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 [한국히브리신학원]주일설교(11)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0-46) 27213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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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 1:46)” 이 말은 갈릴리 지방에 대한 지독한 사회적 편견이 담겨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니 주님이 나사렛에서 자라고 먼저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한 것은 이 편견에 대한 도전이요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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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잣대’로 푸는 요한복음 강해설교
-성경의 잣대란?-
창세기 1장을 뜻하며, 모든 성경을 정확하게 풀어나가는 기준을 말한다.
한국히브리신학원은 창세기 1장의 숨은 비밀을 히브리 원어에 근거하여 자연현상의 6일 창조가 아닌 속사람을 세워나가는 1~6째 시기임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한국 히브리 신학원은-
창세기 1장을 기준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실한 근거와 명쾌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그동안 잘못된 신학과 이단과 종말론자들의 억지 이론에 시달렸던 성도들에게 히브리 원어의 뜻과 의미로 성경을 가르쳐서 기존의 잘못된 개념을 바꿀수 있게 도움을 준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하늘교회,
한국 히브리 신학원 ( http://koreahebrew.com/ )
학장: 서균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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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Holy-Bible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번역비교].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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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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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나사렛,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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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ybiblenotes.tistory.com

Date Published: 9/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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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 주안의교회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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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urch.enagape.org

Date Published: 8/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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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 ..탈무드,교훈,예화.. – Daum 카페

날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 라 하니라(요 1:46). 이곳은 예수님의 부모가 사신 마을이며 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불리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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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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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7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장 43 …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준 날이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 “(요 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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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10/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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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 배영진목사 설교 – 하늘문교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예수님을 보통 나사렛 예수, …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 하나님나라에 이제까지 쓸만한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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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eavensdoor.or.kr

Date Published: 3/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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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2020년 5월 17일 주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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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di.kr

Date Published: 5/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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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히브리신학원]주일설교(11)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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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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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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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Holy-Bible

John 1:48

Nathanael said to Him, “How do You know me?”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Before Philip called you, when you were under the fig tree, I saw you.” [번역비교]

John 1:50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Because I said to you that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do you believe? You will see greater things than these.” [번역비교]

John 1:46

Nathanael said to him, “Can any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Philip said to him, “Come and see.” [번역비교]

John 1:45

Philip found Nathanael and said to him, “We have found Him of whom Moses in the Law and also the Prophets wrote–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번역비교]

갈릴리 나사렛,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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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이곳은 예수께서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신 후 다시 귀국하여 정착하고 유아기부터 청년기를 거치면서 계속 살아오셨던 예수의 실제적인 고향으로서(마 2:23; 눅 4:16) 예루살렘 북방 약 120km 지점에 위치한 해발약 488m의 구릉지의 분지이다. 이곳은 예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과 더불어 기독교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매우 뜻깊은 곳이다(마 2:23 ; 3:13).

한편 마가는 ‘나사렛’이란 지명을 첨가시킴으로써 이방인 독자들에게 그곳의 지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이에 비해 누가는 이 지명을 아예 생략했으며 마태는 ‘갈리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마 3:13)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수만리 멀리 떨어져 있는 로마의 신자들 곧 예수에 대해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바로 그들에게 예수에 대한 역사성을 입증해 주기 위한 마가의 노력의 한 표현이다.

갈릴리 바다

• 나사렛 예수여!

한편 귀신들조차 예수를 부를 때 ‘나사렛 예수여’라고 칭한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

문자적으로 ‘나사렛 사람’ 혹은 ‘나사렛에서 온 사람’이란 뜻으로서, 회당에 들어왔던 귀신은 예수에 대하여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으며 따라서 천한 신분을 가졌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결국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術策)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당시 일반 사람들의 통념 속에서는 ‘나사렛’이라고 하면 경멸의 뜻으로 인식되어졌다. 왜냐하면 그곳은 종교, 문화적으로 선민적 특권을 누리던 예루살렘 및 유대 지경과는 동떨어진 이방의 초라한 고을이었기 때문이다(사 9:1,2). 이런 관점에서 심지어 예수께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언급하셨던 나다나엘까지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였던 것이다(요 1:46,47).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요 1:46)

갈릴리 바다, 게네사렛 호수, 디베랴 바다

• 갈릴리 바다

갈릴리 바다는 보통의 담수호(淡水湖) 중의 하나이지만 성경에서는 흔히 바다로 불리우고 있다. 이는 다른 곳에서 ‘게네사렛 호수'(눅 5:1) 또는 ‘디베랴 바다'(요 6:1, 23;21:1)로도 불리우고 있다. 이 아름 다운 바다는 길이 약 20km, 너비약 10km, 수면은 해발 -240m정도이며, 가장 깊은 곳이 약 50m가량 된다고 한다. 이 곳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업이 번창했다. 그리고 이 바다 서쪽과 북쪽 해변에는 많은 읍과 어촌들이 밀집해 있었다(Josephus,Wars. III,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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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요한복음 1:43-46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 생각”을 말합니다. 편견이 생기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불완전함 인식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사건들, 모두를 올바르게 통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즉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얻은 관념이 모든 세상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섣부른 일반화가 그의 편견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편견이 형성되면, 그 다음부터는 그 편견에 의해서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비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습니다. 때때로 편견은 우리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때가 많습니다. 사실,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자세히 관조해 보면, 우리도 편견에 잡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한계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인간을 부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본문에 나와 있는 나다나엘도 역시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다나엘이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혔던 것은 무리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고 있었던 지역이 역사적으로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리 땅에 이방인들이 거주하게 된 계기는 솔로몬 왕이 제공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신이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을 짓는 건축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큰 건물들을 지으려면 다른 나라들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벌목을 잘하는 두로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두로 왕에게 사신들을 보내 자신에게 건축 재료인 레바논의 백향목과 잣나무를 벌목하여 보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두로 왕은 솔로몬 왕이 건축을 하기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공급하였습니다. 게다가 금까지 공급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두로 왕의 도움으로 무사히 건축공사를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갈릴리의 성읍 스무 곳을 두로 왕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장사꾼이었던 두로 왕에게는 그 땅은 쓸로없는 땅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쓸모없는 땅이라는 의미로 가불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왕상 9:10-14) 그 이후로 그 땅은 이방인에 더럽혀져 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서 그 땅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사 9:1) 이사야 선지자는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 곳 사람들이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서 갈릴리라는 지역이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는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곳 중에 성읍 스무 곳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살면서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이방의 문화가 갈릴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갈릴리를 멸시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나다나엘이 갈릴리를 무시하고 멸시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이름이 나다나엘이라는 것은 그의 이름을 지은 아버지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도 역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려고 왔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가 우리를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4-45) 빌립은 갈릴리로 가시려는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을 만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상세히 알지도 못했는데, 그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누가 여러분을 찾아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한다면 그를 따라가겠습니까? 먼저 ‘당신은 누구요?’, ‘왜 그러시요?’라고 반문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했던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부른 분이 누구인가를 알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을 만드실 때, 말씀만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 분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한 메시야임을 알고서 가슴이 벅차서 그 사실을 자신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와서 알렸던 것입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뻐겠습니까? 그가 고대하던 메시야를 만났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가슴 벅찬 사실을 알고 그 사실을 나다나엘에게 알렸지만, 정작 나타나엘은 나사렛이라는 지역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물론 빌립이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알리지 않은 것도 그의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한 몫은 했지만, 나사렛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인하여 그는 예수님을 부정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예수께서 나사렛의 요셉의 아들이라는 말에 더욱 큰 반감을 가졌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나사렛에 대한 편견이 예수님을 부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신앙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편견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회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도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어떠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진실을 부정하고 거짓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정치인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더구나 많은 정치인들은 이 편견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거짓된 사실을 진실처럼 가장하여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도록 유도합니다. 아마 이번 세월호 사고나 서울 지하철 사고도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편견을 가지도록 할 것입니다. 그런 대형 참사는 우리 사회를 바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하여 민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도록 방치한 것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패의 징조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편견에 사로잡히면 기회주의에게 힘을 몰아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힘을 몰아주어 그 사람의 악을 방관하고 덮어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편견의 해악이 아닐까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부정적인 마음을 해결해 주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빌립처럼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편견을 해소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와서 보라”는 말만 했습니다. 직접 보는 것 말고 무엇으로 그 편견이 사라지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는 방식도 이런 식이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개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하는 방식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 안에 형성되어 온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체험하고 알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간증인 것입니다. 우리가 삶으로써 예수님을 들어낼 때, 그들의 편견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도 불신자들에게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요? 그렇지 않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와서 보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건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다나엘을 만나신 예수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예수님께서 나사렛 출신이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요. 또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출생지나… 있는가? 내가 그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에 있어 어떠한 핍박과 억울한 …

나사렛은 시골 촌동네였습니다.

예언의 성취며 다스리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오심을 나타내는 것 같네요..

하나님 일 하는데 있어서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

낮은 자리에 임할 줄 아는 겸손한 삶의 자세.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 부터

도망다니실 정도로 구원을 위해 세상의 핍박을 받으셨다는 것

나다나엘은 즉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요 1:45) 고 했습니다.

빌립이 무엇인가…오늘 우리도 예수님처럼 보잘것 없는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요한 1:43-51)

“이방의 갈릴리” 갈릴리 나사렛은 마태복음 4:12~15에 보면 “이방의 갈릴리”라고 칭합니다.

갈릴리는 이방 땅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렛은 교통의 중심지여서 로마 군대나…

어느 날 예수님은 나사렛의 목공소를 떠나시면서 그의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시고

그의 친척 요한이 설교하고 있던…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0,.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나다니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 라 하니라(요 1:46). 이곳은 예수님의 부모가 사신 마을이며 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불리웠고,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노쯔리”(Notzri)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예수님을 무시했다.(참고, 요 1:46) …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 (요 1:46).

20200207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장 43-51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http://thececc.com/wp-content/uploads/2020/02/20200207.mp3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제자인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빌립을 만나시는 장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3절은 “이튿날”이란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날 다음 날 입니까?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준 날이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다음 날 입니다. 그 다음 날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셨고, 그에게 “나를 좇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44절에 보면 이 빌립이란 사람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인 벳새다 사람 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가운데 놓고, 가버나움은 북서쪽에, 벳새다는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벳새다는 조그마한 어촌 입니다. 구전에 의하면 빌립 역시 안드레와 같이 본래 세례 요한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립은 갈릴리에서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각적으로 응답 했습니다.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빌립 또한 안드레와 같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 분이 메시아이심을 감지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 새벽에 살펴 본 내용 혹시 기억 나십니까? 안드레가 예수님이 그토록 자신이 기다려온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가장 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 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빌립도 이와 동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신한 후 곧 바로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성경이 빌립과 나다나엘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아 우리가 이 둘이 가족인지 가까운 친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형제라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둘은 가까운 사이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은 성경에서 매우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오병이어 사건 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빵을 사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정확하게 계산했던 제자가 바로 빌립 입니다. 셈이 빠르고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의 이름 ‘빌립’이 헬라어식 이름이란 면에서 보면 그는 헬라 문화에서 익숙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명절에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했을 때, 빌립을 통해서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빌립은 유대 문화도 익숙하고 헬라 문화에도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능통한 1.5세와 같은 사람이 빌립인 셈 입니다.

수에도 밝고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빌립, 이처럼 평상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인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자신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은 무척이나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45절 말씀 입니다. “(요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 자네 내 말을 좀 들어보게. 내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예언자들도 기록했던 그분을 만났어. 그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야!” 45절에서 빌립이 말한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란 표현 보이십니까? 우리가 얼마전에 새벽예배 때 세레 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신명기 18장 15절 말씀을 찾아 본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자신이 죽은 이후에 자신과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이스라엘을 위해 일으키실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죠. 또 45절에 “예언자들도 기록했던 그 분”, 이 역시 구약성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빌립은 지금 ‘메시아’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나다나엘에게 “예수가 메시아다”라는 것을 전하고 있는 셈 입니다.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46절 입니다. “(요 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그는 빌립이 전해 준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 떨떠름 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미가서에는 분명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당시에 나사렛이란 동네는 이스라엘의 촌구석 입니다. 오늘날 느낌으로 말하면 서울의 달동네 판자촌인 셈 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동네는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교육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한 밤중 강도나 술에 취한 사람들 사이의 폭력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동네 입니다. 그러니 이 가난한 촌 동네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태어났다고 하니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에게 말한 것이죠. “빌립, 나사렛이라고? 나사렛이라고? 그 동네에서 무슨 좋은 사람이 나오겠는가?” 이렇게 나다나엘이 말할 정도였으니, 나사렛은 정말 낙후한 지역임은 분명합니다.

자, 이에 대한 빌립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46절 말씀 한 번 다시 보십시오. 후반절에 보면 “와 보라” 영어로 Come and see 입니다. 이 표현 어디서 본 듯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장 38-39절 말씀을 봅시다. “(요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 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스승 요한이 예수님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이에 39절에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와 보라” Come and see 입니다. 이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안드레였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마도 나머지 제자가 바로 안드레의 고향 친구이자 신앙의 열심이 있었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이 아닌가 추측하는 것이죠.

빌립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분이 메시아인 것을 확신했기에, 나다나엘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의 생각이 180도 변하리라 확신 했습니다. 이에 빌립은 나다나엘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자, 이 때 저 멀리서 나다나엘이 자신에게 오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47절 입니다.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우리가 나다나엘의 마음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나다나엘은 마음이 겸손하고, 진실하고, 말씀에 충실한 경건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다나엘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속임수나 간계를 쓰지 않는 그의 성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평상시에도 메시아의 오심을 충실하게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자였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다나엘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대답합니다. “(요 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여기서도 우리는 무화과나무 아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당시 무화과나무는 무성하고 커다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에 랍비들이 율법을 교육하거나 묵상하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뜻은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있었을 때 였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깊은 속을 알아 본 예수님께 나다나엘이 말했습니다. 49절 말씀 입니다.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나다나엘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일 먼저 고백한 사람이 바로 나다나엘 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이란 표현으로 부름으로 그 분이 진정 메시아 되심을 고백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앞으로 더 큰 일 볼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50절 입니다. “(요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여기서 더 큰 일이란 요한복음 2장부터 12장에이어지까지 계속되는 일곱 표적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보여주는 일곱 기적들 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이적과 권능을 행하심으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보이셨습니다.

51절을 봅시다. “(요 1: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8장을 보면 아버지 집을 떠난 야곱이 해가 진 후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꿈 속에서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보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사닥다리는 지상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 사역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영적 사닥다리가 되시사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를 열결해주시는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그가 가진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부르시는 주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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