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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나라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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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족 – 나무위키

이는 호주 원주민과 미국, 캐나다의 원주민들이 1920년대와 1960년대가 되어서야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과 대조적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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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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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오리족(Māori People)은 폴리네시아 동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이다. 마오리어를 사용하며 토착 종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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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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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마오리 원주민의 말로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로 불리는 뉴질랜드는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두 개의 큰 섬(남섬과 북섬) 그리고 수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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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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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마오리 문화 발견| 100% 퓨어 뉴질랜드

마오리인은 뉴질랜드의 원주민, 탕아타 훼누아(Tangata whenua)이다. 1천여 년 전 그들은 폴리네시아에 있는 신화적인 고향 하와이키(Hawaiki)를 떠나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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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zealand.com

Date Published: 10/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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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언어 열풍 – 경향신문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언어 ‘마오리어(티 리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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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han.co.kr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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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유사한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 – K스피릿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뉴질랜드 상공은 유난히 흰 구름이 많다. 뉴질랜드에 처음 발을 디딘 마오리족은 뉴질랜드를 ‘아오 테아 로아(Ao Tea Roa)’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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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koreanspirit.com

Date Published: 6/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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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뉴질랜드 원주민

  • Author: KBS여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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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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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오리족

Māori 민족상징기 총인구 약 75만 명 언어 마오리어, 영어 종교 기독교, 마오리 전통종교 민족계통 폴리네시아인

마오리족(Māori People)은 폴리네시아 동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이다. 마오리어를 사용하며 토착 종교를 믿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보리진이 학살당한 것이나 티즈매니아 원주민이 사냥놀이의 명분으로 백인들에게 멸족당한 것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은 와이탕이 조약으로 백인(파케하)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현재 뉴질랜드 정부에서도 마오리적 전통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를 관광 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역사 [ 편집 ]

전통적인 모습을 한 마오리족, 평시에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섬 부근에서 거주하던 종족이다. 이들은 타조와 비슷한 모아를 잡아먹고 살아 ‘모아 사냥꾼’ 이라고도 불렸다. 마오리 족은 10세기경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로 건너왔는데, 이때 고구마, 감자, 우무, 조롱박 등을 가지고 왔다. 마오리족이 도착하기 전까지 뉴질랜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정착 이후 마오리 족은 대부분 북섬의 북반부에 정착하여 땅을 파는 막대기와 호미 비슷한 삽으로 고구마를 재배하며 생활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부족으로 나뉘어 추장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부족 간의 전쟁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영국으로부터 백인들이 들어온 후 마오리 족은 백인들과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을 맺어 공존하게 되었다. 뉴질랜드는 영국인 개척 초창기에는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부속 영토였으나 1840년 대영제국의 왕립 식민지로 별도 분리되었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을 맺은 이 후 뉴질랜드는 대영제국의 자치 식민지가 되었으며 마오리족은 영국 시민권을 얻고 토지 소유를 보장받게 되었다. 그러나 와이탕이 조약은 영문과 마오리어 판의 내용이 상당히 달랐던 데다 이 후 영국이 이 조약을 어기고 토지들을 이민자들에게 팔아치우면서 결국 1841년부터 5년간 마오리 전쟁이 발발하여 2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도 마오리족은 자신들의 권리 인정을 주장하며 꾸준히 영국 정부와 갈등을 벌였고 1860년대가 된 이후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마오리족에 대한 완전한 권리부여 및 투표권을 인정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인정하였다. 1947년 뉴질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마오리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그들에게 특별제도 및 수당을 부여하는 등 우대 정책을 일부 폈다.

마오리족은 조각, 직물, 음악, 무용 등에서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특히 목공예는 다른 폴리네시아인들보다 뛰어나다. 마오리족은 남자는 목각을 하고 여자는 수직 예술과 길쌈을 하였다. 이들은 집회소의 기둥이나 벽에 독특한 나선 무늬와 이상한 표정의 얼굴들을 조각하고, 무기, 카누, 일상용품 등에도 조각을 한다. 지금은 공예학교를 세워 전통기법을 전승하고 있다.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마오리족은 백인 이주민과 투쟁도 하였으나, 지금은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며 백인과 융화하여 살고 있다.[1]

이들의 이름 중에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특이한 이름이 많다. 남자 마오리족 구성원의 이름이 “두번 월경한 어린 여자”라는 뜻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이름 뜻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2].

마오리족의 정체성 문제 [ 편집 ]

뉴질랜드 정부가 존중하고 발전시킨 마오리족 전통문화는 관광용일 뿐, 뉴질랜드 마오리족들은 전통문화를 상실했다. 마오리족의 80%가 도시에서 살고 있으며, 교육수준이 낮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많은 마오리족 사람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문제로 빠져 들기도 하고 폭력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래서 백인들에게 빼앗긴 토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나 마오리족의 권익을 향상해 달라는 시위나 청원 등으로 마오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마오리족 사이에서 늘고 있다.[3]

일화 [ 편집 ]

마오리 족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 ANZAC 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으며 매우 용맹한 모습을 보여 적군을 당황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6.25 전쟁 당시 마오리족의 민요인 포카레카레 아나 등 대한민국에서 연가로 번역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와 참고 문헌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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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 편집 ]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이야기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이야기

타히티 섬으로부터 건너온 폴리네시안 부족

마오리 원주민의 말로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로 불리는 뉴질랜드는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두 개의 큰 섬(남섬과 북섬) 그리고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뉴질랜드는 호주 대륙이나 태평양의 다른 섬과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이 발견한 마지막 섬 중 하나가 되었다. 긴 세월 동안 여타의 육지와 크게 떨어져 있었던 까닭에 동물, 식물, 균류의 다양성이 독자적으로 발전되었다. 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큰 27만 평방킬로미터이며 인구는 약 480만 명이다.

가장 믿을만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곳 원주민 마오리족은 서기 1280년에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속하는 타히티 섬으로부터 이주해 왔다고 한다. 마오리족을 포함한 폴리네시안 인들의 민족이동경로를 추적해 가면, 약 5200년 전에 타이완에 살던 민족이 이동을 시작하여 태평양상의 수많은 섬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고 한다. 호주와 멜라네시아 섬들로 이주한 멜라네시아인들은 흑인종으로 분류되나 폴리네시아인은 크게 보아 황인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013년도 통계에 의하면 뉴질랜드에 약 60만 명의 마오리족이 살고 있으면, 이 밖에 호주에도 약 16만 명이 더 거주하고 있다.

<폴리네시안 민족의 이동루트>

마오리 족은 대부분 북섬의 북반부에 정착하여 땅을 파는 막대기와 호미 비슷한 삽으로 고구마를 재배하며 생활하였다. 이주 초기 북섬 등에는 많은 종류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었으나 산림훼손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남획으로 인하여 식용으로 쓰일 수 있는 종들의 대부분이 100년 이내에 멸종하였다고 한다. 멸종 조류에는 타조와 비슷한 날지 못하는 모아(moa)라는 새도 포함되는데, 이 중 가장 큰 종은 몸무게가 200kg에 달하였다고 한다.

1500년경 일단의 마오리족은 뉴질랜드로부터 동쪽으로 약 650km 떨어진 채섬 섬(Chatham Islands)으로 이주하여 마오리와는 다른 독특한 모리오리(Moriori) 문화를 일구었다. 그런데 본토 마오리족 중 일부가 1835년에 채섬을 침략하여 당시 모리오리족 인구 약 2000명의 대부분을 살육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삼았다. 이 당시에 마오리족은 모리오리족의 인육을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아 새>

유럽인들의 뉴질랜드 진출

유럽인으로는 네덜란드 항해가 타스만(Abel Tasman)이 1642년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영국인으로서는 쿡(James Cook) 선장이 1769년 처음 이곳을 방문하였다. 1780년대부터 물개와 고래를 잡기 위해서 선박들이 여기로 몰려들어오면서 백인들의 정착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 호주에 수용돼 있던 죄수들 중 일부가 탈출하여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1809년 이른바 ‘보이드 대학살’(Boyd Massacre)로 불리는 참혹한 살육사건이 발생하였다. 마오리족 추장의 아들이 엉뚱한 누명을 쓰고 보이드호 선박의 선장으로부터 채찍을 맞게 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마오리족이 톰슨(Thompson) 선장을 포함하여 총 66명의 선원과 승객을 살해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오리족은 백인의 인육을 먹었다고 한다.

<보이드호 선박의 폭발>

1800년대 초 상당수의 백인들은 백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마오리문화에 동화되어 마오리족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백인들은 파케아 마오리(Pākehā Māori)로 불렸다. 백인들로부터 조달한 총(muskets)은 불행하게도 마오리족 부족간 무력 충돌 도구로 악용되었다. 1801년부터 1840년 사이에 총 600 차례 이상의 전투가 벌어져 3만에서 4만 사이의 마오리족 인구가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족 간 내전은 ‘마스켓총 전쟁’(Musket Wars)이라 불린다. 이 무렵 마오리족은 백인들이 갖고온 전염병에 감염되어 인구의 약 절반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스켓 총>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아메리카 대륙이나 호주와는 달리 마오리족은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의 뜻에 따라 결정지울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원주민이 되었다. 곧, 원주민과 백인 이주민이 대등한 위치에서 1840년에 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영국 이주민이 세운 다른 여러 나라와 달리 원주민의 입장이 비교적 충분히 반영될 수 있었던 것은, 백인의 진출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어져 종래의 지배적인 시대정신이었던 제국주의가 옅어지는 분위기이었다는 점과 이주해 온 백인의 숫자가 원주민의 숫자를 압도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는 점, 마오리족이라는 단일민족이 하나로 단결하였던 점 등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1840년 2월 6일 북섬의 와이탕이에서 영국 정부와 마오리족 간에 기본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의 이름은 조약이 체결된 장소의 지명을 따 외이탕이조약(Treaty of Waitangi)이라 불린다. 조약문서

<와이탕이조약 마오리어 버전>

는 영어와 마오리어로 작성되었는데, 마오리어 조약에 북섬에 거주하던 530여명의 추장들이 서명하였다. 서명자 중에는 최소 13명의 여성 대표도 포함되었다. 동 조약의 핵심 내용은 뉴질랜드의 주권을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양보하는 대가로, 마오리족은 영국의 보호를 받는 신민(subjects)의 자격을 취득하고 토지 등 재산의 소유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어 버전과 마오리어 버전의 해석이 서로 달라 후일 조약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분쟁이 계속되어 왔다. 동 조약이 체결된 날은 뉴질랜드의 국가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와이탕이 조약체결일 기념행사 장면>

와이탕이조약 체결 전까지는 뉴질랜드가 호주의 New South Wales 식민지의 일부로 취급되었으나, 이 조약 체결로 영국의 별개의 식민지로 바뀌게 되었다. 동 조약의 체결로 마오리족은 백인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으며 일부 마오리족은 직접 사업체를 설립하였다.

뉴질랜드 전쟁(New Zealand Wars)

와이탕이 조약 체결 이후 수년간은 마오리족과 백인들은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유럽으로부터의 백인 이민이 늘어나면서 식민지 정부가 마오리족의 땅을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여 더 사들이려고 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초기 단계의 갈등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마오리족 전체의 생존권 내지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적 반란으로 확대되었다. 와이탕이 조약의 핵심 내용인 ‘주권(sovereignty)’에 대하여 백인과 마오리족은 서로 달리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일의 갈등 발생은 애초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즉, 마오리족은 자신의 자주권을 백인들에게 넘길 의사는 전혀 없고 다만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던 마오리 부족 간 전쟁(마스켓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영국 정부가 감독자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영국측은 마오리족에 대한 통치권은 동 조약에 의하여 완전히 영국 정부로 이관되었다는 입장이었다.

1850년대에 들어서는 마오리족도 북섬의 와이카토(Waikato) 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에서 당시 영국의 국가원수인 빅토리아 여왕과 같은 최고통치자 자격을 가진 마오리 국왕을 옹립하려는 운동을 벌리기 시작하여 1858년에는 포타타우 테 훼로훼로(Pōtatau Te Wherowhero)를 최초의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마오리국왕 제도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현재의 국왕은 제7대 왕인 투헤이타 파키(Tuheitia Paki)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왕제도는 뉴질랜드법 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므로 국왕은 아무런 법적 권한을 보유하지 못하고, 다만 국왕제를 수용하고 있는 마오리 부족들의 중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역대 마오리 국왕>

Pōtatau Te Wherowhero 1858–1860

Tāwhiao 1860–1894

Mahuta Tāwhiao 1894–1912

Te Rata Mahuta 1912–1933

Korokī Mahuta 1933–1966

Te Atairangikaahu 1966–2006

Tuheitia Paki 2006 – 현재

<제 7대 마오리 국왕 Tuheitia Paki>

식민지 정부는 이와 같은 국왕 옹립 움직임은 영국 정부의 통치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여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반란 진압에 나섰다. 처음에는 민병대 등 뉴질랜드 식민지의 자체 병력과 호주 식민지의 병력만을 동원하였으나 전쟁의 규모가 더욱 커짐에 따라 영국본토 병력도 추가로 투입하였다. 마오리족의 병력 규모

<뉴질랜드의 16개 행정구역>

는 약 5천명이었던 반면에 백인 진압군의 규모는 1만8천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오리족은 병력의 규모나 무기 면에서 백인들에게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여건에 있었으나, 마을과 군사 시설에 튼튼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게릴라 전술을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백인들의 군사력에 맞섰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백인 정부는 마오리 반란군의 사기를 꺾고 벌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반란에 가담한 마오리 부족의 땅을 몰수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폭압적 조치는 마치 불에 기름을 부은 듯이 마오리족의 더 거센 저항을 불러 왔다.

마오리족의 예언자 하우메네(Te Ua Haumēne)에 의하여 창시된 마오리족의 고유 신앙 운동도 민족 저항운동에서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하였다. 흔히 하우하우(Hauhau)라 불리는 파이 마리레 운동(Pai Mārire movement)은 1863년부터 1874년까지 번성하였는데, 2006년도 통계조사에 의하면 600명 이상이 아직도 그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백인 정부는 민족 저항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종교 활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본거지인 북섬의 타라나키(Taranaki)지역 등을 공격하여 400 명 이상의 마오리 신도를 체포하고 이들 중 대부분을 채섬 섬에 격리 수용하였다.

1845년에 시작되어 1872년에 막을 내린 마오리족과 백인간의 무력 충돌로 2000 명 이상의 마오리인과 700명 이상의 백인이 희생되었다. 이 전쟁은 종래에는 마오리전쟁이라 불렸으나 현재는 뉴질랜드전쟁으로 불리고 있다.

<예언자 Te Ua Haumēne, 1866>

<뉴질랜드 전쟁기념관>

마오리족의 권리 찾기 운동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된 이래 백인 이주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마오리족은 서서히 인구수나 경제력 면에서 소수민족의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특히 뉴질랜드전쟁에서의 패전으로 많은 땅을 몰수당하였지만, 추후에 그 중 일부만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이 밖에 와이탕이 조약의 내용이 성실히 이행되지 못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 왔다.

196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민권운동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 원주민들도 잃어버린 자신의 권익을 되찾기 위하여 행동주의적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75년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족과 백인 인권운동가의 요구에 부응하여 ‘와이탕이조약 조사위원회’(Waitangi Tribunal)를 설치하고 마오리 족의 토지와 재산에 대한 백인에 의한 부당한 침해 사례를 조사하여 정부에 개선방안을 건의토록 하였다. 동 위원회의 건의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일부는 정부가 수용하였으나 모두 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06년까지 약 900억 뉴질랜드달러(약 7천억 원 상당)의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주로 토지와 임야의 반환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뉴질랜드 연안의 해변과 해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마오리측 주장은, 1840년에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이 뉴질랜드 토지 등에 관한 재산권 일체는 마오리족에게 있음을 천명한 만큼 당연히 토지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해변과 영해내 해저의 소유권도 마오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연방정부는 해변과 해저는 어느 누구의 개인적 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공공에게 개방되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절히 활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2004년 11월 정부 측의 입장이 관철되어 관련법(Foreshore and Seabed Act)이 제정됨으로써 다툼은 일단락되었다. 유엔의 인종차별제거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도 이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조사한 후 2006년 3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동 보고서는 뉴질랜드의 관련법은 마오리 원주민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적절히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뉴질랜드 정부는 유엔의 동 보고서 내용이 지극히 편파적이고 실망스러운 내용이라는 반응을 나타내었다.

마오리족은 1868년 선거구 4 개를 할당받아 일찍이 부족대표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의 단순한 인구 비율로만 계산하면 15 개의 선거구가 주어져야 옳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의 정치적 준비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들에게 민주적 참정권을 제공한 조치는 매우 파격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마오리족의 선거구는 7 석으로 증가되었다. 마오리 선거구가 아닌 지역에서도 마오리계통의 국회의원이 많이 당선되고 있다. 2017년 현재 국회의원 총 122명중 마오리계 혈통을 지닌 의원이 23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숫자는 단순 인구 비중보다 더 큰 수치로서 그만큼 마오리족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마오리족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87년 마오리어가 법적 공용어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1996년에는 마오리어로 방송하는 텔레비전 채널도 생겨나는 등 마오리족의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최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토지의 질적인 면을 무시하고 단순히 토지의 크기만을 비교하면, 마오리 족이 소유하는 토지 면적의 비중은 인구 비중을 초과한다고 한다. 이처럼 마오리족의 경우에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은 과거 영국 식민지 국가의 원주민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주민의 80%가 도시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전통문화는 점차 사라져 가고 백인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급속도로 동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오리족의 전통문화도 여타의 소수민족 문화의 경우처럼 관광상품으로만 명맥을 이어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 럭비 팀이 마오리 전통 구호 하카(haka)를 외치는 모습>

(참고)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오리 가족들이 겪고 있는 가정폭력, 마약 등 사회문제를 집중 조명한 영화 ‘전사의 후예'(Once Were Warriors)

뉴질랜드의 마오리 문화 발견

1840년 뉴질랜드의 건국 문서인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이 마오리 부족장들과 영국 왕실의 대표에 의해 조인되었다.

조약 체결 후 영국인들의 수가 마오리 인구를 빠르게 앞질러 갔다. 조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넘어가며 파케하(Pākehā 유럽인) 문화가 뉴질랜드의 주류 문화가 되었다. 과거에는 마오리인들이 파케하 문화에 적응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오리 문화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는 와이탕이 조약에 의해 마오리인과 왕실 사이에 세워진 파트너십에 기반을 둔 이중문화주의(Biculturalism)가 재발견되어 화두로 등장했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마오리 문화

마오리 문화를 뉴질랜드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다.

공식 언어인 테 레오 마오리(마오리어 Te Reo Māori)를 들을 수 있고, 마오리어로 된 공식 지명도 많다. 지명의 올바른 발음법과 키아 오라(Kia ora)와 같은 간단한 마오리 인사말을 쉽게 배울 수 있다.

티캉아(Tikanga 마오리 관습) 또한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마나키탕아(Manaakitanga)는 모든 키위(뉴질랜드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이다.

카이티아키탕아(Kaitiakitanga)는 마오리인들이 자연 세계에 대해 느끼는 존중하는 마음과 보호자의 역할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이 많은 뉴질랜드인의 환경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소중한 자연 자원에 대한 존중을 담은 티아키 약속(Tiaki Promise)을 하기를 부탁한다.

마오리 문화와 전통 배우기

마오리 문화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신성한 집회 장소인 마라에(Marae)이다.

노스랜드, 오클랜드 또는 로토루아에서 마라에를 방문하고 전통적인 마오리 환영을 경험할 수 있다. 마라에를 방문하는 동안 마오리어 연설과 노래를 듣고, 조각된 미팅하우스를 감상하고, 현지인들과 홍이(Hongi 코를 맞대는 인사)를 하고, 땅속에서 음식을 익히는 항이(Hāngī) 잔치를 즐길 수 있다.

노래의 화음과 율동적인 춤을 결합한 공연 예술(카파 하카(Kapa haka))와 하카(Haka)와 같은 마오리 댄스도 방문객을 위한 필수 볼거리이다. 북섬의 로토루아에서 마라에 방문과 카파 하카 공연과 같은 마오리 문화 투어가 많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공연으로 이름이 높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언어 열풍

한때 사용자 3.7%까지 급감 최근엔 문화로 즐기는 수단 음악차트 1위·교육수요 증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언어 ‘마오리어(티 리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가디언은 “마오리어가 인기를 끌면서 뉴질랜드 최대도시 오클랜드에서 남쪽 끝 항구도시 인버카길에 이르기까지 마오리어 교육에 대한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마오리어가 환영받은 때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마오리어의 재활성화를 연구하는 오클랜드대 아라페라 벨라 느가하 교수는 “뉴질랜드 고유 언어를 배울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 마오리어 공부는 이제 ‘쿨한(멋진)’ 일이 됐다”고 말했다.

호주 등 타 지역 원주민이 마오리어 인기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 뉴질랜드에 올 정도다.

20세기 유럽인의 뉴질랜드 정착이 본격화한 이후 마오리어 사용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어를 해야 했으며 학교나 보육시설 등에선 마오리어 사용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들어 마오리족의 20% 정도만이 마오리어를 쓰게 됐다. 2013년 조사에서는 뉴질랜드 인구의 3.7%가 마오리어를 구사한다고 응답했다.

마오리어는 이제 누구나 문화로 즐기는 수단이 됐다. 지난달 마오리족 헤비메탈 밴드 ‘에일리언 웨펀리’의 앨범 <투(Tu)>는 뉴질랜드 음악차트 1위에 올랐다.

마오리 그룹 ‘마이모아’가 지난해 발매한 <와이루아>는 유튜브 조회수 550만회를 돌파하며 그해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이 본 영상이 됐다. 2016년 순수 마오리어로 제작한 데뷔곡 ‘마이모아티아’는 발표 직후 세계적 팝가수 저스틴 비버를 밀어내고 뉴질랜드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9월 디즈니는 2016년 개봉작 <모아나>의 마오리어 버전을 새롭게 내놓았다. 구글과 영국 이동통신업체 보다폰은 마오리어 보호를 위한 정부기관 마오리어위원회와 합작해 구글맵 내 잘못된 마오리어 지명을 바로잡는 캠페인을 벌였다.

뉴질랜드 정부도 마오리어 확산에 힘쓰고 있다. 집권 노동당은 지난해 9월 총선 당시 2025년까지 모든 학교에 마오리어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저신더 아던 총리(38)는 지난 2월 건국기념일 연설 중 첫 49초를 마오리어로 했으며, 지난달 출산한 딸 니브의 중간이름에 마오리어 ‘테이 아로하(사랑)’를 넣었다.

한민족과 유사한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

[About Newzeland] -4편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뉴질랜드 상공은 유난히 흰 구름이 많다. 뉴질랜드에 처음 발을 디딘 마오리족은 뉴질랜드를 ‘아오 테아 로아(Ao Tea Roa)’라 불렀다. 마오리 말로 ‘아오ao’는 구름이라는 뜻이다. ‘테아ea’는 하얀색을, ‘로아roa’는 길다는 의미이다. 즉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 의미이다.

1천 년 전 마오리 여러 부족은 신비로운 고향 ‘하와이키(현재 하와이 제도로 추정)’ 땅에서 오랜 전쟁과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카누를 타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마오리 탐험가 쿠페(kupe)라는 사람이 바다 건너 대륙을 발견했지만, 그의 부인이 “땅이 아니라 긴 흰 구름”이라며 상륙을 말렸는데 여기에서 ‘아오 테아 로아’라 불리게 되었다.

▲ 뉴질랜드에 정착한 최초의 마오리인을 형상화한 조각(사진=전은애 기자)

현재 마오리는 뉴질랜드 원주민으로서 ‘땅의 주인’이란 뜻인 마오리어로 ’탕가타 훼누아’라 불린다. 오늘날 뉴질랜드 인구 중 14%를 차지하는 이들의 언어와 전통은 이 나라 정체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마오리족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마오리 말로 “안녕하세요”는 “키아 오라(Kia Ora)”라고 한다. ‘아’를 약하게 발음해 얼핏 들으면 ‘기 오라!”처럼 들린다. 새로운 사람, 에너지가 온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키아 오라”는 뉴질랜드 정규 텔레비전 뉴스의 첫 인사로 쓰일 만큼 뉴질랜드 사람들에게도 일상화된 인사이다. 또 이들의 주식이었던 고구마는 ‘쿠마라 Kumara’라 부른다.

실제로 언어학자들은 마오리어가 폴리네시아 방언 중의 하나로 그 뿌리가 아시아에 있다고 설명한다. 마오리어는 말만 있었을 뿐 문자가 없었다. 19세기 초 선교사 토머스 캔들과 헨리 윌리엄스 등이 영어 모음 5개(a, e, i, o, u), 자음 8개(h, k, m, n, p, r, t, w) 그리고 복합어 2개(ng, wh) 등 모두 15글자로 표기했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긴 이름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지명이 뉴질랜드에 있다. 타우마타와카탕이항아코아우아우오타마테아투리푸카카피키마웅아호로누쿠포카이웨누아키타나타후(마오리어: Taumatawhakatangihangakoauauotamateapokaiwhenuakitanatahu)는 뉴질랜드 북섬 호크스베이 지역에 위치한 포랑아하우에 있는 언덕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높이는 305m이고, 현지인들에게는 종종 대화상 편의를 위해 타우마타라고 불린다. 총 85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세계에서 가장 긴 지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긴 이름은 ‘타마테아라는 큰 무릎을 가진 등산가가 여행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피리를 불었던 언덕’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나라처럼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적극적으로 마오리인을 보호하고 존중한다. 지속적인 토지 보상, 마오리 성(姓)사용, 마오리 선거구 활성화, 교육 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

태초에 뉴질랜드 땅에는 새들만이 살았다. 마오리는 1천 년 전 뉴질랜드로 건너온 이후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땅의 주인이었다. 유럽인의 이주가 시작되고 와이탕이 조약, 영국의 식민지, 전쟁 등을 거치면서 마오리는 이제 미개한 원주민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참된 주인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새롭게 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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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국호 바꾸자”…원주민 청원, 왜?

뉴질랜드 원주민 사이에서 국호를 마오리족 언어인 `아오테아로아(Aotearoa)`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을 대표하는 마오리당은 최근 국호를 아오테아로아로 변경하기 위한 청원을 시작했다.아오테아로아는 긴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의 마오리어로, 현지에서는 나라 이름을 언급할 때 뉴질랜드와 함께 혼용되고 있다.청원에는 2026년까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국의 모든 마을과 도시, 장소의 이름을 본래 마오리어 지명으로 복원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았다. 청원이 온라인에 공개된 뒤 처음 2시간 30분 동안 3천 명이 지지 서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라위리 와이티티 마오리당 대표는 성명에서 “마오리어가 나라의 첫 번째이자 공식 언어로서의 정당한 지위를 회복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며 “아오테아로아는 분열이 아닌 우리나라를 통합하는 명칭”이라고 말했다.다만 다른 정당에서는 “사람들은 이미 마오리어 지명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마오리당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뉴질랜드로 부르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려는 것 같다”는 등 반대 의견을 내놨다.나라 이름을 두고 불거진 뉴질랜드 정치권 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 스튜어트 스미스 의원은 지난달 초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로 부르는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또 뉴질랜드 모든 공식 문서에서 아오테아로아라는 국호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정당들의 반대에 부딪혔다.국가 명칭 논란이 이어지자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사람들은 뉴질랜드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첫 여성 총독 탄생

(오클랜드=연합뉴스) 고한성 통신원 = 뉴질랜드에 첫 마오리 여성 총독이 탄생했다.

21일 뉴질랜드 언론에 따르면 데임 신디 키로 총독(63)은 이날 국회에서 저신다 아던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했다.

데임 신디 키로 신임 뉴질랜드 총독 [TVNZ 사이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뉴질랜드 총독은 영연방인 뉴질랜드의 국가수반인 영국 여왕을 대행하는 5년 임기의 직책으로 데임 신디 총독은 첫 마오리 여성 총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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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임 신디 총독은 취임사에서 총독에 임명된 것은 영광이자 특전이라며 자신의 임기 중에 뉴질랜드의 소외 계층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거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당면한 도전은 종종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압도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지혜, 용기, 타인에 대한 배려 등으로 함께 헤쳐나간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임 신디 총독은 과학, 기술, 인문학 분야의 연구 활동 진흥을 위한 뉴질랜드 왕립협회 회장과 뉴질랜드 아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오클랜드 대학 등 여러 대학과 보건, 지역사회 기관의 관리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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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아름다운 섬나라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의 삶 [걸어서 세계속으로] | KBS 21112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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