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을 가까이 함 이 내게 복 이라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Feat. 이원섭) – 이진아 60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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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21.04.22
앨범명 – 시편 프로젝트 4
장르 – CCM
발매사 – (주) 광수미디어
기획사 – 이진아

시편 프로젝트 4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73:28)
시편프로젝트의 네번째 곡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는 시편73편 28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 예배때마다 강조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외우고 싶어 멜로디를 붙였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 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고 가까이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CREDIT]Produced by 이진아
Composed by 이진아
Lyrics by 이진아
Arranged by 이진아
Vocal by 이원섭
Piano by 이진아
Synth by 이진아
Guitar by 김임춘, 전민영
Bass by 김정민
Drum by 안정찬
Mixed by 정다운 @jeongdawn
Mastered by 정다운 @jeongdawn
Art work by 박혜진 @마음쓰다
[가사]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네게도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네게도 복이라
하나님은 가까이 하는 자에게
가까이 해주시고
찾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전심으로 주께 행한자에게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
복주시기 원하는
지켜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은혜주시기 원하는
평강주시길 원하시는 주
주께 감사 찬양 사랑합니다
주께 감사 찬양 사랑합니다
은혜주시기 원하는
평강주시길 원하시는 주
주께 감사 찬양 사랑합니다
주께 감사 찬양 사랑합니다

#이진아 #하나님께가까이함이내게복이라 #시편프로젝트4 #이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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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 19 시편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 시편 73편은 아삽의 신앙 고백이요 찬양입니다. 일반적으로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잘 안되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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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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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 네이버 블로그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 시 7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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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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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5-28)

2011. 11. 20. 광성교회 추수감사주일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107) 본문 : 시 73:25-28 제목 :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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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sch.net

Date Published: 6/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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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 옛날 이스라엘에 아삽이란 선견자가 아주 큰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악인이 형통하고, 악인이 죽을 때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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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algarychurch.org

Date Published: 5/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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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 73:23-28) – 기멀전

다윗 왕은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으로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범사에 깨끗하고 거룩한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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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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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 CTS기독교TV

#7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28 *출처 : 『흔드심』한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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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ts.tv

Date Published: 9/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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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예배설교문]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담들이 무너지고 거리감이 다 사라지고 친밀한 교제와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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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rn153.tistory.com

Date Published: 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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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을 가까이 함 이 내게 복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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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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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시편 73편은 아삽의 신앙 고백이요 찬양입니다.

일반적으로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잘 안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악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살 때에도 잘 먹고, 잘 놀고,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다 하면서 삽니다.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아삽은 세상에서 악인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을 보고,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시편 73:1-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습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형통하지 못하는가?”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던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그 문제들을 해결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73:17-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아삽은 성소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성소에서 말씀을 통해 해결 받았습니다.

그는 성소에서 기도함으로 참된 복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20:1-4절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성소에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73:23절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세상이 주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세상적인 복, 물질적인 복, 육체적인 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영적인 복을 더 많이 사모해야 합니다.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아삽은 단호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우리의 생명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호흡이 있는 동안에, 날마다 주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 한결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복을 누렸습니다.

신앙의 선배인 아삽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멸망의 시작이며,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삽은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들은 전멸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멀리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나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듣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부귀나 명예, 장수 같은 것을 구하지 않고,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듣는 마음”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지혜로워집니다.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어리석고 미련해집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스러워집니다.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지혜로워집니다. 막혔던 문제들이 해결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주의 교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주십니다.

출애굽기 15:13절 말씀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후에, 주님은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주십니다.

후에, 주님의 거룩한 처소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흑암을 헤맬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아픔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치료제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말씀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앞이 캄캄할 때,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기이십니다.

시편 18:1-2절 말씀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27: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마음이 아프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마음이 약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반석이신 주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아삽은 육체와 마음이 쇠약할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그런 염려와 걱정거리가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반석 되심을 믿었습니다.

염려할 일이 생긴다해도, 염려할 이유가 없음은 반석이 되신 하나님을 믿고, 맡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라고 했습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돌보아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2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살아 계십니다.

차의 백미러를 보면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아주 가까이에 계십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범사가 잘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무거운 짐이 벗겨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승리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평안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염려와 걱정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질병이 떠나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며,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시편 1:1-3절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우리들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해질 것입니다.

시편 73:25절 말씀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할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주 이에 누가 내게 있겠습니까?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가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날마다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141.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 시 73:28 –

1.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타락한 이후, 모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계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 힘을 쓰는 것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뿐입니다. 돈이 힘을 쓰며, 권력이 힘을 쓰며, 학벌이 힘을 쓰며 명예가 힘을 씁니다. 용모가 힘을 씁니다.

모든 것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된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존(自存)해야 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自力) 살아야 했습니다. 서로가 살기 위해 애쓰게 된 결과 상대방을 억압하고, 해치고,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야 했습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담과 성을 높이 쌓고, 높이 오르고,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내일 쓸 것을 오늘 쌓아놓고 만족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여전한 오늘날의 세상 모습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힘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에 복의 기준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편안한 것이요, 많은 것이요, 걱정이 없는 것이요, 남보다 잘 되는 것이요, 남보다 높아지는 것이요, 남보다 잘 사는 것 등등 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획득 하려고 서로가 눈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나오고, 약육강식의 현장이 전개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복의 기준이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참된 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에 교회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을 가지고 복을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합니다. 세상 적으로 잘 나가면 교회에서도 이구동성으로 복을 받았다고 자랑을 합니다.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신자에게도 복의 기준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예수를 안 믿는 사람 중에 형통하고 걱정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자들이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이미 말할 수 없는 복을 받고 있는데 무슨 복을 더 받으라고 하며 예수를 믿으라고 하겠습니까?

2. 시험에 든 「아삽」성도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아삽이라는 구약의 인물이 기록한 시로 보입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이 아삽이라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의 기준으로 세상 사람들을 보는 바람에 한동안 큰 시험이 걸렸습니다(아삽이 당한 시험에 대해서는 본 카테고리 포스트 no.61 「시험에 빠진 아삽」참조).

아삽이 보고 시험에 든 이유는 사람들이 이렇게 잘나가고 잘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이 소원보다 많으며…”(시 73:4-7)

그들은 한마디로 승승장구하는 인생이요, 만사형통한 인생이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인생이었습니다. 걱정거리도 없는데다가 돈도 잘 벌고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아삽이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세상 사람의 복의 기준으로 이들을 보니까 부럽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기 자신은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앙에 회의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아삽은 나중에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이 가진 것이 궁극의 복이 아니라는 것과 참된 복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8)

아삽이 처음, 이렇게 시험에 든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무한한 복인데 이것의 가치는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의 보상이 눈에 보이는 어떤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모습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어떤 신앙의 보상이 없는데 비하여 하나님을 안 섬기는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풍족한 보상을 받고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고민하고 갈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이미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복된 인생이라는 것이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이 편들어 주는 자, 하나님이 알고 인정하는 자를 복되다고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시 1:1)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5)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3)

신자의 복은 무슨 신앙의 행위를 해서 그 보상으로 세상의 것들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공로가 없을지라도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복, 영원에 관한 복, 하늘나라에 관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알고 있는 인생이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고 간섭해 주시는 인생이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인생입니다. 이러한 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복의 기준으로 보니까 복이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모든 일의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성경에서 악인입니다. 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미 복된 존재입니다. 또, 여기서 ‘시온의 대로’라 함은 하나님을 믿고 그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자 또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걷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생활의 안내자로 삼는 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레마 종합자료 시리즈 12권, p.549). 이러한 사람은 이미 하늘에 속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그 보상과 공로로 세상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을 더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이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자들이 종종 시험에 빠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신앙생활의 보상으로 세상의 어떤 복을 받으려 하는데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복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을 신자 스스로 복으로 여기고 그것을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안 주시는 것이 더 유익하니까 안 주시는데, 신자들은 애타게 구하는데도 그것을 하나님이 안 주신다고 하며 시험에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사실 없는 것 보다는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의 복은 아닙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본다면 한 경점의 경점도 안 되는 순간에 잠시 육신의 편안을 누리는 것들뿐입니다. 인생 나이 70년 혹은 80년 동안 하나님 없이 누린 부귀영화가 영원한 시간의 관점으로 보면 얼마나 미미한 시간이겠습니까?

잠시 편안을 즐긴 그 짧은 시간에 비해서 그가 영원한 시간 속에서 받아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에 비해서 신자가 잠시 육체의 고난을 받는 수가 있지만 영원한 시간 속에서 신자가 누리는 영광과 비교하면 그것은 얼마나 짧은 시간이겠습니까? 찰나의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신자의 복은 신앙생활의 보상으로 어떤 세상적인 복들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복입니다. 만약 세상의 복의 기준으로 한다면, 수많은 순교자들, 헤롯 임금의 말실수로 목이 잘려 순교한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분은 복은 고사하고 저주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 믿는 바람에 비명에 횡사한 인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의 복은 세상이 복이라고 하는 것을 받고 누려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그 자체가 이미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의 개념을 이해 못하면 이미 받은 복을 모르고 계속해서 복을 달라고 부르짖는, 우상을 섬기는 신앙과 같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먹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를 주셨는데 그것은 모르고 반 돈짜리 금반지 달라고 하는 격이 되기 쉽습니다.

3.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이적을 행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셨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분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심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옆에 계시고, 함께 하시니까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즐거워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때 되면 물을 주실 것이고, 때 되면 양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가르시면서까지 구원하신 하나님이 설마 목이 말라 죽게 하시고, 양식이 없어 주리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옆에 계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없는 물과 없는 양식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만 생기고 사건만 생기면 사사건건 모세를 원망하고 자기들을 죽이려고 광야로 이끌어 냈느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못 들어 가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귀중한 인생을 광야에서 40년 방황하다가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사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그들은 그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했으니 그들은 들어 갔어도 못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선물들을 모르면 우리도 평생 하나님을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다가, 혹은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을 것을 밤낮 구하다가 귀한 인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어린 학생이 자연공원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곳의 풀, 나무, 꽃, 벌레, 시냇물, 나비, 벌, 버섯, 돌 맹이, 맑은 공기 등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 하나 없다고 불평만 하다가 집에 오고 마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자들은 지구라고 하는 곳에 소풍왔다가 어마어마한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고 불신자들은 아직도 끝없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풍은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즐기고 누리려고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설명한 포도가지는 무엇을 해서 자기가 복된 존재가 아니라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자체가 복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신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음으로 저절로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그의 공로도 아닙니다. 그의 노력의 결과도 아닙니다. 열심을 낸 보상도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이 하나님께 붙잡힌바가 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함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부요와 편안과 형통과 걱정 근심 없음, 더 높아짐, 더 많이 소유함, 더 이름이 알려짐 이러한 것들로 채우려 한다면 신앙이 참 가난해 집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고통과 눈물로 산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중에도 부귀와 형통 가운데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복입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텐데, 영-원한 나라라고 하는 시간 속에서 이 짧은 인생을 두고 누가 더 형통했냐? 누가 더 잘 먹고 살았냐? 누가 더 잘생겼냐? 누가 더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졌느냐 하고 따지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가 되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에게만 있는 귀중한 것들이 신자들에게도 나타나게 됩니다. 생명이 나타나고, 진리가 나타나고, 거룩함이 나타나고, 자비가 나타나고, 온유가 나타납니다. 인내가 있고 소망이 있고,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무 때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으신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사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야곱은 77세에 고향을 떠나 외삼촌 집에 가다가 벧엘에서 사닥다리 위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창28장)(야곱의 나이에 대해서는 본 카테고리 포스트 no.9,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챌 때의 나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참조).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약속을 하셨다고 해서 세상의 복된 것들을 한꺼번에 야곱의 목전에 왕창 주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장장 20년 동안 모진 고생을 합니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험난한 인생을 삽니다.

야곱의 가치관 ,세상적인 생각 등이 바뀌는데 20년이 걸립니다. 이 20년에 야곱은 하나님을 배웁니다.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복이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복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인 것을 깨닫습니다. 복을 배우는데 이렇게 20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 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 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기를 원하나이다”(창 48:15-16)

드디어 야곱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이라는 것을. …

그래서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을 주신 것 같이 자식들에도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못나고 부족한 자기를 기르시고, 참아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자기를 하나님께 붙어 있게 하신 그 하나님이 자기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야곱은 자식들이 만사형통하고 부귀영화 누리고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니까 하나님께서 자식들에게도 야곱이 받은 그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월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헛된 것을 구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이단, 사이비들의 주장,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이 뭡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물질바쳐 기도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속이는 것 아닙니까?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신약의 신자들은 구약의 성도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아예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마음에 실질적으로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 성령님이 신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시며, 탄식하며 기도하시며, 신자들과 동행하십니다. 보호 하십니다. 태초에 온 우주만물을 만드실 때 함께 하셨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님 중 성령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에 와 계십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고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잡신을 받은 무당들도 신을 받으면(降神巫), 신을 받았다고 큰 소리치며, 제단 쌓아놓고 사람들을 끌어 모읍니다. 세상의 잡신들도 이런데 하물며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자들은 얼마나 놀라운 복을 받은 사람이며, 얼마나 커다란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며, 얼마나 대단한 권세를 가진 존재입니까?

그래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들은 더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는 내용에 대해서는 본 카테고리, no.15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는 의미」참조) . 더 풍성히 주실 자신이 있으시니까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만나를 내려 줄 것이니까 오늘 먹을만큼만 만나를 취해도 충분하다고 하신 것 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복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이가 내 속에 계시는데, 무슨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거나 갖고 싶어서 세상을 기웃거릴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이렇듯, 이러한 하나님과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마음이 상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답을 얻으려 애를쓰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애를 쓰며, 이것이 그런가 하며 늘 성경을 상고하는 것 등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4.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

모세는 가나안 입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신 4:23)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목도한 바와 같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넉넉하게 해결 해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상을 섬길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실 때도 하루치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왜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도록 매일 매일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잔뜩 거두어 들였다가 썩는 것을 경험했습니다(출 16:19-20).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자기들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입니다. 신자들도 오직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우상 취급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루고 싶어서입니다.

신자가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을 떠나 우상의 능력을 빌어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이는 결국 자기의 욕심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표현을 신약에서는 “탐심이 곧 우상숭배” 라고 하는 것입니다(골 3:5).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간곡한 권면을 듣고도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금세 우상을 섬깁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 들을 섬긴지라”(삿 3:7)

그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을 떠났으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이방 나라의 압제와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누구 하나는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섬기든, 하나님을 섬기든, 자기를 섬기든 말입니다. 신자도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의 종이 됩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법입니다. 마치 삼손이 들릴라의 종이 된 것 처럼 말입니다.

예컨대, 돈을 사랑하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돈이 북극에서 오라고 하면 북극으로 가고 남극에서 오라고 하면 돈 벌러 남극으로 갑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에 이끌리어 사기를 치고, 강도질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도 죽입니다. 돈의 노예이기 때문에 돈이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싶으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뜻(소원, 욕심)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싸움은 비단 구약의 성도들뿐만 아닙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똑 같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 싸움을 싸웁니다.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뜻이 삶에 이루어지게 하기보다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이루려고 자기를 불태우는 신앙으로 갑니다. 우상을 섬기듯 정성과 열심을 다하는 신앙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부족해서 우리의 정성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요, 배가 고파서 우리의 제물을 원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사 1:12)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 50:9-11)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누리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평강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붙어 있음으로 말미암는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이제는 백성이 되었으니까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으로(마치 우상에게 무엇을 구하듯)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른 것이 지혜와 능력과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저들의 지혜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저들의 축복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저들의 능력이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 곁에 붙어 있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세상적인 명성과 크고 거창한 일이 능력과 축복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정적인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지혜가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석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어야 하며,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과 결정과 말씀은 언제나 옳고, 지혜롭고, 복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좋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오는 증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문제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면 절대로 신앙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을 모두가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신자는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 그자체가 복입니다.모두 이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5-28)

2011. 11. 20. 광성교회 추수감사주일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107)

본문 : 시 73:25-28

제목 :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우리가 알기에 우리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을 돌아보면 그런 믿음에 회의를 느끼고 의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편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와 찬미로 기록이 되어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들의 삶도 세상을 보며 원망할 만한 일들이 참 많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의 많은 부분들이 좋은 형편에서 평안한 상태에서 감사를 드리기 보다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 찬송을 드리고 감사를 드리는 일들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시편을 분류하는 신학자들에 의하면 150편의 시편 중 50여 편을 공식적으로 탄식시로 구분을 합니다.

그 탄식시에는 이런 탄식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13: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22:1-2)

이런 원망과 탄식의 내용들이 탄식시에 들어 있으며 탄식시로 분류되지 않은 시편에도 이런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이런 탄식시들도 탄식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움들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 아래서 살려고 다짐을 하는 내용들로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3편도 탄식시로 분류되는 시는 아니지만 그런 탄식과 그리고 깨달음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확신들이 기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특별히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신데 세상을 보니까 그렇지가 않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악을 행하는 사람이 더 잘살고 더 잘 되고 형통하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이 들어서 거의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 했는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장춘몽 같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비록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거룩한 백성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나라에서 사는데 왜 사는 것은 늘 이럴까? 기도 응답도 즉각 즉각 받아서 부자도 되고 성공도 하고 싶은데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왜 이렇게 시원치 않을까 왜 이렇게 오히려 어려워질까 라는 생각이 드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세상을 보며 느끼는 시험

73편 1-3절에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들을 다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공평과 정의입니다.

죄를 범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고 바르게 사는 사람,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는 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방법입니다.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더 복을 받고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마치 선을 행하는 사람들처럼 살더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잘 죽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잘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는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문제라고들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떠날 때 보면 대부분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불신자들은 악을 쓰면서 고통스럽게 죽는데 성도들은 천사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평안한 얼굴로 죽음을 맞아합니다.

고통 없이 평안하게 죽는 것이 우리 서도들의 몫이고 선하게 산 사람들의 몫인데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죽을 때도 평안하게 죽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이나 고난도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만 벼락도 맞고 지진도 나고 사업도 망하고 그러면 좋은데 악을 행하면서 사는데도 그런 재앙이나 고난도 당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지도 않으시고 벌을 내리시지도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사업이 더 잘 돼서 돈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잘 먹어서 살이 디룩디룩 찌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신앙생활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게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도 그것도 잘 안돼서 고생을 하는데 악한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데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악인인데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불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하고 거만하게 행동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지도 않고 막하고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고 따르는 사람은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사람들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가가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욕먹는 일도 없고 오히려 더 인기를 얻으면서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을 바라보니까 자신은 선을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사람처럼 형편없이 살더라는 것입니다.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려고 할수록 어려움을 당하고 정의롭게 살려고 할수록 오히려 벌을 받는 사람처럼 일이 잘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손을 씻어 무죄하게 한 것이 헛된 것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넘어질 뻔 했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 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서 신앙을 포기하고 악한 길로 따라갈 뻔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을 보면 시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 가운데도 출세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기도도 많이 하여서 잘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들이 모든 삶에 있어서 다 그렇게 형통한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잘 되고 교회에 다녀도 엉터리로 다니는 사람들이 더 잘 되고 더 평안하게 살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즘 안철수씨가 참 잘나갑니다.

사업도 성공하고 돈도 많아서 천오백억 원이나 기부를 하고 사람들이 대통령 좀 해달고 할 정도로 인기도 높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교회에도 안 다니고 불교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교회의 장로출신인 이대통령은 욕만 욕만 먹게 만들고 교회에도 안 다니고 절에 다니는 사람을 이렇게 성공하게 만드셨을까요?

이렇게 해 가지고 어찌 목사가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 잘 믿으면 복을 받고 세상에서도 잘 살게 된다고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 사탄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이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화려하게 살고 오히려 더 재미있게 살고 좋은 일도 많이 하면서 칭찬 받으면서 사는 것을 볼 때 우리도 시험을 받게 됩니다.

지금 이라도 포기하고 마음 고쳐먹을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더 늙기 전에 재미있게 살아볼까?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라도 한 것일까?

나를 알기나 하실까? 이렇게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알아나 주실까?

이런 별 별 생각이 다 드실 것입니다.

2.하나님의 성소에서 깨달은 진리

16-1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에 해답을 얻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큰 고통이 되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들어가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그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있어보면 그들이 옳은 것 같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들처럼 함께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되고 그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많은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버티는데 대학교만 가면 교회에 안 나옵니다.

선배들하고 술 한 잔 하고 개똥철학 이야기 하다가 보면 그들이 하는 말이 옳은 것처럼 느껴지고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것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화려한 문화들을 경험해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들어갈 때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소는 교회입니다.

오늘날의 성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오늘날의 성소는 성령님이 함께 계시는 우리의 심령입니다.

교회에 와서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통하여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진리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 깨달음은 악인들의 종말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삶의 극히 일부일 뿐이요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흘 붉을 꽃이 없고 십년 넘어가는 권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산다고 해도 그 세월이 너무 짧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잠깐이고 헛된 것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악한 자에게 벌을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그 악을 행한 만큼 악한 자가 선한 자처럼 대접받고 산만큼 그들 앞에는 아주 엄한 벌이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산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 만큼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은 만큼 오히려 그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상급과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면서 처음 설교하신 말씀을 여러분이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가난하느냐 복이 있다.

애통해 하느냐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느냐 복이 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사느냐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천국이 너희 것이고 천국에서 너희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

교회로 늘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말씀을 잘 들으시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허무하게 살지 않는 길이요 참된 진리의 길 복된 길을 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오늘 본문 25-2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1)하늘과 땅에 유일하게 사모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내가 잘 살 때 내가 건강할 때 내가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때만 존재합니다.

아내들이 평생 남편을 섬기면서 수발을 들면서 살았는데 이제 돈도 벌어오지 못하고 귀찮게만 하니까 저렇게 오래 살면 어쩔까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솔직히 부모님 일찍 돌아가셨으면 하고 바란지 오래됐습니다.

초상집에 가 보면 옛날처럼 부모님 돌아가셨다고 슬퍼하고 우는 사람 없습니다.

표정관리도 안 하고 웃고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마저 뒤로 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나를 알아주고 만나주고 좋은 곳으로 안내 해 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천국에 들어가도록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때는 철저하게 나 혼자가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의 편이 되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로운 이 세상에서 미우나 고우나 나의 편이 되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나의 편이 되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땅에서 오직 사모할 분은 우리 주 하나님뿐이십니다.

2)내 마음의 반석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강한 것 같지만 한없이 연약한 것이 우리의 육체요 우리의 마음입니다.

수시로 변하고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반석처럼 언제나 흔들림이 없이 거기 계십니다.

그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약속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언제나 강한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3)주를 멀리하는 자는 다 망합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은 결국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참고 계시지만 그들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심판대 앞에서 그들이 행한 악한 일들을 다 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4)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깨끗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 못지않게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심판대 앞에 서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잡고 있으면 우리의 죄는 깨끗하게 사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보면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더 잘사는 것처럼 보이고 더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성공은 금방 시들고 마는 풀이요 꽃일 뿐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요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와서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늘에서 유일하게 사모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시는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우리에게 큰 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가까이 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73:27-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옛날 이스라엘에 아삽이란 선견자가 아주 큰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악인이 형통하고, 악인이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이 죽고, 악인이 고난도 재앙도 없고, 악인이 재물은 더하여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신은 종일 재앙과 징책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드는 요소 중의 아주 일반적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에이, 하나님을 믿어도 별 수 없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저들은 저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잖아?” 이러한 시험에 대한 해답으로 아삽은 이렇게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던지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시73:17-19)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면 주인이 돼지를 키울 때에 돼지에게 음식을 풍성히 주고, 돼지가 잘 자라도록 정성껏 돌보아 줍니다. 왜 그럽니까? 돼지가 예뻐서라기보다 돼지를 잡아먹기 위함입니다. 주인의 정성스런 보살핌 속에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은 돼지라도 그날이 오면 졸지에 꽥- 하는 돼지 목 따는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올 때에 졸지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종종 고난을 당하던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고로 아삽이란 선견자는 오늘의 본문에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73:27-28)

유명한 영국의 설교자 ‘말틴 로이드 존스’의 글에 보면 교회 나왔다가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불편하게 느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비웃고 교회 출석을 중단한 농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교회를 그만두고 더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더 많은 수확을 거두고 전보다 더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 가을 추수 때 다시 교회 예배에 나와서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이보시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축복을 받았소. 그러니 당신들이 설교한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근거가 없는 말이오.”

그때 그 교회 목사님이 조용히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매 가을마다 결산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단 한 번의 결산으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곧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때, 그 결산의 때, 곧 심판의 날에 하나님을 멀리한 사람들이 영원히 망하는 날이요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들은 영원히 흥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사는 것이 복일까요?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는 것이 복일까요? 이 질문은 마치 주일학교 유치부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우리 유치부 학생들도 이 질문에 분명히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지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사는 것이 나에게 복일까요? 외국 땅이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사는 것이 나에게 복일까요?” 물론 이 질문에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어디에서든지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사는 것이 나에게 복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430년간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는 시내산에 40일 동안 기도하러 떠났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인 아론에게 말을 합니다. “우리의 눈에 모세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도 보이지 않으니 우리에게 우리를 인도할 하나님을 하나 만들어 주시오.”

이때 제사장 아론이 그들에게 “여보시오.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라고 말을 했으면 좋은데 그만 그들에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자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금송아지가 하나님인줄 알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을 추며 즐거워했습니다. 모세가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서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나서 십계명 들판을 깨트리고 우상을 섬긴 그들을 징계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종종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상 숭배는 결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인 자신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고 그러한 행위를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상을 섬기는 자는 비록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것들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번 우주를 관찰해 보십시오. 뜨고 지는 태양을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을 살펴보십시오. 이것들이 우연히 진화해서 생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학설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만물들을 보고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다고 우리의 양심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우리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우리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고, 마침내는 성령님으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자신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가장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준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하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를 가까이 할까요? 사지선다형 문제입니다. ① 용모가 잘생긴 사람, ② 세상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 ③ 돈 많이 있는 부자, ④ 하나님께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 정답은 ④번 하나님께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외톨이나 왕따가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늘 자기와 더불어 의논하고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은 가까이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4:7) 또한 다윗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145:18)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이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보다 가까이 하기 위해서 늘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기도도 하셨고, 철야기도도 하셨고, 산기도도 하셨고, 금식기도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기도로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밤낮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며 가까이 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자고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신 성경의 모든 위인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불신의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반론을 하기도 합니다. “아니, 예수쟁이들, 그렇게 기도한다고 뭐가 됩니까?” 이때 우리 예수쟁이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도하면 뭐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고로 기도하면 평안해집니다. 기도하면 근심이 사라집니다. 또한 기도하면 하나님의 생각이 전달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용서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화목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감사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믿음이 생겨납니다. 다툼과 원망이 사라집니다. 교만한 마음이 녹아집니다. 고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먼저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내 주위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큰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께 합심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종종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고 가까이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하시는 무정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전부터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가까이 하셨고,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고 자신을 가까이 나타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이 외국 땅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찾아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로 아무리 시간이 없고 바쁘더라도 하나님과 기도하는 대화의 통로를 끊고 살면 안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늘 하나님과 가까이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약속한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2. 주의 뜰에 거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65:4) 구약시대에서 주의 뜰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켰습니다.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는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요, 주님이 계신 뜰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백악관에 가면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고, 청와대에 가면 한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남겨놓으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에 예수님은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먼저 교회를 세우는데 열심을 내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술집을 가까이 하면 안됩니다. 기생집을 가까이 해서도 안됩니다. 카지노를 가까이 해서도 안됩니다.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와서 일주일간 수고한 대가를 하나님께 받으십시오. 가능한 금요일 철야예배에도 교회에 나오셔서 기도하시고, 수요예배에도 교회에 나와서 기도도 하시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상하게도 은혜를 받으면 교회에 자꾸 가고 싶어집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교회에 가기가 싫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이 계신 주의 뜰에 거하므로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불신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나아가면 시간이 낭비되는 줄 압니다. 헌금을 하므로 돈을 빼앗기고 크게 손해가 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물론 교회에 오면 불완전한 죄인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간의 문제로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만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축복하시는 곳입니다.

특히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까? 이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가까이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고로 각종 어려움으로 인해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 나아와 저주를 축복으로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천국이 저와 여러분들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 73:2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73:23-28)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1. 세계 제 2위의 갑부 워렌 버핏이 얼마 전 자기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36조원)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자선 기부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워렌 버핏이 2000년부터 자신과의 점심 식사 한 끼를 함께 해주는 대가를 경매에 붙였습니다. 이를 통한 수익금을 모두 빈곤퇴치를 위한 비영리 조직인 글라이드 파운데이션에 기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금년에 버핏과의 점심 식사 낙찰가는 25만 100달러(한화 약 2억 5천만 원)였습니다. 낙찰된 사람은 투자 펀드 업체의 관리자인 모니쉬 파브리였습니다. 워렌 버핏과의 점식을 낙찰 받은 파브리는 오랜 기간 동안 워렌 버핏의 삶을 존경하는 열렬한 신봉자로 자신이 버핏에게 받은 가르침은 돈으로 지불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워렌 버핏은 1958년 고향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3만 1500달러(약 3,000만원)를 주고 산 집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12달러짜리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만큼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를 그의 고향 사람들은 ‘오마하의 현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과 가까이 하면서 점심 식사 한 끼를 나누는데 2억 5천만 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2억 5천만 원이 고스란히 빈곤퇴치에 쓰인다는데 보람과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 있고 존경받는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많은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전지전능하시며 만유(萬有)의 주(主), 곧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첫째,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가 시편91:1-16에서 열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나 부주의로 인해 마치 사냥꾼의 올무에 빠지는 것처럼 원수의 모함과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시며(3절), 밤낮 없이 찾아오는 위험과 재난 가운데서 붙들어주시며(5절), 극한 염병처럼 불식간에 당하는 사고와 환난에서 붙들어주시며(6절),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게 하며(8절),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집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시며(11절),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시며(12절),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2절)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법으로 다가오는 각종 위험과 재난과 환난, 그리고 모함과 함정이 널려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하나님의 지혜로 붙들어 주시고 그 방패가 되어 주시는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복은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셔서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주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말합니다. 이 성경이 인생에게 주시는 복은 이렇습니다.

(딤후3:15-16)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 구원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아무리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면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 가진 것 적고 배운 것 많지 않아도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면 그 이상 영광스럽고 지혜로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어느 한 부자가 있는데 농사가 대풍작이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대박이 터져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부자가 이 정도 대박이면 창고를 더 크게 더 많게 지어 쌓아 두고 평생 쉬고 먹고 마시고 즐겨도 남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2:20-21)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고후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 때로는 시련과 환난을 당하게 하시거나 징계를 받게 하신다 해도 하나님 말씀 가운데 거하는 생활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삼하7:2)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자신은 최고의 궁전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궤는 초라하게도 궁전 한 구석에 천막으로 가리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언약궤를 모실만한 성전을 짓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같은 마음을 보시고 이렇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

(삼하7:9-16)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그리고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 곧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이며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만일 죄를 범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할지라도 사울 왕가처럼 은총을 빼앗지 아니하고 영원히 그 왕권을 견고하게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셔서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 받을지라도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주의 교훈”이 항상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길을 잘못 가고 있는 양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때로는 지팡이로, 때로는 막대기로 인도하시는 “주의 교훈”이 항상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19:83에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불 위에서 나는 매운 연기와 열기로 그을리고 쪼글쪼글해진 가죽병 부대처럼, 내 삶에 고통스럽고 비틀려 견디기 힘든 상처가 많아도 오히려 “주의 교훈”,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세 번째 복은,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라는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이 내 마음과 삶의 평화와 위로와 소망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평화와 위로와 소망을 주시고 보장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분깃이시라.”는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시며 풍족하게 하시는 삶의 터전이라는 뜻입니다.

(합1:16)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복의 근원, 행복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6:5-11)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 되어주시는 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그러면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생활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무엇보다 깨끗해야만 합니다. 거룩해야만 합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7:13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 앞에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민17:13)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로 세운 모세와 아론을 원망불평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별로 지팡이 하나씩을 성막의 가장 거룩한 곳,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는 곳인 언약궤가 있는 곳(민17:4)에 두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민17: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행한 뒤 이튿날 성막에 들어가 보니까 오직 대제사장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민17:8) 이 표징으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세운 백성의 지도자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민17:10)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과 불평이 분명한 죄악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가 하나님의 성막 가까이 나아갔기 때문에 자신들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절대 성결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 가까이 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아론 대제사장의 아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예배드리지 않다가 그들, 나답과 아비후가 그 자리에서 불에 삼키워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레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없어서 동산 숲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덴동산에서 멀리 추방되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졌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성경 골로새서 1:21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하나님의 원수가 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멀리 있던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다고 믿는 믿음밖에 없습니다.

(엡2:13-1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생활은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며 그를 결코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34:18, 시51:17절에 보면 다윗 왕의 회개하는 그의 신앙생활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다윗 왕이 항상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복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회개하고 매를 맞을수록 더욱 더 하나님 품에 안기는 생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는 신앙생활로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의 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시편145:18을 보겠습니다.

(시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지혜서인 잠언8:17에서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2920년 경 유다의 3대 왕으로 아사가 등극했습니다. 아사 왕 당시 병력 수는 58만 명이었습니다. 이 때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100만 명과 병거 300승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고자 했습니다. 군사력을 비교하면 유다에 전혀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대하14:11-12)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아사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스 군대를 쳐서 멸하되 살아 남은 자가 없도록 패망시켰습니다.

(대하14:12-13) 이후 아사 왕은 하나님 말씀대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대하15:15) 아사 왕 35년까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야말로 배부르고 평안하니까 점점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침공하자 아사 왕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조공을 바치며 바아사를 물리쳐 주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대하16:1-5)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 보다 강대국을 가까이 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선지자 하나니가 이를 책망하자 아사 왕은 선지자를 옥에 가둬 버렸습니다. 그 후 3년이 채 못 되어 아사 왕은 발에 아주 심한 중병이 걸렸습니다. 이 때도 아사 왕은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했습니다.

(대하16:12) 하나님을 멀리하고 의원들을 가까이 한 것입니다. 아사 왕은 2년 동안 심각한 발병으로 고생하다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그에게 승리와 평안으로 복을 주십니다. 다윗 왕은 전쟁할 때마다 승리할 뿐만 아니라 상대국으로 하여금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어디로 가서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해도 항상 이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삼하8: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8: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크고 작은 모든 전쟁에 앞서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삼하5: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 왕은 손쉬운 전쟁이라 해서 교만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거나, 힘들고 어려운 전쟁이라 해서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은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으로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범사에 깨끗하고 거룩한 신앙생활,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1

하나님과 가까이 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공간적인 간격을 좁히라르 뜻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2

제 아들 유진이가 할아버지 품에 안기듯, 달려가서 그 품에 그냥 안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아빠!”하면서 하나님 품을 파고드십시오.

#3

하나님은 우리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우리가 눈물 흘릴 때 위로의 말이나 건네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울 때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함께 울어주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이시면서 위로하십니다.

#4

우리가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도하십니다. 내 뺨을 어루만지며 사랑으로 입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진정한 예배입니다.

#5

교회는 하나님을 가깝게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복서의 글자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일곱 귀신 들린 창녀와 강도, 맹인, 앉은뱅이, 문둥병자, 난쟁이 삭개오, 38년 된 병자처럼 묶여 있는 인생을 친히 풀어주신 분입니다.

#6

제가 가까이 만난 예수님은 너무나 크십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십시오. 그것이 흔드심을 통과하는 축복의 길입니다.

#7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28

*출처 : 『흔드심』한별 지음 #1하나님과 가까이 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공간적인 간격을 좁히라르 뜻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2제 아들 유진이가 할아버지 품에 안기듯, 달려가서 그 품에 그냥 안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아빠!”하면서 하나님 품을 파고드십시오.#3하나님은 우리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우리가 눈물 흘릴 때 위로의 말이나 건네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울 때 나보다 더 아파하면서 함께 울어주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이시면서 위로하십니다.#4우리가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도하십니다. 내 뺨을 어루만지며 사랑으로 입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진정한 예배입니다.#5교회는 하나님을 가깝게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복서의 글자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일곱 귀신 들린 창녀와 강도, 맹인, 앉은뱅이, 문둥병자, 난쟁이 삭개오, 38년 된 병자처럼 묶여 있는 인생을 친히 풀어주신 분입니다.#6제가 가까이 만난 예수님은 너무나 크십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십시오. 그것이 흔드심을 통과하는 축복의 길입니다.#7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28*출처 : 『흔드심』한별 지음

[신년주일예배설교문]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편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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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년 주일예배 설교문 중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하다가 죽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피를 보시고 모든 저주가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편 23~28)

시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함께 하길 바라면서, 여러분이 가장 소망하고 사모해야 할 복, 인간의 참된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 해의 첫 달, 곧 1월을 영어로 January라고 합니다. January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Janus라고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의 이름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Janus 신은 두 얼굴을 가지고 한 얼굴로는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바라보고, 다른 얼굴로는 새로 다가오는 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1월에 그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런데 두 얼굴을 가지고 이중적인 모습을 지닌 Janus 신처럼, 인간도 극히 대조적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 가장 위대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참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셔서, 이 인간의 신적 기원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코 소멸되거나 없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담긴 참 지식과 의와 거룩의 영광스러운 속성들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다만 창조 시에 부여받은 것들의 희미한 흔적들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전 존재가 더럽혀지고 부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 이중적 성격 때문에 그의 영혼에 늘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여도, 자기의 머리를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지각하면서도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깨닫는 존재입니다. 또 땅에 있는 감각적이고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들을 바라고 살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신령하고 영원한 복들을 소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전 존재가 더럽혀지고 부패했기 때문에, 진리를 갈망하나 본성이 거짓되고, 안식을 열망하나 일락에서 일락으로 방황하며, 영원한 복락을 간절히 사모하나 순간적인 쾌락들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나 그릇된 방법으로 찾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리고, 돈에서 재물에서 명예에서 권력에서 정욕에서 하나님을 찾으나 그런 것들 속에서 자기를 상실해 버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부유한 아버지 집에서 난 아들이지만, 먼 이국 땅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자와 같으며,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는 자와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스칼이 자신의 명상록 ‘팡세’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 안에서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지고하며 절대적인 선하심 속에서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심어 놓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 안식할 때까지는 우리에게 참 안식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본문을 노래한 아삽의 경우도, 악인들이 하나님 없이 교만하고 강포를 행하면서 부와 재물을 쌓고 즐기며 지내는 복, 곧 악인들의 형통을 보고 실족할 뻔했다가, 결국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진정한 참 복을 깨닫고 마음에 큰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모든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선의 끊이지 않는 원천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최고선이시며,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의 최고선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우리의 복입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의 최고선이시지만 보다 특별한 의미, 곧 언약관계에서 말한다면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최고선이시요, 하나님은 언약 백성만의 최고선이십니다. 언약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에 대해 가지시는 부성적 사랑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구속주의 사랑으로서 자기의 언약 백성을 사랑하시며, “나는 저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저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은 더 이상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시며,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은 영적으로 우리를 낳으신 우리 영혼의 아버지시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또한 이 언약의 하나님은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노래한 우리의 목자이시며,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주시는 분이시며,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진정 우리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기쁨을 얻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므로 인해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광을 맛보며,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우리의 복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소원이 진정 하나님을 가까이하려는 그 한 가지 소원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한 걸음씩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에게 가까이 감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며, 우리가 가까이 나아갈 때 반드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는 한 영혼의 고귀한 고백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저와 여러분도 과연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런 고백은커녕,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욱 바라고 사모할 때가 많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 없이도 만족을 느끼며, 하나님을 의지함이 없이도 우리의 생을 잘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마음대로 살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며 살아왔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덧입히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긍휼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바로 그 은혜와 긍휼 때문에 우리의 생이 이렇게나마 유지되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덧입히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은혜와 긍휼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만을 우리의 바라고 사모할 자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담들이 무너지고 거리감이 다 사라지고 친밀한 교제와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우리는 의식할 수 있는 살아있고 인격적이며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나는,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나의 곁에 계시는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곧 하나님과 함께 함이 되며, 따라서 우리의 눈은 그분을 보는 것과 같고 우리의 귀는 그분을 듣는 것과 같으며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갈 때에나 버스를 탈 때에나 집에서 일을 할 때에나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나 직장에서 근무할 때에나 하나님은 항상 바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 고백과 기도와 이야기를 다 들으시며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며 우리를 붙들어 주를 떠나지 않게 하시며 마침내 주의 영광에 우리를 영접해 들이실 그런 인격적인 분이 되십니다.

그래서 아삽은 고백하기를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경건의 신비를 깊이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가까이하기를 힘쓰면 경건의 비밀을 더욱 많이 맛보며 체험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고백을 지금보다 더 깊고 심원한 의미에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이시면 그곳에서 영원히 그분을 가까이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만 가까이 부착하여 사는 삶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시행하는 일이나 기업체들의 사업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회의 윤리와 도덕의 풍토가 점점 더 타락해가며, 문학이나 영화나 연극 등 모든 예술이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더럽히기 쉬운 상황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가까이하기 위해 영적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런 영적인 투쟁 때문에 우리의 육체와 마음이 쇠잔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적 투쟁에서 승리하며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께 보다 가까이 나아가는 것밖에 없으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영적 교제를 누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라고 아삽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어떠한 환란과 시험이 닥치고 창수가 나도 무너져 내릴 염려가 없는 굳건한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우리에게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음녀 같이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선이요, 최고의 복 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가 화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원천이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27절에서 노래하기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멀리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우리의 의무요 본분이며, 우리의 특권이요 우리의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가까이” 이 말이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간구요, 우리의 소원이요, 우리 입술의 노래요, 우리의 표어가 되게 합시다. 여호와의 복이 여러분 위에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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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_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2016-11-23, 이완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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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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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예배설교문]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편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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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예배설교문]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편 2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편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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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3-28) 시편 73편은 아삽의 신앙 고백이요 찬양입니다. 일반적으로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잘 안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악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살 때에도 잘 먹고, 잘 놀고,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다 하면서 삽니다.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아삽은 세상에서 악인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을 보고,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시편 73:1-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습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형통하지 못하는가?”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던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그 문제들을 해결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73:17-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아삽은 성소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성소에서 말씀을 통해 해결 받았습니다. 그는 성소에서 기도함으로 참된 복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20:1-4절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성소에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73:23절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세상이 주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세상적인 복, 물질적인 복, 육체적인 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영적인 복을 더 많이 사모해야 합니다.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아삽은 단호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우리의 생명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호흡이 있는 동안에, 날마다 주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 한결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복을 누렸습니다. 신앙의 선배인 아삽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멸망의 시작이며,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삽은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들은 전멸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멀리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나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듣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부귀나 명예, 장수 같은 것을 구하지 않고,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듣는 마음”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지혜로워집니다.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어리석고 미련해집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스러워집니다.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지혜로워집니다. 막혔던 문제들이 해결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주의 교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주십니다. 출애굽기 15:13절 말씀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후에, 주님은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주십니다. 후에, 주님의 거룩한 처소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흑암을 헤맬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아픔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치료제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말씀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앞이 캄캄할 때,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기이십니다. 시편 18:1-2절 말씀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27: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마음이 아프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마음이 약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반석이신 주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아삽은 육체와 마음이 쇠약할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그런 염려와 걱정거리가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반석 되심을 믿었습니다. 염려할 일이 생긴다해도, 염려할 이유가 없음은 반석이 되신 하나님을 믿고, 맡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라고 했습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돌보아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2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살아 계십니다. 차의 백미러를 보면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아주 가까이에 계십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범사가 잘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무거운 짐이 벗겨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승리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평안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염려와 걱정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질병이 떠나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며,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시편 1:1-3절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우리들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해질 것입니다. 시편 73:25절 말씀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할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주 이에 누가 내게 있겠습니까?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가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날마다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141.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 시 73:28 – 1.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타락한 이후, 모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계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 힘을 쓰는 것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뿐입니다. 돈이 힘을 쓰며, 권력이 힘을 쓰며, 학벌이 힘을 쓰며 명예가 힘을 씁니다. 용모가 힘을 씁니다. 모든 것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된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존(自存)해야 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自力) 살아야 했습니다. 서로가 살기 위해 애쓰게 된 결과 상대방을 억압하고, 해치고,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야 했습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담과 성을 높이 쌓고, 높이 오르고,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내일 쓸 것을 오늘 쌓아놓고 만족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여전한 오늘날의 세상 모습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힘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에 복의 기준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편안한 것이요, 많은 것이요, 걱정이 없는 것이요, 남보다 잘 되는 것이요, 남보다 높아지는 것이요, 남보다 잘 사는 것 등등 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획득 하려고 서로가 눈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나오고, 약육강식의 현장이 전개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복의 기준이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참된 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에 교회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을 가지고 복을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합니다. 세상 적으로 잘 나가면 교회에서도 이구동성으로 복을 받았다고 자랑을 합니다.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신자에게도 복의 기준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예수를 안 믿는 사람 중에 형통하고 걱정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자들이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이미 말할 수 없는 복을 받고 있는데 무슨 복을 더 받으라고 하며 예수를 믿으라고 하겠습니까? 2. 시험에 든 「아삽」성도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아삽이라는 구약의 인물이 기록한 시로 보입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이 아삽이라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의 기준으로 세상 사람들을 보는 바람에 한동안 큰 시험이 걸렸습니다(아삽이 당한 시험에 대해서는 본 카테고리 포스트 no.61 「시험에 빠진 아삽」참조). 아삽이 보고 시험에 든 이유는 사람들이 이렇게 잘나가고 잘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이 소원보다 많으며…”(시 73:4-7) 그들은 한마디로 승승장구하는 인생이요, 만사형통한 인생이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인생이었습니다. 걱정거리도 없는데다가 돈도 잘 벌고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아삽이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세상 사람의 복의 기준으로 이들을 보니까 부럽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기 자신은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앙에 회의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아삽은 나중에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이 가진 것이 궁극의 복이 아니라는 것과 참된 복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8) 아삽이 처음, 이렇게 시험에 든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무한한 복인데 이것의 가치는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의 보상이 눈에 보이는 어떤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모습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어떤 신앙의 보상이 없는데 비하여 하나님을 안 섬기는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풍족한 보상을 받고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고민하고 갈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이미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복된 인생이라는 것이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이 편들어 주는 자, 하나님이 알고 인정하는 자를 복되다고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시 1:1)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5)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3) 신자의 복은 무슨 신앙의 행위를 해서 그 보상으로 세상의 것들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공로가 없을지라도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복, 영원에 관한 복, 하늘나라에 관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알고 있는 인생이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고 간섭해 주시는 인생이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인생입니다. 이러한 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복의 기준으로 보니까 복이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모든 일의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성경에서 악인입니다. 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미 복된 존재입니다. 또, 여기서 ‘시온의 대로’라 함은 하나님을 믿고 그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자 또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걷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생활의 안내자로 삼는 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레마 종합자료 시리즈 12권, p.549). 이러한 사람은 이미 하늘에 속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그 보상과 공로로 세상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을 더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이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자들이 종종 시험에 빠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신앙생활의 보상으로 세상의 어떤 복을 받으려 하는데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복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을 신자 스스로 복으로 여기고 그것을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안 주시는 것이 더 유익하니까 안 주시는데, 신자들은 애타게 구하는데도 그것을 하나님이 안 주신다고 하며 시험에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사실 없는 것 보다는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의 복은 아닙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본다면 한 경점의 경점도 안 되는 순간에 잠시 육신의 편안을 누리는 것들뿐입니다. 인생 나이 70년 혹은 80년 동안 하나님 없이 누린 부귀영화가 영원한 시간의 관점으로 보면 얼마나 미미한 시간이겠습니까? 잠시 편안을 즐긴 그 짧은 시간에 비해서 그가 영원한 시간 속에서 받아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에 비해서 신자가 잠시 육체의 고난을 받는 수가 있지만 영원한 시간 속에서 신자가 누리는 영광과 비교하면 그것은 얼마나 짧은 시간이겠습니까? 찰나의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신자의 복은 신앙생활의 보상으로 어떤 세상적인 복들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복입니다. 만약 세상의 복의 기준으로 한다면, 수많은 순교자들, 헤롯 임금의 말실수로 목이 잘려 순교한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분은 복은 고사하고 저주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 믿는 바람에 비명에 횡사한 인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의 복은 세상이 복이라고 하는 것을 받고 누려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그 자체가 이미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의 개념을 이해 못하면 이미 받은 복을 모르고 계속해서 복을 달라고 부르짖는, 우상을 섬기는 신앙과 같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먹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를 주셨는데 그것은 모르고 반 돈짜리 금반지 달라고 하는 격이 되기 쉽습니다. 3.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이적을 행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셨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분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심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옆에 계시고, 함께 하시니까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즐거워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때 되면 물을 주실 것이고, 때 되면 양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가르시면서까지 구원하신 하나님이 설마 목이 말라 죽게 하시고, 양식이 없어 주리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옆에 계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없는 물과 없는 양식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만 생기고 사건만 생기면 사사건건 모세를 원망하고 자기들을 죽이려고 광야로 이끌어 냈느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못 들어 가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귀중한 인생을 광야에서 40년 방황하다가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사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그들은 그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했으니 그들은 들어 갔어도 못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선물들을 모르면 우리도 평생 하나님을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다가, 혹은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을 것을 밤낮 구하다가 귀한 인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어린 학생이 자연공원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곳의 풀, 나무, 꽃, 벌레, 시냇물, 나비, 벌, 버섯, 돌 맹이, 맑은 공기 등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 하나 없다고 불평만 하다가 집에 오고 마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자들은 지구라고 하는 곳에 소풍왔다가 어마어마한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고 불신자들은 아직도 끝없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풍은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즐기고 누리려고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설명한 포도가지는 무엇을 해서 자기가 복된 존재가 아니라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자체가 복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신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음으로 저절로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그의 공로도 아닙니다. 그의 노력의 결과도 아닙니다. 열심을 낸 보상도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이 하나님께 붙잡힌바가 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함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부요와 편안과 형통과 걱정 근심 없음, 더 높아짐, 더 많이 소유함, 더 이름이 알려짐 이러한 것들로 채우려 한다면 신앙이 참 가난해 집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고통과 눈물로 산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중에도 부귀와 형통 가운데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복입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텐데, 영-원한 나라라고 하는 시간 속에서 이 짧은 인생을 두고 누가 더 형통했냐? 누가 더 잘 먹고 살았냐? 누가 더 잘생겼냐? 누가 더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졌느냐 하고 따지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가 되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에게만 있는 귀중한 것들이 신자들에게도 나타나게 됩니다. 생명이 나타나고, 진리가 나타나고, 거룩함이 나타나고, 자비가 나타나고, 온유가 나타납니다. 인내가 있고 소망이 있고,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무 때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으신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사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야곱은 77세에 고향을 떠나 외삼촌 집에 가다가 벧엘에서 사닥다리 위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창28장)(야곱의 나이에 대해서는 본 카테고리 포스트 no.9,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챌 때의 나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참조).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약속을 하셨다고 해서 세상의 복된 것들을 한꺼번에 야곱의 목전에 왕창 주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장장 20년 동안 모진 고생을 합니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험난한 인생을 삽니다. 야곱의 가치관 ,세상적인 생각 등이 바뀌는데 20년이 걸립니다. 이 20년에 야곱은 하나님을 배웁니다.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복이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복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인 것을 깨닫습니다. 복을 배우는데 이렇게 20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 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 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기를 원하나이다”(창 48:15-16) 드디어 야곱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이라는 것을. … 그래서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을 주신 것 같이 자식들에도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못나고 부족한 자기를 기르시고, 참아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자기를 하나님께 붙어 있게 하신 그 하나님이 자기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야곱은 자식들이 만사형통하고 부귀영화 누리고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니까 하나님께서 자식들에게도 야곱이 받은 그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월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헛된 것을 구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이단, 사이비들의 주장,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이 뭡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물질바쳐 기도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속이는 것 아닙니까?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신약의 신자들은 구약의 성도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아예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마음에 실질적으로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 성령님이 신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시며, 탄식하며 기도하시며, 신자들과 동행하십니다. 보호 하십니다. 태초에 온 우주만물을 만드실 때 함께 하셨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님 중 성령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에 와 계십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고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잡신을 받은 무당들도 신을 받으면(降神巫), 신을 받았다고 큰 소리치며, 제단 쌓아놓고 사람들을 끌어 모읍니다. 세상의 잡신들도 이런데 하물며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자들은 얼마나 놀라운 복을 받은 사람이며, 얼마나 커다란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며, 얼마나 대단한 권세를 가진 존재입니까? 그래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들은 더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는 내용에 대해서는 본 카테고리, no.15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는 의미」참조) . 더 풍성히 주실 자신이 있으시니까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만나를 내려 줄 것이니까 오늘 먹을만큼만 만나를 취해도 충분하다고 하신 것 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복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이가 내 속에 계시는데, 무슨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거나 갖고 싶어서 세상을 기웃거릴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이렇듯, 이러한 하나님과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마음이 상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답을 얻으려 애를쓰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애를 쓰며, 이것이 그런가 하며 늘 성경을 상고하는 것 등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4.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 모세는 가나안 입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신 4:23)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목도한 바와 같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넉넉하게 해결 해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상을 섬길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실 때도 하루치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왜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도록 매일 매일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잔뜩 거두어 들였다가 썩는 것을 경험했습니다(출 16:19-20).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자기들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입니다. 신자들도 오직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우상 취급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루고 싶어서입니다. 신자가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을 떠나 우상의 능력을 빌어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이는 결국 자기의 욕심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표현을 신약에서는 “탐심이 곧 우상숭배” 라고 하는 것입니다(골 3:5).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간곡한 권면을 듣고도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금세 우상을 섬깁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 들을 섬긴지라”(삿 3:7) 그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을 떠났으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이방 나라의 압제와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누구 하나는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섬기든, 하나님을 섬기든, 자기를 섬기든 말입니다. 신자도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의 종이 됩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법입니다. 마치 삼손이 들릴라의 종이 된 것 처럼 말입니다. 예컨대, 돈을 사랑하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돈이 북극에서 오라고 하면 북극으로 가고 남극에서 오라고 하면 돈 벌러 남극으로 갑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에 이끌리어 사기를 치고, 강도질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도 죽입니다. 돈의 노예이기 때문에 돈이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싶으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뜻(소원, 욕심)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싸움은 비단 구약의 성도들뿐만 아닙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똑 같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 싸움을 싸웁니다.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뜻이 삶에 이루어지게 하기보다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이루려고 자기를 불태우는 신앙으로 갑니다. 우상을 섬기듯 정성과 열심을 다하는 신앙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부족해서 우리의 정성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요, 배가 고파서 우리의 제물을 원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사 1:12)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 50:9-11)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누리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평강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붙어 있음으로 말미암는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이제는 백성이 되었으니까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으로(마치 우상에게 무엇을 구하듯)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른 것이 지혜와 능력과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저들의 지혜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저들의 축복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저들의 능력이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 곁에 붙어 있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세상적인 명성과 크고 거창한 일이 능력과 축복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정적인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지혜가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석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어야 하며,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과 결정과 말씀은 언제나 옳고, 지혜롭고, 복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좋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오는 증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문제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면 절대로 신앙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을 모두가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신자는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 그자체가 복입니다.모두 이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5-28)

2011. 11. 20. 광성교회 추수감사주일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107) 본문 : 시 73:25-28 제목 :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우리가 알기에 우리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을 돌아보면 그런 믿음에 회의를 느끼고 의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편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와 찬미로 기록이 되어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들의 삶도 세상을 보며 원망할 만한 일들이 참 많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의 많은 부분들이 좋은 형편에서 평안한 상태에서 감사를 드리기 보다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 찬송을 드리고 감사를 드리는 일들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시편을 분류하는 신학자들에 의하면 150편의 시편 중 50여 편을 공식적으로 탄식시로 구분을 합니다. 그 탄식시에는 이런 탄식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13: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22:1-2) 이런 원망과 탄식의 내용들이 탄식시에 들어 있으며 탄식시로 분류되지 않은 시편에도 이런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이런 탄식시들도 탄식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움들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 아래서 살려고 다짐을 하는 내용들로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3편도 탄식시로 분류되는 시는 아니지만 그런 탄식과 그리고 깨달음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확신들이 기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특별히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신데 세상을 보니까 그렇지가 않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악을 행하는 사람이 더 잘살고 더 잘 되고 형통하게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이 들어서 거의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 했는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장춘몽 같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비록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거룩한 백성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나라에서 사는데 왜 사는 것은 늘 이럴까? 기도 응답도 즉각 즉각 받아서 부자도 되고 성공도 하고 싶은데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왜 이렇게 시원치 않을까 왜 이렇게 오히려 어려워질까 라는 생각이 드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세상을 보며 느끼는 시험 73편 1-3절에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들을 다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공평과 정의입니다. 죄를 범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고 바르게 사는 사람,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는 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방법입니다.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더 복을 받고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마치 선을 행하는 사람들처럼 살더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잘 죽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잘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는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문제라고들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떠날 때 보면 대부분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불신자들은 악을 쓰면서 고통스럽게 죽는데 성도들은 천사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평안한 얼굴로 죽음을 맞아합니다. 고통 없이 평안하게 죽는 것이 우리 서도들의 몫이고 선하게 산 사람들의 몫인데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죽을 때도 평안하게 죽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이나 고난도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만 벼락도 맞고 지진도 나고 사업도 망하고 그러면 좋은데 악을 행하면서 사는데도 그런 재앙이나 고난도 당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지도 않으시고 벌을 내리시지도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사업이 더 잘 돼서 돈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잘 먹어서 살이 디룩디룩 찌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신앙생활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게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도 그것도 잘 안돼서 고생을 하는데 악한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데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악인인데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불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하고 거만하게 행동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지도 않고 막하고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고 따르는 사람은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사람들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가가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욕먹는 일도 없고 오히려 더 인기를 얻으면서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을 바라보니까 자신은 선을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사람처럼 형편없이 살더라는 것입니다.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려고 할수록 어려움을 당하고 정의롭게 살려고 할수록 오히려 벌을 받는 사람처럼 일이 잘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손을 씻어 무죄하게 한 것이 헛된 것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넘어질 뻔 했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 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서 신앙을 포기하고 악한 길로 따라갈 뻔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을 보면 시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 가운데도 출세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기도도 많이 하여서 잘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들이 모든 삶에 있어서 다 그렇게 형통한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잘 되고 교회에 다녀도 엉터리로 다니는 사람들이 더 잘 되고 더 평안하게 살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즘 안철수씨가 참 잘나갑니다. 사업도 성공하고 돈도 많아서 천오백억 원이나 기부를 하고 사람들이 대통령 좀 해달고 할 정도로 인기도 높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교회에도 안 다니고 불교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교회의 장로출신인 이대통령은 욕만 욕만 먹게 만들고 교회에도 안 다니고 절에 다니는 사람을 이렇게 성공하게 만드셨을까요? 이렇게 해 가지고 어찌 목사가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 잘 믿으면 복을 받고 세상에서도 잘 살게 된다고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 사탄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이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화려하게 살고 오히려 더 재미있게 살고 좋은 일도 많이 하면서 칭찬 받으면서 사는 것을 볼 때 우리도 시험을 받게 됩니다. 지금 이라도 포기하고 마음 고쳐먹을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더 늙기 전에 재미있게 살아볼까?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라도 한 것일까? 나를 알기나 하실까? 이렇게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알아나 주실까? 이런 별 별 생각이 다 드실 것입니다. 2.하나님의 성소에서 깨달은 진리 16-1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에 해답을 얻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큰 고통이 되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들어가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그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있어보면 그들이 옳은 것 같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들처럼 함께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되고 그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많은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버티는데 대학교만 가면 교회에 안 나옵니다. 선배들하고 술 한 잔 하고 개똥철학 이야기 하다가 보면 그들이 하는 말이 옳은 것처럼 느껴지고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것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화려한 문화들을 경험해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들어갈 때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소는 교회입니다. 오늘날의 성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오늘날의 성소는 성령님이 함께 계시는 우리의 심령입니다. 교회에 와서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통하여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진리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 깨달음은 악인들의 종말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삶의 극히 일부일 뿐이요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흘 붉을 꽃이 없고 십년 넘어가는 권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산다고 해도 그 세월이 너무 짧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잠깐이고 헛된 것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악한 자에게 벌을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그 악을 행한 만큼 악한 자가 선한 자처럼 대접받고 산만큼 그들 앞에는 아주 엄한 벌이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산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 만큼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은 만큼 오히려 그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상급과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면서 처음 설교하신 말씀을 여러분이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가난하느냐 복이 있다. 애통해 하느냐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느냐 복이 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사느냐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천국이 너희 것이고 천국에서 너희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 교회로 늘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말씀을 잘 들으시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허무하게 살지 않는 길이요 참된 진리의 길 복된 길을 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오늘 본문 25-2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1)하늘과 땅에 유일하게 사모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내가 잘 살 때 내가 건강할 때 내가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때만 존재합니다. 아내들이 평생 남편을 섬기면서 수발을 들면서 살았는데 이제 돈도 벌어오지 못하고 귀찮게만 하니까 저렇게 오래 살면 어쩔까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솔직히 부모님 일찍 돌아가셨으면 하고 바란지 오래됐습니다. 초상집에 가 보면 옛날처럼 부모님 돌아가셨다고 슬퍼하고 우는 사람 없습니다. 표정관리도 안 하고 웃고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마저 뒤로 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나를 알아주고 만나주고 좋은 곳으로 안내 해 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천국에 들어가도록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때는 철저하게 나 혼자가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의 편이 되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로운 이 세상에서 미우나 고우나 나의 편이 되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나의 편이 되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땅에서 오직 사모할 분은 우리 주 하나님뿐이십니다. 2)내 마음의 반석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강한 것 같지만 한없이 연약한 것이 우리의 육체요 우리의 마음입니다. 수시로 변하고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반석처럼 언제나 흔들림이 없이 거기 계십니다. 그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약속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언제나 강한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3)주를 멀리하는 자는 다 망합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은 결국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참고 계시지만 그들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심판대 앞에서 그들이 행한 악한 일들을 다 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4)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깨끗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 못지않게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심판대 앞에 서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잡고 있으면 우리의 죄는 깨끗하게 사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보면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더 잘사는 것처럼 보이고 더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성공은 금방 시들고 마는 풀이요 꽃일 뿐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요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와서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늘에서 유일하게 사모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시는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우리에게 큰 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가까이 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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