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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 브런치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좋은 글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8/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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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알라딘
어떻게 살 것인가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은이) 생각의길 2013-03-13.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원 (10% 할인) + 마일리지 750원 …
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11/7/2021
View: 5288
어떻게 살 것인가 – 오거서
오랜만에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었다. 전공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읽었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라는 책 이후로 두 번째 책인 것 같은데 그 책이나 …
Source: book.skku.edu
Date Published: 3/21/2022
View: 2116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을 읽고나서.. – 패스트터틀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코로나로 인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지 못해 계속 책을 구매하다 보니 읽을 책을 고르는데 신중해졌다.
Source: sudeky.tistory.com
Date Published: 1/3/2021
View: 2802
어떻게 살 것인가 – Si-min Yu, 유시민 – Goodreads
어떻게 살 것인가 book. Read 10 reviews from the world’s largest community for readers. 자유인으로 돌아온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되짚어본다!
Source: www.goodreads.com
Date Published: 4/9/2021
View: 7887
[일하면서 공부하자] 어떻게 살 것인가 – The PR Times 더피알 …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유시민 작가의 책 제목이기 이전에 이 세상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또는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
Source: www.the-pr.co.kr
Date Published: 6/5/2022
View: 521
어떻게 살 것인가사라 베이크웰 | 책읽는수요일 – 교보문고
프랑스 정신의 아버지 몽테뉴의 인생에 관한 20가지 대답『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에 오직 스스로를 탐구한 삶의 철학자 몽테뉴의 …
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7/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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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어떻게 살 것인가
- Author: 메디어스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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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7. 3.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jSXouDYQ-OQ
[책리뷰]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책의 뒤표지에 쓰여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은 그가 정치인을 그만두고 자유인으로 돌아와 세상에 처음 내놓은 책이다. 평소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나름대로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크게 삶과 죽음, 놀이, 연대에 관한 것이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지 유시민의 경험을 적절히 녹아내려 설명했다.
그는 정치인 생활을 십여 년 했지만 스스로에게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올바른 가치를 위해 투쟁했으나 그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제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그. 정치계를 떠나서도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몇 년간 활약하더니 이제 그것마저도 손을 떼고 재야로 돌아갔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JTBC ‘썰전’에서 떠난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 어쨌든 그의 선택에 존중한다. -2013년 3월 13일 출간된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책리뷰.
# 글을 참 잘 쓴다.
유시민이 글을 잘 쓴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글을 잘 쓴다. 글이 술술 읽히고,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된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유시민을 거치면 굉장히 쉬워진다. 참 놀라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다가 운동권 시절 경찰에 붙잡혀 진술서를 쓰면서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진술서를 쓰면 매를 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하루에 백 장 이상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혹독한 스파르타식 글쓰기 훈련을 했다고 자평했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좋은 글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국제 가수 싸이, 은반의 여왕 김연아, 백신 박사 안철수, 밀리언셀러 작가 혜민 스님, 국민 미남 장동건도 부럽지만 열등감은 없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나무를 오르고 있을 뿐이다. 나도 적당한 나무를 골라 오르면 된다.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가 아니면 어떤가. 내게 맞고 오르는 것이 즐거운 나무라면 된 것 아니겠는가.
누구도 타인에게 삶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는 삶은 비천하고 허무할 뿐이다. 숱한 고난을 받고 살다가 모진 핍박을 받아 죽을지라도, 스스로 뚜렷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면 훌륭한 인생이다.
자기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년은 아기가 아니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상처를 입어도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내 나름의 ‘비법’이 있기는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색깔과 맛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사랑은 싹 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또는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한다.
정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사업이다. 스스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소위 ‘진리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도 정치에도 확정된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나는 세상의 부조리와 설명할 길 없는 불운을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운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불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좋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책.
이 책에 대한 나의 개인적 견해보다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좋은 구절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인 만큼 어느 책보다 발췌를 많이 해왔다. 하나같이 다 좋은 글이다. 이 책은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당신의 시각이 한 층 넓어질 것이다.
2018.08.24.
작가 정용하
성균관대학교 오거서
오랜만에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었다.
전공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읽었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라는 책 이후로 두 번째 책인 것 같은데 그 책이나 다시한번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식소매상에게 어울리는 다른 책을 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한 100여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작가가 기존에 글을 써오던 습관 탓인지 개인적으로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글 속에서 지식적인 측면에서 무언가를 얻어가고, 썰전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하는 방향을 캐치할 수는 있겠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조금 다르구나 라는게 읽는내내 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살아 오던 시대상황이나 또 현재 그의 상황이 나와 맞지 않기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책을 통해서 기존처럼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기 보다는 답답한 마음만이 가득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지식소매상으로서 글을 쓰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가 원하는 삶을 그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그의 진솔된 이야기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물음 보다도 또다시 지식의 한켠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여러 사건 사고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나, 살아가는 방식.
마치 위인전 여러 권을 섞어 놓은 듯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 방식을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그도 인정하듯 그의 세월이 완벽함 그 자체는 아니고, 또한 그의 세상이 우리의 것과는 다르기에 보편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은 오히려 탁월하다고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무언가 나를 성찰 한다거나 하기엔 많이 아쉬움이 남았다. 내 스스로의 고민, 그리고 나아가야할 길에 있어서 이 책은 단순히 하나의 의견으로서 자리 잡을 뿐인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던진 4가지 큰 주제를 바탕으로 그냥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나한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은 지금 단순히 이 책을 읽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하루하루 끊임없이 고민해야하는 생각이며 또한 정해질 수 없는가변적인 일종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는 “왜 사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한동안 겉멋에 취해, 마치 사색을 즐기는 젊은 괴테의 모습처럼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사는 것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예전에 하던 게임 닉네임에 사람은 무엇일까 라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오글거리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결국 내린 답은
“모르겠다” 였다.
그저 돈을 쫓으며 사는 삶이 있을 수 있다.
혹은 무조건적인 성공을 바라는 삶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세대에서는 가장 손 꼽히면서도 힘든,
평범한 삶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 결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 였다.
2.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고등학교때 되게 친한 후배 한명이 TEDx highschool 강연으로
죽음과 관련하여 연사로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던 터라 그의 이야기는신기함과 함께 교우로서 그를 존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다루는데 죽음을 알 수 없기에,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걸 알기에
우리는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과 관련해서 많은 이슈가 존재한다.
가장 가깝게는 최근에 발생한 강진여고생 살인사건도 그렇고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세월호사건
그리고 토론 논쟁거리로 자주 등장하는 존엄사 같은 것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나타난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특히 책 속에서 말하듯 젊은 사람일수록.
하긴 나도 잘 모른다.
그저 행복하게 살다가길 바랄 뿐이다.
생활 속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고( 故)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당신만 울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내가 죽는다는 것 그것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슬픈 일이다.
죽음 속에서 나는 좋았다는 미소로 마감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겉으로 울지라도 마음은 따뜻해질 수 있는
그러한 인생을 위해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최선을 다할 뿐 이다.
3.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3장이 시작하면서 작가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혹은 남에게 이로운 삶은 처음 내가 1장에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그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면서 일종의 바람직한 삶의 반열에 오르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 없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때 내 동생은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하였다.
하던 공부를 뒤로한채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그리고 한달이 다 되도록 축구만 하던 적도 있다. 심지어 입단테스트를 받기도 하고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시합에도 나갔다. 종종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한동안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부모님은 끝끝내
‘그럼 체대를 가라’ 라는 말씀을 하셨다.
체대에 가서 너 좋아하는 운동도 하고, 공부해서 코치도 하고, 그래야 밥먹을 거 아니냐고.
물론 동생의 체격이 일반적으로 축구를 할 만큼 크지도, 단단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그의 축구는 그를 위한 축구를 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나도 뭐라고 했었던 것 같다.
어차피 그만하고 다시 공부나 하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음 한편으로 응원했었던 것 같다.
뭐랄까 나와는 다른 생활이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공부만 하는 나와 다르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다니는 걸 보며 질투했던 걸지도 모른다.
주변의 그 누구도 그가 바람직하다고 하지 않았지만 어린 나는 그의 모습이가장 쓸모있는 인간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엇나갈 수 있다.
세상이 제시하는 평평한 도로와 다른
울퉁불퉁 돌멩이 가득한 험난한 길이 놓여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길이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뿐, 잘못된 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사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믿어줄 것
그게 내가 바라보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생각이다.
4.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그렇기에 나는 삶을 망치는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인간은 혼자살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고 또 다른사람과 같이 살기에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칙을 어기면 우리는 어긋난 존재, 일탈자로 규정되어 사회가 정한 벌을 받게 된다.
책은 신념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
자신이 갖는 생각이 잘못 표현되어 삶이 망가진 경우를 보여준다.
영화 <킹스맨>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지구 온난화
= 지구가 아프다
= 생태계가 아픈 것은 그 생태계 구성원이 잘못하기 때문이다
= 인간이 잘못했다
= 인간을 줄이면 생태계는 다시 회복할 것이다
= 내가 앞장서서 인간을 줄이겠다
= 인류대학살
어쩌면 두번째 단계인, 구성원의 잘못을 인식한 것 까지는 굉장히 바람직한 사고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 잘못을 했으면 고치기 위해방안을 마련한다. 기후변화협약 같은.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눈에 보기에도 위의 도식은 잘못되었다.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 원인 그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한 편으로는 그러면서 동시에 선택받은 이들만 살려주는 신종 불평등까지 발생한다.
마블의 빌런 타노스는 최소한 구별없이 절반을 죽였으니 차라리 그가 바람직할 정도다.
그렇기에 행동을 하면서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은 맞다.
먹고싶다고 남의 음식을 마구 뺏어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다만 먹고 싶다는 생각은 그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든다면 과연 바람직할 것이다.
콜로세움부터 현대 올림픽의 시초였던 제전 등을 볼 때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게 사람을 죽이거나 무분별하게 자신을 망치지 않을 때라면.
‘어떻게’ 살아 가는데 있어서
작가의 말 처럼 행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제목인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은 지금까지 말했듯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마 작가는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일 뿐인 나와는 다르게
그의 생각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입장이고 그렇기에 앞서 말했듯 보편적인 입장에서 지식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지금 쓰면서 느낀 것처럼 그의 문제제기가 쓸모 없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다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읽기가 복잡했던, 기존의 그의 책과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자 했으나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그런 책이었다. 다만 인생의 선배로서 던져주는 문제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직접 생각할 수 있었다면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을 읽고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유시민)
코로나로 인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지 못해 계속 책을 구매하다 보니 읽을 책을 고르는데 신중해졌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는 볼까 말까 하는 책은 무조건 빌려서 보는데 반해, 서점에서는 약 5분가량 투자해 살펴본 뒤 구매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신중하게 보고 구매한 책은 아니다. 예전에 재미있게 시청했던 tvn의 ‘알쓸신잡’ 에도 출연하셨고 여러 유튜브 영상에도 등장해서 말하는 것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던 유시민 작가에게 관심이 가서 구매하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사실 그전에도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TV 뉴스에서도 자주 오르락나리락하고 최근까지도 정치적으로 많은 이슈를 가지고 있던 분이라 알고는 있었다. 유시민 작가의 정치적 색깔에는 크게 관심은 없었다. 그냥 느낌상 이 책에서 좋은 인생조언을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나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이 책의 뒷 표지 쓰여있다. 책을 구매하게 된 결정적인 문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후에 책을 읽다 보니 나는 이 의미를 정치 관련 내용을 전부 배제하고 이야기를 하는 정도로 이해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아마도 ‘정치질’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정치 관련 인생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인생의 청춘을 그쪽과 깊게 관련해서 지내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어느 부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보와 보수에 대해 과학적인 입장을 이야기해주는데 그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크게 느끼지 못했고 읽으면서도 내가 이거를 왜 알아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이거 나도 진보적인 성향을 가져야겠는걸?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근데 크게 거슬릴정도는 아니고 책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과 생각이 담겨있어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유시민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나랑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유시민 작가가 내 생각보다 과학 쪽으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이 대부분 생각을 과학적으로 따져본다는 점이었다. 과학적 설명이 타당한지는 모르나 여하튼 의외인 면이었다. 한때 정치인이었고 게다가 자기 자신을 글쟁이라고 하니까 문과적인 감성이 넘치는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자리 잡혔나 보다. 근데 따지고 보면 글쟁이가 글을 쓰려면 재료로서 여러 가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내가 생각한 것은 아마 문학 소설가를 떠오른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인생과 철학에 대한 입장이 나랑 비슷하다고 많이 느꼈다.
정확히 어디 부분을 콕 집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읽으면서 “맞아.. 이 말이 맞지” “오..! 나도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전에 알쓸신잡을 보면서 유시민 작가가 말을 잘한다고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생각을 조리 있게 대신 표현해주는 느낌을 받았나 보다 생각이 든다.
책의 결론은 한마디로 축약하면 “일, 놀이, 사랑, 연대하라”이다.
깔끔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잘 까먹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사랑을 잃고 연대에 집중하다 보면 놀이를 잃고 사랑에 집중하다 보면 연대를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 사이의 균형인데 이를 많이 놓친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균형 있는 삶을 살아라”라는 말보다는 정확히 네 가지로 나누어서 말해준 것이 좋다. 저 말이 진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책을 구매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히 나와서 뿌듯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이와 관련된 영상이 하나 있다. 예전에 유시민 작가를 인터뷰했던 영상이 있는데 나는 이 영상을 한참 전에 먼저 보고 이 책을 봤었다. 근데 영상에서 유시민 작가가 하는 얘기가 “일, 놀이, 사랑, 연대”였다.
이 책은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추천한다. 방황을 할 때는 ‘어떻게’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 부분을 속 시원하게 알려준다.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Yu Si-min talks about how to live and die well.
He brings findings from neurosciences, philosophies and various people’s stories including his own to argues about meaning of living well. I particularly, enjoyed the biographical part of the book; he does not spare himself from his sharp, critical observation and evaluation. I find ‘epilogue’ of the book quite inspirational, where he makes plans for a celebration of his death, and dares to look into his own death.
His writing style is sharp, logica
Yu Si-min talks about how to live and die well.
He brings findings from neurosciences, philosophies and various people’s stories including his own to argues about meaning of living well. I particularly, enjoyed the biographical part of the book; he does not spare himself from his sharp, critical observation and evaluation. I find ‘epilogue’ of the book quite inspirational, where he makes plans for a celebration of his death, and dares to look into his own death.
His writing style is sharp, logical, critical and blunt, but on his sharp arguments, I still find humor, hope and warmth toward humanity.
[일하면서 공부하자] 어떻게 살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몸 담으며 산전수전 다 겪어본 선배가 자라나는 주니어를 위해 잇!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후배들의 지식 함양과 커리어패스에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은 주저 없이 더피알([email protected])로 연락주세요.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유시민 작가의 책 제목이기 이전에 이 세상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또는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이렇게도 한번 살아보고, 저렇게도 한번 살아볼 텐데 아쉽게도(?) 그것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삶의 매우 중요한 화두다.
이 책은 ①프롤로그(나답게 살기), ②어떻게 살 것인가, ③어떻게 죽을 것인가, ④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⑤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⑥에필로그(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법)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책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 삶의 의미, 삶과 죽음의 관계, 일과 놀이, 사랑과 연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신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핵심 내용
“죽음은 단지 삶의 이면일 뿐이다.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함께 완성된다.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삶은 허무하다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 역이 옳다.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 그리고 내가 한 모든 일에 대해 죽음에 임박해서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추천이유
애당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삶이 처한 상황과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평균 기대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바야흐로 100세 인생 시대가 열렸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앞으로의 내 삶에서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열심히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추천인 양성필은… 현재 KOBACO에서 디지털전략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100세 인생 시대에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다양한 ‘부캐’(부캐릭터) 활동을 실천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미술학원에서 ‘아마추어 화가’로, 매주 일요일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그리고 틈나는 대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걷는 ‘프로 걷기러’로, 글쓰기를 즐겨하는 ‘아마추어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서울경제 <라이프점프>에 <인생은 50부터!!>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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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교보문고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같은 말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보았을 때 끌렸던 이유는 단연 목차였다. 제목인 ‘어떻게 살 것인가’를 떠올리며 책을 넘겨보는데 스무 개의 목차 소제목은 바로 정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차 중에는 ‘인간성을 지켜라’같은 보편적인 메시지도 있었지만 ‘책을 많이 읽되, 읽은 것을 잊고 둔하게 살아라’ 같은 특별한 조언도 있었다. 목차와 서문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아우라는 중용을 떠올리게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일 먼저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1장이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이다) 일단 죽음부터 이야기 하고 그 다음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이 어쩐지 나 가려운 데를 콕 집어 긁어주는 것 같았기 때문에. 죽음부터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출발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사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일주일 전 한 달 전에도 일 년 전 삼 년 전에도 변함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특별히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것은 오 년 전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이다. 물론 엄마가 돌아가시기 4년 전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지만 아버진 십 오년 투병생활 끝에 가신 것이기에 어느 정도 준비기간이 있었다. 아버진 늘 바로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십 오년을 버티면서 내게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연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투병환자 치고는 그만하면 꽤 오래 사셨다고 까지 생각했다. 어떤 날은 내 젊은 날의 불행이 모두 누워있는 아버지 탓만 같아 하루라도 빨리 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충격이라기보다는 어떤 습관처럼 지켜보던 드라마의 아쉬운 종영소식만 같았달까.나는 아버지 병수발에 지친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랐고 엄마 역시 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라 당연히 이변이 없는 한 그러실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삶의 여유를 찾고 돈 걱정 없이 즐기실만하니까 어이없게도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변은 여전했다. 사람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없는 것이었다. 엄마가 죽었음을 깨달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바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더 정확히는 엄마 없이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혼자서 살아가나, 였을 것이다.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 내 평화롭고 안온한 삶도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엄마 사후 일 년 간은 거의 정신병원과 수면제, 심리치료를 달고 살았고 때론 무당굿도 하고 점도 보고 술도 먹고 말 그대로 내 몸 내 맘이 가는 대로, 되는 대로 살았다. 수면제를 끊기 까지 한 육 개월이 걸렸고 사회로 복귀하면서 차츰 일상을 찾기까지 또 일 년이 걸렸다. 삼년 째 되니 조금 제정신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걸 알았다고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외려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고 방황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방황할 때가 더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곳에서 책 읽고 글 쓰면서 틈만 나면 지겹도록 엄마가 죽었고 아빠를 미워했다고 떠들었다. 책을 선택하고 글을 써대는 어떠한 기준도 없고 오로지 책과 관련해 어떻게든 이런 내 자신, 지금 내 상황과 화해를 하려 애를 썼다. 돌아보면 서평내용도 순전 모두 용서하는 밤, 그리하여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자는 결론을 내는 식이었다. 책과 상관없이 나는 어쩌면 그 말을 하고 반복해서 되뇌이려고 서평을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리 읽고 쓰고 또 읽고 써도 잠들 때 드는 마지막 생각은 단 하나, 이대로 죽어서 만약 내일 깨어나지 못한다면 어쩌지, 만에 하나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날(사고) 이후 열에 일곱은 그런 밤이었다. 그런 생각이 떨쳐지지 않을 때 나는 갑자기 일어나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냉장고를 열어보고 서랍을 열어보고 아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속옷을 갈아입은 다음 지인들에게 뜬금없이 그 새벽에 인사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꺼버리고 다시 눕고는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부모님과 찍은 사진, 졸업사진, 결혼사진, 아이 백일사진, 돌사진을 확인하고 불을 켜고선 거울을 들여다봤다. 도저히 내일 죽을 사람같이 보이진 않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이 거짓말 같은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심정이었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도 오늘 하루 살아내었다가 아닌 오늘 하루 죽어갔다고 달력에서 날짜 하나를 쓱쓱 지우며 눈을 감았다.(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엄마도 내일 자신이 죽을지는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행을 가시는 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훌훌 깃털처럼 가볍게 떠나시던 뒷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침에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들떠있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엄마의 집은 변함없이 청소가 되어 있어 깨끗했고 이불도 빨래도 냉장고도 쓰레기도 모두 완벽했다. 생각해보니 한 평생 엄마는 항상 청소를 하고 집안을 완벽하게 치운 다음 외출을 나가셨다. 엄마가 죽는 날은 특별히 다른 날이 아니었고 늘 자신이 하던 대로 했을 뿐인 날이었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 지극히 일상적인 일임을 깨우쳤다. 단지 그 일상은 일생에서 단 한 번 주어지는 예측불허의 순서였을 뿐이었다. 누구도 그 일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가족이나 친구가 그 일상의 주인공이 되었을 경우 비로소 자기일상의 마지막을 남몰래 그려본다. 엄마는 어느 바람 좋은 봄날 꽃구경을 갔다가 오후 세시 이십분에 죽었다. 사망진단서에 쓰는 말로 두개골 골절이고 내가 하는 말로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 머리가 깨지기 직전까지 꽃노래를 부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불렀던 노래는 어떤 노래였을 지가 궁금해지기 까지 오년이 걸렸다. 정신과 의사는 내게 사람의 시체가 끔찍한지 알지만 자꾸 보다 보면 언젠가 그것이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온다고 위로했다. 나는 아직까지 엄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엄마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그날 이후 죽음과 엄마를 매일 생각했더니 그렇게 되었다. 충격은 점점 무뎌지고 엄마의 마지막 일상은 내 일상 속으로 완전히 용해되어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옥죄고 있는 현실은 그 일상이 바로 오늘 혹은 내일일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그 일상에 대한 불신과 확신으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하며 언제나 불안한 것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까지 같이 일을 한 사람이 오늘 아침 죽은 경우가 꽤 된다. 이 지독한 일상의 트라우마가 나에겐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변형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나에게 산다는 문제는 곧 죽는 날까지 산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곧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와 같은 뜻인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모두 어떻게든 죽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이다.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산다는 것은 결국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문제가 왜 중요하냐하면,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죽는 것을 믿지 않고 믿는다 해도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받아들였다고 해서 겪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죽는 날까지 죽음에서 얼마나 자유로와 질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불안하지 않게 살기 위한 일련의 방침처럼 읽혔다. 물론, 해답은 얻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살다보면 어느덧 그날이 다가올 것이고 그날이 온다 해도 그 역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 싱겁긴 해도 이것이 오백 페이지되는 이 책을 덮고 난후 내가 얻은 깨달음이다.죽음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사는 길먼저 이 책은 몽테뉴의 저서가 아니다. 몽테뉴는 우리 나이로 환갑의 나이까지 살았는데 마흔부터 이십년간 우리가 아는 수상록[隨想錄, Essais, 1586]을 집필했다. 전 생애를 통틀어 오로지 수상록 한 작품만 남긴 사람이 몽테뉴이다.(바꿔 말하면 수상록을 완성하는데 이십년이 걸렸다. 수상록이 중단된 것은 몽테뉴가 죽었기 때문이므로 더 살았다면 수상록의 집필기간은 더 늘었을 것이며 당연히 페이지도 추가 되었을 것이다) 천 페이지 넘어가는 수상록을 읽어보지 못하고 목차만 훑어보았다. 슬픔, 나태, 선악 등의 제목 외에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우리는 같은 일로 울기도 웃기도 한다’, ‘우리의 욕망은 어려움에 부닥치면 커진다’ 같은 제목이 눈에 띈다. 정석대로 하자면 먼저 수상록을 읽어보고 몽테뉴만 한 이십년 공부한 저자의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이 책을 먼저 접한다고 해서 원서 없이 해설서만 집어든 것 같은 일종의 부끄러움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여지껏 위대한 사상가의 평전이나 작품 해설을 이처럼 깊이 있고 재미나면서도 쉽게 서술한 책은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몽테뉴에 대한 (교과서적인)부담감 때문에 이 책은 쉬운 쪽이 아닐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술술 넘어가는 터에 그냥 끝까지 내달렸다. 한 이틀 이 책에 올인하면서 간만에 책 읽는 재미를 보았달까. 몇몇 부분 감동적이고 문학적인 결론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저자는 놀랍게도 프랑스인이 아닌 영국 여성이었다. 흡사 몽테뉴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마냥 -그것도 개인비서나 친구 혹은 제자, 딸이나 되는 것처럼 -저자는 그의 머리와 가슴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으로 보였다. 얼마나 읽고 생각하고 연구했으면 몽테뉴보다 더 몽테뉴를 잘 말할 수 있단 말인가.(한나 아렌트의 제자인 엘리자베스 영 브루엘이 쓴 의 느낌도 든다. 그러나 아렌트의 제자는 학문적인 책임을 가지고 아렌트를 연구한 반면 이 저자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저 몽테뉴를 읽고 독자로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내가 환갑 줄에 들어서게 되는 이십년 후면 몽테뉴가 태어난 지 오백년이 된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몽테뉴와의 오백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마치 유즘 유행하는 인생의 멘토같은 느낌을 받았다. 몽테뉴가 죽은 해는 1592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이다. 몽테뉴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이순신을 떠올리면 그는 저 까마득한 세계사속의 한 페이지에 등장할까 말까한 교과서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아마도 어떤 작가와 작품을 말하는 내용의 책으로 자기 주장을 세상에 떠들려면 이 정도가 그 정점의 완성치일 것이다. ‘아마존 닷컴 올해의 책’같은 문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가끔 예외도 있는 것, 그래서 (아무의 권유도 없이 내 돈 내고 책을 산 입장에서) 주저없이 살길을 이 책에서 찾는 방안을 추천하고 싶다.몽테뉴는 약 십년간 둘도 없는 친구가 죽고 아버지와 남동생이 죽고 자식들이 연이어 죽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 사람이다. 거의 이년에 한명 꼴로 집안에 초상을 지른 것이다. 잔인한 고문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해도 매일 밤 죽음을 생각하고 먼저 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더불어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을 터이다. 그는 우연히 말을 타고 가다가 하인과 부딪히면서 낙마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때 극적으로 죽음을 체험하게 된다. 연대기에 의하면 빈사상태의 낙마사고가 있고 3년 후부터 몽테뉴는 에세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제일 먼저 우리에게 통보하며 몽테뉴가 그랬듯 죽음을 걱정하지 말라고 선수를 친 것이다. 왜냐하면 몽테뉴가 자신의 빈사체험을 통해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즉,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려면 일단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타일러 주는 것이다.몽테뉴는 가까운 이의 연이은 죽음과 낙마사고 이후 관직을 은퇴하고 영지에서 내면의 시간을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는 전환점인 듯 하다. 즉, 그동안 몽테뉴를 가장 괴롭히던 죽음에 대한 개념정리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썼다고 해서 여전히 죽음이 두렵지 않으며 매일 밤이 걱정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몽테뉴는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집필을 하게 되며 –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집필을 중단하지 않게 되며 – 자신의 유일한 작품인 에세와 함께 성장하고 에세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 나갔다. 저자는 바로 몽테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살 길을 찾기 위해 에세를 썼다고 분석한다. 이 책도 몽테뉴가 죽으면서 끝이 난다. 내가 만약 앞으로 이십년을 더 살수 있다면 몽테뉴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끄적이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 시기를 온전히 사용한다 해도 그로써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진다. 저자는 죽음 앞에서 그리고 죽음을 통과한 후 몽테뉴가 죽기까지 한 일을 이 책을 통해 밝혀주었다. 아마 어떤 이는 나처럼 이 책의 마지막에서 몽테뉴가 숨을 거둘 때 마치 내 임종의 순간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죽는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잠드는 것처럼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다… 죽음은 대비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p33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잘 사는 길몽테뉴는 죽는 법을 배워야 사는 법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죽는 건 배우자마자 다시 써먹을 기회가 없다. 그저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 단 한 번의 실전을 준비할 뿐인 것이다. 몽테뉴는 실전을 준비하는 장소로 뒷방을 선택했다. 가게 뒷방이라 불린 그곳은 완벽한 도피처이자 상실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장소로 기능했다. 그는 ‘자기탑’에서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 신뢰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매일 매 순간 변화하는 의식과 경험의 흐름을 묘사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는 법, 사물을 바라보는 법, 관찰한 것을 즐겁게 글로 옮기는 법을 터득했고 그게 살아가는 법이라 깨달았다. 그렇게 살다가 꽁꽁 얼었던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 자신을 죽음에게 내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 믿었다. 생활은 작품과 일치했고 작품은 인생과 일치했다.우리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뒷방을 마련해두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 은둔처, 고독을 확보해야 한다. 이곳은 자신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외부와의 관계나 소통이 단절된 은밀한 장소라야 한다. 이곳에서는 아내가 없는 것처럼, 재산이 없는 것처럼, 시종과 하인이 없는 것처럼 자기 자신과 대회를 나누며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나 재산을 잃게 되더라도 이들이 없이 생활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p243그러나 그가 오랜 기간 뒷방을 집필실 삼아 내면의 세계를 성장시키는데 주력했다 하더라도 은둔의 정도를 스스로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느리고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일면이 있었고 건망증이 심하고 키가 작았다고 한다.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근엄해 보이는 16세기 법관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스스로의 이중성을 “수줍음을 잘 타면서도 버릇없이 굴기도 하고, 순결하면서도 음탕하기도 하고, 수다스러우면서도 말수가 적고, 억세면서도 예민하고, 영리하면서도 어리석고, 무례하면서도 사근사근하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진실하고, 박식하면서도 무식하고, 자유분방하고, 인색하면서도 낭비벽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계획적으로 철학을 연구하려고 한 적이 없는 우발적 철학자’라 평했다. 그는 공개토론도 좋아했고 붙임성도 있는 편이어서 공직에선 사교적인 역할도 주도했다. 한창 종교분쟁이 심해 나라 전체가 피비린내 나는 내란에 휩싸여 있을 땐 구교와 신교를 중개하는 역할도 지혜롭게 수행했다. 터놓고 이야기 합시다, 처럼 그는 성을 개방하고 살아서 외려 안전해진 케이스였다.그가 제시한 관점의 상대성은 때론 싸워서 이길 수 없으면 피한다는 식의 주의전환 같은 요령도 알려주고 동물의 지능과 감정이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법관을 하면서 깨달은 인간의 결점과 오류의 발견은 인간의 이성이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의 배경이 된 듯하다. 이성으로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허세를 경계하고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이건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점 역시 늘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모든 일을 현실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궁극의 관점과 연결된다.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는 이 책에서 언급된 인간적인 번영을 의미하는 ‘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나 평정을 뜻하는 ‘아타락시아 (ataraxia)’, 그리고 운명애를 의미하는 ‘아모르파티’ 와 맥을 같이 한다. 모두 운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상징하는 개념들이다.가장 아름다운 삶은 기적이 일어나거나 기이한 행동을 하지 않고 순리대로 평범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p295몽테뉴는 질병, 전쟁, 기근, 죽음을 흡사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모두 관조하며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발 물러나 탑에서 글을 썼다. 자만심과 우월감, 습관, 야망과 탐욕, 가족과 주위환경, 광신, 운명과 죽음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집필하는 것을 종교로 삼았다. 자기모순을 똑바로 관찰하고 결점을 발견하고 이중성과 위선을 인식하며 그것들을 지닌 채로도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깨우치기 위해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불완전한 인간(자신)을 수용하며 완성된 인간으로 발전하는 길이었다. 몽테뉴에겐 관찰이 습관이고 자유가 규칙이고 솔직이 태도이고 여담이 방식이었는데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더 강해’진 것이다.완전히 빠지는 것은 더 잘 사는 길이 책에는 몽테뉴에 대한 후세의 평가 및 후속작업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같은 책을 가지고도 그가 17세기에는 협잡꾼이나 파괴분자로 비난받았던 사실과 오랫동안 편집의 전쟁이 이어져 왔음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전해 받은 몽테뉴는 상당히 정치적이었던 인물로 느껴지는데 저자는 그가 정치에 소질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흥귀족 출신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교양과 언어를 교육받아온 몽테뉴는 종교인이기 이전에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몽테뉴에게선 어떤 열등감이나 패배감, 시대적 사명감이나 영웅심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들이 보편적으로 고민하는 양심과 죄의식에 관한 화두나 지도자로서의(몽테뉴는 보르도 시장을 5년 역임했다) 의무와 책임의식, 혹은 권력에의 야망같은 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는 포도주 제조나 영지관리에도 무관심했고 가정적인 남편, 다정한 아버지상도 아니었다. 어찌보면 철저히 평생 자기 자신을 대상화한 집중적 관찰 및 연구에 몰두한 지독한 에고이스트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매일 매순간 생각해온 사람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나는 여기서 몽테뉴와 이 책을 쓴 저자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몽테뉴 말년에 인연을 맺은 사후 편집자 구르네에 관해 저자가 평한 부분에서도 비롯된다. 논란이 많았던 구르네라는 다소 불확실한 여성에 대해 저자는 매우 세심한듯 하면서도 어쩐지 애틋한 어조를 잃지 않았다. 같은 여성인 저자는 ‘그녀가 완전히 황홀경에 빠졌던 것처럼 누구나 완전히 매료되어야 한다’고 그녀를 두둔하는 것처럼 보였다. 완전히 매료된 것은 저자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십년전 부다페스트 헌 책방에서 몽테뉴를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했다. 그것은 저자가 구르네에게 느낀 동질감이었고 그것은 저자가 몽테뉴에게 감지한 공감과 꼭 일치했다. 또 그것은 몽테뉴가 문학적 동반자 라 보에시에게 느낀 교류의 감성과 일치했다고 생각한다. 몽테뉴도 라 보에시도 구르네도 저자도 분명 같은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고민했고 그들은 모두 거울을 보듯 상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것은 이 책을 읽게 되는 나같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저자는 이 세대를 초월해 이어지는 상호작용 때문에 고전이 각자의 마음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시에 수많은 독자를 한마음으로 모은다고 부연했다.이 책에는 몽테뉴의 전후 세대를 포함해 그가 살았던 당시 16세기 프랑스의 역사적 상황과 주변국과의 관계, 그리고 당시 철학적 가치관이 몽테뉴의 인생과 잘 믹스되어 있다. 저자는 현대 비평가들이 자신과 닮은 꼴인 몽테뉴를 리메이크 할 때 반드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텍스트로만 저자의 의도를 분석하고 동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재구성 작업도 결국 몽테뉴를 알아가는 다양한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는 몽테뉴에게서 배운 대로 판단을 보류하고, 잘못된 판단이 가져오는 오류의 상황도 지혜롭게 받아 들이고 있었다. 자신 말고 몽테뉴를 말해온 다른 사람도 정답일수 있다고 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중요한 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몽테뉴의 에세를 영감을 얻은 누군가가 이어받아 자신처럼 완전히 빠져든 채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마치 우리 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살아가는 다양한 시도(불어로 에세예essayer는 ‘시도하다’라는 뜻)로 인식되기도 한다. 얼마나 대견하고 근사한 광경인가.문득 몽테뉴가 그의 절친 라 보에시를 사랑한 이유는 “네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 말이 종이에 잉크가 번지듯 뇌리에 떠오른다. 그는 말한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지만 죽음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라고. 인생은 그 자체가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불행히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것은 누구도 어떻게 살 것인지 정답을 말해줄 수가 없고 누군가 내게 그럴싸한 답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아가야하는 주체는 결국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썼기 때문이고, 내가 읽었기 때문‘에 어제와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일찌감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각자 아름다운 해답일랑은 알고들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 말고도 얼마든지 내게 적합한 답은 한두가지 쯤 얻어 놓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계속하여 질문해 보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지 나와는 같은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가끔은 얼토당토않은 답을 교환하고 다른 답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것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아 버리는 것이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하나로 답할 수 없고 정의를 이룩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과정만이 정의를 말해줄 수 있을 뿐인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답하며 그렇게 죽는 날까지 그 ’어떻게‘를 어떻게든 실천하려 노력하는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머리 터지토록 고민해도 어떻게는 살고 하나도 고민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산다. 그냥 살고 잘 살고 조금 더 잘 살고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지만 고민하면 조금 더 지금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희망은 그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다행히도 고민의 주체인 우리 자신에게만은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토록 고민해야 할 이유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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