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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처음 대학으로 정식인가를 받은 것은 숭실학교다. 1897년 미국의 선교사 배위량(W.M.Baird)박사가 설립한 숭실은 1905년에 대학부를 설립하고 1912년 최초의 대학으로 정식인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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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대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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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들) – eastkind의 얕은 블로그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들) ; ○성균관대학교. “오래된 새로움의 가치” (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 1398년 ; ○가톨릭대학교. “대학 교육기관의 실질적인 모태 …
Source: easteast.tistory.com
Date Published: 5/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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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어디? – 오마이뉴스 모바일
다른 대학들이 모두 전통의 뿌리를 캐며 최대한 역사를 늘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서울대는 “1946년 8월 22일 민족교육의 기치아래 민족 최고 지성의 전당 …
Source: www.ohmynews.com
Date Published: 3/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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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대학에 관한 것이다. 목차. 1 역사; 2 제도. 2.1 수업 연한; 2.2 입학 자격; 2.3 종류. 3 등록금. 3.1 학자금 대출. 4 비판 및 논란.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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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는? < 만나고싶었 ... - 연세춘추
각 대학교의 역사를 짚어본다!! ; 연세대. 광혜원. 1885년 ; 배재대. 배재학당. 1885년 ; 숭실대. 학당. 1897년 ; 가톨릭대. 배성요셉신학당. 1855년.
Source: chunchu.yonsei.ac.kr
Date Published: 4/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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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대학에서 최고의 인재 양성하는, 숭실대학교 … – 대학저널
한국 최초의 대학은 어디일까? 바로 숭실대학교(총장 한헌수). 이 대학은 1897년 평양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대학으로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
Source: www.dhnews.co.kr
Date Published: 6/2/2021
View: 3093
한국 최초의 대학은 어떻게 설립되었을까? – Naver Post
조선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서구적 개념의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입니다. 일본 제국의 6번째 제국대학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4년에 설립되었죠. 일제가 조선 …
Source: post.naver.com
Date Published: 6/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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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발생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 지혜와 지식 티움 프로젝트
한국의 고등 교육 기관은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등이 있었는데 근대적 의미의 대학은 1924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 …
Source: tioom.tistory.com
Date Published: 7/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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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국 최초의 대학
- Author: 질문들 [궁금증 해결 상식 지식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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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3.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HnLU8Xaacw
3·1 운동 당시 국내 최초 대학은 어디?
3·1 운동 당시 국내에는 어떤 학교들이 있었을까. 1910년 주권을 빼앗긴 당시 조선은 근대교육기관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고등교육의 발전이 가로막혀 있었다. 지식인들이 배출될수록 식민통치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일종의 우민화(愚民化) 정책이었다.
그러나 뜻있는 애국지사들의 노력으로 전국 각지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비롯한 각종 근대식 교육기관이 문을 열었다. 실제로 3·1 운동이 있던 1919년 당시에는 전국에 517개의 보통학교가 있었다.
28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분석한 식민조선의 교육현황 자료에 따르면 당시 보통학교 재학생은 8만9288명이었다. 전체 취학 대상 아동(228만명 추정)의 3.9%였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국내 일본인 아동의 취학률(91.4%)과 비교하면 23배나 차이난다”며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교육을 통한 지식인의 성장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은 전문학교(전문대학)였는데 6개에 불과했다. 관립은 경성법학전문학교·경성의학전문학교·경성공업전문학교·수원농림전문학교 등 4곳이었고, 사립은 연희전문학교·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등 2곳이었다. 6개 학교의 재적 학생은 585명뿐이었다.
1905년 개교한 보성전문학교와 1910년 개설된 이화학당 대학과도 전문학교에 속했지만 일제는 1915년 이들을 각종학교로 격하했다. 다시 전문학교로 승격된 것은 보성은 1921년, 이화는 1925년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대학으로 정식인가를 받은 것은 숭실학교다. 1897년 미국의 선교사 배위량(W.M.Baird)박사가 설립한 숭실은 1905년에 대학부를 설립하고 1912년 최초의 대학으로 정식인가를 받았다. 당시 숭실은 평양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보성·이화와 함께 1915년 각종학교로 격하됐다 1925년 전문학교로 개편됐다. 김지현 숭실대 홍보팀장은 “식민지 교육을 강요하는 일제에 맞서면서 오랜 수난을 겪었다”며 “특히 1938년에는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자진폐교를 했다”고 말했다. 숭실은 폐교 16년만인 1954년에 서울 캠퍼스를 재건했다.
최초의 4년제 대학으로 공식 인가된 것은 경성제국대학이다. 1924년 청량리 교사에서 예과과 개교했고 1926년 동숭동에 본과가 신설됐다. 당시 동숭동 일대에는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의학전문학교, 불교중앙학원 등 학교가 밀집해 있어 향후 ‘대학로’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명칭이 공식화 된 것은 1966년 서울시가 현재의 혜화동 로터리 일대를 대학로로 고시하면서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 이탈리아에 문을 연 볼로냐대학(법학)이다. 영국의 옥스퍼드(1167)나 케임브리지(1209)도 초기 대학에 속한다. 그러나 근대 대학의 시초를 이루는 곳은 1810년 독일에서 개교한 베를린대학이다. 이 때부터 교육과 연구를 중추로 한 근대 고등교육기관의 기틀을 본격적으로 갖췄다.
윤석만 기자 [email protected]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어디일까?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는 자기가 최초의 대학이라고 주장하는 학교가 꽤 많다. 홍보 측면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이 대학 입장에서 매력이 있나보다. ‘최초의 대학’이라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일단 주장하고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럼 최초라는 타이틀을 홍보하는 학교들의 간단한 역사를 하나씩 살펴보자.
○성균관대학교
“오래된 새로움의 가치” (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
1398년 설립된 조선시대의 성균관의 이름만 가져온 것이 아닐까라는 편견을 가지기 쉽지만 생각보다 연속성이 있다. 조선시대 성균관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1943년 결국 사실상 폐교된다. 하지만 얼마 뒤 해방이 되었고, 폐교 3년 뒤인 1946년 성균관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균관대학이 설립된다.
○가톨릭대학교
“대학 교육기관의 실질적인 모태” (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
1855년 세워진 성요셉신학교를 시초로 한다. 이후 여러번 명칭이 바뀌었고, 자리도 여러번 옮겼다. 1947년 이름을 성신대학으로 바꿨고, 1959년 가톨릭대학으로 바꿨다.
○연세대학교
“이 나라 근대 교육의 첫 장” (연세대학교 홈페이지)
1885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 광혜원을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그때부터 의학교육이 이루어져서 의과대학의 시초로 보기 때문이다.
○배재대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대학” (배재대학교 홈페이지)
설립 자체는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으로 1885년 에 됐다. 하지만 대학부가 일제에 의해 1925년 폐지되고, 오랜 시기동안 대학부가 없었다. 해방 뒤 배재학당 법인이 1978년 대전보육학원을 인수하며 전문대 모습을 갖췄고 1992년에야 종합대학교로 승격한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 (이화여자대학교 홈페이지)
1886년 설립된 이화학당에서 시작했다. 사실 남녀 구분 없이 최초라고 주장해도 괜찮을 법한 설립 연도이다.
○숭실대학교
“민족 최초의 대학” (숭실대학교 홈페이지)
1897년 평양에 설립된 숭실학당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폐교당했다. 16년 뒤인 1954년 동문들에 의해 숭실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재건된다.
○고려대학교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 (고려대학교 홈페이지)
1905년 설립된 보성전문학교로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최초의 국립고등교육기관”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1946년 을 8월 22일을 개교 일자로 보는데, 일제시대에 세워진 경성제국대학과 선을 긋기 위해서 일부러 역사를 짧게 잡는 특이 케이스이다.
○국민대학교
“해방 후 최초의 사립대학” (국민대학교 홈페이지)
1946년 9월 1일 국민대학관으로 설립됐다.
○조선대학교
“대한민국 최초의 민립대학” (조선대학교 홈페이지)
1946년 9월 광주야간대학원으로 설립됐다.
○단국대학교
“해방후 설립된 최초의 사립대학” (단국대학교 홈페이지)
1947년 11월 1일 단국대학으로 설립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어디?
지난 5일 고려대가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 기념식엔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를 비롯 많은 유명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일개’ 대학교의 개교기념식에 대통령 축사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접어둔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들이 전한 기념식 내용을 보면, ‘100주년’이기에 조명을 받은 건지 아니면 ‘이름’있고 ‘힘’있는 대학교라서 주목을 받은 건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접어두자.
한편 연세대는 오는 14일 창립 120주년을 기념한다고 들썩이고 있다. 세계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해 성대한 기념식도 개최한다고 알리고 있다. 이 역시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100주년과 120주년의 의미다. 이번 기념식은 고려대와 연세대를 축하하는 선에서 그칠 일은 아니다. 기념식의 진정한 의미는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학들의 역할을 살펴보는데 있다.
▲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홍보 이미지. 이번 기념식은 고려대를 축하하는 선에서 그칠 일은 아니다. 100주년의 진정한 의미는 고려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학들의 역할을 살펴보는데 있다. ⓒ 고려대
고려 100년, 숭실 108년, 성균관 607년, 연세 120년, 이화 119년, 서울 99년…?
인터넷에서는 대학생들이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계기로 대학들의 역사를 논하며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신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교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대학들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으니 그 역사를 논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역사를 통해 대학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를 되새기는 것은 대학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 아래 박스기사 참조).
다음은 몇몇 대학들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학교 역사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고려대는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의 출현”이라고 밝히며 지난 5일 개교 100주년을 기념했다.
단국대는 “1947년 11월 3일 역사적인 개교”를 했고 “해방 후 설립된 최초의 사립대학 출범”이라며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구국, 자주, 자립”의 창학정신을 들었다.
성균관대는 “고구려의 태학, 통일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을 잇는 최초의 국가 교육기관이자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발원지인 성균관”을 모체로 “1398년 건립”됐다고 소개한다.
숭실대는 “1897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위량(W.M.Baird) 박사가 사저 일부를 사용하여 학교를 시작하고 교장에 취임”한 후 “1906년 숭실학당에 정식으로 대학부가 설치”돼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라고 밝혔다.
연세대는 “한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120년 동안 국가사회 발전을 선도”했다며 오는 14일 창립 120주년을 맞는다고 홍보했다.
이화여대는 “1886년 5월 31일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톤 부인 창설”이라면서 “1943년 8월 7일 재단법인 이화학당으로 설립 등기, 김활란 이사장 취임”을 이야기한다.
조선대는 “민족국가 수립에 기여할 지역 사회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뚜렷한 민족적 자각 속에서 태동”됐고 “일제시대에 좌절된 호남지역의 민립대학 건립 운동은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에 조선대학 설립 동지회 창립으로 부활”됐음을 알렸다.
홍익대는 “1946년 4월 재단법인 ‘홍문대학관’ 설립”으로 시작했으며 “홍익인간이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교육법에 명시된 교육목표”라면서 건국이념까지 거론했다.
눈에 띄는 것은 서울대. 다른 대학들이 모두 전통의 뿌리를 캐며 최대한 역사를 늘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서울대는 “1946년 8월 22일 민족교육의 기치아래 민족 최고 지성의 전당”으로 “학문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국내 최초의 국립종합대학교로 설립”되었다며 경성제국대와의 연관성을 차단했다.
이상에서 보듯 대학들은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을 이끌었다며 서로 최초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최초’의 개념을 ‘최고(最古)’가 아닌 ‘최고(最高)’로 여기며 대학서열을 논하는 자료로 삼고 있다. 입시점수 등으로 시작됐던 대학서열의 논쟁이 학교 역사로까지 옮겨 간 상황이다.
황폐해진 교육현장에는 대학서열 고착화에 따라 입시전쟁터로 변한 고등학교와 무한경쟁으로 녹초가 된 고등학생들이 있다. 게다가 이제는 최초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다양한 주장을 펼치는 대학과 취업전선에 내몰린 대학생들도 그 현장에 합류했다.
교육현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아니다. 최근 내신등급제라는 대학입시제도는 고교생들과 교육당국의 대치상황을 낳았고, 이건희 회장의 철학박사 학위수여 논란은 대학교와 기업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수반했다.
많은 사람들은 교육현장이 더 이상 입시전쟁터와 취업전쟁터로 황폐화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인교육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한다. 고려대의 개교 100주년과 연세대의 창립 120주년을 축하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어디인가에 대답하기 이전에, 대학교 본연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를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동숭동시절 서울대 문리대 사진. ‘진리의 상아탑’과 ‘실천하는 지성’에 대한 답은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에서 찾아야 한다. ⓒ 서울대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 대학생은 ‘실천하는 지성’?
사람들은 대학을 가리켜 ‘진리의 상아탑’, ‘지성의 전당’이라 불러왔다. 대학생을 가리켜서는 ‘실천하는 지성’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말이 지금도 유효한 지는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진리의 상아탑과 실천하는 지성에 대한 해답은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에서 찾아야 한다.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면 대학들은 이념과 취지를 수정하든지 아니면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건학이념과 설립취지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의 본분이자 사명이라고 대학 스스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홈페이지에서 살펴 본 몇몇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
고려대는 고대의 전통과 지향에 대해 “1. 민족적, 민주적 전통(민족주체의 건학이념, 민족운동의 본산, 반독재 투쟁) 2. 비판적, 저항적 전통(압제투쟁, 불의항거, 부정거부, 독재반대, 정의감) 3. 의리적, 화합적 전통(애교심, 모교애, 선후배 의리, 사제간 정의) 4. 행동적, 야성적 전통(추진력과 실천력, 진취성과 저돌성, 호랑이 정신) 5. 서민적•대중적 전통(비관료적 순박성, 정직성, 비귀족적 대중성, 향토성)”을 꼽았다.
단국대는 “범정 장형 선생은 젊은이에게 민족의 동질성을 끝까지 지켜가도록 교육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신념에서 교명을 ‘단국’으로 하고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대학을 설립”했다며 “창학정신은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구국, 자주, 자립이다. 구국은 국가관을, 자주는 민족관을, 자립은 세계관을 표상”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설립 이념과 비전으로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하는 세계수준의 종합대학”을 들고 “세계수준의 대학, 종합대학, 연구대학”을 표방해 “세계적 수준의 학문 수월성 추구와 종합대학의 3대 기본 핵심 기능인 연구ㆍ교육ㆍ사회봉사의 균형발전, 기존지식의 발전 및 체계화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들었다.
성균관대는 “인간의 존엄성을 토대로 자기 완성과 인류평화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유교정신”이 건학이념이라며 “유교정신은 현실생활에 있어서의 실천도덕과 철저한 인본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격도야와 학문연마를 통하여 인륜대도를 밝히고 인류공동의 이념구현에 공헌할 국가동량의 인재를 길러내는데, 교육의 목표를 둔다”고 밝혔다.
숭실대는 “고등교육의 불모지나 진배없는 이 땅에 ‘진리와 봉사’를 이념으로 내걸고 고등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며 “1997년 10월10일을 기하여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그 긴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시대가 요구하는 고유한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그 나름의 사명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교육이념에 대해 “연세가 다른 보통 대학과는 확연히 다른 지도자를 양성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며 “이웃과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엘리트를 양성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엘리트를 연세가 반드시 교육시켜내야 한다고 믿는다”는 총장의 말로 대신했다.
이화여대는 창립이념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이념에 기하여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고등교육ㆍ중등교육ㆍ초등교육 및 유아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정관 제1조)”는 것을 들며 “이화대학이라는 교명은 1887년초 고종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스크랜톤 부인이 경영하던 여학교에 하사한 ‘이화학당’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조선대는 “민족국가와 민족 문화 건설의 시급한 과제에 당면하여 획일성을 배격하고 개성을 갖춘 민주시민을 양성”해서 “학문과 사회 현실이 상호 실천적 연관을 갖는 현실적인 교육을 행하여, 전문 지식인을 양성하되 자질 있는 학생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할 필요를 강조”했다는 설립동지회 발기 선언문을 전했다.
홍익대는 건학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들며 “홍익인간의 이념은 자아와 만유의 공존 공영을 정립하려는 필수불가결의 사상”이며 “홍익인간은 인간가치로서의 진선미를 숭상하고 사회가치로서의 자유, 평등, 평화를 표방”해 “구체적으로는 인본정신, 민주원리의 정신, 민족통합의 정신 등이 내재한다”고 소개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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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편집 ]
한국의 고대, 중세 시대의 국립 고등 교육 기관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설립된 태학, 신라 신문왕 2년(682년)에 설치된 국학, 고려 성종 11년(992년)에 세워진 국자감이 있었고 고려 충선왕 2년(1310년) 성균관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 개성성균관 자리에는 고려 문종의 별궁이 있었는데 순천관(順天館, 외국사신들이 들르던 숙소)·숭문관(崇文館, 교육기관)으로 변천되어 오다가 고려 선종 6년(1089년)에 국자감(國子監, 최고 유교 교육기관)을 이곳에 옮겨왔으며, 고려시대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조선 선조 35년(1602년) ∼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사이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 가운데 대성전(大成殿)과 서쪽의 재(齋)는 조선 선조 35년(1602년)에 짓고, 명륜당(明倫堂)과 동무(東廡)·서무(西廡)는 조선 선조 38년(1605년)에 다시 지었다.
조선시대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준공된 성균관이 있는데 고려 충선왕 2년(1310년) 개성에 있던 성균관과는 다른 건물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 성균관은 고려시대 국자감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서와 오경 등을 기본으로 했다. 교육방법은 강독(講讀), 제술(製述), 서법(書法)으로 이뤄졌다. 또한 성균관 내에는 오늘날 학생총회에 해당하는 재회(齋會)가 존재하여 학자의 사기를 진작하고 존중하는 기풍이 전통으로 내려왔다.[1][2][3]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태조는 숭교방(崇敎坊一明儉洞)에 성균관 건물을 준공하고 고려 제도대로 유학(儒學)을 강의하는 명륜당(明倫堂), 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 유생들이 거처하는 재(齋)를 두었으며, 태종은 땅과 노비를 지급하고 친히 문묘에서 제사를 지냈고 왕세자의 입학을 명령하였다. 이후 이것은 상례가 되었으며 여러 왕을 거치는 동안 경기도 연해의 섬(島), 전라남도 해안의 어장(漁場)과 많은 땅이 부속되었다. 규모는 성종 때에 완성되었는데, 향관청(享官聽)과 존경각(尊經閣·도서관)도 이때 증설되었고, 현종 때에 비천당(不闡堂·과거장), 숙종 때 계성당(啓聖堂)이 세워졌다.
총책임자 관원으로 지관사(知館事·弘文棺, 또는 藝文館 大提學이 겸임, 현 총장에 해당)를 배치하고 동지관사(同知館事·겸직, 현 부총장에 해당) 1명, 전임관원으로 대사성(大司成·정3품) 1명, 제주(祭酒·정3품) 2명, 사성(司成·정3품) 1명, 사예(司藝·정4품) 2명, 사업(司業·정4품) 1명, 직강(直講·정5품) 4명, 전적(典籍·정6품) 13명, 박사(博士·정7품) 3명, 학정(學正·정8품) 3명, 학록(學錄·정9품) 3명, 학유(學諭·종9품) 3명이 있었다. 이 중 박사 이하는 정원 외에 봉상시(奉常寺)의 관원과 사학(四學)의 훈도(訓導)가 겸직한 것이었다.
성균관은 조선 연산군 때 연산군의 실정을 공격하다가 탄압받기도 했다. 조선 시대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서원이 있었다. 서원은 조선 유교의 여러 학파발전에 기여하였다. 조선시대 학교는 관학으로 성균관, 향교를 비롯해 경연, 세자시강원, 종학, 잡학, 서원과 사당 같은 사학 등이 있었다.[1]
서당은 오늘날의 초등학교와 비슷하고 서원과 향교는 중.고등학교쯤에 해당하고 성균관은 대학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향교와 성균관은 관이나 나라에서 관리하였고 서당과 서원은 뜻있는 학자들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정착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조선시대의 전통 학교·교육제도는 구한말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존재했다.[1]
근대적 의미의 대학으로는 1924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만이 있었다. 까닭은 조선 말기부터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일어났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조선에는 경성제국대학 외에는 단 한 개의 민립 또는 사립대학의 설립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제국주의로 무장된 지배계층의 일본은 민중과 식민지 피억압 민족에게는 고등교육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차별의식에서 식민지 조선에 근대 대학을 설립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민립대학설립운동은 1920년 6월 이상재, 한규설, 윤치호 등 100명이 조선교육회설립발기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모임에 참가한 인사들은 조선에 대학이 없음을 개탄하고 조속한 시일 내 민립대학을 설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듬해인 1922년 1월 이상재, 조만식, 윤치호 등이 모여 조선민립대학기성준비회를 정식으로 결성하였다.
이어 1923년 3월 29일 발기인 1170명 중 462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3일간에 걸친 총회를 개최하였다. 총회에서 한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가장 선결 문제가 교육에 있으며, 문화의 발달과 생활의 양상이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에 있음을 선언하는 ‘민립대학 발기 취지서’를 채택하고 대학 설립 계획서를 확정하였다.
민립대학설립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민립대학설립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민립대학설립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료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국립대학으로는 부산대학교와 서울대학교[4], 여자대학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립대학으로는 숭실대학교[5]와 연세대학교 등 여러 대학이 대한민국 대학교의 시초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 연혁에 대하여 일부 논란이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일정(日政) 때는 경학원(經學院)이라 불렀고 명륜당과 부속건물에 명륜전문학교(明倫專門學校)를 세워 교육하였으며 8.15 광복 후에는 재단법인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고 단과대학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1996년 11월에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인수하여 사립학교법(1963.6.26. 법률 1362호)에 의한 별도의 학교법인으로 만들었다.
각 대학에서 내놓는 연혁을 보면 가톨릭대와 연세대가 1885년, 이화여대가 1886년, 숭실대가 1897년, 고려대가 1905년, 동국대와 숙명여대가 1906년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대학들이 2년제 전문대학을 포함하여 신학교, 성경학교, 강습소, 학당, 실업교육, 중등교육 등의 연혁까지 포함하여 대학의 연혁을 부풀리고 있듯 거의가 대한민국의 광복과 한국 전쟁 후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미군정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3년간 국내 고등교육계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서울대는 국대안 파동을 겪으면서 국대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란 끝에 안정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사립 전문학교들의 대학 승격과 신규 대학의 설립이 이뤄졌다. 광복 후 전문대학으로 있던 연희전문, 보성전문, 이화여전 등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고, 국립부산대, 국립해양대 등 국립대도 설립되었다.
또한 역시 2년제 전문대학의 형태로 운영되던 종로구 혜화동의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敎)가 1946년 9월 20일, 동국대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종로구 명륜동의 명륜전문학교(明倫專門學敎)는 1946년 9월 25일, 성균관대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종로구 낙원동의 단국대는 1947년 11월 1일에 광복 최초 4년제 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고, 한신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신학대학으로 정규대학 인가를 받았다. 1948년에는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국민대, 1949년에는 건국대, 홍익대가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49년에 가인가를 받았던 경희대는 1952년에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고 일제때 평양에 있다가 폐교되었던 숭실대는 1954년 4월 15일, 당시 문교부로부터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한국대학신문의 광복이후 정규대학 설립인가 현황(1946년~1954년) 참조)[6][7][8]
광복 후 당시 문교부에 등록된 한국 내 《대학설립인가의 현황[6]》을 보면 이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서울대학교는 원래 1924년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교로 출발하였으나 해방후 정립한 1946년 8월 22일을 서울대학교의 개교일로 잡아 지금까지 기념해 오고 있다. 참고로 인가서를 기준으로 하면 이화여대가 신청일자가 1946년 6월 24일로 기록된 제1호 인가서를, 연희(연세)대는 1946년 7월 31일로 기록된 제2호 인가서를 미군정청 학무국으로부터 받았으며, 고려대는 신청일자가 1946년 8월 5일로 기록된 제3호 인가서를 받아 8월 15일에 전격적으로 발표한 종합대학 승격의 법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9]
2000년대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출산률은 계속 줄고 있는데 대학의 진학률은 늘고 있다. 실제로 전산업 취업유발계수(투자액 10억원당 유발되는 취업자 수)가 2000년 18.1에서 2007년 13.9로 감소하였으며, 대학진학률은 1990년 33.2%에서 2009년 81.9%로 48.7%p 급증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한 독일도 대학진학률이 50%대임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고학력 노동공급은 가히 장대비 수준이라는 전문인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10] 그러나 2010년 조사로 40%의 국민이 대학 진학이 필수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점차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11][12]
제도 [ 편집 ]
고등교육법상(제 2조) 대한민국의 대학은 대학 · 산업대학 · 교육대학 · 전문대학 · 한국폴리텍대학 · 기술대학 · 원격대학(방송대학 · 통신대학 · 방송통신대학 및 사이버대학) · 각종 학교 등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넓게 보아 학부 과정 뿐 아니라 석사, 박사 과정인 대학원도 포함하는데 대학원은 대학교에서만 설치되는 것은 아니고, 대학원대학이라 하여 대학원 과정만을 설치할 수도 있다(고등교육법 30조).[13]
수업 연한 [ 편집 ]
대한민국 대학의 수업 연한은 다음과 같다.
대학원대학을 제외한 대학 : 4년 (단, 대통령령에 의해 6년의 대학도 있다. 예를 들면 의과, 치과, 약학, 건축, 수의과 등등)
: 4년 (단, 대통령령에 의해 6년의 대학도 있다. 예를 들면 의과, 치과, 약학, 건축, 수의과 등등) 대학원 및 대학원대학 : 석사 · 박사는 각 2년 이상, 통합 과정은 4년 이상의 연한
: 석사 · 박사는 각 2년 이상, 통합 과정은 4년 이상의 연한 단, 학칙이 정하는 학점 이상을 수료한 학생은 수업 연한을 단축할 수 있다.
학점당 이수 시간은 매학기 15시간 이상이다.(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4조)
입학 자격 [ 편집 ]
대학원과 대학원대학을 제외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고등학교 졸업과 동등한 학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대개의 대학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지표로 삼아 선발하기도 한다. 대학원과 대학원대학의 석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 혹은 법률로써 동등한 학력이 인정되는 사람이어야 하며 대학원과 대학원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 혹은 법률로써 동등한 학력이 인정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종류 [ 편집 ]
산업 대학(고등교육법 2절) : 산업 대학은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학술 또는 전문적인 지식을 위한 교육을 계속해서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된 대학이다. 수업 연한이나 재학 연한은 법으로 제한하지 않으며 산업체에서의 교육, 연구 및 실습 내용을 특정한 교과목의 이수로 인정할 수 있고, 산업체로부터의 위탁이나 산업체의 위탁에 의한 교육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 대학과 사범 대학(고등교육법 3절) : 교육 대학은 초등학교 교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 대학이다. 일반 대학에는 중등학교 교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범 대학을 설치할 수 있으며 특별한 필요가 있을 경우에 한해 교육과를 일반 대학에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하며 수업 연한은 4년으로 정해져 있다. 또한 대통령령에 의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목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종합교원양성대학을 설치할 수 있다. 교육 대학과 사범 대학, 종합교원양성대학은 재학생의 연구 및 실습을 위한 부설학교를 설치할 수 있으며 교육 대학에는 초등학교를, 사범 대학에는 중 · 고등학교를 설치한다. 종합교원양성대학에는 초 · 중 · 고등학교를 모두 설치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에는 독립된 사범 대학은 전혀 없으며, 종합 대학의 단과 대학으로서의 사범 대학만 존재한다.
전문 대학(고등교육법 4절) : 전문 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연구하고 습득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직업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수업 연한은 보통 2년이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한하여 3년으로 할 수 있다. 전문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 전문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으며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득한 학교에 한해 전공심화과정을 설치할 수 있는데,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하는 경우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한국폴리텍대학(고등교육법 4절) : 한국폴리텍대학은 「고등교육법」 제2조제4호에 따른 전문 대학 으로서 학위과정인 제40조에 따른 다기능기술자과정 또는 학위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하면서 직업훈련과정을 병설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을 말한다.
원격 대학(고등교육법 5절) : 원격 대학은 열린 학습사회를 만들기 위해 원격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대학으로 방송 대학 · 통신 대학 · 방송통신 대학 · 사이버 대학을 모두 포함한다. 원격 대학에는 학사 과정과 전문학사 과정을 설치할 수 있으며 학사 과정은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전문학사 과정은 수업 연한을 2년으로 한다.
기술 대학(고등교육법 6절) : 기술 대학은 산업체 근로자가 산업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이다. 기술 대학에는 전문학사 과정과 학사 과정을 설치할 수 있는데, 전문학사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 또는 동등한 학력이 인정되는 사람이 일정 기간 이상 산업체에 근무하고 있어야 하며 학사 과정에는 전문학사 학위, 또는 동등한 학력이 인정되는 사람이 일정 기간 이상 산업체에 근무하고 있어야 한다.
개방 대학(open university) :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려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각종 학교
등록금 [ 편집 ]
대학 등록금은 수업료, 기성회비, 입학금 등으로 구성된다. 사립대학은 기성회비가 없는 대신 수업료가 국공립대 등록금보다 높고, 국공립대학은 수업료가 낮은 대신 기성회비 비중이 높다.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은 사립대학보다 낮다. 김대중 정부의 사립대학 설립 인가 기준 완화로 사립대학의 수가 급증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등록금이 나날이 폭등했고, 한나라당은 2007년 무렵 “반값 등록금” 정책을 논의했지만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한 후에도 등록금은 줄어들지 않았다. 등록금은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그러나 등록금심의위원회가 무용지물이라는 견해도 있다.[14] 또한 등록금 인하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움직임을 대학교와 경찰이 탄압하는 경우가 있다.[15]2009년 5월 이명박 정부는 등록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장학금 제도를 최초로 만들었으며 현재도 운영 중이다. 2011년 9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2조 2500억원 규모의 등록금 대책안을 발표했다. 소득분위에 따라 각각 차등 지급되는 방식으로, 소득분위 7분위 이하에는 22% 정도의 등록금 인하가 기대된다.[16] 그러나 명목 인하율은 5%에 그쳐, 장학금 확대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17]
학자금 대출 [ 편집 ]
한국장학재단, 은행 등이 학자금 대출 사업을 한다. 2005년부터 2009년 1학기까지는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정부 보증 형태로 보증해주고 시중 은행에서 대출 실행하였다. 한국장학재단설립등에관한 법률에 따른 한국장학재단이 2009년 5월 설립되면서 2009년 2학기부터 한국장학재단이 대출 실행도 하게 되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정부보증학자금대출보다는 이자율이 조금 낮아졌다.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종류는 〈든든 학자금 대출(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일반 상환 학자금 대출〉, 〈농촌 출신 대학생 학자금 융자〉가 있다. 든든학자금대출은 취업 전에는 상환이 유예되고 단리로 이자가 붙다가, 연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될 때부터 이자가 복리로 바뀌면서 상환이 시작된다. 65세가 되고 국민연금 밖에 소득이 없어서 못 갚으면 상환 의무를 면제해준다. 일반학자금대출은 유예 기간 없이 거치 기간과 상환 기간을 두고 거치 기간 동안에는 이자를 납부하다가 상환 기간부터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든든학자금대출은 변동 금리이고 상환 기간 중 이자가 복리이지만, 일반학자금대출은 고정 금리이고 단리 이자라는 차이점이 있다. 농촌출신대학생학자금융자는 농촌에 주소를 두고 6개월 이상 거주한 학생 또는 학부모의 자녀에 대해 무이자로 대학 등록금을 빌려주고 졸업 후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비판 및 논란 [ 편집 ]
서열화와 지방대학 [ 편집 ]
지방대학은 대한민국에서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대학을 말한다. 이 지방대중에서 지방거점국립대학교나 특수한 대학이 아닌 대학을 지잡대로 비하하는 말도 통용된다. ‘지방(local)’은 원래 ‘전국'(혹은 ‘세계’)의 상대 개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 ‘수도권’의 반대말로 쓰인다. 이러한 구분은 대학 간 서열화의 편견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가 행정수도로 확정되면서 점차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18][19]
인구 감소와 정원 미달 [ 편집 ]
교육부와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에 따라 고교 졸업자 수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따라 2018년부터 대학 모집 인원 대비 졸업자수가 역전돼 정원 미달 대학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재학생 학비가 재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학들의 부실 위험으로 연결 될 것이여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20]
대학생 생활비 [ 편집 ]
2017년 한국일보가 전국 345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등록금을 제외한 대학생의 한달 지출액은 117만 6,000원정도였다. 최소한의 의식주 비용은 63만 2,000원이었다. 식비가 23만 6,000원, 월세, 공과금 등 주거비가 21만 6,000원, 의류, 미용에 9만 1,000원 정도가 들었다.
수입은 용돈으로 37만 1,000원 정도, 아르바이트로 24만 6,000원 정도, 근로장학금 14만 6,000원 등이 있었다.
지방에서 상경하는 학생들의 경우 주거비 부담이 더 커서 과외를 해서 비용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21]
한편 알바몬이 대학생 2,739명을 대상으로 월 평균 생활비를 설문조사한 결과 2018년 대학생 월평균 생활비는 51만 4,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용돈은 평균 28만 8,000원을 받는다. 생활비와 용돈은 자취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자취하지 않고 통학하는 학생은 월 44만 6,000원의 생활비를 쓰는 반면 자취생은 65만 5,000원을 생활비로 썼다. 받는 용돈은 통학생의 경우 27만 2,000원, 자취생의 경우 32만 원 정도를 받았다.
50.2%의 대학생은 일부는 용돈을 받고 일부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직접 번다고 하였고, ‘전적으로 내가 마련한다’는 대학생은 27.2%, ‘전적으로 부모님께 지원받는다’는 대학생은 22.6%였다.
물가가 오른다면 대학생들이 지출을 줄이겠다고 한 항목(복수응답) 1위는 식비(66.7%)였다. 남학생의 경우 2위는 유흥비(52%), 3위 문화생활비(31%)였다. 여학생은 2위 의류 및 화장품 비용(56.6%), 3위 유흥비(36.5%)였다.[22]
각주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가 어딘줄 아세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민영(간호·06)씨는 이렇게 답한다. “성균관대 아닌가요? 조선시대 성균관부터 시작해서 6백년이라고들 하잖아요.” 한세대 박태준(경영·07)씨는 “확실하진 않지만, 예전에 들은 바로는 연세대라고 생각했는데요?”라고 말한다.
# 어느학교나 자랑하고 기리고 싶은 그런 역사
지난 5월 12일은 우리대학교의 창립기념일이었다. 이번 창립기념일을 기념하여 학교 정문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학교 측에서도 창립기념일 행사를 다채롭게 열었다. 연세대학교는 1백22년, 즉 궁중의 의사였던 알렌이 세웠다는 광혜원부터 시작해 1백22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들 한다. 1884년 개화파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나 수구파인 민영익이 여러군데 중상을 입자, 의사 알렌이 생명을 구해준 것이 인연이 돼, 최초의 근대식 병원 광혜원을 설립하게 된 것이 그 시초이다.
학교의 위상이라는 것은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갑자기 생성된다기 보다는 역사 속에서 업적에 의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다. 이름 익숙한 역사학자 E.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처럼 역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의 선배들이 남긴 업적이 쌓여 학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형성된 학교의 정체성은 현재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느 대학교의 홈페이지, 연감등을 펼쳐 보더라도 항상 그 첫 시작에는 그 대학교의 역사와 연혁이 나와있다. 그것은 그만큼 모든 대학들은 자신네들의 역사를 소중히 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어느 학교나 자랑하고 기리고 싶은 그런 역사를 가지고 싶어한다.
#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제일 먼저일까?
잠깐의 팁!! 대학교의 숫자 – 전국에는 대학교가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우리나라에 있는 대학교의 수를 먼저 살펴볼까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의 전국의 대학교 수는 총 3백76개로 집계됐다.(이 중에는 1백52개의 전문대학도 포함되어 있다.) 서울지역에는 58개(전문대 포함)가 있고, 경기도에는 66개(전문대포함)가 존재해 역시 대학 교육은 수도권에 그 상당부분이 집중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그 증감폭을 보자면 지난 1990년에는 2백65개가 있었고, 1997년까지 3백46개로 증가했으나, IMF가 시작한 97년부터는 그 증가폭이 감소해 한해 2-3개의 대학이 신설되고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2005년에는 3백85개였던 대학의 수가 2006년에는 3백76개로 감소하기도 했다. 이는 대학정원감소에 따른 대학간의 통폐합, 정원 축소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 대학의 창립년도 정리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주요 대학의 역사를 살펴보자.
대학 전신 설립연도 성균관대 성균관(조선태조), 경학과(3년제의 근대대학) 1398년, 1895년 고려대 보성전문학교 1905년 연세대 광혜원 1885년 배재대 배재학당 1885년 숭실대 학당 1897년 가톨릭대 배성요셉신학당 1855년 이화여대 이화학당 1886년
(우측 표 참조)
이렇게 연도를 산출하긴 했지만, 각 대학의 설립연도를 정한다는 것에는 난점이 있다. 누가 대한민국의 최초라는 것을 따지기에는 그 과정상의 난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첫째로, 설립연도를 설정하는 기준의 애매모호함이다. 앞에서 논한 대학들은 모두들 하나씩 개화기에 그 전신학교를 가지고 있었다. 각 대학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가능한 한 유구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 전신까지 모두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성균관대의 ‘성균관’은 조선시대의 기관을 기준으로 삼고, 연세대는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광혜원을 기준으로 삼은 것처럼 각자가 주장하는 대학교설립시기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첫번째이냐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평가가 힘들다. 그 기준을 정부가 설립인가를 해준 시점으로 잡는다고 해도, 정부인가가 나지 않았다고 해서 각 대학들이 그 전신학교를 자기네들의 역사가 아니라고 할 리가 없다. 두 번째는 최초 설립연도가 이르다고 해서, 반드시 긴 역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균관대학교는 조선시대의 성균관이 여태까지 계속 유지된 것이 아니고 중간에 없어지기도 했으며, 일제시기의 대학교들도 일제의 정책에 의해 문을 닫았던 학교들도 있었다. 그럼 중간에 없어졌던 그 기간을 빼고 다시 셈할 것인가?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다.
# 역사가 길다면 무조건 ‘장땡?!’ – 이건 승자없는 싸움이다
취재를 하면서 한가지 회의가 들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고양하는 것은 좋지만,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는 ‘누가 최초냐‘는 이런 류의 논쟁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빠져 있다보니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역사가 길다고 해서 반드시 그 대학이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을 섣불리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연륜이라고 부르는) 시간 자체의 의미도 있고, 역사가 길다는 것은 그 대학이 업적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두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적인 수치보다 중요한 건 그 시간동안 무슨 업적이 쌓여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리한 숫자의 논쟁에 휘말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니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가꿔야 한다’는 그 사실, 지금 당신의 손이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그 사실말이다.
/ 글 안재욱 기자 [email protected]
최초의 대학에서 최고의 인재 양성하는, 숭실대학교
[대학저널 이원지 기자]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맥락 같이 해
통일교육 선도대학 선정… 종합형 통일교육 선도대학으로 발돋움
서울시와 최초로 지하철 7호선 숭실대입구역에 창업카페 운영, 교육·컨설턴트까지 무상 제공
한국 최초의 대학은 어디일까? 바로 숭실대학교(총장 한헌수). 이 대학은 1897년 평양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대학으로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자진폐교 후 1954년 서울에서 재건됐다. 재건된 지 60년이 지난 2014년에 숭실대는 또 다른 60년을 향한 비전을 ‘통일시대의 시대정신을 세우는 것’으로 정하고 ‘제3의 창학’을 선포한 바 있다. 오는 2017년에는 건학 120주년을 맞아 숭실대는 통일교육과 더불어 글로벌 교육, 창업 교육 등을 통해 미래사회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각오다. <대학저널>은 학생 기자단인 최정훈(글로벌통상학과·4), 김유지(글로벌미디어학과·2) 씨의 안내로 숭실대 캠퍼스를 둘러봤다.
숭실대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한국기독교박물관
“우리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시기 전에 숭실대의 역사를 먼저 소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훈 씨와 유지 씨는 숭실대의 역사를 알려주겠다며 교내에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곳은 숭실대의 역사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장소다. 앞서 안내한 대로 숭실대는 국내 최초의 대학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정훈 씨의 설명에 따르면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원래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인 고(故) 김양선 교수가 미군정청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아 1948년 4월 20일 서울 남산에 있는 옛 조선신궁(朝鮮神宮)터에 ‘기독교박물관’과 ‘매산고고미술관’을 개관·운영한 것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많은 자료가 분실되고 휴관 상태에 놓여지기도 했다. 1953년 휴전과 동시에 다시 개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물관 자리가 국회의사당 부지로 결정됨에 따라 1958년 2월 28일 폐관하고 유물은 김양선 교수의 자택으로 옮겨져 보관하게 됐다. 정훈 씨는 “그 후 새로운 박물관 신축을 계획하던 중 1967년 7월 21일 소장 자료 3600여 점을 모교인 숭실대에 기증함에 따라 1967년 10월 10일 ‘한국기독교박물관’으로 새로이 출범하게 됐죠”라고 설명했다. 이에 숭실대에서는 개교 70주년 기념일인 동년 10월 10일 완공된 구 채플(웨스트민스터 채플) 1층에 전시실을 마련해 임시 개관했다가 1976년 1월 19일 교내에 박물관 단독건물을 신축해 정식 개관하게 됐다. 이후 숭실대는 2003년 7월, 21세기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현대적 전시시설을 갖추고 과학적인 수장공간을 구비하고, 2004년 4월 그간의 소장유물과 발굴유물을 다시 정리해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재오픈했다.
정훈 씨에 따르면 고(故) 매산 김양선 교수는 평양 숭실의 자랑스러운 동문이다. 1907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고 신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그는 해방 이후 전무했던 우리나라 박물관학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고고학적 조사방법 등을 최초로 적용했다. 1954년에는 숭실설립이사로 참여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숭실대의 재건에 힘썼다. 김 교수는 해방 후 평양에서 서울로 유물을 이전해 왔는데 이 일에 가족 모두가 힘을 보탰다. 그런데 1947년 4월 1일 평양에서 서울로 유물을 옮겨오던 과정에서 부인인 한필려 여사와 막내 딸 경숙 씨가 인민군의 총탄에 소천했다.
인성, 실천, 융합의 가치를 더하는 교육 실현
다음 학생들의 안내로 한경직 기념관을 방문했다. 이 곳에는 대예배실, 김덕윤예배실, 은혜의샘, 교목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유지 씨는 “채플과 인성함양교과목 수업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어서 숭실대 학생이라면 매주 1회 이상은 방문하고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숭실대는 교육부 주관 올해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사업(ACE) 지원대학으로 선정됐다. 이번 선정으로 숭실대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MAX 교육체계 구축 및 확산’ 모델을 통해 인성(Human), 실천(Action), 융합(Crossing)의 가치를 더하는 교육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숭실대의 교양 교육 과정은 SURE(Soongsil University Real Energy) 3S(Study, Share, Show)이 핵심이다. △공동체 △의사소통 △리더십 △글로벌 △창의 △융합의 6개의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숭실대는 인성함양 교과목 및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섬김의리더십(봉사)’, ‘합창과공동체인성’ 등의 교과목을 운영하고 기독교대학으로서 학생들을 위한 채플예배도 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대예배실에서 제3회 숭실합창축제가 열렸어요. 베어드학부대학 교양과목 ‘합창과 공동체인성’ 수강생 전체가 참여하는 숭실합창축제는 과목이 신설된 2014년 이후 3회를 맞이했는데 매회 학생들이 즐겁고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유지 씨의 설명이다.
통일교육 선도대학
숭실대는 2014년 제3의 창학을 선포하며 ‘통일교육을 선도하며 통일시대의 창의적 리더를 양성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처럼 대학 차원에서 통일교육을 표방한 것은 숭실대가 최초다. 그동안 숭실대는 통일교육을 위해 ▲통일부와 MOU 체결(2014년 3월) ▲<한반도 평화와 통일> 개설(2014년 3월)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족(2014년 4월)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 개원(2014년 11월) ▲(재)통일한국세움재단 설립(2015년 5월) 등을 추진했다.
이 중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대학에서 통일을 주제로 개설된 최초의 교양필수과목이다. 수강 대상은 신입생들. 강사로는 전·현직 통일부와 외교부 장관, 통일 분야 전문가들이 초빙된다. 숭실평화통일연구원은 숭실대 통일교육의 씽크탱크이자 국내 대표 통일교육 민간단체다. 남북 분단의 문제들을 규명·해결하기 위한 교육·연구·봉사활동을 수행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통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경향이 많이 있어요. 저부터도 그랬었는데, 학교에서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통일을 대비해 전문가가 많이 육성돼야겠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정훈 씨의 말이다.
지난 3월, 숭실대는 통일교육 선도대학으로 선정돼 통일교육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숭실대는 이번 선정에 따라 종합형 통일교육 선도대학으로 발돋움했다. ‘종합형 통일교육 선도대학’으로서 ▲5개 유형별 통일교육 기반 구축 ▲수요자(학생) 중심의 자발적 통일세움 의지 함양 ▲숭실대 통일교육 모형의 전국 확산을 실현하고 있다.
청춘스타 CEO 배출하는 숭실상상키움관
1995년, 국내 최초로 창업관련학과인 벤처중소기업학부를 설립한 숭실대는 창업 활성화에 여느 대학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에도 선정된 바 있는 숭실대는 창업지원단을 구축하고 우수한 창업 인프라를 보유해 창업지원 거점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숭실대는 사회이음형 청년스타 CEO를 육성하는 남부권역 거점대학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창업지원단은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시스템을 구축했다. 숭실대만의 투자지원시스템과 숭실 글로벌 스타트업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으로 청춘스타 CEO를 배출하고자 하는 것. 정훈 씨와 유지 씨는 지난해 말 개소한 숭실상상키움관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로 3D창작소(1층), 공동 사무공간 청춘공감(지하), 창업기업 입주공간(2~4층)이 있는 곳이에요.” 정훈 씨의 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숭실대 창업지원단은 입주기업 선발부터 3D프린터 관리까지 일체의 운영을 담당한다. 특히 3D 창작소는 20여 대의 3D 프린터와 30여 대의 스캐너 등 첨단장비를 갖췄고 재학생은 물론 누구나 사용가능하다. 3D 프린팅 교육과 출력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시중 비용의 5분의 1 정도에서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서울시와 7호선 숭실대입구역에 서울창업카페 운영
또한 서울시와 숭실대 창업지원단이 함께하는 서울창업카페가 7호선 숭실대입구역 B5층에 있다. 서울창업카페는 서울시 창업지원과에서 2016년 1월 개소하고 숭실대가 2016년 4월부터 2018년도까지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카페 운영을 맡았다. 정훈 씨는 “지하철 역사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문턱이 낮아 창업자와 예비창업자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최고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숭실대는 창업교육은 물론 상담 컨설턴트 지원까지 무상으로 하고 있으며, 지하철역에 생긴 창업카페는 숭실대가 최초다. 소자본 창업교실, 기술기반 창업교실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될 뿐만 아니라 홍보물 디자인도 업체당 1회에 한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제품촬영 스튜디오는 최대 1일 4시간씩 대여가 가능하며 조명 및 공간, 카메라도 지원한다.
이외에도 숭실대는 △기업가정신콘서트 △창업캠프(시제품제작비 및 크라우드펀딩 등 지원) △청년창업인턴십(SI : Soongsil Internship) △SGSU(Soongsil Global Start-up Upgrade)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 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창업친화적 학사제도로 실제 학업과 창업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창업동아리 활동 및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창업을 일정 범위 내에서 학점으로 인정하는 ‘창업대체학점인정제’가 대표적이며 이 밖에도 △창업휴학제 △창업학점 교류제 등이 있다. 또한 희망사다리장학금 등 창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등록금 전액과 창업장려금(학기당 200만 원)을 지원하는 장학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을 위한 공간, 형남홀과 도서관
“이번에는 학생들의 공간으로 가보실까요?”
숭실대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학생들의 꿈과 창의를 위한 공간인 형남홀을 개관했다. 형남공학관 2층에 위치한 형남홀은 학생 복지와 편의를 위해 리모델링한 후 이번에 개관했다. 숭실대 건축학부 김남효 교수가 기획 및 자문을 맡고, 김동원 겸임교수가 설계한 인테리어안을 바탕으로 새로워진 형남홀은 앞으로 다양한 문화·교류·교육의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학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인 도서관이 이번에 새롭게 바뀌어서 꼭 소개하고 싶어요.” 유지 씨가 기자를 안내했다. 유지 씨의 설명에 따르면 숭실대는 학생들의 도서관 활용이 편리하도록 이번 학기 대대적인 내부 리모델링을 거쳤다. 이번 중앙도서관 공간재조정 및 리모델링의 주요 개선사항으로는 △대출반납창구 1층으로 이동 △세분화된 자료실 △엘리베이터 전층 사용 가능 △지하1층 출입게이트 설치 △6층 문화공간 ‘숭실마루’ 오픈 △3층 쉼터 오픈 등이 있다. 특히 ‘숭실마루’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카페를 이용하면서 공부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다양한 컬러를 넣은 인테리어가 도서관은 답답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나게끔 했다.
한편 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독서인재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독서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있다. ‘교수가 지도하는 독서토론 세미나’는 지도교수와 참여 학생이 팀을 이뤄 지정도서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한 학기에 4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정훈 씨는 “방학 중에는 7000페이지 독서프로젝트가 운영되는데 이는 7000쪽 분량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라며 “관심분야를 잘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진로와 관련된 정보들을 접하기 좋은 것이 장점이에요”라고 말했다.
독서를 통한 나눔의 실천도 이어지고 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릴 때마다 100원씩 기부금을 적립하는 ‘백원의 힘’에 대한 학생, 교수, 직원의 참여도 활발하다. 숭실대는 적립금액으로 책을 구입해 독서소외지역에 기부하며 작은 사랑을 전하고 있다.
캠퍼스를 둘러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답게 숭실대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학이었다. 최초의 대학에서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숭실대의 향후 60년이 더욱 기대된다.
대학의 발생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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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발생은 언제부터일까?
최초의 대학 볼로냐 대학
고등학교 후에 진학하는 대학의 발생은 언제부터일까? 대학은 중세 유럽부터 시작되었다. 약 12세기 정도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의 파리 대학이 바로 뒤이어 나왔다. 그 전에도 가르치는 곳은 많았지만 전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이 대학은 교육책에 의해 갑자기 생긴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체계가 잡혀간 것이다.
◈ 대학의 발생 순서는?
전통의 영국 옥스포드 대학
최초의 볼로냐 대학이 1088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이며 법학으로 유명했던 대학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하고 있다. 그 다음은 프랑스의 파리 대학으로 1109년이다. 신학과 철학으로 유명했던 대학이다. 다음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으로 1167년, 케임브리지대학이 1209년이다. 영국의 대학들은 그 전형적인 형태로 영사와 전통이 전해져 오고 있다.
◈ 초기 대학의 모습은?
중세의 대학은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가지 면제를 받아 혜택을 누렸는데 병역, 복역, 세금 등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대학 관계자는 범죄를 지어도 학내에서 별도 재판권이 인정되어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중세 대학이 혜택만 누린 것은 아니고 중세 문화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훌륭한 학자들이 대학에 소속되어 있었다. 13세기 이후의 중세 문화의 발전은 대학에 힘입어 발전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국 대학의 발생
동숭동 시절 서울대 문리대 모습
한국의 고등 교육 기관은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등이 있었는데 근대적 의미의 대학은 1924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이 최초다. 민간대학을 설립하려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설립되지 못해다. 해방 후 국립 근대 대학의 시초는 서울대학교, 여자대학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립대학으로는 숭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민립대학으로는 조선대학교를 대한민국 근대적 대학교의 시초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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