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31 | 가족, 그 이상의 가족 | 마가복음 3:31-35 | 이규현목사(수영로교회) | 2020.9.27.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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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마가복음 3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막 3: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 (막 3: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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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10/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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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31-35절 – Daum 블로그

마가복음 3장 31-35절 ·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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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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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마가복음 3. 3. 1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 … 31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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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4/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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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

마가복음 3. … 제 3 장 …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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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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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31~35 (2018.01.16. 아침묵상 QT)

말씀> 마가복음 3장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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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voiceofdawn.tistory.com

Date Published: 4/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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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복음 3장 31-35절 (예수님의 가족관)

마가 복음 3장 31-35절 (예수님의 가족관) … 오늘 내용은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가족관계를 부인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족관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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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opstonechurch.org

Date Published: 1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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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31-35 / 예수님의 가족 – 네이버 블로그

예수님은 둘러앉은 자들을 찬찬히 둘러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 “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둘러보신 자들은 짐작 컨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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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0/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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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 가족의 확장 (마가복음 3:31-35) – 함께걷는교회

가족의 확장 (마가복음 3:31-35). 장영기.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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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alkingwith.or.kr

Date Published: 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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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31절-35절 어머니와 형제들 _ 그리스어 원문과 해석

마가복음 3장 31절-35절 어머니와 형제들. (참고 : 마태 12:46-50; 누가 8:19-21) 마가 3:31. (공동번역) 그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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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lassicalgreek.tistory.com

Date Published: 1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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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월 31일. 마가복음 3장. – 하늘품은교회

마가복음 3장. 불신과의 싸움을 각오해라. 1. 주님께서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이적은(1~6) 앞의 안식일 논쟁의 연장입니다(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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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poom.or.kr

Date Published: 3/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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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이상의 가족 | 마가복음 3:31-35 | 이규현목사(수영로교회) | 20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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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200

3장

5/10/2019(금)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20.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31.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묵상 31~35절:

오늘 묵상할 본문 31-35절은 21절에서부터 이어지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22-30절은 이와 관련하여 삽입된 말씀으로 본다면, 이해가 수월하다.

21절에서는 예수님의 친척들이 찾아와서 예수를 붙들어 가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31절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까지 왔음을 밝히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가족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땅의 윤리와 법 이전에 하늘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근원적인 사명은 아버지와의 관계이며, 이 땅에서의 삶보다 우선적으로 천국에서의 영생의 복음을 전하셔야 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을 읽고 묵상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예수님과 사람들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사람들은 땅의 관심만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철저히 관심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와 이해에 다름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을 아직 모른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육신적인 인간 예수 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으며, 또 그 평가가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와 본질적인 관계를 무지한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으셨다.

천국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35절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 아니, 나는 정말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그러기를 소망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다.

어제 실수와 실패가 있었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다시 주님을 보며 주님께로 나아갈 것이다.

주님의 참된 형제자매 즉 천국 가족이니까…

기도 주님! 주님되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제자요 종으로 삼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천국 가족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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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마가복음 3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마 12:9-14; 눅 6:6-11)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많은 무리가 나아오다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열두 제자를 세우시다(마 10:1-4; 눅 6:12-16)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1)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예수와 바알세불(마 12:22-32; 눅 11:14-23; 12:10)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2)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밴쿠버 새벽교회 :: 마가복음 3:31~35 (2018.01.16. 아침묵상 QT)

<말씀>

마가복음 3장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나눔>

1. 마가복음 6장 3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기 전까진 부모 형제와 함께 지내며 목수(또는 석공)의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3장 23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삼십 세쯤이 되어서 집에서 나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뒤 예수님의 삶은 매우 바빴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을 고치시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습니다. 얼마나 바쁜지 가족들을 만날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가족들은 이렇게 예수님이 집을 나가셔서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으시고 사역을 바쁘게 하는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동생들을 예수님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4. 예수님의 가족들은 사역하시던 집 앞에 찾아가서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아마도 당연히 예수님께서 바로 나오시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5.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주 의외의 답을 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여기 있는 이들이 내 어머니요, 동생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6.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점에선 조금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난 세월 바깥일을 한다고 하면서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우리의 많은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공직자는 ‘멸사봉공’이라 하여 모든 사적인 관계는 없애고 공무에만 봉사하는 것을 덕이라 생각했고, 자연스레 가정에는 무관심한 것을 당연히 여기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겹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마저 외면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냉정하게 다가옵니다.

7. 그러나 오늘 말씀뿐 아니라 전반적인 예수님의 행적과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오늘 말씀이 바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가족들을 외면하거나 버리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그의 제자인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요한 19:26~27) 예수님의 동생 중 ‘야고보’는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야고보서를 쓰기까지 할 정도로 예수님을 잘 이해했습니다.

8. 예수님은 오히려 가족을 사랑하고 아꼈으며,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므로 어머니와 남겨진 가족들이 겪을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슬퍼했던 분이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가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모든 이들의 슬픔과 절망을 함께 아파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잘 아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아픔을 품고 그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이것은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혈통적으로 가까운 이만 가족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사랑으로 연결되어있는 가족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고아도, 과부도, 나그네도 모두 한 가족입니다.

10. 역사의 많은 비극은 혈통과 혈연, 지역과 민족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전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사랑을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한 형제, 한 자매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한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SGi9YPqMjYE (주님의 바램)

마가복음 3:31-35 / 예수님의 가족

예수님의 가족

마가복음 3:31-35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후 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을 고치시면서 하루하루 매우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얼마나 바쁘신지 가족들을 만날 시간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이 집을 나가신 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이 미쳤다는 풍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가족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누가 예수님의 참 가족인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알세불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데려가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나사렛으로 데리고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예수님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너무 많아 가까이 접근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도 사람들에게 귀하게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에 관한 언급에서 아버지 요셉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이미 요셉이 세상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6장 3절을 보면 형제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이었습니다. 그리고 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와 탄생 이후에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예수님의 친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해석을 다르게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의 영원 동정녀설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일평생 동정녀로 지냈다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전처소생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이 실상은 예수님의 사촌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은 마리아를 높이려는 잘못된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대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예수님이 계신 집은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중심으로 빽빽이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찾고 있음을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본문에서는 가족들이 현장에 나타나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고 않습니다. 그러나 앞서 3장 21절에서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고 이미 밝혔기 때문에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데리러 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5절을 보면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도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고,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도중에 사람을 보내 예수님의 사역을 중단시킨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동생들은 젊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았어도 얼마든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이 없었고, 오로지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곧바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족들의 면회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으셨고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예수님은 왜 이와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가족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의 가족조차도 몰라볼 정도로 미쳤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때 예수님이 기분이 나쁘셔서 그의 가족을 무시해버리신 것일까요?

물론 예수님은 그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붙들러 온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결코 무시하지는 아니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렇듯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돌아보실 만큼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생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언뜻 가족 관계를 부정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려면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8절을 보면,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장 20절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를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2장 14절을 보면, 레위는 세관에 앉았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제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그만 두고 가족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점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냉정하게 들렸습니다. 가족들을 외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어서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 의도는 가족 관계를 전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족들의 간섭을 오히려 참된 가족 관계, 즉 영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교훈하기 위한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혈통을 중시하며 족보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유대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혈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와의 긴밀한 관계가 지상에 계시는 어머니와의 관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가족들과의 혈통적인 관계를 귀하게 여기셨으나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하늘의 영적 관계성으로 가족 관계를 설명하시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태도는 반인륜적인 것이 아니라 초인륜적인 것이었습니다.

34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예수님은 둘러앉은 자들을 찬찬히 둘러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 “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둘러보신 자들은 짐작 컨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였을 것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아마도 예수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제자들을 둘러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름에 순종하여 자신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제자들을 각별하게 취급하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에 대한 박해와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때였기에 예수님은 저희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더욱 따뜻한 애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가족 관계가 누구인가에 대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열 두 제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35절을 보겠습니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은 ‘누구든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족을 육신적인 가족으로 제한하지 않으시고 신령한 가족 관계로 확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인 군중들을 향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면 그는 나의 어머니와 형제와 자매라고 그 위치를 높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의 밀착된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고귀한 사람의 친척이 되는 대단히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군중들을 향해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자매와 같은 사랑스럽고 친밀한 영적 가족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요한복음 6장 38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최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뜻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인간의 수없는 조롱과 비난과 모욕과 수치를 감수하셨고,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중하게 여기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를 참으로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로서 사랑하십니다. 형제애는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자매로서 사랑하십니다. 자매에 대한 사랑은 형제에게 베풀어지는 것과 다른 부드럽고 섬세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어머니처럼 사랑하십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는 존경과 존중과 감사의 감정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빛이 하나이지만 스펙트럼을 통해서 볼 때 일곱 색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에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형제의 사랑으로, 어떤 때는 자매의 사랑으로, 어떤 때는 모친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비춰주십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가족은 누구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중요시했던 가족 관계는 육적인 가족 관계보다 영적인 가족 관계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한 가족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가족을 확장하셨습니다. 혈통적으로만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가족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역사의 많은 비극은 혈통과 혈연, 지역과 민족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전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힘씀으로써 주님의 가족으로 인정받고, 모두 함께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3장 31절-35절 어머니와 형제들 _ 그리스어 원문과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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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장 31절-35절 어머니와 형제들

(참고 : 마태 12:46-50; 누가 8:19-21)

마가 3:31

(공동번역) 그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어휘) Καὶ(까이, 그리고) ἔρχονται(에르콘따이, 왔다, 현재 중수 3인칭 복수) ἡ(헤-) μήτηρ(메-떼-르, 어머니, 여성 주격 단수) αὐτοῦ(아우뚜~, 그의) καὶ(까이, 와) οἱ(호이) ἀδελφοὶ(아델포이, 형제들) αὐτοῦ(아우뚜~, 그의), καὶ(까이, 그리고) ἔξω(엒소-, 밖에서) στήκοντες(스떼-꼰떼스, 서서, 현재분사 능동 남성 주격 복수) ἀπέστειλαν(아뻬스떼일란, 사람을 보냈다, 무정 능동 3인칭 복수) πρὸς(쁘로스, 향하여) αὐτὸν(아우똔, 그를) καλοῦντες(깔룬~떼스, 부르기 위하여, 미래분사 목적의 의미 능동 남성 주격 복수) αὐτόν(아우똔, 그를)

ㅇ στήκω 서있다

ㅇ ἀποστέλλω(보내다, 사람을 보내다) : ἀπό(~떨어져) + στέλλω(스뗄-로-, 준비하다, 주선하다)

기본형 : ἀποστέλλω, ἀποστελῶ, ἀπέστειλα, ἀπέσταλκα, ἀπέσταλμαι, ἀπεστάλην. 추정어근 : στελ, σταλ

미완료: ἀπέστελλον, ἀπεστελλόμην

미래시제 형성 : ἀποστελῶ(축약) ← ἀποστελέω(σ탈락) ← ἀπο+στελ+έσ(시제접사)+ω(어미)

☞ 직설법 무정시제 능동 변화(σ가 없는 2무정 변화)

단수 : ἀπέστειλα, ἀπέστειλας, ἀπέστειλε(ν)

복수 : ἀπεστείλαμεν, ἀπεστείλατε, ἀπέστειλαν

쌍수 : ─, ἀπεστείλατον, ἀπεστειλάτην

ㅇ καλοῦντες : 부르기 위하여(여기서는 미래분사이다)

ⓐ 현재분사 능동 남성 주격/호격 복수

ⓑ 미래분사 능동 남성 주격/호격 복수

* 미래분사는 의도나 목적의 의미로도 쓰인다.

* καλέω는 미래분사와 현재분사의 기본형이 같다. 문맥을 통하여 구별해야 한다.

→ καλῶν, καλοῦσα, καλοῦν

(추가 설명 및 의견)

ㅁ 정관사

ἡ μήτηρ αὐτοῦ : 그의 어머니

→ 정관사 ἡ가 소유격 αὐτοῦ(그의)와 함께 쓰이고 있다. 영어의 경우 정관사와 소유격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다.

마가 3:32

(공동번역) 둘러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직역) 그리고 군중이 그를 둘러싸고 있아 있었는데(단수, 과거완료),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고 있다(현재, 복수).

(어휘) καὶ(까이, 그리고) ἐκάθητο(에까테-또, 앉아있었다, 과거완료 중수 3인칭 단수) περὶ(뻬리, 둘러싸고) αὐτὸν(아우똔, 그를) ὄχλος(오클로스, 군중이, 남성 주격 단수), καὶ(까이, 그런데) λέγουσιν(레구-신,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현재 능동 3인칭 복수) αὐτῷ(아우또~, 그에게, 남성 여격 3인칭 단수) Ἰδοὺ(이두-, 보시오) ἡ(헤-) μήτηρ(메-떼-르, 어머니, 주격) σου(수-, 당신의) καὶ(까이, 와) οἱ(호이) ἀδελφοί(아델포이, 형제들, 주격 복수) σου(당신의, 인칭대명사, 속격 2인칭 단수) καὶ(까이, 와) αἱ(하이) ἀδελφαί(아델파이, 누이들이, 주격 복수) σου(당신의) ἔξω(엒소-, 밖에서) ζητοῦσίν(제-뚜~신, 찾고 있다) σε(세, 당신을, 인칭대명사, 대격 2인칭 단수)

ㅇ κάθημαι(앉아있다, 완료시제) : κατά(아래로) + ἧμαι(헤마이, 앉다)

☞ 완료시제와 과거완료시제만 사용된다.

ⓐ κάθημαι (완료시제) “앉아 있다”

– 과거에 앉았고 지금도 그 상태가 유지된다(현재시제로 번역)

ⓑ ἐκαθήμην (과거완료시제) “앉아 있었다”

– 과거의 어느 시점 이전에 앉았었고 그 상태가 그 시점까지 유지되었다(미완료시제로 번역)

☞ 직설법 과거완료 중수 변화

단수 : ἐκαθήμην, ἐκάθησο, ἐκάθητο

복수 : ἐκαθήμεθα, ἐκάθησθε, ἐκάθηντο

쌍수 : ─, ἐκάθησθον, ἐκαθήσθην

* 능동2차인칭어미 멘 소 또 메타 스테 은또도 매우 규칙적이다. 단수 2변화에서 모음 사이 σ탈락과 축약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여기서는 온전한 형태로 쓰였다.

(추가 설명 및 의견)

ㅁ ‘앉다’를 의미하는 동사들

ⓐ 앉다(탈형동사)

καθέζομαι(까테-조마이, 까텓소마이, 현재시제), ἕζομαι(헤-조마이, 헫소마이, 현재시제),

κάθημαι(까테-마이, 완료시제), ἧμαι(헤~마이, 완료시제)

ⓑ 앉히다(타동사), 앉다(자동사)

καθιζάνω (까티-자노-, 까틷사노-,현재), ἱζάνω (히-자노-, 힏사노-, 현재),

καθίζω (까티-조-, 까틷소-, 현재), ῐ̔́ζω (히-조-, 힏소-, 현재)

* 그리스어 완료시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도 유지된다’라는 의미이므로, 완료시제가 현재시제를 대신하는 동사가 다수 존재한다.

마가 3:33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어휘) καὶ(까이 ; 그런데) ἀποκριθεὶς(아뽀끄리테이스 ; 반문하면서, 무정분사 수동, 남성 주격 단수) αὐτοῖς(그들에게, 여격 복수) λέγει(말하고 있다) Τίς(누가) ἐστιν(이다) ἡ μήτηρ(메-떼-르 ; 어머니) μου(나의) καὶ(그리고) οἱ ἀδελφοί(아델포이 ; 형제들) ;(물음표)

ㅇ ἀποκρῑ́νω : 나누다, 선택하다, (중동)대답하다, 반문하다, (수동) 대답이 주어지다

어원 : ἀπό(다시, 되돌려) + κρίνω(판단하다, 결정하다)

☞ 무정시제 분사

능동 : ἀποκρῑ́νᾱς, ἀποκρῑ́νᾱσα, ἀποκρῖναν

중동 : ἀποκρῑνάμενος, ἀποκρῑναμένη, ἀποκρῑνάμενον

수동 : ἀποκριθείς, ἀποκριθεῖσα, ἀποκριθέν

마가 3:34

(공동번역)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어휘) καὶ(그리고) περιβλεψάμενος(뻬리블레ㅃ사메노스 ; 둘러보면서, 둘러 본 후, 무정분사 중동 남성 주격 단수) τοὺς(그들을, 대명사, 정관사, 남성 대격 복수) περὶ(둘러싼) αὐτὸν(아우똔 ; 그를) κύκλῳ(뀌끌로- ; 둘레에, 명사, 남성 여격[처격] 단수 ) καθημένους(까테-메누-스 ; 앉아있는, 현재분사 중수, 남성 대격 복수) λέγει(말하고 있다) Ἴδε(보아라, 무정명령법 능동 2인칭 단수) ἡ μήτηρ(메-떼-르 ; 어머니, 주격 단수) μου(나의) καὶ(와) οἱ ἀδελφοί(아델포이 ; 형제들, 주격 복수) μου(나의)

ㅇ κύκλος, ου, ὁ 원, 링, 시장

→ 여격은 구격 처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처격으로 쓰이고 있다.

☞ 격변화(주격, 속격, 여격, 대격, 호격 순)

단수 : κύκλος, κύκλου, κύκλῳ, κύκλον, κύκλε

복수 : κύκλοι, κύκλων, κύκλοις, κύκλους, κύκλοι

쌍수 : κύκλω, κύκλοιν, κύκλοιν, κύκλω, κύκλω

ㅇ καθήμενος, καθήμενη, καθήμενον 앉아있는(완료분사 중수)

☞ τοὺς (περὶ αὐτὸν κύκλῳ) καθημένους : 앉아있는 사람들을(정관사 + 형용사 구문). 괄호 안은 동사의 성질을 가지 분사가 대동한 수식어 ‘그를 둘러싸고 둘레에’

ㅇ Ἴδε : 자! 보아라! 무정명령법 능동 2인칭 단수이지만, 여기서는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감탄사로 쓰임. 뒤에 오는 말들이 대격이 아니라 모두 주격이다. 즉 목적어가 아니다.

ㅇ εἶδον(능동), εἰδόμην(중동) : 본다, 보았다(직설법 무정시제 능동 1인칭 단수)

→ 무정시제를 제외한 나머지 시제는 ὁράω(보다)와 ὄψομαι(보다)의 시제를 이용한다.

→ 시상접두모음 ε를 생략한 ἴδον, ἰδόμην을 사용하기도 한다(호머 그리스어)

마가 3:35

(다른 판본)

ὃς ‹γὰρ› ἂν ποιήσῃ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οὗτος ἀδελφός μου καὶ ἀδελφὴ καὶ μήτηρ ἐστίν

(공동번역)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어휘) ὃς(~하는 사람, 관계대명사, 남성 주격 단수) ἂν(어찌 되었든, 아마도) ποιήσῃ(행하다, 접속법 무정 능동, 3인칭 단수) τὸ θέλημα(뜻, 중성 대격 단수) τοῦ Θεοῦ(신의), οὗτος(그가, 남성 주격 단수) ἀδελφός(형제, 남성 주격 단수) μου(나의) καὶ(와) ἀδελφὴ(누이, 여성 주격 단수) καὶ(와) μήτηρ(어머니, 주격 단수) ἐστίν(이다, 현재 능동 3인칭 단수)

ㅇ ποιέω : 기본 뜻은 ‘만들다’이다. 기본 듯을 유지한다면, ‘선택하다’ ‘행하다’ 등등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ㅇ θέλημα, θέληματος, τό 뜻

ㅇ ὃς ἂν ποιήσῃ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와 οὗτος는 동격.

The New Testament – Eberhard Nestle(1904, 13)

마가 3:31

Καὶ ἔρχονται ἡ μήτηρ αὐτοῦ καὶ οἱ ἀδελφοὶ αὐτοῦ, καὶ ἔξω στήκοντες ἀπέστειλαν πρὸς αὐτὸν καλοῦντες αὐτόν

마가 3:32

καὶ ἐκάθητο περὶ αὐτὸν ὄχλος, καὶ λέγουσιν αὐτῷ Ἰδοὺ ἡ μήτηρ σου καὶ οἱ ἀδελφοί σου καὶ αἱ ἀδελφαί σου ἔξω ζητοῦσίν σε

마가 3:33

καὶ ἀποκριθεὶς αὐτοῖς λέγει Τίς ἐστιν ἡ μήτηρ μου καὶ οἱ ἀδελφοί;

마가 3:34

καὶ περιβλεψάμενος τοὺς περὶ αὐτὸν κύκλῳ καθημένους λέγει Ἴδε ἡ μήτηρ μου καὶ οἱ ἀδελφοί μου

마가 3:35

ὃς ἂν ποιήσῃ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οὗτος ἀδελφός μου καὶ ἀδελφὴ καὶ μήτηρ ἐστίν

☞ 이 글은 어학 공부 차원이며, 정식 번역은 공동번역이나 다른 성경책을 참조하시기 바람. 원문은 에베르하르트 네스틀레(Eberhard Nestle)의 Η Καινή Διαθήκη, The New Testament(1904)를 바탕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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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월 31일. 마가복음 3장. > 매일말씀묵상

(아래 관련링크 클릭하여 드라마바이블을 들으면서 묵상하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

마가복음 3장. 불신과의 싸움을 각오해라.

1. 주님께서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이적은 (1~6) 앞의 안식일 논쟁의 연장입니다 (2:23~28). 주님은 주님을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보는 자들 앞에서,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가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율법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악한 지를 드러내십니다(4).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타락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주님은 그들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분노하시고(5), 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6). 분봉왕 헤롯(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 안디바)을 지지하는 정치 그룹인 헤롯당은 바리새인들과는 이해관계가 먼 그룹이었으나,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한 일을 도모함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과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악함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모든 이해관계를 넘어 협력하여 하나님과 그 말씀을 대적합니다.

2.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 ‘ 물러가다 ‘ 는 표현은 악한 반응을 보이는 자들을 떠나셨다는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7). 거기서 다시 많은 사람이 주님을 좇았는데, 유대, 예루살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8). 예수님께 닿기만 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10) 무리들이 주님을 에워싸 밀자, 주님은 배에 올라 해변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비록 ‘ 가르치셨다 ‘ 는 직접적 언급은 없어도 ,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다만 가르치기 위함이었고 , 이것은 ‘ 말씀의 가르침 ’ 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에 밀려날 수 없는 우선적 사역임을 암시합니다 . 주님은 여기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귀신에게 잠잠할 것을 명하시고 사람들에게 경계하셨습니다(12).

3. 주님께서는 특별히 열 두 제자를 부르셨고 그들과 공생애 기간을 함께 하셨습니다 . 열 두 제자의 명단과 그들을 부르신 의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3~19). 주님은 ‘ 자기가 원하는 자들 ‘ 을 부르셨습니다 . 이것은 철저히 주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의 기준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다 주님이 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이 특별히 열 두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1) 함께 있기 위함이었고 , 2) 보내어 전도를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 3)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 이들은 주님과 함께 있었기에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복음서를 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주님과 복음의 증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4.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주시며 귀신을 쫓아내는 선한 일을 하시는 주님은 , 믿지 않는 악한 ( 불신이 악한 것이다 ) 사람들의 비난과 적개심을 마주하셔야 했습니다 . 그 첫째가 주님의 육신의 가족들이었습니다 (21, 31~35). 여기서 주님의 가족(친족)은 어머니 마리아를 포함할 수도 있지만 주로 형제들을 가리킬 것입니다(31). 그들도 사람들처럼 주님이 미쳤다고 느꼈기 때문에 주님을 붙들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족들이 찾는다고 했을 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5). 이것은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 해도 불신의 문제로 분열될 수 있으며,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불신으로 나뉜 가족관계보다 더 친밀하고 참되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5. 둘째로 불신의 사람들은 율법에 익숙한 서기관들입니다 (22). 그들은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23). 주님은 사탄이 사탄을 좇아내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주님께서 사탄보다 강한 자로서 오셨기 때문에 사탄이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왕권통치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선언이란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복종하고 충성을 서약해야 합니다 . 만일 지속적으로 끝까지 거부한다면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29). 주님을 믿지 않고 , 도리어 주님에게 귀신들렸다는 소리 밖에 할 수 없는 자들 , 끝까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마감하는 자들은 비록 주님의 육신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 구속의 역사를 방해하고 , 믿음을 주고자 하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

6. 주님께서 불신과의 싸움을 하셨다면 , 오늘 우리도 그 동일한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 주님의 존재와 말씀이 마음의 악함을 드러낼 때, 회개하기보다 주님과 그 말씀을 적대하는 악함에 자신을 허용하는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본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불신과의 싸움은, 우리의 마음을 외롭고 지치게 만들 수 있는데,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오해와 고립을 경험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 주님의 싸움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로 그들이 주님을 믿도록 구하는 것이 ,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여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입니다 . 그리하여 결국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나중에 주님 부활 후에 주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고 야고보서를 썼으며, 주님의 형제 유다도 회심 후 유다서를 썼습니다. 다른 형제들도 다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듯이 가족 구원에 대한 문제는 예수님도 경험하고 계셨던 문제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하여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을 인도하시도록 은혜를 구하십시오 .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불신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도 정말 많은 불신 세력들이 있었던 것을 봅니다. 오늘 저희 앞에도 많은 대적들이 있는데, 신앙의 싸움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불신을 이기셨고,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신실하셨던 것처럼, 저희도 믿음으로 끝까지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키워드에 대한 정보 마가복음 3장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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