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합력 하여 선 을 이루시 는 하나님 – 하나님의 성품 (29)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2021-06-04 금요성령집회) – 박한수 목사“?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ppa.pilgrimjournalist.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ppa.pilgrimjournalist.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제자광성교회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111,670회 및 좋아요 2,892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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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 금요성령집회 / 로마서 8:26-28
[ 제자광성교회 ] 박한수 위임목사님
제1성전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462 (정발산동 1140번지)
제2성전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하늘마을1로 72 (베스트요양원 옆)
전화번호 : 031-975-4004, FAX : 070-8277-2525
헌금계좌 : 301-0170-1798-71 (농협, 제자광성교회)
홈페이지 : http://www.jejaks.org
※ 새가족 등록을 원하는 분은 사전에 교회에 연락하시고 방문하셔야
예배에 참여하고,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래세대후원 전용계좌가 개설되었습니다. (8월 12일)
[ 미래세대후원 방법 ]1. 국내용 계좌 : 301-0277-1597-91 (농협, 제자광성교회)
2. 국외용 교회계좌번호
-church address: 462, Ilsan-ro, Ilsandong-gu, Goyang-si,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bank(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account number: 301-0277-1597-91
-account holder: Jejakwangsungkyoheo(제자광성교회)
-bank address: 10, Goyangsicheong-ro, Deogyang-gu, Goyang-si,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SWIFT Code : NACFKRSEXXX
3. 미래세대후원 입금하실때: 입금자명+미래세대
(예, 홍길동 미래세대)라고 꼭 기입해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 제자광성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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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5/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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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크리스천투데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롬 8:28).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6/20/2021
View: 421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 기독정보넷
이 이야기는 본문인 로마서 8:28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
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6/9/2021
View: 822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ll Things for Good)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일부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 혹은 우리에게 유익처럼 보이는 것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라고 …
Source: www.bridgesforpeace.com
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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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이 뜻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활 현장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 …
Source: www.calgarychurch.org
Date Published: 2/1/2021
View: 1839
(로마서 8:26-30)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과의 대화(마 19장, 막 10장, 눅 18장)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선(善)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
Source: www.elphis.or.kr
Date Published: 3/3/2021
View: 8636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 …
컴패니언 성서는 ”의로운 자에게는 헛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로 번역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는 악하거나, 우연하거나 헛된 일이 없다. 반대로, 모든 일, …
Source: www.thewordofgod.kr
Date Published: 8/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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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합력 하여 선 을 이루시 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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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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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로마서 8:28-30 KRV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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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 설교자료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유대인들이 제2경전으로 여기는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랍비가운데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카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자 아카바는 마을 어귀에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오두막집 한 체를 발견하고 그곳에 묵기로 했습니다. 그는 당나귀와 개를 오두막 앞에 매어두고 방안에 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졌고 그는 하는 수 없이 책 읽기를 단념하고 잠을 청했습니다.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오두막집 앞에 매어 둔 개와 당나귀가 죽어 있었습니다. 간밤에 굶주린 사자가 잡아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램프를 들고 홀로 터덕터덕 여행을 계속했습니다.얼마 후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전날 밤 도둑들이 모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모두 죽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만약 간밤에 램프가 꺼지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책을 읽었을 것이고, 당연히 도둑에게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개가 살아 있었다면 개 짖는 소리에 도둑들이 쳐들어 왔을 것이고, 당나귀도 시끄럽게 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덕분에 가장 소중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이 이야기는 본문인 로마서 8:28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 한 구절을 바로 이해하고, 이 말씀 한 구절을 항상 잊지 아니하고 기억할 때 우리들의 신앙은 바로서서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며 사랑받는 복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실패하는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아 보이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좀더 현실에 비추어 말씀을 드린다면, 세상이 거꾸로 가든 바로가든 돌아서 가든 간에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인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의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에 하등의 불평이 없고, 추호의 원망도 없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인이 가지는 신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이 진리의 말씀을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1.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주인인 아브라함의 며느리를 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주인의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지시한 대로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낯선 지역에서 어디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어느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하기를“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세기 24:13~14)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 곧 리브가라는 아리따운 처녀 한 사람이 물을 길러왔습니다. 그 처녀에게 물을 좀 달라하자, 자기에게만 아니라 나귀들에게도 물을 길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우연히 물을 기르고자 우물가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이며 섭리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가 있었습니다.2. 모든 것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런 일도 있게 하시고 저런 일도 있게 하십니다. 우리의 근시안으로 볼 때에는 왜 이런 일이 있나하고,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나눠주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로마 정부의 박해로 교회는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이 박해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거하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복음은 더욱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처럼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 졌습니다.3.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라는 것입니다.건강도, 질병도, 성공도, 실패도, 어떤 고난도 다 합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실 때에 심한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 아래층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배가 침몰할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고, 일어나신 예수님은 풍랑을 향해“잔잔하라, 고요하라”는 말씀 한마디에 풍랑은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겪은 풍랑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가운데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풍랑으로 인해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은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누가복음 8:25에“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탄의 전략을 주님은 역이용하셔서 제자들의 신앙을 돈독하게 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기만 하면 승리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역이용하셔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하나님은 매사에 이렇게 합력하여 유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기록하시기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하셨습니다.우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면 악한 것도 많고, 부조리한 것도 많고, 모순된 것도 많지만 그것은 겉으로 되어지는 일이고, 깊은 곳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썰물 때를 보면 육지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바닷물이 찰랑찰랑 파도를 이루며 육지로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은 물은 반대편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 파도가 이는 것처럼 보여도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의 역사가 차질 없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태풍과 해일은 항구와 배와 어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아무도 태풍을 원하지 않습니다. 없으면 좋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태풍가운데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태풍이 없다면 바다는 잔잔하겠지만 그 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된다고 합니다. 수분이 증발된 해수면의 염도는 높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해조류들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센 태풍이 바닷물을 뒤집는 역할을 합니다. 그로 인해 해조류들이 자라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어촌의 수입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4. 모든 것이 합해져서 끝은 선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한 순간 순간은 괴롭고 힘들고 어려워도 결과를 볼 때에는“아, 그랬구나!”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착실했던 요셉은 아무 아유 없이 이복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요셉은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한 삶으로 주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요셉은 또 다시 어이없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성실한 삶을 살아간 요셉은 감옥 내 다른 죄수들을 관리하는 죄수 아닌 죄수였습니다. 요셉이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을 해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바로왕의 꿈까지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로왕의 큰 신임을 얻은 요셉은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형제들에게 배신당한 서러움, 노예와 죄수의 처지로 살아야 하는 억울함, 감옥 내에서의 고달픈 나날 등, 이 모두가 애굽의 총리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온 가족이 요셉으로 인해 기근을 면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5. 나로 참된 성도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나로 하여금 진실한 성도 즉 그리스도를 닮은 참 성도가 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패도 필요하고, 억울한 일도 필요하고, 질병으로 앓아눕는 일도 필요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다 합쳐져서 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바울사도에게서 이러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색병자들을 고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질병으로 일평생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하신 응답이 이렇습니다.“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린도후서 12:7~9) 이것이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미국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는 말하기를“하나님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 미련한 실수를 저지르게 하신다. 이로 인해 자기가 사람임을 알게 하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의 조건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나도록 하실까요?1. 알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본문 서두에“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 문장의 주어입니다. 우리가 알 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입니까?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됨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주님을 알고 주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내가 아직 하나님을 모를 때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역사를 이루지 아니하실 까닭이 없습니다.이 진리를 깨달아 알고 있는 사람은, 왜 병이 들어야 하느냐?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 왜 죽어야 하느냐? 라는 물음을 갖지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예”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결과는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사람이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어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겠습니까? 훗날 주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다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사람에 대하여 본문에는“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첫째, 계명을 지키는 자라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23에“예수께서….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하셨습니다. 사랑의 속성 가운데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인 계명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둘째,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 하셨습니다.요한1서 4:20~21에“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하셨습니다.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육신의 형제를,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셋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사랑의 속성 중 또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 늘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보아도 또 보고 싶고, 곁에 있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찾고 또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남달리 사랑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편 84:1~2)라고 했습니다. 몸이 쇄약하기까지 여호와의 장막인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늘 이야기하고 싶듯 하나님께 나아가 대화하게 되는데.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를 즐겨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깨달은 대로 실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이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는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합쳐져서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이나, 실패나, 성공이나, 영광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합해져서 어느 때에 가서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웨덴의 페트로라는 어부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어촌의 여러 사람들이 배를 몰고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페트로도 아들과 함께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이 어촌에는 고기 잡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돌아오지를 못했습니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도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설성가상으로 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집을 보다가 촛불을 넘어뜨려 불이 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합심하여 이 불을 끄느라고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는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동원해 정신없이 몇 시간을 싸우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배가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풍랑을 이기며 돌아온 것입니다. 아침이 밝아 왔고, 어제 밤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불 끄는데 누가 가장 애를 썼고, 풍랑은 또 어떠했느냐, 얼마나 서로가 힘을 들였느냐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페트로가 말하기를“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웬 불인지는 몰랐으며 어쨌든 불이 보여서 그 불을 바라보고 결국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에 불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집이 불타는 일이 있어야만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음을 우리는 미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왜 불이 나야 했는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잠간 모른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나를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선하신 인도하심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이해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믿고 순종하며, 감사하며,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ll Things for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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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이 뜻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활 현장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은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자리에도 이미 하나님을 만나본 분들도 있고, 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분명히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만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같이 알아보므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더욱 충만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언뜻 보면 혼자 창조하신 것 같지만 실지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창조의 사역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1:26) 그리고 하나님은 계절을 만드실 때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물고기, 짐승, 각종 수목들이 합력하여 생태계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도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므로 부부가 합력하여 살도록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극치는 바로 에덴 동산입니다. 에덴 동산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해함도 상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과 합력하여 행복하게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는 깨어지고 분열하여 악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기주의, 미움, 분노, 전쟁, 다툼, 시기, 원망 같은 많은 문제가 발생하므로 인류는 고통을 받다가 결국 영원한 심판의 길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력하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장차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을 예언하시고 예수님이 오시면 또 다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일으키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완전히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이루어 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아갈 수가 있고, 또 다시 에덴 동산의 기쁨과 축복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와 같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야곱의 11번 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는 형들보다 좋은 옷을 입고, 맛난 음식을 먹고, 힘든 일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이 형들보다 크게 높아지는 꿈도 꾸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로 인하여 형들로부터 시기, 질투,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아, 네 형들이 세겜 지방에서 양들을 치고 있는데 살펴보고 와서 보고를 하여라”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간 요셉은 거기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평상시 요셉을 미워했던 요셉의 배다른 형들이 요셉을 보고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맏형인 르우벤이 “그래도 우리의 형제인데 그럴 필요야 있느냐! 그냥 구덩이에 집어넣어 단단히 버릇을 가르치자” 하면서 요셉을 구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은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에게 은 20냥에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질질 끌려가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들에게 “나 좀 살려줘 !” 하고 아무리 눈물로 애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보디발 장군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로서 성실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다시 시련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요셉의 용모가 준수한 것을 보고 주인 마나님이 동침하자고 유혹을 합니다. 요셉이 이를 뿌리치자, 여인은 더욱 결사적으로 달라붙어 요셉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립니다. 결국 요셉이 도망하다가 잡힌 옷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이 여인이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고, 이 요셉이란 녀석이 나를 겁탈하려 하는구나 !”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뛰어와서 보니 아닌게 아니라 요셉이 벌거벗고 허겁지겁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마나님을 강간하려는 배은 망덕한 놈으로, 천하에 몹쓸 놈으로, 괘씸죄를 짓는 모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신매매를 당하여 고향을 떠난지 13년 만에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7년 풍년과 7년 기근을 겪는 중 형들을 만납니다. 형들이 국무총리가 된 요셉을 바라보자 그 얼굴이 사색이 되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근이 올 줄 알고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이곳에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그런 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을 구원하려 하셨도다”(창50:20) 할렐루야 !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요셉과 같이 시기와 질투를 당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문제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습니까? 문제의 노예로 팔리지 않았습니까? 기구한 운명,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럴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시고 기뻐하시고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제가 26살에 은혜를 받자 세 살 위의 누님이 저를 꽤 핍박했습니다. 방에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려고 하면 “나가 놀아라 !” 하면서 바가지로 머리를 치고, 나무 빗자루로 때리곤 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나가 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날마다 삼각산에 올라가서 목놓아 부르짖어 기도하는 습관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밖에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즉 저의 누님의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저의 어머님의 경우도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수원에서 공장을 짓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염려가 되어 현장에 내려가 아버님을 보좌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님이 술에 취하여 말을 합니다. “여자가 여기에는 뭐하려고 오나 ! 서울로 당장 올라가라.” 그러면서 방문을 잠그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려지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 저희 어머님은 “서울로 올라가야 되겠다 !” 하고 발길을 돌리며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골 조그만 길이라 차가 제대로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서울 올라가는 차를 보내어 주세요.”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 웬 자가용이 앞에 서면서 말을 합니다. “아줌마, 서울 올라가시면 타세요.”
그 차를 타니 방향이 여의도였습니다. 밤중 늦게 여의도에 도착하니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보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당시 장로 교인이었지만 순복음 교회는 날마다 철야 예배를 드리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철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저희 아버님의 건축 현장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도 저희 아버님은 “아니, 왜 여자가 자꾸 건축 현장에 오는 거야? 서울로 가지 않고 !” 하면서 방문을 또다시 걸어 잠그고 말았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다시 시골길을 걸으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제도 서울 올라가는 차를 보내어 주셨는데 오늘도 차를 보내어 주세요.” 그러자 또다시 지나가는 차가 서면서 말을 합니다. “혹시 서 울로 가시면 타세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날의 자가용은 어느 교회 집사님 차였고, 그 다음 날의 자가용은 어느 교회 장로님 차였습니다.
그리도 두 번째 날도 차의 방향은 역시 여의도 쪽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깨달았습니다. “아하, 괜히 염려하여 현장에 내려가지 말고 철야 기도를 하라는 것이구나 ! 하나님은 나를 철야 기도시키기 위하여 남편의 마음을 그렇게 강퍅하게 움직였고, 또 자가용을 보내어 철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구나 !” 할렐루야 !
여러분, 성경에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들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믿음의 왕인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동방의 의인이면서 너무나 큰 환난을 당한 욥이라는 분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리이다.”(욥23:10)
또한 신약 시대 온 유럽에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와 같은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특히 성도들 가운데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를 펼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하나님이 모세를 부릅니다. “모세야, 내가 너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리라.”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관데 그들이 나를 듣습니까? 나는 입이 뻣뻣하고 말이 둔하여 할 수 없나이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느냐? 그가 너를 대신하여 말하리라.” 즉 하나님은 모세를 도와 같이 합력하여 일을 할 만한 사람을 묶어주셨습니다. 또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같이 합력하여 일할 수 있는 짝을 묶어주셨고, 예수님도 제자들 중 둘씩 짝을 묶어주어 합력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서로 인격이 틀리고, 학벌이 틀리고, 자라난 환경이 틀린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모습이 당장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이 말씀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로마서 8:26-30)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과의 대화(마 19장, 막 10장, 눅 18장)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선(善)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의에 부합되는 것만이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선하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칭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선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보편적으로 어느 것들끼리의 차이면 문제가 없지만, 절대 기준과의 차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과 사람이 생각하는 선이 다르면 그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선은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이 말씀, 제법 유명해서 어지간한 사람은 암송하고 있는 이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나오는 ‘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이루어내는 선(善) 역시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 것, 그 하나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서 8장 전체를 흐르는 맥락과도 일치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바라는 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 –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맥락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善)’이란 역시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나타나는 것 그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안목으로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의외에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이루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선을 이루려면 선한 것이 모이고, 선한 것을 추구할 때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란 예외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악한 것조차 선을 이루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편적 가치관으로 볼 때, 선을 이루는 일에 악이 협력한다는 것은 용납되기 힘듭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 없다.’는 말에서 보듯이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이 악한 것인가?’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의 모든 것,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께서 그 의도하신 목적이 있어 만드신 것으로 악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디모데전서에서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로마서 8장에서도 바울 사도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표현하는 아들을 고대하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에서만 봐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때 선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따라서 선을 이룬다는 것,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협력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가진 생각, ‘선을 이루는 것은 선함’이라는 생각은 사람의 가치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가치기준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사람을 부끄럽게도 여기는 그런 가치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즉 세상에 악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람의 선악에 대한 기준 그 하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자청년과 나누신 대화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보고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청년을 꾸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자기가 가진 선과 악에 대한 기준으로 판단해 보니 선한 선생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그 마음 안에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 곧 선악과를 먹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고 답을 하시는 것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면 선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실패한 것이나 악한 것을 만드셨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랬단 말입니까? 그것이 아닌데 세상에 악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에 악한 것이 있는데 어떻게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악한 것으로 보는 안목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것이라면 악한 것과 연관을 짓습니다. 자기 기준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신의 삶이 세상과 삶의 본질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고,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힘든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곧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도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 본질과 허상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을 이루는 것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 곧 하나님의 의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표현되는 것에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어 수고스럽고,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 곧 현재의 고난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세상에 악한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악은 제외하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악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이 악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나누고 서로 선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가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함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없어서 서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셨다는 것, 그 하나가 인정이 되지 않아서 세상이 시끄럽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은 이것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선한 것이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선함을 위하여 창조된 피조물이기에 그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도 그 피조물이므로 사람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에 소비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입히신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드러났듯,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은 육신의 수고로움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그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가진 모든 것, 육신의 모든 것은 선과 악으로 나누지 말고 다 합하여 하나님의 선을 나타내는 것에 소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산제이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신이 불편해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육신이 병원에 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 병이 낫는 것을 은혜라 여기고, 몸이 아픈 것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여깁니다. 아프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을 때도 육신의 수고 없이 기적적으로 나을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어야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 안목과 가치관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법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이 동원하실 수 있는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능력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수고하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 마음 안에서 선을 이루는 것은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 선으로만 선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신앙과 안목일 뿐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Romans 8:28)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Romans 8:28).
Jesus said in the conversation with the rich youth (Matthew 19, Mark 10, Luke 18) that only God is good. Therefore, goodness is only good that conforms to God’s righteousness. It is a bit different from what people usually think of doing good things that do not cause social, moral, and praiseworthy things about good things. There is no problem if the differences are universal, but the difference is different from the absolute standard. If the line that God speaks is different from the line that man thinks, it is not the line that man thinks is good.
This is what the apostle Paul says: “Good” in the words of Romans 8:28, which is recited by a person who is famous and well-known, and the good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That is what you are talking about. This is consistent with the context of the whole passage of Romans 8. All the creatures hope that the appearance of the Son of God – the creation of all Gods – is consistent with the context of being an expression of God’s purpose. So ‘goodness’ is also the manifestation of God’s intent.
Here, in a general sense, it is not noticeable but there is something to be surprised about. It is about the process of being good. From a general point of view, good things come together to do good, and good things come from when we seek good things. But the apostle Paul says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to make good. “Everything” does not mean that there are exceptions. In other words, it can be said that even the evil is to cooperate in the work of good.
Then, in terms of universal values, it is unacceptable for evil to cooperate with good work. As you can see from the words ‘I can not steal the candle because I read the Bible’, this is not possible. But this is about what is evil? The apostle Paul tells us that everything in the world, all creation, is not evil because God made it for his intended purpose.
This is what Jesus said in 1 Timothy, but above all, Romans 8 tells us that Paul is saying that all creatures in the world are anticipating the Son who expresses God’s purpose. God has an intention of God, and God has an eye for good in expressing it.
For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1 Tim. 4: 4)
Therefore, to make good, to fulfill God’s righteousness is to say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cooperate. However, the idea that people have the idea of ’being good is good’ is about people’s value standards. The value standard of the person is about a value standard that is ashamed of those who say that God was very good to see. In other words, what is evil in the world is that there is only one standard for the good and evil of a man who defines what God has made evil.
This is the will of God, which is well integrated in the conversation that Jesus had with the rich youth. When Jesus saw Himself as the Son of God, He rebuked a young man who was called a “Good Teacher.” The reason is not different. He judged Jesus as the standard of good and evil he had, and judged him as a good teacher. So this young man is the one who ate the standard of judgment on good and evil in his heart, the good and the bad.
Jesus answered, “Only one God is good.” The standard for good and evil is God. If you are worthy of God’s righteousness, you are good, otherwise you are evil. Then did God make a failure or an evil thing when he created this world? Is the God of all-powerful love doing this? Where is the evil in the world? How could you be able to rest after the creation of something evil in the world?
Evil is nothing else. It is because of the discernment of what God has done as evil. People associate with evil if it is disadvantageous to them. It is because I have an idea of my own standards. It is because the life of the flesh is the essence of the world and life. It is the grace of God according to his own thoughts, and it is because he does not do the will of God if he does not do what he thinks. But knowing that the world is hard is for one reason only, it is not what you want, but you can see that people are sharing good and evil, nature and illusion on their own standards.
It is the goodness of God,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expressed in the character of God through all the creatures of the world, which is a laborious and hard work in the process of the righteousness of God There are evil things in the world when those who do not want to happen, those who do not suffer the present sufferings, see. And to think that we should do God’s good except for such evil.
There is nothing evil in the world if you admit that God is the Creator of Himself. The wickedness of the world is that man divides what God has made into good and evil, and pursues what is good for one another. The reason for the war is that it is different from the goodness of thinking that each other should be accomplished. So we can not cooperate and achieve God’s good, so we kill each other. That is to say, God made life, one can not be recognized and the world is noisy.
The apostle Paul’s words are about this. Everything in the world is good, and all creatures in the world are creatures created for the good of manifestation of the righteousness of God, so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exist for the coming forth of the Son of God to manifest His intention.
And that man is the creature, so it is reasonable to mobilize all that he has given to man and spend it in expressing God’s character. That is a hardship. Just as Jesus revealed the identity of the Son of God by giving the body of God on the cross, all life with the flesh is the purpose of that being to express God’s righteousness through the hard work of the flesh. All that we have for it, all things in the flesh, do not divide into good and evil, but consume them to represent God’s good. It is a sacrifice, a life in which God is a temple.
But people think that discomfort in the body is a departure from the blessings of God. Therefore, it is grace that the body does not go to the hospital, but the sickness is healed, and the body is sick because it is wrong with God. You should not be sick. And when we are good and we are miraculous without physical labor, we are considered to be God’s grace. It is grace to have no trouble.
Such discernment and values do not know how everything works together to form good. To them everything is like a miracle that God can mobilize. It is believed that God uses miracles and power to represent the glory of God. So, the more people do not have to labor, the more God thinks that he is God’s grace. It is a faith and an obsession that believes that what is already in the mind is not everything, but that good is done by the line that is judged on its own standards.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경의 진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내가 처음 성경을 공부할 때 처음 읽은 구절 중 하나가 로마서 8:28이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에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i) 이 구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구절이 되겠다.
ii) 이 구절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으로 이루어진다. “협력하다(함께 일하다)”는 구절에서 결합한다는 의미의 “협(함께)”는 하나 이상이 함께 일한다는 의미이다. 이들 중 하나가 빠지면, 즉 “함께”에 속한 일부가 빠지면, “협력하다(함께 일하다)”는 불완전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서 전부가 함께 결합하여, 모두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잠언 12:21을 읽어보자.
잠언 12:21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컴패니언 성서는 ”의로운 자에게는 헛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로 번역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는 악하거나, 우연하거나 헛된 일이 없다. 반대로, 모든 일, 우리가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일조차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한 일부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3:12)라는 말씀과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시편 34:19)라고 하신 말씀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동시에, 고통조차도 악하거나 헛되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에베소서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데살로니가전서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다. 보통 우리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어떠한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감사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범사에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아래 구절을 읽어보자.
예레미아 애가 3:37-38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며 이루게 할 수 있으랴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마귀조차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반경 너머로는 갈 수가 없다. 욥기 1-2를 읽어보면, 사탄은 하나님의 허가 없이 욥을 시험할 수 없었고, 손을 댈 수 없었다. 누가복음 22:31을 보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기 위해 사탄은 먼저 요구[그리스어로 “exaiteo”, 즉 요구1하여 얻는다는 뜻. NIV와 Interlinear Bible 등 참조.] 를 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여” 예수님에게 손을 댈 수 없음을 볼 수 있다(요한복음 7:30, 8:20). 고린도전서10:13에 의하면, 사탄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하지 아니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4:1에서 “성령(즉, 하나님)에게” 이끌리어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장면을 보게 된다. 욥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않겠느냐” (욥기 2:10)라고 말했을 때, 해당 구절에는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고 쓰여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 (욥기 1:21)하고 말했을 때, 욥은 다시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욥기 1:22) 진실을 이야기했다. 욥이 말한 것은 바르고 정확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면서, 여전히 왜 아직 취업이 안 되는지, 왜 아직 혼자인지, 왜 아직 치유되지 않았는지, 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났는지 고민한다면, 온전하던 욥이 했던대로, 이 모든 일에 대해 여호와를 찬송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이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선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런 일을 주셨을 리가 없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을 믿으라. 범사에 그 분께 감사하라. 그 일 중에 “악독한” 일들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의로운 자에게는 악독한 일이 없으며” 예수를 믿는 자는 의롭다(로마서 3:21-26)는 내용을 우리는 읽었다.
바울은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린도후서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병환을 자랑했다. 능욕, 궁핍, 박해, 곤고는 그를 위한 것이요, 그가 여호와의 능력을 보는 기회였다. 걱정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러한 어려움이 주어진 것이었다. 괴로움은 분명 고통스러웠고 사라지기를 바랬지만, 그의 자만을 막아주었다. 바울이 하나님께 세 번째 간구했을 때, 왜 지난 두 번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우리도 다른 기도는 즉시 응답해 주시는데, 어떤 기도는 진심으로 오랜 시간 헌신해도 즉시 응답해 주시지 않을 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가 아닌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을 때 모든 일은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다음 말씀을 읽어보자.
이사야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로마서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우리는 그 분을 믿고 완전히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의지가 우리 의지보다 높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 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예
우리는 막 읽은 내용에 관한 예를 살펴보겠다. 시작은 빌립보서 1:12-18 말씀이다.
빌립보서 1:12-18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은 감옥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감옥에 있는 시간은 복음에 불필요하다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하고 말한다. 그들은 바울의 매임이 복음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전을 위해 일했다. 다른 형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할 힘을 얻었다. 바울이 감옥에 있는 것이 복음 전파에 부정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같은 효과가 같은 장소인 감옥에서도 있었고, 동시에 빌립보 사람들에게도 있었다. 사도행전 16:22-25를 읽어보자.
사도행전 16:22-25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 않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많은 수감자들이 그날 밤 이 찬송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들 중에 찬송과 기도를 들어본 자가 있을까, 누가 복음을 이야기해 준 이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음 내용을 더 읽어보자.
사도행전 16:26-34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간수와 그의 가족이 세례를 받는 자리에 바울과 실라가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쁘다”고 말하겠지만, 그 분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고, 우리의 생각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2. 결론
이 주제2를 샅샅히 다루기란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마태복음 13:21) 실망하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환난과 시험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린도후서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히브리서 5:8
“그[예수님]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고통은 “너희를 이루기 위함”이다. 고통은 인내를 만들어낸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임의나 허사는 없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각주
1. “컴패니언 성서”, 1501쪽 참조.
2. 또 다른 예로는 요셉, 룻, 에스더, 모르드개, 다니엘 등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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