니다.

서민 교수 집안

서민 교수 집안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1967년 검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 사이에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서민은 방송에서 자신의 외모를 농담 소재로 삼곤합니다.

눈이 작고 못생긴 애로 통했으며, 작은 눈으로 조롱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서민은 머리가 상당히 좋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1985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을 했고, 서울대 의대 방송반에서 킬리만자로의 회충이라는 극본을 쓰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되지요.

서민 아내(부인) 이혼이유

서민은 1999년 첫번째 결혼을 했고, 이혼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서민 전부인(전아내)는 부유한 집안의 여성으로 직업이 의사였다고 하지요.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격 차이로 6개월만에 갈라섰다고 언급을 했습니다.

서민 이혼이유(이혼사유)는 성격 차이였는데 두 사람 모두 고학력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과 성격이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교적 짧은 결혼 생활을 마쳤지요.

서민 부인 재혼이유

서민 두번째 결혼은 2008년 1월에 재혼을 했습니다. 서민 교수는 자신의 재혼 사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방송에서도 언급을 자주 했습니다.

서민은 자신의 아내를 상당한 미인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자신을 닮은 자식이 나올까봐 결혼 조건으로 아이를 갖지 말자고 했다고 합니다. 서민 교수가 어린 시절 외모로 놀림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컴플렉스, 트라우마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결혼 전제 조건 때문인지 서민 부인 사이에는 자식이 없습니다. 서민 교수의 고집과 독특한 성격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모의 아내가 거둬 준 덕분에 삶에 의욕이 생겼다. 최선을 다한다. 재혼 이후 아내 덕분에 연구에도 몰두할 수 있었고 연구를 하다보니 논문이 나오고 2011년 학회에서 상도 탔다>

<아내가 한 번은 위내시경을 받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검사를 받고 조기 위암을 발견했다. 아내는 생명의 은인이다. 기생충 중에 부부 관계가 좋은 기생충이 박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 사람 역시 기생충을 본받아 부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갖는 주혈흡충의 삶을 살겠다>

서민은 방송인으로 그리고 기생충 학자로 아내의 내조가 큰 힘이 되었고, 다시 새로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을 자주 했습니다. 서민은 본인의 말처럼 좋은 아내를 만나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 결혼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민 교수는 SNS나 블로그를 통하여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어 논란과 비난을 사기도 하는데요. 이런 논란의 글만 올리지 않는다면 서민 교수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민 교수 아버지, 서민 교수 이혼 및 서민 교수 아내까지 왜 독설로 가득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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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아버지, 서민 교수 이혼 및 서민 교수 아내까지 왜 독설로 가득한가

“서민 교수는 1967년 4남매 중 장남”

“서민 교수 아버지는 검사 출신”

“서민 교수는 부유한 집안의 의사와 1999년에 6개월 만에 결혼 및 이혼을 했다”

“재혼은 2008년 1월에 했으며, 자녀는 없다”

요즘 진중권씨와 쌍두마자로 달리고 있는 서민교수입니다.

서민 교수는 흔히 기생충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2002년 부터 딴지일보에서 ‘마테우스’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면서 칼럼니스트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서민 교수는 각종 글과 인텨뷰에서 독설을 보여 주고 있는데요.

“조국, 기생충에 비유하면 말라리아. 비열하기 때문”

“文정부는 바이러스다”

“秋아들이 안중근이면 윤미향은 유관순”

서민 교수와 진중권 교수의 독설은 뭔가 비슷한 부분도 있고

이들이 하는 언어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언어라곤 이상한 부분도 상당합니다

좀 배운 사람들은 품격이 있는 단어와 언어의 방식은 모르는건지.

.

서민 교수 아버지는 검사 출신아라고 하죠.

그 당시에 아버지 직업이 검사라면 상당한 부유층의 집안으로 보이는군요.

서민 교수는 방송에서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에

관련해서 이야길 했는데요

2017년 8월 31일 KBS1 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결혼을 하고 네 번 가출했다. 마지막에는 짐을 모두 싸고 나와서, 1년이 되기 전에 파경을 맞았다”

“지금의 아내가 거둬 준 덕분에 삶에 의욕이 생겼다. 최선을 다하게 됐다”

“이혼 후 술만 마셔, 재혼한 아내는 생명의 은인”

지금은 부인을 잘 만난서 행복한 삶을 살아 가는 듯 보이는군요.

서민 교수의 논란이 된 내용은 엄청 많지만. 그중에서

2019년 7월 23일 경향신문에 기고를 통해서 나온 내용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가지게 했습니다.

“자존심이 밥먹여주냐. 일본하고 싸우면 우리가 손해야. 자존심 버리고 일본에 굴복해라. 10억엔으로 위안부 없었던 일로 하고 대법원 판결 뒤집으면 행복하다. 그래 나 친일파야.”

서민 교수님아

당신이 낚서를 했던 난 친일파라고 적어둔 글을 지금 보면

팩트와 내용에서 아직도 변함이 없는 것인가 묻고 싶다.

칼럼이 자기의 뜻을 전달하는 글을 작성하지만.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은 서민 당신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된다

서민 교수여.. 다시금 칼럼을 읽어 보고

아직도 글 하나 하나에 변함이 없는지 묻고싶다.

.

서민 교수 독설로 가득한가.

“조국, 기생충에 비유하면 말라리아. 비열하기 때문”

“文정부는 바이러스다”

“秋아들이 안중근이면 윤미향은 유관순”

서민 교수의 내용들이 언론을 통해서 전달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고 그런 가운데서 인터넷 언론들은 클릭당 광고비를 먹기위에서 동일한 글과 논란의 요지로 빠르게 빠르게 퍼지게 하죠.

서민 교수와 진중권씨의 정부에 대한 독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언어의 장난 수준이 너무나 저급하다

교수라고 하는 타이틀 정도면 왠만큼의 책도 읽고 강의도 하는 사람들인데

품격이라고 볼 수 없는 단어들을 던짐으로써 선동가적인 모습만 보인다

2. 문 정부가 얼마나 이들에게 좌절검을 준 것일까?

글쎄다.. 과연 어떤 좌절감을 준 것일까?

일본인 부인과 아들을 둔 사람과, “그래, 나 친일파다”는 메시지를 던진 사람이

한국 정부가 맘에 들리는 없겠지만. 이해가 어렵구나

3. 그들이 원하는 세계는 당신들은 만들수 있나?

인터넷에는 많은 네티즌들이 있다

댓글을 다는 사람. 블로그에 글쓰는 사람, 카페에 글 쓰는 사람등..

이 사람들도 할말은 많다. 하지만. 본인들이 쓰는 글이 세상이 달리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단지 토론을 하고 토론은 여론을 만들기에 하는 것이다

서민과 진중권은 어떤 생각으로 글과 말을 할까?

자기들만이 정도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본인이 정권을 잡으면 관연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소리다

서민 교수 아버지는 검사.. 어머니는 약수

서민 교수 이혼을 했지만. 바로 결혼을 하고 자식은 없죠.

자기를 닮은 자식이 나올까봐?

아이는 만들지 말자고 했다고 하는 내용도 있지만. 많은 분들도 아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특별하지는 않겠죠.

서민 교수님.

정부에 대한 비평과 평가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런 소중한 내용에서 독설만 남는 다면? 당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

전달이 되고, 토론이 되고. 여론이 만들어 질까요?

그냥 배설을 토하듯 하는 내용으로 끝나기 보다는

만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남기길 바랍니다.

“그래, 나 친일파다”

그리고 아직도 이 글에 하나 하나 빠짐없이 동일한 의견인지

묻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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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 이혼 아내(부인) 결혼이유

서민 교수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개그맨보다 웃긴 교수라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일단 외모에서 평범치 않은 모습이 풍겨지며 하는 말이나 애드립 역시 상당히 재미있는 교수입니다.

서민 교수 직업은 대한민국의 기생충 학자이자 칼럼니스트 방송인이지요.

서민 교수 프로필

서민 교수 나이는 1967년 2월 4일생입니다. 서민 교수 아버지는 검사이며, 어머니는 약사입니다.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요.

서민 교수는 인터뷰나 방송에서 자신의 외모를 농담 소재로 많이 삼기도 했는데요. 어릴 적부터 눈이 작고 못생긴 애로 통했으며, 중학생 때에는 선생님마저 작은 눈을 조롱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많이 없어서 제기를 차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지요.

서민 학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인데요. 1985년 서울대학교 의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방송반에서 활동하던 중 킬리만자로의 회충이라는 극본을 쓰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1994년 동 대학원 석사, 1998년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9년 5월부터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로 재직을 하고 있지요.

서민 군대는 대한민국 육군 대위를 나왔는데요. 육군 제5군단 의무대대 군의관 출신입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겸 교수이며, 기생충과학교육 저술가이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민이 항상 하는 자신의 농담처럼 웃긴 외모와는 다르게 스펙도 상당하고 머리도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민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는 강준만 교수가 만드는 월간 인물과 사상을 꼽았습니다. 공중보건의 시절에 우연한 계기로 인물과 사상을 읽었고, 이후 지역차별, 여성차별 등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서민은 2002년부터 딴지일보에 마테우스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04년 한겨레신문에서 실명 칼럼니스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2013년에는 윤창중을 소재로 경향신문에 쓴 풍자 칼럼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가 화제를 끌기도 했습니다.

서민 부인(아내) 결혼이유

서민은 1999년과 2008년 결혼을 했습니다. 한 번의 이혼을 겪고, 재혼을 했다는 것이지요.

서민 교수 부인은 1999년 집안이 부유한 여성 의사와 결혼을 했으나 성격 차이로 6개월만에 갈라섰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부유한 부인(아내)이자 의사라를 고학력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자존심 또는 성격이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서민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2008년 1월 재혼을 했습니다. 서민은 자신의 재혼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내(부인) 이야기도 방송에서 많이 했습니다. 아내의 미모를 칭송하기도 하고, 자신을 닮은 자식이 나올까봐 결혼 조건으로 <아이를 갖지 말자>고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15년 4월 현재 서민과 서민 아내 사이에는 자식이 없지요. 서민의 독특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반면에 서민은 자신의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아이를 갖지 말자고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서민 전부인(전아내)에 대해서 언급을 한 적도 있는데요. 비뇨기과를 방문한 적이 있냐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나 같은 경우는 특이한 경우로 비뇨기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혼 소소을 하던 중 상대편에서 내가 고자라고 소문을 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2박 3일 입원을 한 적이 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서민 교수 부인 사진, 서민 교수 아내 사진 등과 같은 연관검색어가 나오는 이유는 재혼한 아내에 대한 미모를 서민 본인이 자랑을 한 적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서민 교수 결혼 사진

<결혼을 하고 네 번 가출을 했었다. 마지막에는 짐을 모두 싸고 나와서 1년이 되기 전에 파경을 맞았다. 그러면서 우울증에 빠졌다.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맨날 술만 마셨다>

이것을 보면 서민 교수 이혼이유(이혼사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내와의 성격차이가 이혼의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모의 아내가 거둬 준 덕분에 삶에 의욕이 생겼다. 최선을 다하게 됐다. 재혼 이후 아내 덕분에 연구에도 몰두할 수 있었고, 연구를 하다보니 논문이 나오고 2011년 학회에서 상도 탔다>

<(재혼한)아내가 한 번은 위내시경을 받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때 처음 검사를 받고 조기 위암을 발견했다. 아내는 생명의 은인이다>라며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으며, <기생충 중에 부부 관계가 좋은 기생충이 박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 사람 역시 기생충을 본받아 부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갖는 주혈흡충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민은 자신의 아내의 내조 덕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요. 성공한 여성이 많이 없는 이유는 <아내(?)가 없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지요. 서민의 아내 자랑은 대단한 것 같은데요. 아내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하고, 지금처럼 교수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민 교수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바라며, 지금처럼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길 바라겠습니다.

서민 교수 “이혼 후 술만 마셔, 재혼한 아내는 생명의 은인”

서민 교수가 “아내는 생명의 은인”이라며 사랑꾼 면모를 드러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아침마당>에서는 서민 기생충 박사가 출연해 ‘기생충과 부부관계’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서민 교수는 이날 “결혼을 하고 네 번 가출했었다. 마지막에는 짐을 모두 싸고 나와서, 1년이 되기 전에 파경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우울증에 빠졌다.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맨날 술만 마셨다”고 고백했다.

서민 교수는 “그러다가 미모의 아내가 거둬 준 덕분에 삶에 의욕이 생겼다. 최선을 다하게 됐다”며 재혼 사실을 공개했다.

서민 박사는 “재혼 이후 아내 덕분에 연구에도 몰두할 수 있었고, 연구를 하다보니 논문이 나오고, 2011년 학회에서 상도 탔다” 면서 자신이 아내의 내조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성공한 여성이 많이 없는 이유는 ‘아내가 없기 때문’이라는 눙을 쳐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서민 박사는 또 “아내가 한 번은 위내시경을 받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때 처음 검사를 받고, 조기 위암을 발견했다. 아내는 생명의 은인”이라며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서민 박사는 “기생충 중에 부부 관계가 좋은 기생충이 박멸되지 않고 남아있다”면서 “사람 역시 기생충을 본받아 부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가장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갖는 ‘주혈흡충’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

지난달 27일 오후 충남 천안에 있는 단국대 의대 기생충연구실에서 만난 서민 교수는 인터뷰 내내 특유의 유머감각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비(B)급 유머지만 특유의 풍자가 돋보인다”는 말에 서 교수는 “비급이 아니다”라고 정색한다. 그러고선 조금 뒤에 “시(C)급, 시급이죠”라는 식이다. 천안/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못생겨서 감사합니다”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

‘눈 작고 못생긴 애’로 통했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놀려댔고

아버지도 못생겼다고 미워했다

웃기는 애들 인기 있는 걸 보고

그렇게 되고 싶어 혼자 연습했다 웃자고 쓴 방송 대본 덕에

비주류 기생충학을 전공했다

“기생충은 인간과 3만년 살았고

늘 해만 끼친 것도 아니에요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죠”

인터뷰를 끝내고 필자가 선물한 하회탈춤 ‘이매’의 탈을 서민 교수가 써보고 있다. 천안/강재훈 선임기자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지난 5월12일, 경향신문 누리집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글을 쓴 이는 기생충학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

“일부 좌파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대변인에서 경질됐다’는 기사 내용을 토대로 그의 성추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윤창중의 결백을 믿는다.”

‘윤창중 결백론’의 근거가 흥미롭다. 윤봉길 의사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윤창중은 대선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인수위에 들어가 애국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건 내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윤봉길 의사에게 이제 독립했으니 장관 하라는 격”이라고 호통칠 만큼 사심이 없는 사람이며, 이후 “사흘이나 버티다가” 인수위 대변인을 맡았으니 그 진정성을 믿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입이 더러운 자는 손이 깨끗한 법”이니 막말 논평으로 유명한 그가 손버릇까지 나쁠 리 없는데, “만에 하나,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말과 손과 성기가 삼위일체로 더러운 보기 드문 인물이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서민의 칼럼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타고 단박에 화제로 떠올랐고 “제목에 낚여 욱했다가 빵 터지고 간다.” “반어법의 극치다.” “진정한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봤다”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 사회의 병리적 문제를 기생충의 생태에 비유한 글들이 실리는 그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현재까지 160여만명. 어수룩한 외모와 어눌한 말투,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풍자로 뼈 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신진 논객. 그의 능청스럽고 반어적인 유머의 원천은 뭘까? 텔레비전 오락 프로에도 단골 출연자가 된 그는 정말 생각이 있는 사람일까, 단순히 웃기는 사람일까. 충남 천안에 있는 단국대학교 연구실로 그를 만나러 갔다. 구겨진 머리에 캡 모자를 눌러쓴 채 서민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전날 밤 늦게 끝난 방송 녹화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 인기가 대단하다. “떴다”는 걸 느끼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변에서 기생충 어쩌고저쩌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땐 내 얘기를 하는구나… 행동도 조심스럽게 하고 (무릎을 모으며) 인사도 공손히 하고….”(웃음)

-의대 교수가 사회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뭐라 하지 않나?

“학교나 학회에선 별 얘기 없다. 오히려 홍보가 된다고 생각들 하시는 것 같다. 다만 아내는 내가 정치 관련 글을 쓰는 걸 싫어한다. 작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더 이상 쓰지 말라고, 탄압받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마흔두살에 결혼을 했다. 노총각 아들에 애가 탄 어머니가, 선 한번 볼 때마다 5만원씩 주겠다고 해 마지못해 나간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세상에 태어나 만나 본 가장 예쁜 여자”였다. 술만 마셨다 하면 “천안역에 대자로 뻗을 때까지” 폭음하던 서민이 2011년 조기 위암 진단을 받자, 부인은 “두번 다시 술을 마시면 전 재산을 아내에게 주고 이혼한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으나 퇴원한 지 며칠 안 되어 닭백숙을 4인분이나 먹고 꿰맨 자리가 터지는 바람에 수혈을 9병이나 받는 중태에 빠졌다. 겨우 상처가 아물어 퇴원한 뒤 석달이 지나, 동료 의사에게 “이제 이 환자는 술을 마셔도 된다”는 “음주추천서”를 써 달래서 아내한테 가져갔더니, 아내는 그 자리에서 추천서를 박박 찢어버리고는 그동안 어머니께 비밀로 했던 위암 투병 사실을 폭로했다.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서민은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내는 그의 영원한 ‘갑’이다.

-가족관계는?

“아내와 강아지 세마리 키우며 산다. 아이는 없다. 결혼할 때 내 조건이 ‘아이를 가지지 말자’는 거였다. 나 닮아 못생긴 애 나올까봐서.”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그는 진지했다. 그의 외모 콤플렉스는 뿌리가 깊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민은 어린 시절부터 “눈 작고 못생긴 애”로 통했다. 아이들이 화장실까지 따라와 놀려대는 통에 집 밖에선 소변도 웬만하면 참아 버릇했다. 중1 때 음악 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그를 나오라고 해서 눈을 키워준다고 눈꺼풀을 손으로 잡아 늘였는데,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어대는 동안 서민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는 외톨이였다.

-왜 화를 내거나 반항하지 않았나?

“나도 내가 싫었다. 누가 놀리면 대드는 대신, ‘그래, 난 인간쓰레기야’ 생각했다. 길을 가도 놀리는 애들이 있어서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어려선 오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서른까지만 살다 죽어야지 생각하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없었다. 내게 어린 시절은 온통 잿빛이다.”

-단지 외모 때문에 그랬단 말인가?

“글쎄, 외모도 그렇고…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셨다. 못생겼다고.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고 매 맞은 기억만 있다. 때리는 이유도 분명치 않았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책 읽는다고 매 맞은 이후엔 서른이 될 때까지 책도 읽지 않았다. 고3 때는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고 매를 맞았다. 아버지만 생각하면 공포에 질려서 말을 더듬었고 틱 장애까지 겪었다.”

아버지는 검사였다. 열두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9남매의 맏이로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한평생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저주했다. 4남매 중 장남인 서민은 아버지의 가장 만만한 화풀이 상대였다.

-언제부터 사람을 웃기는 재주를 갖게 됐나?

“어릴 때 친구가 없으니 항상 남들을 관찰하면서 살았는데, 웃기는 애들이 인기가 많은 걸 보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우스갯소리 잘하는 애들 따라다니면서 수첩에 받아 적고 혼자서 연습하곤 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처음엔 아무도 웃어주지 않더라.”

서민의 유머는 피나는 연마와 습작의 산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작정하고 공부해서, 중간쯤 하던 등수가 서울 의대에 갈 만큼 오를 무렵 그의 유머도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웃기는 것만이 서민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85년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그의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사람을 웃길까”뿐이었다. 의대 방송반 시절 기생충학 강의를 듣다가 이란 대본을 썼는데, 웃자고 쓴 대본이 그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스승인 홍성태 교수가 대본을 보고는 그에게 기생충을 전공해 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그의 기발함이 연구에 보탬이 될 거라며.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기생충학은 의대생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지 않은가?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생충은 내 삶의 은인이다. 기생충 공부 안 했으면 내 인생은 지금의 반의 반도 재미없을 뻔했다. 남들은 기생충을 징그럽다고 싫어하지만 나는 기생충이 불쌍하고 사랑스럽다.”

-채변 봉투 갖다 내고 단체로 구충제를 먹어본 세대라면 기생충이 사랑스럽다는 말에 절대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1963년 한 여자아이한테서 회충이 1000마리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기화로 정부가 기생충박멸협회를 만들어서 아이들 데려다가 대대적으로 검사하고 구충제 먹이기 시작했다. 당시 공무원들이 몸 바쳐 일한 덕에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기생충 감염률이 줄어든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당시 기생충 박멸이 그렇게 시급한 과제였을까 의문은 든다. 사실 그 아이가 죽은 건 영양실조 때문이지 기생충 때문이 아니다. 회충은 평생 밥풀 몇 알밖에 안 먹는다. 제대로 먹이기만 했어도 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당시에 기생충이 후진국의 상징처럼 인식되어서 선진국 되려면 ‘박멸’해 없애야 한다고 정부 주도로 세게 밀어붙인 거다.”

-그럼 기생충이 박멸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박멸하려고 해서 박멸되는 것도 아니다. 세균을 항생제로 다 몰아내려고 하면 나쁜 세균이 들어와서 더 탈이 나지 않는가. 기생충은 3만년 전부터 인류와 공존해 왔고 인체에 꼭 해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기생충이 알레르기 질환을 크게 줄이고 크론병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흔히 ‘이 기생충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는데 기생충 입장에선 무지 억울할 것이다. 말라리아 원충처럼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나쁜 기생충도 있지만 대체로 기생충의 범죄율은 인간보다 낮다.”

못 먹고 못살던 60년대나 비만이 걱정인 요즘이나 회충의 크기는 한결같다. 인체에 세 들어 사는 기생충은 절제와 분수를 아는 생물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인간이 지구에 세 들어 살면서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그 정도는 봐줄 만하다는 것이다. 서민이 인터넷에 연재한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기생충을 탐욕의 상징에 비유한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다. 왜? 자기 분수를 지켜서 먹으니까. 기생충은 비열할 수는 있어도 탐욕스럽지는 않다. 있는 듯 없는 듯 숨은 채로 자기 먹을 것만 챙겨먹는 놈들, 그게 기생충이다.”

서민은 기생충이 소시민을 닮았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 그대로 기생충은 “서민”이다. 질시와 혐오의 대상인 기생충의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동안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냈을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타임머신 같은 게 있어서 내 어린 시절 누군가 미래에서 뿅 날아와 ‘넌 앞으로 잘 살게 될 거야’ 미리 말해줬더라면 사는 게 그렇게 괴롭진 않았을 텐데.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음 좋겠다. 네 미래는 좋아질 거다. 좌절하지 않고 뭐든 하나만 열심히 하면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도 나중엔 다 쓸모가 있을 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내가 공부 안 하고 소설만 뒤적일 땐 몰랐는데, 나중에 논문 쓸 때 보니 소설적 상상력이 힘이 되더라.”

-어려선 책을 안 읽었다더니?

“서른한살부터 읽기 시작했다. 97년 공중보건의 하던 시절 우연히 탈의실에서 신문지 조각에 실린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정권교체가 뭐가 그리 무서운가’라고 쓰인 책 광고였는데 호기심이 동해서 책을 사게 되었다. 그게 강준만 교수의 이다. 큰 충격이었다. 지역차별, 여성차별, 학력차별… 이전엔 한번도 따져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프로야구 말곤 관심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 뒤로 다양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강준만 교수 덕에 사람답게 살게 됐다.”

그 후 친한 사람들한테 을 열심히 선물하며 그가 받은 충격과 감동을 나누고 싶어했지만, 별 반응들이 없었다. 가슴속 얘기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서민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 쓰고 혼자만 읽던 글이 쌓이면서 2002년에는 딴지일보 기자가 되었고 이후 같은 책을 출간했다. 요즘 그는 새로 나올 탈고 작업으로 분주하다.

-과거 조경철 교수나 윤무부 교수도 자기 분야에 독보적 입지를 쌓으면서도 대중적 스타로 큰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별 박사 조경철, 새 박사 윤무부에 이어 기생충 박사 서민이 되려 하는가?

“감히 그분들과 비교할 급이 안 된다. 난 그저 못생겨서 만만한 캐릭터다. 같이 방송하는 정찬우가 나보고 ‘없어 보인다’고 구박하는데, 난 그 말이 듣기 좋다.”

-기꺼이 어릿광대가 되겠단 얘긴가?

“어릿광대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솔직히 대학교수라고 어디 가나 교수님, 교수님 하는데, 내가 구박받으면 보는 사람들이 통쾌할 것 아닌가.”

-진중권은 독설과 조롱, 김어준은 마초적 풍자가 특징이다. 그들과 비교해 당신의 특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난 그냥 C급 유머? 내 글엔 대안이 없고 소심한 탄식만 있다. 내가 잘하는 게 반어적으로 비꼬고 조롱하는 건데, 이건 그저 세상에 편승하는 거다. 우리끼리 킬킬거리는 소심한 ‘자뻑’일 뿐이지, 그걸로는 사회를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바뀌나?

“시민들이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바뀐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 같은 사람한텐 최고의 대통령이었다. 매일 글 쓸 소재를 던져줬으니까. 그때는 쓸 얘기가 너무 많아서 신문사에 두세편씩 보내 주고 ‘아무거나 골라 쓰세요’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도 우리나라 수준에 딱 맞는 대통령이었던 거다. 내 주변에 의사들이 많은데 살 만큼 살면서도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늘 불만이다. 정치가 자기 불만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80년대를 뜨겁게 살진 못했을지언정 최소한 응원은 했던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 따지려 든다. 이래선 어떤 메시아가 와도 못 바꾼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민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넸다. 쭈글쭈글 웃는 주름으로 유명해 흔히 하회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하회탈춤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하나인 ‘이매’의 탈이다. 이매는 하회탈춤의 메인 캐릭터가 아니다. 언청이에, 눈은 아래로 축 처지고 좌우가 비대칭으로 찌그러진 이매는, 덜떨어진 바보에 팔과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장애인이다. 이매는 가장 찌질한 자들의 표상이다. 나는 못생긴 바보야, 나를 마음대로 깔아뭉개 봐. 그렇게 상대를 한껏 무장 해제시키고는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다가가 힘 있는 자들의 치부를 사정없이 까발린다. 관객은 못생긴 바보 이매의 능청스런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공감한다. 그 위약(僞弱)의 힘은 공감의 원천이 된다.

-난 당신한테서 이매를 보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무의식에서 그런 생존전략을 터득한 것 같다. 듣고 보니 그렇다.”

서울대 의대 출신, 박사에 대학교수. 그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서민이 이름 그대로 이 시대 찌질한 서민의 편이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코미디언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란 말을 남겼지만, 나는 서민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못생겨서 감사합니다.”

녹취·진행 윤형중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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