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백화점 붕괴 | [꼬꼬무2] 요약 ‘서울 한복판에서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Sbs Now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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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한복판에서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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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나무위키

삼풍백화점은 앞서 소개한 대로 여러 부실공사와 운영상의 문제점이 있었지만, 사실 이 원인들만으로는 불과 5년 만에 건물이 무너질 이유로 들기엔 부족하다. 사실,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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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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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 나무위키:대문

삼풍백화점 ; 연계역. Seoulmetro2 icon · Seoulmetro3 icon 교대역 ; 개점일. 1989년 12월 1일 ; 폐점일.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붕괴) ; 휴무일. 매주 월요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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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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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다. 피해액은 약 2700여 억 원으로 추정된다. 생존자 중 최명석(崔明錫, 1975~)은 11일, 유지환(柳智丸, 1977~)은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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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9/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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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붕괴사고(三豊百貨店崩壞事故)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되어 1천여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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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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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역사] ② ‘바뀌지 않는 사고원인’..27년전 삼풍백화점 …

4층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백화점 측은 4층을 통제했다. 오후 5시 51분경 옥상의 하중을 이기지 못한 5층 뒤틀림이 가속화하며 균열이 점점 퍼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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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pinionnews.co.kr

Date Published: 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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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95년 여름날의 대형 참사…삼풍백화점 붕괴 | 연합뉴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앞서 1994년에는 한강에 놓인 다리 중 하나였던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렸고, 훨씬 이전인 1970년에는 서울 창전동에 있던 5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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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11/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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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붕괴 사례)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과 바뀐 건축법

널찍한 매장 공간 확보 이유로 기둥을 없애고, 무단 증축하는 등 잘못된 시공으로 약해진 건물은 결국 이 과정에서 바닥이 깨지고 구조물에 균열이 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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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idascad.com

Date Published: 5/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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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붕괴사고의원인과 교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원인과 교훈. 1. 서 언. 지금으로부터 꼭 10년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685의 3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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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oreascience.kr

Date Published: 4/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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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2] 요약 '서울 한복판에서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SBS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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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삼풍 백화점 붕괴

  • Author: SBS NOW / SBS 공식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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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xQTeWWieTI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三豐百貨店 崩壞 事故, 영어: Sampoong Department Store Collapse)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사고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인근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건물의 파편과 잔해, 먼지가 날아들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 중에 부상자가 속출했고 수많은 재산상, 인명상 손해를 끼쳤다. 그 후 119구조대, 경찰,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국군, 정부, 국회까지 나서 범국민적인 구호 및 사후처리가 이어졌다.[1][2]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다. 피해액은 약 2700여 억 원으로 추정된다. 생존자 중 최명석(崔明錫[3], 1975~)은 11일[4], 유지환(柳智丸[5], 1977~)은 13일[6], 박승현(朴勝賢[3], 1976~)은 17일[7] 동안 갇혀 있다가 구조되었다.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주상복합 아파트인 아크로비스타가 2001년 착공되어 2004년 완공되었다.

붕괴 원인 [ 편집 ]

부지 용도 [ 편집 ]

이 부분은 붕괴와는 관련이 없지만 건설과정에서 비리가 매우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1989년, 삼풍아파트가 완공된 후, 삼풍건설은 그 앞에 남은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에 상가나 다른 건물을 짓고자 공사를 시작했지만, 무허가 공사를 이유로 제재를 받아 중단했다. 이유는 그 땅은 백화점 따위를 지을 수 없는 아파트용 부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삼풍그룹은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준 뒤 불법적으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내부 구조 임의 변경 [ 편집 ]

1987년 설계 당시 삼풍백화점은 ‘삼풍랜드’라는 명칭으로 서초동 삼풍아파트 대단지의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있었다. 계획 당시의 건물은 지하 4층에서 지상 4층이었다. 그러나 거의 다 지어졌을 무렵, 당시 삼풍건설산업(주)의 회장 이준(李鐏, 1922~2003)은 당시 시공사인 우성건설에게 백화점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백화점으로 바꾸게 될 경우, 건물의 구조가 상당히 바뀌기 때문에, 건물 붕괴를 우려한 우성건설 측이 이를 거부하자, 이준 회장은 계약을 파기하고 당시 삼풍건설산업에 변경을 지시했다. 그러나 법률상 건물의 사용용도에 의해 구조를 변경할 시 반드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삼풍백화점 설계당시에는 이를 무시하여 설계, 공사가 강행되었다.

또한 삼풍백화점은 준공검사도 무시하고 가사용 승인만으로 개점하였다. 이후 9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승인을 받았으며, 1994년 10월에는 기초부분인 지하1층에 구조변경 공사를 했고, 1994년 11월에는 위법건축물로 판정을 받았다.

부실시공 [ 편집 ]

어떻게 바뀌었는가? [ 편집 ]

삼풍백화점은 애초에 무량판 공법(플랫 슬래브 구조)의 건물로 설계해서 완공한 백화점 건물이었고 초기의 건물은 문제가 없었지만, 용도가 바뀐 뒤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일단 삼풍은 넓은 매장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상가건물의 벽을 없앴다. 본래 벽과 기둥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이 하중을 같이 버텨 줬지만, 그 벽이 사라지는 바람에, 기둥에만 무게가 분산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만들기 위해 각층에 구멍을 뚫었는데, 이 때 사라진 구멍 만큼 콘크리트가 사라지면서, 옆에 있는 기둥이 버텨야 하는 무게는 더 커졌다.

또한 이 기둥조차도 줄였다.[8] 애초 구조계산서에는 건물 4층과 5층의 20개 기둥 가운데 8개는 지름이 800mm로 그 안에 고장력 철근 16개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8개의 기둥이 설계 과정을 거치면서 지름은 600mm로 가늘어지고 철근 숫자도 8개로 줄였다. 이런 식으로 기둥이 줄어들면서 철근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에스컬레이터에 방화벽을 설치하기 위해 기둥의 4분의 1을 아예 잘라버렸다.[9][10]

철근 [ 편집 ]

바닥과 기둥을 연결하고, 기둥이 옥상을 뚫고 나오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L자형 철근을 사용해야 했는데, 삼풍은 비용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자형 철근을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바닥과 기둥을 연결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기둥이 바닥을 뚫고 나오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건물이 붕괴될 때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무리한 건축 [ 편집 ]

식당가 [ 편집 ]

또한 본래 4층까지만 설계를 했던 삼풍백화점은 우성건설과의 계약 파기 이후 무리하게 5층으로 확장공사를 시행했다. 정부기관의 허가없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바닥과 기둥이 추가로 생겼으며, 이에 따라 기둥이 버텨야 할 무게는 더 커졌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한술 더 떠 5층의 용도까지 바꾼 것이다. 처음에 5층을 만들었을 때는 키즈랜드로 계획했지만 백화점 용도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식당가로 불법 변경하였다. 그 결과 5층 바닥에 배수로가 설치되고 콘크리트도 추가되면서 건물에 무리가 갔다.

더욱이 그 식당가도 한식당이라 바닥에 온돌을 깔기로 하였는데, 온돌의 효과를 주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가 추가된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5층에는 설계에 없던 벽돌벽과 무거운 돌정원, 대형 냉장고 등 무거운 사업제품을 설치했다. 이러한 불법 용도 변경으로 인해 하중이 3~4배 이상 증가하였다. 더군다나 4층에서는 매장 확장을 이유로 기둥을 없애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건물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식당가의 무게는 1톤 트럭이 1200대 이상이 있었던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무거웠다 10초만에 아홉 층이 무너졌다.

냉각탑 [ 편집 ]

본래 옥상의 슬라브는 6cm 두께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방수 처리를 하면서 9cm를 더 두껍게 했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냉각탑 3개도 본래 지하에 설치하고자 했지만 지하공간 확보를 이유로 옥상에 설치했는데 구조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설치했으며 결국 평방 미터 당 610 kg/m2의 하중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해당 냉각탑 건물 전체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개장 초기부터 건물 전체가 미세한 진동이 울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안전 무시 [ 편집 ]

본래 삼풍백화점의 에어컨 냉각탑을 북관 동쪽 삼풍아파트 7동 방향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은 삼풍아파트와 불과 30m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이로 인한 소음으로 삼풍아파트와 삼호가든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경영진들은 1993년 8월, 냉각탑을 북관 서쪽 우면로(牛面路) 방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이동 방법이 문제였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남, 북관 옥상에 삼각형 모양의 채광창을 옥상 가운데에 설치했는데, 원래 크레인으로 들어서 옮기는 게 당연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 제기와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냉각탑을 옮길 때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굴림대에 싣고 반대쪽으로 ㄷ자 모양으로 밀고 가는 최악의 실수를 일으켰다. 그 결과 건물 전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넓직한 매장공간 확보를 이유로 기둥을 없애고, 무단 증축하는 등 잘못된 시공으로 약해진 건물은 결국 이 과정에서 바닥이 깨졌고, 옥상 바닥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초과한 상태였다.

물론 붕괴가 어느 한 순간부터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개장 초기에도 미세한 진동이 울리고, 물이 이유도 없이 새는 등의 징조가 계속 나타났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냉각탑을 잘못 옮김으로써, 본격적인 붕괴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붕괴 조짐 [ 편집 ]

건물 붕괴는 사실상 예견됐었다. 붕괴 전부터 건물 전반에서 위험한 조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삼풍백화점이 건축되던 80년대 후반엔,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건설에 따른 자재난 파동이 있었다. 중국산 저질 시멘트 사용을 비롯해서, 콘크리트 배합, 철근 배합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실 시공의 징후는 건물이 붕괴되면서 성냥개비처럼 맥없이 꺾이고만 콘크리트 기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1993년에는 삼풍백화점 옆의 레포츠 센터 2층에 있었던 금융동(당시의 한미, 조흥은행 등)을 1층으로 옮기고 내부공사 후 삼풍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으로 1994년 1월 5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서적들 때문에 레포츠센터와 중앙홀 지역에서도 균열이 1995년 사고 때까지 1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늘었다. 결국, 삼풍백화점 총관리부는 1995년 3월 2일 서점을 철수했다. 하지만 이미 생긴 균열은 점점 늘어났고, 중앙홀과 B관(스포츠센터)의 건물에 균열과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일어나자 백화점 건물 전체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붕괴일인 6월 29일경에 최고정점에 이르렀다.

1995년 4월에는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5월부터는 이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건축 전문가 일각에선, 부실 시공과 함께 구조물의 역학 관계를 정확히 고려한 설계 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매장 면적을 넓히기 위해 기둥을 적게 세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건 당일 오전에 목격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당시 붕괴 원인으로 인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11][12][13][14][15][16][17][18][19][20][21][22]

붕괴 [ 편집 ]

진동 [ 편집 ]

이한상 삼풍백화점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이에 대한 ‘대책’이라도 짜려고 했던 때는 사고 당일인 6월 29일이었다. 그들은 이날 5층에 있었던 일을 보고 비상임을 느끼게 되었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때 삼풍백화점 5층 식당 <춘원> 주인 김서정에게 긴급 전화가 걸려오게 되는데, 그 내용은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집에 바닥이 돌출부분이 2m가 생겼고 천장이 조금 내려왔다. 빨리 와서 보라’는 소리였고, 그는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가 직접 보니, 5층 기둥이 20cm가량 금이 가 있고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아 있는 것이었다. <춘원>과 맞붙은 우동집 <현지>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나왔고 냉면집 <미전>의 천장도 가라앉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출근한 A동(북관) 4층 상품의류부 직원(당시 31세)도 건물 4-5층에서 들려오는 ‘뚝뚝, 드르륵’소리와 함께 약 3분간 무거운 진동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이한상 사장은 오전 11시쯤 이영길 시설이사 및 건축과 이완수 차장과 함께 5층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1시간쯤 뒤 우동집과 냉면집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5층의 식당가 영업이 전면 중지되고 출입이 통제되었다. 삼풍백화점 측은 낮 12시 무렵 건물 설계 감리 회사인 우원건축에 연락하는 한편, 옥상의 에어컨 가동과 5층 입주업소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지시켰다. 에어컨의 전원을 차단한 상태였고, 당일은 유난히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었다. 그래서 당일 쇼핑을 온 쇼핑객들은 백화점에 들어서면서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날 옥상에 펀칭현상이 일어났었다.

대책회의 [ 편집 ]

오후 3시, 우원건축에서 임형재 소장과 이학수 구조기술자가 삼풍백화점에 도착했다. 한 시간 뒤인 4시에는(붕괴 약 2시간 전) 임원회의실(당시 삼풍백화점 남관 3층)에서 이준 회장 주재로 2차로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임 소장은 칠판에 건물 구조도를 그려가며 “점검 결과 건물의 안전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됐으니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고, “백화점 영업을 중지하고 고객들을 대피시키라.”라고 경영진들에게 권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마저도 매장 폐쇄 여부가 관건이었고, 이를 가지고 토론을 했다. 이 회의에서 이학수 구조기술사가 “신공법으로 보수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진행되던 침하는 현재 멈췄다.”라고 경영진에 보고했고, 이준 회장도 사고 직후 검찰에서 “기술자들이 지지대를 받치고 보수를 하면 더 이상의 위험은 없다고 했고, 영업 중지를 건의한 중역들도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결국, 붕괴되기 불과 2시간 전, 이 회장은 “큰 위험은 없으니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자”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징조는 있었으나 영업을 강행했다. 회의 이후 1시간이 넘게 구체적인 보수 계획에 대한 논의가 되는 한편, 임 소장은 설계 도면을 찾으러 서초동에 있던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후 삼풍 측은 중앙홀 2층의 행사전을 모두 스포츠센터 1층으로 옮기고 2층은 통행을 금지했다.

오후 5시 40분쯤 임원실 회의장으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영철 시설부장의 전화였다. “현재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였고, 이 회장 등 경영진들은 회의를 중단하고 일제히 건물 밖으로 긴급하게 대피했다고 흔히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회장 등 경영진들은 백화점이 무너질 때에도 계속 보수 계획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다. 붕괴의 시점에서도 이들은 건물보수에 필요한 자재와 인력을 수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붕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임원진들의 회의장은 무너진 A동이 아닌 B동에 있었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와 언론 모두 경영진들이 붕괴 사실을 알고 미리 빠져 나갔다고 이야기하며 삼풍백화점 경영진에 대한 비난을 가중시켰다. KBS아카이브 프로젝트 <시대유감, 삼풍>은 이에 대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건에 관해 제대로 된 취재가 이뤄지지 않은 나머지 이러한 보도 행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후에, 중앙홀의 침하현상은 좀 멈춘다 싶었지만, 붕괴 16분 전인 5시 41분 백화점 침하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중앙홀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중앙 홀과 백화점 2층에 있다가 이상함을 느낀 직원 및 손님들은 일부 대피하였으나, 나머지 고객은 모른 채 쇼핑 중이었다. 상태가 심각해지자 삼풍 측은 중앙홀 1층의 통행과 영업을 중지하고 2층도 영업을 중지했으나, 이윤을 위해 백화점 1, 2층은 영업을 강행했다. 당시 삼풍 측은 침하를 막기 위해 백화점 4각 구간에 뼈대를 세워서 가까스로 침하현상은 막았으나 1층이 침하현상이 멎자 5층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1, 5층과 지하 1층에 막대한 균열이 생겼다.

매몰과 붕괴 [ 편집 ]

그들이 대피하는 동안 백화점 매장에서는 1천여 명이 훨씬 넘는 고객과 종업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쇼핑과 영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5시 50분부터는 경영진들에 의해서가 아닌, 삼풍백화점 직원들의 고함이 5층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긴급히 대피하라”는 소리였고, 건물이 우르릉 하면서 우는 소리도 들렸다. 몇몇 고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피를 한 경우도 존재했으나, 지하에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듣지 못했다.

결국, 오후 5시 57분, 5층 바닥의 가장 약한 기둥 2개가 무너지며, 그 기둥이 옥상까지 끌어당기면서 건물 붕괴는 시작되었다. 곧바로 삼풍백화점의 가장 얇았던 5층 바닥과 천장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때 백화점 5층의 잔해와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리며 아래층을 차례대로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약 20초만에 건물은 지상5층에서부터 지하 4층까지 완전하게 매몰되었으며, 안에 있던 1,500여 명의 사람들은 잔해 속에 묻히게 되었다.

순식간에 건물 주변이 뿌연 먼지와 회오리바람으로 가득 찼고, 백화점 앞 우면로와 서울고등법원 청사에는 건물파편들이 날아왔다. 붕괴 직후 태풍 같은 바람이 10여 초간 휘몰아쳤다. 이후 먼지 바람들이 가까운 타 지역으로까지 날아갔다. 사고 직후 남아 있는 건물 잔해 사이에선 손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살려달라는 간곡한 비명과 신음과 애원소리, 주변에는 백화점 진열상품들이 나뒹굴었고 피투성이가 된 채 잔해를 헤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속속 목격됐다. 붕괴 후 매우 혼란해서 흩어진 백화점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도 목격됐다.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발언 [ 편집 ]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삼풍백화점의 붕괴 후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 이준이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여기서 조사를 받는 이준이 떳떳하게 기자를 보고 “이보쇼, 기자 양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이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라는 발언을 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23] 하지만 당시의 뉴스취재 원본을 살펴보면 이준 회장은 이 말 이후에 “그런데 내가 어떻게 붕괴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할 수 있었겠냐”는 취지의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는 뉴스보도에서 편집되었다. 시청자들의 분노를 삼풍백화점 측에 집중시키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편집이었다.

최종 판결 [ 편집 ]

1996년 8월 23일 대법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었다.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 이준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징역 7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

삼풍백화점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 등을 승인해 준 서울 전 서초구청장 이충우, 황철민에게는 뇌물수수죄를 적용하여 각각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3백만 원과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2백만 원이 확정되었다.

정상기 전 서울시 상정계장, 김수익 우성건설 형틀반장, 김재근 전 서초구청 주택과장 등 피고인 10명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추징금 3백만 원에서 선고유예 및 추징금 1백만 원의 원심형량이 확정되었다.

2심에서 징역 7년형을 받은 이한상(1953~) 전 삼풍백화점 대표이사 사장 등 12명은 상고를 포기하여 실형이 선고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업무상과실치사·업무상과실치상·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업무상횡령)·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뇌물수수·뇌물공여·부정처사후수뢰·수뢰후부정처사·허위공문서작성·허위작성공문서행사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총 25명이다.

출소 후 이준 전 삼풍건설 회장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살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2003년 10월 4일 81세로 별세했다.

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사장은 출소 후 삼풍백화점 동쪽에 위치한 삼풍아파트의 자택에서 살다가 2004년 몽골로 건너가 몽골 선교사가 되었고 울란바토르 북쪽의 헝거르라는 마을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한다.[24]

사회적 영향 [ 편집 ]

붕괴 사고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 호황 시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공포와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전체 고층 건물의 1/7(14.3%)은 개축이 필요한 상태였다.

전체 건물의 80%은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었다.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상태였다.

생존자 중 최명석은 11일, 유지환은 13일, 박승현은 17일(377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구조되었다.

또한 1995년 7월 26일에 방영된 MBC 경찰청 사람들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되어 비리에 연루된 관련자 일체를 공개 수배하기도 하였으며, 국회의원 안상수는 이 사건에 대한 방송으로 국민적 관심을 받아 정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방송 중계 [ 편집 ]

일부 방송사에서 정규방송을 중단하여, KBS[25], MBC, SBS 등의 케이블 TV가 개국했지만, YTN 속보나 특보 체제를 편성하였다.

피해와 보상 [ 편집 ]

인명피해 [ 편집 ]

사망자 : 502명 (남 106명, 여 396명, 사망확인 472명, 사망인정 30명) (이은영 양 포함)

실종 : 6명

부상 : 937명

생존자 명단 [ 편집 ]

권은정

고진광

최명석

유지환

박승현

재산피해 [ 편집 ]

부동산

양식 : R/C조 5/4층 73,877m 2 전체 붕괴

전체 붕괴 건물 : 900억원 (추정)

시설물 : 500억원 (추정)

동산

상품 : 300억원 (추정)

양도세 : 1,000억원 (추정)

총 피해액 : 2,700억원 [추정]

피해보상액 [ 편집 ]

인적 피해보상비 : 2,971억원(추정)

물적 피해보상비 : 820억 8천 5백만원 (추정)

주변 아파트 피해 등 보상비 : 1억 4천 5백만원

같이 보기 [ 편집 ]

관련 작품 [ 편집 ]

소설 [ 편집 ]

영화 [ 편집 ]

가을로(Traces of Love, 2006년)

드라마 [ 편집 ]

만화 [ 편집 ]

야후(1998년) 작가 : 윤태호

다큐멘터리 [ 편집 ]

음악 [ 편집 ]

The Return of N.EX.T Part 2 – The World 곡명 : 세계의 문

소방 활동 사진 [ 편집 ]

각주 [ 편집 ]

삼풍백화점붕괴사고(三豊百貨店崩壞事故)

인명피해는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였다. 재산 피해액은 2,700여 억으로 추정되었다. 이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삼풍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되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가 실시되었고, 긴급구조구난체계의 문제점이 노출되어 119중앙구조대가 서울·부산·광주에 설치되었다.

[붕괴의 역사] ② ‘바뀌지 않는 사고원인’..27년전 삼풍백화점 붕괴원인도 ‘비용절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망 502명…최악의 붕괴사고 기록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1129명 사망…무허가 건물, 무단증축

1995년 6월 29일 붕괴된 서울 삼풍백화점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이 산업화하면서 건축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고층 건물은 물론이고 수십킬로미터에 달하는 대교도 짓는다. 아파트는 필수재가 됐고, 백화점·마트에선 생필품을 구매한다. 마포대교·성수대교는 서울 강남북을 잇는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건축물이 붕괴돼 생사의 기로에 서게도 한다. 국내외 붕괴사고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오피니언뉴스=유태영 기자]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서울 강남에 있는 고급 백화점 한 동이 폭삭 주저앉았다. 뉴욕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이후 최악의 붕괴사고 중 하나로 꼽힌 세계 역사상 대형 사고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했고, 30명이 실종됐다. 40명이 구조됐으며, 937명이 부상한 것으로 기록됐다. 사상자수가 약 1500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인 ‘삼품백화점 붕괴사고’다.

옛 삼풍백화점 자리엔 현재 서초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섰다. 건물 위치는 서울 중앙지방법원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서울 2호선 교대역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위치다.

1987년 5월 착공한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 1일 개장했다. 개장 후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입점시키며 강남 3대 고급 백화점 중 하나로 입지를 굳혔다. 대한민국 고급 백화점이 세계 최악의 붕괴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기까진 6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불법 용도변경과 무단 증축

삼풍백화점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백화점이 들어선 부지는 원래 주거용 부지였으나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부지용도를 변경하여 백화점을 짓게 했다. 불법 부지용도 변경 다음 수순은 무리한 설계 변경이었다.

처음 설계 당시 삼풍백화점은 ‘삼풍랜드’란 이름으로 바로 옆 삼풍아파트 주민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였다. 당시 우성건설에서 시공을 맡아 공사가 진행됐는데 완공 직전 건축주인 이준 삼풍그룹 회장이 건물용도를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에 원래 설계된 4층보다 1층 더 높은 5층 건물 시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성건설 측이 붕괴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증축을 거부했고 이에 이준 회장은 시공계약을 중도파기하고 삼풍건설산업이 시공하도록 바꿨다. 사고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백화점과 같은 건물은 설계 변경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이나 이준 회장은 건물 안전성은 고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구조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삼풍백화점은 기존 설계상 기둥 지름을 깎거나 용도에 따라 없애기도 했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위해 기둥의 4분의 1을 자른 것으로 확인됐다.

87톤 옥상 ‘에어컨 냉각탑’ 하중 건물이 못견뎌

삼풍백화점 붕괴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는 것은 ‘에어컨 냉각탑’이다. 백화점 옥상에 에어컨 냉각탑이 3대 있었는데 총 무게는 36톤이었다. 냉각수를 채우면 87톤까지 무게가 늘어났다. 옥상이 견딜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는 수치다. 백화점 건설 초기에 이 냉각탑은 옥상 동쪽에 설치했다.

그런데 인근 삼풍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소음 민원이 제기되자 반대편으로 옮겼다. 이때 냉각 탑을 크레인으로 들어 한번에 들었다 내려놔야 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끌어서 옮겼다. 이과정에서 건물 전체에 거대한 압력을 줬고 이때부터 건물 전체 기둥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사고는 전조현상이 수차례 나타났지만 방관한 결과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본격적인 전조현상은 붕괴 2개월전인 1995년 4월 5층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균열에서 미세한 콘크리트 알갱이와 골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사고 한달전인 5월부터 균열이 이전보다 크게 늘자 5층을 폐쇄하고 토목 전문가들을 불러 검사를 했다. 그결과 ‘건물붕괴 위험’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백화점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사고 발생 당일까지도 백화점 측은 어떤 안전조치도 하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5층 식당가 바닥에 금이 가고 천장이 내려앉고 있었다. 5층 기둥에 20㎝가 넘는 균열이 발견됐고 4층에선 바닥이 내려앉는 모습이 관측됐다.

1995년 6월 29일 붕괴 3시간전인 오후 3시경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건물붕괴 위험이 있으니 영업을 중단하고 긴급보수가 필요하다는 쪽과 붕괴위험은 없으니 보강방법으로 기둥과 기둥사이를 받치자는 쪽으로 나뉘었다. 이준 회장은 보강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고, ‘골든타임’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사고당일인 1995년 6월 29일, 삼품백화점 5층 건물 중앙부분이 무너져 내려 앉아 양쪽 건물벽만 처참한 몰골로 우뚝서있다. 사진=연합뉴스

5층부터 지하 3층까지 5분만에 붕괴

붕괴는 오후 5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4층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백화점 측은 4층을 통제했다. 오후 5시 51분경 옥상의 하중을 이기지 못한 5층 뒤틀림이 가속화하며 균열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5층 슬래브가 4층 바닥으로 완전히 꺼지며 지하 3층까지 연쇄적으로 붕괴됐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옥상 붕괴가 시작된지 5분만에 삼풍백화점 A동은 지하 3층까지 땅속으로 완전히 주저앉았다.

이 사고로 이준 삼풍그룹 회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징역 7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을 승인해준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은 징역 10월에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고 이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전국 모든 건물에 대한 안전평가를 실시했다. 진단결과 모든 건물 중 2%만이 안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풍백화점은 ‘무량판 구조’방식으로 지어졌다. 기둥과 바닥사이에 보가 없이 바닥이 기둥에 직접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실내에 있는 사람, 물건의 하중과 바닥 구조체의 무게가 기둥으로 직접 전달된다. 보를 생략했기 때문에 주실공사 등으로 기둥과 슬래브 사이 철근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층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위험성이 내재돼있다.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모습. 사진=연합뉴스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1129명 사망

삼풍백화점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낳은 붕괴사고가 지난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는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이며, 1129명이 사망하고 2500명이상이 다쳤다. 이 사고로 18년간 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자수 세계 1위라는 불명예가 ‘삼풍백화점’에서 ‘라나 플라자’ 사고로 바뀌었다.

지난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Savar)에서 지상 9층 복합건물인 ‘라나 플라자(Rana Plaza)’가 붕괴됐다. 이 건물엔 세계 SPA 의류브랜드의 하청 공장이 가동중이었다.

이 건물도 ‘불법 증축’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기존 4층 건물을 8층 건물로 2배나 더 높게 증축했다. 게다가 무허가로 지은 건물이다보니 증축 당시 건축허가도 필요하지 않았다. 붕괴되기 직전엔 여기에 한 층을 더 증축하는 공사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붕괴원인 중 하나는 건물을 지탱해줄 지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건물 옆면의 벽에 금이 가고 기둥 콘크리트는 떨어져 나갔다. 붕괴 전날인 2013년 4월 23일 건축 엔지니어인 압둘라 라자크 칸이 건물주인 소헬 라나에게 건물붕괴 위험이 높다고 전했으나 건물주는 무시했다. 결국 다음날인 24일 오전 8시 45분에 붕괴가 시작돼 건물안에서 조업하던 약 3000여명 중 3분의 1이 사망했다.

이 사고와 관련해 건물주와 공장업자, 안전감독 담당 공무원 등 총 41명이 살인 및 범죄은닉 혐의로 기소됐다. 방글라데시 법원은 건물주인 소헬 라나에게 지난 2017년에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오늘은] 1995년 여름날의 대형 참사…삼풍백화점 붕괴

영상 기사

(서울=연합뉴스)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 50분께. 서울 서초동에 있던 백화점 하나가 무너져내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평일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사고가 발생했고, 퇴근 시간을 맞아 몰려든 차량과 인파로 구조대원의 접근이 어려워 인명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사망자는 총 502명에 달했으며 부상자 937명이 발생했죠. 이 사고는 국내에서 단일 사건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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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입니다.

◇ 대형 건물은 어떻게 붕괴했을까

삼풍백화점은 당시 국내 최고가 아파트 중 하나인 서초동 삼풍아파트 단지 내 부지에 1989년 들어섰습니다.

지상 5층, 지하 4층에 연면적 7만4천㎡의 크기로 당시 단일 매장으로는 서울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어 전국 2위의 대형 백화점이었죠.

백화점은 5층 식당가 천장이 무너진 후 한 층씩 차례로 내려앉았습니다. 붕괴 초기 비상 사이렌이 울리자 고객들이 대피하기 시작했지만 완전 붕괴까지는 불과 2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요. 피할 시간이 없었던 거죠.

◇ 준공 6년 만에 무너진 이유는

준공 6년밖에 안 된 이 백화점을 무너뜨린 것은 부실시공과 안전불감증, 공무원의 비리였습니다.

쇼핑 공간을 늘리기 위해 기둥을 줄였고, 옥상에 무거운 냉각탑을 얹으면서 그만큼 건물이 견뎌야 하는 무게가 늘어났죠.

또 사고 당일 아침 A동 5층 식당가 기둥에 균열이 생기고 천장이 내려앉았지만, 경영진은 4·5층만 폐쇄하고 백화점을 운영했어요.

공무원들은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무단 설계변경을 눈감아 줬죠. 안전진단도 겉핥기식으로 했다네요.

◇ 사고 이후 어떻게 됐을까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과 아들인 이한상 사장, 뇌물을 받은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 등 25명이 기소돼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사고를 계기로 건물안전평가가 실시됐고, 주요 도시에 119 중앙구조대가 설치됐으며, ‘재난안전법’이 제정됐죠.

이후 1998년 서울 양재동 시민의숲에 참사 위령탑이 세워졌고, 삼풍백화점 터에는 2004년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 아직도 끊이지 않는 대형 붕괴사고

물론 대형 붕괴사고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앞서 1994년에는 한강에 놓인 다리 중 하나였던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렸고, 훨씬 이전인 1970년에는 서울 창전동에 있던 5층짜리 와우아파트가 붕괴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죠.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에도 경기 이천 물류센터공사장 붕괴(2005),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강당 붕괴(2013)가 있었고, 지난해에는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에 이어 올해 1월엔 광주 화정현대아이파크 공사 현장 붕괴 사고가 이어졌죠.

대형 붕괴사고들은 주로 부실공사와 안전불감증이 불러왔습니다.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임동근 기자 이지원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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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붕괴 사례)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과 바뀐 건축법

지난 1995년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건이 있었죠. 바로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건물 2개 동 중 북측 건물(지상5층, 지하4층)이 5층 슬라브 붕괴 후 연쇄적으로 지하층까지 붕괴되어 사망 501명, 부상 937명의 대참사가 일어난 일명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입니다.

부실 공사 부실 감리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이 건네진 점이 차례로 밝혀지면서 최근에는 삼풍백화점 붕괴를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되고 있기도 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은 마이다스캐드가 해당 사건을 소개해 드리며 이후 변경된 건축법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삼풍백화점>

01.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이유

원래 삼풍백화점은 ‘삼풍 랜드’라는 이름으로 바로 옆에 있던 삼풍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 설계될 예정이었다고 하는데요. 완공에 가까워질 무렵 건축주인 이준 회장은 건물 용도를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의 붕괴 위험성의 말을 무시한 채 원래 4층이었던 설계에 1층을 더 얹어 도합 5층으로 건물로 시공하게 되었습니다.

▶ ㅡ자형 철근

<정상적인 무량판 구조의 모습>

<당시 삼풍백화점의 구조>

*출처: https://namu.wiki/

삼풍백화점은 무량판 구조로 대들보가 없이 바닥이 직접 기둥으로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는데요. 설계상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지판 두께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일부 기둥은 지판 자체가 없어서 바닥과 기둥의 철근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기둥이 옥상을 뚫고 나오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L자형 철근을 사용해야 했는데,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이유로 —자형 철근을 사용하였고, 그 결과 건물이 붕괴될 때 바닥과 기둥을 연결할 수 없어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 불법 증축한 식당가

<붕괴 하루 전 탁자가 기울어져 있는 모습>

<붕괴 하루 전 식당가의 천장 균열>

*출처: https://namu.wiki/

불법 증축으로 추가된 5층은 좌식 형태의 식당이 들어서면서 바닥에 온돌의 효과를 주기 위해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가 추가되었으며 바닥 아래에 깔린 호스로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바닥을 덥히는 무거운 난방장치를 추가하였습니다.

무거운 온돌 시스템을 목조 기둥이 견딜 수 없어 당시 한국 전통 건축 대부분이 단층 구조였던 것을 생각하면 무리하게 5층으로 확장 공사를 시행하기 위해 바닥과 기둥의 무게를 더하고 온수 보일러 시설이 잔뜩 깔린 식당가를 배치한 것은 아찔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냉각탑을 옮기는 방법

<굴림판 위에 냉갑탑을 올려 옮기는 모습>

<옮기는 과정에서 바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출처: https://namu.wiki/

전문가들은 5년 만에 건물이 무너진 결정적인 원인을 백화점 옥상에 있던 에어컨 냉각탑을 첫 번째로 꼽았는데요. 본래 옥상의 슬라브는 6cm 두께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방수 처리를 하면서 9cm를 더 두껍게 하였고 추가로 자하에 설치해야 하는 냉각탑을 지하공간 확보라는 이유로 옥상에 설치하였는데 기본적으로 이 냉각탑들의 무게가 36톤이고, 냉각수까지 채우면 무려 87톤이 넘어가는 무게였습니다.

이는 옥상이 견뎌낼 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는 무게였다고 하는데 냉각탑의 소음 때문에 반대편으로 옮기면서부터 균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옮기는 방법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무거운 물건은 크레인으로 들어 옮기는게 당연했지만 이동 비용을 줄이겠다며 굴림판 위에 냉각탑을 올려 옥상 상판 위에서 끌어 반대쪽으로 이동해 버린 것입니다.

널찍한 매장 공간 확보 이유로 기둥을 없애고, 무단 증축하는 등 잘못된 시공으로 약해진 건물은 결국 이 과정에서 바닥이 깨지고 구조물에 균열이 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붕괴는 이때부터 시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02. 붕괴 조짐과 신호

<붕괴사고 하루 전 펀칭 현상이 일어난 옥상>

*펀칭 현상: 바닥과 지판이 기둥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하중을 넘어서면서 기둥이 바닥을 뚥고 올라오는 현상

<삼풍백화점의 펀칭 현상 그림>

<붕괴된 직후 모습>

*출처: https://namu.wiki/

1994년에는 삼풍백화점에 어마어마한 양의 서적들이 들어오는 삼풍문고라는 서점이 영업하게 됩니다. 이후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 무거운 책장과 책의 무게를 버틸 수 없던 건물에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1년 동안 수도 없이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요.

결국 1995년 3월에 서점을 지하로 옮겨보지만 때는 이미 늦어 중앙홀과 B동의 건물까지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일어나 백화점 건물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붕괴 2개월 전에는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생기 시작하였고 1개월 전부터는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붕괴 16분 전인 5시 41분 백화점 침하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중앙홀의 균열에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중앙 홀과 백화점 2층에 있다가 이상함을 느낀 직원 및 손님들은 일부 대피하였으나, 이윤을 위해 백화점 1, 2층은 영업을 강행하였고 결국 5층 바닥의 가장 약한 기둥 2개가 무너지며 가장 얇았던 5층 바닥과 천장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해 약 20초만에 건물은 지상 5층에서부터 지하 4층까지 완전하게 매몰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03. 삼풍백화점 사건 이후 바뀌게된 건축법

삼풍백화점 참사 사건 이후 건축물의 설계, 시공이나 공사 감리를 부실하게 하여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에 대한 처벌을 고의에 의한 경우와 업무상 과실에 의한 경우로 구분하여 정하였고 이로 인하여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형을 가중하도록 하여 공중의 안전을 확보하고 건축공사가 건실할 수 있도록 건축법의 조항이 변경되었는데요.

이후에도 20년 동안 이 조항은 구체화되며 개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실 설계 시공 등으로 인해 건축물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2016년 2월에는 업무상 과실이라 하더라도 기존보다 10배의 벌금형이 중과되도록 개정되었으며 초고층 건축물과 대형 건축물은 건축 허가 전에 안전영향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삼풍백화점 참사 사건에 대해 소개해 드리며 이후 변경된 건축법까지 알려드렸는데요. 삼풍백화점의 경우 오로지 이윤추구에 매달린 경영자의 그릇된 모습과 당시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이렇게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으로까지 끌고 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부실 설계 등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건축사사무소를 영업하기 어려워지니 설계부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 건축 또는 캐드 관련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마이다스캐드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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