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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family reunion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라고 표현 할 수도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래요. We attended a family re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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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김씨가 아니야 허씨란 말이야.
83년 이산가족방송에서 가장 유명해진 허씨 남매.
오빠는 고아원으로 보내고 여동생은 이발소에 맡겨졌다 다시 고아원으로…
전쟁고아 남매의 슬픈 이야기는 전 국민을 울렸습니다.
1983년 453시간 연속 생방송으로 방영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상봉 후 최신 허씨남매 이야기 : https://youtu.be/QOp8JbXVW4E
■ “Your surname isn’t Heo. It’s Kim.”
The Heo siblings became one of the most famous families on “Finding Dispersed Families” in 1983. The brother was sent to an orphanage while the sister was sent to a barber shop and then to an orphanage as well.
The heartbreaking story of these war orphan siblings moved the entire nation to tears.
In 1983, KBS’ “Finding Dispersed Families” broadcasted live over 453 consecutive hours and has been listed in UNESCO’s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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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ficial Web page : http://diaspora.kbs.co.kr
● 기획 : KBS 디지털미디어국 KBS DIGITAL MEDIA
● 프로듀서 : 이승현 seunhyun Lee, 안상미Sangmee An
● 에디터 editor : 소연희 Yeonhee So, 임에덴 Eden Lim
● 작가 writer : 김해연 Haeyeon Kim, 어아름 Areum Eo, 이가연 Gayeon Lee
● 브랜드기획 Brand Identity : 이정 Jung Lee, 신선미 sunmee Shin
● 아카이브 매니저 archivist 이지영 Jiyoung Lee
● 웹 플랫폼 기획 IT Service Planner 장진익 Jinik Jang
● C.G : 황은서 Eunseo Hwang
● Illustration \u0026 VFX : Solmedia
● 음악\u0026음향 sound \u0026 music : 김우익 Wooi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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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영어로
이산가족 영어로: Dived family…. 자세한 영어 의미 및 예문 보려면 클릭하십시오.
Source: ko.ichacha.net
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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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8일] ‘이산가족 상봉’은 영어로? – – 오늘의 시사표현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족 상봉’을 영어로는 family reunion이라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reunion of separated families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renion은 오랫동안 …
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9/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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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 영어로 번역] – translate100.com
한국어-영어 사전 ; 이산가족: Isan Family ; 이산: Discrete …
Source: ko.translate100.com
Date Published: 1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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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신문 사설 읽기] 이산가족 상봉(Family reunions)
[영자신문 사설 읽기] 이산가족 상봉(Family reunions) … 남한의 이산가족 89명이 월요일 북한 동해안의 금강산 리조트에서, 한국전쟁(1950-53)으로 …Source: www.hankookilbo.com
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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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산가족(離散家族)은 가족의 구성원 중 일부분이 전쟁, 자연 재해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흩어짐으로써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거나, 만날 수 있지만 경제적인 …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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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산 가족 영어 로
- Author: KOREAN DIASPORA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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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8.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9kk11wIkCB0
이산가족상봉 영어 표현
이산가족 상봉은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영어로 family reunion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또한 좀 더 격식적으로 the reunion of the separated family members
라고 표현 할 수도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래요.
* family 가족
* reunion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임
* separated 헤어진, 이산(헤어져 흩어진)
* family members 가족 구성원
We attended a family reunion.
‘ 우리는 가족 모임(가족 재회)에 참석했어요. ’
The North and South Korea have agreed to the reunion of the separated family members.
[9월28일] ‘이산가족 상봉’은 영어로?
시사_reunion.mp3
안녕하세요? 다시영 한진입니다.
오늘 알아볼 표현은 ‘이산가족상봉’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역사의 아픔을 나타내는 표현인데요,
오늘의 기사 제목을 먼저 보시죠.
Family Reunion Kick Off At Mount Kumgang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족 상봉’을 영어로는 family reunion 이라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reunion of separated families 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renion 은 오랫동안 못 봐왔던 사람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처럼
family reunion 은 ‘가족 모임’이구요,
high school reunion 하면 ‘고등학교 동창회’ 정도라 생각하심 됩니다.
외국인들에게 설명할 때는 아래 같은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겁니다.
The Korean War parted them. (한국 전쟁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They could not have seen each other for a long time.
(그들은 서로 볼 수 없었다 / 오랫동안)
They have been living apart, one in the North, the other in the South.
(그들은 서로 떨어져 살아왔어요 / 한쪽은 북쪽에, 한쪽은 남쪽에)
그리고, 그 다음 표현, kick off 가 나오는대요,
이 표현은 ‘행사, 경기, 회의 등이’ 시작되다’의 뜻으로 아주 자주 쓰입니다.
What time does the show kick off ?
The game kicks off at noon.
다시 오늘의 표제 표현으로 갑니다.
Family reunion kick off at Mount Kumgang
가족 상봉이 시작됩니다 / 금강산에서
[영자신문 사설 읽기] 이산가족 상봉(Family reunions)
<8월 21일자 코리아타임스 사설>
Two sides should do more to ease pains of separation
남북 양측은 이산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Eighty-nine South Koreans had tearful reunions with family members they were separated from by the 1950-53 Korean War, at a Mount Geumgang resort on North Korea’s east coast Monday. The emotional event will continue until Wednesday, during which they will meet on six occasions for a total of 11 hours.
남한의 이산가족 89명이 월요일 북한 동해안의 금강산 리조트에서, 한국전쟁(1950-53)으로 헤어진 가족과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이 감동적인 행사는 수요일까지 계속되는데, 이들은 총 11시간 동안 6회에 걸쳐 가족을 만난다.
Undoubtedly the three-day reunions are too short for the people to come to terms with seven decades of separation. Their ambivalent feelings ― joy of meeting loved ones and sadness for their separation ― will soon give way to the pain of parting again. At the resort from Friday to Sunday, 83 North Koreans will also be reunited with their long-lost family members from the South.
분명 3일 간의 상봉은 이산가족들이 70년간의 헤어짐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짧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난 기쁨과 이산의 슬픔이 교차하는 이들의 감정은 곧 또다시 헤어지는 아픔으로 변할 것이다.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이 리조트에서 북한 이산가족 83명 또한 오랫동안 헤어졌던 남측의 가족과 재회할 것이다.
We hope the two events will help the two Koreas allow more separated families to meet more frequently. The reunions are part of the Panmunjeom Declaration that President Moon Jae-in an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issued at the end of their historic April 27 summit. They agreed to organize the reunions for humanitarian purposes around the Aug. 15 Liberation Day.
우리는 이 두 행사가 남북한이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란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역사적인 4.27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판문점 선언의 일환이다. 이 두 지도자들은 8.15 광복절 즈음에 인도적 목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The meetings come two years and 10 month after the last such event was held in October 2015. There have so far been 20 rounds of reunions since the South and the North staged the first inter-Korean summit in June 2000. But such events have been much affected by ties between the two rivals and geopolitical developments on the peninsula.
이번 상봉은 2015년 10월 마지막 상봉이 이루어지고 나서 2년 10개월 만이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20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봉 행사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사건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The latest reunions show the separated families are getting old, making it even more urgent for the authorities on both sides to arrange more meetings before they die. This time the families include a 101-year-old South Korean who is meeting his daughter-in-law and her daughters from the North. He is the oldest one, but most of the other visitors are in their 80s and 90s.
이번 상봉은 이산가족들이 고령이 되어가고 있어, 남북 당국이 이들이 죽기 전에 더 많은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더더욱 시급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상봉 행사의 가족들 중엔 101세의 고령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할아버지는 며느리와 손녀를 만난다. 그가 가장 나이가 많지만, 대부분 다른 방북자들도 80대와 90대들이다.
According to the Ministry of Unification, the number of registered separated families is estimated at 132,000. And 75,000, or 55 percent, of them have already died. Sixty-three percent of the surviving 57,000 families are over 80 years old. Twenty-one percent, or 12,100, are 90 or older.
통일부에 따르면, 등록된 이산가족 수는 13만 2천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55%인 7만 5천명은 이미 작고했다. 생존해 있는 5만 7천명 중 63%는 80세 이상이다. 21%인 1만 2천 1백명은 90이상 고령자이다.
Sadly, it is almost impossible for the survivors to find and meet their sons or daughters, not to mention their parents, because 65 years have already passed since the Korean War which ended in July 1953 with an armistice, not a peace treaty. So most visitors are now meeting their grandchildren, cousins or other relatives.
1953년 7월 한국전쟁이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으로 끝난 이래 65년이 지났기 때문에, 슬프게도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이 그들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아들, 딸들을 찾아서 만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고로 대부분의 이번 방북자들은 지금 그들의 손자손녀나, 사촌 또는 다른 친척들을 만나고 있다.
The prospect of their reunions will be far bleaker, if meetings continue to take place once or twice a year. For this reason, Seoul and Pyongyang need to work out fundamental and comprehensive measures to help the separated families reunite before it is too late.
이산가족 만남이 계속 일년에 한 두 차례 이루어진다면, 향후 상봉의 전망은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남북한 당국은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들이 재회하도록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Most of all, the two sides should make all-out efforts to confirm if the survivors’ families are still living. Then they must allow them to exchange letters even if they cannot meet immediately. It would also be good for these families to talk to each other through videophone.
무엇보다도, 양측은 생존자들의 가족들이 아직 살아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당국은 이들이 당장 만나지는 못해도 서신 교환을 허용해야 한다. 이들 이산가족들이 화상 전화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게 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일 것이다.
It is imperative for the two Koreas to hold regular reunions more frequently without these being affected by the geopolitical situation. The best way is to set up reunion centers on each side of the border so separated families can meet whenever they want.
남북한은 지정학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례화된 이산가족 상봉을 더 자주 개최하는 것이 시급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산가족들이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남북 접경 양쪽에 상봉 센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안성진 코리아타임스 어학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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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離散家族)은 가족의 구성원 중 일부분이 전쟁, 자연 재해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흩어짐으로써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거나, 만날 수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실제로 만나지는 못하는 가족을 말한다.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학업, 직장 등의 요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이산가족 [ 편집 ]
대한민국에서는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남한 내에서 흩어진 이산가족을 위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남북간에 흩어진 이산가족을 위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기적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은 냉전시대의 유물의 하나로서 남아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된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국민들 사이에는 교류 및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한국전쟁 이후 생겨났지만 일제강점기 이후에 헤어진 가족들도 있다. 이산가족문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바로 인도주의적이고 매우 휴머니즘적인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논리로 인해 함께 있어야 할 가족들이 60년 이상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가족들의 연락처나 생활상은 물론 생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00년 평양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정상회담 이후 수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지만, 이산가족 1세대가 점점 유명을 달리해 감에 따라 점차 이 문제 역시 영향력을 잃어 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많은 이들이 가족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으로 이민가고 이민국의 국적을 취득한 재외한인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남한에 거주한 남북 이산가족과 달리 고향 북한에 방문하는 건 가능했지만 북한의 가족이 어디에 사는지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행사에서는 남한내에서 흩어진 이산가족이 추후 한쪽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생긴 이산가족에 대해서는 상봉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1] 한민족 이산가족의 역사 [ 편집 ]연도 한국 1910-1945 일본 식민지배로 인한 자주국권 상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식민지배로 인해 흩어짐 1950-1953 한국전쟁: 수도인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당시 유엔의 성명서는 난민들의 ‘자발적’ 강제 송환과 함께 남북의 휴전 제안을 포함함. 하지만 휴전 이후, 북한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DMZ라 불리는 38도 휴전선이 그어졌고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높은 지역이 됨 1953-1970 북한 경제가 대한민국을 앞서감. 이 시기 북한이 자신의 경제력을 믿고 대남 군사적 도발이 자주 있었음. 1970-1980 대한민국이 북한 경제를 추월함 (1971-1972) 한국 적십자사는 이산가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나 어떠한 조약이나 가시적 성과 없이 회담이 끝남. 북의 도발이 줄어듬 1983 한국방송 KBS는 ‘일천만 이산가족 상봉 캠페인’을 진행, 자신들의 헤어진 가족을 찾는 수백만명의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안타깝게도 북한은 이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아 대한민국에서만 진행됨. 원래 95분으로 예정되었던 방송은 열화와 같은 시청자들의 성원에 453시간 45분으로 연장되었고109,000명의등록자 중 10,000명 이상의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었음 2000 (8월 15-18일) 1차 이산가족 상봉 (11월 30일-12월 2일) 2차 이산가족 상봉 2001 (2월 26-28일) 3차 이산가족 상봉 (3월 15일) 시범적 서신 교환이 이루어짐 (각 국에서 300명 씩) 대한민국 적십자사에 최초 등록했던 116,460명의 사람들 중 당해 12,664명이 사망함-총 등록자의 10.9%의 인원) 2002-2006 (2002년 4월 28일-5월 3일) 4차 이산가족 상봉 (2002년 9월 13-18일) 5차 이산가족 상봉 (2003년 2월 20-25일) 6차 이산가족 상봉 (2003년 6월 27일-7월 2일) 7차 이산가족 상봉 (2003년 9월 20-25일) 8차 이산가족 상봉 (2004년 3월 29일(4월1-3일)) 9차 이산가족 상봉 (2004년 7월 11일-16일) 10차 이산가족 상봉 (2005년 8월 15일) 1차 이산가족 화상 상봉 (2005년 8월 26일-31일) 11차 이산가족 상봉 (2005년 11월 5일-10일) 12차 이산가족 상봉 (2005년 11월 24일-25일) 2차 이산가족 화상 상봉 (2005년 12월 8일-9일) 3차 이산가족 화상 상봉 (2006년 3월 20일-25일) 13차 이산가족 상봉 (2006년 6월 19일-30일) 14차 이산가족 상봉 (2006년 2월 27일-28일) 4차 이산가족 화상 상봉 2007 (5월 9일-14일) 15차 이산가족 상봉 (10월 17-22일) 16차 이산가족 상봉 2008 이명박MB 대통령이 취임한 후 북한의 개방을 요구하는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고 더 이상의 상봉이 없었다 2009 (9월 26일-10월 1일) 17차 이산가족 상봉 2010 (10월 30일-11월 5일) 18차 이산가족 상봉 2013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고 하였으나 금강산의 문제 때문에 무기한 연기 되었다. 2014 1월 북한의 중대 발표로 (남·북한의 비방중지로) 화해 모드 돌입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조건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 하였다.
(2월 20일 ~ 2월 25일) 19차 이산가족 상봉 (무기한 연기) 5차 이산가족 화상 상봉
[2] 한국계 이산가족 [ 편집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 현황[3]은 다음과 같다.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약 170만명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중 10만명에 이르는 미주 한인들이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다.
이산가족의 현황 [ 편집 ]
이러한 이산가족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65-75%)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 때 그들의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었고, 나머지 25-35%의 사람들은 한국 전쟁 전, 광복 이후에 헤어졌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3일만에 수복되었던 것처럼 수일 만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었고 전쟁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다. 하지만 결국 한반도 북쪽을 잠식한 철의 장막 때문에 연락은 두절되고 가족들의 행방이나 소식은 완벽하게 가려지게 되었다. [4]한 아버지와 아들은 아내이자 어머니인 그녀를 두고 올 때, 곧 다시 돌아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평생 만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두고 온 어머니 역시 자식들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했고, 혼잡한 전쟁통 속, 피난 행렬과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잃는 일은 비일비재 했다.
“2000년 8월에 있었던 1차 이산가족 상봉으로부터2001년 6월28일까지 겨우 11개월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원래 이산가족 상봉에 등록했었던 116,460분들 중 12,664명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이산가족 1세대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였지만 그들이 오랜시간 감내해 온 이 아픔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산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요소는 바로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해서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83%의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비록 3% 소수의 사람들만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여전히 88%의 많은 사람들이 꼭 그들과 만나고싶다고 답했습니다.” – 한국이산가족: 분단의 역사 50년 (KDF), James A. Foley,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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