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가 동쪽 으로 간 까닭 은 | Why Has Bodhi Dharma Left For The East 1989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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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editative film dealing with Seon Buddhist views on life, Why Has Bodhi-Dharma Left for the East? follows the lives of three Buddhist monks: a child, an adult, and an old man. This film is largely about two Zen koans. The koans are: What is my original face before my mother and father were conceived?, and (In death,) where does the master of my being go? The film’s title, although not explained literally in the film, is a reference to Bodhidharma, a 6th-century Buddhist monk from India who transmitted Zen to China. The question, \”Why has Bodhi-Dharma left for the east,\” is echoed by the young boy’s question, \”Why have we all left the world?\” The entire film can be seen as an answering of that question, so that the film itself becomes a koan. The three main protagonists are Haejin, an orphan boy, Kibong, a young monk, and Hyegok, a Zen master.” – https://en.wikipedia.org/wiki/Why_Has_Bodhi-Dharma_Left_for_the_East%3F
“Bodhidharma was a Buddhist monk who lived during the 5th or 6th century. He is traditionally credited as the transmitter of Chan Buddhism to China, and regarded as its first Chinese patriarch. According to Chinese legend, he also began the physical training of the monks of Shaolin Monastery that led to the creation of Shaolin kungfu. In Japan, he is known as Daruma.” – https://en.wikipedia.org/wiki/Bodhid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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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나무위키:대문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서양화 미술교수이던 배용균이 기획 8년, 제작 4년에 걸쳐 그야말로 홀로 다 만든 영화다. 감독, 제작, 연출, 각본,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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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7/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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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達磨가 東쪽으로 간 까닭은?)은 1989년에 제작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Picto infobox cinema.png.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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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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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다음영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노스님 혜곡(이판용), 그의 가르침 아래 동자승 해진(황해진)과 젊은 스님 기봉(신원섭)은 절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봉은 눈 먼 어머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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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4/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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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배용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 – 법보신문

조주 스님은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동쪽 당나라로 오신 뜻을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화답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달마 조사는 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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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eopbo.com

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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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만다라] 2.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1989년 첫선을 보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Why Has Bodhi-Dharma Left For the East?, 이하 달마)〉의 디지털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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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yunbulnews.com

Date Published: 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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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Why Has Dharma Left For The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Why Has Dharma Left For The East?, 1989 …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을만한 작품. 내게는 지금까지 본 한국영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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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mk.tistory.com

Date Published: 12/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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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시장 개척! – 프레시안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다. 노승과 젊은 스님, 그리고 동자승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고 그 해탈의 경지를 탐구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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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ressian.com

Date Published: 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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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 의약뉴스

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그 일은 간혹 생각났고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의 환영이 또렷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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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mp.com

Date Published: 6/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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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Has Bodhi Dharma Left for the East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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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달마 가 동쪽 으로 간 까닭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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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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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Why Has Bodhi-Dharma Left for the East? 감독 배용균 각본 배용균 출연 이판용

신원섭

황해진

고수명

김희룡

윤병희

최명덕

이은영

이선혜 촬영 배용균 편집 배용균 음악 진규영 제작사 배용균프로덕션 개봉일 1989년 9월 23일 ( ) 시간 175분 국가 대한민국 언어 한국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達磨가 東쪽으로 간 까닭은?)은 1989년에 제작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대구 효성여자대학교(현재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배용균이 감독을 맡았으며 배용균프로덕션이 제작했다. 기획 8년, 제작 4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으며 제작, 연출,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배용균 감독이 직접 처리해서 주목을 받았다. 산사에 사는 동자승의 눈에 비친 인간의 생과 사, 자연과 생명의 신비함 등을 묘사한 영화이다.

줄거리 [ 편집 ]

어느 날 기봉이라는 청년 승려가 노승 혜곡, 동자승 해진이 함께 살고 있던 산사를 방문했다. 기봉은 속세에 홀로 남은 시각 장애인 어머니에 대한 걱정에 시달리고 있던 청년 승려였지만 산사에서 대자유의 길을 얻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해탈에 이르기를 원했다.

어느 날 혜곡은 산사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던 도중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입적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기봉은 혜곡과의 교감을 통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도를 깨우치려고 했지만 세속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입적을 얼마 앞두고 있던 혜곡은 기봉에게 자신의 입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혜곡의 시신을 다비한 기봉은 해진에게 혜곡이 남긴 유품을 건네주고 산사를 떠났다. 한편 산사에 혼자 남은 해진은 불이 타오르는 아궁이에 혜곡의 유품을 넣어 태우게 된다.

출연 배우 [ 편집 ]

이판용: 노승 혜곡 역

신원섭: 청년 승려 기봉 역

황해진: 동자승 해진 역

고수명: 주지 역

김희룡: 도반 역

윤병희: 기봉의 어머니 역

최명덕: 여동생 역

이은영: 해진의 어머니 역

이선혜: 무희 역

수상 [ 편집 ]

18. 배용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부산국제영화제 우수작 10편에 선정돼 재상영됐다. 한국 불교영화의 정수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사진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캡쳐.

한국영화는 1919년 영화 ‘의리적 구토’ 상영을 기점으로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우수한 작품 10편을 선정했는데, ‘바보들의 행진’ ‘바람불어 좋은 날’ ‘하녀’ 등이다. 이 가운데 한 편의 불교영화가 포함되었으니, 그 작품은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다. 이 작품은 오랜 제작 기간 동안 안동 영산암에서 촬영한 순도 높은 불교영화이다. 이 작품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에서 수만명이 관람하여 지지를 받았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이상한 두 작품을 홍상수의 첫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지목했다. 정성일은 부산국제영화제 특강에서 이 작품은 표면의 단순한 서사와 이면의 중층적인 서사로 텍스트를 해석해야한다고 했다. 표면의 서사는 노스님 혜곡으로부터 배움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한 기봉과 동자승 해진의 이야기이며 기봉은 혜곡의 다비식을 마치고 길을 떠나며 혜진은 절에 남는다. 그리고 정성일은 기봉 스님의 내면의 서사와 소가 상징하는 심우도의 시각에서 영화의 실마리를 풀어가야한다고 역설하면서 난해한 영화를 비평의 언어로 한 땀 한 땀 풀어가는 묘미를 보여주었다.

필자는 1989년 서울의 한 극장에서 감상한 이후 30년이 지난 올 해 다시 필름으로 친견하면서 감성의 프레임에 이미지를 담아보았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의 해박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뒤로하고 객석에서 일어나 수영강변을 산책하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대해 사색했다. 강변을 건너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필자를 맞이했다.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과 하늘 그리고 계곡물에 비춘 1980년대 한국의 계곡을 떠올리면서 그 이미지 속에 알알이 새겨진 불교의 무늬와 혜곡과 기봉과 해진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환기하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수도승처럼 ‘불교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낯 익은 질문을 맨얼굴로 성찰했다.

첫 장면에서 염화미소의 일화를 언급한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친절한 안내문에 가까운 것 같다. 대중영화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이야기로 완결된다면 이 불교영화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내미는 꽃처럼 헤아리고 바라볼 것을 권유하는 인상을 받았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실 때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때 세존께서 꽃을 들어 중생들에게 보이셨는데 가섭 존가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셨다. 이에 석가모니 세존께서 “정법의 눈과 열반의 미묘한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무비 스님, 직지강설 상)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염화미소, 염화 시중을 통한 불립 문자라는 선불교의 가르침이 기원한다. 이 영화도 배용균 감독이 불교라는 꽃을 관객들에게 들어 보인 조금 친절한 불립문자에 가깝다.

제목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다. 달마 조사는 527년 남인도에서 당나라 낙양에 도착하여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 수도를 하였다. 인도를 중심으로 하면 달마조사는 동쪽으로 가신 것이며 중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서쪽에서 오신 것이다.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행보로 인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라는 조주 스님의 문답이 있다. 조주 스님은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동쪽 당나라로 오신 뜻을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화답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달마 조사는 혜가 대사의 물음에 동쪽으로 온 까닭에 대해 답했다. “내가 본래 이 나라에 온 것은 법을 전하여 미혹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함이라. 한 꽃에 다섯 잎이 피어서 결과가 저절로 이루어지리라”고 답했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과 화두는 배용균의 영화와 직접적으로 해석의 단서는 제공하지 않지만 우회적으로 지침을 마련해 준다.

혜곡 노스님은 눈먼 노모를 속세에 두고 출가한 기봉 스님에게 화두를 내려준다. 그 화두는 ‘마음의 달빛이 차오르면 우리의 주인공은 어디로 향하는가’이다. 기봉은 화두를 참구하기 위해 계곡의 폭포 아래서 정진한다.

불교영화에서 화두 참구를 위한 정진 장면은 물과 연관해서 등장한다. ‘만다라’에서 법운 스님도 ‘입구가 좁지만 안이 깊고 넓어지는 병 속에 든 새를 어떻게 다치지 않게 꺼낼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깨우치기 위해 바닷가에서 정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닷가의 파도는 헤쳐 나갈 힘든 장애로 제시되며 계곡물의 드센 물살은 화두 참구의 고통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다.

혜곡 스님의 다비식을 마치고 산사를 떠나는 기봉에게 해진은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그때 기봉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서 청아한 하늘과 구름이 떠있다. 해진도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바라보고 다시 기봉의 자리를 바라보자 기봉은 이미 자취가 없다.

해진은 기봉이 남긴 혜곡 스님의 유품을 불에 태운다. 해진의 방식으로 혜곡 스님을 다시 다비한다. 그때 해진을 바라보던 새가 하늘로 날아간다. 새는 해진을 지켜본 죽은 새의 분신이거나 죽은 새의 짝이다. 해진은 새의 살생에 대한 죄의식과 죽음의 화두로부터 벗어나 하늘을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기봉은 소를 끌고 저자거리로 돌아간다. 십우도의 마지막 열 번째는 입전수수이며 저자 거리로 돌아가 중생을 계도하는 것이다. 기봉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참구하면서 ‘그가 떠난 것은 모두에게 완전히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마음의 소리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마음의 소리와 마지막 장면에서 소와 함께 속세로 내려가는 장면이 서로 호응하고 있다. 소는 진여(眞如), 본래면목을 의미하며 화두의 깨달음을 통해 스스로 불성의 한 자락을 잡고 중생을 계도하기 위해 떠나는 기봉의 모습은 유품을 다비하는 해진의 행위와 교차편집된다. 해진은 혜곡의 과거이며 기봉은 해진의 미래일 것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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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만다라] 2.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심우도의 ‘반본환원 (返本還源)’ 경지에 비견할, 본래의 공(空)한 세계를 보는 형상.

1989년 첫선을 보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Why Has Bodhi-Dharma Left For the East?, 이하 달마)〉의 디지털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평소 말을 아끼는 배용균 감독은 이를 위해 지난 1월 한국영상자료원의 색재현실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복원팀에게 주요 이미지에 담긴 자신의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가령 “기봉의 승복 색이 추한 회색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계곡 물살의 색이 더욱 힘이 느껴졌으면 합니다” 혹은 “석양의 빛줄기가 굽이치며 아래로 내려오는 하이라이트 띠 부분이 뚜렷이 더 밝게 표현되었으면 합니다”와 같은 코멘트가 포함돼 있다.(2021년 2월 한국영상자료원 자료 참조) 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하나의 귀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영화 속 세 주인공인 동자승 해진, 비참한 속세를 등지고 출가한 젊은 기봉, 용맹정진하여 해탈의 경지에 가까워진 노스님 혜곡, 이들을 표현하는 ‘추하지 않은’ 승복색이나 모든 것을 정화하고 비울 수 있게 하는 세찬 계곡 물살 속 수행 장면, 그리고 천지가 고요하고도 성성한 마음의 빛이 끝없이 퍼지는 형언할 수 없는 ‘대적광(大寂光)’의 세계를 표현한 장면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용균의 〈달마〉는 말로 표현이 불가하고 마음으로 직접 전해져야만 하는 선(禪)적인 영화이므로, 응당 승복 색깔의 톤이나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와 긴장감, 새하얀 물살의 정화력, 혹은 노을빛에 물들어 자유로이 떠가는 구름의 표정마저 그만큼 중요해진다. 이는 몇몇 이들이 오해하듯 단순한 매너리즘이나 심미적 집착이 아니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인용하듯, 부처님과 가섭 존자 사이에 오가는 ‘염화미소(拈花微笑)’처럼 말을 떠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바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달마〉와 심우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영화의 판본은 크게 세 가지 △한국 극장판 135분 △미국 마일스톤 DVD 출시 감독판 145분 △한국 VHS 2시간 55분)인데, 이 글은 온라인에서도 영어 자막 버전으로 공개돼 있는 2시간 55분 버전에 바탕을 두겠다. 진행 중인 복원작업도 이 러닝타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근래 〈달마〉를 거듭 보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자문해오던 심우도와 작품의 관계, 그리고 이미지 자체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이 관찰의 과정에서 소의 이미지는 작품의 한 부분이 아니라 어쩌면 작품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유로 여기에서는 심우도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보고자 한다.

소의 형상은 두세 장면 제외하고 가시적으로 뚜렷이 잘 안 들어올 수 있으나, 소는 작품의 초반에서 엔딩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도처에 있다. 심우도 혹은 십우도(十牛圖)는 잘 알려진 대로, 불교의 선종에서 수행자가 자신의 본성 혹은 불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소를 길들이는 일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이다. 일반적으로 선 수행의 과정을 흔히 소와 동자의 관계로 나타내고 열 단계로 나누어 도해하는데, 한국에서는 곽암의 도상이 더 알려져 있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출현한다. 돌팔매질로 잡은 새를 통해 생사의 두려움과 죄책감의 엄청난 무게를 처음으로 겪게 되는 해진 동자의 경우,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에 소는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진의 입장에서 ‘견우(見牛)’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소는 앞장서서 길을 찾아주는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 나타났다 사라진다. 기봉에게, ‘소’는 그의 수행 여정 전체에 걸쳐 더욱 다양하게 편재(遍在)한다.

기봉은 사바세계에서 가난과 인륜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다 마침내 “존재의 자유”를 찾아 출가를 감행한 청년이다. 그는 병든 어머니와 용맹정진하여 깨쳐야 할 화두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는 엔딩 장면을 비롯한 한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주로 어둠 속에서 형체를 온전히 알아보기 어렵게 아주 잠깐씩 흔들리며 나타난다. 따라서 관객들은 극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숨은 이미지들을 놓쳐버리기 쉽다. 소는 어둠 속에서 수행자를 바라보는 눈동자로도 그려지고 크고 작은 여러 뉘앙스의 워낭소리나 불안스레 수풀을 어지러이 밟고 지나는 발소리로도 그 존재를 알린다. 여기에서 소의 시각적 이미지뿐 아니라 청각적 이미지는 중요하다.

기봉의 소는 자주, 산사의 스산한 밤바람이 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야생적이고 거친 몸짓으로 서성인다. 이 형상은 약봉지도 어렵사리 찾는 눈먼 어머니와 가장의 책임을 짊어진 여동생을 저버리고 출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한편 대자유의 빛을 찾아 정진하려는 뜻을 꺾을 수는 없는 기봉의 혼돈스런 내면, 즉 그의 의구심과 갈피를 못 잡는 내면 풍경과 일치한다.

이때 카메라는 고삐 풀린 소의 움직임처럼 제어되지 않고 흔들린다. 깊은 갈등과 고뇌, 이와 싸우며 정진하려고 애쓰는 데서 나오는 정신적 분투의 에너지는 그 자체가 〈달마〉의 요체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시간상 그보다 앞서는 회고 장면에서 불가에 들어와 가사를 입은 초심자의 마음가짐과 결기 어린 발걸음이 우직한 소의 그것을 닮게 느릿하고 투박하게 카메라에 잡히는데, 이 또한 우연이 아닌 의식적 묘사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것은, 존재의 진면목(眞面目)을 찾아가는 도정을 단계별로 상징화한 심우도를 영화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소는 인물의 구도 과정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 이상이며, 그것이 작중 인물과 완전히 한 몸을 이루는 새로운 심우도가 태어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기봉이 이전과 달라진 시선으로 천지만물의 본 모습을 깨우치게 됨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기봉의 모습이 소의 눈 혹은 소의 얼굴과 하나로 합쳐지는 새로운 형상을 통해서이다.(사진1 참조)

여기에서 소는 인물과 둘이 아니라 거의 한 몸이 된다. 저 앵글의 탐색과 조명, 피부색의 표현은 명징한 의식의 소산이다. 소와 수행자의 합일 상태를 영화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이 작업은 단순히 심미적인 조탁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이 시야가 탁 트인 눈동자(어두운 수풀 속에서 수행자를 바라보던 소의 눈망울과 대비되는)와 형용할 수 없는 진여(眞如) 세계의 목도를 빼고 나면, 대사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작품의 정수는 무엇인가? 대사나 서사는 여기에서 보조적이고, 화두처럼 하나의 질문으로만 작용한다.

심우도의 ‘입전수수’로 가는 도정. 빛 속에서 무애한 발걸음으로 걷는 기봉과 소.

마음달이 차오를 때, 나의 주인공은?

이 영화 속에서는 두 개의 질문 즉 화두가 나란히 가다 영화의 말미에서 하나로 만나게 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라는 영화 전체의 화두, 그리고 정진을 통해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주인공의 존재론적 화두가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화두는 모두 일견 방향을 묻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방향에 대한 답을 구한다기보다 방향에 대한 고정관념과 분별의 허망함을 역설적으로 묻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동쪽으로든 서쪽으로 부터든 방향성 자체나 장소 이동에 문제의 열쇠가 있는 경우는 아니리라. 혜곡의 다비식을 마치고 절을 떠나는 기봉의 등 뒤로 “스님 어디로 가세요”라고 묻는 해진에게 기봉은 말없이 눈을 들어 노을에 물든 하늘의 구름을 응시한다.

심우도의 단계로 보자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중 속으로 돌아가 보살행을 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이미지를 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자칫 우리는 주인공의 ‘마음달’이 흐르는 물속으로부터 조금의 일그러짐이나 깨어짐 없이 차올라 마침내, 온 세상을 밝히게 되는 순간의 장엄함을 간과하기 쉽다.

“석양의 빛줄기”가 지상으로 내리는 시간, 수행자의 마음달은 온전히 솟아오르며 빛을 더한다. 수행자에게 하나의 장애이던 ‘물’은 이제, 마음의 달빛과 석양의 빛을 만나게 하면서, 무량한 광명과 적멸(寂滅)의 순간을 담고 반짝인다. 마지막 장면에 현전하는 이 빛은, 산사와 정반대의 세계인 줄 알았던 기봉이 떠나왔던 세간의 오물과 왁자지껄함과 누추함으로 가득한 (영화의 시작과 중간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장면까지도 또 다른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화하게 하는 듯하다. 이 진여와 충만한 생(生)의 순간을 표현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작품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번 시네마 만다라에서는 심우도를 길잡이 삼아, 배용균의 영화 이미지 자체를 있는 그대로 주의 깊게 보려고 해보았다. 〈달마〉는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건축된 안동 봉정사의 영산암에서 주로 촬영됐다. 이 작품은 깊은 존재론적 성찰과 그 이미지 창조력 면에서 그 가치를 높이 살만 하다. 한국영화 70주년에 〈달마〉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분야에 초청을 받았고 이어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서구 유수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첫 예로 기억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Why Has Dharma Left For The East?, 1989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을만한 작품. 내게는 지금까지 본 한국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아주 어릴 때 멋도 모르고 봤다가 구벅꾸벅했지만,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A SPACE ODYSSEY, 1968) 처럼 지금껏 수도 없이 감상했던 영화이고, 볼 때마다 아련해지고 감명을 받은 영화다.

비유는 적절치 않지만, 처음 친구와 일본에서 일본 라멘을 접했을 때, 맛이 맞지 않아 거짓말 안하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입에서 국물이 흘러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그 라멘 맛이 그리워져서 다시 먹고 싶어져 일부러 가끔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런 영화가 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부러 아마존에서 해외판을 구입해서 일본의 동료나 존경하는 분께 선물하곤 했다.

음성은 한국어, 자막은 영어, 일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보지않으면 지루해지기 쉬운 영화이긴 하지만, 한국의 미, 개인의 삶의 의미, 지향, 깨닮음, 한컷한컷의 영상미.. 등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축을 개인예술로 바꿔버린 오카케이스케씨(2016/03/11 – [논문보다가치있는일본예능/타모리구락부(タモリ倶楽部)] – 타모리구락부(タモリ倶楽部) – 스스로 짓는 건축가 셀프빌더 오카케이스케(岡啓輔))와 같이, 배용균 감독은 영화를 개인예술로 만들어 버린 인물이기도 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시장 개척!

▲ 마테오 리치의 묘. 베이징 시청구 베이징행정학원 교내에 자리하고 있다. ⓒwikimedia.org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다. 노승과 젊은 스님, 그리고 동자승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고 그 해탈의 경지를 탐구하는 것이 영화의 테마다. 물론 영화의 테마도 좋았지만, 나에게 더 큰 흥미를 유발한 것은 그 영화의 제목이었다.불교는 B.C. 6세기 무렵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브라만교가 확고부동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성하지 못했다. 그러다 300여 년이 지난 후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왕이 전폭적으로 불교를 지원하면서 인도 전역에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번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쇼카 왕이 죽자 힌두교에 밀려 불교는 다시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0년이 지난 후 한나라 말기에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됐으며, 다시 500여 년 후 위진남북조 시대에 달마 대사가 중국에 왔다.’종교’라는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영혼의 위안’이라는 상품을 파는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품의 특징은 소비자가 이것을 구매하면 저것은 구매하지 않고, 심지어는 똑같은 제품도 이곳에서 구매하면 저곳에서는 구매하지 않겠다는 제품에 대한 특별한 충성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업을 하는 기업은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시장을 잃기 시작하면 신상품을 만들어 내거나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소규모의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이런 불경스런 비유를 한 이유는 달마 대사가 상업적 목적으로 중국으로 넘어 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종교의 본질을 폄훼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 종교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종교를 수호하는 교단이 있어야 하고, 교단이 존속하기 위해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요즘은 새로운 교리의 신상품을 마구 만들어내며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는 일부 종교 교단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외래 종교와 사상의 전파가 인류 의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불교는 아쇼카 왕 사후에 인도에서 세력을 잃고 동남아로 전파된 후에 대승 불교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들어 왔다. 처음에는 사치품처럼 지배층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 달마가 들여온 선종이라는 신상품이 대중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문화와 융합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이미 도교라는 유사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불교는 도교와 지속적으로 시장 경쟁을 벌이며 중국인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었으며 유교는 이들의 교리를 흡수하여 성리학과 양명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불교는 외래 사상이 아니라 중국 문화, 그리고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달마가 서쪽에서 온 지 약 1000년 쯤 지나서 그보다 더 서쪽에서 또 한 사람이 찾아 왔다. 유럽이 종교 개혁의 열풍에 휩싸여 있을 때 스페인에서 새롭게 등장한 예수회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를 찾은 것이다. 불교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명나라의 지배층은 그가 가져온 서구 문물에 호기심을 느끼며 마테오 리치에게 호의적이었다.마테오 리치 본인의 성품이 학구적인데다가 온화하기도 했지만 예수회의 전도 방식이 현지 친화적인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에 명나라 지배층은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예수회는 공자의 제사를 인정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전례(典禮) 문제로 예수회는 해산됐고, 뒤이어 들어온 선교사들은 엄격한 교리를 고집했다. 결국 청나라 초기에 기독교 포교가 금지되면서 기독교는 중국의 백성들과 소통할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교단은 예수회가 처음은 아니다. 당나라 때 경교라고 불리는 네스토리우스 교파가 들어와 원나라 때 잠시 번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 교파는 중국 전파 이전에 이미 유럽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교파이고, 예수회도 정통 가톨릭의 주류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 시장 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 친화적인 전략을 쓰기는 했지만 너무나 다른 세계관과 문화적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나 선과 악에 대한 관점은 근본적으로 달랐다.영화를 예로 들자면 혹은 같은 서양의 고전적인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악령은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령은 악마 그 자체이므로 물리치거나 제거해야할 대상이지 화해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악은 그렇게 악마에게 속한 것이며 기독교 세계에서 죽음이란 신에 속할지 악마에 속할지 결정되는 순간이다.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귀신은 서양의 악령과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 이승에 한(恨)이 남거나 객지에서 횡사하여 장사를 치르지 못하면 귀신이 된다. 한을 풀어주고 장사를 지내주면 귀신은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며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귀신은 악마가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인간인 것이다. 죽음이란 불교에서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윤회의 과정이고, 유가에서는 귀신혼백(鬼神魂魄)이 흩어지는 음양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동서양의 세계관은 융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랐다.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생을 마감하고 북경에 안장된 지 약 200년 후에 다시 유럽인들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군대를 이끌고 왔다. 청나라는 제2차 아편 전쟁 이후에 다시 기독교 포교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진정한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당시의 중국인들은 국가의 권익이 하나씩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계관의 차이를 극복할 겨를이 없었다.처음에는 그들의 군대를 부러워했고, 그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동경했다. 그 다음은 그런 경제적 역량을 갖추게 하는 정치 체제와 사회 제도를 배우고자 했다. 그런 과정을 우리는 근대화라 부른다. 근대화가 시작된 지 아직 200년도 안됐다. 불교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완전히 융화되어 우리의 것으로 정착되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우선 너무도 다른 세계와 신에 대한 인식론의 차이를 극복하고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의 지평이 열려야 한다.

299.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나 어릴 적에 어치를 잡았다. 그때는 당가치로 불렀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산까치의 일종인 어치였다. 어치는 마당에 앉아서는 깡충깡충 뛰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까치의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그 까치는 100년도 넘게 묵은 팽나무를 보호막 삼아 나무와 땅을 오고 갔다. 학교에 돌아와 가방을 집어 던지고 마당으로 나와 보니 그 날은 어치가 유난히도 깍깍 짖어 댔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어서 나는 좀 당황했다.

그러다가 팽나무 위에 까치집이 있고 새끼가 막 부화한 것을 알았다. 어미는 내가 다가가자 새끼를 해치는 줄 알고 방어했으며 그런 어치를 향해 나는 손에 잡히는 돌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머리 위를 빙빙 돌거나 호버링 하듯이 잠깐 멈춰선 녀석에게 그것을 던졌다. 그래도 어치는 도망가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 끝에 나는 어치의 가슴에 돌팔매를 정확히 명중시켰고 어치는 순간 기절해 땅에 떨어졌다.

어치의 발에 나는 낚싯줄을 감았고 대문 기둥에 묶어 놓았다. 사발 종지에 물을 담아 놓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어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수소문 한 끝에 팽나무보다 더 높은 느티나무 꼭대기에 녀석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길게 늘어진 낚싯줄이 마치 거미줄처럼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줄은 마침 지는 석양을 받아 반짝였고 허공에 매달린 채 아무리 높이 뛰어도 잡을 수 없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어치를 보았고 그 모습을 다음날도 보았으나 그 다음 날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치를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그 일은 간혹 생각났고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의 환영이 또렷이 떠올랐다.

화면에서 보는 어치는 내가 잡았던 어치와 똑같았다. 갈색의 등이나 날개 죽지 주변에 파란색이 있는 것이 영락없는 녀석이었다. 동자승 해진 (황해진)도 나처럼 어치를 잡았다.

그리고 줄로 묶어 두는 대신 방에 두고 물을 주었으나 다음날 어치는 죽었다. 그는 죽은 어치를 깨진 기왓장으로 덮어 두었고 나중에 떠들었을 때 시체는 온통 구더기가 들끓었다.

나 어릴 적 시골이나 깊은 숲속의 산사에서나 어린애들이 놀것이 부족해서 이렇게 산 것을 곧잘 죽였다.

노승 혜곡 (이판용)이 살생장면을 보았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 감히 유추해 볼 수 없지만 해진아, 문 닫아라 하고 조용히 타이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자승은 커서 지금의 내 나이 보다는 적겠지만 만난다면 그 어치가 여전히 생각이 나는지 물어보고 싶다. (손에 잡았던 순간의 따뜻함과 작은 심장이 급하게 뛰었는지도.)

각설하고 그 절에 어느 날 젊은 스님 기봉(신원섭)이 올라온다. 중 눈썹을 한 것이 영락없는 스님 행세인데 깊은 수심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것처럼 얼굴 한가득 이다.

노스님과 해진 그리고 젊은 스님 셋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기봉 스님의 눈먼 어머니와 조금 이상한 여동생 정도가 나오니 출연진은 단촐하다.( 연출부도 그렇다. 배 감독이 감독은 물론 제작,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을 혼자 했다고 한다.)

출연진 셋이 수다를 떨거나 춤추고 노래하고 일하는 것이 아니니 화면은 빠르기보다는 느리고 자꾸 바뀌기보다는 한곳에 머물고 대사 대신 자연이 주 배경이 되겠다.

흐르는 계곡물 소리, 산 짐승의 울음소리, 계절 따라 바뀌는 산새 소리, 종소리, 등잔불 심지 타는 소리, 목탁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가 고요한 화면 속을 더 숨죽이게 만든다.

장작불 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어린 동자승의 모습을 보는 관객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숙연해지고 자신이 마치 도를 닦는 기봉 스님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젊은 스님의 고뇌를 어찌 관객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혈육과 욕심을 박차고 나온 스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도를 터득하는 일일 터. 그러니 그의 수행은 수행이라기 보다는 학대에 가깝다.

깨달음에 대한 깊이가 깊어 질수록 노스님의 몸은 점차 쇠잔해 진다. 오랜 수행의 결과 혜곡은 자신의 숨길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말을 기봉에게 전해 주고 어느 날 길지도 않은 머리를 깎자고 냇가로 재촉한다.

열반에 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마침 그날 기봉은 해진을 데리고 산 아래 큰 절에서 벌이는 승무를 구경하고 저녁 늦은 무렵 산으로 올라왔다.

절 마당에서 문간에 비친 스님은 꼿꼿하다.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기봉이 가졌던 팽팽한 긴장감은 풀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자 스님이 옆으로 쓰러진다.

먼 길로 가기 전 스님은 자신의 죽음을 알려 번거롭게 하지 말 것과 관으로 쓸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려줬고 이 모든 일은 한나절 반이 넘어가지 않도록 다짐을 주었기에 기봉은 서두른다.

시체를 넣을 궤짝을 찾고 그것을 태울 장작을 모으고 불이 잘 붙도록 열심히 입으로 바람을 불고 석유를 뿌린다. 마침내 힘쓴 보람이 있는지 불길은 세차게 타오른다. 어둠이 가고 주변이 환하다.

산불을 조심하라는 스님의 당부대로 기봉이 신경을 썼는지 하늘로 치솟는 불길은 사방으로 번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만 화염을 품는다.

그 모습을 해진도 지켜본다. 시간이 지나고 불은 꺼지고 스님은 한 줌의 재로 남는다. 재를 골라 뼈 몇 조각을 추린 기봉은 돌로 그것을 잘게 부순 다음 흰 가루를 조심스럽게 뿌린다.

어치가 죽은 것처럼 스님도 죽었다. 어치가 죽었을 때 다른 짝은 심하게 울부짖었으나 스님이 죽었을 때 기봉과 해진은 우는 대신 마음속으로 슬픔을 삼켰다.

일을 마친 기봉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바랑 하나로 남은 스님의 유품을 해진에게 전해주고는 내려가서 너를 돌볼 스님을 올려 보내겠다고 한다.

기봉은 깨달음을 얻고 하산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스승을 찾아 자신이 갈구하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을까. 기봉이 떠난 절집에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진다.

국가: 한국

감독: 배용균

출연: 이판용, 황해진, 신원섭

평점:

팁: 화면이 느리니 스님이 받는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욕망이 최고조에 달한 젊은이. 머리를 자르고 장삼을 펄럭인 결과 해탈의 경지에 올라섰을까.

폭포 아래서 도를 닦고 시장 바닥에서 염불을 하고 온갖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참선을 해봐도 답이 없다. 스님은 다시 노스님 곁으로 돌아온다. 지팡이로 등짝을 얻어 맞은 기봉은 아픔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 아픔 때문인지 이런 헛소리를 지껄인다.

스님은 왜 산에 계십니까. 혜곡은 말한다. 강남에서 온 제비야. 별은 먼 곳에서 하늘의 균형을 잡는다. 너 같은 멍충이가 나를 찾아오니 내가 산에 있어야 한다. 선문답치고는 제법 이치에 맞다.

네가 선 곳이, 그 자리가 극락정토다. 그러나 젊은 기봉은 그 자리를 벗어나서 곧장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인다. 그 사이로 부처 얼굴이 언뜻 비친다.

종소리 은은하다. 화두의 바닥을 보았느냐. 육신이 세속과 맺은 인연이 끝나갈 때 던진 혜곡의 질문에 기봉은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나의 잔재를 너에게 맡긴다는 임무만은 충실히 했다. 기봉은 앞이 막히면 어디에 물어야 할지 이제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미 찾았다면 좋은 일이지만 찾지 못했다면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가는 것이라는 혜곡의 말을 더 새겨야 한다. 아직 그대는 도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치의 삶과 죽음은 해진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한편 이 영화는 한국 최고의 예술영화로 평가받는다. 이런 평가에 걸맞게 제 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금표범상을 비롯해 감독상, 촬영상, 청년비평가상을 받았다다.

기획 8년, 제작 4년이라는 오랜 제작 기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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