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의 사람 |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By 다윗과 요나단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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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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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멋진 타이틀: 하나님의 사람 – Korea Times

성경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2번 이상 불리운 인물들은 모세(5번), 사무엘(4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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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icagokoreatimes.com

Date Published: 6/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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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아 – 당당뉴스

디모데 말고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엘리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하여 부르심을 받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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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5/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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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하나님의 사람아 – 뉴스포유

오늘 읽은 말씀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목회 서신으로서 교회 행정에 관한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떠한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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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foryou.kr

Date Published: 5/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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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11-16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 Bible.com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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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0/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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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들 1 – YES24

하나님의 사람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이 들어 쓰신 50여명의 사람들을 통해 성경의 역사와 신앙의 삶을 배우는 교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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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6/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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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뉴스앤조이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이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꼭 지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부(富)하려 하지 말고 지족(知足)하는 삶을 살라(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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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1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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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의 사람

  • Author: Beecompany 비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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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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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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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 홈 > 영성 > 박성규 설교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18 주(20100926) 박성규 | [email protected] 입력 : 2010년 09월 24일 (금) 09:52:55

최종편집 : 2010년 09월 24일 (금) 13:05:35 [조회수 : 6196] 오순절 후 제 18 주(20100926)

성서일과/ 시 146; 암 6:1a, 4-7; 딤전 6:6-19; 눅 16:19-31

본문/ 딤전 6:11-16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9, 개정)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믿는 자의 새 이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무렵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흔했습니다.

강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순종하고, 능력 받아 살자, 그것도 으뜸이 되자 라는 뜻에서 신일, 경일, 순일, 능일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제가 전에 목회했던 교회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의 역사를 쓰는데 처음 교회를 세우신 분들의 이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양행의(行義)-의롭게 행하고, 박신도(信道)-십자가의 도를 믿고, 정사천(事天)-하늘의 일을 함과 같은 이름들이었습니다.

부조가 지어주신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온전히 새사람이 되어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이름을 바꾼다면 어떤 이름을 택하겠습니까?

오늘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해도 되는 데 굳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디모데 말고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엘리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하여 부르심을 받은 지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이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 주시는 능력을 지녔던 사람들입니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긴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았습니다.

오늘 바울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이김으로, 선한 증거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길을 찾고, 그 길로 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집을 떠나 길을 가는 사람을 일러 나그네라 합니다.

나그네 길은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떠도는 길에서 느끼는 평안함은 잠간입니다.

길어야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나그네는 고향에 돌아가야만 비로소 짐을 풀고, 참된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을 일러 나그네라 합니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본시 그 뿌리가 하늘에 있기에 땅에서 사는 동안은 나그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자기가 나그네임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흙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불러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합니다.

디모데에게 한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첫 사람의 후손, 땅에서 나서 땅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땅에서 났으나 하늘을 더 나은 본향-참된 고향으로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둘째 사람, 하늘에서 나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의 이름이 바뀝니다.

사람의 아들, 땅의 사람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본향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땅에 속한 자에서 하늘에 속한 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주어진 이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땅에 속한 일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 칭한 디모데를 향해 새삼스럽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르는 것은 뚜렷하게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무엇과의 구별입니까?

땅의 사람과의 구별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구별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이것들을 피하고…’ 했는데, 이것들을 피하지 않고 반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에 착념(着念)치 아니하는 일입니다.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만 듣는 자가 유념해야 할 요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이라는 것은 복음에 입각하지 않은 모든 종류의 잘못된 가르침을 말합니다.

바른 말에 착념(着念)치 아니한다는 것은 자기가 말하는 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익을 따지는 마음 때문에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고 저 좋은 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딤전 6:4-5) 『[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아는 척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투기와 분쟁, 훼방과 악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경건조차도 이익의 재료로 삼아 서로 싸우는 자들입니다.

다른 것들이야 늘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경건조차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뼈아픈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장사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교만으로 바른 말, 합당한 말을 전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성도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기만을 요구하고, 목사를 중심으로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세워서 마침내 교회를 분열시키는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세운 교회라고, 자기가 부흥시킨 교회라고 자기 소유처럼 생각하는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말을 싫어합니다.

바른 말을 싫어하는 것은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자도 그렇지만 듣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든 것이 아니라 골라서 듣습니다.

이로우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손해일 듯싶으면 사람의 말로 치부해 버립니다.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 만한 사람이 그런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롬 1:18-20)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 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경건조차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깨어서 진리의 말씀에 굳게 뿌리를 박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피해야 할 일은 부(富)하려 하는 일입니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사실 바른 말에 착념치 아니하는 일이나 그에 따라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들이 정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피해야 할 가장 두려운 것은 정욕입니다.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욕심 자체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큰 해악이 없을 것 같은 사소한 욕심도 있습니다.

꽃을 보면 꺾고 싶다거나, 좋은 음악을 듣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도를 넘어선 욕심은 죄악입니다.

시험과 올무에 빠지는 길입니다.

바울은 이런 욕심을 일컬어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의 사람들에게 있는 욕심입니다.

흙에 속한 육체를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런 욕심-정욕은 어리석고 해로운 것입니다.

왜 어리석고 해롭습니까?

정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제 몸에 지닌 것-소유를 많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짐을 가볍게 해야 하는 법입니다.

나그네는 길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그네의 짐이 많아지면 주저앉게 됩니다.

본향을 잊어버리고, 주저앉은 그 곳으로 고향을 삼게 됩니다.

그 곳에 집과 창고를 짓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오늘의 성서일과 중 누가복음 16:19 이하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 위로를 받습니다.

그저 부자였기에 지옥에 가고, 고생했기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부자는 땅에 많은 것을 쌓아 놓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나그네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땅이 그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가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그가 죽어서 고초를 당하는 것은 죽은 후에 나그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땅에 쌓아 놓은 것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땅의 삶이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가 땅을 떠난 것은 나그네로서의 삶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것입니다.

그는 더 나은 본향에서 위로를 받고 평안을 누립니다.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알지 못하고 행하는 일은 해악을 가져오게 됩니다.

잘못 아는 자는 모르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입니다.

교만에 이르는 어리석음입니다.

모르는 것보다 잘못 아는 것이 더 큰 해악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땅을 고향으로 아는 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땅에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 자는 영원히 고향을 찾지 못하는 해를 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육의 욕심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쫓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쫓는 일은 싸움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의 싸움은 무슨 명분을 들이대던 누군가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싸움은 모두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싸우는 싸움은 남이 아닌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선한 싸움입니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은 자기를 구원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전에는 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의 본향에 당도하기 전에는 옛사람의 본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싸워야 합니다.

육의 고향, 흙으로 향하는 땅의 사람을 영의 본향, 하늘로 향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머물게 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롬 7:22-23)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모든 종류의 싸움은 강한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자라도 좋은 무기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맨손으로 칼을 든 자를 당할 수 없고, 칼로서 총을 든 자를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무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기는 땅에 속한 싸움을 하는 자들의 무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의와 경건과 믿음 그리고 사랑과 인내와 온유가 하나님의 사람이 지녀야 할 무기입니다.

이것들이 없이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땅에서는 종종 불의한 자가 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의 일이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최후 승리는 의로운 자의 것입니다.

(욥 20:5)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땅에 속한 사람들은 이기기 위하여 육체를 단련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건한 자라도 경건한 자를 이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약한 듯 보여도 강한 것이 경건입니다.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믿음으로 싸우면 이기지 못하는 법이 없고, 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를 대신하여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사람의 무기라면 사랑은 하나님의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힘입어 어떤 싸움에서도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창이라면 사랑은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원수도 이 사랑을 뚫고,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기는 것입니다.

(롬 8:35-37)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사랑을 잊지 말고,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큰 사랑을 받았으니 작은 사랑이라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의 싸움은 한 번에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나그네로 사는 동안 날마다 치러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땅의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나는 것입니다.

죽고, 다시 사는 싸움이 날마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기는 것은 정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자만이 그 결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의를 행하고, 경건한 중에 기도하며. 믿음의 칼을 들고, 사랑의 방패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인내하여 땅에 속한 사람의 유혹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된 결국을 눈으로 보며,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의 주시오, 왕이십니다.

영원한 본향에서 우리를 영접하실 하나님은 나그네 길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 길에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이 그를 향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나그네 길이 힘들고 고단해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의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임금이 줄 수 없는 은혜까지 베푸시는 영원한 임금이십니다.

공의로 재판해 주시는 왕이십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갇힌 자를 해방하시는 왕이십니다.

약한 자의 도움이 되시는 왕이십니다.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는 왕이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시는 임금이십니다.

높은 보좌에서 내려와 나그네의 길을 비춰 주시는 임금이십니다.

왕이신 하나님,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심으로 이 모든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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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아/렘넌트(Rem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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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하나님의 사람아

오늘 읽은 말씀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목회 서신으로서 교회 행정에 관한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떠한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선 순위는 언제나 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사람됨에 있습니다.

가령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어떤 책인가를 말하면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교훈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책망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바르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로 교육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절인 17절 말씀에 보면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먼저 강조했습니까? “온전”이란 말이 17절에 두번 반복되는데 그 우선 순위에 있어서 일보다는 사람을 먼저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은 우리의 사람됨만큼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행위의 문제를 강조하기에 앞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 11절이 어떤 표현으로 시작됩니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조금 전에 말씀드린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 성경이 어떤 책인가 하는데 대해서 말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한 최고의 이상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말에 선행하는 구절을 다시 한번 주목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강조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유혹의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빠진다고 하면서 9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여기서 ‘떨어진다’는 말이나 ‘빠진다’는 동사는 어떤 그릇된 대상에 의해서 완전히 포로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9절과 10절 말씀을 통해서 정욕과 돈에 포로가 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 경고한 후에 11절 말씀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정욕과 돈의 포로가 되기 쉬운 이 유혹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께만 포로가 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게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 마지막 메시지의 중간 부분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5절을 보십시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순종하기를 원하는 그 하나님이 역사 속에 다시 한번 자신의 영광을 보이시고 나타내시는 그날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했습니까? 15절 중반에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불멸의 하나님, 인간의 도덕적인 경건이 흉내 낼 수 없는 절대적인 거룩함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이 하나님에게 피조물인 우리가 포로가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의 사람,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소망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구약에도 ‘너 하나님의 사람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령 신명기 33장 1절에 보세요. 이 말씀은 모세가 죽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았던 모세.

그가 숨을 거두려 할 때 성령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과연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내리실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9장 6절을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탄생할 무렵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 나라의 첫 번째 왕을 찾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의 인도함을 통해서 왕이 되는 과정을 밟아 나아가게 됩니다. 정말 그 길을 인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실감케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올바른 대답이 주어질 것이고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자란 시골 동네에는 그 당시에는 비교적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옛날 연희 전문을 졸업하신 분이셨고 학생시절 연희 전문의 축구 선수였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동네 청년들 축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면대항, 군대항 축구 시합을 할 때 이 목사님만 팀에 계시면 마음이 푹 놓이고, ‘보라 우리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들곤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린 때를 생각하면 우리 목사님 생각이 나고 목사님만 계시면 어렵던 문제가 다 해결되고 걱정되던 것도 다 풀려 나가던 그때의 마음 든든함이 있곤 합니다.

역사가 어두어질때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등불이 어두워 질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열왕기상 17장 24절을 보세요.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인데, 엘리야가 머물고 있는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아들이 죽었을 때 이 절망적인 상황을 엘리야에게 호소합니다. 이때 엘리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엘리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엘리야를 통해서 나타난 기도의 능력과 그의 경건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 여인이 마지막에 그 앞에 엎드려 고백한 말이 24절입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을 아노라 하니라”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우리가 우리를 잘 알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존경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약점과 내 허물을 다 아는 가까운 이웃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주변에 사는 그리고 나를 자라는 사람이 나의 약점을 알면서도 내 삶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나를 향해서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느헤미야 12장 2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 사람의 어른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저희가 그 형제의 맞은 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 반차를 따라 주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역사의 장이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예루살렘성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다윗이 주었던 메시지를 기억합니다. 이들이 다윗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대로” 하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랩니다. 그러나 다윗의 영향력은 아직도 그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신앙의 가자 아름다운 귀감이었던 다윗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잘 정말 부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없는 당에서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며 결단을 내릴 때 우리를 회상하면서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람이셨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성공적인 삶이었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얼마나 우리 삶에 도전을 주는 이상입니까?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돈과 권력과 정욕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었던 디모데가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갈 때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1. “피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돈에 대한 유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부에 대한 탐닉을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필요없는 변론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거짓된 이단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변론을 위한 변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론을 위한 변론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하는 것도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비춰 보고 고민하는 그런 성경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떤 인격이 되어 가고 있는가를 묻는 그리고 그 말씀 앞에 가슴이 깨어지는 고백과 눈물의 회개가 있는 그런 성경 공부라면 우리는 바르게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부터 돌리고 하나님이 기대하는 삶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변론을 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유혹의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유혹을 받았을 때 그곳에서 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떤 상황이 나를 죄에 빠지게 하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게 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내가 그 자리에 서야 한다면 물러서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주님 앞에 영광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삶이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 그릇이나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2. “좇으라”고 했습니다.

11절에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인격의 덕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나와 하나님 사이의 바른 관계를 이루는데 필요한 덕목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받는 가장 놀라운 축복 가운데 하나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강조된 것이 경건입니다. 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인격적인 덕목이라면, 경건은 그 하나님을 향해 가는 삶의 자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격의 특성입니다. 의와 경건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들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입니다. 의가 없이 경건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을 향하는 관계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있어야 할 덕목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갖추고 있는 덕목인 믿음과 희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갖추고 있는 덕목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이나 상황들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고 있습니까? 인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온유’라는 덕목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이 온유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인내와 온유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답게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는 의와 경건을, 자신과 이웃의 관계에서는 믿음과 사랑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는 인내와 온유를 좇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임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성숙해 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억울한 상황에 부딪혀 손해를 보았을 경우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손해를 본 사실보다는 그 상황에서 나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 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이웃을 용납하고 용서하므로 주님을 닮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손해본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싸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싸움을 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 12절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좋아했던 말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데 그 마지막 장인 4장에 바울이 한 고백이 6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음이 되고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싸운다’는 말은 사단에 대해서 혹은 죄와 더불어 싸운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특별히 디모데전후서를 통해서 “싸운다”는 말을 좀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기꺼이 향할 때 그것이 바로 적극적인 의미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8절을 보세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무슨 말입니까?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 땀 흘리고 몸부림치는 이 세대에서 그대들은 선한 싸움을 싸우시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당신들이 싸워야 할 선한 싸움입니다.”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요함을 추구하는 것은 승리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의 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터인데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이 싸움을 싸웁니다.

돈의 쓰임새는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물질을 어디에 쓰고 있습니까? “이것을 사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실까?” 생각하면서 쓰십니까?

4. “취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2절에 “영생을 취하라” 했습니다.

여기 ‘취하라’는 말은 굉장히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냥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튼튼히 붙잡고 누리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가 영생을 즐길 수 있습니까?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까? 영생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영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감격으로 받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십니까? 영생을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생을 누리매 즐기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 19절에 뭐랬어요?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12절의 ‘취하라’는 말이 다시 한번 나옵니다. 18절에 나오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영생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내 소망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저 나라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면서 그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영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생을 취하라 영생을 즐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지키라”고 했습니다.

1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했습니다.

여기 자세히 보세요.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인격을 설명할 때 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원한다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기 위하여 얼마나 애씁니까? 이 명령을 지킵니까?

왜 우리가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까?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입니다.

언제까지요? 주님이 나타나실 때까지요. 15절에 보면 ‘나타난다’는 말이 한번 더 나옵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여기서 ‘나타난다’하는 말은 본래 새벽에 빛이 밝아 오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올 때 우리 주님 다시 오시고 새로운 역사의 여명이 밝아올 때, 하나님의 나라의 동이 틀 때, 주님의 영광스러운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순간 내가 가장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돈이라면 나는 돈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권력이라면 나는 권력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정욕이라면 나는 정욕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자존심이라면 자는 자신의 사람입니다. 자존심의 노예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차피 포로가 되어 산다면 하나님의 포로가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에 사로 잡힌바 된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쥐고 갈 수 없는 돈을 위해 그것의 노예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업을 위해 돈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내 삶을 보았을 때 과연 저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 시간은 귀한 시간입니다. 우리의 결단을 요구하는 시간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는 그날 하나님의 사람으로 저의 생애를 결산하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 주세요. 이런 결단, 이런 기도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디모데전서 6:11-16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디모데전서 6:11-16 KRV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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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들 1

아브라함은 믿기 힘든 놀라운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했어요.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을 때, 하나님은 다급히 아브라함을 막으셨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대신 준비해주신 숫양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어요. 아브라함은 그 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찬하셨어요. “아브라함, 네가 정말 나를 믿고 경외하는구나! 네 믿음의 후손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본문 26P (5주 순종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중에서…)

바로왕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웠고, 요셉은 애굽을 잘 다스렸어요.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시작되었어요.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러 왔어요. 아버지 야곱과 형들을 만난 요셉은 울며 자신을 밝히고, 그들을 용서했어요. “형들은 나를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어요. 나를 통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어요.”

본문 38P (8주 꿈을 이룬 요셉 중에서…)

첫 번째 어려움이 왔어요. 요단강을 건널 배가 없었어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강물로 들어가게 했어요. 강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드러났어요. 백성들은 요단강을 걸어서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요. 두 번째 어려움이 왔어요. 크고 강한 여리고 성이 문을 닫고 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백성들과 함께 하루에 한 번씩, 6일 동안 성 주위를 돌았어요.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돌며 나팔을 불고, 마지막에 큰 소리 높여 외쳤어요. 여리고 성벽이 저절로 무너져 내렸어요. 백성들은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본문 53P (12주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 중에서…)

사무엘은 제사장과 사사와 선지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어요. 기도로 블레셋 적군을 물리치기도 했어요.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과 두 번째 왕으로 세웠어요. 왕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도록 가르쳤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가르쳤어요. “예, 하나님 말씀하세요. 제가 듣겠습니다.” 사무엘은 평생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어요. 평생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본문 74P (17 하 나님의 집에서 자란 사무엘 중에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셨어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크게 기뻐했어요. 하지만 이날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말했어요. “그의 손의 못 자국과 그 옆구리의 창 자국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절대 믿지 않을거야.” 8일이 지난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찾아 오셨어요. “도마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과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도마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했어요. “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는 나를 보아야만 믿는구나,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더 복되단다.”

본문 105P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부활주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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