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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주제별로 말씀을 찾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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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짓는 죄 – Daum 블로그

마음으로 짓는 죄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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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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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마음 속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 질문요

1, 예수님이 마음속으로 누구를 미워하거나 혹은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나쁜쪽으로 상상을 하면 이미 죄를 짓는거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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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hyjesusonly.com

Date Published: 5/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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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로 지은 죄와 마음으로 지은 죄 (마 5:27-32)

이는 행위로 짓는 죄악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악도 동일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2) 예수께서는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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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mcprayer.org

Date Published: 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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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모르고도 짓는 죄 – 뉴스프리존

각 종교의 계율(戒律) 중에 ‘간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짓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물었을 때, ‘마음으로 짓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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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freezone.co.kr

Date Published: 7/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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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짓는죄 – YouTube

로마연합교회 3분말씀 2021년 3월 25일 마음으로 짓는 죄, 마태복음 5:27-32, 고영기 목사(하노버한민교회) (마태복음 5:27-32) 또 … From the veo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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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outube.com

Date Published: 6/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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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 자료실

죄의 양상은 크게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죄와 말이나 행동으로 짓는 죄로 나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각으로 숨겨져 있는 죄보다 행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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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ds.catholic.or.kr

Date Published: 7/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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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마음으로 짓는 죄 – 주일말씀 – 남가주 예수 사랑교회

“눈과 마음으로 짓는 죄”. 본문말씀 ; 과 마음으로 짓는 죄”. 본문말씀. 마태복음 5장27-32절 ; 설교자. 오상규 목사. 설교날짜 ; 오상규 목사. 설교날짜. 2020-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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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esuslovechurchsc.com

Date Published: 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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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은혜와 사랑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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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5.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Q-fGPMSudw

마음으로 짓는 죄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영국이 인도를 300년간 식민통치했기에 영국에는 인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인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제나 느끼는 게 간디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하다는 것입니다. 간디는 높은 교육을 받은 인도 최고의 엘리트로서 런던에서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대영제국을 등에 업고 크게 한자리할 수도 있었고, 돈방석에 앉아 평생 호화로운 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디는 그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권력을 누리며 흥청거리기보다는 2300일을 추운 감옥에서 보낸 것입니다. 요즘 한국은 정치적인 부패로 날마다 떠들썩한데, 다들 어떻게 한자리 잡아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어느 나라 못지않게 종교 인구가 많은 나라인데도, 그 종교의 힘이 국가의 부정부패를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은 정치·사회·종교 개혁이 절실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먼저 개혁되지 않으면 그런 개혁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간디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똑똑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천국의 복을 받을 자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3-12)

우리 사회의 범죄를 막으려면 우리 국민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재물과 건강은 지키면서 마음을 지키는 데에는 소홀합니다. 우리 마음을 길거리에 던져두고 지키지 않습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마음을 돌보고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그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플라톤의 제자인 토로킬러스는 바다에 배를 띄워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한번은 배를 타고 바다에 가서 놀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다 깨어져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집은 바로 바닷가에 있었는데 바닷가로 향하는 창을 다 막았습니다. 어떤 친구가 와서『이 좋은 바다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는 창들을 왜 이렇게 다 막았느냐?』고 묻자,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지난번 배를 타고 나갔다가 꼭 죽을 뻔하고 살아왔는데 다시는 배를 타지 않기로 결심을 했지만 이 창을 그냥 두었다가는 따뜻한 봄날이 되어 이 창으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면 다시 바다로 나갈 생각이 들까봐 아예 바다가 보이는 창을 막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마음을 시험하는 창이 있습니다. 이 창을 내다보면 우리가 언제 어떤 시험에 빠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약점, 시험의 창을 미리 알아서 아예 그 방면을 단단히 막아 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언제든지 나를 죄의 유혹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을 아예 미리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서적을 피하고, 오락을 피하고, 우리를 더러운 데로 인도하는 친구가 있으면 끊어버리십시오. 또한 유혹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짓는 죄가 무섭습니다. 모든 죄가 마음에서 시작하여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21:4)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

사탄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악한 생각을 주어서 악한 일을 하게하고 음란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음란한 생각을 주어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거짓된 사람에게는 거짓된 생각을,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의한 생각을 자꾸 넣어줍니다. 모든 문제는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우리 마음에 성령 충만한 생각으로 가득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히 쓰십니다. 즉 교만, 거짓, 음란, 탐심, 미움, 나태한 생각을 버리고,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양선, 충성, 자비, 오래 참음, 긍휼, 청결, 의로운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 닮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여 우리를 통제하려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작전입니다. 마귀는 험상궂은 얼굴로 우리에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달콤한 생각으로, 합리적인 생각으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 속삭임을 주어 우리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이 마귀의 속삭이는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첫째, 마귀가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속삭이며 들어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속삭입니다. 마귀가 들어올 때는 순간 아무 예고도 없이 육체로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를 통제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속삭이며 들어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지목하면서 나를 팔자가 있다. 그는 바로 내가 떡 조각을 나눠주는 자이다. 유다에게 떡 조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13장 27절에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에 속삭입니다. 마귀는 마음에 속삭입니다. 마귀를 팔려는 생각을 넣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에 속삭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에 속삭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죄를 지을 생각을 가지도록 속삭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교묘하게 속삭입니다. 죄를 짓도록 속삭이는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 속삭임을 분별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도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도 속삭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이 성령의 속삭임인지, 마귀의 속삭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귀의 속삭임인지 분별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속삭이는 생각인지 성령께서 속삭이는 생각인지 구분은 매우 간단합니다. 마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죄가 되는 지, 쾌락을 추구하는 지, 내 욕심을 자극하는 지를 보십시오. 이것은 100%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유다는 돈이 되는 속삭임을 마귀가 했습니다. 마귀는 유다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욕심을 자극했습니다. 마귀는 유다에게 『돈을 받고 팔아라』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마귀의 속삭임은 죄를 짓게 합니다. 그 속삭임은 달콤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생각입니다. 마귀의 생각은 그럴 사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쾌락을 추구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마귀의 속삭임의 결과는 죄를 짓게 만듭니다. 스캇 팩이라는 심리학자는 말하기를 마귀는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지을 생각을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마귀는 생각에 속삭이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사단이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을 죄짓게 만들 때, 예수 믿는 사람을 유혹할 때에 쓰는 방법이 네 가지 있다고 합니다.

1) 바로 다윗 이미지를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을 보라, 그렇게 범죄 했지만 회개한 다음에 훌륭한 왕이 되지 않았느냐, 그저 죄 많이 짓다가 어느 때가서 회개만 하면 된다.』 이렇게 유혹한다는 말입니다.

2) 모세의 이미지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혈기가 있었다. 모세를 보아라, 그는 사람을 쳐죽이기도 했고, 돌비석을 깨뜨리기도 했고, 사람들 앞에서 반석을 땅땅 내리치기도 했던 혈기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위대한 사람이었지 않느냐, 네가 혈기 좀 부렸기로서니 뭐 걱정할 것이 있느냐, 괜찮다』 이래가면서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3) 베드로의 이미지를 가지고 나온답니다. 『베드로를 보아라, 그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만 잤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성령 받은 다음에 큰 일을 하지 않았느냐, 지금을 잘 때이다, 푹 쉬어라』 이래가면서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4) 가장 무서운 유혹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바울 이미지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들어보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행위는 상관이 없다. 마음대로 살아라. 이미 구원을 받아놓은 것이다, 나는 구원받기로 이미 예정된 사람이니까 거꾸로 가건 말건 천당 가기로 정해졌다. 걱정 말아라』

이렇게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우리보다 영특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속삭임에 우리가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마귀는 합리적인 생각을 넣어 이렇게 속삭이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러나 분별해야 합니다. 마귀의 생각은 죄를 짓게 하는 생각입니다. 마귀의 생각은 악한 꾀를 내는 생각입니다. 마귀의 생각은 세상 쾌락을 쫓는 생각입니다. 마귀의 생각과 육의 생각입니다. 마귀의 속삭임을 분별하십시오. 그 음성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마귀의 속삭임을 분별하십시오. 그럴 사한 논리와 합리적인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마귀가 사용하는 속삭임의 대표적인 형태는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마귀가 속삭일 때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매우 매력적으로 생각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마귀의 무기입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 속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속삭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마귀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유다에게 속삭였습니다. 유다는 메시야를 따라다닐 때 그가 유대나라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건지는 정치적인 메시야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이나 씻기고, 병자들과 함께 놀고, 귀신 들린 자들이나 돌보고 있으니 유다의 기대에 차지 않습니다. 이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는 무능력한 자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내가 예수에게 속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정적이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배반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와 결별해 버려야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기왕에 부인할 것, 이왕에 배신할 것, 예수를 돈이나 받고 팔아버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30냥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이것이 마귀의 작전입니다. 13장 2절에 보았더니 마귀가 유다를 팔 마음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 <데이빗 씨맨즈>라고 하는 분은 사탄이 인간에게 유혹할 때에 치명적 유혹의 방법은 지극히 심리학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간을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나는 아는 재능도 없다. 나는 아무 재능도 발견할 수가 없다. 나는 무능하다. 이렇게 자존심을 낮추어 버립니다. 자기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Low Self-esteem, 이게 바로 사탄이 시험하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는 내게는 미래가 없다. 꿈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하며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결정을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나는 아무 자신감도 없다』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너는 아무 쓸모도 없다. 네 죄가 얼마나 많으냐? 네가 얼마나 미련한 놈이냐? 네가 얼마나 게으른 놈이냐? 너는 하나님 앞에 아무 쓸모가 없다. 이렇게 마귀는 부정적인 해석을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바로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미국에 카네기 공과대학(C.I.T.)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생살이에 실패한 사람들,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만 만 명을 표본조사해서 연구해 보았습니다.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서 실패한 사람은 15%밖에 없고,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통계를 얻고 연구한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관계란 또 무엇이냐? 그 무슨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거냐, 하고 추적해서 심층 연구해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Negative Mental Attitude, 부정적 의식, 부정적 생활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을 알고, 실패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그렇고, 사물에 대한 생각이 그렇고, 사건에 대한 이해가 그렇고, 언제나, 역사에 대한 이해도 항상 부정적입니다.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사고를 주어 인간을 실패케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마귀의 작전은 부정적인 생각을 당연히 하도록 환경을 만들고 우리에게 부정하도록 속삭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이 교묘한 작전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이 듭니까?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부정적인 속삭임을 듣지 마십시오. 마귀의 속삭임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추방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부정적인 속삭임에 자신을 팔지 마십시오.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부정적인 속삭임으로 여러분 마음에 마귀가 다가올 때 오직 믿음으로 단호히 거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마귀의 생각에 직면할 때는 즉시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마귀의 속삭임을 직면하는 순간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마귀의 속삭임은 너무나 교묘해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마귀의 속삭임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마귀의 속삭임은 아주 천사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마귀의 속삭임이 있는 순간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내 의지로 추방하지 못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쳐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마귀의 생각과 육의 생각은 항상 조화를 이룰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그 생각이 죄의 형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에 마귀의 생각과 육의 생각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 육신의 생각은 인간의 마음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7장 20절에서 23절 보면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인간의 생각과 마귀의 생각이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의 속삭임이 있을 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의지와 결단과 사고와 모든 생각까지 주관해주시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마귀의 속삭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저희 교회에 와서 간증했습니다. 선교지에 성경을 가지고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그 나라는 성경을 자유롭게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답니다. 성경을 가지고 들어가다가는 빼앗깁니다. 선교사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업가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한 포대 넣고 가는데 공항을 통과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선교사님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 왔습니다. 『이것, 발각되면 선교도 못하고 성경도 다 빼앗기니 큰 일 났다. 검색이 너무나 심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냥 가지고 가지 말까? 들키면 추방이다. 선교도 못한다. 그냥 몸만 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 선교사님께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잠시 불렀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지 못할 상황이라 성령님을 부르며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즉시로 깨닫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는 주안에서 담대하리라』고 시인을 했습니다. 그러자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책 검색하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통과되어 선교지 까지 성경을 가져가 배포하게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내 마음에 순간 마귀가 속삭일 수 있습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에게 늘 속삭입니다. 우리를 넘어트리기 위해서 안달입니다. 아주 고차원 전법을 씁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살살 속삭입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마귀의 속삭임과 전쟁을 합니다. 이 전쟁에서 때로는 넘어지기도 합니다. 사도바울도 이 전쟁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호소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4)

마음속의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인디안 추장에게 쌍둥이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추장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 둘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추장은 대답했습니다. 『많이 먹는 놈이 이긴다』 그렇습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려면 말씀을 많이 배우고 가까이하는 자가 이깁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엡 6:11-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의 속삭임에 순종하지 마십시오. 마귀의 속삭임이 있을 때, 우리 속에서 성령님은 항상 권고하십니다. 이 성령님의 속삭임을 들어야 합니다. 내 의지와 결단이 부족합니다. 내 믿음이 부족합니다. 내 믿음으로 마귀의 교묘하고 합리적인 속삭임을 밀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나를 돕는 성령님, 나의 의지와 결단까지 다스릴 수 있는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새로운 믿음의 마음으로, 새로운 결단으로 우리를 촉구하실 것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마귀의 속삭임을 능히 물리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내 마음에서 교만과 의심과 거짓과 탐욕과 음란과 미움을 거두워 가시고 마음속에 주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사랑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항상 찬송하고 감사하게하시고 긍정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마음 속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 질문요

1, 예수님이 마음속으로 누구를 미워하거나 혹은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나쁜쪽으로 상상을 하면 이미 죄를 짓는거라 했습니다. 그래서 음란물이 상대와 자기몸에 죄를 짓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것은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제발 죽었으면 하는 이 생각도 마음속으로 짓는 죄인가요?? 영화는 그냥 영화닌깐 죄가 아닐경우, 성인을 위한 19금 영화에 나오는 베드씬을 보고 음흉한 생각이 드는것도 그냥 영화는 영화닌깐 마음속으로 짓는 죄랑 상관없게 되는거 아닌가요??

2, 자기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거듭난줄 알고 그렇게 믿었는데 알고보니 스스로의 착각으로 아닌경우가 있나요??

혹은 반대로 자신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못만나서 거듭나지 않는걸로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미 거듭난자로 되어있는 경우도 있나요??

행위로 지은 죄와 마음으로 지은 죄 (마 5:27-32)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5:27-32)

알고도 모르고도 짓는 죄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요즘은 지능이 너무 발달 되어서인지 갖가지 죄악이 난무하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이 죄악으로 뒤덮이지 않을까 심히 걱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짓는 죄 중에서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 중 어느 것이 더 큰 죄 일까요?

아마도 대개는 알고도 지은 죄가 당연히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고 지은 죄는 자신도 모르고 한 죄이고 혹은 실수라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모르고 지은 죄가 알고 짓는 죄 보다도 훨씬 크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모르고 지은 죄는 자신이 어떤 죄를 짓는 지도 모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짓는 죄로 인해 사람이 죽어 간다면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짓는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짓는 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중죄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고 지은 죄는 현세에 받지 않으면 내세에서라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살‧도‧음(殺盜淫) 아마 이런 것들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죄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으로 짓는 죄라 합니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기 까지 단계를 구분해서 살펴보면, 먼저 마음을 정하고 나서 마음을 정한 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법적으로는 행위가 있을 때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지요. 그러나 진리가 단죄하는 죄는 행위로 옮겨지기 전 마음만 먹어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각 종교의 계율(戒律) 중에 ‘간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짓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물었을 때, ‘마음으로 짓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간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지요. 일체의 마음을 일으키면 그것이 다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탐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게 되고 욕심이 일어납니다. 또 음욕(淫慾)이 있으면 마음에 드는 이성이 눈에 띄는 순간 음욕에 뿌리를 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있어 조건만 되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따라서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톨스토이의 <돌과 두 여자>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 두 여인이 지혜 있는 노인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갔습니다. 한 여인은 젊었을 때 남편을 홀대한 것에 괴로워하면서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 있는지 방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인은 남편과 살면서 그다지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만족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괴로워하는 여인에게 먼저 말했습니다. “부인은 지금 밖으로 나가서 아주 큰 돌을 한 개만 주워 오시오.” 그리고 다른 여인에게도 말했습니다. “부인은 작은 돌 열 개만 주워 오시오.” 두 여인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각각 돌을 주워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두 여인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지금 가지고 왔던 돌을 처음 있었던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돌 한 개를 주워온 여인은 돌을 들고 오기는 어려웠지만, 돌이 있던 곳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작은 돌 여러 개를 가지고 온 여인은 돌이 있던 자리를 기억해 내지 못해서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두 여인에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죄라는 것이 이 돌과 마찬가지라오.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은 죄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에 항상 불안한 맘으로 살면서 어떻게 해야 용서를 받을지 고민하지만, 작고 하찮은 죄를 지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잘 기억하지 못하기에 뉘우침이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지게 된다오.”

이와 같이 우리는 살면서 정작 모르고 지은 죄는 잘 볼 줄을 모릅니다.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그것이 쌓이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줍니다. 당연히 큰 잘못은 더 큰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잘못일지라도 지나간 잘못들을 뉘우치고 되풀이하지 않을 때 앞으로의 삶도 행복하게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업(業)에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있습니다. 즉,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생각으로 짓는 업을 말합니다. 업(業 : karma)이란 행위를 의미합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생각으로 짓는 업은 크지 않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업이든 악업이든 생각으로 짓는 업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께서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알고도 모르고도 지은 죄에서 벗어나려면 그야말로 ‘허심(虛心)’이 되어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8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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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2)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상)

죄의 양상은 크게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죄와 말이나 행동으로 짓는 죄로 나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각으로 숨겨져 있는 죄보다 행동으로 드러난 죄에 더 초점을 맞춘다. 개인의 내적인 죄는 개인적 의미만을 지니지만, 외적인 죄는 사회와 공동체로 영향력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의 말과 행동으로 발생한 죄의 영향력은 사회 전반으로 확대돼 ‘구조적인 악’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개인의 외적인 죄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로 확산되고 구조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적인 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사회 구조적인 죄와 악에 맞서 대항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의무이다. 역대 교황님들이 반포한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신앙인들이 예언자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고, 전쟁과 폭력에 맞서 평화와 화해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따라서 교도권이 가르치는 가톨릭 사회교리 안에서 우리는 사회심리학적 의미에서의 죄와 악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마음으로 짓는 죄가 행동으로 짓는 죄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생각으로 짓는 죄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나 중요성이 오히려 간과되기 쉽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생각의 죄는 결국 죄의식을 무디게 만들어 진정한 참회와 회개를 방해할 수도 있다. 소죄가 대죄보다 더 위험한 것처럼 마음속 죄가 겉으로 드러난 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바로 이러한 논리에 근거한다. 죄의 개인 심리학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개인 심리적 차원의 죄와 악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그러나 앞서 설명한 사회 구조적 차원의 가르침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외적으로 드러난 사회적 악은 비교적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지만, 내적으로 숨어있는 심리적 악은 사실 그 본질과 영향력을 명확히 규명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리내적인 죄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 즉 교도권의 권위 있는 지침과 기준으로 제시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의 정신적 혹은 심리적 차원의 죄는 전통적으로 영성신학이나 윤리신학과 같은 신학적 관점 안에서만 다뤄지게 되었다. 그 결과 신학적 통찰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 신자 중에는 자신의 심리내적인 죄에 대한 고통과 괴로움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엠마 자매는 생각으로 짓는 죄로 너무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으로 짓는 죄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죄를 짓고 있다는 죄의식을 동반한 괴로움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 네가 하느님을 모른다고 하면 너는 천국에 갈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을 계속 섬기겠다고 하면 지옥에 갈 것이다. 너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이냐?” 이 질문에 두려움에 휩싸인 엠마 자매는 하느님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그 결과 자신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동시에 하느님을 배반한 죄의식이 밀려왔다.

이와 비슷한 질문은 계속 내면에서 발생했다. “이 두 개의 동아줄 중에 네가 만일 왼쪽 동아줄을 잡으면 너는 살 수 있지만, 저 사람은 죽게 된다. 그러나 오른쪽 동아줄을 잡게 되면 비록 너는 죽게 되지만 저 사람은 살 수 있다. 그렇다면 너는 어느 동아줄을 잡겠느냐?” 그러자 엠마 자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왼쪽 동아줄을 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웃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의식이 밀려왔다.

이렇게 생각으로 짓는 죄로 말미암아 엠마 자매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과연 이 마음속 생각들은 모두 생각으로 짓는 죄인가? 아니면 죄가 될 수 없는가? 만일 죄라면 혹은 죄가 아니라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3)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중)

엠마 자매는 성인들이나 순교자들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하느님이나 이웃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구원과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신경증적인 과도한 죄의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엠마 자매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엠마 자매에게 있어서는 숨은 것도 다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생각으로 짓는 죄는 그 어떤 행동적인 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무섭고 중대한 죄의 원천이며 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엠마 자매는 드디어 본당 신부님을 찾아 고해성사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의 상상은 죄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성사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마음은 한결 편하고 가벼웠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불안과 죄의식이 밀려왔다. 머리에 떠오르는 상상은 점점 이전보다 더 끔찍한 딜레마 상황들로 펼쳐졌으며, 자신은 죄인이라는 단죄의 목소리가 들려와 한순간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이 죄가 아니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믿고 안심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성경이나 교리에서는 생각으로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신부님은 생각이 죄가 아니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엠마 자매는 해외에서 영성이나 윤리 혹은 성경을 전공하셨다는 박사 신부님들이나 성령이 충만하여 치유나 분별의 은사를 받으셨다는 피정지도 신부님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신부님들도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죄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답변뿐이었다. 자기 생각은 죄가 아니라 망상이라는 말은 더더구나 이해가 안 되었다.

엠마 자매는 교회에서 권위를 가진 신부님들의 말씀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해되지도 않는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도 없었다. 자기 생각이 망상이라면 사람들이 생각으로 짓는 죄도 모두 망상이란 말인가? 생각으로 짓는 죄와 망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엠마 자매는 결국 자신이 망상증 환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해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는 신부님들과는 달리 자신이 망상이 아닌 강박적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엠마 자매에게는 그 말이 그 말이었다. 망상이든 강박이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 왜 죄가 아닌지를 설명해 주지 않는 해석들은 모두 공허했다. 게다가 생각으로 짓는 죄를 범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의사가 약을 먹으면 해결된다고 하였지만, 그 역시 말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약을 먹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손과 발을 잘라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약을 먹어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즉 생각으로 죄를 짓고는 있지만,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면-메타인지), 실제적인 죄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 역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고 보였다.

엠마 자매는 결론적으로 자기 생각이 죄가 아니라는 명확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차라리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신이 치유될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으러 엠마 자매는 상담실을 찾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9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4)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하)

엠마 자매는 상담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어렵게 털어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실로 그 인생이 얼마나 험난한 고난의 연속이었는지를 가늠케 해준 고백이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지 하느님 존재와 동일시될 수 없다. 원죄의 결과로 생겨난 인간의 죄에 대한 경향성은 인간의 본성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이 경향성을 세례의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교회에서 공경하는 성인은 죄를 짓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라, 죄 혹은 죄의 경향성이라는 인간적 한계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아간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은 자신의 삶의 목표가 영적 완벽주의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완벽주의는 결코 실현될 수 없지만 실현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삶의 목표였다. 엠마 자매는 영적으로 자신이 완벽하다는 스스로의 평가에 위안을 받으며 현실의 그 어려운 고통을 버티어 낼 수 있었다. 남편의 냉대와 무관심,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은 모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실한 삶을 통해 극복해 나갔다. 그때마다 자신을 이해해 줄 친구나 이웃에 대한 인간적 희망을 포기하고 오직 하느님은 알아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냈다.

갑자기 하느님이냐 나 자신이냐, 혹은 이웃이냐 나 자신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은 바로 이러한 영적 충만감을 누린지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처럼, 이제 자기 생각 안에서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속 질문에서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인간적 약점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의 양심 안에서는 하느님과 이웃보다는 자신을 먼저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사실은 거짓말로 합리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았을 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상상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진실하게 대답하니 하느님과 이웃을 배반하게 되거나 이웃을 나보다 더 사랑하지 못한 영적인 불완전성이 발생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 영적으로 완벽하게 되고 싶은 엠마 자매는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영적으로 불완전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엠마 자매는 영적 지도를 받기 전에 심리치료가 우선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성격적이며 대인 관계적 문제를 영적 완벽주의 안에서 해결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했다. 하느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영성이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영성을 더 즐겨하신다는 생각의 전환도 필요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실한 삶과 항상 같은 의미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했다. 심리치료를 통해 엠마 자매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거스르는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성당의 한 자매에게 얼굴이 저팔계 같다고 직설적인 말을 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더 깊은 내면에는 그 자매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생각으로 죄를 짓게 만드는 망상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무의식이 뭔가 해결해야 할 내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를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과의 건강한 심리영성적 관계를 회복하라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체험을 통해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초대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26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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