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화가의 정원 | 클로드 모네 (1840~1926) : 모네의 그림 70점 감상 [짧고 굵은 지식] 상위 240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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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를 소개하고 그의 작품 70점을 음악과 함께 감상해 봅니다.
#모네, #수련, #인상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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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지베르니 정원 – 검색결과 | 쇼핑하우

더홈아트 인테리어액자 모네 지베르니 정원 6호(43×31). 31,900원. 리뷰 1. 쿠팡 · [캔버스액자] 모네 – 화가의 지베르니 정원 The Artist’s Garden at Giver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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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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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가 사랑한 정원데브라 맨코프 | 중앙북스- 교보문고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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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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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 클로드 모네의 집과 정원 – 프랑스 관광청

작품의 일부는 현재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생전 모네는 이곳 정원의 수련들을 직접 길렀다. 화가일 뿐 아니라 정원가이기도 했던 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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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france.fr

Date Published: 3/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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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와무라 ‘모네노니와(모네의 정원)’ 마루못탄|관광

인상파 화가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사랑한 정원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지베르니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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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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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가 사랑한 정원 – Daum 블로그

모네는 처음에는 소박한 마음으로 지베르니의 정원에 꽃을 심었다. … 베퇴유의 화가의 정원 (1880년, 내셔널 갤러리). 모네 가족은 그림 같은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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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2/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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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T art 캔버스 2734 명화 – 화가의 정원/모네

모네는 이 지베르니정원을 소재로 약 500여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지베르니의 꽃들의 정원을 마치 색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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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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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1840~1926) : 모네의 그림 70점 감상 [짧고 굵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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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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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명화:베퇴유에 있는 화가의 정원/The Artist’s Garden at Vétheuil 1880

명작에 빠진, 그리다 클로드 모네의 명화:베퇴유에 있는 화가의 정원/The Artist’s Garden at Vétheuil 1880 그리다GRIDA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클로드 모네의 정원은 그냥 단순한 정원의 의미를 넘어 특별한 화풍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모네가 그린 그림에서 주는 영감은 모네 자신은 물론 앙리 마티스에 이르는 예술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거든요. ​ 어떻게 보면 사실 정원 자체가 예술이고 이런저런 야생화부터 다양한 색의 꽃들은 자체로 회화적이라고 할수있어서 원예와 회화의 밀접한 연관성은 함께 갑니다. 그런 정원과 회화를 너무도 눈부신 기법으로 표현했던 화가가 클로드 모네의 정원작품들이죠. ​ 클로드 모네의 ‘베퇴유의 예술가(화가)의 정원’의 디테일 컷/아들 장(Jean) 클로드 모네의 베퇴유의 예술가(화가)의 정원/ 명화: 해바라기 풍경/세부 디테일 컷 주체못하는 좋은 날씨를 받아 반짝이며 햇살에 부서지는 꽃들의 묘사를 보세요. 너무도 예쁜 정원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자체를 그렸습니다. 다들 아시지만 모네가 인상주의 화가잖아요. 빛의 화가라 불리죠. 모네가 느끼는 감동그대로를 그렸기에 우리는 모네의 그림에 빠지게 되죠.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면 아마 더이상 상상할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을겁니다. ​ 해바라기 풍경속 모네의 아들 장(Jean)/1880년 제작된 작품/화가의 정원 1878년 모네는 한때 후원자였던 어니스트 호세데의 가족과 함께 병든 아내 카미유(Camille)와 두 어린 자녀들과 함께 파리 교외의 이 마을로 이사합니다. (Vétheuil은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60km 떨어진 세느 강의 코뮌입니다. Vétheuil은 Val-d’Oise 부서의 Pontoise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이 시기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에게 가장 다작한 시기 중 하나였는데, 그는 단 3년 만에 베테유의 예술가 정원 (1881)을 포함하여 거의 300점의 그림을 그립니다. 이후로는 그유명한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로 이사하죠. 평생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마무리합니다. ​ 모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주제: 정원 ​ 모네는 그가 사는 곳이면 어디든 정원을 만들어요. 그는 베테유에 있는 이 집을 세들었을 때, 세느강으로 이어지는 테라스 경치를 보기 위해 집주인과 합의를 했을정도로 풍경에 예민했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는 모네의 어린 아들이고, 그의 뒤에 있는 계단에는 그의 다른 가족들이 보입니다. 오솔길에는 푸른색, 자두색, 여러 가지 녹색으로 물든 그늘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고 모네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날씨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요. ​ ​ 찬란한 빛과 화려하고 깊은 색채 그림과 면은 색으로 간략하게 정의됩니다. 그림에 보면 옆에 큰 화분이 보이죠. 그 큰 화분들은 모네의 것이었고, 그는 이사를 옮길 때마다 또 장소를 옮길때마다 필요하면 가져가는 열정가였는데요. 그냥 우리가 보기엔 화분일뿐이지만 모네의 의도는 다 계산되어있었습니다. 화분에 비치는 녹색잎의 잔상, 빛의 반사등을 모네는 여러 장치에 그리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어 낮엔 투명화분에 초록이 물들테고 석양이 질땐 아마 핑크로 물들지도 모르는 색채의 변화, 우연의 효과를 늘 기대하고 계산하고 있었던거죠. 명작이 괜히 탄생되는게 아니죠. ​ 1880년대 초, 이 작품이 그려졌을 때, 모네는 그림 표면 자체에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빛과 대기의 자발적인 효과를 포착하는 것에 덜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데 그림의 주제를 다양하게 그리다보면 선호하게 되는 기법이 있고 취향도 바뀌고 점점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되는것같습니다. ​ 가장 위대한 정원작품을 남긴 클로드 모네 지베르니정원 전에 베퇴유 ​ 지베르니의 정원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유명한데요. 그전 베퇴유의 정원도 이토록 풍부한 색채가 살아있다는것이 놀랍죠?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붓터치가 결코 부드럽거나 매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뜻보기에 예쁜것과는 달리 거칠게 색채들의 난입이라고 할정도로 막칠해졌어요. 그런데 오히려 모네의 이런 거친 기법이 밖에; 햇살과 자연에 더 어울렸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말이 필요하겠어요. 그림을 보는 순간 제가 그림속 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 클로드 모네의 명화, 베테유의 예술가(화가)의 정원/The Artist’s Garden at Vétheuil 1880 151.5 x 121cm(59 5/8 x 47 5/8인치) 캔버스의 기름 워싱턴 국립미술관 ​ 인상주의 모네 모네 인상주의 화파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붙힐게요. 인상주의 화파, 화가인 모네는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와 함께 인상주의를 이끈 화가입니다. 순간 순간 변화하는 빛의 흐름을 일순간에 포착해 캔버스 위로 옮기고자 하루종일 몇날 몇일을 같은 자리에서 시시각각의 변화를 포착했을만큼 노력했던 화가입니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빛의 화가’라고 부르고 있으며, 빛의 마술에 걸려 한평생 빛만을 찾아다녔다고 해도 지나치지않습니다. 왜냐면 야외풍경을 그시대에 모네만큼 많이 그린 화가가 없어요. 모네의 작품이 명작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클로드 모네의 명화, 베테유의 예술가의 정원/The Artist’s Garden at Vétheuil 1880 다시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그림으로 돌아가서요. 높은 지평선을 가진 이 그림의 구성은 시선을 캔버스 안으로 몰아줍니다. 아래에 집중할수있게; 경계를 만들어준거죠.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물감색의 질감이 있고 두껍게 층층이 칠해져 있는 표면을 볼수있는데요. 가까운 거리에서 볼때, 이러한 붓놀림은, 여전히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덜 묘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그야말로 모네는 자신만의 감성에 충실했다는거죠. 미완성같다고 하든 말든 모네의 느낌은 확대해서 보면 마무리가 덜된듯한 느낌이 없지않아있는데 모네의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훗날 많은 예술가들에게 너무도 직접적인 영감을 주게 됩니다. ​ 오늘은 요즘처럼 푸른 가을날, 높은 파란하늘과 어울리는 꽃, 클로드 모네의 명화, 명작이죠.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함께 보셨습니다. ​ 오늘 그림은 클로드 모네의 ‘베퇴유의 예술가(화가)의 정원’이었습니다. ​ 인쇄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면 많은 이들이 자리에 멈춰 서서 감상하는 데에만 긴 시간을 할애하는 작품이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Waterlilies)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빛의 색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가 십 년 동안 붓질을 멈추지 않고 완성시킨 수련 연작의 무대, 그 봄의 향연을 직접 만나러 지베르니(Giverny)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가 지나가고 꽃이 움트는 초봄을 지나 녹음이 진 5월, 지베르니에 위치한 모네의 정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매년 50만 명 이상의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규모가 큰 관광지로, 노르망디에서는 몽 생 미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대문 옆에는 모네의 정원 지도가 걸려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넓은 정원 안은 모네가 살았던 생가와 꽃의 정원, 물의 정원 등이 있다.

꽃의 정원

Jardin de fleurs

지베르니, 꽃의 정원

모네는 1883년부터 1926년 숨을 거둘 때까지 43년을 이곳 지베르니에서 지냈다. 꽃의 정원은 화가인 동시에 원예가였던 모네가 직접 만들고 관리했던 곳인데, 8000제곱미터로 그 넓이가 상당하다. 코티지 가든의 모습을 띤 정원에는 양귀비, 아네모네, 수선화, 라일락, 튤립, 아이리스 등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꽃들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피어 있다. 어떻게 보면 돌봄이 필요 없어 보일만큼 제멋대로 자라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조화가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네는 청년 시절 노르망디를 여행하던 도중 베르농(Vernon)에서 지조르(Gigors)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그 길목에 있는 지베르니를 발견했다. 그는 한눈에 이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1883년 거처를 옮기기에 이른다. 모네는 사과나무 과수원이었던 지금의 집 터를 구입하고, 그 옆에 딸린 분홍색 건물을 함께 사들였다. 조경과 조예가 깊었던 모네는 그의 입맛에 맞게 꽃과 나무를 심어 지금의 아름다운 ‘꽃의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을 거닐다 보면 카메라 셔터를 멈출 수가 없다. 화각 안에 잡히는 것마다 그림이고, 예술이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행객들은 꽃의 정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감상을 나누거나 사진을 찍고, 또 조용히 감상했다.

모네의 집

La maison de Monet

모네의 생가

긴 줄을 기다려 도착한 모네의 집. 초록색으로 칠해진 창문과 분홍빛의 건물은 모네의 독특한 개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모네의 정원 입장 티켓

모네의 집에는 그가 생전에 수집했던 일본의 풍속화와 우키요에 판화가 유난히 많이 걸려있다. 당시 반 고흐를 포함한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포니즘(Japonism), 즉 일본 문화를 사랑했다. 모네의 집에 있는 일본 작품들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그려진 것들이며 그 수만 200점이 넘는다. 이 가운데는 키타가와 유타마로(1753-1806), 카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그리고 유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의 작품들도 있다. 사실 모네의 집에 있는 일본식 작품들 중 원본은 없으며, 이는 모두 사본이다. 원본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모네 미술관 (Musée Marmottan Monet)에 전시되어 있다.

왼쪽은 모네가 숨을 거둔 침실이다. 모네는 창 밖을 내다보면 그의 정원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을 침실로 삼았다. 실제로 모네의 침실에는 커다란 창이 나있는데 그 밖으로 모네의 집 전경을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

오른쪽은 모네의 그림들이 창문을 제외한 삼면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응접실이다. 원래 이 응접실은 모네가 1899년까지 작업을 몰두했던 그의 첫 번째 작업실이었지만 나중에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응접실로 탈바꿈했다. 방에는 영국 식 소파가 놓여 있고 벽엔 모네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모네의 부엌은 벽면이 모두 루앙(Rouen) 스타일의 타일들로 채워져 있다. 이 타일은 독특한 모네의 감성이 잘 드러나 있어 많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은데, 기념품샵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이는 가구들을 칠한 푸른색 페인트와도 잘 어울린다.

부엌은 모네 생전에 가족들이 사용하던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레인지와 오븐 위에 놓여있는 냄비나 팬은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일본식 화분에서도 모네가 사랑했던 자포니즘을 엿볼 수 있다.

식당 역시 모네가 생전 사용한 그대로 복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노란색으로 꾸며진 집 안은 당시에는 아주 모던한 것이었다. 벽에는 일본식 목판화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키가 큰 유리 찬장 안에는 푸른 도기 그릇과 모네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노란색, 파란색 식기 세트가 진열되어 있다.

물의 정원

Jardin d’Eau

돌연 마법처럼 내 연못이 깨어났다.

난 홀린 듯 팔레트와 붓을 잡았고,

다시는 그보다 더 멋진 모델을 만날 수 없었다.

모네는 그의 스승인 외젠 부댕(Eugene Boudin)으로부터 빛과 색을 잘 그리는 법을 전수 받았다. 그는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매 순간 달라지는 빛의 색채를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런 모네에게 수련 연작을 완성시킨 지베르니의 정원은 그의 뛰어난 표현력을 극대화시켜줄 완벽한 모델이었다.

모네는 1893년 자신의 정원을 더 넓힐 수 있도록 그 옆에 대지를 구매했다. 그는 물을 끌어와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심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일본식 아치형 목재 다리를 설치했다. 그 뒤로 모네는 자기가 만든 물의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수련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련 연작은 그 수가 무려 250여 점에 이르며, 이는 제1차 계 대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려졌다.

수련 연작 앞에 모네

말년에 모네는 물의 정원에 설치된 연못에 몰두했다. 그는 일곱 명의 정원사와 함께 정원을 가꿀 만큼 그곳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그린 작품들은 수련 연작과 같이 벽화만 한 초대형 캔버스에 그려졌다. 안개나 반사된 빛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색감 그리고 모네만의 두터운 붓터치가 독특하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

모네는 자연광을 받은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서양의 풍경화보다는 동양 미술을 사랑했다. 그중에도 특히 일본 목판화에 빠져 있었는데,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건초더미'(1888~94), ‘포플러'(1892), ‘루앙 대성당'(1892~94) 연작이다. 이 그림들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는 순간들을 포착해 표현해낸 작품들이다.

모네는 물감을 섞기보다는 원색 그대로를 사용해 겹쳐 그림으로써 색깔을 내거나 생생한 명암 표현으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을 선호했다. 당시 화가들이 사용하던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상파로써의 새로운 지표를 꽂은 셈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 그림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

모네는 백내장으로 시력이 악화되고 있었다. 그는 이를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변명거리로 삼지 않았고, 나아가 추상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 눈은 심한 백내장으로 노란색과 붉은색만을 볼 수 있었고, 오른쪽 눈은 수정체가 없었기 때문에 보라색만 볼 수 있었다. 나중에는 물과 식물, 하늘의 구분이 흐려졌다. 모네는 이를 장애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예술로 승화시켜 캔버스 위에 맘껏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네의 천재적인 예술성을 완성시켰고, 후기 추상화에 영향을 미쳤다.

모네의 집 선물샵에서 구매한 지베르니 마그넷

지베르니에서의 여행은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의 감성과 무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직접 그림을 감상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모네의 집은 사랑스러웠고, 꽃의 정원은 생동감 넘쳤으며, 물의 정원은 아름다웠다. 작품을 보고 단지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모네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고 온 것이다.

꿀을 따러 날아든 나비를 따라 일본식 목재 다리를 건너면 못 앞에 앉아 보이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붓 질을 하는 백발 노인의 뒷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는 나이 듦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아는 진정한 예술가였다. 우리는 그에게서 천재적인 예술성뿐 아니라 죽지 않는 열정을 배웠다. 그 힘이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때까지 후세에게 존경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네가 사랑한 정원

출판사 리뷰

“모네의 정원을 보기 전까지는 그를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르센 알렉상드르(미술비평가)

인상파 화가 모네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 지베르니 정원

화가이자 정원사로서 모네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담은 책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던 모네는 1883년 파리 북서쪽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작은 마을 지베르니를 발견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온갖 꽃과 나무로 ‘색채의 정원’을 만들었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눈앞에 만들어두고 싶었던 화가는 스스로 정원사가 되어 지베르니를 낙원으로 가꾸어 이곳에서 연못과 수련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한다. 《모네가 사랑한 정원》은 모네 스스로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라고 한 그의 정원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마침내 지베르니가 멀리 모습을 보인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반은 시골이고 반은 소도시 같은 마을이다. 그런데 어디에 차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자칫 베르농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려는 순간,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팔레트의 온갖 색채를, 팡파르의 온갖 음색을 상상해보라. 그것이 바로 모네의 정원이다!” – 아르센 알렉상드르(미술비평가)

정원을 가꾸며 발전한 모네의 작품 세계

화가로서 모네는 찰나의 순간을 화폭에 담는 데 일생을 바쳤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정원을 사랑했다. 정원에 대한 모네의 열정은 1871년 파리를 떠나 조용한 시골 마을 아르장퇴유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모네는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며 『점심』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역시 교외 지역인 푸아시와 베퇴유 등을 거쳐 마침내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된다.

정원을 가꾸면서 그의 작품 세계도 발전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하고 처음 몇 년은 화폭에 담아낼 장소를 찾아 노르망디 해안과 루앙, 리비에라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정원이 무르익어갈수록 자신이 찾던 것을 집에서 발견했다. 그는 화단을 색과 높이에 따라 분류한 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규모의 정물화처럼 꾸몄다. 강렬한 자연광 아래에서 꽃을 관찰하여 싱그러운 색채의 향연을 표현했다. 무성한 풀과 나무, 꽃을 심고 굽이치는 둑을 만들었으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어 물의 정원을 조성했다. 정원사는 수면이 빛을 반사하도록 매일 아침 수련을 솎아내고 남은 수련들의 먼지를 닦아서 성글고 둥근 모양으로 다듬었다. 모네는 제멋대로 이는 물결에 수련이 흐트러지고 연못에 드리운 나무와 구름이 유리안 같은 수면에 비쳐 흔들리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본문 14쪽)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정원에서 수련을 그리는 데 바친 모네

정원은 모네에게 모티프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나는 항상 하늘과 물, 이파리와 꽃을 사랑했다. 내 작은 연못에서 얼마든지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본문 16쪽) 지베르니 정원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갖추어가자 모네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그림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어졌다. 아내에게 “내 심장은 항상 지베르니에 머무르고 있소”라고 말할 만큼 정원은 화가로서 정체성의 일부였다.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그린 500여 점의 작품 중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수련』 연작의 주제 ‘수련’은 처음부터 그릴 목적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관상용으로 수련을 심었을 뿐이다. 전혀 그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며 시간이 흘러 풍경에 친속해지고 나서야 연못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본문 92쪽)

모네를 이해하려면 그의 정원을 보라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지베르니 정원에 머물며 수련을 그리는 데 바친다. 시력이 약해지고 양쪽 눈에 백내장 진단을 받고 두 번의 수술을 했음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원 연못의 신비하고 놀라운 그림자와 미묘한 빛의 인상을 재현해냈다. 모네가 죽은 뒤 『수련』 그림은 지베르니의 작업실에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모네의 『수련』 연작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타원형으로 지어진 이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모네의 바람대로 “잠시나마 긴장에서 벗어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모네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베르니의 정원를 직접 보고 그의 예술 정신을 느끼고 싶어할 것이다. 모네가 자신의 그림처럼 구상한 지베르니 정원에는 지금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곳은 자연과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 색채의 정원이다. 색의 무한한 팽창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색조가 일시에 피어나도록 씨앗을 부린 것이다. 그래서 만개한 꽃들은 화가의 의지에 의해 색채 아닌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된 듯 보인다. 이곳에는 지상의 꽃들뿐 아니라 수상의 꽃들, 예를 들면 이 거장의 캔버스에 탁월하게 묘사되었던 매우 연약해 보이는 수련도 피어난다. 또한 그림의 테마라기보다는 위대한 화가의 눈에 비쳐진 자연으로 다시 태어난 완결된 그림인 까닭에,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의 치환물이라 할 수 있다. 모네의 정원은, 미리 선정된 감미로운 색채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색조의 극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생명으로부터 이끌어낸 최초의 스케치라 할 수 있다.”-마르셀 프루스트(소설가)

모네와 정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모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정원을 알아야 한다. 지금 지베르니로 가 ‘색채의 정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지베르니를 다녀왔더라도 모네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다. 모네의 작품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책을 펼치는 순간 모네의 그림에서 평화와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은 충분하다.

모네가 사랑한 정원 – 교보문고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알려져 있다. 화가로서 모네는 찰나의 순간을 화폭에 담는 데 일생을 바쳤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정원을 사랑했다.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잡기 위해 정원이라는 공간에 몰두했다. 정원에서라면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색감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883년 파리 북서쪽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는 스스로 정원사가 되어 온갖 꽃과 나무로 ‘색채의 정원’을 만들었다. 짚풀만 무성하던 지베르니의 과수원이 위대한 화가의 모티프이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원이 된 것이다.모네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지베르니 정원에서 나오지 않고 수련을 그리는 데 바쳤다. 모네 인생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수련》 연작은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모네의 바람대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긴장에서 벗어나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이 책은 정원을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의 일부라고 생각한 모네의 삶과 그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명작”으로 꼽는 지베르니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네의 작품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책을 펼치는 순간 모네의 그림에서 평화와 위안을 얻을 것이다.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던 모네는 1883년 파리 북서쪽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작은 마을 지베르니를 발견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온갖 꽃과 나무로 ‘색채의 정원’을 만들었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눈앞에 만들어두고 싶었던 화가는 스스로 정원사가 되어 지베르니를 낙원으로 가꾸어 이곳에서 연못과 수련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한다. 《모네가 사랑한 정원》은 모네 스스로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라고 한 그의 정원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책이다.“마침내 지베르니가 멀리 모습을 보인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반은 시골이고 반은 소도시 같은 마을이다. 그런데 어디에 차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자칫 베르농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려는 순간,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팔레트의 온갖 색채를, 팡파르의 온갖 음색을 상상해보라. 그것이 바로 모네의 정원이다!” – 아르센 알렉상드르(미술비평가)화가로서 모네는 찰나의 순간을 화폭에 담는 데 일생을 바쳤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정원을 사랑했다. 정원에 대한 모네의 열정은 1871년 파리를 떠나 조용한 시골 마을 아르장퇴유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모네는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며 《점심》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역시 교외 지역인 푸아시와 베퇴유 등을 거쳐 마침내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된다.정원을 가꾸면서 그의 작품 세계도 발전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하고 처음 몇 년은 화폭에 담아낼 장소를 찾아 노르망디 해안과 루앙, 리비에라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정원이 무르익어갈수록 자신이 찾던 것을 집에서 발견했다. 그는 화단을 색과 높이에 따라 분류한 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규모의 정물화처럼 꾸몄다. 강렬한 자연광 아래에서 꽃을 관찰하여 싱그러운 색채의 향연을 표현했다. 무성한 풀과 나무, 꽃을 심고 굽이치는 둑을 만들었으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어 물의 정원을 조성했다. 정원사는 수면이 빛을 반사하도록 매일 아침 수련을 솎아내고 남은 수련들의 먼지를 닦아서 성글고 둥근 모양으로 다듬었다. 모네는 제멋대로 이는 물결에 수련이 흐트러지고 연못에 드리운 나무와 구름이 유리안 같은 수면에 비쳐 흔들리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본문 14쪽)정원은 모네에게 모티프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나는 항상 하늘과 물, 이파리와 꽃을 사랑했다. 내 작은 연못에서 얼마든지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본문 16쪽) 지베르니 정원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갖추어가자 모네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그림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어졌다. 아내에게 “내 심장은 항상 지베르니에 머무르고 있소”라고 말할 만큼 정원은 화가로서 정체성의 일부였다.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그린 500여 점의 작품 중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수련》 연작의 주제 ‘수련’은 처음부터 그릴 목적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관상용으로 수련을 심었을 뿐이다. 전혀 그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며 시간이 흘러 풍경에 친속해지고 나서야 연못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본문 92쪽)모네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지베르니 정원에 머물며 수련을 그리는 데 바친다. 시력이 약해지고 양쪽 눈에 백내장 진단을 받고 두 번의 수술을 했음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원 연못의 신비하고 놀라운 그림자와 미묘한 빛의 인상을 재현해냈다. 모네가 죽은 뒤 《수련》 그림은 지베르니의 작업실에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모네의 《수련》 연작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타원형으로 지어진 이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모네의 바람대로 “잠시나마 긴장에서 벗어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모네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베르니의 정원를 직접 보고 그의 예술 정신을 느끼고 싶어할 것이다. 모네가 자신의 그림처럼 구상한 지베르니 정원에는 지금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그곳은 자연과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 색채의 정원이다. 색의 무한한 팽창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색조가 일시에 피어나도록 씨앗을 부린 것이다. 그래서 만개한 꽃들은 화가의 의지에 의해 색채 아닌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된 듯 보인다. 이곳에는 지상의 꽃들뿐 아니라 수상의 꽃들, 예를 들면 이 거장의 캔버스에 탁월하게 묘사되었던 매우 연약해 보이는 수련도 피어난다. 또한 그림의 테마라기보다는 위대한 화가의 눈에 비쳐진 자연으로 다시 태어난 완결된 그림인 까닭에,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의 치환물이라 할 수 있다. 모네의 정원은, 미리 선정된 감미로운 색채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색조의 극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생명으로부터 이끌어낸 최초의 스케치라 할 수 있다.”-마르셀 프루스트(소설가)모네와 정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모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정원을 알아야 한다. 지금 지베르니로 가 ‘색채의 정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지베르니를 다녀왔더라도 모네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다. 모네의 작품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책을 펼치는 순간 모네의 그림에서 평화와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은 충분하다. 닫기

지베르니, 클로드 모네의 집과 정원

파리 근교에 위치한 작은 마을 지베르니(Giverny)는 인상파 거장 모네의 삶에 담긴 비밀과 그가 남긴 작품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모네는 43년간 지베르니에 거주하며 연작을 비롯한 여러 대표작을 완성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었다.

꽃과 나무로 장식한 외관과 분홍색 초벽으로 이루어진 클로드 모네의 집은 넘치는 매력을 뽐낸다. 물의 정원, 클로드 모네 재단의 화룡점정 물의 정원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와 꽃으로 가득하다. 클로드 모네는 바로 이 연못을 바라보며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련> 연작을 완성했다. 작품의 일부는 현재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생전 모네는 이곳 정원의 수련들을 직접 길렀다. 화가일 뿐 아니라 정원가이기도 했던 그는 아티스트의 감각을 발휘해 자신의 정원을 직접 가꿨다.

© Aterrom – AdobeStock

작은 녹색 다리, 작약, 대나무는 당시 일본을 동경했던 모네의 열정을 보여준다. 모네는 다양한 색채, 빛, 물 위로 반사되는 풍경이 어우러져 완성된 진정한 작은 천국인 이 연못의 모습을 회화로 담기를 즐겨했다. 클로 노르망 정원과 클로드 모네의 집 모네의 집 바깥에는 ‘노르망디의 벽’이라는 뜻의 클로 노르망(Clos Normand)이라 이름 붙은 정원이 있다. 황수선화, 붓꽃, 작약, 한련, 장미, 수선화 등 다양한 식물들이 산책로를 가로지르는 금속 아치 다리 아래 화단을 다양한 색으로 수놓는다. 봄에 이곳을 방문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 1층: 아틀리에, 응접실, 식당, 부엌 내부 인테리어는 모네의 집에 담긴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1층에는 (모네가 남긴 작품의 복제품이 전시된) 거실 겸 아틀리에, 응접실, 부엌 등이 있다.

노란색 벽을 갖춘 식당에서는 모네가 수집한 아름다운 일본 판화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도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 방 층계를 따라 올라가면 재건된 방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방은 모네가 썼던 방으로, 현대 인상파 화가들이 남긴 작품의 복제품이 벽에 걸려 있다.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모네의 두 번째 부인 알리스 오슈데와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블랑슈 오슈데, 모네의 문하생 및 며느리가 그린 작품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2014년 재건된 모네의 방은 아름다운 꽃무늬 양탄자, 소나무로 제작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다른 방에서도 192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3년간 이 집에서 살며 클로드 모네가 남긴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모네가 사랑한 정원

모네가 사랑한 정원

데브라 맨코프 지음 | 김잔디 옮김

베레모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 Beret, (1886년, 개인소장 )

모네는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 작품은 첫 자화상으로 두터운 스웨터에 푸른색 점퍼를 입고 소박한

베레모를 쓰고 있다. 물감을 얇게 재빨리 칠했으며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과 굳게 다문 입슬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모네가 작품 소재를 찾아 시골 지역그로 자주 여행을 다닐 무렵의 그림으로 정원에 열정을 쏟기 직전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 아르장퇴유의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1873년, 코네티컷,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

젊은 시절 모네는 파리에서 도시 풍경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1872년 아르장퇴유에서 첫 여름을 맞으면서

직접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모네는 평생 동안 정원에서 위안과 영감을 얻었다.

지베르니 정원의모네 (1924년, 개인 소장)

모네는 처음에는 소박한 마음으로 지베르니의 정원에 꽃을 심었다. “날씨가 좋지않을 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꽃을 키우고 싶었다. “정원은 팔레트 위의 물감처럼 색에 따라 분류된 무성한 화단으로 가득했으며 해가 갈수록 화려

해졌다. 그는 예술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그림과 정원 간의 깊은 관계를 인식했다.

앙리 마뉘엘, 지베르니 작업실의 모네 (개인 소장)

모네는 물의 정원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나는 항상 하늘과 물, 이파리와 꽃을 사랑했다. 내 작은 연못에서 얼라든지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네는 유리알 같은 수면에 떠 있는 화사한 수련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사색에 잠긴 끝에 가장

대담한 혁신이자 지속적인 모티브가 되어줄 존재를 찾아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수련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렷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

인상 : 해돋이 (1872년, 파리, 마르모탕-모네 미술관)

잔잔하고 빛나는 수면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제1회 ‘무명 예술가 협회전’

(이후에 인상파 전시회로 유명해짐)에서 공개된 후 평단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특히 대충 작업한 듯한 붓놀림으로 인해

무질서한 데다 그리다 만 듯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인상파의 대표적인 표현 기법이 된 짧은 붓놀림은 빛의 작용

으로 나타나는 찰나의 순간이 지닌 인상을 잘 잡아냈다.

정원의 여인들 (1866년 ~ 1867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 지면과 여인들의 드레스에 불규칙하게 어른거리는 빛에서 자연광에 대한

모네의 세밀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에밀 졸라는 모네가 즐겨 그렸던 화려한 차림새의 우아한 여인들을 보고

그를 “진정한 파리지앵”이라고 불렀다. 이 작품을 잠깐 세 들어 산 집에 딸린 정원에서 그리기 시작했지만 작품

속 세련된 분위기로 보아 공원이 배경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1873년 시카고 미술관)

모네는 아르장퇴유의 집에서 첫해를 보내는 동안 예술적 영감과 내면의 평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았다.

정원은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아들 장이 테라스에서 놀고 카미유는 문 밖을 내다보는 이 그림에서

정원 가장자리를 둘러싼 생생한 붉은 꽃과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위로 쏟아지는 밝은 여름 태양의

효과를 묘사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며 느끼는 만족감 또한 잘 드러난다.

점심(187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네는 꼼꼼한 관찰을 통해 다양한 요소를 그림 속에 풍부하게 배치하여 아르장퇴유에서의 자적이고 편안한 삶을 묘사했다.

유지잔에는 와인이 남아 있고 나뭇가지에 모자가 걸려 있으며 벤치에 양산이 놓여 있다. 또한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나무 그늘,

환하게 핀 장미 화단에서 꽃향기가 풍길 것 같은 공기까지 여름날 오후의 기분 좋은 감각이 느껴진다.

에두아르 마에,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 가족 (187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네는 모네의 풍경화에서 생동감을 느꼈고 야외 회화의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1874년 여름 마네와 르노와르가 모네의 집을 방문하여 정원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마네의 그림 속에서 카미유의 눈부신 흰색 드레스 위로 햇살과 그림자가 쏟아지고 있으며 모네는 옆에 이쓴 나무 그늘에서 정원 일을 하는 중이다. 모네는 아르장퇴유에서 정원사를 고용했지만 직접 정원을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르장퇴유 집의 정원에 있는 모네 (1876년, 뉴옥,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네는 아르장퇴유의 두 번째 집에서 1878년까지 머물렀다. 화단 근처를 걸어가는 카미유의 모습이 담긴 이 작품을 포함해서 이 무렵에 그린 그림에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목가적인 삶이 곧 끝날 것을 예감한 듯, 글라디올러스 줄기와 생생한 꽃이 하늘 높이 뻗고 있는 둥근 화단의 활기찬 모습과 대조적으로 카미유의 모습은 곧 사라질 듯 가냘프게 보인다.

베퇴유의 화가의 정원 (1880년, 내셔널 갤러리) 모네 가족은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베퇴유에서 몇 년 동안 살았다. 1881년 여름 모네는 빛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정원의 오솔길 가장자리에 높이 솟은 해바라기를 여러 번 그렸다. 이 그림에서 우뚝 솟은 줄기 사이로 미셀 모네와 장-파애루 오슈데의 모습이 보이지만 모네는 소년들을 부수적인 요소로 표현하고 색채 감각에 집중했다.

레이던 근처 사센하임의 튤립 들판 (1886년, 메사추세트, 틀라크 미술관)

1886년 모네는 네덜란드 헤이그를 여행하면서 색깔별로 분류된 화단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꽃이 색채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튤립 들판을 다섯 번 그렸으나 자기가 가진 물감으로는 생생하면서도 순수한 자연의 색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며 아쉬워 했다.

봄의 지베르니 (1900년, 개인 소장) 1900년 봄 런던에서 지베르니로 돌아온 모네는 정원에서 꽃이 활짝 핀 사과나무를 그렸다. 그는 눈부시게 밝은 색조를 지닌 팔레트와 역동적이면서도 솜털처럼 부드러운 붓놀림을 결합하여 여름 특유의 계절감이 묻어나는 생생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모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마쓰카타 켤렉션) 차양 아래 꽃을 피운 모란 덤불은 모네가 초기 지베르니 정원에서 찾아내 그리던 소재다. 진홍색 꽃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흐릿한 청록색 이파리가 어지럽게 대조를 이룬다. 차양을 분홍색과 주황색으로 짧게 붓질하여 환한 태양빛이 위에서 내리쬐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비슷한 체 점의 그림 가운데 <모란>은 자연광을 듬뿍 받은 생생한 색채를 연구한 작품으로 보인다.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 (190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유달리 파란색과 보라색 꽃을 좋아했던 모네는 풍성한 아리리스 화단을 집 앞에 세로로 심었다. 색을 섞거나 부드럽게 흩뜨리기보다 자연 그대로의 생생한 모습을 살리기 위해 순수한 물감을 사용하여 두껍고 짧은 붓놀림으로 나란히 칠했다. 한 방문객은 밝은 아리리스 화단이 “태양 아래 연보랏빛 안개처럼” 떠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베르니 정원의 큰길 (1902년, 빈,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

집을 향해 북쪽을 바라본 그랑 알레를 그린 이 그림에서는 짙은 색 나무가 옅은 자갈길 위에 어스름하게 그늘을

드리운 모습을 표현했다. 정면에 멀리 보이는 집 벽면이 은은한 분홍색으로 강조되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뜨겁고 빛나는 태양 아래 밝은 자홍색과 생생한 다홍색 꽃잎이 만발하여 정원의 따뜻한 여름 색감을 나타낸다.

모네 정원의 다리 (1895년, 개인 소장)

1895년 모네는 물의 정원을 그리의 모티브로 삼을 수 있을 지를 연구하면서 1월 초에 한 점, 여름에 두 점의 작품을

그렸다. 왼편에 나타난 푸른 못 둑과 수면에 비친 사물의 모습, 기품있는 아치형 다리 등 일본식 다리 연작의 요소들이

많이 표현되어 있지만 수련이 물 위를 덮은 모습이 보이지 않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기에는 나무도 아직 무성하지 않다.

수련 (로스앤젤리스 카운티 미술관)

모네는 수련이 활짝 피기까지의 모습을 사색에 잠겨 면밀히 관찰한 끝에 1897년 수련 연구 작품들을 그렸다.

각 그림마다 캔버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물결이 일렁이고 접시 같은 수련 이파리 위에 얹힌 꽃이

미끄러지듯 물 위를 떠다닌다. 흐릿하고 차분한 색으로 표현된 수련 이파리나 물과 대조적으로

꽃잎은 투명하고 반짝이는 색채로 빛난다.

일본식 다리와 수련 연못 (1899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1899년에 모네는 물의 정원 그림을 확장한 첫 연작에 착수했다. 일본식 다리를 고정 요소로 배치하고 이파리와

꽃앞은 깜빡이듯 가벼운 붓질로 차가우면서도 생기 있게 색칠했다. 그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그렸을 뿐 아니라

상쾌한 그늘과 향긋한 공기, 마음을 가라앉히는 평온함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수련 연못 : 녹색의 조화 (파리, 오르세 미술관)

하루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빛의 변화를 좇아 기록했던 연작과 달리 이 그림에서 영원한 여름의 회복력을

표현하여 시간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가 드러난다. 푸른 하늘은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얼핏 느껴질 뿐이다.

단색에 가까운 미묘한 색조가 차가운 물과 솟아나는 열기를 포착해낸다.

일본식 다리 (1899,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모네는 시점을 변경하여 일본식 다리를 캔버스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시야를 물로 가득 채우고 수면에 언뜻 비친 나무와

물 위를 느리게 움직이는 수련을 그렸다. 일본식 다리는 안정적인 아치를 이루며 캔버스 위를 차지하는 한편

반짝이며 반사된 모습이 캔버스 아래를 받쳐주어 복잡한 물 위 풍경의 틀을 잡아주고 있다.

수련 연못 , 분홍 조화 (190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1900년 모네는 일본식 다리가 있는 새로운 풍경을 여섯 점 그렸다. 이보다 앞선 연작에서 나타난 차가운 색조와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흐릿한 노란색과 그윽한 보라색, 적갈색, 짙은 빤각색 등 따뜻한 색조를 실험적으로 사용했다. 예전 작품에서

붓을 정확하게 누르듯 움직였던 것과 달리 붓놀림도 느슨해져서 흐르는 듯한 선을 보여준다. 구름다리의 형태는 강하고

명확한 선으로 묘사하여 우키요에 속 평화로운 풍경에 대한 거침없는 해석과 이 작품의 주제를 연결하고 있다.

수련(구름) (1903년, 개인 소장)

모네는 <수련> 연작을 그리며 오랜 관심사였던 두 가지 모티브, 불과 빛을 탐구했다. 이 그림에서는 흔들리는

나뭇잎과 연못 위를 떠다니는 구름 테의 모습이 수면에 비친다. 전체 배경 앙옆으로 물결이 일고 캔버스 위쪽의

나뭇잎만이 연못을 주변 못 둑에 붙들어주고 있다.

수련 (1906년, 시카고 미술관)

모네는 참을성 있게 자연을 관찰하면서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법을 배웠다. 작품 전면에는 녹색 이파리

사이로 옅은 분홍빛 수련이 흩뿌려져 있다. 그 위로 수련 잎들이 뗏목처럼 정처 없이 떠다닌다. 하지만 모네에게

수련은 “배경 음악에 불과” 했다. ” 매 순간 모습을 바꾸는 수면의 거울이야말로 모든 모티브의 핵심이다.

수련 : 물 위의 풍경 (1907년, 코네티컷,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

연작 후반을 작업하면서 모네는 아침 무렵 밝게 번지는 빛과 저녁 무렵 극적인 빛, 두 가지의 빛의 효과에 집중했다.

옅은 아침 햇살이 비칠 때 그린 이 그림은 선명하게 반사된 수련과 따뜻하게 빛나는 수면이 만들어내는두 색조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평단에서는 풍경화에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추상과 상상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담한 혁신에 찬사를 보냈다.

수련 연못과 일본식 다리 풍경 (1905년, 개인 소장)

1901년 모네는 물의 정원을 다시 디자인하여 연못의 규모를 세 배 확장했다. 기존 연못은 개울 하나에도 못 미치는

크기였기 때문에 수련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데 제약이 있었다. 이제 연못의 폭이 넓어지자 꽃들은 자유자재로

수면 위를 떠다니거나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수련은 못가의 나무가 반사된 유리알 같은 물 위를

색색의 뗏목이 미끄러지듯 떠다녔다,

수련 (1904년, 보스턴 미술관)

모네는 연작을 그리면서 한순간의 시각적 효과를 포착하고 빛과 대기가 스쳐가는 경험을 캔버스에 조존하고자 했다.

비평가 로저 마르크스와의 대화에서 스스로를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며 “캔버스라는 화면에,

자신의 망막에 새겨진 인상을 비춰낼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수련 (1908년, 개인 소장)

모네는 일몰 무렵 빛이 점차 약해지는 모습을 탐구하면서 연작 후반 작업에 들어갔다.

빛을 머금은 안개속을 휩쓸고 지나간 듯하며 꽃과 물, 물에 비친 모습의 차분한 색조가 한데 뭉쳐

은은히 빛나는 광경으로 녹아든다.

수련 (1908년, 댈러스 미술관)

모네는 <수련> 연작을 작업하면서 다양한 구성 형태를 실험했다. 둥근 탠버스는 그림 소재의 장식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는 그림 속 연못을 “수평선이나 연못가가 사라지고 무한한 완전체가 된 환상”이라고 표현했다.또한 수련의 꽃과

오팔빛 잎을 솜털처럼 가벼운 붓질로 묘사하여 물 위를 한없이 떠다니는것 같은 효과를 창조했다.

존 싱어 사전트, 숲 가장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클로드 모네

(1885년,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

사전트가 지베르니를 처음 방문했을 때 모네는 밖에서 그림을 그리자며 그를 데리고 나갔다. 사전트는 상류층 인사들의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야외에서 그리는 회화에 흥미를 느꼈다. 이 그림에서는 자유롭게 붓을 놀려서 대상을

빠르고 즉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사전트가 사용한 팔레트는 강한 명암 대비를 보이며, 자연을 배경으로 하

모네의 인물화에서 볼 수 있는 생생한 반짝임은나타나지 않는다.

존 레슬리 브렉, 지베르니의 정원

(1890년경, 시카고, 테라 미술관)

브렉은 풍경화에서 더욱 섬세한 붓터치와 색조를 구사하기 위해 모네가 작품에서 다루었던 모티브를 기꺼이 차용했다.

이 그림에서 사용된 순수한 색과 가벼운 붓놀림을 보면 그가 새로운 방식에 완전히 동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브렉은 보스턴에서 열린 첫 단독 전시회에 지베르니 곳곳에서 그린 정원 그림 여섯 점을 소개했으며,

그중 적어도 한 점은 모네의 정원을 그린 작품이다.

존 레슬리 브렉, 지베르니의 정원(모네의 정원에서)

(1887년, 시카고, 테라 미술관)

브렉은 모네의 화풍과 그림의 모티브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꽃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지베르니에서 보낸 첫해 늦여름에

이 그림을 그렸다. 키 큰 장미가 활짝 피어 있고 오솔길 왼쪽으로 무성한 이파리를 뚫고 해바라기가 솟아 있다.

브렉은 꽃이 만개한 정원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채도가 높은 색상을 사영하여 빠르고 즉적적인 붓놀림으로 표현했다.

지베르니의 습지에서 책을 읽는 수잔과 그림을 그리는 블랑슈

(1887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모네는 교외에서 그림을 그릴 때 의붓딸들을 데려가곤 했다. 이 초상화에서 밝게 빛나는 색조를 사용하여

자연광 속 인물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지만, 이 작품을 끝으로 오랜 기간 관심사였던

인물화를 몇 년 동안 그리지 않았고 평생 순수한 풍경화만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블랑슈 오슈데 (1892년, 개인소장)

블랑슈는 청소년기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모네는 의붓딸의 작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야외에 이젤을 설치하고 그림을 그리는 블랑슈를 모데로 한 이 초상화야말로 모네가 블랑슈에게 보내는 가장 큰 지지라고 할 수 있다.

블랑슈는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캔버스 앞에 앉아 있고 옆에는 접은 우산이 놓여 있다.

캔버스 뒤쪽으로 동생 수잔이 약혼자 시어도어 버틀러 뒤세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어도어 로빈슨, 웨딩마치 (1892년, 시카고, 테라 미술관)

로빈슨은 7월에 열린 수잔 오슈데와 시어도어 버틀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몇 주 뒤 작업실에서 이날의 풍경을 그렸다.

따뜻한 색조와 가볍고 빠른 붓놀림으로 결혼식 장면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모네와 수잔이 앞서 걸어가고

신랑과 알리스가 뒤를 따르는 중이다.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하객들이 교회로 이동하고 있다.

블랑슈 오슈데, 지베르니 정원의 다리 (개인 소장)

블랑슈가 물의 정원을 묘사할 때 선택한 시점은 모네가 1899년까지 작업했던(일본식 다리) 연작을 연상시키지만

그녀는 특유의 붓놀림으로 의붓아버지보다 풍경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블랑슈는 작품에 날짜를 거의 표시하지

않았지만 격자 울타리 위로 무성하게 우거진 등나무와 연못가게 핀 꽃을 보면 모네가 대장식화를 작업할 무렵

물의 정원이 절정으로 무르익었던 시절을 표현한 듯하다.

프레더릭 칼 프리스크, 접시꽃 (뉴욕,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은은하게 빛나는 색조를 통해 프리스크가 인상파의 가르침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 알 수 있다.

청록색 드레스를 입은 가녀린 여성은 활짝 핀 꽃송이로 가득한 꽃자루를 연상시킨다. 크리스크는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신선하게 접근하여 가정의 행복을 표현했다.

일라 캐벗 페리, 지베르니의 가을 오후 (시카고, 테라 미술관)

야외 회화에 대한 페리의 관심은 지베르니에서 더욱 커졌다. 모네는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서 세세한 묘사에

얽매이기보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라고 조언했다. 페리는 모네의 말에 따라 주황색과 보라색, 파란색을 사용하여

짧고 생생한 붓놀림으로 일시적인 가을빛의 효과를 표현했다.

아이리스 (1914~1971년, 개인 소장)

저명한 원예학자인 조르주 트뤼포는 1913년에 모네를 방문 했을 때 연못가에서 자라는 다양한 아이리스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늦봄에 꽃을 피운 꽃창포가 주는 “동양적인 느낌”에 반했다. 모네는 동양의 미학을

미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세한 해석을 초월한 표현럭을 발휘해쓰며 영롱하게 빛나는 물감을 사용하여

가볍고 길게 붓을 놀림으로써 꽃의 풍부한 감각을 나타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국화와 별

(1832년경,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미술관)

모네는 일본 미술의 단순한 기법을 두고 일부만을 묘사하여 전체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힘이라고 정의했으며

특별히 흥미를 느꼈다. 우키요에의 거장 호쿠사이는 뾰족한 꽃잎을 절묘하게 해석해냈으며, 모네는 이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아 그해에 국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화 화단 (부분) 1897년, 바젤 미술관

이 그림 속 국화를 보면 모네가 꽃을 형상화하는 방식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캔버스를 가득 메운 빛나는 꽃의

장관을 방해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모네는 정원이나 꽃병 같은 배경으로부터 꽃을 해방시킴으로써

기존 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각 경험을 개척했으며, 이러한 방식은 그후 10여 년에 걸쳐

(수련) 연작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아이리스 (1914~1917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아이리스는 모네가 무척 좋아하는 꽃이었다. 그는 지베르니에 온 첫해에 야생 아이리스 들판을 그렸고

꽃의 정원에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무성한 아이리스 화단을 만들었다. 연못가에도 여러 종의 아이리스가 무성했다.

길이 구불구불한 것으로 보아 배경은 물의 정원이다. 모넨느 물결치듯 붓을 움직여 이파리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바람이 느껴지도록 리듬감을 살렸다.

연못가의 아이리스 (1914~1917년, 리치먼드, 버지니아 미술관)

꽃의 정원에 있는 아이리스는 색채의 안개가 떠다니는 듯한 효과를 주기 위해 화단으로 심었지만 연못가 아이리스는

자유롭게 무리지어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 이 그림에서는 캔버스 상단 가운데쯤 얼핏 보이는 차가운 느낌의 푸른 연못

바로 아래에 광택이 나는 황토색을 조각조각 가볍게 두드리듯 찍어 구불구불한 길이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치렁치렁한 이파리와 눈부시게 빛나는 보라색, 분홍색 꽃을 활기찬 붓놀림과 선명한 색채로 그렸다.

장미 (1925~1926년, 파리 마르모탕-모네 미술관)

덩굴장미를 사랑했던 모네는 특별히 두 정원에 모두 장미를 심었다. 물의 정원에는 보기 흉한 철로를 가리기 위해 아치형

격자 울타리를 세워 장미로 덮었으며, 꽃의 정원에는 베란다에 설치한 격자 울타리와 산책로를 가로지르는 아치에

장미덩굴이 자유롭게 자라도록 했다. 이 그림에서는 조각구름이 가득한 담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색채의 덩굴장미를 그렸다.

눈부신 분홍색 장미를 보면 반짝이는 물 위에 떠다니를 수련이 떠오른다.

블랑슈 오슈데-모네, 지베르니의 장미나무(개인 소장)

생생하게 빛나는 분위기 속에서 풍성하게 꽃을 피운 장미 아치로 보아 블르랑슈는 장미가 한창 아름다울 시기인 6월쯤에

이 그림을 그린 듯하다. 조르주 트뤼포는 1913년에 모네를 방문했을 때 풍부하고 다양한 장미를 보고 소감을 남겼다.

꽃이 활짝 피어 있을 때는 마치 불꽃놀이 축제가 열린 것 같다며 정원 앞 도로를 지나던 사람이 문 뒤로 얼핏

색채를 감지한다면 “이 동화 같은 세상에 발을 딛고 싶어 못 견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앙드레 아르니벨데 촬영, 그림을 그리는 클로드 모네 (1913년, 파리, 루브로 박물관)

1913년 11월 저널리스트 앙드레 아르니벨데가 유명 주간지 <주 세 투>에 실을 인터부를 위해 지베르니로 왔을 때

모네는 이렇게 고백했다. “작업을 많이 하지 못했소….., 3년 동안 끔직하 슬픔에 /바져 붓을 들 수가 없었소.”

그는 몇 달 전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아르니벨데는 모네가 작업실에서 최근 작품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했다. 여름을 맞아 눈부시게 빛나는 장미 아치를 그린 작품이었다.

니콜라스 머레이 촬영 장미가 덮인 대문 아래의 모네

(1926년, 뉴욕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

모네는 알리스를 잃고 나서 아들의 건강이 악화된 데다 자신도 백내장 진단을 받자 큰 절망에 빠졌다.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며 위안을 덛으라고 충고했지만 붓을 들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 정원에서 쇠퇴와 소생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모네는 가장 좋아하는 모티브가 삶의 목적과 그림에 대한 열망을 불러오는 것을 느끼며

다시 팔레트를 집어들고 물의 정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장미넝쿨과 꽃이 정원을 그렸다.

지베르니의 꽃이 덮인 아치 (1913년, 피닉스 예술 박물관)

그림에서 손을 놓았던 3년이 지난 후 모네는 물의 정원에 있는 장미 아치 풍경을 세 점 그렸고, 이 그림들은

모네의 화가 인생에서 마지막 단계이자 극도로 집중했던 시기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모네는 새롭게 복구된 연못의 전경을

동쪽 못가에서 바라보며 화폭에 옮겼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물 위에 비친 빛나는 반영과 수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 무렵 모네는 시력이 약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증기로 가득한 대기와 금방이라도 변할 것 같은 하늘 등

특유의 표현력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 (1918~1919년, 그로노블 미술관)

모네는 프랑스에 대장식화를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려 몇 달 동안 비밀스러운 연못 구석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일본식 다리 반대편에 있는 구불구불한 연못가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작은 캔버스 몇 개를 채웠다.

구석진 연못에 은밀한 울타리를 쳐놓은 듯하다. 풀이 무성한 모 둑 위로 우거진 장미와 나무가 있는 배경은

그늘진 휴식처 같은 느낌을 준다.

일본식 다리에 기대어 있는 모네 (1926년, 파리, 클레망소 박물관)

모네는 물의 정원에 대한 감각 경험을 재창조하는 일련의 작품을 구상하면서 지친 마음과 날카로운 신경을 어루 만져줄

평온함과 친밀감을 표현할 방버을 궁리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연못은 항상 모네의 영혼에 안식을 주었으며

너무 지쳐 그림을 그리기 힘들 때에도 영감을 북돋아주었다.

일본식 다리 (1918~1924년, 파리, 마르모탕 – 모네 미술관) 모네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자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림을 그렸고 1921년 한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베토멘이 귀머거리나 다름없을 때 작곡을 했듯이 나는 장님에 가까운 상태로 그림을 그린다.” 그는 이 시기에 일본식 다리 연작을 추가로 그렸다. 각 작품들의 변화가 깜짝 놀랄 만큼 크다. 어떤 작품에서는 강렬하고 떨리는 색조와 두껍고 날카로운 붓놀림이 나타난다.

장미정원에서 바라본 집 (1922~1924년, 파리 마르모탕 – 모네 미술관)

모네는 오른쪽 눈을 세 번째 수술을 받고 나서 책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보였다.

그리 드문 증상은 아니었다. 몇 달 후에는 파란색과 보라색이 시야를 점령하는 청시증이 나타났고 이는 황시증보다

더 흔한 증상이었다. 그는 특정 물감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여 계속 그림을 그렸지만

이 그림 속 푸른 색조에서 볼 수 있듯청시증의영향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녹색 반사, 대장식화 (1920~1926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는 물 위를 떠다니는 수련의 자유로운 움직임에서 무한한 보티브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확신했다.

이 그림에서 그는 수면 전체를 훑어보고 있다. 시선의 위치가 낮기 대문에 물결은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자유롭게 흐르며 물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못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늘진 나무가 수면에 반사되어 초록빛 색조를

드리우는 가운데 차가운 색감이 신선한 대기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아침, 대장식화 (1920~1926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대장식화가 전시된 첫 번찌 방에서 관람객이 하루 동안 연못이 변화하는 모습을 탐색했다면 두 번째 방에서는

연못의 전경을 죽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전체 풍경에 버드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휘어진 버드나무 즐기가

불귀칙하게 기둥처럼 간간히 서 있고 가지는 아래로 늘어져서 들쑥날쑥한 장막을 드리운다. 버드나무 뒤 연못에는

유리알 같은 물과 구름이 흩뿌려진 하늘이 반짝이면서 하나로 합쳐져 끝없는그림자의 들판이 펼쳐진다.

오늘날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원래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복원한 것이다.

남아 있는 사진과 한창 때 정원을 방문객들으 기억에 따라 곷과 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조심스럽게 수정이 이루어졌다.

구근과 종자 중에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것이 많고, 시멘트와 벽돌로 보강해 길을 넓히는 것과 같이 토양 보호를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모네의 비전은 유지되었으며, 모네와 선택받은 손님들만 누릴 수 있었던 풍경을

이제 세계 곳곳의 방문객들이 공유하게 되었다.

위 내용은 ‘중앙 books’ “모네가 사랑한 정원”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생몰 : 1840. 11. 14 ~ 1926. 12. 5 국적 : 프랑스

인상파를 주도한 프랑스의 화가. 당시 실내에서 그려지던 관념적 자연이 아닌, 직접 눈으로 인식한 자연을 그렸다. 1860년대에 이르러 즉흥적이고 간결한 붓눌림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빛과 기후조건을 달리해 같은 주제로 연작을 그리는 것은 모네 연작의 특징이었다. 말년에는 템스강, 워털루 다리, 영국 국회의사당 등 방대한 풍경의 연작을 그렸다. <수련> 연작을 그린 말년은 좀 더 주관적인 인상주의로 변모하여, 자신이 받은 자연의 인상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Arirang – George Win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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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클로드 모네 (1840~1926) : 모네의 그림 70점 감상 [짧고 굵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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