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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14회 파평 윤씨ㅣ방송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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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 – 나무위키:대문

그리고 파평이란 지명은 현재도 파주시 산하의 파평면 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파평 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인데, 훗날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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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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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 파평 윤씨 뿌리 및 소정공파 알아보기

한국의 성씨 : 파평 윤씨 (坡平 尹氏) · 관향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 시조 : 윤신달(尹莘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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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sjkhy4539.tistory.com

Date Published: 4/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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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 족보나라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신라 경명왕 2년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통합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태사에 이르렀다. 윤신달은 유금필, 김선평, 장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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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rean.haus

Date Published: 1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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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공신(三韓功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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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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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평윤씨 소정공파 족보 원본 번역 – 다음블로그

[스크랩] 파평윤씨 소정공파 족보 원본 번역 · 특히 현세는 국제화, 핵 가족화, 저출산, 호주제 폐지 등으로 이기심만 팽배하고 심지어는 시조 이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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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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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 씨 족보 계파 총정리ㅣ시조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 장군 일생 정리ㅣ한국의 성씨
파평 윤 씨 족보 계파 총정리ㅣ시조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 장군 일생 정리ㅣ한국의 성씨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파평 윤씨 소정 공파 족보

  • Author: STB 상생방송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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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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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 파평 윤씨 뿌리 및 소정공파 알아보기

2021년 대통령 선거가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여기에서 대선 출마를 얼마 전에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파평윤씨라는 이유로 파평윤씨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도 윤 씨와는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께서 윤 씨 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씨 파평윤씨에 대해서 알아보고, 파평윤씨 소정공파의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려 한다.

2022년 3월 10일 목요일 update

2022년 3월 9일에 펼쳐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치뤄지고, 2022년 3월 10일 새벽 3시경 선관위에서 2번 윤석열 후보가 “유력”이라는 표기가 되면서 결과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2위를 한 이재명 후보와의 표차이는 247,077표로 아주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이되었다. 득표율로 보면 0.8%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윤석열 예비 대통령은 이제 곧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이 된다. 블로그에 검색 유입이 되는 것을 감안해서 대통령 선거의 흔적과 기록을 남겨둔다.

한국의 성씨 : 파평 윤씨 (坡平 尹氏) 관향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시조 : 윤신달(尹莘達) 집성촌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논산시 노성면,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경상북도 예천군·구미시,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황해도 송화군·황주군·신천군 인구수 : 770,932명(2015년) | 국내 9위

파평 윤씨 – 역사적 인물 및 유명한 인물

1. 역사적 인물

1) 윤관 : 고려 중서 문하성 문하시중, 별무반 행영대원수

2) 윤봉길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간공파 32대손

독립운동가 – 윤봉길

3) 윤언이 : 고려 중기의 문신, 칭체건원 찬성자

4) 윤인첨 :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무신, 배향공신, 對 조위총 임시 군단 원수

5) 윤임 : 조선 중기의 문신. 장경왕후의 오빠로 인종에게는 외숙부가 되며 대윤(大尹)의 거물. 을사사화 때 숙청당했다.

6) 윤증 : 조선의 학자. 서인 소론의 영수다. 자(字)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시호는 문성(文成). 윤선거의 아들이자 성혼의 외증손이 된다.

7) 윤필상 :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문신이며 훈구파의 구심점. 조선의 영의정

8) 문정왕후 : 조선 왕비, 중종의 제2 계비이자 인종의 계모, 명종의 모후.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

9) 장경왕후 : 조선 왕비,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시호는 숙신명혜선소의숙장경왕후(淑愼明惠宣昭懿淑章敬王后) 인종의 친어머니이며, 월산대군의 처조카이고 박원종의 외종질이자 성종의 며느리이다

10) 정현왕후 :조선 왕비, 시호는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 조선 제9대 국왕 성종의 3번째 왕비이자,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모후이다. 또한 조선의 역대 왕비 중에서 운이 좋게 후궁 출신으로 중전이 되었다가 왕대비가 된 유이한 인물이다.

11) 정희왕후 : 조선 왕비, 존호는 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 (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端良齊敬貞熹王后) 조선 제7대 국왕 세조의 왕비이며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둘째 며느리. 덕종, 예종의 어머니이자, 월산대군과 성종, 제안대군의 할머니, 소혜왕후, 장순왕후, 안순왕후의 시어머니다. 또한 연산군과 중종은 정희왕후의 증손자이다

12) 폐비 윤씨 :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 왕 연산군의 친어머니이다. 아들 연산군이 즉위 후에 올린 시호는 제헌왕후(齊獻王后)이다. 중종반정 이후 삭탈(削奪)되었다. 묘호는 회묘(懷墓)이다.

13) 윤원형 : 조선 전기의 간신 영의정 역임. 문정왕후의 남동생이자 정난정의 남편이다.

14) 윤흥신 : 조선 중기의 무관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 다대포 첨사

15) 윤동주 :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20세기 중반 국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조선 독립의 문학적 상징이다

독립운동가 – 윤동주

16) 윤상원 :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5. 18 민주화운동,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시민군

2. 현대의 유명한 인물

1) 윤건영 :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

2) 윤공희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세례명은 빅토리노. 2020년 현재 한국 가톨릭 생존 주교 중 최고령 인물로 기록

3) 윤관석 : 대한민국 제19~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4) 윤길현 : 前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의 투수

5) 윤도운 : JYP에서 데뷔한 5인조 밴드 DAY6와 유닛 Even of Day의 강아지. 팀 내 막내이며 포지션은 드럼

6) 윤도현 :한국의 록 음악 가수, 작곡가. 록밴드 YB의 보컬과 리더를 맡고 있다. 록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가창력과 대중성 둘 다 인정받는 보컬리스트

가수 : 윤도현 _ 출처 인스타그램

7) 윤동환 : 배우

배우 – 윤동환

8) 윤두준 :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전 멤버이자 현 하이라이트의 리더, 보컬 및 배우

아이돌 그룹 비스트 전 멤버 윤두준

9) 윤미라 : 여배우

10) 윤미진 :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신궁의 계보를 잇는 전직 양궁 선수

11) 윤미향 :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역임.

12) 윤민수 : 가수, 프로듀서, 방송인이자 쉬운 노래도 어렵게 부르는 데에는 도가 튼 가수

가수 윤민수

13) 윤박 : 배우

14) 윤보라 : 4인조 걸그룹 씨스타와 걸그룹 유닛 씨스타19의 메인 래퍼, 메인 댄서 출신의 배우

걸그룹 씨스타 가수 – 윤보라_출처 인스타그램

15) 윤서인 : 매국노, 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유튜버이다. 날조를 주요 장르로 하고 있다

16) 윤석권 : 前 쌍방울 레이더스의 외야수.

17) 윤석민 : 前 KIA 타이거즈의 우완 투수, 동명이인 前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kt wiz,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18) 윤석열 : 대한민국의 전 검사, 제43대 검찰총장을 지냄. 문재인 정부에 중용되어 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하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였으나,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 및 더불어민주당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게 되었다. 현재는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양강을 형성하는 양상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으며 야권에서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인물이다.

2022년 3월 9일에 치뤄진 제20대 대통령 2번 후보에서 3월 10일에 총 득표수 16,394,815표, 2위인 이재명 후보와 득표율 0.8%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이됨.

전 검찰총장 / 제20대 대통령 – 윤석열

19) 윤석금 : 기업인. 웅진그룹 창업주 겸 회장-세일즈맨에서 그룹사 회장이 된 인물

20) 윤석중 :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며 대한민국 초대 방송위원장

21) 윤성민 : 군인(예비역 육군 대장), 반란군의 정권인 5공화국에서 국방부 장관, 합동참모의장,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

22) 윤성빈 : 대한민국의 스켈레톤 선수이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혜성같이 등장하였다. 2012년 스켈레톤에 입문하여 3년 8개월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고, 5년 5개월 만에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다. 이어서 3개월 후 대한민국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입문한 지 5년 8개월 만에 아시아 최초의 썰매 종목 금메달을 차지

23) 윤소정 : 영화감독 윤봉춘의 딸이자 시나리오 작가 윤삼육의 여동생으로, 고등학생 때인 1961년 연극배우 활동을 시작하다가 이듬해인 1962년에 KBS 성우로 활동하게 되었다. 드라마와 영화에도 간간히 나왔지만, 주로 연극에 주력하여 “연극계의 대모”로 불렸다

24) 윤승운 : 《맹꽁이 서당》의 만화가. 순천대학교 만화 예술학과 전임 강사 겸임

25) 윤시윤 : 배우. 원래 이름은 윤동구였으나, 경기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윤시윤으로 개명

배우 – 윤시윤 (개명 전이름 윤동구)

26) 윤여정 : 영화배우이자 탤런트. 한국 영화사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대배우이다.

여배우 – 윤여정

27) 윤은혜 : 가수 겸 배우. 5인조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이며, 막내, 서브보컬

가수겸 배우 – 윤은혜

28) 윤재혁 : YG엔터테인먼트 소속 12인조 보이그룹 트레저의 멤버

29) 윤정한 : 13인조 보이그룹 세븐틴의 멤버. 보컬팀 소속이며 서브보컬 포지션

30) 윤종훈 : 배우

31) 윤주경 : 정치인으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친손녀. 제21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32) 윤형빈 : 코미디언. 방송인. 2014년 종합격투기 데뷔

개그맨 – 윤형빈

33) 윤호중 : 정치인. 현재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자 4선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는 경기도 구리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34) 윤희숙 :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 국민의힘 소속 제21대 국회의원

파평 윤씨에 대해서 알아보자 – 역사적 사료

1. 파평윤씨의 개요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경기도 파주는 본래 고구려 장수왕 때 ‘파해평사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인 파평현으로 고쳤다. 조선 태조 때 서원군과 파평현을 병합하여 원평군이라 하였다. 1461년 세조비 정희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 군이 되었다.

파평 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인데, 훗날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윤신달의 5세손에는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윤관이 있다. 그는 고려 선종 때 합문지후와 좌사낭중을 지내고, 여진정벌에 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 함주와 영주 등 9지구에 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족을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벼슬이 수태보 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에 이르렀고, 7형제를 낳아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그래서 파평윤씨에서는 윤관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파평 윤씨 족보에 따르면 시조 윤신달부터 5세손 윤관까지 전부 단계로 내려오고 있다. 즉 윤관은 5대 독자이며 모든 파평 윤씨는 윤관의 후손이라는 말이 된다. 시조로부터 윤관까지 세계를 내려가면 윤신달-윤선지-윤금강-윤집형-윤관이 된다. 파주라는 명칭도 파평 윤씨 가문 때문에 생긴 명칭 이다.

세조는 계유정난 이후 점차 시국이 안정됨에 따라, 정변 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세조비 파평 윤씨(정희왕후)의 고향인 원평도호부를 파평 윤씨에서 ‘파’자를 따와 파주목으로 승격시켰다.(원평은 서원과 파평을 합친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 원경왕후(여흥 민씨)의 고향인 여흥 또한 여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윤관의 아들 7형제는 다시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수십 파로 분파되었다. 윤관의 장남 윤언인의 손자 윤위는 남원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남원백에 봉해졌다. 그 이후 후손들을 남원 윤씨라고 불렀다. 윤위의 손자 윤돈 또한 함안에서 난을 진압하여 함안백으로 봉해졌다. 그 이후 윤돈의 장남 윤희보의 후손들은 함안 윤씨로 분파되었고 윤돈의 나머지 세 아들의 후손들은 남원 윤씨로 세계를 이어갔다.

현재에 이르러 이 두 성씨는 유래가 명확하므로 각각 파평 윤씨 함안백파와 남원백파로 합본되었다. 연산군의 어머니로 유명한 제헌왕후(폐비 윤씨)가 함안 윤씨이다. 남원 윤씨로는 효종-숙종 연간 남인의 거두였던 백호 윤휴가 있다. 윤관의 5남 윤언식의 후손들은 윤언식의 증손자 윤은형이 덕산군에 봉해짐에 따라 덕산군파로 불려지고 있다. 이외 나머지 파평 윤씨의 분파인 문정공파(文定公派), 신녕군파(新寧君派), 대언공파(代言公派), 봉록군파(奉祿君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야성군파(野城君派), 전의공파(典儀公派), 소정공파(昭靖公派), 원평군파(原平君派), 소도공파(昭度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소부공파(少府公派), 태위공파(太尉公派) 등은 6남 윤언이의 후손들이다. 이들 가운데서 후손인 판도공파(版圖公派)와 소정공파(昭靖公派)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파평 윤씨의 대부분(80%)은 소정공파(昭靖公派)와 판도공파(版圖公派) 로 다른 성씨 본관의 파에 비해 한쪽 파(派)에 많이 쏠려 있는 편이다. 후손이 적은 파도 있지만 일부 파의 대부분이 북한에 거주한 영향도 있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모두 22만 1,477가구 총 71만 3,94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인구가 많은 만큼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지만, 충청도와 경상도 쪽에 인구 거주 밀도가 높다. 반면 전라도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살지 않는다. 전라도에 사는 윤씨는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남원 윤씨나 해남을 본관으로 하는 해남 윤씨인 경우가 많다. 해남 윤씨는 파평 윤씨 다음으로 2위, 남원 윤씨는 3위. 참고로 4위는 해평 윤씨인데 해평 윤씨는 같은 성자을 공유할 뿐, 파평 윤씨와는 시조부터가 다른 이본이다. 특히 전라남도에는 파평 윤씨보다 해남 윤씨들이 더 많다. 다만 남원 윤씨는 모두 파평 윤씨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파평 윤씨 문중에서는 범 파평 윤씨로 간주하기는 한다. 이들 본관 성씨를 가진 이가 파평 윤씨로 입적할 경우에는 대개 입적이 아닌 환적으로 간주된다. 해남 윤씨는 파평 윤씨와 일절 관련성이 없다.

2. 파평 윤씨의 번영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들어와 가문이 크게 번성하면서 명문 세도가의 반열에 올랐다.(이미 고려 시절부터 문벌 귀족 15가문을 시작으로 권문세족 안에서도 재상지종 9가문의 명문가였다.) 파평 윤씨는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씨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5명의 왕비를 배출했으며, 수많은 과거 급제자와 고관대작들이 나왔다. 그중 중종 대에서는 파평 윤씨에서 2명의 왕비(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나와 한 가문에서 대윤과 소윤으로 갈려 싸우는 비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판도공파의 파조는 윤승례인데, 그는 시조 윤신달의 13세손으로 윤척의 아들이다. 윤승례의 아들이 세조의 장인인 윤번이고, 윤번의 딸이 정희왕후(세조 비)이다. 판도판서공파는 윤승례의 아들 대에서 제학공파 부윤공파 정정공파로 갈라진다. 그중 정정공파에서 2명의 왕비가 나와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 빚어졌다. 윤승례의 아들 윤번은 세조의 장인이고, 윤번의 맏아들인 윤사분은 우의정, 둘째인 윤사윤은 예조판서, 셋째인 윤사흔이 우의정이 되어 형제간에 정승을 지냈으며 7∼8대에 걸쳐 국구부원군과 공신부원군, 정승, 판서와 당상관들이 배출되어 조선 시대 최고의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윤사윤과 윤사흔 두 집안에서 각각 중종의 왕비(장경왕후, 문정왕후)가 배출되어 왕실 및 왕위 계승을 놓고, 대윤과 소윤으로 갈라져 싸우는 비극이 일어났다. 윤사윤의 손자인 윤여필의 딸이 중종의 제1 계비인 장경왕후이고, 그녀의 오빠가 윤임이다. 장경왕후는 세자(인종)를 낳고 곧바로 죽었다. 장경왕후의 뒤를 이어 윤사윤의 동생인 윤사흔의 증손 윤지임의 딸이 제2 계비로 책봉되어 문정왕후가 되었다. 먼 친척뻘인 고모와 질녀가 같은 왕의 왕비가 된 것이다. 문정왕후는 4명의 공주를 낳은 끝에 어렵사리 아들 명종을 낳았다. 그 뒤로 그녀는 남동생 윤원형을 끌어들여(소윤)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일파(대윤)와 정치적 암투를 벌였는데 이를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라고 한다.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명종이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소윤의 승리로 끝났으나, 소윤 역시 문정왕후가 죽자 몰락하였다. 결국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파평윤씨 판도공파의 몰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소정공파는 윤승례의 형 윤승순의 아들인 윤곤의 후손이다. 윤승순은 공민왕 때 요승인 신돈의 살해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신돈이 주살된 후 풀려나 응양군 상호군이 되어 왜국의 침입을 막아냈다. 창왕 때는 권근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명나라의 명에 의해 공양왕을 즉위케하였고, 판개성부사를 지냈다. 윤곤은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에 책록 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손자 윤호는 성종의 장인으로서 딸이 성종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그 후 그는 돈령부영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윤곤의 후손 중에는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필상이 있다. 그는 문종 때 추장문과에 급제했다. 이시애의 난에 도승지로 왕명을 신속하게 처리하여 우참찬에 특진하였다. 성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폐위를 막지 못하였다는 죄로 진도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그의 증손인 윤현은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내고, 선조 때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돈령부영사에 이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이밖에 소정공파의 윤사로는 세종대왕의 딸 정현옹주와 결혼하여 영천군에 봉해지고, 세조 즉위년 좌익공신에 책록되고 좌찬성, 중추부영사에 이르렀다. 파평 윤씨 출신 중 일제강점기에 작위를 받은 사람은 없다. 조선귀족 명단을 살펴보면 종종 윤씨가 눈에 띄기는 하나 파평인은 아니다.

파평 윤씨가 윤씨 중 제일 인구가 많다 보니(전체 윤씨 중 약 75%)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윤씨라면 무조건 파평 윤씨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일이기는 하나, 엄밀히 따져보면 조선 초, 중기와 달리 후기에는 가문의 영향력이 떨어졌던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당시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나중에 작위를 반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작위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illett Wagner) 교수와 전북대학교 송준호 명예교수가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출신 배경 및 그 행적과 업적을 종합적으로 추적한 와그너-송 프로젝트에 따르면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들 중 전주 이씨, 안동 권씨 다음으로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전주 이씨 868명, 안동 권씨 366명, 파평 윤씨 346명(함안/남원 윤씨 포함 424명)이다.

3. 파평 윤씨의 현대 이야기

윤창중이 박근혜 정부 참여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번복하면서 윤봉길 의사의 존함을 ‘문중 할아버지’ 운운하며 언급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윤봉길 의사 유족 측에서 상당한 불쾌감을 보였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일단 윤봉길 의사는 해당 인물의 문중 할아버지라고 하기가 어렵다. 각 집안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보통 문중 할아버지라고 하면 본인의 직계 조상이거나, 촌수가 좀 있더라도 비교적 가까운 선대에서 분파되어 최소한 시제 정도는 같이 지내는 집안에서 본인보다 최소 두 항렬 위인 사람을 말한다.

윤봉길 의사는 판도공 윤승례의 후손이고, 윤창중은 판도공의 조카인 소정공 윤곤의 후손이다. 둘 다 여말선초 사람이므로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17대는 내려왔을 것이다. 촌수로 아무리 적게 잡아봐야 34촌 정도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누가 굳이 윤봉길 의사의 후손이냐고 물어봐도 ‘같은 파평 윤문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분파되어 현재 왕래는 없습니다.’ 정도로 대답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윤봉길 의사의 직계 후손이라 하더라도 공적인 자리에서 조상의 함자를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후손의 도리가 아니다. 전통을 준수하는 집안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본인의 잘못된 행실로 인하여 조상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의미가 많이 훼손되었지만, 집안에서 자꾸 조상의 행적 운운하는 것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어디 가서 이득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평소 몸가짐을 바로 해서 이런 훌륭한 조상들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조상의 행적을 왜곡하는 것 또한 철저히 경계한다. 조상 얼굴에 금칠하려다가 똥칠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자손 된 입장으로서는 좋은 점만 기록에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정도가 있다. 가령 공이 있다면 이를 세세히,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기록하고 과가 있다면 완곡한 표현을 쓰거나 ‘오해로 공을 모함하는 사람이 있어 죄를 받았다’ 정도로 언급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하지도 않은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고 하거나, 과거에 급제하지도 않았는데 급제했다고 하는 등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조상을 모욕하는 짓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나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조상이 부끄럽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했다고 왜곡했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상은 내가 이 세상에 있게 한 그 자체로 이미 공경을 받을 존재인 것이지 무슨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에 모셔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집안과 전혀 왕래가 없던 사람이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바꾸는 핑계 중의 하나로 직계 할아버지 함자를 언급하는 것은, 후손 된 입장에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파평 윤씨 – 소정공파

1. 파평 윤씨 시조 설화

용연(龍淵:일명 가연)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로리에 있으며, 태고적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천연의 연못이다. 예부터 종중(宗中) 준설한 것으로 보이나 기록(記錄)은 찾을 수 없다. 근대(近代)에는 서기 1900년 강화문중(江華門中)에서 준설하고 “파평용연(坡平龍淵)”이라는 비석(碑石)을 세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6.25 동란 당시 크게 훼손되어 1972년 3월에 문정공파(文定公派) 종중(宗中)에서 “파평윤씨 시조 발상지 비(坡平尹氏 始祖 發祥址 碑)”를 새로 새겨 건립하였다.

연못 주위는 초장(草場)이었는데, 1976년 3월에 태위공파(太尉公派) 예산종중(禮山宗中)에서 수양버들 150株, 은행나무 6株, 벚나무 5株를 식수하였다. 예부터 “윤씨연못”으로 공칭(公稱)되어 왔으나 세부 측량 당시에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유(國有)로 편입되어 있었다. 그때문에 일정(日政) 당시에 坡州邑에 거주하는 노(魯) 모씨가 개답(開沓)하기로 허가를 받은 것을 발각(發覺)하고, 우리 宗中에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勝訴)한 결과 지적대장에는 “윤씨 연(尹氏 淵)”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을 1977년 1월 14일 大宗會에서 宗中 所有로 소유지 이전등기를 완료했으며, 면적은 2,531평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연에는 용인이 살고 있어 연못가가 불결해지면 뇌성이 진동하고 폭풍우가 친다고 전한다. 始祖에 관한 전설이란 신라 진성왕 7년(서기 983년) 음력 8월 15일 용연 위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요란한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용연 위에 한 개의 옥함이 떠 올랐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고을 태수에게 고하여 태수가 연못가에 나가보니, 용연 연못에 떠오른 옥함이 연못 가운데로 밀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날이 저물 무렵 연못가에 빨래를 하던 한 노파가 옥함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건져내어 열어보니 그 속에는 오색의 우모(羽毛)에 쌓여 있는 어린 사내 아기가 있었다.

찬연한 서기를 발하면서 옥함에서 나온 사내 아기는 융준용안(隆準龍顔)으로 코가 우뚝하여 용의 상을 닮았으며, 양쪽 어깨에는 붉은 사마귀가 있어 일월(日月)을 상징하고 좌우 겨드랑이에는 비늘이 81개가 돋아 있었으며, 발에는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어서 북두칠성의 형상과 같았고 온 몸에는 광채가 솟아서 눈을 부시게 하였으니 이 아기가 파평 윤씨의 시조가 되는 어른이 시었다.

이러한 탄생 설화를 가진 始祖 태사공께서는 파주산 아래에 사시면서 학문과 무예를 닦으셨는데 파평산 마루에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닦고 궁마 훈련을 하시었다. 파평산 마루에서 말을 달리시며 무예를 연마하시던 곳이 치마대(馳馬臺)라고 하는데 지금도 태사공께서 길을 닦으셨던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다. 치마대에서 태사공께서 기마술을 연습하실 때에 애마가 죽었으므로 작은 철마를 만들어 그곳에 두었는데 후일 어떤 철공이 그것을 훔쳐 갔다가 그만 즉사를 했고, 그때 함께 갔던 사람이 두려운 생각이 나서 흙으로 구운 작은 말을 가져다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태사공께서 학문을 닦으시던 금강사(金剛寺)도 지금은 형적이 없고 다만 그 사지만이 남아 있다. 태사공께서는 파주에서 임진강을 건너 개경을 내왕하실 적에 공이 강을 건너실 때에는 항상 강물이 갈라지며 홀연히 백사장이 드러나서 신발을 적시지 않고 강을 건너셨고, 송도에 있는 조정에 출사 하신 뒤에도 말을 타시고 파평면에 있는 사저에서 강 너머로 내왕하시는데 말의 빠르기가 나는 듯하였고, 강을 건널 때에는 물이 양쪽으로 갈라졌다고 하여 이를 두고 이곳을 ‘물결을 끊고 마시듯이 강을 건넌다’하여 여음진(如飮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음진(飮津)으로 고쳤는데 이것이 다시 후세에 음이 변하여 임진강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尹氏가 잉어를 먹지 않는 이유는 5세 문숙공(諱:瓘)께서 함흥 선덕진(咸興 宣德鎭) 광포(廣浦)를 건너서 적군을 추격하시다가 복병에게 포위를 당해서 위급한 지경에 있었는데, 척준경(拓俊京)이라는 부하 장수의 힘을 입어서 간신히 살아 나오시어 이십여 명의 부하들이 보호해서 포위망을 벗어나 돌아오시다가 광포에 당도했는데 해는 저물었고, 광포는 물이 들어와서 다리가 보이지 아니했다. 그 광포에 물이 없을 때에는 드문드문 다리를 놓고 건너 다니고, 물이 들어올 때에는 건너지 못하여 불통되던 곳인데, 그날은 물속으로 다리의 형체가 보이므로 간신히 건너왔는데, 쫓아오던 적군이 이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물속에 보이던 다리의 형체가 보이지 않아 적군이 물에 빠져 죽었다. 문숙공은 잉어 떼가 다리를 놓아 건너오셨다고 해서 도린포(都鱗浦)라 했고, 잉어가 공을 도와 드렸다 해서 윤씨들은 잉어를 먹지 않는다.

2. 파평 윤씨 소정공파 항렬표

소정공파 항렬표는 아래와 같다. 지금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35대손 일수도 있다.

소정공 : 상호군파

30세손;진(鎭) 31세손;자,재(慈, 宰) 32세손;상,임(相,壬) 33세손;병,규(炳,揆) 34세손;중,갑(重, 甲) 35세손;석,봉(錫,鳳) 36세손;여,병(汝,丙) 37세손;식,령(植,寧) 38세손;섭,무(燮,茂) 39세손;재,범(載,範) 40세손;종,강(鐘,康)

소정공 : 구방파

30세손;화(禾) 31세손;자,영(滋,榮) 32세손;영,왕(榮,王) 33세손;혁,종(赫,鐘) 34세손;현,승(鉉,承) 35세손;한,동(漢,東) 36세손;근,렬(根,烈) 37세손;렬,기(烈,基) 38세손;준,호(埈,鎬) 39세손;수,택(洙,澤) 40세손;태,표(泰,杓)

소정공 : 장령공파

30세손;진(鎭)31세손;자(滋) 32세손;상(相) 33세손;병(炳) 34세손;중(重)35세손;석(錫) 36세손;여(汝)37세손;식(植) 38세손;섭(燮) 39세손;달(達) 40세손;종(種)

소정공 : 백천공파

31세손;영(永) 32세손;의(儀) 33세손:수(변)(水) 34세손;주(住) 35세손;희(熙) 36세손;기(基) 37세손;석(錫) 38세손;수(洙) 39세손;병(秉) 40세손;섭(燮)

소정공 : 영천부원군파

31세손;현(顯) 32세손:오(五) 33세손;석(錫) 34세손;원(源) 35세손:주(柱) 36세손;희(熙) 37세손;재(在) 38세손;용(鏞) 39세손;영(泳) 40세손;직(稙)

소정공;원평공파 32세손;상(相) 33세손;병(炳) 34세손;재(在) 35세손;석(錫) 36세손;영(泳) 37세손;모(模) 38세손;영(榮) 39세손;규(圭) 40세손;현(鉉)

글 참고 사이트 및 원문

https://namu.wiki/w/%ED%8C%8C%ED%8F%89%20%EC%9C%A4%EC%94%A8

<나무위키 파평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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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윤신달(尹莘達)은 신라 경명왕 2년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통합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태사에 이르렀다. 윤신달은 유금필, 김선평, 장길, 유차달 등 11인과 함께 고려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그의 5세손인 윤 관(尹瓘,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 때에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1107년(고려 예종 3)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 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 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의 지명이다.

시조는 고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신달(莘達)이며, 현손 관(瓘)은 고려 중엽의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파평윤씨의 중시조이다. 아들 7형제를 두었으며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수십 파로 분파되었다. 파평윤씨 가운데서 주로 판도공파(版圖公派:承禮)와 소정공파(昭靖公派:坤)에서 대대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이 두 파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여 파평윤씨의 약 80%를 차지한다.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 날 이곳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 지 사흘째 되는 날, 윤 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궤가 떠 있는 것을 보고 건져서 열어보니 한 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채 속에 누워 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 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 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 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廣浦)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가 다리를 만들어주어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 와 강가에 이르자 잉어떼는 어느 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 그래서 파평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시조의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윤신달의 5세손에는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윤관이 있다. 그는 고려 선종 때 합문지후와 좌사낭중을 지내고, 여진정벌에 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 함주와 영주 등 9지구에 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족을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벼슬이 수태보 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에 이르렀고, 7형제를 낳아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그래서 파평윤씨에서는 윤관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

파평 윤씨 족보에 따르면 시조 윤신달부터 5세손 윤관까지 전부 단계로 내려오고 있다. 즉 윤관은 5대 독자이자 모든 파평 윤씨는 윤관의 후손이라는 말이 된다. 시조로부터 윤관까지 세계를 내려가면 윤신달-윤선지-윤금강-윤집형-윤관이 된다. 윤관 장군의 영정. 윤관 장군은 문신이지만 별무반을 편성하여 지금의 함경도와 간도 일대를 점령하고 동북 9성(함흥·길주 등)을 쌓았다. ​

파주라는 명칭도 파평 윤씨 가문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세조는 계유정난 이후 점차 시국이 안정됨에 따라, 정변 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세조비 파평 윤씨(정희왕후)의 고향인 원평도호부를 파평 윤씨에서 ‘파’자를 따와 파주목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할머니 원경왕후(여흥 민씨)의 고향인 여흥 또한 여주목으로 승격시켰다. ​

윤관의 7형제는 다시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수십 파로 분파되었다. 윤관의 장남 윤언인의 손자 윤위는 남원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남원백에 봉해졌다. 그 이후 후손들을 남원 윤씨라고 불렀다. 윤위의 손자 윤돈 또한 함안에서 난을 진압하여 함안백으로 봉해졌다. 그 이후 윤돈의 장남 윤희보의 후손들은 함안 윤씨로 분파되었고 윤돈의 나머지 세 아들의 후손들은 남원 윤씨로 세계를 이어갔다. 현재에 이르러 이 두 성씨는 유래가 명확하므로 각각 파평 윤씨 함안파와 남원파로 합본되었다. 연산군의 어머니로 유명한 제헌왕후(폐비 윤씨)가 함안 윤씨이다. 남원 윤씨로는 효종-숙종 연간 남인의 거두였던 백호 윤휴가 있다. 윤관의 5남 윤언식의 후손들은 윤언식의 증손자 윤은형이 덕산군에 봉해짐에 다라 덕산군파로 불려지고 있다. ​

이외 나머지 파평 윤씨의 분파인, 문정공파(文定公派) 신녕공파(新寧公派) 대언공파(代言公派) 봉록군파(奉祿君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야성파(野城派) 전의공파(典儀公派) 소정공파(昭靖公派) 원평군파(原平君派) 소도공파(昭度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소부공파(小府公派) 태위공파(太尉公派) 등은 6남 윤언이의 후손들이다. 이들 가운데서 후손인 판도공파(版圖公派)와 소정공파(昭靖公派)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윤관의 다른 아들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거나 후손이 전해져 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시대에 문벌 귀족의 자제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대각국사 의천은 왕족 출신이다. 여담으로 파평 윤씨의 대부분(90%)은 소정공파(昭靖公派)와 판도공파(版圖公派)로 다른 성씨 본관의 파에 비해 한쪽 파(派)에 많이 쏠려 있는 편이다. 후손이 적은 파도 있지만 일부 파의 대부분이 북한에 거주한 영향도 있다.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들어와 가문이 크게 번성하면서 명문세도가의 반열에 올랐다.(이미 고려시절부터 문벌귀족 15가문을 시작으로 권문세족 안에서도 재상지종 9가문의 명문가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5명[1]의 왕비를 배출했으며, 수많은 과거급제자와 고관대작들이 나왔다. 그중 중종 대에서는 파평 윤씨에서 2명의 왕비(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나와 한 가문에서 대윤과 소윤으로 갈려 싸우는 비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판도공파의 파조는 윤승례인데, 그는 시조 윤신달의 13세손으로 윤척의 아들이다. 윤승례의 아들이 세조의 장인인 윤번이고, 윤번의 딸이 정희왕후(세조 비)이다. 판도판서공파는 윤승례의 아들 대에서 제학공파 부윤공파 정정공파로 갈라진다. 그중 정정공파에서 2명의 왕비가 나와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 빚어졌다.

윤승례의 아들 윤번은 세조의 장인이고, 윤번의 맏아들인 윤사분은 우의정, 둘째인 윤사균은 예조판서, 셋째인 윤사흔이 우의정이 되어 형제간에 정승을 지냈으며 7∼8대에 걸쳐 국구부원군과 공신부원군, 정승, 판서와 당상관들이 배출되어 조선시대 최고의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윤사분과 윤사흔 두 집안에서 각각 중종의 왕비(장경왕후, 문정왕후)가 배출되어 왕실 및 왕위계승을 놓고, 대윤과 소윤으로 갈라져 싸우는 비극이 일어났다. ​

윤사균의 손자인 윤여필의 딸이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이고, 그녀의 오빠가 윤임이다. 장경왕후는 세자(인종)를 낳고 곧바로 죽었다. 장경왕후의 뒤를 이어 윤사균의 동생인 윤사흔의 증손 윤지임의 딸이 제2계비로 책봉되어 문정왕후가 되었다. 먼 친척뻘인 고모와 질녀가 같은 왕의 왕비가 된 것이다. ​

문정왕후는 4명의 공주를 낳은 끝에 어렵사리 아들 경원대군을 낳았다. 그 뒤로 그녀는 남동생 윤원형을 끌어들여(소윤)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일파(대윤)와 정치적 암투를 벌였다. 이를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라고 한다.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경원대군이 왕위(명종)를 계승함으로써 소윤의 승리로 끝났으나, 소윤 역시 문정왕후가 죽자 몰락하였다. 결국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파평윤씨 판도공파의 몰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

소정공파는 윤승례의 형 윤승순의 아들인 윤곤의 후손이다. 윤승순은 공민왕 때 요승인 신돈의 살해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신돈이 주살된 후 풀려나 응양군 상호군이 되어 왜국의 침입을 막아냈다. 창왕 때는 권근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명나라의 명에 의해 공양왕을 즉위케하였고, 판개성부사를 지냈다. ​

윤곤은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손자 윤호는 성종의 장인으로서 딸이 성종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그 후 그는 돈령부영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

윤곤의 후손 중에는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필상이 있다. 그는 문종 때 추장문과에 급제했다. 이시애의 난에 도승지로 왕명을 신속하게 처리하여 우참찬에 특진하였다. 성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폐위를 막지 못하였다는 죄로 진도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

그의 증손인 윤현은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내고, 선조 때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돈령부영사에 이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이밖에 소정공파의 윤사로는 세종대왕의 딸 정현옹주와 결혼하여 영천군에 봉해지고, 세조 즉위년 좌익공신에 책록되고 좌찬성, 중추부영사에 이르렀다. 문강공(윤언이)의 아들 3형제(인첨, 자고, 돈신)와 문정공(윤인첨)의 아들 3형제가 양대에 걸쳐 모두 대과 급제했다. 참판공(윤민신)은 다섯 아들이 나란히 급제하고 그 중 한 사람이 장원을 하여 세상 사람들은 참판공이 사는 마을을‘오자등과터(五子登科터)’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424명이 있다. 문과 340명, 무과 86명, 사마시 934명, 역과 41명, 의과 11명, 음양과 2명, 율과 10명이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윤(尹) 씨는 1020547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8 위이며 파평 윤(尹) 씨는 770932 명으로 본관별 전체 순위는 9 위이고 성씨내 본관별 순위는 1 위이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파평 윤(尹) 씨는 전체 가구수가 221,477 가구로 본관의 인구는 713,947 명으로 본관별 전체 순위는 9 위이며, 본관별 성씨 내의 순위는 1 위로 나타났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파평 윤씨(坡平 尹氏) 파평 윤씨의 종문 관향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시조 윤신달(尹莘達) 중시조 윤관(尹瓘) 집성촌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

황해도 송화군·황주군·신천군

경상북도 예천군·구미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주요 인물 윤언이, 윤인첨, 윤보, 윤계종, 희비, 윤승순, 윤호, 윤곤, 윤번, 윤사분, 정희왕후, 윤사흔, 윤사로, 윤호, 윤필상, 정현왕후, 윤여필, 윤지임, 윤인경, 윤의립, 윤임, 장경왕후, 문정왕후, 윤원로, 윤원형, 윤황, 윤강, 윤선거, 윤증, 윤지완, 윤동도, 윤동섬, 윤봉춘, 윤봉길, 윤영춘, 윤동주, 윤일주, 윤증현, 윤여준, 윤여정, 윤석금, 윤형주, 윤장현, 윤종원, 윤석열, 윤호중 인구 (2015년) 770,932명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공신(三韓功臣)이 되었다.

시조 [ 편집 ]

시조(始祖) 윤신달(尹莘達, 893년? ~ 973년(고려 광종 24년))은 고려 태조를 도와 벽상삼한익찬2등공신(壁上三韓翊贊二等功臣)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다.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坡平山)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오르면서 그 안에서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943년 혜종이 즉위하자 동경대도독으로 부임하여 30년간 재임하다가 81세에 임지에서 서거하였다. 묘는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구봉산 아래 있다.

중시조 [ 편집 ]

5세손인 윤관(尹瓘)이 1074년(고려 문종(文宗) 28년) 문과에 급제하여 선종 때 합문지후(閤門祗候)와 좌사낭중(左司郎中)을 지냈다. 1107년(예종 2) 여진 정벌의 원수가 되어 부원수인 오연총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면으로 출전하여 함주(咸州), 영주(英州) 등에 9성을 쌓아 여진을 평정하였다. 이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에 책록되고,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봉해졌으며, 수태보(守太保) 문하시중(門下侍中) 판병부사(判兵部事) 상주국(上柱國) 감수국사(監修國史)에 이르렀다.[1]

역사 [ 편집 ]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47명, 왕비 5명, 상신 11명을 배출하였다.

14세손 윤승례(尹承禮)가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윤승례의 아들인 윤번의 딸이 세조비 정희왕후가 되면서, 윤번의 맏아들인 윤사분(尹士昐)과 셋째 아들인 윤사흔(尹士昕)이 우의정에 올랐고, 차남인 윤사윤(尹士昀)은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윤사윤의 손자인 윤여필(尹汝弼)의 딸이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이고, 그녀의 오빠가 윤임(尹任)이다. 장경왕후 사후 윤사흔의 증손인 윤지임(尹之任)의 딸이 제2계비로 책봉되어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되었다. 문정왕후의 아들이 제13대 왕 명종(明宗)이 되면서,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은 영의정을 역임하였다.[2]

윤승례의 형인 윤승순(尹承順)의 아들인 윤곤(尹坤)은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우참찬을 지냈다. 윤곤의 손자인 윤호(尹濠)는 딸이 성종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되자 국구(國舅)로서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윤곤의 증손인 윤필상(尹弼商)은 성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분파 [ 편집 ]

파평윤씨 대종회는 16대파로 분류하고 있다.

7世 윤인첨(尹麟瞻) – 문정공파(文定公派)

8世 윤위(尹威) – 남원백파(南原伯派)

8世 윤인직(尹仁直) – 신녕군파(新寧君派)

9世 윤은형(尹殷衡) – 덕산군파(德山君派)

10世 윤돈(尹敦) – 함안백파(咸安伯派)

12世 윤안적(尹安𥡦) – 대언공파(代言公派) 13世 낭장공 윤리(尹釐) 14世 윤탁(尹鐸) – 복야공파 15세 한림공 윤길(尹吉) 13世 시령공 윤보(尹輔) 14世 윤취(尹就) – 밀직공파 14世 윤장(尹將) – 사재공파

12世 윤중조(尹中珇) – 봉록군파(奉祿君派)

12世 윤암(尹諳) – 소부공파(少府公派) 13世 영윤공 윤주보(尹周輔) [장방파] 13世 파평군 윤해(尹侅) [이방파]

12世 윤안비(尹安庇) – 태위공파(太尉公派)

13世 윤리(尹莅) – 판서공파(判書公派)

14世 윤혁(尹赫) – 야성군파

14世 윤승휴(尹承休) – 전의공파(典儀公派)

14世 윤승례(尹承禮) – 판도공파(版圖公派) 15世 윤규(尹珪) – 제학공파(提學公派) 16世 군수공 윤환(尹煥) 16世 공간공 윤형(尹炯) 16世 직장공 윤희(尹熺) 15世 윤보로(尹普老) – 부윤공파(府尹公派) 16世 참판공 윤수미(尹須彌) 16世 영상공 윤태산(尹太山) 15世 윤번(尹璠) – 정정공파(貞靖公派) 16世 이정공 윤사분(尹士昐) 16世 성안공 윤사윤(尹士昀) 16世 양평공 윤사흔(尹士昕)

15世 윤곤(尹坤) – 소정공파(昭靖公派) 16世 윤희이(尹希夷) –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 17世 첨추공 윤리(尹利) 17世 재령공 윤정(尹貞) 17世 병절공 윤선(尹善) 17世 좌랑공 윤신(尹信) 16世 윤희제(尹希齊) – 한성공파(漢城公派) 17世 윤경(尹坰) – 배천공파(白川公派) 17世 윤은(尹垠) – 참의공파=구방파 18世 충경공-집의공-군수공-참의공-사정공-통례공-사직공-호군공-어모공 구방파(九房派) 17世 윤배(尹培) – 장령공파 17世 윤훈(尹壎) – 목사공파 16世 윤삼산(尹三山) – 영천부원군파(鈴川府院君派) 17世 상호군 윤오(尹塢) 17世 주부공 윤당(尹塘) 17世 평정공 윤호(尹壕) 17世 참판공 윤해(尹垓) 17世 정호공 윤탄(尹坦) 17世 동추공 윤파(尹坡)

15世 윤목(尹穆) – 원평군파(原平君派)

15世 윤향(尹向) – 소도공파(昭度公派)

분관 [ 편집 ]

남원 윤씨(南原尹氏), 함안 윤씨(咸安尹氏), 야성 윤씨, 덕산 윤씨(德山尹氏), 신녕 윤씨(新寧尹氏)는 분적 계보가 알려졌다.

항렬자 [ 편집 ]

문정공파 (시조로 1세, 파조로 1세)

29세

36세 30세

37세 31세

38세 32세

39세 33세

40세 34세

41세 35세

42세 36세

43세 37세

44세 38세

45세 39세

46세 40세

47세 口방(邦) 여(汝) 상(相) 口섭(燮) 치(致)

口종(宗) 口석(錫)

병(秉) 원(源)

口훈(勳) 口식(植)

재(在) 지(志)

口병(炳) 口곤(坤)

규(奎) 종(鍾)

口종(踵) 口영(永)

수(洙)

소부공파 (시조로 1세, 파조로 1세)

20세

32세 21세

33세 22세

34세 23세

35세 24세

36세 25세

37세 26세

38세 27세

39세 28세

40세 29세

41세 30세

42세 31세

43세 32세

44세 33세

45세 34세

46세 35세

47세 36세

48세 37세

49세 38세

50세 39세

51세 40세

52세 41세

53세 42세

54세 43세

55세 44세

56세 45세

57세 46세

58세 47세

59세 48세

60세 口효(孝) 석(錫)

진(鎭) 口수(洙)

口한(漢) 상(相)

식(植) 口희(熙) 재(在) 口용(鎔) 영(泳) 口표(杓) 형(炯) 口원(垣) 현(鉉) 口태(泰) 동(東) 口현(炫) 중(重) 口용(鏞) 승(承) 口오(梧) 주(炷) 口균(均) 성(成) 口호(浩) 병(柄) 口섭(燮) 교(敎) 口수(銖) 여(汝) 口기(棋)

태위공파 (시조로 1세, 파조로 1세)

19세

31세 20세

32세 21세

33세 22세

34세 23세

35세 24세

36세 25세

37세 26세

38세 27세

39세 28세

40세 29세

41세 30세

42세 31세

43세 32세

44세 33세

45세 34세

46세 35세

47세 36세

48세 37세

49세 38세

50세 태(泰) 口식(植) 병(炳) 口기(基)

口균(均) 종(鍾)

진(鎭) 口영(永)

口수(洙) 동(東)

상(相) 口묵(默)

口환(煥) 용(用)

성(星) 口석(錫)

口현(鉉) 제(濟)

도(渡) 口주(柱)

口근(根) 광(光)

희(熙) 口재(在)

口선(先) 동(銅)

선(善) 口영(泳)

口주(注) 주(株)

보(保) 口경(炅)

口형(炯) 봉(奉)

성(聖) 口호(鎬)

口용(鏞)

인물 [ 편집 ]

왕실과의 인척 관계 [ 편집 ]

고려 [ 편집 ]

조선 [ 편집 ]

세조 정비 정희왕후

덕종(세조의 장남) 후궁 귀인 윤씨

성종 계비 정현왕후

중종 제1계비 장경왕후

중종 제2계비 문정왕후

문종 후궁 소용 윤씨

인종 후궁 숙빈 윤씨, 양제윤씨

광해군 후궁 소의 윤씨

정신옹주(태종의 서차녀) 부마 윤계동

숙녕옹주(태종의 서7녀) 부마 윤우

숙경옹주(태종의 서9녀) 부마 윤암

숙순옹주(태종의 서13녀) 부마 윤평

정현옹주(세종의 서녀)부마 윤사로

정숙옹주(성종의 서녀) 부마 윤섭

경휘옹주(성종의 서녀) 부마 윤내

무림군(정종의 서15남) 적4녀 이씨 사위 윤지영

함녕군(태종의 서차남) 적장녀 이씨 사위 윤오

경명군(성종의 서9남) 정실 강양군부인 파평 윤씨

양원군(성종의 서14남) 서3녀 이씨 사위 윤황

복성군(중종의 서장남) 정실 군부인 파평 윤씨

여릉군(인조 친손자 경완군의 양손자)계부인 파평 윤씨

흥안군(선조의 서자)계부인 파평군부인 파평 윤씨

효혜공주(중종의 적장녀) 적장녀 사위 윤백원

혜정옹주(중종의 서녀)의 사위 윤호

숭선군(인조의 서장남) 적차녀 이씨 사위 윤정호

집성촌 [ 편집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경기도 파주시 당하동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신당리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황해도 송화군 간촌리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화암리

황해도 황주군 삼전면 용전리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황산리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화지리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

유적지 [ 편집 ]

虛心淸安한 삶을 꿈꾸는 윤상기

이글을 올리게 된 동기

초목(草木)도 근간(根幹)이 심후(心厚)하고 건실(建實)해야 지엽(枝葉)이 무성(茂盛) 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늘.

시조 태사공을 근원으로 백만 후손이 대 번성 하고 있으며 선대 열성조 께서는 수많은 왕후(王后)장상(將相) 거유(巨儒) 부마(駙馬) 충신(忠臣) 열사(烈士)등을 배출해서 명문거족(明門巨族)의 면목울 여실(如實)히 과시(誇示) 했으며.

현세에도 학계, 정계, 법계, 재계, 문화,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에서 그 영역을 주도하는 기라성 같은 인물이 부지기수(不知基數)요 또 미래를 장식할 어린 새싹들이 줄지어 자라고 있으니 경사라.

이는 오로지 우리 열성조의 음덕 (蔭德)임을 깊이 감명 받아 대대 손손 명문거족 파평윤씨의 세계를 이어가길 바라는 바이다.

최근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파평윤씨의 기록을 조사한봐 사실과다르거나 옛날 문서의 한자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후손들에 조상의기록이 잘못전달 됨을 안타까이 여겨 글을 올리는 바이다.

특히 현세는 국제화, 핵 가족화, 저출산, 호주제 폐지 등으로 이기심만 팽배하고 심지어는 시조 이름도

알지 못하는 (특히 여성) 후손이 증가하는봐 1000여년을 이어온 파평윤씨의 가승을 잃을까 노심초사 하는바이다.

이에 가승을 기록하니 참조 하고 각 파에 따라서는 조금씩 가계도가 다를수 있지만 최소한 알아야 할것만을 골라 기록하는 바이다.

2009년 02월 13일 파평윤씨 소정공파 35세손 윤영갑

부산 사하 장림 아미산 아래 본가에서

파평윤씨의 역사적 고찰

파평윤씨 사적에 의하면 파평용연리에 있는 연중에서 윤온가득석함 하였는데 공의 좌우 곁트랑에는 유81린 하고 양견에 유적우 하되 여일월상하며 족유 칠흑자라 하되 여칠성 이라 했고 또삼국사기에는 신라 진성여왕 7년 계축8월 15일 용연에서 석함 출현이라 하셨다.

한편 종인의 사록에는 태사공이 고려광종 24년 계유년에 81세로 졸간임소 (사망) 하셨다 한다.

고려의 대학사 명제선생은 태사공의 謫居東京(적거동경 = 귀양갔다는 뜻) 이라함을 의심 하였으나 고려사기에 혜종이 즉위후 공의 상모비범함을 시기하고 출수동경이하는 구절과 역사에 혜종이 시기심이 많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최근 사고로 고록간차(역사적으로 고증 했다는 뜻) 하셨다.

또 씨족통보에 의하면 동료 장수가 공의 선대를 물은즉 궤변답이무선대요 화생여 파평 출신이라 (해석= 선조가 없으며 파평 출신이라 대답함) 함으로서 더이상 파평윤씨에 대해서는 더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이 용연은 윤씨의 시조 발상지로 칭하게 되었고 유적으로 수호하게 되었던 것이며

따라서 시조 강생 1067년 서기 1960년 기해년 봄에 전국의 윤씨종문 대회를 열고 총의로서 용연 (연못)을 준설하고 사적 및 유적지로 새로 단장하고 꾸며 보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파평 용연은 파평윤씨의 발상지로 칭하고 있다

윤씨 성이 생기게된 경위

고대 제왕기(帝王紀)에 의하면 윤씨의 연원은 중국천수(天水)라 하였다 (현재 중국 감숙성 위천도현 임).

즉 상고시대에 소호금천씨(현호玄哮)가 次妃所生 아들 반(般)을 옹주윤성(尹城의 뜻은 성을 다스린다는 뜻= 현재군수직함)에 봉하여 사호(祀弧)를 책임케 하였다.

한국의 윤씨 성을 살펴보며는 기자(箕子= 중국 은나라 태자로서 은나라가 망한후 조선에 도망하여 기자 조선을 세웠다고 함) 가 동쪽 조선으로 도망 올시에 수행한 관원중에 윤씨가 있었다고 하였고

신라시대에 윤 시영 ( 尹始榮 ) 께서 출현 되어 윤씨 성의 연원이 되었다.

우리의 성자(姓子= 성씨의 뜻) 시조 태사공을 천수보육(하늘로부터 받아 기르고)하고 수윤창성(윤씨의 성을 따랐다)는 노파 윤온의 성자가 다시 우리 파평윤씨의 성의 연원이 되었다.

편집자주: 태사공을 연못 석함에서 궈두어 길렀던 할머니의 성이 윤씨임을 감안하면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자조t선 연혁 및 역사 자료를 연구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됨

시조 태사공 강생 약사 ( 始祖 太師公 降生略史 )

신라 진성여왕 7년 계축(癸丑) 서기 893년 8월 15일 경기 파평땅 용연중(龍淵 中)의 부유석함(연못에 떠있는 상자)에서 강생하셨다. 태사공 묘지비석에 의하면 파평 용연에 윤씨 성을 가진 노파가 석함을 습득하여 함을 열어보니,

그얼굴이 관옥 같고 울음 소리도 우렁차며

앞 가슴에는 “해” 등에는 “달”과 같은 붉은 반점이 뚜렸하고 양쪽 곁트랑에는 비늘이 81개가 달려있고 발에는 사마귀가 7개 달려 있었다한다.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짐작하고 정성을 다해 기루웠더니.

어릴때 부터 문장과 무술에 뛰어난 재주가 있을뿐 아니라 초인적인 용력(勇力)이 있었다한다.

시조 윤신달 약사 (始祖 尹辛達 略史)

시조 태사공의 휘(諱 =돌아가신 어른의 존함)는 신달 이시며

시호(諡號 =돌아가신뒤 왕께서 내리신 칭호)는 소이공(昭裏公)

이시니 신라 56대 경순왕 8년 서기 934년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국을 창건 하시고 벼슬이 통합삼환 벽상익찬공신 삼중대광태사(統合三韓 壁上翊贊公臣 三重大匡太師)에 오르시다.

시조비는 문화유씨시니 고려태조 왕건의 처형(妻兄)이시라 즉 태조 왕건과는 손위 동서 지간이라.

고려태조 왕건이 승화 하시고 혜종이 등극하면서 태사공을 시기하여 동경대제독 (東京大提督) 으로 동경유수로 혼자 가시게 하니 가족과 떨어져 30년을 외롭게 사시다가 경주(慶州)에서 작고 하시니 서기 973년 향년 81세라.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리 구봉산 하서좌(서쪽산 아래)에 안장(安葬) 하셨다

편집자주: 시조 태사공 태어날때 비늘이 81개 곁트랑에 달려있어 81세로 장수 하셨다 사료됨 1000여년전 당시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로 감안할때 보통사람의 2배로 장수 함은 파평윤씨 가문이 장수 가문임을 입증 하는 바이다

파평윤씨 영상공파 직계 족보

세 존함 시호 관작및 약사

1세: 신달 태사공 고려통합삼한벽상 익찬 개국공신 삼중대광태사 동경대제독

2세: 선지 공신공 벽상삼한 익찬신공

3세: 금강 복사공 상서성 좌복사

4세: 집형 문정공 상서성 우복사

5세: 관 문숙공 문과급제 추충좌리 평용척지 진국공신

6세: 언이 문강공 문과급제 정상문학 호부상서판은청광록대부

7세: 순신 시랑공 문과급제 중붕대부 사부상서시랑

8세: 상계 유수공 상서랑위이사 서경부유수

9세: 복원 록사공 문과급제 상서성좌복사 은청광록대부

10세: 순 어사공 문과급제 감찰어사 상서서형부사

11세: 보 문현공 문과급제 삼중대광수검의 정승 은평부원군

12세: 안숙 양간공 추성익위좌리공신 삼중대광도 검의사사

13세 척 영평군 순성익대보리공신 삼중대광은평군

14세: 승순 충간공 문과급제 수충양절보리공신

15세: 곤 소정공 추충익대좌명공신 사조판서 숭정대부파평군

16세: 희제 한성공 정현대부 한성부사 의정부 좌찬성

17세: 경 백천공 추충적덕의보록공신

18세: 필상 영상공 생원문과중시급제 의정부영의정 파평부원군

갑자사화로 사약 받으시고 중종4년 사면복작 되시다

19세: 중 통덕랑 입남조 (영상공의셋쩨 아들로 갑자사하로 남해로 피신 이름도 숨기고 외로이 사셨다)

편집자 주: 소정공파의 직계만 기록 하였다 한문을 병행하여 기록하여나 하나

지면상 어려움이 있었음을 양해하여주길 바라는 바임.

5세손 아! 우리의 윤관장군 5000년 역사이래 오직 한분

*****척지장군 (拓地將軍) *****

문숙공의 휘는 관이시요 시호는 문경공(文敬公) 이시다.

고려 11대 문종대왕때 문과에 급제 하시고 북녁 오랑케 여진족을 징벌 하사 국경을 중국 요동반도까지 넓히신 장사로서 관작이 추충좌리 평용척지진국공신이시다

우리나라 역대 장군들은 적의 침략을 방어 하신 분들이나

오직 우리 문숙공 께서는 국경을 중국 요동반도 까지 넓히신 분으로 척지장군 이시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당시국가 능력이 이 넓은 땅을 다스리지 못하고 버려 두었던 것이다.

지금 중국이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로 우리의 윤관장군께서

징벌하여 넓히신 우리의땅 요동반도(현재 만주땅 전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한반도 까지도 자기들의 소수민족이라 역사를 조작하면서 까지 우기니 오오 통제라

조상 문숙공께서 구천에서 얼마나 비통해 하실까? 우리는 빨리 국력을 키워 만주땅을 되찿고 이참에 고구려 땅도 되 찿아야 할 것이다.

15세손 지조와 절개를 유훈 으로 남기신 소정공 약사

공의 휘는 곤이요 시호는 소정공 이시며 관작은 사조판서 숭정대부 추충익대 좌명공신 이시었다.

그러나 공은 높은 관작에 계시면서도 평생을 고심 속에서 사셨다 한다. 이유인 즉 선조 대대로 고려 충신의 후예로서 이조 3대 태종대왕 이방원 과는 어릴때 부터 동문수학 같이자란 친우라 이방원 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이조 관작에 참여 하게되니 선조들의 지조와 절개를 허물어 트린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공은 아들이 태어날 때 마다 중국의 은나라가 망하고 주 나라가 건국 되었을때 수양산에 들어가 주나라 곡식은 입에 넣지 않겠다고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어면서 까지 지조를 지키신 너무나 유명한 백이숙제(伯夷叔濟) 이름자중 이자와 제자 그리고 수양산의 산자를 따서 큰아들을 희이,둘째아들을 희제 셋쩨아들을 삼산으로 작명 하시고 나는 기왕 선조 들에게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 되었어나 너희들은 대대로 백이숙제와 같은 굳은 의지로 남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하셨으니 소정공의 심정을 우리 후손들이 어찌 헤아려 보지 않을수 있겠는가.

이로 인해 지조와 절개를 소중히 생각하는 오문(우리가문)

파평윤씨소정공파의 전통을 자랑하며 계승하길 바라는 바이다.

18세손 영상공 윤필상 약사

영상공의 휘는 필상이요 시호는 영상공 이시니 작위는 영의정 에 이르셨다.

공은 15세 소정공의 차남 희제 한성공의 손자로서 성종대왕에 이르러 영의정에 오르셨는데 그당시 우리 가문내에 소윤대윤으로 분리되어 세력 다툼이 심했는데 성종대왕비 윤씨가 연산군을 낳으시고 폐비된 후 그 뒤를 이어 소정공의 셋째아들 삼산의 손녀가 왕비로 동택되어 정현 왕후가 되시니 영상공의6촌 여동생 이시라.

가문의 명예와 권력이 극에 이러렀던 시기 성종대왕이 승화 하시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어 미궁에 감춰졌던 자기생모 폐비 윤씨의 문제를 들추어 내니 연산군 10년 서기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라는 참사가 일어 났으니 우리 영상공 께서 어찌 무사 할수 있었겠는가 제일먼저 사약을 받으시고 가세가 흩어졌으며 가족들은 산지 사방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이후 폭군 연산군이 갑자사화 건 으로 폐위되고 중종(中宗) 4년 모든 종문의 가솔이 사면복작 (서기 1509년) 되셨지만

!!!!!!! 오오 통제라!!!!!!!!! 아!!! 마를수 없는 눈물이여

그 당시 피신한 가솔들은 숨어사신 관계로 정보 통신이 어두워 사면복작 되신 줄도 모르고 형제간의 소식도 모른체 생을 마감 하셨다 한다.

영상공의 아들은 3분중 큰 아들은 충청도 둘째는 부산구포 셋째는 남해로 피신 했으나 끝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남해로 피신한 셋째 통덕랑 윤중의 가계도로 영상공의 가계도를 이어가고 있으니 충청도와 구포로 피신한 영상공의 가계도를 갖고 계신 분이 이글을 본다면 500년이나 형제의 소식이 끊어진 가문의 한을 풀수 있지 않으까 생각하는 바이다

十九世 入南祖 略史 (19세 남해로 들어온 선조의 약사)

入南朝의 諱는 仲 이시오 爵位는 通德郞(통덕랑) 이시며 領相公의 三子 시니

甲子士禍(갑자사화)로 말미암아 목숨을 걸고 避身하여 南海郡 西面 井浦 海邊에서

九命自生으로 이름까지 숨기시고 숨어 사신바 끝내 定着하시고 代代로 世居 하게 되니 公을 入南朝시라 한다

公은 兄이 두분 계셨는데(18세 領相公의 아들은 3분) 큰아들은 侃(간) 이시고

둘째 아들은 俶(숙) 이시라 두 兄弟分의 後孫들은 忠淸道와 釜山 龜逋에 世居 하신다는 말은 들었으나 아직 確認은 못했다.(현재도 부산 구포에 가면 윤씨성을 가진 분들이많이 세거하고 있으나 구한말 양반 상놈 제도가 폐지 되면서 集姓村의 有名人事의性을 自意半 他意半으로 갖게된 歷史的인 冠禮를 보아 누가 眞定한 領相公의 後孫인지는 구별할 길이 없음 허나 南海로 避身한 셋째 아들의 家系道는 섬 이라는特殊한 環境이고 특히 先山이 있으며 族譜를 嚴格히 管理 하여 남해의 윤씨성을가진 분들은 眞定한 파평윤씨 임을 누가 疑意를 提起할수 있겠는가?)

그 當時는 交通通信 情報가 어두워서 甲子士禍 이후 불과 5년만에 赦免復爵 되었건만避身하여 숨어 사시는 고로 赦免된 줄도 모르고 兄弟間의 消息도 모르고 외로이漢陽 하늘만 바라보며 平生을 보내셨다

萬若 그 當時 至今과 같이 T.V나 RADIO, 휴대폰, 인터넷. KTX 등의 交通通信情報가 發達하였다면 늦어도 하루만에 本家에 到着 할수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 先祖의 빛나는 業績을 繼承하여 家門의 榮光을 回復 할수 있었건만 이 어찌 哀惜(해석)하고 痛嘆(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여 조상의 빛난 업적을 영상공파 후손에 널리 알려 다시 우리 선조의 찬란한 업적을 중앙무대에서 맘껏 펼쳐 보이며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吾門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2009년 02월 13일 소정공, 영상공 35세손 윤영갑

출처 : 吾門 (나의 가문)

글쓴이 : 핑구 원글보기 : 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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