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소매 붉은 끝동 | [옷소매붉은끝동] 1~4회 요약본📺 ‘옷소매’ 몰아보기, Mbc 211210 방송 100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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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매주 금토 밤 9시 50분 방송.

#옷소매붉은끝동 #이준호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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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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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VVE
https://www.wavve.com/player/vod?contentid=M_EP202111030007.1\u0026onair=n\u0026order=new\u0026page=1\u0026progra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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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 – 나무위키:대문

제목인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녀를 상징한다. 궁녀들은 옷소매 끝을 붉게 물들여 입어 홍수(紅袖)라고 불렸다. 그와 함께 누군가의 아내나 딸로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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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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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지금무료) |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방송종료 2021.11.12~2022.01.01 –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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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rogram.imbc.com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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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옷소매 붉은 끝동》(영어: The Red Sleeve)은 2021년 11월 12일부터 2022년 1월 1일까지 UHD로 방송된 MBC 금토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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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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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입덕’ 불렀네…옷소매 붉은 끝동, 평생의 순정 – 한겨레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끝났지만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사진은 드라마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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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3/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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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 네이버 시리즈

옷소매 붉은 끝동. 평점9.7. 관심. 0; 공유; 단행본 보기. 완결; 로맨스; 글강미강; 출판사청어람로맨스; 12세 이용가. 도깨비보다 무섭다는 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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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eries.naver.com

Date Published: 7/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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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자 취미로 쓴 글…드라마 신기해 …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이 아닌 궁녀의 시선에서 이들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궁녀 덕임이 왕의 총애로 희로애락을 느끼는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www.hankyung.com

Date Published: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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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붉은끝동] 1~4회 요약본📺 '옷소매' 몰아보기, MBC 211210 방송
[옷소매붉은끝동] 1~4회 요약본📺 ‘옷소매’ 몰아보기, MBC 211210 방송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옷 소매 붉은 끝동

  • Author: 엠뚜루마뚜루 : MBC 공식 종합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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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2.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FxM6wALN6RA

옷소매 붉은 끝동

《옷소매 붉은 끝동》(영어: The Red Sleeve)은 2021년 11월 12일부터 2022년 1월 1일까지 UHD로 방송된 MBC 금토 드라마이다.

기획 의도 [ 편집 ]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

제작진 [ 편집 ]

연출 [ 편집 ]

송연화 : MBC 수목 미니시리즈 《내가 가장 예뻤을 때》(공동연출) 등 연출

극본 [ 편집 ]

등장인물 [ 편집 ]

주요 인물 [ 편집 ]

이준호 : 이산 역 – 훗날 ‘정조’

이세영 : 성덕임 역 – 동궁의 지밀 생각시 → 대전의 나인 → 의빈 성씨(정조의 후궁)

강훈 : 홍덕로 역 – 이름 ‘홍국영’, 이산의 배동, 겸사서 → 도승지

왕실 사람들 [ 편집 ]

제조상궁과 궁녀들 [ 편집 ]

박지영 : 제조상궁 조씨 역

지은 : 강월혜 역 – 동궁의 지밀나인, 덕임의 선배, 제조상궁 조씨의 육촌조카

차미경 : 박 상궁 역 – 세답방 상궁, 영희의 스승상궁

산의 사람들 [ 편집 ]

오대환 : 강태호 역 – 이산의 호위무사, 정5품 좌익위이자 익위사의 수장

문정대 : 서계중 역 – 이름 ‘서명선’

배제기 : 정재화 역 – 청선군주의 남편, 흥은부위

김강민 : 김두성 역 – 청연군주의 남편, 광은부위

윤효식 : 동궁내관 역 – 이산의 시중을 담당하는 내관

덕임의 사람들 [ 편집 ]

장혜진 : 서상궁 역 – 동궁의 지밀상궁 → 대전의 지밀상궁, 덕임의 스승상궁

이민지 : 김복연 역 [1] – 덕임의 동무, 대전의 세수간 나인

– 덕임의 동무, 대전의 세수간 나인 하율리 : 배경희 역 [2] – 덕임의 동무, 빈궁의 침방나인 → 중궁전 침방나인 → 제조상궁

– 덕임의 동무, 빈궁의 침방나인 → 중궁전 침방나인 → 제조상궁 이은샘 : 손영희 역 [3] – 덕임의 동무, 동궁의 세답방 나인 → 대전의 세답방 나인

– 덕임의 동무, 동궁의 세답방 나인 → 대전의 세답방 나인 양병열 : 성식 역 – 덕임의 오라버니

산의 정적들 [ 편집 ]

조희봉 : 홍정여 역 – 이름 ‘홍인한’, 좌의정, 혜경궁 홍씨의 작은아버지, 이산의 외종조부

서효림 : 화완옹주 역 – 영조의 막내딸, 이름 ‘용완’, 산의 고모, 사도세자의 누이

권현빈 : 정백익 역 – 이름 ‘정후겸’, 화완옹주의 양자

그 외 인물 [ 편집 ]

김자영 : 권 상궁 역 – 동궁전 지밀상궁

옥주리 : 대전 상궁 역

김진옥 : 상궁 역

김오복 : 시강관 역

박정언 : 영빈 이씨의 지밀상궁 역

권혜령 : 생각시 역

이가은 : 삼월이 역

이주영, 이하영 : 나인 역

정예녹, 이지완 : 홍덕로를 좋아하는 나인 역

전고은, 장예림 : 동궁전 나인 역

최민 : 판윤대감 역

임정옥

오영미 : 최상궁 역

황다경, 노수림 : 궁녀 역

노수림 : 궁녀 역

서정후 : 취객 역

남현주 : 정경부인 역

유필란

김륜희

김진서 : 신하 역

이원찬 : 군사 역

김상현 : 강월혜에게 죽임을 당한 남자 역

박세기 : 강월혜가 사람을 죽이는걸 본 목격자 역

전여진 : 중궁전 상궁 역

유옥주 : 감찰상궁 역

서희 : 능행 가는 궁녀들을 바라보는 여인 역

김미연 : 능행 가는 궁녀들을 바라보는 여인 역

최나무, 고하은 : 나인 역

강태우 : 활과 약포를 지키는 군사 역

신예온 : 동궁전 나인으로 위장한 여자 역

민상우 : 수문장 역

장의돈 : 수어사 역

노효윤 : 행수기생 역

노현석 : 동덕회 역

김준성 : 박제가 역

미상 : 은전군 역 – 이산의 이복동생, 사도세자의 아들

김병춘 : 부교리 역 – 이름 ‘심휘원’ (심환지)

윤영목 : 홍정여에게 사약을 내리는 남자 역

권구남, 서동민 : 신하 역

조남희 : 이판대감 역

이서 : 화빈 윤씨 역 – 정조의 후궁

최교식 : 상인 역

길성주 : 미육 역 – 화빈 윤씨의 나인

박승아 : 양순 역 – 화빈 윤씨의 나인

이연선 : 대비전 상궁 역

오지영 : 의녀 역

박용 : 어의 역

한겨울, 김가현, 신해니 : 간택에 오른 여인 역

안세민 : 성국민 역 – 성식의 아들, 의빈 성씨의 조카

미상 : 경종 역

아역 [ 편집 ]

이주원 : 어린 이산 역

이설아 : 어린 성덕임 역

최정후 : 어린 홍덕로 역

윤혜빈 : 어린 김복연 역

이서현 : 어린 배경희 역

조시연 : 어린 손영희 역

이승우 : 어린 성식 역

박다온 : 문효세자 역 –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들

이다경 : 장화홍련전의 홍련 역

윤서진

엄주연 : 장화홍련전의 뒷부분을 듣고싶어하는 생각시 역

안예림

민서영 : 생각시 역

정준, 위현우 : 대전소환내관 역

구준우 : 소환내관 역

최혜서, 이소현, 이설, 김수현, 신예원, 장시유, 이시경, 이유경, 촤서윤, 김태린, 박하은, 최어진, 이나율, 옥소린, 전은주, 문수연, 이경민, 최윤서, 이다연 : 축제 생각시 역

윤서연 : 서은비 역 – 생각시

이승아 : 숙금 역 – 죽은 생각시

오채아 : 아영 역 – 생각시

이서우 : 연주 역 – 생각시

고재경 : 꼬마 남종 역

박지율 : 영희의 여동생 역

김준 : 약포를 주운 곳을 알려주는 아이 역

특별출연 [ 편집 ]

남기애 : 영빈 이씨 역 – 영조의 후궁, 사도세자의 어머니, 이산의 할머니 (1회)

하석진 : 장화홍련전의 사또 역 (1회)

도상우 : 사도세자 역 (2회)

이순재 : 노인 역 (17회)

시청률 [ 편집 ]

최저 시청률 과 최고 시청률 은 시청률 조사회사와 지역별로 시청률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21년 회차 방송일 TNmS 시청률[4] AGB 시청률[5] 대한민국(전국)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제1회 11월 12일 – 5.7% 5.7% 제2회 11월 13일 4.8% 5.6% 5.2% 제3회 11월 19일 6.6% 7.0% 6.3% 제4회 11월 20일 6.3% 7.5% 7.6% 제5회 11월 26일 6.7% 8.8% 8.1% 제6회 11월 27일 – 9.4% 8.5% 제7회 12월 3일 – 10.7% 10.5% 제8회 12월 4일 7.8% 10.5% 10.3% 제9회 12월 10일 8.9% 10.9% 10.9% 제10회 12월 11일 9.1% 10.2% 10.2% 제11회 12월 17일 10.8% 12.8% 12.7% 제12회 12월 18일 10.2% 13.3% 13.6% 제13회 12월 24일 10.8% 12.8% 12.8% 제14회 12월 25일 – 13.0% 12.7% 제15회 – 14.3% 13.8% 2022년 제16회 1월 1일 12.3% 17.0% 16.4% 제17회 11.8% 17.4% 16.8% 평균 시청률 – 10.99% 10.71%

수상 및 후보 [ 편집 ]

연도 시상식 부문 수상자(작) 결과 출처 2021 MBC 연기대상 대상 준호 후보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수상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이세영 베스트 커플상 준호 & 이세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강훈 후보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박지영 공로상 이덕화 수상 남자 조연상 오대환 후보 여자 조연상 장혜진 수상 남자 신인상 강훈 여자 신인상 하율리 후보 작가상 정해리 수상 올해의 드라마상 옷소매 붉은 끝동 2022 제5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드라마 작품상 후보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준호 수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이세영 후보 TV부문 연출상 정지인 TV부문 남자 조연상 이덕화 TV부문 여자 조연상 장혜진 틱톡 인기상 준호 수상 이세영 후보 제49회 한국방송대상 TV드라마부문 작품상 옷소매 붉은 끝동 후보

연장 및 편성 변경 [ 편집 ]

참고 사항 [ 편집 ]

동시간대 경쟁 금토드라마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정조 입덕’ 불렀네…옷소매 붉은 끝동, 평생의 순정

[한겨레S] 정조와 의빈, 드라마와 역사 사이

15년간 거절당하고 이룬 사랑…의빈 성씨 묘에 정조가 적은 ‘역사’

5년 동안 자녀 낳고 다정했지만 자식도, 만삭 아내도 하늘로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끝났지만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사진은 드라마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가히 신드롬이다. (MBC) 드라마 (이하 )이 종영한 지 2주 가까이 지났지만,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1일 시청률 17.4%로 막을 내렸지만, 오티티(OTT) 서비스 ‘웨이브’와 ‘쿠팡 플레이’에선 여전히 가장 많이 보는 콘텐츠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 ‘덕후’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엔 아직 하루에도 수백 건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이준호·이세영 등 배우들이 이달 초 진행한 종영 라운드 인터뷰 기사는 새로 한 것인 양 매일같이 포털 메인에 걸린다. “ 보다가 정조에 입덕했다(빠졌다)”는 고백도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지난해 4분기 도서 판매량 집계를 보면, 정조의 비밀 어찰을 모아 설명한 (안대회)가 3분기보다 466.7% 많이 팔려나갔고, (김준혁, 30.9%) (설민석, 33.3%) (박현모, 66.7%) 등 정조를 다룬 다른 서적의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신동욱 역, 57.1%)도 3분기보다 많이 판매됐다. 예스24 쪽은 “, 은 스테디셀러였으나 드라마 방영 후 판매율이 더 높아졌으며, 나머지 도서도 드라마 방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체 이 어땠길래 이 난리일까. 드라마는 정조의 세손 시절부터 숨질 때까지를 배경으로, 정조와 후궁 의빈 성씨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두 사람을 다룬 드라마는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 두드러지게 차별화되며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부르는 대목은 의빈이 정조의 구애를 두 차례나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일까? 이를 비롯해 속 이야기와 실제 역사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 몇 가지를 살펴봤다.

드라마에서 정조는 숨을 거두면서, 끝내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던 의빈에게 “날 사랑해라, 제발 날 사랑해라”라며 눈물을 흘린다. 에서 정조는 세손 시절과 영조 3년상을 치른 이후 의빈에게 청혼했지만 두 차례 모두 거절당한다. 그러다 다른 후궁인 화빈 윤씨가 의빈을 괴롭히는 걸 막으려고 한 세 번째 구애로 사랑을 이루게 된다.

과연 조선 시대에 세손이나 왕이 구애하는데 궁녀가 이를 거절하고, 심지어 왕은 이를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을까? 역사학자들조차 “전무후무하다”고 말하는 이 사건은 의빈이 눈을 감은 뒤 정조가 직접 지은 ‘어제의빈묘표지명’에 기록돼 있다. 묘표는 죽은 이의 이름과 이력 등을, 묘지명은 그를 칭송하는 글을 묘비 등에 새긴 것을 말한다. 이 비석의 앞면은 박명원, 뒷면은 서용보의 글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의 설명을 보면 “조선에서 배우자를 위해 비석의 문장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특히나 “국왕이 글을 짓고 당대 명필로 이름 높던 이들이 글씨를 쓴 것은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경우”다. 정조는 이 글 말고도 의빈의 3년상을 치른 이후까지 ‘어제의빈치제제문’, ‘어제의빈삼년내각제축문’, ‘어제의빈삼년후각제축문’ 등 여러 제문·축문을 직접 지어 의빈의 죽음을 비통해하면서 절절한 사랑을 표현했다.

정조가 의빈 성씨의 장례를 지낼 때 직접 지은 ‘어제의빈묘표지명’의 표지(왼쪽)와 본문 일부(오른쪽). 이 쪽에선 왼쪽 세 줄가량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디지털 장서각 http://jsg.aks.ac.kr/) 소장 자료.

특히 ‘어제의빈묘표지명’에서 정조는 “처음 의빈에게 승은을 내리려 할 때 ‘효의왕후가 아직 자식을 보지 못했다’며 죽기를 각오하고 울며 거절하자 감동해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15년 뒤 널리 후궁을 들인 뒤 다시 명하였으나 또 고사했다. 이에 의빈의 하인을 벌한 뒤에야 명을 따랐고, 그달에 임신을 하여 임인년(1782년, 정조 6년) 9월에 왕세자가 태어났다”고 밝혔다. 정조가 31살 때로, 첫 자녀였다. 다른 기록들과 함께 살펴보면, 정조보다 1살 어린 의빈은 정조의 외조부인 홍봉한 집 청지기의 딸 성덕임으로, 창덕궁에 있던 혜경궁 홍씨의 처소 궁녀로 10살(1762년) 때 입궁했다. 그해는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때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영조가 옮겨간 경희궁으로 거처를 따라 옮기면서 외로웠을 혜경궁이 어린 의빈을 딸처럼 아꼈다고 한다. 정조와 의빈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효의왕후와 결혼한 지 4년이 넘도록 후사가 없었던 15살 세손 정조였기에 의빈이 구애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이를 수긍하고 15년을 기다렸을까? 극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지점에서 정조는 ‘조선의 로맨티시스트’로 등극한다. “(마음속에서) 의빈을 후궁의 반열에 둔 지 20년” “산달에 기력이 가라앉자 매일 세수할 때 직접 가서 보고 살폈다”(이상 ‘어제의빈묘표지명’) “병이 이상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부터 국사(후계를 잇는 일)를 의탁할 데가 더욱 없게 되었다”(, 1786년 9월14일) 같은 애절한 기록은, 그가 진심으로 의빈을 사랑했기에 더 고집을 부리거나 처벌하지 않았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 비춰보면, 자기 마음대로 하기엔 정조의 입지가 불안했다는 풀이도 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색을 밝힌다는 것이었고, 정적인 노론 벽파가 그의 처소에까지 세작을 심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세손 자리에서 끌어내릴 꼬투리를 잡으려 들던 시절이었으므로 스스로를 지키려면 그래야만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정조와 의빈 성씨가 큰아들 문효세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 <문화방송> 제공

어쨌든 두 사람은 1782년 문효세자를 낳았고, 정조는 직접 빈호를 지어 내리며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이듬해엔 옹주도 출산했다. 하지만 옹주는 태어난 지 2달여 만에 갑작스레 숨졌다. 생후 22개월 때 세자로 책봉된 문효도 5살인 1786년 5월 홍역으로 목숨을 잃었고, 임신 중이던 의빈은 같은 해 9월 34살에 눈을 감았다. 당시로선 늦은 나이의 임신으로, 임신중독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런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왜 이제야 널리 알려지게 됐을까? 이미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연구교수는 “후궁은 정치나 사회 변화와 크게 관련이 없기 때문에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연구가 되지 않는 관심 밖의 인물들”이라며 “여성 사회와 관련된 자료 자체가 별로 없고, 있어도 한글로 번역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어제의빈묘표지명’ 등은 정조가 직접 쓴 글을 모은 60권짜리 에 실려 있지 않다. 아직 정식 한글 번역본도 없으며, 그나마 한자 원문 피디에프(PDF) 파일을 제공하는 디지털 장서각 사이트에서도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제의빈묘표지명’ 하나 뿐이다.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쓴 강미강 작가는 에 “(소설을 쓰기 전 우연히) 논문을 보고 이런 내용을 알게 됐다. 마침 한문법을 공부하던 시기여서 사전을 찾아가며 어찌저찌 해석을 해서 집필하게 됐다”고 밝혔다.

드라마에는 노론 벽파와 결탁한 궁녀 비밀조직 광한궁이 정조 즉위 뒤 대전을 습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전군이 배후로 지목됐고, 정조는 끝내 은전군을 죽인 뒤 괴로워한다. 드라마를 쓴 정해리 작가는 “행궁에서의 시해 시도 사건은 드라마상의 순수 창작이지만, 대전에서 벌어진 역모의 모티프는 실제 ‘정유역변’(정조 시해 미수 사건)이다. 월혜는 사료 속 실존 인물로 역모의 공모자”라고 에 밝혔다.

‘역적의 아들’인 정조는 정적들한테 세손 시절부터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사진은 정유역변에 가담했던 궁녀 강월혜에 기반한 <옷소매 붉은 끝동> 속 월혜가 정조를 시해하려는 장면. <문화방송> 제공

‘역적의 아들’인 정조는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적들한테 세손 시절부터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그의 세손시절 기록인 엔 “이때 적도(賊徒)와 역당(逆黨)들이 흉모(凶謀)를 빚어내고 얽어내어 위태롭게 만들려는 계략과 협박하려는 꾀가 날로 더욱 급박하게 이루어지니, 나는 낮에는 마음을 졸이고 밤에는 방 안을 맴돌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중략) 흉도들이 내가 거처하는 집을 엿보아 말과 동정(動靜)을 탐지하여 살피지 않는 게 없었기 때문에 또한 옷을 벗고 편안히 잠을 자지도 못하였다”(1775년 윤 10월5일) 같은 기록이 심심찮게 존재한다.

드라마가 따온 정유역변의 시작은 정조 1년인 1777년 7월28일이다. 을 보면, 이날 정조는 경희궁 존현각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는데, 철편(도리깨 모양의 철제 무기)을 든 정조의 호위군관 강용휘와 칼을 든 자객 전흥문이 정조를 죽이려고 존현각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뜯고 모래를 뿌렸다. 이날 역모는 실패했지만,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이 하루의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영화가 인데, 은 이후의 역사를 좀더 버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조는 창덕궁으로 이궁하는데, 강용휘와 전흥문은 8월11일 다시 한 번 정조를 암살하려고 궁궐 담장을 넘으려다 포졸들에게 잡히고 만다. 이때 이들과 내통해 도운 것이 강용휘의 딸 강월혜로, 에선 광한궁 수장인 제조상궁 조씨의 조카이자 자객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월혜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역사에선 붙잡혀 옥살이를 하다 1782년 흑산도에 노비로 보내진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이복동생 은전군을 죽인 뒤 괴로워하는 정조.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문화방송> 제공

이 사건을 꾸민 것은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는 데 일조한 홍계희의 손자 홍상범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추국하는 과정에서 이들 일당이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전군 이찬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역모가 발각된다.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은전군이 이들에게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지만 노론을 비롯한 대신들은 그의 사형을 거세게 요구했다. 정조는 이를 거부했으나, 대신들의 끈질긴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사약을 내린다. 에서 정조가 대취해 좌익위와 서 상궁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웃으며 눈물을 닦아내는 명장면, “역당들의 연판장에서 은전군의 이름이 나왔다 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도 윤허하실 수밖에요”라는 내관의 말에 “아우만은 절대 죽이지 않겠다 몇 날을 버티셨는데, 지금 그 속이 오죽하실지…”라며 안타까워하는 서 상궁의 대답은 정조의 그 슬픔을 그린 것이다.

에서 정조는 광한궁과 화완옹주의 계략으로 영조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이어 정조를 따르는 무리인 ‘동덕회’가 역당으로 몰리면서 정조는 세손에서 폐위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영조가 정조를 끝까지 지켜 보위에 올리겠다고 사도세자와 약속한 ‘금등지사’(억울하거나 비밀스런 일을 남긴 글)를 찾아내 정조를 구하는 게 궁녀였던 의빈이다.

결론부터 보자면, 금등지사는 이때 등장한 문서도 아니고 내용도 다르다. 정조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등의 책을 낸 김준혁 한신대 교수(한국사)는 “영조의 금등은 사도세자가 죽은 뒤 영조가 정조와 채제공을 불러 ‘그 죽음엔 나도, 사도세자도 잘못이 없었다’는 취지로 쓴 것으로, 그의 첫 번째 왕비였던 정성왕후의 위패를 받치는 방석 안에 숨겨놨었다. 또한 정조가 이를 공개한 것은 1793년 수원 화성 축성을 준비할 때로, 축성에 반대하는 노론의 여론을 잠재우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금등지사를 찾아낸 영조. 금등지사는 실재했지만, 드라마와는 다른 내용이다. <문화방송> 제공

영조 때부터 신임이 두터웠던 남인 채제공은 정조 17년(1793년) 영의정에 오르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조사하고 관련자를 징계하라는 상소를 올린다. 노론 벽파를 중심으로 조정에선 채제공을 벌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정조는 “금등 속의 말은 하나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하나는 지극한 효성에서 나온 것”이라며 ‘혈삼혈삼 동혜동혜 수시금장천추 여회귀래망사(血衫血衫, 桐兮桐兮, 誰是金藏千秋, 予懷歸來望思)라는 금등의 일부 구절을 공개한다. 8월8일치 국역본은 이를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 동(桐, 오동나무)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하겠는가. 천추에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뒤쪽 두 구절은 “누가 안금장, 차천추(한나라 무제의 충신들)인가. 내 죽은 자식을 그리워한다”로 보는 연구가 많다. 어쨌든 핵심은, 정성왕후의 죽음을 슬퍼해 피눈물을 흘려 옷소매를 적실 정도로 효심이 깊은 사도세자였고, 영조는 공식적으로 그를 역적이라 못박은 것과 달리 신하들의 모함에 못 이겨 그런 아들을 죽게 한 것을 후회한다는 내용이다. 김준혁 교수는 “채제공을 벌하라는 근거가 사라진 노론 벽파는 더는 이런 주장을 하지 못했고, 정조는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다시 캐는 대신 화성 축조에 이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으로 타협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광한궁과 동덕회는 실재했던 조직일까? 우선 광한궁 같은 궁녀의 비밀 정치조직은 드라마적 상상으로 보인다. 심용환 역사엔(N)교육연구소 소장은 유튜브 채널 ‘현재사는 심용환’에서 “조선은 왕이 신하와 토론·숙의를 해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거기에 궁녀나 환관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특히 (조선처럼) 성적 위계가 분명한 사회에서 궁녀의 정치세력화는 불가능하다”며 “더구나 (정치적인 위력을 보이려면) 당상관(정3품) 이상은 돼야 하는데, (궁녀 가운데 가장 높은) 제조상궁이 정5품이므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동덕회는 정조가 즉위한 뒤 자신을 도운 이들과 함께 꾸린 모임이다. 드라마 속 동덕회 회동 장면. <문화방송> 제공

광한궁과 달리 동덕회는 실제로 있었다. 다만, 세손 시절부터 뜻을 함께 하며 정조를 도왔다는 드라마 속 설정과 달리 동덕회는 정조가 즉위한 이후 결성됐다. 그 계기는 정조의 대리청정이었다.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드라마에서 좌의정은 “세손은 누가 노론인지 소론인지 알 필요가 없고, 이조판서와 병조판서에 누가 좋은지 알 필요가 없으며, 조정의 일은 더더욱 알 필요가 없다”며 반발한다. 이는 에 기록돼 있는 좌의정 홍인한(혜경궁의 작은아버지, 정조의 작은외조부)의 실제 발언으로 ‘삼불필지설’ 즉, 알 필요 없는 세 가지로 불리기도 한다.

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는 장차 나라를 운영할 사람에게 정책 조율(당파)에도, 문무관 인사와 국방(이판과 병판)에도, 국정 지휘(조정의 일)에도 개입하지 말고 대신들이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라는 것으로, 정조뿐만 아니라 영조까지 능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82살에 기억력과 판단력이 온전치 못했던 영조는 홍인한을 벌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뒀다.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홍국영은 이러다 대리청정은커녕 왕위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동궁시강원 사부들과 뜻을 모아 소론 핵심인물인 서명선에게 홍인한의 탄핵 상소를 부탁한다. 이 상소를 올린 날이 1775년 12월3일, 영조가 이를 받아들이고 정조가 공식적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한 게 일주일 뒤인 12월10일, 영조의 뒤를 이어 정조가 등극한 게 이듬해 3월10일이었다. 정조는 이후 홍국영과 서명선, 동궁시강원 사부들과 동덕회를 만들어 매년 12월3일마다 즐겼는데, 이는 위태로웠던 시절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조는 이들에게 ‘보종시’, 즉 어떤 일이 있어도 사약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약속은 에서 기세등등한 홍덕로(홍국영. 덕로는 홍국영의 자)를 연상시킨다. 드라마에서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는 잘못을 저지른 뒤에도 당당히 내뱉는 “그러니 두고 보십시오. 저하께서 절 용서하시는지, 아닌지”다. 드라마의 홍덕로는 어린 시절, 정조를 감시하라며 영조가 들인 배동이다. 그런데 영조가 읽지 말라고 한 금서를 읽은 일이 탄로나 위험에 처한 정조의 목숨을 구한 의빈의 공을 가로챈 덕에, 홍덕로는 정조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의중을 거스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덕로 홍국영은 단시간에 정조의 최측근이 된 뒤 자신의 동생을 후궁으로 들이면서 승승장구했다. 사진은 드라마 속 홍덕로의 모습. <문화방송> 제공

역사 속 홍국영은 달랐다. 노론 벽파 홍인한과 같은 집안에서 정조보다 4년 일찍 태어났지만, 기생집과 노름판을 전전하는 아버지 탓에 그는 어린 시절 놀기를 좋아했고 왈패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의 호소로 공부를 시작해 25살인 1772년 과거에 급제했다. 하지만 급제 전 아버지가 홍인한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한 일로 원한이 깊어 그쪽 당파로는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예문관에서 일하며 영조의 눈에 들었고, 1774년 세손시강원 설서에 임명되면서 정조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등은 영조와 정조 모두 인물 좋고 머리 좋은 홍국영을 매우 좋아했다고 적고 있는데, 영조가 똑똑한 홍국영을 정조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려고 보냈다는 풀이가 많다. 그는 순식간에 정조의 최측근 자리를 차지했는데, 드라마에서처럼 궁녀들의 호의를 사 각종 정보를 빼내 정조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만난 지 2년 만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홍국영은 도승지로 고속승진을 했다. 금위대장, 훈련대장, 숙위대장 같은 국왕 호위·수도 방어 책임자 역할도 겸직하며 승승장구했다. 정조 2년인 1778년엔 13살 된 여동생을 정조의 첫 번째 후궁(원빈 홍씨)으로 들이면서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궁에 들어간 지 1년이 채 못돼 원빈이 숨진 1779년 5월7일의 이다. “홍국영의 방자함이 날로 극심하여 온 조정이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홍씨(원빈)의 빈장(주검을 임시로 안치해 본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는 것)에 관한 절차를 예관(禮官)이 모두 참람한(분에 넘치는) 예(例)를 원용하였고 송덕상은 마땅히 공제(公除. 임금이나 왕비가 죽은 뒤 일반 공무를 중지하고 26일 동안 조의를 표하는 일)가 있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또 홍국영은 정조의 조카를 죽은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왕의 본관인 완산주(전주)와 자신의 본관인 풍산에서 한 글자씩을 딴 ‘완풍군’에 봉해, 그때까지 자식이 없었던 정조의 후계자로 삼도록 했다. 급기야, 효의왕후가 원빈을 독살했다고 생각해 왕후의 독살을 시도했다가 들통난다. 하지만 정조는 약속을 지켰다. 그를 강릉으로 유배만 보냈을 뿐 죽이지 않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홍덕로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 전 전 참회와 반성을 한다. 하지만 홍국영은 그러지 않았고, 화병에 시달리다 정조 5년(1781년) 숨졌다. 34살이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홍덕로는 죽기 직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문화방송> 제공

―궁녀의 옷소매 끝동이 붉은 것은 왕의 여인이라는 징표다?

아니다. 궁녀는 소매 끝동을 나인은 붉은색, 상궁은 푸른색으로 해 구분했는데 붉은색 옷소매를 ‘홍수’(紅袖)라고 불렀다. 이에 홍수는 상궁이 안 된 젊은 궁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의빈이 동궁의 궁녀 출신이다?

아니다. 대부분 혜경궁 홍씨 처소에서 지냈고, 화빈이 들어온 뒤엔 그곳에서도 잠시 일했다.

―의빈이 필사에 참여했다?

맞다. 정조의 동생인 청연·청선군주, 친구인 영희·경희·복연과 함께 했다.

―정조가 활을 잘 쐈고, 마지막 화살은 일부러 과녁을 비켜 갔다?

맞다. 50발 가운데 마지막은 겸양의 미덕을 보이고자 허공으로 날렸다.

―정조가 호랑이 사냥을 했다?

아니다. 다만, 조선 시대에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심했던 건 사실이다.

―화완옹주는 정조가 세손 때 밤마다 술집에 드나든다고 음해했다?

맞다. 다만, 영조에게 직접 이른 것이 아니라 수하들을 풀어 시중에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대신의 조복은 직접 사비로 마련해야 했다?

왕이 하사하기도 하고, 직접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조는 치매를 앓았나?

기억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는 등의 기록으로 미뤄볼 때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조혜정 기자 [email protected]

*기록에 적힌 내용과 혼돈을 일으키지 않도록 한국식 나이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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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보다 무섭다는 왕이 있었다. 가늘고 길게 살고픈 궁녀도 있었다.이상스레 서로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다가섰다. 그래도 다가서지 않았다.어렵고 애매한 한 발자국씩을 나누며 습관처럼 제자리를 지켰다.알쏭달쏭한 시절은 기쁨과 배신으로 어지러이 물들어 이지러지고,이별과 재회는 어색한 질투와 상실감을 동반하였다.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었다.이윽고 무너진 감정의 둑은 운명을 뒤흔들 홍수가 되었다.“내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너를 마음에 두었다. 그래서 너여야만 한다.”하지만 선뜻 붙잡지 못할 붉은 옷소매가 달콤할 수만은 없고,오히려 그 끝동은 오래도록 별러온 양 새침하게 밀고 당길 따름이었다.

[단독]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자 “취미로 쓴 글…드라마 신기해” [인터뷰+]

‘옷소매 붉은 끝동’ 드라마 인기

원작 소설도 베스트셀러 역주행

“컵라면 익기 기다리며 떠오른 제목”

/사진=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스틸

웹툰으로도 제작된 ‘옷소매 붉은 끝동’/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진=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스틸

소설 ‘옷소매 붉은 끝동’/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진=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스틸

“제 마음이 가는대로 살고 싶다”는 궁녀와 “넌 궁녀니 나의 것”이라면서도 마음을 강요하지 않았던 왕세자의 로맨스에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다.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꼽히는 ‘정조-의빈 로맨스’를 기반으로, 이준호(이산 역)와 이세영(성덕임 역)의 호연과 탄탄한 만듦새로 호평을 얻으며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지난달 12일 5.7%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가구기준)으로 시작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 10일 방송된 9회 시청률은 10.9%까지 치솟았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12.2%를 기록했다.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원작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와 함께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웹툰과 웹소설도 열람자수만 약 65만 명, 조회수 약 850만 회(웹툰, 웹소설 합산)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교보문고 12월 2주 베스트셀러에도 소설 분야 13위에 진입, 역주행을 기록 중이다.정조와 의빈 성씨의 로맨스를 담은 작품은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방영된 MBC ‘이산’에서도 이들의 로맨스를 담으면서 사랑받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이 아닌 궁녀의 시선에서 이들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궁녀 덕임이 왕의 총애로 희로애락을 느끼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궁궐 안에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 한 명의 인간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평이다.원작자인 강미강 작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첫 작품이었음에도 탄탄한 전개와 섬세한 필체로 호평받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 ‘잔나비 공주 애사’, ‘속임수 왕후’ 등을 집필했다.강 작가는 서면으로 진행된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취미로 쓰던 글을 출판사에 투고해 종이책으로 출판됐다”면서 “처음 책을 낼 땐 서점 한구석에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올해엔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옷소매 붉은 끝동’이란 독특한 제목에 대해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불쑥 ‘제목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후일담을 밝히기도.연일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에 대해서 “신기하다”면서 “특히 독자들이 덕임 역할을 이세영 님께서 맡아주시길 바란 분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져 저도 행복하다”고 밝혔다.2017년 4월에 처음 책을 낼 때만 해도, 제가 쓴 이야기를 실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냥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저에게야 특별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서점 한구석에라도 꽂혀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조용히 흘러갈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고 여러 가지 감사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4년이 지난 올해,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상화된 결과물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신기한 감정이 더 큽니다.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만 있었던 이야기를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접할 때마다 여전히 깜짝 놀라곤 합니다.정조의 후궁이 고전소설 ‘곽장양문록’의 필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의빈성씨는 물론 함께 작업을 했다는 궁녀들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또한 나름대로의 삶이 있었던 인물에게 주어진 왕의 사랑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습니다.그런데 정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책과 영상물은 많은데, 의빈성씨에 대해서는 도통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정조의 비극적인 인연으로서만 설명될 뿐, 개인으로서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때문에 사료를 통해 의빈성씨의 행적을 짚으면서 빈 공간은 상상으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제 상상이 꽤 구체적인 형태가 되었을 무렵, 소설 형식으로 정리를 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저는 의빈성씨를 장점과 단점이 있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 인물상을 주체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받아 들여주신 분들이 계셔서 놀랍고 기뻤습니다.사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제가 혼자 취미로 쓴 글을 청어람에 투고하여 종이책으로 먼저 출판되었습니다. 다소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2017년 7월에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전자책을 발간하면서 웹소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돌이켜보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꼽아보자면, 1권에 정조가 목욕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꽉 막히는 바람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분명 미리 구상까지 다 해놓았는데도 막상 쓰려니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서너 달을 방치한 채 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그냥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음을 다잡고 맨 첫 문장으로 돌아가 수정하면서 되짚어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중단했던 부분에 다시 이르러서도 막힘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결과가 어떻든 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는 것은 귀중한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저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1권의 목욕 장면을 다시 읽곤 합니다.한창 ‘옷소매 붉은 끝동’을 쓸 때는 1차 사료, 특히 ‘일성록’을 끼고 살았습니다. 기록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실록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까지 세세하게 보여주었으니까요. 다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1차 사료들이 잘 번역되어있지 않아서 팔자에도 없는 한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1차 사료를 통해 윤곽을 잡은 뒤부터는 정사든 야사든 정조시대를 다룬 서적을 계속 읽었고, 모교 도서관을 통해 ‘곽장양문록’에 대해 연구한 논문 등도 다수 참고했습니다.영·정조 시기는 워낙 사료가 풍부해서 글감으로 쓸 만한 자료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사한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글의 주제의식과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 적합하도록 다듬는 것임을 늘 되새겼습니다. 때문에 정치사는 최대한 덜어내고 덕임의 입장에서 바라볼 만한 사건들을 메인 스토리와 어우러지게끔 고민했습니다.정조는 인물 자체도 매력적이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도 흥미롭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해석과 창작을 통해 다각도에서 그려졌습니다.’옷소매 붉은 끝동’도 결국에는 정조를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만, 의빈성씨의 인생과 관점에서 그를 바라본다는 부분이 차이점입니다. 영원한 주인공의 숙명을 타고 난 정조가 이 이야기에서는 의빈성씨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그리하여 정조와 의빈성씨의 로맨스와 함께, 치열하고 다사다난한 조선사의 외진 구석을 차지했던 덕임과 궁녀들의 사소한 꿈과 욕망, 사연 등이 큰 줄기를 이룹니다.저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덕임을, 왕으로선 선뜻 붙잡을 수만은 없는 존재였던 궁녀를, 동시에 상징할 만한 제목을 짓고 싶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후보로 세 가지를 생각해뒀는데, 하나같이 센스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제목들이라 마음에 차질 않았습니다.그런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3부를 쓰던 어느 겨울날, 제목은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정말 갑자기 떠오른 제목이었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고, 그대로 선택하였습니다.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미팅이 몇 차례 있었고, 제작진께서 여러 부분을 배려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각색된 극을 보면서 마냥 신기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저는 분량 문제로 초기구상보다 비중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제조상궁 조씨와 같은 등장인물도 조명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제 머릿속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TV도 잘 안 보고 관심 분야가 한정적인 타입이다 보니, 특정한 인물을 대입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어쩌면 그래서 더욱 확정된 캐스팅을 보면서 신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연 배우님들 대부분이 역할에 참 잘 어울리신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읽고 덕임 역할을 이세영 님께서 맡아주시길 바란 분들이 많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소원이 이루어져서 저도 행복합니다.제 욕망을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에서 벗어나기 쉽고, 실제 역사를 충실히 좇자면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한편, 내가 이만큼 안답시고 얄팍한 지식을 늘어놓느라 바쁘면 정작 장르소설로서 제일 중요한 재미를 놓치기 마련입니다.’옷소매 붉은 끝동’은 순전히 혼자서 취미로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작가인 동시에 유일한 독자였던 셈이지요. 따라서 독자로서의 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중간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곧 제가 글을 쓰면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되었습니다.예전에는 현대극보다 역사극에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현대극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정말 현대극으로 인사드릴 날이 온다면 저로선 영광일 것 같습니다.예, 상당히 안이한 생각으로 제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랑 이것저것 섞어서 대충 지은 필명입니다.현재로서는 장편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는 가벼운 현대극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과는 방향이 다른 역사로맨스입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2022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기 위해서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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