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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 19:18. …
- 마태복음 19:19. …
- 마태복음 22:37~39. …
- 마가복음 12:30~31. …
- 누가복음 10:27. …
- 로마서 13:9. …
- 갈라디아서 5:14. …
- 야고보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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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표지
출처 : 월드 뷰
제목 : “강도만난 자의 이웃”
링크 : https://theworldview.co.kr/archives/10640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나 무엇과도 주님을
링크 : https://youtu.be/7TPZdsW9P-w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오래전에 성경공부를 인도하는데 한 집사님이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잖아요. 그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사랑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 제가 지금 누군가를 돕고 있는데,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도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요”라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눅 10:27-28, 개정)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이 말씀을 실천하면서 궁금증이 생겼던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도 종종 이런 고민들이 있지 않습니까? 선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데 ‘내가 어떻게,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 말입니다.
저도 오래전에 긍휼 사역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성경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지에 대해 함께 배우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어디까지 이웃을 사랑하길 원할까요?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0:30-33, 개정)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여러분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이웃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 과연 예수님은 우리가 이웃 사랑을 어떻게, 어디까지 하길 바라실까요?
그 첫 번째는 예수님은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가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강도 만난 사람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냥 지나갔지만, 이것을 본 사마리아인은 어떻게 반응했다고 합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첫 번째 이웃 사랑이 무엇이냐? 그것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외면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난 곳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강도를 만났다면 이 강도 만난 사람이 유대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이 서로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거의 원수지간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의 원수라 할지라도 사마리아인처럼 돕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이웃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나의 원수라 할지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또 우리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이웃 사랑의 두 번째 원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약 내가 누군가를 돕기로 결정했다면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선을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계속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10:34-35, 개정)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이 자신 수준에게 선을 베푼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에 붓고 싸맸으며,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까지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울 때, 무리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도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35절에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울 때 자기 일을 포기하면서 도운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지만, 자기 하던 일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다 마친 후에 돌아올 때 경비가 더 들면 갚아 주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원하시는 이웃 사랑은 내 수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긍휼사역을 하면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말씀 때문에 제 자신을 혹사하며 무리하면서까지 긍휼사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이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을 통해, 네가 이웃을 어떻게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는 무리하지 않고 내 수준에서, 내 한도 내에서 선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마지막으로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는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돕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3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눅 10:35, 개정)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울 때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돕되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웃 사랑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내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결단하며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을 품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므로 사마리아인처럼 도움의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도울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선을 베푸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어쩌면 커피 한 잔이, 그 사람에게 대접한 밥 한 끼가 혹은 왼손이 모르게 도운 쌀이, 재정이, 혹은 그 사람을 위해 쓴 시간이, 그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강도 만난 사람에게는 사마리아 사람이 평생이 잊지 못할 은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때는 어떤 보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가려지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웃 사랑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만약 우리가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러한 우리의 선을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0:42, 개정)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세 때에 사랑이 식어진다구요(마 24:12).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만 영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마 5:16).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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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웃 사랑 성경구절
- Author: 인바이블 말씀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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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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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경 구절 분석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사랑에 관한 성경 구절 . 이 정확한 단어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이 키의 다양한 인스턴스를 조사합니다. 성경 구절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다음으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성경 법칙 그리고 개인의 거룩함. 다른 사람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행동을 바로잡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입니다.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족을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NKJV)
부자 청년이 물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 그가 하기 위해 어떤 선행을 해야 하는지 영원한 생명 ,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모든 계명에 대한 요약을 마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NKJV)
이어지는 두 구절에서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큰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NKJV)
마가복음 12:30~31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 번째 계명입니다.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NKJV)
다음 구절에서 누가복음 , 한 율법사가 예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질문으로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변호사는 올바르게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0:27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더라(NKJV)
여기 사도 바울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제한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자들은 교회의 다른 지체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 하지만 동료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또 다른 계명이 있으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모두 요약되어 있습니다.(NKJV)
바울은 율법을 요약하여 갈라디아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서로 깊이 그리고 온전히 사랑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한 마디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NKJV)
여기 제임스 편애를 보이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편애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동등하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James는 편애를 피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야고보서 2:8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왕의 법을 참으로 지키면 잘하는 것입니다…(NKJV)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마 22:34~46절, 2019년 4월 2일 성경묵상)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마 22:34~46절)
요13:34-35절에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의 이야기를 살피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양한 답변이 있을 줄 압니다. 우리는 사랑을 달콤하고 매력적이며 행복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달콤하기만 한 것도,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사랑이 단순히 서로 좋아하는 열정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단점까지 끌어안아야 하고 어려운 상황들을 함께 짊어져야 할 때는 사랑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어렵게 극복해야할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열정과 사랑이 다른 것은 열정은 식어버리고 나면 싸늘한 남이 되지만 사랑은 어려울 때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고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힘인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가는 작업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해주면 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단기간의 열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짐을 지는 것이며 연약한 부분을 내가 감당할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가장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내리시는 사랑의 정의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 율법사의 질문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대한 질문을 코가 납작하게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몇몇 사람은 그 자리에서 듣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전해 들었습니다. 본문에 모였다는 말은 어떤 한 장소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넘어지지 않은 것은 이들로서는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굴복시킴으로서 자신들이 정통성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율법사(마가는 ‘한 서기관)가 나와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위기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약간씩 다릅니다. 어쨌든 율법사의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마가복음에는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막12:28)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유대인들이 계명들을 크고 작은, 곧 중요하거나 사소한 법들로 구별했습니다. 랍비들은 율법을 세밀하게 나누어서 율법 중에 613(십계명 글자의 수) 계명이 있다고 보고 그중에 248(사람 몸의 지체 수)조는 적극적, 365(일 년의 날 수)조는 소극적인 금지 계명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중에는 중요하여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드릴 것을 드리지 않았던 고르반에 잘 나타납니다. 어떻게 하면 율법을 더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하는 율법에 대한 열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질문한 것입니다. “뭐가 가장 첫째 되는 계명입니까?”
이 질문에 예상되는 답변은 첫 번째 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
본문 37절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신6:5절의 인용입니다. 이 말씀은 가정이나 성전에서 매일의 예배에 사용한 신앙 고백문인 ‘쉐마’의 한 부분으로 매일 두 번씩 소리 높여 암송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장 익숙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 아이들은 이 구절을 외우는 것으로 교육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마음(kardiva, heart)은 열정을 포함한 정서적인 부분을 의미합니다. 또한 목숨(yuchv, soul)은 신명기에는 성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목숨이라고 바꾸셨습니다. 이 말은 육체를 뜻하는 말인 사륵스(savrx, flesh)와는 다른 말입니다. 영혼을 다해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신명기에서 성품이라고 한 표현은 적합해 보입니다. 뜻(diavnoia, mind)은 세계관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성을 의미하는 말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열정과 영혼과 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 속에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가 충분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좋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형통케 하셨을 때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열정이지요. 사랑에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열정을 뛰어넘어 영혼을 다해, 또 모든 사고를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앎을 통해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며,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의지적인 노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의지적이고 이성적인 노력! 그게 무엇입니까? 잘 모르고 사랑한다는 사람은 맹목적인 사랑이어서 위험합니다. 그런 사랑은 사실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나 집착일 때가 많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것은 바르게 알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감싸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가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무런 관심조차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관심이며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열을 다해,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영혼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 아닌 지성을 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그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사랑을 키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아침과 저녁으로 반복해서 암송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말씀을 반복해서 암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반복하면서도 외식에 빠졌고, 잘못된 민족주의적인 구원관을 발달시켰으며, 하나님의 의도하신 메시아가 아닌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가공의 메시아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들이 사랑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을 펴 놓고 바르게 이해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았어야 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앵무새처럼 암송했지만 사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율법 위에 할라카를 만들어 어느 것이 더 큰 계명인가를 따졌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런데요?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 뜻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예배를 열심히 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선교하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삶의 예배, 생활 예배를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연구하는 자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감사해서 헌금 생활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고, 시간이 날 때면 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봉사를 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요? 세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3:34~35절에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세 번 반복되면서 그럴 때 사람들이 너희가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통로는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이웃 사랑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구체화하고 드러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본문에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 몸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눈물겹습니까? 다이어트를 향한 우리의 몸 사랑은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건강을 향한 우리의 몸 사랑은 어떻습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몸에 좋다는 말만 들으면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몸을 돌보면서 어떤 대가를 바랍니까? 아닙니다. 우리 몸을 돌보는 것은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면 힘이 들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우리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자기 사랑은 이미 너무 과도해져서 부패와 타락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몸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주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이요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정리하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살폈습니다.
이 말씀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부분에 구체적인 노력과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열정과 영혼과 지성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참는 것이며 온유한 것입니다. 사랑은 약점까지도 포용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감싸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한결같음, 견고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가장 고상하고 수준 높은 성품입니다. 생활입니다. 윤리입니다. 사랑하면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하면 섬기게 됩니다. 사랑하면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온유해집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 사랑이 말뿐인 것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와 성경 묵상, 헌금과 같은 것들은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그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서 더 자라가야 합니다. 이웃들에게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드러내심
그런데요? 바리새인들이 다시 예수님 주변에 모였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단순히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만 질문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입니다.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270-300만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살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변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 성경을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지칭하는 보편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외쳤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외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 여리고의 소경이 “다윗의 자손이여!”했던 외침을 기억해 보십시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곧 메시아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이것을 부인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필요,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재정의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유대인의 왕’이라는 개념으로만 한정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그들의 성경과는 다른 메시아 관을 깨우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런 주님의 질문은 그것 자체로 축복입니다. 문제는 그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의 눈멀고 귀먹은 영적인 상태입니다.
주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의 답변에 대해서 반문하십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고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그러면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했는데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0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세속화된 메시아 관의 핵심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다윗의 계보를 따라오신 인간 예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이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행사하시는 모습들이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성한 기적들을 보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씀을 다시 재조명하시면서 다윗과의 관계만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메시아 관과 잘못된 성경해석을 포기하고 바른 눈을 뜨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이 받아들여 지고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속화된 복음, 자신들이 가공해낸 메시아를 굳게 믿으면서 참된 말씀의 성취로 오신 예수를 거부했던 사람들에게는 할 말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기어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된 확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못된 확신이 초래하는 결과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잘못된 확신은 반드시 생활과 연결되게 됩니다. 이어지는 23장은 일곱 개의 “화 있을진저”가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23:7절까지는 그 화 있을진저에 대한 요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가진 잘못된 메시아 관이 이들로 어떤 삶을 추구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내일 묵상에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에서 이웃 사랑을 빼버리고 나면 공허한 외식, 허탄한 지식만 남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점을 기억하는 오늘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중요 성경 구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22:37~39)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1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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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나님의 약속
성경 비밀 :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연이은 재난 속에서 어떻게 해야 죄성을 벗는 진실한 회개를 하여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의 최고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마가복음 12:28~34)
2019.02.06.수 생명의 삶 이기훈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뽑으라면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 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최고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마가복음 12장 28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본문말씀 보기
본문말씀 접기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본문말씀 접기
서기관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계명 중에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시험 하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로 알고 싶어서 던지는 그러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성경이 요약하고 있는 핵심 단어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사랑이 성경 핵심 단어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용어라고 하는 것이죠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예수님은 그 다음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세가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말씀 하신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사랑이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기 자신 안에서도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사랑이 없으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크리스찬으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여러분 영성 기독교 영성의 최고봉은 뭐냐? 사랑을 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
또 제자훈련을 많이하죠
제자도에 가장 높은 수준은 하나님 사랑 할 줄 알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거예요
이 세가지 사랑은 어느 것 하나도 땔 수가 없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타인을 사랑하게 돼 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돼 있다는 하는 거예요
꺼꾸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심도있게 묵상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사랑에 성숙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 고린도교회는 하나님 사랑은 잘했어요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의 신앙에 치명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사도 바울은 역설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모든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가 사랑이고
성령의 열매 중에 열매가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무엇보다도 지혜는 부족할 수 있어요
배운 것도 부족할 수 있어요
가진 것도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랑에 부족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이 사랑이라고 할 때 그 속엔 항상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여러분의 사랑을 점검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모든 계명 중 첫째일까요?
사도바울이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크리스찬은 크리스찬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 질문을 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 서기관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이것을 한 단어로 말하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아멘’ 이라고 대답 한 거예요
맞습니다
사랑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랑이 우리가 제사 때 드리는 모든 제물과 모든 제사 보다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 서기관이 누군지는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질문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다 예수님을 시험 하기 위해서 했었고
예수님께로부터 어떤 시비 거리를 찾기 위해서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근데 이 서기관을 그런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진짜 성경에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왔던 사람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요 두번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 했을 때
‘아멘’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에 여러분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것들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나, 예배에 가서 설교를 들을 때 나, 성경 공부를 할 때나, 혹은 방송을 통해서 말씀을 들으실 때 ‘아멘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만큼 누리며 살고 있는지 한번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 생활이 습관화 되다보면 어떤 은혜는 뒤로 한채 그냥 의미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신앙적 행위가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주일도 은혜를 생각 없이 그냥 가고 또 예배 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하는 의무감을 느끼고 이런 것들이 많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신앙 생활이 생기가 없고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신앙 생활이 재밌고 신나려면 은혜를 체험 해야 되거든요
근데 그 은혜의 기본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나님 말씀에서 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최근에 어떤 말씀에 ‘아멘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씀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기쁜 마음을 가지고 ‘아멘’으로 반응을 해 보신적이 있나요?
여러분의 영이 살아있으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가지 모양의 말씀들에 대하여 ‘아멘’으로 반응을 해야 됩니다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리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로 느껴지지 아니면 어쩌면 여러분의 현재의 영적 상태는 병들어 있을지 몰라요
따라서 오늘 이 서기관이 보인 예수님께 대한 태도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깊이 있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얼만큼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경험 하고 그 말씀앞에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크리스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잘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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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첫 언약의 목적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그 말씀으로 가르치며, 집에서든 길에서든 침소에서든 늘 그 말씀을 듣게 하고, 또 말씀을 자기 몸에나 출입문에 두어 늘 보고 듣게 해야 합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이 첫 언약을 율법이라 하는데, 이 율법의 강령은 사랑입니다.
한번은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레 19:18)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35] 그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5~40)
또 다른 데서는 한 서기관이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하고 묻자, 여기서도 주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막 12:28~34)
이처럼 사랑은 율법에서 말하고자 한 것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실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십니다.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1~6)
여기서 5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셨는데, 이때 하나님이 질투하신다고 하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계명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십 년 후 그들이 모압 땅에 머물 때 새 언약은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에게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이로써 생명을 얻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6~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이루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이때 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외치며 그 언약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강대한 나라들을 쫓아내셨느냐, 이는 다 하나님이 친히 싸워 주신 것이라.’ 하면서 그는 하나님 사랑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8]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9]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수 23:8~11)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와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저희 대적이 능히 이기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삿 5:31)
다윗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도 하나님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하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시 31:23)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시 145:20)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환난에서 건지시고, 자기를 사랑하며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의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9~15)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4~5)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로 사랑을 힘입게 하시며, 그를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게 하시되 그의 곳간을 한량없이 채워 주십니다.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 8:17~21)
첫 언약은 계명을 좇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새 언약은 그 계명을 내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서 굳은 마음이 아닌 부드러운 마음, 곧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마음을 주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서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한 것은 그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마 17:4~5)
이 사랑을 친히 증거하는 이는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또 침례 요한도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들을 사랑하실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붙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죽으시는 것도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그의 권세입니다.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5~36)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7~18)
하나님은 아들을 처음부터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곧 창세전부터 그를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이 독생자의 영광이요(요 1:14), 그 사랑이 그가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입니다(요 17:5).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3~26)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행하는 것을 다 그에게 보이시면 아들은 그것을 보고 따라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받았고, 그도 아버지를 열심히 사랑하셨습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19~20)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 14:31)
예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신 것은 그가 먼저 아버지의 사랑을 한량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요 10:17) 하십니다. 이는 율법사에 이르신 그대로였습니다.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 10:25~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서 친히 저를 사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요 14:21~23)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 16:27~28)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셔서 자기 독생자를 사랑하심같이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3~26)
하나님은 그 사랑을 알려주고 싶어하십니다. 그 사랑을 알게 하려고 주님은 우리가 자기와 함께 그의 나라에 있길 원하셨던 것입니다(골 1:13~14). 그곳에는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아들 사랑하시므로 그에게 주신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음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1~2)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되면 우리도 그와 같을 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또 그 사랑 안에서 그가 친히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가 성령과 함께 오신 것은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고자 함이었습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9~16)
이때 예수도 함께 오셨습니다. 그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요 14:16~23)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아들도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그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해야 합니다. 즉 그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주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21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이처럼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양을 먹이고 주님의 양을 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여기서 15절에 주님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셨는데, 이는 ‘다른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너는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에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하면서 자기는 누구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양을 먹이는 것입니까?
“[34]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4~40)
이렇게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자기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앞에서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 하신 말씀과 의미를 같이합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합니까? 자기가 누군지 바로 아는 자입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면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0~47)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를 아십니다. 곧 그를 알아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를 몰라보십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고전 8:3)
그래서 누가 많은 능력을 행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몰라보셨습니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26] 그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눅 13:26~27)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곧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저주를 받게 돼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한번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멸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거기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서 안식일에 삼십팔 년 된 병자 하나를 고쳐 주셨습니다(요 5:1~10).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가 안식일에 이 일을 행한다 하여 주님을 핍박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 속에 없다고 탄식하셨습니다.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9~42)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라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이 들어가 누릴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
그곳에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여 주신 영광이 충만합니다. 그곳에 그와 함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요 17:23~24, 요일 3: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만 허락된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막 12:32~34)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그분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해선 안 됩니다. 이런 사랑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사랑 안에 거하시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 이때는 말씀대로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의 성품이 흘러나오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7~21)
이렇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면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요일 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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