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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처 이민아 이혼이유 – 설레임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장관을 무릎굻게 만든 딸. 큰아들의 죽음, 작은 아들의 자폐를 겪으면서 청소년 사역에 헌신한 이민아. 갑상선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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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gg7.tistory.com

Date Published: 8/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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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딸, 이민아의 삶 이야기 – 뉴스프리존

김한길 전 부인의 한 많은삶(이어령의 딸, 이민아)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와 헤어졌다. 암(癌) 선고를 받는다. 다섯 살 아이는 특수자폐 판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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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freezone.co.kr

Date Published: 1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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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목회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한길(1981년 결혼; 1986년 이혼) 제프 스펜서 뷰캐넌. 자녀, 김유진 (장남) 장진성 (차남) 장진영 (삼남) 장재연 (삼녀). 가족, 이어령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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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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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이민아 이혼사유 이민아 장례식장 김한길 – 팔색가십

김한길 이민아 이혼사유 이민아 장례식장 김한길 … 기독교 지성인 이어령의 암 투병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죽음과 생명이 한데 얽혀 있다는 자각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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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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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김한길 이민아

  • Author: 스피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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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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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처 이민아 이혼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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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처 이민아 이혼이유

김한길 재혼 최명길 러브스토리

두 번의 이혼, 아들 잃고, 끈질긴 암과의 사투… 세상을 울린 파란만장했던 삶

이어령 전 장관 딸 이민아 변호사(목사), 목숨건 사랑도 끝이 있었다.

2014년 3월 15일 이민아 목사(53)가 세상을 떠났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장관을 무릎굻게 만든 딸. 큰아들의 죽음, 작은 아들의 자폐를 겪으면서 청소년 사역에 헌신한 이민아. 갑상선암, 망막 박리에 이어 위암 판정을 받고도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소망의 빛을 전하고 싶다”며 죽기 직전까지 사역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보는 데 사용하며 ‘땅에서 하늘처럼’ 살던 그가, 땅의 일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이민아 변호사(목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죽을 만큼 사랑한 남자,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저는 참 말을 잘 듣던 아이였어요. 마음이 약해서 반항을 못했어요. 그런데 언젠가는 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때의 진통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기가 힘들 만큼 마음이 약해서 자신의 영역을 설정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문제였던 거죠. 제가 처음으로 제 의지대로 했던 것이 바로 남편을 선택하는 일이었죠.”

가진 것 없는 학생 부부의 생활은 빠듯했다. 당시에는 유학생의 공식적인 취업이 금지되던 때라 남들이 다 꺼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은 고되기만 했다.

그 와중에 첫째 아들 유진이가 태어났고, 이민아는 아이를 키우며 헤이팅스 로스쿨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도 제가 한 선택이 잘한 것이라는 걸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힘들다는 사실조차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저를 밀쳐내신 게 아니라 제가 아버지를 밀쳐내고 떠나왔던 거더라고요.”

<이민아 김한길 이혼, 아들의 죽음, 암…이민아 변호사 다시 태어나다 >

4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 할때까지 아버지에게 투정 한 번 안 하던 이민아는 이혼하자마자 아버지 앞에서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를 망신시킨 딸이 된 것 같아 무척이나 괴로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혼하고 돌아온 딸에게 화를 낼 줄 알았던 아버지는 “애가 말랐다. 밥 좀 먹여”라는 말로 마음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때 이민아 변호사는 자신이 지금껏 아버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수년간 쌓여왔던 오해와 거리감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혼 후 이민아 변호사는 학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이를 헤이팅스 로스쿨에 부속된 탁아소 겸 학교에 맡겨놓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민아 변호사는 본인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편두통, 위궤양, 요통, 불면증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유진이가 16세가 됐을 무렵 아이도, 이민아 자신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아이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기까지 1년간 요란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 외에는 늘 긍정적이고 밝았던 아이.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IQ 159의 똑똑하고 멋있는 청년이었던 유진이는 26세 되던 해 여름, 갑자기 쓰러져 코마 상태에 빠진 뒤 19일 만에 병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재혼한 후 낳은 둘째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은 것은 이때 즈음이었다고 한다. 열 두살이 되도록 아이는 엄마의 지시를 이해하거나 따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건너가 특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이미 초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겼고 중학교도 1년을 다니다가 쫓겨난,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던 하와이 크리스찬 스쿨은 개인적인 관리가 필요한 둘째 아들을 받아주는 대신 그녀가 상근 보조교사로 일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엄마의 정성이 통했는지 1년이 흐르자 둘째의 자폐 증세가 기적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폐증은 불치병에 가까워 회복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둘째 아이는 이제 운전도 하고 일반적인 생활도 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민아에게는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망막박리’ 현상이 일어나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수술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이민아는 물론 이어령 교수 부부도 절망에 빠졌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무신론자, 이성주의자임을 자처하던 70대 학자, 이어령은 2007년 개신교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어령은 자신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민아 변호사는 망막박리 7개월 만에 찢어진 망막이 다시 붙는 기적을 경험했으나 다시 앞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찾아갔을 때 백내장 진단을 받고 현재는 수술한 후 양쪽 눈 시력을 모두 회복했다.

하지만, 2004년 두 번의 이혼, 아들 잃고, 끈질긴 암과의 사투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한길 재혼 최명길 “러브스토리”

1995년 3월 22일 소설가이자 당시 연예정보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김한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각종 정당 및 정치 행사에 자주 참석하고, 이 때문에 정계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가끔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최명길 본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편이며 정치에 관심은 없는 모양이다. 참고로 최명길은 김한길보다 10살 연하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어마어마한 미인이었다. 보면 심장이 멎을 정도로 거의 김태희급이었다. 그래서 김한길 도둑놈이란 말이 유행이 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첫 데이트에는 김한길이 뽀뽀나 하자 등등 강하게 어필하여 최명길의 맘을 잡았고 그렇게 적극적인 대시로 결혼까지 성공을 하였다고 한다. 황신혜는 언니 최명길이 김한길과 전화만 하면 목소리가 완전 바뀌어 좀 웃겼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렇게 두사람은 결혼 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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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10주기 기일 앞두고 떠난 이어령… “하늘에선 오해 풀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연합뉴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그리고 정말 보고 싶다.”

26일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게 ‘깨물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인물은 아마도 고 이민아 목사(1959∼2012년)일 것이다. 고인이 지난해 펴낸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침 고인은 딸이 세상을 떠난 10주기 기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별세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생전에 냉정하게 대한 딸한테 하늘나라에서나마 아버지의 정을 전해주려고 때를 맞춰 타계한 것이란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이민아 목사는 고인과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영인문학관 관장) 사이의 1녀2남 중 맏이로 태어났다. 22세인 1981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입학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수재였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부모의 걱정과 만류에도 첫사랑이자 무명의 청년 작가였던 김한길(전 국회의원)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생전에 부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영인문학관 관장)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세계일보 자료사진

성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민아·김한길 부부는 5년 만에 이혼한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유진은 버클리대를 다닌 수재였으나 2007년 돌연사했다. 이 목사는 물론 할아버지인 고인한테도 크나큰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2011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목사는 “지금도 내 아들이 죽은 원인을 모른다. 감기 걸린 것 같다더니 그대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년 동안 매일 울면서 신(神)을 원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신을 탓한 것도 잠시, 이 목사는 아들의 사망을 계기로 종교에 귀의한다. 원래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법률가였던 그가 신학을 공부하고 2009년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다. 이후 미국,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하다가 위암에 걸려 2012년 3월 15일 타계했다.

2012년 딸 이민아 목사가 위암으로 타계한 뒤 빈소를 찾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슬픔에 잠긴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생전에 쓴 책 ‘땅끝의 아이들’(2011)에서 이 목사는 아버지 이어령을 원망했다. “자기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버지가 글을 쓰고 있는 서재 문을 두드렸다. 오늘 따라 특별히 예쁜 잠옷을 입었기에 아버지가 ‘굿나잇’ 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 ‘오늘도 역시’ 하는 생각에 시무룩해져 돌아섰다.”

책에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버지 서재에 숨어들어가 술을 마셨다”는 고백도 나온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목사는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지고 살며 늘 바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그 팔에 매달려 사랑받고 싶은 딸이었는데, 배고프고 피곤한 아버지는 ‘밥 좀 먹자’ 하면서 나를 밀쳐냈다”며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26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모습. 연합뉴스

2012년 딸이 암으로 사망한 뒤 고인은 이 대목이 너무나 가슴에 걸렸던 것 같다. 지난해 개정판이 출간된 고인의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2015)’는 이 목사에게 뒤늦게 띄우는 사랑, 그리고 후회의 편지다. 마침 오는 3월 15일은 이 목사의 10주기 기일이다. 그 보름 좀 넘는 기간을 못 기다리고 기어이 딸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간 걸 보면 고인의 한(恨)이 너무나 컸던 모양이다. 부녀가 부디 10년 만에 재회해 오해를 풀고 정도 나누길 기원하며 고인이 생전에 딸 앞으로 쓴 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어리석게도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좋은 피아노를 사주고 널 좋은 승용차에 태워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빠의 행복이자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느낀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고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그리고 정말 보고 싶다.”

김태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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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딸, 이민아의 삶 이야기

그의 신앙 그리고 이민아의 삶 이야기

김한길 전 부인의 한 많은삶

(이어령의 딸, 이민아)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와 헤어졌다. 암(癌) 선고를 받는다.

다섯 살 아이는 특수자폐 판정을 받는다. 실명(失明) 위기가 닥친다.

가장 사랑했던 맏아들은 스물다섯 꽃 같은 나이에 돌연 사한다….이토록 이민아(52)에게 시련은 일상이었다. 첫 결혼 후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웃은 날보다 가슴 치며 운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민아는 말한다.

“모든 시련과 고난이 내게는 축복이었다.”고. 미국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민아는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 장관의 딸이다. ‘저항의 문학’ 이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등 160권이 넘는 책을 펴내며 평생을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사유, 지적 작업에 매달려온 이어령 ‘교수’를 신(神) 앞에 무릎 꿇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무신론자, 이성주의자임을 자처하던 70대 노장이 2007년 개신교 목사에게 세례를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딸의 실명이었다.’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이어령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 중에서).

자식의 고난 앞에서는 지성도, 과학도 힘을 잃는 걸까. 기적은 과연 있는 걸까.4년 전 버클리대학에 다니던 맏아들 유진을 잃은 이민아는 2009년 목사안수를 받은 뒤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건강이 나빠져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그를 지난 4일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만났다.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그녀는 고(故) 하용조 목사의 영결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민아가 한 권의 책을 건넸다. ‘땅끝의 아이들'(시냇가에 심은 나무). “고난의 시절에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사랑의 기적, 그 여정”이라고 말했다.”내 안에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6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이민아 변호사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딸의 건강상태를 걱정한 어머니 강인숙 교수가 “제발 그만 끝내라”고 말리자 “난 괜찮아요. 하고 있던 말을 중간에 멈출 순 없잖아요” 했다.맏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그녀의 모습은 평안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주세요. 그 사랑을 아이가 강렬히 느끼게 해주세요.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 만 있어도 아이들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적

―왜 ‘땅끝의 아이들’인가.

” 술, 마약, 폭력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을 잃은 아이들, 그 아이들을 살려낼 방법을 몰라 절망에 빠진 부모들의 이야기다. 내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이혼, 갑상선암, 아이의 자폐, 맏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나 역시 땅끝의 아이였다. 그들이 참사랑,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책 표지에 ‘간증집’이라고 적었다.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면 거부감이 생긴다. ” 내가 변호사였다. 재판에선 증언을 한다.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만 말할 수 있다. ‘간증’이란 말은 나도잘 모르겠고, 영어로 테스티모니 (testimony), 그러니까 증언집이라고 하는 게 맞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수학공식, 혹은 약처방, 실용적인 지침 같은 것은 아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건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고 절망에 빠져 있는 단 한 사람, 한 가정만이라도 희망을 되찾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와의 인연이 깊다. 부친 이어령 교수도 하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내가 갑상선 암이 재발됐던 1996년,

하 목사님이 LA의 한 교회에 오셨다. 하나님 믿으면 복받는다고 해서 믿었는데 암이 재발되니 내가 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웃음)

그런데 설교 중에 하 목사님이 자기도 아프다고 하시더라. 얼마나 아프면 강대상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설교를 하셨다.그렇게 아픈 지 30년이라더라. ‘ 목사도 아픈가?’ 하면서 쳐다봤다. 그런데 그 얼굴에 평안과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이 갖고 있던 사랑의 에너지, 그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세상에 쏟아 붓고 가신 분이다.”

―장례식 때 많이 울었겠다.

“4 년 전 내 아들 유진이를 하늘나라에 보내던 날 마지막으로 울었고, 그 이후로는 어떤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는다. 육신의 껍데기를 벗었을 뿐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신 건데 울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내 아들 유진이의 묘비명도 ‘Resting in His Father’s house’ (아버지의 집에서 쉬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나.

“‘나니아 연대기’를 쓴 영국 작가 C.S 루이스는 ‘바다의 파도 끝에 물이 잠깐 멈추는 순간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맏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한 자기 위안으로 들린다. “지금도 내 아들이 죽은 원인을 모른다. 감기 걸린 것 같다더니 그대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 년 동안 매일 울면서 신을 원망했다. 그렇게 원망 가득한 마음으로 유진이 또래의 비행청소년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가게 됐다.떠밀리듯 그 아이들을 만났다. 신기한 것은 그 아이들을 유진이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돌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검사, 변호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문제 상담활동을 열심히 해왔지만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가르는 벽이 내 마음에 있었다. 유진이가 죽은 뒤 그 벽이 사라진 거다. 아이들을 엄마의 사랑으로 품어주었더니 변하기 시작하더라. 술과 마약을 끊고 부모에게 돌아가더라. 서른 명의 아이들이 나를 ‘마마미아’로 불렀다. 유진이가 그리워 내가 울면 아이들이 나를 안고 기도해줬다. 유진이의 죽음이 한 알의 밀알로 내 가슴에 떨어져 이기적이었던 나를 세상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했다.”

―그렇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유진이는 죽지 않았다. 아이들을 통해 나는 매일 유진이를 만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비밀이 그 속에 있다.”

◆ 이어령의 딸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이어령 교수,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의 1녀2남 중 맏이로 태어난 이민아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수재였다. 그런 그가 1981년 졸업하자마자 무명의 청년작가 김한길(전 문화부 장관 현 민주당 대표)과 미국으로 떠났다. 걱정하는 부모의 눈길도 뿌리친 채 정말 자신을 사랑해줄 남자와 새로운 삶을 꿈꿨다. 이 민아는 자신의 청소년기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오늘 눈을 감고 아침에 안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은 어딘가 딴 곳에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에맞춰가면서 가상의 인간으로 살고 있는 듯한 회의에 빠졌다….’(‘땅끝의 아이들’ 중에서)

―‘이어령의 딸’로 사느라 진짜 이민아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썼더라. 집안 망신 안 시키려고 공부했다고 썼다.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버지 서재에 숨어들어가 술을 마셨던 얘기도 나온다. 이어령, 강인숙 교수로서는 꽤 당황스러울 것 같다. “아버지가 이 책의 원고를 가장 먼저 봐주셨다. ‘괜찮다’고 하시더라.(웃음) 잘 읽어보면 부모님을 원망하는 내용이 아니다. 10대의 굴절된 렌즈를 통해 부모를 바라봤던 나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그시기 아이들의 눈에 어른들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은 한국 부모로서 거의 완벽한 분들이었다. 문제는 사랑에 대한 어른과 아이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지고 살며 늘 바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나는 그 팔에 매달려 사랑 받고 싶은 딸이었는데, 배고프고 피곤한 아버지는‘밥 좀 먹자’ 하면서 나를 밀쳐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밥 굶지 않고 자란 아이의 배부른 푸념으로 들릴 수 있다.

“사소한 어긋남에서 부모와 자녀의 단절이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의 사랑 방식을 알지 못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또한 부모와 엄청난 단절과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 이어령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아는 사람 중 자기 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참 좋았다. 존경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좋았다. 일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있었고, 돈을 많이 벌려고 일을 하신 적이 없다. 창조, 새로운 지식을 알고 배우는 것,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아버지의 외모를 많이 닮았다.

“둘 다 완벽주의자다. 아버지처럼 문학을 했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책도 엄청나게 읽는다. 토씨 하나 잘못된 문장을 견뎌내지 못했다.(웃음)”

―어머니 강인숙 교수는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영인문학관 관장으로 활동한다.“엄마의 집은 언제나 질서가 있고 안전했다.

뭐든지 잘하셨고 빈틈이 없었다. 속옷은 한국 면(棉)이 최고라며 지금까지도 직접 딸의 속옷을 사서 부치는 분이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숨어 들어와 위스키를 훔쳐 마신 적이 있다”며 그녀는 활짝 웃었다.

◆첫 결혼의 실패

―김한길과의 첫 결혼에 실패했다.

책에는‘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한 사랑이었다’고 썼다.“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사랑을 첫사랑에서 찾았다고 착각했다. 이것만 있으면 딴 건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고 믿고 미국으로 왔는데 그 남자의 세계 또한 나와는 단절돼 있더라. 스물두 살, 너무 어리고 철이 없을 때이기도 했다.”

―5년간 지속된 결혼생활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아이 낳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흑인들도 마다하는 일자리, 밤을 새우는 주유소 일을 최소 일당을 받으며 했고 낮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니 남편은 자존심에 더욱 이를 악물었을 테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지쳐갔다.”

―책에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 썼다.

“부부가 있다. 남편은 주말에 차고를 깨끗이 청소하며 부인의 가사를 돕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부인은 주말만이라도 남편과 손잡고 바닷가를 거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소한 어긋남이 쌓여 파경으로 치닫기도 하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걸 몰라서 남편과 힘들었다. ‘여보 내가 맛있는거 해놨어’ 하면 ‘나 지금 밥 먹을 기운 없어’ 하고, ‘나랑 얘기 좀 해, 나 안 좋아?’ 하면 ‘왜 이렇게 귀찮게 해!’ 하면서 음성이 높아졌다. 그러면 어릴 때 아버지가 ‘원고 마감시간이야, 얘 좀 데려가!’ 하고 소리질렀을 때처럼 가슴이 찢어졌다.”

―원망은 없으신가.

“전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유진이를 함께 낳았고, 아들에겐 정말 좋은 아버지였다. 유진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로서 최선의 역할을 다한사람이다. 나는 결혼이 언약이라는 것을 몰랐다. 지금 많은 젊은 사람들이 연애지상주의에 젖어 있는데, 나 또한 그랬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사랑이 식었는데 억지로 맞춰서 사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문화적인 거짓말에 속았고 자기애도 강했다.”

―지금의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그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건가.

“나 자신을 죽이고 남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의 십자가 사랑이다. 그 사랑의 에너지를 돌처럼 딱딱한 내 심장에 끊임없이 충전 받아야만 말썽꾸러기 자식에게, 원망스럽기만 한 배우자에게, 생판 모르는 이웃에게 폭풍 같은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태양, 그 햇살이 없이 내 힘만으로 화초를 키울 수 없다는 뜻이다.”

◆종교와 사교

―재혼해서 얻은 둘째 아들은 특수자폐 판정을 받았다.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 초등학교를 다섯 번 옮겼고, 중학교도 1년 다니다 쫓겨났다. 하루도 내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이가 밉고, 가족도 싫더라. 그때 깨달았다. 내가 내 아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회개하고 하와이에 있다는 크리스천 스쿨을 찾아갔다. 그 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아이를 내 몸처럼 사랑하려고 기도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아이의 자폐증상들이 봄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칵테일’이라고 부를 만큼 한꺼번에 7~9개의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자폐가 그렇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지성인 이어령 교수가 세례를 받은 계기가 당신의 실명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딸의 불행 앞에서 신에게 무릎 꿇고, ‘딸의 눈을 뜨게 해주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언한다. 그리고 7개월 만에 딸의 망막박리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버지가 나더러 간곡히 부탁하셨다. 절대로 밖에 나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모든 사람이 널 비웃고 우리를 박해할 거라고. 기적은 구제의 사인이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지 않으냐고 하셨다.맞다. 기적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일 뿐 종교의 본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랑의 실천, 복음이 없는 기적은 사교(邪敎)에 불과하다.”

―2년 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자인 당신에게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가. “나는 우리 한국교회가 예수가 세웠던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형화, 세속화되어 일어나는 온갖 잡음과 분란은 지금 이 순간이 한국 교회가 새롭게 변해야 할 시점임을 암시하고 있다. 대형교회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에는 너무나 커버린 조직에서 가족 단위의 교제, 사랑과 돌봄이 일어나기 어렵다.”

―성장일로,

자본주의식 복음주의의 폐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는 피켓 구호에 사람들은 혐오감을 느낀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교회에서 위로 받지 못한다. “교회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많은 경우 하나님을 보지 않고, 목회자와 교인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교회에 사랑이 없는 것,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적어도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병자들, 갈 곳 없어 방황하는 10대들,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회가 끌어안고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땅끝의 아이들

―최근에는 미국,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돌면서 청소년 선교에 열심이라고 들었다.

원래 전공은 영문학 아니었나? “문학이 적성에 안 맞았다. 추상적인 사고가 내겐 너무나 어려웠다.”

―해스팅스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처음엔 LA지방법원 검사로 일했다.

“아이 넷 수월하게 키워보려고 공무원인 검사를 10년 했는데, 남을 정죄하는 직업이 점점 힘들어지더라. 그 무렵 한인교회 목사님으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갱단 범죄에 연루된 교포 아이가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 같은데 나더러 그 아이 변호 좀 해달라는 거다. 나는 검사라서 맡을 수 없다고 했더니 사직을 해서라도 맡아달란다. 아이를 한 번만 보고 오자고 했다가 코가 꿰인 셈이다.”

―교포 2세대의 문화단절, 세대단절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일까.

“술과 마약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다. 처음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가 대부분 건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자식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다.나를 변호사로 이직(移職)하게 한 K라는 아이만 해도 부모에게서 상처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뛰쳐나갔다.아까도 말했지만,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받아야 사랑 받는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사랑 받는다고 느낀다. 사랑은 이렇듯 구체적인 거다.‘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해주면 폭력과 어둠의 세계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 울면서 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아프리카 케냐에도 갔다.

“나이로비에서도 비행기로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웨브예라는 마을은 그야말로 땅끝이었다. 샘물이 없고, 오물이 흘러 들어온 강물로 밥을 해서 먹는다.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 배가 다 맹꽁이 배처럼 튀어나왔고, 목욕을 태어나 한 번도 안 해서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거기서 내 사랑의 위선을 보았다.”

―무슨 얘긴가.

“아이들이 나를 끌어안는데 역한 냄새가 진동하니 참을 수가 없더라. 그날 밤 꿈을 꿨다. 온몸에서 피고름이 흐르는 남자가 자기 좀 도와달라고 외치는데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고 곁에 가질 못한다.그때 누가 저 멀리서 뛰어오더니 단숨에 병자를 끌어안는다. 그의 눈물이 닿는 곳마다 병자의 상처가 나았고 피와 고름이 멈추었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기에 우리의 갈 길은 이렇게 멀다.”

―이혼, 암, 실명, 아들의 죽음 등 당신에게 닥쳤던 시련을 축복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내 생애 가장 기뻤던 순간이 죽을 것 같은 진통 끝에 첫 아이를 낳아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다.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다. 불 사이를 지나지 않으면 금(金)이 정련되지 않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건강이 다시 나빠져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들었다.

숱한 고비를 넘겨왔는데 두렵지 않은가.“오늘 죽는다면 오늘이 세상을 떠날 완벽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부를 그날까지 땅끝에 선 아이들 가슴에 사랑을 심어주고 싶다.”

―요즘 당신의 기도는 무엇인가.

“내 마음에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소서.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모든 죽은 것들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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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1959년 7월 25일 ~ 2012년 3월 15일~)는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출신의 미국 변호사, 검사, 목사이다. 제19대 대한민국 문화부 장관 이어령의 딸이다.[1]

학력 [ 편집 ]

풍문여자고등학교 (졸업)

캘리포니아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생애 [ 편집 ]

이어령과 강인숙 사이에 2남 1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어령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어머니 강인숙은 건국대학교 교수, 첫째 남동생 이승무는 영화감독(영화 《워리어스 웨이》연출), 둘째 남동생 이강무는 백석대학교 교수이다.[2]

1978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과 불문학을 복수전공하였고 이후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작가 김한길과 결혼하였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첫째 아들 김유진을 낳았고 1986년 이혼했다. 1989년 재혼했고 둘째 아들 장진성, 셋째 아들 장진영, 딸 장재연을 두었다. 1992년 갑상선암 투병과 장진성의 자폐 판정을 겪었다. 2006년 망막박리 증세로 실명위기를 겪기도 했다. 실명 위기를 겪은 후 개신교 목사의 세례를 받았다. 2007년 김유진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뒤 19일 만에 사망했다.[3]

미국 헤이스팅스 칼리지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86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89년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검사로 근무했고 이후 로스앤젤레스 지역 부장검사까지 역임했다. 검사직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서 청소년 범죄 예방과 선도에 역점을 두고 활동했다. 청소년 사역에 집중하면서 변호사 생활도 그만두었고 이를 반대한 남편과 이혼했다.[4]

2009년 정식으로 안수를 받으면서 목사가 되었다. 목회자로서 각지에서 신앙 간증 활동을 전개했고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했다. 2011년 위암 말기를 선고 받고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2012년 3월 15일 사망했다.[5]

저서로는 간증집 《땅끝의 아이들》(2011년), 영성고백서 《땅에서 하늘처럼》(2012년), 《하늘의 신부》(2012년)이 있다.

가족 관계 [ 편집 ]

아버지 : 이어령 (1933년 12월 29일 ~ 2022년 2월 26일)

어머니 : 강인숙 (1933년 10월 15일 ~ )

배우자 : 제프 뷰캐넌 아들 : 이딴 뷰캐넌, 루크 뷰캐넌 딸 : 크리스티 뷰캐넌

첫째 남동생 : 이승무 (1963년 ~ )

둘째 남동생 : 이강무 (1966년 ~ )

저서 [ 편집 ]

《땅끝의 아이들 (이민아 간증집)》 (시냇가에심은나무, 2011년)

《땅에서 하늘처럼 (이민아 영성고백)》 (시냇가에심은나무, 2012년)

《하늘의 신부 (이민아 생명나눔)》 (두란노, 2012년)

각주 [ 편집 ]

김한길 전처 이민아 이혼사유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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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겠지만 배우 최명길 남편 김한길은 최명길과 결혼 전 이혼 이력이 있습니다.

김한길 전처는 소설가 이어령 딸 이민아 씨입니다. 김한길은 이민아 씨와 결혼 5년 만에 결혼 생활을 정리합니다.

둘의 이혼 사유에 대해 김한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다보니 작은 기쁨을 무시해 버린 대가로 이혼하게 됐다.”

아무래도 가정보다는 일에 너무 매진하다 보니 둘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추정 됩니다.

참조로 둘 사이에는 아들 한 명이 있었습니다. 버클리 대학교까지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는데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하고 맙니다. 자식잃은 부모의 마음.. 참..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둘은 이혼 후 김한길은 최명길과 재혼하였고, 이민아는 미국인 제프 스펜서 부캐너와 재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민아 씨는 2012년 갑상선 투병에 이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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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부인 이민아 아들 사망이유, 최명길 김한길 나이 차이, 자녀 김어진, 김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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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tvN ‘따로 또 같이’에서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김한길 대표와 배우 최명길 부부의 일상이 방송 사상 최초로 직접 공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식사 장면 등에서 둘째 아들 무진 군이 등장해서 화제가 컸는데요. 지난 1995년 결혼식을 올린 김한길, 최명길 부부는 슬하에 두 아들, 이름은 어진과 무진을 두고 있거든요. 김한길, 최명길 부부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먼저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배우 최명길의 기본 프로필부터 알아볼게요. 김한길은 1952년 생으로 2018년 기준 올해 나이가 67세입니다. 배우 이덕화, 안성기, 미키 루크, 리암 니슨과 같은 분들이 1952년생으로 김한길과 나이가 같습니다.

그리고 배우 최명길은 1962년생으로 김한길과는 10살 차이로, 배우 이혜영, 가수 민해경, 할리우드 배우 데미 무어, 조디 포스터와 같은 분들이 최명길과 동갑내기 유명 연예인들입니다.

<김한길, 최명길 결혼 사진>

<김한길 최명길 두 아들 김어진, 김무진>

최명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게요. 배우 최명길은 리즈 시절에는 엄청난 미녀 배우로 유명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거의 김태희급으로 고급스런 이미지의 대명사 배우였죠.

‘용의 눈물’, ‘대왕 세종’과 같은 사극에서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 역을 맡았고, ‘근초고왕’에서 비류왕의 비였다가 계왕의 비가 되는 역할 등 왕의 아내를 많이 맡았던 고급스런 이미지로 유명한 배우였습니다다.

1984년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에서 정현왕후, 이듬해 조선왕조 오백년 풍란에서 자순대비, 1988년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 1989년 조선왕조 오백년 파문에서 혜경궁 홍씨, 용의 눈물에서 원경왕후,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 등등등 황후 역할만도 상당하죠.

아울러 그 외에도 MBC FM에서 최명길의 음악살롱을 진행하며 특유의 고급스럽고 따뜻한 음색의 라디오 DJ로도 유명했는데, 남편 김한길과의 첫만남 역시 라디오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남편 김한길이 MBC FM의 ‘김한길 초대석’을 진행중이었고, 최명길이 초대손님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죠.

<라디오 DJ 시절 최명길>

김한길, 최명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지난 1995년 3월 22일에 이뤄졌습니다. 그 전에 김한길은 소설가 이어령의 딸로 유명했던 이민아 변호사와 결혼식을 올렸다가 이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민아 변호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하고 22살의 나이에 김한길과 결혼식을 올렸고, 5년 정도 결혼 생활 끝에 갈라선 두 사람이었죠. 1986년이었습니다.

김한길과 이민아 두 사람은 이국땅에서의 결혼생활 동안 성공을 위해서 밤을 세워 공부하며 둘 만의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도 이혼의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한길과 이민아는 성공을 위해서 무던히도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렇게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3층짜리 새집을 지어 이사를 하기도 했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 가정의 소중함이나 작은 일상의 기쁨을 놓쳤던 것이죠.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한길은 라디오 생방송에서 최명길을 만나서 운명적인 느낌이 왔다고 합니다. 첫 만남에서 최명길은 김한길의 유명한 흰머리 때문에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젊어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소설가 때도 흰머리가 많았던 김한길>

그렇게 첫 만남 이후 김한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놀랍게도 부의금 명단에 배우 최명길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한길의 어머니 역시 최명길이 다녀간 것을 알고 최명길과의 만남과 결혼을 적극 추천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1995년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지금가지 2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이어옵니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최명길은 어려운 시절도 많이 있었지만, 김어진, 김무진 두 아들을 낳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참고로 김한길의 전처였던 이민아는 재혼 이후 김한길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아들의 사망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민아의 두 번째 남편은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 재혼을 했죠.

그런데 너무 안타깝게도 김한길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아들이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혼수상태에 빠져 불과 19일 만에 사망에 이르렀던 원인 불명 사망 사고였습니다. 그런 아들의 충격도 있었는지 이민아 역시 54살의 나이로 지난 2012년 사망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김한길 전 부인 이민아, 오른쪽은 아버지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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