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폴리스 한인 | 2-24-2019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침례 교회 히엘 찬양단 25827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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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침례 교회 히엘 찬양단
인도: 정단일 목사
www.indykbc.org
인디애나 한인 교회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교회
(317) 622-2569
www.indykb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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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인디애나폴리스 올드 …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는 인구도 적고 계층도 엷기 때문에 한인회와 한글학교 등이 한인교회 교인들에 의존하여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한인교회의 분열은 한인사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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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rm.or.kr

Date Published: 7/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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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침례 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침례 교회에 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들을 만나고 말씀과 교제 속에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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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ndykbc.org

Date Published: 9/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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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집 / 인디애나 – 크리스찬 투데이

3년 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인디애나주 전체의 한인인구는 약 1만명이고, 인디애나폴리스 지역에 전체의 1/3 수준인 3천500여명 정도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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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us

Date Published: 1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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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폴리스 피셔스/카멜 부근에 대해 아시는 분?

사실 저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미시시피, 텍사스 작은 동네에서도 살았던 경험이 있어 한인 인구가 적은 동네로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데, 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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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ilemoa.com

Date Published: 5/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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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천주교회 – 모코리아 한인업소록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천주교회 The Korean Catholic Church of Our Lady Holy Rosary in Indianapolis. 평점: 5.0. 천주교 > 천주교. 전화: 1-317-542-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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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okorea.com

Date Published: 3/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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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 인디애나폴리스 올드 …

제 3장에서는 이러한 한인의 미국 이주·이민 역사 가운데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변화를 서술하였다.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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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ademic.naver.com

Date Published: 8/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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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사이트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애나폴리스로 곧 이사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찾아봤는데 블루밍턴 한인 커뮤는 있지만 인디애나폴리스는 없는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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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omingtonkorean.com

Date Published: 7/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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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 Author: Youngwoo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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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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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인디애나폴리스 올드타이머를 중심으로-::기초학문자료센터

한인의 미국 이주는 100년이 넘었고, 그 수는 200만 명을 초과하고 있다. 미국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인구 5만 이하의 중소도시에도 한인사회가 형성되어있다. 중소도시 한인사회는 대도시 한인사회와 형성과 발전 등 그 사회 구조가 매우 다르다. 따라서 기존의 대도시 중 …

한인의 미국 이주는 100년이 넘었고, 그 수는 200만 명을 초과하고 있다. 미국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인구 5만 이하의 중소도시에도 한인사회가 형성되어있다. 중소도시 한인사회는 대도시 한인사회와 형성과 발전 등 그 사회 구조가 매우 다르다. 따라서 기존의 대도시 중심의 재미한인사회 연구로는 중소도시 한인사회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소도시 한인사회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본 연구는 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 이주자에 대한 연구이다. 중소도시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규명하고 그곳에 사는 한인들의 생활과 의식, 생애를 분석함으로 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 역사를 재구성하였다.

연구 지역은 전형적인 중소도시인 인디애나폴리스를 선택하였고 한인사회 형성부터 2004년까지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올드타이머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은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증인이며, 목격자이자, 이주민의 삶을 살아낸 주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과 의식, 그리고 생애를 분석함으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실체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본 연구는 구술사 연구방법론을 택하였다. 구술사는 인간을 역사의 행위 주체로서 파악하고, 일상생활과 경험을 중심으로 한 보통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의식에 관심을 가진 역사 서술이다. 공식적인 문헌 속에 누락되어 있는 한인이주자 개개인의 삶의 다양한 실체를 접하고, 이민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 순응하거나 극복하려는 그들의 삶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하려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술사는 또한 여성사 연구에도 필요한 역사방법론이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을 구술 생애사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미군 부인과 인텔리 여성, 두 명의 생애사를 구성하여 한인 이주자의 삶을 새롭게 조망하였다.

본 연구의 성과와 의의는 다음과 같다. 제 2장에서 미국의 아시아인에 대한 이민 정책이 차별적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여 강조하였고, 미국으로의 한인의 이주시기를 4시기로 구분하였으며, 특히 1990년대 말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제4시기로 따로 구분하여 교육형 이주로 특징을 지었다. 제 3장에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 형성과 전개를 추적함으로 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 유형을 제시하였으며, 중소도시 한인사회의 약화와 침체 원인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또한 제 4장에서는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이주자들의 생활과 의식 그리고 생애를 통해 그들의 생활양식이나 의식체계를 그려낸 것이다. 평범한 한인이주민의 생애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는 기존 재미한인연구 경향에 새로운 장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을 재구성해 보려는 이 연구의 배경으로 제 2장에서 한인들의 미국 이주가 미국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 의해 가능하였다는 점을 미국은 이민법 중심으로 한국은 시기별 이주 유형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제 3장에서는 중소도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변화를 한인교회, 한인회, 한글학교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는 인구도 적고 계층도 엷기 때문에 한인회와 한글학교 등이 한인교회 교인들에 의존하여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한인교회의 분열은 한인사회의 약화와 침체로 귀결되었다. 제 4장 제 1절에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들의 삶을 올드타이머들의 생활과 의식, 그리고 생애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 사회를 선택하였고 정착하였다. 그들은 언어, 인종차별, 문화적 차이 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인사회를 형성하여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한인사회 내에서의 한국적 생활 경험이 미국사회 편입에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고 하였다. 제 2절에서는 인디애나폴리스 여성 두 명의 생애사를 재구성하였다. 재미한인사에서도 여성은 그늘에 가리워진 존재였다. 이들 두 명의 전 혀 다른 여성의 삶을 재구성함으로 그동안 가리워진 한인이주자들의 다양한 삶의 실체를 드러내었다.

인디애나:크리스찬 투데이

미주한인교계 지역특집 / 인디애나 주민의 69%가 백인… 자동차와 비행기 엔진 등 공업 발달 피터 안 기자 | 입력 : 2019/07/05 [14:03] 입력 : 2019/07/05 [14:03]

한인은 약 1만 추산하나 근래들어 유학생 등 한인 감소 추세 ‘인디언의 땅’이란 의미를 지닌 인디애나주는 미국 동부 오대호 남쪽에 있는 주이다. 북쪽으로 미시간 호 및 미시간주와 접하며, 동쪽으로 오하이오주, 남쪽으로 오하이오 강을 끼고 켄터키주, 서쪽으로 일리노이주와 접한다. 특별히 주도인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는 시카고에서 동남쪽으로 200마일 정도 떨어져 있으며, 시카고에 비해 비교적 집값이나 생활비가 저렴하다. 미국 전체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중서부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백인이 인구의 69%를 차지하며, 영국,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계의 주민들이 주를 이룬다. 자동차와 비행기 엔진, 전동 장치, 트럭 부품 등의 생산으로 공업이 발달했다. 식품 제조업과 복사, 출판 등도 도시의 중요한 산업이며 서비스업도 도시 경제의 가장 큰 산업이다. 교육 부분에서는 블루밍턴에 인디애나대학교와 라파야테에 퍼듀대학교가 유명한데, 인디애나대학교는 음악과 비지니스로 유명하고 펴듀는 공대가 유명하다. 인디애나폴리스를 연고로 하는 프로 스포츠 팀은 NBA 농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 NFL 풋볼의 인디애나폴리스 콜츠팀이 있다. ▲ 지난 봄 박효진 장로 초청 연합부흥성회를 마치고 지역 목회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하고 있다. 3년 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인디애나주 전체의 한인인구는 약 1만명이고, 인디애나폴리스 지역에 전체의 1/3 수준인 3천500여명 정도가 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학생, 주재원 등 한인 인구들의 유입이 많이 있었지만, 근래 몇 년 사이 한인 인구가 감소추세이다. 인디애나목회자협의회(Korean Pastors Association of Indiana) 총무를 맡고 있는 홍귀환 목사에 의하면 “유학생 감소와 인디애나 지역의 한인들이 종사할 수 있는 직업과 비즈니스 업종의 한계성이 한인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인디애나폴리스 주변을 중심으로 13개 교회의 목회자들이 모이는 인디애나목회자협의회는 지난 1988년에 첫 모임을 갖고 올해로 31년째 이어오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송기영 목사는 아프리카와 중국선교사로 사역하던 중 2015년 인디아나순복음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해 현재까지섬기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현 회장 송기영 목사는 “이 지역은 중동부 지방으로 한인들의 유동인구가 동부나 서부처럼 많지 않다. 그래서 인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환경이 적고 항상 평온한 점이 지역 교회나 성도들에게 큰 장점이다. 반면 굴곡이 없는 미국 중동부의 정서가 신앙 생활하는데 때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이 지역의 교회나 성도들은 외부적인 환경으로 인해 신앙의 영향을 받을 확률이 지극히 낮고 보수적인 신앙을 잘 지켜 나가고 있다”고 인디애나주 한인 교회의 특징을 설명한다. 목회자협의회는 매달 두 번째 월요일에 각 교회를 돌아가며 모임을 갖는다. 모임은 1부 예배와 2부 회의 순서로 진행하는데, 지역의 영적 돌봄을 위해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그리고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에는 지역 교회들이 연합하여 인디애나 지역의 교회와 영혼구원, 자녀들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한다. 매년 여름 방학기간에는 협의회에서 연합으로 선교지를 방문하거나 목회자 수양회를 갖는다. 또한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지역 교회 연합으로 부흥회를 개최한다. 인디애나 지역 교회 소식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 27일 전교인 캠프 가족 행사 ▲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 – 지난 5월에 가진 전교인 야외예배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1980년에 세워진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장로교회(김형주 목사)는 “말씀이 우리의 삶에 거하는 교회”를 금년 표어로 삼았다. 6월 25일부터 7월 8일까지 한국에 다녀오는 대학생 모국 방문에 참여한다. 7월 27(토)에는 전교인 캠프 가족 행사를 진행하며, 7월 29일에서 8월 1일까지는 J-Gen 수련회를 Taylor 대학에서 개최한다. 등록 www.j-gen.org, 문의 박예인 전도사. 인디애나제일장로교회 교육 파트 세분화 ▲ 지난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전교인들이 교회 앞마당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웨스트필드에 자리 잡은 인디애나제일장로교회(홍귀환 목사)는 예배와 공동체를 세움에 있어 열심이 있는 교회다. 특별히 이를 위해 교육에 힘을 쏟는데 영유치부, 주일학교, 유스그룹, 한글학교, 장년교육 등으로 세분화했다. 한글학교는 봄·가을 학기로 나눠 각12주를 매 주일 오후에 진행하며, 대상은 한글을 배우기 원하는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장년은 새가족 5단계, 일대일 제자훈련, 큐티 세미나, Disciple Training Course, Leadership Training Course 등을 교육한다. 블루밍턴 한인장로교회 유학생 위한 게시판 운영 ▲ 블루밍턴 한인장로교회 홈페이지 전면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서남쪽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PCUSA 소속 블루밍턴 한인장로교회는 나름대로 교회 홈페이지 운영을 잘 하고 있다. 거의 매주 목회자 칼럼을 올리고 있고, 선교회, 대학부, 청년부, 중고등부, 주일학교의 게시판이 따로 있다. 또 교회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 홈페이지를 통해 도서대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찬양대가 예배 때 부를 찬양곡을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특별히 유학생들을 위한 게시판 ‘유학 도우미’는 지역 학교 안내, 라이드, 생활용품, 차량판매, 숙소 문의, 병원 문의 등 다양한 내용들이 올라와 있어 지역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조회수도 상당하다. 예사랑교회 소그룹 중심의 목회 ▲ 예사랑교회 가을학기 수련회 모습. © 크리스찬투데이 인디애나 블루밍턴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예사랑교회(한호연 목사)는 소그룹 중심의 목회를 지향한다. 주일 낮 예배는 12시 30분 주일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에는 각 소그룹별 모임을 갖고 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6시에 새벽예배가 있으며,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유학생들을 돕는 Q & A를 운영하고 있다. 문의 (812)606-9503. 인디애나 모터 스피드웨이 명예의 전당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양한 자동차 박물관의 하나로 레이싱, 클래식, 구식자동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 경주인 ‘인디애나폴리스 500’이 1911년 이곳에서 열렸다. 오는 7월 13일에는 1960-70년대의 고전 차와 2륜차가 전시된다. 선착순 입장에 한에 Jack’s 도넛과 River West 커피가 무료 제공된다. 주소: 4790 W. 16th St. Indianapolis, Indiana 46222 피터 안 기자 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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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폴리스 피셔스/카멜 부근에 대해 아시는 분?

몇달 전부터 글을 올릴까 말까 심히 고민했는 데, 아무래도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어서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보려 합니다.

8월초에 인디애나 폴리스의 피셔스/카멜 부근으로 이사를 갑니다. 막연히 “카멜이 살기 좋은 동네고 아이들 학교도 좋다 (10/10)”라는 말을 들어서 카멜에 집을 구하려고 (처음엔 렌트를 계획중입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멜에 단 하나 있는 공립 고등학교가 5천명이 넘는 걸 보더니 (10/10, 동양인 비율은 13%) 큰 아이가 차라리 학교 사이즈가 좀 작은 (그래도 3천명 넘음. 두군데 있네요) 피셔스로 가고 싶다네요 . 피셔스에는 고등학교가 두개 있는 걸로 보이고, 수치상으로는 두군데 다 좋은 학교로 보여집니다 (둘 다 9/10, 동양인 7%, https://www.greatschools.org/indiana/fishers/schools/?gradeLevels%5B%5D=m&gradeLevels%5B%5D=h&st%5B%5D=public_charter&st%5B%5D=public). 다만, Fishers Jr. High school은 7,8 학년만 있어 작은 아이가 적응하기가 더 나을 듯 해서 (혹 Hamilton SE Jr.. High school이 월등히 더 낫다면 알려주세요) Fishers Jr. High와 Fishers High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집중해서 보고 있습니다. 집은 렌트할거라 일년 살아보고 맘에 안들면 이사하면 그만이지만, 아이들 학교는 한번 정하면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큰아이는 3년 남았네요) 다녀야 하니 더 고민이 됩니다.

10학년, 7학년 올라가는 딸아이 둘이라 혼자 통학이 가능할 정도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데, 스쿨버스가 없는 캘리에만 살았던지라 (게다가 아이들 졸업한 초등학교는 한국아이들이 50%였어요. ㅠㅠ) 도통 감이 잡히질 않네요. 스쿨버스가 있는 동네는 아이들이 다 스쿨버스를 타나요? 혹시라도 받게될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차라리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집을 얻고 싶은데, 학교에서 얼마까지 떨어진 거리면 걸어다닐 수 있을 지 감이 안 잡힙니다 (날씨도 변수고, 책가방의 무게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다음주에 1주일 예정으로 출장이 잡혀있어 간 김에 아이들 학교도 확정짓고 가능하면 살게 될 집도 확정짓고 오려고 계획중인데요, 아이들 학교와 집을 구할 때 어떤점을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할까요? 혹, 이 부근에 사는 분이 계시면 두 학교의 장단점을 알려주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실까요??

집은 3베드/2베쓰를 생각하고 있고, 단독이나 타운 하우스, 아파트 다 상관 없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니 꼭 실내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얼마전 마일모아에 올라온 연수기 필요하다는 글도 읽었어요. 하지만 일단은 렌트할 예정이라 그건 우선순위에 넣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미시시피, 텍사스 작은 동네에서도 살았던 경험이 있어 한인 인구가 적은 동네로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데, 한인인구가 더 많은 캘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는 문화 충격이 올 것 같아 여러모로 마음이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사갈 집도 아이들 학교를 먼저 정한 후에 그 바운더리 안에서 정하려고 생각하다보니 생각만 많아지고 선뜻 결정이 서질 않네요. 새로 갈 직장도 한국 사람이 없는 곳이라 물어볼 직장 동료도 마땅히 없구요. (직장내의 미국 동료들은 카멜이 비싼 동네라며 피셔스를 추천하더라구요. 그래봤자 집값은 캘리의 반. ㅎㅎ 다만 렌트비는 캘리의 반이 넘는다는 게 함정입니다.)

마음이 어수선하니 글도 정리가 안되네요…. 요약하면, 인디애나폴리스의 카멜/피셔스 부근으로 중 고등학교 여자아이 두명을 데리고 이사 예정인데, 어떤 (공립) 학교를 선택해야 아이들이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혹시 추천하시는 동네나 집 구할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뭐가 있을까요 입니다.

어떤 조언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모두들 편안한 주말 저녁 되세요.

NAVER 학술정보 > 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 인디애나폴리스 올드타이머를 중심으로

초록

본 연구는 재미한인연구에서 그동안 중요시되지 않았던 미국 중소 도시의 재미한인사회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미국 중소 도시 한인사회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그곳에 사는 한인 이주자들을 생활과 의식, 생애를 분석함으로써 중소 도시 한인사회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본 연구를 위해 미국의 대표적 중소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인디애나폴리스의 한인사회와 올드타이머를 그 대상으로 하였다. 또한 이 연구를 위해 구술사(Oral History) 연구방법론을 택하였다. 한정된 기록이나 문헌 중심적 기술만으로는 한 사회를 연구하는 데 있어 피상적 접근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2장에서는 한인들의 미국 이주가 미국과 한국 모두의 상황 변화에 의해 가능하였다는 전제하에 제 1절에서는 미국의 이민법을 중심으로 이민 정책의 성격이 개방에서 규제로, 규제에서 개방으로 변화하였던 것을 서술하였다. 미국은 국내외 정세에 따라 이민을 규제하거나 개방하였다. 그러나 1965년 이민법 개정이전까지 미국은 아시아의 미국 이민을 철저하게 금지하였다. 이는 인종차별에 의한 것이었다. 1960년대 흑백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민권운동이 고양되면서 1965년 이민법이 개정되었다. 이로써 아시아인의 미국 이민이 가능해졌다. 아시아 이민의 대거 유입으로 미국은 미국 사회가 표면적으로 지향하는 다문화 사회의 구색을 맞출 수 있었다. 제2절에서는 한인의 미국 이주를 4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로 그 특징과 유형을 정리하였다. 한인의 미국 이주·이민은 한국의 정세 변화와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대한제국 고종의 외교적 노력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시대의 분단을 거쳐 1990년대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그리고 그 후의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를 둘러싼 고민에 이르기까지의 상황변화가 그것이다.

제 1시기로 규정할 수 있는 한인들의 본격적인 이민은 1902년 하와이 이주부터 시작된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노동력 부족은 한인들의 이주를 필요로 하였고, 한국은 가뭄과 기근으로 살기 힘들었다. 이러한 이유들이 한인의 미국 이주를 가능하게 하였다. 1905년부터 사실상 일본이 한인의 해외 이주를 금지하였고, 미국에서도 1907년 일본인 및 한국인의 이민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 이후 한인의 미국 이주는 어려웠다. 1924년의 이민법 제정으로 아시아인의 미국 이주는 더욱 어려웠다. 이시기 한인사회의 특징은 독립운동이었다. 독립을 위한 다양한 단체들이 생겨났고 이승만, 안창호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성격은 이시기 이후 독립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 2시기는 1924년부터 새로운 이민법이 제정된 1965년까지이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전쟁 피난민과 군인 신부들의 이주를 허가하기 위해 개방의 방향으로 차츰 이민의 문을 열어갔다. 한국도 한국 전쟁으로 미군 부인들과 전쟁고아가 생겨났다. 이 시기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한인은 미군부인과 입양아 그리고 유학생들이었다. 입양아 중에는 혼혈아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제 3시기는 196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 이후의 시기이다. 이전의 차별적인 조항을 폐지한 이 이민법으로 인해 아시아 이민이 가능해졌고, 한인들의 대거 이주도 가능해졌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이주한 한인들은 주로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대도시 뿐 아니라 각 주의 주립대학과 병원에 취직하였다. 의사와 간호사, 그밖에 병원에 관계된 직종에 종사하는 전문가 등이 주를 이루었다. 1965년 이전 유학 간 유학생들도 이민법의 개정으로 인해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의 등장으로 미국 중소 도시에 한인사회가 성립되었다.

1965년 이후로 한인들의 미국 이주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대도시에는 한인 타운이 생겨나고, 한인회 활동도 활발해지며, 한인 언론과 단체들도 발전하였다. 한인사회가 역동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시기 한인들의 특징은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한 것은 사실 하와이 이민 생활 때부터였다. 한인들은 한인교회에서 이민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한국 문화를 지키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후세에게 심어주는 등 교회는 한인들의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이 시기 미국의 한인들은 언어 문제로 인해 다수가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하였다.

제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 교육형이민은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한인들의 미국이주 동기가 바뀌었다. 그 이전에는 자신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하였는데 이 시기부터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였다. 그리고 조기 유학의 붐으로 청소년들의 유학이 급증하였다.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는 ‘나홀로’ 유학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이 이산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커다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제 3장에서는 이러한 한인의 미국 이주·이민 역사 가운데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변화를 서술하였다.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형성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50년대 말 군인 신부의 자격으로 미국에 이주한 한인 여성들의 모임이 있었고, 60년대 중반부터는 유학생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그룹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전문가 집단의 노력으로 1970년대 초 한인교회, 한인회, 그리고 한글학교 설립으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에는 모두가 열심히 한인사회를 위해서 일을 하였다. 한인회와 한글학교, 한인교회 모두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여타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에서도 한인교회가 종교적인 측면뿐 만 아니라 이민 생활에서 필요한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며, 또한 한인들의 자아실현의 장으로서의 기능도 담당하였다. 미국의 중소 도시 인디애나폴리스에서의 한인사회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성격과 역할 역시 한인교회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한인교회의 분열로 여러 문제가 파생되었다. 한인회의 기능이 정지되었으며 한글학교 또한 운영이 어려워 한인교회들의 분교 형태로 나뉘었다. 그리하여 한글학교가 운영되는 교회의 교인 자녀들만 한글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는 대도시의 한인사회와는 달리 한인회와 다른 한인 단체들의 활동이 거의 중지된 상황이었고 한인교회만 존재하였다.

미국의 중소 도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는 그 인구도 적고 그 계층도 엷기 때문에 한인회와 한글학교 등이 한인교회에 의존하여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인교회의 분열로 인해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는 힘이 약화되어 침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인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가능케 한 것도 한인교회이고, 또 한 편으로 대도시에 비해 한인들의 수가 확연히 적은 중소 도시에서 한인사회의 응집력을 분산시키는 등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한인교회이다.

나아가 본 연구에서는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를 더욱 자세히 고찰하기 위해 제 4장 제 1절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올드타이머들의 생활과 의식, 그리고 생애를 분석하였다. 이주자들의 이주 이전 삶의 경험은 이주 동기가 되어 이주 후의 삶의 형태를 규정한다. 따라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 내 올드타이머들의 삶을 분석하기 위해 그들의 이주 전 생애와 이주 동기를 밝혔다. 그들은 대부분 고학력자로서 한국의 지식인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그들의 이주 동기는 주로 유학이나 연수였다. 한편으로 미군 남편을 따라 온 경우도 있었고, 가족 초청으로 온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유도 사범으로 취업을 위한 것도 있었다. 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한국 보다 나은 미국 사회를 선택하였고 정착하였다. 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였고,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였다. 그들의 자녀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를 원했으며, 자녀들은 미국 사회에 진출한 후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고 하였다.

제 2절에서는 인디애나폴리스 올드타이머 연구를 위해 여성 두 명의 생애사를 재구성하였다. 개인 생애사 연구는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회와 역사를 해석하였고 삶을 살아내었는가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두 여성 원로인 미군 부인 김동녀와 인텔리 여성 장진옥의 생애사를 대비시켜 서술하였다. 김동녀는 1935년생이고 장진옥은 1934년생으로서 연배와 이주시기도 비슷하다. 이 두 여성이 한국에서의 삶의 차이로 인디애나폴리스라는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두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김동녀는 미군 부인의 신분으로 남편을 따라 인디애나폴리스에 왔다. 그녀의 한국에서의 삶은 가난과 고통 그 자체였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미국에 정착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다. 가사와 양육, 그리고 농사일까지 모두 그녀의 일이었다. 그녀는 언어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도 하였고, 자녀들도 열심히 키웠다. 한국에서의 힘든 삶의 경험이 이주 후 최선을 다해서 어찌하든지 미국 땅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정착으로 이어졌고 ‘고생했다…행복하다’는 말로 자기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김동녀는 미군 부인이라는 그녀의 지위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도,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도, 미국 사회에서도 주변인으로 살아야만 하였다.

장진옥은 경기고녀 출신의 인텔리 여성이다. 한국 전쟁 시 부모를 잃었지만 공부를 잘한 덕에 연세대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연세대에서 남편 백한원을 만나 퀴리부인의 꿈을 안고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한국 전쟁으로 부모와 집을 잃은 장진옥은 전후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으로 이주 이후 그녀는 생활문제에 직면하여 학업을 포기하여야만 하였다. 지성인으로서, 학업을 포기한 것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과 보상으로 그녀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한인사회에서 존경받는 원로로 살아왔다.

본 연구의 성과와 의의는 다음과 같다. 제 2장에서 미국의 아시아인에 대한 이민 정책이 차별적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강조하였고, 미국으로의 한인의 이주시기 가운데 1990년대 말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따로 구분하여 교육형 이주로 특징을 지었다.

그리고 제 3장에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를 한인회, 한글학교,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그 형성과 전개를 구성하였으며, 현재 인디애나폴리스 한인사회의 약화와 침체의 원인을 규명하였다.

또한 제 4장에서는 인디애나폴리스 한인들 중 올드타이머들의 구술을 분석함으로써 이주자들의 생활과 의식 그리고 생애를 그려낸 것은, 이주자들의 생활양식이나 의식체계 그리고 생애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는 기존 재미한인연구 경향에 다소나마 새로운 장을 제시한 것이다. 기존의 연구가 대부분 통계에 의존하고 있고 피상적, 객관적 서술로 점철되어있는 데 비해, 본 연구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개인 이주자의 생애를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 성과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재미한인사에 대한 연구를 풍성히 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reports on the Korean-American community in small and medium sized city of the US, which has not been attached a great importance for a long time.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organize the formation and expansion of the Korean community in small and medium city of the US, and Korean immigrants’ lives and minds and life days to reconstruct the history of the Korean community.

For this study, the Korean community and old-timers in Indianapolis, one of the typical small cities of the US, are analyzed. Also, the methodology of oral history was selected for this study because it could be too superficial an approach to study a community just with limited records and literal methods.

The conten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ings; I described that in the Verse 1 of the Chapter 2, focusing on US immigration law, the immigration policy has been changed from openness to regulation, or vice versa on the basis of the fact that Korean’s immigration to America was dependent on changing situations of both countries. The US have changed to open or regulate immigration as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situations went on. But the US had completely prohibited Asian immigrants from coming to America before the 1965 immigration law revision. This was due to purely racial discrimination. The US had to revise the law in 1965 since the conflict between the black and the white was rising and civil rights movement was also boosting. This could make Asians immigrate to the US. Eventually, the US could be a multi-cultural society which they superficially pursue with an influx of a number of Asians. In the Verse 2, I divided Korean’s immigration to the US into four periods and arranged the characteristics and types for each period. Korean’s immigration to the US is closely related to the changing situation of Korea: The Emperor of Daehan Empire, Gojong’s diplomatic efforts, Japan’s occupation, Korean War, territory division during the Cold War, Korea’s democratization in the 1990s, and education problems in the Korean society since it.

During the first period, Korean immigrants started in earnest with immigration to Hawaii in 1902. Sugar cane farms in Hawaii needed Korean immigrants due to labor shortage, and Koreans needed food suffering from drought and famine in their homeland. So the needs were met and that made Koreans immigrate to the US. But, because Japan prohibited Koreans from immigrating to overseas since 1905 and the US also stopped Japanese and Korean immigration in 1907, the Korean’s immigration to America was difficult. The 1924 immigration law made immigration more difficult for Asian immigrants.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society during that time was independence movement. The organizations for Korea’s independence were made, mainly led by Seung-man Lee, Chang-ho Ahn. Since then, it had continued until independence of Korea.

The second period is from 1924 to 1965, when the new immigration law was established. After World War II, the US have gradually opened the door to permit immigration of war refugees and military brides. Korea also had war orphans and wives of American soldiers because of Korean War. During that time, Koreans who could immigrate to the US were wives of soldiers of the US, adopted children and students studying in the US. Most of the adopted children were mixed blood.

The third period began after the US immigration law revision in 1965. This revised law abolished old discriminating clauses, so that Asians including many Koreans were able to immigrate. The Korean immigrants from 1965 to 1975 were mainly professionals. They worked for state universities and hospitals as well as in metropolis. Most of them were doctors, nurses and professionals related to medical duties. The students who went to the US to study before 1965 also settled down there because of the immigration law revision. This professional group initiated a Korean community in small and medium cities of the US.

Korean immigrant to the US has been continually increased since 1965. Korea town was created in metropolis, their activities began to be more vigorous, and Korean press and organizations were developed. In other words, the Korean communities in the US became to be dynamic. The characteristic of Koreans’ lives in this period is that they were very Korean church-centered. Actually, it was so since they immigrated to Hawaii. The Korean church has been the center of their lives with exchanging information in need for their immigration, preserving Korean cultures, keeping their identities as Koreans, and implanting Korean identity into next generation and so on. Many of Koreans in this period were self-employed because of their limited language skills.

The fourth period is from the late 1990s when education immigration appeared. The motive of immigration to the US was changed. They had immigrated for the better living standard of their own before the fourth period, but, since then, they have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ir children’s better future. Besides, the number of Korean youth studying abroad highly increased because of the boom of early education abroad. But it has caused problems such of studying abroad ‘alone’ in the Korean community of the US. On the other hand, it caused a tragedy that family should be scattered in Korean society. The new coined term ‘wild goose daddy’ came into being, and it has been considered a very serious social problem in Korea.

In the chapter 3, I described formation of the Korean community in Indianapolis, its development and transforma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immigration to the US. The formation of the Korean community in Indianapolis has started since the late 1960s. The meeting of immigrated Korean wives of American soldiers was formed in the late 1950s, and the group of students studying in the US and professionals started in the mid 1960s. Thanks to their efforts, the Korean community in Indianapolis has appeared early in 1970s with the Korean church, the Korean association and the Korean school. In the early stage, everyone worked hard for the Korean community. All of the Korean association, the Korean school and the Korean church had passionate activities. Just as in other cities, the Korean church in Indianapolis met the needs of immigrants’ lives, both religiously and socially, and it also functioned as a place of self-realization of Koreans. The formation and expansion of the Korean community in the small and medium city, Indianapolis of the US, and its characteristic and role were no exception of being Korean church-originated.

However, many problems were caused by the Korean church’s split. The Korean association stopped functioning and the Korean school was separated into branch schools. Therefore, only the children of the members belonging to the church which ran the Korean school could be privileged to take a Korean language class. In the Korean community of Indianapolis being different from other Korean communities in metropolis, the Korean church only had survived, while other Korean organizations such as the Korean Association nearly stopped their activities. Since the Korean community of Indianapolis had a little population and few classes, the Korean association and the Korean school could not help but depend upon the Korean church for their being run. For that reason, the power of the Korean community of Indianapolis has been weakened because of the Korean church’s split. Ironically, the Korean church not only enabled the Korean community’s existence and its development, but also it tackled it in development by splitting its cohesive power, especially in the small city where definitely fewer Koreans lived in compared to big cities.

In the Verse 1 of the Chapter 4, this study analyzed lives, minds and life days of old-timers in Indianapolis in order to look into the Korean community of Indianapolis in more detail. The experiences prior to immigration tend to motivate them to immigrate and regulate their lives. Therefore, to analyze the lives of old-timers in Korean community of Indianapolis, I clarified their lives before immigration and their motivation to immigrate. Most of them were highly educated and raised in intellectual home background in Korea. Their motivation was mainly studying and being trained in the US. Also, some of them followed their American soldier husbands, some were invited by their family, and some got a job such as Judo teacher. They chose the American society and settled down because they believed they could have better lives in the US rather than in Korea. They were church-centered and served the Korean community. They wanted to implant Korean identity into their children and the children had interest in their root after they advanced to the American society. They called themselves the Koreans who lived in America.

In the Verse 2, I reorganized two women’s lives for the study on old-timers in Indianapolis. The study on an individual’s life is to display how an individual interpreted society and history and lived his/her own life throughout his/her whole life by using an analysis on the way of recognizing and explaining his/her own life.

For this study, I compared two life stories of women elders of the Korean community in Indianapolis: Mrs. Dong-nyeo Kim, wife of an ex-soldier of the US and Mrs. Jin-ok Jang, an intellectual woman. They are both similar in age and immigration period; Mrs. Kim was born in 1935 and Mrs. Jang was born in 1934. But these two women had completely different lives in same place of Indianapolis because of their different previous lives in Korea.

Mrs. Kim followed her husband to America as a wife of an US soldier stationed to Korea. Her life in Korea was literally poverty and pain itself. As she did not want to go back to Korea, she settled down in America giving her best. House chores, raising kids and even farming were all of her works. She learned English to overcome the limited communication and raised her kids very hard. Her tough experiences in Korea drew her to settle down in America in any situations, and now she is satisfied with her own life with comforting saying, ‘Well done…I am very happy now’. She had to live as a marginal person in the American society as well as the Korean society and the Korean community in the US.

Mrs. Jang is an intellectual woman who graduated from Kyunggi women’s high school. Even though she lost her parents during the Korean War, she studied so hard and entered Yonsei University with scholarship. She met her husband, Mr. Han-won Baek there and came to study in the US dreaming of being another Madame Curie. She probably wanted to leave Korean society where she lost her parents and home, and which was still in chaos just after the war. After moving to the US, she had to give up her study because of her own living. She compensated herself who was an intellectual woman but had to give up studying with being a typical wise mother and good wife and with living in the Korean community as a respectable elder.

The fruit and the meaning of this study are as followings; in the Chapter 2, I reconfirmed and emphasized the fact that the US immigration law to Asians was discriminative, and classified the period of Korean immigration to the US from the late 1990s until now and identified it as education immigration.

In the Chapter 3, I organized the formation and expansion of the Korean community in Indianapolis, mainly focusing on the Korean association, the Korean school and the Korean church. Futhermore, I examined why the Korean community of Indianapolis has been weakened and depressed nowadays.

Also, in the Chapter 4, I described immigrants’ lives and minds and life days through an analysis on oral statements of old-timers among Koreans in Indianapolis, which means that I showed a new chapter to the existing study on the Korean-American of the US, while there were very few works on lives, minds and life days of immigrants. While the existing study depends mostly on statistics and intersperse with superficial and objective narration, this study restructured the life days of common individual immigrants, not of heroes. In this way, this study is an outcome of a study on subjective and individual part. Therefore, the study would contribute to flourish the study on Korean-American history of the US.

혹시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사이트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애나폴리스로 곧 이사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찾아봤는데 블루밍턴 한인 커뮤는 있지만 인디애나폴리스는 없는거 같더라구요.. 제가 못 찾는 걸 수도 있습니다ㅠㅜ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실 수 있나요?

아니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방을 빌리고 싶은데 어떻게 구해야 되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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