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작곡가 | [꼬야네 라디오] 편안한 음악 여행 – 이영훈 작사 작곡, 이문세 노래 /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 연가, 옛사랑,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붉은 노을… 상위 115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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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무대 – 아카이브 K]에 발라드의 전설 이문세 님이 나오셨네요.
지난 이야기 나누며, 오래 전 우리를 설레게 했던 명곡들도 들려주셨는데요,
오늘은 이문세 노래 중에서 이영훈 작사 작곡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감상해 봅니다.
0:00:00 꼬야 멘트 (배경음악: 광화문 연가)
0:02:42 이문세 – 난 아직 모르잖아요
0:06:49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0:11:00 이문세 – 광화문 연가
0:14:40 이문세 – 옛 사랑
0:19:25 이문세 – 소녀
0:23:04 이문세 – 그녀의 웃음소리뿐
0:29:41 이문세 – 기억이란 사랑보다
0:35:15 이문세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0:40:41 이문세 – 빗속에서
0:44:33 이문세 – 휘파람
0:49:03 이문세 – 이별 이야기 (Duet With 고은희)
0:53:07 이문세 – 슬픈 사랑의 노래 (Duet With 이소라)
0:57:37 이문세 – 깊은 밤을 날아서
1:00:38 이문세 – 가을이 오면
1:04:16 이문세 – 애수(哀愁)
1:07:54 이문세 –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1:11:03 이문세 – 붉은 노을

*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
방송 영상 보기: https://programs.sbs.co.kr/enter/archivek/clips/67611

#이문세, #이영훈, #광화문연가,
…………………………………………………………………….
* http://youtube.com/lotus3321 로 오시면
꼬야의 노래, 시낭송 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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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음악가) – 나무위키

이영훈은 데뷔하기 전까지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주제가를 작곡하거나 피아노 세션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84년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단편 ‘창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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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15/2021

View: 9159

이영훈 (작곡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영훈 (1960년 3월 6일 대한민국 서울 출생 ~ 2008년 2월 1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별세.)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가수 이문세의 곡을 주로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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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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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작곡가 이영훈 씨 별세 – 한겨레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 이문세과 명콤비를 이룬 히트 작곡가 이영훈 씨가 대장암으로 14일 오전 3시 별세했다. 향년 48세. 이영훈은 2006년 대장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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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12/19/2022

View: 883

“작품 쓸때 밤새 고심하던 아버지 모습 지금도 생생해요” – 매일 …

故이영훈 10주기 헌정공연 준비하는 아내 김은옥·아들 이정환씨. … 지난 14일 서울시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이영훈 작곡가의 아들인 이정환 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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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k.co.kr

Date Published: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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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만든 작곡가 이영훈, 20년간 왜 이문세만?

대중은 쉽게 이영훈의 이름 뒤에 이문세를 붙이지만, 작곡인생 20년을 맞은 이영훈은 이제 오롯이 자신의 이름만 남길 바라는 눈치다. 이영훈은 최근 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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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ocutnews.co.kr

Date Published: 1/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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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굉무의 음악이야기]인고의 세월을 초월한 최고의 명곡

이영훈은 원래 연극, 방송, 무용음악 등을 만드는 비교적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였다. 그러던 중 1984년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창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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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domin.com

Date Published: 4/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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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야네 라디오] 편안한 음악 여행 – 이영훈 작사 작곡, 이문세 노래 /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 연가, 옛사랑,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붉은 노을…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영훈 작곡가

  • Author: kkoyalive [꼬야의 라이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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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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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영훈 (1960년 3월 6일[1] 대한민국 서울 출생 ~ 2008년 2월 14일[2] 대한민국 서울에서 별세.)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가수 이문세의 곡을 주로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별 이야기〉, 〈광화문 연가〉, 〈옛사랑〉 등이 대표작이다. 시적인 가사와 함께 서정적인 발라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내어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한민국의 ‘팝 발라드’ 장르를 개척한 대표적인 대중음악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생애 [ 편집 ]

추모비

연극, 방송, 무용음악 등을 만드는 비교적 순수예술의 영역에 속해 일하던 뮤지션이었으나, 1985년 밴드 신촌블루스 엄인호의 소개로 가수 이문세를 만나 본격적으로 대중 음악 작업에 착수해 1985년 이문세 3집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필두로 〈휘파람〉, 〈소녀〉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쳑하였다. 1987년 이문세 4집에서는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등 그야말로 ‘발표는 곧 히트’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며 그해 골든 디스크 대상과 작곡가상을 수상하면서 최고 작곡가로 우뚝선다.

150만장이 팔린 3집이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신호탄이었다면 무려 285만장의 판매기록을 수립한 4집은 그때까지의 사상 최다 음반 판매기록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88년 모든 역량이 녹아든 명반 이문세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장에 달했으며,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 앨범에 수록된 거의 전곡을 10~20대의 입에서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이 앨범으로 이문세는 골든 디스크 3연패를 이룩하게 되었고, 이영훈이 제시한 고품격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며 그때까지 라디오를 점령했던 팝송 프로그램들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가요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되는 혁명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2001년까지 이문세와 함께 정규앨범 8장과 기획 앨범 3장을 만들었다. 투병중에도 작품집 《옛사랑1·2》를 연이어 선보였으며 뮤지컬 《광화문 연가》제작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2008년 2월 14일 오전 3시경 대장암으로 인해 4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분당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되었다.

소품집은 1992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있는 볼쇼이극장 오케스트라의 음악가들과 수회의 연주와 녹음과정을 거치어 완성했고, 이십대초에 쓴 곡들과 33살까지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그해 모스크바의 겨울과 당시의 환경들이 이 앨범의 음악들에 남아 있어 전체적으로는 겨울을 느끼게 하는 그런 감상이 있습니다.

– 이영훈 소품집 ‘사랑이 지나가면’ <머릿글>중에서

7집까지 함께 해왔던 이문세와 잠시 떨어져서 그는 자신의 개인 작품집에 몰두하게 된다. 러시아로 건너가 볼쇼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소품집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1993년 애절한 스트링 선율이 돋보이는 1집을 필두로 이듬해 이문세의 히트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2집을 내고 이 앨범들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음악박람회인 미뎀(MIDEM)에 출품, 자신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까지 경주했다. 그해 세 번째 앨범이 마저 나오며 소품집 작업은 마무리된다. (이 세장의 음반은 1997년에 한꺼번에 다시 묶여져 재발매되으며, 2003년에는 ‘사랑이지나가면’이라는 부제로 2장의 앨범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시회를 개최했던 고 박건희가 디자인한 이 소품집에서 그는 발라드 음악이 이룩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창출하며 거장으로 가는 길에 여러 발걸음을 보탰으며 선율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맘껏 실험했다.

이영훈 소품집 1 < A Short Piece > 발매일 1993년 10월 15일

이영훈 소품집 2 < Collection > 발매일 1994년 7월 5일

이영훈 소품집 3 < A Short Piece > 발매일 1994년 7월 31일

작품집 《옛사랑-The Story of Musicians》 [ 편집 ]

이영훈이 작곡한 곡들을 신세대 가수들이 다시 불러 만든 앨범이다. 《옛사랑1》이 2006년 9월에 나왔으며 2007년 4월 《옛사랑2》가 발표되었다.

이영훈 옛사랑-The Story of Musicians: 발매일 2006년 9월 14일, Cat.No : SRCD3915

이영훈 옛사랑 2- The Story of Musicians: 발매일 2007년 4월 17일, Cat.No : SRCD-3990

유명곡 [ 편집 ]

각주 [ 편집 ]

‘광화문 연가’ 작곡가 이영훈 씨 별세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 이문세과 명콤비를 이룬 히트 작곡가 이영훈 씨가 대장암으로 14일 오전 3시 별세했다. 향년 48세.

이영훈은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후 두 번의 수술을 거쳤고 같은 해 10월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고통 속에 모르핀으로 버텨오던 중 급기야 암세포가 위까지 퍼져 물과 주스로만 연명하다 세상을 떴다.

국내 대중음악계 팝 발라드 장르를 개척한 인물로 꼽히는 이영훈은 1983년 연극 음악으로 출발, 1986년 이문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시작으로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옛사랑’ 등 2001년 이문세의 13집까지 함께 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또 ‘인샬라’ ‘보리울의 여름’ 등 영화 O.S.T 작업도 했다.

2006~2007년 임재범, 이승철, 윤도현 등의 가수들이 자신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담은 ‘옛사랑’ 시리즈를 2집까지 발표했고, ‘한국판 맘마미아’를 꿈꾸며 자신의 작품으로 채울 창작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제작하기 위해 방송인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승현과 공연기획사 H1프로덕션을 설립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영훈 측 관계자는 “호흡 곤란으로 대화가 어려워 유언을 남기진 않으셨다”며 “아내와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하셨다. 투병 중에도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으셨기에 무척 안타깝다”고 슬퍼했다.

이어 “이영훈 씨가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하나님에게 빚을 갚고 싶다’며 이문세 씨가 병실을 찾았을 때 ‘함께 CCM 음반을 마지막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셨다”면서 “병실에 건반을 갖다 달라는 부탁을 안 들어드렸더니 오선지에 곡을 쓰시더라”고 회고했다.

이 관계자는 “고인은 가셨지만 뮤지컬 ‘광화문 연가’ 제작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6호실(14일), 16호실(15~17일)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남서울공원묘지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은옥 씨와 아들 이정환 군이 있다. ☎ 02-3410-3153

이은정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작품 쓸때 밤새 고심하던 아버지 모습 지금도 생생해요”

지난 14일 서울시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이영훈 작곡가의 아들인 이정환 영훈뮤직 본부장이 아버지 사진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영훈뮤직]

이영훈 작곡가가 1986년 오선지 위에 펜글씨로 남긴 메모에서 예술 작품의 순수성에 대한 작곡가의 신념이 엿보인다.

오늘날 10·20대는 K팝 위주의 음원 차트에 익숙하지만 한국 대중 음악계가 자국 가요 중심으로 꾸려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광복 이후 라디오 재생 횟수와 음반 판매에서 우리 노래는 항상 팝송의 그늘 아래 있었다. 판도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1980년대 중후반. ‘난 아직 모르잖아요’ ‘광화문 연가’ ‘소녀’ ‘붉은 노을’ 등 이영훈(1960~2008)이 쓴 노래가 이문세의 목소리를 타고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젊은 세대의 귀를 사로잡았고, 급기야 이문세 4집이 285만장 팔려나가며 당시 국내 음반 판매량 역대 기록을 경신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영훈뮤직을 운영하며 이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보존하는 김은옥 대표(54)와 이정환 본부장(30)을 지난 14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그들의 자택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은 고인의 기일로 부인인 김 대표와 아들 이 본부장은 다양한 10주기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출발점은 오는 27일 세종문화회관에 올리는 헌정 공연 ‘작곡가 이영훈’. 가수 이문세, 한영애, 윤도현, 김범수와 현대무용가 김설진 등 이영훈과 음악 작업을 함께했던 예술가들과 손잡고 고인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다.아들인 이 본부장이 아버지 관련 행사에서 전면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엔 아버지가 이 작곡가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 공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 건 2007년 이 작곡가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 “리메이크 앨범 ‘옛사랑’을 만들던 당시 아버지는 작품에 참여할 가수를 고민하고 계셨죠. 그때 곡 배정이랑 가수 선정을 도와드렸는데 ‘내 30주년, 40주년 앨범 때 너도 함께 작업하자. 한 곡 불러’라고 하시더라고요.”이번 공연 티켓은 고인을 추억하는 사람을 가능한 한 많이 초대하기 위해 전 석을 2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 본부장은 “작년 말쯤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받아온 사랑을 팬분들께 돌려주자며 헌정공연을 무료로 진행하자고 제안하셨어요. 이문세 아저씨랑 제작팀 멤버들이 선뜻 ‘제작비를 분담하겠다’고 나서주셔서 좌석당 2만원에 전 석을 공개하게 됐어요.”이 작곡가에 대한 추모 열기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고인의 명곡으로만 구성한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4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대전, 대구, 부산 등 주요 도시로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영훈의 작품 세계를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김 대표는 털어놨다. “처음 상연한 뮤지컬에는 이런저런 탈이 있었고, 저희 음원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는 사람도 계속 나와서 마음의 상처가 굉장히 컸어요. 이제 10년이 되면서 그런 어려움은 많이 해결됐어요. 음원도 찾아왔고, 새로 올린 뮤지컬도 많은 팬들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건 아직도 영훈 씨를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분이에요.”이영훈은 사랑 많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모자가 고인을 ‘영훈 씨’ 또는 ‘아빠’라고 자주 언급하는 데서 화목하고 따뜻했던 가정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영훈 씨네 집안에서는 오직 그의 어머니만 음악을 지지해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좌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나봐요. 저를 만나면서 ‘이 여자라면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겠구나. 놓치면 내가 죽겠다’고 생각했대요.”김 대표는 1년 중 300일을 자기 집 앞에서 기다리며 구애했던 이 작곡가를 받아들여 1988년 결혼했다.따뜻한 아버지였지만 작품에 몰입할 때만큼은 함부로 다가서지 못할 오라를 풍겼다고 이 본부장은 회상했다. “새벽에 깨서 아버지 방 앞으로 가면 불빛이 새어 나왔어요. 찬 공기와 담배 냄새가 문 틈으로 풍기는데 어린 마음에도 분위기가 엄숙하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면 연기가 자욱하더라고요. 그리고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 꽁초, 주황색 연필 끝에서 나온 지우개 가루…. 그런 것에서 아버지가 작품을 쓸 때 고심한 흔적을 발견했죠.”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 방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만든 ‘작곡가의 방’을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상연되는 극장 한쪽에 전시하고 있다.’모든 이의 가슴에 숨어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이날 이 본부장은 이 작곡가가 남긴 메모를 보여줬다. 펜글씨 교본에 담긴 듯한 정갈한 필체로 적어내린 노트에는 음악의 순수성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의 가요를 들으시면 마냥 좋다고만 생각하진 않으실 것 같아요. 예술품이라면 모름지기 아름다워야하고 음악은 듣는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제게 항상 강조하셨거든요.”그래서 두 모자는 고인처럼 순수한 열망을 지닌 작곡가를 올해부터 지원할 예정이다. 곧 제정될 ‘이영훈 작곡가상’이 대표적 예다. 창작자가 온라인에 가사 또는 곡을 올리면 이영훈재단(가칭)이 수작을 선별해서 시상할 예정이다. 또 현대기독교음악(CCM)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도 시작한다. “이영훈 씨는 하나님에게 여러 가지 영감과 재능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CCM을 하지 않았지만 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꼭 지원하고 싶어했죠.”[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화문연가 작곡가 이영훈을 추모하며

이영훈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작곡가입니다.1980년대 중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정성과 감성적인 팝발라드음악을 통해 많은 국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작곡가입니다.저 역시도 이분의 음악을 통해 서정과 사랑을 배웠고 착한감성을 키웠습니다. 제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뮤지션이 한 인터뷰에서 그의 작품들이 기도하며 만들어진 곡들이라는 고백을 들었을 땐 정말 놀랐습니다. 모든 곡이 항상 귀하고 특별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만들어진 곡들이어서 그렇구나라는 놀라움이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감성.. 이영훈과 이문세의 앨범을 이젠 마주할 수 없지만 내 삶에 소중한 선물같은 두분의 보석같은 노래들을 기억하며 마지막 가실때도 “하늘나라에서 좋은 곡 많이 쓰겠다는 우리가 사랑한 작곡가 이영훈 선생님을 추모하며 작은 시로 그리움을 대신합니다.

좋은 그림은 그림의 어느 한 부분을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좋은 음악은 음악의 어느 한 선율을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좋은 영화는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을 떠올려도 아름답습니다.

한번뿐인 우리의 삶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인생은 인생의 어느 한 날을 들여다 봐도 아름다워야 하기에 신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오늘임을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 하늘나라 작곡가 이영훈님의 CBS 인터뷰중에서 인용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고 창조한다는 기쁨을 가지고 음악을 하게 하소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깨끗한 정서(기억)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이의 가슴에 숨겨져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 1994년 이영훈의 음악노트 중에서

[고굉무의 음악이야기]인고의 세월을 초월한 최고의 명곡

이영훈의 ‘슬픈 사랑의 노래’

10여 년 동안 수많은 노래신청을 받는 가운데, 어떤 노래를 가장 많이 틀어주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여태까지 모아둔 리퀘스트 용지 보관함을 열어보니 일 년 단위로 고무줄에 잘 묶어져 있었다. 한 장 한 장 뒤적이며 가만히 살펴보니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초창기 진땀을 빼가며 어렵사리 틀어줬던 노래들, 음반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모습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객들이 남겨놓은 기록은 저편에 두었던 기억을 되살려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리퀘스트 용지의 곡명을 훑어보면 신청자의 연령대와 좋아하는 취향의 장르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신청자의 나이와 관계없이 한 가수의 곡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며, 한국 대중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 이문세의 노래가 적힌 용지가 한 곳에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굳이 적지 않고 바로 신청한 노래 중에서도 많았던 것 같다. 근래 젊은 층의 신청곡에서 심심찮게 이문세의 오래된 노래를 볼 수 있다. 이문세 노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한 번씩 곡을 주문하는 객들에게 “이문세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없냐”고 질문을 던져보면 십중팔구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노래 부른 가수는 쉽게 기억되지만 정작 곡을 만든 작곡가나 작사가는 알기가 쉽지 않다. 구태여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다.

▲ 이영훈과 이문세.

하지만 가수 이문세의 경우는 예외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바로 이영훈 작곡가가 있어 지금의 이문세가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곡가 이영훈과 가수 이문세,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대중가요의 경이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 짐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60년 3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영훈은 정규음악 수업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독특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프로필에는 학력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음악가로 만들어 준 사람은 어머니라고 했다. 유난히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앞날을 위해 늘 골방기도를 했고, 가족 모두 반대했던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을 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결사반대했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달리 남몰래 늘 격려했다. “영훈아, 나는 네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네가 선택한 만큼 네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도 엄마는 네가 착해서 참 이쁘다”라며, 어머니는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하는 아들의 부탁으로 70여만 원 되는 월급에서 서슴없이 58만 원 하는 피아노를 사 주었다. 그는 그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고 했다. 무엇이든지, 어떤 음악이든지 그 피아노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믿어준 어머니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 드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꼬박 3년을 투병하였다. 그가 처음 발표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10주 동안 각종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는 잠깐 의식이 돌아온 어머니를 붙잡고 성공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젠 피아노 사준 돈 다 갚아”라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는 2주 후에 운명하였다. 그는 어머니가 사주신 그 피아노로 곡을 만들었고, 골든디스크상을 세 번이나 받을 수 있었다. (이영훈, 김은옥, , 민음사(2009년), 78~79쪽)

이영훈은 원래 연극, 방송, 무용음악 등을 만드는 비교적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였다. 그러던 중 1984년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창수의 취업 시대’ 단편 영화음악을 맡으며 대중음악 작곡가로서의 서막을 올린다.

한편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1977년 가수 겸 MC로 데뷔한 이문세는 1집과 2집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과 ‘파랑새’를 발표하지만, 가수보다는 오히려 라디오 DJ로서 명성을 더 얻고 있었다. 1985년 어느 날, 이문세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를 만난 자리에서 새 앨범 작업을 위한 작곡가를 부탁하였다. 이때 엄인호는 마침 그의 연습실에서 작업하고 있던 신인 작곡가를 소개하게 된다.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이문세가 작곡가 이영훈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굉장히 수줍어하는 그에게 곡을 좀 들려 달라고 했다. 그가 마지못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첫 멜로디가 내 심장을 쳤다. 지금의 ‘소녀’였다. 나한테 곡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자기는 아마추어여서 히트도 안 될 거라며 겸연쩍어했다”고 한다.

▲ 이문세 12집 <휴(休)>.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6개월에 걸쳐 8곡을 완성한 이영훈은 “쉬운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30분 만에 한 곡을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난 아직도 모르잖아요’였다. 이문세의 3집 대표곡이 된 이 노래는 KBS의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동시에 라디오 인기가요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를 거머쥐는 대 히트곡이었다.

이영훈이 대중가요 작곡가로 출발한 시점을 보통 이문세 3집으로 본다. 그런데 1985년 9월 이문세에게 7곡, 무명이었던 가수 태희에게 2곡을 주면서 비슷한 시기에 녹음을 마쳤다. 이문세 3집 앨범은 그해 12월, 태희 1집은 1986년 1월에 발매되어 거의 같은 시기에 두 가수에게 곡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영훈이 가수 태희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음반을 신촌블루스의 리더 엄인호가 프로듀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녀의 앨범에 실린 노래는 ‘문밖에서’, ‘그대는 비가 좋아서’라는 두 곡인데, 이문세 3집의 인기로 부각 되지 못했다. 이영훈은 3집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필두로 ‘휘파람’, ‘소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87년에 발표한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이 수록된 이문세 4집은 그야말로 ‘발표는 곧 히트’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며, 그해 골든디스크 대상과 작곡가상을 휩쓸며 최고의 작곡가로 등극한다. 150만 장이 팔린 3집 앨범은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고, 무려 285만 장이나 팔린 4집은 그때까지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사상 최다 음반판매기록을 세우는 경이적인 사건이었다.

1988년 그의 모든 역량이 녹아든 명반인 이문세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달했다. 5집에 실린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은 10~20대의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만들며, 전파를 탄 이문세의 노래는 온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음반으로 이문세는 골든디스크상 3연패를 이룩하게 되었고, 이영훈이 추구했던 고품격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이전 인식을 바꾸게 하였다.

이에 그동안 라디오 음악의 전성기를 누렸던 팝송프로그램들이 서서히 사라지며, 가요프로그램들이 대거 편성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팝 발라드의 태동은 대중가요 변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현대 한국 발라드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이영훈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유재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을 가미한 독특한 작곡법, 작사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은 두 사람이 여러 가지로 비교될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음악성향으로 보아 둘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데, 유재하는 다루는 악기도 많고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법, 편곡까지 도맡아 하는 전형적인 천재형 음악가였다. 이에 반해 이영훈의 작업방식은 강박에 가까웠다. 피아노 앞에 앉아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를 4갑씩 피우며 밤을 새웠고, 가사 하나를 쓰는데 한 달 이상 매달릴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고궁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평소 일상에서 느끼는 깊은 성찰과 명상, 인고의 노력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묻어나 있다. 이영훈이 가장 아끼며 스스로 최고의 곡이라 말하는 ‘슬픈 사랑의 노래’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1999년에 발표된 ‘슬픈 사랑의 노래’는 이문세 12집 앨범 <休(휴)>에 수록된 곡으로 이문세와 이소라가 듀엣으로 불렀다. 남녀의 대화형식으로 작곡되어 이문세의 저음과 이소라의 흐느끼는 듯한 창법이 어우러져 가슴에 와닿는 느낌을 준다. 나중에 이 노래는 2006년 9월에 발매된 이영훈의 작품집 <옛사랑1>에서 김연우와 이소은이 듀엣으로 리메이크하여 부른다. 이때 이문세와 이소라 버전과 달리 이소은이 먼저 부르고 김연우가 뒤를 이어 노래한다. <옛사랑1>이 발매되었던 2006년에는 그의 병이 깊어지던 때인데 한 언론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김연우와 이소은이 함께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며, 내 생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1986년에 시작해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고, 96년에야 가사를 붙였다. 곡의 모티브가 아름다운 반면 그 성격이 단순하고 강해 후렴부를 만들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 그의 소품집 <사랑이 지나가면>에서는 “이 곡은 1987년에 주제 멜로디를 얻었으나 앞부분인 16마디를 작곡하였을 뿐, 멜로디가 주는 영감이 강하여 후렴 부분을 작곡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91년 겨울에 후렴 부분을 작곡하여 1992년에 지금의 연주곡으로 녹음하여 완성하였고, 노래로서 가사 또한 멜로디가 강하여 쓰지 못하다가 1997년에야 글을 쓰고 노래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쓴 곡 중에 완성하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곡이었고, 또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그런 연주곡입니다”라 밝히며 인터뷰 내용과 다소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곡은 1993년 발매된 이영훈의 첫 번째 소품집 에 연주곡으로 선보였다. 당시에는 노랫말 없이 관현악으로 편곡되었고 러시아 볼쇼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였다. 그 후 97년에 이르러 가사를 붙였고 다시 2년이 지난 1999년에 비로소 이문세의 노래로 발표되었으니, 12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명곡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영훈은 작곡 노트에서 ‘슬픈 사랑의 노래’를 두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랑의 감미로움과 그 아름다운 슬픔에 대해 독백하듯 표현했으나, 후렴부에는 숭고한 사랑의 아픔과 영원할 수 없는 인간들의 만남을 종교적으로 승화시켜, 절망하지만 운명에 순응하는 연인이 사랑의 대화를 묻고 답하듯이 표현했다. 가냘픈 여인의 독백 같은 바이올린 솔로에 이어, 곡의 중반부에 나오는 첼로의 음률로 남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멜로디에 겹쳐나오는 듀엣 느낌의 바이올린은 슬픈 운명을 부인하고 싶은 여인의 질문들이다. 영원할 듯 이어지는 여인의 슬픈 사랑에 대한 질문에 묵묵히 답해줄 수 없는 남자의 마음, 스스로 위로할 수 없는 질문과 대답에 서로 슬픔이 격해지며 곡이 끝난다. 사랑의 노래가 아닌 슬픈 사랑의 노래로 말이다.”

– 광화문 연가, 민음사

이후 이문세와의 작업 외에도 드라마, 영화음악을 만들며, 히트한 자신의 곡을 편곡하여 관현악으로 구성된 소품집들을 발표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아바의 히트곡들로 만들어진 뮤지컬 ‘맘마미아’처럼 자신의 인기곡들로 구성한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기획하였지만, 대장암 판정을 받은 후 투병하다가 2008년 2월 14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고작이 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뜻을 이어받은 제작진들에 의해 201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이영훈, 그를 말할 때 이문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와 이문세의 관계를 떠나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대중 가요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문세가 뛰어난 재능을 지닌 가수이지만,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아마도 좋은 작곡가를 선택했던 안목이었을 것이다.

너를 스쳐 갈 수 있었다면 지금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너를 모르고 살던 세상이 마음은 더 편했을 텐데

인연이 아닌 사람이었어. 사랑할 수 없다 생각했지

우린 둘이 같이 서 있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

새하얀 저 거리에서 쌓이던 첫눈 같은 사랑

너를 안고 숨을 쉬면 세상엔 너밖에 없는데

너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해 세상이 조금 더 아플지라도

너를 볼 수 있는 밤이 오면 슬픔은 다시 없을 거야

인연이 아닌 사람이었어. 사랑할 수 없다 생각했지

우린 둘이 같이 서 있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

새하얀 저 거리에서 쌓이던 첫눈 같은 사랑

너를 안고 숨을 쉬면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어 세상이 더 아플지라도

너를 볼 수 있는 밤이 오면 슬픔은 다신 없을 거야

슬픔은 다신

– ‘슬픈 사랑의 노래’ 작곡·작사 이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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