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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른 느낌을 인생에 비유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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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관한 시 모음 – 네이버 블로그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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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관한 시 – 다우리산사랑
배부르게 먹고 산 것 죄스럽습니다. … 구경 삼아 오르내린 것도 죄스럽습니다. …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 내 발을 덮어주기도 한다. … 속마음을 보여준다 …
Source: ekdnfl.tistory.com
Date Published: 9/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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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시모음 – 조글로
<등산에 관한 시 모음> 신석정의 ‘산으로 가는 마음’ 외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Source: www.zoglo.net
Date Published: 8/1/2021
View: 5950
<등산 시모음> 이성선의 ‘하늘 악기’ 외 – 책벌레 – 이글루스
입을 다물어 나의 고요함도 산에 보탭니다 … 산에 오를 때마다 정다운 대화를 나눈다. … <등산 시 모음> 김길남의 ‘등산계명’ 외 + 등산계명
Source: haidi75.egloos.com
Date Published: 1/3/2022
View: 5349
자연에 관한 시 모음 – 당당뉴스
<자연에 관한 시 모음> 배한봉의 ‘과수원 시집’ 외 …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 빨간 햇빛이 산너머 숨바꼭질하며
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6/14/2021
View: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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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산 에 관한 시
- Author: 별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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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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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관한 시 모음
산으로 가는 마음 -신석정(1907-1974)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 산행법 (박철·목사 시인)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 산경 (도종환·시인, 1954-)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 산행·2 (마종기·시인, 1939-)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 등산 -박태강(1941~)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 북한산에 올라 (이재무·시인, 1958-)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 산길 –이성복(1952~)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 산 (함민복·시인, 1962-)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진달래꽃 술렁술렁 배웅합니다
앞서 흐르는 물소리로 길을 열며
사람들 마을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다보고
그래도 그리우면 당신 찾아가 품에 안겨보지요
그렇게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 산을 오르며 (도종환·시인, 1954-)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 안 가본 산 (이성부·시인, 1942-)
내 책장에 꽂혀진 아직 안 읽은 책들을
한 권 뽑아 천천히 읽어가듯이
안 가본 산을 물어물어 찾아가 오르는 것은
어디 놀라운 풍경이 있는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마냥 흘러가고픈 마음 때문이 아니라
산길에 무리 지어 핀 작은 꽃들 행여 다칠까 봐
이리저리 발을 옮겨 딛는 조심스러운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누대 갈참나무 솔가지 흔드는 산바람 소리 또는
그 어떤 향기로운 내음에
내가 문득 새롭게 눈뜨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성깔을 지닌 어떤 바위벼랑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새삼 높은 데서 먼 산줄기 포개져 일렁이는 것을 보며
세상을 다시 보듬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직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사랑의 속살을 찾아서
거기 가지런히 꽂혀진 안 읽은 책들을 차분하게 펼치듯
이렇게 낯선 적요 속으로 들어가 안기는 일이
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 산행 (공석진·시인)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 산이 있는 풍경 (윤수천·시인)
산을 내려갈 때에는
언제나 허리를 낮추어야 한다
뻣뻣하게 세우고 내려갈 수는 없다
고개도 숙여야 한다
고개를 세운 채 내려갈 수는 없다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위를 쳐다보면
아, 하늘은 높고 푸르구나
이것이다
산이 보여주려는 것
하늘은 무척 높다는 것
푸르다는 것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
이것을 보여주려고
산은 날마다 손을 내밀어
오라 오라 했나보다
+ 가을 산 (김지헌·시인, 1956-)
사방엔 온통 그대 모습
그대 이름 부르다
부르다
목젖에 걸려
피빛 울음
토악질한 수밖에
참으로 긴 날 가슴 태우며
기다렸는데
그대, 안부도 묻기 전에
그림자만 남기시는지
다시 마음 다칠까 두려워
두려워
그냥 빈 가슴만 안고
돌아왔네.
+ 시월 (나희덕·시인, 1966-)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山門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쑥부쟁이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 가을 산 (정군수·시인)
가을 산에 앉아 있으면
산을 떠나는 가을의 발소리
껍질을 벗어버리고
가을을 떠나는 산들의 웃음소리
가을 산에 앉아 있으면
무성하게 자란 욕망들이
시든 풀과 한 빛이 되어 잠자고
절벽을 날으는 자작나무 잎
나뭇잎만 가지고
허공으로 지는 것을 본다
가을 산에 앉아 있으면
더 먼 곳으로 떠나는 산들의
가볍고 가벼운
웃음소리 발소리
+ 산을 오르며 (천양희·시인, 1942-)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 산에 가는 이유 (성락건·시인)
산에 가는 것은 밥 먹는 것과 같아야 하고
잠자는 것과 닮아야 한다.
번개 치는 날도, 천둥 우는 날도
산 타는 일이 처갓집 가듯
당당해야 한다.
소낙비 억수로 맞고 어질어질 취해
산 내려옴도 술 먹는 날인 양
자주 있어야 한다.
발가벗고 발길 닿는 대로 능선 쏘다니는 일도
여름 찬물 마시듯
부담 없어야 한다.
노는 날
날빛 고루 환한 날 택해
요란한 산 여럿이 감은
빛 좋은 개살구 된다.
산 가는 일은
별식 같아선 안 된다.
바람 불어도 산 가야 하고
가슴 뛰어도 산 올라야 된다.
기쁨 돋을 시나 슬픔 잠길 때만
가는 산은
절름발이 산행이다.
산 가는 것은 잠자는 것과
같아야 하고, 밥 먹는 일과
닮아야 한다.
+ 산 (김용택·시인)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을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등산에관한 시
산을 오르며
–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산이 있는 풍경
– 윤수천·
산을 내려갈 때에는
언제나 허리를 낮추어야 한다
뻣뻣하게 세우고 내려갈 수는 없다
고개도 숙여야 한다
고개를 세운 채 내려갈 수는 없다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위를 쳐다보면
아, 하늘은 높고 푸르구나
이것이다
산이 보여주려는 것
하늘은 무척 높다는 것
푸르다는 것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
이것을 보여주려고
산은 날마다 손을 내밀어
오라 오라 했나보다
산
-김용택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을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산 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 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아무도 산 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양성우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바닥에서부터 오르는 법이다
때로는 돌에 걸려 넘어지고
깊은 수풀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느 골짜기나 다 낯설다
그렇지만 우연히 선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가는 곳이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아득히 멀고 큰 산을 오르기 전에는
낮은 산들을 오르고 내림은 당연하다
아무도 산 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오른 뒤에는
또다시 내려가는 길밖에 없는 까닭이다
무제(無題)
– 박재삼
산은 항상 말이 없고
강은 골짜기에 갈수록 소리내어 흐른다.
이 두 다른 갈래가
그러나 조화를 이루어
얼굴이 다르지만 화목한 영위(營爲)로
나가고 있음을 본다.
세상이 생기고부터
짜증도 안내고 그런다.
이 가을 햇빛 속에서
단풍빛으로 물든 산은
높이 솟아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반짝이는 노릇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없는 듯이 알리나니
이 천(千)날 만(萬)날 가야 똑같은
쳇바퀴 같은 되풀이의 일월(日月) 속에서
그러나 언제나 새로움을 열고 있는
이 비밀을 못 캔 채
나는 드디어 나이 오십을 넘겼다.
겨울산
– 문현미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세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산의 눈물
– 김은영
아버지랑 산에 가서
두릅을 따고
다래순도 따고
취도 뜯었다
비빔밥 해 먹으려고
어머니가 산나물을 데치는데
냄비 속 물빛이 푸르다
산 빛깔이 우러나왔다
산나물이 냄비 속에서
푸른 눈물을 흘렸구나!
푸른 피를 쏟아냈구나!
산에게 미안해서
슬그머니 산을 쳐다보니
산은 꿈쩍 않고 푸르다
먼 산
– 찬상병
먼 산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이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산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제 앞만 보고 걷기
– 임인규
산에 오를 때마다 보폭이 짧아진다.
시선은 항상 제 앞만 보고
일정한 리듬으로 산을 오른다.
넓고 높게 보면 까마득한 능선
부지런히 숨 고르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있다.
산다는 것은 그저 별것이 아닌 것
내 일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작은 목표를 향해 차곡차곡 세월이 가면
어렵게만 보았던 그 정상이
어느새 쾌감처럼 내 앞에 있다.
정상은 오르라고 있는 것
중간에 포기란 없다.
게으른 토끼보다 부지런한 거북이
큰 부자 큰 인물은 하늘이 낸다지만
제 몫 충실한 개미는 바위도 뚫는다.
산에 오를 때는 보폭을 작게 한다
산길
– 남성희
산을 오릅니다
산기슭의 길은 넓고 편합니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간혹은 손을 잡고
마주보며 웃음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길은 좁고 가파릅니다
당신과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없습니다
혼자 걷지 않으면 안됩니다
혼자 걷는 산길은 오를수록 비탈져
숨이 막힙니다
앞서 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가물거리며 사라집니다
마지막 길은 혼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압니다
행복
– 허형만
지리산에 오르는 자는 안다
천왕봉에 올라서는
천왕봉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천왕봉을 보려거든
제석봉이나 중봉에서만
또렷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매한가지여서
오늘도 나는 모든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
순해진 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행복해 하고 있다.
절정의 노래
– 이성선
내가 최후에 닿을 곳은 외로운 설산이어야 하리.
얼음과 백색의 눈보라
험한 구름 끝을 떠돌아야 하리.
가장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
그곳에서 모두를 하늘에 되돌려주고
한 송이 꽃으로 가볍게 몸을 벌리고
우주를 호흡하리.
산이 받으려 하지 않아도
목숨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꺼이 거기 몸을 묻으리.
영혼은 바람으로 떠돌며 孤絶을 노래하리.
그곳에는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보다 더 당당히
태양을 향하여 無의 뼈대를 창날같이 빛낸다.
침묵의 바위가 무거운 입으로 신비를 말한다.
가장 추운 곳.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에서
최후를 마치리.
<가을 산에 관한 시 모음>
+ 가을 산
가을이란
꾸러기
장난이 너무 심했다
어쩌다
산에 불을 놓았나
소낙비도 못 잡는
저 불길
(하영순·시인)
+ 가을 산
그득하여 아름다운 건
단풍 든 숲
텅 비어 있어 아름다운 건
그 위의 하늘
숲이 하늘을 닮아
훌훌, 열병 앓는 껍데기
벗으려 한다
(권경업·산악인 시인, 경북 안동 출생)
+ 가을 산
베틀에 앉으신 어머니십니다.
사그락 사그락
어머니의 베 짜시던 소리가
발 아래에서 들립니다.
봄날의 씨줄과 여름날의 날줄
피 서린 손끝으로 엮으시어
이렇게 아름다운 풍요를
세상에 깔아주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배부르게 먹고 산 것 죄스럽습니다.
겨울을 준비하시느라
피땀으로 붉어지신 어머니의 등을
구경 삼아 오르내린 것도 죄스럽습니다.
(김윤자·시인, 1953-)
+ 가을 산
푸르게 더 푸르게 치받던 욕망들도
연륜이 깊어지니 시나브로 변합디다
저마다
남겨지고픈
모습으로 변합디다
힘 센 놈 틀어쥐고 올라서며 목을 죄던
칡넝쿨도 손을 놓고 느슨한 척 합디다
허물도
단풍이 드니
추억처럼 곱습디다
(최언진·시인, 경기도 광주 출생)
+ 시월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山門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쑥부쟁이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나희덕·시인, 1966-)
+ 가을 산
가을 숲을 홀로 거닐다보면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사박사박 제 몸 풀어
내 발을 덮어주기도 한다.
칼라에서 흑백으로 모던에서 낭만으로
채널 돌린 듯 소박하게,
한껏 멋부려 입었던 옷을 벗고
속마음을 보여준다.
오래 전 꿈이 있었던 봄햇살의 풋풋함과
여름 하늘의 열정을 밑천 삼아
넉넉한 품으로 날 꼬옥 안아준다.
하루 일과로 꽁꽁 묶였던 스케줄도
잠 못 이루고 술렁였던 신경도
그래서 여기선 모두 짐보따리 풀고
낙엽처럼 느긋한 잠에 빠질 수 있다.
가을 산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들어가 보면 그 진솔한 내면을 만날 수 있다.
메마른 꿈도 버스럭거리는 삶의 피로도
턱,
조였던 태엽을 풀고
역설이나 아이러니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깔깔 웃게 만드는
가을산은 영락없이 푸근한 중년 아줌마다.
(윤꽃님·시인)
+ 가을 산은 자유롭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욕심을 버리기 때문이다
무수히 붙어서 푸름으로 치닫던
잎새들의 갈망이 끝났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집착을 버리기 때문이다
잎새들을 붙잡고 무성했던 나무도
움켰던 손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모두들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을 소유하고 있던 여름이
여름을 울던 풀벌레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이 자유로운 것은
자라나야 한다든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묵직한 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한나·시인)
+ 가을 산
사방엔 온통 그대 모습
그대 이름 부르다
부르다
목젖에 걸려
피빛 울음
토악질한 수밖에
참으로 긴 날 가슴 태우며
기다렸는데
그대, 안부도 묻기 전에
그림자만 남기시는지
다시 마음 다칠까 두려워
두려워
그냥 빈 가슴만 안고
돌아왔네.
(김지헌·시인, 1956-)
+ 가을 산
가을 산에 앉아 있으면
산을 떠나는 가을의 발소리
껍질을 벗어버리고
가을을 떠나는 산들의 웃음소리
가을 산에 앉아 있으면
무성하게 자란 욕망들이
시든 풀과 한 빛이 되어 잠자고
절벽을 날으는 자작나무 잎
나뭇잎만 가지고
허공으로 지는 것을 본다
가을 산에 앉아 있으면
더 먼 곳으로 떠나는 산들의
가볍고 가벼운
웃음소리 발소리
(정군수·시인)
<등산에 관한 시 모음>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에서·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 등산과 삶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 발 내딛으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오르다 지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라.
팔 다리에 힘이 솟고
의지는 되살아나리라.
산을 즐기며
산과 대화를 나누라
바람소리 새의 노래에
산과 하나가 되라.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시인)
+ 동반자
산을 오르다 바위를 만났다
자일도 없이 올라야 하는 바위
가능과 불가능을 잠시 생각한다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가능에다 동그라미를 친다
바위를 눈으로 더듬는다
그의 빈틈과 상처가 보인다
빈틈의 크기와 상처의 깊이를
마음에 새긴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확실하게
그의 틈에 손을 넣는다
바위의 지문과 내 지문이 섞인다
온몸을 그의 상처에 댄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의 틈과 상처를 내 것으로 품는다
두 몸이 하나가 된 마음
가파른 길을 통과해 간다
(유봉희·시인)
+ 산길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시인, 1952-)
+ 등산 길
짙푸른 물결 속 뚫고
햇살 굴러 이는
고운 숨결 일렁이는 산골
땀흘려 헐떡이다
산새들 몰려가는 길섶에 앉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 누벼온 보람인가
짜릿이 감도는 수액의 몸살 파고들어
찌든 도시의 찌꺼기 사라지고
영혼의 눈시울에
가득히 출렁이는 순수의 날개
훨훨 깃을 친다.
(곽병술·시인, 1929-)
+ 산행법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박철·목사 시인)
+ 산행·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시인, 1939-)
+ 도반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행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시인)
+ 산을 오르며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천양희·시인, 1942-)
+ 북한산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 산행
하얀 세계
어느 누가 당신을
먼저 정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손 기다리는
소리 없는 침묵
겨울
그리고
산
그 가운데 멈춰진 자리
바람만 인다
야호∼
소리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는 분화구처럼
내 몸에서 번지는 하얀 열기
우주 어느 공간 머물 때
나는 정상에 서 있었다.
(노태웅·시인)
+ 산행기
때로는 시원한 때로는 절실한
울음을 쏟아내던 매미가
아이들에게 채집되고 있었다
울음으로 서까래 삼고
눈물로 등을 달았던
지난날 내 詩 또한,
표본 될 저 울음주머니처럼 간직할 가치가 있는가
묻고 물으며 산을 오를 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절벽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 잔의 술도 한 숟갈의 밥도 아니었던 행간들,
나는 산 중턱에서 오름을 접고
철 늦은 울음을 울어야만 했다
(원무현·시인, 1963-)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시인, 1954-)
<가리왕산>
땅 끝이기도 하고
하늘 아래 첫 동네이기도 한 그 오지에
덩치 큰 가리왕산이 있어
주변의 산들을 아우르는 좌장이다
우람한 체구 넉넉한 가슴에
약초며 산나물이 지천이라
민초들이 기대며 산다
장구목이골 들머리에서
樹海를 헤치고 헐떡이며
넓은 산상 초원에 올라서면
사방이 발아래 있다
저 앞엔 동해의 푸른 바다
산마루 상봉 아래엔 중봉, 하봉, 중왕산, 청옥산이 늘어서 있고
저 멀리 남북으로 길게 뻗어간 백두대간
동서로 길게 늘어선 한강기맥
모두가 大兄의 눈치를 보며 비켜간다
그리고 저 아래 산자락 동강엔
정선 아라리가 떠내려가니
하늘에 맞닿은 그 산정에서
아낙들이 칠성님께 기원을 하듯
우리 강산 푸르디푸르라고 고함을 친다
<산이었다>
내가 산에 가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행위였다
어릴 때
꿈으로 그리던 세상을 향해
내 순수의 시간과 영혼을 묻어두고
그 잘난 육신만 추슬러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처음 보는 기차를 타고
더러 창공을 나는 비행기도 타고
그러면서 거리를 누비다가
거짓말도 하고
남의 눈도 속여 가며
꿈으로 그리던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다가갔지만
미로처럼 얽히고 칙칙한
어둡고 냄새나는 그곳에서
가위눌린 나
더러움에 찌든 외로운 육신을 발견하고
아! 그 게 아니었음을 깨닫자
묻어두고 온 영혼을 찾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어디쯤 묻어 두었던가 그 먼 시간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문득 떠 오른 어렴풋한 기억
아! 거긴 산이었다
<오봉산-춘천>
소양강 거슬러
배후령에 올라서니
오봉산이 지척이다
그런데
어드메가 1봉이고,
어드메가 2봉인가
여기가 나한봉이고,
저기가 관음봉인가
그래서 다섯인가 여섯인가
말만 오봉이지
여섯인가 일곱인가 아리송한데
문수봉 노송 아랜 진혼비가 쓸쓸하니
젊음을 예에 묻었음이다
저 아래 청평사의 향 내음 은은하고
청솔바위엔 바람조차 시원하니
예가 천상인 걸 진혼인들 무엇하랴
홈통바위 빠져나와
망부석을 쳐다보며
청평사에 내려서니
회전문이 기다린다
인연 따라 돌고 도는 윤회라든가
산정에 두고 온 젊은이의 넋
소양호 굽어보는 망부석
공주탑에 숨어든 연가
모두 하나 되어
고려 영지에 비치고 있으니
구성폭포 물소리 뒤로 하고
소양호 뱃머리에 올라
내 영혼마저 물결 위에 띄운다
<고대산(古臺山-철원)>
온 산하를 피로 물들였던 6·25!
그 격전의 현장이었기에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
골짝마다 스미어 있고
아픔이 묻어나는 곳
신발에 묻은 흙은
핏자국인가 살덩이인가
어느 곳 한군데 맘 놓고 밟을 수가 없구나
철원 들녘 가운데에 길게 누워 있는 휴전선
그리고 그 너머 북녘 하늘
거긴 아직도 신음소리 들리는 듯
가슴 아리다
임진강, 저 한탄강은
찢어진 상처를 씻기라도 하듯 고요히 흐르고
길가의 야생화
죽은 젊은이들의 넋일까
뭇 영혼의 소리 귓전에 닿아
내려서는 발걸음
자꾸만 허공을 내딛는다
<고치령>
백두대간 허리 가로지른 고갯길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금성대군 밀사가
영월의 단종을 배알하러 다니던 곳
그곳 고치령 고갯마루가 헛헛하다
원통하게 죽은 단종은 태백산신이 되고
억울하게 죽은 금성대군은 소백산신이 되었으니
고치령 정상에 신령각을 세워
두 원혼을 모시고 달랬는데
서럽고 답답한 민초들은 치성을 드리고
지나가는 길손은 안녕을 기원하며
영험을 얻었다는 산령각은 옛 대로이나
고갯마루엔 인적이 드물구나
경상도 봇짐장수가 넘나들었던 고개
강원도 산삼장수가 넘던 고개
충청도 박물장수가 넘어가던 고개
하 많은 사연들이 쌓여 있는 고개
오랜 세월 온갖 풍상 다 겪었으니
나그네 행색도 달라지고
넘나드는 사연도 달라지고
신령님은 구천을 헤매 다니나니
봇짐장수는 어디가고
산삼장수, 박물장수도 없구나
이제
길바닥을 할퀴고 먼지를 뿜으며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만 요란하니
웃음소리 사라진 적막강산
묵묵히 넘는 고개에
무거운 발자국 소리만 이어지네
<가지산>
어둠을 헤집고 운문령에 오르니
가지산 능선에 먼동이 트고
새벽 별빛이 영롱하다
긴 호흡 트인 가슴으로
귀바위를 지나고
쌀바위에 이르니
붉은 해가 동해에 떠오른다
오! 이 시간, 이곳에서
함께 하고 있음의 이 감격!
부처님께 합장을 한다
영남 알프스의 맏형
가지산 산정에 이르니
동쪽으로 고헌산의 굵은 허리가 편안하고
남쪽으로는 신불산에 위엄이 서려 있는데
서쪽 운문산은 스님의 두상을 닮았구나
밀양고개를 지나
석남고개에서 멈칫하며
손을 잡는다
가지산이여 석남사여
우리 함께 함이니
산행이 참선이듯
우리의 불심을 받아주소서
<공작산>
푸른 하늘 아래
오색찬란한 날개를 펼치면
그 화려한 깃털 속에 무한한 꿈이 서려 있어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단다
아! 대 한 민 국
공작새를 닮았다는 공작산이
고고한 자세로 고개를 들고
너브레 들녘을 내려다보며
내일을 위해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한다
아! 대 한 민 국
우리 그동안 고생 많았지만
가는 해는 곱게 보내고
오는 해를 즐겨 맞으면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을 것이란다
아! 대 한 민 국
가는 세월 오른 세월 막을 수 없어도
예쁜 공작새 깃털처럼
한 올 한 올 정성을 드려
소중하게 세월을 쌓아 가면
아름다운 삶이 다듬어질 것이란다
아! 대 한 민 국
이처럼 공작산은
산정을 향해 오르고 또 오르며
땀 흘려 다가서는 사람들에게
희망찬 내일의 꿈을 엮어
목에 걸어준단다
아! 대 한 민 국
<국망봉>
엄청난 거구이기에
함부로 덤비지 말라한다
가파른 산허리를
쉽게 생각하지 말라한다
한북정맥의 장형답게
사방을 향해 호령하듯 큰 소리로
조심조심 살아라한다
발부리에 일동 이동이 있고
등 뒤는 화악산인데
아득한 저 하늘 밑엔
헐벗고 굶주린 저 북녘의 민초들
그들은 이념에 얽매여
허기진 자기 배를 속여 가며 충성을 맹세하니
저 어리석음
저 눈물겨운 순진함
가진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저 만행
남과 북이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제발 애국이란 거짓말 하지 말아라한다
긴 능선을 걷는 나그네
부끄러워서인가 한숨을 몰아쉰다
<귀때기 청봉>
설악산 서북릉
장대한 능선의 중심에
단아한 모습
정갈한 여인으로 비쳐
가슴 설레게 한다
나서려 하지도 않고
제자리에 다소곳이
먼 하늘가를 바라만 보고 있다
임 향하듯 마음 한 가닥 가눌 길 없어
바위 너덜을 더듬어 산정에 오르면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이 앞에 있고
뒤로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꿈틀대는데
저 끝에선 중청과 대청이 고고하고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향로봉 너머 금강산이 아슴푸레 실눈을 뜨고 있다
저 하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까지 시리니
오늘 밤은
바위 너덜 사이에 움츠리고
별을 헤며 밤을 보낼까
<금학산-홍천>
금모래 은모래
파란 물결에 몸을 씻는데
느릿느릿 뗏목을 타고
황혼의 물길에
구성진 노랫가락
노일 강변에 서서
행여 뗏목이 서려나
애타게 기다리는 수줍은 처녀
희한하게 수태극(水太極) 그리며
금학산을 휘감은 홍천강변에
저녁연기 번지고
애달픈 인연을
맺고 끊지 못하여
기다림에 지쳐
물귀신이 되었다는 새아기
이제 이 오지에도
신작로가 뚫리고 자동차가 다니고
마을엔 확성기가 악을 쓰니
유행가 가락에 맞춰
음식점이 들어서고
펜션이 줄을 이어
바람 든 젊은이는 다 나가고
힘없는 늙은이만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금학산을 찾아온 나그네가 신음을 한다
금학산아금학산아
어인 일로
물길은 흐리고 모래 빛은 검으냐
예보다 맘은 쓰리고
삶은 왜 이렇게 고달프냐
<나는 산으로 간다>
자기만이 유일한 애국자라고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 중에 하나를 뽑는
선거 날이면
나는 산으로 간다
끼리끼리 돈을 싸들고
떳다방이 몰려드는
아파트 추첨 날이면
나는 산으로 간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면서
흉기를 들고 때려죽일 듯이 덤비는
강경 노동자들의 시위 날이면
나는 산으로 간다
교문에 엿을 바르고
두 손을 모으는 어머니가 애처로운
수능을 치르는 날이면
나는 산으로 간다
그리고 이런 날에도 나는 산으로 간다
죽어서도
진실은 허위에 짓눌린 채 촛불에 타버린
그런 전직 대통령을 위한 국민장 날에도
나는 산으로 간다
그리하여 더럽고 치사하고
온갖 불량잡배가 판을 치는
세상사가 싫으면
나는 산으로 간다
<노추산>
산 첩첩 정선 땅
아우라지 삼거리에서
굽이굽이 돌고 돌아
육지의 끝자락 구절리에 들어서니
노추산이 있다
예로부터 성스러운 산이라기에
조심스럽게 올라가서
세월의 이끼 밴 너덜을 건너
二聖臺 앞에 이르러선
옷깃을 여민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그 무거운 업을 감당하기 어려워
노추산을 찾아든 薛聰
그는 여기서 유학으로 득도하고
吏讀까지 창안했다
그리고 역사에 드문 천재
스승을 구할 길 없어
그 또한 노추산에 들어와
九度壯元의 꿈 키웠으니
栗谷의 스승도 노추산이었던가
쌓인 세월이 깊어 절절한 사연이 많으나
못 다한 정 남겨두고 그만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아선가
해질녘, 아우라지 강가에서
정선 아라리를 부르고 있다
<대덕산-무풍>
산허리를 휘감던 새벽안개
아침 햇살에 쫓겨 가니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놀란 까투리 하늘로 치솟는다
산줄기마다 단풍이 고운데
넉넉한 억새밭이
바람에 나부끼니
은빛 산등성이 눈이 부신다
대덕산에서 가지 쳐 나간
수도산 줄기가 선명하고
저 멀리 가야산이 눈짓을 하며
이웃의 삼도봉이 다정하구나
할 일 없는 나그네
이 산 저 산 헤매다가
삼봉산 너머 기우는 해를 보고
덕산재로 내려갈까
소사재로 내려갈까
망설이는데
저녁노을 따라 그리움이
발부리에 엷은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대미산>
산과 산 사이
집과 집 사이
어느 곳에 사는 지도 모르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남이 하면 하는 대로
그렇게 사는 홀아비 아저씨처럼
소리 없이 서 있는 대미산
뒤에는 난폭한 형처럼
월악산이 버티고 있어
그 기세에 눌려 납작 엎드린다
겁에 질려 살며시 곁눈질 하니
앙칼진 황장산이
날카롭게 째려보고 있다
얼른 눈을 돌려 조심스레 앞을 보니
거긴 영악한 동생처럼 포암산이
눈을 똑바로 치뜨고 쳐다본다
얼른 눈을 감았다가 옆을 보니
새침하게 생긴 문수봉은
앞만 보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고
누구 하나 동무하자는 이 없어도
이대로가 좋다는 대미산
주변 산들이 모두 당당해도
조용히 물러나서
커다란 배를 내어 밀고
우두커니 들녘을 내려다보고 있다
<만복대>
지리산 만복대 산울림이
억새의 몸짓인가 새소리인가
저기 남원 땅이 평화롭고
운봉 들녘이 안온하며
멀리 함양 땅마저 웃고 있는데
어인 일인가
노고단에 달이 뜨고
반야봉에 그늘이 드리울 제
저 아래 달궁골에선 신음소리 들리고
심원계곡에선 흐느낌마저 들리네
저 신음소리, 저 흐느낌
내 마음의 울림인가
역사의 뒤안길에 숨져간 원혼들의 울부짖음인가
짙푸른 가을 하늘
즐거운 풍류 뒤엔
저토록 피맺힌 아픔이 있었다니
만복대는 알리라
지리산 백리 길에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다는 것을
봉우리마다 골마다
핏자국, 눈물 자국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을
꽃다운 젊은이들
저 봉우리
이 골을 헤매다 숨져간 것을—
<육산과 바위산 - 대야산 벼랑에 서서>
부드러운 육산은 어머니 같다
거친 바위산은 아버지 같다
어머니의 자상함, 아버지의 엄격함
산은 그런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그리고 산은
흐트러지지 않은 꼿꼿한 자세로
찾아드는 사람들에게 당부를 한다
그대 바위벽에 매달려 서툰 솜씨로 머뭇거리면
어머니는 가슴을 조이고
아버지는 고함을 친다고
그대 정상에 서면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고
그리고 산은 이야기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르다고
흙산과 바위산은 전혀 다르다고
그러므로 그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고
그리하여 바위산을 오르며 생각한다
아무래도 산을 바위산이라야 한다고
그리고 흙산을 오르며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산은 육산이어야 한다고
또 내려오며 생각을 한다
산은 정말 산이니까
육산이든 바위산이든
산은 본래의 모습으로 산이면 된다고
<덕유산>
늘 나에겐
어머니 치마폭의 내음처럼
그리움으로 다가서던 당신이기에
이처럼 찾아듭니다
향적봉 거기
당신의 얼굴처럼
내 뺨을 비볐습니다
못다 한 자식놈의 응석처럼
덕유평전 드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한없이 그리운 나의 어머니
무룡산 그 풍만한 하얀 배
거기 내가 잉태된 곳이라서
참으로 편안하더이다
어머니
남덕유
거기서 태어났기에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육십령
당신의 발치에서 올려다보니
할미봉에
어머니 당신이
그렇게도 애태우시던 외할머니 계시니
당신을 모시듯
당신을 사랑하듯
할미봉을 쓰다듬었습니다
어머니
멀고도 먼
덕유산 100리 길을 이렇게 걸으면서
당신을 그리워했나이다
어머니 내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계시다기에
덕유산 그 언저리에서
이렇게 맴을 돌고 있습니다
<두로봉>
살만큼 살았으니
모난 곳도 무디어지고
일상도 무상하니
삶의 이치도 그렇단 말인가
그래서
눈자위에 눈물이 고이니 욕심도 사그라지고
주머니도 비었으니 손끝이 떨린다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
마음 한 구석에 그늘이 드리울 때면
응석부리 손주가 귀엽고
쭈그러진 할멈이 불쌍해진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머리 숙여
북대사 종소리에 귀 기울이고
붉은 노을에 얼굴 붉히며
새삼스럽게 수줍어한다
지는 해를 등지고
다시 살라면
두로봉 같으리라
갈 때 쯤 되어서야 그렇게 깨닫는단 말인가
예전에 미처 몰랐던
두로봉이 할아버지를 닮았고
내가 두로봉을 닮아간다는 걸
이제야 알겠으니
<백운봉-양평>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데
흰 구름 치마로 허리 두르고 헌칠한 키 꼿꼿한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함왕성 내력이 오래고 용문산 숨결이 거친데 그 앞에 우뚝 서서 양평 들녘 굽어보는 자세가 고고하다
普愚大師가 머물렀던 舍那寺에서 목탁소리 은은하게 들리면
건너편 양자산 너머로 해가 기울고 남한강 구비엔 황혼이 깃들어 산새들도 제 둥지 찾아가니
백운봉 산정에도 밤안개 드리우고 한낮의 기세도 숨죽이며 어둠 속으로 잦아드는 시간
길 잃은 나그네 갈 곳이 어디멘가 밤하늘에 별을 헤듯 달뜨는 허공에 님 그림자 쫓고 있다
<봉화산-남원>
자그마한 아가씨처럼
자그마한 강아지처럼
아무 꾸밈도 없고
넉살도 없고
으스댐도 없는
사람이 찾아오면
빙긋 웃음 한번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분바르고 치장할 줄도 모르고
있는 모습 그대로
얌전히 손님을 맞는다
건너 지리산을 보고도 수줍은 듯
눈길 한번 안 주고
가만히 앞만 보고 있다
이웃에 빼어난 암릉이 있고
억새밭에 사람들이 들끓어도
더 있으란 말도 없이
조용히 고개 숙이며
가는 손님 그냥 보낸다
<산 목련>
하얀 소복의 여인처럼
가녀린 산 목련이
짙은 녹음 우거진 산마루에
함초롬히 피어 있다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청승맞은 과부처럼
잎가에 머금은 사늘한 미소
이슬일까 눈물일까
봄도 지난 초여름
덥다는 계절이거늘
왜 시린 얼음처럼 피어
사람의 가슴을 적실까
<산에 가야지>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비리에 연루되어 궁지에 몰리니
자살을 하여
국제 망신을 떠는데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얼씨구나 하고 날뛰니
약삭빠른 정치인들은
그 바람을 타려하고 눈치를 보고
죽은 대통령 못살게 굴던 언론들은
이참에 당할까 봐가 겁이 나서
애도의 장면을 확대하니
詐欺는 詐欺를 불러오고
詐欺는 事理를 넘어서고
그래서 죽어서도 진실은 숨어 있고
진실은 허위에 짓눌린 채
촛불에 타버렸네
“원망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책임지고 가지 못하면서
날날이 춤바람만 일으켜 놓았네
산에 가야지 이런 날에 산에 가야지
국민장 하는 날에
얼마나 邪氣어린 위선이 날뛸 건데
산에 가야지
더러운 세상 등지고 산으로 가야지
도솔봉
<산에 오르면>
산은 높을수록 좋다
오르느라 힘들고
숨이 턱에 닿지만
높다란 봉우리에 올라서면
나이를 잊고
직업도 잊고
계층도 계급도 없이
지식 나부랭이
거추장스런 이념들
모두 허망하게 흩어지고
몸뚱이만 남아서 헉헉댈 뿐이다
그리하여 산에 으르면 누구나 알몸이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함께 웃는다
산에 와서 잘난 척해봐야
비탈길 오를 땐 숨만 더 차고
있는 척해봐야
낭떠러지 위에 서면 오금이 절일뿐이다
산에 오르면
찬란했던 과거도
설움에 찌들었던 기억도
다 어디로 갔는지
짙푸른 저 숲속에
푸르른 저 하늘 저 빈 공간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마저도 떠내려간다
< 삼도봉 >
백두대간 한 줄기 밟아
진부령을 출발하여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를 거치고
드디어 전라도 땅에 이르러 가슴 부푼데
삼도화합이란 웬 말이냐
백두대간 허리 부러지듯
언제부터 삼도가 갈라졌더란 말인가
단군왕검이 신단수 아래 신시를 베풀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가 어디 있었던가
한 핏줄 나누어 태어나서 무슨 화합인고
우리 아버지는 경상도
우리 어머니는 전라도
우리 마누라는 충청도 사람인데
나는 무엇이라 말인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태어나서
사람 구실 할 나이가 되니
별 소리를 다 듣는다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이렇게 못난 놈으로 이 땅에서 죽어가야 하는가
못난 이름으로 이 땅을 더럽혀야 하는가
저 화려한 ‘삼도화합탑’이 이슬에 젖고
삼도봉이 가슴을 치는구나
<소요산과 원효대사>
사랑인가 욕망인가
해탈인가 파계인가
인간의 한계는 어디쯤인가
요석공주를 남겨둔 채
허위허위 산천을 헤매다가
소요산에 숨어든 의미는
삶인가 정진인가
아 얇은 옷!
비에 젖은 아리따운 여체
그를 물리칠 수 있었음이
진실인가 위선인가
그래서 얻은 희열이 자재무애라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음을
속인들이야 어찌 알랴만
그러나 그도
한 아이의 아비였고
한 여인의 지아비였으니
인간의 한계를 어디에 두었든가
얽매고 묶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 속세의 고뇌여!
원효처럼 저지르고
원효처럼 벗어날 수 없으니
소요산이여, 백운대여,
나한대여, 의상대여
이 업보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자병산>
마른하늘이 논바닥을 가를 땐
기우제를 지내고
드센 해풍이 천지를 뒤흔들 땐
들녘을 감싸주던 너
백두대간 한가운데 우뚝 솟아
힘찬 기운을 보이던 자병산아
너는 어디로 갔나
그 푸른 숲
그 아름답던 붉은 뼝대는
다 어디로 갔나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이리 헐리고 저리 뜯기고
흘러내린 창자마저 흔적 없어
뼈 속까지 드러났구나
살과 뼈가 갈가리 뜯겨
자갈이 되고, 가루가 되어
전봇대가 되고, 다리가 되고—
도시의 저 마천루가 되어
그 속에 너의 넋이
얼어붙어 있어
남은 건 꺼져 내린 슬픔뿐
그래서 너의 품속에 꿈을 키우던 소년도
오갈 데가 없어
저렇게 망연자실하고 있구나
<저항령>
대간 길 따라 오르려니
황철봉 너덜 앞에서
발걸음이 멈칫한다
입을 벌린 바위틈
저 아래가 천국일까 지옥일까
한숨 한번 쉬고 건너뛰니
하늘이 노랗다
진땀 흘리며 황철봉 내려서니
백두대간 잘록한 허리 펑퍼짐하게 넓어서
하루 밤 쉬어가도 되겠구나
신흥사 스님들이 문바위골로 올라와서 쉬었다 가던 곳
백담사 스님들이 길골로 올라와서 신흥사 스님들을 만나던 곳
그곳 저항령 한쪽에 고단한 몸 뉘어 눈을 감는다
불어오는 서북풍에 몸이 시리고
백두대간 눈길에 고달팠던가
숨소리 잦아들며 꿈속을 헤맨다
봄이면 구상나무 그늘에 얼레지가 머리를 빗고
초여름 덥다고 아우성일 때 핏빛 진달래가 고우며
한여름 더위라고 호들갑일 때면
청초한 산목련이 치마폭을 펼치는 곳
저항령의 사계절을 닮았는가
나그네 꿈속엔 봄도 없고 여름도 없이
늘 꽃잎만 가득하여라
<조침령>
밤하늘을 날던 지친 새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새벽을 맞는데
깊은 골짜기
어디쯤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단목령 복암령이 저기고
높새바람에 황소가 날아간다는 쇠나드리
눈이 오면 설피 없이는 못산다는 설피밭
아침나절 밭갈이밖에 못한다는 아침가리
숨어든 오지
갈 곳을 몰라 헤매는 새처럼
땀 냄새 풍기는 낯선 나그네
무거운 다리를 끌며
숲 속으로 들어간다
<자연에 관한 시 모음>
<자연에 관한 시 모음> 배한봉의 ‘과수원 시집’ 외
+ 과수원 시집
봄 과수원에
파릇파릇 돋는 저것은 풀이 아니다
노랗게 발갛게 피는 저것은 꽃이 아니다
바람에게 물어봐라
햇빛에게 물어봐라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과수원 언저리를 온통 노랑물살 지게 하는 저 유채꽃에 대해
산비둘기가 나뭇가지에 두고 간 울음
그 여운 끝자락을 붙잡고 화들짝 꽃봉오리 여는 홍매에 대해
지난겨울의 눈바람을 먹고
열병처럼 퍼지는 가뭄을 먹으며
온몸으로 대지가 쓰는 시, 나무가 쓰는 시
뻐꾹새에게 물어봐라
벌, 나비에게 물어봐라
저 시 없다면 누가 봄이라 하겠나
저 시집 한 권 읽지 않고 어떻게 봄을 말할 수 있겠나
별과 달이 밤새도록 읽다 펼쳐둔
과수원 시집
나는 거름 져다 나르며 읽고
앞산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
(배한봉·시인, 1962-)
+ 자연을 닮아
내 마음은 달을 닮아
차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해
그리고 해를 닮아
떠오르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
내 마음은 파도를 닮아
밀려오기도 하고 밀려가기도 해
그리고 밭을 닮아
씨앗을 키워서 열매를 맺기도 하지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자연 예찬
꽃은 속삭이고 나무는 외친다
잎새 흔들림에도 삶이 묻어
바람이 언어를 실어다 준다
더러는 詩를 읊조리고
더러는 천일야화 이야기쟁이가 되고
더러는 가락이 되어 찬미 노래를 부른다
예지를 알고 깨닫기보다
타성에 길들어
세속 독기로 다듬잇돌 된 나
어느 산 속
깊숙한 바위틈에 기대어
흐르는 물에 몸의 먼지를 씻어내듯
내 안의 독소를 씻어내어
자연에 동화되어 볼거나!
(성지혜·시인, 1945-)
+ 자연이고 싶다 -자기·75
조금씩 개인이고 싶다
조금씩 자연이고 싶다
(이생진·시인, 1929-)
+ 자연의 아름다움
푸른 잎사귀를 옥토에 심었더니
삽시간에 거대한 잎사귀 모양의 나무로 자라나다.
엽맥이 줄기와 가지가 되어 죽죽 뻗었거니
짹짹짹 무성한 잎사귀들은 어느덧 새로 변신해 있다.
(박희진·시인, 1931-)
+ 자연의 미소
왜 이리 자연의 소리가 그립다.
그래서 자연 속에 파묻히러 간다.
꽃이 미소 짓고 반기는 꽃밭으로 간다.
말이 없는 돌의 진실함을 보러 간다.
자연 속에 우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
자연 앞에 우리는 꾸밀 필요가 없다.
바람의 속삭임을 귀로 들으며
풀의 다정함에 손을 잡는다.
어느 것 하나도 거짓이 없다.
모든 것이 그대로 제자리에 있다.
언제든지 있는 그대로
어디서든 주어진 그대로
창조하시고 만드신 그대로
생긴 내 모습 그대로
잔잔한 미소 그대로
늘 그 자리에서 말없이 있다.
그분의 뜻하시는 대로 살고
그분의 만드신 자연동산이
너무나도 깨끗한 아름다운 동산
찾아와 보니 눈물이 난다.
이 아름다움 때문에…
(조동천·아동문학가, 서울 출생)
+ 자연의 법칙
때가 와서 꽃은 피고
때가 되면 꽃은 진다.
어쩔 수 없이 와서
어쩔 수 없이 가는
인
생.
불러내지 않아도 해는 뜨고
보내지 않아도 해가 지는 것처럼.
(정성수·시인, 1945-)
+ 자연의 시간표
자연 그대로 간다
창조주가
애초에 설계하고 만든 대로
순리에 따라 조용히 순응하며 간다
억지를 쓰지 않는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
탐하여 뒤돌아보지 않고
역리는 한사코 배척하며 간다
지은 바대로 그저 물 흐르듯이
아무 것도 해치지 않고
서두름도 지체함도 없이
자연의 시간표 그대로 묵묵히 간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자연은 신이다
자연은 신이고 신은 자연이다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없듯
자연을 이길 수도 없다
신을 모욕하는 인간에게
신이 노하듯
자연을 해하는 인간에게
자연도 노한다
신이 절대자라면,
자연은 과학을 초월하는
또 다른 신이다
신을 섬기는 것만큼
자연을 섬기는 인간은 없다
환경 파괴와 방종으로
거세어만 가는 자연의 진노
(안재동·시인, 1958-)
+ 자연율
오지에 가서 알았다.
저절로 싹트고 피는 풀꽃을
가랑잎 밟고 알았다.
미물처럼 사람도 바스락거림을
풀쐐기에 쏘이고 알았다.
은자처럼 숨어사는 생명을
풀벌레 울음 뚝 그치고 알았다.
천적처럼 무서운 사람을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서 알았다.
천년이 한결같은 바람 소리를
풀꽃 지는 걸 보고 알았다.
바람처럼 머물다 가는 사람을
사람 없는 곳에서 알았다.
달빛처럼 그리운 새소리를
(권달웅·시인, 1944-)
+ 자연의 은혜 – 서울의 소년소녀들에게
애들아 들어라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라.
지금은 12월 겨울이지만
이윽고 내일
봄이 온다.
자연은 커다란 문을 열고
자연의 은혜를
활짝 열어 줄 것이다.
산이나 들에
꽃이 만발하고
싱싱한 나무가
너희들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의 은혜는
너무도 넓고 기쁘다.
시골에 가서
그 자연의 은혜를
맛보아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자연의 교훈 앞에
이른 봄
알몸으로 피어난 홍조 띤
벚님의 요염함도 일색이었습니다만
4월이 지나는 길목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연둣빛 싱그러움에 하얀 그리움을
가미한
고고함을 자랑하는 이팝꽃 줄선 숲길
아침 햇살 받으며
오늘을 향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아름다운 세상에 먹칠하는 이
이 맛을 알까
계절에 순응하는 초목
어제의 화려함에
미련 두지 않고
새롭게 단장하는 저 푸른 잎새 앞에
털어내지 못하고
비우지 못한
내 부끄러움을 고백해 본 아침
상쾌한 바람 눈이 시리다
(하영순·시인)
+ 자연 닮기
산에 사는 이는
산을 닮았다
바다에 사는 이는
바다를 닮았다
산을 닮아 포근하고
바다를 닮아 넉넉하다
도시에 사는 이는
도시를 닮아 창백하다
그러므로
자연에 의지하여 산다는 건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공석진·시인)
+ 천연의 음악회
수풀 속 아름다운 새들의 소리
구슬 구르듯 계곡의 물소리
천연의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
빨간 햇빛이 산너머 숨바꼭질하며
엷은 먹물 붓끝으로
어둠에 쌓여가는 세상을 그리네
달빛이 밝은 밤에
푸른 솔밭 끝없는 백사장에
살며시 밀려오는 작은 파도소리
은은히 들려오는 바다의
작사 작곡 모두 그분의 작품
그 누구도 부를 수 없는 노래
천연의 노랫소리
그분의 음악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이 모두가 그분이 창조한
아름다운 천연의 소리
(황순이·시인)
+ 열매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세영·시인, 1942-)
+ 자연으로
떠나자.
향내음 맡으러
엉킨 것 풀고
신선 마시러 가자.
무거운 짐 부리고
순수 세계로 출발하는
예의 바른 손님이여!
그대를 부른다.
(강신갑·시인, 1958-)
+ 자연으로 돌아가자
자동차는 잠시 세워두고
휴대전화는 던져두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껴보자
텔레비전은 꺼두고
컴퓨터는 밀쳐두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푸른 하늘에 그림 그리는
구름도 보고
나뭇잎 간질이는
바람도 보고
산새들의 멋진 춤도 보면서
자연을 즐겨보자
도시에 찌든
눈과 귀
몸과 마음
자연 속에 풍덩 빠뜨려 보자.
(이문조·시인)
+ 자연으로 돌아가라
훌훌 버릴 것은 욕심이요 집착이니 다 버리고
숲속 향기 속으로 빠져버린 우린 행복하다.
소유할수록 무겁고 힘겨운 것을…
버릴수록 가벼워지는 것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나
자연으로 돌아가라
아픔과 고통이 줄고 자연의 어머니가
너희를 살릴 것이니
잘못을 하루에 고치려 말라
급히 쓰는 약은 다른 것을 망가트리며
세월에 약은 느리지만 확실하여 숲속의 향기와 같고
인간의 삶은 유한하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
행복의 안식을 느끼리라.
(정윤칠·시인)
+ 자연으로 가는 길섶
약혼식 날 끼워주었던
백년가약의 다이야 반지
아파트의 평수를 늘이느라
처분하고부터는
패물 없이 살아간다
그 잘난 반지 하나로
집을 비울 땐
화분 속에 집어넣거나
쌀뒤주에도 감추면서
항상 불안하였다
가스 밸브만 확인하고
대문을 나서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바라보며
한 발 한 발 대지에
입맞춤한다
과거의 굴레를 벗기 위해
각종 기념패도 없애고 나니
지붕에 비만 안 새고
양식만 떨어지지 않으면
더없는 행복이다
(김내식·시인, 충북 영주 출생)
+ 한 송이 꽃
이름에 속지 마라
어떤 존재에 이름을 붙였을 때
그 이름은
항상 그 이름으로 있는 게 아니다
이름이 그 이름의 주인이 아니다
말이나 글에 얽매이지 마라
세상만사 이치를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그 대신 말이 전하려는
그 무엇에 아무쪼록 가 닿도록 하라
이렇다 저렇다 상대성을 말하지만
우리가 가 닿으려는
모순통일의 제자리에서 들여다보면
아름다움과 추함이 없고
대와 소가 따로 없고
빈부도 그렇다
산지사방 흩어져서
모두가 하나 되는 자연의 품안에서는
어떤 모양, 나름대로 되었건
한 송이 꽃
(문무겸·시인, 충남 당진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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