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 장 주석 | [하루 한 장] 잠언30장_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60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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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9 [하루 한 장]“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잠30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잠언 30장은 아굴의 잠언으로
수집되어 전해진 지혜들입니다
지혜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강화되고
선명해지고 풍성해집니다
우리도 받은 은혜와 지혜를
나누고 전하는 전달자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굴은 불신자의 질문을 전하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함과 의인을 둘러
보호하시는 은혜를 제시합니다
말씀을 몰라서 함부로 사는 것도
말씀을 너무 알아 넘치는 것도
모두 선한 일이 아닙니다
영적인 양식이나 먹을 양식도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바로 아는 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
오늘 꼭 만나야할 예수님께로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아 누리고
전하는 삶이 복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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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장 & 성경주석

잠언 30장 & 성경주석 ·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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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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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잠언 30장 주석 – Daum 블로그

잠언 30장 주석 =====30:1 야게, 아굴, 이디엘, 우갈 – 학자들은 이들을 실존 인물로 보거나 가상 인물로 이 해하기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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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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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잠언 30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30:1 아굴의 신앙 고백(잠언 30:1-6) 혹자는 “아굴”이본 잠언 기자의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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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2/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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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잠언 30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디브레 아구르 빈 야케 함맛사 네움 학게벨 레이티엘 레이티엘 웨우칼 개역개정,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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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12/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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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장 1절-33절, 매일성경에 따른 본문주석

솔로몬의 잠언이 29장에서 마무리되고, 30장에는 야게의 아들인 아굴의 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굴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밝히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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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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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화) “잠언 30:1-33” / 작성: 지종현

30장과 31장에는 각각 아굴과 르무엘 왕의 잠언이 실려있습니다. 지혜자의 고백 (1-9절)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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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7/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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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장 아굴 강해 설교문] “나의 두 가지 기도”(잠30:7-9)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잠언 30장 아굴 강해 설교문 중에서 나의 두 가지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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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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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다만 마소라 성경에서 30장의 표제는 30:1에 한번 나오므로, 30장 전체를 아굴의 잠언으로 소개한다. 2. 본문 주해 [1절] 이 단락의 잠언의 표제(superscription)로, 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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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4/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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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의 기도(잠언 30장 1-9절) | 금곡동산교회

설교 제목: 아굴의 기도 설교 본문: 잠언 30장 1-9절 (개역한글판)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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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ongsanchurch103.tistory.com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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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장 히브리어 강해] 아굴의 잠언(잠 30:1-4) – 르호봇

오늘은 잠언 30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아굴의 잠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 저자는 지혜자였다(1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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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hb-bible.tistory.com

Date Published: 3/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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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잠언 30 장 주석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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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0.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c4g_u8w2rKk

잠언 30장 & 성경주석

<잠언 30장 흐름정리>

본 장 내용은 아굴의 잠언들이다. 아굴은 에단과 헤만 같은 현자로 추측된다. 먼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위시한 모든 사람이 미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1~9절). 이어서 자신을 위시한 모든 사람이 특별히 유의해야 할 죄악 된 행실들을 몇 가지 나열한다(10~14절). 15~31절은 소위 ‘숫자 잠언’으로서 유사한 내용을 한 묶음으로 소개하는 형태이다. 그중 앞의 두 가지는 지혜자가 경계해야 할 사항들인 반면(15~23절), 뒤의 두 가지는 지혜자가 본받아야 할 사항들이다(24~31절).

<잠언 30장 줄거리>

1. 아굴의 믿음의 고백.

7. 그의 기도의 두 요점.

10. 가장 하잘 것 없는 자를 잘못 취급해서는 안 됨.

11. 네 악한 무리.

17. 부모를 멸시해서는 안 됨.

18. 알기 어려운 것 네 가지.

21. 견될 수 없는 것 네 가지.

24. 가장 지혜로운 것 네 가지.

29. 위엄 있는 것 네 가지.

32. 노는 방지해야 함.

<잠언 30장 개역한글>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10. 너는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11.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3. 눈이 심히 높으며 그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14.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18.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9.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21.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22.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23.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24.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25.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26.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27.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28.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0.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31. 사냥개와 수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32.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체 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33. 대저 젖을 저으면 뻐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잠언 30장 성경주석>

30:1 아굴의 잠언.

이 절의 해석은 많은 토론을 야기해 왔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아굴이나 야게 혹은 우갈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이디엘의 이름은 베냐민 자손에 속한 것으로 느 11:7에 나타난다. 어떤 유대인 해석자들은 아굴이 솔로몬에 대한 비유적인 이름이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시작하는 절을 “경건한[혹은 순종하는] 아들 수집자의 말”로 해석하는데, “경건”은 다윗을 가리키고 있다. 「불가타역」도 그 절을 “발언자의 아들, 곧 수집자의 말”로 번역하여 유사한 사상을 따른다.

솔로몬을 이 부분의 저자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이것이 본서의 선행(先行) 부분들보다 어느 정도 낮은 어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들은 또한 2절과 3절이 솔로몬의 어조와 같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 헬라어 역본과 많은 해석자가 “예언”(prophecy, 1절의 「제임스왕역」에는 이 말이 나와 있음-역자 주)에 해당하는 말에서 아마도 창 25:14; 대상 1:30에 언급된 맛사라는 지명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이름으로도 아굴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아무런 빛을 던져주지 않는다. 교회증언, Ⅳ, 455, 456,에 있는 말도이와 비슷하게 확정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누구를 통하여 이 영감의 말들이 주어졌는지를 우리가 아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다.

30:2 총명.

이 말은 그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지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음을 깨닫는 사람의 솔직한 고백처럼 보인다.

30:4 올라…자가 누구인지.

그렇게 함으로써만 사람이 거룩하신 분에 대해서 어떤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는 오직 자신만이 하늘에 갔다 왔기 때문에 아버지를 계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요 1:18, 3:13).

30:4 물을…싼.

이 절을 욥 38, 39장과 비교하라.

30:5 말씀.

히브리어 이므라(’imrah). 잠언의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므라는 시편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에서 그 사상을 취한 것 같다(시 119:140). 여호와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말씀을 간수해 오셨다. 그 말씀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자들에게 그 말씀은 완전한 방패와 보호가 된다.

30:5 순전하며.

문자적으로 “순결하며”(참조 시 12:6).

30:6 너는…더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순결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유한한 마음은 하나님의 생각을 결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잠 30:3, 4; 사 55:7~9).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유사한 경고를 했다(신 4:2). 요한은 훨씬 더 강력한 금령으로 성경의 마지막 책을 종결했다(계 22:18, 19). 도달한 결론에 대해서 그 말씀이 점검하는 역할을 하도록 순수한 그대로 남아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설을 여기서 금지할 의도는 없다. 혼란을 야기하고 하나님께 대한 비난을 초래하는 것은 진리의 객관적인 표준을 변경하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30:7 두 가지 일.

7~9절은 저자가 그의 생전에 성취되는 것을 보고자 소원한 두 가지 요구 사항을 하나님께 제시한다.

30:8 허탄.

히브리어 샤우(s∨aw’), “공허”, “무가치한 것.”

30:8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적당한 환경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기도인데, 그 이유가 9절에 밝혀져 있다.

30:9 내가 배불러서…할까 하오며.

부의 큰 위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지 않게 하고 참된 부의 유일한 근원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참조 욥 21:13~15; 시 73:12). 반면에 빈곤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를 돌보지 않는다고 느끼도록 유혹하고 그 자신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죄악적인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이끌 수가 있다(참조 사 8:21). 부자나 빈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는 마음을 지속해야 한다.

30:10 훼방하지 말라.

종의 생애는 자유인이 비밀리에 비방함으로써 훨씬 더 비참해질 수 있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야 한다.

30:11 무리.

이 절은 당시에 존재하던 무리를 묘사하는 일련의 언급들을 시작한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에서는 죽음에 해당하는 죄가 되는 부모에 대한 불성실로 특징지어진다(출 21:17; 참조 잠 20:20).

30:12 스스로.

바리새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고발과 비교하라(마 23:25~28; 눅 18:9, 11).

30:13 높으며.

참조 6:17; 21:4.

30:14 장검 같고.

이 계층의 탐욕은 한계를 모른다. 이 사람들은 가난한 자가 그의 재산을 완전히 약탈당할 때까지 쉴 수 없다(참조 암 8:4).

30:15 거머리.

히브리어 알루카(‘aluqah). 수리아어와 새 히브리어와 아랍어와의 유사점에서, 또한 「70인역」의 증거를 근거로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알루카가 피에 대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를 가진 팔레스타인에 흔한 큰 거머리를 나타낸다는 데 동의한다.

30:16 족하다.

무덤은 죽음을 위해 더 이상 공간이 없을 정도로 결코 가득 찰 수 없고, 아이 없는 이스라엘의 여인은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그의 머리를 들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갖고자 하는 긴급한 욕망을 결코 중단할 수 없고(참조 창 30:1; 16:4), 바싹 마르고 “건조한” 땅은 영구히 그것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물을 결코 얻을 수 없고, 불은 주어지는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리고도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장수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다(출 20:12). 계명을 범하는 자에게 변사하여 매장되지 못할 것이라는 위협이 주어졌다.

30:19 독수리의 자취.

열거된 네 항목은 박물학에서 나온 불가사의한 것들의 예증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네 가지 다른 것들 각각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지나간 길을 전혀 명시할 수 없다는 것임을 주목해 왔다. 독수리를 그리스도께(신 32:11, 12), 뱀을 반석 되신 그리스도를 공격하고 있는 마귀에게(계 12:9), 배를 죄악 세상의 바다를 거쳐 표지 없는 길을 따르고 있는 교회에, 그리고 여자를 동정녀 마리아에게 비유하는 것과 같은 풍유화는 건전한 성경적 해석 원칙에 위배된다.

30:20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간부(姦婦)는, 사람들의 눈을 피했으므로 그들의 범죄에 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그녀의 비행들이 모두 심판에서 폭로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참조 마 12:36; 고후 5:10).

30:22 종.

그 직위에 적합하도록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고 임금이 된 종(참조 19:10), 부를 갖추어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억제되지 않은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미련한 자(참조 29:2), 성격이 비뚤어져 고독한 생애를 보내다가 마침내 결혼하여 이전에 그를 깔본 자들에게 심술을 쏟아놓는 매력 없는 여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모를 대신하였으나 마치 노예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집안을 잘 다스리기에 전혀 부적합한 계집종과 같은 그런 부조화 아래서 세상은 진동한다.

30:25 개미.

참조 6:6 주석.

30:26 사반.

히브리어 셔판님(s∨epannim), 아마도 “바위 오소리”일 것이다. 그것들은 바위 속으로 피난하고, 감시자들을 세워 위험을 경고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30:27 메뚜기.

이것들은 지도자가 있다는 표를 보여 주지 않지만, 잘 훈련된 군대의 대열을 이루어 움직인다.

30:28 도마뱀.

히브리어 스마미트(semamit). 이 낱말은 여기서만 나타나며 그 정체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도마뱀의 일종을 의미하는 것 같다. 모음의 점들이 약간 변하면 “도마뱀은 손으로 잡힌다”라는 번역이 허용된다. 이 번역은 도마뱀에 관한 말이 다른 생물들에 관한 것들과 평행구를 이룬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큰 업적들이 강조된다. 도마뱀은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큼 약하지만 그것은 왕궁들에 들어온다.

30:29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능률적이요 확신 있는 움직임에 대한 네 예증이 제시된다.

30:30 사자.

여기서 “사자”로 사용된 낱말이 다른 곳에 나오는 경우는 오직 욥 4:11; 사 30:6뿐이다.

30:31 사냥개.

히브리어 자르지르 모트나임(zarzir motnayim), 문자적으로 “허리의 치수”이다. 현대 히브리서에서는 자르지르(zarzir)가 찌르레기를 나타낸다. 이 말이 여기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현자가 정확하게 어떤 생물을 염두에 두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고대역들은 자르지르를 “수탉”으로 해석했다. 다른 추측상의 의미는 “말”이다.

30:33 저으면.

히브리어 미츠(mis.), “압착하면”, “누르면”, “짜면.” “버터”는 응유(凝乳) 혹은 산유(酸乳)를 나타낸다. 화를 내어 코를 비틀면 피가 난다. 그리고 화난 자를 압박하면 분명히 다툼이 생길 것이다.

30:15 다고…하느니라(crying, give).

첫 구절은 문자적으로 “거머리에게는 다고(give), 다고(give)라는 두 딸이 있다”로 해석된다. “다고”(give)는 이 딸들의 이름이거나 부르짖음이거나 어느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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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장 주석

=====30:1

야게, 아굴, 이디엘, 우갈 – 학자들은 이들을 실존 인물로 보거나 가상 인물로 이

해하기고 한다. 가상 인물로 보는 학자들의 경우 아굴은 솔로몬, 야게는 다윗, 이디

엘과 우갈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데 무리한 추측에 근거한 해석이라 하겠다. 본장

의 형태 혹은 일부 내용들은 본장의 기자가 솔로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예를 들면 2,3,8절 그리고 9절등은 솔로몬의 삶이나 그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

들이다. 왕상 4:30, 31은 솔로몬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아마도 본장은 그들 중의 하나가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리고

개역 성경이 ‘말씀’으로 번역한 ‘하마사'(* )는 어떤 지명을 가리키는 용어라는

설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본장의 저자 ‘아굴’은 본 용어의 음역인 ‘마사’라는 곳에

사는 아라비아인이었던 셈이다. 마사는 아라비아의 한 동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Kidner). 그러나 ‘마사’라는 히브리어가 ‘예언’, ‘발언’등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

에 이를 고유 지명으로 단정할 수만은 없다.

=====30:2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문자적인 뜻은 ‘확실히 나는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짐승과 같다’이다. 아마도 본장 저자의 주위에는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비교한 지혜는 다른 어떤 사람의 지혜라기보다는 하나

님의 지혜였던 것 같다. 자신만이 지혜롭다고 외쳤던 많은 이방 현자들과는 대조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저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아삽을 연상케 한다(시

73:22).

=====30:3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 저자는 지혜자였다(1절 주석 참조).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검토해 본 결과 참 지혜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너

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종교 개혁가인 칼빈(Calvin)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기독교 강요, 1권 1장)고 말했다.

=====30:4

‘너는 아느냐’는 알지 못한다는 답을 염두에 둔 일종의 수사학적 표현인데 저자는

이같은 표현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

고 있다. 본절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이 더 상세한 욥 38-41장의 경우 화자는 하나님

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이 화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본절은 2,3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식의 한께 및 어리석

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저자는 가

시적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사색을 통해 인간은 먼지처럼 낮아져

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천체, 우주등

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처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시

2:4;14:2).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때로는 지상에 몸소 내려오신다고 믿었다(창 11:7;17:22).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내

세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창 15:15;신 33:27) ‘하늘’은 더더욱 외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초월성과 아울러 낮고 천한 인생을 품에 안으시는 하

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암시한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지니신 속성 곧 그의 영원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 따위를 온전히 이해하였으면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 본절에 근거하여 아굴이 삼위(三位) 하나님 중 제 1

위와 제 2위에 대하여 본절을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Clark).

그런가 하면 고대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Midrash)에서는 ‘아들’을 이스라엘과 동일시

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이를 창조주, 로고스(the Logos) 혹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시

적 평행어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들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 명확히 단정내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純全)하며 – ‘순전하며’에 해당하는 ‘체루파'(*

)의 문자적인 뜻은 ‘정화되었으며’이다. 이 표현은 그 이미지를 불순물이 제거된 금

속에서 따온 것이다. 정화된 금속은 순결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귀한 것이라는 이미지

도 내포한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후

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해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의 고귀함에 대한 인식이다.

=====30: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 정결한 금속에 더러운 찌끼를 다시 섞어서는 안 되

듯이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인간의 상상력이나 전승(傳承) 따위를 섞어 해석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 및 진리에 대한 사색에 있어서 곡해

(曲解)의 위험성은 항상 상존해 있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특히 지

식의 교만에 빠진 자의 경우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

고 빼기도 한다. 이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을 드러낸 것이며 인간의 이

성이 지극히 유한하며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소치이다.

=====30:7

두 가지 일 – 문맥이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말하고 있으니 본 구절도 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지식의 한계성을 인식하고서 그의 소

원도 그러한 인식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30:8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 두 가지 요구의 서술 순서가 의미 심장하

다. 지혜자인 저자는 인간의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허탄’은 모든 거짓된 모습, 거짓된 행복의 외양들, 헛된 기대들을 가리키며 ‘거짓말’

은 모든 속임수, 겉치레, 지키지 못할 약속 등을 가리킨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 문자적인 뜻은 ‘나에게 정해진 몫의 빵

을 음식으로 내게 주소서’이다. 이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라보게 한다

(마 6:11).

=====30:9

본절에서 두 극단의 위험이 묘사되고 있다. 자칫하면 부유함은 자만과 불신앙 혹

은 바로가 그랬던 것과 같은 냉소주의(출 5:2)로 빠지게 하고 극심한 가난은 부정직,

거짓 맹세등으로 나아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두 극단 중 하나로 빠지

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진다.

=====30:10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 문자적인 뜻은 ‘종은 그 상전에게 너의 혀로 헐

뜯지 말라’이다. 이것은 공개적으로든 은밀하게든 간에 어떤 종을 그 상전에게 모함

하거나 고발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만일 나중에 조사해 본 결과 그 종에게 잘못이 없

을 경우 모함한 자는 도리어 수치와 징책을 당할 수 있고 설령 잘못이 있는 경우라도

나중에 그 고발당한 종은 고발한 자에게 원할을 품고 결국엔 그도 고발할 기회를 엿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저히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는 책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범죄를 상관에게 고하는 형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말라는 것이 본절의 핵심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표명할 뿐 아니라 그 잘못을 또 다

른 사람의 귀에 옮기는 것을 좋아 하는 자에게도 본절은 경종을 울려준다.

=====30:11

원문 직역은 ‘그들의 아비를 저주하고 그들의 어미를 축복하지 않는 세대이니라’이

다. 저자는 당대의 지혜자로서 그의 세대에 만연하고 있는 대표적인 악들을 본절과

이어지는 세 절들에 열거하고 있는데, 십계명 중 제5계명과 관련된 폐단을 먼저 언급

한 것은 이것이 당시에 매우 심각한 죄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본절은 평행법을 사

용하되 독특하게 긍정문 뒤에 부정문이 연결되는 표현법을 도입하고 있는데 아마도 묘

사하려는 바는 부모를 모욕하고, 경솔히 대하고, 존경하지 않았던 당시의 세태인 것

같다.

=====30:12

원문 직역은 ‘그들 자신의 눈에는 정결하여 그 더러움을 씻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

는 세대이니라’이다. 여기 ‘더러움’은 ‘체에트'(* )로서 일반적으로는 육체적 불

결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도덕적, 종교적 불결을 가리킨다(사 36:12;슥 3: :3,4). 당

시에는 자신들이 불결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를 정

결한 자로 여기는 부류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의 특징은 외면적인 의식(儀

式)은 준수하지만 내적인 청결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사 1:16). 이것은 당시뿐 아

니라 신약 시대 바리새인들의 특징이었기도 하다(마 23:27).

=====30:13

본절은 스스로를 고상하다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은 경멸하는 교만한 자들을 회화적

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걸맞는 번역을 하는 역본이 있다 : ‘그 눈이 지

극히 교만하고 남을 쳐다보는 눈초리가 아주 경멸적인 사람들이 있는 세대이니라’

(those whose eyes are ever so haughty, whose glances are so disdainful, NIV)

=====30:14

욕심 때문에 타인을 잔혹하게 억압하고 탈취하되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그렇

게 하는 힘있는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들의 탐욕과 잔혹성을 묘사하기 위해 상반

절에서는 그들이 휘두르는 긴칼과 작은 칼, 그리고 하반절에서는 굶주린 갈가마귀와

무자비한 야수의 이미지가 각각 동원되었다. 본절이 그리고 있는 특성이 통치 세력의

특성이 될 때 그 나라의 운명은 절망적이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을 불순종한

중요한 이유 외에 힘없고 소외된 계층을 향한 통치 세력의 억압, 탈취 및 그 가운데

드러난 잔혹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암 5:12, 13).

=====30: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하느니라 – ‘거머리’에 해당하는 ‘알루카'(

* )는 성경에서 여기 한 번만 나오는 용어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규정

하기가 매우 힘들다. (1) 저자가 잘 알 뿐 아니라 당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던

탐욕으로 악명 높은 딸을 가진 한 여인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고(Clark) (2)

아라비아 민요에 나오는 사단의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3) 개역 성경의 번역처

럼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생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하반절이 끝없는 욕심의

개념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할 때 계속 피를 빨아 먹고도 족한 줄 모르

는 특성을 가진 거머리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이를 거머리로 볼 경우, ‘두

딸’이란 거머리 몸에 부착되어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두 개의 흡입관으로 이해하

면 되겠다.

=====30:16

족한 줄 모르는 특성을 지닌 대표적 네 가지 범례들이 나오는데 이 범례들은 인생

의 삶과 피조 세계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얻은 것들이다.

음부 – ‘무덤’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스올, 곧 지옥을 가리키는데 27:20에서는 이곳

을 모든 것을 삼키고도 만족해 하지 않는 곳으로 묘사한 바 있다.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 쪼이고 – 앞, 뒷절과는

연관성이 없지만 11절과 그 주제에 있어서 동일한 본절은 부모를 경멸한 자식이 맞을

운명을 묘사하고 있는데, 경멸의 의사(意思)가 그 눈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

서 눈이 뽑히우리라는 경고는 매우 적절하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식이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무덤도 없이 죽고 말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강한 경고도 적절하다

고 볼 수 있다.

=====30:18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나에게 너무 경이로운 것 세 가지가 있다. 내가

모르는 네 번째 것도 있다.’ 이 직역은 저자가 밝힐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는 네 가

지인데 그 중의 세 가지는 한 범주에 묶을 수 있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암시할 뿐아니라 마지막 네 번째 것은 앞의 세 가지 이야기보다 가장 오묘한

것임을 동시에 암시하는 듯하다.

=====30:19

저자는 주로 피조 세계의 관찰을 통하여 얻은 사실들을 진술하고 있다. 특히 본절

에는 자취로 번역된 ‘데레크'(* )가 네 차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는 행동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중 앞의 세 가지는 하늘, 땅위, 그리고 바다 위에서 일어난 장대

하고도 신비스러운 동작(행동)을 나머지 하나는 남녀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동작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의 나는 방향 그리고 목적지 따위는 관찰자에게 숨겨져 있

다.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 – 발이 없이도 부드럽고 능숙하게 갈 길을 가는

뱀 역시 그렇다.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 – 길이 없는 바다를 웅장하게 항해하는 배 역시 그렇

다.

남자가 여자가 함께 한 자취 – ‘여자’는 ‘알마'(* )로서 ‘처녀’가 아닌 결혼

하여 이미 성적인 경험이 있는 젊은 여인을 가리킨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

랑을 나누고 깊은 육체적 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게 되는 모든 과정은 신비롭기만 하

다. 저자가 가장 오묘하게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자취는 바로 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

성을 통하여 드러나는 일들이었다.

=====30:20

음녀의 자취 – 성적 관계를 직업으로 삼는 여인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는 까닭은 바

로 앞절에 합법적 결혼을 통한 성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앞절

과는 달리 본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특권을 왜곡되게 사용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먹고 입을 씻는다는 이미지는 성행위의 완곡한 표현이

다.

=====30:21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 세 가지 것들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고 이 세 가지 것들을

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 즉 이는 22,23절에 진술된 사건은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

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암시한다.

=====30:22

종이 임금된 것 – 이것은 종의 신분이었던 사람은 통치자가 될 수 없음을 암시하기

보다는 전혀 그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종

이었다가 국무총리가 된 요셉의 경우도 있거니와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종이었던 자가

왕이 되는 일이 간혹 있었다. 그런 왕의 경우 왕의 자격에 맞는 훈련을 쌓고 정치를

잘하여 앞선 시대의 통치자보다 훌륭하다는 평가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격이 제

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권력에 굶주린 자가 왕이 될 경우 영락없이 폭군, 압제자가 되

기 일쑤였다. 현대적 사례로는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30:23

꺼림을 받는 계집 – ‘매력이 없거나 밉살스러운 여인’이 그 문자적인 뜻이다. 남

자는 원치 않았으나 강압적인 상황이나 조건에 의하여 시집간 여인의 경우 남편의 미

움을 계속 받게 된다(창 29:31, 32).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 – 대표적인 예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그의 여종 하

갈에세거 찾을 수 있다. 하갈이 임신하고 사라를 멸시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가정의

평화는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사라는 하갈을 내쫓고 말았다(창

16:15;21:10).

=====30:24

가장 지혜로운 것(* , 하카밈 메후카밈) – 문자적인 뜻은

‘지혜중의 지혜’인데 70인역은 ‘지혜로운 것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번역한다. 어떤

번역을 취하든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25-28절에 나오는 생태계에서 드러나는 경이

로움이 인간의 지혜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30:25

힘이 없는 종류 – 문자적인 뜻은 ‘강하지 않은 민족’이다. 곤충을 인간의 무리인

듯 ‘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사실은 메뚜기를 이방 민족에 비유한 욜 1:6을 상

기시킨다. 잘 훈련된 조직체처럼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개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

들 속에 심기워진 본능의 경이로움을 보게 된다.

=====30:26

약한 종류 … 사반 – 여기 ‘사반’은 토끼, 생쥐 등으로 볼 수도 있으나 무대가 팔

레스틴인 사실을 고려할 때 팔레스틴 산 너구리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너구리는 연

약하고 겁이 많은 짐승으로 누구든 보면 바위 틈 사이로 숨어버리는 특징을 지녔다(시

104:18).

=====30:27

메뚜기 – 메뚜기 떼의 이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질서와 규율이다.

이 곤충은 잘 훈련된 군대가 그러듯이 한 지역을 공격하여 삽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

린다(욜 1:6,7).

=====30:28

손에 잡힐만 하여도 – 원문상 ‘그(도마뱀) 손으로 잡으며'(taketh hole with her

hands, KJV) 혹은 ‘(사람의) 손에 잡힐만 해도'(can be caught with the hand, NIV)

등과 같이 두 가지의 번역이 가능하다. 개역 성경은 후자를 택했으며, 만일 전자를

취할 경우 본절은 ‘도마뱀은 가옥이나 건물의 벽 속에 굴을 뚫고 그속으로 자유 자재

로 다니면서 독을 내뿜는 발로 거미나 그 외의 곤충들을 잡는 동물인데 왕궁 출입도

예외는 아니다’는 뜻이 된다.

=====30:29

본절 원문 직역은 ‘잘 가는 것들 셋이 있다. 가는 데 당당한 네 번째 것이 있다’

이다. 먼저 언급된 세 가지 예는 동물 세계에서 관찰한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 예는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걷는 왕을 관찰한 것이다.

=====30:30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 –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짐승의 왕이

라 불리우는 사자는 그 어떤 짐승이 쫓아와도 숨지 않으며 달리거나 걷는 페이스

(path)를 바꾸지 않느다.

=====30:31

사냥개(* , 자르지르)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등장하는 용어이다. ‘허

리에 띠를 두른 사람’이란 유사어가 있기 때문에 그 몸에 줄이 나있는 얼룩말로 보는

견해가 있고,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로 현재 이란 남부의 그 유적이 있는 페르세폴리스

의 조각품들을 통해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호화스러운 장신구를 부착한 당당한 모

습의 전마(戰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개역 성경처럼 ‘사냥개’

(greyhound, KIV) 혹은 ‘수탉'(rooster, NIV;cock, RSV)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그 정확

한 뜻을 단정하기가 힘들다.

당할 수 없는 왕 – ‘항거할 수 없는 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신하나 백성들에

둘러싸여 있는 왕’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서 왕이 언급되는 이유가 그 걷는

모습의 당당함 때문인 사실을 고려할 때 이 견해도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30:32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 이것은 죄를 짓고 난 후의 치욕과 뉘우침의 침묵 그리고

교만하고 사악한 생각을 말로 표출하기 전에 스스로 억제하는 자기 절제의 침묵의 표

현이다(Cook).

=====30:33

저으면 … 비틀면 … 격동하면 – 이 단어들은 ‘압력’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본절은 압력을 가하면 좋은 결과 혹은 나쁜 결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교

훈하고 있다. 본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본절의 의도는 분노가 시작된 마음에 압력을

가하여 더 큰 문제에로 나아가게 하지 않음으로써 평화와 조화를 이루라는 충고를 주

기 위함인 것 같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메튜 헨리 주석, 잠언 30장

30:1 아굴의 신앙 고백(잠언 30:1-6) 혹자는 “아굴”이본 잠언 기자의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는 “편집자”였고 수집자였으며 스스로 잠언을 지은게 아니라 딴 사람들이 지혜의 말씀과 관찰기를 집성하고 남의 기록 중에서 발췌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때문에 그가 “나는 몸소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으나 딴 지혜자와 학식있는 자의 서기, 또는 필기자가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풀이한다(3절 참조). 우리가받은 달란트가 단 하나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것을 땅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되며, 설령 남이 기록한 것을 단지 수집하는 일이라 해도 우리가 받은 은사대로 봉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굴이란 말이 오히려 그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성서에 다시는 언급되지 않긴 하나 틀림 없이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던 이름이었을 것이다. 또 “이디엘과 우갈”이란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1. 그의 문하생의 이름. 그의 문하생의 이름. 이들은 그에게 교훈을 받던 자들이었거나, 아니면 그의 지혜와 인자함을 크게 평가하여 신탁을 물으러 온 자였을 것이다. 아마 이들은 바룩이 예레미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받아 기록한 것처럼 그가 구술하는 것을 기록했을 것이고 그와 같이 하여 이 잠언을 보존했을 것이며, 이것이 아굴의 잠언임을 기꺼이 입증하려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잠언은 이들에게 말할 것이고, 그들은 이 잠언의 두 증인이기 때문이다. 2. 그의 담화의 주제. 그의 담화의 주제. “이디엘(Ithiel)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뜻인데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의 “임마누엘”(Immanuel)을 단수목적어에 따라 변용한 형태이다. 이 단어는 그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칭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이 말을 전용하여 그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이 칭호는 곧 나를 사랑하시사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으면 그와의 연합과 그와의 교제를 나에게 허용해 주신 분”을 나타낸다. “우갈”(ucal)은 “전능하신 자”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 자는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해석자들 중 다수가 이 말을 메시야에 적용한다. 모든 예언이 그에게 대해 증거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해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이 말씀은 아굴이 “이디엘, 바로 이디엘”(원문에는 이 이름을 강조하고 있다)과 “우갈”-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사 7:14; 9:6)”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 예언자는 여기서 다음 세 가지를 위해 이야기하고 있다. Ⅰ. 자기 비하(卑下)를 위하여. 아둘은 자기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자신의 미련함과 자기 이성의 약점과 결핍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에 의해 인도와 규제를 받을 필요성이 있도록 해 준다. 그는 구세주를 꼭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과 그가 없이는 무용지물밖에 되지 않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1. 그는 의로움이 결여되고 미련하게, 아주 어리석게 행동한 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나는 실로 짐승이라”고 자인한다. “사람마다 짐승처럼 우준하도다”(렘 10:14). 자기의 마음을 아는 자는 딴 어떤 사람보다 자신의 악함을 더욱 많이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이 절규한다. “참으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짐승같은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나만큼 부패하고거짓된 마음을 지닌 자는 없으리라. 나는 아담(히브리어로 아담은 인간이란 뜻:역주)의 총명을 갖지 못한 자처럼 행동하였고 인간이 태초에 창조됐을 때 지니던 지식과 의로부터 비참하게 타락돼 버린 자로서 행동하였다. 아니, 나는 사람의 상식과 이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만약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행하지는 않았어야 할 게 아닌가!” 아굴은 타인으로부터 여늬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자로 인정되었으나 자신은 누구보다 더 미련한 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우리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든지 간에 우리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

2. 그는 자기를 진리와 지혜의 길로 인도해 줄 계시가 부족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또 다음과 같이 자백하고 있다(3절). “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지혜의 깊이는 내 재간과 수단으로 잴 수가 없다-거룩하신 자들, 천사와 범죄 이전의 첫 조상을 아는 지식도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아는 지식도 없다. 하나님이 나에게 알리시기를 원하는 이상으로는 이들을 살필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육신의 인간이나 생리적 힘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에 관한 일들을” 깨달을 수 없으며 “받지도 못한다.” 그는 의로움이 결여되고 미련하게, 아주 어리석게 행동한 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나는 실로 짐승이라”고 자인한다. “사람마다 짐승처럼 우준하도다”(렘 10:14). 자기의 마음을 아는 자는 딴 어떤 사람보다 자신의 악함을 더욱 많이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이 절규한다. “참으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짐승같은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나만큼 부패하고거짓된 마음을 지닌 자는 없으리라. 나는 아담(히브리어로 아담은 인간이란 뜻:역주)의 총명을 갖지 못한 자처럼 행동하였고 인간이 태초에 창조됐을 때 지니던 지식과 의로부터 비참하게 타락돼 버린 자로서 행동하였다. 아니, 나는 사람의 상식과 이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만약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행하지는 않았어야 할 게 아닌가!” 아굴은 타인으로부터 여늬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자로 인정되었으나 자신은 누구보다 더 미련한 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우리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든지 간에 우리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그는 자기를 진리와 지혜의 길로 인도해 줄 계시가 부족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또 다음과 같이 자백하고 있다(3절). “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지혜의 깊이는 내 재간과 수단으로 잴 수가 없다-거룩하신 자들, 천사와 범죄 이전의 첫 조상을 아는 지식도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아는 지식도 없다. 하나님이 나에게 알리시기를 원하는 이상으로는 이들을 살필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육신의 인간이나 생리적 힘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에 관한 일들을” 깨달을 수 없으며 “받지도 못한다.” 혹자는 아굴이 옛날 아폴로의 신탁처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 는 질문을 받았다고 상상한다. 그 대답은 특히 거룩한 일에 있어서 “자기의 무지를 깨닫는 자”이다. Hoc tantum scio, me nihil scire-즉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Ⅱ.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칭송하기 위하여(4절). 1. 혹자는 이 말씀을 하나님과 그의 역사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일은 비교와 측량이 불가능하다. 그는 위에 있는 하늘과, 바람과 물과 땅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온 인류에게 도전하고 있다. “하늘에 올라 가서 위에 있는 천체들을 살펴 보고 내려와서 설명하겠노라고 나설 수 있는 자가 누구냐? 누가 바람을 지배하여 자기 손에 장악하고 하나님같이 조종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하나님이 행하셨듯이 바다 물결을 강보에 쌌다고 주장하겠는가? 누가 땅의 모든 끝을 정하였으며, 그 기초의 강도(强度)와 그 계한의 넓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경쟁하겠다거나 그의 모사가 되겠다는 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보라. 만약 그가 죽었다면 그에게 이 큰 비밀을 물려 받은 자의 이름은 무엇인지 말해 보라.”

2. 또 딴 자들은 이것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디엘과 우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본문에서 찾고 있으며, 도전적으로 묻고 그와 겨룰 수 있느냐고 한 것은 아버지의 이름인 동시에 아들이 이름도 되는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계시된 자로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에는 숨기운 자로서, 듣긴 조금 들었으나 아는 게 불분명하고 불완전한 자로서 그를 크신 자라고 칭송하였다. “우리가 귀로 그의 소문은 들었으나(욥 28:22)” 그를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람을 그 장중 손에 모으시며” “물을 그 옷에 싸는” 이는 확실히 하나님이시다. 혹자는 이 말씀을 하나님과 그의 역사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일은 비교와 측량이 불가능하다. 그는 위에 있는 하늘과, 바람과 물과 땅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온 인류에게 도전하고 있다. “하늘에 올라 가서 위에 있는 천체들을 살펴 보고 내려와서 설명하겠노라고 나설 수 있는 자가 누구냐? 누가 바람을 지배하여 자기 손에 장악하고 하나님같이 조종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하나님이 행하셨듯이 바다 물결을 강보에 쌌다고 주장하겠는가? 누가 땅의 모든 끝을 정하였으며, 그 기초의 강도(强度)와 그 계한의 넓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경쟁하겠다거나 그의 모사가 되겠다는 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보라. 만약 그가 죽었다면 그에게 이 큰 비밀을 물려 받은 자의 이름은 무엇인지 말해 보라.”또 딴 자들은 이것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디엘과 우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본문에서 찾고 있으며, 도전적으로 묻고 그와 겨룰 수 있느냐고 한 것은 아버지의 이름인 동시에 아들이 이름도 되는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계시된 자로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에는 숨기운 자로서, 듣긴 조금 들었으나 아는 게 불분명하고 불완전한 자로서 그를 크신 자라고 칭송하였다. “우리가 귀로 그의 소문은 들었으나(욥 28:22)” 그를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람을 그 장중 손에 모으시며” “물을 그 옷에 싸는” 이는 확실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출 3:14)라는 게 바로 그의 이름이다. 경배받을 이름이지만 깨달아 알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말미암는 “그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구약 성도들은 메시야를 “복된 자의 아들”로 고대하였으며,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분명히 구별되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그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는 않다. 위대하신 구속주께서는 자기 섭리와 은혜의 영광 중에서 견줄 자가 없으시며, 또 완전히 발견되지도 않으시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은혜로운 나라의 영화는 찾아낼 수도 없고 비할 데도 없다. 그 외에 달리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세계를 완전히 알고 친히 양쪽 나라와 자유로이 교통하며, 따라서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중보자로서 통신을 전담하기에 적격인 분이 달리 누구 있는가? 그는 “하늘에서” “아버지 품 속에”계셨다(요 1:1, 8). 그는 우리의 본성을 입으시고 거기서 내려 오셨으니 그와 같이 자기를 낮추신 겸손은 결코 없었다. 그는 자기의 높아진 상태의 약속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다시 올라 가셨으니(엡 4:9), 그 외에 누가 이렇게 행하였는가?(롬 10:6)

(2) 그 하나님의 섭리의 나라의 영화도 마찬가지로 알아낼 길이 없고 비할 데가 없다.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는 분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과 같은 분이시며, 지금도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계신다. “공기”와 “물”과 “흙”의 세 가지 원소에 대한 그의 통치는 여기서 세분화되어 나타나 있다.

[1] 공기의 운동은 그의 지시에 속해 있다. 사탄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로 자처하나 공중에서 조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다. 그가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람도 순종하였던 것이다.

[2] 물의 경계도 그의 정하심에 속해 있다. 그는 “물을 옷에 싸시니,” “그들이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라”(욥 38:9-11).

[3] 땅의 기초도 그가 확립하신 것이다. 태초에 땅의 기초를 세우신 분도, 아직 떠받치고 계신 이도 그분이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중재하지 않으셨더라면 인간의 죄 때문에 땅에 쌓인 저주의 하중으로 땅의 기초는 벌써 내려 앉아 버렸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은 누구시며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아들을 완전히 찾아낼 수는 없다. “오! 그 지식의 깊음이여!” 하나님의 은혜로운 나라의 영화는 찾아낼 수도 없고 비할 데도 없다. 그 외에 달리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세계를 완전히 알고 친히 양쪽 나라와 자유로이 교통하며, 따라서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중보자로서 통신을 전담하기에 적격인 분이 달리 누구 있는가? 그는 “하늘에서” “아버지 품 속에”계셨다(요 1:1, 8). 그는 우리의 본성을 입으시고 거기서 내려 오셨으니 그와 같이 자기를 낮추신 겸손은 결코 없었다. 그는 자기의 높아진 상태의 약속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다시 올라 가셨으니(엡 4:9), 그 외에 누가 이렇게 행하였는가?(롬 10:6)그 하나님의 섭리의 나라의 영화도 마찬가지로 알아낼 길이 없고 비할 데가 없다.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는 분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과 같은 분이시며, 지금도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계신다. “공기”와 “물”과 “흙”의 세 가지 원소에 대한 그의 통치는 여기서 세분화되어 나타나 있다.공기의 운동은 그의 지시에 속해 있다. 사탄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로 자처하나 공중에서 조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다. 그가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람도 순종하였던 것이다.물의 경계도 그의 정하심에 속해 있다. 그는 “물을 옷에 싸시니,” “그들이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라”(욥 38:9-11).땅의 기초도 그가 확립하신 것이다. 태초에 땅의 기초를 세우신 분도, 아직 떠받치고 계신 이도 그분이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중재하지 않으셨더라면 인간의 죄 때문에 땅에 쌓인 저주의 하중으로 땅의 기초는 벌써 내려 앉아 버렸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은 누구시며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아들을 완전히 찾아낼 수는 없다. “오! 그 지식의 깊음이여!” Ⅲ.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우리에게 확신시키고 권면하기 위해서(5,6절). 아굴은 하나님에 관한 일로 그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도저히 여러분의 훈계를 맡을 수가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에게 가보시오. 그가 자신과 자기의 마음과 뜻에 대해 거기에 계시하신 것을 살펴보시오. 여러분은 말씀이 가르치는 이상은 알 필요가 없으며, 더구나 그 말씀은 확실하고 충분한 것으로 의지할 만하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오. 거기에는 허위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으며 부패한 것이 없소.” 사람의 말을 듣거나 읽는 데에는 경계하거나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부족한 데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여지가 조금도 없다. 그것은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아서”(시 12:6) 불순물이나 찌꺼기가 추호도 들어 있지 않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나이다”(시 119:140). 1.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뢰해야 하고 우리 영혼을 과감히 내맡겨야 한다. 자신의 말씀 속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약속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자기의 보호 아래로 투신하는 모든 자와 자기를 의지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며 확실한 보호물이 되어 주신다.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 우리는 최대의 위험 가운데에서도 편안하게 될 것이다(시 46:1, 2).

2.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하다. 그러므로 그 말씀에 우리가 더해서는 안 된다(6절).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며 온전하기 때문에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거나 경쟁적 지위에 오르는 그 어떤 것도 금하고 있다. 해설을 위한 것이라는 구실이 그럴 듯하게 붙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내세우면 그것은 “그의 말씀에 더하는”것이 된다. 이것은 그 말씀이 불충분하다는 수치를 입히는 일인 동시에 온갖 오류와 타락을 불러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한 사람의 말, 또는 집단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믿음과 존경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하나의 부조기가 용납되면 수천의 부조리가 대두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알맞다고 생각하셔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며, “기록된 것 이상으로 지혜롭게” 되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 때문이다.

(1) 하나님은 이것을 극도로 모욕으로 간주하셔서 분개하실 것이다. “그는 너를 책망하실 것이다. 너를 자기 왕권과 존엄에 대한 반역자로 간주하시어 너를 자기 말씀에 가감하는 자들의 가혹한 운명 아래 두실 것이다”(신 4:2; 12:32).

(2) 우리는 끝없는 실수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 “너는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참된 말씀을 부패케하는 자, 이단 사설의 제창자극히 흉칙한 위조범이 될 것이다. 하늘 나라의 옥새를 위조하며 하나님의 사명과 영감을 위장하지만 그 모은 것은 사기이나, 사람은 속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희롱당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뢰해야 하고 우리 영혼을 과감히 내맡겨야 한다. 자신의 말씀 속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약속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자기의 보호 아래로 투신하는 모든 자와 자기를 의지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며 확실한 보호물이 되어 주신다.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 우리는 최대의 위험 가운데에서도 편안하게 될 것이다(시 46:1, 2).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하다. 그러므로 그 말씀에 우리가 더해서는 안 된다(6절).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며 온전하기 때문에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거나 경쟁적 지위에 오르는 그 어떤 것도 금하고 있다. 해설을 위한 것이라는 구실이 그럴 듯하게 붙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내세우면 그것은 “그의 말씀에 더하는”것이 된다. 이것은 그 말씀이 불충분하다는 수치를 입히는 일인 동시에 온갖 오류와 타락을 불러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한 사람의 말, 또는 집단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믿음과 존경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하나의 부조기가 용납되면 수천의 부조리가 대두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알맞다고 생각하셔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며, “기록된 것 이상으로 지혜롭게” 되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 때문이다.하나님은 이것을 극도로 모욕으로 간주하셔서 분개하실 것이다. “그는 너를 책망하실 것이다. 너를 자기 왕권과 존엄에 대한 반역자로 간주하시어 너를 자기 말씀에 가감하는 자들의 가혹한 운명 아래 두실 것이다”(신 4:2; 12:32).우리는 끝없는 실수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 “너는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참된 말씀을 부패케하는 자, 이단 사설의 제창자극히 흉칙한 위조범이 될 것이다. 하늘 나라의 옥새를 위조하며 하나님의 사명과 영감을 위장하지만 그 모은 것은 사기이나, 사람은 속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희롱당하지 않으신다.”

30:7 아굴의 기도(잠언 30:7-9) 아굴의 신조와 고백 뒤에는 그의 기도가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살필 수 있다. Ⅰ. 아굴의 기도의 서론.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나이다.” 우리는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께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즉 우리의 경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마음에 소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가? 이런 것을 미리 생각해 놓음으로써 정작 청원과 요구를 제시해야 할 때 그것을 찾을 필요가 없게된다. 그는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하고 애걸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죽음도 생각해 봐야 하고 거기에 따라 기도드려야 한다. “여호와여, 내가 죽기 전에, 내가 여기서 떠나가 더 이상 존재치 않게 되기 전에 용서와 평안과 은혜를 주시옵소서. 죽기 전에 중생과 성별함을 얻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이 일을 이룰 수 없지 않습니까? 죽기 전에 기도의 효험을 얻지 못하면 나중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호와여! 여호와여! 그렇지 않습니까? 무덤 속에는 이런 지혜도 없고 역사도 없습니다. 주의 은혜를 내게 거절하지 마소서. 주께서 주지 않으시면 나는 죽습니다. 나는 망합니다. 당신이 내게 잠잠하시면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습니다.(시 28:1). 내가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내가 산 자의 땅에 남아 있는 한 나로 주의 은혜와 선하신 섭리의 인도하심 아래 존속하게 하소로.” Ⅱ. 아굴의 기도 그 자체. 그가 요구하는 “두 가지 일”은 충족한 은혜와 필요한 양식이다. 1. 그의 영혼에 충족은 은혜. 그의 영혼에 충족은 은혜. “허탄과 거짓마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 나를 죄악에서 건지시고 모든 부패한 원리와 행위와 애정에서 구하시며, 모든 죄의 밑바닥에 있는 실수와 오류에서 건지시고 세상과 세상 것에 대한 사랑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 이들은 모두가 허탄과 거짓이옵니다.” 혹자는 이 말씀을 죄의 사유하심에 대한 기도로 해석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실 때 그것을 제거하시고 치워버리시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기도는 오히려 우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하옵소서.”란 주기도문과 취지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죄보다 우리에게 더 해로운 것은 없다. 그러므로 “dr을 행치 않게”해 달라고 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기도드릴 것은 없는 것이다. 2. 신체에 필요한 양식. 신체에 필요한 양식. 신의 은혜가 역사해 주시길 기도드린 그는 여기서는 신의 섭리의 은총을 구한다. 그러나 영혼에 유익하나 피해가 갈 정도로 섭리의 은총을 구하지는 않는다.

(1) 그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중에서 이 세상살이에 충분한 몫의 낙을 얻게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배당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하시는 만큼만 주소서.” 우리는 섭리의 모든 선물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또 이 말씀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내게 알맞는 양식을 주소서. 내 신분과 형편에 어울리는 양식을 주소서.”라고 해독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 능력에 알맞게 얻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란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이 말씀을 뜻한 듯하며, 이 말씀은 이 “먹을 양식과 입을 의복”외에는 더 원하지 않는다고 하나 야곱의 서원을 인용한 것 같다. 우리는 설령 고량진미와 진수성찬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만으로 흡족히 여겨야 한다. 향락과 장식에 쓸 것을 소유하지 못해도 꼭 필요한 것만 있으면 만족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여 구하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꼭 필요한 양식인 것이다.

(2) 그는 자기에게 시험이 될 만한 모든 생활 환경으로부터 멀리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1] 그는 지나친 풍요함이나 궁핍을 얻지 않도록 기도드리고 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그는 이 일에서 하나님께 지시하지도 않고 자기에게 어떤 형편을 배당해 달라고 가르치기를 자처하지도 않으며 빈곤이나 풍부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기도를 드리지도 않는다. 빈곤이든 부든 그 자체에 있는 악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별되어 우리에게 유익한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중에서 이 세상살이에 충분한 몫의 낙을 얻게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배당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하시는 만큼만 주소서.” 우리는 섭리의 모든 선물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또 이 말씀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내게 알맞는 양식을 주소서. 내 신분과 형편에 어울리는 양식을 주소서.”라고 해독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 능력에 알맞게 얻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란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이 말씀을 뜻한 듯하며, 이 말씀은 이 “먹을 양식과 입을 의복”외에는 더 원하지 않는다고 하나 야곱의 서원을 인용한 것 같다. 우리는 설령 고량진미와 진수성찬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만으로 흡족히 여겨야 한다. 향락과 장식에 쓸 것을 소유하지 못해도 꼭 필요한 것만 있으면 만족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여 구하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꼭 필요한 양식인 것이다.그는 자기에게 시험이 될 만한 모든 생활 환경으로부터 멀리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그는 지나친 풍요함이나 궁핍을 얻지 않도록 기도드리고 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그는 이 일에서 하나님께 지시하지도 않고 자기에게 어떤 형편을 배당해 달라고 가르치기를 자처하지도 않으며 빈곤이나 풍부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기도를 드리지도 않는다. 빈곤이든 부든 그 자체에 있는 악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별되어 우리에게 유익한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첫째, 그는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이 중요적 생활 상태에 대해 품고 있는 존중감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자기의 상태가 너무 존귀한 것도 너무 천대받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빈부 두 가지의 생활을 다 소화할 줄 알아야겠지만(빌 4:12) 오히려 이 양자의 중간에 항상 위치하게 되기를 원해야 하겠다. Optimus pecunioe modus qui nec pinaupertaten cedit nec procul a paupertate discedit -즉 최상의 상태는 빈곤을 읨하는 것도 아니요 빈곤에서 멀리 물러난 것도 아닌 상태이다-쎄네카. 둘째, 그는 여기서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경건한 경계심을 암시하고 있다. 곤고한 형편이나 형통하는 형편에 대한 시험으로부터 자기의 소신을 고수할 만한 자신이 없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남들은 빈곤이나 부유에서 초연히 자신의 완전함을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는 이들을 다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즉 육신의 충동이 그에게 가난을 원치 않는 기도를 드리게 한다면, 이에 못지 않게 은혜가 부유를 부정하는 기도를 드리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어다.”

[2] 자기 기도에 대해 경건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9절). 그는 “혹 내가 부하게 되어 골치 썩힐 일이 많아지고 내 이웃에게 시기받으며 수수한 종들이 살림을 거덜낼까 두려우며, 혹 내가 가난하게 되어 짓밟히고 고된 일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면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부하게 되어 죄짓게 될까 두려우며 혹 가난하게 되어 죄짓게 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하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죄는 어떤 상황이나 경우에서든지 선한 자가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한다”고한 느헤미야 선지가 이에 대한 증거이다(느 6:13). 자기 기도에 대해 경건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9절). 그는 “혹 내가 부하게 되어 골치 썩힐 일이 많아지고 내 이웃에게 시기받으며 수수한 종들이 살림을 거덜낼까 두려우며, 혹 내가 가난하게 되어 짓밟히고 고된 일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면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부하게 되어 죄짓게 될까 두려우며 혹 가난하게 되어 죄짓게 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하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죄는 어떤 상황이나 경우에서든지 선한 자가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한다”고한 느헤미야 선지가 이에 대한 증거이다(느 6:13). 첫째, 아굴은 부유한 형편이 몰고 올 시험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심지어 부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탄원한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하며”(“살찌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발로 차고 버린 여수룬처럼,” 신 32:15), 자기 교만에 찬 바로처럼 “여호와가 누구간대 내가 그 말을 듣겠느냐?”라고 말하게 될까 “두렵나이다.” 사람은 번영을 누리게되어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필요치 않으며 따라서 그에게 대한 아무 의무도 없다는 긋이 하나님을 망각하게 된다.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욥 22:17) 그러므로 형통으로 교만해진 자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행하려 들지 않는다. 선량한 자들조차 극히 악한 죄를 짓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이토록 거짓되다고 생각하며 이세상에서 얻는 최대의 이익으로도 극히 작은 죄 하나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가난한 형편에 따르는 시험을 두려워하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게 될까 두려워하나이다”하고 기도한다. 가난은 사람의 정직함을 강력하게 시험하며 부정직으로 유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험에 굴하고 만다. 그들은 가난이 자기의 부정직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훔쳤다”고 말한다 해서 재판석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정에서도 이런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그것은 동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된다(잠 6:30). 정직한 원칙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들조차 때로는 이런 잘못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아굴이 이 도둑질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살펴 보면 도둑질로 이해 위험에 빠지게 될까봐 두려워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교수형을 받는다거나 매를 맞거나 수갑과 차꼬를 차게 된다거나, 노예로 팔려갈까봐 겁낸 것은 아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보상해 줄 재력이 없어 노예로 팔려 가는 가난한 도둑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한 것은 “내가 도적질하여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신앙 고백과 부합되지 않는 행위로 경건한 신앙을 먹칠하게 될 것이었다. 또는 도둑질하다가 추궁을 받게 될 때 거짓 맹세를 하게 될까봐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가 한 가지 죄를 두려워하는 것은 또 다른 죄까지 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 길은 내리막 길인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를 노엽게 할 어떤 범행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30:10 네 종류의 악한 세대(잠언 30:10-14) Ⅰ. 여기에는 자기 하인에게 대하듯 딴 사람의 하인을 학대하지 말며 그 주인과 이간시키지 말라는 훈계가 나온다. 이 같은 행위는 나쁜 짓이며 보기 흉한 짓이어서 남에게 미움받을 만한 악행이기 때문이다(10절). 다음 사실을 고려해 보자. 1. 이것은 종이 대한 권리 침해이다. 그의 불쌍한 처지로 보아 그는 연민의 대상이 되나. 그러므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고통을 가한다는 것은 야만적인 것이다. 난외주에는 “종을 네 혀로 해치지 말라”고 되어 있다. 혀라는 채찍으로 남을 은밀히 친다는 것은 옹졸한 심사를 증명한다. 특히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 자, 즉 종에게 그 같이하는 경우는 그러하다. 그 주인이 그에게 가혹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를 더 속상하게 하지 말고 오히려 보호해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2. “이것은 네 자신의 손해가 된다. 그 종이 화가 나면 너를 저주하고 고소하여 너를 곤란한 입장에 빠뜨릴 것이다. 아니면 네게 욕설을 퍼부어 네 명예에 오점을 찍거나,하나님께 호소하여 그의 진노가 네게 임하게 해달라고 기원할 것이다. 하나님은 학대받은 무죄한 자의 후견자요 보호자이신 것이다.” 이것은 종이 대한 권리 침해이다. 그의 불쌍한 처지로 보아 그는 연민의 대상이 되나. 그러므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고통을 가한다는 것은 야만적인 것이다. 난외주에는 “종을 네 혀로 해치지 말라”고 되어 있다. 혀라는 채찍으로 남을 은밀히 친다는 것은 옹졸한 심사를 증명한다. 특히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 자, 즉 종에게 그 같이하는 경우는 그러하다. 그 주인이 그에게 가혹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를 더 속상하게 하지 말고 오히려 보호해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이것은 네 자신의 손해가 된다. 그 종이 화가 나면 너를 저주하고 고소하여 너를 곤란한 입장에 빠뜨릴 것이다. 아니면 네게 욕설을 퍼부어 네 명예에 오점을 찍거나,하나님께 호소하여 그의 진노가 네게 임하게 해달라고 기원할 것이다. 하나님은 학대받은 무죄한 자의 후견자요 보호자이신 것이다.” Ⅱ. 이 훈계에 즈음하여 유덕하고 선량한 모든 자에게 증오를 받아 마땅한 몇몇 악인 세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 부모를 학대한 악한 무리. 부모를 학대한 악한 무리. 이들은 부모에게 욕하고 저주하며, 나쁜 이름으로 부르다 못해 실제로 상처를 입히기까지 한다. 그러한 “무리가 있느니라.” 이런 못된 품행의 청년들은 흔히 끼리끼리 모여 떼를 짓고 서로 자기 부모를 애타게 한다. 자기에게 지워진 멍에를 견디지 못해 육친이나 관원이나 목사를 저주하는 자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다. 자기 부모를 저주할 정도로 극악한 경지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부모를 축복하지 않으며 고운 말로 대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도 드리지 않으려는 자들은 독사 무리의 사촌쯤은 되는 것이다. 2. 스스로 젠체하고 허울뿐인 성결을 가장하여, 남들뿐만 아니라 아마 자신들로부터도 많은 악행을 숨기는 자(12절). 스스로 젠체하고 허울뿐인 성결을 가장하여, 남들뿐만 아니라 아마 자신들로부터도 많은 악행을 숨기는 자(12절). 이들은 자기들이 모든 점에서 당위의 범주를 이탈하지 않기라도 한 듯, “스스로를 깨끗한 자로 여기느니라.” 자신과 자신의 성격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하며 자기의 의인일 뿐만 아니라 “부지며 부요한 자”(계 3:17)라고 과대평가를 한다. 그러고는 “자기들의 더러운 것을” 즉 그 마음의 더러움을 “씻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들의 가장 선한 부분이라고 내세운다. 아마 그들은 비로 쓸고 아름답게 장식은 할지언정 깨끗이 씻고 성화(聖化)시키지는 않을 것이니, 안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던 바리새인과 같다(마 23:25, 26). 3. 자기 주위 사람에게 거만하고 냉소적인 자(13절). 자기 주위 사람에게 거만하고 냉소적인 자(13절). 필자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저희 교만과 무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언급하고 있다. “저희 눈이 심히 높으니라! 그들은 자기 이웃을 얼마나 괄시하는지, 자기의 양지키는 개보다도 못한 자인양 경멸의 시선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누구든지 자기를 슬금슬금 피해 주기를 여간 기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어떤가! 실은 자신을 가소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인 줄 모르고 화려하게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공작새처럼 뽐내며 자랑한다.” 세상에는 그런 무리가 있으며,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분께서 그런 자에게 치욕을 쏟으실 것이다. 4. 가난한 자에게 잔인하고,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자에게 야만적인 자(14절). 가난한 자에게 잔인하고,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자에게 야만적인 자(14절). 앞니는 쇠와 철 같아서 장검과 군도가 되며 잔혹한 기계가 되어 음식을 잘라 먹는 굶주린 자처럼 탐욕스럽게, 또 최대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궁핍한 자를 삼키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도록” 정하시고, 또 그들이 “땅에서 그치지 않도록”하셨다. 그러나 이들을 구제하기가 싫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땅에서, 사람들 중에서 멸하고자 하며, 특히 하나님의 가난한 자를 없애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 혹자는 이 무리를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파멸시키고자 하여, 중상 모략을 하고 무고하며 그들의 영원한 상태를 혹독하게 비난하는 자들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자들의 혀와 이는(두 가지는 모두 언어 기관이다) “장검과 군도 같으니라”(시 57:4 참조).

30:15 만족을 모르는 네 가지(잠언 30:15-17) 앞에서는 가난한 자를 삼키는 무리에 대해 말씀하였고(14절) 또 네 가지 무리 중 가장 악한 자들로서 이들을 마지막에 언급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이 악행을 할 때 느끼는 그들의 불만족감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상투적 기질은 잔인성과 탐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거머리”에게서 난 “두딸”과 같이 “다고다고 하고 더 많은 피를 다오. 더 많은 돈을 다오”하며 소리친다. 즉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계속 피에 굶주리며, 피에 흠뻑 취한 자는 갈증이 더욱 심해져 계속 피를 찾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을 사랑하는”자들은 결코 “은에 족한 줄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리에 의하여 궁핍한 자들을 삼키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스스로 계속 불안해 한다. 다윗의 대적들도 그러했었다(시 9:14, 15). 이제 이에 대해 좀더 상세한 묘사가 펼쳐지고 있다. Ⅰ. 그는 “족하다” 하거나 “부하다”하지 않는 그들 탐식자들과 비교하여 만족을 모르는 다른 네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항상 탐내는 것들은 결코 부요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갈망하고 있는 네 가지란 어떤 것인지 살펴 보자. 1. 음부. 음부. 무수한 사람들이 거기에 빠지며, 아직도 더 많은 자들이 계속 거기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음부는 그 모든 사람을 다 삼켜 버리고 아무도 돌려 보내지 않는다. “음부와 유명은 결코 만족함이 없느니라”(잠 27:20). 우리 차례가 오면 우리를 위해 마련된 무덤을 보게 될 것이다(욥 17:1). 2. “아이 배지 못하는 태.” “아이 배지 못하는 태.” 불임녀는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고통을 참지 못해 라헬처럼 “내게 자녀를 달라” 외친다. 3. 한발시의 “물로 채울 수 없는 땅.” 한발시의 “물로 채울 수 없는 땅.” 이러한 땅(특히 열대 지방의)은 풍성히 내리는 비도 계속 흡수하여 잠시 후면 더 많은 물을 요구한다. 4. “불.” 불은 충분한 양의 연료를 태워 없애고도 탈 수 있는 물질을 던져 넣으면 넣는 대로 계속 삼켜댄다. “불.” 불은 충분한 양의 연료를 태워 없애고도 탈 수 있는 물질을 던져 넣으면 넣는 대로 계속 삼켜댄다. 죄인의 부패한 욕망은 이처럼 배부른 줄 모르며, 그 욕망을 마음껏 누리고도 거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Ⅱ. 불순종의 자녀에게 대해 무서운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데(17절), 이것은 네 종류의 악한 무리 중 부모를 저주한 첫 번째의 무리에게(11절) 경고를 주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다음 사실이 제시되고 있다. 1. 이 악한 무리에 속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악한 무리에 속하는 자는 누구인가? 분노와 격정으로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자들은 물론 이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들도 여기에 속한다.

(1) 부모를 “조롱하는” 자. 부모를 “조롱하는” 자. 단지 얕보는 시선으로 조롱하는 것에 불과하며, 부모의 신체적 허약함 때문에 멸시하거나 훈계와 명령을 들을 때 싫은 표정을 짓고 고집을 피우며, 그들의 견제를 참지 못해 화를 내는 정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들은 이 악한 무리에 들게 된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그 부모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주목하고 계시며 부모에게 퍼붓는 악한 말뿐만 아니라 험상?은 표정과 흘겨 보는 눈초리도 다셈하실 것이다.

(2)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 부모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을 시답지 않게 여기고 코웃음치며, 어머니에게 통제받지 않으려는 자들고 이 무리에 속한다. 이 때문에 고통 속에서 자식을 낳은 어머니는 보다 큰 고통 가운데서 자식의 못된 태도를 지켜 보는 수밖에 없게 된다. 2. 그런 무리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그런 무리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부모를 명예롭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복수의 기념물로 세우실 것이다. 말하자면, 사슬에 묶인 채 매어 달려서 새들에게 저희 눈을 쪼아 먹히게 될 것이다. 자기의 선한 부모를 그토록 멸시하던 바로 그 눈을 뽑히게 될 것이다. 악인의 시체는 밤새도록 매달아 놓지 못하도록 돼 있었지만 밤이 되기 전에 까마귀들이 그 눈을 파먹을 것이었다. 사람들이 패륜아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며, 자기 부모한테 거만히 행동하는 자들에게는 최대의 치욕을 퍼부우실 것이다. 불명예스러운 종말을 맞게 된 사람들 중에 많은 자들은 자기들의 악한 길을 되돌아 보고 그 악한 길의 출발점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경멸이었다고 자인했던 것이다.

30:18 알 수 없는 네 가지 일(잠언 30:18-23) Ⅰ. 탐색이 불가능하고, 완전히 알기에는 “심히 기이한” 네 가지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 처음 세 가지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단지 마지막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비교로 등장할 뿐이다. 우리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다음 세 가지 있다.

(1) “공중의 독수리.” 처음 세 가지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단지 마지막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비교로 등장할 뿐이다. 우리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다음 세 가지 있다.”공중의 독수리.” 이 새가 날아간 것은 발자취나 냄새로 찾아 낼 수가 없다. 짐승이라면 그 길이 땅 위에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흔적으로 찾을 수도 있다. 이 새는 얼마나 빨리 날아가는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그 신기한 비상도 설명할 수 없다.

(2) “반석 위의 뱀.” “반석 위의 뱀.” 뱀이 모래 위로 기어간 길은 우리가 그 흔적으로 찾아낼 수 있으나, 딱딱한 바위 위로 간 뱀의 길은 찾아 낼 수가 없다. 발도 없는 뱀이 어떻게 바위 꼭대기까지 쉽사리 기어가는지도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3) “바다로 지나 다니는 배.” “바다로 지나 다니는 배.” 악어는 실로 “자기 뒤에 광채나는 길을 내니, 사람이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같다”고 하지만(욥 41:32)배는 지나간 흔적을 나기지 않는다. 때로는 파도에 가랑잎처럼 요동하는 배가 어떻게 바다를 왕래하게 되는지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다. 자연계에는 삼라만상의 하나님이 행하시는 불가사의와 신기한 일들로 꽉 차 있으나, 그것을 “알아낼 수가 없는”것이다. 2. 네 번째 사례는 앞에 나온 것들보다 한층 설명이 곤란한 문제로서, 곧 불의의 비밀이다. 이것은 사탄의 심오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마음의 기만성이요, 극도의 사악성이다(렘 17:9). 이것은 다음과 같이 양면적 의미를 지닌다.

(1) 악한 간음자가 여인을 타락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저주스런 술책. 네 번째 사례는 앞에 나온 것들보다 한층 설명이 곤란한 문제로서, 곧 불의의 비밀이다. 이것은 사탄의 심오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마음의 기만성이요, 극도의 사악성이다(렘 17:9). 이것은 다음과 같이 양면적 의미를 지닌다.악한 간음자가 여인을 타락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저주스런 술책. 난봉군은 여인을 자기의 악한 육욕과 가증한 정욕의 희생물로 삼기 위해 온갖 기교를 다 부린다. 오래 전에 어떤 불량한 시인은 “De arte amandi”(사랑의 기교에 대하여)란 책을 썼는데 이런 것이 바로 그런 한량의 소치이다. 사랑을 가장하고 사랑을 단언하며, 이런 강력한 매력을 이용하여 결혼을 약속하거나 비밀엄수와 보상을 장담한다고 하는 야비한 배신자에게 자기의 정절과 명예와 평화와 영혼까지도 깡그리 팔아 먹는 경솔한 처녀가 얼마나 많은가! 이 같은 죄스러운 욕망은 모두 사랑의 영역에 있다고 하겠다. 모든 청순한 마음의 소유자는 유혹이 보다 교묘하게 자행되면 될 수록 그에 대한 경각심을 더 높이고 결심을 보다 단단히 해야 한다.

(2) 악한 음녀가 자기의 악함을 숨기기 위해 이용하는 저주스런 술책. 악한 음녀가 자기의 악함을 숨기기 위해 이용하는 저주스런 술책. 간통하는 여인은 특히 자기가 배신하여 저버리고 있는 남편에게 자기의 더러운 악을 은폐시키기 위해 온갖 수작을 다 부린다. 그녀가 자기의 음탕한 정부와 즐기는 밀회는 너무나 주도면밀하고 교묘히 위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밝혀낸다는 것은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녀는 아담의 범죄를 본받아 금단의 열매를 먹고도 표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입을 씻는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뻔뻔스런 낯으로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고 한다.

[1]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부인한다. 부인하다 못해 어떤 여자 못지 않게 정숙하고 방정하며, 의심받고 있는 그런 악행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고 선뜻 맹세까지 한다. 빛에 드러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것은 흑암이 하는 일이다.

[2] 그녀는 자신의 양심에게도 (조그만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잘못을 부인한다. 그 “큰 악”을 조금도 악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무죄한 향락이라고 주장할 것이다(호 12:7, 8 참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악한 것을 선하다 일컫고 자신의 범죄를 자기 합리화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부인한다. 부인하다 못해 어떤 여자 못지 않게 정숙하고 방정하며, 의심받고 있는 그런 악행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고 선뜻 맹세까지 한다. 빛에 드러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것은 흑암이 하는 일이다.그녀는 자신의 양심에게도 (조그만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잘못을 부인한다. 그 “큰 악”을 조금도 악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무죄한 향락이라고 주장할 것이다(호 12:7, 8 참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악한 것을 선하다 일컫고 자신의 범죄를 자기 합리화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있다. Ⅱ. 용납할 수 없는 네 가지 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다음에 드는 네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 고장과 친척과 친구에게 몹시 성가신 존재이다. 땅(즉 세상)은 이들 때문에 “진동하며” 그 무거운 점 아래서 견디지 못해 신음하는데, 이들을 전부가 아주 비슷하다. 1. “종.” “종.” 누구보다 무례하고 오만한 종이 출세하여 권력을 잡을 때가 바로 그것이니 암몬 사람 도비야가 그 실례이다(느 2:10) 2. “미련한 자.” “미련한 자.”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례하며 난폭한 악인이 부자가 되어 식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면, 쓸데없는 말을 마구 지껄이고 주위 사람에게 모욕을 가함으로써 그의 모든 교제인들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3. 성미가 괴퍅하고 심술궂은 “계집.” 이런 여인이 남편을 얻으면 교만과 심술 때문에 몹시 미움을 받을 것이며, 그래서 누구나 이 여인을 사랑할 남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고 그나마도 존귀한 자리에 시집가서 이전보다 더욱 더 거만해지고 표독함이 더 심해진다면 누가 참을 수있겠는가! 그 결혼으로 성미가 보다 부드러워져야 할텐데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은혜로운 여인은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온유해지는 법이다.

4. 여주인의 비위를 살살 맞추고 있다가 소위 약점이란 것을 잡아 가지고 그가 가진 것을 물려받는 데 성공하거나 상속인이 되기라도 한 듯 주인에게 가깝게 행세하는 늙은 계집종. 성미가 괴퍅하고 심술궂은 “계집.” 이런 여인이 남편을 얻으면 교만과 심술 때문에 몹시 미움을 받을 것이며, 그래서 누구나 이 여인을 사랑할 남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고 그나마도 존귀한 자리에 시집가서 이전보다 더욱 더 거만해지고 표독함이 더 심해진다면 누가 참을 수있겠는가! 그 결혼으로 성미가 보다 부드러워져야 할텐데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은혜로운 여인은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온유해지는 법이다.여주인의 비위를 살살 맞추고 있다가 소위 약점이란 것을 잡아 가지고 그가 가진 것을 물려받는 데 성공하거나 상속인이 되기라도 한 듯 주인에게 가깝게 행세하는 늙은 계집종. 이런 여자도 마찬가지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교만하고 심술사나울 것이다. 자기 여주인이 주는 것은 무엇이고 너무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설사 어떤 것을 물려 받는다 하더라도 그로 이해 스스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섭리에 의해 보잘 것 없는 데서 시작하여 존귀한 자리까지 올라가는 자들은 자기들이 사로잡히기 쉬운 이러 죄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교만과 거만은 금물이다. 딴 어떤 결점보다 이런 것은 전혀 용납할 수 없고 면제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몸담아 있던 옛 반석을 기억하여 스스로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30:24 작고도 지혜로운 것 네 가지(잠언 30:24-28) Ⅰ. 아굴은 큰 자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천한 네 부류의 사람을 열거하였는데, 이제는 작지만 매우 훌륭한 작은 것 속의 위대성을 나타내 주는 것 네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패트릭 주교가 관찰한 대로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유익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1. 신체적 아름다움이나 체력이나 체구를 보고 경탄하지 말며 그런 잇점을 지닌 자라 하여 존중하거나 보다 좋게 생각하지 말고, 지혜와 행동, 근면과 열성이란 기준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야 말로 존경을 받을 만한 것들이다.

2. 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게 나타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찬미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코끼리뿐만 아니라 개미를 보고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경탄할 수 있어야겠다.

3. 우리 자신의 참된 이익을 위해서 극히 보잘 것 없는 미물만큼도 애쓰지 않는 스스로를 꾸짖으라는 것이다.

4. 세상에 있는 약한 것들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체적 아름다움이나 체력이나 체구를 보고 경탄하지 말며 그런 잇점을 지닌 자라 하여 존중하거나 보다 좋게 생각하지 말고, 지혜와 행동, 근면과 열성이란 기준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야 말로 존경을 받을 만한 것들이다.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게 나타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찬미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코끼리뿐만 아니라 개미를 보고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경탄할 수 있어야겠다.우리 자신의 참된 이익을 위해서 극히 보잘 것 없는 미물만큼도 애쓰지 않는 스스로를 꾸짖으라는 것이다.세상에 있는 약한 것들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땅에서 작고,” 세상에서 가난하며 보잘 것 없어도 극히 “지혜로우며,” 자기 영혼과 저 세상을 위해 지혜로운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은 “가장 지혜로운” 자기 이웃보다 더 지혜로운 자들이다. 딴 사본에는 “그들이 지혜로우며” 특수한 본능으로 지혜롭게 된다고 되어 있다. 지혜로와서 구원에 이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로와지는 것이다. Ⅱ. 그가 여기에 열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개미.” “개미.” 개미는 아주 작고 매우 약한 곤충이지만 필요한 양식을 모으는데 매우 부지런하다. 거기다가 여름철을 적절한 시기로 잡아서 양식을 거둬들이는 신기한 슬기를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로서 우리는 개미로부터 후일을 위해 지혜로와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6:6).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느니 “사자가 궁핍하며 굶주릴” 때도 부지런한 개미는 풍족하며 궁핍을 모르는 것이다. 2. “사반.” “사반.” 이것은 토끼, 혹은 아라비아의 들쥐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약하고 겁이 많지만, 스스로 잘 보호할 수 있도록 “바위 사이에 집을 지을” 만큼 지혜가 많은 동물이다. 연약한 몸이기 때문에 천연의 견고한 요새를 도피처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불완전성과 연약함을 의식한다면 보호와 후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보다 높은 바위” 되신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높은 바위에 거처를 마련하도록 하자. 3. “메뚜기.” “메뚜기.” 이 역시 작은 생물로서 벌과는 달리 “임군이 없지만” 전투대형을 벌인 군대처럼 “다 떼를 지어 나아간다.” 이들의 질서 정연함을 살피게 되면 “임군이 없다”고해도 메뚜기는 별반 불편이 없으리라고 생각게 된다. 메뚜기는 하나님의 “큰 군대”라 불리운다(욜 2:25).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는 마치 그가 애굽에 대해 행하신 것같이 이들을 점고하여 정렬시키고 이들로써 전쟁을 하시는 때문이다.” 그들은 다 함께 모여 나아간다”(난외주는 그렇게 해독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의식하는 이상 서로의 손을 힘있게 해 줄 수 있도록 함께 뭉쳐야 마땅할 것이다. 4. “거미”(우리 성서:”도마뱀”). “거미”(우리 성서:”도마뱀”). 하나의 곤충으로서, 개미가 밖에서나 들에서 부지런하듯 거미는 집안에서 근면함을 보여 주는 큰 본보기이다. 거미는 거미줄을 치는 데 매우 재간이 있으며, 그가 짠 집은 어떤 재주군도 가까이 따를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정확하다. “자기 손으로 잡고” 뱃 속에서 아름다운 실을 자아내며 훌륭한 재주를 피운다. 거미는 가난한 자의 오막살이뿐만 아니라 “왕궁에도” 있다. 자기를 박멸하기 위해 온갖 손질을 가하는데도 거뜬히 남아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게도 인간이 먹여 주지 않는 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자가 손을 벌려 죽이려고 하는 미물까지도 계속 살게 하신다. 자기 일에 전념하고 그 일을 “자기 손으로 붙잡고” 있는 자는 “왕궁에” 있게 되리라. 비록 곤란과 좌절에 부닥치기도 하겠지만 조만간에 그들은 성공을 하며 탄탄대로를 달리게 될 것이다. 잘 잔 거미집을 싹 쓸어 없애도 거미는 또 다른 집을 짓느라고 열중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30:29 위풍있는 네 가지 일(잠언 30:29-33) Ⅰ. 위용을 갖추고 또 그 걸음걸이고 당당하며 의관이 장대한 것 네 가지가 여기에 나열되고 있다. 1. “짐승 중에서 가장 강하므로” 백수의 왕이라 일컫는 사자. 짐승의 세계에서 걸출하게 하는 것은 힘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간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하여 인간을 존귀하게 만드는 것은 “지혜”이자 “힘”이나 “완력”이 아닌 것이다. 사자는 무엇이 자기를 쫓아와도 물러가지 않으며 발걸음을 바꾸지 않는데, 이는 자신이 그들보다 굳센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여,” 의무의 길에 봉착하는 그 어떤 난관이 두려워 “물러가는” 일은 없는 것이다.

2. 허리에 띠를 띠어 질주하기에 알맞도록 해놓은 “사냥개”(어떤 사본에는 말로 되어 있음), 혹은 “위풍있게 다니는” 동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난외주). 장식용구나 마구로 채려놓았을 때는 특히 그렇다.

3. “수염소.” “짐승 중에서 가장 강하므로” 백수의 왕이라 일컫는 사자. 짐승의 세계에서 걸출하게 하는 것은 힘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간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하여 인간을 존귀하게 만드는 것은 “지혜”이자 “힘”이나 “완력”이 아닌 것이다. 사자는 무엇이 자기를 쫓아와도 물러가지 않으며 발걸음을 바꾸지 않는데, 이는 자신이 그들보다 굳센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여,” 의무의 길에 봉착하는 그 어떤 난관이 두려워 “물러가는” 일은 없는 것이다.허리에 띠를 띠어 질주하기에 알맞도록 해놓은 “사냥개”(어떤 사본에는 말로 되어 있음), 혹은 “위풍있게 다니는” 동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난외주). 장식용구나 마구로 채려놓았을 때는 특히 그렇다.”수염소.” 수염소의 걸음걸이가 보기 좋은 때는 그가 앞장 서서 걸으며 염소떼를 인도할 때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걸음걸이가 아름다운 때는 선한 일에 앞장서고 의로운 길로 남들을 인도하는 때인 것이다. 4. “왕.” “왕.” 임금이 위엄을 베풀고 웅자를 나타내어 존경심과 경외감을 불러 일으킬 때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날 자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와 경쟁하지 못하며 다투지도 못한다. 그와 다투는 자는 누구든지 그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상의 군주를 “당할 수 없다”면 “자기를 지으신 이와 싸우는 자에게 화가 있으로다.” 이 말씀의 의도는 우리가 모든 덕행을 실천하는 중에 “사자”로부터 용기와 강인함을 배워서 어떠한 난관의 봉착에도 “물러나지 않도록”하는 데에 있다. “사냥개”로부터는 민첩함과 신속함을 배울 수있으며, “수염소” 한테서는 가족이나 우리의 감독 하에 있는 자들의 보살핌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왕”에게는 아주 근엄하게 함으로써 우리 자녀를 복종시키는 일을 배울 수 있다. 이들 모두로부터는 “잘 걷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처세의 걸음걸이를 조정하여 안전하게도 되고 “위풍있게 다니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Ⅱ. 어떤 자극을 받더라도 항상 성미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도 너무 심하게 성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훈계가 나오고 있다. 특히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왕”일 경우, 지배자라든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자일 경우라면 그것은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며 죄를 입게 된다. 뿐만 아니가 이 법칙은 대상이나 때나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동일한 것이다. 1.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재갈을 물려서 억압해야 하며, 정당하게 책망을 받을 때는 언제나 수치를 감수하고서 자신의 결백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교만한 생각이나 우리 윗사람에 대한 괴퍅한 반대 심리에서 스스로 “높은 체한다”든지 우리의 지위나 신분상의 관례를 범한다는 것은 “미련한”짓이다. 남보다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쳐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며, 거만하고 무례한 자는 치욕을 자취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노출할 나름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단지 악을 생각만 하였더라도, 즉 우리의 마음 속에 악한 계획을 품거나 악한 계획이 마음에 떠오르기만해도 “우리 손으로 입을 막아야”한다.

(1) 즉 우리는 잘못 행한 일에 대해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 욥이 자기의 미련한 말을 회개할 때 행하였 듯이(“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 40:4), 우리의 잘못에 대한 슬픔으로 하나님 앞에서 재 가운데 앉는 일조차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죄를 깨달은 문둥병자가 “윗입술을 가리워야”했듯이 우리는 그릇 행하였을 때 입을 가리워야 한다. 우리가 미련한 짓을 행한 경우에는 사람 앞에서 그것을 고집하지 말고 침묵으로 우리 죄를 자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잘못을 범한 자를 달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2) 우리는 마음에 품었던 악한 생각이 악한 말로 발설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악한 생각에 imprimatur-즉 면허장을 주지 말아라. 발표되지 않도록 하라. “네 손으로 입을 막아라.” 필요하다면 네 자신에 대한 경건한 폭력을 사용하고, 그리스도께서 악한 귀신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듯이 네 자신에게 침묵을 명령하라. 나쁜 생각을 품는 것은 악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악하다. 악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악한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며 악을 남에게 전염시키고 싶은 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우리는 남의 감정을 촉발시켜서도 안 된다. 어떤 자는 그 말과 행동이 너무나 도발적이어서 “노를 격동”시키기조차 한다. 주위 사람이 원하든 않든 성내게 만들며 평소 성 잘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성을 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는 자들까지도 분노하게 만든다. 이렇게 “노를 격동하는” 일은 “다툼”을 불러 오며, 다툼이 있는 곳에는 “분란을 온갖 악한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우유를 격렬하게 저으면 우유 속에 있는 좋은 것이 죄다 분리되어 나오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시키는 것은 한 사람의 신체와 심령을 다 고갈시키며 그 사람 안에 있는 선한 것을 모두 강탈하는 짓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재갈을 물려서 억압해야 하며, 정당하게 책망을 받을 때는 언제나 수치를 감수하고서 자신의 결백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교만한 생각이나 우리 윗사람에 대한 괴퍅한 반대 심리에서 스스로 “높은 체한다”든지 우리의 지위나 신분상의 관례를 범한다는 것은 “미련한”짓이다. 남보다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쳐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며, 거만하고 무례한 자는 치욕을 자취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노출할 나름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단지 악을 생각만 하였더라도, 즉 우리의 마음 속에 악한 계획을 품거나 악한 계획이 마음에 떠오르기만해도 “우리 손으로 입을 막아야”한다.즉 우리는 잘못 행한 일에 대해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 욥이 자기의 미련한 말을 회개할 때 행하였 듯이(“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 40:4), 우리의 잘못에 대한 슬픔으로 하나님 앞에서 재 가운데 앉는 일조차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죄를 깨달은 문둥병자가 “윗입술을 가리워야”했듯이 우리는 그릇 행하였을 때 입을 가리워야 한다. 우리가 미련한 짓을 행한 경우에는 사람 앞에서 그것을 고집하지 말고 침묵으로 우리 죄를 자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잘못을 범한 자를 달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우리는 마음에 품었던 악한 생각이 악한 말로 발설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악한 생각에 imprimatur-즉 면허장을 주지 말아라. 발표되지 않도록 하라. “네 손으로 입을 막아라.” 필요하다면 네 자신에 대한 경건한 폭력을 사용하고, 그리스도께서 악한 귀신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듯이 네 자신에게 침묵을 명령하라. 나쁜 생각을 품는 것은 악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악하다. 악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악한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며 악을 남에게 전염시키고 싶은 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우리는 남의 감정을 촉발시켜서도 안 된다. 어떤 자는 그 말과 행동이 너무나 도발적이어서 “노를 격동”시키기조차 한다. 주위 사람이 원하든 않든 성내게 만들며 평소 성 잘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성을 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는 자들까지도 분노하게 만든다. 이렇게 “노를 격동하는” 일은 “다툼”을 불러 오며, 다툼이 있는 곳에는 “분란을 온갖 악한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우유를 격렬하게 저으면 우유 속에 있는 좋은 것이 죄다 분리되어 나오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시키는 것은 한 사람의 신체와 심령을 다 고갈시키며 그 사람 안에 있는 선한 것을 모두 강탈하는 짓이 된다. 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젖을 젓는 일”이나 “코를 비트는 일”은 힘으로 하는 일이며 힘에 의하지 않고는 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심령도 강렬한 분노에 의해 점차 열기를 더해 가게 된다. 한 마디의 성난 말이 제2, 제3의 화난 말을 불러 일으키며 하나의 열띤 토론을 또 다른 논쟁을 만든다. 그래서 마침내는 화해할 수 없는 반목으로 끝맺게 된다. 그러므로 무슨 말이나 행동이든지 난폭하게 하지 말고 매사를 온순하게 부드럽게 행하도록 하자.

히브리어 잠언 30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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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브레 아구르 빈 야케 함맛사 네움 학게벨 레이티엘 레이티엘 웨우칼

개역개정,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새번역,1 ㉠이것은 야게의 아들 아굴이 말한 잠언이다. ㉡이 사람이 이디엘에게 말하고, 또 이디엘과 우갈에게 말하였다. / ㉠또는 ‘이것은 마싸 사람 야게의 아들 아굴이 한 말이다.’ 마싸를 ‘잠언’, ‘경고’로 이해하지 않고 지명으로 이해한 것임 ㉡또는 “그가 말하였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제가 어떻게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어 자음 본문을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번역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

우리말성경,1 이것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다. 아굴이 이디엘에게,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말한 것이다.

가톨릭성경,1 마싸 사람 야케의 아들 아구르의 말. 그 사람이 이티엘에게 하고, 또 이티엘과 우칼에게 한 담화.

영어NIV,1 The sayings of Agur son of Jakeh–an oracle: This man declared to Ithiel, to Ithiel and to Ucal:

영어NASB,1 The words of Agur the son of Jakeh, the oracle. The man declares to Ithiel, to Ithiel and Ucal:

영어MSG,1 The skeptic swore, “There is no God! No God!–I can do anything I want!

영어NRSV,1 The words of Agur son of Jakeh. An oracle. Thus says the man: I am weary, O God, I am weary, O God. How can I prevail?

헬라어구약Septuagint,1 τους εμους λογους υιε φοβηθητι και δεξαμενος αυτους μετανοει ταδε λεγει ο ανηρ τοις πιστευουσιν θεω και παυομαι

라틴어Vulgate,1 verba Congregantis filii Vomentis visio quam locutus est vir cum quo est Deus et qui Deo secum morante confortatus ait

히브리어구약BHS,1 דִּבְרֵי אָגוּר בִּן־יָקֶה הַמַּשָּׂא נְאֻם הַגֶּבֶר לְאִיתִיאֵל לְאִיתִיאֵל וְאֻכָל׃

성 경: [잠30: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야게, 아굴, 이디엘, 우갈 – 학자들은 이들을 실존 인물로 보거나 가상 인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가상 인물로 보는 학자들의 경우 아굴은 솔로몬, 야게는 다윗, 이디엘과 우갈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데 무리한 추측에 근거한 해석이라 하겠다. 본장의 형태 혹은 일부 내용들은 본장의 기자가 솔로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예를 들면 2,3,8절 그리고 9절등은 솔로몬의 삶이나 그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이다. 왕상 4:30, 31은 솔로몬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아마도 본장은 그들 중의 하나가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리고 개역 성경이 ‘말씀’으로 번역한 ‘하마사'(*)는 어떤 지명을 가리키는 용어라는설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본장의 저자 ‘아굴’은 본 용어의 음역인 ‘마사’라는 곳에사는 아라비아인이었던 셈이다. 마사는 아라비아의 한 동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Kidner). 그러나 ‘마사’라는 히브리어가 ‘예언’, ‘발언’등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유 지명으로 단정할 수만은 없다.

키 바아르 아노키 메이쉬 웨로 비나트 아담 리

개역개정,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새번역,2 참으로 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둔한 짐승이며, 나에게는 사람의 총명이 없다.

우리말성경,2 “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무식하다. 내게는 사람의 지각이 없다.

가톨릭성경,2 정녕 나는 여느 사람보다 멍청하였고 나에게는 인간의 예지가 없었다.

영어NIV,2 “I am the most ignorant of men; I do not have a man’s understanding.

영어NASB,2 Surely I am more stupid than any man, And I do not have the understanding of a man.

영어MSG,2 I’m more animal than human; so-called human intelligence escapes me.

영어NRSV,2 Surely I am too stupid to be human; I do not have human understand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 αφρονεστατος γαρ ειμι παντων ανθρωπων και φρονησις ανθρωπων ουκ εστιν εν εμοι

라틴어Vulgate,2 stultissimus sum virorum et sapientia hominum non est mecum

히브리어구약BHS,2 כִּי בַעַר אָנֹכִי מֵאִישׁ וְלֹא־בִינַת אָדָם לִי׃

성 경: [잠30: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문자적인 뜻은 ‘확실히 나는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짐승과 같다’이다. 아마도 본장 저자의 주위에는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비교한 지혜는 다른 어떤 사람의 지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 같다. 자신만이 지혜롭다고 외쳤던 많은 이방 현자들과는 대조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저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아삽을 연상케 한다(시73:22).

웨로 라마드티 호크마 웨다아트 케도쉼 에다

개역개정,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새번역,3 나는 지혜를 배우지도 못하였고,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아는 지식도 깨우치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3 나는 지혜를 배운 적이 없고 거룩하신 분을 잘 알지도 못한다.

가톨릭성경,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거룩하신 분을 아는 지식도 깨치지 못하였다.

영어NIV,3 I have not learned wisdom, nor have I knowledge of the Holy One.

영어NASB,3 Neither have I learned wisdom, Nor do I have the knowledge of the Holy One.

영어MSG,3 “I flunked ‘wisdom.’ I see no evidence of a holy God.

영어NRSV,3 I have not learned wisdom, nor have I knowledge of the holy ones.

헬라어구약Septuagint,3 θεος δεδιδαχεν με σοφιαν και γνωσιν αγιων εγνωκα

라틴어Vulgate,3 non didici sapientiam et non novi sanctorum scientiam

히브리어구약BHS,3 וְלֹא־לָמַדְתִּי חָכְמָה וְדַעַת קְדֹשִׁים אֵדָע׃

성 경: [잠30: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 저자는 지혜자였다(1절 주석 참조). 그러나 그가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검토해 본 결과 참 지혜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종교 개혁가인 칼빈(Calvin)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기독교 강요, 1권 1장)고 말했다.

미 알라 솨마임 오예라드 미 아사프 루아흐 베하프나우 미 차라르 마임 밧심라 미 헤킴 콜 아페세 아레츠 마 쉐모 우마 쉠 베노 키 테다

개역개정,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새번역,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람이 누구며, 바람을 자기 손에 움켜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물을 그 옷자락으로 싸고 있는 사람이 누구며 땅의 모든 경계선을 그은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의 이름은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정말 네가 아느냐?

우리말성경,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가? 바람을 손으로 모은 자가 누구인가? 자기 옷으로 물을 모은 자가 누구인가? 모든 땅 끝을 세운 자가 누구인가? 그 이름이 무엇이며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가? 네가 알면 말해 다오!

가톨릭성경,4 누가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왔느냐? 누가 제 손바닥에 바람을 모았느냐? 누가 겉옷으로 물을 감쌌느냐? 누가 세상 끝들을 세웠느냐?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은? 정녕 너는 그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영어NIV,4 Who has gone up to heaven and come down? Who has gathered up the wind in the hollow of his hands? Who has wrapped up the waters in his cloak? Who has established all the ends of the earth? What is his name, and the name of his son? Tell me if you know!

영어NASB,4 Who has ascended into heaven and descended? Who has gathered the wind in His fists? Who has wrapped the waters in His garment? Who has established all the ends of the earth? What is His name or His son’s name? Surely you know!

영어MSG,4 Has anyone ever seen Anyone climb into Heaven and take charge? grab the winds and control them? gather the rains in his bucket? stake out the ends of the earth? Just tell me his name, tell me the names of his sons. Come on now–tell me!”

영어NRSV,4 Who has ascended to heaven and come down? Who has gathered the wind in the hollow of the hand? Who has wrapped up the waters in a garment? Who has established all the ends of the earth? What is the person’s name? And what is the name of the person’s child? Surely you know!

헬라어구약Septuagint,4 τις ανεβη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κατεβη τις συνηγαγεν ανεμους εν κολπω τις συνεστρεψεν υδωρ εν ιματιω τις εκρατησεν παντων των ακρων της γης τι ονομα αυτω η τι ονομα τοις τεκνοις αυτου ινα γνως

라틴어Vulgate,4 quis ascendit in caelum atque descendit quis continuit spiritum manibus suis quis conligavit aquas quasi in vestimento quis suscitavit omnes terminos terrae quod nomen eius et quod nomen filii eius si nosti

히브리어구약BHS,4 מִי עָלָה־שָׁמַיִם וַיֵּרַד מִי אָסַף־רוּחַ בְּחָפְנָיו מִי צָרַר־מַיִם בַּשִּׂמְלָה מִי הֵקִים כָּל־אַפְסֵי־אָרֶץ מַה־שְּׁמֹו וּמַה־שֶּׁם־בְּנֹו כִּי תֵדָע׃

성 경: [잠30:4]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너는 아느냐’는 알지 못한다는 답을 염두에 둔 일종의 수사학적 표현인데 저자는 이같은 표현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다. 본절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이 더 상세한 욥 38-41장의 경우 화자는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이 화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본절은 2,3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식의 한께 및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저자는 가시적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사색을 통해 인간은 먼지처럼 낮아져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천체, 우주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처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시2:4;14:2).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때로는 지상에 몸소 내려오신다고 믿었다(창 11:7;17:22).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내세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창 15:15;신 33:27) ‘하늘’은 더더욱 외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초월성과 아울러 낮고 천한 인생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암시한다.

󰃨 그 이름이 무엇인지 –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지니신 속성 곧 그의 영원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 따위를 온전히 이해하였으면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 본절에 근거하여 아굴이 삼위(三位) 하나님 중 제 1위와 제 2위에 대하여 본절을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Clark). 그런가 하면 고대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Midrash)에서는 ‘아들’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이를 창조주, 로고스(the Logos) 혹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시적 평행어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들 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 명확히 단정내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콜 이므라트 엘로하 체루파 마겐 후 라호심 보

개역개정,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새번역,5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순결하며, 그분은 그를 의지하는 사람의 방패가 되신다.

우리말성경,5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전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가톨릭성경,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영어NIV,5 “Every word of God is flawless; he is a shield to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영어NASB,5 Every word of God is tested; He is a shield to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영어MSG,5 The believer replied, “Every promise of God proves true; he protects everyone who runs to him for help.

영어NRSV,5 Every word of God proves true; he is a shield to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5 παντες λογοι θεου πεπυρωμενοι υπερασπιζει δε αυτος των ευλαβουμενω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5 omnis sermo Dei ignitus clypeus est sperantibus in se

히브리어구약BHS,5 כָּל־אִמְרַת אֱלֹוהַּ צְרוּפָה מָגֵן הוּא לַחֹסִים בֹּו׃

성 경: [잠30:5]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純全)하며 – ‘순전하며’에 해당하는 ‘체루파'(*)의 문자적인 뜻은 ‘정화되었으며’이다. 이 표현은 그 이미지를 불순물이 제거된 금속에서 따온 것이다. 정화된 금속은 순결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귀한 것이라는 이미지도 내포한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후 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해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의 고귀함에 대한 인식이다.

알 토세프 알 데바라우 펜 요키아흐 베카 웨니크자베타

개역개정,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새번역,6 그 말씀에 아무것도 더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너를 책망하시고, 너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6 그 말씀에 아무것도 더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너를 꾸짖으실 것이며 네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영어NIV,6 Do not add to his words, or he will rebuke you and prove you a liar.

영어NASB,6 Do not add to His words Or He will reprove you, and you will be proved a liar.

영어MSG,6 So don’t second-guess him; he might take you to task and show up your lies.”

영어NRSV,6 Do not add to his words, or else he will rebuke you, and you will be found a liar.

헬라어구약Septuagint,6 μη προσθης τοις λογοις αυτου ινα μη ελεγξη σε και ψευδης γενη

라틴어Vulgate,6 ne addas quicquam verbis illius et arguaris inveniarisque mendax

히브리어구약BHS,6 אַל־תֹּוסְףְּ עַל־דְּבָרָיו פֶּן־יֹוכִיחַ בְּךָ וְנִכְזָבְתָּ׃ ף

성 경: [잠30:6]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 정결한 금속에 더러운 찌끼를 다시 섞어서는 안 되듯이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인간의 상상력이나 전승(傳承) 따위를 섞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 및 진리에 대한 사색에 있어서 곡해(曲解)의 위험성은 항상 상존해 있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특히 지식의 교만에 빠진 자의 경우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이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을 드러낸 것이며 인간의 이성이 지극히 유한하며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소치이다.

쉬타임 솨알티 메잍타크 알 티므나 밈멘니 베테렘 아무트

개역개정,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새번역,7 주님께 두 가지 간청을 드리니,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우리말성경,7 내가 주께 두 가지를 구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그것들을 이루어 주십시오.

가톨릭성경,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영어NIV,7 “Two things I ask of you, O LORD;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영어NASB,7 Two things I asked of You,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영어MSG,7 And then he prayed, “God, I’m asking for two things before I die; don’t refuse me–

영어NRSV,7 Two things I ask of you; do not deny them to me before I die:

헬라어구약Septuagint,7 δυο αιτουμαι παρα σου μη αφελης μου χαριν προ του αποθανειν με

라틴어Vulgate,7 duo rogavi te ne deneges mihi antequam moriar

히브리어구약BHS,7 שְׁתַּיִם שָׁאַלְתִּי מֵאִתָּךְ אַל־תִּמְנַע מִמֶּנִּי בְּטֶרֶם אָמוּת׃

성 경: [잠30:7]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두 가지 일 – 문맥이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말하고 있으니 본 구절도 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지식의 한계성을 인식하고서 그의 소원도 그러한 인식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솨웨 우데바르 카자브 하르헼 밈멘니 레쉬 와오쉐르 알 티텐 리 하트리페니 레헴 훜키

개역개정,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새번역,8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우리말성경,8 허영과 거짓을 내게서 멀리하시고 내게 가난도, 부도 허락하지 마시고 오직 내게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여 주십시오.

가톨릭성경,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영어NIV,8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영어NASB,8 Keep deception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Feed me with the food that is my portion,

영어MSG,8 Banish lies from my lips and liars from my presence. Give me enough food to live on, neither too much nor too little.

영어NRSV,8 Remove far from me falsehood and lying;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feed me with the food that I need,

헬라어구약Septuagint,8 ματαιον λογον και ψευδη μακραν μου ποιησον πλουτον δε και πενιαν μη μοι δως συνταξον δε μοι τα δεοντα και τα αυταρκη

라틴어Vulgate,8 vanitatem et verba mendacia longe fac a me mendicitatem et divitias ne dederis mihi tribue tantum victui meo necessaria

히브리어구약BHS,8 שָׁוְא וּדְבַר־כָּזָב הַרְחֵק מִמֶּנִּי רֵאשׁ וָעֹשֶׁר אַל־תִּתֶּן־לִי הַטְרִיפֵנִי לֶחֶם חֻקִּי׃

성 경: [잠30:8]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 두 가지 요구의 서술 순서가 의미 심장하다. 지혜자인 저자는 인간의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허탄’은 모든 거짓된 모습, 거짓된 행복의 외양들, 헛된 기대들을 가리키며 ‘거짓말’은 모든 속임수, 겉치레, 지키지 못할 약속 등을 가리킨다.

󰃨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 문자적인 뜻은 ‘나에게 정해진 몫의 빵을 음식으로 내게 주소서’이다. 이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라보게 한다(마 6:11).

펜 에스바 웨키하쉬티 웨아말티 미 아도나이 우펜 이와레쉬 웨가나브티 웨타파스티 쉠 엘로하이

개역개정,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새번역,9 제가 배가 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가난해서, 도둑질을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우리말성경,9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배불러서 주를 부인하며 ‘여호와가 누구냐?’고 할지 모르고 아니면 너무 가난해서 도둑질을 해 내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할지도 모릅니다.

가톨릭성경,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영어NIV,9 Otherwise, I may have too much and disown you and say, ‘Who is the LORD?’ Or I may become poor and steal, and so dishonor the name of my God.

영어NASB,9 That I not be full and deny You and say, “Who is the LORD?” Or that I not be in want and steal, And profane the name of my God.

영어MSG,9 If I’m too full, I might get independent, saying, ‘God? Who needs him?’ If I’m poor, I might steal and dishonor the name of my God.”

영어NRSV,9 or I shall be full, and deny you, and say, “Who is the LORD?” or I shall be poor, and steal, and profane the name of my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9 ινα μη πλησθεις ψευδης γενωμαι και ειπω τις με ορα η πενηθεις κλεψω και ομοσω το ονομα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9 ne forte saturatus inliciar ad negandum et dicam quis est Dominus et egestate conpulsus furer et peierem nomen Dei mei

히브리어구약BHS,9 פֶּן אֶשְׂבַּע וְכִחַשְׁתִּי וְאָמַרְתִּי מִי יְהוָה וּפֶן־אִוָּרֵשׁ וְגָנַבְתִּי וְתָפַשְׂתִּי שֵׁם אֱלֹהָי׃ ף

성 경: [잠30:9]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에서 두 극단의 위험이 묘사되고 있다. 자칫하면 부유함은 자만과 불신앙 혹은 바로가 그랬던 것과 같은 냉소주의(출 5:2)로 빠지게 하고 극심한 가난은 부정직, 거짓 맹세등으로 나아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두 극단 중 하나로 빠지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진다.

알 탈쉔 에베드 엘 아도노 아도나우 펜 예칼렐카 웨아솸타

개역개정,10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새번역,10 주인에게 그 종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아라. 그 종이 너를 저주하고 너에게 죄가 돌아갈까 두렵다.

우리말성경,10 주인에게 가서 종에 대해 일러바치지 마라. 그러면 종이 너를 저주하며 죄가 네게 돌아갈까 두렵다.

가톨릭성경,10 주인에게 그의 종을 헐뜯지 마라. 그 종이 너를 저주하여 네가 죗값을 받게 된다.

영어NIV,10 “Do not slander a servant to his master, or he will curse you, and you will pay for it.

영어NASB,10 Do not slander a slave to his master, Or he will curse you and you will be found guilty.

영어MSG,10 Don’t blow the whistle on your fellow workers behind their backs; They’ll accuse you of being underhanded, and then you’ll be the guilty one!

영어NRSV,10 Do not slander a servant to a master, or the servant will curse you, and you will be held guilty.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μη παραδως οικετην εις χειρας δεσποτου μηποτε καταρασηται σε και αφανισθης

라틴어Vulgate,10 ne accuses servum ad dominum suum ne forte maledicat tibi et corruas

히브리어구약BHS,10 אַל־תַּלְשֵׁן עֶבֶד אֶל־[כ= אֲדֹנֹו] [ק= אֲדֹנָיו] פֶּן־יְקַלֶּלְךָ וְאָשָׁמְתָּ׃

성 경: [잠30:10]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 문자적인 뜻은 ‘종은 그 상전에게 너의 혀로 헐뜯지 말라’이다. 이것은 공개적으로든 은밀하게든 간에 어떤 종을 그 상전에게 모함하거나 고발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만일 나중에 조사해 본 결과 그 종에게 잘못이 없을 경우 모함한 자는 도리어 수치와 징책을 당할 수 있고 설령 잘못이 있는 경우라도 나중에 그 고발당한 종은 고발한 자에게 원할을 품고 결국엔 그도 고발할 기회를 엿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저히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는 책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범죄를 상관에게 고하는 형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말라는 것이 본절의 핵심인것 같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표명할 뿐 아니라 그 잘못을 또 다른 사람의 귀에 옮기는 것을 좋아 하는 자에게도 본절은 경종을 울려준다.

돌 아비우 예칼렐 웨엩 임모 로 예바레크

개역개정,11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새번역,11 아버지를 저주하며 어머니를 축복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

우리말성경,11 자기 아버지를 저주하고 자기 어머니를 축복하지 않는 무리가 있는데

가톨릭성경,11 아버지를 저주하고 어머니에게 축복하지 않는 세대

영어NIV,11 “There are those who curse their fathers and do not bless their mothers;

영어NASB,11 There is a kind of man who curses his father, And does not bless his mother.

영어MSG,11 Don’t curse your father or fail to bless your mother.

영어NRSV,11 There are those who curse their fathers and do not bless their mother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εκγονον κακον πατερα καταραται την δε μητερα ουκ ευλογει

라틴어Vulgate,11 generatio quae patri suo maledicit et quae non benedicit matri suae

히브리어구약BHS,11 דֹּור אָבִיו יְקַלֵּל וְאֶת־אִמֹּו לֹא יְבָרֵךְ׃

성 경: [잠30:1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원문 직역은 ‘그들의 아비를 저주하고 그들의 어미를 축복하지 않는 세대이니라’이다. 저자는 당대의 지혜자로서 그의 세대에 만연하고 있는 대표적인 악들을 본절과 이어지는 세 절들에 열거하고 있는데, 십계명 중 제5계명과 관련된 폐단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이것이 당시에 매우 심각한 죄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본절은 평행법을 사용하되 독특하게 긍정문 뒤에 부정문이 연결되는 표현법을 도입하고 있는데 아마도 묘사하려는 바는 부모를 모욕하고, 경솔히 대하고, 존경하지 않았던 당시의 세태인 것같다.

돌 타홀 베에나우 우미초아토 로 루하츠

개역개정,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새번역,12 더러운 것을 씻지도 않고 깨끗한 체하는 무리가 있다.

우리말성경,12 그들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아직 더러움을 씻어내지 않았다.

가톨릭성경,12 스스로 깨끗한 체하면서도 제 밑은 씻지 않는 세대

영어NIV,12 those who are pure in their own eyes and yet are not cleansed of their filth;

영어NASB,12 There is a kind who is pure in his own eyes, Yet is not washed from his filYourss.

영어MSG,12 Don’t imagine yourself to be quite presentable when you haven’t had a bath in weeks.

영어NRSV,12 There are those who are pure in their own eyes yet are not cleansed of their filthiness.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κγονον κακον δικαιον εαυτον κρινει την δε εξοδον αυτου ουκ απενιψεν

라틴어Vulgate,12 generatio quae sibi munda videtur et tamen non est lota a sordibus suis

히브리어구약BHS,12 דֹּור טָהֹור בְּעֵינָיו וּמִצֹּאָתֹו לֹא רֻחָץ׃

성 경: [잠30:1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원문 직역은 ‘그들 자신의 눈에는 정결하여 그 더러움을 씻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는 세대이니라’이다. 여기 ‘더러움’은 ‘체에트'(*)로서 일반적으로는 육체적 불결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도덕적, 종교적 불결을 가리킨다(사 36:12;슥 3: :3,4). 당시에는 자신들이 불결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를 정결한 자로 여기는 부류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의 특징은 외면적인 의식(儀式)은 준수하지만 내적인 청결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사 1:16). 이것은 당시뿐 아니라 신약 시대 바리새인들의 특징이었기도 하다(마 23:27).

돌 마 라무 에나우 웨아프아파우 인나세우

개역개정,13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새번역,13 눈이 심히 높아서,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 남을 깔보는 무리가 있다.

우리말성경,13 오, 그들의 눈이 얼마나 거만한지!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 남을 깔보는 무리가 있다.

가톨릭성경,13 눈은 대단히 높고 눈썹은 치켜 올린 세대

영어NIV,13 those whose eyes are ever so haughty, whose glances are so disdainful;

영어NASB,13 There is a kind– oh how lofty are his eyes! And his eyelids are raised in arrogance.

영어MSG,13 Don’t be stuck-up and think you’re better than everyone else.

영어NRSV,13 There are those–how lofty are their eyes, how high their eyelids lift!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εκγονον κακον υψηλους οφθαλμους εχει τοις δε βλεφαροις αυτου επαιρεται

라틴어Vulgate,13 generatio cuius excelsi sunt oculi et palpebrae eius in alta subrectae

히브리어구약BHS,13 דֹּור מָה־רָמוּ עֵינָיו וְעַפְעַפָּיו יִנָּשֵׂאוּ׃

성 경: [잠30:1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은 스스로를 고상하다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은 경멸하는 교만한 자들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걸맞는 번역을 하는 역본이 있다 : ‘그 눈이 지극히 교만하고 남을 쳐다보는 눈초리가 아주 경멸적인 사람들이 있는 세대이니라'(those whose eyes are ever so haughty, whose glances are so disdainful, NIV)

돌 하라보트 쉰나우 우마아칼로트 메탈르오타우 레에콜 아니임 메에레츠 웨에브요님 메아담

개역개정,14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새번역,14 이빨이 긴 칼과 같고 턱이 큰 칼과 같아서, 가난한 사람을 하나도 땅에 남기지 않고 삼키며 궁핍한 사람을 삼켜 씨를 말리는 무리도 있다.

우리말성경,14 그 무리는 이가 칼 같고 턱은 큰 칼 같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이 땅에서 삼키고 궁핍한 사람들을 사람들 가운데서 삼킨다.

가톨릭성경,14 이는 단도요 이빨은 칼인 세대 이런 세대가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이 땅의 불쌍한 이들을 집어삼킨다.

영어NIV,14 those whose teeth are swords and whose jaws are set with knives to devour the poor from the earth, the needy from among mankind.

영어NASB,14 There is a kind of man whose teeth are like swords, And his jaw teeth like knives, To devour the afflicted from the earth, And the needy from among men.

영어MSG,14 Don’t be greedy, merciless and cruel as wolves, Tearing into the poor and feasting on them, shredding the needy to pieces only to discard them.

영어NRSV,14 There are those whose teeth are swords, whose teeth are knives, to devour the poor from off the earth, the needy from among mortals.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εκγονον κακον μαχαιρας τους οδοντας εχει και τας μυλας τομιδας ωστε αναλισκειν και κατεσθιειν τους ταπεινους απο της γης και τους πενητας αυτων εξ ανθρωπων

라틴어Vulgate,14 generatio quae pro dentibus gladios habet et commandit molaribus suis ut comedat inopes de terra et pauperes ex hominibus

히브리어구약BHS,14 דֹּור חֲרָבֹות שִׁנָּיו וּמַאֲכָלֹות מְתַלְּעֹתָיו* לֶאֱכֹל עֲנִיִּים מֵאֶרֶץ וְאֶבְיֹונִים מֵאָדָם׃ ף

성 경: [잠30:14]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욕심 때문에 타인을 잔혹하게 억압하고 탈취하되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그렇게 하는 힘있는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들의 탐욕과 잔혹성을 묘사하기 위해 상반절에서는 그들이 휘두르는 긴칼과 작은 칼, 그리고 하반절에서는 굶주린 갈가마귀와 무자비한 야수의 이미지가 각각 동원되었다. 본절이 그리고 있는 특성이 통치 세력의 특성이 될 때 그 나라의 운명은 절망적이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을 불순종한 중요한 이유 외에 힘없고 소외된 계층을 향한 통치 세력의 억압, 탈취 및 그 가운데 드러난 잔혹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암 5:12, 13).

라알루카 쉐테 바노트 하브 하브 솰로쉬 헨나 로 티스바나 알바 로 아메루 혼

개역개정,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새번역,15 거머리에게는 ‘달라, 달라’ 하며 보채는 딸이 둘이 있다. 전혀 배부른 줄 모르는 것이 셋,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넷이 있으니,

우리말성경,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주시오 주시오” 하며 부르짖는다.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며, ‘충분하다!’라고 하지 않는 것이 네 가지 있구나.

가톨릭성경,15 거머리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더 주세요! 더 주세요!” 하고 보챈다. 배부를 줄 모르는 것이 셋, “충분하다!” 할 줄 모르는 것이 넷 있으니

영어NIV,15 “The leech has two daughters. ‘Give! Give!’ they cry. “There are three things that are never satisfied, four that never say, ‘Enough!’:

영어NASB,15 The leech has two daughters, “Give,” “Give.” There are three things that will not be satisfied, Four that will not say, “Enough”:

영어MSG,15 A leech has twin daughters named “Gimme” and “Gimme more.” Three things are never satisfied, no, there are four that never say, “That’s enough, thank you!”–

영어NRSV,15 The leech has two daughters; “Give, give,” they cry. Three things are never satisfied; four never say, “Enough”:

헬라어구약Septuagint,15 τη βδελλη τρεις θυγατερες ησαν αγαπησει αγαπωμεναι και αι τρεις αυται ουκ ενεπιμπλασαν αυτην και η τεταρτη ουκ ηρκεσθη ειπειν ικανον

라틴어Vulgate,15 sanguisugae duae sunt filiae dicentes adfer adfer tria sunt insaturabilia et quartum quod numquam dicit sufficit

히브리어구약BHS,15 לַעֲלוּקָה שְׁתֵּי בָנֹות הַב הַב שָׁלֹושׁ הֵנָּה לֹא תִשְׂבַּעְנָה אַרְבַּע לֹא־אָמְרוּ הֹון׃

성 경: [잠30:15]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이굴의 고백과 교훈]

󰃨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하느니라 – ‘거머리’에 해당하는 ‘알루카'(*)는 성경에서 여기 한 번만 나오는 용어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1) 저자가 잘 알 뿐 아니라 당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던 탐욕으로 악명 높은 딸을 가진 한 여인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고(Clark) (2)아라비아 민요에 나오는 사단의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3)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생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하반절이 끝없는 욕심의 개념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할 때 계속 피를 빨아 먹고도 족한 줄 모르는 특성을 가진 거머리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이를 거머리로 볼 경우, ‘두딸’이란 거머리 몸에 부착되어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두 개의 흡입관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쉐올 웨오체르 라함 에레츠 로 사브아 마임 웨에쉬 로 아메라 혼

개역개정,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새번역,16 곧 스올과 아기 못 낳는 태와 물로 갈증을 없앨 수 없는 땅과 만족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불이다.

우리말성경,16 그것은 무덤, 잉태하지 못하는 태, 물이 차지 않은 땅, 그리고 결코 ‘충분하다!’라고 하지 않는 불이다.

가톨릭성경,16 저승과 임신 못하는 태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충분하다!” 할 줄 모르는 불이다.

영어NIV,16 the grave, the barren womb, land, which is never satisfied with water, and fire, which never says, ‘Enough!’

영어NASB,16 Sheol, and the barren womb, Earth that is never satisfied with water, And fire that never says, “Enough.”

영어MSG,16 hell, a barren womb, a parched land, a forest fire.

영어NRSV,16 Sheol, the barren womb, the earth ever thirsty for water, and the fire that never says, “Enough.”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αδης και ερως γυναικος και ταρταρος και γη ουκ εμπιπλαμενη υδατος και υδωρ και πυρ ου μη ειπωσιν αρκει

라틴어Vulgate,16 infernus et os vulvae et terra quae non satiatur aqua ignis vero numquam dicit sufficit

히브리어구약BHS,16 שְׁאֹול וְעֹצֶר רָחַם אֶרֶץ לֹא־שָׂבְעָה מַּיִם וְאֵשׁ לֹא־אָמְרָה הֹון׃

성 경: [잠30:16]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족한 줄 모르는 특성을 지닌 대표적 네 가지 범례들이 나오는데 이 범례들은 인생의 삶과 피조 세계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얻은 것들이다.

󰃨 음부 – ‘무덤’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스올, 곧 지옥을 가리키는데 27:20에서는 이곳을 모든 것을 삼키고도 만족해 하지 않는 곳으로 묘사한 바 있다.

아인 틸르아그 레압 웨타부즈 리카하트 엠 잌케루하 오르베 나할 웨요켈루하 베네이 나쉐르

개역개정,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새번역,17 아버지를 조롱하며 어머니를 멸시하여,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새끼 독수리에게 먹힐 것이다.

우리말성경,17 아버지를 조롱하고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것을 비웃는 사람은 골짜기의 까마귀들이 그 눈을 파 낼 것이요, 독수리 새끼가 그것을 먹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7 아버지를 비웃고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하찮게 여기는 눈은 개울의 까마귀들이 쪼아 내고 독수리 새끼들이 쪼아 먹는다.

영어NIV,17 “The eye that mocks a father, that scorns obedience to a mother, will be pecked out by the ravens of the valley, will be eaten by the vultures.

영어NASB,17 The eye that mocks a father, And scorns a mother, The ravens of the valley will pick it out, And the young eagles will eat it.

영어MSG,17 An eye that disdains a father and despises a mother– that eye will be plucked out by wild vultures and consumed by young eagles.

영어NRSV,17 The eye that mocks a father and scorns to obey a mother will be pecked out by the ravens of the valley and eaten by the vultures.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οφθαλμον καταγελωντα πατρος και ατιμαζοντα γηρας μητρος εκκοψαισαν αυτον κορακες εκ των φαραγγων και καταφαγοισαν αυτον νεοσσοι αετων

라틴어Vulgate,17 oculum qui subsannat patrem et qui despicit partum matris suae effodiant corvi de torrentibus et comedant illum filii aquilae

히브리어구약BHS,17 עַיִן תִּלְעַג לְאָב וְתָבוּז לִיקֲּהַת־אֵם יִקְּרוּהָ עֹרְבֵי־נַחַל וְיֹאכְלוּהָ בְנֵי־נָשֶׁר׃ ף

성 경: [잠30:17]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 쪼이고 – 앞, 뒷절과는 연관성이 없지만 11절과 그 주제에 있어서 동일한 본절은 부모를 경멸한 자식이 맞을 운명을 묘사하고 있는데, 경멸의 의사(意思)가 그 눈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 눈이 뽑히우리라는 경고는 매우 적절하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식이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무덤도 없이 죽고 말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강한 경고도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쉐로솨 헴마 니플르우 밈메니 웨아르바 웨아르바아 로 예다팀

개역개정,18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새번역,18 기이한 일이 셋,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넷이 있으니,

우리말성경,18 내게 너무 신기한 것이 세 가지 있고 정녕 내가 알 수 없는 것이 네 가지 있구나.

가톨릭성경,18 나에게 너무 이상한 것이 셋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넷 있으니

영어NIV,18 “There are three things that are too amazing for me, four that I do not understand:

영어NASB,18 There are three things which are too wonderful for me, Four which I do not understand:

영어MSG,18 Three things amaze me, no, four things I’ll never understand–

영어NRSV,18 Three things are too wonderful for me; four I do not understand:

헬라어구약Septuagint,18 τρια δε εστιν αδυνατα μοι νοησαι και το τεταρτον ουκ επιγινωσκω

라틴어Vulgate,18 tria sunt difficilia mihi et quartum penitus ignoro

히브리어구약BHS,18 שְׁלֹשָׁה הֵמָּה נִפְלְאוּ מִמֶּנִּי* [כ= וְאַרְבָּע] [ק= וְאַרְבָּעָה] לֹא יְדַעְתִּים׃

성 경: [잠30:18]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나에게 너무 경이로운 것 세 가지가 있다. 내가 모르는 네 번째 것도 있다.’ 이 직역은 저자가 밝힐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는 네 가지인데 그 중의 세 가지는 한 범주에 묶을 수 있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암시할 뿐 아니라 마지막 네 번째 것은 앞의 세 가지 이야기보다 가장 오묘한 것임을 동시에 암시하는 듯하다.

데렠 한네쉘 밧솨마임 데렠 나하쉬 알레 출 데레크 오니야 벨레브 얌 웨데레크 게벨 베알마

개역개정,19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새번역,19 곧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와,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간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이다.

우리말성경,19 그것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지나간 길, 바위를 기어다니는 뱀이 지나간 길, 바다 한가운데로 배가 지나간 길, 남자가 여자와 함께한 길이다.

가톨릭성경,19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길 바위 위를 기어 다니는 뱀의 길 바다 가운데를 떠다니는 배의 길 젊은 여자를 거쳐 가는 사내의 길이다.

영어NIV,19 the way of an eagle in the sky, the way of a snake on a rock, the way of a ship on the high seas, and the way of a man with a maiden.

영어NASB,19 The way of an eagle in the sky, The way of a serpent on a rock, The way of a ship in the middle of the sea, And the way of a man with a maid.

영어MSG,19 how an eagle flies so high in the sky, how a snake glides over a rock, how a ship navigates the ocean, why adolescents act the way they do.

영어NRSV,19 the way of an eagle in the sky, the way of a snake on a rock, the way of a ship on the high seas, and the way of a man with a girl.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ιχνη αετου πετομενου και οδους οφεως επι πετρας και τριβους νηος ποντοπορουσης και οδους ανδρος εν νεοτητι

라틴어Vulgate,19 viam aquilae in caelo viam colubri super petram viam navis in medio mari et viam viri in adulescentula

히브리어구약BHS,19 דֶּרֶךְ הַנֶּשֶׁר בַּשָּׁמַיִם דֶּרֶךְ נָחָשׁ עֲלֵי צוּר דֶּרֶךְ־אֳנִיָּה בְלֶב־יָם וְדֶרֶךְ גֶּבֶר בְּעַלְמָה׃

성 경: [잠30:19]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저자는 주로 피조 세계의 관찰을 통하여 얻은 사실들을 진술하고 있다. 특히 본절에는 자취로 번역된 ‘데레크'(*)가 네 차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는 행동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중 앞의 세 가지는 하늘, 땅위, 그리고 바다 위에서 일어난 장대하고도 신비스러운 동작(행동)을 나머지 하나는 남녀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동작을 염두에 둔 것이다.

󰃨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의 나는 방향 그리고 목적지 따위는 관찰자에게 숨겨져 있다.

󰃨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 – 발이 없이도 부드럽고 능숙하게 갈 길을 가는 뱀 역시 그렇다.

󰃨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 – 길이 없는 바다를 웅장하게 항해하는 배 역시 그렇다.

󰃨 남자가 여자가 함께 한 자취 – ‘여자’는 ‘알마'(*)로서 ‘처녀’가 아닌 결혼하여 이미 성적인 경험이 있는 젊은 여인을 가리킨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깊은 육체적 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게 되는 모든 과정은 신비롭기만 하다. 저자가 가장 오묘하게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자취는 바로 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성을 통하여 드러나는 일들이었다.

켄 데렠 잇솨 메나아페트 아케라 우마하타 피하 웨오메라 로 파알티 아웬

개역개정,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새번역,20 간음한 여자의 자취도 그러하니, 먹고도 안 먹었다고 입을 씻듯이 “나는 아무런 악행도 한 일이 없다” 한다.

우리말성경,20 음란한 여자가 지나간 길도 그렇다. 그는 먹고 나서 입을 닦듯이 ‘난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한다.

가톨릭성경,20 간음하는 여자의 길도 이와 같아 먹은 뒤에 입을 닦고서는 “나는 나쁜 짓 안 했어!” 하고 말한다.

영어NIV,20 “This is the way of an adulteress: She eats and wipes her mouth and says, ‘I’ve done nothing wrong.’

영어NASB,20 This is the way of an adulterous woman: She eats and wipes her mouth, And says, “I have done no wrong.”

영어MSG,20 Here’s how a prostitute operates: she has sex with her client, Takes a bath, then asks, “Who’s next?”

영어NRSV,20 This is the way of an adulteress: she eats, and wipes her mouth, and says, “I have done no wrong.”

헬라어구약Septuagint,20 τοιαυτη οδος γυναικος μοιχαλιδος η οταν πραξη απονιψαμενη ουδεν φησιν πεπραχεναι ατοπον

라틴어Vulgate,20 talis est via mulieris adulterae quae comedit et tergens os suum dicit non sum operata malum

히브리어구약BHS,20 כֵּן דֶּרֶךְ אִשָּׁה מְנָאָפֶת אָכְלָה וּמָחֲתָה פִיהָ וְאָמְרָה לֹא־פָעַלְתִּי אָוֶן׃ ף

성 경: [잠30:20]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음녀의 자취 – 성적 관계를 직업으로 삼는 여인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는 까닭은 바로 앞절에 합법적 결혼을 통한 성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앞절과는 달리 본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특권을 왜곡되게 사용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먹고 입을 씻는다는 이미지는 성행위의 완곡한 표현이다.

타하트 솰로쉬 라게자 에레츠 웨타하트 알바 로 투칼 세엩

개역개정,21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새번역,21 세상을 뒤흔들 만한 일이 셋,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넷이 있으니,

우리말성경,21 땅을 흔드는 것이 세 가지 있으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 네 가지 있구나.

가톨릭성경,21 이 셋 밑에서 땅이 몸서리치고 이 넷 밑에서 땅이 견디어 내지 못하니

영어NIV,21 “Under three things the earth trembles, under four it cannot bear up:

영어NASB,21 Under three things the earth quakes, And under four, it cannot bear up:

영어MSG,21 Three things are too much for even the earth to bear, yes, four things shake its foundations–

영어NRSV,21 Under three things the earth trembles; under four it cannot bear up: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δια τριων σειεται η γη το δε τεταρτον ου δυναται φερειν

라틴어Vulgate,21 per tria movetur terra et quartum non potest sustinere

히브리어구약BHS,21 תַּחַת שָׁלֹושׁ רָגְזָה אֶרֶץ וְתַחַת אַרְבַּע לֹא־תוּכַל שְׂאֵת׃

성 경: [잠30:2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 세 가지 것들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고 이 세 가지 것들을 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 즉 이는 22,23절에 진술된 사건은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암시한다.

타하트 에베드 키 이멜로크 웨나발 키 이스바 라헴

개역개정,22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새번역,22 곧 종이 임금이 되는 것과, 어리석은 자가 배불리 먹는 것과,

우리말성경,22 그것은 종이 왕이 되는 것, 어리석은 사람이 잔뜩 먹은 것,

가톨릭성경,22 임금이 된 종과 음식으로 배부른 바보 밑에서,

영어NIV,22 a servant who becomes king, a fool who is full of food,

영어NASB,22 Under a slave when he becomes king, And a fool when he is satisfied with food,

영어MSG,22 when the janitor becomes the boss, when a fool gets rich,

영어NRSV,22 a slave when he becomes king, and a fool when glutted with food;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εαν οικετης βασιλευση και αφρων πλησθη σιτιων

라틴어Vulgate,22 per servum cum regnaverit per stultum cum saturatus fuerit cibo

히브리어구약BHS,22 תַּחַת־עֶבֶד כִּי יִמְלֹוךְ וְנָבָל כִּי יִשְׂבַּע־לָחֶם׃

성 경: [잠30:2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종이 임금된 것 – 이것은 종의 신분이었던 사람은 통치자가 될 수 없음을 암시하기보다는 전혀 그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종이었다가 국무총리가 된 요셉의 경우도 있거니와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종이었던 자가 왕이 되는 일이 간혹 있었다. 그런 왕의 경우 왕의 자격에 맞는 훈련을 쌓고 정치를 잘하여 앞선 시대의 통치자보다 훌륭하다는 평가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권력에 굶주린 자가 왕이 될 경우 영락없이 폭군, 압제자가 되기 일쑤였다. 현대적 사례로는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타하트 세누아 키 팁바엘 웨쉬페하 키 티라쉬 게비르타흐

개역개정,23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새번역,23 꺼림을 받는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과, 여종이 그 안주인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3 밉살스런 여자가 결혼하는 것,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3 또 미움을 받다 혼인하게 된 여자와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 여종 밑에서이다.

영어NIV,23 an unloved woman who is married, and a maidservant who displaces her mistress.

영어NASB,23 Under an unloved woman when she gets a husband, And a maidservant when she supplants her mistress.

영어MSG,23 when a whore is voted “woman of the year,” when a “girlfriend” replaces a faithful wife.

영어NRSV,23 an unloved woman when she gets a husband, and a maid when she succeeds her mistress.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οικετις εαν εκβαλη την εαυτης κυριαν και μισητη γυνη εαν τυχη ανδρος αγαθου

라틴어Vulgate,23 per odiosam mulierem cum in matrimonio fuerit adsumpta et per ancillam cum heres fuerit dominae suae

히브리어구약BHS,23 תַּחַת שְׂנוּאָה כִּי תִבָּעֵל וְשִׁפְחָה כִּי־תִירַשׁ גְּבִרְתָּהּ׃ ף

성 경: [잠30:2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꺼림을 받는 계집 – ‘매력이 없거나 밉살스러운 여인’이 그 문자적인 뜻이다. 남자는 원치 않았으나 강압적인 상황이나 조건에 의하여 시집간 여인의 경우 남편의 미움을 계속 받게 된다(창 29:31, 32).

󰃨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 – 대표적인 예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그의 여종 하갈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갈이 임신하고 사라를 멸시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가정의 평화는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사라는 하갈을 내쫓고 말았다(창16:15;21:10).

알바아 헴 케탄네 아레츠 웨헴마 하카밈 메훜카밈

개역개정,24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새번역,24 땅에서 아주 작으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것이 넷이 있으니,

우리말성경,24 땅에 사는 작은 것 가운데 굉장히 지혜로운 것이 네 가지 있는데

가톨릭성경,24 세상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더없이 지혜로운 것이 넷 있다.

영어NIV,24 “Four things on earth are small, yet they are extremely wise:

영어NASB,24 Four things are small on the earth, But they are exceedingly wise:

영어MSG,24 There are four small creatures, wisest of the wise they are–

영어NRSV,24 Four things on earth are small, yet they are exceedingly wise:

헬라어구약Septuagint,24 τεσσαρα δε εστιν ελαχιστα επι της γης ταυτα δε εστιν σοφωτερα των σοφων

라틴어Vulgate,24 quattuor sunt minima terrae et ipsa sunt sapientiora sapientibus

히브리어구약BHS,24 אַרְבָּעָה הֵם קְטַנֵּי־אָרֶץ וְהֵמָּה חֲכָמִים מְחֻכָּמִים׃

성 경: [잠30:24]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가장 지혜로운 것(*, 하카밈 메후카밈) – 문자적인 뜻은’지혜 중의 지혜’인데 70인역은 ‘지혜로운 것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번역한다. 어떤 번역을 취하든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25-28절에 나오는 생태계에서 드러나는 경이로움이 인간의 지혜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한네말림 암 로 아즈 와야키누 밬카이츠 라헤맘

개역개정,25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새번역,25 곧 힘이 없는 종류이지만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우리말성경,25 그것은 힘없는 종류지만 여름에 양식을 쌓을 줄 아는 개미와

가톨릭성경,25 힘없는 족속이지만 여름 동안 먹이를 장만하는 개미

영어NIV,25 Ants are creatures of little strength, yet they store up their food in the summer;

영어NASB,25 The ants are not a strong folk, But they prepare their food in the summer;

영어MSG,25 ants–frail as they are, get plenty of food in for the winter;

영어NRSV,25 the ants are a people without strength, yet they provide their food in the summer;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οι μυρμηκες οις μη εστιν ισχυς και ετοιμαζονται θερους την τροφην

라틴어Vulgate,25 formicae populus infirmus quae praeparant in messe cibum sibi

히브리어구약BHS,25 הַנְּמָלִים עַם לֹא־עָז וַיָּכִינוּ בַקַּיִץ לַחְםָם׃

성 경: [잠30:25]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힘이 없는 종류 – 문자적인 뜻은 ‘강하지 않은 민족’이다. 곤충을 인간의 무리인듯 ‘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사실은 메뚜기를 이방 민족에 비유한 욜 1:6을 상기시킨다. 잘 훈련된 조직체처럼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개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들 속에 심기워진 본능의 경이로움을 보게 된다.

쉬판님 암 로 아춤 와야시무 밧셀라 베탐

개역개정,26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새번역,26 약한 종류이지만 바위 틈에 자기 집을 짓는 오소리와,

우리말성경,26 연약한 족속이지만 바위 속에 집을 짓는 오소리와

가톨릭성경,26 힘이 세지 않은 종자이지만 바위에 집을 마련하는 오소리

영어NIV,26 coneys are creatures of little power, yet they make their home in the crags;

영어NASB,26 The badgers are not mighty folk, Yet they make their houses in the rocks;

영어MSG,26 marmots–vulnerable as they are, manage to arrange for rock-solid homes;

영어NRSV,26 the badgers are a people without power, yet they make their homes in the rocks;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και οι χοιρογρυλλιοι εθνος ουκ ισχυρον οι εποιησαντο εν πετραις τους εαυτων οικους

라틴어Vulgate,26 lepusculus plebs invalida quae conlocat in petra cubile suum

히브리어구약BHS,26 שְׁפַנִּים עַם לֹא־עָצוּם וַיָּשִׂימוּ בַסֶּלַע בֵּיתָם׃

성 경: [잠30:26]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약한 종류 … 사반 – 여기 ‘사반’은 토끼, 생쥐 등으로 볼 수도 있으나 무대가 팔레스틴인 사실을 고려할 때 팔레스틴 산 너구리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너구리는 연약하고 겁이 많은 짐승으로 누구든 보면 바위 틈 사이로 숨어버리는 특징을 지녔다(시104:18).

멜렠 엔 라아르베 와예체 호체츠 쿠로

개역개정,27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새번역,27 임금은 없으나 떼를 지어 함께 나아가는 메뚜기와,

우리말성경,27 왕이 없어도 일제히 줄을 지어 행진하는 메뚜기와

가톨릭성경,27 임금이 없지만 모두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는 메뚜기

영어NIV,27 locusts have no king, yet they advance together in ranks;

영어NASB,27 The locusts have no king, Yet all of them go out in ranks;

영어MSG,27 locusts–leaderless insects, yet they strip the field like an army regiment;

영어NRSV,27 the locusts have no king, yet all of them march in rank;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αβασιλευτον εστιν η ακρις και εκστρατευει αφ’ ενος κελευσματος ευτακτως

라틴어Vulgate,27 regem lucusta non habet et egreditur universa per turmas

히브리어구약BHS,27 מֶלֶךְ אֵין לָאַרְבֶּה וַיֵּצֵא חֹץֵץ כֻּלֹּו׃

성 경: [잠30:27]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메뚜기 – 메뚜기 떼의 이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질서와 규율이다. 이 곤충은 잘 훈련된 군대가 그러듯이 한 지역을 공격하여 삽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욜 1:6,7).

세마미트 베야다임 테타페스 웨히 베헤클레 멜렠

개역개정,28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새번역,28 사람의 손에 잡힐 것 같은데도 왕궁을 드나드는 도마뱀이다.

우리말성경,28 손에 잡힐 만한데도 왕궁에 드나드는 도마뱀이다.

가톨릭성경,28 사람 손으로 잡을 수 있지만 임금의 궁궐에 사는 도마뱀이다.

영어NIV,28 a lizard can be caught with the hand, yet it is found in kings’ palaces.

영어NASB,28 The lizard you may grasp with the hands, Yet it is in kings’ palaces.

영어MSG,28 lizards–easy enough to catch, but they sneak past vigilant palace guards.

영어NRSV,28 the lizard can be grasped in the hand, yet it is found in kings’ palaces.

헬라어구약Septuagint,28 και καλαβωτης χερσιν ερειδομενος και ευαλωτος ων κατοικει εν οχυρωμασιν βασιλεως

라틴어Vulgate,28 stilio manibus nititur et moratur in aedibus regis

히브리어구약BHS,28 שְׂמָמִית בְּיָדַיִם תְּתַפֵּשׂ וְהִיא בְּהֵיכְלֵי מֶלֶךְ׃ ף

성 경: [잠30:28]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손에 잡힐만 하여도 – 원문상 ‘그(도마뱀) 손으로 잡으며'(taketh hole with herhands, KJV) 혹은 ‘(사람의) 손에 잡힐만 해도'(can be caught with the hand, NIV)등과 같이 두 가지의 번역이 가능하다. 개역 성경은 후자를 택했으며, 만일 전자를 취할 경우 본절은 ‘도마뱀은 가옥이나 건물의 벽 속에 굴을 뚫고 그속으로 자유 자재로 다니면서 독을 내뿜는 발로 거미나 그 외의 곤충들을 잡는 동물인데 왕궁 출입도 예외는 아니다’는 뜻이 된다.

쉐로솨 헴마 메티베 차아드 웨알바아 메티베 라케트

개역개정,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새번역,29 늠름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셋,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것 넷이 있으니,

우리말성경,29 당당하게 걷는 것이 세 가지 있고 늠름하게 다니는 것이 네 가지 있구나.

가톨릭성경,29 발걸음이 당당한 것이 셋,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넷 있으니

영어NIV,29 “There are three things that are stately in their stride, four that move with stately bearing:

영어NASB,29 There are three things which are stately in their march, Even four which are stately when they walk:

영어MSG,29 There are three solemn dignitaries, four that are impressive in their bearing–

영어NRSV,29 Three things are stately in their stride; four are stately in their gait:

헬라어구약Septuagint,29 τρια δε εστιν α ευοδως πορευεται και το τεταρτον ο καλως διαβαινει

라틴어Vulgate,29 tria sunt quae bene gradiuntur et quartum quod incedit feliciter

히브리어구약BHS,29 שְׁלֹשָׁה הֵמָּה מֵיטִיבֵי צָעַד וְאַרְבָּעָה מֵיטִבֵי לָכֶת׃

성 경: [잠30:29]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 원문 직역은 ‘잘 가는 것들 셋이 있다. 가는 데 당당한 네 번째 것이 있다’이다. 먼저 언급된 세 가지 예는 동물 세계에서 관찰한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 예는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걷는 왕을 관찰한 것이다.

레이쉬 깁볼 바베헤마 웨로 야슈브 미페네 콜

개역개정,30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새번역,30 곧 짐승 가운데서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자와,

우리말성경,30 그것은 짐승 가운데 가장 힘세고 어느 누가 와도 물러서지 않는 사자와

가톨릭성경,30 짐승 가운데 용사로서 어떤 것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자

영어NIV,30 a lion, mighty among beasts, who retreats before nothing;

영어NASB,30 The lion which is mighty among beasts And does not retreat before any,

영어MSG,30 a lion, king of the beasts, deferring to none;

영어NRSV,30 the lion, which is mightiest among wild animals and does not turn back before any;

헬라어구약Septuagint,30 σκυμνος λεοντος ισχυροτερος κτηνων ος ουκ αποστρεφεται ουδε καταπτησσει κτηνος

라틴어Vulgate,30 leo fortissimus bestiarum ad nullius pavebit occursum

히브리어구약BHS,30 לַיִשׁ גִּבֹּור בַּבְּהֵמָה וְלֹא־יָשׁוּב מִפְּנֵי־כֹל׃

성 경: [잠30:30]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 –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짐승의 왕이라 불리우는 사자는 그 어떤 짐승이 쫓아와도 숨지 않으며 달리거나 걷는 페이스(path)를 바꾸지 않는다.

자르지르 마트나임 오 타이쉬 우메렠 알쿰 임모

개역개정,31 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새번역,31 자랑스럽게 걷는 사냥개와, 숫염소와,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임금이다.

우리말성경,31 사냥개와 숫염소와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왕이다.

가톨릭성경,31 의젓한 수탉과 숫염소 그리고 자기 백성 앞에 선 임금이다.

영어NIV,31 a strutting rooster, a he-goat, and a king with his army around him.

영어NASB,31 The strutting cock, the male goat also, And a king when his army is with him.

영어MSG,31 a rooster, proud and strutting; a billy goat; a head of state in stately procession.

영어NRSV,31 the strutting rooster, the he-goat, and a king striding before his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31 και αλεκτωρ εμπεριπατων θηλειαις ευψυχος και τραγος ηγουμενος αιπολιου και βασιλευς δημηγορων εν εθνει

라틴어Vulgate,31 gallus succinctus lumbos et aries nec est rex qui resistat ei

히브리어구약BHS,31 זַרְזִיר מָתְנַיִם אֹו־תָיִשׁ וּמֶלֶךְ אַלְקוּם עִמֹּו׃

성 경: [잠30:3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사냥개(*, 자르지르)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등장하는 용어이다. ‘허리에 띠를 두른 사람’이란 유사어가 있기 때문에 그 몸에 줄이 나있는 얼룩말로 보는 견해가 있고,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로 현재 이란 남부의 그 유적이 있는 페르세폴리스의 조각품들을 통해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호화스러운 장신구를 부착한 당당한 모습의 전마(戰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개역 성경처럼 ‘사냥개'(greyhound, KIV) 혹은 ‘수탉'(rooster, NIV;cock, RSV)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그 정확한 뜻을 단정하기가 힘들다.

󰃨 당할 수 없는 왕 – ‘항거할 수 없는 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신하나 백성들에 둘러싸여 있는 왕’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서 왕이 언급되는 이유가 그 걷는 모습의 당당함 때문인 사실을 고려할 때 이 견해도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임 나발타 베힡낫세 웨임 잠모타 야드 레페

개역개정,32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새번역,32 네가 어리석어서 우쭐댔거나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너의 손으로 입을 막고 반성하여 보아라.

우리말성경,32 네가 만약 어리석게도 스스로 우쭐댔거나 악한 일을 꾀했다면 네 손으로 네 입을 막아라!

가톨릭성경,32 네가 만일 잘난 체하며 바보짓을 하고 나서 잘 생각해 보았다면 손으로 입을 가려라.

영어NIV,32 “If you have played the fool and exalted yourself, or if you have planned evil, clap your hand over your mouth!

영어NASB,32 If you have been foolish in exalting yourself Or if you have plotted evil, put your hand on your mouth.

영어MSG,32 If you’re dumb enough to call attention to yourself by offending people and making rude gestures,

영어NRSV,32 If you have been foolish, exalting yourself, or if you have been devising evil, put your hand on your mouth.

헬라어구약Septuagint,32 εαν προη σεαυτον εις ευφροσυνην και εκτεινης την χειρα σου μετα μαχης ατιμασθηση

라틴어Vulgate,32 et qui stultus apparuit postquam elatus est in sublime si enim intellexisset ori inposuisset manum

히브리어구약BHS,32 אִם־נָבַלְתָּ בְהִתְנַשֵּׂא וְאִם־זַמֹּותָ יָד לְפֶה׃

성 경: [잠30:3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 이것은 죄를 짓고 난 후의 치욕과 뉘우침의 침묵 그리고 교만하고 사악한 생각을 말로 표출하기 전에 스스로 억제하는 자기 절제의 침묵의 표현이다(Cook).

키 미츠 할랍 요치 헴아 우미츠 아프 요치 담 우미츠 아파임 요치 리브

개역개정,33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새번역,33 우유를 저으면 굳은 우유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오듯, 화를 돋우면 분쟁이 일어난다.

우리말성경,33 우유를 통에 넣어 휘저으면 버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코피가 나듯 분노를 일으키면 다툼이 난다.”

가톨릭성경,33 우유를 누르면 버터가 나오고 코를 누르면 피가 나오고 화를 누르면 싸움이 나온다.

영어NIV,33 For as churning the milk produces butter, and as twisting the nose produces blood, so stirring up anger produces strife.”

영어NASB,33 For the churning of milk produces butter, And pressing the nose brings forth blood; So the churning of anger produces strife.

영어MSG,33 Don’t be surprised if someone bloodies your nose. Churned milk turns into butter; riled emotions turn into fist fights.

영어NRSV,33 For as pressing milk produces curds, and pressing the nose produces blood, so pressing anger produces strife.

헬라어구약Septuagint,33 αμελγε γαλα και εσται βουτυρον εαν δε εκπιεζης μυκτηρας εξελευσεται αιμα εαν δε εξελκης λογους εξελευσονται κρισεις και μαχαι

라틴어Vulgate,33 qui autem fortiter premit ubera ad eliciendum lac exprimit butyrum et qui vehementer emungitur elicit sanguinem et qui provocat iras producit discordias

히브리어구약BHS,33 כִּי מִיץ חָלָב יֹוצִיא חֶמְאָה וּמִיץ־אַף יֹוצִיא דָם וּמִיץ אַפַּיִם יֹוצִיא רִיב׃ ף

성 경: [잠30:3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 저으면 … 비틀면 … 격동하면 – 이 단어들은 ‘압력’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본절은 압력을 가하면 좋은 결과 혹은 나쁜 결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본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본절의 의도는 분노가 시작된 마음에 압력을 가하여 더 큰 문제에로 나아가게 하지 않음으로써 평화와 조화를 이루라는 충고를 주기 위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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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장 1절-33절, 매일성경에 따른 본문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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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잠언이 29장에서 마무리되고, 30장에는 야게의 아들인 아굴의 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굴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밝히면서, 결국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굴은 교만과 완악한 마음, 탐욕과 불효와 행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행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잠언 30장 1절-33절, 개역개정성경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10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11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3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14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18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9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21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22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23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24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25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26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27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28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0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31 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32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33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잠언 30장 1절

잠언 말씀들 중에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이 부분은 아굴의 잠언으로 시작합니다. 르무엘(31:1-9)과 마찬가지로, 아굴은 히브리인이 아니지만 잠언서에 이름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이방 땅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의 아버지인 야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어쩌면 야게가 아굴의 잠언을 번역한 지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디엘과 우갈은 아마도 아굴의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디엘이라는 이름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 문자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 문맥을 오 하나님, 나는 완전히 지쳤습니다, 나는 완전히 탈진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번역은 바로 다음 구절인 2절과도 어울립니다.

잠언 30장 2절-3절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아굴은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부정하는 것은 수사적으로 매우 과장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5절과 6절의 그의 말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아굴은 극적인 역설법을 사용하여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수수께끼같은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30장 4절

이 구절에서 아굴을 당황하게 만드는 수수께끼가 제시됩니다. 이 질문들은 수수께끼들이며 , 그의 이름과 그의 아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이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그의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그의 아들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실 때까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이 구절들은 성경에서 가장 직설적인 메시아에 관한 성경 구절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 30장 7절-9절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 아굴이 원하고 필요한 전부가 이 두 가지의 일입니다.

잠언 30장 10절

이 잠언은 주인에게 하인을 중상모략하지 말라는 교훈으로서, 당시의 사회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색다른 경고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사회 속에서 하인 혹은 노예들은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굴의 이 잠언은 매우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 30장 11절-14절

아굴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현실과 독선적인 사람들, 탐욕으로 가득한 마음, 이기심과 같은 사회적인 병폐로 시달리는 세대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아굴이 언급한 여러 사회적인 병폐는, 아굴의 시대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모든 세대를 걸쳐서 동일하게 이어지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잠언 30장 17절

아비를 조롱하며 : 앞선 구절인 11절에서 언급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저주가 본 구절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학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은 매우 강하고 엄중하게 나타나는데, 그 언어적인 면에서도 매우 직설적입니다.

잠언 30장 19절

여자로 번역된 단어는 처녀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단지 젊은 여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잠언 30장 20절

19절과 대조되는 말씀으로써, 19절의 여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한 자취는 사랑의 결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 구절의 음녀는 음식 한 접시를 모두 먹어 치운 것과 같이 불법적인 성적 관계에 대해 만족하며 후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잠언 30장 21절-23절

18절과 19절은 매우 기이하고 놀라운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분명한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세가지는 세상을 괴롭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는 종과 배부른 어리석은 자, 그리고 미움을 받는 여자가 결혼을 하고 여종이 자신의 주인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남편은 원하지 않았지만, 강압적인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결혼하게 된 여인은 남편과 그의 집안에 대대로 미움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잠언 30장 24절-28절

숫자를 이용한 이 잠언의 말씀은, 크기는 매우 작아도 그들이 하는 행동과 생존 방식은 매우 현명하고 놀라운 네 마리의 동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작은 동물들은 사람들이 배우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독특한 행동 특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잠언 30장 32절-33절

아굴의 잠언은 지나친 자기 자랑과 악한 일을 멀리하라는 경고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손으로 입을 막는다는 말의 의미는, 그만 멈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고민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어리석을 음 깨닫게 되었다면 그 즉시 그 일을 그만 두라는 의미입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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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화) “잠언 30:1-33” / 작성: 지종현

본문 잠언 30:1-33

찬송가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1장부터 29장에 걸쳐 기록된 솔로몬의 잠언 이외에도 잠언에는 다른 지혜자의 격언이 담겨있습니다. 30장과 31장에는 각각 아굴과 르무엘 왕의 잠언이 실려있습니다.

지혜자의 고백 (1-9절)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1절은 30장의 표제로서 지혜자의 이름과 출신, 그리고 잠언의 대상이 나타납니다. 아들 아굴, 그리고 그의 아버지 야게는 이스라엘 이름이 아닙니다. 아굴은 이방인으로 다른 번역에 의하면 맛사 출신의 지혜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성경에 이방인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곳곳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를 도운 라합이나 예수의 족보에도 등장하는 룻 같이 말입니다. 잠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는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의 백성을 가르치십니다.

아굴은 이방인이면서 그의 지혜가 잠언에 담길 만큼의 지혜자이지만 겸손하게 자신을 고백합니다.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그가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지식은 창조주이시자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한한 생각과 경험의 한계에 갇혀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잘 아시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땅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고백입니다. 시편과 잠언 곳곳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고백합니다. 아굴의 겸손과 지혜는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경외함에 의한 것입니다.

겸손한 지혜자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더할 필요도, 뺄 필요도 없이 주신 그대로 순전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삶, 즉 구원 받은 자의 삶을 뜻합니다. 이 명예로운 선택의 삶을 인생의 여정 속에 놓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지혜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9-10)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그럼에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삶을 바라는 것은 혹여 나의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함에 있습니다. 본성의 욕구대로 사는 삶은 헛된 것을 구하게 하며 이를 위한 거짓말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구원 받은 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구원하신 이로부터 멀어짐에 있어야 합니다.

숫자로 보는 잠언 (10-31절)

10절부터 33절은 흔히 ‘숫자잠언’으로 부릅니다. 정신없이 나열되어서 무질서하게 보이는 이 단락은 마치 무질서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자의 관점이 녹아있습니다.

부덕한 종과 자식 (10절, 17절)

(10)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10절에서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또한 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에 대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종과 자식은 스스로 존재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의 위에는 주인과 부모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이들의 중심에는 교만함이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잠 16:18)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자는 이러한 교만함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무리들 (11-14절)

11절부터 14절까지는 다양한 ‘무리’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부모를 저주하고(11), 자신의 모습을 기만하고(12), 교만하며(13), 착취하는 자들(14)입니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는 이러한 어리석은 무리들이 넘쳐납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것들은 또한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자 (15-16절)

15절과 16절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거머리에 비유하여 소개합니다.

(15上)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탐욕스러운 이들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마치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기를 족함이 없이 함과 같습니다.

피조세계를 통한 깨달음(18-31절)

18절부터 31절에서 지혜자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과 피조물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기이히 여기나 깨닫지 못하는 것(18-20절), 세상을 진동시키며 견딜 수 없게 하는 것(21-23절),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24-28절),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29-31절), 이것들은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나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모습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혼란한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지혜자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지혜자의 결론 (32-33절)

(32-33)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지혜자는 세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것을 강조합니다. 미련한 모습, 악한 일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 마지막까지 경고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입니다. 성령의 마지막 열매는 ‘절제’입니다. 우리의 삶을 말씀에 의탁할 때 절제의 열매가 맺힘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살아집니다.

아굴의 잠언을 통해 이 땅의 원색적인 단면과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서 있는 지혜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굴에게 허락하신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그 지혜를 사모하며 말씀으로 구원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내 안에 선하지 못한 죄 된 다양한 모습들을 바라볼 때에도, 이 땅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본성대로 살아가며, 거머리와 같이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구하고 또 구하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기까지 주의 백성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구하게 하시고 겸손함과 절제로 구원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질서를 다시 한 번 바라봅시다. 사소한 일상과 당연히 여겼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삶에서 찾아봅시다.

2.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라고 합니다. 얼마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계십니까?

3. 헛된 것과 거짓말이 내 마음과 입에 있지는 않습니까? 구하고 있는 간구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봅시다.

(작성 : 지종현)

[잠언 30장 아굴 강해 설교문] “나의 두 가지 기도”(잠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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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잠언 30장 아굴 강해 설교문 중에서 나의 두 가지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의 두 가지 기도”(잠30:7-9)

● 명제 : 아굴은 지혜 자였지만 하나님께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다.

● 목적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에게도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있어야 한다.

본 잠언서의 기자는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잠언은 지혜서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두 가지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기도 제목이 있지만 오늘 말씀의 기도 제목은 평생에 걸쳐 꼭 필요한 제목입니다. 이 잠언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고 했습니다. 아굴이 이디엘과 우갈에게 전해준 잠언입니다. 우리는 본 잠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본 잠언에는 야게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아굴의 아버지로 등장합니다. ‘야게’는 יקה(야케 3348)입니다. 이 뜻은 결백함이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아버지로부터 결백함과 청렴함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게라는 인물이 아굴을 말씀대로 잘 가르쳐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아굴’은 어떻습니까? אגור(아구르 94)이며 모여진, 수집된이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지혜의 말씀을 잘 수집하고 모아서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했던 자를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주어도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굴처럼 복음을 잘 수집하고 모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지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굴이 이렇게 지혜의 말씀을 잘 수집하고 모아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디엘과 우갈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좋다고 나만 간직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아굴처럼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이디엘’은 איתיאל(이티엘 384)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이디엘에게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디엘과 같은 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아굴과 같은 나는 이디엘과 같은 자에게 계속해서 지혜의 말씀인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갈’은 אוכל(우칼 401)입니다. 삼키운, 탐식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우갈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구원받은 자는 복음의 말씀을 열심히 탐닉하여 먹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던 선악과를 탐닉하여 먹으면 안 됩니다. 우갈도 아굴의 지혜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이디엘과 우갈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해야 하고 십자가 복음을 먹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도 아굴이 전해주는 지혜의 말씀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동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굴이 원하는 두 가지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잠30: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아굴은 자신이 두 가지 일을 주님께 구하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자기의 소원을 하나님이 거절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여기에서 ‘구하였사오니’라는 단어가 שאל(샤알 7592) 묻다, 구하다, 요구하다, 간청하다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자신의 평생에 두 가지 소원을 하나님께 묻고 구하면서 꼭 이루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두 가지 일을 죽기 전에 이루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원을 하나님께 간청했다는 근거는 칼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아굴은 이미 하나님께 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굴처럼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내가 죽기 전에 꼭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굴은 자신의 소원을 거절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거절하지’라는 단어가 מנע(마나 4513) 억제하다, 거절하다, 제지하다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자신의 두 가지 소원을 억제하거나 거절하여 죽기 전에 제지하여 주시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굴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칼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미완료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소원한 기도 제목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잠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아굴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헛된 것과 거짓말을 자신에게서 멀리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셔서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자신을 먹여달라는 기도입니다. 첫 번째 기도는 속사람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겉 사람의 기도입니다. 아굴이 헛된 것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헛된 것은’ שוא(샤베 7723) 공허, 헛됨, 허무, 거짓이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평생에 자신이 공허하고 헛된 우상을 섬기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아닌 거짓 것을 따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출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면 죄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망령되게’라는 단어가 שוא(샤베)입니다. 아굴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공허한 존재이며 헛된 존재로 생각하거나 부르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겉 사람의 문제가 있어 풀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정말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 라는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지 못하는 망령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굴의 기도처럼 나도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지 않고 공허한 존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굴은 거짓말을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כזב(카자브 3577) 거짓말, 허위, 사기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평생에 걸쳐 거짓 복음과 같은 허위 사실을 실제인 것처럼 전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육적인 사기는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사기는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민25:15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 도착했을 때에 모압 여인과 음행 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이 저주하셔서 염병으로 이만 사천 명이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음행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 미디안 여인인 고스비입니다. ‘고스비’는 כזבי(코즈비 3579)입니다. 사기, 거짓말쟁이라는 뜻입니다. 고스비는 영적 거짓말을 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바알브올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아굴은 영적 사기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거짓 복음을 전하여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 영적 사기꾼입니다. 성도의 영혼을 미혹하여 죽이게 됩니다. 아굴은 먼저 영적인 속사람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먼저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말씀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육적인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구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는 일입니다. 아굴은 두 번째 기도를 합니다. 자신을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자신을 먹여달라고 합니다. ‘오직 필요한’은 חק(호크 2706) 규정(칙), 법령(규), 관습, 의무라는 뜻입니다. 필요한 양식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규정과 규칙대로 자신에게 양식을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율례에 대해서도 사용됩니다. 아굴은 육적인 양식을 달라는 것도 있지만 영적인 양식도 허락해주셔서 영육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뜻대로 영육으로 먹여달라고 말합니다. ‘나를 먹이시옵소서’는 טרף(타라 2963프) 잡아 찢다, 잡아채다라는 뜻입니다. 아굴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을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주셔서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말아 달라고 합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반드시 필요한 대로 먹여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히필형 명령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먹여주시지 않으면 절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 단어는 동물을 잡아 찢는 데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살이 찢어지고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양식은 육체의 떡만이 아닙니다. 영적인 하나님 말씀의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시 때대로 나를 먹여주시고 보살펴주십니다.

잠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말합니다. 자신이 너무나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렵고 자신이 너무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배불러서’는 שבע(사바 7646) 만족하다, 포식하다라는 뜻입니다. 아굴의 고민은 자신이 육적으로 너무나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봐 고민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복을 받아 물질적으로 충만하여 만족감을 느끼고 포만감이 채워지면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이 배불러지는데 계속해서 육적인 것에 만족하고 포식하는 상태가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칼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호13: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배부르게 먹여주었는데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육적인 복을 받으면 나태하게 됩니다. 물론 영적으로 충만해져도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아굴은 하나님이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주어도 겸손히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육적 배부름과 영적 배부름이 와도 끝까지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굴은 자신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난하여’는 ירש(야라쉬 3423) 붙잡다, 상속하다, 점유하다, 상속권을 박탈하다라는 뜻입니다. 아굴은 육적으로 가난하여지고 영적으로 가난하여 하나님의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신세가 되면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다고 두려워합니다. 육적인 물질이 없어서 가난하면 살아가기 위해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고 영적으로 가난하면 천국을 상속받지 못하니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어서 두려워지게 됩니다. 아굴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속해서 가난하게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닢알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처지를 만들어 주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육적으로 가난하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말씀을 따르지 않고 물질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영적으로 율법에 휩싸여 있으면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여 주님을 욕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하지 마시고 너무나 부하게도 하지 마셔서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여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때때마다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매일같이 내려주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으로 영혼의 양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제부터 우리의 삶에 나타나셔서 나에게 필요한 양식을 영육으로 채워주십니다. 너무나 부하게 주셔서 교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게 해 주시고 너무나 가난하여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제 나타났으니 필요한 양식으로 저와 여러분들에 채워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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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의 기도(잠언 30장 1-9절)

설교 제목: 아굴의 기도

설교 본문: 잠언 30장 1-9절 (개역한글판)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의 기도

잠언 30:1-9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날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이번 달에는 기도와 관계되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의 말씀을 상고 하려고 합니다. 본 장은 아굴의 잠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교훈이 여러 주제를 취하면서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의 1 절 말씀에는 인명이 나오는데 야게는 ‘복종’, ‘경건함’ 을, 아굴은 ‘수집자’, ‘소집자’ 를, 이디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를, 우갈은 ‘강함’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명은 느 11:7 이디엘을 제외하곤 성경 다른 부분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저자인 아굴은 분명히 솔로몬과 같은 당대의 유명한 현자, 또는 시인이며, 이디엘과 우갈은 아마도 그의 제자이거나 그의 아들들로 여겨집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한 지혜의 교훈으로 본문의 말씀은 아굴이 겸허하게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굴’이 그의 평생 동안의 기도 제목으로 삼았던 그의 인생관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의 주제는 아굴의 두 가지 소원에 관한 간구의 내용으로서 그의 겸손한 신앙 고백과 같이 소박하고 진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아굴의 겸허한 신앙

1) 무지함을 시인하는 것이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잠30:2,3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 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아굴은 자신을 낮춤에 있어 짐승처럼 총명이 없고 지혜나 지식도 전무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창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 나이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바른 삶을 위해 하나님께 인도를 받고 규제를 받기 위해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로서는 규명 될 수 없는 분이므로 인간의 지식, 지혜로서 하나님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지금까지 소유하지 못했던 큰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즉 자신의 지식과 지혜가 부족함을 깨닫는 그것 자체가 이미 큰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겸허한 자세를 통해 우리는 하늘의 신비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2)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일은 높임을 받는 일입니다.

낮아짐의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면, 우선 마12:41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와 눅 18:13,14 세리의 기도, 그리고 빌 2:5-8 예수 그리스도의 성 육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분명히 그에 따른 보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낮춤은 하나님에 의해 더욱 높임 받을 수 있는 것이며, 더욱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높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어야겠습니다.

3)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없으므로 겸허해야 합니다.

잠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연상케 합니다. 특별히 잠30:4은 욥38:4-6 욥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되물음을 통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문 형식의 교훈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의 신비 앞에서 인간은 무지하여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으로 하나님의 신비가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날수록 더욱 오묘함을 느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요 그 세계의 신비인 것입니다.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는 것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정으로 기이하다는 것입니다.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므로 오직 저와 사랑하는 동산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시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어다.” 하심으로 매일 기쁘게 찬미 하고, 시145: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2.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아굴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음으로 인해 숨어 계신 하나님, 모습을 감추신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숨어 계시거나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가까이에 계십니다. 행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 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 하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들로 하여금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찾기 위해 간구 하며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1) 자연을 통해 함께 하십니다.

하늘, 바람, 물, 땅 등은 모두 자연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며,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러한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눅8:22-24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라고 하신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바람을 제어하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막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연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다양한 질서와 조화를 연출하는 자연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통해,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2) 말씀을 통해 함께 하십니다.

솔로몬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지혜자 아굴은 자신의 신앙 고백의 맺음을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 하다’ 로 하고 있습니다. 순전 이라는 것은 은이나 금을 녹여 불순물을 제거한 지극히 순수하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궤사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 하신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 하십니다. 그의 말씀은 순전한 말씀으로 그 안에 하나님은 거 하시며 성도 여러분들을 예배를 통해서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3. 진실한 삶을 위한 기도를 한 아굴

1) 깨끗한 마음을 구했습니다.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헛된 것의 히브리어는 심령이 황폐한 상태를 말씀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것은 남에게 해가 되는 언행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고 정결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원했으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요구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잠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 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성도의 회개에는 하나님의 용서가 뒤따릅니다. 이러한 회개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낱낱이 아룀으로 가능합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성도들은 고후5: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기도는 죄의 용서를 구하는 소극적 기도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죄의 생활을 멀리하며 깨끗하고도 정결한 마음을 사모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심으로 깨끗한 마음을 구하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 한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굴은 거룩한 생활도 원했습니다. 벧전1:16 “기록 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함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어떠한 기도보다 먼저 간절히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 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며 그러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깊이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물질에 대한 올바른 기도를 한 아굴

1) 가난하게도 마옵소서.

잠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대문으로 도망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 혹독한 시련을 동반하고 많은 제한을 가져오기에 싫어하며 그러기에 모든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가난을 피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가난하면 사8:21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 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라고 한 것처럼 사람들은 가난의 그 시련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아굴은 잠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라고 말함으로 가난하게 말아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가난을 초월한 부요한 자가 될 것입니다.

2) 부하게도 마옵시고.

잠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가난이 죄가 아니라면 부도 역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부도 가난과 마찬가지로 죄를 잉태할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가 가난보다도 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는 많은 사람들을 타락으로 몰아갔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에 많은 경우에 나중에 파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명으로 들어가기가 더 쉽다고 말씀하심으로 부로 인한 범죄의 경향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부에 대한 성경의 경고는 겔28: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라고 하면서 재물은 인간을 교만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 니라” 고 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인생 길 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을 향하여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재물을 올바르게 관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복음 전파와 가난한 자의 구제에 사용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재물이 가져다주는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자족 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잠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가난과 부의 기준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자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족 하는 마음이 성도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의 사는 성도들에게는 아굴의 신앙과 기도가 많은 도전이 됩니다. 사실 이렇게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아굴은 현자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현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의 직업이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부를 가질 수도 있는 직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기도를 한 것입니다. 말년의 솔로몬을 보았을 것입니다. 많은 부와 권세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솔로몬의 생활을 보고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아굴의 신앙과 기도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권고의 말씀을 드립니다. 잠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여러분들은 아굴의 기도를 마음에 꼭 새길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멀리 하십시오.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하는 중용의 기도도 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함으로 여러분들의 인생살이가 만사 형통 하시고 꼭 있어야 할 신앙과 재물들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잠언 30장 히브리어 강해] 아굴의 잠언(잠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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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30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아굴의 잠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굴은 야게의 아들로서 아굴이 이디엘과 우갈에게 한 말입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지혜를 배우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재림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를 살면서 주님을 모른다면 구원받을 수도 없고 주님을 맞이할 수도 없습니다. 이 시간 아굴의 잠언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닫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굴의 잠언(잠 30:1-4)

1절 디브레 아구르 빈 야케 하마사 네움 하게베르 레이티엘 레이티엘 베우칼

잠 30: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30:1

야게, 아굴, 이디엘, 우갈 – 학자들은 이들을 실존 인물로 보거나 가상 인물로 이해하기고 한다. 가상 인물로 보는 학자들의 경우 아굴은 솔로몬, 야게는 다윗, 이디엘과 우갈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데 무리한 추측에 근거한 해석이라 하겠다. 본장의 형태 혹은 일부 내용들은 본장의 기자가 솔로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예를 들면 2,3,8절 그리고 9절 등은 솔로몬의 삶이나 그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이다. 왕상 4:30, 31은 솔로몬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아마도 본장은 그들 중의 하나가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리고 개역 성경이 ‘말씀’으로 번역한 ‘하마사’는 어떤 지명을 가리키는 용어라는 설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본장의 저자 ‘아굴’은 본 용어의 음역인 ‘마사’라는 곳에 사는 아라비아인이었던 셈이다. 마사는 아라비아의 한 동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Kidner). 그러나 ‘마사’라는 히브리어가 ‘예언’, ‘발언’등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유 지명으로 단정할 수만은 없다.

2절 키 바아르 아노키 메이쉬 베로 비나트 아담 리

잠 30: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0:2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문자적인 뜻은 ‘확실히 나는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짐승과 같다’이다. 아마도 본장 저자의 주위에는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비교한 지혜는 다른 어떤 사람의 지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 같다. 자신만이 지혜롭다고 외쳤던 많은 이방 현자들과는 대조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저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아삽을 연상케 한다(시 73:22).

3절 베로 라마드티 호크마 베다아트 케도쉼 에다

잠 30: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30:3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 저자는 지혜자였다(1절 주석 참조).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검토해 본 결과 참 지혜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종교 개혁가인 칼빈(Calvin)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기독교강요, 1권 1장)고 말했다.

4절 미 알라 솨마임 바예라드 미 아사프 루아흐 베호프나이브 미 차라르 마임 바시믈라 미 헤킴 콜 아프세 아레츠 마 쉐모 우마 쎔 베노 키 테다

잠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30:4

‘너는 아느냐’는 알지 못한다는 답을 염두에 둔 일종의 수사학적 표현인데 저자는 이 같은 표현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다. 본절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이 더 상세한 욥 38-41장의 경우 화자는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이 화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본절은 2,3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식의 한께 및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저자는 가시적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사색을 통해 인간은 먼지처럼 낮아져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천체, 우주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처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시 2:4; 14:2).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때로는 지상에 몸소 내려오신다고 믿었다(창 11:7; 17:22).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내세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창 15:15; 신 33:27) ‘하늘’은 더더욱 외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초월성과 아울러 낮고 천한 인생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암시한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지니신 속성 곧 그의 영원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 따위를 온전히 이해하였으면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 본절에 근거하여 아굴이 삼위(三位) 하나님 중 제1위와 제2위에 대하여 본절을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Clark). 그런가 하면 고대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Midrash)에서는 ‘아들’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이를 창조주, 로고스(the Logos) 혹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시적 평행어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들 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 명확히 단정 내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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