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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선언서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기미 독립 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 년 3월 1일 3·1 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
Source: ko.wikisource.org
Date Published: 1/13/2021
View: 6976
3·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 ; 이칭: 기미독립선언서 ; 분야: 근대사 ; 유형: 문헌. 성격: 선언서; 편저자: 최남선, 한용운; 제작시기: 1919년; 소장처: 독립기념관 ; 시대 …
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2/10/2021
View: 9906
[전문]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 KBS뉴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
Source: news.kbs.co.kr
Date Published: 10/8/2022
View: 1871
100년 만에 읽는 3.1운동 기미 독립선언서 – 브런치
2019년 3월 1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은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선언서’가 7개 도시에서 낭독된 날입니다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2/26/2022
View: 9453
3·1 독립선언서
3·1 독립선언서 …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
Source: kkum.prkorea.com
Date Published: 7/6/2021
View: 2090
기미 독립선언서 전문 및 해석 (원문, 한글, 영어, 영문)
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 …
Source: iamfreeman.tistory.com
Date Published: 8/2/2021
View: 7859
기미독립선언서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19년 3월 조선민족대표 33인이 공표한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우측면에 ‘宣言書’를 시작으로, 독립의 의지와 당위성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
Source: www.much.go.kr
Date Published: 4/13/2022
View: 4240
대한독립선언서 – 나무위키:대문
1919년 3.1 운동 이전에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서. … 대한독립선언서는 기미독립선언서보다 이전 시기에 작성된 최초의 독립선언서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21/2022
View: 6322
3·1 운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줄여서 기미운동(己未運動)이라고도 부른다.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13/2021
View: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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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이유진 우월한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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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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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기미 독립 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위키백과 문서, 공용 갤러리, 위키데이터 항목. 이 문서의 서지 정보 1919년 3월 1일 3·1 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 3·1 독립 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건의서 형식으로 작성되기로 하였으나, 건의서는 민족 자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선언서를 따로 작성해야 한다는 최린의 주장으로 선언서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최남선 이 초고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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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편집 ]
宣言書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良心의 發露에 基因한 世界改造의 大機運에 順應幷進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함이니 是ㅣ 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ㅣ며 全人類 共存同生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天下何物이던지 此를 沮止抑制치 못 할지니라. 舊時代의 遺物인 侵略主義 强權主義의 犧牲을 作하야 有史以來 累千年에 처음으로 異民族 箝制의 痛苦를 甞한 지 今에 十年을 過한지라 我 生存權의 剝喪됨이 무릇 幾何ㅣ며 心靈上 發展의 障礙됨이 무릇 幾何ㅣ며 民族的 尊榮의 毁損됨이 무릇 幾何ㅣ며 新銳와 獨創으로써 世界文化의 大潮流에 寄與補裨할 機緣을 遺失함이 무릇 幾何ㅣ뇨. 噫라 舊來의 抑鬱을 宣暢하려 하면 時下의 苦痛을 擺脫하려 하면 將來의 脅威를 芟除하려 하면 民族的 良心과 國家的 廉義의 壓縮銷殘을 興奮伸張하려 하면 各個人格의 正當한 發達을 遂하려 하면 可憐한 子弟에게 苦恥的 財產을 遺與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의 永久完全한 慶福을 導迎하려 하면 最大急務가 民族的 獨立을 確實케 함이니 二千萬 各個가 人마다 方寸의 刃을 懷하고人類通性과 時代良心이 正義의 軍과 人道의 干戈로써 護援하는 今日 吾人은 進하야 取하매 何强을 挫치 못하랴 退하야 作하매 何志를 展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 以來 時時種種의 金石盟約을 食하얏다 하야 日本의 無信을 罪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는 講壇에서 政治家는 實際에서 我 祖宗世業을 植民地視하고 我文化民族을 土昧人遇하야 한갓 征服者의 快를 貪할 뿐이오 我의 久遠한 社會基礎와 卓犖한 民族心理를 無視한다 하야 日本의 少義함을 責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를 策勵하기에 急한 吾人은 他의 怨尤를 暇치 못하노라. 現在를 綢繆하기에 急한 吾人은 宿昔의 懲辨을 暇치 못 하노라. 今日 吾人의 所任은 다만 自己의 建設이 有할 뿐이오 決코 他의 破壞에 在치 안이 하도다. 嚴肅한 良心의 命令으로써 自家의 新運命을 開拓함이오 決코 舊怨과 一時的 感情으로써 他를 嫉逐排斥함이 안이로다. 舊思想 舊勢力에 羈縻된 日本 爲政家의 功名的 犧牲이 된 不自然 又 不合理한 錯誤狀態를 改善匡正하야 自然 又 合理한 正經大原으로 歸還케 함이로다. 當初에 民族的 要求로서 出치 안이한 兩國倂合의 結果가 畢竟 姑息的 威壓과 差別的 不平과 統計數字上 虛飾의 下에서 利害相反한 兩 民族間에 永遠히 和同할 수 업는 怨溝를 去益深造하는 今來實積을 觀하라. 勇明果敢으로써 舊誤를 廓正하고 眞正한 理解와 同情에 基本한 友好的 新局面을 打開함이 彼此間 遠禍召福하는 捷徑임을 明知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 含憤蓄怨의 民을 威力으로써 拘束함은 다만 東洋의 永久한 平和를 保障하는 所以가 안일 뿐 안이라 此로 因하야 東洋安危의 主軸인 四億萬 支那人의 日本에 對한 危懼와 猜疑를 갈스록 濃厚케 하야 그 結果로 東洋 全局이 共倒同兦의 悲運을 招致할 것이 明하니 今日 吾人의 朝鮮獨立은 朝鮮人으로 하야금 正當한 生榮을 遂케 하는 同時에 日本으로 하야금 邪路로서 出하야 東洋 支持者인 重責을 全케 하는 것이며 支那로 하야금 夢寐에도 免하지 못하는 不安 恐怖로서 脫出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로 重要한 一部를 삼는 世界平和 人類幸福에 必要한 階段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한 感情上 問題ㅣ리오. 아아 新天地가 眼前에 展開되도다. 威力의 時代가 去하고 道義의 時代가 來하도다. 過去 全世紀에 鍊磨長養된 人道的 精神이 바야흐로 新文明의 曙光을 人類의 歷史에 投射하기 始하도다. 新春이 世界에 來하야 萬物의 回蘇를 催促하는도다. 凍氷寒雪에 呼吸을 閉蟄한 것이 彼一時의 勢ㅣ라 하면 和風暖陽에 氣脈을 振舒함은 此一時의 勢ㅣ니 天地의 復運에 際하고 世界의 變潮를 乘한 吾人은 아모 躊躇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할 것 업도다. 我의 固有한 自由權을 護全하야 生旺의 樂을 飽享할 것이며 我의 自足한 獨創力을 發揮하야 春滿한 大界에 民族的 精華를 結紐할지로다. 吾等이 玆에 奪起하도다 良心이 我와 同存하며 眞理가 我와 幷進하는도다 男女老少 업시 陰鬱한 古巢로서 活潑히 起來하야 萬彙群象으로 더부러 欣快한 復活을 成遂하게 되도다. 千百世 祖靈이 吾等을 陰佑하며 全世界 氣運이 吾等을 外護하나니 着手가 곳 成功이라. 다만 前頭의 光明으로 驀進할 ᄯᅡ름인뎌.
公約三章 一、 今日 吾人의 此擧는 正義、 人道、 生存、 尊榮을 爲하는 民族的 要求ㅣ니 오즉 自由的 精神을 發揮할 것이오 決코 排他的 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一、 最後의 一人ᄭᅡ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一、 一切의 行動은 가장 秩序를 尊重하야 吾人의 主張과 態度로 하야금 어대ᄭᅡ지던지 光明正大하게 하라.
朝鮮建國 四千二百五十二年 三月 一日 朝鮮民族代表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金昌俊, 權東鎭, 權秉悳, 羅龍煥 羅仁協, 梁旬伯, 梁漢默, 劉如大, 李甲成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準承,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吳華英, 鄭春洙, 崔聖模, 崔 麟 韓龍雲, 洪秉箕, 洪其兆
현대어 [ 편집 ]
기미 독립 선언서
선언서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 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이를 널리 밝히며, 민족의 오래도록 변함없을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에 따른 세계 개조의 기회에 따라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인류가 함께 생존하고 같이 살아 나갈 권리의 정당한 움직임이니 하늘 아래 어떠한 것이든 이를 막거나 억누르지 못 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비롯하여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몇 천 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겪은 지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으니 우리 생존권을 빼앗긴 것이 무릇 몇이며, 정신적 발전에 장애가 됨이 무릇 몇이며, 민족적 존엄이 훼손된 것이 무릇 몇이며, 새로움과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기여하고 도움을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몇인가.
아아 슬프도다. 오랜 억울을 드러내려 하면,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 앞날의 위험을 없애려 하면, 억눌려 사그라진 민족적 양심과 국가의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마다 정당한 발달을 이루려 하면, 가엾은 아이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재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의 오래도록 완전한 경사와 복을 이끌어 맞이하게 하려 하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천만 민족이 사람마다 마음 속에 칼을 품고 인류의 공통성과 시대 양심이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주고 도와주는 오늘, 우리들은 나아가 가지매, 아무리 강하다 한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 행동하매 어떠한 뜻도 펼치지 못하랴.
병자수호조규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않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들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처럼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락을 탐할 뿐이오,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 심리를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 하지 않노라. 자기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꾸짖을 겨를이 없노라. 지금을 꼼꼼히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옛일을 죄주고 따질 겨를이 없노라. 오늘 우리가 맡은 바는 다만 자기 건설만 있을 뿐이오,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펼쳐나가는 것이오, 결코 오랜 원한과 잠시 뿐인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우고 미워하여 물리치는 것이 아니로다. 묵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속박된 일본 정치가가 공을 세우기 위해 희생이 된 부자연적이고 불합리한 잘못된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길과 원칙으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애초부터 민족적 요구로써 나오지 않은 두 나라의 합병의 결과가 끝으론 임시방편적인 위협과 차별적 불평, 꾸며진 통계 숫자로 이익과 손해가 서로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감함으로써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기초한 우호적인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서로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임을 분명이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분을 품고 원한을 쌓은 이천만 민족을 위력으로써 억누르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중국인이 가지는 일본에 대한 염려와 의심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모든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 우리의 조선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을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무거운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ㅡ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서도 피하지 못하는 불안, 공포에서 탈출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니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오.
아아, 새로운 시대가 눈 앞에 펼쳐지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과거 전세기에 갈고 닦아온 인류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빛을 인류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세계에 와 만물이 되살아나기를 재촉하는도다. 매서운 추위에 숨을 겨울잠 자듯 쉰 것이 그 시대의 형세라 하면, 따뜻한 바람과 볕에 위세와 명성을 떨치는 것은 이 시대의 형세이니, 천지에 돌아온 운수를 만나고 세계의 변하는 흐름에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이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고유한 자유권을 보전하여 자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며, 우리의 넘쳐나는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상에 민족적 우수성을 맺어나갈지로다. 우리가 이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하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암울한 낡은 옛집에서 활발히 일어나 만물의 현상과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이루게 되도다. 오랜 조상이 우리를 도우며 전세계 기운이 우리를 밖에서 지켜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눈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다.
공약삼장 하나, 오늘 우리의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그에 벗어난 행동을 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히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을 세운지 4252년이 되는 해 3월 초하루,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순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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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
1918년말부터 독립운동의 3대 원칙인 대중화·일원화·비폭력 등을 주장해 온,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최린(崔麟) 등의 천도교 측 중진들은 독립운동의 실천 방법으로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국권반환 요구서 등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거족적인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기독교·불교 등 각 종교 단체 및 유림(儒林)을 망라하는 동시에 저명 인사들을 민족 대표로 내세우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1919년 2월 상순, 대한제국의 고관을 지낸 김윤식(金允植)에게 독립선언서의 서명자가 되어 줄 것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독립청원서를 내는 것은 찬성하지만, 선언서 발표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 밖에 박영효(朴泳孝)을 비롯한 저명한 인사들의 완강한 거부에, 한때 운동을 포기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배일 감정이 절정에 다다르게 되면서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들은 다시 종교 단체와 교섭을 벌였는데, 먼저 기독교 측의 이승훈(李昇薰)을 만나 천도교와 함께 독립운동에 합류할 것이라는 승낙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불교 측과의 교섭은 최린이 담당하여 한용운(韓龍雲)에게 승낙을 얻어냄으로써 불교 측과의 제휴도 이루어졌다. 한용운은 또 유림측의 참가를 교섭했으나 실패하여 유림측의 합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때 독립운동의 실천 방법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천도교 측이 내세웠던 청원서와 선언서를 동시에 발표하자는 의견에 대해 일부에서는 청원서만을 내고 선언서는 발표하지 말자는 의견 대립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최린은 “청원서나 건의서를 내는 것은 일본 정부에게 독립을 시켜달라고 청원한다든지 건의해보는 것이므로 민족 자결의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국내적으로 전민족을 분기시키고, 국외적으로 전세계에 향하여 독립해야 하는 이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중대한 선언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결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로 결정되었다.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최린은 최남선(崔南善)을 추천하였다. 최남선은 독립운동가로서 전국에 이미 알려졌고, 서구적 교양과 재래의 학문을 모두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력도 뛰어난 사람이므로, 최린은 “전민족의 의사를 표시할 독립선언서와 같은 중대한 글을 지을 사람은 그 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한 최남선 스스로 “일생을 학자로 마칠 생각이라 독립운동의 표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언서는 작성하겠다.”고 함으로써 선언서의 작성 문제는 일단 그에게로 낙착되었다.
뒷날 한용운이 독립운동에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선언서를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으나, 이미 선언서의 초고가 완성되어 손질이 끝난 뒤였다. 지금 전하는 독립선언서 끝에 있는 공약 3장(公約三章)은 후에 한용운이 추가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측 15인, 기독교측 16인, 불교측 2인 등 33인이 민족 대표로 서명하였다. 독립선언서의 원고는 오세창(吳世昌)을 통해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普成社) 인쇄소 사장 이종일(李鍾一)에게 전달되었다.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金弘奎)와 함께 2만 1,000매를 인쇄하여 경운동(慶雲洞) 자기 집으로 운반하였다.
선언서는 28일부터 전국 각지로 전달·배포되면서 거족적인 3·1운동의 전개에 있어 결정적인 구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전문]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이슈 3·1운동 100년 [전문]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사회 입력 2019.03.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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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많은 국민이 함께 읽고 3.1운동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취지에서 100년 전에 쓰여진 「3.1독립선언서」를 각계의 감수를 거쳐 현대 말로 풀어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펴냈습니다.
아래는 전문입니다.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을 발달시킬 기회가 가로막힌 아픔이 얼마인가. 민족의 존엄함에 상처받은 아픔 또한 얼마이며,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가.
아,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 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면,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모든 인류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가 싸우면 어떤 강한 적도 꺾을 수 있고, 설령 물러난다 해도 이루려 한다면 어떤 뜻도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 뒤에 갖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일본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민족이 바라지 않았던 조선과 일본의 강제 병합이 만든 결과를 보라. 일본이 우리를 억누르고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따라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이 생겨나고 있다. 과감하게 오랜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또한 울분과 원한에 사무친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니다. 이는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판가름하는 중심인 사억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동양 전체를 함께 망하는 비극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이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동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일본에 땅을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중요한 부분인 동양 평화를 이룰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이 어찌 사소한 감정의 문제인가!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 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세 가지 약속
하나,
오늘 우리의 독립 선언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을 세운 지 4252년 3월 1일(1919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전문]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입력 2019-03-01 15:12:24 사회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많은 국민이 함께 읽고 3.1운동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취지에서 100년 전에 쓰여진 「3.1독립선언서」를 각계의 감수를 거쳐 현대 말로 풀어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펴냈습니다.
아래는 전문입니다.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을 발달시킬 기회가 가로막힌 아픔이 얼마인가. 민족의 존엄함에 상처받은 아픔 또한 얼마이며,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가.
아,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 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면,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모든 인류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가 싸우면 어떤 강한 적도 꺾을 수 있고, 설령 물러난다 해도 이루려 한다면 어떤 뜻도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 뒤에 갖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일본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민족이 바라지 않았던 조선과 일본의 강제 병합이 만든 결과를 보라. 일본이 우리를 억누르고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따라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이 생겨나고 있다. 과감하게 오랜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또한 울분과 원한에 사무친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니다. 이는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판가름하는 중심인 사억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동양 전체를 함께 망하는 비극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이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동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일본에 땅을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중요한 부분인 동양 평화를 이룰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이 어찌 사소한 감정의 문제인가!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 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세 가지 약속
하나,
오늘 우리의 독립 선언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을 세운 지 4252년 3월 1일(1919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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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정보 김지선 기자 [email protected] 김지선 기자의 기사 모음
100년 만에 읽는 3.1운동 기미 독립선언서
2019년 3월 1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은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선언서’가 7개 도시에서 낭독된 날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3.1독립선언서를 읽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한 ‘기미 독립선언서’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 3.1독립선언서 中-
100년 전 3.1 운동 ‘그 날’ 3.1운동 기미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표지
국한문혼용이라 읽기 어려웠던 ‘3.1독립선언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가 나왔습니다. 이미, SNS상에서는 3.1운동 기미 독립선언서 읽기나 필사하기와 함께 3.1절 노래 합창, 만세 재현 등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3.1운동 정신, 서울 교실에서 피어나다
서울시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함께 손잡고 ‘쉽고 바르게 읽는 독립선언서’를 서울 소재 학교에 배포하고, 3.1운동 기념주간 ‘독립선언서 낭독’, ‘내가 쓰는 독립선언서’ 등 특색 있는 학교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400자 원고지 약 8장 분량의 ‘3.1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대한의 독립을 바라며 거리에 울려 퍼졌던 민족대표 33인 한 명 한 명의 이름까지, 100년 전 3.1독립선언서 전문에 녹아있는 그날의 땀과 함성을 오늘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페이지에서 ‘3.1독립선언서’전문을 낭독해보세요.
1919년 3월 1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세계에 대한의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 33인!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마친 많은 순국선열의 피로 쓰여진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 선언서’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얼’을 기리며 3.1 운동 ‘기미 독립선언서’를 낭독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서울시교육청 블로그 ‘서울교육나침반’https://blog.naver.com/seouledu2012/
3·1 독립선언서
3·1 독립선언서
1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2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모아 우리의 독립을 널리 퍼뜨려 알리는 것이고,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는 세계 개조의 큰 뜻을 따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독립을 주창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큰 흐름이며 전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권리를 얻기 위한 정당한 주장이자 활동이므로,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독립을 막지 못할 것이다.
3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오천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오늘로써 십 년을 넘어섰다.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긴 지 몇 년이며, 정신 발전의 장애를 입은 것이 얼마나 크며, 민족적 권위와 명예가 훼손당한 것은 또 얼마나 막심하며, 우리의 지식과 재능, 독창적인 발상으로 인류 문화의 큰 발전에 이바지하고 도울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가.
4
오호라, 예로부터 쌓인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지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면,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위신과 도의가 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진 것을 다시 살리고 키우려면, 저마다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발달시키려면, 불쌍한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우리의 후손들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가장 긴급한 임무가 민족의 독립을 이루는 것이다. 이천만이 모두 마음속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인류 공통의 가치와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얻고자 하면 어떤 강적인들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물러서서 계획을 세우면 어떤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5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이래 수시로 양국 간의 굳은 약속을 저버렸다고 해서 일본의 신의 없음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생활에서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취급하여, 단지 정복자의 즐거움을 누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래고 영원한 사회 기틀과 뛰어난 민족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지 않겠다. 자신을 탓하고 격려하기에 다급한 우리는 남을 원망할 수 없다. 현재를 돌보기에 바쁜 우리는 예로부터의 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다. 오늘 우리가 할일은 오로지 우리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이지 결코 남을 헐뜯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지 절대로 해묵은 원한과 일시적인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공명을 세우고자 했던 일본인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지금의 그릇된 현실을 고치고 바로잡아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지배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양국 병합의 결과가, 근본적인 대책 없는 억압과 차별에서 오는 불평등과 (사회 발전에 대한) 거짓된 통계숫자 때문에 이해가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번 살펴보라. 용감하고 과감하게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친하게 지내는 새 시대를 여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울분과 원한이 겹겹이 쌓인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결코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좌우하는 사억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를 갈수록 깊게 하여,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극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조선 독립을 선포하는 까닭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의 안전을 지켜나갈 무거운 책임을 통감케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속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동양 평화를 실현하여 전 인류의 복지에 반드시 있어야 할 단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졸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6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깎고 다듬어 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찬란한 빛을 인류 역사에 던지기 시작한다.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한다. 찬바람과 꽁꽁 언 얼음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지난 시대의 불길한 기운이었다면, 온화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 다가올 시대의 상서로운 기운이니, 하늘과 땅에 새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때에 세계 변화의 도도한 물결에 올라 탄 우리에게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그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조선 민족의 우수함을 꽃피우리라.
7
그래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니,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할 것이다. 천만년을 이어오는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니,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곧 성공을 이룰 것이다. 오로지 저 앞의 빛을 따라 힘차게 전진할 따름이다.
공약삼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당당하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 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연합뉴스와 함께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3.1독립선언서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시각장애인과 전세계 한국학교 교사와 한인 청소년들에게 독립운동가의 꿈을 홍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이번 영상제작에 목소리 재능기부로 동참한 한글문화연대 대표 정재환님은 1년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의뢰로 100년전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된 3.1독립선언서를 21세기를 살아가는 청소년, 나아가 전세계 한인동포 교사와 한인 차세대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반크는 이번 정재환님이 참여한 3.1독립선언서 동영상을 전세계 한국학교에 전파해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동시에 배우게 하며 특히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홍보되어 100년전 한국의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기쉽게 배울수 있게 될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반크는 오랫동안 한글문화연대 대표로 우리나라 한글운동에 앞장선 정재환님이 ‘3.1독립선언서’ 동영상 낭독에 재능기부로 참여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속 정재환님은 마치 100년전 당시 현장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감동있게 전파했습니다 정재환님은 영상에서 100년전 해외유력 방송국 특파원으로 연기하면서 독립선언서 전문을 낭독합니다. Your Content Goes Here
반크 뉴스 네트워크 Vank News Network(VNN) 한국 특파원 정재환입니다. 긴습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1919년 3월 1일, 한국의 민족 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 원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반만년에 걸쳐 독립을 지켜왔던 한국은 1910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오늘, 한국의 민족 대표 33인은 일제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식을 가졌습니다. 한편, 서울 도심 탑골 공원에서는 남녀노소 5천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향후 2백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막 3.1 독립선언서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읽어 드리겠습니다.
기미 독립선언서 전문 및 해석 (원문, 한글, 영어,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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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 독립선언서 전문 및 해석 (원문, 한글, 영어, 영문)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 3.1운동 당시 국내외에 배포한 독립선언서로 최남선이 기초하였다. 이 선언서에서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와 인류 평등의 대의를 천명하고 있으며, 평화적인 시위 운동을 벌일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조판 인쇄하였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 3·1 독립 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건의서 형식으로 작성되기로 하였으나, 건의서는 민족 자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선언서를 따로 작성해야 한다는 최린의 주장으로 선언서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하였다.
기미 독립 선언서(己未獨立宣言 書 ) (全文)
宣言書(선언서)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차(此)로써 子孫萬代(자손 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杖(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 여일)한 自由發展(자유 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起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 天(천)의 命明(명명)이며, 時代(시대)의 대세(大勢)ㅣ며, 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공존 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지 今(금)에 十年(십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 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 보비)할 機緣(기연)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芟除(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소잔)을 興奮伸張(흥분 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급무)가 民族的(민족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하고, 人類通性(인류 통성)과 時代良心(시대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병자 수호 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 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서, 我 祖宗世業(아 조종 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 文化民族(아 문화 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것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 기초)와 卓落 (탁락)한 民族心理(민족 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 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 (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연), 又 不合理(우 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 상태)를 改善匡正(개선 광정)햐야, 자연(自然), 又(우) 合理(합리)한 正經大原(정경 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한 兩國倂合(양국 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하에 利害相反(이해 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 간)에 永遠(영원)히 和同(화동)할 수 업는 怨溝(원구)를 去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맹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지)할 것 안인가.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하는 所以(소이)가 안일뿐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동양 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를 갈수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國(전국)이 共倒同亡(공도 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 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야금 正當(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야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양)의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야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하는 不安(불안), 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東洋平和(동양 평화)로 重要(눙요)한 一部(일부)를 삼는 世界平和(세계 평화), 人類幸福(인류 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의 問題(문제)ㅣ리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는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래)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 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이 世界(세계)에 來(래)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 도다. 凍氷寒雪(동빙 한설)에 呼吸(호흡)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福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오인)은 아모 廚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 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吾等(오등)이 慈(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群象(만휘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백세) 祖靈(조령)이 吾等(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 着手(착수)가 곳 成功(성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ᄯᅡ름인뎌.
公約三章(공약삼장)
一.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一.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一.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光明正大하게 하라
朝鮮建國四千二百五十二年三月 一日 朝鮮民族代表 (단기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조선 민족 대표 (33인)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선언서
우리는 오늘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합니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진리를 환하게 밝히며, 이를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의 자립과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반만 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하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아 이를 두루 밝히며, 영원한 민족의 자유와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하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하니, 이는 하늘의 명백한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로이기에 세상의 어떤 힘도 이를 막거나 억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의 희생이 되어 유사 이래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고통을 당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광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이겠습니까! 슬픈 일입니다. 오랜 억압과 울분을 떨치고 일어나려면, 현재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땅에 떨어진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체면과 도리를 떨쳐 얻으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안겨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바로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천만 겨레마다 마음속에 칼을 품은 듯 굳게 결심하니, 인류 공통의 성품과 이 시대의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주의라는 창과 방패로 호위하고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싸우니 어느 강도를 꺾지 못하겠습니까! 물러가 일을 꾀하니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겠습니까!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학자들은 강단에서, 통치배들은 실생활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대대로 닦아 온 찬란한 위업을 식민지로 삼아 문화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여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무도함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를 꼼꼼히 준비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뿐이지,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 남을 시샘하여 쫓아내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배들의 부귀공명의 희생이 되어 압제와 수탈에 빠진 이 비참한 상태를 바르게 고쳐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공정하고 인간다운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민족의 요구에서 나온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침략·강점이었으므로, 그 결과는 마침내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실정을 보십시오! 용감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과거의 잘못을 뜯어 고치고, 참된 이해와 선린을 바탕으로 우호적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서로 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인 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원한과 분노에 쌓인 이천만 민족을 폭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오직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가 갈수록 두터워진 결과,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이 될 것이 분명하니, 오늘 우리 한국의 독립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의 선진 후원국으로서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악몽처럼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한 동양의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에 필수적인 받침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겠습니까!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무력의 시대가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과거 한 세기 동안 갈고 닦으며 키우고 기른 인도주의 정신이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의 밝은 빛을 온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새 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통을 막아 꼼짝 못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 때의 형세라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본래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키고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맘껏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문화를 찬란히 꽃피우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떨쳐 일어났습니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분연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억만대의 조상님들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로운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호위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입니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입니다.
공약삼장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맙시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흔쾌히 발표합시다.
모든 행동은 질서를 가장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합시다.
단기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순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에 발행한 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 영어 번역본 (The March First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e hereby declare that Korea is an independent state and that Koreans are a self-governing people. We proclaim this fact to all nations to reaffirm the great truth that all humans are equal, so that our descendants may forever enjoy their rights to live as an autonomous people.
This declaration of ours is propelled by the strength of our five thousand years of history and the shared will of twenty million Koreans. It is made so that our nation may thrive in perpetuity and be in step with the larger trend of global evolution that is being shaped by the conscience of humanity. This is the will of heaven and the spirit of our time, and it springs from the rights all humans deserve. Nothing in the world shall stand in the way of our independence.
It has been a decade since our nation was, for the first time in its millennia of existence, subjected to the ignominy of oppression by another people, having fallen victim to relics of a bygone era in the form of aggression and authoritarianism. The pain of being dispossessed of the right to lead our own lives is unfathomable, as is the sorrow of seeing every opportunity to foster our spirit wrenched from us. How deep are the wounds to our dignity, and how we lost our chance to contribute to the culture of this world through our new technology and creativity!
To relieve ourselves from being wronged thus far, to break free from our current misery, to forestall threats to come, to restore our stifled conscience and the nation’s justice, to allow all to develop their own characters, and to hand down to our poor children perfect happiness instead of bitterness and shame, our foremost priority is to secure the independence of our nation.
Today, our twenty million people have steeled themselves in their resolve. The conscience of mankind and of our time fortifies us with the army of justice and the armaments of humanity. Therefore, we can defeat the mightiest foe if we take a stand and fight, and we can bring anything into being if we take the time to effect our will.
We do not accuse Japan of betrayal for not keeping its promises in the aftermath of the Treaty of 1876. We shall not condemn the Japanese for their lack of respect because its scholars and politicians belittled our heritage as that of a colony, dismissed our culture as barbaric, and disrespected our long-established society and our good nature.
We are too focused on upbraiding ourselves to point the finger at others. We are too occupied with righting wrongs of the present and not the past. The task at hand is to build ourselves up, not to tear others down. We are compelled by our conscience to create our destiny anew, not by envy to drive out others to indulge a long-standing resentment or a moment’s whim. We simply wish to set right this unjustified reality, in which we were sacrificed for the ambition of Japanese politicians for their outdated ideas and outdated forces, and to restore it to a natural and rational state.
Consider the consequences of our state’s coerced annexation with Japan, which our people never desired. Japan is fomenting irreconcilable resentment between the two nations with disparate interests through oppression, discrimination, injustice, and false statistics. Is it not evident that the shortest way to mutual happiness and lack of tragedy is to boldly right the past wrongs and build upon earnest understanding to create a new world of good will!
Peace in the East cannot be brought about by coercively suppressing the deep-rooted frustration and resentment of twenty million Koreans. It will only breed even greater fear and hatred of four hundred million Chinese toward Japan. If this were the case, this will eventually lead to a tragic end of the Eastern world as the Chinese stand at the center of the the regional security. The independence of the Korean nation will make it possible for its people to flourish as they should and allow Japan to renounce its wrongheaded path and take responsibility for its role in the East. It will free China from the anxiety and fear that it may lose its land to Japan and secure a footing for peace in the region, which plays an essential role in world peace and the happiness of all humankind. How can the independence of our nation be dismissed as an emotional and trifling matter?
A new world is opening up before our eyes. The age of oppression by force is giving way to an era where principles reign. Our humane spirit, honed over thousands of years, now signals the dawn of a new civilization in the history of humankind. A new spring is enveloping our whole world, breathing new life into everything under the sun. The times of stifled breath in freezing blizzards are giving way to an age of balmy breezes, glowing light, and new life.
Now, as the way of the world is returning to life, we are at one with the spirit of the age and have no reason to balk or waver. We will defend our innate right to liberty and bask in the joy of the bounty of life. We will give free rein to our naturally abundant creativity to let our great, brilliant culture blossom in the new spring that is warming the world.
That is why we are taking a stand. Our conscience and truth are with us. Men, women, young and old, will all burst out from this dark and antiquated shell to enjoy a new happy life along with all creation.
The souls of our forebears from thousands of years ago live in us and give us strength, while the momentum of the world protects us from without. Our beginning is our success. We are simply marching toward that bright light that beckons ahead of us.
Our Three Pledges
First, our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oday represents the wish of our people to safeguard and advance justice and human principles in their lives. Therefore, we shall only spread the spirit of freedom far and wide and avoid from being exclusive of others.
Second, everyone, down to the last of us, shall represent the voice of our people’s rightful will.
Third, all actions shall be respectful of order to demonstrate our honorable cause and rightful conduct.
On the first day of March, in the four thousand two hundred fifty-second year since the founding of our nation(1919).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people
Sohn Byeonghui Gil Seonju Yi Pilju Baek Yongseong Kim Wan-gyu Kim Byeongjo Kim Changjun Gwon Dongjin Gwon Byeongdeok Nah Yonghwan Nah Inhyeop Yang Jeonbaek Yang Hanmuk Yu Yeodae Yi Gapseong Yi Myeongnyong Yi Seunghun Yi Jonghun Yi Jong-il Im Yehwan Bak Junseung Bak Huido Bak Dongwan Sin Hongsik Sin Seokgu Oh Sechang Oh Hwayeong Jeong Chunsu Choe Seongmo Choe Rin Han Yong-un Hong Byeonggi Hong Gijo
출처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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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 선언의 내용과 그 취지▶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 吾等(오등) : 우리들(1인칭 복수)
* 玆(자)에 : 이에, 이 시점에서.
* 朝鮮(조선)의 : ‘의’는 의미상 주격조사의 역할.
* 此(차)로써 : 이것으로써, 즉 선언함으로써.
* 告(고)하야 : 알리다 cf. 誥(고)하야 : 깨우쳐 알려주어
* 大義(대의) : 큰 원칙, 큰 도리.
* 克明(극명) : 속속들이 밝힘(=闡明(천명))
* 正權(정권) : 정당한 권리(발음 주의할 것)
* 永有(영유) : 영원히 소유하게 함.
* 주제 : 朝鮮의(이) 獨立國임과 朝鮮의(이) 自主民임을 선언함(독립선언서 전체의 주제문)
* 독립 선언의 내용 : ① 조선이 독립국임 ② 조선인이 자주민임
* 독립 선언의 취지 : ① 대외적(인류 평등의 대의 극명) ② 대내적(민족 자존의 정권 영유)
* 핵심어 : 독립국, 자주민.
[ 2 ]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 ㉠ 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공존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 ▶ 선언의 배경과 그 정당성▶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 仗(장)하야 : 의지하여
* 誠忠(성충) : 충성
* 佈明(포명) : 널리 펴서 알림
* 恒久如一(항구여일) : 오래오래 한결 같음
* 順應幷進(순응병진) : 응하여 함께 나아감
* 明命(명명) : 밝은 (하늘의) 명령
* 天下何物(천하하물) : 천하의 어떤 것(존재), 곧, 일본.
* 沮止抑制(저지억제) : 저지하거나 억제함
* 주제 : 독립선언의 배경(背景)과 정당성(正當性) 및 신념(信念)
* 독립 선언의 배경 :
㉠ 반만년 歷史의 權威 ———— 宣言
㉡ 이천만 民衆의 誠忠 ———— 佈明
㉢ 민족의 恒久如一한 자유발전 —— 主張
㉣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 —- 提起
* 독립 선언의 정당성
㉠ 天의 明命
㉡ 時代의 大勢
㉢ 全人類 共存同生權의 발동
* 신 념 : 天下何物도 沮止抑制치 못함
* 핵심어 : 천의 명명, 시대의 대세, 정당한 발동
[ 3 ]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지 처음으로 ㉡ 十年(십년) 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機緣(기연)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 일제 감점으로 인한 민족적 피해▶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이 되어, (우리나라의) 역사가 생긴 지 몇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 희생이 되어(시험에 가끔 출제되는 부분임)
* 有史以來(유사이래) :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 :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에서 받은 구속으로 인한 설움, 괴로움
* 嘗(상) : (괴로움을)맛보다
* 過(과)한지라 : 넘은지라
* 剝喪(박상) : 벗겨져 없어짐. 빼앗겨 잃음
* 幾何(기하) : 얼마, 어느 정도
* 大潮流(대조류) : 큰 흐름
* 寄與補裨(기여보비) : 이바지하고 도움
* 機緣(기연) : 기회와 인연
* 遺失(유실) : 잃어버림
* 주제 : 일제에 강점된 지 10년 동안 우리 겨레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 핵심어 : 이민족 겸제의 통고
* 피해의 원인 :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이 됨.
* 被害內容 ㉠ 생존권의 剝喪
㉡ 심령상 發展의 障碍
㉢ 민족적 존영의 毁損
㉣ 세계문화에 寄與補裨할 기연 유실
[ 4 ] ㉢ 噫(희)라 ,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 芟除(삼제) 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소잔)을 興奮伸張(흥분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의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 을 遺與(유여)치 안이하여 하면, 子子孫孫(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급무)가 民族的(민족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하고, 人類通性(인류통성)과 時代良心(시대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 干戈(간과) 로써 護援(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 독립 쟁취의 필요성과 신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고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 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꺽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 噫(희)라 : 탄식하도다. 슬프다
* 宣暢(선창) : 드높여 널리 알림
* 擺脫(파탈) : 버리어 벗어남
* 芟除(삼제) : (풀을 베어내듯) 베어 내어 없앰
* 廉義(염의) : 체면과 도리, 의리
* 壓縮銷殘(압축소잔) : 줄어서 오그라들고 없어져 버림
* 興奮伸張(흥분신장) : 분기하는 마음을 떨쳐 널리 폄
* 遂(수)하려 : 이루려, 이룩하려
*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 : 괴롭고 부끄러운 재산, 곧 식민지 현실(은유법)
* 慶福(경복) : 경사스런 일과 복된 일
* 導迎(도영) : 이끌어 맞아들임
* 最大急務(최대급무) : 가장 급히 힘써야 할 것.
* 方寸(방촌)의 刃(인) : 사방 한치 되는 칼날, 마음 속의 굳은 결의[은유법]
* 懷(회) : 품다
* 人類通性(인류통성) : 인류의 공통적인 심성
* 人道(인도)의 干戈(간과) : ‘인도주의’라는 무기 [은유법]
* 護援(호원) : 보호하고 지원함
* 何强(하강) : 어떠한 강적, 즉 일제
* 挫(좌)치 : 꺾지, 좌절시키지
* 何志(하지) : 어떠한 뜻, 즉 조선 독립의 뜻.
* 展(전)치 : 펴지
* 주제 : 우리 겨레의 최대 급무는 민족적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 핵심어 : 민족적 독립
* 독립 쟁취의 필요성
㉠ 억울을 선창
㉡ 장래의 협위 삼제
㉢ 양심, 염의의 흥분 신장
㉣ 각개 인격 발달
㉤ 후손에게 식민 상태를 유여치 않음
㉥ 자손의 경복 도영
* 민족 독립의 신념과 여건
㉠ 대내적 : 인마다 방촌의 인을 회함.
㉡ 대외적 : 인류 통성, 시대 양심이 도움
[ 5 ]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서, 我(아) 祖宗世業(조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 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기초)와 卓犖(탁락)한 民族心理(민족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 우리의 자세▶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 時時種種(시시종종) : 때때로 있었던 가지가지
* 金石盟約(금석맹약) : 금석과 같은 굳은 약속 (내정 불간섭, 독립국 인정 등)
* 食(식) : 食言(식언) – 약속을 지키지 않음
* 無信(무신) : 신의가 없음
* 學者(학자) : 일본의 학자들을 가리킴
* 祖宗世業(조종세업) : 조상 대대로 내려온 업적
* 植民地視(식민지시) : 식민지를 대하듯 하고
* 土昧人遇(토매인우) : 야만인으로 待遇(대우)
* 快(쾌)를 貪(탐)할 : 즐거움을 욕심낼
* 卓 (탁락)한 : 뛰어난
* 少義(소의) : 의리가 적음
[ 6 ]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차)치 못하노라 .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 覊縻(기미) 된 日本(일본)의 爲政家(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 錯誤狀態(착오상태) 를 改善匡正(개선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한 正經大原(정경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 우리의 입장과 소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서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회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 策勵(책려) : 일을 계획하고 힘써 일함
* 綢繆(주무) : 빈틈없이 준비함
* 일본의 少義(소의)함 : 의==> (의미상으로 주격)
* 他(타)의 怨尤(원우) : 남을 원망함
* 暇(가)치 : 겨를을 갖지
* 宿昔(숙석)의 懲辨(징변) : 예전의 잘잘못을 가리고 따짐
* 暇(차)치 못하노라. : 틈이 없노라, 겨를이 없노라
* 辨(변) : 분별하다 [ 辨明(변명) ] cf) 辯(변) : 말 잘하다 [ 辯護士(변호사) ]
* 舊怨(구원) : 지난날의 원한
* 嫉逐排斥(질축배척) : 시기하여 쫓고 물리침
* 覊縻(기미) : 말굴레와 소고삐, 곧 얽매임(즉 구사상에 물든)
* 又(우) : 또, 그리고
* 錯誤狀態(착오상태) : 잘못된 상태
* 改善匡正(개선광정) : 고쳐서 바로잡음
* 正經大原(정경대원) : 바르고 큰 원칙, 곧 독립된 상태
* 주제 : 우리의 소임은 자기의 건설과 신운명의 개척과 정경 대원으로의 귀환에 있다.
* 핵심어 : 자기 건설, 신운명 개척, 정경 대원으로 귀환
* 우리의 자세(관용적)
㉠ 金石盟約을 어긴 日本의 無信함 —- 罪하지 아니함
㉡ 植民地視하고 土昧人遇함 ———- 責하려 아니함
* 우리의 입장(소극적)
㉠ 자신을 策勵하기에 급함 — 他의 怨尤를 가치 못함
㉡ 현재를 綢繆하기 급함 –宿昔의 懲辨을 가치 못함
* 우리의 대외적 소임
㉠ 착오상태를 개선
㉡ 정경 대원으로 귀환
[ 7 ]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한 양국병합(양국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과 統計數字上(통계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원)히 和同(화동)할 수 없는 怨溝(원구)를 巨益深造(거익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명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 遠禍召福(원화소복) 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지)할 것 안인가. ▶ 양국 병합의 문제점과 현 상황의 해결책▶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 畢竟(필경) : 마침내, 결국
* 姑息的(고식적) :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임시방편의
* 統計數字上(통계숫자상) 虛飾(허식) : 일본 점령후에 조선의 사정이 좋아졌다는 통계 숫자상의 거짓된 논리.
* 怨溝(원구) : 원한의 도랑(벌어진, 파인 틈)
* 巨益深造(거익심조) : 갈수록 더욱 깊어짐
* 今來實績(금래실적) : 오늘의 현실
* 觀(관)하라 : 보아라
* 勇明果敢(용명과감) : 용감하고 현명하며 과감한 것
* 廓正(확정) : 바로잡아 고침
* 捷徑(첩경) : 지름길
* 遠禍召福(원화소복) : 화를 쫓고 복을 부름
* 捷徑(첩경) : 지름길
* 明知(명지)할 것 : 똑똑히 알아야 할 것
*주제 : 양국 병합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구오를 확정하고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해야 한다.
* 핵심어 : 구오의 확정, 우호적 신국면의 타개
* 문제점 : 兩國倂合의 결과 —> 怨溝를 巨益深造함
* 해결책 : ⓐ 舊誤를 確正함—> ⓑ 友好的인 局面 개척—> 遠禍召福의 捷徑
[ 8 ]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하는 所以(소이)가 안일 뿐 안이라, ㉬ 此(차) 로 因(인)하야 東洋安危(동양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를 갈스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 東洋(동양)의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동망) 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야금 正當(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야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支那(지나)로 하야금 ⓐ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하는 不安(불안), 恐怖(공포) ⓑ 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를 삼는 世界平和(세계평화), 人類幸福(인류행복)에 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의 問題(문제)ㅣ리오. ▶ 조선 독립의 의의▶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軸)인 4억만 지나 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 含憤蓄怨(함분축원) : 분을 머금고 원망을 쌓음
* 所以(소이) : 여기서는 방법이라는 뜻. (이밖에도 원인, 이유, 까닭의 뜻도 있음)
* 支那人(지나인) : 중국인, (영어 china의 음차가 支那임)
* 危懼(위구) : 두려워함
* 猜疑(시의) : 시기와 의심
* 共倒同亡(공도동망) : 함께 쓰러지고 함께 망함
* 招致(초치) : 불러들임
* 邪路(사로) : 사악한 길, 곧 일본의 침략정책. ~로서 : 으로부터(유래)의 뜻
* 全(전)케 : 온전하게, 다하게
* 恐怖(공포)로서 : 공포로부터
* 夢寐(몽매) : 자나깨나 , 寤寐不忘(오매불망) – 寤寐(오-자다, 매-깨다)
* 區區(구구) : 구차하고 옹색함
* 주제 : 조선 독립은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된다.
* 핵심어 : 조선 독립, 세계 평화, 인류 행복
* 조선에 대한 무단 정치의 문제점
ⓐ 동양의 평화 훼손
ⓑ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와 시의 확대
ⓒ 동양의 공도 동망의 비운 초치
* 의의
ⓐ 조선 : 정당한 생영을 이룸
ⓑ 일본 : 동양지지자의 重責을 다하게 함
ⓒ 지나 : 일본침략의 불안, 공포 해소
ⓓ 세계 : 평화, 행복에의 필요한 계단
[ 9 ]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 威力(위력)의 時代(시대) 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시대(時代)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을 閉蟄(폐칩)한 것이 皮一時(피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 世界(세계)의 變潮(변조) 를 乘(승)한 吾人(오인)은 아모 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이 업도다. 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 독립 쟁취를 위한 태세▶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 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 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 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번 한 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이 이 한 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 新天地(신천지) : 새로운 천지, 즉 새로운 세상
* 去(거)하고 : 가고
* 曙光(서광) : 상서로운 빛
* 鍊磨長養(연마장양) : 갈고 닦아 키우고 기름
* 回蘇(회소) : 다시 소생함, = 回生(회생), 蘇生(소생)
* 催促(최촉) : 재촉함
* 凍氷雪寒(동빙설한) : 꽁꽁 언 얼음과 차가운 눈, 혹심한 추위
* 閉蟄(폐칩) : 꼼짝못하고 몸을 움츠림
* 和風暖陽(화풍난양) : 화창한 바람과 따스한 볕, 독립의 세계 [은유법]
* 振舒(진서) : 기상 따위를 펼치어 폄
* 變潮(변조) : 변하는 시대 조류, [위력의 시대 ==> 도의의 시대]
* 乘(승)한 : 올라탄
* 忌憚(기탄) : 거북하게 여기어 꺼림
* 生旺(생왕) : 자유롭고 왕성한 삶
* 飽享(포향) : 마음껏 누림
*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 : 민족의 가장 핵심적인 것. 즉 민족문화
* 結紐(결뉴) : 유대 관계를 맺음
* 주제 : 時運(시운)의 到來(도래)와 우리의 態勢(태세)
* 핵심어 : 생왕의 낙, 민족적 정화
* 독립의 시운 도래
ⓐ 신천지의 전개
ⓑ 도의의 시대 전개
ⓒ 신문명의 도래=> 만물의 회소
* 우리의 태세
ⓐ 자유권 호전 =>생왕의 낙 포향
ⓑ 독창력 발휘 => 민족적 정화 결뉴
[ 10 ] 吾等(오등)이 玆(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 陰鬱(음울)한 古巢(고소) 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群象(만휘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백세) 祖靈(조령)이 吾等(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 ⓕ 着手(착수)가 곳 成功(성공)이라 .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 우리 민족의 결의▶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 玆(자)에 : 이에, 이 시점에서
* 幷進(병진) : 함께 나아감
*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은유법)
* 萬彙 象(만휘군상) : = 森羅萬象(삼라만상), 온갖 사물
* 陰佑(음우) : 남 몰래 도와 줌
* 驀進(맥진) : 힘차게 나아감, = 邁進(매진)
주제 : 조선 독립을 위하여 떨쳐 일어선 우리는 앞날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 핵심어 : 맥진(驀進)
* 吾等(오등)의 奮起(분기)
ⓐ 良心(양심)이 동존
ⓑ 眞理(진리)가 병진 ==> 흔쾌한 부활을 성수
* 착수가 곧 成功(성공)
ⓐ 祖靈(조령)의 陰佑(음우)
ⓑ 세계기운의 外護(외호) ==>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
公約 3章
一,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一,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
一, ⓖ 一切(일체) 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 態度(태도) 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 逸走(일주) : 제멋대로 날뛰는 것
핵심정리
* 작성자 : 손병희 등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선언된 글로 본문 기초자는 최남선, 공약삼장을 넣고 또 이것을 낭독한 이는 한용운으로 전한다.
* 갈래 : 논설문(선언문), 실용문(식사문, 의식문)
* 구성 : 이 글은 전체적으로 ‘두괄식’ 구성으로 첫째 문장에 핵심이 있다. 즉 첫째 문장의 선언에 대해 그 이후는 선언의 취지와 정당성 등을 밝히고 있는 형식이다.
* 문체 : 국한문 혼용체, 문어체, 의고체(擬古體), 강건체, 만연체(蔓衍體)
* 성격 : 논리적, 설득적, 의지적
* 주제 : 조선 독립의 선언과 민족적 결의 촉구
제재의 내용 구성
선언의 내용과 취지 -선언 내용 ① 조선이 독립국임 ② 조선인이 자주민임 -선언 취지 ①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함(대외적) ②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함(대내적) 독립 선언의 배경, 정당성, 신념 – 독립 선언의 배경 ① 반만년 역사사의 권위를 의지함 ②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함 ③ 민족의 항구 여일한 자유 발전을 위함 ④ 세계 대조의 대기운에 순응 병진함 – 독립 선언의 정당성 ① 천의 명명 ② 시대의 대세 ③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 이민족 겸제의 통고의 원인과 피해 내용 – 원인 :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됨 – 피해 내용 ① 생존권의 박상 ② 심령상 발전의 장애 ③ 민족적 존영의 훼손 ④ 세계 문화에 기여 보비할 기연을 유실 독립의 필요성과 결의 – 필요성 ① 억울을 선창함 ② 고통을 파탈함 ③ 협위를 삼제함 ④ 양심과 염의의 흥분 신장 ⑤ 인격의 정당한 발달 ⑥ 고치적 재산을 유여치 않음 ⑦ 자자손손 경복을 도영함 – 결의 : 어떤 강자라도 꺾을 수 있으며, 무슨 뜻이라도 펼 수 있음 우리의 자세와 입장 – 자세 ① 금석 맹약을 어긴 일본의 무신을 죄하려 아니 함. ② 식민지시하고 토매인우하는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 함. – 입장 ① 자신을 책려하기에 급하므로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함. ②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하므로 숙석의 징변을 가치 못함. 우리의 소임 – 자기의 건설과 자가의 신운명 개척 – 착오 상태를 정경 대원으로 귀환케 함
독립의 이유와 의의 – 이유 : 이천만 민족에 대한 구속은 동야 전체가 공도 동망하게 함 – 의의 ① 조선 : 정당한 생영을 이룸. ② 일본 : 동양 지지자의 중책을 다하게 함. ③ 중국 : 일본 침략의 불안, 공포에서 벗어남. ④ 세계 : 평화, 행복에의 계단 시운의 도래와 결의 – 시운의 도래 :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찾아옴. – 우리의 태세 : 천지의 복운에 제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하여 민족적 정화를 결뉴하고자 함. 우리 민족의 결의 – 오등의 분기 – 착수가 곧 성공이라는 믿음으로 맥진함.
학습활동
1. 이 부분까지의 주장을 간략하게 한 문장으로 말해 보자.
▶ 유구한 역사의 우리 민족은 현재 일본의 강점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태이므로, 민족의 자유 발전을 도모하고 세계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2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을지 이야기해 보자.
▶ 이 글의 필자는 ‘오등’이란 말에 비추어 볼 대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민족을 대표한 33인들입니다. 그리고 필자는 글을 준비하면서 예상 독자층을 조선 민족뿐 아니라 일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를 향한 선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독자일 수 있습니다.
또한 10년 동안 억눌려 지내며 받은 유형적․무형적 피해를 객관적으로 조리 있게 제시하고자 했으며, 선언의 이유에 대해 근거대기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필자는 내용 생성을 위해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봅니다. 일제 강점기의 민감한 통제 상황 속에서 비밀리에 모여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나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좀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러 의견들을 모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이 글의 독자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인지 이야기해 보자.
▶ 일본인. 조선인. 전세계인
2)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 거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다는 말로 미루어 전세계인이 독자가 될 수 있으며, 자손 만대에 깨우친다는 내용과 독립에의 신념과 결의, 그리고 공약 삼 장의 강령으로 보아 조선 민족이 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조선 민족에게 피해를 주고 잇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갈수록 원한의 구렁이 깊게 파여지고 있는 점을 직시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 그 대상이 일본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 글에서 조선이 독립하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는지 그 근거를 다음 각각의 관계에 따라 정리해 보자.
조선과 일본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함. 일본으로 하여금 동양 지지자의 중대한 책임을 맡기는 일이 됨 동양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임. 세계 동양 평화의 보장으로 인하여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단계가 됨.
5. 일제 강점기의 우리 나라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조선 독립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어떤 방법으로 생성해 내었는지 말해 보자.
▶ 양국 병합의 결과가 낳은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러운 상태를 가능한 한 객관적 입장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임시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의 상황, 그리고 거짓 통계로 둘러대는 상황을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상대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2) 조선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설득 방법과 일본의 잘못을 비난하면서 독립을 주장하는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보자.
▶ 조선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설득 방법은 상대의 잘못을 비난하면서 독립을 주장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의 잘못에 대해 포용과 관용의 입장에서 독립의 당위성과 타당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있다.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상의 문제로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엄숙한 양심의 명령을 받은 행위임을 밝혀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독립을 했을 경우 찾아오는 여러 이점들을 고루 제시하면서 독립이 양국 모두에게 복을 부르는 바람직한 일임을 강조하여 주장의 타당성을 높이고 있다. 요컨대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남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관점에서 피차간의 좋은 점을 함께 지적하는 방법으로 내용을 생성했다.
6. 대중 문화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청소년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글을 쓰기 위해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대중 문화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청소년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그 근거를 조사해 보자.
주장 : 대중 문화는 주로 매스미디어에 의해 파급되는 저급한 상업주의 속성을 가진 문화로서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들에게는 유익한 점보다는 폐해가 많으므로 무분별하게 몰입하거나 탐닉해서는 안 된다.
근거
– 만화의 경우 교양보다는 선정적, 폭력적, 비윤리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 게임의 경우도 파괴적이고 폭력을 미화하는 내용이 많다.
– 인터넷 정보의 이용뿐 아니라 채팅의 경우 신속한 정보의 검색 및 공유, 건전한 커뮤니티 형성보다는 음란 퇴폐적인 탈선의 장이 되고 있다.
– 대중 가요의 경우도 청소년들이 음반 시장의 약 70% 이상을 소비하고 있으며 스타에 대해 열광한 나머지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우상화하고 있다.
– 대중 가요의 가사도 선정적, 직설적, 자극적, 염세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2) 이들의 주장과 근거를 항목별로 분류해 보자.
▶ 대중 문화의 속성
– 상당수 퇴폐적이거나 폭력적이며, 또한 음란한 내용의 저급한 문화이다.
– 예술성보다는 철저히 상업주의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락 상품이다.
▶ 대중 문화를 즐기는 청소년의 특징
– 대중 문화를 오락의 대상으로 즐길 뿐 대중 문화의 속성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 자제력이 적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선을 구별하지 못하고, 시간과 돈을 많이 허비하고 있다.
3) 평소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중심으로 부모님 세대와 청소년 세대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자신의 독립 선언서를 써 보자.
▶ 우리들은 이에 우리 청소년들이 대중 문화 향유의 주체임을 선언합니다. 이로써 사회에 알리어 대중 문화는 문화의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고급 문화 못지 않게 가치 잇는 문화임을 밝히며, 이로써 부모님과 학교에 설득하여 우리도 대중 문화를 즐길 정당한 권리를 누려 가지게 하는 바입니다.
몇 백만 청소년의 마음을 합하여 이를 널리 펴서 밝힘이며, 우리의 개성을 펼 수 있는 문화 공간이 필요함을 주장함이며, 세계 문화 개조의 흐름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움이니, 이는 시대의 큰 추세이며,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억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고급 엘리트 문화주의에 희생이 되어, 역사 이래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지 오래 되었으니, 그 동안 우리 청소년층의 자유가 억눌린 것이 그 얼마이며, 우리의 개성의 신장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대중 문화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며, 쉽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뺏은 것이 그 얼마인가 묻고 싶습니다.
슬픕니다. 오래 전부터 입시 위주의 학교 문화로 인해, 유익하게 보고 즐길 만화도 보지 못하고, 우리의 감정을 잘 대변하는 대중 가요도 마음껏 부르지 못하며, 우리 정서와 취향에 꼭 맞게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도 즐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새로운 공동체로 자리잡고 있는 인터넷 매체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중 문화가 활성화되고 고급 문화에 비견할 문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향유의 주체가 대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우리 청소년도 그 대열에 당당히 한 몫을 다할 것입니다.
때때로 만화, 게임에 몰두하지 않겠다는 부모님,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러나 대중 문화는 모두 유해하다는 어른들의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보다는 대중 문화 공간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해 주는 시선이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들은 부모님을 원망할 겨를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대중 문화만이 아닌, 고급과 대중 문화를 골고루 향유하여 우리를 발전시킬 앞날을 개척함에 있습니다.
당초에 부모님 세대와 우리들 세대 사이에는 갈등이 있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어느 한 쪽만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참된 이해와 동정에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여는 것이 바람직한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 우리는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더 이상 대중 문화의 소비 주체로만 이용당하는 입장이 아니고, 대중 문화를 생산하는 위치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청소년들의 문화도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가정 그리고 학교나 사회에서도 더 이상 대중 문화에 대해 금기시하거나 편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기능보다 순기능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거름 주고 물을 주어 길러 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우리도 거기에 동참할 것입니다. 모든 문화는 현실을 떠날 때 실효성이 없는 법입니다. 현실을 무시한 문화는 근거를 상실하게 되고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납니다. 개성과 자유의 신장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성 세대, 청소년 구별 없이 활발히 일어나 손을 잡고 대중 문화의 건강한 성장에 온 힘을 다할 뿐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
독립운동이 계획된 당초에는 건의서 형식으로 일본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기로 발의되었으나, 건의서는 민족자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강력한 독립의 의지와 그 당위성을 내외에 선포할 독립선언서로 해야 한다는 최린(崔麟)의 주장에 따라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 해 2월 초, 최린 ․송진우(宋鎭禹) ․현상윤(玄相允) ․최남선(崔南善) 등은 협의를 하고, 선언서의 초안 작성을 자청한 최남선에게 이를 위임하되, ①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을 것, ②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③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정신을 바탕으로 정의와 인도(人道)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한다는 등 손병희(孫秉熙)가 세운 선언서 작성의 대원칙에 따르도록 하였다.
최남선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광문회(光文會) 임규(林圭)의 일본인 부인의 안방에서 약 3주일 만에 이를 작성하여 최린에게 전달하였고, 최린은 손병희 등의 동의를 얻어 2월 27일까지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을 끝마쳤는데, 선언서 뒷부분에 첨가된 공약 삼장(公約三章)은 한용운(韓龍雲)이 따로 작성한 것으로 전한다. 선언서의 원고는 오세창(吳世昌)에 의해 천도교(天道敎)에서 경영하는 보성인쇄소 사장 이종일(李鍾一)에게 넘겨져 2월 27일 오후 6시경부터 10시까지 2만 1000장을 인쇄하였다. 인쇄된 선언서는 경운동(慶雲洞)에 있는 천도교당으로 옮겨지고 28일 아침부터 전국의 배포 담당자에게 전달되어,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일제히 선포되었다.
한편, 민족대표들은 3월 1일 아침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장을 탁상에 펴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열람하게 하였으며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한용운이 일어나 이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다. 이날 같은 시각인 오후 2시 탑동(파고다) 공원에서는 각급 학교 학생 ․시민 약 5,000명이 모여 정재용(鄭在鎔)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민족자결주의
민족자결주의는 미국 23대 대통령 윌슨이 1918년 1월 8일에 의회에 보내는 연두교서에서 제창한 것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것을 내다보고(1918년 11월 세계대전이 끝남) 독일에 제시한 14개 조항으로 된 강화 조건 가운데 하나다. 각 민족은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이나 제약을 받는 일이 없이 민족 스스로의 뜻에 따라 자신의 정치 조직이나 귀속 문제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윌슨이 이 원칙을 제시하자 프랑스와 영국이 이 원칙에 우려를 표명하였고 이어 윌슨은 이 원칙을 1918년 10월 평화회의로 유보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국가들(곧 식민지)이 평화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극히 좋지 않다’는 입장을 표시하였다. 이에 따라 윌슨은 1918년 12월에는 ‘민족자결주의의 적용 범위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및 터키에 속했던 주민과 영토, 그리고 독일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식민지로 국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이 원칙은 성격이 약화되었다. 더구나 윌슨은 말로라도 ‘민족자결’을 얘기했지만 당시 미 국무장관 랜싱은 이 용어를 쓰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였다. 실제로 1919년 1월 파리회의 수정규약에서는 ’민족자결‘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그들 형태의 정부에 대한 피치자의 동의의 지배’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식민지 주민의 동의를 얻은 지배’를 강조하였다. 그래서 2월 14일에 최종적으로 강화회의에 제출한 국제연맹 규약에서 민족자결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했다. 결국 제 1차 대전 패전국의 식민지 중 주로 동유럽의 약소민족 이를테면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는 주권을 부여하여 독립을 시켜서 국제 분쟁의 화근을 제거하고, 기타 지역에 대해서는 ‘위임통치’라는 또 다른 고차원적 식민지 통치 방법을 도입한 식민지 재분할 정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후에 자결권을 되찾은 민족은 동유럽의 핀란드,발트국,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유고슬라비아 등 몇 개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선언문의 특성
* 성격상 : 신념, 태도,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키도록 설득함
* 태도상 : 주장의 명료성, 청중이나 독자에 대한 고려
* 표현상 : 정연한 논리, 강건한 문체, 이성과 감정에의 호소 등
일제하 우리 민족의 생존권 박탈
일제는 1910년 조선강점과 함께 무단적인 헌병경찰제도의 폭력을 앞세워 식민지 통치체제를 확립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을 자국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한 식량 및 원료 공급지. 상품판매시장으로 바꾸기 위해 산업 각 분야에 걸쳐 식민지적 통제를 강화했다. 1918년 현재 농임업 종사자가 85 %여서 사회구성원의 압도적 다수를 농민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지주와 일제통치 그리고 내외부르주아에게 2중.3중으로 압박 받는 처지에 있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종래 지녀왔던 농민의 권리들(토지권, 입회권, 영소작권)을 박탈당했으며 그에 따라 급속히 토지를 상실하고 토지로부터 이탈되어 나갔다. 또 농민들은 수확고의 50-60 %를 차지하는 소작료를 납부해야 했으며, 그외에도 마땅히 지주가 부담해야 할 지세와 물세 비료대금과 농토 수리비 등의 부담마저 떠맡는 형편이었다. 또한 각종조세부담이 농민경영을 위축시켰다. 지세, 지세부가세, 호세, 시장세, 연초세, 주세, 도장세, 면비 학교 조합비 등이 그것이다.‘일년 열두 달 죽도록 농사지어야 주린 배를 채우기는 고사하고 보릿고개를 시래기죽으로 부증이 나서 뒈질 지경’(염상섭,<만세전>에서)이었다.
진주에서 걸인독립대가 일어나,“우리가 거지가 된 것은 왜놈들이 우리 살길을 빼앗은 탓이다. 우리나라가 독립이 안되면 이천만 동포가 모두 거지가 될 것이다”고 당당한 논리를 펴며 시위를 벌인 것은 식민 통치 1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생존권이 박탈되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시시종종의 금석 맹약
* 한·일 동맹조약(1895)-청(淸)을 몰아낼 목적으로 맺은 조약
* 시모노세키 조약(1895)-일본의 대륙 진출의 기반 구축을 위한 조약.
* 한·일 의정서(1904)-러시아와의 전쟁 수행 목적을 위한 조약.
* 제1차 한·일 협약(1904)-우리 나라에 대해 고문(顧問)정치 실시 목적을 위한 조약.
* 을사 보호조약(1905)-통감정치 실시 목적을 위한 조약.
* 한·일 신협약(1907)-사법/행정 사무를 통감의 감독, 승인하에 행함.
그 밖의 독립선언문
– 2.8 동경유학생 독립선언문
– 조선독립의 서 : 한용운. 1919. 7. 옥중에서 검사의 심문에 답한 글.
– 대한독립선언서 : 3.1운동 전 해외에서 선언
기미독립선언서에 사용된 한자 뜻 풀이
100여년 전인 1919년에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시면서 사용한 한자(漢字)가 참 많지요.
낯선 글자들도 보이고요.
그래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면서 사용된 한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순서는 독립선언서에서 사용된 순서 그대로입니다. 중복되는 한자는 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자들에 대한 뜻 풀이는 시간나는대로 정리해서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宣言書(선언서) : 어떤 일을 선언하여 공표하는 문서. (manifesto)
吾等(오등) :
玆(자) :
我(아) :
朝鮮(조선) :
獨立國(독립국) :
朝鮮人(조선인) :
自主民(자주민) :
宣言(선언) :
此(차) :
世界萬邦(세계 만방) :
告(고) :
人類平等(인류 평등) :
大義(대의) :
克明(극명) :
차(此) :
子孫萬代(자손 만대) :
誥(고) :
民族自存(민족 자존) :
正權(정권) :
永有(영유) :
半萬年(반만년) :
歷史(역사) :
權威(권위) :
杖(장) :
此(차) :
宣言(선언) :
二千萬(이천만) :
民衆(민중) :
誠忠(성충) :
合(합) :
此(차) :
佈明(포명) :
民族(민족) :
恒久如一(항구 여일) :
自由發展(자유 발전) :
爲(위) :
此(차) :
主張(주장) :
人類的(인류적) :
良心(양심) :
發露(발로) :
起因(기인) :
世界改造(세계개조) :
大機運(대기운) :
順應幷進(순응병진) :
爲하야 此를 提起(제기) :
是(시) :
天(천) :
命明(명명) :
時代(시대) :
대세(大勢) :
全人類(전인류) :
共存同生權(공존 동생권) :
正當(정당) :
發動(발동) :
天下何物(천하하물) :
此(차) :
沮止抑制(저지억제) :
舊時代(구시대) :
遺物(유물) :
侵略主義(침략주의) :
强權主義(강권주의) :
犧牲(희생) :
作(작) :
有史以來(유사이래) :
累千年(누천년) :
異民族(이민족) :
箝制(겸제) :
痛苦(통고) :
嘗(상) :
今(금) :
十年(십년) :
過(과) :
我(아) :
生存權(생존권) :
剝喪(박상) :
幾何(기하) :
心靈上(심령상) :
發展(발전) :
障碍(장애) :
幾何(기하) :
民族的(민족적) :
尊榮(존영) :
毁損(훼손) :
幾何(기하) :
新銳(신예) :
獨創(독창) :
世界文化(세계 문화) :
大潮流(대조류) :
寄與補裨(기여 보비) :
機緣(기연) :
遺失(유실) :
幾何(기하) :
噫(희) :
舊來(구래) :
抑鬱(억울) :
宣暢(선창) :
時下(시하) :
苦痛(고통) :
擺脫(파탈) :
將來(장래) :
脅威(협위) :
芟除(삼제) :
民族的(민족적) :
良心(양심) :
國家的(국가적) :
廉義(염의) :
壓縮銷殘(압축소잔) :
興奮伸張(흥분 신장) :
各個(각개) :
人格(인격) :
正當(정당) :
發達(발달) :
遂(수) :
可憐(가련) :
子弟(자제) :
苦恥的(고치적) :
財産(재산) :
遺與(유여) :
子子孫孫(자자손손) :
永久完全(영구완전) :
慶福(경복) :
導迎(도영) :
最大急務(최대급무) :
民族的(민족적) :
獨立(독립) :
確實(확실) :
二千萬(이천만) :
各個(각개) :
方寸(방촌) :
刃(인) :
懷(회) :
人類通性(인류 통성) :
時代良心(시대양심) :
正義(정의) :
軍(군) :
人道(인도) :
干戈(간과) :
護援(호원) :
今日(금일) :
吾人(오인) :
進(진) :
取(취) :
何强(하강) :
挫(좌) :
退(퇴) :
作(작) :
何志(하지) :
展(전) :
丙子修好條規(병자 수호 조규) :
以來(이래) :
時時種種(시시종종) :
金石盟約(금석 맹약) :
食(식) :
日本(일본) :
無信(무신) :
罪(죄) :
學者(학자) :
講壇(강단) :
政治家(정치가) :
實際(실제) :
我 祖宗世業(아 조종 세업) :
植民地視(식민지시) :
我 文化民族(아 문화 민족) :
土昧人遇(토매인우) :
征服者(정복자) :
快(쾌) :
貪(탐) :
我(아) :
久遠(구원) :
社會基礎(사회 기초) :
卓落 (탁락) :
民族心理(민족 심리) :
無視(무시) :
日本(일본) :
少義(소의) :
責(책) :
自己(자기) :
策勵(책려) :
急(급) :
吾人(오인) :
他(타) :
怨尤(원우) :
暇(가) :
現在(현재) :
綢繆(주무) :
急(급) :
吾人(오인) :
宿昔(숙석) :
懲辨(징변) :
暇(가) :
今日(금일) :
吾人(오인) :
所任(소임) :
自己(자기) :
建設(건설) :
有(유) :
他(타) :
破壞(파괴) :
在(재) :
嚴肅(엄숙) :
良心(양심) :
命令(명령) :
自家(자가) :
新運命(신운명) :
開拓(개척) :
舊怨(구원) :
一時的(일시적) :
感情(감정) :
他(타) :
嫉逐排斥(질축배척) :
舊思想(구사상) :
舊勢力(구세력) :
羈 (기미) :
日本(일본) :
爲政家(위정가) :
功名的(공명적) :
犧牲(희생) :
不自然(부자연) :
又 不合理(우 불합리) :
錯誤狀態(착오 상태) :
改善匡正(개선 광정) :
자연(自然) :
又(우) :
合理(합리) :
正經大原(정경 대원) :
歸還(귀환) :
當初(당초) :
民族的(민족적) :
要求(요구) :
出(출) :
兩國倂合(양국 병합) :
結果(결과) :
畢竟(필경) :
姑息的(고식적) :
威壓(위압) :
差別的(차별적) :
不平(불평) :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
虛飾(허식) :
利害相反(이해 상반) :
兩(양) :
民族間(민족 간) :
永遠(영원) :
和同(화동) :
怨溝(원구) :
去益深造(거익 심조) :
今來實績(금래 실적) :
觀(관) :
勇明果敢(용맹과감) :
舊誤(구오) :
廓正(확정) :
眞正(진정) :
理解(이해) :
同情(동정) :
基本(기본) :
友好的(우호적) :
新局面(신국면) :
打開(타개) :
彼此間(피차간) :
遠禍召福(원화소복) :
捷徑(첩경) :
明知(명지) :
二千萬(이천만) :
含憤蓄怨(함분축원) :
民(민) :
威力(위력) :
拘束(구속) :
東洋(동양) :
永久(영구) :
平和(평화) :
保障(보장) :
所以(소이) :
此(차) :
因(인) :
東洋安危(동양 안위) :
主軸(주축) :
四億萬(사억만) :
支那人(지나인) :
日本(일본) :
危懼(위구) :
猜疑(시의) :
濃厚(농후) :
結果(결과) :
東洋(동양) :
全國(전국) :
共倒同亡(공도 동망) :
悲運(비운) :
招致(초치) :
明(명) :
今日(금일) :
吾人(오인) :
朝鮮獨立(조선 독립) :
朝鮮人(조선인) :
正當(정당) :
生榮(생영) :
遂(수) :
同時(동시) :
日本(일본) :
邪路(사로) :
出(출) :
東洋(동양) :
支持者(지지자) :
重責(중책) :
全(전) :
支那(지나) :
夢寐(몽매) :
免(면) :
不安(불안) :
恐怖(공포) :
脫出(탈출) :
東洋平和(동양 평화) :
重要(눙요) :
一部(일부) :
世界平和(세계 평화) :
人類幸福(인류 행복) :
必要(필요) :
階段(계단) :
區區(구구) :
感情上(감정상) :
問題(문제) :
新天地(신천지) :
眼前(안전) :
展開(전개) :
威力(위력) :
時代(시대) :
去(거) :
道義(도의) :
時代(시대) :
來(래) :
過去(과거) :
全世紀(전세기) :
鍊磨 長養(연마 장양) :
人道的(인도적) :
精神(정신) :
新文明(신문명) :
曙光(서광) :
人類(인류) :
歷史(역사) :
投射(투사) :
始(시) :
新春(신춘) :
世界(세계) :
來(래) :
萬物(만물) :
回蘇(회소) :
催促(최촉) :
凍氷寒雪(동빙 한설) :
呼吸(호흡) :
閉蟄(폐칩) :
彼一時(피일시) :
勢(세) :
和風暖陽(화풍난양) :
氣脈(기맥) :
振舒(진서) :
此一時(차일시) :
勢(세) :
天地(천지) :
福運(복운) :
際(제) :
世界(세계) :
變潮(변조) :
乘(승) :
吾人(오인) :
廚躇(주저) :
忌憚(기탄) :
我(아) :
固有(고유) :
自由權(자유권) :
護全(호전) :
生旺(생왕) :
樂(낙) :
飽享(포향) :
我(아) :
自足(자족) :
獨創力(독창력) :
發揮(발휘) :
春滿(춘만) :
大界(대계) :
民族的(민족적) :
精華(정화) :
結紐(결뉴) :
吾等(오등) :
慈(자) :
奮起(분기) :
良心(양심) :
我(아) :
同存(동존) :
眞理(진리) :
我(아) :
幷進(병진) :
男女老少(남녀노소) :
陰鬱(음울) :
古巢(고소) :
活潑(활발) :
起來(기래) :
萬彙群象(만휘군상) :
欣快(흔쾌) :
復活(부활) :
成遂(성수) :
千百世(천백세) :
祖靈(조령) :
吾等(오등) :
陰佑(음우) :
全世界(전세계) :
氣運(기운) :
吾等(오등) :
外護(외호) :
着手(착수) :
成功(성공) :
前頭(전두) :
光明(광명) :
驀進(맥진) :
公約三章(공약삼장) :
今日(금일) :
吾人(오인) :
此擧(차거) :
正義(정의) :
人道(인도) :
生存(생존) :
尊榮(존영) :
爲(위) :
民族的(민족적) :
要求(요구) :
自由的(자유적) :
精神(정신) :
發揮(발휘) :
排他的(배타적) :
感情(감정) :
逸走(일주) :
最後(최후) :
一人(일인) :
最後(최후) :
一刻(일각) :
民族(민족) :
正當(정당) :
意思(의사) :
快(쾌) :
發表(발표) :
一切(일체) :
行動(행동) :
秩序(질서) :
尊重(존중) :
吾人(오인) :
主張(주장) :
態度(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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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삼일절독립운동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1959년 영화에 대해서는 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1959년 영화에 대해서는 삼일독립운동 (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 또는 대한 독립 만세 운동(大韓獨立萬歲運動)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줄여서 기미운동(己未運動)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최근, 본 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해 3.1 혁명(三一革命)이라고 부르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 대표 33인으로 부르며, 이외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적,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 대표 48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 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 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 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900여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 한편 신복룡 교수나 일본의 야마기 겐타로 약 50만 명 정도가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1][2] 1919년 3월 당시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전체 인구는 1,678만 8천400명이었다.[1][1][2]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 중 2.76%에서 2.97%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한편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 총독부는 민족 분열책인 일명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천주교는 흥선대원군의 탄압후유증(7천여명 천주교인 살해)으로,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진행 과정 [ 편집 ]
배경 [ 편집 ]
무오독립선언서 석판 인쇄본
데라우치 마사타케에서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총독으로 계승된 무단 통치는 “3·1독립운동”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발생케 했다.
이런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안한 14개조의 전후처리 원칙 중에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소위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 사이에 희망의 분위기가 일어났다. 일부 독립 운동가들은 1918년 말부터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파리 강화회의에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소요사태를 일으켜야 한다는 김규식의 발언과 1919년 초 갑작스럽게 사망한 고종 황제의 죽음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절묘하게 기회를 포착하였다.
사전 준비 [ 편집 ]
당시 중국에 유학중이던 여운형과 신규식 등은 이 선언과 뒤이은 파리 강화 회의가 조선 독립의 달성 여부를 떠나서 앞으로 조선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신한청년당이라는 단체를 문서상으로 조직해 파리 강화 회의에 불어를 잘하는 김규식을 파견하고, 조선쪽에는 일본어에 유능한 장덕수를 파견한다. 이러한 소식은 조선 안팎의 독립운동가들을 상당히 고무하는 소식이었다.[3]
그리고 여운형 자신은 중국 길림 성으로 가서 활동하여 무오독립선언의 촉매역할을 했다. 만주 지린(간도)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약연등과 만나서 파리강화회의와 민족자결주의 원칙등 상황을 설명하였고, 이는 무오 독립선언에 영향을 주었다.[4]
1919년 출국 전 김규식은 상하이의 신한청년당 당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독립 시위의 주문을 하였다. 김규식의 독립 시위 주문은 3·1운동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5]
파리에 파견되더라도 서구인들이 내가 누군지 알리가 없다. 일제의 학정을 폭로하고 선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국내에서 독립을 선언해야 된다. 파견되는 사람은 희생당하겠지만 국내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해야 내가 맡은 사명이 잘 수행될 것이다.[6]
또한 때마침 발생한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 역시 일본인들이 고종을 독살하였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절묘하게 만세시위 확산에 기여하였다.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고종의 죽음 역시 국민적 감정을 자극해서 만세시위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종황제가 이 왕세자와 나시모토 공주의 결혼식을 꼭 나흘 앞두고 승하하는 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정말이지 얼토당토 않은 얘기다. 예전에 이미 굴욕을 감수한 고종황제가 이제 와서 하찮은 일에 억장이 무너져 자살했다는 게 말이 되나? 더구나 어린 왕세자와 일본 공주의 결혼이야말로 왕실의 입장에서는 경사스런 일이 아닌가? 이 결혼을 통해서 두 왕실 간의 우호관계가 증진될 것이고, 왕세자는 조선의 어떤 여성보다도 더 우아하고 재기 넘치는 신부를 맞이하게 되는 거니까 말이다. 만약에 고종황제가 병합 이전에 승하했더라면, 조선인들의 무관심 속에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인들은 복받치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옷소매를 적셔가면서 고종황제를 위해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 윤치호 일기, 1919년 1월 26일 일요일
결과 [ 편집 ]
만주 지린에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1919년 2월 1일 무오 독립선언을 통하여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였고, 조선 재일 유학생을 중심으로한 2·8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삼일운동은 고종의 독살설로 인하여 일본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폭력에 의한 통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갖게 되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시위는 순수한 평화적 시위였으나 일본군[7] 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폭력화되었다.
준비 과정 [ 편집 ]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대표인 손병희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천도교인, 기독교인, 불교도인이 모두 함께 대표로 참여하였다.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으나, 만해 한용운이 보고는 너무 어려운 한문투인 데다가 내용이 온건하다 하여 다시 쓰기를 자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8] 천도교와 기독교 인사들의 연합으로 만세 시위 계획과 장소가 결정되었다. 불교계의 대표로는 한용운 등이 참여하였다. 최남선의 초안에 춘원 이광수가 교정을 보고 만해 한용운이 공약 3장을 덧붙였다.
한편 윤치호는 독립운동가들로부터 국민대표로 서명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했고, 이는 실망한 일부 학생들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다. 그는 이 민족적인 거사를 순진한 애국심에 기초한 민족주의자들의 무모한 행동으로 파악했다.[9]
준비 과정에 일어난 신철에 관한 일화가 있다.[8] 1919년 2월 하순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인쇄소 보성사(普成社)를 급습한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申哲: 일명 申勝熙)은 보성사 사장 이종일이 보는 앞에서 윤전기를 멈추고 〈독립선언서〉를 빼내어 보았으나 그냥 돌아갔다. 이종일이 최린에게 보고하자 최린이 신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돈을 주며 만주로 떠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일본 측 기록에는 신철이 그 돈을 받았다고 되어 있고, 한국 측 기록에는 그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3월 3일로 예정된 거사를 3월 1일로 앞당겼다.
2월 28일경 손병희의 집에 모여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약속 장소인 탑골 공원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민족대표가 모일 장소는 태화관(泰和館)으로 바뀐다.[8]
관련 인물 및 단체 [ 편집 ]
민족대표 33인 또는 민족대표 48인 [ 편집 ]
3.1 만세 운동의 첫 날 경성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 대표자 33인을 말한다. 여기에 박인호, 김홍규, 노헌용, 이경섭(이상 천도교), 김도태, 안세환, 함태영, 김원벽, 김세환(이상 기독교), 임규, 송진우, 현상윤, 최남선, 강기덕, 정노식, 김지환, 한병익 등을 합쳐 민족대표 49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밖에 3.1 운동 당시 참상을 사진으로 촬영,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 알린 스코필드 역시 별도의 조선인 민족대표자로 보기도 한다.
기타 관련 인물 및 단체 [ 편집 ]
기타 [ 편집 ]
무오 독립선언 –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조소앙, 신채호 선생 등 만주와 러시아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지도자 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추어 조국독립을 요구한 독립선언서이다. 다음달 3월 1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신한청년당 – 2·8 독립 선언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다. 또한, 파리강화회의 파견을 주도하였다.
기미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3·1 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이다.
독립선언서 낭독 [ 편집 ]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10]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인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를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그들은 태화관(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소재)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8] 그들은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는데, 이는 자신들이 태화관에 모여있으니 연행해 가라는 뜻이었다. 60여 명의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들어닥쳐 민족대표를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연행하였다. 저녁무렵에 길선주 등 태화당에 도착하지 못한 나머지 4인도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 1.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2. 반만 년이나 이어 온 우리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된 마음을 모아서 이 선언을 널리 펴서 밝히는 바이며, 민족의 한결 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올바르게 바뀌는 커다란 기회와 운수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워 보이는 것이니, 이 독립 선언은 하늘의 밝은 명령이며, 민족 자결주의에로 옮아 가는 시대의 큰 형세이며,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려는 정당한 움직임이므로, 천하의 무엇이든지 우리의 이 독립 선언을 가로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 — 기미독립선언서 처음 부분 (현대어역)[11]
한편 오후 2시에 태화관과 300미터 떨어진 원래 약속 장소였던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당황하였으나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오후 3시경에 보성법률상업보통학교 학생 강기덕,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 그리고 한위건이 민족대표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
거사시간에 기약하지 않고 모인 학생이 천여명이었고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만세소리가 울려퍼지고, 자그마한 태극기와 선언서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처럼 쏟아졌다. 모인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 허공에 던지며 미친 듯이 기뻐하였다. 이 때, 성안과 지방의 백성들도 합세하여 수십만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시위 군중은 두 갈래로 나뉘어 행진을 하였는데, 한 갈래는 종로 보신각을 지나 남대문 쪽으로 향하고, 한 갈래는 매일신보사 옆을 지나 대한문을 향하였다. 대한문에 이르른 군중을 이끌던 사람이 덕수궁의 혼전에 나아가 세 번 절하고 계속 만세를 불렀다. 시위행진은 서울을 8개구로 나누어 길을 가면서 독립선언서를 나눠주고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조선독립만세”, “조선 독립정부를 수립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계속 진행하여 서대문을 돌아 태평로를 지나 미국 영사관에 이르렀다. 이때 어느 학생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써 ‘대한독립’ 4자를 써서 앞에 들고 군중을 인도하니 미국영사는 문을 열어 환영하고 깊은 동의를 표했다. 한 사람이 일어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독립의 주지를 연설하고, 종로에 이르러 다시 연설을 벌이자 일본 헌병과 기마병들은 칼을 휘두르며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군중들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물러가지 않다가 6시가 되어서 자진해산하였다. 다음날 총독부는 독립단을 수색하고 체포하여 투옥하였는데 그 숫자가 1만여명에 이르렀다.[12]
3.1 운동의 참여 인원 [ 편집 ]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의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었고, 이들 중의 많은 수가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일본인 학자 야마베 겐타로에 의하면 운동의 참여자는 50만 명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야마베 겐타로에 의하면 전국에서 고종의 장례를 위해 50만명의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삼일운동의 참여자는 50만 명 이상이라고 추정한다.[2] 한국의 학자 신복룡은 46만 명 정도로 파악하였다.
3.1 운동의 비폭력 항쟁 중에서도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만세를 부른 사람의 수효는 46만 3086명 정도였다.[1] 이는 1919년 3월 당시 전체 인구 1,678만 8천400명 중 2.76%에 해당되는 인원이었다.[1] 조선총독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 12,000명이 체포되었다
전국적인 시위와 폭력 진압 [ 편집 ]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시작되어 불과 수개월 만에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일본과 연해주 등 해외에서도 벌어져 1년여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임종국의 《실록 친일파》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60일 동안 1214회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고 한다.[13]
독립선언서가 본래 낭독되기로 예정되어 있던 서울 탑골공원에서부터 만세 시위가 발생하였다. 몇십 만명이 동시에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고, 빠른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당황한 일본군들은 진압하다 못해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그에 더 자극 받은 한국인들의 운동이 그 규모를 더하였다.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입니다.
일시: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장소: 천안 아우내 장터
경과: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은 천안 병천 시장에 있던 3천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일본 경찰과 헌병은 총검을 이용하여 강력한 진압을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성공회 병천교회에서 운영하던 진명학교[14] 교사 김구응이 지역 유지들과 젊은 청년,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였다.비보를 듣고 온 그의 모친 최씨가 자식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자 노모마저 창과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 일본의 강제 진압으로 현장에서 죽은 사람은 19명이며, 유관순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부상, 투옥등의 어려움을 겪었다.[15]
평남 강서군 사천장터 시위 [ 편집 ]
일시: 1919년 3월 4일 [16] [17]
장소: 평안남도 대동군, 강서군
경과: 3월 4일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에서 약 3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의 사천시장 방면으로 시위 행진을 벌였다. 이때 사천시장 부근에 있던 사천헌병대에 이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조직하던 기독교 계열의 인사들이 사전 적발되어 구금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천헌병주재소의 일본인 소장 사토 지쓰고로( 일본어: 佐藤實五郞 )와 조선인 헌병보조원 강병일, 김성규, 박요섭 등은 미리 매복해 있다가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시위 참가자 수십명을 살상했다. 이들은 돌을 던지며 맞선 시위대에게 그 자리에서 함께 살해당했다. [18] 이 사건은 3·1 운동 최초의 사망자가 3월 1일 평안북도 선천과 안주에서 발생한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유혈 사태였다.
)와 조선인 헌병보조원 강병일, 김성규, 박요섭 등은 미리 매복해 있다가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시위 참가자 수십명을 살상했다. 이들은 돌을 던지며 맞선 시위대에게 그 자리에서 함께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3·1 운동 최초의 사망자가 3월 1일 평안북도 선천과 안주에서 발생한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유혈 사태였다. 관련자: 조진탁 (사형), 고지형, 지석용 등
삼진 의거 [ 편집 ]
일시: 1919년 3월 28일, 4월 3일 [19]
장소: 경상남도 창원
경과: 제1차와 제2차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삼진의거는 창원 일대의 연합 대시위였다. 서울에서 시위에 참가한 뒤 연고지에 돌아온 변상태가 진전, 진북, 진동면의 3개면에서 동조하는 인사들을 모아 모의했다. 단일 시위로는 마산 지역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였으며, 전국적으로도 규모가 큰 연합시위로 기록되었다. 제1차 삼진 의거에서 검거를 피한 주모자들이 태극기를 제작해 제2차 삼진 의거(4·3 삼진의거)를 재차 계획했으며, 진북면 지산교 부근에서 약 3천여 명의 비무장 시위대가 일본 헌병대와 유혈 충돌하여 5명이 즉사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관련자: 변상태, 변갑섭(사살), 변상복(사살) 등
제암리 학살 사건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제암리 학살 사건 입니다.
일시: 1919년 4월 15일
장소: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경과: 3월 말 또는 4월 초에 수원 향남면 제암리(지금의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장날을 틈타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일본 육군이 4월 15일 제암리의 제암리교회에 성인 남자들을 모아놓고 불을 질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곽산 학살 사건 [ 편집 ]
일시: 1919년 3월 6일
장소: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
경과: 곽산 그리스도교회를 중심으로 봉기하여 점차 수천명이 시위에 동참하자, 일제는 독립운동가 박지협(朴志協)을 주동 혐의로 체포 직후 타살(打殺)하고, 체포한 시위군중 100여명 중 50여명이 잔인한 고문으로 사망했다. 일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군중에 대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광견(狂犬)을 죽이는 데 사용하던 쇠갈고리로 시위군중 수천명을 참살했다. 일명 곽산의 참살 (郭山一慘殺)이라고도 불린다.
(郭山一慘殺)이라고도 불린다. 관련자:박지협(타살)
사천 학살 사건 [ 편집 ]
일시: 1919년 3월 3일
장소: 평안남도 사천
경과: 개신교 목사 한예헌(韓禮憲)과 천도교 교구장(敎區長) 이진식(李鎭植), 최승택(崔承澤), 김병주(金炳疇) 등의 주도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헌병대는 시위 군중에 대한 무차별 총격으로 73명을 학살했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학살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계속하여 헌병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헌병 2명을 타살(打殺)했다.
관련자: 한예헌(韓禮憲), 이진식(李鎭植), 최승택(崔承澤), 김병주(金炳疇) 등
화수리 학살 사건 [ 편집 ]
일시: 1919년 4월 11일
장소: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화수리
경과: 4월 3일 시위군중이 화수리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일본 순사 1명을 타살하자 11일 새벽에 헌병과 경찰을 동원해 민가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는 사람을 총으로 쏘거나 칼로 찔러 마을 주민 수십여명을 학살했다. 40가구가 모여살던 화수리는 사건 이후 모두 불타 18가구만 남았으며, 사건 이전까지는 비교적 부촌(富村)이었으나 이후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했다.
맹산 학살 사건 [ 편집 ]
평안남도 맹산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사건 며칠 후 일본군이 기독교인 지도자 한사람을 체포하여 헌병분견소에 가두고 고문을 하자 군중들이 몰려와 지도자의 석방을 요구하자 일본 헌병이 이들을 분견소 안마당에 끌어들인 뒤 문을 잠그고 60여명을 총살한 사건이다.
대구 학살 사건 [ 편집 ]
대구에서 2만 3천 명이 시위를 벌여 일본군에게 113명이 총살되었고, 87명이 부상당하였다. 김용해의 아버지가 이 시위의 주모자로 독립선언을 낭독했는데, 김용해는 체포하러온 일본군과 맨손으로 대항하다가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며, 부자가 투옥되어 며칠 후 사망하였다.
합천 학살 사건 [ 편집 ]
3월 16일 경남 합천군 야로면에서 주민들과 해인사의 승려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는데, 그 참가자가 1만여명에 이르렀다. 3월 18일 합천군 강양면의 시장에서 시위가 있었다. 일본 군인과 경찰이 쇠몽둥이나 장검으로 해산시키려 했으나 어려워지자 발포하여 3명이 죽고 다수가 부상당했다. 3월 19일에는 합천군 대정면에서 지역 유지와 노동자들이 고현시장에 모여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 시위를 벌여 주모자 5명이 체포되어 진주로 압송되었다. 3월 22일에는 상백,백산,가회,삼가 등 다섯 면의 주민 3만여 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질서있는 평화시위를 벌였음에도 일본군이 무차별 발포하여 42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같은 날 초계면에서도 유림과 학생의 주도로 8천여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벌이자 역시 일본군이 발포하여 5명이 죽고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
전북 남원 학살 사건 [ 편집 ]
남원군 덕과면장이었던 이석기가 관청 행사였던 식수 기념식이 예정되어 있던 4월 3일을 기해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19개 면에 격문과 참가 취지서를 보냈다. 나무 심기를 핑계로 군중 800여명을 모아 식수기념식이 끝나자 19개 면장 등이 만세를 선창하고 군중들이 호응하여 남원-전주 간 도로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소식은 곧 남원군 전체에 퍼졌으며, 다음날인 남원읍 장날에 장터에서 또다시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장날 오후에는 광한루 앞 광장에서 군중 1000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자 수천여명의 주민들이 다시 합세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읍내 전체가 시위 군중으로 가득했다. 일본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이 과정에서 방진형(房鎭炯), 방명숙(房明淑) 등 8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황일환(黃日換), 이성기(李成器), 형갑수(邢甲洙) 등 20여명이 체포되었다.[20]
익산 이리장날 만세운동 [ 편집 ]
기독교인이었던 군산 영명학교 교사 문용기가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독립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일본군 보병중대가 주둔하여 검문검색이 심해서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는 박도현과 장경춘등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과 몰래 만나 4월 4일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였다. 12시 쯤 이리 장터에는 기독교인 등 300여 군중이 모였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들은 문용기의 지휘에 의해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열을 지어 시가를 행진하였다. 군중의 수가 점차 늘어 1천여 명이 되고, 그에 따라 기세가 오르자 일본 헌병대가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였다. 일제는 이에 소방대와 일본인 농장원 수백명을 동원하여 창검과 총·곤봉·쇠갈고리를 휘두르며 무력으로 진압했다. 시위 군중이 이에 대항하여 계속 만세운동을 진행하자 급기야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사상자가 속출했다.[21]
이 때 문용기가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군중의 앞으로 나아가 독립운동의 정당성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러자 일본 헌병이 칼을 휘둘러 그의 오른팔을 베어 태극기와 함께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쓰러지지 않고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전진하자 이번에는 왼팔마저 베어버리니 그는 두 팔을 잃은 몸으로 뛰어가며 계속 만세를 외쳤다. 이에 격분한 일본 헌병은 끝내 추격하여 사정없이 난자하였고, 그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끝내 순국하였다.[22]
군산 3·5 만세운동 [ 편집 ]
전북 군산에서 영명학교 졸업생 김병수가 1919년 2월 26일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이던 이갑성과 접촉하여 독립선언서 200여장을 건네받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영명학교, 멜본딘여학교(현 군산영광여중·고교), 구암교회 교인, 시민 등 500여명이 3월 5일 시위에 참가하였다. 윌리엄 린튼은 군산의 만세운동을 지도하였는데, 시위는 이후에도 28차례에 걸쳐 계속되어 시민 3만여명이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당시 일제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53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실종되었으며, 195명이 부상을 당해 만세운동으로 인한 사상자로서는 전라북도 내에서 가장 많은 규모였다. 이는 3·1운동 이후 한강 이남 지역에서 최초로 벌어진 만세운동으로 그 의미가 크다.[23][24]
만주 용정 만세운동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용정 만세운동 입니다.
만주 지역에서의 대표적인 만세시위는 3월 13일 용정에서 3만여 명이 참가한 시위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시가행진을 하자 중국군대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일제는 3·1 운동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하여 심양에서 조선인회를 열었다. 조선인회에 참석한 한국인들은 일본인과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였다.[25]
피해 규모 [ 편집 ]
운동의 참여 인원에 대하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은 차이가 있다.
일본인 학자 야마베 겐타로에 의하면 운동의 참여자는 50만 명 이상이라고 추정한다.[2] 한국의 학자 신복룡은 46만 명 정도로 파악하였다.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만세를 부른 사람의 수효는 46만 3086명 정도였다.[1] 그런데 역사학연구소의 《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서해문집, 2004)와 한영우의 《다시찾는 우리역사》(경세원, 2002년)에서는 참여 인원 2백만여 명, 전국의 만세 시위 건수 1,542 회, 사망 7,509 명, 부상 15,961 명, 체포 46,948 명의 규모로 서술한다.[26][27] 참여 인원에 대하여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전거로 삼은 사료에서 비롯한다. 역사학연구소나 한영우 등은 그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실린 통계를 전거로 삼았다.[28] 많은 한국의 교과용 도서에서도 대체로 이 통계를 활용한다.[29]
그런데 3·1 운동을 진압하였던 조선총독부 쪽의 통계는 이와 크게 차이 난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조선헌병대사령부와 총독부 경무총감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선소요사건일람표》(朝鮮騷擾事件一覽表)[30][31]를 작성하여 3월 1일에서 4월 말까지의 상황을 10일 단위로 정리하였다. 이를 합산하면 4월말까지 조선인 시위 참여자는 58만 7,641명(50명 이하 참여자의 경우는 제외), 검거자 26,713명(당일 13,517명, 추가 검거 13,196명), 시위 참가자의 사망 553명, 부상 1,409명이라고 집계되어 있다. 또한 일본군과 헌병, 경찰의 경우 사망 9명, 부상 156명으로 집계하였다. 한편, 조선헌병사령부가 발간한 《소요사건 검거건수 조사표》(騷擾事件 檢擧件數 調査表, 1919.4.21-1919.4.30)[32]에서는 총 검거 건수를 26,713 명으로 집계하였다.
박은식의 통계는 3월에서 5월까지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고 조선총독부의 것은 4월 말까지를 정리한 것이어서 단순한 비교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장렬하게 투쟁하고 과정에서 가혹한 탄압받았음을 기억하려는 독립운동 진영과 그들의 통치에 저항한 사람이 적었으며 탄압 또한 질서유지를 위한 정도였음을 강변하기 위한 통치자측의 의도가 일정하게 반영된 수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쪽 통계를 보아도 3·1 운동은 일제 강점 이후 유래가 없는 규모의 독립 운동이었다.
만세 운동 자제 활동 [ 편집 ]
3.1운동 진압 자제단 발족 신문 기사
3·1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폭력의 조짐이 보이자 박중양은 4월 6일 대구에서 자제 내지는 진압, 시위 참여자를 설득, 귀가시키기 위해 자제단을 조직하였다. ‘자제단 발기인회’가 조직될 때 그는 자제단 본부를 구성하고 단장이 되었고, 대구 자제단 본부장도 겸임하였다. 대구부청 앞에서 조직된 자제단 조직 성명서에서 박중양은 자제단 결성 취지에 대해 자제단은 ‘경거망동으로 인하여 국민의 품위를 손상케 하는 일이 없도록 상호 자제케 함’을 목적으로 한다면서, ‘소요(3·1 운동)를 진압하고 불령한 무리를 배제’하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후 경북도 참여관 신석린이 주동이 되어 안동, 성주, 군위, 김천 등지에 자제단 지부가 조직되었다. 5월에는 경상남도에도 부산, 밀양, 창원, 사천, 통영 등지에 자제단이 구성되었으며, 6월에는 청주, 충주, 천안, 아산, 제천, 청주 등지에 자제단 지부가 결성되고 6월 27일 옥천군 옥천면에서 정석용에 의해 옥천 자제단이 조직되었다.
이들 자제단은 12월까지 각지에서 3.1 운동 참가자들에게 무력 시위를 자제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 호소하고나 만세 운동을 해산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반응 및 파급 효과 [ 편집 ]
만세 열기는 5월까지 계속되었다. 5월 31일 윤치호는 7,8명의 젊은이가 종각 역 근처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것을 목격했다. 일본 헌병이 들이닥치자 그 중 한명이 주머니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이를 지켜본 윤치호는 그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눈을 뜨고 지옥으로 뛰어들수 있는 그 용기에 감격[33]’하였다. 그러나 이런 행동만으로는 독립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윤치호는 3.1 운동이 국내외에 한국인에 대한 시각을 개선시켰다고 평했다.
한국인들 스스로 민족의식을 깨우치는 계기를 마련했고, 조선의 멸망을 당연시하고 일본에게 긍정적이던 국내 체류 미국 선교사들의 시선을 개선시켰다고 평가했다. 또한 일본의 잔인한 진압이 미국인 선교사들과 미국 지식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했다.[34]
국내 [ 편집 ]
수원에서 만세운동주도한 기생조합의 김향화
3.1운동을 계기로 민주 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온 근대 국민 국가 수립운동이 첫 결실을 맺었다.[35] 삼일운동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은 독립을 향한 마음이 서로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만주지방에 있던 독립운동가들과 삼일운동으로 인해 상해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세계적으로 독립의 결의를 나타내 각 국가의 국민에게 한국의 독립의지를 전파하였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승전국은 이런 한국의 뜻을 받아들여 대한민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3.1 만세 운동의 실패를 예견한 윤치호는 만세 운동이 한참 진행 중이던 3월 2일자의 일기에서 학생들을 앞세운 뒤, 만세 대열에서 슬그머니 발을 뺀 기독교, 천도교계 인사들을 음모꾼들이라며 규탄했다.[9] 3ㆍ1운동 후 구치소에 수감되는 여학생들의 모습에서는 일제 경찰에 대한증오와 분노로 밤새워 괴로워했다.[9] 이후 3월 5일~3월 7일 그는 시내를 다니며 만세 시위 직후의 동태를 파악했다. 3월 7일 기자 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은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 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마는, 만약 약자가 강자에 대해서 무턱대고 대든다면 강자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약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됩니다. 그런 뜻에서도 조선은 내지에 대해서 그저 덮어 놓고 불온한 언동을 부리는 것은 이로운 일이 못됩니다. ” — 윤치호, 경성일보 1919년 3월 7일
이 사건을 계기로 윤치호는 심한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완용, 예종석 등의 3.1 운동 반대 발언이 알려지면서 이완용, 예종석 등에 대한 성토 여론이 조성되었다.
조선총독부 통치정책 변화 [ 편집 ]
3·1 운동을 계기로 강경책 내지는 군사, 경찰에 의한 무단 통치를 하던 조선총독부는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3·1 운동에 의해 일본 정부나 총독부 측에서는 기존의 통치 방식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군인인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파견을 기점으로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그 결과 단체 활동 및 언론 활동이 허가되었고 아주 기초적인 초등 교육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한 것으로, 친일파 양성을 통해 한민족의 분열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식민 통치를 철저히 은폐하기 위한 통치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축출될 때까지 문관 총독은 단 한 명조차도 임명되지 않았고,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지만 사실상 명칭만 변경된 것으로 경찰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으며, 독립운동가 색출을 위한 전문적인 ‘고등 경찰제’를 도입하였다. 일본은 문화 통치를 통하여 자신들을 조선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소수의 친일관료들을 키워 조선인을 이간하여 분열시키고, 민족의 근대 의식 성장을 오도하며, 초급 학문과 기술 교육만을 이용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도움이 될 인간을 대량 양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 편집 ]
3·1 운동에 대한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건 명칭은 “조선만세소요사건”(朝鮮萬歲騷擾事件)이고, 기본적 시각은 ‘소요’(뭇사람이 들고 일어나서 폭행·협박을 함으로써 한 지방의 공공질서(公共秩序)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평가는 다른 점도 있다. 경기도 경찰부 경찰부장을 지낸 지바(千葉了)는 자신의 글 〈조선독립운동비화〉에서 3·1 운동에 대해 “민족 본능의 지하수의 분출” 또는 “천변괴이의 상”이라고 표현하였다.[13]
해외 [ 편집 ]
뉴욕타임즈는 1919년 3월 13일자에서 “조선인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운동이 널리 퍼져나갔으며 수천여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고 기록했다. AP통신은 “독립선언문에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보도했다.[36] 이운동의 시작부터 3.1운동에 관한 모든 한국의 상황을 해외에 전달하는데는 캐나다의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영향이 매우 많았다.[37]
비판적 반응 [ 편집 ]
윤치호는 3.1 운동을 순진한 애국심에 기초한 민족주의자들의 무모한 행동으로 파악했다.[9]
3.1 운동 당시 유언비어와 선동이 있다는 비판이 당대부터 제기되었다. 기독교 운동가이자 이화여자중학교 교사였던 김창제는 윤치호에게 자신이 3.1 만세 운동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로, 만세 운동 당시 누군가에 의해 각종 미신과 유언비어가 확산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3.1 운동에 대해 애국적이기는 하지만 투기, 미신, 허황된 말, 음모에 기초하고 있어서 동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38] 김창제는 누군가 조직적으로 유포시킨 유언비어가 평화적인 시위를 무력 시위로 만들고 급기야는 일본군의 잔인한 학살을 유도했다며 비판하였다.
김창제는 또한 다수가 참여해서 움직이는 일이 반드시 선량한 일이 아니라고 비판을 가하였다.
“ 다수의 목소리가 곧 주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도 다수의 요구잖아요.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얘기도 사실이 아닙니다. 주님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도 바리새인과 헤롯의 연합이었잖아요.[38] ”
김창제는 만세 시위가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점을 지적하였다. 김창제는 자신이 3.1 운동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뒤, 다수의 생각,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아울러 김창제는 다수의 선택이 무조건 올바른 선택이고 민주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을 반대했다. 윤치호는 그의 견해에 적극 공감하였다. 수원역 인근 수원면에서 야간에는 상인과 노동자가 합세하여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지고 창유리 등을 파괴했다.[39]
기타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삼일절 입니다.
1946년 3월 1일 제27회 기념식을 시초로 국가 경축일로 지정되고[40],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관한법률>을 공포함으로써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사진 [ 편집 ]
3.1운동 당시에 촬영한 사진은 현재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다.
몇 가지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데 하나는 <
>라는 사진집이다. 3.1운동을 설명할 때 가장 잘 인용되는 사진들이 모두 이 사진집에 들어있다. 이 사진집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1919년 10월에 만들어진 버전과 192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두 버전의 차이는 1920년본이 1919본에 비해 적십자회 단체사진이 추가되는 등 페이지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사진은 우리가 흔히 스코필드 선교사가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스코필드 선교사가 촬영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1919년본은 일본 외무성 소장 <<불령단 관계잡건>> 조선인의 부 – 재상해지방 1권에 편철되어 있으며, 미국 컬럼비아대학 버크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20년본은 독립기념관과 미국 USC 등에 소장되어 있다.(아래 사진은 USC 소장본이다.) 또 하나는 일본 신문에 게재된 사진들이다. <<오사카매일신문>>이나 <<오사카조일신문>> 등에서 3월 4일부터 3.1운동 관련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하는데, 서울, 평양 등지의 시위 사진이 인용되고 있다. ((기생으로 잘못 알고 있는) 여학생들의 만세 시위 참여 사진이 여기서 나온 것) 이 사진이 실제 시위 장면을 찍은 것인지 논란의 여지도 있지만 3.1운동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되고 있다.[41]
An immense procession of Korean demonstrators, shouting “Mansei” afrer presenting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o the American Consulate. The Consulate building appears in the background―Seoul (어마어마한 행렬의 조선인 시위대가 미국 독립선언 발표 후 만세를 외치고 있다. 미 영사관 빌딩이 배경에 나타나 있다.)
Korean spectators viewing the Korean flag on the Independence Memorial Arch. The flag which was invisible before March first of 1919 is now very clear. (조선인 관중들이 독립문 위의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다. 1919년의 3·1운동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국기가 지금은 흔히 보인다.)
Thousands of enthusiastic Koreans, including women and girls, shouting “Mansei” with hands in the air outside the palace in Seoul. (여성과 소녀를 포함한 수천명의 열렬한 조선인들이 서울 성 밖에서 손을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Demonstration for independence in the Park. The Koreans are seen shouting “Mansei” with their hands up in the air. Not a single man is armed, (공원에서의 독립 시위. 조선인들은 손을 들고 만세를 외치는 듯 보인다. 무장을 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
For the cause of freedom. Acts of Japanese torture and barbarism. (자유를 위하여. 일본의 고문과 잔혹한 행동.)
A corner of the park where Japanese soldiers are stationed to suppress Korean demonstrations. (일본군이 조선인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공원 모퉁이)
A Korean girl student killed by the Japanese police and abandoned at the roadside while traveling from Seoul to Suwon. (서울에서 수원으로의 여행 중 한 조선인 여학생이 일본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채 길거리에 버려져 있다.)
For the cause of freedom. Acts of Japanese torture and barbarism. (자유를 위하여. 일본의 고문과 잔혹한 행동.)
For the cause of freedom. Acts of Japanese torture and barbarism. (자유를 위하여. 일본의 고문과 잔혹한 행동.)
The pitiful widows weeping after their husbands were massacred by Japanese soldiers. (남편들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뒤 가엾은 과부들이 울고 있다.)
The Ruins of Hwa Su Ri village after the Japanese soldiers destroyed by fire and murdering its inhabitants. Now nothing remains but a huge heap of broken tile, dirt, and brick. (일본군에 의해 불탄 화수리 마을과 그들에 의해 살해당한 주민들. 이제 거대한 기와더미와 먼지, 벽돌 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For the cause of freedom. Acts of Japanese torture and barbarism. (자유를 위하여. 일본의 고문과 잔혹한 행동.)
Japanese policeman taking Korean women to prison for shouting “Long Live Korea.” (일본 경찰이 독립 만세를 외친 조선인 여성을 감옥으로 끌고가는 중이다.)
A view of the remains of earthenware in Wha Su Ri village after it was destroyed by Japanese soldiers. (일본군에 의해 파괴된 화수리 마을에 남겨진 도기의 모습)
Funeral for those who have been massacred by Japanese soldiers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독립 운동에서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을 위한 장례식)
Remnants of the Chai Am-ni(Jeam-ri) village, Suwon, 31 houses including the church out of 39 in all was burned to the ground by the barbarous Japaneses soldiers. (약 39채의 교회를 포함한 31채의 집이 잔혹한 일본군에 의해 잿더미가 된 수원 제암리의 흔적)
Children of the Su-Chon village four or five miles from Chai Am-ni where the wholesale murder of a number of Koreans occurred, whose home and food had been destroyed by the Japanese soldiers, wandering in the fields to pick herbs to sustain their lives. (몇몇 조선인에게 일어난 대량학살이 일어난 제암리로부터 약 4~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촌마을에서 집과 음식을 파괴당한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약초를 뜯으러 풀밭을 돌아다니고 있다.)
For the cause of freedom. Acts of Japanese torture and barbarism. Buttocks beaten into mesh with 90 blows of bamboo. (자유를 위하여. 일본의 고문과 잔혹한 행동. 대나무로 엉덩이를 90번 구타당했다.)
This man is more fortunate. He has a bayonet stab in this eye. He was taken into one of the mission (Christian) hospitals, where he received treatment. The picture was taken on week after the man received wound. (이 남자는 운이 좋다. 그는 눈이 총칼에 찔렸다. 그는 치료받고있던 선교병원에서 사진 찍혔다. 사진은 남자가 상처를 입은지 일주일 뒤에 찍혔다.)
After the first surprise the Japanese authorities turned loose the soldiers on the Koreans. This picture shows how one of them was slashed and cut up all over the body by merciless Japanese soldiers. (일본 당국이 조선인을 공격한 첫번째 기습 후. 이 사진은 조선인 한명이 무자비한 일본군에 의해 어떻게 온몸이 베어지고 찔렸는지를 보여준다.)
Another piece of Japanese brutality. The leg of a Korean is beaten flat after being shot at. (일본의 잔혹성의 또다른 부분. 한 조선인의 다리가 총에 맞은 뒤 납작하게 두들겨져있다.)
From the Japanese domination(일본의 지배로부터)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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