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감독 | 뉴욕에서 영화감독 되기! 하버드출신 영화제 대표가 말하는 외국인이 미국에서 영화감독 되는 법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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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출신 뉴욕 지역 영화제 대표가 알려주는, 외국인이 미국에서 영화감독 되는 법.

00:33 강연자 소개
01:22 영화하기, 할리우드만이 꼭 정답인가?
03:50 미국에서 영화감독 되기, 어떻게 하나?
04:53 미국 영화시장, 외국인들에게도 관대한가?
06:09 영어실력 열마나 좋아야하나?
07:14 미국 영화시장, 뉴욕과 LA의 차이는?
08:59 필름스쿨 학위, 필수인가?
10:58 독립영화제작 후원금 어디서 어떻게 받나?
11:55 젊은 영화인 들에게 조언 한마디?
강연자인 니나 피오리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 하버드를 졸업하고 방송과 영화 산업 분야에서 일을 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이 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여러 정보들과 팁들을 알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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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감독 1 – YES24

『미국영화감독』은 르몽드 시네마 아카데미가 『영화의 장르, 장르의 영화』에 이어 두 번째로 기획한 영화 강의교재로 10명의 필자가 12명의 미국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2/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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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감독 1 – 인터파크

미국영화감독 1 ; 상호, ㈜교보문고 ; 사업자번호, 102-81-11670 ; 연락처, 1544-1900 ; 이메일, [email protected] ; 통신판매 신고번호, 01-0653.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mbook.interpark.com

Date Published: 6/13/2022

View: 9515

세계적인 영화감독들? – 네이버 블로그

그 다음 작품인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는 마약을 소재로 한 <트래픽>으로 다시 한번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더버그 감독은 배우들이 함께 일해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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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2/2021

View: 586

[러, 우크라 침공] 미국 영화감독 숀팬, 우크라이나에서 침공 …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정치인인 숀 저스틴 펜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의 공격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

+ 더 읽기

Source: www.g-enews.com

Date Published: 7/27/2021

View: 8250

[전자책] 미국을 까발린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 알라딘

세르조 레오네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일생을 영화와 함께한 ‘영화인간’이었다. 그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새로운 서부극 장르를 개척하여 미국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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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7/12/2022

View: 6819

미국 영화감독과의 온라인대화, 참여하시겠어요? – 브런치

한국YWCA연합회주최 다큐멘터리영화감독 Jeffrey Gee Chin | 내일은 진짜 재미 있는 날이 될 것 같다! 아시안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제프리가 우리 청소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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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4/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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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미국 영화 감독

  • Author: 뉴욕에서 영화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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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tce50WZ5g0

미국영화감독 1

제1부 흥행불패의 귀재들

“사실 미학적 순수주의자들만 스필버그에게 따가운 눈총과 비하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건 또 아니다. 현실참여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역시도 스필버그는 언제나 물어뜯기 손쉬운 먹이다. 특히 이들은 자본력이 담보하는 현란한 특수효과들이 동시대판 ‘민중의 아편’과 다름없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즐거운 눈과 귀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잊게 하며, 나아가 주류사회의 지배소적 가치체계를 은연중 내면화하게 만든다는 주장일 터이다. 그러나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실제로 스필버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살필 수 있었던 것처럼, 그에게 가해지는 비판 중 많은 부분이 텍스트의 실증성에 근거하지 않은 탓에 다분히 빈약한 논리에 기댄 경우가 많다.” – 남병수 영화평론가 ‘스티븐 스필버그-대중을 향해서 내민 영화적 위무의 손길’

““[킬빌]은 ‘영화의 영화’였어요. 브라이드는 단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과 싸운 게 아니라, 엑스플로이테이션 영화 전반의 역사와 맞서 싸운 거예요. (데스) 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장르를 대표해요.”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플롯의 구조, 관객의 예상과 기대를 깨트리는 아이디어에 집중한다. 플롯을 장으로 나누는 방식은 소설의 구성방식과 [비브르 사 비](My Life To Live, 1962) 같은 장 뤽 고다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관객은 처음 10분 정도만 보면 대강 어떤 영화인지 짐작하게 되고 다음 장면을 유추하기 마련이다. 타란티노는 이야기의 순서를 뒤틀거나 관객에게 구축된 정보를 역이용하기를 좋아한다.” – 김경욱 영화평론가, ‘쿠엔틴 타란티노-헤모글로빈의 시인’

제2부 기술과 판타지의 개척자들

“나는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모든 영화로 구성된 단 한편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게 그 한 편의 영화는 블리크 하우스와도 같아요. 나는 하나씩 하나씩 방을 만들어나가고 있으니, 관객은 그 집을 한눈에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델 토로 표 공포영화는 동화와 신화에 바탕 한 판타지가 관객에게 인간의 무의식 속의 욕망과 갈등에 대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의 판타지는 현실 도피적이거나 자극적인 요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판타지가 아니라, 관객이 사는 세계를 해석하되 특유의 공포가 가미된 판타지를 창조한다. 그에게 “판타지는 현실을 해석하는 위대한 방법”이다. 그는 우리가 눈을 뜨고 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판타지와 호러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 서성희 영화평론가, ‘기예르모 델 토로-창의적이고 숙련된 판타지의 거장’

“모든 문화 속에 자리 잡은 기술의 발전은 항상 문화적 변혁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이룩해 온 문화 속에서 모션캡처 기술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결국 영화라는 문화의 변혁에 상당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멕키스의 여러 시도에서 주목해볼 만한 명분은 초창기 모션 캡처 기술에 대한 실패사례이거나, 기술적 결함이 가져온 영화흥행 참패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아니라, 모션 캡처 기술이 영화와 영화가 이끄는 문화 현상을 어떻게 변혁시켰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각 문화가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통찰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지승학 영화평론가, ‘로버트 저멕키스-혁신을 주도한 영상기술의 실패와 성공의 변증법’

제3부 아이러니의 거장들

“리안 영화 [아이스 스톰]의 주인공 폴은 만화잡지 ‘판타스틱 포’ 1973년 11월 호를 보면서 세 가지를 깨닫는다. 첫째, 가족은 공허의 시작이자 죽으면 돌아가는 곳이다. 우습게도 가까워질수록 공허감은 커진다. 둘째, 모든 사람에겐 부정 차원이 존재한다. 부정 차원의 세계는 정체성이 전도되고 일상사들이 반전되는 곳이다. 우리는 모두 이 차원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순 없다. 셋째, 삶이란 안전한 길만 고집할 수 없으며, 미지의 세계로의 문은 늘 열려 있다. 그러나 잘못 통과하면 죽을 수도 있다. 리안 영화에서 가정은 늘 모순된 공간이고 가족은 원자화된 존재들이다. 가족 혹은 가정이란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사랑과 정, 책임과 의무 같은 것들은 소중한 가치지만 아무런 반성적 성찰 없이 단지 기표 위를 흐르는 범박한 이데올로기로 주어질 때는 의미가 없다. 리안은 욕망과 금기라는 주제를 가족이나 가정 같은 가장 익숙하고 오래된 문제 틀 안에서 섬세한 층위로 다루고 있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리안-경계를 가로지르는 아이러니스트’

“팀 버튼 영화의 악당들은 가면의 맹목적 강요(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표정)에 순종하도록 운명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가면에 종속된 가면의 노예들인 셈이다. 가면의 노예들은 세상을 공격한다. 그리고 가면의 노예들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영웅이라는 가면을 쓴 배트맨이다. 팀 버튼은 신화에서 시작하여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끝없이 이어져 온 원형적 가부장제의 인물들을 교묘히 비틀고, 조롱하고, 희화화하면서 가면을 통해 환생할 수밖에 없는 약자로서의 악당,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약자들의 슬픔까지 깊이 들여다본다.” – 최재훈 영화평론가, ‘팀 버튼-크리스마스의 고아들, 자라다’

제4부 스토리텔링의 실험자들

“큐브릭 감독의 작품 특징을 보면, 권력에 대한 비판과 죽음의 이면을 폭로한다. 큐브릭은 권선징악적 인물 유형을 거부함으로써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며, 폭력의 정당성을 가진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날 것 그대로의 잔인한 세상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는 권력의 균형추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인물을 통해, 관계 내에서의 힘의 우위와 대립,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비극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현대 사회의 이면에 감추어진 권력의 파괴적인 성향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통해, 상층계급에 대한 위선을 폭로하는 열렬한 사회비판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큐브릭은 영화사가 제럴드 마스트의 말처럼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열정’이라는 핵심적인 주제를 완벽한 스타일로 담아낸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관습을 파괴하고 독창적 스타일을 구현함으로써 ‘테크놀로지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서곡숙 영화평론가, ‘스티븐 스필버그-전쟁영화 4부작, 권력의 파괴와 죽음의 공포’

“이냐리투 감독의 연출 철학을 ‘생명에 대한 경외’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실로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했는데 한 결 같이 ‘감상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리건에게 동정심이 생긴다거나, 험악한 자연을 헤쳐 나온 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거나,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의 소유자 옥스발에게 연민을 느낀다거나, 죽음을 앞둔 폴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크리스티나나 단 한번 실수로 불행에 빠진 잭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앞으로 이냐리투 감독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간 많은 작품을 만들지 않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새로 나올 때 마다 경이로운 눈길을 멈출 수 없었다.” 박태식 영화평론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생명의 경외’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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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흥행불패의 귀재들

“사실 미학적 순수주의자들만 스필버그에게 따가운 눈총과 비하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건 또 아니다. 현실참여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역시도 스필버그는 언제나 물어뜯기 손쉬운 먹이다. 특히 이들은 자본력이 담보하는 현란한 특수효과들이 동시대판 ‘민중의 아편’과 다름없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즐거운 눈과 귀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잊게 하며, 나아가 주류사회의 지배소적 가치체계를 은연중 내면화하게 만든다는 주장일 터이다. 그러나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실제로 스필버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살필 수 있었던 것처럼, 그에게 가해지는 비판 중 많은 부분이 텍스트의 실증성에 근거하지 않은 탓에 다분히 빈약한 논리에 기댄 경우가 많다.” – 남병수 영화평론가 ‘스티븐 스필버그-대중을 향해서 내민 영화적 위무의 손길’

““은 ‘영화의 영화’였어요. 브라이드는 단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과 싸운 게 아니라, 엑스플로이테이션 영화 전반의 역사와 맞서 싸운 거예요. (데스) 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장르를 대표해요.”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플롯의 구조, 관객의 예상과 기대를 깨트리는 아이디어에 집중한다. 플롯을 장으로 나누는 방식은 소설의 구성방식과 (My Life To Live, 1962) 같은 장 뤽 고다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관객은 처음 10분 정도만 보면 대강 어떤 영화인지 짐작하게 되고 다음 장면을 유추하기 마련이다. 타란티노는 이야기의 순서를 뒤틀거나 관객에게 구축된 정보를 역이용하기를 좋아한다.” – 김경욱 영화평론가, ‘쿠엔틴 타란티노-헤모글로빈의 시인’

제2부 기술과 판타지의 개척자들

“나는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모든 영화로 구성된 단 한편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게 그 한 편의 영화는 블리크 하우스와도 같아요. 나는 하나씩 하나씩 방을 만들어나가고 있으니, 관객은 그 집을 한눈에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델 토로 표 공포영화는 동화와 신화에 바탕 한 판타지가 관객에게 인간의 무의식 속의 욕망과 갈등에 대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의 판타지는 현실 도피적이거나 자극적인 요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판타지가 아니라, 관객이 사는 세계를 해석하되 특유의 공포가 가미된 판타지를 창조한다. 그에게 “판타지는 현실을 해석하는 위대한 방법”이다. 그는 우리가 눈을 뜨고 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판타지와 호러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 서성희 영화평론가, ‘기예르모 델 토로-창의적이고 숙련된 판타지의 거장’

“모든 문화 속에 자리 잡은 기술의 발전은 항상 문화적 변혁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이룩해 온 문화 속에서 모션캡처 기술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결국 영화라는 문화의 변혁에 상당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멕키스의 여러 시도에서 주목해볼 만한 명분은 초창기 모션 캡처 기술에 대한 실패사례이거나, 기술적 결함이 가져온 영화흥행 참패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아니라, 모션 캡처 기술이 영화와 영화가 이끄는 문화 현상을 어떻게 변혁시켰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시각 문화가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통찰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지승학 영화평론가, ‘로버트 저멕키스-혁신을 주도한 영상기술의 실패와 성공의 변증법’

제3부 아이러니의 거장들

“리안 영화 의 주인공 폴은 만화잡지 ‘판타스틱 포’ 1973년 11월 호를 보면서 세 가지를 깨닫는다. 첫째, 가족은 공허의 시작이자 죽으면 돌아가는 곳이다. 우습게도 가까워질수록 공허감은 커진다. 둘째, 모든 사람에겐 부정 차원이 존재한다. 부정 차원의 세계는 정체성이 전도되고 일상사들이 반전되는 곳이다. 우리는 모두 이 차원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순 없다. 셋째, 삶이란 안전한 길만 고집할 수 없으며, 미지의 세계로의 문은 늘 열려 있다. 그러나 잘못 통과하면 죽을 수도 있다. 리안 영화에서 가정은 늘 모순된 공간이고 가족은 원자화된 존재들이다. 가족 혹은 가정이란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사랑과 정, 책임과 의무 같은 것들은 소중한 가치지만 아무런 반성적 성찰 없이 단지 기표 위를 흐르는 범박한 이데올로기로 주어질 때는 의미가 없다. 리안은 욕망과 금기라는 주제를 가족이나 가정 같은 가장 익숙하고 오래된 문제 틀 안에서 섬세한 층위로 다루고 있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리안-경계를 가로지르는 아이러니스트’

“팀 버튼 영화의 악당들은 가면의 맹목적 강요(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표정)에 순종하도록 운명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가면에 종속된 가면의 노예들인 셈이다. 가면의 노예들은 세상을 공격한다. 그리고 가면의 노예들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영웅이라는 가면을 쓴 배트맨이다. 팀 버튼은 신화에서 시작하여 시리즈를 통해 끝없이 이어져 온 원형적 가부장제의 인물들을 교묘히 비틀고, 조롱하고, 희화화하면서 가면을 통해 환생할 수밖에 없는 약자로서의 악당,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약자들의 슬픔까지 깊이 들여다본다.” – 최재훈 영화평론가, ‘팀 버튼-크리스마스의 고아들, 자라다’

제4부 스토리텔링의 실험자들

“큐브릭 감독의 작품 특징을 보면, 권력에 대한 비판과 죽음의 이면을 폭로한다. 큐브릭은 권선징악적 인물 유형을 거부함으로써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며, 폭력의 정당성을 가진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날 것 그대로의 잔인한 세상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는 권력의 균형추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인물을 통해, 관계 내에서의 힘의 우위와 대립,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비극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현대 사회의 이면에 감추어진 권력의 파괴적인 성향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통해, 상층계급에 대한 위선을 폭로하는 열렬한 사회비판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큐브릭은 영화사가 제럴드 마스트의 말처럼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열정’이라는 핵심적인 주제를 완벽한 스타일로 담아낸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관습을 파괴하고 독창적 스타일을 구현함으로써 ‘테크놀로지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서곡숙 영화평론가, ‘스티븐 스필버그-전쟁영화 4부작, 권력의 파괴와 죽음의 공포’

“이냐리투 감독의 연출 철학을 ‘생명에 대한 경외’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실로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했는데 한 결 같이 ‘감상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리건에게 동정심이 생긴다거나, 험악한 자연을 헤쳐 나온 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거나,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의 소유자 옥스발에게 연민을 느낀다거나, 죽음을 앞둔 폴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크리스티나나 단 한번 실수로 불행에 빠진 잭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앞으로 이냐리투 감독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간 많은 작품을 만들지 않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새로 나올 때 마다 경이로운 눈길을 멈출 수 없었다.” 박태식 영화평론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생명의 경외’

세계적인 영화감독들?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새디즘을 동반한 섹슈얼리티, 폭력과 공포로 얼룩진 폐쇄공간 속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작품의 일관된 기조로 유지하는 ‘강박증의 시네아스트’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감독은 1933년 파리에서 유태계 폴란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대전이 발발하며 나치 수용소에 끌려간 그의 부모중 어머니는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전쟁후 그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하는 그의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영화에 뜻을 두고 있었던 폴란스키 감독은 폴란드의 로츠 영화학교에서 영화공부를 하게됩니다. 당시의 그가 만든 단편 습작들은 영화들은 이후 그의 작품들의 방향을 짐작하게 해 줄 수 있었고, 특히 58년에 만든 <두 남자와 한 의상(Dwaj ludzie z szafa)>로 브뤼셀 영화제에서 동상을 수상합니다.

그는 62년에 <물속의 칼 Noz w wodzie>이라는 첫 장편을 만들게 되는데, 폴란드 내에서는 혹평을 받았지만, 베니스 영화제에서 비평가 상을 수상할 정도로 서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부터 폐쇄공간, 폭력, 섹슈얼리티라는 그의 일관된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베니스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계속 파리에 정착하게 된 그는 심리 공포물인 <반격 Repulsion>(65년 작)과 <막다른 골목 Cul-de-sac>(66년 작)를 완성하고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특히 <막다른 골목>은 고립된 성에서 마피아의 방문을 받는 커플의 이야기로서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이며, 폴란스키 감독 자신이 꼽는 최고의 걸작입니다.

68년 폴란스키는 미국에서 찍은 첫번째 영화 <로즈마리의 아기 Rosemary's Baby>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비평적,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두게 되고, 미국내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9년에 미국 여배우인 자신의 아내 샤론 데이트를 광신도 집단에 의한 연쇄살인으로 잃은 그는 그러한 개인적인 비극을 반영하듯, <멕베드 Macbeth>(71년 작)를 잔인한 심리극으로 재해석합니다.

73년 프랑스에서 <뭐? What?>를 만들고 나서, 74년 헐리우드에서 <차이나타운 Chinatown>을 만들게 되는데 3,40년대 미국의 필름 느와르에서 형식을 빌어온 이 영화는 미국내에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는 작품이며, 그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7년 미성년자 강간이라는 혐의로 미국에서 추방당한 폴란스키는 79년 프랑스에서 <테스 Tess>를 만들고 난 뒤,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 연극무대에서 80년대 초반을 보내게 됩니다.

86년 <해적 Pirates>으로 켐백한 그는 헐리우드에서 해리슨 포드 주연의 <프랜틱 Frantic> (88년 작)을 만들었으나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비터문 Bitter Moon>(92년 작)은 그의 데뷔작 <물속의 칼>과 연장선상에 있었던 작품이었지만 비평적으로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94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시고니 위버의 진실 Death and the Maiden>로 그는 비평쪽에서 다시금 좋은 반응을 끌어내게 됩니다.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는 그리 ‘유쾌하게’볼 수 있는 종류의 영화는 아닙니다. 폐쇄공간안에서 인간의 부조리를 냉정한 시선으로 파헤치는 그의 작품들은 섹스, 동성애, 폭력, 새디즘, 의혹등이 얽히면서 인간의 추악한 면들을 그대로 폭로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인간에 대한 성찰은 항상 유럽과 미국을 방랑하며 영화를 만드는 그를 아직까지도 유럽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Steven Soderbergh)

1963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출생.

13세부터 영화 촬영을 시작해 17세때 27분짜리 단편영화를 완성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루지애나 주립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에는 LA로 진출해 락그룹 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편데뷔작인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로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천재 감독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프란츠 카프카의 일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카프카>, 소외된 소년의 성장영화 <리틀 킹> 등을 연출하며 실험적이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98년에는 <표적>으로 아카데미 각본상과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되어 다시 한번 위력을 과시했다. 2000년에는 구너력과 싸워 성공한 여성의 실화를 다룬 <에린 브로코비치>로 전세계적으로 2억 5천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려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 다음 작품인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는 마약을 소재로 한 <트래픽>으로 다시 한번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더버그 감독은 배우들이 함께 일해 보고 싶은 감독중 하나로 꼽힌다. 2001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스티븐 소더버그는 천재다. 그가 원한다면 그의 비서라도 될 수 있다.”라고 수상 소감을 말할 정도로 소더버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현했다.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은 대학에서 해양생물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력이 그의 작품들의 경향을 보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캐머론 감독은 미국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만이 설립한 뉴월드 영화사에서 기술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그의 영화 경력을 시작합니다. 80년 Battle Beyond the Stars 에서 미니어쳐 제작/디자인/아트 디렉터, 81년 Galaxy of Terror에서 유닛 디자이너 등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사에서 사용된 세트들을 재활용(?)해서 81년 그의 데뷔작 <식인어 피라니어 2(Piranha II: The Spawning)>를 만들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를 아주 적은 예산으로 완성하게 됩니다. 결과는 잘 알고 계시다시피 <식인어 피라니어 2>의 실패를 충분히 보상할 만한 것이었고, 카메론은 이 작품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일약 스타 감독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85년 그 악명높은 반공영화 <람보 2(Rambo: First Blood Part II)>의 대본을 썼고, 이를 다시 재해석하여 <에일리언 2(Aliens)>를 만들고 역시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SFX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 <어비스(The Abyss)>(89)를 만들었으나,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어비스>의 실패를 교훈삼아서 3년간의 공백끝에 만든 <터미네이터 2 (Terminator 2: Judgment Day)>(91)는 세계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SFX 붐을 일으킬 정도로 놀라운 특수효과와 묵시록적 메시지, 특유의 탄탄한 구성과 오락성으로 그를 헐리우드에서 흔들릴 수 없는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부터 그는 제작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각본, 감독, 제작의 세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 내는 헐리우드에서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전형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94년 <터미네이터 2>와는 반대로 눈에 띄지 않는 SFX를 구사한 <트루 라이즈 (True Lies)>를 만들고, 96년 테마파크의 3D극장을 위한 <터미네이터> 시리즈 단편 <터미네이터 2-3D(T2 3-D: Battle Across Time)>를 만듭니다. 이 작품은 존 코너가 사령관으로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가상현실 체험 극장용 영화로서, <터미네이터 3> 를 기대하게 만들죠.

장편 영화로 보면 3년만에 그는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프로젝트 <타이타닉 (Titanic)>를 만듭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특수효과와 미술 담당자로서도 여러 영화에 참여했었구요, 가끔 영화에 직접 출연도 했습니다. <타이타닉>에서는 3등 선실 무도회 장면에서 잠깐 까메오 출연하기도 했죠.

데이빗 핀처 (David Fincher)

브레드 피트와 모건 프리만이 공연했던 <세븐>을 감독함으로서 젊은 감독으로서 흥행의 유명세와 함께 스타일 리스트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굳힌 데이빗 핀처의 롤링스톤이나 마돈나 등의 뮤직 비디오나 CF 감독으로서 먼저 유명해진 사람이다. 34세의 그는 <에이리언 3>으로 감독에 데뷰했으며, 루카스 필름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ILM에서 일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가이 리치 (Guy Ritchie)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연출,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온 장본인이다. 가이 리치는 여러 뮤지션들의 음악 홍보프로모션 및 광고 연출로 감독경력을 쌓았다. 이후 그의 제작 파트너 매튜 본을 만나 SKA 영화사를 설립하면서 영화계에 진출하게 된다. 데뷔작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대성공으로 모든 행보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가이 리치는 마돈나와의 깜짝 결혼으로 연예계의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Alejandro Amenabar)

24살에 만든 첫 장편 <떼시스>(1996)로 영화계의 확실한 주목을 받은 스페인 출신의 천재감독. 다음작품 <오픈 유어 아이즈>(1997)를 만들어 스릴러와 공포를 뒤섞어 놓은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면서 “히치콕의 환생”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감독은 어린 시절 겁이 많은 편이었지만 공포소설류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대한 어둠 속 공포에 특히 관심이 많았고, 특히 반쯤 열린 문, 커튼 뒤, 천정 등과 같이 반쯤 가려진 곳에서 오는 공포와 두려움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최근작 <디 아더스>(2001)는 이런 감독의 관심과 재능이 딱 맞아 떨어진 작품으로 미국에서 흥행적으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오픈 유어 아이즈>의 리메이크 작인 <바닐라 스카이>(2001)는 자신이 각본에 참여하고, 탐 크루즈 주연과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작품으로 만들어 졌다.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으로 입성한 알레한드로 감독은 <디 아더스>의 성공으로 데뷔작인 <떼시스>도 미국에서 지각개봉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강력한 할리우드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알레한드로 감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이제 겨우 서른이 되는 아주 젊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 안 (Ang Lee)

대만에서 태어났지만 할리우드에서 동양적 느낌이 싹 가신 작품을 내놓고 있는 감독으로 중산층 가족과 세대갈등, 결혼에 대해 통찰력있는 드라마 만들어 내고 있다. 이안은 1954년 대만에서 출생. 1978년 24살 되던 때, 일리노이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그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에서 영화 연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분계선> 등의 단편 영화로 뉴욕대학의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6년간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대만 영화사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이 상을 수상하면 당선된 시나리오를 포함, 총3편의 영화제작을 후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안은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이안의 감독 데뷔작은 1992년 <쿵후선생 Pushing Hands>. 대만의 쿵후 선생과 뉴욕에 이민와 사는 아들 가족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 영화는 이후 이안 영화의 특징이 되는 요소들을 담고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대만인과 가족, 세대갈등에 대한 관심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 해에 만든 이안의 두번째 영화 <결혼피로연 The Wedding Banquet> 또한 가족과 세대갈등이라는 이안 특유의 주제를 담고 있다. 미국에 유학온 대만출신의 동성애자가 가족의 강권에 못이겨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영화는 가족, 동성애, 세대갈등 등의 무거운 주제를 잘 풀어내어 호평을 받는다. 이안은 이 두번째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의 금공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된다.

세번째 영화 <음식남녀 Eat Drink Man Woman> 또한 일찍 상처하고 홀로 딸들을 키운 유명한 호텔의 조리장인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역시 세대갈등과 가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또다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재능있는 비영어권 감독을 놓치지 않는 할리우드는 세 편의 영화로 이미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안에게 관심을 보여 그는 19세기 영국의 중산층 가족을 다룬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 Sense and Sensibility>를 만들게 된다. 처음에 사람들은 과연 대만 출신의 감독이 19세기의 영국을 잘 묘사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를 표했으나 이안은 엠마 톰슨의 훌륭한 각색과 함께 주연 배우의 호연, 이안의 연출력이 합해져 그런 불식을 일축하고 또다시 베를린 영화제의 금곰상을 수상하는 한편 LA 비펑가 협회상, 뉴욕 비평가 혐회상 등 각종 영화제의 상을 수상한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은 케빈 클라인, 시고니 위버, 토비 맥과이어 등의 배우를 기용, 속을 들여다보면 황폐하기 짝이 없는 미국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 수작 <아이스 스톰>이다. 이안은 고드름과 유리의 투명한 이미지를 써서 겉으론 아름다워 보이지만 깨어지기 쉬운 가족의 일면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주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일관되게 관심을 견지해온 ‘가족’이라는 주제를 영상, 상징을 통해 잘 구현해낸 것이다.

1999년에 <악마와 함께 달려라 Ride with the Devil>를 만들고 2000년엔 중국과 미국의 합작으로 좀 의외인데 무협물 <와호장룡>을 만들었다. 그간 이안이 만든 영화를 익히 보아온 사람들의 반응은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라며 의아해 했는데 이안 자신은 원래 자신의 숙원은 무협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주윤발, 양자경 주연의 영화로 2000년 깐느에 소개되기도 했다.

故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스탠리 큐브릭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완벽한 미학을 추구한 완벽주의자이자 늘 새로운 기법과 기술을 선보이는 테크니션이었다. 그는 초기에 저널리스트로 출발했으나 영화에 관심을 가진 후 단편 기록영화와 싸구려 장편영화로 영화수업을 쌓았다.

특히 그는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하면서 성공을 거둔 영화 감독 중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만큼 B급 느와르, SF(그것도 아주 ‘순수한’ 형태의), 전쟁영화, 역사물, 호러 등의 많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왔으며, 그 영화들이 각 장르에서의 대표작으로 꼽힐 정도로 손 대는 장르마다 성공을 거두는 놀라움을 보였다.

큐브릭감독의 56년 작품 <킬링(The Killing)>은 전형적인 B급 느와르 작품으로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장르(그가 말하기는 ‘강탈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으며 <저수지의 개들>은 ‘나의 킬링’이라고 공언하고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한 전과자가 일당들을 모아 경마장의 배당금을 강탈하다가 마침내는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강탈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의 시점에서 사건을 그려나가는 치밀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구조는 <저수지의 개들>의 구조와 많이 닮아있다.

그리고 큐브릭을 한 사람의 영화작가로서 인식시키게 된 <영광의 길(Paths of Glory)>은 감독이 전쟁영화에 손을 댄 결과이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군의 부조리와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을 비판한 이 영화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또 다른 시대 배경의 전쟁영화는 월남전을 배경으로 만든 <풀 메탈 자켓 (Full Metal Jacket)>. 이 영화는 수많은 ‘월남전 영화’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인데, 여타의 월남전 영화와는 다소 다르게 월남전 자체를 다루고 있기 보다는 군이라는 전체주의적 조직 안에서 사병 개개인이 어떻게 전쟁기계로 만들어지는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러한 과정을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여주고 있는데, 우선 전반부의 훈련소 이야기와 후반부의 실전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야기 구조로 감독은 점점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큐브릭 감독 자신은 자신의 작품이라고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명한 로마의 노예 반란을 그린 역사물 <스팔타커스(Spartacus)>는 <벤허>와 같은 해에 만들어 지면서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벤허>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제작비 1천 200만 달러가 투입된 (물량으로서) 대작 <스팔타커스>는 <벤허>와 비교되면서 ‘장인과 작가 영화의 차이를 볼 수 있는 최상의 예’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여기에서 ‘작가’영화는 물론 <스팔타커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굳이 나누자면 블랙 코미디에 분류될 수 있는 두 작품이 있는데, <로리타 (Lolita)>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ing and love the bomb)>이 그들이다. 그 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냉전시대의 핵이 어떻게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가를 우유부단한 미국 대통령, 전쟁광인 장군, 맹목적인 전폭기 조종사, ‘이상한’ 과학자 등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코미디의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주연 피터 셀러즈(Peter Sellers)의 1인 3역으로도 유명하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다음에 만들어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인 기념비적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 이후의 수많은 SF영화들에 영감을 주었으며, 순수한(문명과 과학에 대한 예견과 그 미래의 고찰이라는 주제를 다른 장르와 혼합되지 않은 형태로 풀어낸) 형태의 몇 되지 않은 SF영화이다.

그리고 <시계태엽 장치의 오렌지(A Clockwork Orange)>로 큐브릭의 소위 ‘문명비판 3부작’은 완성된다. 격심한 폭력과 섹스에 대한 묘사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작품은 아직도 많은 국내 영화광들의 ‘필수 과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을 정도로 ‘컬트적’이며, 냉소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샤이닝(The Shining)>은 감독이 호러영화에 손을 댄 결과이다.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폐쇄/고립되어있는 공간에서의 광기와 공포를 효과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서 당시 흥행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이 영화는 발명자 자신이 직접 촬영한 스테디 캠(Steady Cam) 장면으로도 유명한데, 마치 카메라가 날아다니는 듯한 효과를 내는 이 장비로 촬영된 장면은 종횡무진 고립된 산장과 미로를 누비고 다니면서 관객의 공포를 최고조에 달하게 한다.

<풀 메탈 자켓> 이후 오랜 공백을 깨고 96년에 촬영을 시작하여 15개월간의 촬영과 3년에 가까운 제작기간을 가진 <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ut)>은 그의 완벽주의와 비밀주의를 입증하는 무수한 소문들로 화제를 모았다.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라는 당대 최고의 헐리웃 스타가 출연하는 것도 또 하나의 관심거리 였지만 1999년 3월 7일 큐브릭은 영화의 최종 편집을 앞두고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살아있는 신화를 마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현존하는 헐리우드 감독 중에 가장 뛰어난 흥행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1946년생이다. 13세때 <도피할 곳이 없는 탈출>이란 제목의 4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16살에는 2시간 반짜리 장편 <열전>을 만들었다. 스필버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영화 <앰블린>을 69년 애틀랜타 영화제에 출품, 이를 계기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사하여 메가폰을 잡게 된다.

스필버그는 72년에 장편 <슈가랜드 특급>으로 스크린에 데뷔, 이후 80년대 최초의 블록버스터 <죠스>, <미지와의 조우> 등 잇단 흥행작을 만들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도 ,<레이더스>, <인디아나 존스>시리즈, 90년대 상상력과 특수효과의 만남 <쥬라기 공원>, 전쟁의 완벽한 재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의 작품으로 영화 작가로서, 20세기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명성을 쌓게 된다.

그는 환상과 꿈의 동화를 만드는 재주도 있고, 미국 중산층 가정을 공포스럽게 다루는 현실인식도 있다. 그러나 그는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흥행실패한 <슈가랜드 특급> 이후에 상업적 성공을 최우선시했고, 늘 최고의 흥행감독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런 동시에 작품성있는 예술 영화로 아카데미를 정복하고 싶은 야심도 있었다. 가령, <칼라퍼플> <태양의 제국> 등이 그러했고, 결국 <쉰들러의 리스트>에서 그 야심을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현실로 만들기도 했다.

오우삼(吳宇森) (John Woo)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으로 대표되는 홍콩누아르 영화의 대부. 샘 페킨파에서 시작된 남성주의 액션영화의 폭력적인 미학과 필름누아르 스타일을 홍콩식 액션으로 재해석하여 홍콩누아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앞서 말한 두 편의 영화로 성공한 오우삼 감독은 존 우(John Woo)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에 입성,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2000년 최고의 블럭버스터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미션 임파서블 2>를 만들고 있다.

1948년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난 오우삼은 공산당이 권력을 잡던 1951년 가족과 홍콩으로 이주했다. 1953년에 오우삼은 자신들이 살던 집에 불이나 거리에서 몇 년을 살고 결국 슬럼가에 이주해 살게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우삼은 어릴 때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살인당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면서 수많은 폭력을 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학생시절에 그는 학교를 종종 빼먹고 도서관이나 박물관,극장을 다니며 베르히만, 구로사와 아키라,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9세때 마테오리치 학교를 마치고 실험영화을 만들기 시작하여 영화 학교 대신에 번성하는 홍콩영화산업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21세가 되던 1969년 오우삼은 케세이 필름에 조수로 들어갔다가 곧 쇼 브라더스로 옮겼다. 그곳에서 홍콩무협영화의 조감독으로 일했으나 지나친 폭력묘사로 비판받자 그 후 오랫동안 B급 코미디 영화를 찍으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1년 쇼브라더스에서 조감독 일을 시작한지 2년 뒤 로 감독 데뷔를 하였다. 골든 하베스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후 두편의 성공작 를 만들었는데, 는 수퍼액션 스타 성룡의 첫 스크린 주연작품이다.

오우삼이 큰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86년 <영웅본색>을 찍으면서부터이다. <영웅본색>의 제작을 맡은 서극이 오우삼에게 감독을 맡겼는데 오우삼은 홍콩무협영화의 단골메뉴였던 남성간의 의리와 배신에다 필름누아르의 세련미를 버무려 <영웅본색>을 만들어냈고 이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영웅본색>은 홍콩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코트와 담배로 대표되는 주윤발 신드롬을 불러오기도 했다. 오우삼은 <영웅본색>의 성공후 <영웅본색 2>, <첩혈쌍웅>, <첩혈가두> 등 홍콩누아르 수작들을 계속적으로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1992년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할리우드 데뷔작인 장 끌로드 반담 주연의 <하드 타켓>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94년 그의 제작 파트너 테렌스 장과 WCG 엔터테인먼트를 세웠으며 이 회사의 이름을 걸고 헐리우드에서 만든 첫 영화, 홍콩누아르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존 트라볼타 주연의 <브로큰 애로우>가 성공하면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다음 영화 <페이스 오프> 또한 블럭 버스터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완전히 자리를 굳힌다. 자신의 영화 <첩혈쌍웅>을 성공적으로 변주한 <페이스 오프>는 얼굴이 바뀜으로써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설정과 폭력적인 세계에 성당의 성모상이나 촛불 등 감상주의를 가미한 매력적인 복합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했으며, 홍콩감독으로서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웠고, 세계적으로도 좋은 비평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멜로물적인 감수성에 열광하듯 비장미에 폭력, 의리와 배반이라는 여러 요소를 지닌 오우삼의 액션영화는 남성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그는 그런 요소가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페이스 오프> 이후에도 <영웅본색>의 영웅 주윤발을 할리우드로 불러들인 영화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의 제작자로 일하는 한편 2000년에는 톰 크루즈라는 대형배우의 대형액션물인 <미션 임파서블 2>를 감독하며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레오 까락스 (Leos Carax)

누벨 이마주의 명성을 한몸에 받았던 프랑스 감독.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배우 드니 라방과 함께 영화작업을 해왔는데, 이는 프랑소와 트뤼포와 장 피에르 레오의 관계에서 보이듯이 프랑스 영화의 전통이기도 하다. 약관 22살에 만든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느리지만 애틋하고 비극적인 정조의 흑백영화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한 국내에 소개되기 전에는 80년대 신화가 되기도 했던 <나쁜 피>는 파격적인 속도감과 엇갈린 사랑의 테마로 이 젊은 감독의 감수성이 단순하지 않음을 잘 드러냈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치고는 국내에서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퐁네프의 연인들>은 부랑자의 삶과 예술의 의의를 다룬 작품. 불꽃의 이미지와 독백의 깊은 맛이 살아있는 대사, 그리고 독특한 영상이 크게 어필했다. 그런데 세편의 영화를 만든 그는 은퇴를 선언했고, 그후 8년 뒤 <폴라-X>로 돌아와 성인신고식을 치렀다. 헌데 엇갈린 사랑의 테마는 그의 영화의 무의식인가 보다. 절망 대신 욕망이 더욱 거세지기는 했지만.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1956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출생했다. 그가 ‘아무것도 배운것이 없었다’고 회상한 덴마크 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5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84년에 <범죄의 요소(Forbrydelsens element)>로 최초의 장편영화를 만들게 된다.

<범죄의 요소>는 필름 느와르와 독일 표현주의의 특징들을 섞어놓은 듯한 스타일의 어린이 연쇄살인범 추적극으로서 칸 영화제에서 프랑스 고등기술위원회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단 한번씩만 촬영되었으며, NG없이 2주만에 완성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소위 ‘초 현실적 스릴러 3부작’혹은 ‘전후 유럽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전염병(Epidemic)>과 <유로파(Europa)>를 각각 87년과 91년에 완성하였으며, <유로파>는 그에게 두번째의 칸 영화제 고등기술위원회상을 안겨준다. <유로파>는 컬러 필름으로 촬영된 뒤, 흑백으로 현상하여 독특한 질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부분적인 컬러의 사용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그리고 두 작품 사이에 그는 TV용으로 <메디아(Medea)>(87)를 만들어 칼 데오도르 드레이어에 대한 그의 존경을 표시하기도 한다.

라스 폰 트리에는 81년부터 83년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의 영화학교를 다녔지만 정형화된 제도교육의 한계를 미리 느꼈으며 자신의 독학으로 영화의 기술을 익혔으며 거기서 얻은 것은 지금까지도 제일 소중한 영화동료들인 편집자 토마스 기슬라슨, 카메라맨 톰 엘링을 만났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기교에 심취한 재주꾼이라는 평가를 받던 폰 트리에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덴마크 TV에서 방영된 <킹덤 The Kingdom>(1994) 시리즈. 해외에서는 4부작씩 묶어서 4시간 39분자리 극장판으로 개봉했다. <킹덤>은 코펜하겐에 있는 대형 병원인 킹덤을 무대로 병원의 일상드라마와 유령이야기를 섞은 스릴러이다. 기괴하고 환상적인 영상은 여전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들고찍기로 공포 심령미스터리의 정수를 펼쳤다.

그 다음 <킹덤>의 들고찍기의 경험을 백분 발휘한 작품 <브레이킹 더 웨이브 Breaking the wave>(1996)는 사랑과 구원, 종교적 정화의 의미를 미묘하게 비튼 멜로드라마로 그해 깐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어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기교주의를 넘어선 폰 트리에는 영화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작가적 의지를 천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그마 95″이다. 덴마크의 젊은 감독들을 위주로 한 “도그마 95” 선언은 현지촬영과 동시녹음, 들고찍기,자연조명, 광학작업이나 필터사용금지 등 상업적 조작과 작가주의적 덧칠을 거부한 대안적인 영화만들기를 내세웠다. 98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폰 트리에의 <백치들 The Idiots>와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셀레브레이션 Celebration>이 그 첫 산물이었다.

<백치들>은 기성질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의도적인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을 “도그마 선언”에 따라 거칠고 투박하게 담은 작품이다. 독창적인 이미지와 기교실험으로 표현의 틀을 넓혀온 그는 91년부터 33년간 매년 유럽의 다른 장소에서 3분짜리 화면을 찍어 모을 새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라고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감독이며 배우이자 프로듀서. 1990년대 미국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이며 가장 특색 있는 감독 중의 한 명이다. 전 세대의 배우들이 학교에서 영화를 배웠던 것과는 달리, 타란티노는 비디오 점원으로 일하면서 그의 영화 코드를 익혀나갔다. 그 결과 그는 팝 문화와 독립 영화를 과감하게 뒤섞은 퓨전 폭력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또 자신의 영화에 출연도 했다. 타란티노는 우선 배우로서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가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출연한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 199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컬트 영화로서 히트했다. 1993년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출연도 한 영화 <펄프 픽션>의 대히트는 전 세계적으로 타란티노의 추종자들을 만들어냈으며, <펄프 픽션>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이후 자신이 프로듀싱한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출연했으며, 감독한 영화 <포 룸>에도 출연했다. 타란티노는 현재도 여전히 자신의 독특한 색을 유지하고 있으나 <펄프 픽션>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스파이크 리 (Spike Lee)

미국 흑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스파이크 리. 그는 미국 내의 마이너리티로서 흑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인종갈등을 다루지만, 결코 영화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즉 MTV 스타일의 영상과 흑인 랩음악 그리고 재기발랄한 편집감각은 그의 영화가 흑인을 넘어 대중적으로 흥행되도록 하는 바탕이 되었다.

데뷔작 <그녀는 그것을 가져야만 해>로 칸느 황금카메라상을 탄 그는 흑백차별뿐만 아니라 흑인 내부의 계급분화 문제를 다룬 <스쿨 데이즈>를 발표한다. 다분히 적전분열이라는 비난과 흑인 내부의 진지한 문제의식이라는 칭찬이 엇갈렸던 이 작품 후에 89년 <똑바로 살아라>를 발표하여 격찬을 받았다. 브룩클린의 이태리인 피자 가게를 배경으로 흑인들의 실상을 드러내고, 그들이 각성한다면 왜 폭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가를 냉정하게 표현했다.

넓은 사회적 안목을 지닌 스파이크 리는 이후에도 재즈에 투영한 흑인의 세계 <모 베터 블루스>,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로맨스를 다룬 <정글 피버> 등의 수작을 내놓는다. 그리고 92년에는 흑백분리 운동의 전설적인 지도자 <말콤 X>를 내놓았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인 주제의식에 영화가 눌린 인상을 주었다. 이후, 흑인 일상의 소재로 돌아가서 내놓은 <브룩클린의 아이들> <클라커즈> 등은 그의 놀라운 영화적 재능을 재확인시켰다. 간혹 <걸 식스>같이 스파이크 리답지 않은 졸작도 나오지만, <버스를 타라> <히 갓 게임> <썸머 오브 샘>처럼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수작을 내놓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한마디로, 정신을 팔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글의 냉엄한 질서 속에서 탄탄한 작가의 자리를 확보한 보기드문 흑인 감독.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미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거장.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정서와 카톨릭적 죄의식, 그리고 폭력묘사와 고전적 스토리텔링이 만난 뛰어난 영화 감독. 다재다능하며, 갱스터, 뮤지컬, 코미디, 드라마 모두에 능통하다. 출발은 뒷골목의 범죄 세계와 카톨릭 교리, 의무를 다룬 걸작 <비열한 거리>. 이 영화는 젊은 영화광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고, 숱한 경배를 받았다. 이때부터 로버트 드 니로와 하비 카이텔은 그의 영화 동료가 되었다. 대공황기의 현실을 묘사한 <바바라 허시의 공황시대>같은 비평적 성공을 거둔 후, 76년에는 <택시 드라이버>로 칸느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는데, 어두운 도시의 묘사와 강박관념에 휩싸인 주인공을 통해 미국 사회를 예리하게 묘파했다. 80년대 최고 걸작은 <분노의 주먹>. 세계챔피언 제이크 라모타를 통해 영웅도 소인배도 없는 냉정한 현실을 치열하게 보여주어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냉혹한 갱스터 <좋은 친구들>, 정교한 사극 <순수의 시대>로 끝없는 걸작 퍼레이드를 펼칠 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코미디 풍자극 <코미디의 왕>, 당구를 소재로 했고 폴 뉴먼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한을 풀어준 <칼러 오브 머니>까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96년작 <카지노>에선 여전히 완성도는 높지만 비슷한 갱스터였고, 97년 <쿤둔>은 티벳으로 건너간 범작도 나왔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점점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Brian De Palma)

1940년 9월 11일 뉴저지의 뉴아크에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교시절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할만큼 과학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던 그는 컬럼비아 대학과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시절에 첫 영화를 만드는데 1962년 만든 단편 <보탄의 각성 Wotan's Wake>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다. 1966년 첫 장편영화 <결혼 파티 Wedding Party>를 만든 후 68년 <그리팅스 Greetings>, 70년 <안녕, 엄마 Hi Mom!>를 잇달아 감독하는데 이 영화들은 저예산 독립영화의 모범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리팅스>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으며 로버트 드 니로의 초기 출연작이기도 하다. 그는 계속해서 73년 <자매들 Sisters>, 74년 <천국의 유령 Phantom of the Paradise>, 76년 <옵세션 Obsession> 등 공포와 스릴러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다 1976년작 <캐리>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브라이언 드 팔머는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진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캐리>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녀 캐리가 자신이 가진 초능력으로 복수한다는 내용의 영화로, 긴장감을 바탕으로한 히치콕 식의 공포와 피가 난무하는 화면이 특징이다. 이후 드 팔머는 히치콕의 <사이코>를 <드레스 투 킬>로, <이창>, <현기증>을 <침실의 표적 Body Double>으로 패러디하면서 일련의 스릴러물을 만드는데 이런 이유로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영화가 히치콕의 단순한 모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히치콕의 영화뿐 아니라 하워드 혹스의 32년작 영화를 메이크하여 <스카 페이스>를 만들기도 한다. 피가 난무하는 폭력적인 세계를 주로 그려내던 브라이언 드 팔머 1987년 캐빈 코스트너, 숀 코네리, 로버트 드 니로, 앤디 가르시아 등 스타가 총출동한 갱영화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고 1996 TV 인기드라마를 영화화한 <미션 임파서블>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할리우드의 흥행 감독 대열에 올라선다.

그의 영화는 히치콕의 영향을 받은 사이코 스릴러적 특징을 지닌다. 그는 천대받던 공포영화의 장르적 문법을 받아들이는 한편 피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다. 특히 브라이언 드 팔머의 60년말과 70년대 초의 초기영화들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 스스로 “베트남전쟁으로 아무도 믿을 수 없게된 60년대의 산물”이라고 자신의 영화를 규정하는 브라이언 드 팔머의 영화는 기성사회가 싫어하는 내용을 영화에 담아 종종 등급판정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터처블>,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블럭 버스터 영화를 만들기도 한 그는 흥행사도 아닌 그렇다고 거장이나 작가로 대접받는 감독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에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1966년 첫 장편 이후 2000년 <미션 투 마 Mission to Mar>까지35년 동안 매 2년마다 한번 꼴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내는 존재감있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로버트 저멕키스 (Robert Zemeckis)

스필버그 사단의 수련을 거친 할리우드 영화의 뛰어난 엔터테이너 감독. 테크놀러지는 몰라도 재미와 디테일의 측면에서만 보면 스필버그를 종종 능가한다. 로맨스 모험 액션물 <로맨싱 스톤>의 성공 후, 시간여행 소재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리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뛰어난 완성도와 블랙 유머를 버무린 야심작이었고, 예상대로 흥행성적도 좋았다. 이후에 블랙 유머를 좀더 밀고나간 <죽어야 사는 여자>는 야유와 풍자가 가득한 의미있는 재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이후 나온 영화가 바로 <포레스트 검프>. 컴퓨터 그래픽과 고전적인 이야기방식 그리고 낙관적인 무드가 역사를 관통하는 독특한 바보 이야기인데, 그의 영화적 특징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게다가 탁월한 복고풍의 향수까지 가미하는 것이 흥행 포인트 중에 하나. 거의 흥행실패한 적이 없는 만능 감독이며, 또한 97년 <콘택트>에서 보이듯 새로운 비전까지 내다보려는 감독이다. 이 영화는 매혹적인 SF로 로버트 저메키스의 힘을 새삼 두렵게 느끼게 한 걸작. 최근에는 2000년 <왓 라이즈 비니스>로 오랫동안 원했던 스릴러에 도전하였다. 스릴러로선 익숙한 스토리지만, 만만찮은 완성도의 서스펜스를 제공하며 녹슬지 않은 역량을 과시했다.

롤랜드 에머리히 (Roland Emmerich)

이 감독하면, 떠오르는 표어는 “사이즈로 승부한다”이다. 할리우드에 유입된 외국 감독이지만, 흥미로운 스토리보다는 거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물량 공세로 여름철 블록버스터 대박을 터뜨리는 타입이다. 89년 독일에서 만든 SF 영화 <문 44> 이후, 할리우드에서 <유니버설 솔저> <스타게이트>, 96년 최고의 블록버스터 <인디펜던스 데이> 그리고 일본 영화 리메이크작 <고질라> 등이 모두 그런 식이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으로 올수록 단순히 스케일의 거대함만으로는 스토리의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커버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리들리 스코트 (Ridley Scott)

1937년 영국 태생으로 런던에 있는 웨스트 하트풀 예술학교와 왕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BBC의 세트 디자이너와 연출자로 일한 후 1967년부터 광고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10여년 동안 무려 2,000편 이상되는 광고를 찍었습니다. 그는 수천편의 광고를 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명효과를 포함한 자신만의 독특한 비주얼 감각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리들리 스콧은 5년이란 시간을 투자하여 1977년 그의 첫 영화 <대결자>를 만듭니다. 그는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를 잘 형상화한 이 영화로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감독으로 데뷔합니다.

리들리 스콧은 첫 영화후 세 편의 공상과학영화를 잇달아 제작합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에이리언>은 리플리라는 강한여성을 내세운 영화로 공상과학과 호러가 결합, 어둡고 묵시록적인 분위기의 세트와 새로운 우주괴물의 창조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 다음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에이리언>에서 보여주었던 어둡고 암울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존재와 창조자, 기억과 자아정체성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여러가지 상징들은 이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공상과학과 호러를 결합한 영화 <리젠드>에서는 우화적인 동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스릴러 <위험한 여인>과 <블랙레인>을 만드는데 특히 <블랙레인>은 <공각기동대>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와 같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천재적 비주얼리스트로서의 그의 감각이 잘 살아있습니다. 그 다음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벗어난 듯이 보이는 영화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으로 비평가들의 큰 관심을 샀던 영화입니다. 최근에는 <1942 콜럼버스>와 <화이트 스콜>, <지 아이 제인>을 제작했는데 과거와 같은 큰 호흥을 얻고 있지는 못합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뛰어난 비주얼 감각으로 형상해내는 한편 강한 여성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있는 리들리 스콧은 가장 대표적인 비주얼리스트로 손꼽히는 감독입니다.

테렌스 맬릭 (Terrence Malick)

테렌스 맬릭은 하버드와 옥스퍼드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MIT에서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매우 느린 속도로 영화계에서 활동을 했다. 그는 <황무지>로 데뷔하는데 정신 지체자와 같은 연쇄살인자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서 미국 역사에 대한 풍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천국의 나날들>은 에릭 로메의 영화를 촬영했던 네스트로 알멘드로스의 카메라로 대공황기의 지난한 노동과 남매처럼 보이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 펼쳐지는 초원을 마치 밀레의 그림처럼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영화 중의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천국의 나날들> 이후 그는 침묵을 오랫동안 지키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씬 레드라인>으로 컴백했다. 전투 장면의 사실성과 더불어 전쟁에 대해 고민하는 병사의 철학적인 내레이션이 나오는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았다. 전쟁영화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영상의 힘을 보여준 대작이었다. 그는 이제 계속 영화를 만들 것 같다.

[러, 우크라 침공] 미국 영화감독 숀팬, 우크라이나에서 침공 다큐멘터리 제작

[러, 우크라 침공] 미국 영화감독 숀팬, 우크라이나에서 침공 다큐멘터리 제작 이미지 확대보기 숀 저스틴 펜(Sean Justin Penn). 사진=flickr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정치인인 숀 저스틴 펜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의 공격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고 알자지라 등 외신이 2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숀펜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혔다. 숀펜은 오스카상을 두 번 탄 배우이자 감독이며 인도주의적 행동을 하는 사회적 행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24일 젤렌스키는 대통령실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어로 “숀 펜 감독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진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키예프에 왔다”며 계시했다.젤렌스키는 숀펜이 서구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용기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NBC 뉴스에 따르면 숀펜은 바이스 스튜디오에서 우크라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숀펜은 러시아군이 키예프 외곽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여러 우크라이나 도시에 미사일과 포탄이 쏟아질 때 우크라이나에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숀펜은 멕시코 마약왕과 사우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관여하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김다정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email protected]

미국 영화감독과의 온라인대화, 참여하시겠어요?

내일은 진짜 재미 있는 날이 될 것 같다!

아시안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제프리가 우리 청소년들, YWCA 청소년 지도사 쌤들, Y의 여러 선생님들과 만나는 날이당!!!

제프리랑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서 프로그램을 했을 때 전교생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제프리~~”를 부르며 환호하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있다. 한 방을 가득 메운 대구지역 중학생들이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어떻게 영화 감독이 될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찐한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경기도 미디어 고등학교에서도 숨쉴 틈 없이 청소년들과 영화에 대해,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영화 전공 대학생들을 만났을 때의 진지함도 행복한 추억으로 있다.

한국YWCA연합회에서 흥청망청이란 엄청난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전국 청소년들이 내일 온오프로 모인다! 얼쑤~~ 이번 프로그램은 매달 글로벌 여성리더들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YWCA 청년 이사들이 리드를 하고 있어서 더욱 행복하다!

우리 청소년들과 청년들, 그리고 제프리가 함께 엮어낼 스토리, 개봉박두!

#국제교류 #글로벌리더십 #감정지능 #InspiredWomenLead #OwnYourStory #InclusiveSocietyForAll #모두를위한포용적인사회

* Top Photo – Claire Dela Cruz at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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