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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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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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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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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일본어: 大谷 ( おおたに ) 翔平 ( しょうへい ) , 1994년 7월 5일~)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메이저 리그인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의 소속 선수(투수, 외야수)이다. 소속사는 호리프로(2016년 12월 ~ ).[1]
투수와 타자를 겸해서 ‘이도류’(二刀流)라고 불리는 선수이며, 2014년에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11승, 10홈런)을 같은 해에 달성했다.[2] 이듬해 2015년에는 최우수 평균 자책점, 다승왕, 최고 승률 등의 투수 부문 3관왕을 달성했고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투수 부문)에도 선정됐다. 더 나아가 2016년에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00안타·20홈런’을 달성했다. 투타 모두 팀의 주력 선수로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는 등 NPB 사상 최초로 투수와 지명타자 두 개 부문에서 베스트 나인에 선정[3]됨과 동시에 자신의 첫 리그 MVP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미국에서는 ‘일본제 베이브 루스’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4] 또 일본 아마추어 야구 최고 구속인 160 km/h를 기록했고, 더 나아가 2016년 10월 16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165 km/h의 최고 구속을 기록한 보유자이다.[5][6]
2018년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그해 신인왕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만장일치로 MVP를 수상했으며, MLB총재 특별상, 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에도 선정되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100인, AP통신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미 스포즈전문지 스포팅뉴스는 스포츠역사상 최고의 시즌TOP50을 발표 오타니의 2021년 시즌을 1위로 선정했다.[7]
2022년 4월 7일, 2004년 보스턴의 우승이후 야구선수로는 18년만에 미국판 타임지 커버모델로 선정되었다[8]
2022년 7월 21일, 1999년 마크 맥과이어 이후 야구선수로는 23년만에 ESPY어워드에서 최고의 스포츠선수상을 수상했다.
인물 [ 편집 ]
프로 입단 전 [ 편집 ]
이와테현 미즈사와 시(현재의 오슈시) 출신으로 사회인 야구 선수였던 아버지와 배드민턴 선수였던 어머니를 둔 스포츠 집안에서 태어났다. ‘쇼헤이’(翔平)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오슈 히라이즈미(奥州平泉)에 연고가 있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아명은 우시와카마루(牛若丸))와 연관지어서 요시쓰네의 싸우고 날아오른다는 이미지로부터 ‘쇼’(비상할 상(翔))자를 따오고 히라이즈미에서 ‘헤이’[주 1](平(평평할 평)) 자를 따서 붙여준 이름이다.[9]
미즈사와 시립 아네타이 초등학교(현재의 오슈 시립 아네타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즈사와 리틀 리그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전국 대회에 출전했고, 당시 포수는 몸이 놓칠 정도로 공이 빨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구속 110 km/h를 이와테 현영 야구장에서 기록했다. 오슈 시립 미즈사와미나미 중학교 시절에는 이치노세키 리틀 시니어에 소속돼 여기서도 팀의 전국 대회 출전을 이끌었다.오타니가 소년 시절에 동경했던 야구 선수 타자는 마쓰이 히데키.투수는 다르빗슈였다는[10].
기쿠치 유세이를 동경해 기쿠치의 출신 고등학교인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일본 최고가 되겠다’, ‘일본 선수로는 최고 빠른 시속 163 km/h를 기록하겠다’, ‘드래프트에서 기쿠치 유세이를 뛰어넘어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는 선수가 되겠다’ 등을 목표로 세웠다.[11] 야구부 입단 후에는 사사키 히로시 감독이 “아직은 뼈가 성장하는 단계다. 1학년 여름까지는 야수로 기용해서 천천히 성장 단계를 높여나간다”라는 방침에 따라[12] 1학년 춘계 시즌에는 ‘4번·우익수’로서 공식전에 출전했다. 추계 시즌부터는 에이스를 맡아 최고 구속 147 km/h를 기록했고 2학년 춘계 시즌에는 최고 구속 151 km/h를 기록, 2학년 봄에는 최고 속도 151 km/h를 기록하는 등 “미치노쿠의 다르빗슈”라고 불릴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름에 열린 고시엔 대회(제93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첫 상대였던 데이쿄 고등학교와의 경기 당시 골단선 손상으로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가 4회 도중부터 등판해서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 시절의 다나카 마사히로와 함께 고시엔 대회에서 고교 2학년 선수가 세운 최고 구속 타이 기록에 해당되는 150 km/h를 세웠다. 그 이후에는 치료에만 전념하면서 경기에서는 타자로만 출전했다. 3학년 때인 제8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는 1차전 상대인 오사카도인 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 후지나미 신타로에게서 홈런을 때려냈으나 11개의 4사구와 9실점으로 무너졌다. 3학년 여름에 열린 이와테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이와테 대회) 준결승전 상대인 이치노세키가쿠인 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 아마추어 야구 사상 최초로 최고 구속 160 km/h를 기록했다.[13] 그러나 결승전인 모리오카 대학부속 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는 좌측 폴대의 부근을 통과한 타구가 홈런으로 판정되는 불운을 겪는 등[14] 5점을 내주는 바람에 고등학교 마지막 여름의 고시엔 대회 출전에는 실패했다. 고시엔 대회 통산 성적은 14이닝을 던져 평균 자책점 3.77, 탈삼진 16개를 기록했고 야수로서는 두 경기에서 타율 3할 3푼 3리, 1개의 홈런을 남겼다.
9월에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제25회 AAA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주로 4번·지명타자로 기용됐다. 5위 결정전이었던 대한민국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2실점, 12 탈삼진, 최고 구속 155 km/h를 기록하는 등의 호투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패전 투수가 됐다. 9월 18일, 일본 국내외를 따지지 않고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프로 지망계를 제출했다.[15][16][17]
2012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를 앞두고 일본 프로 야구 뿐만 아니라 메이저 리그 구단 쪽에서도 오타니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애당초 본인은 “(미국이냐 일본이냐는) 5대 5” 라고 말했다가[1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면담을 거쳐[19] 그 해 10월 21일에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20] 기자회견 자리에서 오타니는 “마이너에서부터 시작하게 될테지만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고 싶다. 입학할 때부터 꿈이었다. 젊을 때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일본 프로 야구도 동경했지만 메이저 리그 쪽에 대한 동경이 컸다”라고 말했다.[21] 그런데 23일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단장인 야마다 마사오가 오타니를 드래프트 회의에서 1순위로 지명하겠다고 말했고[22] 닛폰햄 감독인 구리야마 히데키도 역시 “오타니한테는 정말로 미안하지만 지명하겠다”고 밝혔다.[23] 드래프트 회의 당일인 10월 25일에는 닛폰햄이 오타니를 단독 1순위로 지명하여 교섭권을 따냈다. 지명 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타니는 “깜짝 놀랐고 동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변함없다. 저를 좋게 평가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미국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라고 밝혔고[24][25] 지명 인사차 닛폰햄이 방문했을 때도 만나주지 않았다.[26]
그러나 그 후 두 번째 방문 때 지명 인사를 받아들였고[27] 오타니의 부모도 나선 입단 협상을 네 차례에 걸쳐 실행에 옮겼다.[28][29] 세 번째의 입단 협상부터는 구리야마 감독도 동석했다.[30][31] 입단 협상에서는 3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32] 가 협상 테이블에 제시됐고 고등학교 졸업 후 직접 미국으로 건너간 대한민국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 리그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이너 리그의 가혹한 실정, 일본 국내 리그에서 실력을 닦은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더 나아가 다르빗슈 유가 착용했던 등번호 11번과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쌍검류) 육성 플랜 등도 제시돼 12월 9일에 닛폰햄에 입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33] 12월 25일에 계약금 1억 엔과 성과급 5,000만 엔, 연봉 1,500만 엔(추정치)[34]이라는 조건으로 가계약을 맺은 뒤 입단 기자회견을 열었고[35][36] 등번호는 다르빗슈가 착용한 ‘11’번으로 결정됐다. 기자회견 후에는 삿포로 돔에서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과 함께 투구와 타격으로 1구 승부를 겨루는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37]
2012년 11월에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가 이와테 현내를 대상으로 학생 모집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냈는데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연맹의 승인 없이 오타니를 이 광고에 출연시켰다는 사실이 2013년 1월에 드러났다. 이는 일본학생야구헌장에 저촉된다고 하여 고등학교 야구 연맹이 실태조사에 나섰고[38] 야구부 부장이 엄중 주의를 받았다.[39]
닛폰햄 시절 [ 편집 ]
2013년 [ 편집 ]
스프링 캠프에서는 투수와 야수의 연습 메뉴를 병행해내면서 2월 중부터 1군에 합류했고 시범 경기나 춘계 교육 리그에서도 투수, 우익수, 지명타자로서 출전했다. 3월 17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시범 경기에서는 야마우치 소마로부터 첫 홈런을 때려냈다. 같은 달 2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시범 경기에서는 투수로서 등판한 후 타자로서 타석에 들어서며 더 나아가 우익수 수비에도 올랐다.[40]
투수로 등록된 상태에서 타자로서 1군 개막전 엔트리에 합류했고[41] 시즌 개막전인 3월 29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세이부 돔)에는 8번·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고졸 외야수의 개막전 선발 출전은 2011년의 슌타(오릭스 버펄로스) 이후 처음이고 닛폰햄 구단에서는 1959년 하리모토 이사오 이래 54년 만의 일이다. 개막전에서 2안타 1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겨 수훈 선수로 선정돼 히어로 인터뷰의 주인공이 됐다. 고졸 신인이 개막전에서 2안타를 때린 것은 1960년 야노우라 구니미쓰(긴테쓰 버펄로스)가 기록한 이래 53년 만의 두 번째이다.[42] 다음날 3월 30일도 출전했지만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의 선배이기도 한 세이부의 선발 투수 기쿠치 유세이에게서 2개의 삼진을 당했다. 그 후에도 하위 타선에 출전하여 2군 경기에서 투수로서 조정하고 있었지만 4월 13일 오릭스와의 경기(홋토못토 필드 고베)에서 외야 수비 도중에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해[43] 곧바로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
타석에서의 오타니(2013년)
5월 4일에는 1군에 복귀했고 이틀 후인 5월 6일 세이부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번 타자로서 출전했다. 5월 2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는 투수로서 첫 등판과 동시에 첫 선발로 등판했는데 5이닝 동안 2실점을 기록하여 승패는 연결되지 못했지만 신인 투수의 첫 등판으로는 역대 가장 빠른 157 km/h를 기록했다.[44] 이 경기에서는 첫 등판을 기념하여 구단으로부터 관객들에게 ‘이도류 클리어 파일 세트’와 관전증명서가 배포됐다. 5월 27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고교 3학년 때 선발 고교 야구 대회 이후 처음이 되는 후지나미 신타로와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티켓이 사전 예약만으로 매진이 되었고 컬래버레이션 상품이 발매되는 등 큰 성황을 이루었다.[45] 경기에서는 ‘5번·우익수’로서 선발 출전하여 프로 데뷔 후 처음이 되는 중심 타선에 들어가 후지나미에게서 2개의 2루타를 때려냈다.[46]
6월 1일 주니치와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오면서 5이닝 3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거뒀고[47][48] 6월 1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고졸 신인으로서는 1993년의 마쓰이 히데키(요미우리 자이언츠) 이후 20년 만에 3번 타자로서의 선발 출전을 이루게 됐다.[49] 6월 18일 히로시마와의 경기(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센트럴 리그 구단 주최 경기에서 지명타자를 쓸 수 없다는 것도 있고 해서 5번·투수로서 선발 출전했다. 선발 투수가 3 ~ 5번 타자로 나선 것은 1963년의 가지모토 다카오(한큐 브레이브스) 이후 50년 만의 일이다.[50] 투수로서는 4이닝 동안 3실점을 내주며 강판됐지만 강판된 이후에 우익수로서 수비에 오르는 등 타자로서는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7월 10일 라쿠텐과의 경기(K스타 미야기)에서는 나가이 사토시로부터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는데 고졸 신인으로서의 프로 첫 승리와 프로 첫 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것은 1967년 에나쓰 유타카(한신 타이거스) 이후 46년 만의 일이다.[51] 다음날 11일(라쿠텐전) 경기를 앞둔 연습 도중에 외야를 달리고 있던 중 연습 타구로 날아온 공이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을 직격하여 경기에 결장, ‘오른쪽 광대뼈 부전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52] 그로부터 3일 뒤인 7월 14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복귀해 오타니 도모히사로부터 자신의 첫 대타 홈런이자 연고지 첫 홈런·2경기 연속 홈런이 되는 2호 홈런을 때려냈다.[53]
같은 해 올스타전에서도 팬 투표로 외야수로서 처음으로 선정돼 1차전에서는 5회에 투수로서 등판, 1이닝 2피안타 무실점과 최고 속도 157 km/h를 기록하는 투구를 보여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좌익수 수비로도 오르는 등 타석에서는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54][55] 2차전에서는 고졸 신인으로서의 올스타전 사상 첫 1번 타자로 기용돼 첫 번째 타석에서 올스타전 첫 안타가 되는 우중간에 2루타를 날렸다.[56] 3차전에서는 고졸 신인으로서 1986년 기요하라 가즈히로 이후가 되는 올스타전에서의 첫 타점을 기록해 감투 선수상과 스카이 액티브 테크놀로지상을 수상했고 상금 100만 엔과 마쓰다 자동차 1대가 부상으로 주어졌다.[57]
8월 9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6회에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했고[58] 8월 18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오비히로의 숲 야구장)에서는 5번·우익수로 선발 출전하여 8회부터는 투수로서 등판하는 등 1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59] 8월 23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투수로서 선발 등판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포크볼을 섞어 던져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 기록인 9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투구로 시즌 3승째를 올렸다.[60] 투수로서는 13경기에 등판하여 3승 무패, 평균 자책점 4.23을 기록했고 타자로서는 77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 3푼 8리, 3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2014년 [ 편집 ]
3월 30일 오릭스와의 경기(삿포로 돔)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맹타상을 기록했다.[61] 4월 12일 세이부와의 경기(삿포로 돔)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탈삼진 기록과 시즌 첫 승리를 올렸고[62] 5월 13일 세이부와의 경기(하코다테 오션 스타디움)에서는 9이닝 동안 6피안타 9탈삼진의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올렸다.[63] 6월 4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삿포로 돔)에서 퍼시픽 리그 사상 최고 속도인 160 km/h를 측정했고[64] 그 후에도 6월 11일 요미우리전(삿포로 돔),[65] 6월 18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66] 6월 25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67]에서 최고 속도인 160 km/h를 4경기 연속으로 기록, 타 구장에서도 측정됐다. 20세가 된 7월 5일의 지바 롯데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한 경기 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68] 7월 9일 라쿠텐과의 경기(라쿠텐 Kobo 스타디움 미야기)에서는 매이닝 동안 16개의 탈삼진으로 1실점 완투로 시즌 8승째를 올렸는데 한 경기 16개의 탈삼진은 1980년에 기다 이사무 이래 나란히 구단 타이 기록을 세웠다.[69] 매이닝 탈삼진은 자신으로선 처음이며 구단에서는 역대 10번째(13번째)이다. 또한 1968년 에나쓰 유타카의 20세 2개월을 경신하는 16개 탈삼진 이상의 일본 프로 야구 최연소 기록이 됐다.[70]
올스타전에서는 전년도 외야수에 이어 투수로서 감독 추천으로 출전했다. 투수와 야수 양쪽 모두의 올스타전 출전은 세키네 준조[주 2] 이래 두 번째이다.[71] 7월 19일에 열린 올스타전 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에 선발 등판해서 1회말에 선두 타자인 한신의 도리타니 다카시를 상대로 2구째에서 올스타전 사상 최고 속도인 162 km/h를 측정했고 이후 요미우리의 아베 신노스케에게 초구에서도 같은 구속을 측정했다. 공식전을 포함하면 2008년에 당시 요미우리 소속이던 마크 크룬 이후 역대 두 번째의 타이 기록이다. 1이닝을 던져 타자 5명을 상대해 3피안타 1실점의 호투로 총 23개의 투구 중 160 km/h 이상이 12개였다. 경기는 12 대 6으로 퍼시픽 리그가 승리하면서 오타니가 승리 투수가 됐지만[주 3] 20세 0개월에서의 선발 승리는 이케나가 마사아키의 19세 1개월에 이은 올스타전 최연소 기록이 됐다.[72][73]
전반기 종료 시까지 7연승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후반기 첫 등판이 된 7월 26일 라쿠텐과의 경기(코보스타 미야기)에서는 8이닝을 던져 5피안타 10탈삼진 2실점으로 승패는 연결짓지 못했고[74] 8월 3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삿포로 돔)에서 일본인 최고 속도 타이 기록인 161 km/h를 측정했지만 7이닝을 던져 9피안타 2실점에서 패전 투수가 되는 등 연승 행진은 멈췄고, 시즌 2패째를 당했다.[75] 그러나 8월 26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야후오쿠! 돔)에서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즌 10승째를 올렸는데 퍼시픽 리그 사상 최초이자 그해 시즌에서 10승을 올려서 시즌 6호 홈런을 기록했다.[76] 더 나아가 8월 29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지명타자로 출전, 첫회에 자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이틀 연속이 되는 시즌 8호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것에 의해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둔 투수로서는 1950년 요미우리의 후지모토 히데오(26승)가 7호 홈런의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을 경신했다.[77] 9월 7일 오릭스와의 경기(교세라 돔)에서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해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가 되는 ‘동일 시즌에서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을 달성했다.[주 4][78][79] 10월 5일 라쿠텐과의 경기(삿포로 돔)에서 첫회에 긴지를 상대로 투구가 구속 162 km/h를 측정해 자기 최고 속도와 일본 프로 야구 시즌 공식전 기록(2008년 6월 1일에 마크 크룬이 기록)을 나란히 수립했고 요시노리의 일본인으로서 프로 야구 최고 속도와 스스로의 퍼시픽 리그 기록을 경신했다.[80]
포스트 시즌인 10월 11일 오릭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교세라 돔)에서는 포스트 시즌 첫 등판이자 선발로 나섰다. 2회에는 2사 만루 상황에서 2개의 4사구를 주면서 2연속 밀어내기로 2점을 내줬지만 6이닝을 던져 5피안타 3실점의 호투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첫 승리 투수가 됐다.[81] 20세 3개월에서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승리 투수는 2009년의 다나카 마사히로의 20세 11개월을 경신하는 사상 최연소 기록이다.[주 5] 투수로서는 24경기에 등판하여 11승 4패, 평균 자책점 2.61을 기록했고 타자로서는 86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 7푼 4리, 10홈런, 31타점을 기록했다.
오프에는 미일 야구 2014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등번호는 과거에 와쿠이 히데아키 등이 착용했던 16번으로 정해졌다.[83] 1차전에서는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1이닝을 3자 범퇴로 막아냈다. 선발로 등판한 5차전에서는 4이닝 동안 2실점 7탈삼진의 결과를 남겼지만 패전 투수가 됐다. 이날 경기에서 오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운트를 잡으려고 했는데 안타를 맞아서 그 점에 대해선 반성할 점입니다. 파울을 잡으려고 하는 피칭이 잘 됐으면 좀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두 타자에 대해서는 좀더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7탈삼진에 대해서는)삼진을 노렸을 때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84]
12월에는 고졸 3년차 선수로선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래 역대 두 번째가 되는 연봉 1억 엔(추정치)으로 계약을 갱신했다.[85]
2015년 [ 편집 ]
3월 27일 라쿠텐과의 경기(삿포로 돔)에서 자신으로서는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5와 2/3이닝을 피안타 3개, 1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86] 5월 14일 세이부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팀으로서는 1979년 다카하시 나오키 이래 완투 승리를 따내면서 개막 6연승을 장식했다.[87]
그러나 한편으로 타격면에서는 저조했는데 4월 1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QVC 마린필드)에서는 상대 선발 후지오카 다카히로로부터 야수로는 2경기째이자 6번째 타석에서 프로 데뷔 이래 최고 속도가 되는 제1호 홈런을 날렸지만, 4월 19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입문 이후 처음으로 1경기에서 삼진 4개를 당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88] 올스타전 투수 부문에서는 2위인 마키타 가즈히사와 28만 표 이상의 큰 표차를 따돌리고 선출됐다. 투수와 야수에서 올스타전 팬 투표로 선출된 사례는 1953년에 투수 부문, 1963년에 외야수 부문에서 선출된 세키네 준조(당시 긴테쓰 소속) 이래 두 번째가 됐다.[89] 7월 17일에 열린 올스타전 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첫회 투 아웃 상황에서 오타니가 야마다 데쓰토에게 던진 초구는 157 km/h의 직구를 던졌고 2구째는 “한 번도 던진 적은 없다. 향후에도 던질 것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의 시속 89 km/h의 슬로우 커브를 던졌는데 초구와는 실로 68 km/h의 차이를 기록했다. 2회 2사 1루에서 가와바타 신고에게 던진 3구째는 “1구만(구속을) 노리러 갔다”라고 말했는데 이날 최고 속도인 159 km/h의 직구를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94 km/h의 슬로우 커브를 던지면서 3루 직선타로 잡았다. 결과는 2이닝 2피안타 1실점의 성적을 남겼다. 8월 8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자신으로서는 처음이 되는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90] 8월 18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QVC 마린필드)에서 9이닝 12탈삼진으로 완봉승을 거두는 등 작년에 기록한 11승을 웃도는 개인 최다 성적인 12승째를 올렸다.
최종적으로 10월 6일에 퍼시픽 리그가 모든 일정이 종료된 시점에서 리그 1위인 15승, 평균 자책점 2.24, 승률 7할 5푼의 성적으로 다승왕,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고 승률 등의 투수 부문 3관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고졸 3년차로서의 15승에 도달한 사례는 닛폰햄 구단으로서는 2007년에 다르빗슈 유 이래가 됐다.[91] 그런 한편으로 야수로서는 시즌을 통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즌 도중부터 지명타자를 곤도 겐스케에게 내줬다. 타율도 2할 2리에 끝나면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28명 최종 명단에 올랐다.[92]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투수로서 활약했는데 개막전인 대한민국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활약을 보여 팀 승리에 기여했다. 준결승전인 대한민국전에서도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지만 팀은 3대 4로 역전패를 당했다. 대회 기간 동안 호투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아 프리미어 12 올스타팀(선발투수 부문)에 선정됐다. 그해 8월 17일, 일본 우편 홋카이도 지사가 오타니의 사진을 사용한 우표 세트를 홋카이도내에서 발매한다고 발표했는데 프로 야구 선수의 사진이 새긴 우표를 판매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닛폰햄의 선수로서는 처음이다. 9월 10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후보 선수로 발탁됐다.[93]
2016년 [ 편집 ]
그 해에는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가 선발 등판한 5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다. 하지만 선발 6경기째가 된 5월 1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QVC 마린필드)에서 9이닝을 4실점으로 막아내며 시즌 첫 완투와 동시에 첫 승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5월 중간까지 평균 자책점 3점 대와 시즌 도중까지 투수로서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타격에서도 호조를 보였는데 5월 11일 오릭스와의 경기(도쿄 돔)에서는 상대 선발 도메이 다이키로부터 자신으로서는 처음으로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5월 29일 라쿠텐과의 경기(코보스타 미야기)에서 퍼시픽 리그 사상 최초가 되는 지명타자를 해제해 6번·투수로서 선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는 투수로서 7이닝 4피안타 1실점을 기록하여 시즌 3승째를 올렸고 타자로서는 3안타 1타점의 맹타상을 기록했다. 6월 5일 요미우리와의 경기(도쿄 돔)에서는 5번·투수로서 선발 출전하여 투수로선 4회에 루이스 크루스와 상대할 때 자신이 가진 일본 프로 야구 공식전에서의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하는 구속 163 km/h를 측정했다.
7월 3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에서 자신으로선 처음으로 1번 타자 겸 투수로서 선발 출전해 타자로서는 초구를 노리며 선두 타자 홈런을 날렸고 투수로서는 8승째(4패)를 올리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일본 프로 야구에 있어서 투수로서 1번 타자 신분으로 선발 출전한 것은 1971년 도야마 요시아키(야쿠르트) 이래 45년 만의 세 번째이지만 선두 타자 홈런은 사상 최초이다. 참고로 MLB에서도 과거에 투수의 선두 타자 홈런을 친 사례가 없다.[94] 6월에는 4승 무패, 탈삼진 41개, 평균 자책점 0.29를 기록하며 자신으로서는 두 번째의 월간 MVP를 수상했다.[95]
7월 10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에서 경기 도중 손가락 부상으로 강판됐고 그 영향으로 인해 약 2개월 동안 선발 투수로서의 등판은 없었다. 올스타전의 투수 부문에 팬 투표로 선출됐지만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던질 수 없게 되자 일본 야구 기구가 이를 고려하여 이례적으로 야수로서의 출장이 허용됐다. 7월 15일, 올스타전 1차전이 열리기 전에 치른 홈런 더비에서는 1차전에서 야마다 데쓰토, 결승전에서 야나기타 유키를 누르고 홈런 더비 우승을 이뤄냈다. 7월 16일에 열린 올스타전 2차전에서 5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자신의 첫 올스타전 홈런을 날리는 등의 활약으로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7월 24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3년 만이 되는 구원 등판으로 1이닝을 무실점 호투하여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또한 9월 7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약 2개월 만에 선발 투수로 복귀했고, 9월 13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는 이토이 요시오와 상대하면서 자신이 가진 일본 프로 야구 공식전에서의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하는 구속 164 km/h를 측정했다.
9월 28일 세이부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9이닝 1피안타 1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완봉 승리를 거두어 닛폰햄의 4년 만에 리그 우승 달성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경기에서는 10승을 올려 자신으로서는 두 번째로 ‘같은 시즌에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을 동시에 달성하는 등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10승, 100안타, 20홈런’을 달성했다.[주 6][96] 그런 반면에 규정 투구 이닝이 남은 3이닝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2년 연속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은 놓쳤다.[97]
포스트 시즌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차전에 8번 타자 겸 투수로 선발 출전하여 타자로서 2타수 1안타, 투수로서 7이닝 1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첫 승리 투수가 됐다. 5차전에서는 3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팀이 7대 4로 앞선 9회초에 지명타자를 해제하고 마무리 투수로서 등판, 자신의 첫 세이브를 기록하여 팀의 4년 만에 일본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었다. 이날 경기에서 자신이 가진 일본 프로 야구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하는 구속 165 km/h를 기록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8번·투수로 선발 출전했지만 6이닝 3실점을 기록하여 패전 투수가 됐다. 투수로서는 1차전에만 등판했는데 타자로서는 2차전 9회초에 대타로 출전하면서 3, 4, 5차전(삿포로 돔)에서는 3경기 모두 3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특히 3차전에서는 연장 10회말에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히로시마의 오세라 다이치로부터 끝내기 적시타를 날려 팀의 일본 시리즈 첫 승리에 기여했다. 팀은 2패를 당한 뒤에 4연승을 기록, 4승 2패의 성적으로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오타니 자신도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우승이 결정된 6차전에서는 출전 기회가 없긴 했지만 점수가 4대 4 동점, 8회초 2아웃 만루, 타석에 나카타 쇼, 다음 타자가 투수인 앤소니 배스라는 상황에서 오타니가 대기타석에 있었다. 훗날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를 기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라고 상대 투수 제이 잭슨에 대한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98] 결과적으로 나카타는 밀어내기 볼넷으로 그 후 이 8회에만 총 6득점이 들어간 것에 의해 승패가 갈랐다.[99] 10월 18일에는 ‘사무라이 재팬 –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100] 도쿄 돔에서 열린 11월 13일 네덜란드전에서는 7회초에 때려낸 우측 방향의 타구가 천장에 들어가면서 규정에 의해 2루타가 됐다.[101] 참고로 이 사례는 2002년에 마쓰이 히데키가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11월 25일,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수상자가 발표돼 사상 최초로 투수와 지명타자 등 2개 포지션 부문에서 수상을 이뤘다.[102] 원래 베스트 나인 투표 규정이 투수 부문과 야수 부문의 중복 투표는 금지돼 있었지만 이 시즌에서 오타니의 활약상을 고려하여 9월 하순에 규정이 변경됐다.
12월 22일, 호리프로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1]
2017년 [ 편집 ]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였다. 2017년 12월 9일 7팀의 최종 후보 중에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 계약에 합의하였다. 오타니의 에이전트는 “LA 에인절스와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에인절스는 오타니가 메이저 리그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최선의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103]
오타니의 능력은 투수로서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도 오타니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 오타니가 던지는 패스트볼과 변화구 공략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애너하임 입단후 나온 TV 인터뷰 영상에서 오타니 본인은 고교시절 투수 보다 타자가 더 자신 있었다고 한다. “왜 나는 투수 평가가 더 높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미국에서 평가는 “투수 오타니”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시절 감독도 미국에서는 “투수 오타니” 만 생각했고 감독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비교적 일본구단들은 “타자 오타니”의 평가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드래프트 당시에는 투수로 지명)
플레이 스타일 [ 편집 ]
오타니의 투구폼(2013년)
일본 프로 야구에서 지극히 보기 드문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 선수이다. 퍼시픽 리그 주최 경기에서는 지명 타자를 해제하고 선발 투수이면서도 타석에 들어간 경우와 센트럴 리그 주최 경기에서는 선발 투수이면서도 주축을 치는 경우도 있다. 투수로서만 선발 등판하는 경우와 야수로서만(주로 지명타자나 우익수) 선발 출전하는 경우 외에도 투수로서 선발 출전하여 강판된 후에 야수로서 우익 수비에 오르는 형태,[104] 야수로서의 선발 출전과 경기 중간의 이닝부터 구원으로 등판하는 경우도 있다.[59]
투수 [ 편집 ]
오버핸드[105]에서 평균 구속 97 mph(156 km/h)[106], 최고 구속 165 km/h의 직구와 프로 입문 후에 던지기 시작한 평균 구속 약 139 km/h[107]의 포크볼을 축으로 날카로운 브레이크가 들어간 슬라이더[108]와 평균 구속 약 115 km/h[109]의 커브를 던진다.[11] 드물게 컷 패스트볼이나 체인지업도 투구에 끼워 넣는다.[11] 고등학교 시절엔 안정적인 투구폼과 체력을 과제로 삼았고[110] 고교 통산 145개의 탈삼진에 대해서 61개의 4사구를 기록하는 등 제구력에는 어려움이 있어[111] NPB 통산 볼넷 허용률[주 7] 은 3.3에 달했다. 닛폰햄 시절 포수로서 배터리를 구성했던 곤도 겐스케는 “리듬을 타면 확실히 코스대로 컨트롤할 수 있지만 볼넷 때문에 무너지는 실점 패턴에 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112]
야수 [ 편집 ]
야수로서도 매우 뛰어난 선수로도 알려져 있는데, 고교 통산 56개 홈런의 장타력과[113] 1루 도달 3.8초대의 준족,[114][115] 강한 어깨[115]를 갖춰 프로 구단 스카우트로부터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같은 유형의 3관왕을 노릴 수 있는 타자”[116], “마쓰이 히데키 이래의 장거리 타자”[114] 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로에 입문한 이후에도 그러한 평가는 변함없을 정도였고 오 사다하루는 “일본인으로서 나의 기록을 넘을 수 있는 뛰어난 선수”라고 말하고 있다.
지명타자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단적으로 말하면 대타로 4번 출전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집중하면서 경기에 임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117]
전문가에 의한 찬반 논쟁 [ 편집 ]
위에서 말한 ‘이도류’라는 기용법에 관해서는 투수와 타자 모두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었는데 장래에 투수와 타자 중 어느 한쪽을 전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전문가나 프로 선수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이도류 찬성측 [ 편집 ]
입단 직후의 오타니를 보며 “타자도 물론 좋겠지만 나는 뭐니뭐니해도 투수다. 여하튼 그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체격이 좋다. (신장도)194.5cm나 된다. 그러한 몸동작이 좋다. 그 움직임을 보면 ‘역시 메이저 리그의 투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118]
장래를 생각해서 투수와 타자 중 한쪽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면서도 “200승, 2000안타 중 어느 쪽인가 하고 말하지 말고 양쪽 모두 달성해서 명구회에 오면 된다. 이도류를 계속한다면 그 정도의 자세로 분발하면 된다”라고 말했다.[119]
“모처럼 자신이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새싹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 한 번 시켜 보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 스스로가 지면 된다”[120] 라고 이도류를 권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 모두 본인의 의사를 중시한 선택을 권했다. 마쓰이는 “가능하다면 양쪽 모두 계속하면 좋고 언젠가 어느쪽으로 결정한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121] 라고 말했고 다나카도 “좀처럼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납득할 때까지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122]
투수측 [ 편집 ]
이도류를 계속하길 권했는데 “그 정도로 배팅과 피칭이 할 수 있다면 대찬성이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걸 한다는 자체가 매력이다. ‘10년에 한 명꼴의 뛰어난 선수’라고 부를 사람은 곧잘 있지만 프로 야구 80년 역사에서 저런 선수는 처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123] 하지만 노무라는 2017년 4월 인터뷰에서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자칫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가 되는 거 아닌가”, “투수는 몸이 완전하지 않으면 던질 수 없다. 전력투구는 전신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디 한 군데의 부상도 나와서는 안 된다. 내가 감독이라면 오타니는 불만없이 투수로 기용하고 싶다. 타자는 언제라도 전향할 순 있지만 165 km를 던지는 선수는 없기 때문에”라고 의견을 바꿨다.[124]
“넘버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투수니까 넘버원이 될 가능성을 잡는게 좋다. (이도류는)프로 야구의 인기를 생각한다면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흥미롭겠지만 본인이 만약 메이저 리그에 가고 싶다고 하면 금방 발목을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122]
“많은 돈을 내고 영입할 선수에게 메이저 리그는 그런 위험이 많은 일은 하지 않는다. 각 팀 모두, 지명타자는 가장 몸값이 비싼 간판 타자가 맡을 것이고 수비할 곳도 없다. 모처럼 투수로서 가능성이 있으니 진심으로 메이저 리그를 노린다면 타자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125]
이도류 경험 선수
실제로 메이저 리그에서 이도류를 경험한 브룩스 키슈닉은 “여기에 오면 양쪽 모두를 시키는 일은 없다. 양쪽 모두를 하고 있으면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타구를 발목이나 발끝에 맞아서 골절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까. 특히 연간 500 ~ 2000만 달러나 버는 선수라면 우선은 무리이다”라고 말했다.[126][127]
대학 시절에 이도류 선수로서 활약했던 존 올러루드는 “아마도 프로팀은 오타니가 100마일을 던질 수 있다면 그를 지키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고 투수로서 던지게 하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비를 할 때는 무리한 자세로 던져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에 팔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126][127] 다만 베스트 나인을 2개 부문에서 수상한 2016년 오프에는 MLB 기구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전설의 탄생’으로서 오타니의 동시 수상을 알리는[128][129] 등 ‘이도류’ 기용을 염두에 두면서 오타니에 주목하는 메이저 리그 구단도 나타나고 있다.[130]
타자측 [ 편집 ]
타자에만 전념할 것을 권했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자였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그라운드에서 상대해 보지 보지 않은 거리감에서의 이야기이지만 그 정도의 타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도류는)투수를 하고 그 다음날에 외야수로 뛸 수 있다면 두 가지를 다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 이치로[131]
에피소드 [ 편집 ]
상세 정보 [ 편집 ]
출신 학교 [ 편집 ]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
선수 경력 [ 편집 ]
NPB
MLB
국가 대표 경력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일본 국가대표
수상·타이틀 경력 [ 편집 ]
타이틀 [ 편집 ]
수상 [ 편집 ]
NPB
MLB
아메리칸 리그 주간 MVP: 2회(2018년 4월 2일 ~ 4월 8일, 2018년 9월 3일 ~ 9월 9일)
아메리칸 리그 월간 신인 MVP: 2회(2018년 4월, 2018년 9월)
신인왕(2018년)
개인 기록 [ 편집 ]
투수 기록 [ 편집 ]
타격 기록 [ 편집 ]
그 외의 기록 [ 편집 ]
올스타전 출장: 4회 야수: 1회(2013년) 투수: 3회(2014년 ~ 2016년) [주 8] ※2016년에는 투수로서 선출됐지만 부상(오른쪽 가운뎃손가락 부상을 당한)에 의해 야수로서 출전
시즌 두 자릿수 홈런과 두 자릿수 승리: 2014년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MLB를 포함하면 베이브 루스 이래 96년 만의 기록)
시즌 두 자릿수 홈런과 두 자릿수 승리: 2016년 ※자신으로서는 2번째(두 번째 달성은 MLB 등 세계 프로 리그를 포함해도 사상 최초)
시즌 10승·10홈런·100안타: 2016년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MLB 등 세계 프로 리그를 포함해도 사상 최초) 시즌 10승·20홈런·100안타: 2016년
구속에 관한 기록 [ 편집 ]
165 km/h 2016년 10월 16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5차전(삿포로 돔) ※NPB 최고 속도 기록, NPB 플레이오프 최고 속도 기록, 퍼시픽 리그 최고 속도, 구원 투수 최고 속도 기록
164 km/h 2016년 9월 13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22차전(삿포로 돔) ※일본 프로 야구 정규 시즌에서의 최고 속도 기록, 선발 투수 최고 속도 기록
163 km/h 2016년 6월 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도쿄 돔)
162 km/h 2014년 7월 19일, 2014년 올스타전 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올스타전 최고 속도 2014년 10월 5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4차전(삿포로 돔)
160 km/h [주 9] 2014년 6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차전(삿포로 돔) ※퍼시픽 리그 첫 160 km/h
등번호 [ 편집 ]
11 (2013년 ~ 2017년)
(2013년 ~ 2017년) 17(2018년 ~ )
연도별 투수 성적 [ 편집 ]
2018년 시즌 종료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연도별 타격 성적 [ 편집 ]
2018년 시즌 종료 기준.
연도별 수비 성적 [ 편집 ]
연도 소속 투수 외야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2013 닛폰햄 13 2 7 0 1 1.000 54 75 7 1 1 .988 2014 24 8 23 1 1 .969 8 15 0 0 0 1.000 2015 22 15 29 1 0 .978 – 2016 21 9 23 1 2 .970 – 2017 5 3 5 0 0 1.000 – 2018 LAA 10 1 6 0 1 1.000 – NPB 85 37 87 3 4 .976 62 90 7 1 1 .990 MLB 10 1 6 0 1 1.000 –
2018년 시즌 종료 기준.
관련 정보 [ 편집 ]
저서 [ 편집 ]
관련 서적 [ 편집 ]
각주 [ 편집 ]
주해 [ 편집 ]
↑ 히라이즈미의 ‘히라’는 平(평평할 평)을 훈독 으로 읽은 것이고, 쇼헤이의 ‘헤이’는 平을 음독 으로 읽은 것이다. ↑ 긴테쓰 시절인 1953년에 투수로서 1회,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야수로서 4회 출전했다. ↑ 투구 이닝에 제한이 있는 올스타전에서는 선발 투수가 5이닝 이상 투구하지 않아도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다. ↑ 메이저 리그에서는 1918년에 베이브 루스 가 13승 11홈런을 기록했고 KBO 리그 에서는 1982년에 김성한 이 10승 13홈런을 기록했다. ↑ [82] 클라이맥스 시리즈 도입 이전인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를 포함하면, 1982년 세이부의 구도 기미야스 , 2006년 닛폰햄의 다르빗슈 유 에 이어 세 번째이다. ↑ 일본 이외의 프로 리그를 포함해도 같은 시즌에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것은 베이브 루스(1918년, MLB, 13승·11홈런)와 김성한(1982년, KBO, 10승·13홈런) 등의 사례 밖에 없었고, 자신의 두 번째 달성은 오타니가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또 ‘10승·100안타·20홈런’은 세계적으로 봐도 과거에 사례가 없는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 9이닝 당 볼넷 허용 개수를 말한다. ↑ 외야수 선출: 2013년, 투수 선출: 2014년 ~ 2016년, 지명 타자 선출: 2017년 ↑ 아마추어 시절(고교 시절)에도 기록한 적이 있어서 아마추어 첫 160 km/h를 측정하는 한편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아마추어 최고 속도 기록이다.
출전 [ 편집 ]
오타니, 77년 만에 투수·타자로 더블헤더 출전…결과는 악몽
1차전 선발 투수·2번 타자, 2차전은 2번 지명타자로 출격 투수로 홈런 3개 허용하며 패전…타격에선 8타수 1안타 침묵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 [USA투데이=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야구천재’ 오타니 쇼헤이(28·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가 77년 만에 투수와 타자로 더블헤더를 치르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투타에서 모두 부진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타니는 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와 더블헤더 1차전에서 선발 투수 2번 타자, 2차전에서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MLB에서 한 선수가 더블헤더에 선발 투수와 선발 야수로 모두 출전한 건 1945년 9월 필라델피아 필리스 짐미 폭스 이후 77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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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차전 선발투수로 3이닝 8피안타(3홈런) 1볼넷 2탈삼진 4실점으로 난타당했다.
오타니는 1회부터 홈런 2개를 헌납했다. 상대 팀 선두 타자 맷 카펜터에게 솔로 홈런을 내준 뒤 2사 후 글레이버 토레스에게 우월 솔로포를 얻어맞았다.
3회엔 에런 저지에게 또다시 좌월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4회 연속 안타를 내준 오타니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강판했다. 팀은 1-6으로 패해 패전투수가 됐다.
시즌 (3승) 4패째를 떠안은 오타니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3.45에서 3.99로 치솟았다.
오타니는 타석에서도 부진했다. 그는 5타수 1안타 삼진 2개로 침묵했다.
5회 좌중간 안타를 때린 오타니는 1루에서 견제사로 아웃되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1차전에서 자존심을 구긴 오타니는 2차전에서도 3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으로 부진했다.
하루 두 경기에서 8타수 1안타를 친 오타니의 타율은 0.249에서 0.244로 떨어졌다.
에인절스는 8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활약한 상대 선발 제임스 타이온을 공략하지 못하며 1-2로 패해 8연패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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