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 너희를 향한 (Live) – 심형진 | Stonegate Music 18815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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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 작곡 | 심형진
Worship Leader | 심형진
Vocals | 염민규 강보영 이지영
Drums | 김현준
Bass Guitar | 신우람
Electric Guitar | 장종필 장지미
Acoustic Guitar | 장종필 심형진 염민규
Piano | 민찬미
Programming | 신우람
Live Engineer | 문성필 심지현 이세웅
Recorded by | 김현준
Mixed \u0026 Mastered by | 김현준
Video Director | 박건우
Camera | 박건우 한관희 이사무엘
Video Editing | 박건우
Lighting | 가온라이팅
Recorded at | 파주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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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한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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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4/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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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 브런치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나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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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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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1~14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1 선지자 예례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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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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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장 11절, 가장 잘못 인용되는 구절? – 크리스천투데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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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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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 네이버 블로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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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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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 굿뉴스데일리

2013년 7월,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재앙이라는 내 생각을 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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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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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렘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우리나라가 지금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듯이 통일왕국 이스라엘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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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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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향한 (LIVE) - 심형진 | Stonegate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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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Stonegate Music 스톤게이트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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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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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개정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 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원문보기

개역한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 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원문보기

공동번역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원문보기

새번역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원문보기

현대인의성경 너희를 위한 나의 계획은 내가 알고 있다. 그것은 너희에게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번영을 주고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계획이다. 원문보기

新共同譯 わたしは, あなたたちのために 立てた 計畵をよく 心に 留めている, と 主は 言われる. それは 平和の 計畵であって, 災いの 計畵ではない. 將來と 希望を 與えるものである. 원문보기

NIV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원문보기

KJV For I know the thoughts that I think toward you, saith the LORD, thoughts of peace, and not of evil, to give you an expected end. 원문보기

NASB ‘For I know the plans that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for welfare and not for calamity to give you a future and a hope. 원문보기

新改譯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ために 立てている 計畵をよく 知っているからだ. ··主の 御告げ. ··それはわざわいではなくて, 平安 を 與える 計畵であり, あなたがたに 將來と 希望を 與えるためのものだ. 원문보기

에벤에셀선교단John

예레미야 29:1~14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1 선지자 예례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2 때는 여고니야 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위탁하였더라 일렀으되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헹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야긴 왕과 그 모친 느후스다과 궁정 관리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위 관리들과 목공, 철공 기술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바벨론 2차 포로로 잡혀간 후에 시드기야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내는 바벨론 사절단인 엘라사와 그마랴에게 위탁하여 바벨론에 살아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모든 자들은 거기서 집을 짓고 밭과 과수원을 일구어 그 열매를 먹을 것이며 아내를 얻어 자녀를 낳고 또 자녀들로 배우자를 얻어 그들의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멸절되지 않게 하며 여호와께서 포로로 끌려가게 한 그 바벨론 성읍이 평안하도록 노력하고 그 성읍을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할 것이며 바벨론 성읍과 백성이 평안함을 인하여 유다 백성들도 평안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곧 유다로 귀환할 것이라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점을 치는 자들과 꿈을 꾸어 해몽하며 예언하는 자들의 말을 곧이 듣지 말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백성들에게 보낸 일이 없으시며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하여 거짓 예언을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포로생활을 마치면 사랑으로 보살펴 유다로 귀환하게 하실 것이라는 선하신 말씀이 성취되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장래에 대한 소망이므로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들어 응답하시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으면 만날 것이며 바벨론 포로된 자들을 유다로 귀환시키실 것이며 열방으로 쫓아내 보내셨던 자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2차 침략으로 인해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위정자들과 기술자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난 후에 시드기야 왕의 바벨론 사절단이며 예레미야를 구해준 아히감의 형제인 엘라사와 여호야김 왕이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우려 하는 것을 막은 그마랴를 통해 편지를 그 당시 바벨론에 살아 남은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음을 보게 하십니다

편지에는 여호와꼐서 말씀하시기를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땅에서 집을 짓고 밭과 과수원을 조성하여 그 소산을 먹고 자녀를 낳아 후손이 번성하게 하며 바벨론 성읍이 평안하기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며, 곧 바벨론 포로생활이 끝나고 유다로 귀환할 것이라고 말하는 하나님이 보내신 적이 없고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하여 거짓 예언하는 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인 바벨론 포로생황 70년을 마치고 유다로 귀환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때가 차면 바벨론 포로와 열방으로 쫓겨나감을 받은 자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회복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바벨론 2차 침략으로 인해 여호야긴 왕과 위정자들과 기술자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난 뒤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의 바벨론 사절단인 엘라사와 그마랴를 통해 바벨론에 살아 남은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곳의 거짓 선자자들의 유다 귀환이 임박했다는 거짓 예언으로 인해 70년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할 그들이 헛된 소망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충고를 하게 됨을 보며,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그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 없는 평안만을 구하는 어리석은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징계를 기꺼이 받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 보낸 적도 없는 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하여 거짓 에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오히려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땅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자녀를 낳아 후손이 번성케 하고 바벨론 성읍이 평안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심을 보며, 우리를 위한는 척하며 감언이설로 우리를 미혹하는 악한 영의 유혹에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보다 앞서지 않고 그 말씀이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는 순종의 사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인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면 반드시 유다로 귀환하여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닌 평안과 소망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하심을 보며, 우리를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기 위해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연단의 시간을 잘 감당함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과 소망과 기도 응답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 가장 잘못 인용되는 구절?

▲자신의 등에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을 새긴 남성. ⓒ플리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을 암기한다. 마치 요한복음 3장 16절처럼.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먼저 시인인 제퍼슨 버스케(Jefferson Bethke)는 최근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이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 남자친구(여자친구)는 내가 원하던 사람이에요’,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내 계획이에요. 하나님께서 지금 그렇게 말씀하고 계세요’라고 말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케는 “성경을 읽는 이들은 항상 성경구절의 역사적·문학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먼저는 우리가 원하는 한 구절만을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때에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신 구절을, 문맥에서 뽑아내 개인적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구절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6세기 경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설명했다.

이 서신은 과거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심판을 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70년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버스케는 “무엇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장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70년 동안 포로 생활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70년까지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고 했다. 이어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읽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산타클로스나 지니와 같은 존재로 바꾸어 놓는지 모른다……. 우리의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님께서 이뤄주신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이에 앞서 존 파이퍼 목사는 이 약속에 대한 적용이 기독교 공동체로 옮겨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침례교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파이퍼 목사는 지난 5월 29일 ‘존 목사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코너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를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존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예레미야 29장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된 상황의 유대 공동체에 이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독교인들, 특히 우리 이방인들은, 이 말씀이 멸망이 아닌 소망과 기쁨의 삶에 대한 전망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이를 사랑한다. 우리가 이를 붙들 수 있는 이유는,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잔을 들어올리신 후, ‘이 잔은 내 피로 인한 새로운 언약’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이퍼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에 나온 약속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취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의미를 두셨던 모든 것은, 지금 신약의 그의 백성들에게 성취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약속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린도후서 1장 20절 말씀과 로마서 8장 32절 말씀을 들어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레이스패밀리 침례교회 목사이자 강사인 보디 보챔(Voddie Baucham)은 기독교인들이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을 3가지 방식으로 왜곡한다며 “먼저, 우리는 이것이 특별한 때에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상황 가운데 특별한 사람들에게 직접 전해진 약속인데, 우리에게 직접 적용하면서 이를 왜곡한다”고 전했다. 두번째로 “이것은 실제적으로 다양한 세대들을 위한 약속인데, 우리는 이를 지금의 약속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우리를 위한 약속인데 나를 위한 약속으로 왜곡한다”고 했다. 그는 이 말씀을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인들 개개인의 건강과 부귀에 대한 약속으로 가르치는 데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구약학 교수이자 ‘God Behaving Badly : Is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Angry, Sexist and Racist?’의 저자인 데이비드 램도 보챔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램 교수는 “우리는 예레미야 29장 11절을 신실하게 적용하기 위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11절을 인용할 때 29장에 대해 최소한 2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먼저는 이 말씀이 우리 대부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믿을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쓰여진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사망을 슬퍼하고, 이동 중이었으며, 일시에 노예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희망을 말씀하실 수 있다. 이것이 놀라운 것”이라고 전했다.

두번째로 “이들은 ‘나’에 대한 계획이 아닌 ‘우리’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서신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나 여전히 공동체를 갖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7월의 간증

2013년 7월,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재앙이라는 내 생각을 밀어내고 말씀 편에 서기로 했다.그리고 하나님이 평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았다.

지위와 명성을 가지면 행복할 줄 알고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나는 경상북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서울의 명문대로 유학을 갔다. 당시 주위의 많은 친구들은 중학교를, 심지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학교로 갈 만큼 내가 살던 마을은 가난한 곳이었다. 우리 집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당신들이 못 배운 열등감에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들 공부시키길 원하셨고, 나는 시골 읍에서 꽤나 공부를 잘했다. 선생님의 사랑과 사람들의 관심,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친구도 내겐 필요한 존재이기보다 그냥 내 주위에 늘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나름 열등감도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했다. 나는 인간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고 싶은 욕심밖에 없었다. 그걸 가지면 행복할 줄 알고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장모님이 채소 팔러 새벽시장에 가다가 차에 치여 그만…”

그렇게 살던 중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죽음을 보게 되었다. 그때 우리 회사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했는데, 하루는 출근해서 막 자리에 앉자 형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늦가을이라 아직 날이 채 밝지도 않아, 이른 아침에 웬 전화냐고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형부는 “놀라지 말고, 처제. 장모님이 채소 팔러 새벽시장에 가다가 차에 치여 그만…” 하고 말했다. 어떻게 일주일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자식 공부시키느라 평생 고생하다가 이제 다섯 번째 딸까지 취직해서 좀 편히 살 수 있는 시기가 되었는데, 엄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너무 허무했다. 도대체 인생이 뭘까? 평생 고생하고 살다가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 걸까? 1년을 술도 마셔 보고 방황도 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죽음 앞에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직장을 그만둔 후 출산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살던 시어머님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만삭의 몸으로 아침에 병원에 가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한 달 동안 해야 했다. 출산 예정일이 다 되어서는 아픈 시어머님을 수발하는 일로 형님네랑 심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출산 예정일이 되어 병원에 갔을 때, 임신 9개월째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던 의사가 이상하다는 말만 계속하며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그러더니 아이가 뱃속에서 죽었다고 했다. 이미 10개월이 다 되어 수술할 수는 없고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했다.

분만실의 많은 산모들은 살아 있는 아이를 낳기 위해 고통하는데, 나는 죽어 있는 아이를 낳기 위해 밤새 고통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내 눈에 들어온 건 죽은 아이의 서늘한 등줄기.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죽음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게 닥친 엄청난 일 앞에서 나 대신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고, 퇴원하고는 시어머니와 시댁을 향한 증오가 마음에 가득 찼다. 나중에는 미워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지만 그 미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때 구원받은 큰언니가 수양회에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지만, 예수님은 너무 멀고 내가 너무 불쌍해서 울다가 돌아왔다.

죽음 앞에 서보니 내 손을 잡아 줄 이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또 욕망을 잡고자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둘째 딸을 낳으면서 혈소판 수혈을 받게 되고, 의사들이 수혈받는 동안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무리하게 배를 누르면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연년생 아들딸을 데리고 공부하면서 열심히 1년을 지냈다. 허리 안 아픈 것이 어떤 상태인지 잊어버릴 만큼 허리가 아팠지만, 내 나이 32살이었고 전에 허리가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둘째 딸 돌 즈음, 속이 메스꺼워 1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만 있는 신세가 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 죽음 앞에 서보니 내 손을 잡아 줄 이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어서 쫓아왔던 명예도 부질없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자식도 내 몸 하나 가눌 수 없게 되자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남편은 나름대로 힘들었겠지만 죽음 앞에 나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득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에게 그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이후 수원에서 있었던 성경세미나에 참석하여 2002년 10월에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럼 하나님이 내 허리도 고치시겠네’그 후 병명을 찾았는데,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긴 이름의 병이었다. 의사선생님이 “이 병은 평생 아픈 병이에요. 아프면 약 먹고…” 하고 말했다. 참담했다. ‘평생 이렇게 허리가 아프면 어떻게 살지?’ 너무 고통스러웠다. 석 달치 약 봉투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그때 서울에서 대전도집회가 있었다. 나는 교회를 다녀본 적도,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어서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교회 자매들의 손에 이끌려 참석했다. 그날 오전 설교 말씀을 듣는데, 박옥수 목사님이 창세기 말씀을 전하시면서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Nothing is impossible)”라는 말씀을 열 번 이상 하셨던 것 같다. 말씀을 듣는 중에 나도 모르게 ‘그럼 하나님이 내 허리도 고치시겠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그날 이후 약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버릴 수는 없었다. 허리 아픈 고통이 극심하기에 ‘아프면 먹어야지’ 하고 찬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갔다. 문득 ‘너, 정말 하나님 믿어? 너는 약이랑 하나님이랑 양다리 걸치고 있잖아’라는 마음이 들어 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로 나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너무 신기했다. 나는 뭐든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씀이 마음에 쑥 들어와서 공짜로 얻는 그 세계가 내겐 너무 생소하고 어리둥절했다.

남편은 내가 구원받고 기쁜소식수원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자 이웃에게 나를 광신도라고 소개했다. 그때 나는 수영장 간다고 부인예배 빠지고 저녁 예배에도 안 가는 사람이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구원받아 그 친구 때문에 저녁 예배에 참석하면서는, 교회에 갔다오는 나를 남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던 것처럼 남편을 병으로, 사고로 어렵게 해서 구원받게 하실까봐 두려워, 구원받으라고 남편을 까맣게 탈 만큼 들볶았다. 싸움도 많이 했다.내 삶이 교회 편으로 많이 옮겨졌지만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싶었지 복음을 위해 살고 싶진 않았다. 내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습성이 있어서, 교회 일도 이 일 저 일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런 내 신앙을 목사님 부부나 자매들이 간섭하면 겉으로는 “예” 하지만 속에서는 화와 억울함이 치밀었다. 하나님은 내 의로 똘똘 뭉쳐진 나를 깨뜨리기 위해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교회 안에서 하셨다.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 당신을 지켰다”

2013년 9월 7일 토요일, 대전에 가서 벌초하고 동료 결혼식 간다고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고가 나서 수원으로 이송될 거라고 했다. 남편은 원래 느긋하고 낙천적인 데에다 그날 목소리도 차분해서 조금 다친 줄 알았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보니, 응급실에서 왼쪽 다리를 붕대로 칭칭 감은 채 나를 향해 씩 웃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사고의 충격으로 온몸이 경직되어 소변도 볼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드디어 하나님이 일하셨구나!’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중에 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자 출발했고 사고를 낸 차량은 신호가 바뀌는 걸 보고 빨리 지나가려고 속도를 내서 오다가 남편을 측면으로 친 것이었다. 아주 조금만 상대 차가 늦었거나 남편이 빨랐다면, 차가 남편 오토바이를 통째로 들이박아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고 순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도로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헬멧은 벗겨져서 없고, 대신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양복을 돌돌 말아 넣어준 배낭이 자기 머리 밑에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온 경찰이나 보험사 직원 모두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 당신을 지켰다”라고 했다고 한다.

너는 재앙으로 받아들일래, 평안으로 받아들일래?

왼쪽 발목을 수술하려고 의사가 남편 다리를 들어 보니 무릎이 덜렁거렸다. MRI를 찍어 보니 무릎에서 나갈 수 있는 인대(전방, 후방, 좌측 2개)는 다 나가고 옆에 있는 뼈까지 부러져 있었다. 의사가 이러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고 하며 다른 데로 가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정말 막막하고 길이 없을 때 물어볼 곳이 있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목사님이 기쁜소식강남교회 성도를 통해 서울에 있는 한 병원을 소개해 주셨다. 다음날 병원을 옮기고 남편이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지금은 광주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박희진 목사님이 수원에 계시면서 가장 많이 전한 말씀이었다. 여러 번 들었지만 그냥 듣고 지나갔는데, 그 말씀이 떠올랐다. 울면서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 이래도 재앙이 아니에요? 내가 봐도 재앙이고, 남편이 봐도 재앙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봐도 재앙인데, 그래도 이것이 평안이고 소망입니까?”

마음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 너는 둘 중에 어느 것을 믿을래? 재앙으로 받아들이면 고통과 원망과 슬픔만 가득하고, 평안이라는 말씀을 받아들이면 나에게 소망이 있는데….’ 나는 말씀 편에 서기로 했다. 내가 말씀을 믿기로 마음을 정하자 하나님은 어려움을 견디고 넘어설 힘을 주셨다.

“자매님은 왜 마음을 안 옮기세요?”

무릎 수술을 잘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싫으나 좋으나 내가 읽어 주는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도 듣고, 복음반 설교 말씀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착한 사람으로 살아온 남편의 마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퇴원해 집에서 쉬면서도 설교 말씀을 들었지만 남편 마음은 한결같았다. 온 교회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목사님이 온 마음으로 남편을 섬겨 주었기에, 남편은 교회에 가긴 가야겠기에 ‘한번 들어보자’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10월에 서울에서 성경세미나가 있었다. 남편은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면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 너무 아픈데도 오전마다 집회에 참석해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이한규 목사님과 한 시간 이상 상담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면 4시가 훌쩍 넘었다. 하지만 집회가 다 끝나 가는데도 남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내 마음은 몹시 초조했다. 결국 집회가 끝날 때까지 남편은 구원받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쌓아두었던 온갖 원망들이 위로 올라왔다. ‘왜 다리는 부러뜨려 가지고? 구원도 못 받게 할 거면서! 하나 더 부러뜨리시지! 목사님은 기도를 하시는 거야, 안 하시는 거야?’ 악다구니를 주체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남편은 입을 굳게 다물고 운전만 하는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하나님과 교회와 목사님을 원망했다.

주일인 다음날, 일찍 교회에 갔다가 사택에 들렀다. 나이 많으신 자매님들과 사모님이 차를 마시고 계셨다. 한 모친님이 “형제님, 구원받으셨어?” 하고 물으셨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질문인지, 구원을 받아야 형제라 부르는데…. 나는 긁적거리며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때 사모님이 “자매님은 왜 마음을 안 옮기세요? 목사님이 마음을 옮기라고 하셨잖아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마음에 불이 들어왔다.

”마음을 합한 자는 하나님과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작년 가을 성경세미나의 주제는 마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강사인 박옥수 목사님이 강단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폴짝 뛰시면서 “여러분, 이렇게 마음을 옮기세요”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나는 내 마음은 옮기지 않고 자꾸 남편에게만 마음을 옮기지 않는다고 온갖 욕을 해대고 있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하나님은 이 말씀 편으로 내 마음을 먼저 옮기길 원하시는구나!’ 그때 나는 마음을 옮겼고, 내 마음에서 남편이 구원을 받았다. 예배를 마치고 남편에게 내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굉장히 행복했다. 한 달이 채 못 되어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남편이 목사님과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다. 목사님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천한 목동이었던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네 죄를 깨끗하게 씻어놓았어, 네 죄가 없어’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니야, 나는 그래도 죄가 있어’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가 아닙니다. 마음을 합한 자는 하나님과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원을 받았다. “얼떨떨하지만, 죄가 씻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남편을 위해 그분을 보내셨음을…

남편이 사고를 당했을 때 발목이 차에 직접 부딪혀, 발목뼈는 망치로 호두를 깬 것같이 부서지고 그 부근의 살은 다 죽었다. 혹시 살이 살아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4개월을 기다렸지만 가능성이 없자, 의사선생님이 ‘한 달 뒤에도 상태가 똑같으면 수술을 하자’고 했다.

한 달 뒤 병원을 찾았을 때,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피부 피판술에 있어서 최고인 의사를 이틀 전에 그 병원에 보내 주셨다. 종아리에서 머리카락 같은 혈관과 함께 살을 떼어서 피부가 썩은 발목으로 옮겨 붙이고, 종아리의 피부는 다시 옆구리의 피부를 떼어 붙이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4개월이 지나 수술 부위가 다 아물었을 때 신기하게도 그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하나님이 남편을 위해 그분을 보내신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사고가 난 지 이제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남편은 양쪽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한쪽 목발을 짚고 다니고, 다시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지금은 지팡이 없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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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사람으로지난 날들을 돌아보니, 나는 내가 잘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했기에 교회 안에서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나를 다듬고 이끌어 오셨다는 마음이 든다.“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사 62:1)이사야 말씀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잠잠치 아니하시고 쉬지 아니하시며 일하고 계신다. 금은 땅 속에서 나오고 싶은 의지가 없지만 광부에 의해 채굴되고 수많은 과정을 거쳐 순금으로 만들어지듯, 하나님은 나를 교회에 두시어 정금으로 만들어 가신다.나는 늘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지, 믿는 것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믿는 것을 보는 세계로 이끄시려고 많은 일을 하셨고, 또 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기에, 오늘 또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 있어도 이제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 가실지, 또 남편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어 가실지 기대가 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렘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우리나라가 지금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듯이 통일왕국 이스라엘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북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36년이 지난 후 남쪽 유다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이 망하기 바로 전 1차 2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11절)

여러분,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를 향한 생각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녀가 학교에 가서 시험은 잘 치르고 있을까? 어제 공부한 것 덤벙대다가 틀리지 말아야 할 텐데… 날씨가 추운데 옷도 얇게 입고 가서 감기나 걸리지 말아야 않아야 할 텐데…. 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해야 될 텐데… 외국에 이민간 자녀가 잘 살아야 할 텐데… 캐나다에 유학간 자녀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공부를 잘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부모는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당신의 자녀된 우리들을 위하여 많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고로 하나님께 합한 사람 다윗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40:5)

여러분, 다윗은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이 어찌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말합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곧 관심이 많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관심이 많다는 것은 내가 곧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즉 하나님의 생각의 한 복판에 저와 여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생각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11절)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결코 재앙이 아닙니다. 불안이 아닙니다. 불행이 아닙니다. 비극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지금 그들은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왔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무너졌고, 하나님의 성전은 불타 버렸고, 예루살렘의 거리는 황무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 최고의 강국인 바벨론은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습니다. 더구나 포로의 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불안이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언제 또다시 자기들을 때리고, 끌고 가고, 죽일지 몰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비록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포로된 생활 가운데 있을지라도, 암담한 현실 가운데 있을지라도,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낯선 이국에서 포로의 신분을 가지고 살고 있을지라도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말이 그렇지 포로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활입니까? 더구나 이때는 포로생활의 초기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이 제일 힘듭니다. 군 생활도 처음이 힘들고, 감방 생활도 처음이 힘들고, 외국 생활도 처음이 힘듭니다. 그런데 주님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저들이 이런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저와 여러분들의 평안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가장 먼저 “평안하뇨?”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기 곁을 떠나갈 것을 미리 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고로 요한복음 14:27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권력이 아닙니다. 명예가 아닙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삼라만상도 아닙니다. 재앙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다름 아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평안입니다. 왜 그럴까요? 평안이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이 평안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11절)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누려야 할 축복이 평안이라면 소망은 장차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소망은 우리의 미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인하여 그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신앙이 바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그 암담한 현실 속에 사는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포로가 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포로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장래에 대한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재건하리라는 소망을 가지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장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꿈과 비전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을 향한 마귀의 생각은 자포자기입니다. 오늘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자는 오늘도 전진합니다. 낙망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분명했기에 자기를 죽이려는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 꿈 때문에 그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도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갈렙을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나이 85세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며 도전하며 전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꿈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그것도 산 위에서 120년간에 걸쳐서 그 배를 만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원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감옥에 갇히고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고 세 번이나 태장에 맞고 온갖 어려움과 핍박을 당했지만 그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우리가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도전하며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느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불평하며 사는 사람과 하나님이 주신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비교해 보세요. 얼굴 표정부터가 다릅니다. 주름살의 방향이 다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어느 신문에 자기가 고양이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진 부인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아멜라라고 하는 부인은 20년 전에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키우던 고양이가 그만 죽어 버렸습니다.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죽자 그녀는 매우 허전했습니다. 그녀는 넉넉한 처지가 아니었기에 예비로 사둔 고양이 밥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식사 때마다 먹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턴트로 된 이 고양이 밥은 한국의 라면보다 비싸고 그 맛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 고양이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 것이 버릇이 되어 이 십 년 동안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고양이 밥을 먹으면서 자기가 점점 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진짜 고양이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고양이처럼 그르렁그르렁 소리를 냈고, 경계심이 생기면 고양이가 하듯 쉬잇쉬잇 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생긴 모습이 점차 고양이처럼 변해 갔습니다. 스스로 고양이라고 생각을 하며 사니까 그 사람의 그 모습도 고양이를 닮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가 여러분의 인생의 운명을 바꿉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형편과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과 장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외국 땅에서의 포로생활이라는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곳 캐나다 외국 땅에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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