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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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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그라다파밀리아

  • Author: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 Discovery Channe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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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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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종파 로마 가톨릭 위치 국가 스페인 소속 교구 바르셀로나 교구 봉헌일 2010년 11월 7일 웹사이트 http://sagradafamilia.cat/

사그라다 파밀리아 스페인의 사적 종목 사적

(1969년 7월 24일 지정) 연결 http://sagradafamilia.cat/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카탈루냐어: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스페인어: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짓고 있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또한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성가족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책임졌다. 이 건물에 대한 가우디의 작업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의 일부이며, 2010년 11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당에서 준 대성당으로 승격을 선포했다.[1][2][3]

1882년 성당의 건축은 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4] 1883년 비야르가 사임하자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로 취임하여 고딕 건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건축 및 엔지니어링 스타일로 프로젝트를 변형시켰다. 가우디는 그의 남은 생애를 프로젝트에 투입했으며, 1926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프로젝트의 1/4이 완료되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의 일부인 동부 성만 완성하고 죽었다.[5]

성당 건축은 개인적인 기부금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되었다가 1950년대에 스페인 남북 전쟁에 의해 중단되었다. 건설이 시작된 이래로 컴퓨터 지원 설계 및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2010년 중반에 건설이 가속화되며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10개의 첨탑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과제 중 일부들이 현재 남아 있다. 각각은 신약 성경에서 중요한 성경적 인물을 상징하며,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5]

또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까탈루냐 모더니즘으로 지어진 최고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6]

가우디는 이 성당을 지으면서 건축과 장식의 구성요소, 조형미와 아름다움, 기능과 형태, 외부와 내부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했다. 지하 예배당과 성당의 내부 뒤에 부분은 네오고딕 양식으로 만들었고 그 이후, 성당의 나머지 부분은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성당의 내부는 나무처럼 기울어지고 나선형의 기둥으로 인해 숲을 닮아서 간단하고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우디는 이런 특이한 형태의 건축기법을 그가 지은 구엘공원이나 구엘 성지에서 검증한 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지을 때 사용하여 조형미와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구조적으로 완벽한 건축물을 만들었다.[7] 현재 (2022년 기준)140년째 짓고있다.

역사 [ 편집 ]

배경 [ 편집 ]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서점가인 조셉 마리아 보카 벨라(Josep Maria Bocabella)의 영감을 받아 설립되었다.[8]

1872년 바티칸을 방문한 후 보카 벨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로레토(Loreto)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교회를 건설하고자 했다.[8] 교회의 교정이 필요한 부분은 기부금으로 충당되었으며, 1882년 3월 19일 세인트 요셉 축제에서 고딕 양식의 부흥을 통해 교회를 계획한 건축가 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이 디자인에 착수했다.[8] 가우디는 1883년에 교회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1884년까지 건축가 이사로 임명되지 않았다.[8]

구성 [ 편집 ]

극도로 긴 건설 기간에 대해 가우디는 “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고있다”고 말했다.[9] 가우디가 1926년에 죽을 때, 공회당은 약 15%와 25% 사이에서 완료되었다.[8][10] 가우디가 사망한 후 1936년 스페인 내전 중단될 때까지 Domènec Sugrañes i Gras의 지시하에 계속 작업이 진행되었다.

미완성 공회당의 일부와 가우디의 모델과 워크샵은 카탈로니아의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전쟁 중 파괴되었다. 현재의 디자인은 현대적인 적응 뿐만 아니라 화재로 불태워진 계획의 재구성된 버전을 기반으로 한다. 1940년 이래로 건축가인 Francesc Quintana, Isidre Puig Boada, Lluís Bonet i Gari 및 Francesc Cardoner가 이 작업을 수행했으며, 조명은 Carles Buïgas에 의해 설계되었다.

Lluís Bonet의 현 감독이자 아들인 Jordi Bonet i Armengol은 1980년대 이후 컴퓨터를 설계 및 시공 과정에 도입해 왔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Jordi Fauli가 2012년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의 수석 건축가로 취임했다.[11]

중앙 본당 둥근 천장 작업은 2000년에 완료되었으며 이후 주요 작업은 천장 높이 및 선미의 건설이었다. 2018년, 중앙 본당의 남쪽 인클로저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메인 타워에 대한 교차 및지지 구조에 집중하고 있다.

교회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박물관 건물 (원래 건축가의 아이들을 위해 1909년에 가우디가 디자인 한 학교)과 사이트를 공유한다. 2002년 동부 구석에서 남쪽 구석으로 이주한 이 건물에는 현재 전시가 있다.[12]

건설현황 [ 편집 ]

수석 건축가인 조르디 파울리는 2015년 10월에 공사가 70% 완료되었으며 6개의 거대한 건물을 세우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타워와 대부분의 교회 건축물은 가우디의 사망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장식 요소는 2030년 또는 2032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15-20 유로의 방문자 입장료는 연간 건설 예산 2,500만 유로를 충당한다.[13]

컴퓨터 보조 설계 기술은 건물 건설을 가속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의 기술은 돌을 CNC 밀링 머신에 의해 빠르게 조각할 수 있는 반면, 20세기에는 돌을 손으로 조각했다.[14]

2008년 일부 카탈로니아 건축가들은 가우디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존중하기 위해 건설 중단을 옹호했다.[15] 원래 디자인은 철저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재건되었다.[16]

AVE 터널 [ 편집 ]

2013년 이래 AVE 고속 열차는 바르셀로나 중심부에서 지하 터널을 통과하여 성당 근처를 통과했다.

2010년 3월 26일에 시작된 터널 공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스페인 공공 사업부는 이 프로젝트가 교회에 아무런 위험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17][18] 하지만 건축 엔지니어와 건축가는 터널이 건물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하면서 의견을 달리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사회와 AVE pelle Litoral은 AVE를 위한 이 갈등 때문에 AVE에 대한 캠페인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

2010년 10월, 터널 보링 머신은 건물의 주요 외관 위치 아래 지하 교회에 도착했다.[17] 터널을 통한 서비스는 2013년 1월 8일에 개통되었다.[19] 터널의 트랙은 Edilon Sedra의 시스템을 사용하여 레일을 탄성 소재에 매립하여 진동을 줄인다.[20] 다행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손상은 현재까지 보고된 바 없다.

미사 집전 [ 편집 ]

메인 본당은 덮여 있었고 기관은 2010년 중반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이 종교적 서비스로 사용되고 있다.[21] 교회는 6,500명의 회중 앞에서 2010년 11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봉헌되었다.[22] 추가로 50,000명의 사람들이 바실리카 외곽에서 봉헌 미사를 쫓았다. 그곳에서 100명 이상의 주교와 300명의 성직자가 손을 잡고 성만찬을 제안했다.[23] 2017년 7월 9일부터 매주 일요일과 성례 날 오전 9시에 대성당에서 기념하는 국제 미사가 대중에게 공개된다 (교회가 가득 찰 때까지). 때때로 미사는 다른 시간에 경축되며, 출석에는 초대가 필요하다. 미사가 예정되어있을 때, 초대장을 얻기 위한 지시 사항은 바실리카의 웹 사이트에 게시된다. 또한 방문객들은 거룩한 성체와 참회의 예배당에서 기도 할 수 있다.[24]

가치 [ 편집 ]

건물의 디자인 자체가 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우디의 동료 건축가들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루이 설리반(Louis Sullivan)은 사그라 다 파밀리아를 “지난 25년 동안 가장 위대한 창조적 건축물”로 묘사했다.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돌로 상징화 된 영적인 건물 입니다!”라고 말했다.[25] Walter Gropius는 성당을 칭찬하면서 건물의 벽을 “경이로운 기술이 만든 완성형 물체”라고 불렀다.[25] 타임지(Time Magazine)는 성당을 “관능적이고 영적이며 변덕스럽고 풍성한 건물”이라고 불렀다.[9] 또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건물 중 하나”라고 불렀고,[26] James A. Michener는 “가장 이상하며 심각한 세계의 건축물”이라고 불렀으며,[27] 영국의 역사학자 제럴드 브레난(Gerald Brenan)은 “유럽의 건축물조차도 이 성당 앞에서는 저속하거나 허식이 아닌 것을 찾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27] 건물의 독특한 실루엣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되었다.[5]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매년 약 200~30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6]

세계 유산 현황 [ 편집 ]

바르셀로나에 소재한 여섯 개의 다른 가우디 건물과 함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선정 된 까닭은 “건축 및 건축 기술 개발에 대한 가우디의 독창적 인 공헌”, “카탈로니아의 엘 모더니즘을 대표 ” 및 “예상된 20세기 현대 건설의 발전과 관련된 형태와 기술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침.” 등이 있다.[28]

방문 [ 편집 ]

방문자들은 Nave, Crypt, Museum, Shop 및 Passion and Nativity 타워에 접근할 수 있다. 탑승구 중 하나에 입장하려면 예약과 사전 티켓 구매가 필요하다. 승강기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며 나머지 타워는 탑 사이의 다리까지 걸어간다. 하강은 300단계 이상의 매우 좁은 나선형 계단을 통과한다. 올라가기 매우 힘들기 때문에 계단에는 건강 상태에 대한 주의 사항이 있다.

2017년 6월부터 온라인 티켓 구매가 가능하게 되었다.[29] 성수기인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방문자들로 인한 며칠 간의 입국 예약 지연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자금 [ 편집 ]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은 정부 또는 공식 교회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개인 후원자들은 초기 단계에 자금을 지원했다.[30] 관광객들이 구매한 티켓의 돈은 작품 비용을 지불하는 데 사용되며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해서는 후원자들을 통해 사적인 기부가 허용된다.

2009년 건설 예산은 1,800만 유로(242억 640만 원)가 들었으며, 공사비용은 모두 관광객하고 신자들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다.[21]

갤러리 [ 편집 ]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 (2005년 3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 (2009년 6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 (2015년 2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 (2017년 5월)

(Español) Curiosidades del templo de la Sagrada Familia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의 역사

속죄의 사원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수백만 명이 방문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르셀로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가우디(Gaudí)가 건설한 부분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 추진 위원회는 가우디의 사망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26년에 공사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881년, 성 요셉 신도 협회의 후원으로 12,800 제곱미터에 해당하는 성당의 건축 부지를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당 공사는 1882년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이 되어서야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본래 프란세스크 데 파울라 비야르(Francesc de Paula Villar)라는 다른 건축가에게 맡겨진 것이었으나 1883년 말, 가우디가 이를 이어 받게 되었습니다. 가우디가 새로 계획한 프로젝트는 전임자의 설계안보다 훨씬 더 의욕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가우디는 5개의 홀, 교차랑, 후진, 외부 통행로, 3개의 파사드, 18개의 탑으로 구성된 성당을 짓고자 했습니다. 이는 가우디의 건축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복잡하고 독특한 건축 프로젝트였으며 가우디는 이에 그의 인생 중 43년을 바쳤습니다.

가우디가 자신이 탄생의 파사드 완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4개의 탑으로 된 탄생의 파사드를 전체를 짓는데 집중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안토니 가우디는 완벽한 성당을 만들어서 믿음의 역사와 예수의 인생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18개의 탑은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에 헌정하는 것이며 그 크기에 중요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탑들 중 12개는 사도들을 나타내며 4개는 복음사가들, 하나는 성모 마리아를 나타냅니다. 그중 가장 높은 탑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꼭대기에 십자가가 장식된 이 탑은 172 미터에 달합니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될 것입니다.

1914년부터 안토니 가우디는 민간 건축물을 짓는 것을 그만두고 성당 건축에만 온전히 집중했습니다. 1925년 11월 30일, 탄생의 파사드 쪽 첫 번째 종탑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종탑은 가우디가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종탑이었습니다. 가우디는 트램에 치이는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고 나서 3일이 지나 1926년 6월 10일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탄생의 파사드는 최종적으로 1930년 완공되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성당 공사 인부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가우디가 사망하고 나서 그의 제자인 도메네크 수그라녜스(Domenec Sugrañes)가 공사를 이어 받아 1938년까지 진행했습니다. 그의 능력은 매우 출중하였으나 스페인 내전 중 발생한 지하 예배당 화재로 인해 임시로 지어졌던 학교 건물들뿐만 아니라 후임자들이 그의 작품을 끝맺을 수 있도록 안토니 가우디가 남겨 놓았던 모든 도면과 모형들이 보관되어 있던 작업실도 훼손되었습니다. 이 자료들은 일부만이 복구되었고, 때문에 가우디가 계획했던 그대로 성당이 지어지는 것을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파사드인 수난의 파사드가 완성되는 데 22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수난의 파사드 공사는 1954년에 시작되어 1976년에 끝났습니다. 가우디가 생각했던 바와 최대한 비슷하게 짓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건축가들과 공사 진척

가우디가 사망하고 나서 많은 건축가들이 가우디의 유산을 이어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된 도메네크 수그라녜스(Domenec Sugrañes) 외에도 이시드레 푸이그 보아다(Isidre Puig Boada), 유이스 보넷 이 가리(Lluís Bonet i Garí), 프란세스크 데 파울라 카르도네르 블란치(Francesc de Paula Cardoner Blanch), 조르디 보넷 아르멘골(Jordi Bonet Armengol)이 참여했으며 현재는 조르디 파울리 오예르(Jordi Faulí Oller)가 2012년부터 맡고 있습니다.

172 미터 높이에 달할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대부분의 속죄의 사원이 그렇듯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 자금은 후원금과 개인 헌금으로만 마련될 수 있습니다. 후원금 및 건축 분야에서 사용되는 발전된 기술 덕분에 공사가 정해진 기간 내에 마무리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2000년부터는 구조가 완성되었고 원형 천장들이 마무리되었으며 영광의 파사드 기초 공사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가 작업한 수난의 파사드가 완공되었고 현재 일본인 조각가 에츠로 소투(Etsuro Sotoo)가 이 파사드의 장식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7일에 성당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곳에서 장엄한 미사를 집전하고 성당을 바실리카로 승격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공사는 안토니 가우디의 사망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26년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카탈루냐 주민과 신도들에게는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 되겠지요. 안토니 가우디 시복 추진 위원회가 2000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프로젝트대로 가우디가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된다면 이 성당의 완공은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속죄의 사원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바르셀로나의 특별한 장소에 세워진 건물이자, 완공된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바실리카가 될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에 걸쳐 지어진 가우디의 걸작품이지요.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라운 점들 중에서도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해 들어오는 햇빛이 내부에 만들어 내는 빛과 색채의 어울림, 오전이나 오후, 방문하는 때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가 특히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카사 바트요와 라 페드레라(La Pedrera)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게다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탑들에 올라 특별한 시내 전경을 감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느 탑이 가장 올라가 볼 만한지 물어보십니다. 사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차이점은 있습니다. 탄생의 파사드 쪽 탑의 경우, 가장 높은 곳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는 없지만 나선형의 좁은 계단으로는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관람객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신체 상태가 좋지 않거나 좁은 공간에 관한 특정 공포증을 겪고 있는 관람객이라면 수난의 파사드 쪽 탑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가우디 작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인 탑들을 관람하지 않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떠나시면 안됩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에는 어떻게 가나요?

C/ de la Marina 길 N 41º 24´ 283´´ | E 2º 10´486´´

지하철 L2, L5 Sagrada Familia역. / 버스 19, 33, 34, 43, 44, 50, 51, B20, B24.

일반 입장: 일반 관람객은 c/ de la Marina 길에 있는 탄생의 파사드 쪽으로 입장.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관람 시간:

11월부터 2월까지: 9:00부터 18:00까지.

3월, 10월: 9:00시부터 19:00까지.

4월부터 9월까지: 9:00부터 20:00까지.

12월 25일, 12월 26일, 1월 1일, 1월 6일: 9:00부터 14:00까지.

“드디어 5년 뒤 완공된다”…가우디 150년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전경. 오른쪽 정면으로 보이는 외벽은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성당 동쪽의 `탄생의 파사드`다. /사진 제공=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자연의 형태를 모방한 유기적인 구조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띈다. /사진=송경은 기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파사드`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에 이른 마지막 이틀의 수난기가 조각상으로 담겨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파사드 전경(왼쪽). 오른쪽은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모습이다. /사진=송경은 기자·사그라다 파밀리아

[랜선 사진기행-46] 1926년 6월 10일 저녁 5시 30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코르테스 거리에서 남루한 차림의 한 70대 남성이 길을 건너다 전차에 치였다. 이 노인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위중한 상태로 사흘 만에 결국 사망했다. 그의 행색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그가 카탈루냐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가우디는 그의 인생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현장에만 12년째 머물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저녁 기도를 하러 가던 길에 변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40여 년에 걸쳐 그가 모든 열정을 쏟았던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현재도 건설 중인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스페인어로 ‘신성한(성스러운) 가족’이란 뜻이다. 프로젝트는 1882년 바르셀로나교구의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의 설계로 시작됐는데 1년 만에 수석 건축가가 가우디로 교체되면서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서 고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특유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 현대 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가우디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동쪽 파사드(Facade·건물의 전면) 등 전체 계획의 4분의 1 정도만 완성된 상태였다. 나머지 부분은 가우디의 제자 도메넥 수그라네스 등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그마저도 1936년 스페인 내전 중 일부가 파괴됐고 이때 현장에 있던 설계안과 사진, 석고 모형도 함께 불타버렸다. 이 때문에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cade)’를 제외한 나머지 외관은 후대 건축가들이 가우디가 남긴 자료를 복원·재해석해 현대적으로 설계했다.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탄생의 파사드 앞. 반듯반듯한 바르셀로나 거리들이 만나는 길 끝에 마치 땅밑에서 하늘을 향해 치솟은 것 같은 형상의 거대한 성당이 홀로 우뚝 서 있었다. 곡선이 어우러진 4개의 첨탑은 신을 위해 밝힌 거대한 촛불처럼 보였다. 예배당 안쪽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 비밀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물의 줄기나 동물의 근육 같은 유기적인 형태의 기둥 사이를 메운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쏟아졌다. 그 은은한 빛은 내부 조명과 함께 시시각각 아른아른했다.가우디는 자연의 구조와 형태를 모방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하면서 비정형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균형 잡힌 구조, 내부와 외부의 완벽한 조화, 기능적 건축 요소와 장식이 어우러진 조형미를 추구했다. 건축가들은 이런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살려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성당 건설이 유독 더뎠던 것은 시공 난도가 높은 가우디의 비정형적인 구조와 성도들의 기부금에 의존해야 했던 자금 조달 문제 때문이었다. 생전에 가우디는 이런 상황에 답답함을 표출하기도 했다.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세 개의 파사드가 있는데 이 중 유일하게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동쪽 탄생의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를 묘사한 조각상들로 꾸며져 있다. 탄생의 파사드에서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세 개의 청동문은 왼쪽부터 ‘희망의 문’ ‘자비의 문’ ‘믿음의 문’으로 불린다. 중앙의 자비의 문 위에는 말 구유에서 성모 마리아의 손에 일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아기 예수와 그 둘을 감싸고 있는 성 요셉을 나타낸 조각상이 자리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가우디가 직접 조각했다고 알려져 있다.반대편인 서쪽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는 십자가를 진 예수 조각상 등 예수의 수난기를 묘사한 것으로 1954년 착공해 1976년 완성됐다. 가우디는 수난의 파사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최후의 만찬과 제자들의 배신, 십자가 죽음, 부활 사이의 시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곳곳엔 성서의 장면과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수난의 파사드 중앙의 ‘수난의 문’은 스페인의 세계적인 현대조각가였던 주제프 마리아 수비라치가 음각으로 조각한 예수상으로도 유명하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부활을 표현한 남쪽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는 2002년 착공해 현재도 공사 중이다.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약 80% 완성된 상태로 목표 완공 시점은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이다. 완공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은 총 18개가 된다. 2015년 성당의 12개 첨탑 가운데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의 탑'(높이 172.5m)이 완공됐고 올해 12월에는 두 번째로 높은 성모 마리아 탑(높이 140m)이 완성될 예정이다. 나머지 각 파사드에 4개씩 있는 총 12개의 첨탑은 12명의 사도(제자)들을 상징하고, 다른 4개의 첨탑은 전도자들을 상징한다.한평생 기인처럼 살다 간 가우디는 그가 마지막까지 모든 정열을 불태웠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에 묻혔다. 2005년에는 유일하게 가우디가 직접 설계부터 건축까지 책임졌던 탄생의 파사드와 가우디가 잠든 성당 지하 공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한편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대표작에는 구엘공원과 까사 밀라, 까사 바트요, 까사 비센스, 구엘 저택, 콜로니아 구엘 교회 등이 있다.[송경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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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5년 후에 완전체 볼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다 /unsplash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역작,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건축까지 책임졌던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5년 뒤면 완공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스페인어로 ‘신성한(성스러운)가족’이란 뜻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여전히 지금도 미완성이지만, 카탈루냐 현대 건축의 역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 평론가인 레이너 제브스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두고 “미술사를 통틀어 이와 같은 건축물을 짓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라 평했고, 작가이자 비평가인 폴 골드버거는 “중세 이후 고딕 건축에 대해 가장 특별한 개인적인 해석”이라 말했다.

195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약 80%까지 완성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목표 완공 시점은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을 예상하고 있다. 전체가 완성될 경우 성당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약 170m가 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건축물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가우디는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납골묘에 묻혀 있다. 원래라면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지만 로마 교황청에서 가우디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허락했다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처음은 작은 건물에 불과했다

멀리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flickr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건축물은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인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의 설계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정부나 대형 교회의 지원으로 지어진 게 아니었다. 이 건축물을 빌라에게 의뢰한 사람은 종교서적 출판사의 주인 주제프 마리아 보카베야였다.

이탈리아의 로레토 성당에 감명받은 보카베야는 모든 회원이 모여 한 자리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작은 성당’을 건설하자고 제안, 가난한 회원들의 기부금을 모아 대지를 구입했다. 그러나 돈이 생각만큼 모아지지 않아 공사는 중단되었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였던 빌라는 어렵게 짓고 있는 성당이나 설계를 무료로 해 주겠다고 나섰고, 1882년 보카베야의 구상을 나름대로 반영해 평범한 계획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성당의 재료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 빌라는 재료를 석조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보카베야는 건축비 부족으로 구조를 벽돌로, 바깥에 돌을 붙이자고 해 결국 1883년 빌라가 사임한다.

안토니 가우디 /Public Domain

이때 31살의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로 부임했다. 보카베야를 비롯한 사람들은 가우디가 뛰어난 재능이 있어 섭외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건물을 만들려 그를 데려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적은 공사비를 가지고 작은 건물 하나를 세워주길 바랬던 것 뿐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고 나서, 1885년 가우디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계획안을 만들게 된다. 고딕 양식과 곡선형의 아르누보 양식을 조합해 그의 건축 스타일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바꾸었다.

1893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설계도 /Expiatory Temple of the Sagrada Família

1893년 가우디의 계획안에 따라 ‘탄생의 파사드’가 만들어졌다. 축구장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 높이가 175미터가 되는 여러 탑이 세워지는 규모를 당시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우디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원래의 기획안보다 어마어마하게 커진 대형 프로젝트에 그는 매달렸다. 실제로 가우디는 남은 생애를 이 건축 프로젝트에 바쳤으며, 1926년 그가 사망했을 당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약 1/4 정도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가우디의 죽음은 허망함 그 자체였다. 19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 코르테스 거리에서 한 70대 남성이 길을 건너다 전차에 치이게 된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위중한 상태로 사흘간 사경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가 바로 안토니 가우디였다. 그가 워낙 행색이 남루해 죽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그가 카탈루냐 출신의 유명 건축가인 가우디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단지 그날 저녁기도를 하러 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거대한 프로젝트는 아직도 미완성이지만, 현재진행형이다.

멀리서 보이는,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 /unsplash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설은 스페인 내전과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 1936년 혁명가들이 이 건축물 지하실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작업장에 있던 가우디의 일부 도면, 설계 장면이 빼곡히 적힌 종이, 석고 모형들을 없애기도 했다. 1950년대 들어 다시 공사가 간헐적으로 진행되었고, 지금은 복원된 3D 모형을 바탕으로 현대의 건축 기술을 동원해 2010년 50% 이상을 완공한 상태다.

공사중인 영광의 파사드 /Wikimedia Commons

건축물은 ‘탄생의 파사드(동쪽)’, ‘수난의 파사드(서쪽)’, ‘영광의 파사드(남쪽)’로 총 3개의 파사드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객들이 사그라파 파밀리아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가장 정면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이야기를 담은 ‘탄생의 파사드’이며 반대쪽인 출구 방향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담은 ‘수난의 파사드’이다. ‘수난의 파사드’는 1954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2002년이 되어서야 착공에 들어갔다. ‘영광의 파사드’는 향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메인 출입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탄생의 파사드 – 자비의 문 /unsplash

탄생의 파사드 – 동방 박사들 /unsplash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졌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세 개의 문은 왼쪽에서부터 희망, 자비, 신앙을 나타낸다. 상부에는 수태고지, 동방 박사의 경배, 영아 학살과 이집트로의 피신이 사건 순서대로 상부에 조각되어 있다. 중앙에는 아기 예수와 요셉, 마리아가 있으며 뒤에 있는 소들로 마굿간임을 표현했다. 오른쪽에는 동방박사 3인이 황금과 물약, 유향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 왼편으로는 목동들이 음식을 들고 자리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고 있다.

가우디의 자연주의적 양식의 특징인 이 조각들은 자연에서 온 장면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상징이 있다. 나무 아래에는 펠리칸이 있고, 이들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JHS(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란 뜻으로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약자)의 알을 갖고 있으며 왕관 위의 펠리칸이 자식들을 먹이고 있다. 이는 성찬식을 의미하는데 펠리칸이 새끼들을 피로 먹여 키웠다는 중세 기원 설화를 모티브로 펠리칸을 예수에 비유한 것이다. 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환영한다는 뜻으로 집 입구 쪽에 키우는 나무이며, 예수의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뒤에는 두 개의 종탑을 연결하는 야곱의 다리가 있다.

가우디는 자신이 이 프로젝트를 다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았고, 다른 사람들이 뒤를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이 ‘탄생의 파사드’가 처음으로 완성되는 부분인 만큼 대중들이 봤을 때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수난의 파사드 /unsplash

수난의 파사드 – 유다의 배신 /unsplash

서쪽에 있는 ‘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의 죽음 이후 스페인의 대표 조각가인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에 의해 축조되었다. 뾰족하고 높게 장식된 ‘탄생의 파사드’와 대조적으로 ‘수난의 파사드’는 담백하며 단순한 형태를 지녔고, 거친 직선의 모양으로 조각되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그리스도의 열정을 위해 헌정된 이 파사드는 사람의 죄를 묘사하기 위해 만들었다. 예수의 네 제자인 야고보, 바돌로매, 도마, 빌립이 등장하며 예수가 당하는 갖가지 수난을 나타냈다.

1976년 완공되었으며 1987년 조각가 호세가 이끄는 조각가 팀이 ‘수난의 파사드’에 나타난 다양한 장면과 디테일을 조각했다. 그들을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좀 더 단단하고 각진 형태의 조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세 단계로 나누어지며 하층부는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 등 십자가의 처형 전날 마지막 밤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중간층은 십자가를 메고 가는 예수와 그의 얼굴 형상이 묻어난 베일을 펼쳐 보는 베로니카, 예수의 공허한 모습을 묘사했다. 맨 위층은 그리스도의 죽음, 매장과 부활을 볼 수 있다.

높이 뻗은 첨탑들 /unsplash

종탑부에는 마치 옥수수처럼 보이는 첨탑들이 지금도 세워지고 있다. 세 파사드의 첨탑까지 합치면 12개가 되는데 이것은 열 두 제자를 의미한다. 성당 중심선상에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첨탑과 성당에서 가장 높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170m의 첨탑이 들어서게 된다.

예배당 안의 모습 /unsplash

스테인드글라스로 비치는 빛 /unsplash

또한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면 햇빛에 반사되어 내부로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감상할 수 있다. 동쪽의 푸른 스테인드글라스는 희망, 탄생을 의미하며 서쪽의 붉은 스테인드글라스는 죽음, 순교를 의미한다. 창을 통과한 빛이 하얀 벽과 기둥의 색을 변화시키는 광경은 실로 예술이다.

자연을 항상 생각했던 가우디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반사되어 쏟아지는 빛들을 사람들이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염두에 두었던 걸까. 아마 사람들은 예배당 안이 현실 세계가 아닌, 천국이나 동물이 뛰어노는 에덴 그 어디인가로 느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가우디는 떠났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영원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unsplash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2018년까지 무허가로 공사를 진행했다는, 조금은 황당한 소식이 있었다. 성당 건축위원회에 따르면 가우디는 공사 시작 후 1885년 건축허가 발급 신청을 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고, 그 이후 구청과 바르셀로나 시, 카탈루냐 주정부 등 어느 곳에서도 건축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늦게야 안 건축위원회와 시 당국은 이 문제를 두고 지난 2015년부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시 당국은 2018년, 그동안 허가 없이 건축을 진행한 것에 대한 벌금으로 성당 건축위원회가 486억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공식적으로 건축 허가를 받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은 2026년을 앞두고 있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어쨌든 스페인 정부는 완공을 2026년으로 잡고 있으니,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기획하면서 자연을 생각했다. 그는 형태가 없는 자연을 상상하면서 살아 있는 곡선, 균형 잡힌 구조와 조형미를 추구했다. 그가 죽었을 때 건축물이 1/4 정도만 완성되었던 것도 난도가 유독 높았던 가우디의 설계도, 그리고 개인들에 의존해야 했던 자금 조달 문제 등 여러 것들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여러 아쉬움 속에 가우디가 끝내 마치지 못했던 최대의 역작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다시 맡아 그의 신념을 지금도 완성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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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2026년 완공 불가능…코로나 여파 탓

▲ ‘가우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2026년 완공 불가능…코로나 여파 탓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사망 100주기인 2016년을 맞아 그가 설계한 야심작이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정 대성전)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17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위원회는 이날 대성전 건축이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중단되고 자금 지원까지 줄어 2026년 완공은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에스테베 캄프스 건축위원회장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계획한 완공 시기를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팬데믹은 2026년으로 계획했던 완공 시기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스페인 정부는 지난 3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도시 봉쇄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공사 역시 중단됐었다.캄프스 위원회장에 따르면, 공사는 몇 주 안에 재개되지만, 자금 부족으로 천천히 진행될 예정이다. 건축 비용이 가톨릭 신자들의 기부금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티켓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하고 있었기에 코로나19의 여파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캄프스 위원회장은 “공사가 끝나는 새로운 날짜를 제시할 수 없지만, 2026년 완공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1882년 건축이 시작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공되면 18개의 원통형 첨탑이 치솟은 대성전이 된다. 예수를 상징하는 가장 높은 첨탑이 성당의 가운데에 위치하며 그 높이는 172.5m나 된다. 그러면 이곳은 울름 대성당의 161.5m를 넘겨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되는 것이다. 첨탑은 지금까지 8개가 완성됐지만, 현재 남아있는 자금으로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두 번째 높은 첨탑을 완성할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한편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성가족 속죄의 성당’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이는 일본 측 번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 천주교의 공식 용어로는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이 맞다.성가정(Holy Family)은 가톨릭에서 모든 가정의 모범이 되는 예수, 성모 마리아, 나자렛의 성 요셉의 가정을 의미한다. 대성전이라는 용어는 지난 2010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완공되기도 전에 대성전(정확히는 준대성전)으로 축성해 그 위상이 격상됐다.대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호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천주교 성당의 지위 구분에 따르면 대성당(cathedral)은 엄밀하게는 주교좌 성당(명동대성당이 대표적)을 뜻하는 말로 쓰이므로, 대성전(basilica)이 한층 더 정확한 명칭이기는 하다.사진=사그라다파밀리아닷오알지윤태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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