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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군 포로로 끌려간
장무환의 영화 같은 45년 만의 북한 탈출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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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장무환 – 검색결과 | 중앙일보
외교부 ‘대사관녀’ 공식 사과 · [사설] 남과 북의 두 환영식 · 〈그것이 알고 싶다-장무환 북한탈출기〉방송위 대상 수상 · [귀환못한 국군포로 실태] · [국방위]여야,’국군 …
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6/23/2022
View: 3717
국군포로 외면한 ‘대사관女’ 사건에 외교부 사과 | DailyNK
22일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지난 1998년 탈북해 입국한 국군포로 장무환 씨의 절박한 도움 요청을 당시에 냉정하게 거절했던 베이징주재 한국 …
Source: www.dailynk.com
Date Published: 3/7/2021
View: 7531
외교부 ‘대사관녀’ 파문 확산에 당혹 : 사회일반 – 한겨레
1998년 탈북해 귀국했던 국군포로 장무환씨의 절박한 도움 요청을 쌀쌀맞게 거절했던 주중 한국대사관 여직원의 태도에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3/30/2022
View: 124
(국군포로) 장무환 : 50일간의 북한 탈출기 [비디오녹화자료]
서명/저자사항, (국군포로) 장무환 [비디오녹화자료] : 50일간의 북한 탈출기 / SBS 제작 ; 정희선 글·구성 ; 박종성 연출. 개인저자, 박종성
Source: wlib.yonsei.ac.kr
Date Published: 8/8/2021
View: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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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국군 포로 장무환
- Author: SBS NOW / SBS 공식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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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5.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BiDOBvqEUwo
“나 국군포로인데…” 그들은 왜 유령이 됐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남북에서 외면받은 존재 ‘국군포로’
▲ 1998년 중국으로 탈출해 취재진과 만난 뒤 가족들에게 생존 사실을 알리는 국군포로 故 장무환씨. SBS 영상 캡처
▲ 45년만에 북한에서 탈출해 귀환한 국군포로 장무환씨가 29일 강원도 철원군 백골부대에서 면역신고를 하고 있다. 1998.10.29 연합뉴스
▲ 6·25 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됐다가 송환되는 국군포로들을 미군이 만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 노역을 했던 한모(가운데)씨와 사단법인 물망초 등 소송대리인 및 관계자들이 7일 오후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0.7.7 연합뉴스
1998년 한 방송에서 보도돼 큰 파문을 일으켰던 ‘대사관 직원 전화 사건’입니다. 최근 이 내용이 방송에서 다시 다뤄지면서 국군포로 문제가 여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국군포로는 당시나 지금이나 ‘잊혀진 역사’입니다. 어렵게 탈출해 남한으로 온 극히 일부 인원을 제외하면 남북한 양쪽에서 ‘유령’ 취급을 받았습니다.정부는 1999년 대사관 사건 영향으로 ‘국군포로대우법’을 만들었고, 2006년에는 ‘국군포로송환법’을 제정해 국군포로와 가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군포로의 안전한 송환을 방해할 때 처벌하는 조항이 만들어진 건 불과 10년 전인 2010년입니다.북한은 지금도 국군포로 강제억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한 정상이 여러차례 만났지만, 극히 일부 국군포로 직계가족이 이산가족 행사장에 나왔을 뿐, 포로들은 여전히 북한 국민으로 분류됩니다.국군포로 장무환(1926~2015)씨는 23세에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가 소집 만료로 고향 경북 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뒤엔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됐습니다. 후퇴하는 인민군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엔 국군에 징집됩니다.기구한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3사단에 배치된 그는 정전 협정을 불과 일주일 앞둔 1953년 7월 20일 강원 철원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북한의 ‘적’이었던 장씨는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의 탄광으로 끌려갔습니다.그곳에서 45년을 살다 72세였던 1998년,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의 가족들은 당시 거액인 1만 달러(한화 1129만원)를 밀고를 빌미로 협박하는 중국인에게 주고 중국 국경을 탈출합니다. 또 외교당국의 외면에 천신만고 끝에 여권을 한국에서 만들어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보다 기구한 이런 운명은 왜 만들어졌을까.16일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2020년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1953년 정전 당시 유엔군 사령부가 집계한 국군실종자는 8만 2000명에 이릅니다. 그렇지만 1954년 1월까지 포로교환으로 남한에 돌아온 인원은 8343명에 불과했습니다. 남한은 북한군 7만 5000명을 돌려보냈습니다.북한은 “강제억류한 국군포로는 단 1명도 없다”고 합니다.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은 모두 귀순해 정착했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제네바 협약’은 북한 정권엔 휴짓조각에 불과했습니다.우리 정부는 유족에게 보훈혜택을 주기 위해, 전투 중 행방불명자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사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군 인사법’에 근거해 모든 미귀환 국군포로를 ‘전사자’로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령’이 됐습니다.그러나 조창호 중위(1930~2006)가 1994년 귀환하면서 처음으로 국군포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2019년 기준으로 귀환한 군군 포로는 80명. 이 가운데 56명이 이미 사망했습니다. 북한 인권단체에 따르면 국군포로 대부분이 85세를 넘긴 고령이어서, 현재 생존자는 200명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2011년 이후엔 귀환한 국군포로가 없습니다. 그 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 권력자에 오르면서 국경지역 탈북 경계가 강화됐고, 국군포로들이 연로해지면서 자력으로 국경을 넘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습니다. 국군포로 한만택(1932~2009)씨는 1953년 6월 금화지구 전투에서 실종됐습니다. 그러다 2004년 12월 극적으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 가족을 만나려다 중국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한씨는 북한 평안남도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고 2009년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가족들은 외교부 등 정부가 탈북 계획을 전달받고도 묵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에선 ‘5년’인 민법상 소멸시효가 지나 패소했습니다. 지난해엔 국군포로 한모씨가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에서 2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국군포로 가족들이 분노하는 건 남북의 외면 속에 그들 대부분이 강제노역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국군포로들은 휴전 이후 1954년부터 1956년 사이에 탄광, 농촌, 기업 등에 배치돼 ‘전후복구’라는 명목으로 강제노동을 하게 됩니다.특히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탄광일을 하는 포로가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56년 전후로 집단수용소에서 나온 뒤 ‘공민증’을 받고 사회로 복귀했지만, 출신성분 때문에 억압과 차별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는 남편, 아버지의 출신을 꼭꼭 숨기며 산다고 합니다.그러나 북한이 국군포로 억류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직도 체계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무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외면한 사례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귀환 국군포로에 대한 지원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북관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우리는 늘 그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며, 귀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올해 2월에는 54년간 강제노역을 하다 귀환한 카투사 출신 이기춘(1931~2021)씨가 90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2004년 고령인 73세의 나이로 무려 3번의 시도 끝에 북한을 탈출했다고 합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70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 글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조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정현용 기자 [email protected]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SBS
장무환
국군포로와 대사관녀 사건
2006년 대사관녀 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8년 전인 1998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해 국군포로 장무환이 탈북해서 송환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온 것입니다.
이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잊었던 국군 포로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입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국민을 포기하지 않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북한 국군포로 장무환
[생전의 장무환]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 ⓒ SBS전쟁 이후의 포로들은 되돌려 주어야 하고, 또한 되돌려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그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수십 년이나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억류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6.25 때의 국군 포로가 바로 그들입니다.
국군 포로 중 한국으로 살아 돌아온 수는 극히 적고, 그 과정도 매우 험난합니다. 그중에서, 45년이나 북한에 억류되어 모진 고생을 하다가 탈출한 ‘장무환’ 사건은 “대사관녀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금화전투(금성전투) 위치 지도] 국군포로 탈출, 탈북 –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 kakao.com한국전쟁(6.25 전쟁) 당시 장무환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휴전 협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치열한 막판 전투를 하고 있던 그때, 5개월 된 아기와 아내까지 둔 그는 3사단 22연대에서 복무 중이었습니다.
1953년 7월 13일,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그는 포로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휴전일이 7월 27일이었으니,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입니다. 부상으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거기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국군 포로의 비참한 삶
[포로교환 당시]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 ⓒ 국방부비극의 시작은 남측 포로 귀환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기록으로 볼 때, 당시 한국으로 되돌아온 국군 포로는 8천여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외의 약 6만 명이 북한에 억류되었습니다. 그중 2만 7천여 명은 북한군에 배치 당했습니다.
휴전 협정 자체가 연합군-북한의 체결이었기에, 한국이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전체 교환을 주장하던 북한에 대해, 이승만이 자의적으로 남쪽의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바람에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자 김일성도 되돌려 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북한의 강제 노역] 국군포로 탈출, 탈북 –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 Unknown국군 포로들이 북한군에 배치되었다지만 사실상 강제 군역이었습니다. 제대한 후에는 함경북도 상하탄광, 아오지탄광 등에 보내져서 강제 노역을 당했습니다. 이곳은 인권 유린의 만행이 있는 곳입니다.
허구한 날 갱도가 무너지고 폭발사고가 나다 보니 죽어 나가기 일수였습니다. 증언에 의하면 은퇴 나이인 60살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의 수가 20%나 된다는 곳입니다. 북한은 출신성분 사회이기 때문에 자식들도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평생 괴뢰군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국가에게 버려진 사람들
[사망 처리]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 ⓒ KTV남한에서도 그들은 버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도 어렵다 보니, 그들까지 챙겨 주는 정부는 없었습니다. 끝까지 생포된 자국 국민을 데리고 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한국은 이들을 해방 불명자로 방치했다가 1998년 모두 전사 처리해버렸습니다. 이들의 위패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셔졌으며, 장무환 역시 죽은 사람이 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사망자 조회] 국군포로 탈출, 탈북 –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 KBS한편, 이때 북한의 장무환은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북에서 재혼한 아내가 죽자 1998년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는 경북 울진에 살던 남한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그의 소식에 모두들 놀랐습니다.
공식적으로 귀환할 수는 없는 일이라, 한동안 중국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여기에 SBS 방송사와 연락이 되어, 국군 포로의 탈북과 귀환 과정을 기록으로 담으려던 방송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대사관녀 사건 당시 방송]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 ⓒ SBS1998년, 남북한의 정부 모두에게 버려졌던 장무환은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한 후 중국 주재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온 국민이 분노했던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래는 당시 통화내용입니다.
대사관녀: 말씀하세요.
장무환: 난, 국군 포로 장무환인데..
대사관녀: 네.. 그런데요.
장무환: 장무환인데…. 거기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대사관녀: 여보세요. 무슨일로 전화하셨죠?
장무관: 한국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녀: 맞는데요.
장무환: 맞는데, 다른게 아니라 내가 중국에 지금 와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없는가 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녀: (한숨을 내쉬며) 없죠.
장무환: 북한사람인데…. 내가..
대사관녀: 아, 없어요! (전화를 끊는다)
장무환: 국군포론데….
[대사관녀 사건 방송] 국군포로 탈출, 탈북 –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 SBS이 일은 1998년에 방송이 되었으나 그때는 크게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 2006년 특집 방송으로 다시 공개되면서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은 발언 내용입니다. 장무환 국군포로와 대사관녀 사건은 외교부에 대한 비난으로 빗발쳤습니다.
돌아오겠다던 우리 국민에 대해 차가운 냉대를 보내고 냉정하게 전화를 끊은 대사관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 제재가 없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본부에서 파견된 직원이었으며, 2006년 방송 때는 8년이나 지난 후여서 이미 퇴사했다고 합니다.
국군 포로 배상
[국군포로 장무환 방송]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 ⓒ KBS방송국의 도움 속에 장무환은 중국 대련발 대인호편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무려 45년 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북한에 억류되었던 국군포로가 귀환한 것은 1994년 조창호, 1997년 양순용 이후 세 번째였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그해 말, 소속되어 있던 부대에서 면역식을 치렀습니다. 무려 45년 만에 전역식을 하고 군대를 제대한 것입니다. 이후 그는 고향인 경북 울진군 매화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신고센터가 있다] 국군포로 탈출, 탈북 –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 KTV당시 장무환은 그동안 밀린 급여와 정착금 등으로 6400여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45년 3개월의 군대 월급 2백 17만 원과 주거지원비 6천2백만 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수치를 보면 그동안 우리 군대의 남성들이 얼마나 저급의 대우를 받으며 군 생활을 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5년인데 겨우 2백만 원이었으니…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으로 정신을 차린 정부는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여 월급 1억5천만 원과 아파트 및 특별지원금 2억5천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법을 마련했습니다. 이 법은 2020년 6월부터 시행되었습니다.
45년 만에 돌아온 장무환
[북한 탄광] 국군포로 장무환과 대사관녀 사건 – 국군포로 탈북과 송환 문제 / ⓒ voakorea.com장무환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서 70여 명의 국군 포로를 만난 것이 있으며, 이들 가운데 40명은 이미 숨졌고 30명 정도가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행적이 확인되면 국가유공자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기록으로는 1998년 사망 처리되었기 때문에, 기록상 죽은 후 태어난 북한의 가족들은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비극이 계속 비극을 낳을 뿐입니다.
[장무환 별세] 국군포로 탈출, 탈북 – 대사관녀 사건과 장무환 국군 포로 / ⓒ KBS이후 2015년 장무환은 사망했습니다. 생존하여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대사관녀 사건 등 국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한국은 북한에 대해 국군 포로 귀환에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북한은 이승만이 전향 포로를 석방했듯이, 그들도 전향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남겨진 국군포로와 그 가족은 괴뢰군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현대판 신분 제도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으니 한탄스러운 일입니다. 아직도 500명 정도는 살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도 알아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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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외면한 ‘대사관女’ 사건에 외교부 사과
22일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지난 1998년 탈북해 입국한 국군포로 장무환 씨의 절박한 도움 요청을 당시에 냉정하게 거절했던 베이징주재 한국 대사관의 한 여직원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급속도록 확산되고 있다.
이날 인터넷 검색 사이트엔 ‘대사관녀(女)’에 대한 검색 순위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고,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를 비판하는 글들이 700여건 넘게 올라와 있는 실정이다.
외교통상부는 ‘대사관녀(女)’ 파문에 대해 98년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22일 밝혔다.
2000년에도 납북자 이재근 씨가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피신해 주중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지만, 대사관 직원이 “당신 세금 낸 적 있어”라며 “국가에 부담을 주지 말라”고 쌀쌀맞게 전화를 끊어 파문이 일기도 했었다.
동영상포털사이트인 엠엔캐스트(mncast.com)에는 지난 20일 ‘대사관녀 동영상’이 올라온 뒤 22일 오후 5시 현재 무려 39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관련 동영상 보러가기)
국군포로 출신 장 씨는 함북 아오지탄광 등에서 생활하다가 지난 1998년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체류하다 같은해 9월30일 45년만에 방송국의 도움으로 귀환했다.
8년이나 지난 이 사건의 발단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지난 18일 600회 특집 ‘진실과 희망 찾기, 그 15년간의 기록’을 통해 지난 1998년 10월18일 방송된 ‘국군포로 장무환-50일간의 북한탈출기’편을 다시 내보낸 것.
98년 방영된 장 씨와 대사관 여직원의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사관:말씀하세요
장무환:난,국군포로 장무환인데.
대사관:네 그런데요
장무환:장무환인데..거기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다른게 아니라
대사관:여보세요,무슨일로 전화하셨죠,
장무환:한국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맞는데요
장무환:맞는데…다른게 아니라…내가 OO에 지금 와 있는데..좀 도와줄 수 없는가. 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짜증나는 목소리로) 없죠
장무환:북한사람인데..내가
대사관:아 없어요(전화를 끊는다)
장무환:국군포론데…
이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몰려가 ‘대사관녀’ 문책과 외교통상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항의글로 가득 채웠다.
김성우 씨는 자유게시판에 “나라가 필요할때는 불러서 써먹고는 이제와서 도와줄 수 없다니 이런 나라도 나라인가”라고 탄식하며, “당신들이 지금 저 전화받으면서 편하게 살수있는게 누구의 덕분인데, 어떻게 이런짓을 할수있느냐”고 성토했다.
이소영 씨는 또 “대사관녀사건을 비롯해 정말 이 나라가 부끄럽다. 왜 이런 사건을 매일매일 들어야 하는지 정말 부끄럽다”면서 “이제 제발 정신들 좀 차리자. 국민들 세금으로 월급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나? 외교부가 누굴위해 존재하는지, 누굴위해 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충고했다.
이건호 씨는 “무심결에 접하게된 소식 분하고 답답할 따름”이라면서도 “대체 어떤 바쁜일이 있어서 그토록 절박한 구원의 외침을 무시할 수 있었는지 외교부는 그당시 여직원이 직접 당시의 상황을 국민앞에 설명 할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외교부측은 이날 오전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8년 전 일어난 사건이라 진상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네티즌들의 글이 올라온 것에 관심을 갖고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주중대사관에도 경위를 파악하도록 했다”며 “문제의 여직원은 정식직원이 아닌 현지 고용인이며 이미 대사관에서 퇴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위를 더 파악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연유야 어떻게 됐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께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정부는 98년 그 사건이 일어난 뒤 국군포로 송환문제의 정책과 시스템에 대한 검토작업을 본격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국군포로 문제는 이 문제 이후 외교공관 업무에서 최우선 순위를 두고 다뤄야 한다는 방침이고, 98년 11월 국군 포로 업무처리 규정을 관계부처에서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대사관녀’ 파문 확산에 당혹
“8년 전 일인데..”- ‘늑장대처’ 비난도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 “부끄럽고 죄송”
외교부가 느닷없이 터져나온 ‘대사관녀(女)’ 파문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사태는 모 방송국이 1998년 10월18일 방송된 `국군포로 장무환 북한 탈출기’와 관련된 내용을 최근 다시 방송하면서 시작됐다.
1998년 탈북해 귀국했던 국군포로 장무환씨의 절박한 도움 요청을 쌀쌀맞게 거절했던 주중 한국대사관 여직원의 태도에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분노한 네티즌들이 각종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 문제의 화면을 퍼 나르면서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방송에서 장씨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국군포로’라고 밝힌 뒤 “좀 도와줄 수 없는 가 해서..”라며 도움을 요청하자 대사관 여직원은 “아, 없어요”라며 퉁명스럽게 답한 뒤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에 대해 각종 포털사이트들은 이른바 ‘대사관녀’ 동영상과 대화록을 올려놓았고 네티즌들은 해당 여직원을 비난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외교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외교부측은 22일 오전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8년 전 일어난 일이어서인지 진상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관계자는 “네티즌들의 글이 올라온 것에 관심을 갖고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주중대사관에도 경위를 파악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문제의 여직원은 본부에서 파견된 고용인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당시만 해도 납북포로문제가 이슈화되기 전이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 여직원은 주중 대사관에 근무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또 당시 사건이 발생한 후 해당 여직원에게 취해진 조치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납북포로문제가 국민의 관심을 끄는 등 현안이 된 이후에는 대사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교육을 시켜 현재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군 포로 송환 문제에 대한 정책 및 시스템 차원의 검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관련 업무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국군포로의 송환 작업을 추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공관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하기까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외교부의 처사에 많은 사람들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반기문(潘基文) 장관 퇴임 이후 장관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외교부 직원들의 분위기 이완현상이 느슨한 대응을 야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아시아태평양국 명의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공식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싣고 “매우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국군포로들이 앞으로도 안전하게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서동희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국군포로) 장무환 : 50일간의 북한 탈출기 [비디오녹화자료]
[한글]반평생을 북한에 억류된 채 살아야 했던 72세의 국군포로. 그의 목숨을 건 북한 탈출과 제3국에서 이루어진 45년 만의 가족 상봉, 그리고 포로 신분을 대물림 받는 국군 포로 2세들의 비참한 삶을 취재한다.
[영문]
지난 9월 귀환 한 장무환 일병, 45년만의 제대
@45년만의 제대
6.25때 포로가 되어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북한을 탈출해서 지난 9월 귀환 한 장무환 일병이 오늘 소속 부대에서 전역을 했습니다. 입대 45년만의 일입니다.
김정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김정환 기자 :
45년만의 전역 신고라는 노병의 목소리는 감개무량합니다.
“장병 장무환은 1998년 7월 20일로 면역을 명받았습니다.”
장무환 일병이 전선에 뛰어든 것은 막판 전투가 치열하던 지난 1953년, 집에는 태어난 지 5개월도 안된 외아들과 아내를 남겨 놨습니다. 그해 7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된 장 씨는 함경북도의 상하탄광 등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 장무환 씨 :
환자들도 많이 나지 …많이 있습니다. 간질이 있고 말 할 수 없지요.
⊙ 김정환 기자 :
장 씨는 지난 7월 제3국으로 탈출해 아내와 아들을 만난 뒤 9월 30일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면역식을 마친 장 씨에게는 이제까지 밀린 급여와 정착금 등 모두 6,400여 만원이 다음달 지원됩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국군포로 대우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하면 추가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국군포로 대우법은 지난해말 귀환한 양순영 씨가 일반 탈북자와 동등한 대우를 한데 이의를 제기하고 지원금을 반납함에 따라 마련됐습니다. 이 법안은 최고 2억 5천 만원까지 특별지원금과 보험연금을 주고 등급에 따라 집과 정착금 간호수당도 줍니다. 국방부는 국군포로 대우법을 시행일로부터 5년 전까지 소급 적용해 이미 귀환한 정창호 씨와 양순영 씨도 대상이 되도록했습니다.
KBS 뉴스, 김정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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