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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렸던 솔제니친의 데뷔작,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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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나무위키:대문

1951년 1월 1일[1]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기상 신호를 듣고 잠에서 깨어 강제 노동 후 취침에 들어가기 까지 꼬박 하루 동안 그와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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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8/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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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세계문학전집 13) – 교보문고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09월 30일 출간. Klover. 총 4 중. 4 9.7 (리뷰 9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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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9/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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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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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0/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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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의 하루’로 보는 우리 사회 – 광주드림

[백청일의 독서일기] (9)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오늘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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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jdream.com

Date Published: 6/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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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반 데니 소 비치 수용소 의 하루

  • Author: 문학줍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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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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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누군가 그랬다. 고전이란 “모두가 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대표작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이제야 만나니 말이다.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왠지 모를 미안함에 한 문장 한 문장 더 정성스럽게 읽었다.

솔제니친의 대표작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1956년에 소연방 최고재판소 군사심의관 회의에서 복권될 때까지 10년동안 작가 자신이 유형지를 돌며 경험한 수용소 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때의 수용소 경험은 이 작품을 비롯하여 솔제니친의 다른 작품인 〈암병동〉이나 〈제1영역 안에서〉,〈수용소 열도〉등의 소재가 되었고, 현실에서 직접 목격한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시대적 비극을 소재로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영하 수십도의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있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슈호프. 수용소의 일과는 새벽 다섯시부터 시작된다. 아침에 기상해서, 점호, 식사,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과정, 작업일정, 그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 등이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지나치다시피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기록하기 어려운 글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과 서로간의 경쟁이 존재하는 그곳도 하나의 세상이며 하나의 우주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1970년 솔제니친에게 노벨상을 수여 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수용소에 수용된 여러 인간군상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의 체제와 이념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이념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온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이념적 논쟁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삶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세상과 단절된 수용소의 하루를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울타리가 없는 우리네 일상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터로 나가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일과를 마무리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저녁시간을 개인적인 소일거리로 채우다가 잠자리에 드는 우리네 일상도 그 모습만 달리할 뿐 수용소의 하루는 대동소이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에겐 자유가 있지만, 수용소내의 그들에겐 자유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그들이 사는 하루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같은 시간, 같은 하루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절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제자리 대신 순번을 맞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208쪽) 라는 마지막 문단은 이 책의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슈호프나 강제노동수용소가 아닌 곳에서 지내는 우리에게도 하루라는 시간은 똑같다. 그 하루가 슈호프처럼 행운만 있거나, 아니면 불행한 일로만 가득한 하루로 편협되어 주어지지 않는다. 슈호프는 오늘 하루가 자신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하루라고 했지만, 책속의 그의 하루를 따라 가다보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일, 운이 없는 일도 있었지만 잠자리에 든 그의 뇌리에는 그 모든 기억을 뒤로하고 행복한 기억만 남았을 뿐이다.

우리네 삶은 행운이라는 시실과 불행이라는 날실로 엮어진 천과 같다. 행운과 불행은 거의 같은 분량으로 삶의 매순간 우리와 조우하지만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삶에 대한 만족감은 다르다. 행운과 불행 중 어떤 쪽을 주관적으로 보는냐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의해 슈호프처럼 강제노동수용소의 정치범에게도 어떤 하루는 행복할 수 있고, 자유세상에서 좋은 음식에 좋은 옷을 걸치고 사는 누군가에게 어떤 하루는 불행 할 수도 있다.

오늘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Today 라고도 하고 Present day 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어제처럼 반복된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선물 같은 날인 것이다. 구태의연한 문구를 예로 들자면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살아간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겐 간절한 내일이었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듯한 하루였고, 누군가에겐 선물 같은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건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죽는 것보다 살아내는 것이 더 힘겨운 수용소에서 슈호프가 살아 낸 하루는 일상에서 살아난 우리네 하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고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우리네 눈으로 보기에는 행복할 수 있는 그 어떤 조건도 없었지만, 그 어느 날이 행복했고, 그런 행복한 날이 삼천육백오십삼 일이 이어지고 슈호프는 형기를 마쳤다. 수용소의 일상에서 찾아낸 소소한 즐거움이 그가 살아낸 수용소의 하루를 행복한 하루로 만들었다. 자유롭게 사는 우리네보다 더 행복한 하루로 말이다. 슈호프를 통해 솔제니친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슈호프처럼 행복하냐고!

PS : 모처럼 쓰는 리뷰가 근 보름이 걸렸다. 오랫동안 글을 안쓰다보니 글 한편 쓰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 역시 글은 기술이 아니라, 습관의 산물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저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번역가 문예출판사 판: 이동현

민음사 판: 이영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 언어 러시아어 주제 수용소(굴락) 장르 자전적 소설 출판사 노비 미르 발행일 1963 페이지 158 (한국어판 251, 224) ISBN 0-451-52310-5

한국어판:

8-931-00406-0, 8-937-46013-0 OCLC번호 29526909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러시아어: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영어: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는 러시아의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6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책은 최초로 소련 강제수용소의 실체와 강제수용소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현실을 폭로했다.

줄거리 [ 편집 ]

1951년, 입소 전에는 평범한 농부였던 슈호프는 독소전에 참전했을 적에 포로로 잡힌것이 간첩으로 오인받아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목을 받고는 강제수용소에 입소한지 8년이 되었다. 어느 때처럼, 슈호프는 아침 5시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그는 작업을 피하기 위해 의무실에 가지만 이미 의무실 정원이 다 차서 그는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식사시간이 되자, 그는 배급받은 빵을 감추고는 작업에 나갔다. 작업은 발전소의 집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였다. 슈호프는 자질구래한 작업을 마치고는 체자리의 잔심부름 대가로 자기 몫에 체자리의 수프까지 두 그릇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운좋은 하루라고 생각하고는 잠이 든다.

등장 인물 [ 편집 ]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 주인공.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평범한 농부였으나 독소전이 일어나자 병사로 참전했다. 1943년 독일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으나, 간첩으로 판정되어 강제수용소에 들어왔다. 작품의 시점에서는 형기를 거의 마쳤다.

페추코프: 슈호프와 같은 막사를 쓰는 죄수. 전에는 고위 관직에 있었으나, 몰려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부유한 생활을 했었기에 항상 허기에 시달려 자신의 욕구를 참지 못한다. 수용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드레이 프로코피예비치 추린: 슈호프가 속해있는 104 작업반장.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에는 육군 일병이었으나 아버지가 쿨락(부농)이었다는 이유로 군에서 쫓겨났다. 이후 여러 곳을 떠돌다가 수용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체자리 마르코비치: 전직 영화 감독. 모스크바 출신으로 자신의 영화에 공산주의와 맞지 않는 표현을 넣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들어왔다. 다른 죄수들에 비해 풍족한 편이어서, 매 번 사식이나 신문같은게 들어있는 소포를 받는다. 일을 나갈 때도 다른 죄수들과 달리 관리직에서 일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있는 편이다.

부이노프스키: 전직 해군 중령. 전쟁 후 영국 해군의 제독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스파이로 몰려 수감된다. 수용소장에게 항의했다가 중영창에서 열흘 있을 것을 선고받는다. 해군에 있었기에 나름 지식이 많으며, 직선적인 성격이다.

킬리가스: 슈호프와 같은 작업반에 속해있는 일꾼이다. 라트비아출신으로, 익살스럽다.

세니카: 104반의 친구. 전쟁 중 귀를 다쳐 귀가 안들리게 되었으며,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고서도 세 번이나 탈출한 인물이다. 전후 포로를 인정하지 않는 소련의 원칙에 따라 수용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알료쉬카(알료사): 침례교도. 25년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 들어왔다. 막사에 성서를 숨겨두었으며, 신앙심이 독실하다. 무엇이든 시키는대로 도와주기로 유명하다.

고프치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들어왔다. 눈치가 빠르고 수용소의 생리에 밝아서 슈호프는 고프치크를 가리켜 “수용소의 거물”이 될 것이라 평가한다.

배경 [ 편집 ]

이 책의 작가인 솔제니친은 실제로 소련 강제수용소에서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복역한 적이 있었다. 그는 1945년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보내던 편지에 스탈린에 대한 “불손한 묘사”를 썼다는 이유로 잡혀들어와 8년 동안 수용소에서 지내야 했다.

솔제니친은 카자흐스탄에서 1957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62년 솔제니친은 소련 문학지였던 노비 미르(Новый мир, 신세계)에 원고를 보냈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는 이 소설이 수용소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평가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등장, 스탈린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소련 체제의 현실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를 통해 스탈린 시대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었다. 솔제니친의 원고는 몇 부분을 지운 뒤 다시 트바르돕스키에게 보내어 출판을 허용했다. 1962년 11월 소련에서 출판되었다.

책에 나오는 수용소는 솔제니친이 복무했었던 카자흐스탄 북부에 있는 카라간다의 수용소를 바탕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로 솔제니친은 이곳에서 8년의 형기를 보냈었다고 한다.

반응 [ 편집 ]

이 책은 1963년 출간된 이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작가인 솔제니친은 이 소설을 계기로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솔제니친은 반체제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세계문학전집 13)

미드 ’24’ 시리즈는 정확히 24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다루는 획기적인 연출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문학 고전에도 있었으니 바로 이 작품 이다. 억울하게 수감된 채 8년을 보내고 있는 슈호프의 ‘수용소의 하루’를 묘사하면서 작가의 모든 생각을 담아냈다. 웅변적이지도 않고, 감상적이지도 않고, 설명적이지도 않으면서, 그저 수용소 생활의 단면과 수감자들에 대한 간단한 사연 소개 만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하고 있다.억울한 옥살이에 개의치 않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소박한 희망으로 살아내는 슈호프의 일상을 보면서 지금의 나는 얼마나 호사스럽게 호강에 겨운 삶을 살고 있는가, 따라서 나는 참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문학의 위대함은 또 이렇게 빛난다.——————————————————————————————————————————————————————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온 죄목은 반역죄이다.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또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슈호프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결정을 내렸다.저녁이 되어, 이때쯤 여기서 인원 점검을 받을 때, 그 다음 수용소 문을 통과하여 막사 안으로 돌아올 때, 죄수들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이다. 지금 같은 때는 맹물 양배춧국이라 해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면, 죄수들은 마치 개선장군들처럼 위풍당당하게 손을 내두르며 행진해 들어온다. 기세가 당당하다.슈호프는 먹기 시작한다.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켠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이번 주 일요일을 다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그에게 오늘은 명절과 다름없는 날이다. 점심도 두 몫을 먹었고, 저녁도 두 몫을 먹게 된 것이다.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이반 데니소비치(슈호프, 바냐) / 부이노프스키(전직 해군 중령) / 안드레이 프로코피예비치(추린, 부농의 아들, 반장) / 체자리(전직 영화감독) / 알료쉬카(침례교도)——————————————————————————————————————————————————————솔제니친의 작품 속에 주로 등장하는 배경인 스탈린 시대의 강제수용소의 묘사는 스탈린의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악행에 대한 예리한 고발임과 동시에 그러한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서도 영원히 살아 있는 인간의 진실한 형상을 부각시키는 요소라는 점에서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살아 돋보인다. 이처럼 그의 모든 작품 속에는 정치권력에 대한 비난과 그 속에서 고통당하고 억압당하는 약하고 힘없는 약자에게 보내는 동정의 눈길과 깊은 사라으이 철학이 나타나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의 인간에 대한 사고이며 문학성이라고 할 수 있다.작가는 이러한 단순하고 소박하며 가장 비정치직이며, 어떤 사상이든 사상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고, 그저 단순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인내하고 가혹한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선한 것을 갈망하며 작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개인과, 가공할 힘, 권력으로 약자들을 구속하고 학대하는 역사의 한 장면을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진한 감동으로 고발함으로써, 소련에서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지배권력의 역사에 강한 비평을 하고 있다.이렇게 솔제니친은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죄없이 고통 당하는 힘없는 약자에 대한 숭고한 애정과 작가의 소명을 가지고 불의와 정치권력에 항거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며 그러한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04화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이반 데니소비치(슈호프)라는 한 인물이 수용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아무런 치장 없이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다. 마치 식탐 많은 어린아이처럼 멀건 귀리죽 한 그릇을 놓고 다투는 죄수들의 모습은 웃긴 동시에 슬픔과 분노를 불러온다. 서로 상반된 감정을 한 문장으로 동시에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설이다. 전쟁에 참여해 훈장을 받기도 했던 그였지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쓰인 스탈린에 대한 조롱이 문제가 되어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 굴라크로 보내져 8년간 수용소 생활을 겪었고 그 기간 동안 보고 듣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제1원에서>, <수용소 군도> 등의 작품을 써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인생에 비추어봤을 때 이 소설의 흠잡을 데 없는 현실감과 사실성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소설의 내용은 별다를 것이 없다. 수용소 죄수인 이반 데니소비치가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겪은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솔제니친의 인생과 결부되면 그 무게가 달라진다. 허구의 인물,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8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직접 겪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소설 속 이야기가 허구를 이용해 현실을 묘사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 그 지점에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그 무엇에도 비할 데 없는 블랙코미디가 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행동을 보면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추운 날씨에 일하기 싫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의무실에서 쉬고 싶어 하는 모습이나(물론 그 추운 날씨가 영하 40도를 넘나들긴 한다.) 담배 한 개비에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 어떻게든 멀건 죽 한 그릇을 더 차지해보고자 다투고 아부하고 거짓말하는 장면, 몰래 시트에 숨겨 놓은 빵껍질이 사라질까 불안해하는 모습까지. 특히 그중에서도 멀건 귀리죽 한 그릇을 더 먹게 되자 행복감에 물들어 경건하기까지 한 자세로 죽을 말끔히 해치우는 모습은 마치 사탕 하나를 더 받고 너무나 기뻐하는 어린아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점점 진행될수록 담배 하나를 얻어 피우고자, 혹은 건더기는 보이지도 않는 죽 한 그릇을 더 먹고자 이반 데니소비치가 기울이는 필사의 노력들을 마냥 유머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게 된다. 의문이 들고 마는 것이다. 왜 이들은 이 열악한 수용소에서, 바깥에서는 먹지도 않을 멀건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 이토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온 죄목은 반역죄이다.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또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슈호프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결정을 내렸다.’ (p.83)

이반 데니소비치는 자신도 이유와 목적을 모르는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이 수용소에 수감되어 온갖 열악한 환경과 불합리한 대우와 고된 노동을 감수하며 10년의 형량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10년의 형량이 끝나고 수용소 밖으로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온 힘을 다해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고 있던 이반 데니소비치. 죽 한 그릇에 거의 목숨을 거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모습은 분명 기묘하고 웃기지만 그 행동의 밑바탕과 근원에 깔린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독자는 스탈린의 독재 체재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누명을 쓰고 수용소로 보내졌는지, 열악한 수용소에서 죄 없는 이들이 몇이나 죽어 나갔는지,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행되어 왔는지를 이반 데니소비치와 수용소 안 인물들의 하루를 통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고전이자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독자들이 당시의 러시아 상황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방식에 있다. 솔제니친은 자신이 8년간 수용소 생활을 겪었음에도 당시의 분노와 좌절, 복수심을 접어두고 철저히 객관적인 거리에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그린다. 만약 글 속에 스탈린의 독재에 대한 통렬한 비판,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공산주의 독재 체제에 대한 분노, 억울한 수용소 생활에 대한 복수심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었다면 이 소설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솔제니친은 담담하게 한 수용소 죄수의 하루를 그림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당시의 소련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판단하도록 만든다. 말하자면,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에게 당신이 한 일은 잘못됐다고 날 선 비판의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일로 인해 벌어진 결과를 그대로, 가감 없이 눈 앞에 보여준 것이다. 전자와 후자 중 어떤 방법이 당사자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데 더욱 효과적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후자이며, 솔제니친은 그보다 더 치명적일 수는 없는 비판을 후자의 품위 있는 방식을 통해 당시 소련의 권력자들, 정치인들, 그리고 스탈린에게 가한 것과 다름없다.(소련 정부와 소련 작가 연맹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솔제니친에게 노벨상을 포기하던가, 아님 전향이나 추방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경고하는 찌질함을 보여준다. 솔제니친은 결국 소련을 떠나 노벨상을 수상한다.) 작가로서 당시 소련 사회에 세련된 방식으로 통렬한 비판을 가한 그의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위에 인용한 소설 속 문장을 보면 이보다 더한 블랙코미디가 있을까 싶다. 아무도 반역의 목적을 모르는 반역죄라니. 심지어 죄를 지은 당사자조차도 모른다. 더 웃픈 건 이러한 일들이 고작 100년도 안 된 과거에 수없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언제 내가, 혹은 당신이 이반 데니소비치가 될지 모른다.

소설 속 한 문장

봐라, 지금 슈호프는 사백 그램의 빵과 이백 그램의 빵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침대 시트에 이백 그램짜리 빵이 하나 더 있다. 더 이상, 뭘 더 바랄 것인가? (p.184)

‘수용소의 하루’로 보는 우리 사회

[백청일의 독서일기] (9)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오늘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하 ‘수용소의 하루’)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1918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육군장교로 복무하던 1945년 친구에게 스탈린에 관한 짧은 불만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정보당국의 감시망에 걸렸습니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생활하였고,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 그의 형기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지로 3년간 유배당하는 생활을 한 끝에야 1957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62년 ‘수용소의 하루’를 발표하였습니다.

작품은 전체주의 체제였던 스탈린 치하 소련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을 체험한 작가 본인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책을 통해 솔제니친은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73년 발표한 <<수용소 군도>> 때문에 1974년 국외로 추방되었고,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1994년 러시아로 귀국하였고, 2008년 사망하였습니다(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네이버 백과사전).

이 작품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럼에도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또한 문학작품을 당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으로 들여다 본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자유권과 평등권이 헌법으로 보장된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만, 혹시 우리 사회 안에 수용소와 같은 모습은 없을까요?

이 글은 이런 물음을 중심으로 ‘작품’과 ‘현실’을 꿰어 보려는 하나의 시도입니다.

1930년대 시베리아 강제 노동수용소

작품 결말로 읽는 작가의 의도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독ㆍ소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돌아왔으나 스파이 혐의를 받아 반국가죄 58조를 적용받고 강제 노동수용소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여러 수용소를 거치면서 8년이 지났습니다.

새벽 다섯 시 슈호프(췌-854번)는 기상 망치소리에 깨었지만 몸살 기운이 있어 쉽게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타타르인에게 걸려 간수실 마루청소를 하고, 의무실에 들르지만 영창에 갈 수 있다는 반협박을 받고, 식당에서 멀건 야채스프를 먹고 200g 빵 한 조각을 챙긴 후 여느 때처럼 강제노동을 나갑니다. 얼굴이 찢겨 나갈 정도의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바람을 맞으며 작업장인 난방발전센터 작업장에서 중앙난방시설 짓기 작업을 합니다. 그럼에도 슈호프는 잠자리에 들어 오늘 하루가 “아주 운이 좋은”, 행복한 하루였다고 회상합니다. 수용소의 하루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알게 해주는 마지막 장면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우리는 작가의 의도가 스탈린 치하에서 진행되었던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의 슈호프에 주목해 보면, 주제를 이렇게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작가의 의도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슈호프는 내일이나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하지 않습니다. 간수들이 다 해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대신 눈앞에 닥친 줄칼 조각 숨기기나 죽 한 그릇을 어떻게 더 먹을 수 있을까, 당장 해야 할 벽돌쌓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더 초조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대대로 흘러 내려오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에 대한 낙관성을 보여주는 게 작가의 또 다른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

강제 노동 수용소의 이중구조와 법칙들

강제 노동수용소는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힘을 가진 ‘위쪽 세계’와 힘이 없는 ‘아래쪽 세계’로 이분화 되어 있습니다. 위쪽 세계는 장교/간수들로, 아래쪽 세계는 ‘반’ 중심의 죄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힘을 중시하기에 힘을 가진 놈이 법과 제도를 마음껏 이용합니다. 아래쪽 세계 또한 “절대적인 힘”을 가진 ‘반장’과 ‘반원들’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강제 노동수용소는 ‘중층화된 이중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반’에서는 동료를 ‘고발’하여 위쪽 세계로 빌붙으려는 죄수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힘을 가진 장교/간수들이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규칙과 ‘반’을 만들었던 것처럼, 고발 또한 통치 수단입니다. 고발되면, 오늘 아침 슈호프처럼 몸이 아파 잠자리에서 미적대다 불심검문이라도 걸리면, ‘영창’에 가야합니다. 영하 3~40도를 오르내리는 수용소의 한 쪽 건물, 온통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데다 음식도 주지 않는 ‘영창’에서 며칠을 보내면 반죽음 상태가 되거나 죽어서야 나옵니다. 이처럼 ‘폭력’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지배하는 건 ‘밀림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슈호프의 옛날 반장이었던 쿠조민의 말을 통해 수용소에는 다른 법칙도 있다고 합니다.

“이봐, 이곳에는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림의 법칙이라는 거야.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 수용소 안에서 죽어 가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이고,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그리고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이야.”

밀림의 법칙(제1법칙)이 지배하는 수용소이지만,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때문에 밀림의 법칙만으로 이곳에서 지내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제2법칙도 지키라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그 경고가 무섭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지요. 제1법칙이 지배하기에 죄수들끼리 서로 죽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죄수들 사이에서 제2법칙도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 힘든 노동 뒤 제공되는 식사가 스프 한 접시와 빵 한 조각이기 때문에 죄수들은 늘 굶주려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옆의 동료가 스프를 접시 바닥까지 싹싹 떠먹지 않은 걸 보게 되면, 양해를 구하고 그 접시를 가지고 와서 혀로 핥아먹습니다. 이런 놈들은 죽습니다. 왜?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둘째,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강제노동은 ‘반’ 단위로 진행되고 작업할당량은 반 숫자를 고려합니다.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그 일을 반원들이 떠맡아야 합니다. 때문에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은 반원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한 몸 편의를 도모하는 이기적인 놈들입니다.

셋째,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 반 내부에서 불순한 생각이나 발언, 조직 등을 하는 동료를 정보보원들에게 팔아 넘겨 강제노동에서 열외가 되거나 좋은 보직을 얻게 됩니다. 슈호프의 제104반에서는 병결로 빠진 판델레프가 예시로 나옵니다. 반원들은 판델레프를 “개자식”이라고 욕합니다.

위험의 외주화 여전

강제 노동수용소로 들여다 본 우리 사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 작업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배급량을 줄이거나 아예 영창으로 보내 굶겨 죽이는 강제 노동수용소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하루하루 힘들게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벌이든, 맞벌이든 분명 월급은 들어오는데 대출금 이자 감당하기에 벅차 또 다시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한 달 수입과 지출을 대조해 보면 마이너스라서 계속해서 빚을 내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019년 통계로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7,481,000명입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6.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2019년에는 70여만 명으로 그 증가폭이 큽니다. 이들은 각종 분야에서 파견노동자, 용역노동자, 특수형태노동자, 가정내 노동자, 일일노동자, 시간제노동자, 한시적노동자 형태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취약근로자’로 분류된 무기계약노동자를 포함시키면 그 규모는 훨씬 늘어납니다(e-나라지표, 통계청).

이들 중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최저임금 노동자 중 80%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조사를 통해 확인되듯이, 최저임금은 ‘알바 임금’이 아닌 ‘생존 임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최저임금 노동자 80%, 가족 생계 책임졌다, 한겨레, 2018. 1.31.). 그러나 최저임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에 초과근무와 야근 등의 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택배노동자를 예시로 들면, 이들은 주당 평균 71.3시간에 달하는 노동을 하는데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하는 과로사 인정 기준(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을 훌쩍 뛰어 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택배노동자들은 월수입에서 대리점에 내는 수수료, 차량 관리비, 운송장, 테이프 등 소모품 경비 등을 제하면, 결국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택배노동자, 주 71시간 일하고 점심시간은 고작 12분, 프레시안, 2020. 9.10.).

고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광주에서 김재순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만신창이로 통과된 법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 노동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2019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9년 산재 사망자 수는 855명입니다(2019년 산재 사고 사망자 지난해에 비해 116명(△11.9%) 감소, 고용노동부 2020. 1. 9). 여전히 “촛불정권에서도 위험의 외주화와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소리가 높습니다(“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은 산재 현장”, 교수신문, 2020.12.21.).

또한 10인 미만 소상공인 종사자 수는 6,365,000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36.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8년 폐업한 사업자 수는 900,551명입니다. 하루에 2,400명 이상이 폐업 신고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신규사업자 수는 1,315,164명입니다(국세통계연보, 국세청). 그런데 2020년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부채는 8256만원입니다(가구당 빚 8250만원…30대 자영업자 부채 증가, 디지털타임스, 2020.12.17.). 결국, 빚을 빚으로 갚거나 빚을 내서 신규 창업을 하고 있는 거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2020년 대한민국 가계부채는 1600조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파업 집회를 하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사진출처=참세상.

방치된 죽음 또는 죽음에 익숙한 사회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어머니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결국 어머니의 주검 옆을 지키게 됩니다. 하지만 먹을 것도 떨어지고, 전기마저 끊겨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자 아들은 지하철역에서 자면서 구걸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사회복지사가 아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경찰과 함께 집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일명 “방배동 모자의 비극”으로 알려진 사건입니다(사망 5개월 만에 발견된 엄마, 노숙자가 된 아들 … 방배동 모자의 비극, 한국일보, 2020.12.14.).

2014년에는 송파구 성북동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경제적 빈곤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인 어머니와 그의 6살 난 아들이 아사한 지 두 달이 지나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해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는 생활고 때문에 3명의 가족과 딸 친구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여 1만 2400여명까지 줄어들던 자살자 수가 2018년 13,200여명, 2019년 13,367명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9년 자살자 중 3564명(38%)이 자살충동의 원인으로 경제생활문제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하루에 10여 명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셈입니다(자살 사망자 4명 중 1명은 생활고 비관, 열린 라디오 YTN, 2020.12.19.).

강제 노동수용소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장교와 간수들이 죄수들의 작업할당량을 조정하여 건설 공사에서 계획량 초과로 발생한 이익을 독점하고, 죄수들에게는 200g짜리 빵 한 조각을 보너스로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강제 노동수용소는 이익을 위해 착취의 대상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죄수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현실에서 삶을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노숙자로 나서 구걸하는 삶이라면, 결코 수용소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에 대한 풍자가 아닌, 엄연한 “진짜 현실”이라는 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슈호프, 그러나 우리는

슈호프는 강제 노동수용소의 현실 속에서도 오늘 보낸 하루가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라고 돌아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자유권과 평등권이 기본권으로 보장된 헌법을 가지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죽음으로 내 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또한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30일 여의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집단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대부분 60세가 넘은 노동자들이라 해고 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때문에 이들은 12월 16일 전면파업에 돌입하면서 “해고 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현재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집단해고 위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 전면파업, 프레시안, 2020.12.16., 청소노동자는 파리목숨입니까… 우리를 벼랑으로 그만 몰아요, 서울신문, 2020.12.20.).

이 땅에는 여전히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킬 수조차 없게 하는 법과 제도, 관행, 시스템에 맞서 오늘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겠지요. 살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써, 그 길에 올랐을 것입니다. ‘관계’로 이어져 있는 우리들이기에 그들을 삶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손길을 내밀어야겠습니다. 이 추운 겨울 더욱 단단해진 연대의 손길이 부디 그들을 다시 따뜻한 ‘삶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청일

참고문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벤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1998.

e-나라통계, 통계청(검색일: 2020.12.21.).

국세통계연보, 국세청(검색일: 2020.12.21.).

가구당 빚 8250만원…30대 자영업자 부채 증가, 디지털타임스, 2020.12.17.,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0121702100858065005&ref=naver(검색일: 2020.12.21.)

사망 5개월 만에 발견된 엄마, 노숙자가 된 아들 … 방배동 모자의 비극, 한국일보.2020.12.14.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1305500004395(검색일: 2020.12.1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문학상 작가 열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682&cid=58814&categoryId=58829(검색일: 2020.12.20.).

자살 사망자 4명 중 1명은 생활고 비관, 열린 라디오 YTN, 2020.12.19.

https://www.ytn.co.kr/_ln/0102_202012210848211188(검색일: 2020.12.21.).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은 산재 현장”, 교수신문, 2020.12.21.

http://www.kyosu.net(검색일: 2020.12.21.).

집단해고 위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 전면파업, 프레시안, 2020.12.16.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1614090397485?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검색일: 2020.12.21.).

청소노동자는 파리목숨입니까… 우리를 벼랑으로 그만 몰아요, 서울신문, 2020.12.20.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221017004&wlog_tag3=naver(검색일: 2020.12.21.)

최저임금 노동자 80%, 가족 생계 책임졌다, 한겨레, 2018. 1.31.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30144.html(검색일: 2020.12.21.).

택배노동자, 주 71시간 일하고 점심시간은 고작 12분, 프레시안, 2020. 9.1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013551947472(검색일: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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