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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 (테니스 선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덕희(1953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 은퇴한 여자 테니스 선수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테니스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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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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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테니스 스타 이덕희, 세종시에 둥지 튼다

테니스 스타 이덕희(22)가 서울시청에서 세종시청으로 이적했다. 만 3년 동안 몸담았던 서울시청과의 계약이 지난해 말로 종료되고 올해 1월 1일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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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jsori.com

Date Published: 9/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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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청각장애 테니스 선수 이덕희 ‘들을 수 없지만 꿈꿀 수는 …

이덕희(21·서울시청)는 ‘스타들의 스타’다. 현재 남자단식 세계랭킹 1·2위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와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든든한 응원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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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sedaily.com

Date Published: 5/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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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 – 도전은 아무것도 아니다..테니스는 나의 모든것.. 멈출 …

ATP 이덕희 스토리 22살 이덕희의 현재 랭킹은 233위다. 객관적 평가로 테니스 선수로 성공 했다고 볼수 없는 랭킹이다. 귀가 잘 안들리다 보니 말도 잘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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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enniseye.com

Date Published: 10/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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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 국제테니스연맹 이집트 대회 남자 단식 우승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이덕희(430위·세종시청)가 국제테니스연맹(ITF) 이집트 남자 퓨처스 대회(총상금 1만5천 달러) 단식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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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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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테니스 프로 이덕희 – 체육 포털

이덕희의 WTA(세계여자프로테니스협회) 기록은 실로 휘황찬란하다. 그녀를 첫 테니스 프로라 하는 것은 WTA가 주최하는 프로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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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ortal.sports.or.kr

Date Published: 3/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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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vs임용규 제75회 한국테니스선수권대회 결승 1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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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덕희 테니스

  • Author: 정진화테니스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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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1.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EXyTvj1Ypw

이덕희 (테니스 선수)

이덕희(1953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 은퇴한 여자 테니스 선수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테니스 선수이다.

선수 경력 [ 편집 ]

이덕희는 1972년 12월 호주 오픈 본선에 만 19세의 나이로 참가해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 슬램 대회 본선에 출전했다. 그녀는 첫 경기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팸 휘트크로스에게 6-4, 7-5로 승리하며 2회전에 진출,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본선 승리도 기록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는 양정순과 함께 단체 금메달을 획득했다. 국제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프로 선수로 등록하면서부터이다. 그녀는 이때부터 WTA 투어 활동을 시작했다.

이덕희는 1980년 프랑스 오픈 1회전에서 독일의 클라우디아 코데 킬쉬를 상대로 두 번째 메이저 대회 본선 승리를 기록하였다. 또한 이 해에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하였다.

1981년 US 오픈에서 이덕희는 1회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잔 리오, 2회전에서 미국의 수잔 매스커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3회전에서 1978년 프랑스 오픈 우승자인 루마니아의 비르지니아 루지치마저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4회전에 진출했다. 16강이 겨루는 4회전에서 그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하나 만들리코바에게 완패했는데, 만들리코바는 이후 계속 승리를 거듭하여 결국 대회 우승자가 되었다. 이 해 이덕희는 계속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당시 대한민국 테니스 선수로는 역대 최고 랭킹인 세계 랭킹 34위에 올랐다.

1982년 1월 미국의 포트 마이어(Fort Myer)에서 열린 대회 결승에 진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본 버마크를 6-0, 6-3으로 꺾고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투어 대회 우승을 거뒀다. 이 해 힐튼헤드 대회에서도 영국의 버지니아 웨이드, 루마니아의 비르지니아 루지치 등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을 꺾으며 16강에 올랐고, 독일 오픈에서는 전 세계 랭킹 1위였던 빌리 진 킹을 꺾으며 8강까지 올랐다. 이 해 US 오픈에서는 3회전에 진출하였다.

이덕희는 1983년 만 30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그녀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 총 14회 출전하여 그 가운데 11회는 2회전 이상 진출하였다.

은퇴 이후 [ 편집 ]

그녀는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대한민국 유소년 테니스의 발전을 위해 사재를 털어 매년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 주니어 대회인 이덕희배 테니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한민국 테니스사에서의 위치 [ 편집 ]

이덕희의 메이저 대회 16강 진출은 남자 프로 투어인 ATP 투어에서 이형택이 2000년 US 오픈 16강을 기록할 때까지 대한민국 테니스 사상 유일한 기록이었다. 이덕희의 투어 대회 우승 역시 이형택이 2003년 시드니 대회에서 우승할 때까지 유일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정현이 2018년 호주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면서 깨졌다.

참고 자료 [ 편집 ]

박일균 저, 《한국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출전사》

테니스 코리아 홈페이지

‘청각장애’ 테니스 스타 이덕희, 세종시에 둥지 튼다

서울시청서 세종시청으로 이적, 3년 계약… 현재 제주도서 동료들과 훈련 중, 입단식 등은 미정

소리 전혀 못 들어, 공 움직임만 보고 플레이… 각고의 노력 끝에 또래중 정상급 세계 랭킹 보유

발음하는 상대방 입 모양 보고 의사 파악… 수어(手語) 모르는 상대와는 휴대전화 문자로 대화

청각장애를 가진 테니스 스타로 유명한 이덕희(22)가 세종시청으로 이적했다. 2018 호주오픈에서 테니스 경기를 하고 있는 이덕희(가운데). (호주오픈 예선 동영상 캡처)

테니스 스타 이덕희(22)가 서울시청에서 세종시청으로 이적했다.

만 3년 동안 몸담았던 서울시청과의 계약이 지난해 말로 종료되고 올해 1월 1일부터 세종시청 소속이 됐다.

세종시는 당초 5일 세종시청에서 이덕희 입단식을 열고 언론과 세종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제주도에서 훈련 중이어서 이덕희의 입단식은 이달 말 또는 2월 초쯤으로 미뤄진 상태다.

기존의 세종시청 소속 남녀 테니스 선수 10명도 이덕희와 함께 현재 제주도에서 훈련 중이라고 세종시는 말했다.

이덕희의 세종시청 이적이 주목받는 것은 그가 주니어 시절부터 각종 국제대회에서 동년배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놀라운 성과를 내 온 것 외에도 청각장애 3급의 장애인 선수라는 점도 있다.

충북 제천에서 출생한 뒤 일곱 살 때 테니스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진 이덕희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들을 수 없는 선천성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이런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테니스 라켓에 공이 부딪힐 때마다 나는 퍽 하는 큰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상대 선수가 내는 기합이나 움직임에 따라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때문에 이덕희는 오로지 상대 선수의 움직임 및 공이 날아오는 모습만 보고 플레이를 한다. 테니스 선수로는 치명적인 핸디캡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도,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또래 중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랭킹을 유지해 왔다.

말을 들을 수 없는 이덕희는 평소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발음하는 입 모양을 보고 상대의 의사를 파악할 수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화, 즉 수어(手語)를 할 수 없는 상대와 대화를 해야 할 때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대화를 한다고. 급하면 필담을 하는 방법도 쓴다.

한편 이덕희는 만 14세 11개월 때인 2013년 4월 일본 쓰쿠바대학교 국제 퓨처스 대회에 출전해 남자 단식 본선 1회전에서 승리하며 ATP 랭킹포인트를 따내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만 15세도 안 된, 그것도 청각장애를 지닌 주니어 선수가 프로 세계 랭킹인 ATP 싱글 랭킹을 부여받는 일을 해낸 것. 이는 당시 전세계 ATP 프로 랭킹 선수 중 최연소 선수가 된 일이기도 했다.

청각장애를 지닌 이덕희의 이같은 스토리는 스페인의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이 알게 됐고, 라파엘 라달이 2013년 9월 내한했을 때 이덕희와 만나 레슨을 하는 행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지난해에는 국내 대회에 집중, 작년 11월 열린 제75회 한국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덕희는 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매니지먼트 소속사인 S&B컴퍼니를 통해 “꼭 우승하고 싶던 대회였다. 우승해 기쁘다”며 “한국 테니스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덕희 부친 이상진씨는 “덕희가 현재 제주도에서 훈련 중이어서 세종시청 입단식 등의 일정은 아직 미정”이라면서 “설날(2월 12일) 전에는 제천 집과 세종시로 돌아올 것이다. 새롭게 둥지를 튼 세종시의 시민들이 덕희를 지켜봐 주고 사랑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2018 호주오픈 예선 결승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 이덕희(호주오픈 예선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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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청각장애 테니스 선수 이덕희 “들을 수 없지만 꿈꿀 수는 있어…우상 페더러와 붙어 봐야죠”

청각장애 선수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사상 첫 승리를 거둔 이덕희 선수./성남=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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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프랑스 오픈이 열린 파리 스타 드 롤랑가로에서 라파엘 나달(오른쪽)과 훈련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이덕희. /사진제공=S&B컴퍼니

“아, 꿈이었구나….”청각장애 3급의 이덕희(21·서울시청)는 종종 ‘들을 수 있는 꿈’을 꾼다. “친구랑 자유롭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탁’ 하고 깨요. 그제야 꿈이었다는 것을 알죠.”이덕희는 테니스로 꿈의 무대인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하나다. 지난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전해진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 단식 본선 1회전 승리 소식은 ATP 투어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장식했다. 미국 USA투데이·CNN·CBS, 영국 BBC, 프랑스 르파리지앵, 호주 뉴스닷컴, 스페인 아스 등 세계 주요 매체들도 비중 있게 다뤘다. 청각장애 선수가 ATP 투어 단식 본선에서 승리한 것은 이덕희가 역사상 처음이다.최근 경기 성남의 YnS테니스아카데미에서 이덕희를 만났다. 전담 코치인 윤용일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덕희는 경기나 연습 중 보호대를 차는 양 손목만 빼고는 온통 구릿빛이었다. 악수하며 잡은 오른손은 크고 작은 굳은살로 가득해 나무껍질 같았다. 3월부터 이덕희를 맡은 윤 코치는 “테니스 선수 중에서도 특히 굳은살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이덕희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잘 안 들렸다. 돌 무렵 이를 발견한 부모는 이후 청각장애 특수학교 유치부에 보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일반 학교로 전학 보내 일반 중고교를 나오게 했다. 어머니 박미자씨는 “우리 가족은 (이)덕희가 장애를 부끄러움이 아닌 약간의 불편함으로만 생각하고 비장애인들과도 잘 어울리기를 바랐다. 그래서 유치부 때도 오전에는 특수학교, 오후에는 일반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수화 대신 구화(口話)를 가르쳤다”고 돌아봤다.테니스 라켓은 일곱 살 때 처음 잡았다. 테니스 선수인 사촌 형을 따라간 코트에서 첫날부터 테니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덕희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신사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운동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이후 한 단계씩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매니지먼트사 직원이 입 모양을 알아보기 쉽게 질문을 전달하고 이덕희의 답변을 직원이 다시 옮기는 식으로 이날 인터뷰는 진행됐다.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덕희는 몇 살 위의 형들을 주니어 대회에서 심심찮게 이겼다. 2014년에 한국 선수 역대 최고인 세계 주니어 랭킹 3위에 올랐고 한국 최연소로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했다. 2016년의 ATP 랭킹 톱200 진입 역시 한국 최연소 기록이었다. ATP 투어보다 한 등급 낮은 챌린저 대회에서 2016년과 2017년 한 차례씩 준우승한 뒤로는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열아홉에 ATP 랭킹 130위를 찍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기량 향상에 정체가 왔고 테니스 선수로는 작은 175㎝의 키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흘러나왔다.그러던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다. 대기순번 앞순위 선수들이 잇따라 출전을 포기하면서 투어 대회 본선 티켓을 처음으로 따낸 것이다. 일생일대라 할 만한 기회를 이덕희는 놓치지 않았다. 첫 출전인데도 자신보다 랭킹이 훨씬 높은 세계 120위 선수(이덕희는 당시 212위)를 2대0으로 꺾었다. 키 차이가 20㎝ 이상 나는 41위 강호와의 2회전(1대2 패)에서도 첫 세트를 따내는 등 잘 싸웠다. 지금은 왼손가락 부상으로 몇 주간 강제휴식을 취하게 됐지만 208위인 현재 랭킹을 부지런히 끌어올려 내년 1월 호주 오픈을 통해 그랜드슬램 대회 본선에 데뷔한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 지독한 침체기 때도 정규훈련 시작 전에 이른 아침부터 혼자 코트에 나가 스트로크 연습을 하며 ‘한 번씩 이렇게 슬럼프가 오는구나’ 하고 넘겼던 이덕희다. 지난해 호주 오픈 4강 신화를 쓴 정현을 과거에 지도했던 윤 코치는 “그라운드 스트로크로는 100위 내 진입에 부족함이 없다. 발리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서브 게임을 지키는 능력과 네트 플레이 등을 조금만 더 보완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이덕희를 평가했다.이덕희는 청각장애 3급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머니 박씨에 따르면 사실상 2급에 가깝다.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심판의 콜을 확인하지 못해 멈추지 않고 경기를 이어나갈 때도 더러 있다. 서브 에이스인데 모르고 세컨드 서브를 넣기도 한다. 이런 핸디캡을 악용하는 상대도 가끔 있다고 한다.듣지 못하는 대신 시력이 좋다. 이덕희는 “시력은 양쪽 다 1.5다. 톱스핀인지 슬라이스인지 공의 모양을 보고 구분한다”고 했다. 윤 코치는 “공이 네트에 맞고 넘어올 때는 보통 소리를 듣고 다음 동작을 가져가는데 (이)덕희는 미세한 네트의 움직임을 눈으로 판단해낸다”며 “청각 의존도가 높은 테니스를 듣지 못하면서도 곧잘 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만약 들을 수 있다면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뭐냐고 물었다. 이덕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장 듣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고 답했다. “테니스를 하는 게 내 삶이라서 다행이고 좋다” “테니스를 일찍 만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던 그였지만 테니스공 소리보다 간절한 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소리인 것 같았다.소리에 대한 갈망은 당연하지만 이덕희는 평소 불편함을 잊고 산다. 라켓을 잡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오래 본 주변 사람들과는 구화로 소통이 꽤 원활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투어 첫 승이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자 그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우승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칭찬해주는 거죠?” 어머니 박씨는 “(이)덕희는 자기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저나 애 아빠, 덕희 동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이덕희는 과거 장애인 체육계에서 활동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장애인들과 겨루면 우승도 훨씬 더 많이 할 가능성이 크고 패럴림픽 메달로 꽤 많은 연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덕희는 그러나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1위를 하는 게 목표였다. 이번 투어 대회 경험을 통해 랭킹이 높은 선수와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8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자동차 등 스폰서의 후원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덕희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아시안게임 남자단식 사상 한국 선수로 12년 만에 메달(동메달)을 따내는 기록도 남겼다.질문과 답변이 전달되는 사이마다 이덕희는 벽에 붙은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는 “그랜드슬램 대회 본선에서 우상 페더러와 경기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 “괜히 안 들리는 척하는 것”이라는 조롱이 가장 가슴 아팠다는 그는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하자 “주변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흔들리지 말고 기죽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성남=양준호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오승현기자△1998년 단양 △2013년 남자프로테니스(ATP) 최연소(만 14세11개월) 시니어 랭킹 포인트 획득 △2014년 주니어 랭킹 3위 △2014~2017년 퓨처스대회 열한 차례 우승 △2016년 대만 가오슝 챌린저 준우승 △2017년 서울 챌린저 준우승 △2017년 ATP 랭킹 130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단식 동메달 △2019년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 본선 1회전 승리이덕희(21·서울시청)는 ‘스타들의 스타’다. 현재 남자단식 세계랭킹 1·2위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와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든든한 응원군이다.시작은 나달이었다. 지난 2013년 만 15세도 되기 전의 이덕희가 일본 쓰쿠바 퓨처스(챌린저 아래 등급의 대회) 본선 1회전에서 승리, 남자프로테니스(ATP) 성인 랭킹 포인트를 처음 따냈을 때였다. 나달은 소셜미디어에 “이덕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적었다. 얼마 뒤 방한해서는 이덕희를 직접 만나 “듣지 못하는 것은 테니스에서 큰 단점인데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가 주니어와 프로 선수들은 물론 사회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격려했다. 2014년 프랑스 오픈을 앞두고는 이덕희를 초청해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조코비치와는 2015년 윔블던 당시 함께 훈련했다. 조코비치는 “주니어 단식에서 역전승하는 모습을 봤다. 장애를 이겨내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앞서 그해 호주 오픈 때 이덕희는 조코비치와 대회 홍보영상도 찍었다.이번 ATP 투어 대회 첫 승 소식에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앤디 머리(영국)도 격려 릴레이에 동참했다. 그는 “만일 내가 헤드폰을 쓰고 경기한다면 공의 스피드나 스핀을 파악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경기에서 청각이 담당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리한 조건”이라며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경기력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이덕희는 도미니크 팀(4위·오스트리아), 니시코리 게이(7위·일본), 2000년 말 세계 1위까지 올랐던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 최강희 축구감독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응원해준 것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랜드슬램 대회 본선을 누빈다는 것 말고 또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덕희는 “각계의 응원 메시지와 ‘할 수 있다’는 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영광스럽고 감동적”이라며 “더 열심히 해 세계 무대에 자리 잡고 싶다. 그리고는 저한테 관심을 가져준 현역 선수들을 반드시 코트에서 만나 감사했다는 말을 직접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전은 아무것도 아니다..테니스는 나의 모든것.. 멈출 수 없다.

ATP 이덕희 스토리

22살 이덕희의 현재 랭킹은 233위다. 객관적 평가로 테니스 선수로 성공 했다고 볼수 없는 랭킹이다.

귀가 잘 안들리다 보니 말도 잘 하지 못한다. 경기중에는 선심이나 체어 엄파이어의 콜이 들리지 않아 더욱 상대의 모션과 리턴되는 공에 집중하다보니 체력 소모가 많다.

과연 테니스로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이덕희는 “테니스가 나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해준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테니스를 한다”라고 밝혔다.

그가 원하는 꿈의 최종점이 어디인지, 마지막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이덕희는 오늘도 내일도..라켓을 들고 세계 무대로 나선다.

6살때 청각 장애자라는것을 알고.. 엄마의 입술 모양을 보고 처음 말하는법을 익혔던 것처럼 .. 테니스에서도 도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이덕희를 응원한다. 그가 포기하지 않는 한은…

https://tenniseye.com/board_BXPZ63/671022

이덕희, 국제테니스연맹 이집트 대회 남자 단식 우승

우승컵을 들고 포즈를 취한 이덕희 [S&B 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이덕희(430위·세종시청)가 국제테니스연맹(ITF) 이집트 남자 퓨처스 대회(총상금 1만5천 달러) 단식 정상에 올랐다.

이덕희는 20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단식 결승에서 벤 파타엘(530위·이스라엘)을 2-1(6-2 1-6 7-5)로 제압했다.

청각 장애를 안고 뛰는 선수로 잘 알려진 이덕희는 이로써 2019년 12월 태국 논타부리 대회(총상금 1만5천 달러) 이후 2년 2개월 만에 퓨처스 대회 정상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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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남자프로테니스(ATP) 단식 세계 랭킹 130위까지 올랐던 이덕희는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아시아권 대회들이 대부분 취소되는 바람에 현재 세계 랭킹이 400위 밖으로 밀렸다.

2020년 11월 한국선수권 등 국내 대회를 제패했던 이덕희는 “오랜만의 우승이라 더 기쁘다”며 “계속 좋은 성적을 내서 챌린저에 복귀하고 ATP 투어 도전도 이어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덕희가 이날 우승한 퓨처스 대회는 투어, 챌린저 다음 등급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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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테니스 프로 이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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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한국 스포츠가 그건 안 되는 줄 알았다. 수영, 피겨 스케이팅, 펜싱, 스피드스케이팅 등에서 한국 스포츠가 올림픽 무대 금메달 시상대에 서리라고 예상한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박태환, 김연아, 김영호, 김지연, 이상화 등이 이를 보기 좋게 뒤집었다. 개인종목뿐만 아니라 월드컵 단골 출전종목 축구나 야구 등에서도 한국 스포츠의 약진은 눈부시다. 하지만 드물게 진화가 느린 종목도 있다. 테니스가 대표적이다.

혈혈단신으로 WTA 테니스 무대에

1980년대 초만 해도 일본 테니스는 한국에 비해 한 수 아래였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니시코리 게이(26)가 ATP(세계남자프로테니스투어) 랭킹 4위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수십 년째 답보상태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복식 우승자 정현(20·IMG)을 비롯해 주니어 세계 최강급 홍성찬(19·브리엄컴퍼니), 장수정(21) 등의 선전으로 최근 한국테니스 앞날에 녹색불을 밝히기는 했으나 이들도 수십 년전 이덕희(63), 이형택(40) 활약에 비하면 아직 미흡하다. 특히 한국 최초의 테니스 프로 이덕희! 머리에 밴드를 질끈 동여매고 라켓 하나 달랑 든 채 런던 윔블던으로, 파리 롤랑 가르스로 세계 테니스 무대를 단신 종횡하던 그녀는 남녀 통틀어 모든 면에서 한국 최초였고 아직까지도 한국 최고로 통한다. 이덕희의 WTA(세계여자프로테니스협회) 기록은 실로 휘황찬란하다.

그녀를 첫 테니스 프로라 하는 것은 WTA가 주최하는 프로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투어 대회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이었다. 이덕희는 1979년 미국에 테니스유학 떠나 스폰서도, 매니저도 없이 혼자 프로선수 등록하고 대회에 나갔다. 몇 년 후 여자골프 구옥희가 이덕희처럼 혼자 일본과 미국에서 좌충우돌한다. 1988 서울올림픽으로 한국 국가체육이 정점을 향해 달리는 가운데 개인 스포츠, 프로 스포츠로 다양화하던 시기의 파이오니어들이었다.

한국인 최초 그랜드슬램 대회 출전 그리고 첫승

이덕희는 1953년 생, 한국 테니스 메카인 전북 남원출신이다. 남원여중 1학년 때 체육교사 권유로 라켓을 잡았고 곧바로 서울로 테니스 유학, 중앙여중·고 선수로 전국 주니어 코트를 석권한다. 이때 만난 평생 멘토가 고(故) 장호 홍종문(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이다. 장호는 스승이자 아버지로 이덕희를 보살폈다.

“홍(종문) 회장님은 아버지 이상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항상 기량 향상을 위해 뒷바라지 해주셨습니다. 아마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한국 테니스에 이덕희란 이름 석자도 없었을 겁니다.”

이덕희는 홍종문이 단장인 1972년(19세) 전일본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여자 단, 복식을 모두 석권한다. 이어 같은 해 12월 대망의 호주오픈에서 역사를 쓴다. 이덕희는 단식 1회전에서 홈코트인 팸 휘트크로스(호주)를 2-0(6-4, 7-5)으로 물리쳐 한국인 최초 그랜드슬램 대회 출전과 그랜드 슬램 첫 승을 기록한다. 함께 호주오픈에 나선 양정순(69·한국여성테니스연맹 전무)도 1회전 승을 거두고 나란히 2회전에 진출했으나 이덕희보다 여섯 살 연상이어서 ‘최연소’기록은 양보했다. 이덕희의 프로 경력이 만개하기 위해선, 그러나 8년을 기다려야 했다. 대한체육회와 대한테니스협회가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원했기 때문이다. 국가체육, 금메달이 개인 성취보다 당연히 우선시되던 시기였다. 요즘 잘 나가는 한 당구선구는 몇 년 전 “제가 혼자 연습해서 대회 우승하는 거예요. 나라가 해 준 것 없어요.” 그 말이 맞기도 하다. 이덕희도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테니스 광이자 대표적인 국가체육 지휘관인 고(故) 소강 민관식(전 대한체육회장)으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분위기, ‘체육공화국’ 전성기였다.

이덕희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양정순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땄고 개인전 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4년 후 1978 방콕아시안 게임에서도 단·복식 2관왕과 단체전 은메달을 딴다. 이때 별명이 아시아 테니스 ‘여제’. 하지만 아마추어로서 ‘메달 의무’를 마친 뒤 그녀는 ‘테니스 집시’가 된다. 세계 각지를 떠돌며 강호들에게 혼나고 배우고 또 일격을 가하기도 하면서 프로페셔널로 단련된다. 소속도, 스폰서도 없는 이 신원미상 떠돌이 실력자를 언론에선 ‘집시’로 불렀다.

1981년 US오픈 16강 진출 파란

이덕희는 성균관대, 경희대 대학원, 조흥은행을 거쳐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최초의 프로선수로 등록한 뒤 80년 4개 그랜드슬램대회에 모두 출전한다.

1981년 US오픈에서는 프랑스오픈 우승자 버지니아 루지치(루마니아)를 격파, 16강에 올라 세계 무대에 풍파를 일으킨다. 올해 초 호주오픈 1회전서 정현이 ATP 남자 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29·세르비아)와 맞붙어 관심을 모은 적 있다. 결과는 정현의 0-3 완패. 하지만 수 십 년 전 비슷한 조우에선 동양의 무명이 당시 WTA 5위의 톱프로 루지치를 제압(2-1)해 코트를 발칵 뒤집었다.

“빌리 진 킹, 나브라틸로바, 크리스 에버트 등 수많은 강호와 경기를 치렀지만 루지치가 가장 기억납니다. 1982년 캐나디언오픈과 US오픈에서 그를 연속해서 만났습니다. US오픈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힘겹게 이겼더니 이후 그 사람이 코트 밖에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이더라고요(웃음).”

‘US오픈’이란 이름은 종목을 떠나 한국과 인연이 깊다. 지난 1998년 ‘맨발의 박세리’가 득의의 우승 트러블 샷으로 당시 외환위기에 처한 실의을 후련히 날린 것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US오픈이다.

1980년대 초반 지구촌 테니스 전성기의 WTA 메이저대회인 테니스 US오픈 역시 현지에선 그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이덕희는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본선1회전(128강)에서 수산 레오(호주)를 2-0(6-3, 6-4)으로 완파하고 기분좋게 스타트한다. 2회전(64강) 상대인 수산 매스커린(미국)에겐 첫 세트를 내준 뒤 2-1 역전승(6-7, 6-4, 7-5)을 거뒀고 3회전(32강) 상대 루지치와는 한 세트 씩 주고받은 뒤 마지막 듀스접전 끝에 2-1(6-1, 4-6, 7-5)로 신승했다. 당연히 현지 언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미국 테니스매거진은 이덕희를 “겁 없는 아시아 다크호스”라고 썼다. 이어 4회전(16강) 상대는 WTA 3위인 하나 만들리코바(체코·54). 이덕희보다 아홉 살 연하인 당시 19세 소녀 만들리코바는 이덕희를 2-0(6-1, 6-0)으로 완파하고 내쳐 우승컵까지 거머쥔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했다. 이덕희의 메이저 16강 진출은 남자 프로 이형택이 ATP 메이저인 2000년 US오픈(여기서도 ‘US오픈’!) 16강에 오를 때까지 19년 간 대한민국 테니스 사상 유일한 고지였다.

이 해 이덕희의 WTA랭킹은 34위까지 올랐다. 대한민국 프로테니스 사상 세계랭킹 50위 이내에 진입한 이는 현재까지 이덕희를 포함해 이형택(36위) 조윤정(45위) 등 단 세 명뿐이다. 2016년 4월 현재 샛별 정현의 ATP랭킹은 84위다. 이덕희가 기록한 ‘랭킹 34위’는 아직까지 한국 프로테니스가 오른 가장 높은 고지다.

이덕희는 이듬해인 1982년 마침내 투어 첫 승을 거둔다. WTA투어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 대회에서 남아공의 이본 베어마크를 2-0(6-0, 6-3)으로 이기고 한국인 최초 투어 챔피언에 등극한다. 32강부터 결승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 경기를 모두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2-0씩으로 이긴 완승 행진이었다. 우승상금 5천 달러. 이 역시 이형택이 2003년 ATP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세계 4위 페레로를 꺾고 우승할 때까지 21년간 유일한 투어 승리 기록이었다.

이덕희배 국제주니어대회의 탄생

1981, 1982년은 이덕희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녀는 1983년(30세) 열네 번째 그랜드 슬램인 US오픈을 끝으로 현역 은퇴한다. 이후 미국 LA에 정착해 재미사업가 조풍언 씨와 결혼하고 사업가로 승승장구한다. 와인체인점 ‘벤덤’, 가든스위트호텔, LA 근교 골프리조트 캘리포니아컨트리클럽 등이 그의 사업체다. 하지만 2001년 이덕희는 다시 코트로 돌아온다. 필생의 역작 ‘이덕희배ITF국제주니어테니스선수권’(이하 ‘이덕희 배’)과 함께다. 이 대회는 2001년 그녀가 사재 6천만 원을 털어 만들었다.

Q 대회를 왜 만들었나?

A “이덕희 배가 시작될 당시만 해도 국내에 국제주니어대회가 없었다. 장호배, 소강배 등 훌륭한 대회는 많다. 그러나 한국 테니스가 성장하기 위해 주니어들이 국제 랭킹을 쌓을 수 있는 국제대회 개최가 절실했다. 1980년대엔 프로스펙스가, 1990년대엔 나이키가 국제주니어대회를 지원했지만 모두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좀 오래 가는 거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걸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Q 보람 있나?

A “보람 뿐인가. 젊은 선수들이 스매싱할 때 나도 소녀가 된다. 테니스는 언제나 내 기쁨이다. 대회를 치르기 위해 국가대표 여성테니스 선수 출신 모임인 ‘마당회’(회장 정복희)가 기간 내내 자원봉사로 도와준다. 진행, 경기수준, 통역, 숙소에서 여느 외국대회 못지 않다. 정현, 홍성찬 등도 이 대회 우승자다. 언젠가 우리 후배들이 세계를 제패할 것으로 꼭 믿는다.”(언론 인터뷰 요약)

이덕희배 대회 취지는 ‘테니스 꿈나무들이 세계 랭킹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대회를 통해 국제무대를 향한 발판이 되고자 함’이다. ITF(국제테니스연맹) 주최의 해외 대회는 매년 수백 개지만 경비 등을 감안하면 대부분 주니어들에게 해외출전은 사실 ‘그림의 떡’이다.

이덕희배는 이들에게 15년째 안방에서 세계 수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덕희배는 주니어대회 중 가장 낮은 등급인 5그룹(G5)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2그룹(G2)으로 격상됐다. 이는 다른 국제 주니어대회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빠른 성장 속도다. 올해 제주, 순창, 김천 등에서 국제대회가 열리지만 이 대회는 모두 4, 5그룹이고 국내에서 이덕희배가 유일한 2그룹 대회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회 진행을 맡은 ‘마당회’ 역할이 컸다.

“외국 선수들을 비롯해 코치들이 이렇게 훌륭한 주니어 대회는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저도 세계 유명 대회를 많아 다녀봤지만 이만큼 진행이 원활한 대회는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마당회가 선수 출신이라서 선수의 입장으로 생각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겠죠. 무척 고맙고 자랑스럽죠”

이덕희가 뿌린 씨앗이 맺은 열매

이덕희는 여성 체육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여성체육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김운용 전 체육회장의 아호를 따 ‘윤곡체육상’이었으나 최근 규모를 확대시행하며 이름이 바뀌었다. 재미사업가이자 DJ 정권 유력한 후원자로 알려진 남편 조풍언 씨와는 2년 전 사별했다.

초창기 테니스 선수 중 남원 출신이 많다. 이덕희, 이순오, 김춘호 등. 이렇게 된 데는 전 실업테니스연맹 장영보 회장의 공이 결정적이다. 장영보는 성균관대 테니스 선수 시절부터 고향인 남원고와 남원여고를 중심으로 테니스를 보급했다. 남원여중 1년생 이덕희의 포핸드 스매싱과 주력을 보고 서울 유학을 주선한 것도 그였다. 전북 출신 정치거물인 소석 이철승이 테니스 매니아여서 일찍부터 일본에서 훈련용 라켓과 공을 사다 남원 주니어들을 뒷바라지 했다든지 김태정 전 법무장관이 남원지청장 재직 시 군단위에 불과한 남원에 6면 코트 시설을 주도적으로 마련한 것이 남원 테니스 발전을 가속시켰다. 이덕희는 이 토양에서 자연스레 조기교육에 접했고 홍종문, 장원보 등 멘토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행운아이기도 하다.

이형택이 이덕희의 US오픈 16강과 투어 우승 기록에 이르는데 약 20년이 걸렸다. 이형택과 그의 ‘키즈’인 정현, 홍성찬의 나이도 20년 정도 차이 난다. 이제 한국 테니스 중흥 시기가 온 걸까.

“제가 뛰던 70년대만 해도 일본은 테니스에 관한 한 우릴 따라오지 못했어요. 지금은 상황이 반대더군요. 하지만 우리라고 못 하라는 법 없어요. 협회 차원에서 장기적 지원책이 잘 마련되고 있고 미국 오렌지볼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주니어 기량은 이미 세계적이에요. 관리만 잘 하면 돼요.”

이덕희는 낙관하고 있다. 하긴 스포츠도 사회발전을 따른다. 골프, 피겨, 체조 등 개인종목 기량이 그간 긴 잠복기를 거치긴 했으나 세계수준으로 거의 동시에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하나, 테니스만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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