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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3
고린도후서 13. … 제 13 장 …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어떤 사본에, 그와 함께 약하나.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0/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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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성경 고린도후서 13장
13:1 <마지막 경고> 이번에 가면 세 번째 여러분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은 두 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증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13:2 내가 두 번째 …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3/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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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수) “고린도후서 13:1-13” / 작성: 김광욱
본문 고린도후서 13:1-13 찬송가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고린도후서 13장은 서신의 마지막장으로써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권면과 끝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0/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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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고 축복하는 이유 I 고린도후서 13장 1-13절 I 매일 …
끝까지 사랑하고 축복하는 이유 I 고린도후서 13장 1-13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by Inch_J 2020. 10. 12. 썸네일-하늘을-향해-손을-뻗은-사람.
Source: dbspbs.tistory.com
Date Published: 9/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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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 고린도후서 13장 주석과 개요
목차. 고후 13:1-4, 교회를 위한 경고. 경고란 언제든지 올바르고 참되게 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릇 행하며 정도에서 떠난 사람들을 …
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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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 구원 관련 – CCM악보
성경 구절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 구원 관련. 스마트청년 2020. 4. 23. 06:23. † 성경 구절 : 구원 †. 늘 우리에게 성경 말씀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Source: ccmakbo.tistory.com
Date Published: 9/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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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3장 11-13절 – Daum 블로그
고린도후서13장 11-13절 …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참된 크리스천이란 어떤 모습일까? 본문에서 바울은 몇 가지를 말한다. 기뻐하라. 온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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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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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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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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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3
권면과 끝 인사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1)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쉬운성경 고린도후서 13장
13:1 <마지막 경고> 이번에 가면 세 번째 여러분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은 두 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증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13:2 내가 두 번째 방문했을 때에 말했던 것처럼 지금 떠나 있는 동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에 죄를 지은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경고하는데, 내가 이번에 가면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13:3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대할 때 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 안에서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13:4 그리스도께서는 약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십니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연약하지만, 여러분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입니다.
13:5 여러분은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하고 자신을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이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시험에서 불합격한 사람들입니다.
13:6 나는 우리가 불합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 주기를 바랍니다.
13:7 우리는 여러분이 악한 일을 행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는 우리가 시험에서 합격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비록 우리가 시험에 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이 옳은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3: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일합니다.
13:9 우리가 연약해도 여러분이 강하면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온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13:10 내가 여러분을 떠나 있을 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즉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일을 처리할 때, 주님께서 내게 주신 권세를 가지고 여러분을 엄하게 다루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이 권세는 여러분에게 덕을 세우라고 주신 것이지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13:11 <마지막 인사> 성도 여러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십시오. 서로 위로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 화목하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13: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십시오. 모든 성도들이 여러분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13: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016/01/27(수) “고린도후서 13:1-13” / 작성: 김광욱
본문 고린도후서 13:1-13
찬송가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고린도후서 13장은 서신의 마지막장으로써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권면과 끝인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권면에는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끝인사의 일반적인 권면과는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가 고린도전서를 포함한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이때까지 최근 새벽묵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의 대부분의 다른 서신들이 교리나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인적 경험과 신앙적 체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통해 고린도교회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강조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1절, 2절입니다.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첫 번째 방문(A.D.51년경)한 것은 사도행전 18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였습니다. 고린도는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지로써 같은 아가야 지방에 속한 아덴(그리스 아테네)의 다음 행선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천막을 만드는 생업이 같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에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집안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 고린도교회가 태동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고 약 2~3년 후에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터키 서부)에서 고린도교회 내 발생한 타락상과 교회의 제반적인 문제점들의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한 권고와 가르침의 목적으로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였습니다(A.D. 54~55년경). 그런데 고린도교회 내 발생한 문제점들 중 거짓교사와 그로 인해 야기된 고린도교회의 혼란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미리 알고 있었기에 고린도전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한 서신을 보냈었습니다(고전5:9). 그리고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에도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자 사도 바울은 두 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했던 사실을 오늘 본문 1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제2차 고린도 방문의 시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이후의 어느 한 때이면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기 이전의 한 시점에 해당됩니다. (참고로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전서 기록 약1~2년 후에 마게도냐의 어느 장소에서 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단호함을 보게 됩니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게 되면 증인을 세워 거짓을 말했던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2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의 이러한 의지를 연속적으로 보게 됩니다. 고린도에 가게 되면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단호한 의지는 다른 서신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죄인들의 잘못을 증인들을 세워 확증할 것이고 그리고 죄가 확증되면 죄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사랑이 결여된 것처럼 보여질 수 있는데 무엇이 사도 바울을 이토록 단호하게 만들었겠습니까? 그 이유를 3절 상반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여기서 ‘이는’은 ‘왜냐하면’을 의미하는 접속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죄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바울 자신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요구하기’때문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고린도교회 내 일부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에 대한 의심을 강하게 표출했기 때문입니다. 2절처럼 요구하는 자들은 일부 거짓을 말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너희가 구함이니’라는 2인칭 복수대명사의 표현으로 보아 거짓을 말하는 자들에 의해 선동을 당한 고린도교회 교인 대다수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바울의 사도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자 바울에게 당신이 사도라면 스스로를 증명해 보라는 식의 요구를 했던 것입니다. 증명하는 방법은 ‘예수님이 바울 당신 안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요구를 듣고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었으며, 나긋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오죽하면 다른 서신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자기 자랑을 하였겠습니까? 11장에 고린도 교회를 섬겼을 때 봉급을 받지 않았던 것과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죽을 고비를 겪었던 것, 그리고 12장에 신비적인 체험인 환상과 계시를 본 것입니다. 주님의 환상과 계시에 관해서는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갔던 것에 대해 14년 전이라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도 바울의 자랑이 아니라 자신이 주님의 사도임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의심을 잠재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자신이 사도임을 의심하게 하여 교회에 분란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은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라는 것(3-4절), 둘째는 믿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것(5절), 셋째는 선을 행하게 하는 것(5절)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으며 강한 자, 믿음 안에 있는 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며 살아가는 자, 그리고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여야 하는 자임을 기억하며,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능하신 손을 신뢰하고 여호와의 짧지 않는 손이 나를 붙잡고 있음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3장 서두는 사도 바울이 10장부터 12장까지 자신이 사도임을 피력했던 것을 마무리하면서 거짓 선동자들에 대한 불용(不容)의 단호함을 보여준 것으로써 사도 바울을 오해하여 무자비한 사람으로 몰아가서는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단호함은 단지 거짓선동자들이 돌이킬 것에 대한 사랑의 애절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제 새벽기도회에서 언급된 바울의 사도표지 중 하나가 ‘모든 참음’이었습니다. ‘모든 참음’의 사도의 표지가 나타나는 바울의 이러한 마음은 애절한 사랑의 표현으로써 13장 후반부 여러 곳에서도 나타납니다. 7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9절에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절에는 사도 바울이 엄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3절에는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축복기도를 할 때 인용하는 성경구절로써 사도 바울이 문제도 많고 탈도 많고 심지어 자신의 사도권을 반박했던 고린도교회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근원이 되지 않도록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는 삶을 오늘도 능하신 여호와의 손을 의지하여 현재진행형의 믿음 생활을 구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와 인격을 문제 삼는 사람이 있다면 사도 바울의 마음으로 그가 온전한 자가 되기를 바라는 애절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 십자가의 신비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아닌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일이 교회 내 헌신자들을 대하는 나의 입장이 아닌지 반성하게 하시어 언제나 온전한 자로서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고 확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울러 나의 존재와 인격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온전하게 되는 것을 바라고 축복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며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믿는 자들 위에 영원히 함께 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세 번째 방문하려고 했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2.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3.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때 나 자신은 나의 존재나 인격을 변호할 때 사도 바울과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4.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한다는 것을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또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호와의 짧지 않으신 손을 의지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봅시다.
5. 내가 버림을 받은 자 같을지라도 나의 존재와 인격을 무시했던 자에게 선한 존재와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축복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자가 되기 위해서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끝까지 사랑하고 축복하는 이유 I 고린도후서 13장 1-13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제목: 끝까지 사랑하고 축복하는 이유
본문: 고린도후서 13:1-13
<본문>
<권면과 끝 인사>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해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엄중하게 권면합니다. 바울 사도는 처음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뒤,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바울 사도가 지적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치와 고통을 당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편지와 함께 동역자들을 직접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 번 권면했고,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거짓 교사들을 징계하고 교회 안의 문제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주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세 번째로 고린도교회에 방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직접 고린도교회에 방문했을 때 여전히 사도의 권위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그들의 죄에 대해 두세 증인의 증언을 확보할 것입니다(고후 13:1).
(신 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마 18:15-16)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바울 사도는 더 이상 두 번째 방문했을 때와 같이 대적들과 그들을 방관하고 동조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의 권위를 의심하고 그리스도께서 바울 사도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히 전하는지가 아닌, 연설 능력과 외적인 조건들로 바울 사도를 판단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방문하게 된다면 고린도교회는 결코 약하지 않고 강력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시고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살아계십니다. 마찬가지도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서 죄인을 권고하고 징계하고 돌이키게 하는 권능으로 고린도교회를 대할 것입니다(고후 13:2-3).
고린도교회는 외모와 연설 능력, 유명인의 추천사나 영적 체험과 같은 조건으로 바울 사도를 시험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 안에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확증해야 했습니다. 만약 고린도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안에 계신 것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섬긴 모든 일들이 의미 없는 일이 되는 것이며 바울 사도는 실패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확신 있는 믿음을 세워, 바울 사도가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고린도교회로 하여금 지금까지 행하던 악행을 중단하고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구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진리를 거스르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복음을 위해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권위와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약해질지라도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한 교회로 온전하게 세워진다면 그것을 기뻐하고 간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직접 고린도교회를 대면하지 않고 떠나 있을 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주신 사도의 권위로 엄하게 그들을 심판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고후 13:4-9).
바울 사도는 마지막으로 고린도교회의 형제들에게 짧은 권면의 말을 전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먼저 “기뻐하라.”는 인사는 편지를 맺는 인사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권면을 귀담아듣고 마음을 같이 하여 서로의 행동을 바로잡아 교회를 온전히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고린도교회와 함께 계시기를 축복하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지역의 모든 성도들의 문안도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계시기를 축복하면서, 죄로 인해 갈등하고 분열되어 있던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하나 되고 성령의 역사로 참된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고후 13:10-13).
<메시지>
바울 사도의 편지에는 갈등, 분노, 안타까움, 두려움, 신뢰, 슬픔과 같은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권면하기도 했다가 위로하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했다가 강력하게 경고하기도 합니다.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부득이하게 자랑하기도 하고, 엄중한 심판을 결심하면서도 그 심판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토록 고린도교회를 향해 간절한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지역으로 가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섬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 가운데에서도 아무 후원이나 대가를 받지 않으면서 그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쳐 헌신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고 그의 권위를 의심하고 불순종한 고린도교회를 위해 많은 동역자들과 편지를 보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그들에게 헌신해야 할 의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간절함으로 기꺼이 이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바울 사도를 위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창조주이자 주님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불순종한 죄인으로 태어나 그리스도께서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이해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복음의 영광과 능력을 알기에, 바울 사도는 모든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고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믿음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더 분명하고 풍성하게 알고 확신할 뿐 아니라, 그 복음을 위해 삶을 던지고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섬기고 세우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성경 : 고린도후서 13장 주석과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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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목차
고후 13:1-4, 교회를 위한 경고
경고란 언제든지 올바르고 참되게 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릇 행하며 정도에서 떠난 사람들을 전제로 한다. 성경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경고의 말씀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가 올바른 길을 저버린 사람들에게 향한 메시지였다. 따라서 주님의 경고하심을 받은 교회나 성도들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올바른 길로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본문은 바울이 교회를 위해 경고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세 번째 방문 계획을 밝힘.
언제나 그랬듯이 바울의 방문 목적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저들을 격려하여 악한 세상 가운데서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 하나님의 상급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는 항상 선한 목적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했던 것이다. 그의 여행은 언제든지 관광을 위함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굳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처신하도록 함이 유익하다.
죄지은 자들에 대해 경고함.
죄는 개인적으로도 두려운 것이지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므로 바울은 그들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죄에 대해 철두철미했던 바울의 신앙을 잘 반영해 준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죄를 가까이해서는 안되며, 죄를 수용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바울의 삶과 사역의 뿌리.
바울의 삶과 사역의 뿌리는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께 근거된 삶과 사역이 위대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을 던질 수 있다
고후 13:5-10, 자신을 시험하라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는 일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성경은 “그런 즉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고 경고한다. 자기를 살피되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여러 사람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정비 불량으로 인해 전복이 되는 불상사가 빚어지듯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을 초래하게 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한다. 자기 점검의 소홀은 예기치 못한 불행을 불러들인다.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고 말한다(5).
믿음에 대한 점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계신지”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다. 누구를 무론하고 그분이 내 안에 계시지 않다면 그는 버리운 자임을 명심해야 한다(갈 2:20). 믿음이란 단순히 종교적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생명 적이고 인격적인 연합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내 안에 사시는 그분을 확인하고 고백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을 행하는가 시험하라고 말한다(7).
성도는 선을 행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마땅히 선행을 힘쓰도록 해야 한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악에는 보상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자기를 살펴서 악행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주님께로부터 우리의 삶에 칭찬이 따르는 법이다.
온전케 되었는지 시험하라고 말한다(9).
자기 직무에 온전히 충실하고 있는지, 말씀을 비롯한 경건 훈련에 온전히 임하고 있는지, 성령을 좇아서 행하며 주어진 모든 봉사에 충실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서 그분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후 13:11-13, 교회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운 경관, 아름다운 꽃들,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예술품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추한 사람보다는 아름다운 사람이 좋은 법이다. 물론 인간의 아름다움은 외형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더 중요시된다. 즉 훌륭한 성품과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교회도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 보기에도 좋고 사람들이 동경한다. 교회의 아름다움도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의 아름다움이다. 본문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증거한다.
신령한 조화가 교회의 아름다움이다.
기뻐함과 온전케 됨, 위로, 마음의 일치, 평화 등은 교회가 지녀야 할 내용이며, 이러한 신령한 조화가 유지될 때 교회는 아름답다. 편당이 생기고 시기와 분쟁, 다툼이 끊이지 않는 교회는 추할 뿐 아니라 덕을 세울 수가 없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규모나 크기에 따름이 아니라 내용, 즉 신령한 조화의 유지가 관건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이 교회의 아름다움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재정이 풍부한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아름다운 교회일 수가 없다. 규모나 크기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교회가 참으로 아름답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칭찬을 들은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우리의 교회들이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성도 간의 교제가 교회의 아름다움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보여준 유무상통의 나눔은 교회 밖에서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교회만의 아름다움이다. 이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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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200
11/2/2013(토)
고린도 후서 13장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 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 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 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찌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 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 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 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묵상 11~13절:
“…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참된 크리스천이란 어떤 모습일까?
본문에서 바울은 몇 가지를 말한다.
기뻐하라.
온전하라.
위로하라. 위로를 받으라.
마음을 같이하라.
평안하라.
서로 문안하라.
모든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위의 덕목 중 한 두 가지라도 서로가 인식할 정도로 행해진다면 아마도 좋은 공동체가 될 것이다.
참된 기쁨은 상황과 형편을 뛰어 넘어 오직 주님 한분 만으로 기뻐할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기쁨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상황을 뛰어 넘기란 쉽지 않다. 믿음이 연약한 탓일 것이다.
온전은 늘 나에게 큰 약점이다. 온전이란 단어 앞에 나는 늘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고 싶다.
남을 위로하는 일이 부족한 것은 내 안에 채워짐이 부족하고, 내게 감사가 부족하고, 내게 기쁨이 부족하고, 내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할 때 나의 사랑하는 이웃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줄 알면서도 같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에서 서로 문안하는 것 조차 바로 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정말 바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평안이 없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기 때문에 뭔가 쫓기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자리에서 보면 어떨까?
참으로 낮은 자리에서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스스로 높은 자리에 서고 싶기 때문에 스스로 주님에게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님만 볼 수 있는 그 자리.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는 그 자리.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그 자리.
그리고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참된 종의 기쁨.
오늘은 그런 자리에 서고 싶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고린도 후서 묵상을 마쳤습니다. 기쁨과 평안과 이웃과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문안하고 서로 위로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낮은 자리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통해 기쁨을 얻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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