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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ed by Lev Kulidzhanov
Starring Georgy Taratorkin, Nikolai Figurovsky \u0026 Viktoriya Fyodorova
Based on the novel by Fyodor Dostoevsky, Crime and Punishment.
가난에 찌든 대학생이 초인 사상에 빠져 살인을 저지르고 그 후에 겪게 되는 심리적 압박감과 죄책감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고 그 후 매춘부를 통해 알게 되는 깨달음으로 그 당시 인간의 내면과 본질을 비판,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죄와 벌’은 도스토옙스키의 최고로 꼽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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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다음영화
디트리히와 결별한 후의 첫 번째 작품으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동명소설을 각색했다. 스턴버그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좀 더 단순화시켜 범죄와 죄의식, …
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2/19/2021
View: 4499
죄와 벌을 영화로 보다 – 네이버 블로그
표도르 도스도예브스키 (Fyodor Dostoevsky)의 클래식,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의 영화를 보았다. 2002년 BBC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15/2022
View: 2943
<새영화>‘죄와 벌’ – 경기일보
도마 위를 겁없이 기어가던 커다란 바퀴벌레 한마리가 단칼에 동강이 난다. 무표정한 얼굴의 한 사내가 벌레를 칼로 치워버린 뒤 다시 고깃덩어리를 …
Source: www.kyeonggi.com
Date Published: 3/18/2021
View: 9909
06화 <기생충>과 <죄와 벌> – 브런치
봉준호에게서 도스토옙스키를 보다 | 봉준호의 ‘선(線)’과 도스토옙스키의 ‘선(線)’ 한 영화가 아무리 훌륭해도 한 상영관 점유율이 전체 영화의 반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8/11/2021
View: 4337
죄와 벌 – 나무위키:대문
반면 <죄와 벌>은 그나마 다른 작품의 선계약으로 받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퇴고할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더 상세한 내용은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30/2022
View: 367
죄와 벌 1 – 교보문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죄와 벌』 제1권. 도스토예프스키가 8년간의 유형 … 죄와 벌 1(세계문학전집 284) 크게보기. 크게보기. 매장 재고 · 위치.
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4/23/2021
View: 3485
죄와 벌 – 예스24 블로그
요즘 좌와 벌 책을 틈틈히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장편소설로서 44세 나이에 그의 생애를 통해서 가장 비참한 어려움 …
Source: blog.yes24.com
Date Published: 10/18/2022
View: 8314
[알라딘서재]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인 『죄와 벌』을 만들었다. … 그래도, 이런 작품을 가지고 내가 언제 다시 동영상을 만들까 싶은 생각에, 끈질기게 영상의 …
Source: blog.aladin.co.kr
Date Published: 2/23/2022
View: 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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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도스토예프스키 죄와벌 영화 다시보기
- Author: Jaewook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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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5. 1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800Jt3oxRkQ
죄와 벌을 영화로 보다
표도르 도스도예브스키 (Fyodor Dostoevsky)의 클래식,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의 영화를 보았다. 2002년 BBC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각 인물들의 연기도 흥미롭지만, 특히 러시아 특유의 분위기와 시대상황의 암울함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렇게 클래식 문학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죄와 벌의 경우 상업적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책으로 볼때, 영화로 볼때 어떤 것이 더 좋은가를 두고 논란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것이 더 좋다라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역시 책으로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언어와 영상이 주는 미중에 어느쪽을 선호하느냐…라는 주관적 질문에대해 나는 책이라는 이야기.
여튼, 오랜만에 도스도예브스키의 문장들을 영화 인물의 대사로 보게되니 새롭다.
“Great man smash laws, smash old ones. In order to create new one. Great man are not afraid to be criminal.”
06화 <기생충>과 <죄와 벌>
천만 영화는 없어요 보는 사람
나의 해고, 너의 보너스-내일을 위한 시간
봉준호의 ‘선(線)’과 도스토옙스키의 ‘선 (線) ‘
한 영화가 아무리 훌륭해도 한 상영관 점유율이 전체 영화의 반 가까이 차지하는 게 맞나 ?
<기생충 >의 들러리 취급하듯 마지못해 내 준 같은 개봉관의 불균형한 배급을 보노라니 이것은 봉준호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한 계급과 자본에 관한 사상과 다른가? 싶었다.
그런 이유로 영화관 바로 옆의 은행에 갈 일이 없었다면 애초 예정대로 이 영화가 최대한 조용해질 상영 마지막 날 평일이나 인터넷으로 넘어온 뒤 봤을 것이다. 하필 은행이 극장과 붙어 있는데 굳이 이날을 피해 다시 오는 것도 무슨 유치한 치기 같아서 간 김에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여행 같이 가기로 한 친구 중 한 명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결혼 전 영화광이었던 친구다.
“지금 <기생충> 보고 나오는 길이야”
“어땠어? 네가 보면 우울해할 것 같아 재미있고 좋았지만 보라는 소리를 못 했어”
“귀촌해 촌 놈 다 된 줄 알았더니 부르주아는 귀촌해서도 취향은 못 버 렸 군. 집 앞에 영화관 있는 나보다 개봉 영화를 항상 신속하게 본단 말이야. ”
기택(송강호) 가족이 사는 동네
부르주아 부농이라 역시 빠르군-이라거나, 네가 보면 좀 우울할 것 같았어-라고 무심히 듣고 말할 수 있는 우리는 ‘선을 넘은’ 사이다. 친구는 영화 속 박 사장 정도의 재벌은 아니지만 어릴 때 2층 단독 주택을 세입자 없이 통으로 쓰던 집의 딸이었고, 그 시절엔 흔치 않게 백화점 옷만 입었고, 아버지가 공장주고 어머닌 학창 시절 내내 학교 육성회 임원을 한 집의 딸이었다. 나는 당시 육성회비를 제일 늦게 내던 아이였고, 어머닌 공장 식당 밥을 해주러 다녔고, 우리 집은 단독 주택 2층 젤 구석진 곳이거나 한 마당, 한 화장실을 쓰던 다세대 주택의 한 칸이거나 기택의 가족이 살던 그런 곳의 세입자였다. 처지가 너무 다른 두 계급이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려면 더 많이 가진 자가 ‘ 선’을 넘는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다행히 나보다 배려심, 인내심, 사교성이 몇 배는 더 좋은 친구 덕분에 우리는 서로가 그 ‘ 선’을 밟 고 넘어 서로의 상처나 자산을 무시나 시기로 오해하지 않는 친구가 되었다. 부르주아 부농이라고 빗댄, 자본가의 딸인 내 친구는 농민회 소속으로 자신의 선을 넘어와 밭을 일구며 시민, 농민 운동을 하고 있 다.
두 시간이 쓱 지나 갔 다. 아! 와~ 헐~ 헉! 같은 감탄사도 자주 내뱉었고 중간중간 낄낄거리며 웃 었 다. 그런데 내 감 흥 은 거기서 더 나가지 않았다. 여러 번 감탄과 경탄을 번복했지만, 감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나에게 한 줄 평을 하라면 ‘잘 만든 냉소극 ‘ ‘ 선과 냄새 에 관한 블랙 코미디 ‘ 정도 되겠다. 장르적으론 <살인의 추억>이 훨씬 좋았고 인간에 대한 시선으론 <플란다스의 개>가 더 좋았다.
봉준호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는 알고도 남겠으나 ‘ 어떤 사람들을 보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 가 생략된 재밌는 난장판이었다. 시니컬한 세상과, 모두가 알고 보면 죄인(모두가 알고 보면 피해자라는 해석 은 더 마땅찮다.)이라는 표현이 감독이 바라는 세상의 반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선을 넘지 못한 건 주인공들이 아니라 감독이라는 생각 도 든다.
스포에 연연하지 않고 어느 땐 스포를 찾아다니지만 이건 장르 영화니까, 거장 깐느 봉의 스포일러를 방출하는 건 매국, 반 예술 행위라니까 SNS며 포털에 주저리주저리 오르는 글들 애써 외면하며 최대한 사전 정보에 무지한 채로 갔다. 영화를 보고 나서 후기를 좀 훑어보니 ‘ 나도 과거엔 그랬지 ‘ 라는 회고담이 많아 씁쓸했다. 현재는 안 그렇다는 반영이며 이젠 드라마 ‘ 응답하라-‘ 식의 낭만이나 극복기쯤 된다는 말 같아서. 과거가 아름답게 회고되면 ‘ 추억 ‘ 이고 고통으로 아파오 면 ‘기억 ‘이다. 응답하라나 재난 극복기는 낭만 적 회고의 추억이다. 상처를 추억처럼 말할 수 있게 됐다면 그 상처, 콤플렉스는 이미 극복된 (과거의)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 그때는 그랬지 ‘ 라는 식의 회고담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지금 나는 기택네 같은 지하실에 살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이미지는 내게 아직 추억보다는 기억에 가깝다. 노친네나 내가 의료보험 안 되는 고액의 중병이 들거나 하찮은 지금 일이라도 그만두면 다시 그 기억이 수년 내 현실 복원될 수 있다는 선체험의 각인 때문이다. 친구가 ‘네가 보면 우울해할 것 같아서’라고 이야기한 것은 내가 아직 그런 선체험에서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정서, 환경임을 잘 헤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지하생활자의 수기>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 생각났다. 두 작가의 작품 속엔 영화 속 내내 나오는 ‘냄새’가 자주 묘사되고 책 속의 인물들은 ‘지하에 살거나 지하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영화 속 기택네 동네와 집의 장면들에선 위건 부두에 나온 ‘ 도시 빈민가의 주택 과 냄새 에 대한 상류층의 혐오’ 가, ‘선을 넘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죄와 벌>을, 지극히 불쌍 한데 도 동정심 일으키기 힘든 기괴하고 불쾌한 지하 인간에게서는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연상됐다. 감독이 두 작가나 작품에 영향을 받았는지, 영화 만들 때 참고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라도 영향을 받거나 차용했을 것이 라는 게 내 추측이다.
도스토옙스키나 < 죄와 벌 > 을 좋아하는 사람은 죄와 벌의 원제인 prestuplenie i nakazanie라는 러시아 원제의 뜻 속에는 ‘경계선, 금기’ ‘문턱을 넘는 것’ ‘여기서 저기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가는’이라는 ‘초월’의 이중적 뜻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을 것이다. (또 주인공이 세상을 인식하는 시각 중에는 “벌레 같은 인간-기생충론”도 있지 않은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의 선을 끝내 넘지 못해 죽거나 죽인다. 혹은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죽거나 죽인다.
<죄와 벌>에서 로쟈가 전당포 주인을 죽인 이유는 봉준호가 말 한 ‘선을 넘는 것’에 대한 것과 < 기생충> 주인공들이 서로서로 죽이는 이유 와 정확히 겹친다.
죄를 저지르는 것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지만,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는 일도 이 문에서 저 문으로 ‘넘어서야!’ 되는 일이다…. 무엇이 그를 살인 행위로 이끌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자기 자신의 비참하며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원인이며….. 요컨대 자기가 사람을 죽이려고 결심한 것은 원래 경솔하고 소심하며 가난과 실의 때문에 한층 불안해진 탓이라고 덧붙였다.
인생은 인간의 의지대로 풀리지 않는다. 뜻밖의 사고와 파산, 재난과 질병과 천재지변은 인간의 의지와 별 관계가 없다. 자신이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지하 생활자의 모든 시도는 실패한다. 그는 아무것도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 “나는 사악했을 뿐 아니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한 자도, 선한 자도 비열한 자도, 정직한 자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민음사
이 영화는 내겐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봉준호의 헌정 같게도 느껴졌는데, 둘 사이에 다른 것은 각자가 저마다 지닌 자기 한계에 대한 태도, ‘선을 넘는 것’에 대한 태도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인간은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고정관념에 저항하며, 외부 조건에 굴복되지 않는 ‘자유의지’ 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지하 생활자는 “2×2=4”라 명명한다.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법칙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진리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운명, 혹은 자연의 법칙을 의미할 수 있다. 생로병사일 수도 있고 생물학적 결정론일 수도 있다. 그것은 철옹성이다. 이 철옹성을 향해 지하생활자는 인간의 불합리한 욕망을 가지고 돌진한다. “모든 게 도표와 수학에 따라 진행되고 오직 ‘2×2=4’만이 주위에 있을 때 인간 자신의 의지라는 것은 어디 있는가?
나는 당신들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조차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당신들은 비겁함을 상식으로 간주했고 거짓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그래서 당신들에 비하면 내가 더 살아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하게 이 ‘살아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닭장을 궁전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 년 동안 임대해 살 수 있고 치과 의사의 이름이 씌어 있는 간판이 달려 있는 아파트의 건축 계획을 내 욕망의 왕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겠다. 나의 욕망을 분쇄하라. 나의 이상들을 말살시켜라」
<지하생활사의 수기>. 문예출판사
냉소를 냉소하며 봉준호에게서 도스토옙스키를 호출하던 나는 기택의 ‘무계획한 계획’을 들으면서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끄적거려 놓은 글에서 ‘계획’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니 이런 말이 나왔다.
[미래를 미리 준비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단지 그날그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자기 미래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무계획해서만은 아니다. 시간적, 금전적 여건들이 현재를 살아내기도 근근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는 이들도 많다. 계획이 별무소용인 이들은 그저 현실을 충실히 살며 미래를 욕심내지 않는 게 낙담하지 않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나름의 내력을 터득하게 된다. 2018년 4월 13일 의 일기 ]나를 위시한 저런 냉소엔 공감과 감탄은 있어도 감동이 없다. 봉준호 영화만큼의 감탄을 못 일으킨 켄 로치나 히로까즈 영화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가슴으로 봤는데 기생충은 가슴 밖, 머릿속에서만 감탄하다 말았다. 히로까즈 의 보고 싶은 사람, 켄로치 의 보고 싶은 세상이 봉준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의 복원에 뛰어났고 그것만도 아무나의 능력은 아니지만, 감탄을 넘어서는 그의 한계 너머를 보고 싶다는 것은 나의 실패할 계획, 바람일까? ‘선을 넘는다’라는 게 각자 자기의 ‘한계를 넘는’ 다는 해석도 된다면 봉준호, 그를 향한 감탄을 넘어 한계 너머의 감동을 보고 싶다.
사족) 내 브런치 북의 제목은 <천만 영화는 없어요>였다. 그간 내가 브런치에 쓴 영화 리뷰 중 천만 영화는 ‘천만예요’ 였는데 <기생충>이 유일한 천만영화가 됐다.
죄와 벌 1(세계문학전집 284)(원서/번역서: [해외]Crime and Punishment (Mass Market Paperbound))
▶ 도스토예프스키는 근대 작가 그 누구보다 위대하다. -제임스 조이스▶ 그의 소설은 오직 순수하게 영혼의 재료로만 빚어낸 작품들이다. -버지니아 울프▶ 도스토예프스키는 근대적 서사의 틀을 넘어섰다.-루카치▶ 어떤 과학자보다도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전 2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84ㆍ285)으로 출간되었다.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선고에 이은 8년간의 유형 생활 후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다. 전작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싹튼 새로운 ‘인물 유형’과 소설 기법이 바로 이 소설에서 만개하여,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심리가 낱낱이 파헤쳐진다. 작가 스스로 『죄와 벌』은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고 밝혔듯, 죄와 속죄에 대한 다양한 인식들이 팽팽하게 갈등하고 교차한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작가로서의 성숙기에 정점을 찍을 수 있게 했고, 또한 조이스, 헤밍웨이, 고리키, 버지니아 울프, 토마스 만, 헨리 밀러, D. H. 로렌스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죄와 벌』은 1860년대 후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초,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23세로, 법학도였으나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한 상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고향 소도시에서 그를 뒷바라지하며 그가 출세하여 집안을 일으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학교를 그만둔 후 마치 ‘관’ 같은 방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완벽한 계획을 짜고, 어느 날 저녁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한 것이다. 그런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며칠 동안 열병에 시달린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완전 범죄, 그러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구체적 증거가 없음에도 라스콜니코프의 심리를 꿰뚫으며 그를 압박해 온다. “그저 이[蝨]를 죽였을 뿐이야, 아무 쓸모도 없고 더럽고 해롭기만 한 이[蝨]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성과 관념만이 가득했던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씩 예상하지 못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그러나 그 누구보다 ‘순결한’ 소냐를 만나면서 그는 점점 더 혼란을 느낀다.소냐는 재혼한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와 함께 새어머니 카체리나, 그리고 그녀의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마르멜라도프는 실직한 관리로 아내의 양말까지 팔아 술을 마시는 인물이고, 카체리나는 심각한 폐병을 앓고 있다. 열여덟 살인 소냐는 “뭘 그리 애지중지하니?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라는 카체리나의 말에 몸을 팔게 되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런 소냐에게 라스콜니코프는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 후 처음으로, 오직 그녀에게만 살인을 고백한다.“결국 당신도 똑같은 짓을 한 셈이잖아? 당신도 역시 넘어섰으니까…… 넘어설 수 있었으니까. 당신은 자살을 한 거나 다름없어, 삶을…… 당신 자신의 삶을 파멸시켰으니까.(이거나 저거나 매한가지야!) 맑은 정신과 이성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으련만, 결국 센나야 광장에서 끝장을 보게 되겠지……. 하지만 당신은 견딜 수 없을 테고, 혼자 남게 되면 나처럼 미쳐 버리고 말 거야. 당신은 지금도 정신이 나간 여자 같아.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가야 해, 같은 길을! 가자!”(본문 중에서)도스토예프스키는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명으로 28세에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 집행은 극적으로 취소되었으나, 이후 4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다시 4년 동안을 시베리아에서 복무했다. 감옥 생활 중에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책은 ‘성경’이었다. 이 시절을 보낸 후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야말로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또한 초기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신과 구원의 문제가 이후 작품들에서 화두로 등장한다.『죄와 벌』은 그가 자유의 몸이 된 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인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중편소설에 가까웠던 반면,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 작품 세계가 절정에 이른 대작이다. 또한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새로운 인물 유형과 이야기 전개 방식을 선보이면서 미학적, 시학적 실험을 했다면, 『죄와 벌』에서는 그 소설 기법이 만개하여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심리가 낱낱이 파헤쳐진다. 번역자인 김연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 인생을 조망할 때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가 변태와 탈각(脫殼)의 순간을 보여 준다면 『죄와 벌』(1866)은 그 이후의 모습이 진면목을 드러낸 첫 소설이다.”라고 평가했다.이 작품은 전체 6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 이미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이후에는 그가 왜 그런 범죄를 감행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 이어진다. 특히 다른 누구보다 라스콜니코프 자신이 범죄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진다. 그는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원칙을 죽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때문에 사람을 죽였어…….” “내가 과연 노파를 죽인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죽인 거야, 노파가 아니라!”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을 위해,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인 거야.”라고 되뇌이며, 실제로 끝까지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그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론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 판단 착오를 했다는 것, 그것이다.이 “고매한 살인자” 라스콜니코프는 “성스러운 매춘부” 소냐를 만나면서 고해성사에 가까운 고백을 하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없던 ‘삶’을, ‘이론’이 아닌 삶을 가져다준다.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그는 성경을 펼치지 못했고(않았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 혹은 구원을 얻었는지는 모호하다. 그러나 『죄와 벌』이 “한 청춘이 겪는 ‘환멸과 좌절’의 기록”이라면, 소설이 끝난 후 두 청춘, 라스콜니코프와 소냐에게는 환멸과 좌절을 넘어선 ‘삶’이 남아 있을 것이다.『죄와 벌』이 매력적인 것은 인물이든 작가든 그들 스스로 설정한 특정한 ‘선’(혹은 ‘벽’)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 사이의 긴장 때문이다. 작가는 “스비드리가일로프 ? 절망, 가장 냉소적인 /소냐 ? 희망, 가장 실현 불가능한”(『죄와 벌』 작가 노트)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라스콜니코프의 몽상과 환멸은 이 양극단의 팽팽한 줄다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강렬한 소설에 싱거운 사족처럼 붙은 에필로그와 영원히 쓰이지 못한 후속편도 마찬가지이다. 근대의 미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의 광기’를 ‘영성’으로 극복하려 는 의지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이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인 것이다.(「작품 해설」 중에서)이 책의 번역자인 김연경은 서울대학교와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젊은 학자이다. 또한 21세에 등단해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내 아내의 모든 것』, 장편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등의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젊은 학자이자 소설가로서 김연경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이어 『죄와 벌』을 감각적으로 번역해 냈다.특히 이번 번역에서는 그동안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을 일컬었던 ‘초인 사상’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했다. 이것은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일컬으면서 사용했던 용어였다. 그러나 김연경은 “‘초인’도, ‘초인 사상’도 『죄와 벌』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단어이다. ‘비범인(非凡人) 사상’ 역시 포르피리와 라스콜니코프가 후자의 논문 「범죄론」을 논하며 사용하는 개념을 토대로 만들어진 조어이다. (중략) 원어 자체도 극히 평범한 것이거니와 라스콜니코프의 사상 역시 진부할 정도로 평범한 것이라는 사실, 바로 이것이 그의 절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고민의 결과로, 기존의 국역본에서 ‘범인(凡人)’과 ‘비범인’으로 옮겨진 러시아어 단어는 각각 ‘평범한 사람(들)’과 ‘비범한 사람(들)’으로 옮기게 되었다. 작가의 의도와 등장인물의 사유를 깊이 고민하고 반영한 결과이다.또한 기존에 흔히 잘못 번역돼 오던 오류도 바로잡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비범한 사람’의 예로 나폴레옹, 마호메트, 리쿠르고스와 함께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솔론’을 꼽았는데, 기존 번역에서는 거의 ‘솔로몬’으로 잘못 옮겨 왔던 것이다.일본어에서 중역하면서 이어져 오던 여러 용어들도 우리 실정에 맞게 바꾸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면 19세기 러시아 행정구역 단위 중 하나를 그동안은 일본어 번역을 참조했던 습관대로 ‘현(縣)’으로 옮겨 왔는데, 이것을 ‘도(道)’로 바꾸었다. 또한 라스콜니코프의 이미지를 완성했던 ‘짙은 아마(亞麻) 색 머리카락’에서 ‘아마 색’을 ‘황갈색’으로 바꾸어 이해를 보다 쉽게 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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