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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 나무위키:대문

대순진리회의 모체가 된 태극도는 증산의 영적 제자를 자처한 조철제가 설립한 교단으로, 엄밀히 말하면 증산도/증산교 계열 종교들과는 종통종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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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7/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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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차이점

증산도는 단 한분의 상제님, 곧 증산 상제님을 모시지만, 대순진리회는 하늘 상제, 땅 상제가 각각 따로 있다고 하죠. 하루는 태모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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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sdmessage.tistory.com

Date Published: 12/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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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차이점 – 네이버 블로그

증산상제님을 신앙하는 증산계열에도 당연히 종통맥이 있습니다. ​. 증산도와 대순진리회 종통맥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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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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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와 대순 진리회, ‘도를 아십니까?’ 무엇이 다른가요 ?

증산도와 대순 진리회, ‘도를 아십니까?’ … 증산도는 1871년에 이 세상에 오신 증산상제님과 그의 부인 태모님을 신앙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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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oonggyuk.tistory.com

Date Published: 7/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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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모든 종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증산종교, 증산계 종교라는 의미와 이상호가 세운 ‘증산교본부’라는 종교를 가리키는 의미이다. 또한 증산도와도 구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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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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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와 증산도 유사점과 차이점 – 레포트월드

대순진리회와 증산도 유사점과 차이점 1. 들어가는 말 도인 집단들도 종류를 따지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 도인들은 두루뭉수리 말하면 ‘증산계열’로 보아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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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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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대순 진리회 증산도

  • Author: STB 상생방송 증산도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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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Jo-AR7KUV4

증산도와 대순 진리회, ‘도를 아십니까?’ 무엇이 다른가요 ?

증산도와 대순 진리회, ‘도를 아십니까?’ 무엇이 다른가요 ?

참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라서, 이 주제를 정리할 필요를 느낍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증산도는 1871년에 이 세상에 오신 증산상제님과 그의 부인 태모님을 신앙하는 단체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1909년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하늘나라에서 그것을 계속 추진하시기 위해 스스로 어천하t십니다.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며 상제님의 도업을 아내 태모님에게 계승하도록 하십니다. 태모님은 1911년부터 1935년 선화하실 때까지, 상제님의 천지대업을 현실역사에 뿌리내리도록 하십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라는 말이 있듯이, 증산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낳으시고, 태모님께서 천지공사를 현실역사에 뿌리내려 기르시는 역할을 하시게 됩니다.

태모님께서 1911년 정읍 대흥리에 여신 교단은 나중에 차경석이 가로채서, 보천교라는 단체로 발전시키는 데, 1920년대에 신도수 600만을 헤아리기도 했습니다.

차경석의 보천교 교단은 민족의 정신을 선양하는 민족종교이고, 또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은밀하게 보내는 등 국권회복 운동을 많이 하다보니 일제의 눈 밖에 나서, 1936년 교단해체령에 의해 강제해산을 당해 보천교의 몇백만 신앙은 와해되고 맙니다.

증산도

1945년 해방이 되자 증산도 최고지도자 종도사님께서 김제 용화동에서 상제님 신앙교단을 창설하시어, 한 때 증산계열에서 최고 신앙단체를 만드십니다.

1974년 증산도 종도사님과 종정님께서, 오늘날의 증산도를 창도하시어, 증산도 도전을 편찬하시고, 증산도 방송국을 설립하시는 등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와 조철제

대순진리회를 설립한 인물은 조철제입니다. 조철제는 도권道權과 도통에 대한 욕심이 팽배한 인물이었습니다.

조철제는 경남 함안의 도둑골 태생으로,1917년 만주에서 입도를 하고, 바로 증산상제님 신앙의 터전인 전라도 원평 일대로 이주하여, 여기저기 상제님 신앙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조철제는 태모님을 모시고자 했으나 태모님은 만나주지도 않으셨으며, 조철제가 통사동 영모재에서 공부할 때 지나가던 태모님께서 들리시어, “저 개만도 못한 놈!”하고 담뱃대로 조철제의 이마를 내리치시니, 조철제는 태모님의 신권神權에 눌려 “우리같은 사람은 감당못하겠다.”며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태모님께서 왜 담뱃대로 치시며 “저 개만도 못한 놈”하고 크게 꾸짖으셨을까요? 태모님께서는 조철제가 앞으로 세상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칠지 내다보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증산도는 절대 도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증산도는 인류가 가야할 후천 신문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문명사업을 하는 단체입니다.

조철제나 대순진리회는 증산상제님께서 후천 신천지 문명을 창조하고자 하신 인류보편 문명사업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창교자인 조철제는 도통병자로서, 그는 도통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쓰레기처럼 여기저기 풀어놓게 됩니다.

조철제의 도둑질

조철제는 당시 도통의 방법을 궁리하던 중, 상제님의 유품인 약장이나 궤를 가지고 공부하면 잘 될 것같아 그것을 훔칠 결심을 합니다. 1919년 조철제는 심복 최승오 등을 앞세워 몽둥이를 들고 보천교 본소를 처들어가서 상제님의 “궤”를 강탈해갑니다.

궤를 놓고 수행해서는 뭐가 미진했던지, 조철제는 1921년에는 심복들을 앞세우고 상제님의 무덤을 파헤쳐 상제님의 성골聖骨을 훔칩니다. 종교단체의 교주라는 자가 어떻게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훔쳐갑니까? 그것도 자신의 신앙대상인, 증산상제님의 성골을…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조철제는 상제님의 성골을 훔치고 도망다닌 자이지만, 그는 또 평생 증산상제님 신앙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조철제는 증산상제님 신앙을 하긴했지만, 상제님 신앙보다도 자기의 도통에 관심이 더 큰 한마디로 도통병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도통을 위해서는 뭣이라도 저지를 자였고,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하는 자였습니다. 조철제가 도통병자이다보니, 그를 계승한 박한경도 도통병자였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 대순진리회 신도들도 스승에게 배운 그대로 오직 도통병에 걸려, 자신들의 행위가 세상에어떤 죄를 짓는 것인지도 모르고, 가족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도통에 매달려 있습니다.

대순진리회 신도들과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대순진리회 신도들의 관심은 오직 도통이라, 신이하고 기이한 체험만 늘 늘어놓습니다. 촛불이 어떻게 타서 좋다느니, 손에 종이를 태웠는데 글자가 남아서 좋다느니…. 황홀하고 기이한 세계에 살고 있죠. 그들은.

증산상제님께서 “우리 일은 남 살리는 공부니라.” “남살리는 것이 대장부 공부라.” 고 하셨는데 대순 신도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실천할까요? 대순신도들이 세상과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동료와 이웃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신앙을 할까요? 도통욕심에 가득차면 자기 눈앞만 보여서, 세상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조철제는 1921년 전북 태인에서 무극도를 선포했고, 해방후 부산에서 태극도를 설립하는 등 왕성한 교단운영 활동을 했으나, 끝내 도통을 이루지못하고 1958년 사망했습니다. 태극도의 권좌는 박한경이 계승했습니다.

조철제는 사망하기 직전, 문 앞에 부복한 박한경의 머리채를 잡고 노기를 띠며 “도적놈 도적놈” 하였다 합니다. 조철제가 죽기 직전에 박한경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죽어가며 교권을 강탈당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된 것인지…

대순진리회 2대 교주 박한경

충북 괴산 출생인 박한경은 1946년에 입도하여, 비결, 동요 등을 인용하여 시한부적인 말세론을 유포하여 교육도 필요없고 재산도 필요없다는 식의 포교로서 크게 두각나타낸 인물입니다.현재 대순진리회의 포교방식을 창안한 인물입니다.

박한경은 태극도에서 교권을 움켜쥔 뒤 자신의 신격화를 도모했는데, 조철제와 동고동락하던 구신도들의 반발로 조직을 장악하기 힘들게 되자, 신도들이 낸 거액의 치성금을 챙겨 서울로 도주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1968년 국제신보 등에서 “태극도 대표 금괴 처분 도망” “공금횡령 46만원” 등의 기사로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박한경은 1969년 서울 중곡동에 건물을 완공하고 1972년에 대순진리회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진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비결,신비주의,말세론의 박한경식 포교”로 1980년대 초중반에 한 때 굉장한 성장세를 구가했던 대순진리회는 한편으로는 “가정을 버린 포교와 지나친 성금 강요로 인한 파탄”이란 주제로 KBS <추적 60분> 프로에 방영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노란선 안이 희대의 사기꾼 박한경, 하늘색선 안이 천안방면에서 대순진리회를 폭발적으로 일으킨 박희규 재단이사장…

조철제와 마찬가지로 도통을 내려준다고 사기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박한경은 1996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순진리회에서는 박한경이 도통을 내려주기 위해 천상으로 갔다는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내어 아직도 신도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박한경의 죽음 이후 대순진리회는 이유종, 경석규, 안영일 등 각 방면별로 10여개파로 난립 양상을 띠며 추락하고 있습니다.

증산도와 대순진리회가 무엇이 다른가요?

증산상제님을 모신다는 공통분모 때문에 증산도와 대순진리회가 비슷하다는 취급을 받습니다. 증산도 신도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몹시 화가 나고 괴롭습니다. 어떻게 대순진리회같은 사이비, 마귀단체가 나와서 증산상제님을 그렇게 욕먹이고, 증산도까지 사이비 단체로 취급받도록 하는 것인지…

대순진리회는 사회적 지탄을 많이 받아서, 그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간판도 내걸지 않습니다. 그들이 길거리에서나 가정방문해서 포교할 때는, “대순진리회에서 나왔다.”는 말을 못하고, 절에서 나왔다고 하거나 증산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기가 찰 노릇이죠. 이러니 세상에서 어찌 증산도마져 사이비로 인식하지 않겠습니까?

대순진리회가 증산상제님을 신앙하는 단체이고, 증산계열 교단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증산도에서는 그들이 증산계열 교단이라고 자처하는 걸 몹시 싫어합니다.

그들은 증산도처럼 “증산상제님과 태모님”을 천지부모로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순진리회는 도통병자로서 세상에 온갖 해악과 죄악을 저지른 조철제와 박한경을 교조로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옥황상제”라며 버젓이 모시는 야만과 광기를 행하고 있습니다.

조철제와 박한경은 세상에 끼친 해악이 너무 커서 벼락을 맞아야 마땅한 자입니다. 그런자가 옥황상제라니요…. 대학교나 시립도서관에 가면 조철제와 박한경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책을 금방 구해서 읽을 수 있지만, 대순 신도들은 신비주의에 매몰되어 있어서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둘째는 증산도와 대순진리회의 차이는 “진리신앙”이냐 “도통신앙”이냐의 차이입니다.

증산도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기초하여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실천하는 단체입니다. 증산도 도전을 읽어보면, 공자, 석가, 예수, 이마두, 진묵대사, 최수운 등의 성인을 본받아서 대인공부를 해야하며, 대인공부를 하는 것은 “남 잘되게 하고” ” 천하창생을 잘 되게 하는” 그런 가르침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증산도는 앞에서 말한대로 사회보편윤리에 기초해, 인간 누구나 평등하고 고르게 잘 되는 후천 신문명을 개척하는 문명사업을 하는 단체입니다.

증산도장에 있으면, 지리산에서 무슨 요술을 부렸고, 호랑이를 타고 다녔고 식의 신이한 술법을 자랑하러 오는 이가 있으면, 쫓아보냅니다. 증산도는 도통에 환장한 단체가 아닙니다. 증산도는 상제님 가르침대로 선천 유불선, 과학문명의 정수를 뽑아 찌고 익혀서, 후천의 신문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역사성, 문명성과 관련된 진리를 공부하는 곳이지, 신이한 도술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셋째 증산도가 결론을 다 쥐고 있습니다.

증산도는 “참된 하느님 신앙, 진리와 이치에 따른 참신앙, 9천년래 한민족이 믿어온 한민족의 하느님에 대한 역사성이 있는 신앙, 천지이법과 자연의 이치에 따른 신앙, 세상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공도적 신앙, 남 잘되기를 실천하는 대인공부, 참된 지도자를 모시고 배우는 큰 공부, 천지변국 때 인류를 구원하는 법방을 가진 진리” 가 증산도 입니다. 증산도가 인류의 미래에 관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포교 접근방식

대순 신도들은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박한경 식의 비결, 신비주의, 말세론적 포교를 하며 그렇게 접근을 합니다. 길거리나 가정을 방문하는 대순신도들은 사람들은 순하나 악행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에 얼굴기운이 시커멓고 더럽게 느껴지며, 남루한 차림으로 다닙니다.

한때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는 말로 접근하여 세상에 회자되었던 대순진리회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순하고 유약한 사람을 표적삼아 앞뒤로 가로막고, 사람이 유혹되기 쉬운 먹이감을 던지며 포섭을 시도합니다.

대순의 내부 싸움…

문화관광부 앞에서 대순피해자의 1인 시위…

처음에는 “악한 일을 하지마라. 부모에게 효도해라. 가족들이 잘 되게 제사 지내자” 등의 쉬운 내용으로 접근하고, 다음은 대순진리회로 데려가기 위해 “우환과 해결책” 등을 말하며 포섭하려 듭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집안에 우환이 있으니, 지금 풀어야 됩니다.”

“당신 집안에 걱정스런 일이 있는데 보이지 않습니까? 내 눈에는 보입니다.”

“애들이 자꾸 아프지요? 그 원인을 아십니까?”

“몇년 전에 돌아가신 당신 할아버지가 내꿈에 나타나… 내가 해결해주려고 방문했습니다.”

“유명한 절이 있는데, 같이 가보시죠?”

“도통공부 해보시겠어요?”

“천도제를 하면 다 해결된다. 나도 그걸하고는 만사 해결되었다.”

한마디로 대순진리회 포교방식은, 착하고 어리숙한 사람이나, 아직 어린 청소년들에게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도심리나,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공덕을 빌어주면, 기도를 하면, 전생의 빚을 갚으면 모든 우환이 풀린다”는 논리로서 접근해서, 사람을 포섭하려 드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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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증산교(甑山敎)란 어휘는 현재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강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모든 종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증산종교, 증산계 종교라는 의미와 이상호가 세운 ‘증산교본부’라는 종교를 가리키는 의미이다. 또한 증산도와도 구별되고 있다.

역사 [ 편집 ]

증산교(甑山敎)는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이상호(李祥昊)가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만주·북경 등을 유랑하다가 28세 때 용화동에서 증산교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강증산이 죽자 1919년 차경석(車京石)이 보천교(普天敎)의 60방주를 조직할 때 중요직책을 맡게 되어 보천교 총령원장까지 피임되었으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아 탈퇴하였다고 한다.

1925년 또다른 제자 김형렬(金亨烈)이 세운 미륵불교(彌勒佛敎)로 옮겨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를 집필하였는데 미륵불교 간부들과도 의견이 맞지 않아 1928년 임경호(林敬鎬) · 동생 이정립(李正立) 등과 함께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동화교(東華敎)를 세우고 통정(統正)까지 올랐다.

1929년에는 동생 이정립과 함께 ≪대순전경 大巡典經≫을 수집, 간행하였다. 1931년 당시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에서 태을교(太乙敎)를 영도하고 있던 강증산의 부인 고부인(高夫人)을 추종하여 동화교와 통합종단을 만들고 대보(大保)에 올랐다. 그러나 교단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해산되자, 잠시 고향에 머물다가 1937년 정읍으로 이주하였다.

광복이 되자 이정립·최위석(崔偉錫) 등 145인을 모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대법사를 조직하여 증산교운동을 전개하였다. 1947년 최위석과 헤어져 별파를 만들고 이름을 증산교라 하였다. 1948년 17개의 증산교 교단이 모여 증산교단 통정원을 조직할 때 부통교가 되었다.

6·25동란 후 김제 용화동에 본부를 정하여 1967년 죽을 때까지 증산교 교주로 있었다. 동생 이정립과 함께 ≪증산천사공사기≫를 발행하였고, 또한 ≪대순전경≫을 발행하여 보급함으로써 증산사상의 정립에 힘썼다.[1]

강증산의 아내 고판례(高判禮)가 1911년 처음으로 공식 교단을 창립한 뒤, 다시 차경석(車京錫)의 보천교(普天敎), 김형렬(金亨烈)의 미륵불교(彌勒佛敎) 외에 증산대도교 · 제화교(濟化敎) · 태을교 · 동화교(東華敎) · 순천교(順天敎) 등 여러 분파로 갈라졌다.

비판 [ 편집 ]

오늘날의 증산교 · 증산도 · 태극도(太極道) · 대순진리회 등도 모두 강증산에게서 정통성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보면 서로간에 말이 매우 다르다. 조철제(趙哲濟)의 무극대도교, 장기준(張基準)의 순천교(順天敎) 등 강일순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도 여러 교단이 생겨났다는 주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철제는 옥황상제로 모셔지고 있지만 강일순의 제자는 아니었다.

한편 전라북도 김제의 모악산 배꼽 바로 밑엔 ‘오리알 터’로 불리는 금평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오리알 터’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리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올(來) 터’라는 뜻인데 ‘올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리터’로 다시‘오리알터’가 됐다고 한다. ‘천하우주의 모든 기운이 이곳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이다.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메시아가 오는 터란 얘기이다. 불교에서라면 미륵불이 오고, 증산교에서라면 상제(上帝) 강증산이 오는 곳이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이곳은 모악산 주변의 신흥종교인들에게 ‘우주의 자궁’인 셈이고 모든 생명의 고향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타원형의 오리알터 위쪽 정수리에 솟은 산이 바로 제비산(帝妃山)이다. ‘황제의 아내 산’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혁명아 정여립(1546 ~ 1589)은 서른아홉 살 때 한양의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어 반상의 귀천과 사농공상의 차별, 남녀차별이 전혀 없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다. 대동계엔 사당패 광대 점쟁이 풍수 무당 등 별의별 인물들이 다 있었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집터와 그가 천일 동안 기도를 했다는 치마바위까지 남아있다. 현재 오리알터는 증산교계열의 성지로 모셔지는 곳이다.

강일순(姜一淳, 1871년 음력 9월 19일 ~ 1909년 음력 6월 24일)은 정여립 집터 바로 옆 구릿골(동곡마을)에 약방(광제국·廣濟局)을 차려놓고 구한말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했는데 특히 여성과 백정 무당이 존경받고 서자와 상민이 무시당하지 않는 후천개벽의 세상을 역설했고 그곳에서 서른아홉에 눈을 감았지만 현재까지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강증산은 막걸리도 곧잘 마시고, 신이 나면 얼씨구절씨구 어깨춤도 들썩이며 꽹과리나 장구는 물론 굿도 잘했고 평소 “나는 광대요 무당이며 천지농사꾼이다. 광대와 무당이 바로 가장 큰 후천개벽의 전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리알 터 주변엔 증산계열 종파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증산의 유일한 혈육인 강순임이 세운 증산법종교, 제자 안내성의 증산대도회(백운동 교인촌), 제자 이상호·이정립 형제의 증산교본부, 제자 김형렬의 미륵불교, 제자 서백일의 용화교본부, 증산 외손자가 세운 전각 청도대향원, 증산의 둘째 부인 고수부(태을교)를 모신 집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증산계에서 태모라고 불리는 고수부가 이끌던 당시 증산교에는 일제강점기 600만명이 신앙했던 보천교를 만든 월곡 차경석, 지금의 박한경이 만들었던 대순진리회의 전신인 무극대도교를 만든 정산 조철제, 원불교를 만든 소태산 박중빈과 2대종법사 정산 송규, 동화교를 만들었던 이상호(본명 이동련), 이정립(본명 이성영) 형제들이 당대 고수부를 신앙으로 믿고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당초 전라북도 고부 출신의 강일순으로부터 생겨난 증산교는 강일순은 특별히 종파를 만들지 않았고, 오로지 비겁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지상선경(地上仙境)을 열기 위한다는 ‘천지공사’에만 매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09년 강일순의 사후, 그의 부인인 수부 고판례가 선도교를 만든 것이 증산교의 시초이다. 이후 증산 강일순의 제자이며 고부인측의 측근이었던 차경석이 고판례의 선도교로부터 분리되어서 보천교라는 증산교계열의 최대 종파를 만들었으며 신자간에 내부적 갈등을 겪으면서 여러 세부 종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한편 새로운 인물들이 ‘천지공사’가르침을 자체적으로 연구하여 종파를 세우는데 바로 정산 조철제가 세운 무극대도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종교를 탄압을 받으며 해체일로에 있다가 광복 이후, 수많은 증산교단들이 다시 부활하여 난맥을 이루는데, 이 중에서 보천교의 신자로서 추정되는 안운산이라는 인물이 강증산의 교리를 연구하여 새로운 종파를 세운 것이 증산도의 전신이다.

무극대도교는 태극도로 바뀌면서 조정산이 이끌다가 조정산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박한경이라는 인물이 무극도의 계승을 주장하며 조정산의 아들세력(조영래측)과 물리적 마찰을 겪게 된다. 이에 박한경은 부산 태극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새로 포교당을 열고 새 종파를 건립한 것이 바로 대순진리회이다. 대순진리회의 박한경이 사망하자 대순진리회는 또다시 내분을 겪으며 천안측과 여주측의 나누어 대립하였고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완전하게 해결이 안된 상태로 남아있다. 대순진리회의 최대세력은 여주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증산도는 증산교의 도전(교리)에 충실하다고 알려져 있고 증산 강일순만을 상제로서 인정하고 있다. 대순진리회는 증산 강일순 외에 정산 조철제나, 박한경 도전까지도 상제로서 숭배하고 있다. 현재 증산교계열에서는 최대 세력이 대순진리회이기 때문에, 대순진리회는 나머지 다른 증산계로부터 견제 대상으로 되어 있다. 또한 대순진리회는 증산교의 방계 계열로서 교리 자체도 원래의 증산교와는 많이 달라 증산교를 비롯 다른 증산교계열의 견제와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1909년 강증산이 39세의 나이에 죽으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는데 단순한 내용이었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라.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 평소에도 늘 혹세무민하지 말라 가르쳤고 병든 것을 낫게 하려고 애쓰던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바램과는 달리 증산교는 여러 파로 갈라져 선도교 · 보천교(普天敎) · 미륵불교(彌勒佛敎) · 제화교(濟化敎) · 태을교(太乙敎) 등 수십 개의 독립교단이 난맥상을 이루며 창설되었고 한때 혹세무민하는 종교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실제로 일부 신자들의 기복적이고 주술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종종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런 지탄을 받는 모습도 일부 남아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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