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 장 강해 | [하루 한 장] 전도서7장_이름이 기름보다 낫고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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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5 [하루 한 장]“이름이 기름보다 낫고” (전7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6장까지 인생의 헛됨을
반복해서 노래한 전도자는
7장부터 시작되는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헛됨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더 낫다는 인생의 통찰입니다
이 말은 인생의 끝이 있음을
알고 겸손하게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이것은 또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밝혀주는
예언적인 말씀이기도 합니다
좋은 기름인 향유옥합을 깨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죄 많은 한 여인의 헌신은
그 여인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
복된 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기쁜 소식이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복음이 되었고
사망권세를 뛰어넘는 참 승리로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죽음 없는 삶은 공허합니다
이름 없는 기름은 무의미합니다
이름을 남기는 생을 소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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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석강해설교] 지혜와 어리석음이 대조됨(전 7:1-29)

전도서 기자는 생활 가운데 필요한 참 지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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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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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 성경주석

전도서 7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9. 00:49. <전도서 7장 흐름정리>. 본장은 지혜의 유익과 가치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원래 사람은 정직한 존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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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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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도서 7장 주석

[스크랩] 전도서 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6:42. 전도서 7장 주석.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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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9/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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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금) “전도서 7:1-29” / 작성: 정한조

본문 전도서 7:1-29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 알림 사항 : 2018년에 영성담임목사인 정한조목사가 새벽기도를 화-금요일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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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0/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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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전도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히브리어 전도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감 레콜 하데바림 아쉘 예답베루 엘 티텐 립베카 아쉘 로 티쉬마 엩 압데카 메칼레카 · 개역개정,21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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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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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전도서 7장 강해 · 1.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에게 그 지혜가 깨닫게 하셨습니다. · 2.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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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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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 언약성경장로교회

우리는 지금까지 전도서 1~6장 까지 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빠질 때 허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7장부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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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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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사는것과 죽는것(전 7:2) – 알쓸잡

안녕하세요.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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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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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깨닫고 사는 삶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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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edesd153.tistory.com

Date Published: 7/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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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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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전도서7장_이름이 기름보다 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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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전도서 7 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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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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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석강해설교] 지혜와 어리석음이 대조됨(전 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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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기자는 생활 가운데 필요한 참 지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과 행동을 지혜롭게 하여 칭찬을 받습니다. 우리는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하고 육적인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영적 지혜는 구원받는데 필요하고 육적 지혜는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갖추어 하나님께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대조됨(전 7:1-29)

[1절]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 . . .

본문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사람이 죽은 후에 그에게 붙여지는 이름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경건한 사람,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 등의 이름이다. 그것은 오래 남는다. 보배로운 기름은 값비싼 향유를 가리킨다. 그것은 잠시 동안은 좋은 향기를 낸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인 향기에 불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고 없어질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올리운 자로 기억되며,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 기억된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기억되며,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한 자이며 형통함을 얻은 자로 기억된다. 다윗은 믿음과 찬송의 사람으로 기억되며, 히스기야는 경건한 자로 기억된다. 저들은 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다.

본문은 또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죽는 날은 사람이 일생을 마감하는 날이다. 의인은 그의 의로운 생을 정리하고 결산하며 그의 이름을 남기는 날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셨다. 죽는 날은 또 의인이 죄와 슬픔, 질병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그러나 출생하는 날은 사람이 생을 시작하는 날로서 어떻게 살지 미지수이다. 믿음으로 살고 의롭게 살면 그의 생이 복되지만, 믿음 없이 살고 죄만 짓고 살면 그의 생은 큰 화가 된다.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던 제게 좋을 뻔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보배로운 기름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귀히 여기자. 단지 생일을 축하하지 말고 믿음으로 의롭고 선하게 살다가 죽기를 사모하자.

[2-4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 . .

본문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기회가 없고 경건하고 바른생활, 근신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초상을 당한 집에 조문하러 가면,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죽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유익이 많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해지며, 죽음을 생각할 때에 죄악 된 일,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일, 양심에 거리끼는 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버릴 것이다.

본문은 또,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라고 말한다. 사람이 웃을 때는 자기 부족과 연약을 잊어버리고 죽음의 일도 잊어버리기 쉽고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죽음을 대비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인해 슬퍼하고 죽음의 문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탁할 때 심령에 은혜와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특히 회개의 슬픔은 유익이 많다. 주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5:4).

그러므로 본문은 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매자들은 잔칫집에 빠지지 않고 모여든다. 그들은 현재의 육신적 즐거움을 좋아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지혜자들은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참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에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더욱 가다듬게 되고 내세를 준비하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참석하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며 내세를 준비하자.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며, 죄악 된 일을 멀리하자.

[5절]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본문은,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다. 책망을 좋아하는 자가 없고 책망 자체는 듣는 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무겁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바른 지적과 책망은 결국 유익을 줄 것이다. 책망을 들은 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고 고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6:23은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라고 말하였고,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라고 했다. 또 옛날부터 참 선지자는 책망의 설교를 하였다. 예레미야 28:8-9,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행치 않고 불경건과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우매자의 노래는 듣기는 좋으며 마음을 즐겁게 할지 모르나 유익이 없다. 그것은 전도서 2:2에서 전도자가 웃음을 논하여 미친 것이라고 표현하고 희락을 논하여 저가 무엇을 하는가고 한 것에 딱 맞다. 아모스 6:5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유다 백성이 비파에 맞춰 헛된 노래를 지절거렸다고 증거 하며 책망하였다.

사람의 참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 안에서만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은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풍성한 평안과 행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유행가 같은 우매자의 노래를 좋아하지 말자. 우리는 오히려 지혜로운 종들과 동료들과 이웃들의 책망과 권면을 좋아하자.

[6-7절]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 . . .

본문은, “[이는]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매자의 노래소리보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더 나은 이유를 보인다.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는 일시적으로는 요란하지만 곧 그친다.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요란스러워도 무가치하고 허무하다.

본문은 또,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탐학’이라는 원어(오쉐크)는 ‘압제, 토색[강제로 빼앗음], 토색으로 얻은 이익’을 뜻한다(BDB). 이것은 위협하여 강압적으로 빼앗는 이익을 가리킨다. 이것은 일종의 탐심이다. 성경은 탐심을 정죄하며 경계한다. 디모데전서 6:9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라고 말한다.

롯의 아내는 재산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다(창 19:26). 아간은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 또 50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탐하다가 그 가족과 함께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수 7장). 게하시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탐하다가 나병에 걸렸다(왕하 5장).

또 뇌물은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는 악한 것이다. 출애굽기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신명기 16:19,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우리는 의롭게 번 적은 소득이 복됨을 알아야 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매자의 기쁨을 버리고, 또 토색과 탐심, 또는 뇌물을 멀리하며, 불의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정직하게 번 소득으로 살아가자.

[8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본문은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큰 일, 좋은 일이라도, 일의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일 뿐, 그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일이 잘 안 되어서 오히려 해가 되거나 수치가 될 수도 있다. 일의 끝은 일이 성취되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잘 계획하고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잘 진행하고 치명적 실수를 막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잘 이기고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잘 성취하려면 인내가 필요하고 또 인내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많은 노력과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낙심치 않고 오래 참은 자들이다. 농부도 밭 갈고 씨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김매고 병충해 막고 이렇게 참고 일해야 추수하게 될 것이다. 직장인도 겸손히 참고 일을 배우고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커서 취직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삶 전체가 그러하다. 겸손과 인내는 인생의 성공적의 삶의 필수적인 덕이다.

신앙생활도 비슷하다. 주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성공적인 신앙인을 묘사하시기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하셨다(눅 8:15). 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라고 교훈하였다(약 5:7-8). 믿음은 인내를 수반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하자.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겸손과 인내로 행하면 잘 될 것이다. 신앙생활도 이치가 비슷하다. 우리는 겸손과 인내로 주를 섬기자.

[9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본문은,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라고 말한다. ‘마음’이라는 원어는 ‘영’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영의 활동이다. 우리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한 노가 있다. 불의를 보고 노하는 의분은 정당성이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가 있다(나 1:6). 예수께서 채찍으로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신 의분도 있다(요 2:15). 핍박하는 악인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호소한 시편의 글들도 이런 의미에서 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지나치고 잘못되기 쉽다. 그러므로 잠언은 미련한 자가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고(잠 12:16) 속히 노하며(잠 14:17) 그 노를 다 드러낸다(잠 29:11)고 말한다. 또 야고보서 1:20은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노하기를 더디 하라고 교훈한다. 그것은 인내의 한 면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는 것이다.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며(잠 14:29) 슬기로운 자라고 말하고(잠 19:11), 또 그런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말한다(잠 16:32). 또 주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마 5:44).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한다고 말했고(고전 13:4-5),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라고 교훈하였고, 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라고 하였다(엡 4:26, 31-32).

우리는 쉽게, 급히 노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우매자의 행위임을 명심하자.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남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자.

[10절]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본문은,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라고 말한다.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비교가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도 단편적인 이야기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역사에는 항상 이면적 이야기가 있음을 안다.

우리는 옛날이 오늘보다 나았다는 불평 어린 평가를 버리자. 실상, 옛날에도 어려운 일들은 있었을 것이고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현실을 겸손히 긍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현재 어떤 부족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생각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라면 우리는 즉시 회개하며 그것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지만, 만일 그것이 단순히 하나님이 주신 훈련 과정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참고 견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과 돌보심을 구해야 할 것이며, 또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건하고 의롭고 성결하게 살면서 미래의 평안을 기대하며 참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이 많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의 징책하심보다 크시다. 사사기는 111년의 징계의 햇수와 296년의 평안의 햇수를 증거 한다. 시편 30:5는,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예비하셨고(여호와 이레)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셨고(만나와 메추라기) 우리를 인도하셨고(불기둥과 구름기둥) 이곳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에벤에셀).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현실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간구하자.

[11-12절]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 . . .

본문은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라고 말한다. ‘햇빛을 보는 자’는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부모로부터 받는 유업과 유산은 물질적 유여함을 주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지혜가 이와 같이 아름답고 유익하고 좋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은 “[이는]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라고 말한다. 본문은 지혜와 돈이 다 보호하는 것이 되지만, 지혜가 돈보다 더 낫다고 말한다.

돈이 있으면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고 편안한 집에서 살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좋은 의사와 약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 돈이 있으면 자녀도 좋은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 이처럼 돈은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자녀를 보호하는 점이 있다.

이와 같이, 지혜도 우리를 보호한다. 지혜는 잘못된 빚보증을 하지 않게 함으로 재산을 보호한다. 지혜는 우리를 게으르지 않게 함으로 가난으로부터 보호한다. 지혜는 교만하여 서로 다투지 않게 함으로 인간관계를 보호해준다. 무엇보다, 지혜는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해주며 우리의 자녀도 보호해준다.

본문은 특히 지혜가 우리의 생명을 주고 그것을 보존한다고 말한다. 지혜는 영생의 길이다. 지혜를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죄를 버리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한다. 잠언 3:13-18은, 지혜가 정금보다 진주보다 귀하며 그 오른편에 장수가, 그 왼편에 부귀가 있고 그 길은 즐거움과 평강의 길이며 마침내 생명나무의 열매 곧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혜가 부모의 유산보다 더 귀함을 깨닫고 그것을 사모하며 소유하자.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악을 버리며 계명에 순종하자.

[13-14절]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 . .

본문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섭리자이시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좋고 나쁜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곧게 할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5:7에서,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욥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욥기 1:2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것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잠 3:6).

본문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한다. 사람은 내일의 일을, 아니 다음 순간의 일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실을 좋은 날과 힘든 날,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뒤섞어 두셔서 장래 일을 짐작치 못하게 하셨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약 4:14).

본문은 특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형통하고 좋은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그러나 곤고한 날, 즉 어려운 일이 있는 날에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부족이 없는지, 죄가 없는지 자신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시편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신을 반성할 기회를 삼고 회개하고 말씀을 순종케 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인정하자. 특히 곤고한 날, 어려운 일이 있는 날에는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생각하자.

[15-18절]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 . . .

본문은,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長壽)하는 악인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의인이지만 아벨처럼 다른 사람의 미움과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고, 악인이지만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교묘히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서도 내버려 두심으로 장수(長壽)하는 자도 있다.

본문은 그러므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게 자신의 의를 나타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사람 앞에 드러내는 의는 외식적, 율법주의적, 바리새인적 의가 되기 쉽다. 또 그런 사람은 자신을 크게 여기고 남을 정죄하기 쉽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의 반감을 더 쉽게 살 것이다.

본문은 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적당한 악인이 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성을 가진 죄인이지만, 드러난 악인은 사회적 제재를 당하고 감금을 당하고 벌을 받고 심한 경우는 사형도 당한다. 그런 악인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본문은 또한,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라고 말한다. 너무 드러나게 의를 행하고 의인인 척하지도 말고, 또 너무 드러나게 악을 행해서도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이런 잘못들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어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의를 행해도 은밀히 하고 드러날 경우도 자랑치 말고 높은 마음으로 남을 정죄하지 말고, 또 물론 드러나게 악을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

[19-20절]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본문은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본문은 지혜의 가치와 지혜의 유익을 증거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잠언이 말한 그 지혜인 줄 안다. 그것은 세상적, 육신적 지혜가 아니고, 신적, 천적, 영적 지혜이다.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고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즉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함으로 증진되는 것이다.

지혜는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한다. 성읍의 유사 즉 성읍의 관원은 세상에서 지혜와 권세가 있는 자이다. 그는 보통 일반 사람들보다 기억력, 판단력, 언변, 용기가 더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은 자는 성읍의 열 유사보다 더 지혜롭고 더 능력이 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의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원수보다, 스승보다, 노인보다 지혜롭게 되었다고 체험적 고백을 하였다(97-100절). 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 지혜가 바벨론의 박사들보다 열 배나 더 나았다(단 1:20).

본문은 “[왜냐하면]( 키 י󰗑)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없음이니라]”고 말한다. 본문은 참 지혜가 열 유사보다 나은 이유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왕들도, 관원들도 다 죄인이며 부족한 인생들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세상적으로 유능하고 권세 있는 자라도, 자신의 무지와 편견과 아집을 이길 수 없고, 세상의 악한 풍조를 이길 수 없고, 마귀의 시험이나 죄의 유혹을 피하거나 이길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세상적 지혜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범죄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지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지혜를 귀하게 여기자.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만 사모하고 순종하자.

[21-22절]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 . . .

본문은,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좋은 친구의 의견과 충고를 들을 필요가 있다. 나라의 통치자는 백성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자는 실수하기 쉽고 독선적이고 편협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모든 말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말들에는 항상 잘못된 말, 부정적인 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들의 말만 들으면 무엇을 확신하고 용기를 가질 수 없고 낙심하여 아무 일도 못하기 쉽다. 사람들의 말만 듣는 자는 어린이 동화의 이야기처럼 결국 당나귀를 지고 가는 자와 같이 될 것이다.

느헤미야 6장에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위해 유대 땅에 총독으로 왔을 때, 산발랏, 도비야, 게셈 등은 그를 대적하였고 그를 해치려 하였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하고 왕이 되려 한다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것은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고 그와 그의 동료들의 손을 피곤케 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었다.

오늘날도 사탄은 하나님의 종들을 낙심케 하여 하나님의 바른 일을 못하게 하려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사역에서 매 맞음, 갇힘, 자지 못함, 먹지 못함 등 많은 고난을 받았고 또 영광도 얻고 욕도 들었으며 악한 이름도 얻었고 아름다운 이름도 얻었으나(고후 6:5-8) 낙심치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하여 그 뜻을 행하는 것이다(엡 5:15-17).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의 의견을 조금 들을 필요는 있으나 그 모든 말에 마음을 쓸 것은 없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믿고 행하자.

[23-24절]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 . .

본문은,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모든 일들 곧 하나님의 섭리의 일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솔로몬은 인간적 지혜로 세상의 모든 일을 이해하려고 힘썼고 인간적으로 지혜자가 되기를 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참 지혜에 이르지 못했고 참 지혜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라는 말에 ‘무릇 된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 이유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 이치와 그 이유가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하고 파악하기에 너무 멀고 너무 깊다고 고백한다. 사람으로서 그것을 능히 통달할 자가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본문은 사람의 지혜의 한계성 곧 인간의 무지함을 증거 한다. 사람이 무엇을 다 아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며 또 하나의 무지(無知) 일뿐이다. 사람이 우주만물에 대해 가진 지식은 지극히 미미하고 지극히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 우주는 사람이 파악하기에는 너무 광대하고 광활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파악할 수 없이 높고 깊으시다. 여기에 인간의 겸손과 참 경건의 시작이 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천년은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다고 고백하였다(시 90:40. 이사야는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라고 증거 하였다(사 40:15, 17).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하시는 모든 일들에 대해 인간의 무지함을 깨닫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겸손히 엎드리며 그를 섬기자.

[25-26절]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 . . .

본문은,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마음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다”라고 말한다. 후반부의 원문은 “어리석은 것 곧 미련한 것과 정신없는 것(혹은 미친 것)의 악”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어리석고 악한 일들, 정신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솔로몬은 그 모든 일들을 살피고 연구하고자 하였다.

본문은 또,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고 말한다. 남자가 아내를 잘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어진 아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그 값은 진주보다 귀하다(잠 19:14; 31:10). 그러나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줄 같은 여인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죄악과 사망으로 이끈다.

솔로몬은 그런 여자를 “사망보다 독한 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의 실패의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가 나이 늙었을 때 왕비들은 그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다(왕상 11:4). 그는 잠언에서 다투는 여인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고 말하였고(19:13; 27:15) 그런 여자와 큰 집에 살기보다 광야나 지붕 모퉁이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했다(21:9, 19). 그런 여자의 남편은 마음에 큰 고통을 당하고 결국 불행에 이른다.

본문은 또,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라는 원어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KJV, NASB, NIV)’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그런 여인을 피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그에게 잡혀 결국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올무 같은 자가 되지 말고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자가 되어 마귀의 시험을 피하자.

[27-29절]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 . .

본문은,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참으로 깨닫고 인생에 대해 깨닫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질 수 있는 지혜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1:21).

본문은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한다. 솔로몬은 천 명의 남자들 중에 겨우 한 명을 찾았고 천 명의 여자들 중에서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여자들은 아마 그가 거닐었던 700명의 왕비와 300명의 첩들을 가리켰는지도 모른다. 실상, 온 세상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참 지혜자이시다. 그의 모친 마리아까지도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비천한 죄인에 불과하다.

본문은 또,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원문–‘그들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꾀’라는 원어(퀴쉬보노스)는 ‘고안들, 계획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본래 정직하게 만드셨다. 사람은 본래 선도 악도 아닌 중성 상태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고 선한 상태로 지음을 받았다. 그것이 의와 거룩의 하나님 형상이다(엡 4:22-24).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많은 꾀를 내었고, 많은 악한 고안들과 계획들을 내었다.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8:21,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람은 본래의 거룩하고 선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며 성화이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죄성을 이겨야 한다.

[사무엘상 2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삼상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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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 성경주석

<전도서 7장 흐름정리>

본장은 지혜의 유익과 가치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원래 사람은 정직한 존재로 지음 받았으나 스스로 간사한 꾀를 많이 낸다(29절). 그러므로 온갖 탐욕과 죄악 가운데서 일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나은 이유는 인생의 비극을 통해 진지하게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2절).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슬픈 일도 만나고 기쁜 일도 만난다. 하나님이 이 두 가지 일들을 번갈아 겪게 하시는 것은 이러한 갖가지 일들을 통해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기 위함이다(14절). 물론 이 지혜는 얄팍한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얻게 되는 신령한 지혜를 가리킨다.

<전도서 7장 줄거리>

1. 헛된 삶을 값진 삶으로 바꾸어 놓는 아름다운 이름과

2. 금욕과

8. 인내와

11. 지혜를 갖는 것임.

23. 지혜자가 되는 어려움.

<전도서 7장 개역한글>

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11. 지혜는 유업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24.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전도서 7장 성경주석>

7:1 아름다운 이름.

참조 잠 22:1. 품성에 근거를 둔 좋은 평판은 그 값을 측량할 수 없는 재산이다.

“내게서 내 아름다운 이름을 훔쳐 간 사람은 자신을 부하게 못할 것을 내게서 강탈해 가고 진짜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수여될 개인적인 상들 중 하나는 세상을 이긴 모든 이에게 약속된 “새 이름”이다(계 2:17).

7:1 보배로운 기름.

“보배로운”으로 번역된 단어는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할 때의 “아름다 운”과 같은 단어이다. “기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창 28:18; 35:14; 출 25:6; 29:2에서는 “기름”으로, 잠 27:9, 16; 전 9:8; 10:1에서는 “향기름”으로 번역되었다(참조 아 1:3). 좋은 비누를 구할 수 없었던 동방에서 향기름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참조 룻 3:3; 삼하 12:20). 히브리어에서는 이름이라는 단어 (s∨em)과 “기름” 혹은 “향기름”이라는 단어 셰멘(s∨emen)의 발음이 비슷하다.

7:1 죽는 날.

훌륭한 삶을 살아서 좋은 평판을 얻은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으므로, 첫 구절에 대한 두 번째 구절의 평행구적 성격이 분명해진다. 출생 시에 그의 삶이 앞에 놓여 있으나 그는 함정과 실망과 슬픔과 좌절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배가 항해를 시작하여 항구를 떠날 때는 항해 중에 만날지도 모를 위험들에 관하여는 거의 아무런 통고를 받지 않고 출발한다. 대양을 가로질러 안전한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들어올 때 배는 기쁨으로 영접을 받는다.

7:1 출생하는.

문자적으로 “그의 출생의 날.” 사람의 출생은 70평생(시 90:9, 10)의 짧은 삶의 시작이지만, 죽음은 새 땅에서 시작될 영생(눅 20:36; 고전 15:51~55)과 안식(계 14:13)과 최고의 만족(계 7:16)과 현세의 고통(고후 4:17)과는 전혀 다른 영원한 영광의 서곡일 수 있다.

7:2 초상.

유대인들의 애도 기간은 7일이었고(창 50:10), 그때에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울음꾼들이 참예했다(막 5:38; 요 11:19, 31).

7:2 잔치.

혼인잔치도 7일간 계속되었고(창 29:27), 애도의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였다(롬 15:12; 참조 갈 6:2).

7:2 모든 사람.

문자적으로 “각 사람.” 사람이 자신의 창조주를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든다. 일생을 통하여 그는 창조주를 만나는 그 엄숙한 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7:3 슬픔.

경박함은 품성을 강하게 하지 못한다. 헬라에는 이를 확인하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슬픔을 당하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참조 히 2:10; 12:1~11).

7:3 마음.

슬픔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변장된 축복일 경우가 흔히 있다. 고난의 풀무불은 동기를 깨끗하게 하고, 타인에 대하여 동정적이게 하는 포용력을 만든다.

7:4 지혜자.

지혜자는 삶의 진지한 문제들을 돌아보고 거기서 도덕적, 영적 교훈을 깨닫는 법을 배운다. 반면에 우매자들은 삶의 좀 더 경박한 면에 끌려 오락 속에서 만족감을 구하고, 내세에 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7:5 책망.

5절은 4절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여호와의 “책망”은 그 백성의 보호벽이다.

7:5 우매자의 노래.

오락 장소에서 하는 상스럽고 아무런 교훈이 되지 않는 노래들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지만(참조 암 6:5), 우매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종의 권고에 관한 언급이기도 하다.

7:6 웃음소리.

우매한 자의 웃음은 헤프고 시끄럽고 무의미하다(참조 욥 20:5).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우매자의 박수갈채에 대한 언급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 배후에 아무 책임도 없기 때문에 하등의 가치가 없다.

7:6 타는 소리.

동방에서는 흔히 좋은 연료감이 부족하였으므로 가랑잎이나 나뭇가지를 철저히 주워 모아서 음식을 요리하거나 집안을 훈훈하게 하는 데 사용하였다. 가시나무나 나뭇가지 혹은 마른 곡식 그루터기는 빨리 타면서 소리를 내지만 음식을 요리하고 방을 데울 만한 꾸준한 열은 내지 못한다(참조 시 58:9; 118:12; 사 9:18).

7:7 탐학.

(「제임스왕역」에는 “oppression”[압제]로 되어 있음-역자 주).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겔 22:12에서는 “토색”으로 번역되었다. 그것은 축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속여 그 재물을 빼앗을 기회와 능력을 잔인하게 이용하는 것을 언급한다.

7:7 우매하게.

이 말은 “타락한”이란 뜻이다. 만약 어떤 현인이 압제와 탐학의 죄에 빠지면 그는 타락하게 될 것이고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을 것이다.

7:7 뇌물.

(「제임스왕역」에는 “gift”[선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말은 “뇌물”이라는 뜻이다. 뇌물을 받음으로 사람의 판단력은 흐려지고 무력해진다(참조 출 23:8; 신 16:19; 잠 15:27). “마음”(heart, 「개역한글판」에는 “명철”로 되어 있음-역자 주)은 이해력의 상징이며, 사람의 도덕성을 상징하기도 한다(호 4:11).

7:8 일.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말” 혹은 “의견”이라는 뜻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말 혹은 의견이 끼치게 될지도 모를 최종적인 영향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7:8 참는 마음.

“참는”으로 번역된 단어의 어근은 “오래 계속되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참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문자적으로 “마음이 오래 계속되는” 사람이다. 대조적인 표현은 “마음이 조급한”(잠 14:29)이다. 비슷한 용례가 신약에 나타나는데, 히 6:15에는 “오래 참아”로, 약 5:8에는 “너희도 길이 참고”로 되어 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오래 견디는 마음”이다.

7:8 교만한 마음.

문자적으로 “높은 마음” 혹은 “높여진 마음”이다(참조 시 138:6; 사 5:15; 10:33; 렘 13:1~15).

7:9 급한.

곧 “평온을 잃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한.” 사람의 감정은 다스려서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참조 약 1:19).

7:9 노.

참조 엡 4:26, 31; 딛 1:7.

7:9 머무름이니라.

노한 마음에서 나온 말과 행동은 종종 큰 상처를 입히고 잊어버리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그것들로 해를 입힌 자는 흔히 오래 기억된다(참조 잠 14:33).

7:10 옛날.

연단받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현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시련이 많다고 생각하므로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워진다. 노인들도 쉽게 그런 태도를 갖게 되고,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들이나 자신의 결점들까지 잊어버리는 것 같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애굽에서의 이전 생활을 돌아보았다. 욥도 비슷한 약점을 드러냈다(욥 29:2). 스 3:12; 학 2:3에 묘사된 노인들의 태도와 또 시편의 시인의 태도(시 77:5~9)를 비교하라.

7:11 지혜는…아름답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지혜는 가장 좋은 유산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유산은 지혜롭게 가장 잘 이용하면 이중의 복이라고 본다.

7:12 보호하는 것.

즉 “보호.” 이 절의 첫 부분은 문자적으로 “그늘 속에 지혜가 있고 그늘 속에 은이 있다”로 해석된다. 지혜와 돈은 비록 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둘 다 피난처와 도움의 길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부자이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중의 피난처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늘”은 위험을 피하는 피난처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일반적인 비유이다(시 17:8; 91:1; 사 32:2). 재물도 때로는 생명을 구할 수 있고(잠 13:8), 지혜도 성읍을 건져낼 수 있다(전 9:15). 그러나 재물로는 영원한 구원을 살 수 없고(시 49:6, 7), 순수한 마음의 평화도 줄 수 없다(눅 12:15). 참 지혜는 사람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다(시 111:10; 참조 욥 28:28). 약 3:17은 참 지혜에 관해서 감동적인 말로 알려 준다.

7:12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더욱 아름다움”으로 번역된 말은 전도서에서 12회 사용되었다. 돈에 대한 지식의 우월성과 관련해서 하는 말이므로 여기서는 “장점”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7:12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제임스왕역」에는 “giveth life”[생명을 줌이니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살게 해 주다”가 더 낫다. 부요(富饒)함은 그 부한 사람이 죽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지혜는 위기의 때에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지혜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과도한 식욕을 막아 줄 수 있지만, 부유함은 사람을 지나친 식욕에 탐닉하게 하여 질병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한 육체적 생명 이상의 것이 암시되어 있다. 최상의 의미에서 지혜는 사람을 참된 경건을 실천하도록 인도한다(잠 3:13~18; 8:25). 영적인 영역에서는 불멸로 인도하는 일, 곧 생명을 올바른 상태로 보존하는 일이 온전히 성취되었다(요 5:21; 6:63).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생애를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이 섭리하신 길(참조 욥 9:12; 11:10; 12:14).

7:13 보라.

(「제임스왕역」에는 “consider”[생각하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쳐다보라.”

7:13 굽게 하신 것.

아마도 삶의 다양한 경험들과 그 고통과 역경과 시련들과 아픔들에 관한 언급일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도 한나(삼상 1:5, 6)나 바울(고후 12:7)처럼 져야 할 십자가가 있었다(창 15:2, 3).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전진하며(롬 11:36; 고후 4:18; 히 2:10),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된다(욥 9:12; 11:10; 12:14).

7:14 기뻐하고.

문자적으로 “행복 가운데 있고.”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에스더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의 경험(에 8:16, 17)과 비교하라.

7:14 곤고한 날에는.

문자적으로 “불행한 날에는…알라.” 만약 일이 우리의 원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불평하거나 짜증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낙망하는 것은 죄이다.

7:14 …하게 하사.

문자적으로 “…하게 했다.” 하나님은 일의 균형을 알맞게 잡아 주신다. 번영이 있으면 그 다음엔 역경이 뒤따른다. 사람이 걱정 근심이 전혀 없이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참조 욥 1:21; 2:10). 사람은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잠 4:26). 참된 행복은 물질적 소유의 다과(多寡)에 있지 않다(눅 12:15; 참조 마 6:33, 34).

7:14 그 장래 일을.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고, 닥칠지도 모를 상황들을 전혀 통제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사람의 특권인 것은 그분의 손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롬 8:28; 참조 창 42:36).

7:15 내 헛된 날.

즉 나의 날아가고 있는 날들(참조 1:2).

7:15 모든 일.

문자적으로 “전체.”

7:15 멸망하는.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의인을 축복하심으로 장수케 한다고 믿었다(출 20:12; 신 4:40; 잠 3:1, 2, 13~16; 4:10; 참조 시 91:16). 신약은 지상에 있는 의인의 생명에 관하여 또 다른 측면을 제시한다(마 5:10~12; 요 17:15; 딤후 3:12).

7:15 장수하는.

욥도 같은 불평을 한다(욥 12:6; 21:7; 참조 시 37:7). 의인 아벨은 젊어서 죽었지만, 악인 가인은 나이 많도록 살았다. 외견상 사물의 당연한 질서가 전도된 듯한 이 사실은 역사를 통하여 각 시대의 의인들의 마음을 당혹케 하였다.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악인들이 초년에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시 37:9, 10; 55:23; 58:3~9).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마 16:27; 참조 계 20:12~15).

7:16 지나치게 의인.

밖으로 드러난 몸가짐과 말씨만을 보고 평가하는 율법주의를 경계하는 말이다. 참 신앙은 거룩한 하나님(레 19:2; 엡 3:14)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엡 3:17~19)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7:16 지나치게 지혜자.

솔로몬은 지금까지 지혜의 가치에 관하여 말해 왔다. 이제는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게 하는 태도에 관하여 경고한다. 사도 바울도 같은 권고를 한다(롬 9:20~23).

7:16 패망케 하겠느냐.

히브리어 동사형이 재귀동사이므로 그런 행동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비유 가운데 바리새인은 독선과 인간적인 지혜로 스스로를 패망케 한 자의 본보기이다(눅 18:9~14).

7:17 지나치게 악인.

모든 금지 조항을 벗어 던지지 말라. 그렇게 하면 결국 성령께서 더 이상 진정한 회개로 이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일을 삼가라(시 10:11; 참조 말 1:2, 6; 2:17; 3:8, 13).

7:17 우매자.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이 그가 하는 일을 보지 않으신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자는 어떤 행동에 너무도 굳게 사로잡히기 때문에 영적 문맹(文盲)이 되어 결국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시 14:1).

7:17 기한 전에.

악이 지나치면 홍수 전 시대 사람들(욥 22:16)과 그 후시대의 악인들(시 55:23; 잠 10:27)처럼 초년에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7:18 잡으며.

지나친 행동이나 경솔한 행동을 피하라는 권고이다. 삶에서 중용은 멋진 규칙이다. 극단은 일반적으로 위험하다.

7:18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참 목적을 성취시키고 인생을 끝까지 잘 경영해 나가는 능력은 여호와를 경외할 때에만 가질 수 있다(느 5:9; 욥 28:28; 시 111:10; 사 33:6).

7:19 지혜가…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마음을 채움으로써 승리의 삶을 쟁취한다. 여기서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라고 번역된 것과 같은 히브리어 동사가 “이기다” 혹은 “이겼다”로도 나타난다(삿 3:10; 6:2; 시 9:19; 참조 잠 24:5).

7:19 성읍 가운데.

옛날에 마을의 모든 문제를 의논하고 판결한 마을 장로들의 회의와 비교되고 있다. 힌두교 마을에서는 같은 형태의 회의가 존속되고 있고, 그 회의체를 일컬어 판취(panch) 즉 “다섯”이라 하는데, 이는 마을 공동체의 규율을 강화하기 위하여 선택된 다섯 장로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7:19 열 유사.

문자적으로 “열 사람의 치리자.”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창 42:6에서는 “총리”로, 전 10:5에서는 “주권자”로, 단 5:29에서는 아람어 “치리자”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7:20 죄를 범치 아니하는.

참조 왕상 8:46; 잠 20:9; 롬 3:23; 요일 1:8.

7:20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사람에 관해서 말한다면 의로운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가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통탄할 만한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는 실수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다(참조 요일 3:6; 5:4).

7:21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7:21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

정(情)에서 노여움이 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의견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전 4:3, 4).

7:22 저주한.

문자적으로 “경히 여기다”, “하찮게 여기다” 또한 “멸시하다”, “명예를 손상시키다.” 여기서는 “비방하다”, “멸시하는 말을 하다”라는 뜻이다.

7:23 나를 멀리하였도다.

참조 욥 28:12~28.

7:24 깊고 깊도다.

참조 욥 11:7~9; 롬 11:33.

7:25 내가…알고자 하였더니.

문자적으로 “나 곧 나의 마음까지도 알고자 하여 돌아보았더니.” 지혜를 찾아 구하는 그의 진지함을 나타내는 강세적 표현이다.

7:25 명철.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27절에서 “이유”로, 9:10에서는 “계책”으로 나타난다. 대하 26:15에서는 이 단어의 여성형이 “기계”로, 전 7:29에는 “꾀”로 번역되었다.

7:26 포승.

“포승”으로 번역된 단어가 다른 곳에서는 들릴라가 삼손을 묶기 위하여 사용한 “끈”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삿 16:8). “올무”와 “그물”과 “포승”은 아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여자를 묘사한다(참조 잠 5:22; 22:14).

7:26 여인.

참조 잠 7:5~23.

7:26 하나님을 기뻐하는.

문자적으로 “하나님 앞에 선한.”

7:27 낱낱이.

문자적으로 “하나하나.” 참조 렘 5:1~5.

7:28 일천.

대개 어림수로 사용되었다(참조 출 20:6; 34:7; 시 105:8). 솔로몬이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온전한 남자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7:28 여인.

온전한 여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을 솔로몬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남자들 중에서보다 여인들 중에서 찾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천 명의 처첩을 거느린 솔로몬의 경험, 그들 중 다수가 이방 여인들이었으며, 그들은 분명히 모두 서로 질투하며 다투었을 것이며, 대체로 그런 가정 사정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솔로몬에게 끝없는 어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서 그는 복잡한 결혼을 하게 된 자기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여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참조 창 3:12).

7:29 정직하게.

“곧다”, “바르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도덕적인 정직을 일컫는 말이다.

7:29 꾀.

같은 단어가 대하 26:15에서는 “기계”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전쟁 때 돌을 발사하는 기계 혹은 장치이다. 그 동사의 어근은 “생각하다”, “고안하다”, “발명하다”를 의미한다(참조 암 6:5). 인간은 도덕적으로 정직한 원래의 상태로부터 타락하였고, 그 자체가 반드시 악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사람을 부도덕으로 몰고 가는 그런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들을 도모하는 데 익숙해졌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스크랩] 전도서 7장 주석

전도서 7장 주석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 나으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

름’이란 어떤 살마에 대한 단순한 외적인 회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대변

하는 것으로도 쓰였던 바, ‘아름다운 이름’이란 그 사람에 대한 훌륭한 ‘명성’을 가리

킨다(Luther, M.A.Eaton, Lange, G.A.Barton, T.H. Leale).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이

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대단히 명예로운 일로 간주했다(8:10;욥 18:17;잠

10:7). 그리고 ‘기름’이란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지경긔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하는

식물성 기름을 말하는데, 이는 그 용도 면에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1) 식용(출29:2,23;레 2:1,2,4-7), (2) 등화용(출 25:6;27:20), (3) 의료용(사

1:6), (4) 화장품용(삼하 14:2;시 23:5), (5) 향유용(눅 23:56) 등이다. 특히 이는

팔레스틴 지역과 같이 건조한 기후 여건 속에서는 그 몸에 기름을 발라 향기를 내는

데 유용하게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룻 3:3;삼하 12:20;시 45:7,8;암 6:6 참조). 또한

본절 후반절의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란 전반절의 의미와 연관되는 듯이

보인다. 즉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좋은 명성을 쌓으며 살다가 죽는 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가운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살지도 모르는 삶의 시작이 날보다 낫다는 것이

다(D.R. Glenn). 그러나 전도자는 삶보다 죽음을 더 애찬하는 염세 주의자로서 말한

것은 아니다. 왠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삶의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3:13;5:!8),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

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2:13). 단지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명성

을 얻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 유심(留心)하리로다 – ‘초상

집’이란 문자적으로는 ‘애곡하는 집'(the house of mourning, KJV, RSV)이다. 그리고

‘잔치집’이란 술을 마시며 희락을 즐기는 곳으로서 암시되어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 근

거하여 본절은 헛되고 허무하게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 겁소다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

고 숙연하게 생각케 함으로 유익하고 보람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이다

(4절)

=====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이 얼굴에 근신함으로 … 됨이니라 – 전후 문맥상 역시 앞절

(2절)과 연관도니가 내용으로 보인다. 여기서 ‘슬픔’이란 단순히 고난이나 손해 등으

로 일낳 슬픔이라기보다는 2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죽음 또는 그로 인한 애곡을 보고

서 느껴지는 숙연한 슬픔을 뜻하며, ‘웃음’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보다는 육신적

희락을 즐기는 데서 얻어지는 쾌락적, 일시적 웃음을 뜻한다(2:2-10). 따라서 본절은

인생에서 보게 되는 숙연한 슬픔은 육체적 쾌락에서 얻어지는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상고케하여 더욱 진지하고 보람된 생(生)을 결단케 하기 때문에

좋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 있느니라 – 1-3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구

절로서, 지혜자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늘 진지하게 상고하는 반면에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어 단순히 순간 순간 육체적 희락만을 즐기고 웃음을 추구한다는 뜻

이다.

=====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 나으니라 – 본절도 역시 앞절(4절)처럼 그

의미에 있어서는 계속 전문(前文)들과 연관된다 하겠다. 책망은 들을 당시에는 감정

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종국적으로는 잘못되고 우매한 길을 벗어나 지혜로운

길로 접어들게 한다. 반면 우매자의 노래 소리는 들을 때에는 기쁜 것 같고 육감적으

로 상쾌한 것 같으나 결국에는 일시적, 육체적 희락 속에선 헛되고 허무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7: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 이것도 헛되니라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나

무가 희귀하여 가시나무나 풀, 보리, 그루터기 등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시

58:9;120:4;마 6:30 참조), 특히 가시나무는 쉽고 빠르게 그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

서 타지만 이내 사그라져 꺼지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이 소리는 헛되고 요란할 뿐

실속이 없는 소리이다. 이것은 우매자의 웃음 소리가 겉으로만 요란할 뿐 실속이 없

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7:7

탐학(貪虐)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 망케하느니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

두에는 연결사 ‘키'( )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각양 각색이다. (1)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다(NASB, Hengstenberg, Hitzig). (2) 본절이 앞절들과 하

등의 유사한 연관성이 없으므로 이를 ‘그러나’와 같은 부사로 본다(Ewald, Elster).

(3) 강조걱인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욥 6:21;사5:7, Lange). 영역본 KJV, RSV 등도

이를 ‘확실히'(surely)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4)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기

는 하나 앞절과 본절 사이에는 또 다른 구절이 빠져 있다(Delitzsch). 그러나 우리는

문맥상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되 특히 5절 내용과 연결됨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즉 본적의 원인 때문에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5절)

낫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탐학’의 히브리어 ‘오쉐크'( )는 ‘압제’

(opperssion, KVJ, RSV, NASB), ‘강탈’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후반절은 출 23:8;신

16:19;잠 15:27과 유사하다. 성경에서 ‘뇌물’을 의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 또는 명철

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뇌물이 그 하나님의 공의성을 훼소니키고 공

정한 판단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 나으니 – 본절의 상,하반절은 내용상 서

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다(Lange).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그 과정을 인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경우 그 끝은 처음보다 낫다는

뜻 혹은 어떤 일을 끝까지 마감하는것이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서 중도에 그만 두는 것

보다 낫다는 뜻이다(Finishing is better than starting, LB). 이는 곧 “나중까지 견

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케 한다. 한편 후반절의

‘마음’에 해당하는 ‘루아흐'( )는 ‘영'(spirit)을 뜻하며 ‘참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영 안에서 참음'(the patient in spirit, KJV,

RSV ; partience of spirit, NASB)과 ‘영 안에 거만함'(the proud in spirit, KJV,

RSV ; haughtiness of spirit, NASB)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 머무름이니라 – 본절도 문맥상 앞절(8절)과

연관되는 것으로 본다(G.A.Barton). 전반절에 대해서 대부분 영역본들은 ‘너의 영 안

에서 급하게 노를 발하지 말라'(Be not hasty in thy spirit to be angry, KJV ; Do

not ve quickly provoked heart to be angry, NASB)로 번역하고 있다. 성급히 화를

내는 것은 정의의 의분과는 달리 인격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으로서 결국 죄악을 낳고

만다(창 4:5;삼 삼 18:8).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스피드

시대에는 본절 말씀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다(욥 5:2;잠 12:16).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 지혜가 아니니라 – 주어진 현

실 감당해야 할 현 시대의 사명을 도외시하고 지나간 시절만 생각하는 나약하고 어리

석은 삶의 태도를 책망하는 말씀이다(Eaton). 한편 본절을 앞절 특히 8절의 내용과연

결시켜 해석해 볼 수 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때 그나중

이 처음보다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했던 옛날이 일의 결과를 낸 오늘

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내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는 뜻이라 하겠다.

=====7:11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 유익하도다 – 이는 지혜의 유익성과 보배로움을 언

급한 말인데, 여기서 ‘지혜’는 2:12-16에서 암시되어진 바와는 달리 하나님의 지혜,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신성한 지혜를 말하는 것 같다. 본절에서 ‘유업’이란 ‘나할라’

( )로서 가나안 땅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물려받는 ‘기업'(출 6:8) 또는 부

모로부터 물려받는 상속 재산을 의미하는데, ‘유업같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두 가

지로 나뉜다. (1) 이는 한글 개역 성경처럼 ‘유업과 같이'(like an inheritance,

NIV)를 의미한다(2:16;욥 9:26, Lange, Zockler). (2) 이는 ‘같이'( , 임)라는 말

이 ‘…과 함께'(with)라는 말로 번역되는 바, ‘유업과 함께'(with an ingeritance,

KJV, RSV, NASB)를 뜻한다(70인역, T.H. Leale, D.R. Glenn, G.A. Barton, Wycliffe).

(1)을 취할 경우,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나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처

럼 귀하다는 뜻이며, (2)의 경우 지혜는 그 자체로서도 귀하고 빛나나 유업 즉 재산과

함께 있을 때 그 재산을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바 더욱 빛나고 가치가 있게 된다

는 뜻이 된다. 이중 어느 쪽을 택해도 본절 이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7: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 보존함이니라 – 지혜의 유용성의 탁월함을 재

물과의 비교를 통해 묘파(描破)한 구절이다.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 )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으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본절에서 ‘보

호하는 것’에 해당하는 ‘첼'( )은 ‘그늘'(shadow)을 뜻하나 영역본들은 이와 연관

시켜 ‘보호'(protection, RSV, NASB), ‘방어'(a eefence, KJV)를 뜻하는 것이로 번역

했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잠 3:18,22;8:35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하겠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하나님을 겨외하고 신앙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멸망으 길로 가는 것을 막어주고 오히려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준

다는 것이다(잠 2:20).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 곧게 하겠느냐 – 이는 1:15;6:10의 말씀과 유사

하며 내용상 8,9절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

들을 작정, 주관하고 계시는 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성급하고 인내하지 못

하는 자세로 하나나가의 역사하시는 일에 대항하거나 거역하지 말고 순응해야 함을 암

시해 준다는 말이다.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본절은 내용상 앞절(13절)

과 연관되며 그 의미 역시 인간사에서 임의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닌정하라

는 말씀으로 보인다(D.R. Glenn). 여기서 ‘형통한’에 해당하는 ‘토브'( )는 ‘좋

은’, ‘선한’, ‘아름다운’의 뜻을 갖는다(2:1 참조). 그리고 ‘기뻐하고’도 문자적으로

는 역시 그 원형이 ‘토브’이다. 또한 ‘생각하라’의 히브리어 ‘라아'( )는 ‘보

다’, ‘관찰(주시)하다’, ‘생각(숙고)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

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인다. 혹자는 바로 뒷구절 즉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나(Lange), 이보다는 하나님이 곤고케 한신 목적, 이유 등

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뜨승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D.R. Glenn). g

한편 후반절의 ‘장래 일’이란 문자적으로는 ‘아하라 메우마'( )

인데 그것이 무어승마 의미하느냐에도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인다. (1) 사람이 죽은

후의 일을 의미한다(Delitzsch). (2) 사람의 장래 일 즉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일

을 의미한다(G.A.Barton, T.H. Leale, Lange).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2)를 뜻하는 것

으로 본다. 아무튼 이런 후반절의 의미는 인간의 연약함, 제한되미 마언급함으로 하

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순응해야 되미마 가르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7: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 있으니 – 이는 단순히 과도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중용(中庸)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다. 즉 여기서 전도자가 말하

는 것은 ‘지나친 의(義)’라기보다는 ‘무모한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인 것이

다. 전도자는 선만을 행하는 의인이란 이 세상에 없다고 갈파하고 있거니와(20절),

본절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려드는 자들에 대한 역설적 경고라 하겠다(Eaton,

Whybary). 한편 저자가 ‘내 헛된 날’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로서의 인

생이 허무하며 무상한 것임을 암시하며(6:12) 특히 이는 솔로몬 자신이 한떠 하나님을

떠났던 기간을 상기하며 말한 것일 수도 있다(왕상 9:24;11:1-13 참조).

=====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려 … 패망케 하겠느냐 –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의(義)를 추구하고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다(롬

3:20;7:1-25;10:3;갈 2:16;3:11,12).

=====7: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 죽으려느냐 – 이는 앞절(16절)과 대비되는 말씀으

로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노골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것을 금하는 내용

이다. 특히 본절에서 ‘지나치게’라는 말은 악을 무절제하게 행하지 말고 돌이킬 것을

권고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한편 본절에서 악인이나 우매자가 그들의 악행으로 파멸에

이르고만다는 것은 시 37:10;55:23;58:3-9;73:18;잠 10:27 등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

다.

=====7: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 것임이니라 – 지나친 자기 의(義)

의 추구나 의도적인 악행을 다시금 금하고 있다. 물론 본절이 적당한 수준에서 악을

행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는 인간의 육신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

위는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

은 전도자가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으로 말하고, 그것이 곧 지식과 지

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12:13;시 34:7,9;잠 1:7;9:10). 또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알고 경배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7: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 있게 하느니라 – ‘유사’에 해당하는 ‘솰리트'(

)는 ‘지배자’, ‘방백’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성읍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자,

외부 세력으로부터 성을비마 지키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본절의 ‘지혜’

는 6:*에서와는 달리, 특히 앞 18절과 연관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어 지는 지혜

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잠 9:10).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얻은 힘이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킨다. 한편 ‘열’이란 단순

히 숫자상의 ‘열’을 뜻한다기보다는 완전수로서 많은 수를 가리킨다 하겠다(욥 19:3).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 없느니라 – 원무에 의하면 본절 서두

에는 연결사 ‘키'( )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의 정황한 의미에 대해서는

(1)강조적인 말로서 ‘확실히'(Surely, RSV ; Indeed, NASB)로 보거나(M.A. Eaton,

Lange), (2)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서 ‘…때문에'(For, KJV)로 이해한다(D.R.Glenn).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을 (바튼(G.A. Barton)은 18절에 대한

이유로, 랑게(Lange)는 19절의 확증으로, 이튼(M.A. Eaton(dms 16-19절 내용을 다시

강조하는 표현으로 각각 봄) 시사하며 특히 지혜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리

고 본절은 솔로몬의 말한 바 왕상 8:46과 유사하며 바울의 말한 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롬 3:23).

=====7: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 죄악된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심각

성은(20절) 말의 실수와 비신실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약 3:2).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특히 아첨하는 말에 마음을 두는 것은 스스로 올무에

빠져드는 것과 다름없다.

=====7: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아느리라 – 이는 21절에 연장되는 말로서 모든 사

람이 죄인이며 따라서 그들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쓸모없음을,자신이

남을 저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 확증하는 내용이다. “마음”은 “양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도 볼수 있다.(G.A.Barton).그리고 이는 사람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가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리라”(롬 2:15)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7: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멀리하였도다.-“이 모든 것”이란 앞의 내용

들을 가리킨다.그리고 상반절은 전도자가 그의 지혜로 앞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으나

그 모든 내용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며 하반절도 상반절과

연관되어 전도자 자신이 지혜롭게 되어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지혜가

그에게서 멀리하였다는 고백이다.이와 같은 사실은, 한편으로는 인가적인 지혜로 는

이세상 모든 것을 헤아려 알 수 없음을 보여주며, 또 한편으로는 참다운 지혜는 인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얻

어지는)것임을 암시한다(2:26).

=====7:24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능히 통달하랴.-이는 앞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

이 그동안 갈고 닦은 지식과 인생 경험에 바탕을 둔 나름대로의 폭넓은 식견으로도 이

세상에서 역사되어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한계성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다.된

것의 히브리어 “마쉐하야”( )는 “존재하는 것”(what has been,NASB)을 뜻하

는데, 혹자는 이를 현존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역사되어질 모든 섭리

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롬 11:33 참조, M.A. Eaton).

=====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하였더니.-앞에서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고백한 기자는 이제 돌이켜 인간의 완악한 본성을 살피고자 한다.특히 본절

에는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여러 차례 반복됨으로써 기자의 탐구의욕이 어느 정

도 간절하고 철저한지를 암시하고 있다.

=====7:26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잡히리로다.-본절에서 악한 여인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기자의 여자 기피 심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서의 다른 곳에서

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9:9). 여기

서는 악한 여인을 대표적으로 선정하였을 뿐이며 또 이러한 여인의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다.

=====7:27

원무에 의하면 본절 서두는 “레아”( , 보라, Look, NIV;Behold, RSV,

NASB)로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전도자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감탄하면서 선포하고 있

음을 나타낸다.

====7:28

일천 남자 중에서…얻지 못하였느니라.-“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에 대해 혹

자는 죄짓기 전의 순수하고 무죄한 아담을 가리킨다고 하나(Lange)이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T.H. Leale, M.A.Eaton), 혹은 진정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

(D.R.Glenn)로 보는 것이 낫겠다. 또한 여기서는 남자보다 여자 가운데서 더 찾기가

어려운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역사에서 최초로 타락한 자가 남자 아닌 여자

라는 맥락에서 언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딤전 2:11-15참조).그리고 본절에서 “일천”

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많은 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수로 보인

다(출20:6;34;7;민1:16;신1:11;욥9:3;33:23;시50:10;84:10).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꾀를 낸 것이라.-이는 앞절(28절)에 이어 인

간의 부패성, 죄악성을 나타낸 구절이다. “정직하게”에 해당하는 “야솨르”( )는

“곧은”,”올바른”(upright, KJV,NIV, RSV)의 뜻으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무

죄한 상태로 만드셨음을 암시하며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

히 좋았더라”(창 1:31)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솨

본”( )은 “계략”, “계책” 등의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특히 아담 안에서 정

죄된 인간들이(롬 5:16-21)일생 동안 의롭지 못한 일을 획책함을 뜻하며 인간 부패의

근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2018/12/28(금) “전도서 7:1-29” / 작성: 정한조

본문 전도서 7:1-29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 알림 사항 : 2018년에 영성담임목사인 정한조목사가 새벽기도를 화-금요일까지 일주일에 4일을 인도했습니다. 내년에는 새신자반과 성숙자반을 준비해서 인도하여야 하기에 물리적으로 일주일에 새벽기도를 4일 인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2019년부터는 영성담임목사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인도하고, 목요일에는 다른 세 분의 담임목사님들이 돌아가며 인도하고, 월, 수, 토요일은 전임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인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혜자의 태도(1-7절)

12장으로 된 전도서는 1-6장에서는 해 아래에서 하나님을 떠난 삶은 허무한 것임에 대해서, 그리고 7-12장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통해 해 위를 구하는 삶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해 위를 구하는 삶의 문을 엽니다.

또 전도서의 본론 부분에는 4개의 설교(강화)가 있는데, 세 번째 것이 6:1-8:14까지입니다. 어제 나눈 6장이 해 아래서의 삶의 허무함에 관한 한숨이었다면, 7:1-8:14은 그 한숨을 어떻게 생명의 숨인 하나님의 숨으로 바꾸어 가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은 ‘지혜자의 태도’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좋은 기름’은 감람(올리브)나무에서 추출한 감람유(올리브유)입니다. 이 기름은 식용으로 사용된 것은 물론, 피부의 건조함을 막는 의약품과 화장품으로도 사용되었고, 잔치와 장례에도, 성전에서 불을 밝기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왕궁의 보물목록에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름은 ‘재산’이나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이름’과 ‘기름’이 끝 자가 같지만, 히브리어로는 첫 글자가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과 기름을 비교하고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기름(재산, 재능)과 이름 중 무엇이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한지를 저울질을 하면 언제나 ‘기름’ 쪽으로 천칭이 기웁니다. 종종 “이름이 밥 먹여주나?”라고 이름을 비웃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갈수록, 살아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수록 ‘이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지나온 세월동안 ‘기름, 기름, 기름’하며 살았던 세월이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2-4)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마음이 편하기로 하면 장례식장보다 결혼식장이 훨씬 낫습니다. 장례식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울지만, 결혼식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습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식장에는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과거 가난한 시절에 결혼식은 평소에 먹지 못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도 음식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배불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90년 100년 동안 살며 장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면 그래도 낫지만, 어린 자녀들을 둔 가정에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은 삶의 궤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부모는 돌아가시면 뒷산에 묻지만 자녀는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자녀를 잃은 장례식에 조문을 가면 목회자도 마음이 눌립니다. 또한 아주 가까이 지내던 지인이나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나에게도 불현 듯 죽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닌가?”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확실히 결혼보다는 죽음(장례) 앞에서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영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7)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꾸지람이나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꾸지람과 책망을 들을 때는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대가 말하는 것이 거의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책망의 내용은 틀린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말을 중심으로 듣고 자신에게 적용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탐욕이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탐욕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솔로몬)가 이 고백을 하는 것은 자신이 산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최고의 지혜가 있었지만, 국력을 더 크게 하고, 자신을 세상에 더 드러내게 하려는 탐욕이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지혜자였던 그는 나라를 두 동강나게 한 원인제공자가 되었습니다. 뇌물에게도 사람이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뇌물에 오염이 되고나면, 명철은 사라지고 맙니다.

더 나은 선택(8-14절)

8-14절은 ‘더 나은 선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중학교 때의 성적은 고등학교에 갈 때에 필요하고, 고등학교 때의 성적은 대학교 갈 때에 필요합니다. 물론 대학교 때의 성적은 대학원이나 취직할 때에 필요합니다. 지금 직장에서 은퇴할 때가 다 되었는데, 초.중.고등 시절의 성적이나 받은 상장을 자랑한다면 정말 미련한 것입니다. 독일 속담에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Ende gut, alles gut)’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끝맺음은 이전의 삶을 아름다운 의미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은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조심해야할 1번이 교만이고, 2번도 교만이고, 3번도 교만입니다. 물론 99번도, 100번도 교만입니다.

우리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유익한 경우는 비록 지금 삶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과거에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 하심을 확신하기 위한 경우입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를 발판삼아 현재를 새롭게 수용할 때는 유익하지만, 현재를 직면하려고 하지 않고, 낙심과 절망에 있게 하는 것이라면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무익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 끊임없이 애굽에서 있었던 일, 특히 거기서 값없이 먹었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 등을 떠올리며 불평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지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표준새번역. 12) 돈이 사람을 보호하듯 지혜도 사람을 보호한다. 그러나 지혜를 깨우쳐 아는 지식이 더 좋은 까닭은 지혜가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 주기 때문이다.

돈과 지혜가 사람을 함께 보호하지만, 목숨을 살려내는 것은 지혜라고 합니다. 돈이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의 거의 대부분은 외적인 것입니다. 그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에도 많은 도움을 줄 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와 질문 앞에서는 결코 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때는 반드시 지혜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오직 그 지혜만 우리를 궁극적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오직 위로부터만 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했습니다.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함께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능하시기 때문이거나 우리를 외면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으로, 또 최상으로 충분히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안다면, 우리가 더 바르게, 더 신실하게,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섭리’의 ‘섭(攝)’자가 ‘당기다. 쥐다’의 뜻입니다. 그 한자에는 ‘손 수(手)’ 변에 ‘귀 이(耳)’ 자가 3개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듣고, 듣고, 또 듣는 것입니다. 그 듣는 것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삶으로 듣는 것이고, 과거를 듣고, 현재를 듣고, 미래를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깊은 지혜입니다.

절제와 바른 선택(15-22절)

15-22절은 절제와 바른 선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15절에 있는 것처럼 의롭게 살아도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하게 살아도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장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지킬박사인데, 어떤 날은 하이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 의롭게 사는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은 굉장히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그가 자신의 의로움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 악하게 사는 것만 해도 바르지 않는데, 그렇게 사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더 과도하게 악한 일을 행하다가 자기가 행한 악에게 무너지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또 인생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더욱 더 분명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사는 것에는 후회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무궁함(23-29절)

23-29절은 ‘지혜의 무궁함’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전도자는 궁극적인 지혜를 찾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지혜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오히려 미궁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혜가 우리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유한한 존재가 영원한 것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분만 영원한 지혜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자가 인생에 대해서 깨달은 것을 이렇게 고백하며 오늘 본문의 막이 내립니다.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한 길-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죄를 범한 이후로 언제나 ‘여러 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꾀를 낸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제 3의 길, 제 4의 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그것이 더 낫겠다고 우기곤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길이 더 옳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인간의 지혜 또는 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놓여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자유지만, 그 결과도 우리의 삶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2018년이 3일이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음으로 우리의 2019년이 진정한 새해로 엮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언제나 장례식보다는 결혼식을 더 좋아하고, 지혜보다는 재물을 선택하고, 형통할 때는 즐거워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곤고한 날에는 비관과 절망으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를 잘 알면서도 우리 나름대로의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인함임을 고백합니다.

올 한해 우리들을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삶의 자리에 심어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언제나 우리의 귀를 열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하나님의 손 위에 올려지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2019년이 진정한 새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지금까지 축하하기 위해서 참석한 결혼식장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조문한 장례식장에서 가장 깊이 느낀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2.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말씀하시는데,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에 배운 인생의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3.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고 생각한 가장 큰 부조리(모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신앙 안에서 어떻게 정리가 되었습니까?

4.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들은 많은 꾀를 낸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낸 ‘꾀’의 대표적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5.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곤고한 날은 물론 형통한 날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히브리어 전도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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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브 쉠 미쉐멘 토브 웨욤 함마윁 미욤 히왈도

개역개정,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새번역,1 명예가 값비싼 향유보다 더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말성경,1 좋은 이름이 좋은 향수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다.

가톨릭성경,1 명성이 값진 향유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

영어NIV,1 A good name is better than fine perfume, and the day of death better than the day of birth.

영어NASB,1 A good name is better than a good ointment, And the day of one’s death is better than the day of one’s birth.

영어MSG,1 A good reputation is better than a fat bank account. Your death date tells more than your birth date.

영어NRSV,1 A good name is better than precious ointment, and the day of death, than the day of birth.

헬라어구약Septuagint,1 αγαθον ονομα υπερ ελαιον αγαθον και ημερα του θανατου υπερ ημεραν γενεσεω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 quid necesse est homini maiora se quaerere cum ignoret quid conducat sibi in vita sua numero dierum peregrinationis suae et tempore quo velut umbra praeterit aut quis ei poterit indicare quid post eum futurum sub sole sit

히브리어구약BHS,1 טֹוב שֵׁם מִשֶּׁמֶן טֹוב וְיֹום הַמָּוֶת מִיֹּום הִוָּלְדֹו׃

성 경: [전7:1]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 나으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어떤 살마에 대한 단순한 외적인 회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쓰였던 바, ‘아름다운 이름’이란 그 사람에 대한 훌륭한 ‘명성’을 가리킨다(Luther, M.A.Eaton, Lange, G.A.Barton, T.H. Leale).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대단히 명예로운 일로 간주했다(8:10;욥 18:17;잠 10:7). 그리고 ‘기름’이란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지경의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하는 식물성 기름을 말하는데, 이는 그 용도 면에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 식용(출29:2,23;레 2:1,2,4-7), (2) 등화용(출 25:6;27:20), (3) 의료용(사 1:6), (4) 화장품용(삼하 14:2;시 23:5), (5) 향유용(눅 23:56) 등이다. 특히 이는 팔레스틴 지역과 같이 건조한 기후 여건 속에서는 그 몸에 기름을 발라 향기를 내는 데 유용하게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룻 3:3;삼하 12:20;시 45:7,8;암 6:6 참조). 또한 본절 후반절의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란 전반절의 의미와 연관되는 듯이 보인다. 즉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좋은 명성을 쌓으며 살다가 죽는 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가운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살지도 모르는 삶의 시작이 날보다 낫다는 것이다(D.R. Glenn). 그러나 전도자는 삶보다 죽음을 더 애찬하는 염세주의자로서 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삶의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3:13;5:!8),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2:13). 단지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명성을 얻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브 랄레케트 엘 베이트 에벨 밀레케트 엘 베이트 미쉬테 바아쉘 후 소프 콜 하아담 웨하하이 잍텐 엘 리보

개역개정,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새번역,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말성경,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모든 사람은 죽게 돼 있으니 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톨릭성경,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거기에 모든 인간의 종말이 있으니 산 이는 이를 마음에 새길 일이다.

영어NIV,2 It is better to go to a house of mourning than to go to a house of feasting, for death is the destiny of every man; the living should take this to heart.

영어NASB,2 It is better to go to a house of mourning Than to go to a house of feasting, Because that is the end of every man, And the living takes it to heart.

영어MSG,2 You learn more at a funeral than at a feast– After all, that’s where we’ll end up. We might discover something from it.

영어NRSV,2 It is better to go to the house of mourning than to go to the house of feasting; for this is the end of everyone, and the living will lay it to heart.

헬라어구약Septuagint,2 αγαθον πορευθηναι εις οικον πενθους η οτι πορευθηναι εις οικον ποτου καθοτι τουτο τελος παντ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και ο ζων δωσει εις καρδια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2 melius est nomen bonum quam unguenta pretiosa et dies mortis die nativitatis

히브리어구약BHS,2 טֹוב לָלֶכֶת אֶל־בֵּית־אֵבֶל מִלֶּכֶת אֶל־בֵּית מִשְׁתֶּה בַּאֲשֶׁר הוּא סֹוף כָּל־הָאָדָם וְהַחַי יִתֵּן אֶל־לִבֹּו׃

성 경: [전7:2]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 유심(留心)하리로다 – ‘초상집’이란 문자적으로는 ‘애곡하는 집'(the house of mourning, KJV, RSV)이다. 그리고 ‘잔치집’이란 술을 마시며 희락을 즐기는 곳으로서 암시되어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 근거하여 본절은 헛되고 허무하게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보다 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케 함으로 유익하고 보람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이다(4절)

토브 카아스 밋세호크 키 베로아 파님 이탑 레브

개역개정,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새번역,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얼굴을 어둡게 하는 근심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슬픔 어린 얼굴이 그의 마음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3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얼굴은 애처로워도 마음은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NIV,3 Sorrow is better than laughter, because a sad face is good for the heart.

영어NASB,3 Sorrow is better than laughter, For when a face is sad a heart may be happy.

영어MSG,3 Crying is better than laughing. It blotches the face but it scours the heart.

영어NRSV,3 Sorrow is better than laughter, for by sadness of countenance the heart is made glad.

헬라어구약Septuagint,3 αγαθον θυμος υπερ γελωτα οτι εν κακια προσωπου αγαθυνθησεται καρδια

라틴어Vulgate,3 melius est ire ad domum luctus quam ad domum convivii in illa enim finis cunctorum admonetur hominum et vivens cogitat quid futurum sit

히브리어구약BHS,3 טֹוב כַּעַס מִשְּׂחֹק כִּי־בְרֹעַ פָּנִים יִיטַב לֵב׃

성 경: [전7:3]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이 얼굴에 근신함으로 … 됨이니라 – 전후 문맥상 역시 앞절(2절)과 연관된 내용으로 보인다. 여기서 ‘슬픔’이란 단순히 고난이나 손해 등으로 일낳 슬픔이라기보다는 2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죽음 또는 그로 인한 애곡을 보고서 느껴지는 숙연한 슬픔을 뜻하며, ‘웃음’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보다는 육신적 희락을 즐기는 데서 얻어지는 쾌락적, 일시적 웃음을 뜻한다(2:2-10). 따라서 본절은 인생에서 보게 되는 숙연한 슬픔은 육체적 쾌락에서 얻어지는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상고케하여 더욱 진지하고 보람된 생(生)을 결단케 하기 때문에 좋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레브 하카밈 베베트 에벨 웨레브 케시림 베베트 시메하

개역개정,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새번역,4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우리말성경,4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

가톨릭성경,4 지혜로운 이들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

영어NIV,4 The heart of the wise is in the house of mourning, but the heart of fools is in the house of pleasure.

영어NASB,4 The mind of the wise is in the house of mourning, While the mind of fools is in the house of pleasure.

영어MSG,4 Sages invest themselves in hurt and grieving. Fools waste their lives in fun and games.

영어NRSV,4 The heart of the wise is in the house of mourning; but the heart of fools is in the house of mirth.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ρδια σοφων εν οικω πενθους και καρδια αφρονων εν οικω ευφροσυνης

라틴어Vulgate,4 melior est ira risu quia per tristitiam vultus corrigitur animus delinquentis

히브리어구약BHS,4 לֵב חֲכָמִים בְּבֵית אֵבֶל וְלֵב כְּסִילִים בְּבֵית שִׂמְחָה׃

성 경: [전7:4]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 있느니라 – 1-3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구절로서, 지혜자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늘 진지하게 상고하는 반면에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어 단순히 순간 순간 육체적 희락만을 즐기고 웃음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토브 리쉐모아 가아라트 하캄 메이쉬 쇼메아 쉬르 케실림

개역개정,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새번역,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

우리말성경,5 지혜로운 사람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

가톨릭성경,5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칭송을 듣는 것보다 낫다.

영어NIV,5 It is better to heed a wise man’s rebuke than to listen to the song of fools.

영어NASB,5 It is better to listen to the rebuke of a wise man Than for one to listen to the song of fools.

영어MSG,5 You’ll get more from the rebuke of a sage Than from the song and dance of fools.

영어NRSV,5 It is better to hear the rebuke of the wise than to hear the song of fools.

헬라어구약Septuagint,5 αγαθον το ακουσαι επιτιμησιν σοφου υπερ ανδρα ακουοντα ασμα αφρονων

라틴어Vulgate,5 cor sapientium ubi tristitia est et cor stultorum ubi laetitia

히브리어구약BHS,5 טֹוב לִשְׁמֹעַ גַּעֲרַת חָכָם מֵאִישׁ שֹׁמֵעַ שִׁיר כְּסִילִים׃

성 경: [전7:5]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 나으니라 – 본절도 역시 앞절(4절)처럼 그 의미에 있어서는 계속 전문(前文)들과 연관된다 하겠다. 책망은 들을 당시에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종국적으로는 잘못되고 우매한 길을 벗어나 지혜로운 길로 접어들게 한다. 반면 우매자의 노래 소리는 들을 때에는 기쁜 것 같고 육감적으로 상쾌한 것 같으나 결국에는 일시적, 육체적 희락 속에선 헛되고 허무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키 케콜 핫시림 타하트 핫시르 켄 세호크 핰케실 웨감 제 하벨

개역개정,6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새번역,6 어리석은 사람의 웃음소리는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다. 이 또한 헛되다.

우리말성경,6 어리석은 사람의 웃음은 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 또한 허무하다.

가톨릭성경,6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솥 밑에서 타는 가시나무 소리 같으니 이 또한 허무이다.

영어NIV,6 Like the crackling of thorns under the pot, so is the laughter of fools. This too is meaningless.

영어NASB,6 For as the crackling of thorn bushes under a pot, So is the laughter of the fool, And this too is futility.

영어MSG,6 The giggles of fools are like the crackling of twigs Under the cooking pot. And like smoke.

영어NRSV,6 For like the crackling of thorns under a pot, so is the laughter of fools; this also is vanity.

헬라어구약Septuagint,6 οτι ως φωνη των ακανθων υπο τον λεβητα ουτως γελως των αφρονων και γε τουτο ματαιοτης

라틴어Vulgate,6 melius est a sapiente corripi quam stultorum adulatione decipi

히브리어구약BHS,6 כִּי כְקֹול הַסִּירִים תַּחַת הַסִּיר כֵּן שְׂחֹק הַכְּסִיל וְגַם־זֶה הָבֶל׃

성 경: [전7:6]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 이것도 헛되니라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나무가 희귀하여 가시나무나 풀, 보리, 그루터기 등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시 58:9;120:4;마 6:30 참조), 특히 가시나무는 쉽고 빠르게 그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타지만 이내 사그라져 꺼지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이 소리는 헛되고 요란할 뿐 실속이 없는 소리이다. 이것은 우매자의 웃음 소리가 겉으로만 요란할 뿐 실속이 없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키 하오쉐크 예홀렐 하캄 위압베드 엩 레브 맡타나

개역개정,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새번역,7 탐욕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고,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우리말성경,7 억압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뇌물은 마음을 부패시킨다.

가톨릭성경,7 억압은 지혜로운 이를 우둔하게 만들고 뇌물은 마음을 파멸시킨다.

영어NIV,7 Extortion turns a wise man into a fool, and a bribe corrupts the heart.

영어NASB,7 For oppression makes a wise man mad, And a bribe corrupts the heart.

영어MSG,7 Brutality stupefies even the wise And destroys the strongest heart.

영어NRSV,7 Surely oppression makes the wise foolish, and a bribe corrupts the heart.

헬라어구약Septuagint,7 οτι η συκοφαντια περιφερει σοφον και απολλυσι την καρδιαν ευτονια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7 quia sicut sonitus spinarum ardentium sub olla sic risus stulti sed et hoc vanitas

히브리어구약BHS,7 כִּי הָעֹשֶׁק יְהֹולֵל חָכָם וִיאַבֵּד אֶת־לֵב מַתָּנָה׃

성 경: [전7:7]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탐학(貪虐)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 망케하느니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각양 각색이다. (1)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다(NASB, Hengstenberg, Hitzig). (2) 본절이 앞절들과 하등의 유사한 연관성이 없으므로 이를 ‘그러나’와 같은 부사로 본다(Ewald, Elster). (3) 강조걱인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욥 6:21;사5:7, Lange). 영역본 KJV, RSV 등도 이를 ‘확실히'(surely)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4)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기는 하나 앞절과 본절 사이에는 또 다른 구절이 빠져 있다(Delitzsch). 그러나 우리는 문맥상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되 특히 5절 내용과 연결됨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즉 본적의 원인 때문에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5절)낫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탐학’의 히브리어 ‘오쉐크'(*)는 ‘압제'(opperssion, KVJ, RSV, NASB), ‘강탈’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후반절은 출 23:8;신 16:19;잠 15:27과 유사하다. 성경에서 ‘뇌물’을 의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 또는 명철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뇌물이 그 하나님의 공의성을 훼손시키고 공정한 판단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토브 아하리트 다발 메레쉬토 토브 에레크 루아흐 믹게바흐 루아흐

개역개정,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새번역,8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가 더 좋다. 마음은 자만할 때보다 참을 때가 더 낫다.

우리말성경,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인내하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

가톨릭성경,8 일의 끝이 그 시작보다 낫고 인내가 자만보다 낫다.

영어NIV,8 The end of a matter is better than its beginning, and patience is better than pride.

영어NASB,8 The end of a matter is better than its beginning; Patience of spirit is better than haughtiness of spirit.

영어MSG,8 Endings are better than beginnings. Sticking to it is better than standing out.

영어NRSV,8 Better is the end of a thing than its beginning; the patient in spirit are better than the proud in spirit.

헬라어구약Septuagint,8 αγαθη εσχατη λογων υπερ αρχην αυτου αγαθον μακροθυμος υπερ υψηλον πνευματι

라틴어Vulgate,8 calumnia conturbat sapientem et perdet robur cordis illius

히브리어구약BHS,8 טֹוב אַחֲרִית דָּבָר מֵרֵאשִׁיתֹו טֹוב אֶרֶךְ־רוּחַ מִגְּבַהּ־רוּחַ׃

성 경: [전7:8]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 나으니 – 본절의 상,하반절은 내용상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다(Lange).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그 과정을 인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경우 그 끝은 처음보다 낫다는 뜻 혹은 어떤 일을 끝까지 마감하는 것이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서 중도에 그만 두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Finishing is better than starting, LB). 이는 곧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케 한다. 한편 후반절의 ‘마음’에 해당하는 ‘루아흐'(*)는 ‘영'(spirit)을 뜻하며 ‘참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영 안에서 참음'(the patient in spirit, KJV, RSV ; partience of spirit, NASB)과 ‘영 안에 거만함'(the proud in spirit, KJV, RSV ; haughtiness of spirit, NASB)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알 테바헬 베루하카 리케오스 키 카암 베헤크 케실림 야누아흐

개역개정,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새번역,9 급하게 화내지 말아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말성경,9 너는 조급하게 분노하지 마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가슴에 머무는 것이다.

가톨릭성경,9 마음속으로 성급하게 화내지 마라. 화는 어리석은 자들의 품에 자리 잡는다.

영어NIV,9 Do not be quickly provoked in your spirit, for anger resides in the lap of fools.

영어NASB,9 Do not be eager in your heart to be angry, For anger resides in the bosom of fools.

영어MSG,9 Don’t be quick to fly off the handle. Anger boomerangs. You can spot a fool by the lumps on his head.

영어NRSV,9 Do not be quick to anger, for anger lodges in the bosom of fools.

헬라어구약Septuagint,9 μη σπευσης εν πνευματι σου του θυμουσθαι οτι θυμος εν κολπω αφρονων αναπαυσεται

라틴어Vulgate,9 melior est finis orationis quam principium melior est patiens arrogante

히브리어구약BHS,9 אַל־תְּבַהֵל בְּרוּחֲךָ לִכְעֹוס כִּי כַעַס בְּחֵיק כְּסִילִים יָנוּחַ׃

성 경: [전7:9]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 머무름이니라 – 본절도 문맥상 앞절(8절)과 연관되는 것으로 본다(G.A.Barton). 전반절에 대해서 대부분 영역본들은 ‘너의 영 안에서 급하게 노를 발하지 말라'(Be not hasty in thy spirit to be angry, KJV ; Do not ve quickly provoked heart to be angry, NASB)로 번역하고 있다. 성급히 화를 내는 것은 정의의 의분과는 달리 인격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으로서 결국 죄악을 낳고 만다(창 4:5;삼 삼 18:8).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스피드 시대에는 본절 말씀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다(욥 5:2;잠 12:16).

알 토말 메 하야 쉐하야밈 하리쇼님 하이우 토브 메엘레 키 로 메호크마 솨알타 알 제

개역개정,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새번역,10 옛날이 지금보다 더 좋은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라. 이런 질문은 지혜롭지 못하다.

우리말성경,10 “어떻게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가?”라고 하지 마라. 그런 질문은 지혜롭지 못하다.

가톨릭성경,10 “어째서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는가?” 묻지 마라.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영어NIV,10 Do not say, “Why were the old days better than these?” For it is not wise to ask such questions.

영어NASB,10 Do not say, “Why is it that the former days were better than these?” For it is not from wisdom that you ask about this.

영어MSG,10 Don’t always be asking, “Where are the good old days?” Wise folks don’t ask questions like that.

영어NRSV,10 Do not say, “Why were the former days better than these?” For it is not from wisdom that you ask this.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μη ειπης τι εγενετο οτι αι ημεραι αι προτεραι ησαν αγαθαι υπερ ταυτας οτι ουκ εν σοφια επηρωτησας περι τουτου

라틴어Vulgate,10 ne velox sis ad irascendum quia ira in sinu stulti requiescit

히브리어구약BHS,10 אַל־תֹּאמַר מֶה הָיָה שֶׁהַיָּמִים הָרִאשֹׁנִים הָיוּ טֹובִים מֵאֵלֶּה כִּי לֹא מֵחָכְמָה שָׁאַלְתָּ עַל־זֶה׃

성 경: [전7:10]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 지혜가 아니니라 – 주어진 현실 감당해야 할 현 시대의 사명을 도외시하고 지나간 시절만 생각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삶의 태도를 책망하는 말씀이다(Eaton). 한편 본절을 앞절 특히 8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해석해 볼 수 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때 그 나중이 처음보다 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했던 옛날이 일의 결과를 낸 오늘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내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는 뜻이라 하겠다.

토바 호크마 임 나할라 웨요테르 레로에 핫솨메쉬

개역개정,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새번역,11 지혜는 유산을 받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이니,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 덕을 보기 때문이다. / ㉠히, ‘해 아래’

우리말성경,11 지혜는 유산처럼 좋은 것이다. 해를 보는 사람이라면 지혜의 덕을 보지 않는 사람이 없다.

가톨릭성경,11 지혜는 상속 재산처럼 좋은 것 태양 아래 사는 이들에게 득이 된다.

영어NIV,11 Wisdom, like an inheritance, is a good thing and benefits those who see the sun.

영어NASB,11 Wisdom along with an inheritance is good And an advantage to those who see the sun.

영어MSG,11 Wisdom is better when it’s paired with money, Especially if you get both while you’re still living.

영어NRSV,11 Wisdom is as good as an inheritance, an advantage to those who see the sun.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αγαθη σοφια μετα κληροδοσιας και περισσεια τοις θεωρουσιν τον ηλιον

라틴어Vulgate,11 ne dicas quid putas causae est quod priora tempora meliora fuere quam nunc sunt stulta est enim huiuscemodi interrogatio

히브리어구약BHS,11 טֹובָה חָכְמָה עִם־נַחֲלָה וְיֹתֵר לְרֹאֵי הַשָּׁמֶשׁ׃

성 경: [전7:11]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 유익하도다 – 이는 지혜의 유익성과 보배로움을 언급한 말인데, 여기서 ‘지혜’는 2:12-16에서 암시되어진 바와는 달리 하나님의 지혜,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신성한 지혜를 말하는 것 같다. 본절에서 ‘유업’이란 ‘나할라'(*)로서 가나안 땅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물려받는 ‘기업'(출 6:8) 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상속 재산을 의미하는데, ‘유업같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뉜다. (1) 이는 한글 개역 성경처럼 ‘유업과 같이'(like an inheritance, NIV)를 의미한다(2:16;욥 9:26, Lange, Zockler). (2) 이는 ‘같이'(*, 임)라는 말이 ‘…과 함께'(with)라는 말로 번역되는 바, ‘유업과 함께'(with an ingeritance, KJV, RSV, NASB)를 뜻한다(70인역, T.H. Leale, D.R. Glenn, G.A. Barton, Wycliffe). (1)을 취할 경우,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나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처럼 귀하다는 뜻이며, (2)의 경우 지혜는 그 자체로서도 귀하고 빛나나 유업 즉 재산과 함께 있을 때 그 재산을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바 더욱 빛나고 가치가 있게 된다는 뜻이 된다. 이중 어느 쪽을 택해도 본절 이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키 베첼 하호크마 베첼 하카셒 웨이트론 다아트 하호크마 테하예 베알레하

개역개정,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새번역,12 돈이 사람을 보호하듯, 지혜도 사람을 보호한다. 그러나 지혜를 깨우쳐 아는 지식이 더 좋은 까닭은, 지혜가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 주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12 돈이 방패막이가 되듯 지혜도 방패막이가 된다. 그러나 지혜를 깨우쳐 아는 지식이 더 뛰어난 이유는 지혜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2 지혜의 그늘에 있는 것은 돈의 그늘에 있는 것과 같다. 지식이 좋은 점은 그 지혜가 소유자의 생명을 보존하여 준다는 것이다.

영어NIV,12 Wisdom is a shelter as money is a shelter, but the advantage of knowledge is this: that wisdom preserves the life of its possessor.

영어NASB,12 For wisdom is protection just as money is protection. But the advantage of knowledge is that wisdom preserves the lives of its possessors.

영어MSG,12 Double protection: wisdom and wealth! Plus this bonus: Wisdom energizes its owner.

영어NRSV,12 For the protection of wisdom is like the protection of money, and the advantage of knowledge is that wisdom gives life to the one who possesses it.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οτι εν σκια αυτης η σοφια ως σκια του αργυριου και περισσεια γνωσεως της σοφιας ζωοποιησει τον παρ’ αυτης

라틴어Vulgate,12 utilior est sapientia cum divitiis et magis prodest videntibus solem

히브리어구약BHS,12 כִּי בְּצֵל הַחָכְמָה בְּצֵל הַכָּסֶף וְיִתְרֹון דַּעַת הַחָכְמָה תְּחַיֶּה בְעָלֶיהָ׃

성 경: [전7:12]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 보존함이니라 – 지혜의 유용성의 탁월함을 재물과의 비교를 통해 묘파(描破)한 구절이다.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본절에서 ‘보호하는 것’에 해당하는 ‘첼'(*)은 ‘그늘'(shadow)을 뜻하나 영역본들은 이와 연관시켜 ‘보호'(protection, RSV, NASB), ‘방어'(a eefence, KJV)를 뜻하는 것이로 번역했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잠 3:18,22;8:35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하겠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하나님을 겨외하고 신앙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멸망으 길로 가는 것을 막아주고 오히려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준다는 것이다(잠 2:20).

레에 엩 마아세 하엘로힘 키 미 유칼 레타켄 엩 아쉘 입웨토

개역개정,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새번역,1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우리말성경,13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구부리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가톨릭성경,13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아라. 그분께서 구부리신 것을 누가 똑바로 할 수 있으랴?

영어NIV,13 Consider what God has done: Who can straighten what he has made crooked?

영어NASB,13 Consider the work of God, For who is able to straighten what He has bent?

영어MSG,13 Take a good look at God’s work. Who could simplify and reduce Creation’s curves and angles To a plain straight line?

영어NRSV,13 Consider the work of God; who can make straight what he has made crooked?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ιδε τα ποιηματα του θεου οτι τις δυνησεται του κοσμησαι ον αν ο θεος διαστρεψη αυτον

라틴어Vulgate,13 sicut enim protegit sapientia sic protegit pecunia hoc autem plus habet eruditio et sapientia quod vitam tribuunt possessori suo

히브리어구약BHS,13 רְאֵה אֶת־מַעֲשֵׂה הָאֱלֹהִים כִּי מִי יוּכַל לְתַקֵּן אֵת אֲשֶׁר עִוְּתֹו׃

성 경: [전7:13]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 곧게 하겠느냐 – 이는 1:15;6:10의 말씀과 유사하며 내용상 8,9절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작정, 주관하고 계시는 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성급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에 대항하거나 거역하지 말고 순응해야 함을 암시해 준다는 말이다.

베욤 토바 헤예 베토브 우베욤 라아 레에 감 엩 제 레움마트 제 아사 ㅏ엘로힘 알 디베라트 쉘로 임차 하아담 아하라우 메우마

개역개정,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새번역,14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우리말성경,14 잘되어 갈 때는 기뻐하고 고난의 때에는 생각하여라. 이 두 가지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미래에 대해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4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영어NIV,14 When times are good, be happy; but when times are bad, consider: God has made the one as well as the other. Therefore, a man cannot discover anything about his future.

영어NASB,14 In the day of prosperity be happy, But in the day of adversity consider– God has made the one as well as the other So that man may not discover anything that will be after him.

영어MSG,14 On a good day, enjoy yourself; On a bad day, examine your conscience. God arranges for both kinds of days So that we won’t take anything for granted.

영어NRSV,14 In the day of prosperity be joyful, and in the day of adversity consider; God has made the one as well as the other, so that mortals may not find out anything that will come after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εν ημερα αγαθωσυνης ζηθι εν αγαθω και εν ημερα κακιας ιδε και γε συν τουτο συμφωνον τουτω εποιησεν ο θεος περι λαλιας ινα μη ευρη ο ανθρωπος οπισω αυτου μηδεν

라틴어Vulgate,14 considera opera Dei quod nemo possit corrigere quem ille despexerit

히브리어구약BHS,14 בְּיֹום טֹובָה הֱיֵה בְטֹוב וּבְיֹום רָעָה רְאֵה גַּם אֶת־זֶה לְעֻמַּת־זֶה עָשָׂה הָאֱלֹהִים עַל־דִּבְרַת שֶׁלֹּא יִמְצָא הָאָדָם אַחֲרָיו מְאוּמָה׃

성 경: [전7:14]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본절은 내용상 앞절(13절)과 연관되며 그 의미 역시 인간사에서 임의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말씀으로 보인다(D.R. Glenn). 여기서 ‘형통한’에 해당하는 ‘토브'(*)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의 뜻을 갖는다(2:1 참조). 그리고 ‘기뻐하고’도 문자적으로는 역시 그 원형이 ‘토브’이다. 또한 ‘생각하라’의 히브리어 ‘라아'(*)는 ‘보다’, ‘관찰(주시)하다’, ‘생각(숙고)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인다. 혹자는 바로 뒷구절 즉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나(Lange), 이보다는 하나님이 곤고케 한신 목적, 이유 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D.R. Glenn). 한편 후반절의 ‘장래 일’이란 문자적으로는 ‘아하라 메우마'(*)인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도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인다. (1) 사람이 죽은 후의 일을 의미한다(Delitzsch). (2) 사람의 장래 일 즉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일을 의미한다(G.A.Barton, T.H. Leale, Lange).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2)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아무튼 이런 후반절의 의미는 인간의 연약함, 제한되미 마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순응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엩 하콜 라이티 비메 헤블리 예쉬 차디크 오베드 베치데코 웨예쉬 라솨 마아리크 베라아토

개역개정,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새번역,15 헛된 세월을 사는 동안에, 나는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더라.

우리말성경,15 나는 내 허무한 삶 가운데 이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의인들이 자신의 의로움 가운데 망해 가는 것과 악인들이 자신의 악함 가운데 장수하는 것 말이다.

가톨릭성경,15 내 허무한 생애 중에 나는 이 모든 것을 보았다. 의롭지만 죽어 가는 의인이 있고 사악하지만 오래 사는 악인이 있다.

영어NIV,15 In this meaningless life of mine I have seen both of these: a righteous man perishing in his righteousness, and a wicked man living long in his wickedness.

영어NASB,15 I have seen everything during my lifetime of futility; there is a righteous man who perishes in his righteousness, and there is a wicked man who prolongs his life in his wickedness.

영어MSG,15 I’ve seen it all in my brief and pointless life–here a good person cut down in the middle of doing good, there a bad person living a long life of sheer evil.

영어NRSV,15 In my vain life I have seen everything; there are righteous people who perish in their righteousness, and there are wicked people who prolong their life in their evil-doing.

헬라어구약Septuagint,15 συν τα παντα ειδον εν ημεραις ματαιοτητος μου εστιν δικαιος απολλυμενος εν δικαιω αυτου και εστιν ασεβης μενων εν κακι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15 in die bona fruere bonis et malam diem praecave sicut enim hanc sic et illam fecit Deus ut non inveniat homo contra eum iustas querimonias

히브리어구약BHS,15 אֶת־הַכֹּל רָאִיתִי בִּימֵי הֶבְלִי יֵשׁ צַדִּיק אֹבֵד בְּצִדְקֹו וְיֵשׁ רָשָׁע מַאֲרִיךְ בְּרָעָתֹו׃

성 경: [전7:15]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 있으니 – 이는 단순히 과도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중용(中庸)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다. 즉 여기서 전도자가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의(義)’라기보다는 ‘무모한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인 것이다. 전도자는 선만을 행하는 의인이란 이 세상에 없다고 갈파하고 있거니와(20절), 본절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려 드는 자들에 대한 역설적 경고라 하겠다(Eaton, Whybary). 한편 저자가 ‘내 헛된 날’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로서의 인생이 허무하며 무상한 것임을 암시하며(6:12) 특히 이는 솔로몬 자신이 한때 하나님을 떠났던 기간을 상기하며 말한 것일 수도 있다(왕상 9:24;11:1-13 참조).

알 테히 차디크 하르베 웨알 티트하캄 요테르 람마 팃쇼멤

개역개정,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새번역,16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왜 스스로를 망치려 하는가?

우리말성경,16 그러니 지나치게 의롭게 살려고 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롭게도 살려고 하지 마라. 무엇 때문에 멸망을 자초하겠는가?

가톨릭성경,16 너는 너무 의롭게 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로이 행동하지 마라. 어찌하여 너는 너 자신을 파멸시키려 하느냐?

영어NIV,16 Do not be overrighteous, neither be overwise–why destroy yourself?

영어NASB,16 Do not be excessively righteous, and do not be overly wise. Why should you ruin yourself?

영어MSG,16 So don’t knock yourself out being good, and don’t go overboard being wise. Believe me, you won’t get anything out of it.

영어NRSV,16 Do not be too righteous, and do not act too wise; why should you destroy yourself?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μη γινου δικαιος πολυ και μη σοφιζου περισσα μηποτε εκπλαγης

라틴어Vulgate,16 haec quoque vidi in diebus vanitatis meae iustus perit in iustitia sua et impius multo vivit tempore in malitia sua

히브리어구약BHS,16 אַל־תְּהִי צַדִּיק הַרְבֵּה וְאַל־תִּתְחַכַּם יֹותֵר לָמָּה תִּשֹּׁוםֵם׃

성 경: [전7:16]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려 … 패망케 하겠느냐 –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의(義)를 추구하고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다(롬 3:20;7:1-25;10:3;갈 2:16;3:11,12).

알 티르아쉬 하르베 웨알 테히 사칼 람마 타무트 베로 잍테카

개역개정,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새번역,17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아라. 왜 제 명도 다 못 채우고, 죽으려고 하는가?

우리말성경,17 또 지나치게 악하게 살지도 말고 그렇다고 어리석게 살지도 마라. 무엇 때문에 때가 되기 전에 죽으려고 하는가?

가톨릭성경,17 너는 너무 악하게 되지 말고 바보가 되지 마라. 어찌하여 네 시간이 되기 전에 죽으려 하느냐?

영어NIV,17 Do not be overwicked, and do not be a fool–why die before your time?

영어NASB,17 Do not be excessively wicked, and do not be a fool. Why should you die before your time?

영어MSG,17 But don’t press your luck by being bad, either. And don’t be reckless. Why die needlessly?

영어NRSV,17 Do not be too wicked, and do not be a fool; why should you die before your tim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μη ασεβησης πολυ και μη γινου σκληρος ινα μη αποθανης εν ου καιρω σου

라틴어Vulgate,17 noli esse iustus multum neque plus sapias quam necesse est ne obstupescas

히브리어구약BHS,17 אַל־תִּרְשַׁע הַרְבֵּה וְאַל־תְּהִי סָכָל לָמָּה תָמוּת בְּלֹא עִתֶּךָ׃

성 경: [전7:17]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 죽으려느냐 – 이는 앞절(16절)과 대비되는 말씀으로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노골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다. 특히 본절에서 ‘지나치게’라는 말은 악을 무절제하게 행하지 말고 돌이킬 것을 권고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한편 본절에서 악인이나 우매자가 그들의 악행으로 파멸에 이르고만다는 것은 시 37:10;55:23;58:3-9;73:18;잠 10:27 등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다.

토브아쉘 테에호즈 바제 웨감 미제 알 탄나흐 엩 야데카 키 예레 엘로힘 예체 엩 쿨람

개역개정,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새번역,18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

우리말성경,18 하나를 붙잡되 다른 하나도 놓지 않는 게 좋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

가톨릭성경,18 하나를 붙잡고 있으면서 다른 하나에서도 네 손을 떼지 않는 것이 좋다. 정녕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그 둘 다에서 성공을 거둔다.

영어NIV,18 It is good to grasp the one and not let go of the other. The man who fears God will avoid all extremes.

영어NASB,18 It is good that you grasp one thing, and also not let go of the other; for the one who fears God comes forth with both of them.

영어MSG,18 It’s best to stay in touch with both sides of an issue. A person who fears God deals responsibly with all of reality, not just a piece of it.

영어NRSV,18 It is good that you should take hold of the one, without letting go of the other; for the one who fears God shall succeed with both.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αγαθον το αντεχεσθαι σε εν τουτω και γε απο τουτου μη ανης την χειρα σου οτι φοβουμενος τον θεον εξελευσεται τα παντα

라틴어Vulgate,18 ne impie agas multum et noli esse stultus ne moriaris in tempore non tuo

히브리어구약BHS,18 טֹוב אֲשֶׁר תֶּאֱחֹז בָּזֶה וְגַם־מִזֶּה אַל־תַּנַּח אֶת־יָדֶךָ כִּי־יְרֵא אֱלֹהִים יֵצֵא אֶת־כֻּלָּם׃

성 경: [전7:18]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 것임이니라 – 지나친 자기 의(義)의 추구나 의도적인 악행을 다시금 금하고 있다. 물론 본절이 적당한 수준에서 악을 행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는 인간의 육신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위는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전도자가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으로 말하고, 그것이 곧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12:13;시 34:7,9;잠 1:7;9:10). 또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알고 경배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하호크마 타오즈 레하캄 메아사라 솰리팀 아쉘 하이우 바이르

개역개정,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새번역,19 지혜는 슬기로운 한 사람을, 성읍을 다스리는 통치자 열 명보다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말성경,19 지혜는 성안에 있는 열 명의 용사들보다 지혜로운 한 사람을 더 강하게 한다.

가톨릭성경,19 지혜는 지혜로운 이를 성안에 있는 열 명의 권세가보다 더 힘세게 만든다.

영어NIV,19 Wisdom makes one wise man more powerful than ten rulers in a city.

영어NASB,19 Wisdom strengthens a wise man more than ten rulers who are in a city.

영어MSG,19 Wisdom puts more strength in one wise person Than ten strong men give to a city.

영어NRSV,19 Wisdom gives strength to the wise more than ten rulers that are in a city.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η σοφια βοηθησει τω σοφω υπερ δεκα εξουσιαζοντας τους οντας εν τη πολει

라틴어Vulgate,19 bonum est te sustentare iustum sed et ab illo ne subtrahas manum tuam quia qui Deum timet nihil neglegit

히브리어구약BHS,19 הַחָכְמָה תָּעֹז לֶחָכָם מֵעֲשָׂרָה שַׁלִּיטִים אֲשֶׁר הָיוּ בָּעִיר׃

성 경: [전7:19]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 있게 하느니라 – ‘유사’에 해당하는 ‘솰리트'(*)는 ‘지배자’, ‘방백’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성읍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자, 외부 세력으로부터 성을 비마 지키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본절의 ‘지혜’는 6절에서와는 달리, 특히 앞 18절과 연관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잠 9:10).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얻은 힘이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킨다. 한편 ‘열’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열’을 뜻한다기 보다는 완전수로서 많은 수를 가리킨다 하겠다(욥 19:3).

키 아담 엔 차디크 바아레츠 아쉘 야아세 토브 웨로 예헤타

개역개정,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새번역,20 좋은 일만 하고 잘못을 전혀 저지르지 않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우리말성경,20 선한 일만 하고 절대로 죄짓지 않는 의인은 세상에 없다.

가톨릭성경,20 죄를 짓지 않고 선만을 행하는 의로운 인간이란 이 세상에 없다.

영어NIV,20 There is not a righteous man on earth who does what is right and never sins.

영어NASB,20 Indeed, there is not a righteous man on earth who continually does good and who never sins.

영어MSG,20 There’s not one totally good person on earth, Not one who is truly pure and sinless.

영어NRSV,20 Surely there is no one on earth so righteous as to do good without ever sinn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οτι ανθρωπος ουκ εστιν δικαιος εν τη γη ος ποιησει αγαθον και ουχ αμαρτ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0 sapientia confortabit sapientem super decem principes civitatis

히브리어구약BHS,20 כִּי אָדָם אֵין צַדִּיק בָּאָרֶץ אֲשֶׁר יַעֲשֶׂה־טֹּוב וְלֹא יֶחֱטָא׃

성 경: [전7:20]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 없느니라 – 원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의 정황한 의미에 대해서는 (1)강조적인 말로서 ‘확실히'(Surely, RSV ; Indeed, NASB)로 보거나(M.A. Eaton, Lange), (2)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서 ‘…때문에'(For, KJV)로 이해한다(D.R.Glenn).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을 바튼(G.A. Barton)은 18절에 대한 이유로, 랑게(Lange)는 19절의 확증으로, 이튼(M.A. Eaton(dms 16-19절 내용을 다시 강조하는 표현으로 각각 봄) 시사하며 특히 지혜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리고 본절은 솔로몬의 말한 바 왕상 8:46과 유사하며 바울의 말한 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롬 3:23).

감 레콜 하데바림 아쉘 예답베루 엘 티텐 립베카 아쉘 로 티쉬마 엩 압데카 메칼레카

개역개정,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새번역,21 남들이 하는 말에 마음을 쓰지 말아라. 자칫하다가는 네 종이 너를 욕하는 것까지 듣게 된다.

우리말성경,21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신경 쓰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말도 들릴지 모른다.

가톨릭성경,21 사람들이 말하는 온갖 이야기에 네 마음을 두지 마라. 그러지 않으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게 되리라.

영어NIV,21 Do not pay attention to every word people say, or you may hear your servant cursing you–

영어NASB,21 Also, do not take seriously all words which are spoken, so that you will not hear your servant cursing you.

영어MSG,21 Don’t eavesdrop on the conversation of others. What if the gossip’s about you and you’d rather not hear it?

영어NRSV,21 Do not give heed to everything that people say, or you may hear your servant cursing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γε εις παντας τους λογους ους λαλησουσιν μη θης καρδιαν σου οπως μη ακουσης του δουλου σου καταρωμενου σε

라틴어Vulgate,21 non est enim homo iustus in terra qui faciat bonum et non peccet

히브리어구약BHS,21 גַּם לְכָל־הַדְּבָרִים אֲשֶׁר יְדַבֵּרוּ אַל־תִּתֵּן לִבֶּךָ אֲשֶׁר לֹא־תִשְׁמַע אֶת־עַבְדְּךָ מְקַלְלֶךָ׃

성 경: [전7:21]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 죄악된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심각성은(20절) 말의 실수와 비신실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약 3:2).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특히 아첨하는 말에 마음을 두는 것은 스스로 올무에 빠져드는 것과 다름없다.

키 감 페아밈 랍보트 야다 립베카 아쉘 감 앝테 앝타 킬랄르타 아헤림

개역개정,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새번역,22 너 또한 남을 욕한 일이 많다는 것을 너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우리말성경,22 너 자신도 여러 번 남을 저주했던 것을 네 마음이 알 것이다.

가톨릭성경,22 너도 다른 이들을 여러 번 저주했음을 너 자신이 알고 있다.

영어NIV,22 for you know in your heart that many times you yourself have cursed others.

영어NASB,22 For you also have realized that you likewise have many times cursed others.

영어MSG,22 You’ve done that a few times, haven’t you–said things Behind someone’s back you wouldn’t say to his face?

영어NRSV,22 your heart knows that many times you have yourself cursed others.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οτι πλειστακις πονηρευσεται σε και καθοδους πολλας κακωσει καρδιαν σου οπως και γε συ κατηρασω ετερους

라틴어Vulgate,22 sed et cunctis sermonibus qui dicuntur ne accommodes cor tuum ne forte audias servum tuum maledicentem tibi

히브리어구약BHS,22 כִּי גַּם־פְּעָמִים רַבֹּות יָדַע לִבֶּךָ אֲשֶׁר גַּם־[כ= אַתְּ] [ק= אַתָּה] קִלַּלְתָּ אֲחֵרִים׃

성 경: [전7:22]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아느리라 – 이는 21절에 연장되는 말로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따라서 그들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쓸모없음을,자신이 남을 저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 확증하는 내용이다. “마음”은 “양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G.A.Barton).그리고 이는 사람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리라”(롬 2:15)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콜 조 닛시티 바호크마 아말티 에흐카마 웨히 레호카 밈멘니

개역개정,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새번역,23 나는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해 보았다. 내가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결심해 보았지만, 지혜가 나를 멀리하더라.

우리말성경,23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혜로 시험해 보고는 “내가 지혜로워지기로 결심했다”고 했으나 그것은 내 능력 밖이었다.

가톨릭성경,23 나는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여 보았다. “나는 지혜롭게 되리라.” 말하여 보았지만 그것은 내게서 멀리 있었다.

영어NIV,23 All this I tested by wisdom and I said, “I am determined to be wise”–but this was beyond me.

영어NASB,23 I tested all this with wisdom, and I said, “I will be wise,” but it was far from me.

영어MSG,23 I tested everything in my search for wisdom. I set out to be wise, but it was beyond me,

영어NRSV,23 All this I have tested by wisdom; I said, “I will be wise,” but it was far from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3 παντα ταυτα επειρασα εν τη σοφια ειπα σοφισθησομαι

라틴어Vulgate,23 scit enim tua conscientia quia et tu crebro maledixisti aliis

히브리어구약BHS,23 כָּל־זֹה נִסִּיתִי בַחָכְמָה אָמַרְתִּי אֶחְכָּמָה וְהִיא רְחֹוקָה מִמֶּנִּי׃

성 경: [전7:23]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멀리하였도다.-“이 모든 것”이란 앞의 내용들을 가리킨다.그리고 상반절은 전도자가 그의 지혜로 앞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으나 그 모든 내용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며 하반절도 상반절과 연관되어 전도자 자신이 지혜롭게 되어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지혜가 그에게서 멀리하였다는 고백이다.이와 같은 사실은, 한편으로는 인가적인 지혜로 는 이세상 모든 것을 헤아려 알 수 없음을 보여주며, 또 한편으로는 참다운 지혜는 인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얻어지는)것임을 암시한다(2:26).

라호크마 쉐하야 웨아모크 아모크 미 이므차엔누

개역개정,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새번역,24 지혜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멀고 깊으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우리말성경,24 지혜라는 것이 그토록 멀고 길이를 알 수 없이 심오하니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가톨릭성경,24 존재하는 것은 멀리 있으며 심오하고 심오하니 누가 그것을 찾을 수 있으리오?

영어NIV,24 Whatever wisdom may be, it is far off and most profound–who can discover it?

영어NASB,24 What has been is remote and exceedingly mysterious. Who can discover it?

영어MSG,24 far beyond me, and deep–oh so deep! Does anyone ever find it?

영어NRSV,24 That which is, is far off, and deep, very deep; who can find it out?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και αυτη εμακρυνθη απ’ εμου μακραν υπερ ο ην και βαθυ βαθος τις ευρησει αυτο

라틴어Vulgate,24 cuncta temptavi in sapientia dixi sapiens efficiar et ipsa longius recessit a me

히브리어구약BHS,24 רָחֹוק מַה־שֶּׁהָיָה וְעָמֹק עָמֹק מִי יִמְצָאֶנּוּ׃

성 경: [전7:24]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능히 통달하랴. – 이는 앞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동안 갈고 닦은 지식과 인생 경험에 바탕을 둔 나름대로의 폭넓은 식견으로도 이 세상에서 역사되어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한계성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다.된 것의 히브리어 “마쉐하야”(*)는 “존재하는 것”(what has been,NASB)을 뜻하는데, 혹자는 이를 현존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역사되어질 모든 섭리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롬 11:33 참조, M.A. Eaton).

삽보티 아니 웨립비 라다아트 웨라투르 우밬케쉬 호크마 웨헤쉬본 웨라다아트 레솨 케셀 웨핫시클루트 홀렐로트

개역개정,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새번역,25 그래도 나는 한 곳으로만 정신을 쏟아 보았다. 지혜가 무엇인지, 사물의 이치가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고 조사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다. 사악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우매가 얼마나 미친 일인지를 깨닫는 데에 정신을 쏟아 보았다.

우리말성경,25 그리하여 내가 마음을 바쳐 지혜와 사물의 이치를 알아내려고 살펴보고 연구해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얼마나 바보스럽고 미련한지 알아보려고 했다.

가톨릭성경,25 나는 마음을 다하여 지혜와 사리를 알고 찾고 구하며 과연 사악함은 우둔한 것인지 우매함은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아보기로 작정하였다.

영어NIV,25 So I turned my mind to understand, to investigate and to search out wisdom and the scheme of things and to understand the stupidity of wickedness and the madness of folly.

영어NASB,25 I directed my mind to know, to investigate, and to seek wisdom and an explanation, and to know the evil of folly and the foolishness of madness.

영어MSG,25 I concentrated with all my might, studying and exploring and seeking wisdom–the meaning of life. I also wanted to identify evil and stupidity, foolishness and craziness.

영어NRSV,25 I turned my mind to know and to search out and to seek wisdom and the sum of things, and to know that wickedness is folly and that foolishness is madness.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εκυκλωσα εγω και η καρδια μου του γνωναι και του κατασκεψασθαι και ζητησαι σοφιαν και ψηφον και του γνωναι ασεβους αφροσυνην και σκληριαν και περιφοραν

라틴어Vulgate,25 multo magis quam erat et alta profunditas quis inveniet eam

히브리어구약BHS,25 סַבֹּותִי אֲנִי וְלִבִּי לָדַעַת וְלָתוּר וּבַקֵּשׁ חָכְמָה וְחֶשְׁבֹּון וְלָדַעַת רֶשַׁע כֶּסֶל וְהַסִּכְלוּת הֹולֵלֹות׃

성 경: [전7:25]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하였더니. – 앞에서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고백한 기자는 이제 돌이켜 인간의 완악한 본성을 살피고자 한다.특히 본절에는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여러 차례 반복됨으로써 기자의 탐구 의욕이 어느 정도 간절하고 철저한지를 암시하고 있다.

우모체 아니 마르 밈마웨트 엩 하잇솨 아쉘 히 메초딤 와하라밈 랍바흐 아수림 야데하 토브 리페네 하엘로힘 임말레트 밈멘나 웨호테 일라케드 바흐

개역개정,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새번역,26 나는 또, 올가미와 같은 여자 마음이 덫과 같고, 손이 쇠사슬과 같은 여자는 죽음보다 더 쓰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남자는 그런 여자를 피할 수 있지만, 죄인은 그런 여자에게 걸려들고 말 것이다.

우리말성경,26 그러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마음이 덫과 그물 같고 손이 사슬 같은 여자는 죽음보다 더 지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그런 여자에게서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죄인은 사로잡힐 것이다.

가톨릭성경,26 그리하여 나는 여자란 죽음보다 쓰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는 올가미, 그 마음은 그물 그 손은 굴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죄인은 그에게 붙잡히고 만다.

영어NIV,26 I find more bitter than death the woman who is a snare, whose heart is a trap and whose hands are chains. The man who pleases God will escape her, but the sinner she will ensnare.

영어NASB,26 And I discovered more bitter than death the woman whose heart is snares and nets, whose hands are chains. One who is pleasing to God will escape from her, but the sinner will be captured by her.

영어MSG,26 One discovery: A woman can be a bitter pill to swallow, full of seductive scheming and grasping. The lucky escape her; the undiscerning get caught.

영어NRSV,26 I found more bitter than death the woman who is a trap, whose heart is snares and nets, whose hands are fetters; one who pleases God escapes her, but the sinner is taken by her.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και ευρισκω εγω πικροτερον υπερ θανατον συν την γυναικα ητις εστιν θηρευματα και σαγηναι καρδια αυτης δεσμοι χειρες αυτης αγαθος προ προσωπου του θεου εξαιρεθησεται απ’ αυτης και αμαρτανων συλλημφθησεται εν αυτη

라틴어Vulgate,26 lustravi universa animo meo ut scirem et considerarem et quaererem sapientiam et rationem et ut cognoscerem impietatem stulti et errorem inprudentium

히브리어구약BHS,26 וּמֹוצֶא אֲנִי מַר מִמָּוֶת אֶת־הָאִשָּׁה אֲשֶׁר־הִיא מְצֹודִים וַחֲרָמִים לִבָּהּ אֲסוּרִים יָדֶיהָ טֹוב לִפְנֵי הָאֱלֹהִים יִמָּלֵט מִמֶּנָּה וְחֹוטֵא יִלָּכֶד בָּהּ׃

성 경: [전7:26]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잡히리로다. – 본절에서 악한 여인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기자의 여자 기피 심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서의 다른 곳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9:9). 여기서는 악한 여인을 대표적으로 선정하였을 뿐이며 또 이러한 여인의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다.

레에 제 마차티 아메라 코헬레트 아하트 레아하트 림초 헤쉬본

개역개정,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새번역,27 보아라, ㉡전도자가 말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씩 찾아가는데, / ㉡히, ‘코헬렛’. ‘설교자’ 또는 ‘교사’ 또는 ‘총회의 인도자’

우리말성경,27 전도자가 말한다. “보라. 이것이 내가 깨달은 것이다. 내가 모든 이치를 알아내기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았지만

가톨릭성경,27 코헬렛의 말이다. 보아라, 결과를 얻으려고 하나하나 더듬어 내가 찾아낸 바를.

영어NIV,27 “Look,” says the Teacher, “this is what I have discovered: “Adding one thing to another to discover the scheme of things–

영어NASB,27 “Behold, I have discovered this,” says the Preacher, “adding one thing to another to find an explanation,

영어MSG,27 At least this is my experience–what I, the Quester, have pieced together as I’ve tried to make sense of life.

영어NRSV,27 See, this is what I found, says the Teacher, adding one thing to another to find the sum,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ιδε τουτο ευρον ειπεν ο εκκλησιαστης μια τη μια του ευρειν λογισμον

라틴어Vulgate,27 et inveni amariorem morte mulierem quae laqueus venatorum est et sagena cor eius vincula sunt manus illius qui placet Deo effugiet eam qui autem peccator est capietur ab illa

히브리어구약BHS,27 רְאֵה זֶה מָצָאתִי אָמְרָה קֹהֶלֶת אַחַת לְאַחַת לִמְצֹא חֶשְׁבֹּון׃

성 경: [전7:27]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원본에 의하면 본절 서두는 “레아”(*, 보라, Look, NIV;Behold, RSV, NASB)로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전도자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감탄하면서 선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쉘 오드 바케솨 나프쉬 웨로 마차티 아담 에하드 메엘레프 마차티 웨이솨 베콜 엘레 로 마차티

개역개정,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새번역,28 아직도 얻지 못하였지만, 다만 찾으면서 깨달은 것은 오로지, 천 명 가운데서 남자 하나는 찾을 수 있어도, 천 명 가운데서 여자 하나는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8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 영혼이 계속 찾아보았지만 남자 가운데는 1,000명 가운데 한 명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 여자 가운데는 한 명도 없었다.

가톨릭성경,28 내 영이 줄곧 찾아보았지만 나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나는 천 명 가운데 남자 하나를 찾아내었지만 그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여자는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영어NIV,28 while I was still searching but not finding–I found one upright man among a thousand, but not one upright woman among them all.

영어NASB,28 which I am still seeking but have not found. I have found one man among a Yousand, but I have not found a woman among all these.

영어MSG,28 But the wisdom I’ve looked for I haven’t found. I didn’t find one man or woman in a thousand worth my while.

영어NRSV,28 which my mind has sought repeatedly, but I have not found. One man among a thousand I found, but a woman among all these I have not f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28 ον ετι εζητησεν η ψυχη μου και ουχ ευρον ανθρωπον ενα απο χιλιων ευρον και γυναικα εν πασι τουτοις ουχ ευρον

라틴어Vulgate,28 ecce hoc inveni dicit Ecclesiastes unum et alterum ut invenirem rationem

히브리어구약BHS,28 אֲשֶׁר עֹוד־בִּקְשָׁה נַפְשִׁי וְלֹא מָצָאתִי אָדָם אֶחָד מֵאֶלֶף מָצָאתִי וְאִשָּׁה בְכָל־אֵלֶּה לֹא מָצָאתִי׃

성 경: [전7:28]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일천 남자 중에서…얻지 못하였느니라. –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에 대해 혹자는 죄짓기 전의 순수하고 무죄한 아담을 가리킨다고 하나(Lange)이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T.H. Leale, M.A.Eaton), 혹은 진정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D.R.Glenn)로 보는 것이 낫겠다. 또한 여기서는 남자보다 여자 가운데서 더 찾기가 어려운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역사에서 최초로 타락한 자가 남자 아닌 여자라는 맥락에서 언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딤전 2:11-15참조).그리고 본절에서 “일천”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많은 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수로 보인다(출20:6;34;7;민1:16;신1:11;욥9:3;33:23;시50:10;84:10).

레바드 레에 제 마차티 아쉘 아사 하엘로힘 엩 하아담 야솨르 웨헴마 비케슈 히쉬보노트 랍빔

개역개정,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새번역,29 그렇다.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9 내가 깨우친 것은 오직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르게 만드셨지만 사람들은 온갖 짓을 다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9 다만 이것을 보아라, 내가 찾아낸 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올곧게 만드셨지만 그들은 온갖 재주를 부린다는 것이다.

영어NIV,29 This only have I found: God made mankind upright, but men have gone in search of many schemes.”

영어NASB,29 “Behold, I have found only this, that God made men upright, but they have sought out many devices.”

영어MSG,29 Yet I did spot one ray of light in this murk: God made men and women true and upright; we’re the ones who’ve made a mess of things.

영어NRSV,29 See, this alone I found, that God made human beings straightforward, but they have devised many schemes.

헬라어구약Septuagint,29 πλην ιδε τουτο ευρον ο εποιησεν ο θεος συν τον ανθρωπον ευθη και αυτοι εζητησαν λογισμους πολλους

라틴어Vulgate,29 quam adhuc quaerit anima mea et non inveni virum de mille unum repperi mulierem ex omnibus non inveni

히브리어구약BHS,29 לְבַד רְאֵה־זֶה מָצָאתִי אֲשֶׁר עָשָׂה הָאֱלֹהִים אֶת־הָאָדָם יָשָׁר וְהֵמָּה בִקְשׁוּ חִשְּׁבֹנֹות רַבִּים׃

성 경: [전7:29]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꾀를 낸 것이라. – 이는 앞절(28절)에 이어 인간의 부패성, 죄악성을 나타낸 구절이다. “정직하게”에 해당하는 “야솨르”(*)는 “곧은”,”올바른”(upright, KJV,NIV, RSV)의 뜻으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무죄한 상태로 만드셨음을 암시하며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솨본”(*)은 “계략”, “계책” 등의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특히 아담 안에서 정죄된 인간들이(롬 5:16-21)일생 동안 의롭지 못한 일을 획책함을 뜻하며 인간 부패의 근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라틴어Vulgate,30 solummodo hoc inveni quod fecerit Deus hominem rectum et ipse se infinitis miscuerit quaestionibus quis talis ut sapiens est et quis cognovit solutionem ver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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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강해

전도서 7장 강해

[ 서 론 ]

1.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 아들의 영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육신으로 사는 자는 짐승 같아서 영생을 알지도 못합니다.

1절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1. 아름다운 이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이름입니다.

2. 사람들이 후세에 남기려는 이름과 다릅니다.(삼상15:12,삿8:27)

3.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12)

4.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시84:6)

5. 보배로운 기름은 아하수에로 왕이 처녀들에게 주어 그 몸을 아름답게 하던 몰약과 향품들 입니다.(에3:12)

※ 좋은 이름은 수많은 생명을 살려 영원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고 보배로운 기름은 젊은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잠깐 동안 사람들의 눈을 기쁘게 할뿐입니다. 존경도 잠시 뿐입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1. 죽는 날은 모든 일을 끝내고 다시 영광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날이고,

2. 출생하는 날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는 날입니다.

3. 나그네로 잠시 오는 그 날보다 모든 일을 끝내고 영광의 나라로 올라가는 그 날이 비할 데 없이 영광된 날입니다.

4.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2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1. 초상집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장사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집이고,

2. 잔치 집은 육신을 즐겁게 하며 춤추고 뛰노는 집입니다.

3. 초상집에 가면 자기도 그와 같이 될 날이 멀지 아니한 것을 보고 준비하게 하고,

4. 잔치 집에 가면 육신을 기쁘게 하여 도리어 세상과 짝하게 됩니다.

※ 생일마다 잔치하던 욥의 자녀 십 남매는 집이 무너질 때에 다 치어 죽었습니다.(욥1:19)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1. 열매를 맺는 생명으로 살아 있는 자는 이런 것들에 유심하여 자기에게 임할 그날을 예비하는데 더욱 열심하게 됩니다.

※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3절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1. 자신의 열매 없는 죽음을 슬퍼하는 슬픔은 세상에 속한 기쁨으로 웃는 자보다 나은 것은 슬퍼하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얻을 것이요 웃는 자는 사망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롬7:24)

2. 하늘을 보는 얼굴에는 세상과 짝하는 자 되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웃을 때에 도리어 근심하고 그 마음에 하늘나라의 산 소망으로 기쁘게 하십니다.

※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8)

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1. 지혜 있는 자의 마음은 항상 자기 집이 초상집이 될 것을 생각하고 그날을 예비하는데 힘쓰고,

2. 우매자의 마음은 항상 잔치 집에 있어서 육신이 먹고 마시고 뛰놀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4:8)

5절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1. 지혜자의 책망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이키게 하는 역사를 이루고,

2. 우매자의 노래는 사망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 빨리 하게 합니다.

※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하게 될까 하노라,(잠5:11-14)

6절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1.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기 전에 저가 생것과 불붙는 것을 회리바람으로 제하여 버리시리로다(시58:9)

2.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는 웃음소리요,

3. 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는 죄로 인한 심판의 날에 불타 버리게 하시는 것을 말씀하시고,

4.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는 것은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는 모든 정욕이 온 몸을 뜨겁게 하기 전입니다.

※ 세상의 부귀와 영광은 하늘의 영광을 불태우는 것이요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웃음소리는 불태우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습니다.

◎ 잠시 동안의 웃음소리가 영원한 부끄러움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고전3:15)

7절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1. 탐학은 토색과 같은 것으로 자기의 권세를 악용하여 부정한 수단으로 재물을 탐욕으로 거두며 학대하는 자입니다.(눅19:8)

2. 그와 같은 자는 자기의 지혜를 가지고 악을 행하게 되니까 도리어 우매자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3. 권세자가 재물을 탐하게 되니까 간사한 자들이 뇌물로 그의 눈을 어둡게 하여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4.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17:15)

5.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8)

※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왕하5:16)

◎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욥28:28)

8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1. 일에 대한 끝이 있으니까 시작보다 낫고 시작만 있고 끝이 없으면 그 시작도 헛된 것이 됩니다.

2.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14:29)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약5:10)

2.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3.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4.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37:7)

5. 교만한 마음은 자기를 자랑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습3:11)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이 앞잡이니라,(잠16:18)

9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는 말씀은 지혜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2. 그러므로 네가 우매자의 잘못을 깨우치고 타이르다가 그가 듣지 아니한다고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여 꾸짖지 말라고 하십니다.

3. 그의 잘못을 보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타이르는 말은 듣지 아니하고 버렸으나 네가 노하여 꾸짖으면 그것은 그가 오래도록 품고 너는 미워하게 되느니라,

4. 내가 네 혀로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라,(겔3:26)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며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10절 “옛날이 오늘보다 나음은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자가 아니니라”

1. 옛날이 오늘보다 나음을 말하는 것은 그 옛날에도 선도 있고 악이 함께 있었으나 그것을 후세에 전하는 자들이 선한 것을 보고 전하였습니다.

2. 그러면 너도 오늘 세상에서 악한 자를 보지 말고 선한 것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니라,

※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먼저 네 눈 속에 들보를 빼어라,(마7:4)

11절 “지혜는 유업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1. 지혜를 얻은 자가 남겨 놓은 말과 글은 많은 유업과 같이 후세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2. 그러나 햇빛을 보는 자 곧 빛 가운데 사는 자에게는 유익하고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버리움이 되고 있습니다.

※ 어느 것을 택하는 자가 지혜 있는 자가 되고 우매자가 되느냐,

12절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1. 지혜를 가진 자도 그 육신 생명을 보호받게 되고 돈을 가진 자도 그 육신 생명이 보호받고 있습니다.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1. 지혜는 그 지혜를 얻은 자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열매 맺게 하고 있습니다.(잠3:18)

2. 그러니까 돈보다도 지혜가 더 좋은 것을 아는 지식이 더 아름답습니다.

13절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시기로 준비된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롬9:10-24,겔16:60-63)

2. 자기의 의를 먼저 보는 사람의 지혜로는 굽게 보이지만 아무도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로 보면 곧게 하신 것입니다.(고전1:29)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1.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할 것이니,(신28:47)

2.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하늘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기쁨으로 찬송하고,

3. 곤고케 하시는 날에는 무엇을 위해서 이 곤고를 주시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장래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을 감히 헤아려 보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함께 지으셨고 행하십니다.

2. 나는 빛도 짖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짖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사45:7)

15절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1. 내가 하는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이요,

2.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다는 것은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들의 내 헛된 모든 날입니다.

3.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다는 말은 자기가 의롭게 살고 있는 그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버리는 자요,

4. 자기의 의로 인하여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의를 보이는 자가 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눅18:11)

5. 자기의 의로 인하여 자기의 죄를 가리워서 사함 받지 못하게 하여 멸망이 되고 있습니다.(요13:8)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 자기의 악행을 보고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고,(마5:4)

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슬퍼하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십니다.(롬7:24)

3. 장수한다는 것은 세상에서도 오래 살게 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 자기는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보는 자가 죄인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16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1.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보다 자기를 앞세우는 자요,

2.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는 것은 사람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가르치는 자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입니다.(마23:13)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1. 자기는 자기 생각대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하고 충성한다고 해 놓고 도리어 멸망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2. 어찌하여 그와 같은 일들을 하고 있느냐 묻고 있습니다.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17절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1. 지나치게 악인이 되는 자는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렘6:15)

2.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4:19)

3. 이것이 양심이 화인 맞은 자입니다.(딤전4:2)

4. 우매자가 되는 것은 책망하고 징계하실 때에 패역해 지는 자들입니다.

※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욱 패역하느냐(사1:5)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1.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 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잠10:27)

2.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더라,(삼하13:39)

3. 압살롬도 다윗을 반역하고 상수리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자의 죽음에 빠졌습니다.(삼하18:9)

4. 악을 행하고 기뻐하는 자는 더 큰 악을 행하게 하시는 그 날을 위하여 장수까지 주십니다.(시73:12)

※ 더 큰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수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죽게 하는 것이 그를 위한 것입니다.

18절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 너는 이것을 잡으라는 것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2. 저것을 놓지 말라는 것은 의를 행하는 생활입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 듣기를 열심하는 자는 지나친 의인과 지혜와 악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복음과 진리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요6:13,시119:9)

19절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1. 여기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요8:29)

2.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

3.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4. 이와 같은 가운데 살면서 증거하는 그 말씀을 받는 자들이 성에서 다스리는 열 명의 유사들보다 더 강하게 하십니다.

20절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1. 선을 아무리 많이 행하고 충성한다고 해도 사람은 원죄가 있어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롬7:20)

2.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아주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두 번씩입니다.(욥1:8,욥2:3)

3.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함이요 라고 하셨으니 자기도 깨닫지 못하는 깊은 곳에 죄는 숨어 있었습니다.(욥32:2)

※ 그러므로 끝까지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습니다.

21절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1. 누구든지 자기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기를 힘쓸 것이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들으려 하지 말 것입니다.

2. 염려하건대 네 집에서 나는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22절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1. 너도 가끔 다른 사람을 저주한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도 너를 저주할 것입니다.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잠26:2)

※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삼하16:10)

◎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2)

23절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1. 내가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 이 지혜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내어 좋은 것만 취하는 지혜 자가 되려고 해 보았습니다.

2. 그러나 알아보려고 하면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지혜자가 되기에는 멀리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 천 다섯이며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왕상4:32-33,창2:19-20) 아담

24절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능히 통달하랴”

1. 무릇 된 것이라는 것은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하신 것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요1:3)

2.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에 대하여서도 사람의 지혜로 측량하기에는 너무나 멀고,

3.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라고 하신 그 신성은 너무 깊고 또 깊어서 통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롬1:20)

※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 장차 하늘에서 이루시는 영광은 우리가 능히 측량도 할 수가 없습니다.(욥26:14)

25절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1. 내가 돌이켜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지혜와 명철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궁구해서,

2. 악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되고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이 되는 것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3. 악한 것이 어리석게 하고 어리석은 것이 미친 자의 생활로 나타나게 됩니다.

26절 “내가 깨달은 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1.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다고 하시는 것은 사람이 다니는 길에 올무를 놓고 기다리다가 그를 잡으려는 악한 마음이요,(잠1:11-16,마22:15)

2. 그물 같다고 하셨으니 새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치고 숨어 기다리는 자입니다.

3.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시10:9)

4. 손이 포승 같은 것은 올무와 그물로 잡은 것들을 꽁꽁 결박해 쥐고 결코 풀어 주지 아니합니다.

5. 다른 형제가 범죄하기를 기다리고 노려보다가 붙잡기만 하면 결박하여 들고 돌아다니면서 논단하고 있습니다.(레19:16)

6. 여인이라고 하신 것은 지혜가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라고 하셨고,(잠2:16)

7. 사람의 딸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죽게 하는 역사입니다.(창6:1)

※ 사망보다 독한 자라고 하셨으니 육신을 죽이는 자보다 그 영혼을 죽여 영원한 사망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 죽은 다음에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저주하고 다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1. 하늘의 영광된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그와 같은 여자의 올무와 그물과 포승을 피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십니다.

2. 그러나 세상과 짝하는 죄인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잡히게 하십니다. 발락이 더 나쁘냐? 발람이 더 나쁘냐?(민23:37)

※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9-12)

27절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절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1. 전도자는 하나님의 지혜로 생명의 도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2. 헛되고 헛된 것들의 수를 낱낱이 세어서 그 수를 알고자 하였으나 깨달은 것은 이것뿐이라,

3. 내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수도 알지 못하겠고 끝도 없는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무저갱입니다.(계20:3)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 하였느니라”

1.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남자 중에서는 한마디 지혜를 얻었거니와,

2. 세상을 내려다보는 여자 중에서는 한 마디의 지혜도 얻지 못 하였느니라,

※ 남자와 일천 명을 만나서 겨우 한마디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10:8)

29절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1.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에게 그 지혜가 깨닫게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창1:27)

3.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 실과를 먹은 그 거역의 씨가 원죄가 되어 하나님을 속이려는 많은 꾀를 낸 것입니다.(창3:6)

4.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고 무화과나무 사이에 숨었고 핑계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그 수를 다 세아릴 수도 없고 끝도 알지 못합니다.

◎ 따라서 육신으로 세상을 보는 자의 죄도 끝이 없습니다.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창27:39)

[ 결 론 ]

1.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동안 육신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을 깨달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늘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주어 영원한 생명 안에 살게 하십니다.

[전도서 7장]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본문: 전도서 7:1~29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세 가지 유형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돈과 명예가 많으면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둘째는 자식이 많고 장수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질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지식이 있는가? 질문이었습니다.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은 전도서는 No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공상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것을 해주지 않는 가에 대해 하나님과 따지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상은 우리에게 독이 되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도서 1~6장 까지 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빠질 때 허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7장부터는 설교자는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오늘 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I. 나는 누구인가? (v1~14)

(1) 죽음을 늘 묵상하는 나 (v1~4)

v1~4절에서는 설교자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의 끝이 있음을 알게 하고 있습니다. 1a절을 보십시오. “좋은 이름이 귀한 향유보다 낫고” “좋은 이름”은 그 사람이 남긴 평판을 말합니다. “항유”는 죽은 자에게 바르는 기름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시체에 이런 기름을 바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평판을 남기는 것이 부하게만 살다가 죽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1:39“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히브리서에 소개된 믿음의 조상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뿐 옥에 갇히는 시련과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며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히브리서 11:36~38) 그러나 그들은 좋은 이름을 얻었습니다.

1b절을 보십시오. “죽는 날이 사람의 태어난 날보다 나으니라.” 설교자에게는 “죽는 날”이 배가 만선을 하고 돌아오는 날과 같습니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나은 것은 인생의 모진 풍파를 끝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애곡하는 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라. 살아 있는 자는 그것을 자기 마음에 두리라.” “애곡하는 집”은 초상집을 의미합니다. 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좋습니까? 이는 우리 모두가 죽는 사실을 마음에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은 짐승의 삶과 같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슬픔이 웃음보다 나으니 이는 얼굴의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이 더 나아지기 때문이니라.” 이 구절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결코 웃음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인생은 고통입니다. 생노병사의 고통 속에서 사는 인생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통찰할 때 슬픔이 웃음보다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이 슬픔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합니다. 자신의 창조주를 찾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애곡하는 집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희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희락”은 쾌락을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먹고 마시면서 앞서 언급한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없는 삶입니다. 이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의 마음은 늘 “애곡하는 집”에 있습니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이 가야 곳을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함을 생각합니다.

(2) 치명적인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는 나 (v5~7)

5~6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사람에게 나으니라 가시나무가 솥 밑에서 우지직 소리를 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의 웃음도 그와 같나니 이것도 헛되니라.” 솔로몬 시대 중동에는 땔감이 부족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땔감의 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가시나무입니다. 가시나무는 불에 던져지면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마치 화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쉬 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실속이 없는 땔감의 재료입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자들은 사람들의 사탕바림과 같은 칭찬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에는 실속이 없습니다. 진정한 실속은 지혜로운 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에서 어리석은 자들만이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7절을 보십시오. “참으로 학대는 지혜로운 자를 미치게 하며 뇌물은 마음을 파멸시키느니라.” 지혜로운 자도 때로는 인생길을 걸을 때, 부에 대해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학대”란 의미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를 통해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뇌물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5~7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실수를 범하고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자들도 어리석음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가르쳐 죽고 있습니다.

(3) 인생의 역경을 견디며 살아가는 나 (v8~10)

8~9절을 보십시오. “일의 끝이 일의 시작보다 낫고 영 안에서 참는 자가 영 안에서 교만한 자보다 나으니 네 영이 조급하여 분노하지 말라. 분노는 어리석은 자들의 품에 머무느니라.” “일의 끝이 일의 시작보다 낫고”의 의미는 지혜로운 자는 일의 끝과 시작을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 과정에서 올 어려움과 고난까지도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속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내하는 자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결코 인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가는 자는 인생의 길에서 넘어져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인생의 쓴 뿌리, 분노가가득합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또한 과거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르기를, 이전의 날들이 지금의 날들보다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이냐? 하지 말라. 네가 이것에 대하여 지혜롭게 묻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의 의미는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한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인생의 길을 자신의 힘으로 삽니다. 그리고 넘어진 후에는 분노와 불평, 그리고 과거에 매여 삽니다. 이런 삶은 지혜로운 자의 삶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는 인생의 모든 일들을 다 예상합니다. 그리고 인내합니다. 뒤에 남겨진 것을 보지 않고 앞을 보고 전진합니다. 이런 삶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인내합니다.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 모두 가 인생의 역경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이점은 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차이입니다.

(4)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 (v11~14)

11~12절을 보십시오. “지혜는 상속 재산과 더불어 좋은 것이니 그것을 통하여 해를 쳐다보는 자들에게 유익이 있도다. 지혜는 방벽이며 돈은 방벽이니라. ”지혜는 상속 재산과 더불어 좋은 것이니“ 상속 재산을 받을 때, 그 재산을 지혜롭게 사용할 지혜를 함께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받은 재산을 잘 지키고,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지혜“는 사람의 인간적인 지혜를 의미합니다.”방벽“이라는 의미는 ”안식처 또는 ”피난처“란 의미입니다. 돈이 인생의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돈을 잘 관리하는 재능 또한 인생의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삶에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는 돈과 그를 잘 관리하는 지혜가 언제나 영원할 수 있을까요?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깊이 생각해 보라. 그분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우리 인생이 항상 탄탄대로만을 달릴 수는 없습니다. 굽은 길도 걸어야 가야 합니다. 그리고 굽은 길을 가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14a를 보십시오. ”형통하는 날에는 기뻐하되 역경을 당하는 날에는 깊이 생각하라.” 하나님은 형통한 날과 역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쭉 뻗은 길로도 가게 하시고, 굽은 길로도 가게 하십니다. 인생이 형통할 때는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역경이 오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이 두 가지를 주신 것은 인생을 겸손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II.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v15~18)

(1) 지나치게 의로운 인생

“나의 허무한 날들 속에서 내가 모든 일을 보았는데 자기의 의로움 속에서 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사악함 속에서 자기 생명을 길게 하는 사악한 자가 있도다. “지나치게 의로운 자가 되지도 말며 스스로 지나치게 지혜로운 자가 되지도 말라. 어찌하여 네가 네 자신을 멸하려 하느냐?” 인생을 살아갈 때 악인이 득세하고 장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럴 때에 의로운 마음이 가득하여 악인과 싸우려고 하는 의인이 있습니다. 이 불의한 사회를 개조해 보고자 사회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악한 자들의 반격과 덫에 빠져 자기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2) 지나치게 악과 타협한 인생

또한 17절에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너는 지나치게 사악한 자가 되지도 말며 어리석은 자가 되지도 말라. 어찌하여 네가 네 때가 이르기도 전에 죽으려 하느냐?” 악인과 결탁하여 사는 것입니다. 악인과 결탁하여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하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강제로 거두어 가십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

또 다른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입니다. “네가 이것을 붙잡고 참으로 네 손을 이것에서 거두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것들 모두에서 벗어나리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26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제 설교자는 그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III.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가? (v19~29)

19절은 지혜의 가치 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지혜로운 자를 도시 안에 있는 열 명의 용사보다 강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은 지혜를 얻은 자가 열 명의 용사 열 명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과 같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열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또한 ‘용사’는 통치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열 명의 용사는 세상의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권력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왜 지혜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까? 지혜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땅 위에 하나도 없느니라.” 설교자는 이 땅에서 의로운 자는 그 누구도 없다고 말합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네가 들을까 염려하노라. 너도 그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였음을 네 마음도 종종 아느니라.” 21~22절은 이 세상에 의로운 인간이 없다는 하나의 일예가 됩니다. 누구든지 그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저주가 있습니다. 이는 종과 주인이 같습니다. 차이는 누가 덜 하느냐의 차이뿐입니다.

설교자는 인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의로운 인생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롭게 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23~24절에서 설교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찾고 또 찾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가 멀리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내게서 멀리 있었도다” 또한 24절에서 지혜를 자신의 힘으로 찾을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멀리 있고 지극히 깊은 것을 누가 능히 찾아내리요?” 솔로몬은 지혜를 실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가 무엇인가?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깊게 알고자 하면 알수록 그는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안다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알게 된 지혜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시시오. 음녀의 존재입니다. 음녀가 사람을 유혹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창녀가 젊은이를 속여 꾀여 내듯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속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그 여자의 꾐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하나씩 하나씩 세어가며 전말을 알아내어 이것을 알게 되었노라.” 전도자는 우리 인생에 구원자가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중에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은 “한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가 지혜롭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열은 완전수입니다. 열이 두 번 곱한 수가 1000입니다. 3 또한 완전수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인류 중에서 한 남자만이 의로우며, 그 분을 통해 의로워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 “한 남자”는 누구냐? 여기서 솔로몬은 막혔습니다. 도저히 그가 누군지를 더 이상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이 누군지를 압니다. 그 분은 천하 만민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29절은 “한 남자“ 구원자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그들이 많은 창안물을 찾아냈다는 것이라.” 29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곧 바르게, 의로운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안물’의 의미는 ‘생각, 계획, 계략, 또는 계책’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을 구별하고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과 계략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악이 들어오게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복잡하게 악한 일에 연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선을 알면서도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사는것과 죽는것(전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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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사는 것과 죽는 것

성경: 전도서 7:2

기독교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는 곳입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물음의 해답을 가장 빠르게 얻어내려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통하여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삶의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백년대계를 꿈꾸고 계획을 세울지라도 오늘 하루만 산다는 심정으로 살아야 바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서며 오늘도 무사히 건강하게 주님 은혜 안에서 살게 해 주시기를 마음속으로 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기도를 더 보태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준비된 사람으로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지금 현제 세계에서는 하루 동안에 죽는 사람이 170만 명입니다 하루 동안에 죽는 사람이 1초에 20명입니다. 시골보다도 큰 도시가 하루에 하나씩 쓸어져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세의 말처럼 홍수처럼 쓸어 가는 것입니다.

어느 전도인의 뼈저린 가슴 아픈 사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이였습니다. 가족들은 충격을 받을까 암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가슴에 있는 혹을 떼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제 아물면 퇴원한다는 말로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목사님은 매일같이 찾아가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도무지 마음 문을 열지를 안더랍니다. 목사님 이제 퇴원하면 제가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예수 믿는 거 생각해 보겠습니다. 의사 말로는 혹을 떼냈으니 한 달만 지니면 퇴원할 수 있데요. 그의 말을 들으며 얼마나 인생의 비애를 느끼며 고통을 겪었는지 모른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활보하며 걸어 다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와 같이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을 쌓아놓고 세월에 맞추어 갖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죽음의 운명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 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죽음 앞에 솔직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기에 즉 오래 살 것으로만 알기에 바로 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을 통해서 들은 얘긴데 70이 다 된 할아버지가 이혼을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70까지 살고서는 이제 와서 무슨 이혼을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70까지 살았으니 다만 이제 와서라도 얼마라도 편하게 살아야 하겠으니 이혼을 해야 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곽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만약 지금 할머니가 죽을병에 걸려서 한 달 안에 돌아가신다면 그래도 이혼을 하겠느냐고 했더니 그렇다면 그럭저럭 그냥 살아야 하겠지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한 달밖에 못 살 것이라는 심정으로 사시면 되겠네요. 그다음에도 안 돌아가시면 역시 그러게 한 달밖에 못 사신다는 심정으로 사시다 보면 행복하신 날도 있으실 것입니다.라고 이혼 계획을 취소시켜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말론적 심정으로 살 때 겸손해지고 솔직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 산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인가가 확실해질 것입니다.

영국의 대 설교가였던 스펄전 목사님은 40대 초반부터 고치기 힘든 어떤 지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이런 말을 자주 했답니다. 오늘 설교가 마지막 설교가 될 것 같아 같은 말이지만 내가 꼭 하고 싶은 그 설교를 또 하겠습니다.라고 이미 하셨던 설교를 또 하셨지만 그때마다 온 교우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마지막 설교하는 심정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하루밖에 못 산다면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를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없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긴박감을 가지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드리는 자세가 달라지고 매일 듣던 소리라도 다르게 들릴 것입니다. 사실 내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루밖에 못 산다고 가정할 때에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저와 여러분들이 죽기 전에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1. 나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모든 것은 다 이별을 해야 하는데 만나야 하는 한분이 계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분은 예수를 아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 목사가 미국에 선교사로 갔을 때 오글로 소프라는 목사가 묻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목사에게 예수를 아느냐고 묻는 것은 얼마나 완고한 태도입니까? 그러나 요한 웨슬레에게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웨슬레는 “예 압니다” 이 세상의 죄를 대신하신 분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오글로 소프 목사는 다시 묻기를 그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에게는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웨슬레는 우물쭈물 대답을 하긴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서는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나는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할까 나의 믿음이 어딘가 잘못이 있나 보다 뼈아픈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선교사 일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오늘 저녁이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런 상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렇게 열병을 치르듯 진통하는 가운데 어느 모임에 참석하여 드디어 하나님이 그에게 빛을 던져 주심으로 거듭난 체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기독교 역사에 샛별처럼 빚 나는 요한 웨슬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마치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확률이 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에게도 구원의 확률이 50% 라고 하는 인상을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마 24:40:41)

여러분의 신앙이 아직도 바로 되어 있지 않다면 이 시간을 통해 해결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어떠한 관계입니까?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2. 교회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를 제처 놓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교회와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고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분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와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고는 충성된 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교회에 위선이 많아서 못 나가겠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위선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 중에 위선자가 있다고 해서 아플 때 병원에 안 가겠습니까? 학교 교사들 중에 위선자가 있다고 해서 자녀들을 학교에 안 보내겠습니까? 계란을 한 줄 샀는데 그중에 한두 개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해서 그 후부터 계란 먹는 것을 그만두겠습니까?

3.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잘못된 모습을 남겨놓고 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의 모습은 바로 영원한 사람입니다. 죽으면 다시 고칠 수 없습니다.

4. 돈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죽는 데 돈 문제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돈 문제야 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항상 깨끗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 빛을 지거나 돈을 떼먹고 죽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부득이 부채를 지는 일이 있다면 분명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꼭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빛을 지고 갚지 못할 때 기독교를 들먹입니다. 빚을 지고 갚을 수 있는데도 갚지 않는다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세상은 부정직한 사람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돈 관계에 항상 깨끗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갚는다고 하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대한 빛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빛도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날들이 있을지라도 하루밖에 못 산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반문하기를 그것은 당장 죽어가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나는 아직 몇십 년을 더 살지 모르기에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장 죽는 심정으로 살지 아니하면 하늘에 보화를 쌓아 놓을 수 없고 바로 살 수도 없고 주님을 만날 준비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때라도 위로부터 소환장이 날아오면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후회 없는 생애를 사실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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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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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깨닫고 사는 삶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지혜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을 깨닫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늘의 지혜를 받아 복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깨닫고 사는 삶(전 7:19-22)

전 7: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 7: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전 7: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지도자 솔로몬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조심하며 알고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는 그 지혜의 소유자에게 어떠한 능력을 제공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지혜로운 자가 열 사람의 유사보다 낫다 <19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열 사람의 유사라고 하는 것은 그 성읍을 대표하는 유지를 의미합니다. 즉 그 성의 실권자, 성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한 사람이 돈푼이나 벌고 세상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열 명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 의미를 다시 두 가지로 분류해 봅시다.

첫째, 지혜의 힘이 물리적인 힘보다 우월하고, 믿음의 힘이 무력의 힘보다 강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믿음으로 승리했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한 예로, 아람 나라가 사마리아 성을 쳐들어 왔을 때 기도의 사람이었던 엘리사의 기도로 이 아람 나라 군사들을 유도해서 사마리아 성안으로 데려왔던 기가 막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군인들은 활 한번 쏘지를 않았습니다. 창 한번 던진 일도 없었고 칼 한번 휘두~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와 하나님과의 직통 기도와 그 능력의 힘을 통해서 아람 나라를 대파시킨 것은 무력의 힘보다 기도의 힘과 지혜의 힘이 더 강함을 입증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지혜자의 가치는 힘만 믿고 사는 열 명의 집권자, 혹은 성공한 사람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6일 전쟁을 통해서 아랍을 대파했던 그 사건을 굉장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또 자랑하고 있습니다. 6일 전쟁의 경우 무력과 무력의 싸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힘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막강한 아랍 나라를 6일 동안에 이겼던 것은 군인이나 무기가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과의 전쟁을 앞두고 각료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비교 검토해 보았더니 20:1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를 짜내 새로운 전략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던 것처럼 첫째 날 제공권을 장악하여 6일 동안에 전쟁을 끝내고 일곱째 날에는 쉬자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들은 창조의 순서를 전쟁의 순서에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은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으니 우리도 엿새는 전쟁을 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자는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6일 전쟁입니다. 이것은 힘의 싸움이 아니라 지혜의 싸움이었습니다. 지혜의 힘은 물리적인 힘보다 강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돈을 벌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는 사람이 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의인이 없어서였지 그 동네에 유명한 정치가나 실업가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의로운 사람 하나의 힘과 지혜로운 한 사람의 힘은 열 명의 유명 인사보다 더 위대합니다.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존재 가치가 없어 보였지만 실상은 강한 교회 실상은 튼튼한 교회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그 교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문제를 기도와 믿음으로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 열왕기서를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똑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문제는, 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쳐들어와서 항복하라고 협박했을 때 그는 각료 회의나 군사 작전 회의를 소집하기 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협박 편지를 가지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펴놓고는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그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만일 히스기야가 각료 회의를 갖고 군사 작전 회의를 해서 군사를 동원해 싸움을 벌였더라면 이길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엄청난 희생을 지불해야 했을 것입니다. 앗수르 군사 18만 명을 죽이려면 이스라엘 백성도 그 수만큼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인간의 지혜를 유보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동원해서 18만 명이 넘는 앗수르 군사를 진멸시키셨습니다.

둘째 문제는,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히스기야는 고침 받고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엎드려서 기도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포기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며 내 마음의 자리를 비울 때 주께서 내 심령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다” <계 3:20>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교만과 경험을 믿기 때문입니다.

2>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 <20절>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전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제아무리 선을 추구하고 경건의 모습을 갖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왕상 8:46> 이 일에 대해서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라고 했고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전적인 부패를 알고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또한 알아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된 지혜를 얻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지혜는 죄인에게 그가 걷고 있는 악한 과정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며 그로 하여금 유일한 안전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돌이키게 해 줄 것입니다.

3>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면 저주하는 것을 듣게 된다 <21절>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관한 나쁜 소식에 심각한 주의를 기울이지 말며 그러한 왜곡된 사실에 의하여 자신의 견해와 행동을 제약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모욕을 들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소문과 풍문에 의해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삼하 16:11> 사람들은 이웃에게 대한 칭찬보다는 비평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므로 이웃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전 4:3>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발견되는 것이므로 남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딤후 1: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롬 12:3절에”너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근신하는 마음을 다른 말로 가장 근사치로 바꾼다면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낱말 자체가 지혜라는 뜻은 아니지만 가장 근사치의 의미가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도록 주신 선물은 “능력과 사랑과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지혜가 왜 소중합니까? 두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우리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자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쩔 줄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이 고난을 없애 주세요 이 시련과 역경을 없애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이렇게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삶에서 내가 가는 출구를 열어주며 내 삶을 발전시키고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요한 기도를 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주신 놀라운 선물 가운데 하나가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왜 이 사실을 모르십니까? 왜 활용하지 않으시나요? 인간의 지혜를 포기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며 내 마음의 자리를 비울 때 주께서 내 심령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교만과 경험을 믿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그렇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전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제 아무리 선을 추구하고 경건의 모습을 갖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왕상 8:46> 이 일에 대해서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라고 했고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전적인 부패를 알고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또한 알아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된 지혜를 얻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지혜는 죄인에게 그가 걷고 있는 악한 과정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며 그로 하여금 유일한 안전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돌이키게 해 줄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면 저주하는 것을 듣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의 비판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들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조만간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모욕을 들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소문과 풍문에 의해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삼하 16:11> 사람들은 이웃에게 대한 칭찬보다는 비평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므로 이웃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 4:3>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발견되는 것이므로 남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약 3장에 말이 나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꼭 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삶의 바퀴를 사르는 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박혀서 미움과 악독으로 평생을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그 한마디 타격이 불씨가 되어 그 생애가 흘러가는 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 미움의 불이 타오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향해서 무심코 던진 너는 쓸모없는 놈이라는 한마디의 말이 그 아이의 마음속을 평생 불사릅니다.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타격을 받습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말이 어떤 한 형제의 가슴속에 깊은 고통을 줍니다. 생애의 바퀴를 불사릅니다. 이처럼 무서운 영향력을 갖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말, 마치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내 생애를 그처럼 마음대로 방향을 전환시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력을 주면서 자랄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엄마 거짓말과 도적질 중에 어느 것이 나쁘지” 하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가 “도적질이 나쁘지!” 그랬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니에요 엄마 거짓말이에요. “왜 그러니?” 도적질이야 물건 갖다 주면 변상이 되지만 거짓말은 변상이 안되잖아요” 옳은 말입니다.

불행한 것은 우리가 평생에 그렇게 많이 사용하고 늘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말을 가지고 내가 주변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모르는 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참으로 자랐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네 말의 습관이 어떤가 보아라! 그 말이란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말의 영향력이 엄청난 것에 대해서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손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죽이지만 말은 멀리 있는 사람도 죽인다. 화살처럼 그렇지만 화살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화살은 손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말의 쏘아대는 무서운 살상력은 피할 세력이 없다” 말의 영향력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나갈 말과 안 나갈 말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안 좋은 것을 마음에 아무리 품고 있어도 참고 있으면 상대방과의 사이에 틈을 내지 않고 저절로 해결되는데 일단 말을 해 놓으면 내 마음이 바뀌어져도 그 말은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주님과 날마다 교제해야 합니다.

누구와 만나서 어떤 말씨를 배우느냐에 따라서 내 말의 습관이 달라집니다. 사 50: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 우리 주님께 기도하고 그 주님과 깊이 교제합시다. 침묵할 줄 아는 은혜를 우리 주님에게서 배워야겠습니다. 쓸모없는 이야기는 안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3> 말의 실수를 자백하십시오

내가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자백하십시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입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사람들이 정답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틀렸을 때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참 편합니다. 정답을 무시하면 말이 길어집니다.

4>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혀가 길들여졌습니다. 언제입니까?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였습니다. 그 입술이 열려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 입술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이 땅에 힘차게 전파하는 입술로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자랑만 하던 입술이었습니다. 뽐내던 입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했던 입술이었습니다.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 입술이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많은 사람에게 힘 있게 전하는 능력의 입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입니다. 내 입술의 방향이 바뀌어졌습니다. 길들일 수 없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갖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언어를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구주입니다.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찬미하는 입술로 바뀝니다.

성령 충만이 우리의 입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온전한 능력이십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혀가 술에 취하지 않고 오직 성령 충만할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며 놀라운 생애로 변화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한번밖에 못 사는 생애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언어생활 이 부분이 성장하고 있는 가 내속에 바뀌어져야 할 언어 습관이나 입에 쉽게 붙어 있는 거짓말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는 없는가를 살펴보면서 성숙한 언어생활이 되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하십시다. 그런데 만약 거슬리는 비판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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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 성경주석 – BIB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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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도서 7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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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금) â€œì „ë„ì„œ 7:1-29” / 작성: ì •í•œ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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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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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전도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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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히브리어 전도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토브 쉠 미쉐멘 토브 웨욤 함마윁 미욤 히왈도 개역개정,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새번역,1 명예가 값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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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전도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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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도서강해/제7장 지혜를 얻는 길(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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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스크랩] 전도서강해/제7장 지혜를 얻는 길(7:1∼29) 오늘은 전도서 7장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혹시 몇 해 전에 상영되었던 “쉰들러 리스트”라는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스크랩] 전도서강해/제7장 지혜를 얻는 길(7:1∼29) 오늘은 전도서 7장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혹시 몇 해 전에 상영되었던 “쉰들러 리스트”라는 … 제7장 지혜를 얻는 길(7:1∼29) < 개 요 > 1. 7:1∼14 지혜의 소중함 2. 7:15∼22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 3. 7:23∼29 지혜를 얻는 길 오늘은 전도서 7장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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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도서강해/제7장 지혜를 얻는 길(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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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성경장로교회 – [전도서 7장]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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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언약성경장로교회 – [전도서 7장]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지금까지 전도서 1~6장 까지 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빠질 때 허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7장부터는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언약성경장로교회 – [전도서 7장]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지금까지 전도서 1~6장 까지 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빠질 때 허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7장부터는 … 언약적 구속사, 성경, 강설, 강해언약성경장로교회 홈페이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말씀의 교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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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성경장로교회 – [전도서 7장]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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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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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깨닫고 사는 삶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깨닫고 사는 삶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깨닫고 사는 삶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지혜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을 깨닫..베데스다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치료받았던 장소입니다. 치료의 기적이 나타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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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깨닫고 사는 삶(전 719-22)

[전도서 7장 주일 설교말씀] 깨닫고 사는 삶(전도서 7: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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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사는것과 죽는것(전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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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사는것과 죽는것(전 7:2) 안녕하세요.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사는것과 죽는것(전 7:2) 안녕하세요.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사는 것과 죽는 것 성경: 전도서 7:2 기독교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학과 설교와 상담 자료를 모아 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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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강해 설교문] 사는것과 죽는것(전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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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주석강해설교] 지혜와 어리석음이 대조됨(전 7:1-29)

반응형 전도서 기자는 생활 가운데 필요한 참 지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과 행동을 지혜롭게 하여 칭찬을 받습니다. 우리는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하고 육적인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영적 지혜는 구원받는데 필요하고 육적 지혜는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갖추어 하나님께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대조됨(전 7:1-29) [1절]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 . . . 본문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사람이 죽은 후에 그에게 붙여지는 이름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경건한 사람,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 등의 이름이다. 그것은 오래 남는다. 보배로운 기름은 값비싼 향유를 가리킨다. 그것은 잠시 동안은 좋은 향기를 낸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인 향기에 불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고 없어질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올리운 자로 기억되며,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 기억된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기억되며,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한 자이며 형통함을 얻은 자로 기억된다. 다윗은 믿음과 찬송의 사람으로 기억되며, 히스기야는 경건한 자로 기억된다. 저들은 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다. 본문은 또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죽는 날은 사람이 일생을 마감하는 날이다. 의인은 그의 의로운 생을 정리하고 결산하며 그의 이름을 남기는 날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셨다. 죽는 날은 또 의인이 죄와 슬픔, 질병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그러나 출생하는 날은 사람이 생을 시작하는 날로서 어떻게 살지 미지수이다. 믿음으로 살고 의롭게 살면 그의 생이 복되지만, 믿음 없이 살고 죄만 짓고 살면 그의 생은 큰 화가 된다.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던 제게 좋을 뻔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보배로운 기름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귀히 여기자. 단지 생일을 축하하지 말고 믿음으로 의롭고 선하게 살다가 죽기를 사모하자. [2-4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 . . 본문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기회가 없고 경건하고 바른생활, 근신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초상을 당한 집에 조문하러 가면,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죽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유익이 많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해지며, 죽음을 생각할 때에 죄악 된 일,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일, 양심에 거리끼는 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버릴 것이다. 본문은 또,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라고 말한다. 사람이 웃을 때는 자기 부족과 연약을 잊어버리고 죽음의 일도 잊어버리기 쉽고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죽음을 대비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인해 슬퍼하고 죽음의 문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탁할 때 심령에 은혜와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특히 회개의 슬픔은 유익이 많다. 주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5:4). 그러므로 본문은 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매자들은 잔칫집에 빠지지 않고 모여든다. 그들은 현재의 육신적 즐거움을 좋아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지혜자들은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참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에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더욱 가다듬게 되고 내세를 준비하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참석하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며 내세를 준비하자.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며, 죄악 된 일을 멀리하자. [5절]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본문은,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다. 책망을 좋아하는 자가 없고 책망 자체는 듣는 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무겁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바른 지적과 책망은 결국 유익을 줄 것이다. 책망을 들은 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고 고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6:23은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라고 말하였고,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라고 했다. 또 옛날부터 참 선지자는 책망의 설교를 하였다. 예레미야 28:8-9,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행치 않고 불경건과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우매자의 노래는 듣기는 좋으며 마음을 즐겁게 할지 모르나 유익이 없다. 그것은 전도서 2:2에서 전도자가 웃음을 논하여 미친 것이라고 표현하고 희락을 논하여 저가 무엇을 하는가고 한 것에 딱 맞다. 아모스 6:5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유다 백성이 비파에 맞춰 헛된 노래를 지절거렸다고 증거 하며 책망하였다. 사람의 참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 안에서만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은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풍성한 평안과 행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유행가 같은 우매자의 노래를 좋아하지 말자. 우리는 오히려 지혜로운 종들과 동료들과 이웃들의 책망과 권면을 좋아하자. [6-7절]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 . . . 본문은, “[이는]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매자의 노래소리보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더 나은 이유를 보인다.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는 일시적으로는 요란하지만 곧 그친다.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요란스러워도 무가치하고 허무하다. 본문은 또,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탐학’이라는 원어(오쉐크)는 ‘압제, 토색[강제로 빼앗음], 토색으로 얻은 이익’을 뜻한다(BDB). 이것은 위협하여 강압적으로 빼앗는 이익을 가리킨다. 이것은 일종의 탐심이다. 성경은 탐심을 정죄하며 경계한다. 디모데전서 6:9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라고 말한다. 롯의 아내는 재산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다(창 19:26). 아간은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 또 50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탐하다가 그 가족과 함께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수 7장). 게하시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탐하다가 나병에 걸렸다(왕하 5장). 또 뇌물은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는 악한 것이다. 출애굽기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신명기 16:19,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우리는 의롭게 번 적은 소득이 복됨을 알아야 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매자의 기쁨을 버리고, 또 토색과 탐심, 또는 뇌물을 멀리하며, 불의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정직하게 번 소득으로 살아가자. [8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본문은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큰 일, 좋은 일이라도, 일의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일 뿐, 그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일이 잘 안 되어서 오히려 해가 되거나 수치가 될 수도 있다. 일의 끝은 일이 성취되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잘 계획하고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잘 진행하고 치명적 실수를 막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잘 이기고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잘 성취하려면 인내가 필요하고 또 인내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많은 노력과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낙심치 않고 오래 참은 자들이다. 농부도 밭 갈고 씨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김매고 병충해 막고 이렇게 참고 일해야 추수하게 될 것이다. 직장인도 겸손히 참고 일을 배우고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커서 취직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삶 전체가 그러하다. 겸손과 인내는 인생의 성공적의 삶의 필수적인 덕이다. 신앙생활도 비슷하다. 주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성공적인 신앙인을 묘사하시기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하셨다(눅 8:15). 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라고 교훈하였다(약 5:7-8). 믿음은 인내를 수반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하자.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겸손과 인내로 행하면 잘 될 것이다. 신앙생활도 이치가 비슷하다. 우리는 겸손과 인내로 주를 섬기자. [9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본문은,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라고 말한다. ‘마음’이라는 원어는 ‘영’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영의 활동이다. 우리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한 노가 있다. 불의를 보고 노하는 의분은 정당성이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가 있다(나 1:6). 예수께서 채찍으로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신 의분도 있다(요 2:15). 핍박하는 악인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호소한 시편의 글들도 이런 의미에서 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지나치고 잘못되기 쉽다. 그러므로 잠언은 미련한 자가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고(잠 12:16) 속히 노하며(잠 14:17) 그 노를 다 드러낸다(잠 29:11)고 말한다. 또 야고보서 1:20은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노하기를 더디 하라고 교훈한다. 그것은 인내의 한 면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는 것이다.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며(잠 14:29) 슬기로운 자라고 말하고(잠 19:11), 또 그런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말한다(잠 16:32). 또 주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마 5:44).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한다고 말했고(고전 13:4-5),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라고 교훈하였고, 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라고 하였다(엡 4:26, 31-32). 우리는 쉽게, 급히 노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우매자의 행위임을 명심하자.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남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자. [10절]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본문은,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라고 말한다.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비교가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도 단편적인 이야기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역사에는 항상 이면적 이야기가 있음을 안다. 우리는 옛날이 오늘보다 나았다는 불평 어린 평가를 버리자. 실상, 옛날에도 어려운 일들은 있었을 것이고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현실을 겸손히 긍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현재 어떤 부족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생각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라면 우리는 즉시 회개하며 그것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지만, 만일 그것이 단순히 하나님이 주신 훈련 과정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참고 견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과 돌보심을 구해야 할 것이며, 또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건하고 의롭고 성결하게 살면서 미래의 평안을 기대하며 참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이 많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의 징책하심보다 크시다. 사사기는 111년의 징계의 햇수와 296년의 평안의 햇수를 증거 한다. 시편 30:5는,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예비하셨고(여호와 이레)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셨고(만나와 메추라기) 우리를 인도하셨고(불기둥과 구름기둥) 이곳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에벤에셀).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현실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간구하자. [11-12절]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 . . . 본문은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라고 말한다. ‘햇빛을 보는 자’는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부모로부터 받는 유업과 유산은 물질적 유여함을 주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지혜가 이와 같이 아름답고 유익하고 좋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은 “[이는]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라고 말한다. 본문은 지혜와 돈이 다 보호하는 것이 되지만, 지혜가 돈보다 더 낫다고 말한다. 돈이 있으면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고 편안한 집에서 살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좋은 의사와 약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 돈이 있으면 자녀도 좋은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 이처럼 돈은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자녀를 보호하는 점이 있다. 이와 같이, 지혜도 우리를 보호한다. 지혜는 잘못된 빚보증을 하지 않게 함으로 재산을 보호한다. 지혜는 우리를 게으르지 않게 함으로 가난으로부터 보호한다. 지혜는 교만하여 서로 다투지 않게 함으로 인간관계를 보호해준다. 무엇보다, 지혜는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해주며 우리의 자녀도 보호해준다. 본문은 특히 지혜가 우리의 생명을 주고 그것을 보존한다고 말한다. 지혜는 영생의 길이다. 지혜를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죄를 버리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한다. 잠언 3:13-18은, 지혜가 정금보다 진주보다 귀하며 그 오른편에 장수가, 그 왼편에 부귀가 있고 그 길은 즐거움과 평강의 길이며 마침내 생명나무의 열매 곧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혜가 부모의 유산보다 더 귀함을 깨닫고 그것을 사모하며 소유하자.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악을 버리며 계명에 순종하자. [13-14절]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 . . 본문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섭리자이시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좋고 나쁜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곧게 할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5:7에서,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욥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욥기 1:2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것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잠 3:6). 본문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한다. 사람은 내일의 일을, 아니 다음 순간의 일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실을 좋은 날과 힘든 날,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뒤섞어 두셔서 장래 일을 짐작치 못하게 하셨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약 4:14). 본문은 특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형통하고 좋은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그러나 곤고한 날, 즉 어려운 일이 있는 날에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부족이 없는지, 죄가 없는지 자신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시편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신을 반성할 기회를 삼고 회개하고 말씀을 순종케 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인정하자. 특히 곤고한 날, 어려운 일이 있는 날에는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생각하자. [15-18절]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 . . . 본문은,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長壽)하는 악인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의인이지만 아벨처럼 다른 사람의 미움과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고, 악인이지만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교묘히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서도 내버려 두심으로 장수(長壽)하는 자도 있다. 본문은 그러므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게 자신의 의를 나타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사람 앞에 드러내는 의는 외식적, 율법주의적, 바리새인적 의가 되기 쉽다. 또 그런 사람은 자신을 크게 여기고 남을 정죄하기 쉽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의 반감을 더 쉽게 살 것이다. 본문은 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적당한 악인이 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성을 가진 죄인이지만, 드러난 악인은 사회적 제재를 당하고 감금을 당하고 벌을 받고 심한 경우는 사형도 당한다. 그런 악인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본문은 또한,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라고 말한다. 너무 드러나게 의를 행하고 의인인 척하지도 말고, 또 너무 드러나게 악을 행해서도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이런 잘못들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어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의를 행해도 은밀히 하고 드러날 경우도 자랑치 말고 높은 마음으로 남을 정죄하지 말고, 또 물론 드러나게 악을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 [19-20절]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본문은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본문은 지혜의 가치와 지혜의 유익을 증거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잠언이 말한 그 지혜인 줄 안다. 그것은 세상적, 육신적 지혜가 아니고, 신적, 천적, 영적 지혜이다.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고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즉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함으로 증진되는 것이다. 지혜는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한다. 성읍의 유사 즉 성읍의 관원은 세상에서 지혜와 권세가 있는 자이다. 그는 보통 일반 사람들보다 기억력, 판단력, 언변, 용기가 더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은 자는 성읍의 열 유사보다 더 지혜롭고 더 능력이 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의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원수보다, 스승보다, 노인보다 지혜롭게 되었다고 체험적 고백을 하였다(97-100절). 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 지혜가 바벨론의 박사들보다 열 배나 더 나았다(단 1:20). 본문은 “[왜냐하면]( 키 י󰗑)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없음이니라]”고 말한다. 본문은 참 지혜가 열 유사보다 나은 이유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왕들도, 관원들도 다 죄인이며 부족한 인생들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세상적으로 유능하고 권세 있는 자라도, 자신의 무지와 편견과 아집을 이길 수 없고, 세상의 악한 풍조를 이길 수 없고, 마귀의 시험이나 죄의 유혹을 피하거나 이길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세상적 지혜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범죄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지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지혜를 귀하게 여기자.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만 사모하고 순종하자. [21-22절]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 . . . 본문은,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좋은 친구의 의견과 충고를 들을 필요가 있다. 나라의 통치자는 백성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자는 실수하기 쉽고 독선적이고 편협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모든 말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말들에는 항상 잘못된 말, 부정적인 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들의 말만 들으면 무엇을 확신하고 용기를 가질 수 없고 낙심하여 아무 일도 못하기 쉽다. 사람들의 말만 듣는 자는 어린이 동화의 이야기처럼 결국 당나귀를 지고 가는 자와 같이 될 것이다. 느헤미야 6장에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위해 유대 땅에 총독으로 왔을 때, 산발랏, 도비야, 게셈 등은 그를 대적하였고 그를 해치려 하였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하고 왕이 되려 한다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것은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고 그와 그의 동료들의 손을 피곤케 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었다. 오늘날도 사탄은 하나님의 종들을 낙심케 하여 하나님의 바른 일을 못하게 하려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사역에서 매 맞음, 갇힘, 자지 못함, 먹지 못함 등 많은 고난을 받았고 또 영광도 얻고 욕도 들었으며 악한 이름도 얻었고 아름다운 이름도 얻었으나(고후 6:5-8) 낙심치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하여 그 뜻을 행하는 것이다(엡 5:15-17).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의 의견을 조금 들을 필요는 있으나 그 모든 말에 마음을 쓸 것은 없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믿고 행하자. [23-24절]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 . . 본문은,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모든 일들 곧 하나님의 섭리의 일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솔로몬은 인간적 지혜로 세상의 모든 일을 이해하려고 힘썼고 인간적으로 지혜자가 되기를 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참 지혜에 이르지 못했고 참 지혜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라는 말에 ‘무릇 된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 이유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 이치와 그 이유가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하고 파악하기에 너무 멀고 너무 깊다고 고백한다. 사람으로서 그것을 능히 통달할 자가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본문은 사람의 지혜의 한계성 곧 인간의 무지함을 증거 한다. 사람이 무엇을 다 아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며 또 하나의 무지(無知) 일뿐이다. 사람이 우주만물에 대해 가진 지식은 지극히 미미하고 지극히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 우주는 사람이 파악하기에는 너무 광대하고 광활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파악할 수 없이 높고 깊으시다. 여기에 인간의 겸손과 참 경건의 시작이 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천년은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다고 고백하였다(시 90:40. 이사야는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라고 증거 하였다(사 40:15, 17).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하시는 모든 일들에 대해 인간의 무지함을 깨닫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겸손히 엎드리며 그를 섬기자. [25-26절]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 . . . 본문은,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마음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다”라고 말한다. 후반부의 원문은 “어리석은 것 곧 미련한 것과 정신없는 것(혹은 미친 것)의 악”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어리석고 악한 일들, 정신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솔로몬은 그 모든 일들을 살피고 연구하고자 하였다. 본문은 또,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고 말한다. 남자가 아내를 잘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어진 아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그 값은 진주보다 귀하다(잠 19:14; 31:10). 그러나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줄 같은 여인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죄악과 사망으로 이끈다. 솔로몬은 그런 여자를 “사망보다 독한 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의 실패의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가 나이 늙었을 때 왕비들은 그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다(왕상 11:4). 그는 잠언에서 다투는 여인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고 말하였고(19:13; 27:15) 그런 여자와 큰 집에 살기보다 광야나 지붕 모퉁이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했다(21:9, 19). 그런 여자의 남편은 마음에 큰 고통을 당하고 결국 불행에 이른다. 본문은 또,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라는 원어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KJV, NASB, NIV)’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그런 여인을 피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그에게 잡혀 결국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올무 같은 자가 되지 말고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자가 되어 마귀의 시험을 피하자. [27-29절]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 . . 본문은,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참으로 깨닫고 인생에 대해 깨닫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질 수 있는 지혜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1:21). 본문은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한다. 솔로몬은 천 명의 남자들 중에 겨우 한 명을 찾았고 천 명의 여자들 중에서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여자들은 아마 그가 거닐었던 700명의 왕비와 300명의 첩들을 가리켰는지도 모른다. 실상, 온 세상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참 지혜자이시다. 그의 모친 마리아까지도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비천한 죄인에 불과하다. 본문은 또,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원문–‘그들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꾀’라는 원어(퀴쉬보노스)는 ‘고안들, 계획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본래 정직하게 만드셨다. 사람은 본래 선도 악도 아닌 중성 상태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고 선한 상태로 지음을 받았다. 그것이 의와 거룩의 하나님 형상이다(엡 4:22-24).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많은 꾀를 내었고, 많은 악한 고안들과 계획들을 내었다.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8:21,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람은 본래의 거룩하고 선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며 성화이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죄성을 이겨야 한다. [사무엘상 2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삼상 2:12-17) 반응형

전도서 7장 & 성경주석

본장은 지혜의 유익과 가치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원래 사람은 정직한 존재로 지음 받았으나 스스로 간사한 꾀를 많이 낸다(29절). 그러므로 온갖 탐욕과 죄악 가운데서 일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나은 이유는 인생의 비극을 통해 진지하게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2절).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슬픈 일도 만나고 기쁜 일도 만난다. 하나님이 이 두 가지 일들을 번갈아 겪게 하시는 것은 이러한 갖가지 일들을 통해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기 위함이다(14절). 물론 이 지혜는 얄팍한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얻게 되는 신령한 지혜를 가리킨다. 1. 헛된 삶을 값진 삶으로 바꾸어 놓는 아름다운 이름과 2. 금욕과 8. 인내와 11. 지혜를 갖는 것임. 23. 지혜자가 되는 어려움. 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11. 지혜는 유업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24.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7:1 아름다운 이름. 참조 잠 22:1. 품성에 근거를 둔 좋은 평판은 그 값을 측량할 수 없는 재산이다. “내게서 내 아름다운 이름을 훔쳐 간 사람은 자신을 부하게 못할 것을 내게서 강탈해 가고 진짜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수여될 개인적인 상들 중 하나는 세상을 이긴 모든 이에게 약속된 “새 이름”이다(계 2:17). 7:1 보배로운 기름. “보배로운”으로 번역된 단어는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할 때의 “아름다 운”과 같은 단어이다. “기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창 28:18; 35:14; 출 25:6; 29:2에서는 “기름”으로, 잠 27:9, 16; 전 9:8; 10:1에서는 “향기름”으로 번역되었다(참조 아 1:3). 좋은 비누를 구할 수 없었던 동방에서 향기름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참조 룻 3:3; 삼하 12:20). 히브리어에서는 이름이라는 단어 (s∨em)과 “기름” 혹은 “향기름”이라는 단어 셰멘(s∨emen)의 발음이 비슷하다. 7:1 죽는 날. 훌륭한 삶을 살아서 좋은 평판을 얻은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으므로, 첫 구절에 대한 두 번째 구절의 평행구적 성격이 분명해진다. 출생 시에 그의 삶이 앞에 놓여 있으나 그는 함정과 실망과 슬픔과 좌절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배가 항해를 시작하여 항구를 떠날 때는 항해 중에 만날지도 모를 위험들에 관하여는 거의 아무런 통고를 받지 않고 출발한다. 대양을 가로질러 안전한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들어올 때 배는 기쁨으로 영접을 받는다. 7:1 출생하는. 문자적으로 “그의 출생의 날.” 사람의 출생은 70평생(시 90:9, 10)의 짧은 삶의 시작이지만, 죽음은 새 땅에서 시작될 영생(눅 20:36; 고전 15:51~55)과 안식(계 14:13)과 최고의 만족(계 7:16)과 현세의 고통(고후 4:17)과는 전혀 다른 영원한 영광의 서곡일 수 있다. 7:2 초상. 유대인들의 애도 기간은 7일이었고(창 50:10), 그때에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울음꾼들이 참예했다(막 5:38; 요 11:19, 31). 7:2 잔치. 혼인잔치도 7일간 계속되었고(창 29:27), 애도의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였다(롬 15:12; 참조 갈 6:2). 7:2 모든 사람. 문자적으로 “각 사람.” 사람이 자신의 창조주를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든다. 일생을 통하여 그는 창조주를 만나는 그 엄숙한 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7:3 슬픔. 경박함은 품성을 강하게 하지 못한다. 헬라에는 이를 확인하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슬픔을 당하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참조 히 2:10; 12:1~11). 7:3 마음. 슬픔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변장된 축복일 경우가 흔히 있다. 고난의 풀무불은 동기를 깨끗하게 하고, 타인에 대하여 동정적이게 하는 포용력을 만든다. 7:4 지혜자. 지혜자는 삶의 진지한 문제들을 돌아보고 거기서 도덕적, 영적 교훈을 깨닫는 법을 배운다. 반면에 우매자들은 삶의 좀 더 경박한 면에 끌려 오락 속에서 만족감을 구하고, 내세에 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7:5 책망. 5절은 4절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여호와의 “책망”은 그 백성의 보호벽이다. 7:5 우매자의 노래. 오락 장소에서 하는 상스럽고 아무런 교훈이 되지 않는 노래들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지만(참조 암 6:5), 우매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종의 권고에 관한 언급이기도 하다. 7:6 웃음소리. 우매한 자의 웃음은 헤프고 시끄럽고 무의미하다(참조 욥 20:5).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우매자의 박수갈채에 대한 언급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 배후에 아무 책임도 없기 때문에 하등의 가치가 없다. 7:6 타는 소리. 동방에서는 흔히 좋은 연료감이 부족하였으므로 가랑잎이나 나뭇가지를 철저히 주워 모아서 음식을 요리하거나 집안을 훈훈하게 하는 데 사용하였다. 가시나무나 나뭇가지 혹은 마른 곡식 그루터기는 빨리 타면서 소리를 내지만 음식을 요리하고 방을 데울 만한 꾸준한 열은 내지 못한다(참조 시 58:9; 118:12; 사 9:18). 7:7 탐학. (「제임스왕역」에는 “oppression”[압제]로 되어 있음-역자 주).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겔 22:12에서는 “토색”으로 번역되었다. 그것은 축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속여 그 재물을 빼앗을 기회와 능력을 잔인하게 이용하는 것을 언급한다. 7:7 우매하게. 이 말은 “타락한”이란 뜻이다. 만약 어떤 현인이 압제와 탐학의 죄에 빠지면 그는 타락하게 될 것이고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을 것이다. 7:7 뇌물. (「제임스왕역」에는 “gift”[선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말은 “뇌물”이라는 뜻이다. 뇌물을 받음으로 사람의 판단력은 흐려지고 무력해진다(참조 출 23:8; 신 16:19; 잠 15:27). “마음”(heart, 「개역한글판」에는 “명철”로 되어 있음-역자 주)은 이해력의 상징이며, 사람의 도덕성을 상징하기도 한다(호 4:11). 7:8 일.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말” 혹은 “의견”이라는 뜻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말 혹은 의견이 끼치게 될지도 모를 최종적인 영향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7:8 참는 마음. “참는”으로 번역된 단어의 어근은 “오래 계속되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참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문자적으로 “마음이 오래 계속되는” 사람이다. 대조적인 표현은 “마음이 조급한”(잠 14:29)이다. 비슷한 용례가 신약에 나타나는데, 히 6:15에는 “오래 참아”로, 약 5:8에는 “너희도 길이 참고”로 되어 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오래 견디는 마음”이다. 7:8 교만한 마음. 문자적으로 “높은 마음” 혹은 “높여진 마음”이다(참조 시 138:6; 사 5:15; 10:33; 렘 13:1~15). 7:9 급한. 곧 “평온을 잃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한.” 사람의 감정은 다스려서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참조 약 1:19). 7:9 노. 참조 엡 4:26, 31; 딛 1:7. 7:9 머무름이니라. 노한 마음에서 나온 말과 행동은 종종 큰 상처를 입히고 잊어버리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그것들로 해를 입힌 자는 흔히 오래 기억된다(참조 잠 14:33). 7:10 옛날. 연단받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현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시련이 많다고 생각하므로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워진다. 노인들도 쉽게 그런 태도를 갖게 되고,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들이나 자신의 결점들까지 잊어버리는 것 같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애굽에서의 이전 생활을 돌아보았다. 욥도 비슷한 약점을 드러냈다(욥 29:2). 스 3:12; 학 2:3에 묘사된 노인들의 태도와 또 시편의 시인의 태도(시 77:5~9)를 비교하라. 7:11 지혜는…아름답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지혜는 가장 좋은 유산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유산은 지혜롭게 가장 잘 이용하면 이중의 복이라고 본다. 7:12 보호하는 것. 즉 “보호.” 이 절의 첫 부분은 문자적으로 “그늘 속에 지혜가 있고 그늘 속에 은이 있다”로 해석된다. 지혜와 돈은 비록 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둘 다 피난처와 도움의 길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부자이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중의 피난처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늘”은 위험을 피하는 피난처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일반적인 비유이다(시 17:8; 91:1; 사 32:2). 재물도 때로는 생명을 구할 수 있고(잠 13:8), 지혜도 성읍을 건져낼 수 있다(전 9:15). 그러나 재물로는 영원한 구원을 살 수 없고(시 49:6, 7), 순수한 마음의 평화도 줄 수 없다(눅 12:15). 참 지혜는 사람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다(시 111:10; 참조 욥 28:28). 약 3:17은 참 지혜에 관해서 감동적인 말로 알려 준다. 7:12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더욱 아름다움”으로 번역된 말은 전도서에서 12회 사용되었다. 돈에 대한 지식의 우월성과 관련해서 하는 말이므로 여기서는 “장점”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7:12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제임스왕역」에는 “giveth life”[생명을 줌이니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살게 해 주다”가 더 낫다. 부요(富饒)함은 그 부한 사람이 죽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지혜는 위기의 때에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지혜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과도한 식욕을 막아 줄 수 있지만, 부유함은 사람을 지나친 식욕에 탐닉하게 하여 질병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한 육체적 생명 이상의 것이 암시되어 있다. 최상의 의미에서 지혜는 사람을 참된 경건을 실천하도록 인도한다(잠 3:13~18; 8:25). 영적인 영역에서는 불멸로 인도하는 일, 곧 생명을 올바른 상태로 보존하는 일이 온전히 성취되었다(요 5:21; 6:63).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생애를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이 섭리하신 길(참조 욥 9:12; 11:10; 12:14). 7:13 보라. (「제임스왕역」에는 “consider”[생각하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쳐다보라.” 7:13 굽게 하신 것. 아마도 삶의 다양한 경험들과 그 고통과 역경과 시련들과 아픔들에 관한 언급일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도 한나(삼상 1:5, 6)나 바울(고후 12:7)처럼 져야 할 십자가가 있었다(창 15:2, 3).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전진하며(롬 11:36; 고후 4:18; 히 2:10),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된다(욥 9:12; 11:10; 12:14). 7:14 기뻐하고. 문자적으로 “행복 가운데 있고.”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에스더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의 경험(에 8:16, 17)과 비교하라. 7:14 곤고한 날에는. 문자적으로 “불행한 날에는…알라.” 만약 일이 우리의 원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불평하거나 짜증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낙망하는 것은 죄이다. 7:14 …하게 하사. 문자적으로 “…하게 했다.” 하나님은 일의 균형을 알맞게 잡아 주신다. 번영이 있으면 그 다음엔 역경이 뒤따른다. 사람이 걱정 근심이 전혀 없이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참조 욥 1:21; 2:10). 사람은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잠 4:26). 참된 행복은 물질적 소유의 다과(多寡)에 있지 않다(눅 12:15; 참조 마 6:33, 34). 7:14 그 장래 일을.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고, 닥칠지도 모를 상황들을 전혀 통제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사람의 특권인 것은 그분의 손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롬 8:28; 참조 창 42:36). 7:15 내 헛된 날. 즉 나의 날아가고 있는 날들(참조 1:2). 7:15 모든 일. 문자적으로 “전체.” 7:15 멸망하는.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의인을 축복하심으로 장수케 한다고 믿었다(출 20:12; 신 4:40; 잠 3:1, 2, 13~16; 4:10; 참조 시 91:16). 신약은 지상에 있는 의인의 생명에 관하여 또 다른 측면을 제시한다(마 5:10~12; 요 17:15; 딤후 3:12). 7:15 장수하는. 욥도 같은 불평을 한다(욥 12:6; 21:7; 참조 시 37:7). 의인 아벨은 젊어서 죽었지만, 악인 가인은 나이 많도록 살았다. 외견상 사물의 당연한 질서가 전도된 듯한 이 사실은 역사를 통하여 각 시대의 의인들의 마음을 당혹케 하였다.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악인들이 초년에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시 37:9, 10; 55:23; 58:3~9).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마 16:27; 참조 계 20:12~15). 7:16 지나치게 의인. 밖으로 드러난 몸가짐과 말씨만을 보고 평가하는 율법주의를 경계하는 말이다. 참 신앙은 거룩한 하나님(레 19:2; 엡 3:14)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엡 3:17~19)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7:16 지나치게 지혜자. 솔로몬은 지금까지 지혜의 가치에 관하여 말해 왔다. 이제는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게 하는 태도에 관하여 경고한다. 사도 바울도 같은 권고를 한다(롬 9:20~23). 7:16 패망케 하겠느냐. 히브리어 동사형이 재귀동사이므로 그런 행동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비유 가운데 바리새인은 독선과 인간적인 지혜로 스스로를 패망케 한 자의 본보기이다(눅 18:9~14). 7:17 지나치게 악인. 모든 금지 조항을 벗어 던지지 말라. 그렇게 하면 결국 성령께서 더 이상 진정한 회개로 이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일을 삼가라(시 10:11; 참조 말 1:2, 6; 2:17; 3:8, 13). 7:17 우매자.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이 그가 하는 일을 보지 않으신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자는 어떤 행동에 너무도 굳게 사로잡히기 때문에 영적 문맹(文盲)이 되어 결국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시 14:1). 7:17 기한 전에. 악이 지나치면 홍수 전 시대 사람들(욥 22:16)과 그 후시대의 악인들(시 55:23; 잠 10:27)처럼 초년에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7:18 잡으며. 지나친 행동이나 경솔한 행동을 피하라는 권고이다. 삶에서 중용은 멋진 규칙이다. 극단은 일반적으로 위험하다. 7:18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참 목적을 성취시키고 인생을 끝까지 잘 경영해 나가는 능력은 여호와를 경외할 때에만 가질 수 있다(느 5:9; 욥 28:28; 시 111:10; 사 33:6). 7:19 지혜가…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마음을 채움으로써 승리의 삶을 쟁취한다. 여기서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라고 번역된 것과 같은 히브리어 동사가 “이기다” 혹은 “이겼다”로도 나타난다(삿 3:10; 6:2; 시 9:19; 참조 잠 24:5). 7:19 성읍 가운데. 옛날에 마을의 모든 문제를 의논하고 판결한 마을 장로들의 회의와 비교되고 있다. 힌두교 마을에서는 같은 형태의 회의가 존속되고 있고, 그 회의체를 일컬어 판취(panch) 즉 “다섯”이라 하는데, 이는 마을 공동체의 규율을 강화하기 위하여 선택된 다섯 장로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7:19 열 유사. 문자적으로 “열 사람의 치리자.”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창 42:6에서는 “총리”로, 전 10:5에서는 “주권자”로, 단 5:29에서는 아람어 “치리자”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7:20 죄를 범치 아니하는. 참조 왕상 8:46; 잠 20:9; 롬 3:23; 요일 1:8. 7:20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사람에 관해서 말한다면 의로운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가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통탄할 만한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는 실수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다(참조 요일 3:6; 5:4). 7:21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7:21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 정(情)에서 노여움이 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의견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전 4:3, 4). 7:22 저주한. 문자적으로 “경히 여기다”, “하찮게 여기다” 또한 “멸시하다”, “명예를 손상시키다.” 여기서는 “비방하다”, “멸시하는 말을 하다”라는 뜻이다. 7:23 나를 멀리하였도다. 참조 욥 28:12~28. 7:24 깊고 깊도다. 참조 욥 11:7~9; 롬 11:33. 7:25 내가…알고자 하였더니. 문자적으로 “나 곧 나의 마음까지도 알고자 하여 돌아보았더니.” 지혜를 찾아 구하는 그의 진지함을 나타내는 강세적 표현이다. 7:25 명철.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27절에서 “이유”로, 9:10에서는 “계책”으로 나타난다. 대하 26:15에서는 이 단어의 여성형이 “기계”로, 전 7:29에는 “꾀”로 번역되었다. 7:26 포승. “포승”으로 번역된 단어가 다른 곳에서는 들릴라가 삼손을 묶기 위하여 사용한 “끈”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삿 16:8). “올무”와 “그물”과 “포승”은 아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여자를 묘사한다(참조 잠 5:22; 22:14). 7:26 여인. 참조 잠 7:5~23. 7:26 하나님을 기뻐하는. 문자적으로 “하나님 앞에 선한.” 7:27 낱낱이. 문자적으로 “하나하나.” 참조 렘 5:1~5. 7:28 일천. 대개 어림수로 사용되었다(참조 출 20:6; 34:7; 시 105:8). 솔로몬이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온전한 남자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7:28 여인. 온전한 여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을 솔로몬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남자들 중에서보다 여인들 중에서 찾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천 명의 처첩을 거느린 솔로몬의 경험, 그들 중 다수가 이방 여인들이었으며, 그들은 분명히 모두 서로 질투하며 다투었을 것이며, 대체로 그런 가정 사정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솔로몬에게 끝없는 어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서 그는 복잡한 결혼을 하게 된 자기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여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참조 창 3:12). 7:29 정직하게. “곧다”, “바르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도덕적인 정직을 일컫는 말이다. 7:29 꾀. 같은 단어가 대하 26:15에서는 “기계”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전쟁 때 돌을 발사하는 기계 혹은 장치이다. 그 동사의 어근은 “생각하다”, “고안하다”, “발명하다”를 의미한다(참조 암 6:5). 인간은 도덕적으로 정직한 원래의 상태로부터 타락하였고, 그 자체가 반드시 악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사람을 부도덕으로 몰고 가는 그런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들을 도모하는 데 익숙해졌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스크랩] 전도서 7장 주석

전도서 7장 주석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 나으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 름’이란 어떤 살마에 대한 단순한 외적인 회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대변 하는 것으로도 쓰였던 바, ‘아름다운 이름’이란 그 사람에 대한 훌륭한 ‘명성’을 가리 킨다(Luther, M.A.Eaton, Lange, G.A.Barton, T.H. Leale).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이 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대단히 명예로운 일로 간주했다(8:10;욥 18:17;잠 10:7). 그리고 ‘기름’이란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지경긔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하는 식물성 기름을 말하는데, 이는 그 용도 면에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1) 식용(출29:2,23;레 2:1,2,4-7), (2) 등화용(출 25:6;27:20), (3) 의료용(사 1:6), (4) 화장품용(삼하 14:2;시 23:5), (5) 향유용(눅 23:56) 등이다. 특히 이는 팔레스틴 지역과 같이 건조한 기후 여건 속에서는 그 몸에 기름을 발라 향기를 내는 데 유용하게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룻 3:3;삼하 12:20;시 45:7,8;암 6:6 참조). 또한 본절 후반절의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란 전반절의 의미와 연관되는 듯이 보인다. 즉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좋은 명성을 쌓으며 살다가 죽는 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가운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살지도 모르는 삶의 시작이 날보다 낫다는 것이 다(D.R. Glenn). 그러나 전도자는 삶보다 죽음을 더 애찬하는 염세 주의자로서 말한 것은 아니다. 왠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삶의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3:13;5:!8),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 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2:13). 단지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명성 을 얻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 유심(留心)하리로다 – ‘초상 집’이란 문자적으로는 ‘애곡하는 집'(the house of mourning, KJV, RSV)이다. 그리고 ‘잔치집’이란 술을 마시며 희락을 즐기는 곳으로서 암시되어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 근 거하여 본절은 헛되고 허무하게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 겁소다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 고 숙연하게 생각케 함으로 유익하고 보람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이다 (4절) =====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이 얼굴에 근신함으로 … 됨이니라 – 전후 문맥상 역시 앞절 (2절)과 연관도니가 내용으로 보인다. 여기서 ‘슬픔’이란 단순히 고난이나 손해 등으 로 일낳 슬픔이라기보다는 2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죽음 또는 그로 인한 애곡을 보고 서 느껴지는 숙연한 슬픔을 뜻하며, ‘웃음’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보다는 육신적 희락을 즐기는 데서 얻어지는 쾌락적, 일시적 웃음을 뜻한다(2:2-10). 따라서 본절은 인생에서 보게 되는 숙연한 슬픔은 육체적 쾌락에서 얻어지는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상고케하여 더욱 진지하고 보람된 생(生)을 결단케 하기 때문에 좋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 있느니라 – 1-3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구 절로서, 지혜자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늘 진지하게 상고하는 반면에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어 단순히 순간 순간 육체적 희락만을 즐기고 웃음을 추구한다는 뜻 이다. =====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 나으니라 – 본절도 역시 앞절(4절)처럼 그 의미에 있어서는 계속 전문(前文)들과 연관된다 하겠다. 책망은 들을 당시에는 감정 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종국적으로는 잘못되고 우매한 길을 벗어나 지혜로운 길로 접어들게 한다. 반면 우매자의 노래 소리는 들을 때에는 기쁜 것 같고 육감적으 로 상쾌한 것 같으나 결국에는 일시적, 육체적 희락 속에선 헛되고 허무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7: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 이것도 헛되니라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나 무가 희귀하여 가시나무나 풀, 보리, 그루터기 등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시 58:9;120:4;마 6:30 참조), 특히 가시나무는 쉽고 빠르게 그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 서 타지만 이내 사그라져 꺼지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이 소리는 헛되고 요란할 뿐 실속이 없는 소리이다. 이것은 우매자의 웃음 소리가 겉으로만 요란할 뿐 실속이 없 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7:7 탐학(貪虐)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 망케하느니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 두에는 연결사 ‘키'( )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각양 각색이다. (1)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다(NASB, Hengstenberg, Hitzig). (2) 본절이 앞절들과 하 등의 유사한 연관성이 없으므로 이를 ‘그러나’와 같은 부사로 본다(Ewald, Elster). (3) 강조걱인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욥 6:21;사5:7, Lange). 영역본 KJV, RSV 등도 이를 ‘확실히'(surely)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4)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기 는 하나 앞절과 본절 사이에는 또 다른 구절이 빠져 있다(Delitzsch). 그러나 우리는 문맥상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되 특히 5절 내용과 연결됨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즉 본적의 원인 때문에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5절) 낫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탐학’의 히브리어 ‘오쉐크'( )는 ‘압제’ (opperssion, KVJ, RSV, NASB), ‘강탈’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후반절은 출 23:8;신 16:19;잠 15:27과 유사하다. 성경에서 ‘뇌물’을 의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 또는 명철 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뇌물이 그 하나님의 공의성을 훼소니키고 공 정한 판단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 나으니 – 본절의 상,하반절은 내용상 서 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다(Lange).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그 과정을 인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경우 그 끝은 처음보다 낫다는 뜻 혹은 어떤 일을 끝까지 마감하는것이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서 중도에 그만 두는 것 보다 낫다는 뜻이다(Finishing is better than starting, LB). 이는 곧 “나중까지 견 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케 한다. 한편 후반절의 ‘마음’에 해당하는 ‘루아흐'( )는 ‘영'(spirit)을 뜻하며 ‘참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영 안에서 참음'(the patient in spirit, KJV, RSV ; partience of spirit, NASB)과 ‘영 안에 거만함'(the proud in spirit, KJV, RSV ; haughtiness of spirit, NASB)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 머무름이니라 – 본절도 문맥상 앞절(8절)과 연관되는 것으로 본다(G.A.Barton). 전반절에 대해서 대부분 영역본들은 ‘너의 영 안 에서 급하게 노를 발하지 말라'(Be not hasty in thy spirit to be angry, KJV ; Do not ve quickly provoked heart to be angry, NASB)로 번역하고 있다. 성급히 화를 내는 것은 정의의 의분과는 달리 인격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으로서 결국 죄악을 낳고 만다(창 4:5;삼 삼 18:8).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스피드 시대에는 본절 말씀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다(욥 5:2;잠 12:16).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 지혜가 아니니라 – 주어진 현 실 감당해야 할 현 시대의 사명을 도외시하고 지나간 시절만 생각하는 나약하고 어리 석은 삶의 태도를 책망하는 말씀이다(Eaton). 한편 본절을 앞절 특히 8절의 내용과연 결시켜 해석해 볼 수 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때 그나중 이 처음보다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했던 옛날이 일의 결과를 낸 오늘 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내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는 뜻이라 하겠다. =====7:11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 유익하도다 – 이는 지혜의 유익성과 보배로움을 언 급한 말인데, 여기서 ‘지혜’는 2:12-16에서 암시되어진 바와는 달리 하나님의 지혜,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신성한 지혜를 말하는 것 같다. 본절에서 ‘유업’이란 ‘나할라’ ( )로서 가나안 땅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물려받는 ‘기업'(출 6:8) 또는 부 모로부터 물려받는 상속 재산을 의미하는데, ‘유업같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두 가 지로 나뉜다. (1) 이는 한글 개역 성경처럼 ‘유업과 같이'(like an inheritance, NIV)를 의미한다(2:16;욥 9:26, Lange, Zockler). (2) 이는 ‘같이'( , 임)라는 말 이 ‘…과 함께'(with)라는 말로 번역되는 바, ‘유업과 함께'(with an ingeritance, KJV, RSV, NASB)를 뜻한다(70인역, T.H. Leale, D.R. Glenn, G.A. Barton, Wycliffe). (1)을 취할 경우,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나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처 럼 귀하다는 뜻이며, (2)의 경우 지혜는 그 자체로서도 귀하고 빛나나 유업 즉 재산과 함께 있을 때 그 재산을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바 더욱 빛나고 가치가 있게 된다 는 뜻이 된다. 이중 어느 쪽을 택해도 본절 이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7: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 보존함이니라 – 지혜의 유용성의 탁월함을 재 물과의 비교를 통해 묘파(描破)한 구절이다.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 )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으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본절에서 ‘보 호하는 것’에 해당하는 ‘첼'( )은 ‘그늘'(shadow)을 뜻하나 영역본들은 이와 연관 시켜 ‘보호'(protection, RSV, NASB), ‘방어'(a eefence, KJV)를 뜻하는 것이로 번역 했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잠 3:18,22;8:35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하겠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하나님을 겨외하고 신앙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멸망으 길로 가는 것을 막어주고 오히려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준 다는 것이다(잠 2:20).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 곧게 하겠느냐 – 이는 1:15;6:10의 말씀과 유사 하며 내용상 8,9절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 들을 작정, 주관하고 계시는 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성급하고 인내하지 못 하는 자세로 하나나가의 역사하시는 일에 대항하거나 거역하지 말고 순응해야 함을 암 시해 준다는 말이다.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본절은 내용상 앞절(13절) 과 연관되며 그 의미 역시 인간사에서 임의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닌정하라 는 말씀으로 보인다(D.R. Glenn). 여기서 ‘형통한’에 해당하는 ‘토브'( )는 ‘좋 은’, ‘선한’, ‘아름다운’의 뜻을 갖는다(2:1 참조). 그리고 ‘기뻐하고’도 문자적으로 는 역시 그 원형이 ‘토브’이다. 또한 ‘생각하라’의 히브리어 ‘라아'( )는 ‘보 다’, ‘관찰(주시)하다’, ‘생각(숙고)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 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인다. 혹자는 바로 뒷구절 즉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나(Lange), 이보다는 하나님이 곤고케 한신 목적, 이유 등 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뜨승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D.R. Glenn). g 한편 후반절의 ‘장래 일’이란 문자적으로는 ‘아하라 메우마'( ) 인데 그것이 무어승마 의미하느냐에도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인다. (1) 사람이 죽은 후의 일을 의미한다(Delitzsch). (2) 사람의 장래 일 즉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일 을 의미한다(G.A.Barton, T.H. Leale, Lange).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2)를 뜻하는 것 으로 본다. 아무튼 이런 후반절의 의미는 인간의 연약함, 제한되미 마언급함으로 하 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순응해야 되미마 가르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7: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 있으니 – 이는 단순히 과도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중용(中庸)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다. 즉 여기서 전도자가 말하 는 것은 ‘지나친 의(義)’라기보다는 ‘무모한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인 것이 다. 전도자는 선만을 행하는 의인이란 이 세상에 없다고 갈파하고 있거니와(20절), 본절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려드는 자들에 대한 역설적 경고라 하겠다(Eaton, Whybary). 한편 저자가 ‘내 헛된 날’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로서의 인 생이 허무하며 무상한 것임을 암시하며(6:12) 특히 이는 솔로몬 자신이 한떠 하나님을 떠났던 기간을 상기하며 말한 것일 수도 있다(왕상 9:24;11:1-13 참조). =====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려 … 패망케 하겠느냐 –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의(義)를 추구하고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다(롬 3:20;7:1-25;10:3;갈 2:16;3:11,12). =====7: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 죽으려느냐 – 이는 앞절(16절)과 대비되는 말씀으 로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노골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것을 금하는 내용 이다. 특히 본절에서 ‘지나치게’라는 말은 악을 무절제하게 행하지 말고 돌이킬 것을 권고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한편 본절에서 악인이나 우매자가 그들의 악행으로 파멸에 이르고만다는 것은 시 37:10;55:23;58:3-9;73:18;잠 10:27 등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 다. =====7: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 것임이니라 – 지나친 자기 의(義) 의 추구나 의도적인 악행을 다시금 금하고 있다. 물론 본절이 적당한 수준에서 악을 행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는 인간의 육신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 위는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 은 전도자가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으로 말하고, 그것이 곧 지식과 지 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12:13;시 34:7,9;잠 1:7;9:10). 또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알고 경배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7: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 있게 하느니라 – ‘유사’에 해당하는 ‘솰리트'( )는 ‘지배자’, ‘방백’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성읍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자, 외부 세력으로부터 성을비마 지키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본절의 ‘지혜’ 는 6:*에서와는 달리, 특히 앞 18절과 연관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어 지는 지혜 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잠 9:10).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얻은 힘이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킨다. 한편 ‘열’이란 단순 히 숫자상의 ‘열’을 뜻한다기보다는 완전수로서 많은 수를 가리킨다 하겠다(욥 19:3).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 없느니라 – 원무에 의하면 본절 서두 에는 연결사 ‘키'( )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의 정황한 의미에 대해서는 (1)강조적인 말로서 ‘확실히'(Surely, RSV ; Indeed, NASB)로 보거나(M.A. Eaton, Lange), (2)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서 ‘…때문에'(For, KJV)로 이해한다(D.R.Glenn).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을 (바튼(G.A. Barton)은 18절에 대한 이유로, 랑게(Lange)는 19절의 확증으로, 이튼(M.A. Eaton(dms 16-19절 내용을 다시 강조하는 표현으로 각각 봄) 시사하며 특히 지혜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리 고 본절은 솔로몬의 말한 바 왕상 8:46과 유사하며 바울의 말한 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롬 3:23). =====7: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 죄악된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심각 성은(20절) 말의 실수와 비신실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약 3:2).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특히 아첨하는 말에 마음을 두는 것은 스스로 올무에 빠져드는 것과 다름없다. =====7: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아느리라 – 이는 21절에 연장되는 말로서 모든 사 람이 죄인이며 따라서 그들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쓸모없음을,자신이 남을 저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 확증하는 내용이다. “마음”은 “양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도 볼수 있다.(G.A.Barton).그리고 이는 사람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가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리라”(롬 2:15)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7: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멀리하였도다.-“이 모든 것”이란 앞의 내용 들을 가리킨다.그리고 상반절은 전도자가 그의 지혜로 앞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으나 그 모든 내용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며 하반절도 상반절과 연관되어 전도자 자신이 지혜롭게 되어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지혜가 그에게서 멀리하였다는 고백이다.이와 같은 사실은, 한편으로는 인가적인 지혜로 는 이세상 모든 것을 헤아려 알 수 없음을 보여주며, 또 한편으로는 참다운 지혜는 인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얻 어지는)것임을 암시한다(2:26). =====7:24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능히 통달하랴.-이는 앞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 이 그동안 갈고 닦은 지식과 인생 경험에 바탕을 둔 나름대로의 폭넓은 식견으로도 이 세상에서 역사되어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한계성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다.된 것의 히브리어 “마쉐하야”( )는 “존재하는 것”(what has been,NASB)을 뜻하 는데, 혹자는 이를 현존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역사되어질 모든 섭리 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롬 11:33 참조, M.A. Eaton). =====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하였더니.-앞에서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고백한 기자는 이제 돌이켜 인간의 완악한 본성을 살피고자 한다.특히 본절 에는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여러 차례 반복됨으로써 기자의 탐구의욕이 어느 정 도 간절하고 철저한지를 암시하고 있다. =====7:26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잡히리로다.-본절에서 악한 여인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기자의 여자 기피 심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서의 다른 곳에서 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9:9). 여기 서는 악한 여인을 대표적으로 선정하였을 뿐이며 또 이러한 여인의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다. =====7:27 원무에 의하면 본절 서두는 “레아”( , 보라, Look, NIV;Behold, RSV, NASB)로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전도자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감탄하면서 선포하고 있 음을 나타낸다. ====7:28 일천 남자 중에서…얻지 못하였느니라.-“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에 대해 혹 자는 죄짓기 전의 순수하고 무죄한 아담을 가리킨다고 하나(Lange)이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T.H. Leale, M.A.Eaton), 혹은 진정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 (D.R.Glenn)로 보는 것이 낫겠다. 또한 여기서는 남자보다 여자 가운데서 더 찾기가 어려운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역사에서 최초로 타락한 자가 남자 아닌 여자 라는 맥락에서 언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딤전 2:11-15참조).그리고 본절에서 “일천” 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많은 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수로 보인 다(출20:6;34;7;민1:16;신1:11;욥9:3;33:23;시50:10;84:10).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꾀를 낸 것이라.-이는 앞절(28절)에 이어 인 간의 부패성, 죄악성을 나타낸 구절이다. “정직하게”에 해당하는 “야솨르”( )는 “곧은”,”올바른”(upright, KJV,NIV, RSV)의 뜻으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무 죄한 상태로 만드셨음을 암시하며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 히 좋았더라”(창 1:31)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솨 본”( )은 “계략”, “계책” 등의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특히 아담 안에서 정 죄된 인간들이(롬 5:16-21)일생 동안 의롭지 못한 일을 획책함을 뜻하며 인간 부패의 근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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