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친한 나라 | [가십] 한국을 사랑하는 나라들 순위! (Feat. 해외문화홍보원) 잘 기억해야지!! 땡큐!오! 의외의 나라들이!!(Feat.한결같은 일본)#한류#일본반응#해외반응#한국 상위 179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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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조사에서 대표적인 친한 국가로는 가나, 호주, 미국을 꼽을 수 있다. 가나 국민의 63%, 호주 62%, 미국 55%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과반을 넘은 국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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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긴말 필요없이, 짧고 굵게 가겠습니다.
과연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도대체 어느나라가 우리를 좋아하고, 싫어할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희는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알아보려고하니, 고맙게도 ‘해외문화홍보원’에서 매년 15개국 정도의 나라를 선정해서, 관련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18년도와 19년도 것을 비교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5위 중, 꼴찌는 어느나라일지 다 예상하시겠지만, 일단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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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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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좋은 사이 – 나무위키

대한민국 – 이스라엘: 중동 국가 중 대한민국과 가장 먼저 공식 수교한 국가이며, 군사 및 산업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독재 정권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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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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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친한나라 top6 – Naver Post – 네이버

우리나라와 친한나라 top6 · 안녕하세요 · 터키는 고구려때 부터 여러 유목민족으로 우리나라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 베트남은 원래부터 우리나라랑 좀 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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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ost.naver.com

Date Published: 1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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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외 관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따라서 190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유엔 비회원국인 서사하라, 중화민국, 팔레스타인도 외교 관계가 없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 3개 국가를 승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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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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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친한 나라 터키,미국 – Prezi

터키가 우리나라와 친한이유는. 한국전쟁시절로 돌아가보면 알수있습니다. 6.25 전쟁 때 유엔 파견군 목록 네번째에 터키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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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rezi.com

Date Published: 12/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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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장 친한 나라 10개국 어디일까? 한국도 포함되나?

중국 가장 친한 나라 10개국 어디일까? 한국도 포함되나? · 1. 파키스탄 · 2. 세르비아 · 3. 카자흐스탄 · 4. 우크라이나 · 5. 이스라엘 · 6. 나이지리아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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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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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관계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배속, 한국에서 살게 함(박연과 함께 표류한 2명은 병자호란시 전사). … 나라의 해운 선사는 네덜란드 선사 또는 제3국 선사와 공동으로 로테르담항 내 공동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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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verseas.mofa.go.kr

Date Published: 8/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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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오피니언] 수교 30주년 기념, 한몽 교류와 협력 증진을 …

1990년 3월 26일 한국과 몽골은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를 제외하고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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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merics.org:446

Date Published: 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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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대한민국

양국 관계 1883년 11월 26일 한∙독 통상 우호 항해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과 독일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한국전쟁(1950-1953)과 이에 따른 국가 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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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eoul.diplo.de

Date Published: 4/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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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국과 친한 나라

  • Author: 타임앤이슈Time\u0026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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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8. 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bdQZ3PNZpCk

중국 가장 친한 나라 10개국 어디일까? 한국도 포함되나?

중국 네티즌들이 뽑은 중국과 친한 10개 나라가 선정됐다. 근거는 없다. 인터넷에서 돌고 돌아 선정된 나라들이다. 그러나 면면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한국은 10개 나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도 없다.

그럼 어떤 나라가 중국과 친한지 면면을 보자.

1. 파키스탄

중국 외교관리들도 인정하는 최고 맹방이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핵심 국가다. 약 570억 달러(약 62조 원)를 투자해 SOC를 건설 중이다. 인도를 견제하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2. 세르비아

군사협력이 돋보이는 곳 중 하나다. 세르비아와 중국의 대테러 특수경찰부대는 지난해 첫 테러 진압 합동 훈련을 진행하며 新밀월을 과시하기도 했다. 중국의 대테러 경찰부대가 유럽에서 합동 훈련을 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또한 중국의 군사용 드론 ‘윙룽(翼龍) 1호’를 유럽에 첫 수출한 나라도 세르비아다.

3.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중국 ‘일대일로’ 정책의 내륙 거점 국가다. 중국은 유럽 등지의 수출 물류 전진 기지로 카자흐스탄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선박을 이용할 때보다 물류비용이 현격히 낮은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지배력 견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카자흐스탄 투자는 2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4. 우크라이나

미국에 이어 2위권 항모 보유국이 된 중국의 첫 단추는 우크라이나와의 인연이 컸다. 중국은 항공모함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구소련 국가 중 하나였던 ‘우크라이나’에서 항모를 사들이는 우회로를 택했다. 구소련에서 제작한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바랴크함 구매에 성공하고 2002년 인도 받았다. 이후 10년 가까운 개량공사 끝에 2012년 취역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이다.

5. 이스라엘

기술기업 투자가 두드러진 국가 중 하나다. 2015년 중국 상하이국제항만그룹(SIPG)이 이스라엘 하이파 항을 건설하고 25년간 운영권을 갖기로 하는 계약을 성사시켜 미국을 긴장시킨 바 있다. 중국의 이스라엘 첨단 기업에 대한 투자는 2013년 7천600만 달러에서 2014년 1억 8900만 달러, 2015년 2억 9800만 달러, 2017년 3억 800만 달러, 2018년 3분기까지 3억 2500만 달러(약 4017억원) 등으로 꾸준히 확대돼왔다.

6.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는 2016년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일 때, 중국에 구조 요청으로 800억 달러를 지원받은 바 있다. 석유가 풍부한 나이지리아에서 중국은 유전, 가스전 사업에 많은 투자와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외에도 중국 기업들이 나이지리아의 철도, 공항, 도로 등 부문을 중심으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7. 캄보디아

2016년부터 밀려드는 차이나머니로 캄보디아는 급속한 성장을 거두었고, ‘작은 중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양국의 밀월은 코로나19에도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 확산세에도 이달 말까지 ‘골드 드래곤’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세에도 캄보디아에 의료진을 파견해 양국의 친선 관계를 과시했다.

8. 이란

전통적 친선 관계이자 중국의 중동 진출 교두보 국가. 이란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 친중 국가다. 중국도 이란의 천연가스와 원유 등을 대규모로 수입할 뿐 아니라, 각종 인프라 사업에 거금을 투자해왔다.

9. 라오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당 대 당 교류 등을 통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라오스는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와 ‘란창-메콩 협력 메커니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라오스 정부가 중국-라오스 국경에서 수도인 비엔티안까지 400여 ㎞에 달하는 철로를 건설하는 작업을 지원해왔다. 특히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의 활약이 돋보인다. 2018년 화웨이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화웨이는 라오스 통신 네트워크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10. 러시아

중국과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사회주의를 같이한 역사 등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독주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과 공조를 하고 있다. 시진핑은 주석으로 취임하고 가장 먼저 러시아를 방문했고, 최근 수년간 양국은 서해와 캄차카해역에서 합동 군사훈련도 진행했다. 러시아는 중국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지역의 독립 움직임에 대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남중국해에서의 중국과 미국간 갈등에 대해서도 중국 편에 서 있다.

10개국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경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차이나머니’에 의한 평화적 잠식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이후 중국을 둘러싼 국제적인 인식과 교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차이나랩 이은령

출처 진르터우탸오, 국내 뉴스 참고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우리나라와의 관계

1. 역사적 관계

가. 박연의 표류

◦ 1627년 네덜란드 선원 Jan Jansz Welteveree등 3인이 제주도에 표류함.

◦ 조정은 벨테브레에게 박연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한국 여자와 혼인시켜 조정 내 훈련도장에

배속, 한국에서 살게 함(박연과 함께 표류한 2명은 병자호란시 전사).

◦ 1989.12.9 박연의 출생지인 네덜란드 드레이프(de Rijp)시가 축소 제작한 풍차와 현지의 박

연동상을 기증, 1991년 서울시가 어린이 대공원에 설치함.

나. 하멜 표류기

◦ 1653년 Hendrik Hamel 등 네덜란드인 38명이 바타비아(자카르타)에서 나가사끼로 항해중 제주

도에 표류하여 여수, 순천, 남원 등지의 병영에서 지내다가 1666년 8명이 탈출함.

◦ 이들 중 Hamel은 귀국 후 난선 제주도 난파기(An Account of the Shipwreck of a Dutch Vessel

on the Coast of the Isle of Quelpaert)와 부록 조선왕국기(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the

Corea)를 저술, 한국을 서양에 최초로 소개함.

다. 헤이그밀사 사건

◦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이상설, 이준, 이위종 등 3인의 밀사를

파견하였으며, 동인들은 헤이그에서 을사조약의 무효와 회의 참석을 주장하다가 일본의 방해

로 회의참석을 거부당함.

◦ 이에 동인들은 각국 대표들을 방문하거나 언론에 호소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던 중 이준 열사가

7.14 현지에서 순국하였으며 그 유해는 헤이그 근처에 안장되었다가 1963년 서울 수유리 본지

로 이장되었음.

◦ 이 사건의 여파로 고종 황제가 물러나고 순종이 즉위하였으며 일본과의 신협약 체결로 군대가

해산되고 일본이 내정 감독권을 갖게 됨.

라. 한국전 참전

◦ 기 간 : 1950.7∽1955.1

◦ 규 모 : 보병 1개 대대, 연 함정 6척, 연 인원 5,322명

◦ 주요전적 : 인천상륙작전, 청주, 원주, 횡성지구 전투 참가

◦ 인명피해 : 768명(전사 120명, 부상 645명, 실종 3명)

※ 16개 유엔 참전국중 유일하게 전투(횡성전투)중 사령관(Den Ouden 중령)이 사망

2. 정무관계

가. 네덜란드의 대한반도 정책

◦ 네덜란드는 참전 16개국의 일원이며 UNCURK(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회) 7개 회원국으

로서 UNCURK 활동에 적극 기여하였으며,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온

전통 우방국임.

◦ 북한과는 2001년 수교 이후에도 실질적 관계증진은 없고, 북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인권문제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한국

의 통일방안 및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있음.

나. 주요 외교일지

1949.7.25 대한민국 승인

1950.7. 네덜란드군 한국전 참전(보병 1개대대, 함정1척)

1961.4.4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합의

1962.1.23 주불 백선엽 대사 신임장 제정(겸임)

1966.2.23 주불 이수영 대사 신임장 제정(겸임)

1968.11.29 J.Q.Bas Backer 주한 네델란드대사 신임장 제정(겸임, 일본 상주)

1968.12.24 주한네덜란드 상주공관 설치 및 I. Verkade 네덜란드 대리 대사임명

1969.10.15 주네덜란드 상주공관 설치 및 안진생 대리대사(초대 대사)임명

1971.2.24 송광정 대리대사(제2대 대사) 임명

1971.10.6 T.P. Berqsma 네덜란드 대리대사 임명

1972.5.27 M.J. Meijer 네덜란드 대리대사 임명

1974.1.19 W.CH.E.A.de 네덜란드 대리대사 임명

1974.4.11 최완복 대사 신임장 제정(3대)

1975.12.27 C.D.Barkman 주한네덜란드대사 신임장 제정(겸임)

1977.7.5 연하구 대사 신임장 제정(4대)

1978.4.21 R. Van de Berg 대사 신임장 제정(초대)

1980.3.21 암스테르담 총영사관 설치

1980.7.3 김봉규 주암스테르담 총영사 임명(초대)

1981.9.2 윤영교 대사 신임장 제정(5대)

1982.2.28 주암스테르담 총영사관 폐쇄

1982.9.23 A.B. Hoytink 대사 신임장 제정(2대)

1983.8.24 윤하정 대사 신임장 제정(6대)

1986.4.1 J.Van Ebbenhorst Tengbegen 대사 신임장 제정(3대)

1986.5.21 한우석 대사 신임장 제정(7대)

1987.5.13 윤억섭 대사 신임장 제정(8대)

1989.11.8 최상섭 대사 신임장 제정(9대)

1990.1.17 Elink Schuurman 대사 신임장 제정(4대)

1991.10.8 Paul Lagendijk 대사 신임장 제정(5대)

1992.11.4 임인조 대사 신임장 제정(10대)

1995.11.1 김경철 대사 신임장 제정(11대)

1995.11.28 Joost P.M.Wolfswinkel 대사 신임장 제정(6대)

1997.3.12 권인혁 대사 신임장 제정(12대)

1998.5.20 송영식 대사 신임장 제정(13대)

1999.10.21 H.G. De Vries 대사 신임장 제정(7대)

2000.9.27 김용규 대사 신임장 제정(14대)

2003.9.3 엄근섭 대사 신임장 제정(15대)

2003.9.30 Radinck J. van Vollenhoven 대사 신임장 제정(8대)

2005.4.15 주네덜란드대사관겸 주헤이그국제기구대표부로 개칭

2006.5.3 최종무 대사 신임장 제정(16대)

2007.2. Hans Heinsbroke 대사 신임장 제정(9대)

2008.10.8 김영원 대사 신임장 제정(17대)

2010.10.12 Paul Menkveld 대사 신임장 제정(10대)

2011.9.28 이기철 대사 신임장 제정(18대)

다. 주요 인사교류

1973.7.3-4 김신 교통부장관

1973.8.14-15 김용식 외무장관

1974.10.2-5 장예준 상공부장관

1975.3.21 김동조 외무장관

1977.9.29-10.1 이용희 통일원장관

1978.10.22-25 C.A.Van der Klaauw 외무장관

1979.6.14-17 김종필특사

1981.7.3-7 D.S.Juijnman 교통․공공사업장관

1981.12.13-15 노태우특사

1983.9.24-29 Bolkestein 대외무역장관

1984.1.3-6 P.A.J.M Steenkamp 상원의장

1984.6.21-24 이원경 외무장관

1985.1.23-26 N.Smit-Kroes 교통․공공사업상

1985.1.31-2.1 이진우 국회사무총장

1985.4.12-16 Rund Lubbers 총리(Hans van den Broek 외무장관 수행)

1985.5.19-27 A.A.M. van Agt 전 총리

1985.6.10-15 금진호 상공부장관

1985.6.26-28 이재형 국회의장

1985.9.24 O. Ruding 재무장관

1985.10.6-11 E.M. Schoo 개발협력장관(IMF 참석)

1985.10.20-28 A.Ploeg 농수산 정무장관

1986.3.19-22 C.H.E.Brainich Felth 해군참모총장

1986.10.17-18 G. van Aardenne 전 부총리

1986.11.2-4 최상화 해군참모총장

1987.1.20-22 노신영 국무총리

1987.5.19-21 차규헌 교통부장관

1988.1.18-20 R.W.De Korte 부총리 겸 경제부장관

1988.9.25-10.4 Dolman 하원의장

1988.9.25-10.2 A. Ploeg 하원 국방위원장

1988.10.18-21 Yvonne Van Rooy 대외무역장관

1989.2.1-4 조순 부총리

1989.2.8-12 김대중 평민당총재

1989.9.3-5 한승수 상공부장관

1989.10.15-17 Neelie Smit-Kores 교통․공공사업장관

1990.6.24-26 Braks 농수산장관

1991.5.5-8 Mrs. Van Rooy 통상장관

1992.2.23-26 Maij-Weggen 교통·공공사업장관

1995.5 김철용 해운항만청장

1995.8 황창평 국가보훈처장

1996.5 Linschoten 사회고용부차관

1996.6.9-12 Wim Kok 총리

1997.10.12-16 Jorritsma 교통․공공사업장관

1999.3 고건 서울시장

1999.6.16-13 Willem-Alexander 왕세자(서울 IOC 총회 참석)

2000.10.19-21 Kok 총리(ASEM 참석)

2000.11 김명자 환경장관

2001.5 최경원 법무장관

2001.4.30-5.4 Jorritsma 경제장관

2001.6 정우택 해양수산부장관

2001.6 최경원 법무장관

2002.7 이종찬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발전기획단장

2002.9 한갑수 국회 농어업특위위원장

2002.9.20-21 김대중 대통령(암스테르담 경유 방문)

2002.10 이홍구 세계박람회 대통령특사

2002.11 신홍 노사정 위원장

2003 Willem-Alexander 왕세자(동계올림픽 후보지 실시단)

2003.5 김영진 농림부장관

2003.5 강현욱 전라북도지사

2003.6 허성관 해양수산부장관

2003.6 손학규 경기도지사

2003.7 Karien van Gennip 통상장관

2003.10 김혁규 경상남도지사

2003.11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2004.3 김금수 노사정위원장

2004.3 이정우 대통령정책자문특위 위원장

2004.4 오영교 KOTRA 사장

2004.4 백충현 서울대 대학원장,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2004.8 김광원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위원장

2004.8 맹형규 국회 산자위 위원장

2004.12 박준영 전남지사

2005.3 오거돈 해양수산부장관

2005.5 허남식 부산시장

2005.5 김태호 경남지사

2005.5 Wim Kok 전 총리 방한(Global Forum 참가)

2006.6 김성진 해양수산부장관

2006.9 이완구 충남지사

2006.9 김완주 전북지사

2006.10 임채정 국회의장

2006.10 이명박 전 서울시장

2007.3 박명재 대통령특사(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활동)

2007.8 강무현 해양수산부장관

2007.10 송민순 외교장관

2008.10 Maxime Verhagen 외교장관

2008.10 김경한 법무장관

2009.3 유명환 외교통상장관

2009.4 한승수 국무총리

2009.6 원유철 국회독도특위 위원장

2009.8 이인기 국회기후변화특위 위원장

2009.11 Wim Kok 전 총리

2010.4 Jan Peter Balkenende 총리

2010.5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2010.5 김황식 감사원장

2010.9 Wim Kok 전 총리

2010.9 김준규 검찰총장

2010.9 이각범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장

2010.10 이기택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2010.11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2010.12 Willem-Alexander 왕세자(Global Water 포럼 참석)

2011.1 이강래 한-구주 의원외교협회 회장

2011.4 박근혜 대통령특사(한-네덜란드 수교 50주년 기념)

2011.5 한-네덜란드 의원친선협회

2011.5 강현욱 새만금공동위원회 위원장

2011.5 김동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2011.7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2011.7 장광근 국회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

2011.7 Wim Kok 전 총리

2011.8 남경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2011.11 Ben Knapen 외교부 유럽·국제협력장관(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 계기)

2012.3 Uri Rosenthal 외교장관(2012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2012.5 Henk Kool 헤이그 부시장

2012.5 송석구 사회통합위원장

2012.5 우기종 통계청장

2012.6 Willem-Alexander 왕세자(여수박람회 참석)

2012.8 안홍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2012.9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3.2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

2013.2 Jan Peter Balkenende 전총리(대통령 취임식 축하 특사)

2013.3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

2013.3 이병석 국회부의장

2013.3 Jan Peter Balkenende 전총리(아시아리더쉽 컨퍼런스 참가)

2013.4 반기문 유엔사무총장(OPCW 평가회의 참석)

2013.4 서상기 대통령특사(국왕 즉위식 참석)

2013.5 진영 보건복지부장관

2013.5 최규성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2013.5 Fred de Graaf 상원의장

2013.6 방하남 고용노동부장관

2013.6 이동필 농식품부장관

2013.7 이준 헌법재판소 사무차장

2013.7 Middendorp 국방총장(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 참석)

2013.8 반기문 유엔사무총장(평화궁 설립 100주년 기념식 참석)

2013.9 Eberhard van der Laan 암스테르담 시장

2013.10 Uri Rosenthal 전외교장관(사이버스페이스총회 대표)

2014.1 정승 식약처장

라. 고위 정무협의회

1983.11 제1차 정책협의회(헤이그)

수석대표:이복형 구주국장/Van den Berg 아주국장

1988.5 제2차 정책협의회(헤이그)

수석대표:민형기 구주국장/Vijverberg, H.A.C. 본부대사

1991.7 제3차 정책협의회(서울)

수석대표:권영민 구주국장/Van Tooren 아주국장

1995.9 제4차 정책협의회(헤이그)

수석대표:이재춘 제1차관보/Joris Michael Vos 정무차관보

2004.2 정무 협의(헤이그)

김영석 구주국장/Jones-Bos 지역정책 부차관보

2004.11 정무 협의(헤이그)

이선진 외교정책실장/Siblesz 정무차관보

2005.3 정무 협의(헤이그)

천영우 외교정책실장/Schaper 정무부차관보

2012.11 다자정책협의회(헤이그)

김봉현 다자조정관/Karel van Oosterom 정무차관보

2012.12 개발협력정책협의회(헤이그)

김봉현 다자조정관/Rob Swartbol 국제협력차관보

2013.1 영사안전협의회(헤이그)

문하영 재외동포대사 겸 대테러국제협력대사/Monique

van Daalen 외교부 수석차관보

3. 경제관계

가. 무역관계

≪ 양국간 무역현황 ≫

단위: 억불, (증감 %)

구 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수 출 45.3 (-29.3) 53.1 (17.2) 46.3 (-12.8) 50.5 (9.3) 55.1 (9.0) 수 입 20.6 (-36.4) 41.9 (103.4) 44.2 (5.6) 39.9 (-9.8) 42.1 (5.5) 무역수지 24.7 (-22.1) 11.2 (-54.7) 2.1 (-81.3) 10.6 (431.3) 13.0 (22.6)

※ 자료원 : 한국무역협회

1) 무역 현황

◦ 수입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로 크게 감소 후 2010∽11년간 다시 증가하였으나,

2012년 네덜란드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제조용 장비에 대한 한국내 수요 감소로

수입이 다시 감소하면서 무역수지 흑자폭은 2012년 10억 불로 증가

◦ 2013년에는 수입이 2012년보다 5% 상승하였으나, 수출이 9% 증가하여 무역수지는 13억

불 흑자 기록

– 네덜란드는 독일에 이어 한국의 對EU 2대 수출 대상국이며, 교역규모 기준으로는

EU 국가 중 독일, 영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2013년 교역액은 총 97억 불

2) 수출입 주요 품목

◦ 우리나라의 대네덜란드 10대 수출품(2013년)

– 제트유 및 등유(13.4억불), 경유(8.4억불), 윤활유(3.7억불), 무선전화기(2.7억불), 자동차

(1.9억불), 건설 중장비(1.4억불), 자동차부품(1.3억불), 보조기억장치(1.2억불), 정밀화학

원료(1.1억불), 합성수지(0.9억불)

◦ 우리나라의 대네덜란드 10대 수입품(2013년)

– 반도체 제조용 장비(16.3억불), 반도체 제조용 장비부품(2.3억불), 우라늄(1.5억불), 고철(1.1억불),

낙농품(0.9억불), 합성수지(0.8억불), 배전 및 제어기(0.8억불), 나프타(0.7억불), 기초유분

(0.7억불), 철구조물(0.7억불)

나. 투자관계

≪ 양국간 투자현황 ≫

(단위: 백만불)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누계(1962년∽2013년) 네덜란드→한국 1,897 1,184 1,011 634 618 22,297 한국→네덜란드 1,768 1,770 311 2,921 1,455 12,784

※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1) 네덜란드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 네덜란드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제3위의 對한국 투자국이며, 1962년부터 2013년 말 기준

총 222.97억 불(신고기준) 투자

– ING(금융), Philips(전자), ASML(반도체장비), Akzo Nobel(화학), DSM(화학) 등 대기업들이 주로 투자

– 네덜란드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는 네덜란드 국적기업의 투자보다는 네덜란드 소재

미국, 일본 등 제3국의 paper company에 의한 우회투자가 큰 것으로 분석(KOTRA 암스

테르담 무역관 조사결과)

· 네덜란드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서 기업 친화적 조세제도 보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3국과의 광범위한 이중과세방지협약 체결 등 외국 기업이 투자하기에 유리한 조건

을 보유하고 있어 약 2,600개의 다국적 기업의 지주회사가 네덜란드에 설립․운영 중

◦ 주요 투자분야

– [석유화학] 석유화학은 네덜란드의 주력산업으로 Shell, Akzo Nobel, DSM 등 글로벌 기업들이

포진해 있으며 아시아 시장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한국 선택

– [반도체] ASML은 2008년 인천국제공항 자유무역지역에 국제 물류 허브센터를 설립하여

반도체 노광장비(Lithography Machine)의 각종 부품을 전 세계로 배송

– [특수목적 물류] Vopak은 우리나라의 동북아오일허브 구축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

석유공사(KNOC) 및 S-OIL과 함께 합작법인인 코리아오일터미널의 지분 투자(38% 보유)

2) 우리나라의 네덜란드에 대한 투자

◦ 우리나라의 對네덜란드 투자는 2000년 대 후반에 증가하다 2011년 대폭 감소하였으나, 삼성

전자의 ASML 투자가 이루어졌던 2012년 다시 급격히 증가한 후 2013년 다시 감소

– 2012년에만 전체 누적 투자금액의 약 25%에 해당하는 29.2억 불 투자

◦ 對네덜란드 투자 총액은 127.84억불이며, 한국은 제9위 네덜란드 투자국

– 우리나라의 전체 해외투자액 중 약 3.5%

◦ 네덜란드 내에서 우리 기업 약 50개사가 현지법인(B.V.) 또는 지사형태로 진출․영업하고 있으

며, 전자, 물류(운송), 중화학, 자동차, 금융 분야의 기업들이 다수 진출

– 한국 기업들은 유럽 물류 및 판매 거점을 위해 네덜란드에 투자

◦ 석유공사의 카자흐스탄 자원개발, 한국전력공사의 사우디 라빅 발전소 건설을 위한 합자회

사 설립 등 우회투자 다수

– 우리 기업들은 러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등에 투자할 경우 네덜란드를 우회투자

지로 활용

다. 여타 경제 협력

1) 물류

◦ 네덜란드는 로테르담항, 스키폴 공항, 내륙 철도 및 운하 등 운송망을 잘 갖추고 있어 유럽의

물류 중심지 역할 담당

◦ 우리나라의 대유럽 수출 중 상당 물량이 로테르담항을 통해 반입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

나라의 해운 선사는 네덜란드 선사 또는 제3국 선사와 공동으로 로테르담항 내 공동 터미널

운영

– 한진해운은 K-Line(일본), Cosco(중국), Yangming(대만) 및 네덜란드 ECT와 공동으로 Euromax

터미널 설립

2) 조선

◦ 네덜란드는 무역강국으로서 에너지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어 컨테이너선, 유조선, 가스운반

선, 석유 및 가스탐사․개발 관련 시설의 주요 구매자이며, 우리나라는 조선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이 분야에서의 협력이 활발히 진행

◦ Royal Dutch Shell사와 삼성중공업은 2009.7월 15년간 Shell사 발주 예정인 초대형 LNG-FPSO

(Floating Production Storage & Offloading Unit (해상 부유식 액화플랜트))를 삼성중공업이

독점 공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기본계약 체결 후 2011.5월 호주 프릴류드 프로젝

트용 LNG-FPSO 1척(30억불 규모)에 대해 본 계약 체결

3) 수자원 관리

◦ 오랜 역사의 간척사업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수자원 관리기술을 보유한 네덜란드는 한국

의 새만금 간척사업에 참여하길 희망하고 있으며, 제3국의 수자원 사업에도 한국과 공동으

로 진출하길 희망

◦ 한국과 네덜란드는 2010.4월 국무총리실-네덜란드 경제부 간 “새만금사업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 이후 4차에 걸친 새만금사업 세미나 개최, 새만금투자유치 사절단의 네

덜란드 방문 등을 통해 긴밀히 협력 중

※ 빔 콕(Wim Kok) 전 총리는 새만금사업 명예자문관으로 활동(2009.11월 위촉)

4) 농업

◦ 2010.11월 국내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전국으로 확산됨에 따라 가축 접종용 백신이 긴급히

필요하게 되자 우리 정부는 10여 개국을 긴급히 접촉하고, 백신 제공을 요청하였는데, 네덜란

드는 보유 중인 구제역 백신 200만 회분 중 100만 회분을 우리나라에 제공(매각)

– 이를 계기로 양국은 방역분야 정보를 상호 교환하기로 하였으며, 이후 우리나라 동물 방역

대표단이 네덜란드를 방문(2011.11월)하는 등 동식물 방역분야 협력 증진

◦ 한편, 네덜란드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및 2013년 순천정원박람회에 참가하였으며, 순천

시가 우리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 2012년 네덜란드 벤로(Venlo)시에서 10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원예박람회인 ‘Floriade 2012’에 참가하는 등 양국간 박람회 및 농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확대

< 자료 1 >

주요 네덜란드 기업의 우리나라 투자 사례

구 분 기 업 명 분 야 소재지 투자신고 전 자 Philips LCD 판넬 파주 99.7월 제 약 Crucell 백신 인천 10.12월 화 학 Akzo Nobel 화공(Ink 분해) 군산 99.9월 선박용 도료 거제 98.5월 화공(PE첨가제) 경주 02.1월 Sigma Kalon 선박용 도료 울산 04.4월 자동차부품 Inalfa Roof System 자동차 선루프 화성 95.12월 Philips Lighting 자동차용 전구 안산 99.1월 반도체 ASM Int‘l 반도체장비조립 천안 07.2월 ASML 반도체장비판매A/S 화성 97.7월 국제물류허브센터 인천공항 08.7월 NXP 반도체생산장비 서울 06.9월 금 융 ING Bank Financing, M&A 서울 05.1월 ING Insurance 생명 보험 서울 92.4월 ABN-AMRO Financing, M&A 서울 05.1월 Rabo Bank Financing 서울 06.1월 물 류 AMB Property 물류창고 인천공항 06.2월 Vopak Terminal 액체화학물류 울산 72.3월 14.1월 Samskip 냉동어류물류 부산 06.6월 TNT 화물배송 서울 10.10월 부동산 ING Real Estate 부동산펀드 서울 04.11월 Rodamco Asia 부천 플라자, 은석빌딩 부천 05.12월

※ Heineken, Unilever, DSM 등 국내 판매를 위한 영업거점 투자 제외

< 자료 2 >

네덜란드 진출 주요 우리기업 현황

분야 회 사 품목 업종 위치 전기․ 전자 삼성전자(판매) 가전정보통신기기 판매 Delft 삼성전자(물류) 가전정보통신기기 물류 Delft 삼성전자 CIS 법인 가전정보통신기기 판매 Delft LG전자 유럽통합지원법인 가전정보통신기기 서비스/금융 Amstelveen LG전자(판매) 가전정보통신기기 판매 Amstelveen LG CNS IT 서비스 판매/서비스 Amstelveen LS 산전 전기장비 물류 Schiphol 삼성메디슨 의료용장비 판매/물류 Hoofddorp 중화학 수산중공업 중장비 판매 Spijkenisse 고려제강 철강 판매 Gorinchem GB Industries 파석기, 해머 판매 Rotterdam STX Windpower 풍력 터빈 판매 Lelystad 현대엔진 유럽 서비스 센터 선박엔진 판매/서비스 Rotterdam 현대중공업 선박 판매/서비스 Rotterdam 볼보건설기계 건설용중장비 판매/물류 Ammers 자동차 기아자동차 자동차 판매 Breukelen 쌍용자동차 자동차 판매 Breda 한국타이어 타이어 물류/판매 Schiphol 운송 물류 CJ GLS 운송 물류 Rotterdam 한진해운 해상운송 운송 Rotterdam 한진로지스틱스 운송 물류 Rotterdam 현대로지스틱스 운송 물류 Rotterdam 현대상선 해상운송 운송 Rotterdam 대한항공 여객운송 여객운송 Schiphol 하이로지스틱스 운송 운송 Oosterhout 범한판토스 화물운송 운송 Schiphol 금융 외환은행 소매금융 은행 Amstelveen 기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수산물 진흥기관 Rotterdam 대상 유럽 식품 판매 Amstelveen 마크로젠 유럽 유전자 감식 판매 Amsterdam S-Oil 윤활유 판매 Amsterdam SK 루브리컨츠 유럽 윤활유 판매 Amsterdam 삼일회계법인 회계서비스 회계서비스 Amsterdam

4. 문화관계

가. 개요

◦ 양국간 문화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으나, 계기별로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

◦ 2002년 월드컵에서의 우리 대표팀 선전 및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의 활약을 계기로

양국 국민간 교류 및 네덜란드내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증대되는 계기가 됨.

◦ 2013년부터 한국에 교환학생 경험이 있는 20대를 중심으로 자생한류단체가 만들어져 SNS와

한류행사를 통해 한류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K-pop을 넘어 K-movie, K-drama, K-food 등으로

관심분야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임.

– 2013.8월 발족한 한류콘(facebook.nl/hallyuconNL)은 1,0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9월 암스테르담에서 ‘Eat your Kimchi’ 토크쇼(한국에 매료된 캐나다인 부부의 한국문화 알

리기 행사)를 개최하여 340명의 유료관람객이 참석

– 한류콘은 2014.8월 유트레히트시에서 150명이 참가하는 2박3일 일정의 ‘한류캠프’,

10월에는 암스테르담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한류컨벤션’ 행사를 주최할 예정

나. 최근 문화교류 현황(2000∽)

2000.10-2001.1 네덜란드 국방부 주관 6.25전쟁 50주년 사진전 개최

2001.2 한국 전통복식 유럽 순회 방문(Rotterdam)

2001.5 국립합창단 방문 공연

2001.8 한국 축구대표팀 네덜란드 방문 친선경기

2001.9 한인화가 「황영성」작품전 개최(Geldrop)

2001.11 한국 남자 하키 국가대표팀 네덜란드 방문 경기

2002.4 한국 남자아이스하키 대표팀 방문(2002 세계선수권대회)

2002.8 한국 남자하키 대표팀 방문(2002 Rabobank Trophy)

2003.2 올림픽팀 친선축구경기(암스테르담 올림픽 스타디움)

2003.4 하멜 표류 350주년 기념 전통공예전시회 및 Korean Cultural Festival 개최

(호리쿰시)

2003.5 국립극장 총체극 ‘우루왕’ 공연(헤이그)

2003.9-10 한국 현대 미술전시회(암스테르담)

2003.10 ‘꼭두각시’ 인형극 공연(헤이그), ‘울타리굿’ 공연(암스테르담)

2003.2 박찬옥 감독 ‘질투는 나의 힘’ 로테르담영화제 대상

2004.11 한국전통예술공연단 방문 공연(황병기 가야금 등)

2007.7 헤이그 특사파견 100주년 기념 늘휘무용단 공연(헤이그)

2008.8 5차 유럽 한국학 대학원생 학술회의(라이덴 대학)

2008.8 마스트리히트 음식축제 계기 한국음식축제 개최

2009.2 양익준 감독 ‘똥파리’ 로테르담영화제 대상

2009.8 마스트리히트 음식축제 계기 한국음식축제 개최

2009.8 유도 국가대표팀,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참가(로테르담)

2009.9 국방부 국악연주대.무용단 네덜란드 순회 연주

2010.1 박찬옥 감옥 ‘파주’ 로테르담영화제 개막영화로 상영

2010.2 JUMP 공연단 방문 공연(로테르담)

2010.4 ‘한국 문화의 날’ 행사 개최(바세나르)

2010.5 한국 영화제 개최(암스테르담)

2010.9 ‘한국 문화의 밤’ 행사 개최(헤이그)

2010.9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한 리틀엔젤스 공연(헤이그)

2011.4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 개최(헤이그)

2011.4 수교 50주년 기념 태권도 시범행사(헤이그)

2011.5 수교 50주년 기념 국악그룹 Be-Being 공연(헤이그)

2011.5 수교 50주년 기념 Soul Sunflower 공연

2011.7 수교 50주년 기념 국제조형디자인협회전시회(호리쿰)

2011.7 한국패션문화협회, 국제패션아트페스티발 개최(헤이그)

2011.8 서울시립교향악단 암스테르담 공연

2011.11 한국영화 순회 페스티발 개최(델프트 등 6개 도시)

2011.11 구미 시립합창단 순회 공연(로테르담, 아인트호벤)

2011.11 한국음식 홍보행사 개최(아인트호벤, 마스트리히트)

2011.12 한국 근대대중문화 전시회(라이덴)

2012.2 한국빙상국가대표팀 세계빙상선수권대회참가

2012.3 라사문화원 한국전통국악연주회 공연

2012.4 아시아영화제 ‘한국영화의 밤’ 리셉션개최 및 ‘고지전’상영

2012.5 Floriade 2012 ‘한국의 날‘ 행사 개최(순천시 참여)

2012.6 한국여자하키국가대표팀 여자하키월드컵 참가

2012.8 한국여자농구팀 FIBA U17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참가

2012.10 세계약학연맹대회 ‘한국의 밤’행사 개최

2012.11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의 날’행사 개최

2012.12 한식세계화행사 ‘한국의 맛’행사 개최

2013.2 아시아영화제 ‘한국영화의 밤’ 리셉션개최

2013.5 아인트호벤 아시아주관 한국문화행사 개최

2013.9 한류자생단체 한류콘 ‘Eat Your Kimchi’ 토크쇼 개최

2013.10 암스테르담 응용과학대학 Korea-Connect 심포지엄

2013.11 사우스홀란드주 호리쿰시 초등학교 한국전문수업 개시식

2013.12 한식세계화행사 개최

2013.12 정전60주년기념 사물놀이한울림 ‘Rhythms of Korea’공연

다. Leiden 대학교 한국학과

◦ 1995년 네덜란드 최초로 한국학과를 독립학과로 설치ㆍ운영중

– (교수진) 현재 교수 1명(학과장)과 강사 2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2013년 국제교류재단에서

한국정치 관련 객원교수 1명을 파견ㆍ지원중

– (재학생수) 최근 한류 확산 및 한국의 경제성장, 정치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

라 Leiden 대학내 학생수가 급증하고 있는 학과중 하나로 부상하였으며, 2014년 현재 120명

(학사 110명, 석사 5명, 박사 5명)이 재학중

※ Remco Breuker 한국학과 학과장은 2012년 Leiden 대학교 백서에서 ‘한국과 북한에서 모든 업무

가 개인적 관계를 통해 진행되며, 사람을 알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라고 기술하여, 주네덜란드

대사관과 한국학중앙연구소가 문제를 제기하고 수정을 요구

– 이에 대해, Leiden 대학측은 2012년 백서를 대학 홈페이지에서 삭제 조치

5. 동포사회 현황

가. 개 요

◦ 재외동포는 2,600여명으로 현지장기체류자(가족포함) 1,000여명, 상지사주재원(가족

포함) 1,000여명, 유학생 600여명으로 구성됨. 거주지로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집중되어 있으며, 유학생 및 국제결혼자의 증가로 거주지역이 네덜란드 전역으로 확대

추세임.

◦ 6.25전쟁 이후 한국인 입양인이 약 4,000명에 이르며, 이들은 아리랑(Arierang)을 구성하여,

한인사회와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나. 한인단체 현황

◦ 네덜란드 한인회(1973.2월 창립)

회원수 : 2,600명

회 장 : 박영수

평통자문위원 : 박행국, 고광활, 손성철, 이욱현, 홍순용

◦ 분야별 단체로 한인경제인협회, 주재상사협의회, 재화란한인과학기술자협회, 네덜란드

한국학생회 등이 있음.

◦ 한인교회

– 4개의 교회(로테르담 사랑의 교회, 암스테르담 화란한인교회, 헤이그 이준기념교회,

아인트호벤 사랑의교회) 및 네덜란드 한인 천주교회가 있음.

다. 주재업체 및 상사

◦ 정부투자기관 : 한국무역관(KOTRA),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 상사지사 : 삼성전자, LG전자, 외환은행, 대한항공, 한진해운, 현대상선, 기아자동차, 한국

타이어, 고려화학, 대상, 고려제강, 현대중공업, 수산중공업, 현대엔진 등

약 50개사

6. 협정 체결 현황

1953.10.26 잠정 항공운수에 관한 각서 교환(‘53.10.26 발효, ‘54.10.31 종료)

1966.4.29 특허 및 상표에 관한 각서 교환(‘66.4.29 발효)

1970.4.28 사증 면제협정 서명(‘70.6.1 발효)

1970.6.24 항공협정 서명(‘70.12.30 발효)

– ‘95.4.13 개정각서 교환(‘95.9.19 발효)

1974.10.16 투자보장 협정 서명(‘75.6.1 발효)

1978.10.25 이중과세방지 협정 서명(‘81.4.27 발효)

– ‘98.11.6. 개정의정서 서명(99.4.2. 발효)

1979.2.28 전대차관 협정 서명(‘81.6.24 발효)

1982.12.1 경제기술 협력 협정 서명(‘83.8.1 발효)

1995.2.3 해운협정 서명(‘95.12.1 발효)

2002.7.3 사회보장협정 서명(2003.10.1 발효)

2003.7.12 투자보장협정 서명(2005.3.1 발효)

– 74년 체결된 협정 대체

2007.2.14 세관협력협정 서명(2009.2.1 발효)

7. 친한단체 현황

가.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회 (The Netherlands Korean War Veterans Association)

◦ 창설일자 : 1977.2.26

◦ 회 장 : C.P.G.J. Motshagen (예비역 해군대령)

◦ 회 원 : 약 400명

◦ 주요행사 : 매년 횡성 전투(2.12) 기념식 및 6.25 참전 기념식 개최

– 장소 : Schaasbergen 소재 KTC 부대 및 Den Bosch 소재 Van Heutsz 연대(참전기념비 소재)

나. 재네덜란드 한인입양인회(Arierang)

◦ 창설일자 : 1991.2월

◦ 회 장 : Mrs. Sandra Schaapherder

◦ 회 원 : 약 250여명

◦ 주요행사 : 자체 행사 및 대사관, 한인회, 한인학교와 공동으로 매년 학예·문화행사, 전체

총회, 한국문화행사 등을 개최

8. 명예총영사관 현황

◦ 로테르담 명예총영사관

– 2014. 2월 현재 공석

◦ 암스테르담 명예총영사관

– 2014. 2월 현재 공석

◦ 흐로닝헨 명예총영사관

– 총영사 : Mr. Sibrandes Poppema 흐로닝헨(Groningen) 대학교 총장(인가일자 2012.1.25)

– 주 소 : Oude Boteringestraat 44, 9700 AB Groningen, P.O.Box 72

9. 이준 열사 묘적지·기념관

가. 이준 열사 묘적지

◦ 이준 열사가 1907.7.14 서거 후 매장되었던 곳으로 1977년 우리 정부의 묘적지 확장 작업

에 의해 확장 조성됨.

– 이준 열사 유해는 1963년 본국으로 이장되어 현재 수유리 묘소에 안장

– 우리정부는 매년 묘적지 관리비 및 화환설치비를 지원

◦ 헤이그시 외곽 Nieuw Eykenduynen 공동묘지에 소재

– 주소 : Kamperfoeliestraat 2A, 2563 KJ, Den Haag

– 전화 : 31-70-325-8396

– 개관 : 월요일∽일요일(10:00∽17:00)

나. 이준 열사 기념관(Yi Jun Peace Museum)

◦ 사단법인 이준 아카데미(이사장 : 이기항)가 1907년 당시 이준 열사가 체류하다 순국한

호텔(Hotel De Jong)을 구입, 이를 개조하여 설립함(1995.8.5).

◦ 헤이그 시내 중심가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준 열사의 친필 이력서 등 유품 및 만국평화

회의 한국관련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음.

– 주소 : Wagenstraat 124A, 2512 BA, Den Haag

– 전화 : 31-70-356-2510

– 개관시간 : 월요일∽토요일(10:00∽17:00)

EMERiCs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

1990년 3월 26일 한국과 몽골은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러니 금년(2020년)은 양국이 공식 수교한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과 몽골의 관계는 말 그대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교육과 사회 등 전통적 국제협력 분야는 물론, 국방과 종교 분야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교류는 전 분야 전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한국 정부의 거의 모든 기관이 몽골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두 나라 교류가 빈번해졌다. 우리 정부의 대외원조와 NGO의 국제협력 사업에서도 몽골이 빠진 경우는 거의 없다. 양국 학자들 간 학술 교류도 1990년대 초기 언어와 민속과 역사 분야를 넘어 의학, 공학, 축산학 등 실용적 학문 분야로 확대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이루어진 양국 교류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인적 교류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은 전통적 몽골인 거주지인 몽골국(외몽골), 러시아연방의 부랴트공화국과 칼미크공화국,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를 제외하고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되었다. 2019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몽골인은 4만 7,483명이다. 절대적 수치는 많다고 하기 어렵지만, 2018년 말 기준으로 몽골의 전체인구가 323만 4,879명인 점을 고려하면 1.4% 이상이 한국에 살고 있는 셈이니 결코 적은 수라고 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주목되는 것은 <표 1>에서 보듯 한국 거주 몽골인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거주 몽골인의 중가에 비례하여 지난 10년 동안 한국을 찾은 몽골인도 크게 늘어났다.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2010년 4만 1,958명에 불과했던 몽골인 입국자는 2018년 말 11만 3,864명으로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2019년 10월 말 현재 2배 이상 늘어났다. 몽골인의 한국 입국이 늘어난 것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몽골 경제의 부침에 따라 한국 입국자 수 역시 증감을 반복해 왔는데 최근 급격한 증가는 몽골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3개월 미만의 단기 취업자 수가 증가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몽골의 경제 상황에 따라 앞으로도 입국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표 3>에서 보듯 같은 기간에 몽골을 찾은 한국인도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작년 몽골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을 국적 별로 보면 중국 1위, 러시아 2위, 한국 3위인데 최근 몇 년의 증가 추세를 놓고 보면 향후에도 한국 관광객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을 방문하거나 장기 거주하는 몽골인 수는 물론,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 수는 몽골의 인구와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특히 전통적 몽골인 거주지 외에 한국에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특수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2016년 5월 18~20일 한국을 공식 방문한 엘벡도르지(Ts. Elbegdorj) 전 몽골 대통령도 이 사실을 특히 강조한 바가 있다. 그는 5월 19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행한 연설 서두에서 몽골인과 한국인의 얼굴 모습의 유사성, 한국과 몽골에 거주하는 몽골인과 한국인, 민족과 언어와 역사적 측면에서의 양국의 특수 관계를 언급하면서 양국 국민의 인적 교류야말로 두 나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힘주어 말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한국과 몽골은 이런 빈번한 인적 교류에 합당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한국 거주 몽골인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빈번한 인적 교류는 그에 따른 부작용도 낳기 마련이다. 우선 위의 표에서 보듯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도 많지만 이 중에는 불법 거주자도 적지 않다. 그 수치 또한 장기 거주자 수 증가에 따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불법 체류자의 증가는 양국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해결 방식은 자진 신고, 과태료 면제, 자진 귀국이라는 판에 박힌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재 추세로 보면 향후 몽골인의 한국 입국자, 장기 체류자, 불법 체류자 수가 연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사회는 2016년 엘벡도르지 전 대통령이 당부한 한국 거주 몽골인에 대한 지원 요청 문제를 상기할 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거주 몽골인(4만 7,483명)은 몽골의 총인구(323만 4,879명)를 감안하면 대단히 많다. 그런 만큼 한국 거주 몽골인 문제는 자주 몽골 뉴스의 초점이 된다. 북핵 위기나 남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자국 교민의 안전을 전하고, 이들의 직업, 한국 생활, 사건사고 등 한국 거주 몽골인 관련 소식이 수시로 신문과 방송과 SNS에 등장한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몽골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 거주 몽골인 문제는 장래 한몽 협력과 한몽 관계에서 항상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한국 거주 몽골인 지원을 위한 제언

이 점에 유념하고 필자는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한몽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한국 체류 몽골인(노동자, 결혼 이주자, 학생, 사업가, 기타)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또는 이들의 한국 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는 10년 이상 장기 거주 몽골인(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임)에게 영주권 또는 장기 거주에 관한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한국에는 약 1만 7,233명(2019년 9월 현재) 정도의 불법 체류 몽골인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10년 이상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회 발전에 일정 정도 기여한 사람들이고, 생활 및 문화적 측면에서 거의 한국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고려하여 한국 정부는 장기간 불법으로 살고 있는 이들을 특별 사면하고 거주권을 부여하는 방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몽골인들은 두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무역, 투자, 산업 등 각 부문에서 한국의 경제 및 사회적 성과를 몽골에 전달함과 동시에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한국 사회의 활용 여하에 따라 향후 한몽 관계와 양국 교류를 증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10년 이상 장기간 체류하고 있는 몽골인 부부 (합법/불법)의 자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부모의 한국 장기 거주(유학, 노동, 사업, 공공기관 근무) 중 한국에서 나서 자라고 교육받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비자를 일정 기간 연장해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이들을 위하여 몽골에 국제학교로서 한국어 학교를 설립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몽골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다 귀국한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교육이 또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한국 문화에 길들여진 이들이 몽골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한국어 학교의 설립이다. 설립 방식은 추후 논의가 필요하지만 한국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을 한국에서 배운 대로 한국 문화 안에 있게 함으로써 훗날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셋째로 몽골주말학교(Mongolian Weekend School)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적극적 지원을 제안한다. 2016년 엘벡도르지 전 몽골 대통령의 방한 시 대통령은 서울 시장과의 면담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 어린이들이 자국의 언어와 문화 및 관습을 배울 수 있는 기관으로서 ‘몽골주말학교’를 창설할 것을 제안했다. 몽골주말학교는 주한몽골대사관과 서울시 공동사업으로 2017년 3월 12일에 공식 출범했다. 이 학교는 공무원, 노동자, 사업가, 결혼 이주자 자녀 등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과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몽골어와 몽골 문화 및 관습을 교육하고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몽골 정부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몽골어 교재와 강의 담당 강사를, 서울시는 시청 산하 서울 글로벌센터를 교육장소로 제공해 주는 형태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2018년 2월 24일에는 똑같이 주한몽골대사관과 수원시의 노력으로 수원에서도 몽골주말학교가 문을 열었다.

몽골주말학교의 학습에 대해서는 몽골인 부부나 다문화 가정 부부 모두 만족도가 높은 편이지만, 서울 주말학교는 일요일, 수원 주말학교는 토요일에만 수업을 진행하여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울시(수원시)와의 협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업임에도 한국 측은 장소 제공 외에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아 사실상 몽골인 교사들의 자원봉사에 의존하여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주말학교에 대한 지원은 결국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에 대한 지원이 되기 때문에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축적된 한몽의 끈끈한 유대를 고려하면 한국 거주 몽골인은 더욱 늘어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한국은 여전히 몽골인이 가장 많이 사는 외국으로 남을 것이고, 이는 한몽 협력에서 다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하는 한국의 강점이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한몽 협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 또한 교육에 대한 지원은 경제지표 등 외형적 발전 못지 않게 몽골의 미래에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협력이 절실하다. 특히 몽골이 총인구에서 14세 이하 젊은이 비중이 높은 젊은 나라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교육은 국가발전의 절대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몽골주말학교에 대한 지원은 한국 거주 몽골인에 대한 지원일 뿐 아니라 향후 한몽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친한 인사를 양성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몽 협력과 인적 교류를 확대할 방편으로서 ‘몽골한국센터’(가칭)의 설립을 제안한다. 필자는 이전에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비롯하여 한국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한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한국문화원의 설립을 제안했다. 왜 한국문화원 설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문화원 설립이 어렵다면 세종학당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보급사업, 한국 유학과 유학생 네트워크 관리사업, 한국 관광과 한류 홍보사업을 통합 관리하고, 한국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한국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기관으로서 ‘몽골한국센터’를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동 센터를 통하여 지난 30년 간 축적된 몽골 내 한국어 구사자 또는 한국에서 학위를 받은 전문가를 양국 협력 사업에 활용하여 몽골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와 관련하여 ‘몽골ㆍ일본 인재개발센터’의 활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동 센터는 몽골의 시장경제 촉진에 공헌할 인재 육성과 양국 상호이해 촉진을 목표를 내걸고 일본 정부 ODA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6월에 설립되었다. 설립 이후 10년 동안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지원으로 운영되었지만, 2012년 4월에 몽골국립대학교 부속기관으로 편입되어 현재는 국제교류기금(JF)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재개발센터 역시 초기에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 홍보에 집중했지만,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인적자원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현재 동 센터 내 한 부서는 비즈니스 담당부서이며, 비즈니스 기초반과 관리자 교육 등 이론 교육, 생산관리, 마케팅 등 현장 교육, 비즈니스 파트너쉽 교육, 일본 연수 등 네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사업, 즉 일본어 교육과 컴퓨터 교육 사업도 함께 이루어진다. 요컨대 인재개발센터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개발 국가인 몽골에 필요한 비즈니스 인재 개발에 투자하여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한몽 인적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관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만한 기관이다.

글을 마치며

지난 30년 간 진행된 한몽 교류와 협력을 돌이켜 보면 너무 급했다고 할 만큼 급속한 발전이 있었다. 필자가 처음 몽골에 갔던 1991년 몽골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한 해에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간 1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당시 수백 명에 불과했던 한국에 상주하는 몽골인 수는 그 사이에 4만 7,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양국 협력은 처음 두 나라 국민이 기대했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기업의 몽골 진출과 양국 교역량도 박스에 갇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몽골에서 한국의 위상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열 가지 이유가 있고 하려는 사람에게 천 가지 방법이 있다”는 몽골 속담처럼 양국 정부 및 비정부 기구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몽골에서 국제협력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고, 다가오는 30년에는 일본을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과 몽골 두 나라 사람들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친밀한 감정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에는 몽골 총인구의 1.4% 이상의 몽골인이 상주하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한국의 큰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을 토대로 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을 확대해 나간다면 지난 30년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몽골은 여전히 우리의 이익보다 우리의 지원이 더 많아야 할 나라라는 것,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충분한 이익을 갖다 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 <전문가 오피니언>은 PDF 다운이 가능합니다 (본문 하단 참고).

독일과 대한민국

양국 관계

1883년 11월 26일 한∙독 통상 우호 항해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과 독일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한국전쟁(1950-1953)과 이에 따른 국가 분단을 겪은 후 양국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독일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이 경제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빈국에 속했던 한국은 이제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으며, 저개발국 원조 수혜국가에서 원조국가로 위상이 바뀌었다.

통일을 중심으로 한 독일의 정치적 경험(접근정책, 대변혁과 국가 통합과정)은 한국의 정계와 학계에도 한국의 길을 찾는데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고위급 인사들로 구성된 한∙독 통일자문위원회가 발족되어 매년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통일부와 연방경제에너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독 통일자문위원회 회의는 통일의 내적 측면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제도화하기 위한 자리이다. 2014년 가을에는 슈타인마이어 전 연방외무부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통일의 외교정책적 측면을 주로 다루는 한∙독 통일외교정책 자문위원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2012년부터는 한∙독 포럼을 통해서 민간 차원에서도 한∙독 관계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있다. 한∙독 포럼은 격년에 한번씩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개최되며, 한∙독 포럼과 함께 주니어포럼도 동시에 열린다. 주니어포럼은 화제가 되는 주제를 청소년의 관점에서 논의하고 권고안을 제출하는 자리이다.

한국과 독일은 여러 가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효율적인 다자주의 강화, G20의 틀 내에서 새로운 세계경제∙금융질서 구축, 평화유지활동 참여, 기후변화 방지,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독통상우호항해조약

“독일 제국을 대표하는 독일 황제이자 프로이센 국왕과 조선의 국왕은 양 제국의 지속적인 우호관계와 양국 국민들의 편안한 통상 교류를 위해 조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한·독 관계의 첫 번째 교량이 되어 준 한·독 통상조약의 첫 문구이다.

조선과 통상 교섭을 맺으려던 최초의 외교적 시도는 막스 아우구스트 스키피오 폰 브란트(Max August Scipio von Brandt)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862년에 부임한 최초의 주일 독일영사였다. 1870년 폰 브란트는 부산에 건너와서 통상 교섭을 시도했지만 조선 관리들로부터 거절당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1873년 유럽 강국들에 대해 배척하는 입장이었던 대원군의 하야와 1876년 조·일 수교 이후의 개화정책에 힘입어 폰 브란트는 1882년 (당시 그는 주청 독일공사였다) 조선 황실과 독일 간의 조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독일 정부로부터 너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비준을 얻지 못했다. 독일 제국은 주요꼬하마 총영사인 칼 에두아르트 차페(Carl Eduard Zappe)를 내세워 새롭게 협상을 시도했고, 조선에서는 1882년 말 서양인으로서는 최초로 고문으로 부임한 독일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가 협상자로 나섰다. 이들은 곧 수정된 조약에 합의할 수 있었다. 마침내 1883년 11월 26일 민영목 외무독판과 칼 에두아르트 차페 총영사 간에 조·독 통상우호항해조약이 체결되었다. 이것으로 조선과 독일 제국 간에 공식적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양국은 서로 상대국에 영사관을 상설하기로 했으며, 조선은 독일 제국과의 통상을 위해 조선 항구를 개방하고 독일인들이 항구 주변에 토지나 건물을 구입하거나 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로 했다. 또한, 독일과 조선 사이의 해상무역에 관한 사항이 규정되었고 관세도 확정되었으며 양국 국민들이 공부를 목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할 시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

1884년 11월 18일 비준서를 교환한 후 독일 제국은 서울에 총영사관을 개설했고 비준서 교환을 위해 서울을 찾았던 오토 챔브쉬(Otto Zembsch)를 초대 총영사로 임명하였다. 1903년 총영사관은 공사관으로 승격되었으며 콘라드 폰 잘데른(Conrad von Saldern)이 공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독일과 조선의 외교관계는 중단되었고, 주한 독일공사관의 업무는 주일 독일공사관에 위임되었다. 조선 정부는 1887년 9월 이래 수명의 주독 전권대신을 임명했지만 부임하지 않았고, 1901년이 되어서야 민철훈 주독 전권공사가 처음으로 부임했다. 주독 공사관도 이범진 공사를 마지막으로 1905년 폐쇄되었다.

일제강점기,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국토 분단 이후 독일연방공화국과 대한민국은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의료지원국으로 인정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한국 영토 침공으로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발발 직후 미국의 주도 하에 호주, 에티오피아,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프랑스, 그리스, 영국,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네덜란드,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 미국 등 16개 국가가 유엔군의 이름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또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은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당시 독일은 2차대전의 결과로 군대를 보유하지 않았고 유엔 회원국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데나워 연방총리는 1953년 4월 미국 방문 중에 독일 적십자의 민간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독일의 재건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독일이 다시 국제사회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길이기도 했다. 최초의 의료진은 1953년 여름 한국으로의 긴 항해를 떠났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되었고, 1954년 5월 17일 부산의 독일 적십자 야전병원은 250개 병상을 갖추고 본격적인 의료 활동을 개시했다. 독일 적십자병원은 1959년 3월 31일 문을 닫을 때까지 24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고 1만6천 여 건의 수술을 시행했으며 6천 여 명의 출산을 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독일 방문 기간 중 부산 야전병원에서 일했던 간호사들을 만난 후 독일이 참전국에 포함되지 않은 사유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학술 연구가 수행되었고, 그 결과 2018년 대한민국은 독일을 공식적으로 의료지원국에 포함시키고 22번째 참전국으로 인정하였다.

부산의 독일적십자병원은 의료활동 외에 의사와 간호인력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던 만큼 훗날 한국 간호사를 독일로 파견하는 전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파독 광부•간호사

2013년 12월, 한국과 독일 정부가 한국의 젊은이들을 서독 광산으로 파견하는 협정을 체결한지 50주년이 되었다. 1977년까지 한국인 8천 여 명이 광부가 되어 독일 광산에서 노동을 했고, 이들의 뒤를 이어 한국인 간호사 1만 여명이 독일 병원으로 파견되었다.

1960년대에는 독일 광산 인력 수요가 상당했고, 독일은 한국 광부들을 통해 인력난을 타개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이른바 ‘서독 파견 한국 광부 임시 고용계획’이 탄생되었다. 한 차례 문서교환이 이루어진 후 1963년 12월 7일, 16일 협정이 발효되었다. 이 협정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독일이 유럽권 밖의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협정이었던 것이다.

양국 간의 이와 같은 합의는 당시 자금이 필요했던 한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독일로 파견된 인력들이 한국으로 돈을 송금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이 협정으로 인해 또 다른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 약 30%에 육박하던 한국의 높은 실업률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의 광부협정은 당시 한국에게 커다란 기회였다. 게다가 당시 해외 출국 규제가 엄격했기 때문에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기회이기도 했다. 지원율은 매우 높았다. 100여 명 모집에 최대 2,500명이 몰려들었으며,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자가 60% 이상이었다.

독일은 당시 광부뿐만 아니라 간호사 수요도 상당했다. 독일의 여러 수도회와 한국 내 독일 가톨릭 교회는 1950년대 말부터 이미 한국 간호사들의 독일 파견을 중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부협정에 상응하는 한국 간호사의 독일 파견에 관한 공식 협정은 1971년 7월 26일에서야 비로소 체결되었다.

한국인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간호사들 역시 독일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다. 이들은 전문적이고 친절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고용계약도 연장되었다. 한국인 광부들과 결혼한 간호사들도 있었고, 한국에 있는 남편을 독일로 부르거나 혹은 독일인과 결혼한 간호사들도 있었다. 3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한국 간호사의 절반 이상이 독일에 남았다. 이들은 오늘날 한·독 우호관계의 주축이 되고 있다.

간호사들과 함께 한국인 광부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어 한국의 발전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한국 이주노동자의 대다수는 루르 지역이나 라인란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 최대이자 서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 교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독일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독일 사회통합의 모범적인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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