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8 장 설교 | [하루 한 장] 이사야58장_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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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27 [하루 한 장]“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사58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이사야 5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합당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고발이자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보여줍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금식마저도
자신들의 신앙을 남에게 보이려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했고
금식 중에도 싸우고 압제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의 금식은,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관계는 누구를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과연 내 삶 가운데 행해지는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받아주는 사랑의 모습이
내게는 풍성하게 거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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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금) “이사야 58:1-14” / 작성: 정한조

본문 이사야 58:1-14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형식적 신앙-금식(1-9a절) 3등분한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인 40-66장은 또 3등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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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0/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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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장 – 성경의 진리

이사야 58장 · 이사야 58: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 큰 소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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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wordofgod.kr

Date Published: 8/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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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내가 기뻐하는 금식(사 58:1-9)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8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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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hb-bible.tistory.com

Date Published: 4/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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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장 1~12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 여백 여정

이사야 58장 1~12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사순절 첫 번째 주일, 2016년 2월 14일, 부산진교회 청년 설교, 정대진 목사. 이사야 58장 1~1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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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ektos0921.blogspot.com

Date Published: 1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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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8장) 진짜 금식 – 양산중앙교회

(이사야 58장) 진짜 금식. 2019-12-09 06:50:00. 정지훈. 조회수 1087. 1. 말씀묵상. 우리는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만 골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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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angsanjungang.or.kr

Date Published: 1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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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이사야 58:1-2 I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I 이찬수 목사

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금식의 열매가 나타나느냐가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누가복음 18장 10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데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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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istory1621.tistory.com

Date Published: 8/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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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58 장 설교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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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2.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FVVbQ_KbP0

2019/03/22(금) “이사야 58:1-14” / 작성: 정한조

본문 이사야 58:1-14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형식적 신앙-금식(1-9a절)

3등분한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인 40-66장은 또 3등분하여 40-48장, 49-57장, 58-66장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58-66장은 이사야의 마지막 부분으로 신앙회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복된 미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부분을 여는 첫 번째 장입니다. 58-59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형식적인 신앙과 불의함에 대한 책망, 그리고 그들이 행한 불의함이 그들에게 미친 참담한 결과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 1-9a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한 형식적인 신앙, 특히 금식에 대해서 책망하며, 그 삶을 돌이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첫 부분에 명령어가 3개나 나옵니다. ‘크게 외치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트럼펫) 소리와 같이 소리를 질러라’입니다. 즉 ‘있는 힘을 다해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질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소리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흘려듣지 말고, 심각하게, 반드시 들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대상이 ‘내 백성’, ‘야곱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허물과 죄를 고발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허물’이 작은 잘못이고, ‘죄’는 큰 잘못일 것이라 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입니다. ‘허물’이 우리말 개념으로는 ‘흉.허물’에서처럼 ‘약점, 실수’ 정도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허물은 굉장히 강한 개념입니다. ‘반역’, ‘변절’, ‘영역침범’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래는 신하가 임금을 몰아내기 위해서 역모를 일으킬 때에 사용했던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허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가장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허물입니다. ‘죄’를 뜻하는 단어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의 의미는 새신자반에서 배운 바와 같이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1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너희 죄를 알렸다”, “너희 허물을 알렸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즐거워하고, 올바른 길을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바른 삶을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2절은 반어법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허물과 죄에 대해서 지적하시는데, 정작 그들은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습니다. 즉 자신들은 금식을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금식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가진 것을 신뢰하는 삶을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금식’을 매개체로 하여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외식적인 금식은 그들의 오래된 고질병과도 같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지, 700년이 지난 후에도 마태복음 6장에도 보면 유대인들이 외식하며 슬픈 기색을 띄고, 얼굴을 흉하게 하여서 금식하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8장에도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들려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일주일에 2번씩 금식을 한다고 하나님께 자랑을 합니다. 금식은 신앙을 드러내는 아주 강한 도구이기 때문에 그만큼 외식하기도 싶고, 거래의 조건으로 변질되기도 쉽습니다.

(3b-5)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3절 하반절이 ‘보라’라는 감탄사로 시작됩니다. 유다백성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 이어집니다. 그들이 금식을 행하며 어떤 잘못을 행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오락을 구하다’는 것은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즐거움을 채웠다는 것입니다. 금식하면서 성경을 한 장도 읽지 않고, 드라마를 보는 일에 빠져 있고, 자기 취미생활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갖 일을 시켰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노역을 시키거나, 빌려준 돈이나 이자를 독촉해서 받아 내는 것, 권세를 이용하여 재물을 착취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주먹질하며 싸우고, 누구의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듯이 다투었습니다. 그런 모습보고, 기가 차신 하나님께는 “그럴 거면 금식은 왜 하니? 그런 금식을 내가 받을 수 있을 것 같니?”라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6-9a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에 대해 증거합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기 위해서 수사의문문 형식으로 말씀하십니다. ‘흉악의 결박’은 주인이나 권세자가 종이나 백성에게 부당하게 채운 족쇄나 결박을 의미합니다. ‘멍에의 줄’은 소나 나귀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나 코뚜레인데, 그와 같은 것을 사람에게 채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압제당하는 자’는 부당한 이유로 인생이 산산조각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해 주는 것이 금식이라고 합니다.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6, 7절은 ‘내(하나님)가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했는데, 금식에 대한 내용, 즉 금식을 하려면 3일 정도는 하라든지, 최소한 3끼니는 해야 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또한 금식을 할 때는 이런 이런 방법으로 하라는 말도 없습니다. 금식은 굶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기간에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은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8-9a)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어두움이 걷힐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비치다’는 ‘터지다’의 뜻입니다. 즉 이전에는 내 삶이라는 빛이 어둠이라는 가죽에 덮여 있었는데, 바른 금식을 통해서 그 가죽의 실밥이 터져서 빛이 튀어나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치유가 급속하다’고 합니다. ‘치유하다’는 땅이나 고목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크고 작은 상처로 살이 찢기고 뜯겨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거기서 새 살이 돋아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는 아무리 간절하게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은 ‘대답 없는 이름’이셨는데, 이제는 ‘대답 있는 이름’, ‘응답하시는 하나님’ 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평화와 자비 실천, 안식일 준수(9b-14절)

9b-14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어떤 약속들을 하시는 지에 대해서, 그리고 안식일을 지킬 것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주린 사람에게 심정이 동한다는 것은 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흉내가 아니라 진심이어야 하고, 전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두임이 더 이상 어두움이 되지 못하고, 빛 가운데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또 그와 같은 사람은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을 만족하게 하고, ‘뼈’를 견고하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황무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꽃을 피우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뼈가 없거나 부러지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며,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언제나 견고합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견고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물 댄 동산’과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은 곧 ‘생명’입니다. 물이 귀한 중동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사는 사람은 갈함도 없고, 생명의 역사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운다’는 것과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는다’는 것은 1차적으로는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리 그 인생이 황폐화 된 것 같아도, 또 아무리 무너진 것 같아도, 그 인생은 다시 세워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안식일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주일)은 ‘내 성일_ 거룩한 날’이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주일)을 안식일답게 지키는 출발과 마침은 그 날이 ‘하나님의 거룩한 날’인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주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날’인 것을 아는 사람은 그날을 자신을 위한 쾌락의 날로 삼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 인생이 승화됩니다.

오늘 본문은 주로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행위가 아닙니다. 금식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내 인생의 주어를 ‘나’로 삼았던 것에서, 내 인생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에는 세상과 놀았다면, 금식은 하나님과 놀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와 놀아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순종하며, 그 하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오늘 하루 우리의 인생이 금식, 나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날이 되고, 우리 인생의 주어가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노는(교제)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금식을 비롯하여 여러 종교행위를 하고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그런 자신을 보고 하나님은 반드시 상을 주셔야 한다고 착각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우리들도 그럴 때가 종종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어떤 종교행위를 하기보다, 또 우리 자신을 의뢰하기보다 우리의 온 인생이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같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다른 사람의 묶인 인생을 풀어주는 하나님의 자유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무너지고 황폐화된 곳을 세우는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의 인생의 주어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는 은총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어떤 종교행위나 봉사를 하고서, 하나님께 그 대가를 바란 적이 있습니까?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에서 어떻게 승화되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다른 사람들의 묶인 것을 풀어 자유하게 하고, 주린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신앙과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습니까?

3. 당신에게 안식일(주일)은 어떤 날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날’을 어떻게 지켜가고 있습니까? 새롭게 바꾸거나, 더욱 지켜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을 주어로 삼음으로,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이사야 58장

성경의 진리

이사야 58장

나는 기독교인이고 이사야 58장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이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이사야 58장을 여러 번 읽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처럼 큰 메시지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큰 소리로 외치는 구절이 많았다. 첫 구절부터 그러하다.

이사야 58: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크게 외치라! 이것은 숨겨져 있을만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것은 큰 소리로 외쳐야 할 메시지이다! 트럼펫 소리처럼 들려야 할 메시지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과 58장의 처음 3절에 나온 것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사야 58:1-3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님의 길을 알기를 즐거워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다가가기를 즐거워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가까이로 가기를 원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를 원했다! 그들은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눈이 멀고 얼어붙고 그들이 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다. 오늘날 같았으면, 교회에 가고 세미나를 듣고, “목회” 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듣거나 보지 않으신다는 거다! 오늘날 여러분 삶에서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쨌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금식이나 더 많은 지식이나 공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길을 알기를 즐거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을 안다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금식이나 하나님께 다가가는 즐거움은 우리 마음이 반드시 감동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변화를 일으켜야만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참회와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로마서 12:2)은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사무엘상 16:7 말씀을 읽어보자.

사무엘상 16:7

“…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마음이다.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노력은 제시간에 일어나, 이 일과 저 일을 하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고, 이런 저런 사역을 하는 절차 같은 것이 아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이런 일들을 해도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다. 우리가 교회에 가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해도 마음 한 구석에 개인적인 삶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왜 보지 않으십니까?” 하고 외칠 것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보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 있다. 여기에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다.

이사야 58:3-5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이 사람들은 금식을 하면서도 일꾼을 학대하고 있었다! 금식을 하면서도 논쟁하고 다투고 있었다! 그들은 영혼을 괴롭히고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면서 똑같이 강팍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금식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진정한 금식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라… 그러나 마음이 변화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금식하는 것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금식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이사야 58:6-7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행동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정의로운 행위가 바로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타협하며 자신을 위해 살아가며 남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은 원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교회에 다니는 형제들이 많다. 그들은 종교적 의무나 활동을 하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밖으로 보여주는 (교회, 직장 등) 생활과 집에서의 또다른 생활. 많은 사람들이 “난 십일조 내. 난 “교회 활동” 해.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뭐가 문제라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마음이 변화해야 하고, 겸손해져야 하고 가난한 사람과 빵을 나눠먹고 우리 집에 데려올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하기 가장 쉬운 일인 무관심을 택하지 않으려면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악의 연결고리를 풀고 무거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버리려는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위의 음성을 들으려면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종교적 관습을 바꿀 필요가 없다.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님 도움 없이 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결국은 책임을 지는 것도 우리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결정하는 것도 우리다. 결정을 내리고 “변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우리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원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오면 그분도 너희에게 가까이 가실 것이다”라는 구절을 곧 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할 때 찾아오신다. 야고보서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어보자.

야고보서4:1-10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이 아닌 기독교인, 신앙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하시는 말씀(야고보서 1:2~3)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싸움, 성욕, 전쟁, 질투, 살인을 했고, 갈라디아서 5:19~21에 나오는 육체의 다른 끔찍한 열매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알기를 기뻐하고 그분께 다가가는 대신,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가오시기를 바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의도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생각하며 기뻐해야 한다. 좋은 의도만 가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해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멈추고 나와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다가가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바꿀 때 가능해진다. 야고보서는 “교회에 더 자주 가라… 활동을 좀 시작하라… 며칠 금식하고 매일 말씀을 4장씩 읽으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은 전혀 없다! 이러한 일들이 잘못되거나 나빠서가 아니다. 마음은 변화하지 않은 채 그러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야고보서 4:7-10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에 대적하라!!! 여기서 손을 깨끗이 하라는 의미는 물리적으로 손을 씼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손으로 했던 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행동에 관한 내용이다!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 말씀은 “있는 그대로 계속 있으면 하나님께서 너를 변화시켜주실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희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신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이다. 주님과 좋은 관계를 갖고 싶은가? 간단하다. 먼저 마음을 변화시키라!

이스라엘과 이사야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할 일을 말씀해주신 후, 하나님 말씀을 따라 마음을 바꾸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말씀해주신다.

이사야 58:8-14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놓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불렀을 때 “여기 있다”하는 답을 듣고 싶은가? 그분을 부르고 그분의 답을 듣고 싶은가? 방법은 간단하다… 이사야 58장 말씀과 야고보서 4장 말씀대로 하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라

멍에의 줄을 끌러 주라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라

모든 멍에를 꺽으라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라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라;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라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말라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라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게 하라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빈곤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과 같지 않으면, 처방은 단 하나뿐이다. 마음이 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을 위한 과제이다.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원하신다. 그러나 여러분이 변화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결정하지 않은 일을 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시겠지만, 먼저 그렇게 하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실을 알기를 원하시지만, 결정은 인간이 내리는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변화시키고 변화의 결정을 내리고 거기에 매달려서 그분을 부르면 그분께서는 전보다 가까이 계실 것이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계실 것이다. 이것은 가정이 아니다. 마지막에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라고 하셨으니, 확실한 내용이다. 이것은 그분이 여러분에게 하신 약속이며 입으로 하신 말씀이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원하는 종교 활동을 하고 매일 금식하고 모든 성경구정을 읽고 암기하고 많은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외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면, 마음을 보시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마음을 다해서 사랑받기를 원하신다(마태복음 22:37)!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마태복음 22:37)! 우리 모두의 마음이 바뀌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자.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이사야 58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내가 기뻐하는 금식(사 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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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8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금식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멀어졌는데 금식하면서 형식적으로 신앙이 좋은 척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금식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금식을 하면서 자랑삼아하지 않아야 합니다. 금식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금식을 하게 됩니다. 금식은 육신을 죽이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합니다. 주님도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는데 그때는 금식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사 58:1-9)

1절은 케라 베가론 알 타헤쇼크 카쑈파르 하렘 콜레카 베하게드 레암미 피쉐암 우레베이트 야아코브 하토탐입니다.

사 58: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58:1

내 백성에게 … 고하라 – 여기 ‘백성’이란 선지자 시대의 백성 혹은 바벨론 포로 시대의 백성, 둘 중의 하나이겠다. 우리는 다수 주석가들의 견해에 따라 후자의 견해를 취하고자 한다(Delitzsch, Rosenmuller, J. Watts, Whybray). 그 근거로서 성전, 희생 제사, 므낫세 시대에 유행했던 우상 숭배 따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백성의 죄를 나팔같이 높여서 알리라고 한다. 룸이라는 동사이다. 히필 사역 능동 명령법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너의 목소리를 크게 높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알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2절은 베오티 욤 욤 이드로쓘 베다아트 데라카이 예흐파춘 케고이 아쎄르 체다카 아사 우미쉐파트 엘로하이브 로 아자브 이쉐알루니 미쉐페테이 체데크 키르바트 엘로힘 예흐파춘입니다.

사 58: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58:2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기는 하되 그것은 형식적이요 외면적일 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도리어 자기의 뜻을 구했던 사실에 대한 조롱이 담기 다역설적 표현이다.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다면서'(공동 번역).

3절은 라마 차메누 베로 라이타 이니누 나페셰누 베로 테다 헨 베욤 초메켐 티메체우 헤페츠 베콜 아체베켐 티네고슈입니다.

사 58: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58:3

본절은 이스라엘이 금식의 본래적 목적과 의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현실상의 축복을 비는 수단으로, 단지 종교적 자랑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사실을 계속 책망하는 내용이다. 본래 금식은 회개와 성결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느 9:1,2; 시 69:10),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뜻과 정욕을 억누르고 자기를 부인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금식에 대한 언급은 이른 시기부터 보여진다(삼상 31:13; 삼하 12:11-23; 대하 20:3). 그러나 개인 금식이 경건의 표현으로서 대중화되고 정기적으로 공동 금식이 준행된 것은 포로기 이후의 일이다. 슥 8:19에는 정기 금식의 네 시기가 언급되어 있다. 그중 4월 9일의 금식은 예루살렘 함락을(왕하 25:3-21), 5월 10일의 금식은 성전 파괴를(렘 52:12,13), 7월 2일의 금식은 그달리야 살해를(왕하 25:23-25) 그리고 10월 10일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처음 공략된 것을 각각 기억하는 데에 애초의 목적이 있었다(J. Watts).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 그들의 영혼이 괴로움을 당했다고 자랑하였던 사실이 위선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오히려 금식을 즐기고 있었다.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 여기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체브’는 매우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노동, 땀, 산고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며 또한 ‘시키는도다’에 해당하는 ‘나가스’ 눈 ‘폭정을 가하다’, ‘강제 징수하다’는 뜻이다. 칼 능동태 미완료를 사용하고 있다. 자신은 먹고 놀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일을 하기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금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챙기기 위해 그 종이나 일꾼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는 악덕 주인을 고발하는 내용이 되겠다(느 5:1-5).

4절은 헨 레리브 우마차 타추무 우레하코트 베에게로프 레샤 로 타추무 카욤 레하쉐미아 바마롬 콜르켐입니다.

사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8:4

다투며 싸우며 –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다투고 싸우는 것을 금식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식하는 중에조차 그러한 이욕(利慾)적인 혈기를 부릴 정도로, 그들은 금식의 목적 자체에 대해 무지하였음을 보여준다(Whybray). 금식한다는 단어가 춤이라는 동사다.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자신들은 계속해서 금식한다고 말하면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말한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보기 싫어하신다.

5절은 하카제 이흐예 촘 에베하레후 욤 아노트 아담 나페쑈 할라코프 케아게몬 로쑈 베사크 바에페르 야치아 하라제 티크라 촘 베욤 라촌 라아도나이입니다.

사 58: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58:5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 여기 ‘기뻐하는’의 원문적 의미는 ‘선택한’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취하는 형태의 금식은 하나님이 택하신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명령하신 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 재를 펴는 것 – 이는 극도의 겸손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형식적 모양만 갖춘다고 하여 다된 걸로 생각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본절의 요지는 금식의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금식의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금식의 참정신이 6절 이하에서 전개되는 바, 그것은 결국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다(마 6:16-18).

6절은 할로 제 촘 에베하레후 파테아흐 하레추보트 레샤 하테르 아구도트 모타 베샬라흐 레추침 하페쉼 베콜 모타 테나테쿠입니다.

사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58:6

흉악의 결박(하레추보트) – 문자적인 뜻은 ‘악의 띠’로 불의하고 잔혹한 권위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나 유익을 억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결박을 풀어주는데 파타흐라는 동사다.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였다. 문을 열어준다는 의미다. 흉악의 결박에서 놓임을 받게 하는데 아무리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도 반드시 풀어주는 것을 말한다.

명에의 줄을 끌러 주며 – 여기 ‘멍에’는 억압 혹은 강제적인 노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 여기 거론되고 있는 상대는 문자 그대로는 ‘상한 자’이며 폭력, 압제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실체를 결정적으로 밝혀주는 단서는 ‘자유케 하며’로 번역된 ‘하페쉼’이다. 이 용어는 한번 노예가 되었다가 자유를 얻은 자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신 15:12; 욥 3:19 등). 이 단서에 근거할 때 본 구절이 서술하려는 존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노예’라고 볼 수 있다.

7절은 할로 파로스 라라에브 라헤메카 바아니임 메루딤 타비 바이트 키 티르에 아롬 베키시토 우미베사르카 로 티트알람입니다.

사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58:7

주린 자에게 … 나눠 주며 – 이것은 한 아비가 그 자녀에게 그렇게 하듯이 가진 자가 그 소유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체로 이 행실은 신앙인의 필수적 의무로 간주되었는데, 고난의 사람 욥은 이러한 선행의 모범을 아름답게 서술한 바 있다(욥 31:16-22).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 – 원문 직역은 ‘너 자신의 살(육체)로부터 너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여기 ‘살(육신)’은 ‘바사르’로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뼈 중의 뼈 그리고 ‘살 중의 살’이라 칭할 때(창 2:23), 그리고 라반이 야곱을 그의 ‘골육’이라 칭할 때(창 29:14), 각각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본 용어는 혈육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상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면 되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 ‘골육’은 적절하다. 골육, 곧 친척에게서 자신을 숨기는 경우란 그 친척의 사회적 신분이 낮거나 재물이 없을 때 혹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일을 꺼려할 때이다.

참 신앙인이라면 골육 친척이 어떤 신분이나 처지에 있든 간에 친절과 애정을 갖고 그와 친교를 나누고 그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힘을 써야 함이 마땅하다. 성경은 친척, 곧 가족을 돌보지 않는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약하다고 경고하고 있다(딤전 5:8).

8절은 아즈 이바카 카샤하르 오레카 바아구코트카 메헤라 티체마흐 베할라크 레파네이카 치드케카 케보드 아도나이 야아세페카입니다.

사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58:8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서 금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번영의 축복을 주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번영’은 흔히 아침에 비치는 찬란한 빛에 비유되고 있다(욥 11:17). 바카라는 동사이며 닢알 수동태 미완료를 사용했다. 올바른 금식은 새벽같이 빛이 비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미완료는 계속해서 빛과 영광이 퍼져나가게 될 것을 말한다. 금식을 하면서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빈민 자를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면 이렇게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의미다.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네 상처는 빨리 치료될 것이다’이다. 여기 ‘치료’의 본래 뜻은 상처를 치료할 때 사용되는 ‘긴 붕대’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오랫동안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 곧 전인적인 상처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에의 순응은 행복, 번영, 평화의 길로 이끄는 선봉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과 그들을 분리하기 위하여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섰었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연상케 한다(출 14:19, 20). 아사프라는 동사이다.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해서 호위하는 것을 말한다. 아사프는 저장하다는 뜻이다. 항상 여호와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9절은 아즈 티크라 바아도나이 야아네 테샤바 베요마르 힌네니 임 타시르 미토케카 모타 쉘라흐 에체바 베다베르 아벤입니다.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58:9

손가락질 – 문자적인 뜻은 ‘손가락을 뻗치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경멸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손가락질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법적 기소(起訴)를 암시하는 말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Whybray).

허망할 말(다베르 아웬) – 이는 무(無), 헛됨, 텅 빈 것(41:29; 슥 10:2), 거짓, 속임수(시 36:4; 잠 17:4), 무가치한 것, 사악함 , 죄악(1:13; 욥 36:21)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결국 여기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하였던 온갖 종류의 거짓, 거친 행동 그리고 불의한 언사 등을 의미하는 것 같다.

네가 부를 짖을 때에는 – 샤바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을 말한다. 피엘 강조 능동 미완료를 사용했다. 이것은 보통 크기의 부르짖음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금식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고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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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이사야 58:1-2 I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I 이찬수 목사 – 금식수련회

방금 읽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지적하는 것이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위선적인 종교 행위 중 하나가 금식입니다. 금식을 사례로 들어서 그들의 위선적인 신앙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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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제일 먼저 본문의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과 관련하여 항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사야 58: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메달리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느냐? 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항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을 하시냐? “니들이 하는 금식은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금식이기 때문에 내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금식하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습니까?” 이런 태도 자체가 그들의 금식의 문제점이 무어인지 드러나는 거 아닙니까? 금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거래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하면, 당신은 이 만큼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러한 태도부터에서 그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금식에 임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식은, 신앙생활은 그런 거래 행위가 아닙니다. 제가 은퇴하게 되고, 제 생활 속에서 이런 공로 의식이 있을까 봐 늘~ 두렵습니다. 이런 생각이 정말 위험한 거 아닙니까? 신앙생활을 거래 행위가 아닙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인격과 인격 안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식이 뭘까? 금식은, 그릇을 마련하는 행위입니다. 금식 자체가 최종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릇을 마련하는 행위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금식은 육신의 욕망을 비우는 행위 아닙니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는 것. 그래서 내가 육신의 욕망을 비우는 금식을 통해서 육신의 욕망을 내어 드리는 대신에 그릇을 하나 얻는 것이 금식입니다. 그릇을 얻는 것도 소중하지만, 마련된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 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금식의 열매가 나타나느냐가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누가복음 18장 10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데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지금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13절입니다.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나이다’ 지금 스스로를 그렇게 고개를 못 드는 죄인으로 생각하며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가 있는가 하면, 그 앞에 11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지금 이 바리새인은 금식을 통해서 얻은 그릇에다가 뭘로 채웠습니까? 교만과 우월감으로 채운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금식 행위 자체가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금식을 통해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걸 제대로 못하면 안 한 것만 못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절대로 여기에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 것인가?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몇가지 힌트를 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의 회복

첫째로, 하나님을 향한 굼주림의 회복. 지금 오늘 본문에서 금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서운하심이 무엇입니까? 5절 b ‘..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 너희의 금적인 행위 속에 너희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다. 우리가 금식을 하는 행위도 그렇고, 우리의 마음의 밭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추천도서로 권했던 존 파이퍼의 ‘하나님께 굶주린 삶’에 대한 책에서 금식과 관련하여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금식의 뿌리는, 하나님께 굶주린 향수다.” “금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행위에 도움이 된다. 하나님을 가장 중시하는 마음이 금식을 통해서 늘 민감하게 깨어 있는 것이다. 금식은 이 문제를 가만 두지 않고, 자꾸 질문하게 한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 굶주려 있는가? 그분을 정말 사모하고, 그리워하는가? 아니면 어느 부분의 선물로 만족하는가?” 오늘의 이 금식을 통해서 얻게 될 빈그릇에다가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의 회복으로 채워지기를 원한다면 내내 이 질문을 던지십시오. “나는 정말 하나님께 굶주리고 있는가? 나는 그분을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있는가? 나는 어느새 그분을 선물로만 만족하고 있는가?”

교구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심방을 가서 들은 이야기를 제게 전했는데.. 다락방 모임에 왜 안나가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해요. “기대감을 가지고 갔는데, 시간이 아깝다. 낭비하는 것 같다.”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 이분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서 다락방에 갔더니 다락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예요. 모든 대화의 주제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강, 부동산, 자녀 이야기만 나누어서 시간이 너무 아까워 다락방에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다락방이 그렇지 않다고 오해를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순장님이 계시면 여기에 순원들이 계시다면 여러분들이 마음을 모아서 이번 다락방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세상 모임에 가도, 동창회 가도 늘 나오는 그런 주제 말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 하나님으로 굶주린 모인 사람들로 충만한 다락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제가 두 주간의 금식을 선포하고 마지막 단계로 오늘 다락방 개강을 앞두고, 다락방 순장 순원들이 이루는 금식 수련회를 가지게 되었을까? 여러분들이 충만한 금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빈 그릇 하나씩 다 받으시고, 다락방에 가서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 하나님을 향한 관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락방 안에서 차곡 차곡 쌓아가는 그런 모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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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에 대한 단절

그런가하면 두 번째, 금식으로 마련된 그릇에 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한 것들에 대한 단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단절의 결단을 담아야 합니다. 금식은 죄악과의 싸움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강조하는 것이 뭡니까? 3절 하-4절 ‘3하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금식하면서 모양은 다 갖추고 있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쾌락을 추구하고, 여기에 나와 있는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자기들이 부리는 종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착취하고 억압하는 짓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요지가 무엇입니까? 금식은 하지만 나쁜 행위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금식을 내가 어떻게 받겠느냐? 그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이 뭔가요? 괴로워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뭐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쾌락을 좋아하고 욕망을 추구하는 나를 괴로하는 날이 금식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한 인격으로 대우하기 보다는 얻을 것은 없는지.. 착취하는 대상으로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값질이라는 말에 해당이 될 수 있겠느냐고요. 아무리 담임목사 아니라, 담임목사 할아버지라도 제가 우리 전도사님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내 목회의 도구로 생각하면 이것은 오늘 내가 머리에 재를 뿌리며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썩어빠진 생각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게 금식이에요. 이건 하나도 고치지 않고.. 이러한 금식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하면서 마련된 그릇에다가 여러분이 뭘 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한 행위에 대한 단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짓 하지 않겠다.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악한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다락방의 사람들 중 누가 유력한가? 누가 나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 해왔다면, 그것에 저울질하면서 아파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인격은 착취할 대상이 아니고, 내가 이용해 먹을 대상이 아니고, 그를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자로 그렇게 잘 섬기겠습니다. 그렇게 못한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이게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해 드렸던 존 파이퍼 목사님의 책 중에 인상적인 소제목 하나가 있는데,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이다.” 그 내용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우리 삶에 해결되지 않는 죄가 있는데, 다른 문제로 금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그 죄를 굶겨 죽이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는 죄가 있다면, 이것을 끊지 못하면서도 금식하면서 사업 잘 되도록 기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신다고요? ‘니 지금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보다 급한 게 있는데, 그것을 끊지 못하는 세상적인 죄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입니다. 저도 요즘에 금식을 한 끼 혹은 두 끼씩 하면서 계속 주님을 묵상하면서 죄에 대한 욕구가 다 없어졌습니다. 본래부터 제가 많지도 않았지만..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용서 못할 사람들 리스트가 떠올라서 한꺼번에 용서하고.. 왜 그렇습니까? 금식을 통해 죄를 굶겼거든요. 죄를 굶겼더니 마음에 죄를 부추기는 것들이 힘을 잃어가지고 더 이상 저를 충동질을 못하는 것 같아요.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까?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이다.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이다.” 이번 금식으로 마련된 그릇에다가 하나님 싫어하시는 악한 행위를 단절해야겠다는 결단으로 채우시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이런 차원에서 읽어야 합니다. 6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은 3절의 대안입니다. 3b절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자기가 착취하고 억압하던 사람들이 무엇을 하냐?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행위가 뒤 따라올 때,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금식은 내 악한 행위를 단절하고, 결단이 포함된 금식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9절 하반절도 마찬가지입니다. ‘..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이 말씀이 왜 나왔는지 아시겠습니까? 4절 보세요.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패악한 짓을 하는 그 사람이 금식을 통해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는 열매가 나타나는 금식. 이런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은 금식이란? 내 악한 행위에 대한 단절을 선포하는 행위예요. 이번 금식을 통해 아내에 대하여, 남편에 대하여 날마다 무시하고 자녀에 대하여 과도한 세상적인 방식으로 길렀던 것들을 향해서 회개하고, 단절해야겠다는 결단이 나와야 하나님께서 그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3. 이웃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회복

마지막 세번째로, 우리가 금식으로 마련된 빈 그릇에 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회복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6-7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어떤 금식입니까? 6-7절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제가 이 구절을 보면서 놀란게 뭐냐? 금식이 영적인 행위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첫째, 뭐뭐뭐 둘째, 셋째.. 내게만 집중하라”는 식의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건 당연히 바닥에 깔고 이웃에 대한 배려 이야기 아닙니까? 제대로 된 금식을 행하려면 자기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는 이웃들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금식을 단순히 하나님과의 영적인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만 몰고 가는 것을 원치 않으세요. 그것으로 시작이 되는데..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집중하여 굶주리는 마음으로 열망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으로 연결이 되도록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정신이 이거 아닙니까?

여러분, 아시는 마태복음 22장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마태복음 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랬더니 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율법의 정신을 이 만큼 잘 설명하는 구절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걸 어디로 연결 시키느냐? 37-39절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당연히 율법의 근본정신은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네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이게 지금 본문에서 금식의 정신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대로 녹아져 있는 거 아닙니까? 이런 차원에서 6-7절 꼼꼼히 살피고, 묵상하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오늘 어떤 부분을 회개해야 하는가? 뭘 괴로워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금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6-7절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축복을 보십시오. 8 절부터입니다. ‘8 그리하면..’ 하나님을 향한 주림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을 흘려보내면.. 그리하면..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앞에서는 암만 금식해도 외면하셨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네가 부를 때에는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 내가 여기 있다. 그렇게 하겠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을 이웃을 향한 긍휼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연결시키면.. 그리하면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금식 수련회를 통해서 부부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상대방에 대한 허물이.. 제가 결혼생활을 해보니, 상대방이 불쌍해지면 모든 것이 행복해지더라고요. 신혼 때는 그냥 여전히 그 앞에 여자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 계속 비교가 되더라고요. 그 앞에 선본 여자. 매주마다 선을 봤기 때문에 선본 여자들과 비교를 많이 했어요. 요거는 우리 집사람보다 나은 것 같은데..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적을 많이 했어요. 하나도 안 바뀌더라고요. 요즘에는요? 제가 믿음이 좀 생겼어요. 저는 제 아내가 바뀌어서 가정이 회복된 것이 아니고 아내의 모든 연약함이 불쌍해요. 긍휼함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이 사람을 보면 20대에 만나서 50대가 되었으니 외모나 젊을 때 같겠습니까만은 저는 젊을 때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러워요. 왜? 긍휼 한 마음으로 보니까 장점은 너무 사랑스럽고, 약점이 보이면 주님의 사랑으로 긍휼 한 마음이 들어요. 너무 안쓰러워요. 저는 집사람이 신혼 때 홀쭉하던 몸매가 아니라도 전혀 괜찮아요. 딱!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면 건강에 안 좋을텐데.. 그 염려 밖에 없습니다.

뭘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면.. 그것이 아내에게 자녀에게로 흘러가는데..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 긍휼 하심 아닙니까? 나를 긍휼히 여기심. 부부 관계가 당연히 좋아지는 것 아닙니다. 제가 이런 다락방에서 마음이 아픈 게, 다락방을 개편하면 주로 교역자들이 몸살을 앓는 것이 다락방을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꾸어 달라”는 모든 분들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꽤 많은 분들이 그래요. 이를 악물고 다락방에 가셔야 해요.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많은 이 교회에서 하필 그 사람하고 묶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니는 꼭 그 사람이랑 해야 한다.’ 옮겨보세요. 그 사람은 이사해서 따라갈 거예요. 여러분이 꼴 보기 싫은 그 사람과 다락방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붙여주심으로 이를 악물고 사랑할 수 있도록 그를 불쌍히 여길 수 있도록.. 다락방은 그런 실습 장소입니다.

이번에 다락방 개편되어서 갔는데 너무 좋은 분들만 있으면 딴데로 옮겨달라고 해주세요. 유익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보니까, 밉상스러운 사람이 있고, 입 열었다 하면 자기 말만 하고.. 그런 다락방에 가면 성령 충만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인간도 인내를 하며 참지 않으면 안 되고, 저 인간도 생각만 해도 꼴도 보기 싫고, 완전 밥맛인 여자도 하나 있고.. 그런 다락방으로 구성이 되면.. 하나님이 흡족하실 거예요. 니 진짜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구나! 다락방은 내 외로움을 충족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다락방은 훈련 장소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물꼬가 흘러 흘러서 보기 싫은 저 사람까지도 품을 수 있도록..

저는 오늘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기 원합니다. 두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입니다. 금식하면 영혼의 빈 그릇을 하나씩 받게 됩니다. 이번 학기에 받은 여러분들의 빈그릇에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세 가지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한 행위에 대한 단절 선포, 이웃을 향한 사랑의 회복. 이런 것들로 다 채워나가면 열매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교역자 찬양팀 전도사님이 찬양을 부르는 데 눈물이 울컥하더라고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저녁 예배 때는 가족별 특송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구역 특송이 많았거든요. 내 좀 과장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다섯 가정 중 하나가 이 특송을 부르더라고요. 그 어른들의 얼굴이 막~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영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것 없이는 싫어하는 사람 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과 내일 이 금식 수련회에서 드려지는 찬양과 기도 등의 모든 행위가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그런가 하면 하나 더 요한복음 21장 15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여기서 영적으로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그거 아닙니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이 사람들보다 내가 주님을 더 사랑하시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영적으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뭘로 바꾸기 원하시는지를 느껴보세요. 16절 ‘두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르시되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조금 전 찬양할 때,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무르셨네’ 저는 머릿속에서 계속 이렇게 바꾸어서 맴도는 거예요.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찬수에게 무르셨네 사랑하는 찬수야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이것 말고는 드릴 대답이 없어요. 이번 금식에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딱 이거 하나에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다락방에서 이 긍휼이긍휼히 상대방을 향한 이 애틋한 긍휼히 회복되고, 가정에서 부부 간데, 부모 자녀 간에 주님이 이 질문을 던지시고 또 양을 치라는 음성이 들려지는 가정, 그런 다락방, 그런 분당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저를 따라 큰 소리로 선포하고 주님 앞에 기도할 텐데요. “아버지 아무리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버지의 긍휼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저 미운 사람은 미운거지, 그가 불쌍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금식합니다. 그 사람을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기 전에 금식하며 주님을 향한 굶주림, 갈망을 채우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짜고짜 ‘네가 나를 사랑하니? 그 양을 먹이라’라고 하지 않으세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사랑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연약함이거든요.’

저를 따라 큰 소리로 외치고 말씀을 기억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여 은헤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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