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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 임은미 선교사
Q 임선교사님하면 입양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케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하게 되신 건지? 제가 사랑이 많아서 입양을 한 게 아니라 (사랑은 우리 남편이 많아요.) …
Source: www.bnrmagazine.com
Date Published: 4/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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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미 선교사 “순종 익숙해지면 불순종 어려워” < 인터뷰 < 교계 ...
선교사님께서 만나서 식사하고 헤어지기 전에 ‘돌아가면서 한 명씩 기도합시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남편이 ‘하나님 뜻이면 아프리카로 가겠습니다’ …
Source: www.goodnews1.com
Date Published: 7/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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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미목사님은요.. – 네이버 블로그
임 은미 선교사님. 성명: 임 은미 (Eunice Newcomb 미국명). 생일: 1964. 8. 25. 가족 소개. 남편 Bill Newcomb 목사 (미국인. 51세).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4/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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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기쁘게 – CTS기독교TV
재미교포인 임은미 선교사는 학창시절 부흥회 분위기에 휩쓸려 … 된 것을 기억한 임 선교사. 남편은 케냐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Big dreams”라는 영화를 만들고,
Source: www.cts.tv
Date Published: 8/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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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생존 기술이다 < 인터뷰 < 감사 < 기사본문
임은미 선교사의 두 번째 감사는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설교를 하고 케냐에 돌아가도 남편은 공항에 항상 꽃을 갖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
Source: www.gamsanews.co.kr
Date Published: 6/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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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결혼해요!’ – 임은미 선교사 | 갓포스팅
많은 사람들이 질문 합니다 “이상형”에 대해서요 그리고 “배우자 조건”에 대해서요. 어떻게 기도해야할까요? 어떻게 구해야할까요? 임은미목사님께 …
Source: gp.godpeople.com
Date Published: 3/4/2022
View: 9392
“조국청년을 보내주시면, 세계선교를 주님께” – 천지일보
임은미 목사가 병아리 선교사 시절부터 쭉 지켜보며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 24일 삼일밤 예배에 남편인 빌 뉴콤 목사와 딸 수진양과 함께 참석했다.
Source: www.newscj.com
Date Published: 2/12/2022
View: 2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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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임은미 선교사 남편
- Author: EUNICE YIM NEWC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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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8.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4qELif-3sCY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 임은미 선교사 – Blessing & Resting Magazine
‘하나님이 쓰시는 한 사람’이란 스테디 셀러의 저자이자 목사, 박사, 교수이다. 21년 동안 케냐 선교사였다가 지금은 선교지에서 역파견되어 한국 청년들의 멘토로 활동 중인 임은미 선교사를 만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B&R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Q 21년 동안 케냐 선교사로 계셨는데 요즘 한국에 나와계시는 이유가 있나요?
저를 소개할 때 보통은 21년 동안 케냐에 있었으니까 케냐 선교사였다고 말해요. 지금은 CAM 대학선교회의 내셔널 디렉터로 발령을 받고 한국에 와 있어요. 한국 캠퍼스 복음률이 2%, 캠퍼스 안에서 기독 동아리는 0.2%라고 하더라구요. 케냐는 복음률이 70%인데 오히려 한국의 복음률이 낮으니 케냐에서 저를 역파견한 거죠. (웃음)
Q 케냐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6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기도원을 만들었어요. 케냐에는 하루에 한 끼밖에 못먹는 아이들이 많아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서 15년 동안 먹이고 성경 공부를 시켰어요. 그러면서 9년 동안 나이로비 국제신학대학원에 기독상담학 전임 교수도 했어요. 방송은 안되었지만 ‘톡 투 유니스’라고 해서 예수님 잘 믿는 사람들을 불러서 간증을 하는 토크쇼를 준비하다가 발령을 받고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Q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는데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저희 집이 가난했어요.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민을 갔어요. 아메리칸 드림이 있던 시기였죠. 고모가 미리 미국에 가 계셔서 가족 이민을 갔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집은 가난하고 애는 셋이고 다 대학 공부 시키기에는 어려우니까 ‘애들 교육이라도 시키게 미국에 가자’라고 결정을 하시고 떠나신 거죠. 그때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가다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Q 미국에서는 어떤 점이 특히 힘드셨나요?
제가 고 3이었지만 영어를 정말 못해서 미국에서 고 1부터 다시 다녔어요. 동생들은 어려서 가서 저보다 영어 배우기가 훨씬 나았죠. 한국에서 진짜 공부를 안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못하는 과목이 영어랑 수학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니 제일 필요한게 영어랑 수학이더라구요. 반 배정을 하는데 제가 영어를 못하니까 중학교 2학년이랑 같이 공부를 시켰어요. 그땐 제 자신이 비참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저보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한다고 해요. 재밌는 것이 제가 고등학생 때 미국에 갔지만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미국에서 영어를 처음 시작한 거예요. 저는 성문종합영어가 뭔지도 몰라요.(웃음)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영어를 잘해도 보통 한국식 영어를 써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을 하는 거죠. 근데 저는 번역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미국식으로 쓰는 거예요. (웃음) 그땐 비참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아, 하나님의 선하신(good) 뜻이 있고, 깊으신 뜻이 있고, 온전한 뜻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Q 하나님의 뜻에도 종류가 있나요?
처음 믿을 때는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구하게 되다가,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깊으신 뜻을 보게 되고, 그걸 넘어서면 하나님의 온전한(Perfect) 뜻을 보게 되요.
아프리카에는 신학교육이 없어요. 제가 아프리카에서 교수를 하게 됐는데 학생들의 95프%가 남자였어요. 저는 나이 서른의 여자였는데 남자들을 앉혀놓고 강의를 한다는 게 처음에 좀 무서웠어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딸이어서 집 안에서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아버지가 딸이 태어낳다고 미역국을 엎을 정도로요. 나중에 ‘딸이어도 괜찮다’라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았지만요. 강의를 하다보니 내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으면 이 사역을 감당 못했을 거예요. 좋은 가정에서 공주처럼 자라지 못한 것이 오히려 척박한 땅에서 선교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거죠. 이것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다’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에게 가장 큰 선은 영혼 구원 즉, 복음이예요. 로마서에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인생의 일들이 복음의 도구가 된다는 말인 거예요. 때론 내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내 고난의 스토리가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돌아온다면 그게 선인 거죠. 그러면 이제 그 고난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되는 거예요.
Q 딸로서 가졌던 상처는 회복되셨나요?
보통 사람들은 생일을 기쁜 날로 생각하면서 축하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생일인데 생일이어서 우울한 거에요. 왜 그럴까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생일날 남편이 ‘생일이니까 외식하러 가자’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가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싫다고 해놓고는 내 생일에 아무도 신경을 안쓴다고 또 섭섭한 거예요. 당황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느꼈어요.
‘내 출생에 문제가 있구나.’ 내가 태어날 때 무시당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속사람을 치유하겠다고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을 읽고 우리 아버지한테 갔어요. 내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용서해야 되는 거거든요. ‘내가 아버지를 용서합니다.’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용서를 빌어서가 아니라 내가 용서를 해야 자유하게 되니까요. 나를 위해서 용서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제 묵상을 읽으면서 육신의 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해요. 누가 내 아버지하고 나하고의 이 갈등을 알겠어요. 지금은 아버지와 애인 같이 지내지만요.
Q 한국에서도 공부를 안하셨다고 하셨는데 늦게 영어로 공부하는게 힘들지 않으셨어요?
공부를 못따라가서 남들 다 졸업하는데 졸업을 못했어요. 학교에서 졸업 명단에 없으니 졸업식에 오지 말라고 그러더라구요. 집에서 너무 속상해서 엄청 울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는데 5년 5개월 걸렸어요. 대학교 1년 때까지 정신 못차렸죠.
그런데 어느날 예배 때 ‘여러분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는 딱 이 구절에서 성령님이 임하신 거에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 세대를 본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 날 은혜가 임하니까 내가 이 세대를 본받았던 걸 회개하게 되더라구요. 그 이후로 설교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도 안나고 딱 그 말씀 한 구절만 기억나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바로 제가 변화되었으니까요. 저는 꿈도 없고, 소망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딸로 태어난 게 미안해서 치마도 안 안 입었고 머리도 쇼커트만 했어요. 그런 제가 변한 거예요.
‘나는 뭐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까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때론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화장실 변기 위에서 무릎 꿇고 울며 기도했어요. 제가 나중에 간증할 테니까 도와달라고요. 교과서를 열 때마다’교과서를 달달 외우게 해달라고, 나를 도와주셔서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5년 5개월을 걸려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대학교에서 학위 받을 때는 최고우수상 받을 테니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기분이 이상한 거에요. 언제는 학교에 안 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제는 최고우수상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으니까요.
Q 고등학교를 5년 넘게 다니셨는데 그 이후에 목사, 박사, 그리고 교수까지 되신 비결이 있다면요?
당시에는 여자 목사가 거의 없었어요. 제 버킷리스트에 여자 목사. 박사, 교수가 있었거든요. 제 나이 서른 네살에 대학원 교수가 되었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매일 같이 ‘ 교수되게 해주세요! 목사 안수 받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항상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야기해요. ‘여러분이 꿈을 갖고 있다면 매일 기도하세요.’ 라고요.
그리고 20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꾸준히 큐티 묵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학위나 성취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한 발자취예요. 저는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말씀 묵상을 해요. 제 철칙이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새벽 예배 설교하기 전에 꼭 묵상을 먼저 해요. 20년 동안 하루도 안거르고 매일 묵상을 하다보니 어느 날 목사 안수 받고, 어느 날 보니 대학원 교수가 되어 있고, 어느 날 보니 28쇄를 찍은 책을 썼더라구요.
Q 남편을 대학교 때 만나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 주변에도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어려운 부부들이 더 많다고 하는데 덧붙여 결혼에 대한 조언도 같이요.
혼자 살면 외로움이요 둘이 살면 괴로움이에요.(웃음) 사람들이 외로움이 괴로움보다 더 힘들어서 괴로운데도 산다는 말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안 믿는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는 행복, 크리스천이 결혼하는 이유는 ‘maximize potential’(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가능성, 남자에게 주신 가능성이 있는데 두 사람이 만나서 아내는 남편의 potential을 maximize, 남편은 아내의 potential을 maximize 하는 거예요. 서로가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결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편을 신학대학교에서 만났어요. 키는 190cm이고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딱 반반 닮았고 몸매는 초콜릿 몸매였어요.(웃음) 지금은 초콜릿이 녹아서 없어졌지만… 매우 믿음 좋은 청년이었어요.
남편이 참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너무 가난한 거예요. 저희 아버지도 ‘얼굴 보아하니 먹고 살기 힘들겠다’고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기도하는데 ‘세상에는 돈 많은 남자도 많고, 학위가 높은 남자도 많고 잘생긴 남자도 많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남자는 드물다. 너는 어떤 남자를 구하니?’ 라고 하나님이 물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신실하고 착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남자가 좋아요.’라고 했더니 ‘그러면 빌(남편 이름)과 결혼해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결혼하게 됐어요.(웃음)
Q 임선교사님하면 입양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케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하게 되신 건지?
제가 사랑이 많아서 입양을 한 게 아니라 (사랑은 우리 남편이 많아요.) 입양한 딸 아이가 교회 주일 학교 학생이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갈 데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집에 데려오게 된 거예요. 저희 집에 애가 9명이에요. 9명이 된게 어느 날 제가 집에 갔더니 남편이 교회 중고등부 애들을 집으로 데려온다는 거예요.
아프리카는 고등학교에 가려면 돈을 내야해서 학교를 못가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기도제목으로 학교 가고 싶다는 것을 낸 애들이 있었는데 남편이 그 기도제목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겠다고 상의도 없이 데리고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남편을 경외하고 순종하라고 나와 있잖아요. 솔직히 저는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아이들을 키운 것이지 아이들을 좋아해서 입양한 것은 아니예요. (웃음)
Q 저는 책을 읽고 오랫동안 입양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입양 덕분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우릴 어떻게 사랑했을까를 알게 되요. 사실 우리도 양자잖아요. 내가 우리 아이들을 키워보니 솔직히 친자식이 양자보다 더 사랑스럽더라구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자식을 내주셨어요. 친자식을 죽이기까지 양자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어요.
Q 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도우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삶을 사실 수 있는지?
도와준 들, 안 도와준 들, 이게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게 아니예요.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걸 제가 가질 수 없어요. 다 흘려보내야 하거든요. 물질은 어차피 제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서 영광 받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물질을 흘려 보내주면 받은 사람이 ‘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했어요!’ ‘어저께 기도했는데 오늘 딱 들어왔어요.’라고 할 때 물질에 대해서는 나는 그냥 중간 통로인 거죠.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니까 기쁘고, 나는 쓰임 받으니까 기쁘고 그런 거예요.
Q 요즘 30-50대 여성들이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선교사님은 우울하지 않으실 거 같은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스마트폰에 설정이라는 기능이 있잖아요. 설정하는 대로 무음도 되고 알람도 되고 그렇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우울하다, 누군가 나를 욕한다, 짜증난다, 열 받는다’ 싶으면 성경을 듣는 설정을 해요. 나이가 드니까 노안이 와서 주로 성경을 오디오로 들어요. 성경을 틀어 놓고 계속 듣고 듣다 보면 마음이 바뀌어요. 괘씸했던 인간도 용서가 되고 내 마음이 바뀌어요.
제가 기독교 상담학을 전공했잖아요. 육신의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처방을 해주듯이 상담가도 마찬가지에요.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숙제 중 하나가 ‘일주일 동안 하루에 10가지씩 감사를 적으세요.’라는 거예요. 감사를 적다보면 포커스가 바뀌어요.
우울증은 자꾸 자신만을 보는 거거든요. ‘내가 뭘 잃어버렸고, 내 청춘이 날아가버렸고, 이 나이가 되도록 난 뭘 했을까.’ 이런 생각을 감사로 바꾸면 ‘내가 이 나이인데 내 딸은 벌써 시집을 갔어’. ‘대학을 졸업했어’. ‘내 남편은 아직 명퇴가 아니야.’ 이렇게 하나씩 내 삶에서 감사를 찾는 거에서 회복이 와요.
Q 혹시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제가 한국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차세대, 다음 세대의 신앙에 희망이 있습니까’라는 거예요. 전 이렇게 답해요. ‘내가 살아있는 한 이 땅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다음 세대에 비전이 있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바닷가에 불가사리 무더기가 밀려온 거예요. 한 소년이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서 바다로 던지고 있었어요. 지나가던 한 남자가 ‘그렇게 하나씩 던져서 언제 다 집어넣겠냐’고 한심하다고 해요. 하지만 소년이 말하죠. ‘최소한 제가 방금 바닷속으로 던진 저 불가사리에게는 도움이 되겠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살아있는 한, 한 녀석은 안 살리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그만두면 회사가 망하는 것이 아니듯 나 하나 없다고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나 하나만 상 받을 것처럼 그렇게 달리는 거예요.
삼손이 죽을 때 죽인 블레셋 사람들이 살아 생전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다고 성경이 기록하잖아요. 내 마지막 꿈은 내가 죽는 날, 나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내가 살면서 만나서 전한 사람보다 더 많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지금은 내 삶의 일들을 다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거예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임은미목사님은요.. : 네이버 블로그
– 임 은미 선교사님
성명: 임 은미 (Eunice Newcomb 미국명)
생일: 1964. 8. 25
가족 소개
남편 Bill Newcomb 목사 (미국인. 51세)
딸 수진 Newcomb (케냐에서 CCM 가수 활동. 17살)
CTS (Christian Television System) 방송 설교 “임은미 선교사의 열정”
CTS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사람들” CoMC
CTS “고난주간 특강”
CTS “열방을 향하여” 출연
CTS “내가 매일 기쁘게” 출연
CGNTV “독수리 5형제” 다큐 녹화
2006 부터 청년 코스타 강사
2008 부터 유스 코스타 강사
저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사람 그대입니까?” 2009. 6월 출판
“최고의 날!!! 최고의 그리스도인!”” 2010. 7월 3일 출간
선교 사역 내용
교회 개척
보건소 운영
기도원 운영
In His Image 영아원 운영
현지인 사역자들 훈련
SAM (Students Arise Movement) 아프리카 대학교들의 리더들 성경공부 인도
방송사역 ( Talk to Eunice! 톡쇼 진행자)
꿈 많은 한 소녀가 있었다. 1981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얼마 후 동네 언니와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덜컥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졸다가 언니를 따라 강대상 앞으로 나갔는데, 그게 선교사 서원의 시간이었다. 86년 김준곤(한국CCC 총재) 목사가 인도하는 이민교회 수양회에 참석했다가 소명을 느꼈다. 긴 갈등 끝에 ‘하나님, 저를 선교사로 보내시려면 성경책을 폈을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이사야 41장 말씀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성경을 폈는데 정말 그 말씀이 나왔다. 이후 신학교에 진학했고 남편을 만났다.
선교도전은 계속됐다. 선교 보고차 교회를 방문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가 도전을 주었다. 또 다시 마음에 부담감이 생겼다.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경을 폈을 때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오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첫 번째 폈을 땐 안 나왔다. “그래도 삼세판”이라며 다시 폈는데 말씀이 나왔다. 그래서 케냐 행을 결정했다. 바로 임은미 선교사(45)의 이야기다.
◇“주님 뜻이 있는 곳 가장 안전”=94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선교회에서 선교사 인터뷰에 참석하라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자매는 왜 아프리카와 같이 위험한 곳에 가려고 하느냐’고 질문했다. 임 선교사는 ‘목사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곳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케냐에 있는데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조 목사는 무릎을 쳤다. 그렇게 2분 만에 아프리카 파송이 결정됐다.
임 선교사가 케냐에서 처음 한 일은 현지 신학교를 맡아 교역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4년 만에 문을 닫게 됐고 98년부터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리무르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6개 교회에 등록된 교인 수만 해도 1300명이 넘는다.
임 선교사가 남편 빌 뉴콤(47) 목사와 제일 먼저 사역대상으로 삼은 것은 어린이다. 케냐에는 출산율이 높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많다. ‘슈퍼 새터데이’라는 토요 어린이 전도집회를 열어 식사를 제공하고 성경공부를 진행했다. 일주일 내내 밥 한 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신발과 옷가지 등을 얻어 전해주고 교회가 보건소와 유치원 역할을 감당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늘어났고 부모들이 자녀들의 손을 잡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케냐 선교가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현지인 목회자들에 의해 교회의 소유권이 넘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임 선교사 부부가 실제적인 교회 목회자라며 교회를 되찾아 주었다.
◇아동보호, 방송선교 꿈=임 선교사 부부는 2007년부터 ‘인 히스 이미지(In His Image)’라는 아동보호센터를 시작했다. 이 사역은 우연한 기회에 길거리 쓰레기통 옆에 방치된 영아를 발견하고 키우면서 시작됐다. 현재 4명의 영아를 돌보고 있으며, 올해 초 입양시킬 수 있는 자격을 얻어 2명의 영아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었다. 임 선교사 부부는 기독NGO 굿피플과 함께 190명의 난민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2006년부터 임 선교사는 연 6회 이상 세계를 돌며 코스타 강사로 유학생들에게 도전을 하고 있다. 임 선교사 부부의 또다른 꿈은 방송선교다. 라디오 스튜디오를 구축해 놨으며, 지난 8월에는 나이로비 80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주파수까지 얻었다.
“선교사 서원을 하고 30세에 목사, 35세에 대학교수, 45세에 방송시작, 55세에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토크쇼 진행자를 기록해 놨는데 주님께서는 45세까지 그대로 이뤄주셨어요. 이제 세계적인 방송사역자가 남았네요. 요즘 저는 ‘하나님, 나에게 조국의 청년을 주시면 내가 세계를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니 복음의 영향력을 전 세계에 못 미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대의 아름다운 선교 후원금은 :
외환은행
181 – 18 – 25238 – 8
Eunice Newcomb
. 목사님 좋아하는 성경귀절 (다니엘 12:3)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 목사님 좋아하는 찬송가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임은미목사님에 대하여 궁금하신 분들을 위하여… 올려 놓았습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불씨를 일으키는 열정] 케냐 /임은미 선교사방송일 : 2008-03-20
조회 : 6818
재미교포인 임은미 선교사는 학창시절 부흥회 분위기에 휩쓸려
선교사로 간다고 서원을 했다.
그 서원을 잊어버리고, 주의 종이 되어
워싱턴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겼다.
영화감독이자 신학을 한 미국인 남편을 만나
미국에서 주님을 섬기려 했다.
그러던 중 케냐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설립한
나이로비 국제 신학대학원에
교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몇 번을 고사하다가 남편이 먼저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온 가족이 기도하며 1994년 케냐로 떠나게 되었다.
신학대학원에서 기독상담학을 가르치면서,
케냐의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하기 시작했고,
부모들이 주님을 믿게 되어
7개의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선교를 하면서 학창 시절 선교사로 서원을 하게 된 것을 기억한 임 선교사.
남편은 케냐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Big dreams”라는 영화를 만들고,
딸 수진이는 찬양 사역자이자 가수로
케냐에 희마을 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현지인 딸 1명과 아들 6명을 입양해,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
코스타 강사로도 활동하며
주님의 역사를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감사는 생존 기술이다
“감사를 잘 하면 감사를 주고, 불평을 잘 하면 불평을 주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임은미 선교사가 감사편지가 담긴 꽃다발 옆에서 아름답게 웃고 있다.
선교지는 언어가 다르네
“선교사 님! 간밤에 좀도둑이 들어와 타이어를 훔쳐갔어요. 이를 어쩌지요?”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갓 파송된 임은미 선교사는 (지금은 리무르라고 나이로비에서 한시간 떨어진 곳에서 사역하고 있음) 그곳으로 자신을 이끈 선배 선교사 사모님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몇 개 훔쳐갔어요?”
놀란 목소리 대신 담담하게 건네져 온 어조에 약간 당황한 임은미 선교사가 대답했습니다.
“한 개인데요.”
“아 감사하네요! 두 개가 아니고 한 개 훔쳐갔으니까요.”
케냐는 종족 분쟁을 겪고 있기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30~40명 단위의 떼도둑이 들끓을 만큼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곳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선배 선교사 사모님의 말에 수긍을 하지만 처음 겪는 임 선교사로서는 무척 심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임 선교사는 아주 새로운 사실을 인지해냈습니다. ‘선교지는 언어가 다르구나!’
감사는 생존 기술
하나님을 섬기는 목회자로서 누구보다 감사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던 임은미 선교사는 그날 이후 케냐에서의 감사는 ‘생존 기술(survival skill)’임을 직시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생활을 지켜나갔습니다.
“물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들어오면 물이 나올 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물이 나오고 전기가 안 들어오면 전기가 들어올 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안 들어오면 물도 들어오고 전기도 들어온 날을 추억하며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케냐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의 감사는 필수입니다.”
감사를 전하는 감사나눔신문사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이 말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에 근거해 감사를 신앙적으로 해석해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듯한 생활전사의 면모가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침없는 임 선교사의 그 다음 말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사가 습관이 되면 인생이 편안해지고, 불평이 습관이 되면 인생이 불편해집니다.”
필요할 때마다 채워진 묵상의 힘
감사 전도사이자 가족웃음연구소 이성미 소장의 소개로 임 선교사가 감사나눔신문을 찾은 날은 2018년의 마지막인 12월 31일 오후였습니다. 새해맞이에 마음이 분주해질 그 시간, 임 선교사는 바쁜 일정을 쪼개 기꺼이 감사나눔신문에 들러 주었습니다.
“ 꽉찬 사역일정에 딸 결혼식까지 겹쳐 진짜 시간이 빡빡했어요. 근데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지하 주차장은 또 왜 이리 험난한지… 속에서 뭔가가 확 올라오는데 순간!! 이러면 안돼!! 더군다나 감사인터뷰를 하러 가는데 ! 바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왔어요. 하하하…근데 감사나눔신문사 재정은 괜찮아요?”
불편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신문사의 재정까지 생각해주시는 선교사님에 우리모두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궁금한 게 있어 되물었습니다. 재정에 관한 임 선교사의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돈 때문에 걱정 해본 적이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일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돈이 없으면 쉬라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돈이 필요할 때면 돈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묵상노트를 쓰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받아보는 분들도 꽤 계십니다. 거기에 저는 솔직히 씁니다. 아이들 먹일 간식비가 있으면 좋겠다, 앰프 구입비가 있으면 좋겠다 등등을 말하면 문자가 날라 옵니다. 계좌번호 알려 달라고요. 그럼 감사해 하면서 알려줍니다.”
에너지 넘치는 임은미 선교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른한 오후는 틈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무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예쁜가요? 예쁜 사람에게만 예쁘게 보여요”라는 임은미 선교사의 말에 모두 “예뻐요”를 말한 참가자들이 ‘감사 미소’를 짓고 있다
열정의 사람
임은미 선교사에 대해 소개해드립니다. 2018년 11월 출간한 ‘여호와는 해요 방패라’는 책에서 일부만 옮겨 오겠습니다.
‘해외 유학생들의 부흥 집회인 코스타(Kosta)의 ‘인기 강사’로 소문이 나면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임은미 선교사는 한마디로 ‘열정의 사람’이다.
경기여고 3학년 재학 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목회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신학대학교에서 만난 미국인 빌 뉴콤(Bill Newcomb)과 결혼하게 된다. 자녀로는 친딸 수진이와 양딸 수정이, 그리고 후원자로서 양육하고 있는 7명의 아이들이 있다.(지금은 모두 분가하고 없다.)
이 외에도 임 선교사를 수식하는 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지면상 다 소개해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선한 ‘오지랖’
제갈정웅 이사장이 물었습니다. 그 많은 감사 가운데 3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첫번째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절친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요. 하나님과 소통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장점을 가지고 중보기도를 많이 합니다. 게임 중독자를 보면 ‘게임중독이 떠나갈지어다’, 불륜을 보면, ‘헤어질지어다. 가정으로 돌아갈지어다’, 임산부를 보면, ‘순산할지어다’라고 기도해줍니다. 참 오지랖도 넓죠?”
이처럼 선한 ‘오지랖’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지난 2011년 임은미 선교사의 선교 활동이 KBS에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희생과 사랑으로 봉사하고 있는 한국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임 선교사가 나온 제목은 ‘케냐, 9남매의 꿈’이었습니다.(‘희망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임)
항상 밝고 즐겁게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저게 진짜일까?’라는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법했습니다.
그런데 늘 ‘I love you’가 있기까지는 임은미 선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함께 살았던 케냐 아이들은 남편이 어느 날 말도 없이 데리고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 중고등부 아이들이었기에 저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한 집에 산다는 게 어디 쉽습니까?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모든 걸 감당했습니다. 그래도 순간순간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 대적기도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깨달은 게 대적기도를 해야 될 상황에서 감사기도로 바꿨을 때 더 파워풀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불평을 해?
임은미 선교사의 두 번째 감사는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설교를 하고 케냐에 돌아가도 남편은 공항에 항상 꽃을 갖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느라고 수고했어요. 당신이 집에 있으면 내가 편하지만 내가 좀 불편해도 당신이 나가서 설교를 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남편과 결혼 뒤 남편이 제게 물었습니다. ‘What is your dream?’ 그래서 저는 여자 목사가 되겠다고 했고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델 출신인 남편은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저와 함께 선교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남편은 영화 세 편을 만들었으니 남편의 꿈도 이루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임 선교사의 세 번째 감사는 딸 수진이었습니다.
“딸과 둘이서 잠시 집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구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는 정형외과 의사 분이 1인용 병동에 묵으면 어떠냐고 해서 그곳에 갔습니다. 씻으려고 하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한테 미안해하고 있는데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선교사 딸인데 이럴 때 불평하겠어?” 그때 우리 수진이는 13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처럼 고마운 딸이 있었기에 제가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에도 충분히 감동이 오는데, 임 선교사는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자기 자식도 제대로 못 키우는 데 사역한다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니 자식이나 잘 키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케냐 아이들과도 흥겹게 지내는 수진이가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를 아는 사람
‘그러니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것까지 감사, 그러면서 감사.’
임은미 선교사가 실천하는 감사 항목입니다. 한마디로 ‘범사 감사’입니다. 언제 어떻게 감사가 임 선교사의 삶에 필수 항목이 되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감사를 알았고 실천했는데 그 간증을 전호윤 목사님에게 했더니 목사님이 제가 요즘 자주 쓰는 위의 말씀으로 저의 간증을 요약해 주셨어요.”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감사나눔신문 독자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감사나눔신문이 기독교신문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사역하는 선교사인 만큼 성경 구절로 대신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작은 감사로 시작해서 가족 감사로 서로 사랑하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나중에 함께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감사 에너지를 한 가득 쏟아놓은 임은미 선교사는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떠났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번 8월 말에 케냐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처럼 언제 어디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기쁨과 감사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임은미 선교사가 떠나고 난 뒤 ‘여호와는 해요 방패라’를 펼쳐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 VS.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를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감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이제 결혼해요!’ – 임은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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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분리를 꿈꿉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연합을 꿈꾸지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갈구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죄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주님의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가 정말 안…
“조국청년을 보내주시면, 세계선교를 주님께”
케냐 선교 임은미 목사, 빌 뉴콤 목사 그리고 수진
김현종 목사(전주창성교회)와 임은미 목사의 인연은 2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여년전만해도 아프리카 케냐 선교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임은미 목사가 병아리 선교사 시절부터 쭉 지켜보며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 데다 창성교회 성도들의 후원과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고 전하는 임 목사는 24일 삼일밤 예배에 남편인 빌 뉴콤 목사와 딸 수진양과 함께 참석했다.
이날 특별강사로 초청되어 남편인 빌 뉴콤 목사의 설교와 임은미 목사의 통역으로 진행됐는데 임 목사의 간증과 딸 수진양의 깜짝간증도 있었다.
빌 뉴콤 목사는 설교를 통해 “사람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절대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삶이 메말라 마음의 가뭄이 올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렵고 힘든시기에 하나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원하신다”
며 하나님앞에 우리가 약하다 느껴질때가 오히려 무언가 해야한다고전했다. 또 부인 임 목사와 결혼할 당시 장인 어른께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약속했는데 너무 바빠서 약속 못 지켰다면서 서투른 한국말로 이해해달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임은미 목사는 간증에서 아프리카 케냐의 선교활동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이 현지인들이 ‘받는 것에는 익숙한데 주는 것이 안됐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부부 선교사의 딸 수진양은 꼬마 선교사다. 수진양은 예수님께서 누추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지만 목적이 있었기에 그런 배경은 문제가 안된다면서 아프리카 한 명의 아이라도 목적이 생긴다면 비록 떨리지만 말씀을 전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하나님 말씀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 목적을 이뤄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초등학생의 어린나이지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지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 정부의 신임을 얻어 이제는 고등학교도 세워 토요일마다 성경을 가르칠 것이며 기도원과 보건소도 지을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지속적으로 중보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조국의 청년들을 보내주시면, 세계선교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또다른 비전을 내비친 그녀는 쉴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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